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혼밥’을 할 때면 물에 밥을 말아서 김치만 꺼내 먹기도 하고 싱크대 앞에 서서 먹기도 한다. 혼자 먹자고 지지고 볶는 일도 번거롭거니와 요리의 필수 과정인 설거지가 귀찮아서다. 최대한 설거지거리를 줄이는 것이다. 그나마 식구들과 함께 먹을 때나 찌개라도 끓이고 계란말이라도 부친다. 

도시보다 농촌이 더 빨리 혼밥시대를 맞이했다. 자녀들은 진즉에 대처로 나갔고, 배우자 사망(주로 남편) 이후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많아서다.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차지하면 초고령 사회라 한다. 농촌은 65세 이상 고령 농민이 40%를 넘어섰고 해마다 사망인구가 늘어 농촌 마을은 빠르게 비어 간다. 농촌 노인 문제는 빈곤과 장애 문제가 중첩돼 있는 데다 여성화 경향도 뚜렷하다. 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 아픈 몸을 끌어안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촌 노인들의 생활비 중 식료품비 지출이 80%에 육박한다. 소득이 빈곤선에 닿아있기 때문에 그만큼 엥겔지수가 높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농촌 노인들이 식사에서 느끼는 고충은 양은 물론 질도 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농촌에는 먹을 것이 지천일 것 같지만 이는 도시인들의 착각이다. 채소는 텃밭에서 조금 지어 먹더라도 과일과 생선, 고기, 가공식품은 현금으로 사야 한다. 심지어 쌀도 산다. 그래서 돈이 부족하면 식단은 부실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혼자 차려 먹기까지 하니 밥상은 스산하기 마련이다. 

다행인 것은 몇 년 전부터 ‘농촌마을 공동급식 지원사업’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 모여서 주민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다. 2012년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농번기인 모내기철에 취사 도우미 인건비를 지원했는데, 반응이 좋아 전국 지자체로 확산 중이다. 5월 즈음은 하곡을 추수하고 과수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철이기도 해서 한시적인 지원이지만 주민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농번기에 가사노동 부담이 줄고 좀 더 풍성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주민들은 의외로 함께 먹는 재미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충남연구원 박경철 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마을 공동급식의 좋은 점으로 ‘마을 주민 간 공동체성 회복’과 ‘혼자 먹는 외로움의 해소’를 꼽은 응답 비율이 도합 60%를 넘는다. 

하지만 역시 많이 아쉽다. 요즘 농촌에서는 시설재배와 축산업이 확산되면서 농번기가 따로 없을 정도다. 사시사철이 농번기다. 수도작의 경우에는 가을 추수기도 농번기다. 지자체들도 마을 공동급식 사업의 긍정적인 효과를 잘 알고는 있지만 빠듯한 재정 때문에 충분한 예산 지원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공동급식을 신청한 마을의 절반 정도도 지원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많다. 게다가 인건비만 지원되고 부식비는 마을에서 자체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 식단의 질적 측면에서도 부족하다. 거동이 불편해 마을회관까지 나오지 못하는 주민들은 이 사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직접 집에 가져다주는 것은 마을회관에 모이는 주민들도 보행기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노인들이어서 힘들다. 그래서 집에서도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반조리식품이나 도시락 배달 같은 사업을 병행했으면 한다. 학교급식이나 거점 조리시설과 연계할 수 있다면, 식재료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아이디어는 늘 넘쳐난다. 아쉬운 것은 돈과 사람이고 이는 곧 정치의 문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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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100만명의 홍콩 시민이 나오고 이어서 200만명이 나왔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결국 사과했고, 문제의 송환법은 무기한 중단되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제 행정장관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이 시위의 배경에 대해 많은 분석과 설명이 나왔다. 또 수많은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지금의 홍콩과 한국의 민주화운동 혹은 촛불집회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시위대가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광둥어 버전을 노래했다는 뉴스도 화제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국경을 넘어서 연대하는 모습은 꽤 감격적이다. 또 이유가 어찌 되었든 폭력과 통제로 체제를 존속하려는 권력들의 불의함도 이론의 여지가 많지 않다.

검은색 상의를 입은 홍콩 시민들이 16일 도심에서 ‘마음은 이미 갈가리 찢어졌다. 악법을 철회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범죄인 인도 조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홍콩 _ AP연합뉴스

그런데 우연히 본 한 문장에 약간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지금 홍콩의 상황이 '87년 광주항쟁'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오타였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상당한 사람들이 그 게시글을 공유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에 가깝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가령 촛불집회를 외국인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어떨까?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입장에 따라 설명 역시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홍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열심히 이런저런 뉴스들을 찾아본다고 해도, 그 맥락들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가 홍콩과 ‘비슷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한국의 민주화는 또 어떤가? 우리는 과연 우리의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설명할 언어들과 기준들을 충분히 갖고 있을까? 결국 둘을 비교하고 그것을 통해 유사성을 판단할 정확한 근거가 우리에게도 딱히 없는 셈인 것은 아닐까에 생각이 닿았다. 

물론 안다는 것이 얼마나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불확실하다. 단순히 무언가를 지지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뿐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싸움들에서 정확한 상황 진단과 이념적 선명성 같은 것이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최초의 한정된 문제의식들에 다양한 관점과 경험들이 붙어가는 과정 속에서 투쟁은 커졌다. 그리고 여기에는 각자가 갖고 있는 상이한 불만들이 예상치 못한 계기를 만나 용광로처럼 녹아드는 과정이 반드시 끼어들었다.

이 불만의 용광로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목격되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했던 미국인들, 프랑스의 노란조끼들, 어쩌면 한국의 촛불 등등. 이들은 때로는 상이하다 못해 양립할 수 없는 입장과 주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각자의 불만을 안고 녹아들었다. 하지만 이 용광로의 열기와 불빛에만 현혹되어서는 정작 그것이 제련해 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지기도 한다. 부당한 권력을 몰아내고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그 소수자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심지어 이 두 개의 목소리가 같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일도 적지 않다. 우리가 보았던 대부분의 흐름들은 언제나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고, 흑백으로 나눌 수 없는 상황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홍콩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분노하는 것과, 드러난 현상에 대하여 조금 더 사려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서로를 배척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시간 동안 변화에 대한 열망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왔다. 당장이라도 혁명이 일어날 것처럼 굴다가, 음울한 목소리로 ‘그래 봤자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하기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꾸고자 했던 것이 정녕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홍콩의 시민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민주주의가 도래하기를, 그리고 그들의 발걸음이 우리에게도 길을 보여주기를, 무엇보다 무사하기를 빈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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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프로타고라스가 한 말이다. ‘척도’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잣대’다. 한자로 ‘척(尺)’인 ‘자’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길이 단위다. 포목점에서는 폭이 일정한 긴 천을 둘둘 말아 두루마리로 보관하다, 손님이 원하는 만큼, 눈금이 표시된 막대로 길이를 재서 끊어 팔았다. 자를 재는 이 막대기가 바로 ‘잣대’다. 한 자가 약 30㎝니 삼척동자의 키는 1m에 미치지 못하고, <삼국지> 구척장신 관우는 2.7m로 세계 신기록이다. 기네스북 감이다.

프로타고라스가 한 말에서 ‘인간’이 제각각 다른 개별적 존재로서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컫는다면, 사람마다 잣대가 다르니 나에게 한 자가 다른 사람에게는 한 자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다르니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의미다. 프로타고라스의 말에서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 모두를 가리킨다면, 사람에게 맞는 얘기라 해서 강아지에게도 맞는 얘기는 아니라는, 강아지 키워본 사람이면 누구나 동의할 주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혹은, 모든 것을 인간의 시각에서 보겠다는, 인간중심주의 선언으로 볼 수도 있다.

왼쪽 발을 한 줄로 이어 붙여 여럿이 나란히 선 후 발 크기의 평균으로 1피트(ft)를 정했음을 보여주는 중세 유럽의 그림. 위키피디아

한국사 공부할 때 등장하는 도량형(度量衡)의 통일은, 길이(度)와 부피(量), 그리고 무게(衡)를 재는 표준(잣대)을 하나로 정했다는 뜻이다. 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부피는 가로, 세로, 높이 세 방향의 길이를 곱해 얻으니, 부피의 단위를 길이 단위와 별도로 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안에 가득 담긴 양으로 부피를 재는 됫박을 따로 만들어, 길이를 재는 잣대와 함께 쓰는 것이 현실에서는 훨씬 더 편했으리라. 무게는 돌림힘의 평형을 이용해 저울로 쟀다. 길이를 재는 잣대, 부피를 재는 됫박, 무게를 재는 저울을 국가에서 정한 것이 바로 도량형의 통일이다.

시간의 길이를 재는 잣대는 굳이 따로 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이 며칠인지는 밤에 달을 보면 알고, 하루 중 지금이 언제인지는 낮에 해를 보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해의 길이는 나라 안 어디나 별 차이 없지만 계절에 따라서는 크게 변한다. 낼모레 하짓날, 서울에서 해는 오후 7시57분에 져서 다음날 오전 5시11분에 뜬다. 밤의 길이가 9시간14분으로 짧다. 동짓날은 거꾸로다. 무려 14시간26분이 밤이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 안 사람들에게 야간 통행금지 시간의 시작은 종을 28번 쳐서(인정), 끝은 다음날 새벽 북을 33번 쳐서 알렸다(파루). 밤 시간을 5등분한 것이 ‘경’이고 ‘경’을 다시 5등분한 것이 ‘점’인데, 일경에 해당하는 시간이 하짓날에는 111분, 동짓날에는 173분으로 무려 1시간의 차이가 난다. 사시사철 들쭉날쭉 변하는 잣대로 밤 시간을 쟀다는 것이 흥미롭다. 인정은 이경에, 파루는 오경삼점에 쳤으니, 하짓날에는 오후 9시48분에서 다음날 오전 4시27분, 동짓날에는 오후 8시10분에서 다음날 오전 6시34분까지가 통행금지 시간이었던 셈이다. 성문을 열며 동트는 새벽을 알려주는 것이 파루다. 우리 조상들은, 곡식이 빨리 성장해 부지런히 일해야 할 여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일했고, 추수가 끝나 한가한 겨울에는 느지막이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물리학에서는 시간이 여름밤과 겨울밤에 다를 수 없다. 뉴턴 역학과 칸트 철학의 시간은 관찰 대상의 변화를 측정하는 순수한 형식이다.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지만, 무얼 담아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빈 그릇이다. 과거, 동양의 시간 개념은 고전물리학과는 무척 달랐다. 우리 선조들에게 시간은 삶과 동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삶의 리듬에 맞춰져 있어 계절과 밤낮에 따라 함께 변했다. 해 뜨는 시간이 매일 다른데도 일출에 맞춰 하루를 시작했던 선조들이 우리 눈에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조들이 오늘 아침 우리를 봤다면, 해 뜬 지가 언젠데 여전히 잠자리에서 꾸물대는 후손을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과학에도 잣대가 있다. 거리, 시간, 질량뿐만이 아니다. 전류, 온도, 물질의 양, 빛의 세기를 재는 잣대도 있다. 한국의 1m가 미국에서는 10m라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잣대에 대한 합의는 소통을 위한 첫걸음이다. 모든 나라가 합의한 여러 표준잣대의 모음이 국제표준단위계다. 얼마 전까지도 질량 1㎏의 표준은 파리에 보관된 합금 덩어리였다. 외계인이 지구인의 1㎏이 얼마인지 알려면 굳이 파리를 방문해야 했다는 뜻이다. 이제 1㎏은 물리학의 기본상수인 플랑크 상수에 기반해 정해졌다. 외계인과 통신을 하게 되면, 1㎏이 얼마인지 이제 드디어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물리학의 잣대들이 우주적 규모의 보편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면에서, 최근 발표된 국제표준단위계는 과학의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위키피디아에서 ‘foot(unit)’을 검색해보라. 1피트(ft)를 어떻게 정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중세 유럽 그림을 볼 수 있다. 왼쪽 발을 한 줄로 이어 붙여 여럿이 나란히 서고는, 발 크기의 평균으로 1피트를 정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람마다 발 크기가 모두 다른데, 내 발만 특별하다고 우기면 우리는 공통의 잣대에 합의할 수 없다. 필자는 이 그림을 보며, 현대의 민주주의를 떠올렸다.

삶에도 잣대가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 남의 잣대가 나와 다르면,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내 잣대를 먼저 의심해보는 성찰적 회의도 중요하다. 서로의 잣대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많은 이가 합의할 수 있는 공통 잣대를 찾아가는 지난한 노력의 이름이 민주주의다. 또, 민주적인 방법으로 숙의를 거쳐 합의한 결과라면 내 잣대와 달라도 그 결과를 존중하는 것 또한 민주주의다. 내 발만 발이 아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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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후배가 지난주 결혼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만나 14년을 연애하고 드디어 식장에 들어섰다는데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모습이 정말 예쁘더라, 들떠서 이야기하는데 듣던 이는 시큰둥하게 “결혼하기 전에 평균 3~4명은 만난다는데 한 사람이라니 손해 아니냐”고 대꾸했다.

마치 ‘표준’처럼 통용되는 ‘평균 3~4명’이라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모 결혼정보업체가 과거 결혼적령기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미혼 남녀의 이성교제 평균 횟수는 ‘남성 4.7회, 여성 4.3회’라고 한다. 하지만 그 숫자는 교제경험이 없다(13.3%)부터 10회 이상(8.3%)이라는 답변을 모아서 나눈 것이다. 이 같은 부류의 설문조사는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오해를 산다. 평균은 ‘특정 집단의 정보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대푯값’으로 추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이지, 그 자체가 ‘표준’은 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그 ‘평균’은 ‘표준’을 넘어 ‘정상’의 자리까지 종종 넘본다. 서울 거주 25~29세 남성의 평균 키는 175.6㎝이고, 고3 여학생 평균 몸무게는 57.8㎏이고, 아기는 평균 생후 6개월이면 뒤집기를 한다는 등의 통계 수치를 접하면 사고는 자동회로처럼 ‘평균에 부합하는지’ 자신의 경우를 놓고 가늠하기 일쑤다.

사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그 같은 ‘평균’이란 숫자는 별 도움이 안된다. 발달심리학자인 토드 로즈 하버드대 교수가 <평균의 종말>에서 소개한 ‘노르마(Norma)’의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노르마는 미국의 한 부인과 의사가 젊은 여성 1만5000명으로부터 수집한 신체치수 자료를 바탕으로 조각가 에이브럼 벨스키가 1942년 만든 조각상이다. 노르마의 뜻이 ‘정상’인 것처럼 이 ‘표준모델’은 “평균값이 여성의 정상 체격을 판단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했다.

워낙 인기가 높다보니 1945년에는 ‘노르마 닮은꼴 찾기’ 대회까지 열렸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는 예상은 엇나갔다. 대회에 참가한 3864명의 여성 중에서 9개 항목의 ‘평균’ 치수에 딱 들어맞는 ‘노르마’의 몸을 가진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평균=표준=정상’이라는 오류에 빠져 있던 당시의 전문가들은 당황한 나머지 ‘여성들이 건강하지 않아서 빚어진 문제’라고 해석하고 말았다. 극도로 다양한 인간은 ‘평균’이라는 ‘납작한 숫자’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눈앞에 두고도 말이다. 

‘납작한 말’도 마찬가지다. 명쾌한 진실 같지만 삶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 예로 “흑인은 수영을 못한다”가 있다. 해부학적 특징 때문에 타 인종보다 물에 덜 떠서 그렇다는 건데, 미국의 시몬 마누엘 선수가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 자유형 100m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게 분명하다. 사실 흑인들이 수영을 못하는 것은 같은 물에 몸을 담그고 싶지 않던 백인들이 오랫동안 이들의 출입을 금지한 인종차별 문화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시험 점수가 좋으면 똑똑하다”도 비슷한 예다. 로즈 교수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은 SAT 점수와 출신학교의 명성이 재능을 예견케 하는 지표가 되지 못하고, 학부 성적도 졸업 후 3년 동안만 유효하다고 본다. 각 인재가 가진 재능이 들쭉날쭉해서 어느 하나의 점수로 평가할 수 없다고 결론냈기 때문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 만사에서는 오랫동안 당연시해왔던 문제들에도 때때로 물음표를 달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맹점이 되고, 새로운 가능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납작한 숫자의 눈치를 보거나, 납작한 말에 가두기엔 삶이 넘치도록 다양하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면 그만 아닐까.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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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들은 사고뭉치였다. 나 어렸을 땐 산에서 나무를 해다 불땠는데, 아랫목 말고는 달달 떨다가 잠을 설쳤다. 이후 등장한 연탄 시대. 더러 연탄가스를 마시기도 했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것은? 연탄가스. 취해서 해롱해롱하면 동치미를 떠다 먹었다. 어이없는 치료법. 국회는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는 집일 텐데, 요샌 농땡이 치는 재미가 좋은가. 마을회관은 노인들이 모여 점당 100원 화투를 치다 싸우는 집. 교회는 신도들이 모여 복 달라고 떼쓰다가 뜻대로 안되면 애먼 대통령을 욕하는 집. 대부분 가정집은 뿔뿔이 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보다가 잠드는 집. 

언젠가 북유럽에 갔다가 한 숙소에서 오로라를 보았다. 내 기억 속 오로라 빌라. 소설가 르 클레지오의 소설에도 ‘오로라의 집’이 등장한다. “빌라 오로라라는 이름과 관목숲 가운데로 흘긋 보이는 집의 진주 빛깔과 그리고 무척 넓지만 전혀 다듬어지지 않아 새와 들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는 정원 때문에 그곳을 생각할 때마다 모험심으로 두근거렸다. … 고양이들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정원에서 마치 빌라 오로라 여주인의 피조물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집 입구에 적혀 있는 ‘우라노스’라는 그리스어는 ‘하늘’이라는 뜻.” 

하늘이 훤히 보이는 집은 얼마나 감사한가. 서울 살 때 반지하에서 잠깐 지내기도 했다. 하늘이 한 뼘도 보이지 않았다. 새마을기차를 타고 올라온 어머니는 캄캄한 방에 웅크리고 앉아 퍽퍽 한숨을 내쉬셨다. 책냄새뿐인 그 반지하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자연을 찬미하는 책들을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창문을 열자 오로라가 반기던 밤에 나는 피우지도 않는 담배 생각이 문득 났다. 하얀색 구름을 피어올리고 싶었다. 담배를 좋아하는 신부님 친구가 있는데, 공기 좋은 데 가면 항상 담배를 피우자고 한다. 얻어서 피우는 담배는 제법 맛이 있지. 내가 피어올린 하얀 색깔까지, 오로라는 다양한 빛깔을 서로 품었다. 그래서 아름답게 밤하늘을 물들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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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주인공(르네 젤위거)은 새해맞이 파티를 망친 뒤 자신의 집에서 잠옷 차림으로 레드 와인을 마시면서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를 온몸으로 따라 부른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자 드럼 치는 흉내까지 내는 주인공의 연기에 보는 이들은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속 시원함마저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집에서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누리는 즐거움을 갈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엔터테인먼트그룹 SM C&C가 만 20~59세 2400여명을 대상으로 ‘여가시간에 어디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라고 물었더니 67%가 “집에 머문다”고 답했다. 이들 중 70%는 “집이 제일 편하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들어 집에서 운동을 즐기는 ‘홈트(홈+트레이닝)’, 맛집 요리와 가벼운 술을 즐기는 ‘홈술’ 등 오로지 집에서 여가를 즐기는 ‘홈족’이 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빗댄 홈 루덴스(Home Ludens)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홈 루덴스가 갑작스럽게 생긴 문화는 아니다. 덴마크는 휘게(Hygge)의 나라다. 휘게는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한다. 눈이나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촛불 켠 방 안에서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는 것, 그게 바로 휘게다. 핀란드에는 팬츠드렁크(PantsDrunk)가 있다. 텅 빈 집에서 가장 편안한 옷차림으로 음악 등과 함께 혼술을 즐기는 것이 팬츠드렁크다. 우리의 조상들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상투를 풀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바지를 내린 뒤 바람에 온몸을 맡기는 풍즐거풍(風櫛擧風)을 즐겼다고 한다.

미스카 란타넨이 쓴 <팬츠드렁크>에는 팬츠드렁크를 해야 하는 100가지 이유가 있다. “오늘 할 일을 다 했으니까”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어서” “너무 피곤하니까” “내일은 금요일(요일은 특별히 중요하지 않다)이니까” 등인데 100번째 이유가 “늘 핑계는 있는 법이니까”이다. 팬츠드렁크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은 5가지다. 뭘 해도 괜찮은 텅 빈 공간(집이 가장 좋다), 적당한 양의 술, 편한 옷, 디지털 기기 하나, 그리고 가벼운 먹거리 등이다. 오늘은 목요일이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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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신가요?”(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아니요, 취재 나온 기자입니다.”(김훈 한겨레신문 기자) 

신문과 방송에서만 보던 두 유명인사를 실제 처음 봤던 곳은 무수한 죽음의 참사 현장이었다. 월드컵 분위기가 무르익던 2002년 4월15일. 승객과 승무원 166명을 싣고 베이징에서 이륙한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인근 돗대산에 추락했다. 당시 사건·사고를 주로 취재하는 사회부 사건팀 기자였던 필자는 현장에 급파됐다. 이곳에 소설 <칼의 노래>의 김훈 작가도 사회부 기자로 왔다. 그해 1월, 화려한 언론 경력의 54세 베스트셀러 작가는 사건기자로 변신해 화제가 됐다. 한 일간지는 “그의 <칼의 노래> 주인공 이순신 장군처럼 ‘백의종군’한 셈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도 이회창, 이부영, 정동영 등 다른 유력 정치인들처럼 현장을 찾아 사고수습 지원을 약속했다.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뜻을 전하는 중 머리 희끗한 중년의 기자를 유족으로 알고 말을 건넨 것이었다.

짧고 어색한 만남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로 갔다.

‘김훈 기자’는 다음날 ‘정치인들의 위로방문’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유족들이 방문한 정치인들을 향해 격렬하게 항의하면서도 한결같이 “도와 달라”며 절규하는 현장을 담았다. 글은 “유족들은 18일부터 제가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러 병원을 뒤지고 있다. 그들은 나라를 믿기 어려운 국민들처럼 보였다”로 끝맺었다. 부연하자면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신원이 확인되는 사망자는 3명에 불과할 정도로 당국의 대처는 더뎠다.

노무현 후보는 시민들의 열정과 참여 속에 민주당 경선을 통과했고 겨울 본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꿈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에 시달리고 가로막혔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 바꾸고자 했던 현실은 친구 문재인 대통령의 과제이기도 하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고, 우리 생활 곳곳에 4차산업 혁명의 물결이 치고 있다. 하지만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힘들고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일터에서 삶을 마치는 이 어이없음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일하다 병든 경우를 빼고도) 971명으로, 전년보다 7명 늘었다. 2001년부터 따지면 일터에서 숨진 노동자는 연평균 2200명을 넘는다.

주로 건설 일용직, 하청업체 직원, 비정규직, 현장실습생들이었다. 발전소 하청 노동자로 새벽에 홀로 일하던 스물네 살의 김용균씨는 기계에 끼여 죽임을 당했다. 이민호군은 특성화고 3학년 현장실습 중 장비에 깔려 사망했다. 지난달에는 서른다섯 살의 비정규직 집배노동자 이은장씨가 돌연사했다. 스물다섯 살의 건설 노동자 김태규씨는 화물용 승강기에서 추락해 숨졌다.

‘나라를 믿지 못하는 국민처럼’ 유족들의 몸부림도 여전하다.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너무나 기본적인 요구들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오랜 아우성 끝에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김용균법)이 마련됐지만 정부의 하위 법령에 그 위력은 떨어졌다. ‘김용균법에 김용균이 없다’는 탄식에도 재계는 물론 정부와 국회는 너무나 무덤덤하다. 산재 발생 사업장의 업주 처벌을 규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실현은 기약이 없다.

그래서일까, 김훈 작가가 생명안전 시민넷의 공동대표로 지난 14일 발표한 기자회견문은 그의 17년 전 칼럼과 비교해 시간적·공간적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수한 죽음들은 다만 통계 숫자로만 인식되었을 뿐, 아무런 대책도 반성도 없이 방치되어 왔습니다. 어째서 우리나라 대통령과 국회와 행정부는 날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무수한 죽음을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까.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차별 없이 단결권을 보장하고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 지체 없이 비준되길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욕심일까. 국제사회의 눈총과 압박이 높지만, 한국적 특수성이나 경제성장을 위해 고려할 게 많다는 논리는 강고하다.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파이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앞서 말한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열다섯 살 노동자) 문송면군 사건, 이만하면 중대한 과실이 될 만도 합니다. 왜 구속하지 않습니까? …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파이를 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선 의원 때인 1988년 7월 첫 대정부질문에서 쏟아낸 울림 역시 세월의 공백을 느낄 수 없다.

<박재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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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청량리에서 강릉으로 가는 기차 안이 소란스러웠다. 강릉에 놀러 가는 노인들이 서울을 벗어나기도 전에 벌써 술판을 벌였다. 아마도 아침 대신 막걸리 한 잔씩 나눠 먹는 모양이었다. 노인들은 오랜만에 기차 여행을 하는 흥까지 더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기차는 녹음이 짙어진 산을 에둘러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은 고요한데, 차 안은 점점 시끄러워졌다. 노인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까지 가세했다. 그래도 차마 조용히 하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옛날 강릉으로 놀러 가던 청년들이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틀고 하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 생각하면서 참는데 결국 차장이 와서 주의를 줬다.

노인들은 미안하다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도란도란 사는 얘기를 했다. 그들 중 몇이 한참 동안 한 사람을 흉봤는데, 그때 굵은 목소리를 가진 분이 느긋하게 말했다.

“젊어서는 안 그랬어. 참, 사람 괜찮았어. 나이 들고 좀 이상해졌는데, 자식들 결혼시키고 혼자 오래 있어서 그럴 거야. 서운한 거 있으면 내가 말해 볼게.”

친구 편을 들어주는 그의 말에 괜히 내 마음이 훈훈해졌다.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한참 동안 산길을 달려간 곳에는 전교생이 11명인 중학교가 있었다. 1학년 교실에는 칠판 앞에 달랑 책상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내 같이 학교에 다녔다는 아이들은 마치 형제 같았다.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게 있다면 뭐냐는 질문에 한 아이가 옆에 앉은 친구를 가리켰다.

“친구요.”

말한 아이의 얼굴이 발그스레해졌다. 그 아이의 복숭앗빛 얼굴을 보면서 기차 안에서 만난 노인을 떠올렸다. 이 아이는 자라 마음 따뜻한 노인이 될 테고, 아마 그 노인은 어린 시절 이 아이처럼 따뜻하지 않았을까.

기차를 타고 청량리로 돌아오는 길, 아름다운 풍광보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잔상이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험한 뉴스와 천박한 말들이 휩쓰는 세상에서 마음 따뜻한 이들과의 만남은 큰 위안이 되었다. 분명, 세상에는 따뜻한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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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년들이 왜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지 궁금해. 너희들 국민연금 내기만 하고 못 받잖아. 40년 뒤에 기금 고갈된다잖아. 뭐? 적립식을 부과식으로 바꾸면 된다고? 그러니까 세금으로 노인세대를 부양하면 된다고? 2020년엔 청장년 100명이 40명을 부양해. 2060년엔 청장년 100명이 100명을 부양해.(15~64세 인구 대비 14세 이하+65세 이상 인구비율) 세금으로 국민연금 주려면 세율 엄청 높아져. 그때의 젊은 세대가 제정신이라면, 부과식을 거부하고 국민연금 파산시킬걸. 그러니까 지금 청년들은 국민연금 못 받을 거야. 

40년이나 남지 않았냐고? 아냐, 25년밖에 안 남았어. 그때까지는 기금을 쌓아가는데, 그때부터는 기금을 팔아야 하거든. 국민연금을 주식시장에서 빼내야 하거든. 저성장만 예약된 게 아닌 거지. 금융공황도 예약되어 있는 거지. 그런데도 소득대체율 높이자는 사람이 있더라고. 국민연금 혜택 늘리자는 얘기지. 주장이야 제 맘대로지. 그런데 그러려면 적어도 ‘진보’라는 간판은 떼고 말해야지. 염치가 없잖아.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15년에 민주당, 정의당이 임금피크제 반대했잖아. 2013년에 정년연장을 법제화하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정년 전 몇년간 임금을 깎기로 했었거든. 이게 임금피크제거든. 그런데 민주당은 임금피크제 법제화에 반대하면서 노사 자율로 맡기자며 우물쭈물했고, 정의당은 거세게 반발했지. 심상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사자후를 토했고. 그런데 그때 청년 대상 여론조사를 해보니 임금피크제 찬성률이 얼마였는지 알아? 70%(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조사)였어. 계산이 뻔하거든. 정년이 연장되면 임금피크제라도 해야 청년고용을 조금이라도 늘릴 여지가 생기거든. 

요새 다시 정년연장하자는 주장이 나오더라고. 그런데 어차피 사오정 오륙도 인생인데, 누가 혜택 보겠냐고? 정년이 보장된 분들 있잖아. 은퇴를 앞둔 586세대들, 아니, 그중에서도 운 좋은 사람들. 이미 보호받지만, 더 보호받고 싶은 분들. 정년연장되면 인건비 부담이 커지겠지. 신규고용 줄이겠지. 청년들 일자리가 줄어들겠지. 주장이야 제 맘대로지. 그런데 그러려면 적어도 ‘진보’라는 간판은 떼고 말해야지. 염치가 없잖아. 

요새 추경을 앞두고 정부 재정을 조이자, 풀자 말이 많더라고. 조이자는 분들, 더 조여서 저출산 더 심해지면 어떡하시려고요. 그대들이 몇십년 뒤에 제 인생 대신 살아줄 건가요? 풀자는 분들, 아동수당 찔끔 주는 식으로 뭐가 달라지나요. 신혼부부한테 집 한 채씩 팍팍 안겨주시죠? 몇 년 전에 법안도 냈으면서 왜 이리 졸보처럼 구시나.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팍팍 늘리고, 도시 과밀지역 학교 더 짓고, 대학 평준화도 하세요. 서울·수도권 사립대는 통째로 사기 어려우니까, 재정지원하는 대가로 입학권을 사세요. 그리고 말로만 찔끔거리는 호봉제 개혁 빨리 하시고. 공무원연금 개혁 빨리 하시고. 이쯤 되어야 ‘진보’라는 간판을 달 만한 거 아닌가요. 염치도 없으셔라. 

현충일에 대통령이 한 말씀 하셨더라고요. “애국 앞에 진보와 보수가 없다.” 와 정말 좋아요. ‘애국보수’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애국진보’도 있나 보네요. 그런데 제가 바로 ‘미래의 대한민국’이걸랑요. 애국하는 셈치고 저희를 위해 양보 좀 해주세요. 싫다고요? 애국의 이름으로도 양보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가치와 명분 앞에서 양보할 건가요?

결국 저출산이 문제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은행,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가 이구동성이더라고. 저출산 지속되면 2030년대 경제성장률 1%대, 이후에는 마이너스 성장, 국민연금 유지 어려움, 심지어 건강보험도 유지 어려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움. 북한? 개방돼서 북한 투자 늘어나면, 남한 출산율은 더 낮아질 수도 있어. 

방법은 한 가지.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사회투자를 통해 저출산을 역전시키면서, 장기적으로는 인구구조의 보릿고개를 견딜 준비를 해야지. 이를 위해서 사회 곳곳의 양보를 조직해야지. 뭘 가치로? ‘애국’을 가치로. 이런 플랜에 반대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일 거야. 미래 생각 안 하는 사람이거나, 나라 생각 안 하는 사람. 아니면 둘 다이거나. 

무엇보다 외치고 싶어. 한국의 청년들이여, 단결하라! 일베도 워마드도 탈조선 이외에는 이 방법밖에 없다! 사회를 갈아엎어라! 

싫어요. 우리는 결혼 같은 거 먼 나라 얘기고요. 그리고 여자는 아기 낳는 도구가 아니에요.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라니깐요. 

아, 잠깐. 당신 자꾸 ‘나라’ 찾는 걸 보니 꼰대 아니면 국뽕 아냐?

<이범 |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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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국가 수호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민주유공자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더불어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수많은 국민들의 노고가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의료와 복지사업을 통해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들에게 보훈하는 공공의료복지기관이다. 전국 6개 보훈병원과 317개 위탁병원, 보훈요양원, 보훈원과 재활센터, 휴양원을 운영하고, ‘나라사랑 행복한 집’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나라사랑 행복한 집’ 사업은 공단이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고 있는 국가유공자의 주택을 개선하는 것으로, 2009년부터 수행해 왔다. 

지난 5월 4300번째 준공식을 가졌다. 4300번째 주인공은 충북 제천에 사시는 신금순 어르신이다. 1907년 정미의병 때 제천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신광묵 애국지사의 친손녀이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50년이 넘은 노후한 좁은 주택에서 홀로 거주해온 어르신을 위해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고령친화 주거환경’으로 신축해 드렸다.

보훈병원과 보훈요양원 등을 이용하는 유공자들의 연령은 대부분 70대에서 80대이다. 보훈병원의 입원환자 중 고혈압과 당뇨 등 11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이 40%를 웃돌고, 고령의 보훈대상자 중 노인 단독가구는 무려 80% 이상이다. 공단이 ‘나라사랑 행복한 집’이라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하게 된 이유이다. 초고령화에 접어든 국가유공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주는 이 사업은 보훈처와 보훈공단, 지자체의 재가서비스와 사회적기업 등과 연계한 서비스망 구축으로 소외된 지역 없이 대상자를 발굴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공단은 전국에 구축되어 있는 인프라를 기반으로 1차 진료기능을 재정립하고, 지방보훈병원에 요양병원을 확충하여 만성의료 공급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나아가 원격 진료를 통하여 유공자들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하며 공공의료복지 전반에 새로운 롤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보훈요양병원과 부속의원의 건립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면,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급성기 치료-요양병원-의원-요양원-재가복지-주거 개선’의 전 생애 의료복지 서비스가 체계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국권 상실의 아픔과 그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는 한편, 국가유공자들의 ‘나라 위한 헌신’이 존경받고 그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확산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따뜻한 보훈을 펼쳐 나갈 계획이다.

<양봉민 |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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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국인은 자신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그런 판단의 근거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 아니면, 다수결 원칙? 주기적인 공직 선거? ‘한국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지 도전해보자. 

대한항공 사례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조현민은 대한항공에서 고함치고 욕하며 물컵을 던질 자유를 누렸다. 그런 자유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장된다면 조현민에게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서 자유를 구가한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만이 자기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었다. 

이 유일한 자유인이 전무로 복귀하자 직원들 사이에는 고통과 절망이 퍼져나갔다. 계열사인 진에어의 직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들은 그가 없는 사이 조씨 일가가 망가뜨린 회사를 깁고 꿰매느라 백방으로 뛰었다. 그런데 그의 복귀로 정부가 제재를 풀 수도 있다는 전망이 흐려지면서 그들의 헌신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자기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 생활이 곧 그들의 삶이다. 이들에게 고통을 피할 길은 없다.

[장도리]2019년 6월 19일 (출처:경향신문DB)

미국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불만이 있는 사람의 선택지가 세 가지라고 했다. 이탈, 항의, 충성. 대한항공 직원은 이탈하지 못했다. 사표 던지고 다른 일자리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항의는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현민에게 충성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 건가?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발표한 것처럼 그건 ‘수치심’ ‘자괴감’ ‘불안감’ 속에서 사는 길이다. 문제는 이런 삶이 대한항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재벌·중소기업도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서 삼성전자 직원의 말을 인용했다. “출근하면서 영혼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퇴근하면서 영혼을 다시 꺼내오는 것 같다.” 사실 한국인 거의 다 그렇게 산다. 회사 들어갈 때 시민권을 맡기고 대신 사원증, 즉 노예문서를 목에 건다. 물론 고위간부가 돼 부하 직원을 부리며 살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삼성 사건이 말해주듯 그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란,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봉건 영주 이재용의 세습을 뒷받침하거나 그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것이다. 그들도 주체로서 당당한 삶을 살지는 못한다. 

민주주의는 자기통치의 원리에 기반한다. 자기를 구속하는 결정은 자신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져야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이론의 권위자인 로버트 달은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에서 그 논리를 기업으로 확장한다. 국가가 그러듯이 기업도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고, 국가처럼 기업에도 통치자·피통치자 관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업에도 민주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자기통치권은 천부적 권리지만, 재산권은 아니다. 그러므로 둘이 충돌하면 자기통치권이 우선이다. 재벌 설립자의 자녀 혹은 손자라는 혈연이 수많은 남의 가족의 삶을 난폭하게 지배할 근거는 없다. 

때로는 군대 같고, 때로는 조폭 같은 한국 기업에서 자기통치의 권리는 언감생심일지 모른다. 층층시하 위계적이고 봉건적인 질서로 짜인 조직문화를 바로잡기만 해도 한국인의 삶에는 숨통이 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다. 역사는 꿈쩍 않을 것 같은 것들이 무너진 기록으로 넘쳐난다. 1915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캔자스주가 노조가입을 금지하는 계약을 불법으로 규정하자 이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재산권을 신성불가침으로 본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기업에는 민주주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바뀔 수 있다. 기업이 차지하는 공간은 영원히 민주주의 예외지대라고 생각해보라. 다수는 영영 민주주의 없이 살아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 정부, 초국가적 기업,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어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 미·중은 우리에게 특정 상품을 쓰라 말라 강요한다. 그들은 우리를 구속하는 결정을 내리지만, 우리는 그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다. 다수결? 아무 쓸모 없다. 국경에 갇힌 민주주의로는 속수무책이다.

그동안 민주주의가 확장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민주주의는 자기 영토를 안에서 빼앗기고 밖에 내주면서 축소됐다. 유명무실한 시민권이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든 것이다. 민주주의는 섬에 갇혔고, 우리 삶은 민주주의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뭔가 해야 한다. 이게 대한항공 직원들이 고통으로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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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디에 살고 무엇을 먹는 것이 올바를까? 사람은 습지에 오래 살면 반신불수가 되고 나무 꼭대기에 머물면 벌벌 떨지만 미꾸라지나 원숭이는 그런 곳이 더 편안하다. 사슴은 풀을 뜯어먹고 지네는 뱀을 먹어치우며 솔개는 쥐를 잡아먹는다.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만이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널리 알려진 장자(莊子)의 이야기다. 올바름만이 아니라 아름다움도 그렇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미인이라 해도 물고기나 새, 사슴에게는 그저 도망쳐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두고 장자는 과연 무엇이 올바르고 아름다운지 묻는다.

창의와 융합의 시대라고들 말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들이 다양하게 개성을 발휘하고 그것을 서로 인정하는 기반이 없다면 이는 공허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획일성을 강요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역이 많다. 이념을 내세운 분단과 대립의 시대로부터 국가가 주도한 경제개발의 과도기를 거치면서는 물론, 민주화의 역정에서조차 단일한 기치 아래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는 풍조가 이어져 왔다.

우리 교육이 당면한 문제들이 많지만, 학생 개개인이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는 경로가 오히려 더 좁아진다는 점이야말로 정말 심각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내신 반영 여부도 불확실한 일부 탐구영역이나 제2외국어 및 한문 등의 교과목들은 중등교육 현장에서 소외된 지 오래다. 개별 과목의 존폐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접해 보지 않고는 무엇이 더 좋은지, 어떤 분야가 나에게 맞는지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대학 입시에 비중이 높은 교과만 공부하고 남들이 선호하는 전공이 자신에게도 목표가 되는 분위기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창의와 융합의 원석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지금은 한두 해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오늘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머지않은 미래에도 과연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진학도 취업도 지금의 우열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짜인 틀에 맞추기를 강제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장을 마련해야 할 시대다. 미꾸라지와 원숭이의 올바름마저 인정할 때 창의와 융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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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배우다. 데뷔 25년의 중견 스타 배우다. 지난달 개최된 제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정우성은 영화부문 대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정우성은 오랜 시간 주목도 높은 삶을 살면서도 이를 긍정적 방향으로 표출하는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다.” 정우성의 또 하나의 얼굴은 ‘난민 활동가’다. 그는 5년째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일하고 있다. 

2014년 5월, 정우성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와 명예사절 임명협약을 맺었다. 덜컥 명예사절을 수락한 것은 그의 삶에 스민 ‘난민’ 유전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서울 달동네에 살던 정우성은 중학생 시절, 포클레인으로 집이 헐려나가는 걸 목격했다. ‘경관 정화 사업’으로 밀려난 그의 가족은 옮겨간 곳에서 또다시 포클레인을 만났다. ‘무기력하게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날의 기억은 그를 꿈꾸게 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그는 ‘나누며 돕고 살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을 간직했다. 우리말의 ‘어린아이’, 영어의 ‘나(I)’, 중국어의 ‘아이(愛·사랑)’에서 이름을 딴 ‘아이재단’ 구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가 2018년 11월20일(현지시간) 지부티 오복의 마르카지 예멘 난민촌에서 만난 로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유엔난민기구 제공

정우성은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 자격으로 네팔과 남수단의 난민캠프를 다녀온 뒤 2015년 6월 친선대사로 공식 임명됐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에는 정우성을 비롯해 앤젤리나 졸리 등 세계적인 배우·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친선대사 정우성의 역할은 난민캠프를 방문해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일이다. 그는 매년 한 차례 이상 해외 난민촌을 찾으며 인스타그램·유튜브 등 SNS를 통해 난민 실태·인권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 현재 세계 난민은 약 6800만명. 미얀마, 베네수엘라, 예멘, 남수단의 내전과 위기가 이어지면서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정우성씨가 2017년 6월 이라크 북부 함다니야의 국내 실향민 캠프 하산샴U3에서 만난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제공

우리도 난민 예외지역이 아니다. 2017년까지 국내에 들어온 해외 난민은 3만여명으로 이 중 2000여명이 난민으로 인정받거나 체류를 허가받았다. 지난해에는 예멘 난민 500여명이 제주도에 상륙했다. 정우성은 방송·토론회 등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세계난민의날(20일)을 앞두고는 난민 이야기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을 출간했다. 이날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난민을 주제로 북토크도 개최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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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주제에 대해 도전해 보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건설업자 윤중천은 강간치상과 사기 등 혐의로 각각 구속 기소되었다. 유력 검사와 건설업자 간의 불법 커넥션, 김학의 이외 고위층 남성들의 리스트를 거머쥔 ‘윤중천 리스트’, 호화 별장과 성접대, 2013년 검찰수사와 재수사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 마약류를 먹인 후 성폭력을 했고 불법촬영으로 협박했다는 증언까지, 이른바 별장 성접대 사건에는 한국 사회의 비리와 음험한 권력의 결탁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다. 

김학의, 윤중천의 구속 기소는 사건을 공개하고 증언한 피해여성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두 차례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검찰이 김씨가 여성들을 성폭행한 것이 아니라 성접대를 받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폭행·협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장도리]2019년 6월 6일 (출처:경향신문DB)

첫째, 성폭력이란 폭행·협박을 사용했을 때 성립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지는 것일 때임을 입법부, 사법부, 경찰이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기본권으로 선언한 나라에서 마땅한 법의 해석이다. 최근 미투 운동은 폭행·협박이 행사되지 않은 강요된 성폭력이 만연했음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입법부는 성폭력 법제를 대대적으로 구조 개혁해야 한다. 

둘째, 성접대를 ‘한’ 사람은 피해여성이 아니라 윤씨이다. 굳이 여성을 주어로 쓰고자 하면 ‘여성이 성접대의 매개 혹은 대상’이 되었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성접대라는 용어 자체가 남성과 남성 간의 교류·결탁·형제애 등을 나타내고 여성은 철저히 소외·배제·타자(他者)가 된다. 제3자가 성접대를 ‘했다면’ 그 매개가 된 여성은 무엇을 했던 것인가. 이 사건의 피해여성이나 다른 피해여성들이 이후 어떤 대가를 받았건, 그렇지 않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해야 했고, 이에 대해 거부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면 그것은 폭행과 협박을 동반한 일회성 성폭력보다 훨씬 더 중대한 성적 유린이자 인권 침해이다. 이것을 성접대라고 이름 붙인다면 피해여성들은 피해자가 아니게 되어 그녀들에게 자행된 폭력·마약·불법촬영·협박 등 행위의 불법성을 따질 수 없게 된다. 법원과 검찰은 이 사건을 다시 보라. 

셋째, 이런 사건의 지독함은 그 체계적 성격에도 있다. 성폭력 가해자(들)와 피해자(들)라는 2자관계를 상정하는 우리 형법의 성폭력 범죄와 달리 현실의 많은 성폭력은 제3자가 계획하고 조정하고 촉진하는 양상을 띤다. 김학의 사건이나 ‘버닝썬’, 장자연 사건에서처럼 말이다. 예컨대 독일형법 제177조 제2항에는 “타인에 대해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그로 하여금 실행하도록 하거나 그로 하여금 제3자에 대해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제3자의 성적 행위를 수인하도록 만드는 자는, 범죄행위자가 타인이 반대의사를 형성하거나 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음을 이용하는 경우, 범죄행위자가 타인으로 하여금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수인하도록 느낄 수 있을 만한 해악으로 위협함으로써 강요한 경우”에도 처벌된다고 규정한다. 이처럼 독일형법의 성폭력에 대한 정의는 우리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피해자는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매우 취약하여 문제된 성적 행위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없거나 그 성적 요구에 순응하지 않았을 때 받을 해악으로 위협받는 경우 등을 상정한다. 또 제3자에게 성적 행위를 실행하게 하거나 그의 행위를 수인하도록 하는 입체적 관계를 상정한다. 이는 전시(戰時) 성폭력을 통해 본 법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윤중천과 김학의 간의 결탁, 이것이 다시 김학의와 다른 동료 검사 간의 유착관계로 확대된다면 이 성폭력의 발생과 지속, 은폐는 매우 체계적인 성질을 가진다. 

넷째, 성접대라는 표현은 적어도 법의 언어로 쓰여서는 안된다. ‘위안부’라는 표현처럼 가공할 폭력을 ‘위안’으로 덧씌우고 피해여성들의 위엄을 우롱하기 때문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국민의 인권보호에 흠결이 생길 수 있다’ 하였다. 검찰과 경찰이 범죄 증거를 가지고도 그저 성접대쯤으로 호도함으로써 이 사건들을 남성들의 리그로 만든다면 여성국민의 인권이야말로 흠결 속에 남을 것이다. 존엄한 여성들을 기껏 교환대상으로 삼은 최근의 성폭력 사건들을 검경 수사권 문제로 몰고 가거나 이용하지 마라.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권력은 여성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니며, 여성들이 당한 피해는 법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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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으로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비행시간만 20시간을 넘는다. 도착지의 계절이 겨울이라, 두꺼운 옷들을 꺼내어 트렁크에 담는다. 노트북컴퓨터와 휴대전화기, 이 기계들을 충전하는 데 필요한 케이블과 충전기, 가져가야 할 자료들…. 꼭 필요한 짐들만 늘어놓았는데도 헝클어진 머릿속이 마룻바닥에 나앉은 것 같다. 

이 와중에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 책들이다. 휴대전화기의 상태를 비행모드로 바꾸고 강제적 오프라인 상태로 돌입하는 시간을 위한 것이다. 기내에서 인터넷이 가능한 항공기들이 늘어간다지만 반갑지 않다. 나와 접속하기를 원하는 상대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변명하지 않고도 ‘부재’할 수 있는 이 짧은 시간의 자유를 뺏기고 싶지 않아서다. 

쌓아둔 책들을 한꺼번에 다 읽어치울 것처럼 욕심을 부리지만, 결국 가져갈 수 있는 책은 한두 권이다. 짐을 줄이려고 휴대전화기에 전자책을 다운로드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몇 시간만이라도 모니터에서 눈을 뗀 채 종이로 된 책장을 넘기고 싶다.  

동행할 책 선택의 첫 단계는 주제 분류. 비타협적으로 주저없이, 일이나 전공과 상관없는 책을 고른다. 삶의 틈새에 주어진 시간을 익숙한 것들과 지내고 싶지 않다. 그다음은 무게다. 책의 내용, 완성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어쩌면 그와 반비례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무거운 책들은 탈락이다. 그들은 내가 땅에 발붙이고 있는 시간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다. 이 관문마저 통과한 후보군에는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아무 페이지나 열어본다. 흘깃 보는 그 순간에, 내게 말을 걸어오는 문장이 있어야 한다. 인지신경학자 메리언 울프가 <다시, 책으로>에서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인용해 말한 것처럼 나는 “읽기의 고유한 본질이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이라고 믿는다. 누구와도 접속하지 않을 수 있는 지상 1만미터 상공의 몇 시간 동안, 나는 누군가와 아주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폭력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내가 말들의 여백을 곰곰이 헤아리고 있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누군가와…. 

인터넷 공간과 광장에서 왕왕거리는 사납고 영혼 없는 말들로 하루가 가득 채워져 몸도 정신도 넝마가 된 듯한 밤이면, 나는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꺼내 펼쳤다. <열하일기>로 시작해서, 스피노자의 자취를 따라가는 21세기 뇌과학자의 지적 모험을 좇아가다가, 외계생명체와 인간의 대화를 그린 SF소설에 머무는 식의 방향도, 목적도 없는 독서다. 책이 열어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기갈 들린 듯이 빨려 들어가는 그런 시간이라도 없다면, 지금 이곳의 시궁창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한국인이 가진 말들 중 극히 적은 몇 개의 조악한 단어만이 공격과 혐오와 타자 부정을 위해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시간을 살다보면 인간이란 고작 이런 것인가 싶어진다. 그러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청년시절 “카프카의 <변신>을 다 읽고 났을 때 그 낯선 천국에서 살고 싶다는 거부할 수 없는 조바심이 나를 사로잡았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인간의 말들이 이루는 더 높고 어려우나 귀한 세계도 있다. 그런 세계를 엿보다 보면 내가 혹은 우리가 이보다는 나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고, 그렇게 살고 싶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23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다. 퀴어소설을 쓰는 작가가,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고정된 젠더를 벗어나 ‘나’라는 고유한 젠더로 시를 읽는 시인이, 삼시세끼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 공유하는 세상에서 요리하는 인류를 탐구하는 PD가, 100년을 살아본 노철학자가 무르익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것이다. 

그 치유의 말들을 놓치는 것이 안타깝지만, 나는 동행할 책과 길을 떠난다. 파일럿으로서 <비행의 발견>이라는 책을 낸 저자는 이 한 문장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 ‘날개’라는 말에는 아직도 신의 자취가 남아있다. 어쩌면 날개의 간결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날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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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독일에서 오랫동안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길을 함께 걸었던 한 선배의 영결식이 있었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20대에 유학길을 떠났던 한 청년이 말년에 잔인한 병마와 싸우다가 이국땅에서 80세에 숨을 거두었다. 한 줌의 재로 변한 그와 영원히 작별하면서 외국땅에서 살면서도 두고 온 산하의 운명을 참으로 많이 걱정하고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유럽의 윤이상과 이응노, 일본의 배동호, 김재화, 곽동의 그리고 미주의 임창영, 김성낙, 최홍희 등 국내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인사들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애국지사들이 그동안 이국땅에서 눈을 감았던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피해 살길을 찾아 남만주로 향했던 동포의 후손들은 해외동포 중 여전히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 스탈린시대에 연해주로부터 멀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도 많은 수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에 사는 동포사회도 규모로는 중국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대부분 분단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 이뤄졌다. 일본의 동포사회는 식민지 모국이었던 일본이라는 조건 때문에 특이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규모로 보면 중국과 미국동포사회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규모와 구성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미주 등지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동포사회를 이제 지구촌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현재 750만명 정도로 구성된 해외동포사회의 규모는 해외에 사는 약 5000만명의 화교나 2400만명의 인도인과 비교하면 물론 작다. 그러나 한반도 안에 사는 동포의 10%가량을 차지하는 해외동포사회는 결코 작지 않은 한민족공동체의 한 부분이다.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인종청소’에 의해 150만명이나 살해되어 겨우 300만명이 자기 땅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의 경우에는 세계 곳곳에 현재 700만명이나 흩어져 살고 있다. 프랑스의 샹송가수 샤를 아즈나부르는 자기 민족의 이 슬픈 역사를 대표적으로 증언했다. 심지어는 조국도 없이 400만명이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도 있다. 대대로 살았던 땅을 떠나 타 지역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면서 만든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규모가 크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들의 고통과 수난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디아스포라 하면 으레 유대인을 떠올리지만 인접한 강대국의 억압과 전횡 때문에 모국의 인구보다 더 큰 디아스포라를 해외에 형성한 아일랜드인이나 폴란드인도 있다. 독일의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가 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한 동기도 아일랜드와 폴란드의 운명과 비슷한 역사를 한국에서도 발견한 데 있었다고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이런 희생자들의 디아스포라라기보다는 현재 가장 큰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면서, 주로 상업활동을 통해 성공한 중국인의 디아스포라를 따라 화상(華商)의 ‘대나무 네트워크’(竹網)와 비슷한 한상(韓商)의 네트워크 결성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나는 뉴욕의 맨해튼과 플러싱에서 사업경험이 많았던 한 친구에게 그 가능성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화교들은 신용을 담보로 해서 서로 돕는데 우리 동포사회에서는 어떤 사업이 잘된다고 하면 서로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함께 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자조 섞인 소리로 답했다. 식상할 정도로 익히 들어온 내용이었다.

내부적으로 갈등이 없는 디아스포라는 없겠지만 한인 디아스포라는 특히 분단된 조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크고 작은 내부갈등을 낳았다. 미주동포사회에 있었던 안창호와 이승만 계열 간의 알력이나 재일동포사회에 있어서 민단과 조총련 간 갈등이 대표적인 예였다. 유신체제와 광주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둘러싼 첨예해진 국내의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해외동포사회는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불러온 ‘촛불혁명’을 비판하는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로스앤젤레스나 프랑크푸르트에도 등장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이렇게 국내정치적 상황과 민감하게 연동된 한인 디아스포라 내의 오래된 갈등도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서 장기적으로는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포공항을 떠날 때 지녔던 생각이 일생을 간다는 말이 있듯이 몸만 외국에 와있지 생각과 행동거지는 그대로이고 향우회, 동창회, 교회, 한인회 등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지금 세대의 자리를 새로운 세대가 채울 때면 한인 디아스포라의 생활세계에도 많은 변화가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인 디아스포라는 내부적 분열과 갈등뿐 아니라 거주지역의 주민과 타민족의 디아스포라 간의 소통도 대체적으로 원활하지 못하다. 한인상가가 분노한 흑인들의 주된 공격대상이 된 1992년의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그러한 예의 하나다. 새로운 세대는 높은 교육수준, 직업의 다양화, 타민족과의 결혼 등을 통해 이전 세대보다 한층 더 열린 사고와 소통으로 한인 디아스포라가 지금까지 지니고 있는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성장했다.

인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는 현재 지구화과정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진행되는 이주와 이민은 지금껏 주로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체성 대신 초국가적이거나 초문화적인 ‘디아스포라적인 흐름’을 만들고, 이는 새로운 차원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이라는 유일한 정체성 대신에 한국인이자 동시에 미국인, 독일인 또는 중국인일 수도 있는 일종의 혼합된 정체성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현주소를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 나간 주장일 수도 있다. 민족국가의 정체성은 고사하고 분단국가 안 남북한 두 체제를 둘러싼 갈등이 아직도 여과없이, 때로는 오히려 증폭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에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통일은 남쪽이 지향하는 동시성과 지구화와 북쪽이 추구했던 비동시성과 주체화가 상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남쪽이 강조해온 지구화와 북쪽이 강조해온 주체성은 상호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지구화를 향한 강한 욕망과 자기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결합할 수 있는 초문화적인 행위주체로서의 한인 디아스포라는 민족분단의 극복과정을 단축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그 규모는 작고, 시작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조국분단에서 비롯된 증오와 갈등 때문에 외국땅에서도 시달렸고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평화스러운 통일조국을 기다리다 끝내 이국땅에서 숨을 거둔 애국지사들과 최근에 연이어 작별하면서 한인 디아스포라가 남과 북이 소통할 수 있는 창조적인 제3의 공간으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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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양모에 의해 자물쇠로 채운 창고에 갇혔다. 6세 때부터 12세가 될 때까지 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양모는 친자식들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소년에게 먹게 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소년의 양손을 뒤로 묶고 얼굴에 바구니를 씌워두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소년의 손과 배에 화상을 입히고 쇠파이프로 수시로 폭행했다. 12세가 된 소년은 4층 환풍구를 통해 뛰어내려 세상으로 나왔다. 가해자인 양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2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보육원에서 생활한 소년은 화가 나면 자해를 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았지만, 투약을 거부하거나 치료를 중단한 경우가 많았다. 소년의 몸은 어둡고 좁은 창고를 탈출해 세상으로 나왔지만, 소년의 정신은 아직 6세에 머물러 있었다. 파란 하늘과 아이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넓은 학교 운동장은 소년에게 낯선 세계였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소년은 보육원 친구들과 수시로 가출했다. 찜질방을 전전하거나 노숙을 하며 편의점에서 과자와 담배를 훔쳤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제 16세가 된 소년은 가정법원 소년부 재판을 앞두고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되어 교육을 받고 있다. 끊임없이 산만한 모습을 보이고 동료학생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소년에게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자신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잘하고 학교 다닐 때 해보았다며 무척 좋아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조립하는 데 3~4시간 걸리는 프라모델을 소년은 1시간 만에 만들었다. 그것도 화상을 입어 수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손으로 해냈다. 프라모델을 만들 때 소년은 설명서를 진지하게 정독하고 계획을 세웠으며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는데, 그 모습에서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소년은 담임교사와 개별상담을 할 때 질문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답변했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세세한 부분까지 담담하게 얘기했으며, 살아갈 계획과 장래희망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동료 학생들에게는 공격적이고 겉도는 모습을 보이며 갈등을 일으켰다.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과적 치료와 상담을 통해 자존감을 찾아주고 높여줘 학교와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전문적인 약물·심리치료를 받고, 집단상담과 단체생활을 통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전문 의료소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 부족과 님비현상으로 인해 법무부가 수년간 추진해온 전문 의료소년원 설립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위기 청소년, 그중에서도 정신질환·지적장애 청소년들은 국가가 끌어안아야 할 대표적 소외계층이다. 상처받은 아이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교육하여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에게도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소년의 행복과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기성세대와 국가의 책임이다.

<최원훈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보호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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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치세력을 좌파와 우파로 나누는 관행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생겼다. 혁명 과정에서 소집된 국민의회는 의장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왕당파, 왼쪽에 공화파의 자리를 배치했다. 공화파가 왕당파를 타도한 뒤 구성한 1792년의 국민공회에서는 오른쪽에 온건 개혁세력인 지롱드가, 왼쪽에 급진 개혁세력인 자코뱅이 앉았다. 이후 우파는 대체로 온건한 개혁세력, 좌파는 급진적인 개혁세력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물론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뒤에도 왕당파가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그저 시대착오적 구세력일 뿐, 우파도 좌파도 아니었다.

시민혁명 시대에 뒤이어 계급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주창하며 좌파를 자처(自處)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 내부에도 좌파와 우파가 있으며, 부르주아 진영도 좌파와 우파로 갈린다고 보았다. 좌파와 우파는 이념이나 계급이 아니라 태도와 관련된 개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우파니 좌파니 하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3·1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전래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1920년대 초반의 식민지 상황이 대혁명 당시의 프랑스와 비슷한 면이 있었기 때문인지, 우파와 좌파도 프랑스 혁명 당시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1925년 ‘시대일보’는 시골의 한 작은 학교에서 일어난 내분을 보도하면서 이렇게 기술했다. “육영의숙을 옛날식 한문서당으로 고치자는 사람들의 주장과 완전한 학교 제도로 변경하자는 주장으로 좌우파가 갈렸다.” 복고주의자 또는 중세 회귀주의자를 우파, 진보주의자 또는 근대주의자를 좌파로 분류한 것이다.

우파와 좌파라는 용어가 정치적 개념어로 정착한 것은 1920년대 중반 ‘민족단일당’ 결성 운동 과정에서였다. 1920년대 초반에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사람들 대다수는 계급혁명만이 모든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선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등 ‘민족’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사회운동들을 ‘계급 모순을 은폐, 호도하는 부르주아 운동’이라고 배격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타도를 선차적 과제로 삼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조류 변화에 따라 그들도 민족운동 진영 중에서 협력할 부류와 배척할 부류를 나누기 시작했다. 

3·1운동 이후 민족주의자 일부는 ‘인류통성과 시대양심’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사회진화론의 세계관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자치 능력과 경제력 등을 키우는 것이 독립의 전제이며,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직적 훈련이 필요하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적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부류는 타협파, 개량주의자, 우파 등으로 불렸다. 반면 독립 우선 노선을 포기하지 않은 부류도 있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감시와 통제하에서 독립할 실력을 기른다는 것은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류가 비타협파, 좌파로 불렸다. 민족주의자를 자처했던 사람들도 이런 호칭을 거부하지 않았다.

1927년 민족단일당으로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민족주의 우파를 기회주의로 규정하고, 그를 일체 배격한다고 천명했다. 이후 민족주의를 좌파와 우파로 나누는 것은 사회적 통념처럼 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은 흔히 ‘좌익’으로 불렸다. 물론 이들 외에 ‘친일파’로 불린 집단도 있었다. 중일전쟁 이후 ‘내선일체’를 내세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민족주의 우파는 자기 논리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친일파에 수렴해갔다.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 좌파 중에서도 일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투항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일제가 패망하자, 정치세력으로서 친일파는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민족개량주의와 친일의 논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친일파 개개인도 정치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내적으로는 민족국가 건설 방략을 둘러싼 치열한 논란 과정에서, 외부적으로는 냉전체제의 형성 과정과 관련을 맺으면서, 정치 지형은 급속히 재편되었고 각 정치세력의 이름도 달라졌다. 일제강점 말기 한인들에게 이름, 언어, 역사 등 민족의 표지를 다 버리고 철저한 일본인이 되라고 요구했던 정치세력이 ‘애국’을 명분으로 삼아 정치무대에 뛰어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알려진 뒤, 그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상국민회의로 결집했고, 찬성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모였다. 이때부터 전자를 우익, 후자를 좌익으로 분류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도 좌익이 되었고, 친일파라도 우익으로 불렸다.

단독정부 수립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에서는 좌익이건 좌파건 공식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정치세력이 되었다. ‘좌(左)’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은 언제 잡혀가 고문당하고 죽어도 할 말이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역대 독재정권은 ‘좌경 용공세력’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비판세력을 탄압했다.

2002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대표가 대한민국 정권을 ‘좌파적인 정권’으로 규정하여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확대되자 발언의 주역은 “좌파적인 정권이라고 했지 좌파정권이라고 하지는 않았다”며 한발 물러났지만, 언론은 이윽고 ‘좌파정권’이라는 말을 관용어로 만들었다. 이는 6·25전쟁 이후 한국인들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좌(左)’라는 글자에 대한 적대감을 동원하려는 ‘언어전술’이었다. 프랑스 국민공회의 예에서 보듯, 공화국에서 우파와 좌파는 개혁 속도와 방법론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반개혁 세력은 반개혁 세력일 뿐,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 대한민국에 과연 ‘좌파정권’이 들어선 적이 있는가? 지금 우파라 불리는 세력은 과연 우파일까?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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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갈등이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대의 젠더 갈등을 초래한 한국사회의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성별화된 사회 인식이란 성별 고정관념에 기대어 사회적 상황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론적 틀을 말한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를 “남성=아버지의 위기”로 해석하는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외환위기를 묘사하는 대표적인 유행어가 무엇이었나? “아빠 힘내세요”였다. 더불어서 “부-자되세요!!” “신(新)현모양처”가 있었다.

이 세 유행어는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를 ‘아버지들의 위기’로 이야기하고, 그들이 “노오력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런 수사 안에서 외환위기는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가 되고, 그 개인의 얼굴은 ‘남성’으로 상상된다. 이때 여성의 자리는 “남편 기 살려주고 자식 건사도 잘하면서 동시에 맞벌이를 하는” 신현모양처였다. 

이처럼 한국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형질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성별화된 문화적 위로를 경유해 위기를 외면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남녀 공히 함께 경험한 재난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서 제일 먼저 해고되어 비정규직화된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 화제가 됐던 맥주 브랜드 카스의 CF ‘너무 예쁜 그녀-지갑’ 편을 떠올려보자. 맥주값을 낼 돈이 없는 남자 친구에게 커리어우먼인 여자 친구는 자신의 지갑을 건넨다. 하지만 왜인가? 왜 ‘여자’라는 성별이 해고의 기준이 되었던 시대에, 남자의 지갑에도 없는 돈이 여자의 지갑에는 있다고 상상되었는가?

이런 분위기는 2000년대 이후 부성 멜로드라마의 인기로도 이어졌다. <내 딸 서영이>나 <7번방의 선물> 같은 작품들에서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도망갔거나 죽어버렸고, 딸은 홀로 잘났으며, 아들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없다. “고개 숙인 아버지와 똑똑한 딸”이라는 상상력이 지배하는 시대. 욕심 많고 뭐든 잘하는 남자아이들을 ‘알파보이’라고 하지 않는 사회에서 유독 여자아이들만은 ‘알파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이후 현상이다.

2016년 즈음, 사람들은 온라인 여성혐오의 원인으로 “나와 연애해 주지 않는 여자”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를 꼽았다. 2018년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는 한국 저출산의 원인으로 “고스펙 여성들이 하향결혼하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한국 여자들은 잘나가고 한국 남자들은 기가 죽고 말았다는 인식이 강화,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녀 공히 불안 위에 서 있을 때에도, 남성의 어려움만은 그토록 짠하고 여성의 투쟁은 ‘알파걸들의 투정’으로 폄하된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토록 여성들이 잘났음에도 왜 남녀 평균임금 격차는 여전히 대략 35%나 나는 것일까).

그런데 “나와 연애해 주지 않는 여자”라는 표현 뒤에는 거대 괄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괄호 안에는 “그러나 성공한 남자, 돈 많은 남자와는 결혼하는 여자”라는 말이 숨어 있다. 이런 상상력과 연결된 조어가 바로 “김치녀=남자의 경제력에 빨대 꽂아 사치하는 무개념녀”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남성=경제력’ ‘여자=성공한 남자의 트로피’라는 가부장제의 오래된 도식이 살아 있다. 청년 여성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가부장제의 지배규범이다. 반면 어떤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판을 용인하면서, 이 위에서 ‘분배 정의’의 문제로 화를 내고 있다. 여자를 비롯한 다양한 자원을 공평하게 나눠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인 셈이다.

그러므로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여성운동에서 젠더 갈등이란 가부장제의 성차별주의를 뒤집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면,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말하는 젠더 갈등이란 ‘잘나가는 여자 vs 고개 숙인 남자’라는 판타지로부터 비롯된 날조된 프레임이다. 젠더 갈등을 논하려면 이런 상이한 이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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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지도에서 교사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대부분의 교사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출신이라는 데 있다고들 한다. 공부에 흥미 없어 하고 활동적이며 순응적이지 않은 아이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비폭력 대화’를 주제로 한 교사 연수에서 선생님들과 ‘관찰’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크리슈나무르티는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관찰은 인간 지성의 최고 형태’라고 했는데 우리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의 익숙한 습관을 넘어 나 자신에게 어떻게 새로운 시각을 허락할 수 있을까? 특히 학생들을 바라볼 때 겉모습 너머 내면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연수생들은 교사로서 학생을 만나 사용하는 말의 대부분이 평가와 판단의 말이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평가와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이 쓴 글을 읽을 때”라고, 어떤 선생님은 “축제 때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볼 때”라고 했다. 

한 선생님은 ‘가정방문을 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지각도 자주 하고 규칙도 자주 어겨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은 아이가 있었는데 가정방문을 해보니 기본적인 돌봄조차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학교에 나와 대견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데 가정방문을 다녀온 후 아이가 더 이상 문제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시간에 너무나 무기력하고 수업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있었는데 다른 교과 선생님 수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와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자신의 수업시간에 보는 것만으로 학생을 판단하기 쉬운데,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우리 인식의 한계를 금방 알 수 있다. 

가르치는 일이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면 우리는 조급해지고 엄격한 시선으로 학생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면 해야만 한다는 판단으로 강요의 화살을 무수히 날리게 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의 간극은 커진다. 

교사의 고정된 시선 너머 각자 다른 빛깔로 생동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온전히 다가갈 수 있을까? 

그것은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판단이 들 때마다 자신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고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온전함과 새로움을 허용해야 한다. 교사로서 아이들의 삶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며 새로운 도전에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급변하는 척박한 교육현장 속에서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고 배움을 이어가기 위한 실마리가 아닐까 싶다.

<손연일 |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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