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여성작가 여섯 사람이 섹스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단편소설집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문학사상)를 읽어보았습니다. 빨간색 표지가 무척 자극적이었지만 내용은 “아주 은밀한 섹스판타지”라는 도발적인 광고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욕망과 한계를 인정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선을 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돈, 섹스,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것은요?

자신이 욕망 덩어리라는 것을 인정했다가는 하루아침에 매도되기 쉬운 세상에서 검사 출신의 법학자 김두식은 욕망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결심의 결과물로 <욕망해도 괜찮아>(창비)를 내놓았습니다.

김두식은 <헌법의 풍경>(교양인)에서 직접 체험한 법조계의 어두운 현실을 용기 있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헌법 정신의 수호자여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기득권층과 결합해 ‘불멸의 신성가족’을 만들고는 법과 시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통렬하게 고발해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안겨주었지요.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김두식은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말’과 ‘글’의 교감 이상으로 ‘살(몸)’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소설가들이 자기 욕망을 정직하게 털어놓기 위해 소설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하고서도 자신의 ‘색(욕망)’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은 마당에 말입니다.

“욕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끝없이 통제하는 문화 속에서 평생을 보낸” 김두식은 우리 사회의 경계선을 넓히는 도구로 자신의 삶을 이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자신의 억눌린 욕망과 분노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험한 정글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지요.

 

섹스 테마 소설집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를 펴낸 여성작가들 l 출처:경향DB

김두식은 지금은 중산층의 터전’으로 변한 성북동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교사였던 김두식은 “중산층동네와 산동네의 접경지역”에서 살았지만 “삼중당 문고를 품고 살다시피한 똑똑한 문학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에 부자동네 아이들의 화사한 세계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부자 동네 출신 아이들은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재벌 3세’에서부터 그럭저럭 괜찮은 중소기업의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유학을 마치고 아버지 회사를 이어받았습니다. 중산층동네 친구들은 판사, 벤처회사 연구 책임자, 성악가, 헌법연구관 등이 되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만 셋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부자 동네 아이들이 가업으로 이어받은 회사에서 부장이나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두식은 “부자동네 아이들이 앉아 있는 사장실에 결재받으러 드나드는 걸 피하려는 무의식이 우리를 사법시험 합격으로 이끈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산동네 출신 친구 중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공부를 잘해서 최고로 꼽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졸업과 동시에 무조건 돈을 벌어야 했던 그 친구에게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돈과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산동네 출신 친구들은 근본적인 출발선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김두식은 성급한 일반화를 우려하면서도, 친구 부모님들의 소득수준에 따른 순위가 그 자녀인 자신 세대에서도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평준화와 과외금지 조치로 그나마 활발한 신분변화가 일어났다는 학력고사 세대”인 자신 세대의 ‘계층 고착화’가 이렇게 굳어져 있는데 이후 세대는 어떨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지금은 로스쿨의 등장으로 “성적 하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무식한 제도(사법시험)가 가졌던 투명함”마저 사라졌습니다. 고등학교도 철저하게 서열화되었습니다. 이제 서열화는 점점 내려가 머지않아 태어나는 순간부터 서열이 정해질지도 모릅니다.

하긴 그런 서열이 싫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지만요. 저는 김두식의 고백을 통해 검찰이 “권력의 화장지 노릇”이나 하는 원인을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73세의 소설가 김주영은 <잘 가요 엄마>(문학동네)에서 새아버지의 등장으로 인한 좌절감과 수치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황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야 어머니라는 존재의 실체를 정확하게 깨닫고 “어머니에 대한 참회록”을 털어놓을 수 있었답니다. 한때 원망을 넘어 저주까지 했던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 이 소설의 솔직한 고백은 큰 감동을 안겨줍니다.

김려령의 장편소설 <가시고백>(비룡소)에서 18세의 주인공인 천재 도둑 민해일은 친구 허지란의 새아빠 전자수첩과 친아빠 넷북을 연이어 훔칩니다. 해일은 자신이 훔친 사실을 지란에게 고백함으로써 드디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게 아프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떨치고 제 심장의 가시고백을 뽑아내야만 그때서야 믿어주고, 들어주고, 받아주는 연대가 이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너무 늦어 곪아터지기 전에 저마다의 ‘가시고백’을 뽑아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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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khhan21@hanmail.net


지난 5월 19일 안면도에서는 누동학원의 총동창회가 열렸습니다. 누동학원은 1975년 6월 15일 문을 열어 모두 8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81년 8월 30일 문을 닫은 중학교 과정의 농촌야학입니다. 제도화된 교육을 비판하며 바람직한 교육의 모델을 제시하려 했던 누동학원을 유신정권은 ‘사설강습소법’을 핑계로 강제 폐교시켰습니다.

저는 6년여 동안 누동학원을 거쳐간 80여명의 교사 중 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학년 9명의 담임이었지요. 마지막 졸업식이 있은 뒤에 한 학생이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떠나시는 선생님을 볼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 작은 소녀의 가슴에서 벅차 올랐어요. 선생님, 저는 그때 배움의 힘이 크고 돈의 위력이 큰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적어도 11월까지는 지탱이 될 거라고 하시던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나고 사람이 진실성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시던 생각도 나고….”

이 편지를 보낸 소녀는 이제 48세의 나이로 대학에서 청소년 교육을 공부하는 3학년 학생입니다. 51세의 남편은 대학 교수이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두 아이도 대학생입니다. 온 가족의 전공이 같은 계열이랍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뒤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다른 졸업생은 지금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가르치는 동안 세 번이나 가출했습니다. 저는 당시 우등상과 개근상을 없앴습니다. 바쁜 농사일에 일손이 없어 허덕이는 부모를 모르쇠하고 학원에 오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런 상은 아이들을 나쁜 심성의 소유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지요.

 

서울 서대문구 안산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교사와 함께 교문 밖을 나서고 있다. l 출처:경향DB

도시락도 못 싸오던 두 아이가 이번 모임을 이끌었습니다. 제가 자신들의 담임이었다고 저부터 인사를 시키더군요. 저는 50여명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4세의 철없는 사람이 1년 남짓 교사를 했다고 평생 스승으로 여겨주는 경우가 세상 어디에 있나요? 제가 스승이 아니라 여러분이 제 삶의 스승입니다. 제가 ‘학교도서관저널’ 같은 잡지를 3년째 펴내며 세상에 헌신하며 살 힘을 여러분이 제게 주었습니다.” 그날 참석한 다른 교사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저는 이 시대 교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오늘의 교육> 6호(2012년 1~2월)의 특집 ‘교육 불가능 시대, 교사는 가능한가’는 좋은 교사를 꿈꿨던 이들마저도 그냥 공무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특집에서 ‘스승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엄기호는 “교사가 학생과 위계적인 관계를 떠나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이 큰 기쁨이듯이 학생들 또한 교사와 우정을 맺는 것이 배움의 도약을 이루는 큰 전환점이 된다”고 말합니다. “제자의 능동성을 배려하며 진실에 대해 용기를 내게 하는” 교사가 진정한 스승이라고 규정한 엄기호는 “우리 교육 현장에서 스승이 되는 것은 지극히 힘들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의 고통은 크겠지요. 한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딱 한 가지만 포기하면 교사가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올해 ‘스승의 날’을 맞이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5명 중 4명은 “교직의 만족과 사기가 떨어졌다”고 대답했습니다. <학교의 풍경>(교양인)에서 “학생 안전의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 제도적 안전망이 없는 환경, 힘 있는 학부모들의 교권침해, 수업에 들어와 다과를 들며 수업을 감상하는 이상한 교원평가, 국·영·수 외에는 설 자리가 없는 교육 과정, 학교 밖에서 이미 곪아 터진 문제로 아파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체제의 부족함” 등을 질타한 12년차 교사 조영선은 “사랑하는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서로 어깨를 겯는 동지로 거듭나는” 올바른 관계를 꿈꿉니다.

<변방의 사색>(꾸리에)에서 “이제 웬만하면 비정규직, 아니면 청년 실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모두 16년을 온통 지옥 같은 경쟁으로 내모는 이 경쟁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비정규직 산업예비군이 되기 위해 이 미친 경쟁에 뛰어들 이유는 없다”고 외치는 이계삼은 이제 우리가 쓸모없는 것으로 내던진 ‘인문학’과 ‘농업’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6년차 교사 안준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제자들마저 힘겹게 살아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괴로워합니다.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문학동네)에서 “교권은 학생들을 사랑할 권리”라고 해석한 그는 “교사가 한 아이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순간 교사로서의 존재 의미는 상당 부분 훼손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2011년에 하루 209명, 모두 7만6489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에 남은 아이들도 성적만이 살길이라는 아주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구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며 저는 교사와 학생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안준철의 지적대로 모두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과 이해”를 하려고 나서는 것이 암담한 교육현실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키가 훌쩍 커버려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린 누동학원의 제자들이 어깨동무하며 제게 알려준 진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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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대략 1991년부터 2002년까지를 말합니다. 한때 일본 경제의 고공행진을 가능하게 했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락하자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습니다. ‘고이즈미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한 고강도 개혁 정책을 실시해 경기가 잠시 살아나는 듯했지만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흔들렸고, 작년 3월11일에는 대지진마저 겪으면서 심각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은 이제 ‘잃어버린 20년’이 되었다지요.

로버트 기요사키는 <앞으로 10년,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흐름출판)에서 세계 경제대국 가운데 첫 번째로 부도가 날 국가는 일본이라네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군요. 2010년의 국가 부채 비율은 일본이 200%, 미국이 58.9%, 영국이 71%였습니다.

4대강 삽질로 일관한 이명박 정권은 작년에만 국가 부채와 공공기관 부채를 약 60조원 이상 크게 늘렸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채무는 모두 약 884조원으로 작년 GDP의 71.6%에 달합니다. 우리도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디 부채뿐인가요? 저출산으로 말미암은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 소득이 높고 사회적 지위도 안정된 ‘쌍봉세대’의 은퇴, 자산가치 하락, 개인부채 급증 등 일본의 모습을 뒤따라가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들 l 출처:경향DB

1947~49년에 태어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은퇴를 앞두었던 시절의 일본에서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우화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1998년에 노인의 건망증과 같은 망각의 힘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말한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노인력>이 최고 유행어로 뽑힌 것이 계기가 된 이후, 아흔 살의 현역 의사인 히노아라 시케아키가 “나이듦이란 노쇠가 아니라 숙성되는 것”이라며 장수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생활에 능숙함>과 일흔 살의 이시하라 신타로가 쓴 <나이듦이야말로 인생>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인생론에 몰두했던 단카이 세대가 노년의 입구에 다다르자 청춘을 회고하며 남은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했었지요. 100살을 넘긴 장수자들이 많은 일본에서 이 책들을 인생의 전환점에 선 50대가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즈음 최고로 인기를 끌던 실버잡지인 ‘사라이’는 정치, 경제, 비즈니스, 질병, 금전 등 다섯 주제는 절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잡지를 읽는 동안만이라도 골치 아픈 이야기는 잊어버리라는 독자에 대한 배려였지요.

‘늙음과 죽음’이 이렇게 시대적 화두가 되는 와중에 40대가 풍요로운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책, <40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 <마흔부터 현명한 삶> <마흔부터의 인생설계 가이드> <40살부터의 새로운 노년학> 등의 40대를 위한 다양한 정보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평균연령이 80살을 넘긴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100세 마케팅’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인 40대를 위한 책들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습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신정근, 21세기북스), <마흔에 읽은 손자병법>(강상구, 흐름출판), <마흔살, 행복한 부자 아빠>(아파테이아, 길벗),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이의수, 한국경제신문) 등의 인기는 40대가 책의 중요한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지적처럼 우리는 과거에 “학교 교육, 직업 안정성, 급여, 의료보험, 조기 은퇴 그리고 평생 동안 지속되는 정부 지원과 같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에 집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화 사회입니다. 우리는 과연 새 시대에 맞는 사고를 하고 있나요?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경제국가 반열에 올라선 한국도 경제의 성공에 부수적으로 증가하는 “각종 불만들을 어떻게 완화할지,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지, 시장가치가 가족·지역사회·공공성을 훼손하거나 잠식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미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보기술(IT) 혁명이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를 걷고 있는 지금, 우리는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하도 극심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가치관은 부챗살처럼 한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아이, (미래에 대한)희망이 없는 ‘6무(無) 세대’가 된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전혀 기대하지 못하자 무수하게 자살을 꿈꾸고 있습니다.

자신의 앞날을 몰라 헤매다가 40대가 되어서야 겨우 공부를 시작하거나 운이 좋았던 젊은 시절에 모아놓은 자산이나 소비하면서 여생을 이어가려는 부모세대가 자식에게 알려줄 세상을 이겨낼 지혜가 과연 존재할까요?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이 달아준 카네이션과 건네준 선물에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갓 ‘노예의 학문’으로 전락해버린 각종 스펙을 갖추라고 강요해온 부모들이 그런 기쁨을 누릴 자격이 과연 있을까요? 오히려 고통받는 자식들에게 부채만 잔뜩 물려주고 세상을 이겨낼 힘은 스스로 갖춰보라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을 반성하며 자식의 가슴에 ‘응원’의 꽃을 달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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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요즘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입니다. 한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니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은교>(박범신, 문학동네), <헝거게임>(수잔 콜린스, 북폴리오), <화차>(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등 영화화된 원작소설 몇 편만이 순위에 들어 있네요. 성석제의 신작 장편소설 <위풍당당>(문학동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의외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소설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꾸준히 ‘팔리는’ 몇몇 대형작가가 존재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발 재정위기로 이어져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평생 ‘위기’를 끼고 살아야만 할 것 같은 2010년대에는 대형작가들의 작품마저 ‘임팩트’가 강하지 않으면 곧바로 외면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14년째 출판전문지의 발행인으로 있는 저는 소설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특집이라도 꾸려보라는 주변의 압력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 꽤나 읽는(아니 읽어야만 목숨을 부지하는) 출판평론가들에게 소설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가가 누군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설을 살릴 수 있는 묘안을 찾아보자는 취지였지요.

 

대형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들 I 출처:경향DB

그렇게 추천받은 작가가 천명관과 이응준입니다. 천명관은 <고래> <고령화 가족>(이상 문학동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전 2권, 예담) 등 ‘영화 소설 3부작’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고래>는 훗날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불리게 되는 주인공인 벽돌공 춘희와 고향 산골마을에서 가출해 어촌에서 늙은 생선장수와 살림을 차린 후 키가 팔 척이 넘는 장골의 사내 걱정과 악명 높은 건달 칼자국 등을 거치며 굴곡진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어머니인 여걸 금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령화 가족>의 화자인 나(이인모)는 영화감독을 하다가 영화가 망하는 바람에 마흔 여덟의 나이에 ‘더 이상 팔 것이 없어’ 일흔이 넘은 엄마의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 집에는 120㎏의 거구에다 전과 5범의 변태성욕자인 52세의 형 오한모(오함마)가 이미 둥지를 틀고 있었는데 곧이어 화려한 이혼 경력의 소유자이면서도 또다시 남편과 이혼할 예정인 45세의 여동생 미연이 딸과 함께 합류합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주인공인 삼촌은 자기 삶의 롤모델인 이소룡을 닮고자 했으나 결국은 액션신 단역배우인 ‘다찌마리’의 인생을 벗어날 수 없었던 인물입니다. 삼촌은 풍만한 가슴으로 값싼 포르노 영화와 액션 영화를 전전하는 삼류 배우 정원정을 만나자마자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헌신도 불사하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천명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무척 강합니다. 그들은 보편적 일상 이상을 꿈꾸거나, 일상 이하에서 고통 받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짝퉁 인생’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지질한 인생들입니다. 천명관은 이들의 삶을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대단한 입담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응준은 스스로 소설미학과 관념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문학적 성리학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문학적 재능은 진즉 인정받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실존적 위협을 느끼자 상업영화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영화판을 경험한 이후에 자신을 부수는 용기를 갖고 쓴 것 같은 소설이 <국가의 사생활>과 <내 연애의 모든 것>(이상 민음사)입니다.

<국가의 사생활>은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 통일한 지 5년 뒤인 2016년 한반도를 무대로 어느 전대미문의 인민군 출신 폭력 조직의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입니다. 청천벽력같이 찾아든 평화통일의 대혼란 속에서 공화국 군대의 무기 회수와 관리가 허술한 탓에 대한민국에는 어둠의 세력이 마구 활개를 칩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나이 마흔 줄의 미녀 노처녀이자 진보노동당 대표 오소영 의원과 역시 마흔의 미남 노총각으로 판사 출신이자 보수여당인 새한국당의 김수영 의원이 주인공인, 정치권의 좌우대립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적 이해를 통해 도달한 사랑의 힘이 사람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가를 해학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캐릭터가 강한 인물들의 삶이 마치 영화 스크립트가 빠르게 넘겨지듯 이야기가 재미있게 전개되는 이 소설들은 곧바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영화적 과장이 자주 등장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소설적 진화를 이룬 듯합니다. 이렇게 전통적 소설 기법의 틀을 과감히 깨버린 이들 소설은 이야기가 갖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잘 보여줍니다.

지금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는 정치적 공방, 종교와 음모론, 내부고발, 성공담과 실패담 등 무수한 이야기가 범람합니다.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대단한 대중은 이제 그런 이야기에 곧바로 환호와 비난을 동시에 보냅니다. 지난 4·11 총선 국면에서도 불법사찰, 막말, 표절, 성추행 등의 개인과 일상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판세가 크게 요동쳤습니다.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지요. 이런 세상이니 우리는 천명관과 이응준 같은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에 어떤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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