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3차례의 큰 산업혁명을 거쳤다. 산업혁명을 잘 활용한 나라들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한국도 1차 산업혁명의 기회를 잡지 못해 일제 지배로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2차 산업혁명에 지혜롭게 대처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기회 앞에서 국가의 흥망이 달린 갈림길에 서 있다.

메가트랜드의 큰 흐름으로 보아 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과학문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정서가 생활과학화되어야 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손을 잡고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나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을 놀이동산처럼 여기며 찾는다. 박물관 측은 1차적으로 박물관을 시민들의 과학 관문이라 인식하여 아동들에게는 재미와 동기를 부여하고, 성인에게는 기초과학이나 원리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러한 선순환구조가 과학문화를 이끌어 냈고, 미국이 세계 최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경제대국이 되는 원동력이었다.

우리의 현실은 암담하다. 초등학생 때 단체로 박물관이나 과학관을 가끔 방문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박물관을 찾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설사 단체나 개인이 박물관을 찾아도 방문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활동지나 교육프로그램 수준은 지극히 얇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한국은 후보자 명단에도 끼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하지만 우리의 교육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방한 때 충고의 말을 한 지도 12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교육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 문재인 정부의 공약사항 중 하나인 국가교육위원회가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공론과 중지를 모아야겠지만 제도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물관과 학교를 연계한 한국식 융합교육(STEAM)도 시급히 활성화되어야 한다. 과학관에서는 학교영역에서 할 수 없는 과학 교보재를 만들어 서로 공유하면서 과학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박물관과 과학관, 학교를 관할하는 정부 부처가 달라 교육프로그램의 공유도 어렵다. 정부는 박물관 참관을 일반 관광의 성격이 아닌, 교육관광이 되도록 정책 마인드를 바꾸어야 한다. 세계적인 박물관 명소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교육관광이다. ‘박물관이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의 기회를 활용하여 미래 선진 강국의 대한민국을 만들자!

<박종락 | 한국전통창조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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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선린상업학교 3학년 학생 33명은 반도현이(半島顯二) 선생의 인솔 아래 지난 11일 밤 평양에 도착하여 다음날 평양 시내와 모란봉, 기자림(箕子林) 등 명승고적을 탐방하고 오후 차로 진남포로 향하여 출발하였다더라.’

동아일보는 1922년 5월17일자 신문에서 서울 선린상업학교 학생들의 평양 수학여행을 이렇게 전했다. 그즈음 신문들은 각 학교 학생들의 평양 수학여행 소식을 잇따라 보도했다. 선린상업 학생들이 서울로 돌아온 지 1주일 뒤,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 100여명이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6월에는 전주고보 학생 94명이 5박6일 일정으로 대전~평양~서울~인천을 돌아봤다. 앞서 1921년 5월에는 대구고보 학생들이 수학여행차 서울과 평양을 다녀왔다. 당시 평양 수학여행은 신문의 주요 기삿거리였다.

수학여행이 꽃피던 시기였다. 수학여행은 근대적 학교가 들어선 1910년대 도입되었지만, 1920년대 들어 학생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여행지로는 경주, 부여, 정읍, 강화, 합천, 수원, 원산, 금강산, 개성, 신의주 등 다양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서울과 평양이었다. 특히 명승고적이 많은 평양은 수학여행 1번지로 꼽혔다. 고조선·고구려의 옛 도읍지라는 점이 학생들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신설된 경의선은 평양 철도 여행에 대한 호기심을 높였다.

여행이 익숙함과 관행으로부터의 일탈이라면, 수학여행은 일탈을 통한 학습이다. 새로운 장소와 부딪치면서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갖게 한다. 호연지기를 길러줄 뿐 아니라 역사, 지리 등에 대한 인문지식을 넓혀준다. 그래서 수학여행은 학창시절의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12일 금강산을 방문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북한 교육당국과 만나 평양 수학여행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통해 북측의 역사·문화·교육시설 등을 방문하고 서울·평양 학교 간 자매결연을 통해 평양 학생들을 서울로 초청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남북 학생들이 서울과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오가면 통일·평화교육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30년 전 동·서독 학생들은 독일이 통일되기에 앞서 수학여행을 통해 국경을 넘나들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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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삶이 일상이던 시절에도 밤샘을 하는 이들은 있었다. 3000년 전 중국 정치인 주공(周公)이 밤샘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전의 성군이 행한 훌륭한 정치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보며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빨리 실행하고 싶어서 또 그대로 앉아 뜬눈으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낮처럼 밝은 밤이 일상인 오늘날, 밤샘을 불사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밤샘인가? 눈앞의 즐거움을 탐닉하며 밤을 새울 수도 있겠으나, 먼 훗날의 즐거움을 그리며 성공의 조건들을 채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밤을 새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목적이 즐거움에 있다면, 자신의 몸을 혹사해 가며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장자(莊子)는 진정한 즐거움이란 오히려 무위(無爲)할 때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작은 주머니에 큰 물건을 담으려 하거나 두레박줄은 짧은데 깊은 물을 길어 올리려 하는 데에서 불행이 시작된다. 왕을 모시는 주연과 음악으로 바닷새를 대접한다면 새는 즐거워하기는커녕 괴로워하다 죽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욕망을 강요하는 교육에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 프랑스 문학과 영화를 즐기는 친구가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하고 천체 관측의 매력에 빠진 친구가 천문학과나 지구과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마땅한데, 여전히 한 줄 세우기에 급급하다. 전공별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입시전형이 이루어져야 중·고등학교 교육의 과목 간 차별이 줄어들고 공교육 정상화의 길도 열릴 수 있다.

주공은 불행했을까? 그가 그렇게 노심초사 이루려 한 성군의 정치는 이런 것이었다. 선한 말을 맛난 술보다 좋아하고 편견 없이 훌륭한 이를 등용하며, 약한 이들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이상을 추구하며, 가까운 자를 존중하고 먼 자를 잊지 않는 일이다. 주공에게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밤샘이야말로 무위였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그의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우리의 밤샘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아니, 우리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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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든 임기를 마친 후 가장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정책이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긍정적인 정책으로 무엇이 꼽힐까? 아마 ‘문재인케어’가 유력한 후보이지 않을까 싶다. 집권 이전부터 꼼꼼히 준비되었고 구체적 로드맵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나중에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부족함이 남는다. 국민건강보험 보장률 목표가 기존 63.4%에서 조금 상향된 70%에 머물기 때문이다. 광범위한 비급여의 우선 정비, 국민건강보험의 중장기 재정 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신중한 행보이다.

더 과감해야 한다. 전체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올리기 어렵다면 특정 인구집단에 집중하는 전략도 괜찮다. 어린이부터 병원비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어린이 무상의료’는 어떤가? 이미 시민사회에선 수십개 어린이단체, 복지단체들이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연대’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뜻이 이루어지는 걸까? 근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로드맵에 의하면 올해부터 1세 미만 아동의 의료비가 사실상 제로화된다. 단계적으로 초등학교 입학 이전 아동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이를 위한 재정방안을 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제안할 예정이다. 비록 아동에 한정되지만 이러한 기조라면 머지않은 시기에 모든 연령으로 전면화될 수 있기에, 아동 의료비 제로화는 대한민국 복지를 한 단계 높인 정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상표와 내용물이 딱 일치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의료비 제로화라고 부르지만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에 한해 본인부담을 최하 5%까지 낮출 뿐이다. 과중한 의료비의 핵심 원인인 비급여는 예비급여로 전환돼 공적 관리체계로 들어오지만 여전히 50~90%의 높은 본인부담을 별도로 환자에게 청구한다. 2016년에 5세 이하 어린이의 입원비 전체 내역을 보면, 법정급여 본인부담금은 8%에 불과하지만 비급여 비용은 3배인 24%에 달했다. 이러한 의료비 구조에서 비급여가 빠진 제로화는 이름값을 하기 어렵다. 정부가 보완책으로 비급여까지 포함하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내놓았지만 대상이 하위 50% 계층에 한정되고 지원금도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의 절반에 그쳐 역시 한계를 지닌다.

반면 눈을 지자체로 돌리면 대담한 시도가 발견된다. 경기도 성남시는 ‘18세 미만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를 추진 중이다. 올해 7월부터 의학적 성격의 비급여 진료까지 포함해 1년에 환자 부담이 100만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을 성남시가 책임진다. 아무리 아파도 100만원까지만 가족이 지불하니 고액 질환의 경우 사실상 어린이 무상의료라고 불릴 만하다.

생각보다 소요예산이 많지 않다. 18세 미만 중에서 한 해 병원비가 100만원이 넘는 사람은 약 4% 정도이다. 중앙정부의 재난적 의료비 지원, 소아암 및 미숙아 지원 등 기존 공적인 대책과 민간의료보험의 보험금까지 적용하고 남는 본인부담금 중 100만원 초과액을 지자체가 지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남시에 따르면, 1년에 15억원 정도이니 가성비가 높다. 일부 지자체도 성남시 시도를 주목하고 있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물론 성남시의 100만원 상한제는 여러 논점을 지닌다. 우선 민간의료보험과 정면충돌한다. 성남시 정책에선 민간의료보험의 보상금을 먼저 적용하기에 사실상 민간의료보험 미가입자가 지원 대상이다. 우리나라에서 20세 미만 10명 중 대략 8명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이들이 내는 한 해 보험료가 연 4조~5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사업이 진행될수록 민간의료보험 해약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아픈 아이가 있는 집이 성남시로 전입하는 ‘의료 이주’도 예상된다. 성남시 거주기간이 1년 이상이면 지원받을 수 있으니 이사도 생각할 수 있다.

논란이 생기겠지만, 전향적인 일이다. 서구 복지국가가 그러하듯이, 병원비는 민간의료보험 대신 공공재정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의료 이주도 당사자에게는 절박한 선택이다. 오죽하면 이사까지 단행하겠는가. 문제는 두 논점 모두 예산의 증액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성남시는 이 사업이 성공할수록 예산 부담이 커지는 역설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결국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공공재정으로 전체 국민의 병원비를 해결하고, 지역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의료서비스를 책임지는 건 중앙정부의 역할이다. 어린이 병원비 해결을 위한 성남시의 선도적 발걸음이 중앙정부의 사업으로 발전해야 한다. 의료비 제로화 이름에 걸맞은 어린이 무상의료, 지금 시작하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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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지난 지 한참이지만 겨울의 낮은 짧았다. 마석 모란공원에 장례행렬이 도착할 때만 해도 서녘 산기슭에 걸렸던 해는 금세 넘어갔고, 곧바로 어둠이 공원묘지 전체를 덮어버렸다. 발전차에서 끌어온 전등빛에 의지해서 하관식이 진행되는 내내 김미숙씨는 울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훅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동생의 부축에 의지해서 하관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따금씩 눈물만 흘렸다. 깊은 그 눈빛, 아마도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비현실적인 것만 같은 눈빛으로 그는 하관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런 그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아들을 묻으면서도 울지 않는 비정한 엄마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외동아들을 잃은 그 엄마는 “청년의 목은 어디에 뒹굴고 있었는지/ 찢겨진 몸통은 어디에 버려져 있었는지/ 피는 몇 됫박이 흘러 탄가루에 섞였는지”(영결식에서 송경동 시인이 낭송한 조시 중에서)를 보았던 엄마다. 시커먼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아들의 머리는 몸과 따로 뒹굴었고, 시신이 수습되기도 전에 컨베이어벨트는 재가동되었다. 피를 머금은 석탄이 컨베이어를 타고 들어가 전기를 만들었을까. 사고가 나고 며칠 뒤 김용균 노동자가 일하던 현장을 찾고 나서 김미숙씨는 말했다. “아이의 동료들에게 빨리 나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하다가 죽는 거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70년대 탄광 같은 곳에서 어떤 부모가 자식이 일하는 걸 보겠냐고도 했다. 그래도 공기업에 취직했으니 힘들어도 견디어 보라고 했던 그 엄마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어둠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민주노총이나, 시민단체들을 “그저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그 엄마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병든 남편과 외동아들을 2교대 노동을 하면서 책임지는 일에만 몰두해 있던 평범한 엄마였다.

아들을 잃은 뒤 그 엄마는 태안과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아들이 남긴 숙제”를 풀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지난 연말에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을 위해서 국회에 상주하면서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했다. “죽음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런 덕에 28년 만에 산안법이 개정되었다. 추모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미숙씨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정작 아들 김용균이 일했던 발전소는 외주화 금지 사업장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이 산안법은 최초로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명기한 법이 되었다.

산안법이 개정됐지만, 막상 해를 넘기고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과 같은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설 명절 전에 장례를 치르기 위한 결단으로 빈소를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고, 시민단체 대표들이 단식에 들어갔다. 설 연휴 동안 정부, 여당이 움직이면서 협상이 진행됐고, 마침내 2월5일 정부와 야당이 유가족 측과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수용하는 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2월9일 김용균씨가 사망한 지 62일 만에 태안과 서울을 오가면서 장례를 치렀다.

김용균씨가 묻힌 곳은 마석 모란공원 특구다. 그곳은 전태일 열사 죽음 이후 민주화운동의 성지처럼 되어 있는 곳이다. 노동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이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 김용균이 62일 만에 안식에 들어간 그 자리 앞쪽으로는 전태일이 있고, 이소선 어머니의 자리가 있다. 거기서 곧바로 올라가 공원묘지 끝에 이르면 박종철과 그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묘가 있다.

이소선 어머니는 41살 때 전태일을 잃었다. 그리고 41년을 더 살면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아들의 유언을 지켜냈다. 그런 어머니는 노동자의 어머니에서 모두의 어머니가 되었다. 1987년 막내아들을 잃은 박정기씨는 고문으로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았던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1987년 아들을 잃은 뒤 민주투사로 나서서 자식의 죽음을 승화시켜오고 있다.

그런 뒤에도 삼성 반도체에서 딸 황유미를 잃은 아버지 황상기씨,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산업체 현장학습 고교생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도 자식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고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박근혜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유가족들이 김미숙씨의 지표가 되었다.

그런 김미숙씨를 두고 유가족이 너무 나댄다는 비난이 일었다. 대통령 면담을 거절할 때가 가장 크게 비난받았다. 민주노총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모욕적인 언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주노총, 시민단체들과 같이 움직이는 김미숙씨에 대해 좋게 보지 않는 시선들은 따갑기만 하다.

우리 사회에는 유가족에 대한 고정된 상이 있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은 울다가 기절해야 한다. 보상이나 받고 조용히 물러서서 정부에 대해 정치권에 대해 고맙다고 인사해야 한다. 어디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그리고 국회에 대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유가족은 찍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고분고분하지만 않다.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자식의 죽음은 헛되게 지워지고, 묻힐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청심환을 먹으면서도 자신이 가야 할 곳을 가게 된다.

몸집 작은 김미숙씨는 보기보다 단단하다. 그런 그이지만 청심환을 복용해야만 버틸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들의 부재를 매일 확인하면서 살아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르쳐준 대로 용균이의 사진을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꺼내 볼까? 용균이가 살던 방은 그대로 둔 채로 아침이면 인사하고, 저녁에 들어가면 인사할까? 이제 김미숙씨는 혼자 그런 시간들을 견뎌내야 한다.

아들 또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은 김미숙, 그의 길은 험할 것이다. 험한 세상을 헤쳐 가는 김미숙씨에게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빚을 지게 될 것이다. 그게 불순한 유가족의 운명이지 않을까.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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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준비 없이 글쓰기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내 수업에 와서는 엄청나게 재밌는 글을 완성하고 집에 돌아갔다. 그들이 쓴 게 왜 재밌는지, 어떻게 좋은지 정확하게 칭찬해주고 싶어서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좋은 문장의 근거를 생각할 때 자주 다시 읽은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이 소설에는 작문 연습을 하는 어린 쌍둥이가 등장한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그들에겐 선생님이 따로 없다. 둘은 부엌 식탁에 앉아 서로에게 글감을 내준다. 그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종이 두 장에다 각자의 글을 쓴다. 다 쓰면 글을 바꿔서 읽어본다. 상대방의 글쓰기 교사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가며 철자법 틀린 것을 고치고 문장을 수정한다. 문장을 고칠 때에는 쌍둥이들만의 규칙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사리 ‘친절하다’라고 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쌍둥이는 친절하다는 말 대신 이렇게 쓴다. ‘그는 우리에게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쌍둥이는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좋아한다’는 단어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이 마을은 아름답다’와 같은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그 말이 둘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에 충실한 문장을 연습한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묘사를 훈련한다.

이러한 묘사만이 좋은 문장일 리는 없다. 모든 글쓰기에 적절한 훈련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연습 방식을 자주 떠올리며 글을 읽고 쓴다. 무언가를 게으르게 표현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독자가 이야기를 믿게 만든다. 읽는 이의 눈앞에 구체적인 장면을 건넨다. 무수한 작가들이 잘 써준 생생한 장면들을 읽으며 나는 잠시 다른 존재가 되어볼 수 있었다.

2015년 나의 수업을 들으러 왔던 열두 살의 우예린은 달리기에 관해 이렇게 썼다. ‘달리는 사람들은 얼굴 살이 위아래로 훌렁거린다. 내 차례가 오면 저 멀리서 선생님이 깃발을 올린다. 깃발이 내려오면 달려야 하니까 심장이 쿵쾅댄다. 출발하는 순간 재빨리 발을 움직여야 하는데 떨려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뛰다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다. 하늘을 나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럼 발의 움직임이 더 빨라진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뛰면 나는 어느새 1등이나 2등이 되어 있다.’

이 글을 읽다가 내 심장도 좀 더 빨리 뛰었다. ‘뛰다 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라니 정말 찬란하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뛸 수만 있다면 날마다 달려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달리기를 잘한다’라고만 요약할 수도 있겠으나 우예린은 멋진 디테일을 생략하지 않았다. 그는 또 앞구르기에 대해서도 썼다.

‘앞구르기는 재미있지만 막상 해보면 무섭다. 내 차례가 오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눈을 크게 뜬 채로 입술을 꼭 깨물고 몸을 앞으로 굴린다. 구르는 동안엔 그저 할 수 있다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한 바퀴를 다 돌고나면 어지러워서 잠시 멍해진다.’

꼭 나도 같이 앞구르기를 한 것만 같다. 몸을 한 바퀴 굴리는 짧은 순간이 작가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의 감각에도 닿는다. 까먹고 있던 앞구르기의 두려움과 재미를 상기시킨다.

열 살 김지온은 ‘불’에 관해 이렇게 썼다. ‘나는 불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멋진 색을 뿜으며 뜨겁게 타오르는 불이 좋다. 불이 아름다운 이유는 몇천 년 전부터 어둠을 막아주고 맹수로부터 공격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또한 색깔들이 불을 아름답게 만든다. 불은 빨강, 파랑, 보라, 노랑으로 나뉘는데 맨 밑에 있는 보라색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불을 특히 좋아한다. 보라색의 불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온의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불의 색에 관해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온도별로 다른 그 색깔들이 그의 눈에는 영롱하게 아른거렸을 것이다. 그의 문장을 읽은 뒤로 나도 가끔 불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문장은 나에게 새로운 몸의 감각을 선물하곤 했다. 그들의 글에 자주 설득당하며 글쓰기 교사로 일했다.

<이슬아 | 작가·‘일간 이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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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 잘하고 있는데 ‘오라이’ 차 트렁크 탕탕 해주고, 내비 찍고 가는 택시 안에서 ‘인간내비’를 자처하며, 제 일도 아닌데 제 일인 양 끼어들고, 물어보거나 도와달라지도 않았는데 ‘그건 내가 좀 아는데’ 하며 만물박사 명박(明博) 빙의로 나서는 사람을 보면 한마디 해주고 싶을 겁니다. ‘오지랖도 참…’ 오지랖은 상체에 입은 겉옷의 앞자락을 말하지만, 주제 모르고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한다는 말 ‘오지랖이 넓다’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조선 초기까지는 저고리에 오지랖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저고리라 부를 수도 없게 골반쯤까지 덮는 길이라 짧은 목욕가운처럼 허리끈을 둘러서 여몄지요. 그러다 저고리 길이가 점점 짧아져 허리 위로 올라오자 허리띠 대신 저고리 안팎에 속고름, (겉)고름을 달아 그것을 묶어 여미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옆에서 보면 속이 다 들여다보이니 어쩔 수 없이 천을 한 치가량 덧댔습니다. 그 덧댄 부분이 오지랖입니다. 그런데 그 오지랖 넓은 게 왜 조롱거리가 되었을까요? 이 말은 ‘그래, 너 참 잘났다’처럼 반어법입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사실 다음과 같은 말이 줄어든 것이라 보면 됩니다. “그래, 오지랖 그리 넓어서 네 앞가림은 참 잘하겠다.” 제 앞에 닥친 일을 제힘으로 어찌어찌 해낸다는 ‘앞가림’과, 옷 속 들여다보이지 않게 ‘앞 가림’ 하는 오지랖을 가지고 반어적으로 조롱하는 것이지요. 오지랖 참견에는 어쩌면 내가 너보다 더 잘 안다는 우월의식, 또는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은 인정욕구라는, 지나치게 ‘사회적 동물’이고픈 두 가지 심리가 있을지 모릅니다.

오지랖 대장 말고도 천성적으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다 해보려는 이도 종종 ‘오지라퍼(오지랖er)’ 소리를 듣습니다. 농으로 “오지랖도 참…” 할 수는 있지만 충고처럼 간섭은 맙시다. 그것도 ‘오지랖이 넓은’ 것일 수 있으니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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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지나고 벌써 한 달. 아라비아 숫자가 큼지막한 달력 아래에서 살지만 그 속에 숨은 24절기를 올해부터 몸에 밀착시키기로 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고작 오늘밖에 살지 못하는 내가 한 해의 중심을 그 어디로 삼는 건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한해살이의 시작을 입춘(立春)에 맞추는 게 좋을 듯하다. 봄이 저기에 저렇게 서는 것처럼 나도 여기에 이렇게 독립적으로 서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하자.

설 연휴의 여세를 몰아 오래전부터 별렀던 교동도에 갔다. 아직도 명절이면 찾아오는 어릴 적 냄새가 조금 남아 있을 것도 같았다. 저물 무렵을 겨냥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늦은 오후였다. 교동제비집에 들러 몸을 녹인 뒤 대룡시장에 갔다. 좁은 골목마다 그 시절을 통과해낸 사람들이 추억에 젖은 얼굴로 서성거린다. 관광객들로 불이 난 호떡집을 비롯해 이런저런 점빵들 사이로 효도관광, 신혼여행 안내문도 있다. 장례식장 빼놓고 있을 건 다 있는 시장. 그 끄트머리에서 산 가래떡을 입에 물고 골목을 벗어나니 교동초등학교가 있다. 제106회 졸업식을 축하하는 현수막 옆으로 우람한 측백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교문 기둥을 만지는데 어쩔 수 없이 내 고향 초등학교의 졸업식 생각이 났다. 풍금 소리에 맞춰 졸업식 노래를 부르고 나온 언니들은 교문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고 난 뒤에 흩어졌었지. 학교 담벼락에 초상화가 있다. 이 학교를 떠나고, 이 세상도 마저 졸업하신 다섯 분의 제1회 졸업생들.

방학도 없이 학교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목구멍이 조금 간질간질해지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동장을 걸어 새삼스레 나무를 세어보았다. 좌측으로 54그루, 우측으로 29그루. 이 학교와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저장하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멀리 해가 뚜렷하게 지는 것을 보면서 시장으로 돌아와서 양초를 샀다. 이제 집에 가서 불을 켜면 겨울에도 푸르른 측백나무 사이로 많은 생각이 푸르륵 일어나겠다. 교동도의 측백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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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제정 당시 국회는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삭제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만 남고 다른 한 축이 빠진 것이다. 이제야 그 배경이 드러났다. 여야가 한목소리였던 이유를 알 만하다. 표면적으로는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적용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다’ ‘그래서 의정활동의 족쇄가 될 것이다’ ‘위헌적이다’ 등등의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이해충돌 상황이 자신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옭아맬 법을 제정할 리 없는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과 그 배우자들 중에는 부동산 임대업자도 있고 기업경영인도 있고 학교법인을 운영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공적 이익과 사적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이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수조사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둘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친지에게 건물매입을 권유한 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받게 한 의원, 역 개발명목으로 예산을 따온 역세권 건물주 의원이나 지방 일부대학의 역량강화를 위해 국비투입 예산안 통과를 추진한 의원이 그 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고위공직자였을 때부터 부친 소유 부동산 근처의 철도사업을 추진했다는 해명을 들어보니 더욱 이해충돌의 소지는 커 보인다. 국비투입 사업지로 선정되기 몇 개월 전에 역 근처 상가건물을 샀다니 더욱 의심스럽다.

이해충돌은 공직자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자신이 맡고 있는 공적인 업무 또는 공공의 이익과 서로 상충되는 상황을 뜻한다. 이해충돌은 일상에서, 직업수행에서 늘 맞닥트리게 된다. 이해충돌 상황의 폭은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다. 공직자 중에서도 정책결정 권한을 갖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이해충돌 상황의 크기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이 마주하게 될 이해충돌 상황은 어마어마하다. 그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권한, 입법권한, 예산안 심의의결권한 그리고 정책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 등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 막강하다. 그러니 겉으로는 공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뒤로는 사적 이익을 챙기고, 직무로 얻은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주변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상황도 많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도 사람이다. 공적 위치에서 사적인 자신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 내 가족과 친·인척의 이익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에 ‘이해충돌 방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공직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나 기관·단체에 부정한 특혜를 주어서는 아니 되며, 재직 중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사적으로 이용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부당하게 사용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다. 처벌규정이 없는 선언적 규정이어서 실효성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래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당시에 처벌을 포함한 이해상충 방지가 논의되었다가 아쉽게 삭제되었다. 이후 법제화는 계속 시도되었으나 법안은 잠자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제약으로 다가올 법안에 적극적 관심을 보일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손혜원 의원 사건으로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해충돌 방지를 규율하고 범죄화하라는 여론의 압박도 거세졌다. 국회 내부에서도 여러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대 여야는 ‘이해충돌’ 문제로 대충돌 중이다. 1월에 국회를 소집했지만 본회의 한 번 열지 못했다. 2월 국회는 아예 의사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손혜원 국정조사’ 없이는 국회를 열 수 없다는 야당 원내대표의 버티기 때문에 국회 정상화는 안갯속이다. 이해충돌로 대치하고 있지만 여야의 속내는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옭아매고 불이익을 줄 법안은 그들에게는 내키지 않는 법이다. 여야가 한통속이라서 더욱 걱정이다. 세비 인상의 예에서 보듯이 여야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한 몸처럼 움직이다가도 그들 모두에게 불이익이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종종 자신의 이익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인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다. 그들은 ‘국민’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치적 대표성을 강조한다.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직업윤리다. 정녕 국민을 위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입법권을 행사해야 한다. 사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공적 입법의무를 방기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상충이다. 전수조사로 이해충돌 사례를 유형화하고 기준을 세워 처벌대상을 좁혀나가면 위헌소지 없는 법안을 마련할 수 있다. 청렴공직사회의 길라잡이가 되고 있는 ‘김영란법’에 이해충돌 방지규정을 끼워 넣는다면 공직윤리규범이 완전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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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사법농단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전·현직을 통틀어 사법부 수장이 직무와 관련한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됨으로써 8개월간 계속된 사법농단 수사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러나 수사가 종결된다고 단죄까지 끝나는 건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 1인의 책임을 묻는다고 사법부 전체가 달라질 리도 없다. 시민의 기본권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사익과 맞바꾼 추악한 거래가 다시는 없도록 발본적 사법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11일 직권남용·공무상비밀누설·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하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모두 296쪽에 달하는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는 47개 범죄사실이 적시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인사불이익을 주는 등 탄압하고, 판사 비위를 은폐·축소한 혐의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33개, 후임 처장인 고 전 대법관은 18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 6월 시작됐으나,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그보다 1년여 앞선 2017년 3월이다. 경향신문이 ‘양승태 대법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지시와 이를 거부한 이탄희 판사의 사표 제출을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됐다. 양승태 대법원은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며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일선 법관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특히 대법원이 다수 재판에서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며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헌정문란 사건이 법의 심판대에 서기까지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제 공은 검찰을 떠났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특별재판부를 도입했다면 바람직했겠으나 이미 실기했다. 사법부가 사법농단을 사법적으로 심판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영장을 잇따라 기각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로 비판받았다. 향후에도 이런 행태를 되풀이했다가는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원은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재판하고, 징계시효가 남은 법관들을 조속히 징계해야 한다. 국회도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사법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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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최근 ‘대학생·청년 햇살론’ 중단을 발표했다. 이 제도는 신복위가 보증재원을 기반으로 대학·대학원생과 저소득 청년 취업자에게 생활자금을 빌려주거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주는 것이다. 연 15%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연 최저 4.5% 대출로 전환해주고, 자금도 최대 1200만원까지 빌릴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지난달 갑작스럽게 중단 발표를 하면서 이를 이용할 계획이었던 청년들이 당황해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생·청년 햇살론은 금융사각지대에 있던 대상자들에게 큰 버팀목이었다. 신용등급이 낮아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렵거나, 기존 고금리 대출로 고통을 받았던 이들에게 ‘희망의 끈’이었던 셈이다. 당연히 이용자들이 많았다. 당초 신복위는 은행에서 출연한 500억원의 보증재원을 기반으로 2500억원을 대학생과 청년에게 빌려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신청자들이 몰리면서 재원이 예상보다 빨리 고갈됐다. 이에 신용카드 사회공헌재단에서 80억원, 은행의 기금운용수익금 40억원까지 추가로 넣었으나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쳤다. 햇살론 이용자는 2016년 1만9115명, 2017년 2만1189명, 2018년 2만394명 등 지난해까지 8만721명을 기록했고, 총 대출 금액은 3100억원에 달한다. 이번 중단 조치로 올해에만 소외계층 청년 2만명의 대출길이 막히게 된 셈이다. 신복위 등에 따르면 많은 청년들이 이를 모른 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며 햇살론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잖아도 최근 청년실업으로 대학생 등 청년층의 채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20대 상담자가 급격히 늘었다”고 신복위 관계자는 말한다. 이들 청년이 돈을 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관리비 등 기초생활비를 대기 위해서”라고 한다. 장학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모자라기 때문에 금융기관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이뤄지지 않아 이들이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다니 안타깝다.

은행의 문턱이 높으면 청년들은 고금리의 대부업체나 사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고금리와 연체, 신용불량의 늪으로 빠지는 길이다. 정부와 사회가 청년들이 빚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은행들의 동참도 요구된다. 청년과 대학생들의 신용이 불량한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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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소수민족인 사미족에게는 눈을 일컫는 단어가 200개, 혹은 3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오로라의 고장인 극지방에 사는 사미족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등지에 걸쳐 분포되어 있고, 전통적으로 순록을 쳐서 생업을 이어가던 민족이다. 그곳에는 백야도 있지만 일년에 몇십일씩 이어지는 극야도 있다. 해가 전혀 안 뜨는 몇십일 동안에도 눈은 내리고 쌓이고 또 얼어붙는다. 순록들은 두껍게 얼어붙은 눈과 얼음 아래에서 이끼를 뜯어먹으며 그 겨울을 생존한다고 한다. 순록과 함께 자신들의 삶도 결정되는 사미족에게 눈은 바라보고 감상해야 하는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아니라, 감당하고 극복하고 경외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내리는 눈인지, 어떻게 쌓이는 눈인지, 또 어떻게 얼거나 해빙될 눈인지 하나하나가 다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였을 터이다. 그렇더라도 그 단어가 200개 이상이라는 것은 놀랍다. 그 단어들은 도대체 다른 언어로 어떻게 번역될 수 있을까.

단어가 다만 뜻이 담겨 있는 말인 게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눈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그 눈은 다른 눈으로 떠오른다. 즐거운 기억이 있는가 하면 넘어져 깨지거나 발이 젖어 얼어붙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중학교 시절, 폭설이 내려 서울 한복판의 교통이 마비되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 때문에 학교에 걸어가야 했고 오전수업을 빼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든 수업을 빼먹는 건 달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쌓이는 눈을 보는 동시에 그 눈이 녹아 진창이 될 걸 생각하게 된다. ‘눈 녹듯이 사라진다’라는 말은 뭔가가 아주 깔끔히 사라졌다는 걸 일컫는 비유일 터인데, 사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 흔적은 어디에나 남는다. 삶이란 그 흔적을 잘 품어 안거나 혹은 잘 처리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흔적이든, 어떻게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든.

다시 사미족의 언어 얘기로 돌아가면, 그들에게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지금은 여러 나라의 국경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오래전에는 그 땅 전체가 그들의 것이었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풀을 뜯어 먹는 순록들의 것이었다. 그러니 다툼이나 분쟁은 있어도 전쟁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인 에버리진의 언어에도 역시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직 자연을 의지하고 경외할 뿐이던 그들의 성품 덕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부족 단위로 살아갔던 그들의 사회구조와 생산구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전쟁은 국가 간의, 혹은 일방의 국가를 상대로 해 무력을 사용한 싸움을 말한다.

그렇더라도 아예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는 문장은 그냥 그 문장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이다. 우리에게는 전쟁이 너무 일상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너무나 일상이어서 더는 그 뜻이나 어감조차 달라지고 무감해져 버린. 전쟁 같은 육아, 전쟁 같은 입시, 전쟁 같은 사랑, 통째로 전쟁 같은 삶. 여전히 분단국가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단어는 국가 간의 무력충돌보다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각박한 삶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6·25로 통했다. 동란이라고도 했다. 어른들의 얘기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반공이라는 말은 익숙했고,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말이었고, 표어 경연대회가 열리면 자동적으로 반공 표어를 지었고, 포스터 그리는 시간에는 빨간색 크레파스가 제일 먼저 닳아 없어졌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권력의 가장 강력한 보호수단이었고, 그래서 국경과 국경 사이에서가 아니라 내가 사는 내 나라 안에서 더 가혹하게 작용했다.

단어는 때로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뜻보다 더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종전이라는 말도 그렇다. 종전은 끝나는 말이 아니라 시작하는 말이다. 물론 종전이 된다고 해서 우리 일상 속 전쟁 같은 삶이 갑자기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정치판도 여전할 것 같고, 혐오스러운 정쟁도 여전할 터이고, 어쩌면 더할 것 같기도 하다. 한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0개가 넘는 단어로 눈을 표현한 북유럽의 사미족 언어에 빗대 생각해볼 때, 우리도 200개쯤의 단계를 거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발전적인 미래에 있지 않겠나 싶다. 단어에 스토리가 쌓여 풍성해질 것이고, 풍성해진 만큼 유연해질 것이다. 단어가 또 다른 단어를 낳아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사미족을 배경으로 한 소설 <라플란드의 밤>에는 흥미로운 챕터 제목들이 나온다. 극야가 끝난 후의 일조시간을 챕터의 제목에 기록해둔 것인데, 첫날 해가 뜨고 해가 지기까지의 일조시간은 27분이다. 이토록 긴 어둠은 언어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오랜 어둠, 혹은 오랜 역사가 담겨 있는 단어일수록 그 뜻이 깊을 것은 당연하다. 우리에게는 종전이라는 단어가 그럴 것이다.

<김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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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씨네 술집.’ 십년 넘게 드나들던 단골집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땅거미가 지면 옆구리가 허전해지는 ‘황혼병’이 도질 것 같아 걱정이다. 내게는 단순한 술집이 아니었다. 주인이 내 오랜 후배였다. 1980년대 초반 만났고 나이 차도 많이 나지 않으니 친구라고 하는 게 옳겠다. 문학청년이었던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사업에 손을 대는가 싶더니 1990년대 중반 이후 십여년간 연락이 끊겼더랬다.

그사이 친구는 명함이 여러 개였다. 음반 장사를 하다가 히말라야 오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책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6년 서울 혜화동 로터리 골목 입구에 술집을 차렸다. ‘역마살’을 털어내고 눌러앉은 것이다. 테이블이 채 열 개가 안 되는 작은 술집. 안주가 제법이었다. 도미뱃살, 고등어초절임, 가자미식해 등을 조리하는 친구의 손맛은 이내 소문이 났다. 단골이 생겨났다.

친구 술집은 대학로 골목상권의 성공사례로 떠올랐다. 그런데 5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13년째야. 이젠 좀 쉬고 싶어.” 친구의 결단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 매 순간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손님’이기도 한 나는 상실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단골집 하나가 또 사라지는구나. 친구가 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오래된 장소가 사라지는 것은 단골들에게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장소가 사라지면 어디에서도 되찾을 수 없다. 단골집 폐업도 애도의 대상이었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소’는 각별하다. 보통은 공간과 장소를 구별하지 않지만 인문학자들은 저 둘을 구분한다. 그 기준은 사람의 개입 여부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사람의 이야기(문화)가 깃들어 있으면 장소이고 그렇지 않으면 공간이다. 이 잣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이야기가 있는 장소에서 태어나 여러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다가 특정 장소에서 이야기를 남기고 눈을 감는다.

굳이 환기할 필요도 없지만 좋은 삶은 좋은 장소에서 이뤄진다. 역도 성립한다. 좋은 장소가 좋은 삶을 만들어낸다. 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좋은 사회는 좋은 장소가 많은 사회이고 나쁜 사회는 나쁜 장소가 많은 사회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수행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생각난다. 행복의 요건은 단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 좋은 나라에서 태어날 것. 둘째,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날 것. 좋은 부모는 곧 좋은 집이므로 행복은 전적으로 장소의 좋고 나쁨과 직결된다.

좋은 장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집이다. 하지만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대부분에게는 찾아갈 고향집이 없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내 고향은 1980년대 후반 개발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마을은 물론 옛길과 물길, 산과 들이 죄다 사라졌다. 그리고 이농향도. 우리 세대는 근대화의 물결에 떠밀려 대도시로 빨려들었고 대부분이 도시 유민으로 청장년기를 보냈다. 주민등록지가 바뀐 횟수를 떠올려보라.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고향 상실에다 ‘장소 상실’이 더해져 단골집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을 것이다.

단골집, 고향집에 대한 언사가 일부 젊은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시사IN’ 변진경 기자가 펴낸 <청년흙밥보고서>에 따르면 ‘흙수저’ 출신 청년들이 열악한 식사, 즉 ‘흙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지옥고’에서 살고 있다. 지옥고란 지하실, 옥탑방, 고시원이 합해진 신조어다. 지옥고에서 혼자 흙밥을 떠넘기며 갈수록 좁아지는 미래의 문을 응시하는 청춘들 앞에서 ‘장소의 장소다움’을 거론하는 것은 한가해 보일 수 있다. 이들에게 단골집에 관한 넋두리는 특수부대 출신 아저씨의 무용담처럼 들릴 수 있다.

변진경 기자는 청년들에게 말한다. “지금 당장 가난한 밥상을 뒤집어라. 그리고 (어른들에게, 사회를 향해) ‘괜찮지 않다’고 말해라.” 최근 개봉한 영화 <가버나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쁜 나라, 나쁜 부모 밑에서 태어난 레바논의 한 소년이 불평등과 빈곤, 불의와 폭력이 만연한 도시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하지만 ‘있지만 없는 존재’인 소년에게는 안전한 장소가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은 급기야 자신의 부모를 법정에 세운다. 자신을 태어나게만 했을 뿐 전혀 돌보지 않은 무책임한 부모를 제소한 것이다.

<청년흙밥보고서>가 전체의 일부분이라고, <가버나움>이 먼 나라의 픽션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소다운 장소가 없는 사회를 방치했다간 우리 기성세대가 법정에 불려 나갈 수 있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환경운동가 카를 바그너는 향후 40년 인류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다섯 가지 힘 중 하나로 ‘세대 간 갈등’을 꼽았다. 장소가 세대 간 갈등의 구체적 현장으로 떠올랐다. 국가와 사회, 지역과 세대를 막론하고 좋은 장소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우선은 좋은 장소를 만들어가는 공동의 노력이 그 자체로 ‘좋은 장소’ 역할을 해낼 것이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있다. 장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만든 장소보다 장소가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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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경기 안성시에서 이번 겨울 들어 첫 번째 구제역이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31일까지 3건의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후 추가 발생은 없으나 그동안 사례를 봤을 때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안심하기 이르다.

구제역 발생 농장과 주변 농장에 대해 실시한 긴급 혈청검사에서 발생 농장 주변 500m 이내 우제류 농장에서 구제역 항원이 검출됐고, 다수의 농장에서 감염항체(NSP)가 검출됐다. 안성과 충주의 소 농장에서 구제역 항원과 주변의 다수 농장에서 감염항체가 검출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안성과 충주 지역은 구제역 바이러스에 상당히 오염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지역에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입자가 작고 전파가 쉽다. 개체 간의 접촉에 의한 전파뿐 아니라 비말(재채기를 통해 튀어나온 침)과 공기를 통한 장거리 전파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국내 우제류 축산업을 초토화했다.

과거 구제역을 살펴보면 2월 안에 구제역이 마무리된 경우는 2017년 한 차례밖에 없다. 2016년에는 1월부터 3월 말까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3월에 최초로 발생하는 등 최소 3월까지는 방역에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방역 당국은 수개월에 걸친 비상근무를 해왔고 설 연휴까지 반납한 채 구제역 방역에 매진했다. 농가와 생산자 단체 등 민간에서도 자발적인 소독과 차단방역에 총력을 다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구제역이 추가로 발생한다면 그간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구제역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현재 2월 말까지로 돼 있는 구제역 특별방역기간을 최소 올 3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방역 당국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특별방역대책 기간이 이전해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8개월이었으나 생산자 단체의 요구 등을 고려해 이번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달 말까지로 3개월 단축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방역대책기간 단축은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구제역이 발생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안전한 방역관리를 위해서는 특별방역대책기간을 1개월 정도 연장함으로써 방역관리의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생산자 입장에서는 방역당국의 잦은 점검 등으로 다소 불편함이 지속되고, 심할 경우 축산농가의 소득 감소로 인해 일시적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이나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철저한 방역조치를 통해 구제역 발생을 최소화하고 빠른 시일 안에 종결시키는 것이 우리 축산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국내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산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방역대책 기간 중에는 농식품부와 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상황실을 가동하고 24시간 비상대응체계를 운영하기 때문에 추가 확산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더 이상의 구제역이 발생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방역 당국이 특별방역대책 기간을 오는 3월 말까지 연장하고 강도 높은 구제역 방역대책을 추진함으로써 ‘구제역 조기근절’이라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영철 | 한국 소임상수의사회장 충북대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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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에서 방금 돌아왔다. 처음 가본 곳이었다.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 애드벌룬을 타보고 싶다는 오랜 열망을 펼칠 수 있었다. 겨울 새벽에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 위로 날아오르는 순간, 또 지상 1000m에서 일출을 맞이하면서 ‘아름답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무수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목격했지만 언제나 아름다움은 새것이었다. 이전의 감정이 환기되는 것이 아니라 기시감은 전혀 없는 처음의 감동으로 아름다움을 맞았다.

여행 내내 함께한 책은 내가 일상의 경전처럼 삼고 있는 이성복 시인의 <극지의 시>였다. 강의에서 시인이 했던 말, 짧게 메모한 것들. 인터뷰를 통해 시와 세상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책이다. 여행자로서 낯선 세계에서 관계 맺는 수많은 사람들, 현지의 상인과 시민들 사이로 나는 들어갔다. ‘나의 정체성은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질 뿐’이라고, ‘나는 타자의 그림자이며, 나의 삶은 타자의 그림자놀이’라는 시인의 말, ‘타자의 발견’이 여행에서는 더욱 중요하게 울렸다. 짐을 싸고 풀면서, 입에 조금 거친 음식을 먹고 풍경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내 인생의 관계들은 자연스럽게 맺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여행에서 어색한 순간을 맞이할 때는 이 문장이 구원처럼 눈에 밟혔다.

“애들 태우고 차를 운전해 가다가도, 급한 순간에는 자기 쪽으로 핸들을 튼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원래 자기한테 유리하게 행동하게끔 되어 있어요. 그렇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자기편이 아니라 세상 편에 서려고 노력해야 해요. 본래 안되지만 평소에 그렇게 믿고 되새기지 않으면 더 안되는 거예요.” 시인의 통찰은 내가 어디에 있든 덜 나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는 데 거울이 되었다. 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려는 몸을 풀어놓는 것. 여행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도 의외로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워지지 않는 마음을 다독였다.

왜 문학서를 챙겨 갔는가. 소중한 사람과 동행하는 느낌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숙소로 돌아와 짧게 읽는 행위를 즐기는 동안 그날의 여정을 되새기며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시간을 쪼개어 쫓기듯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걸음을 복기하고 반복하며 시간을 풍성하게 늘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좋아하는 문장에 눈길을 멈추고 여행길 에피소드를 대입하며 충만한 느낌을 느꼈다. <극지의 시>를 읽으며 피로에 지친 몸, 설레고 기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흥분한 마음 그대로 나는 누구인가를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이 또 좋았다. 두 번째 여행을 하는 독서라는 게 딱 맞는 말이었다.

<극지의 시>는 낯선 곳에서 만난 누구든 자신의 삶을 통해 시를 쓰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보통 시인이 시를 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나의 시를 가지고 싶던 간절한 순간에 책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하면 눈물이 날 것처럼 뭉클했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 건 다른 것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진실한 것, 올바른 것도 그 자리에서 다른 것들의 진실함, 올바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또 어떤 대상이 시적일 수 있는 것은 화자의 자리에서 관찰되고 서술되기 때문이고, 시적 감동이란 독자가 화자의 자리에 섰을 때 이루어지는 거라고 했잖아요. 이 화자의 자리는 결코 시인이나 독자의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잠시 머물다 갈 뿐이에요.”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육화시킨 것은 그때 머리를 지나간, 겹겹의 의미를 띤 문학적 낱말들과 문학을 읽어온 눈이었다. 복잡하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층층이 의미가 아로새겨진 단순한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함께 가져간 터키 여행서도 문학서처럼 읽혔다. 실용적인 책에서 다루는 실질적인 정보는 금세 새로운 정보로 갱신될 것이다. 그러나 책이라는 매체가 주는 안도감은 컸다. 글자로 먼저 따라가는 여행길은 편안했다. 다녀와서 확인한 정보는 여행을 복기시키고 정말 내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나열된 사실인 줄로만 알았던 정보들은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을 데웠다. 무용한 책은 없다. 문학과 실용의 경계가 사라진 독서, 이러한 차원을 문학적이라고밖에 말 못하겠다.

한 권의 문학서와 또 한 권의 실용서가 내게는 어떤 여행 물품만큼이나 든든했다. 때로는 짐을 꾸릴 때 낡은 옷을 가져가서 입고는 버리기도 했다. 종종 가져간 책을 현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주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두 권의 책을 모두 다시 챙겨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감흥을 더 느끼고 싶어서였다. 저 두 책으로 복기될 기억, 일상에 일으킬 파장이 걱정돼 감히 책장을 못 열고 있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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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논이 새파랗다. 손가락만큼 자란 밀 싹이 찬바람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웃 논들은 거의 비어 있다. 밀이나 보리를 심어서 푸른 논은 어쩌다가 하나씩 있을 뿐이다. 중부 지방에서는 겨울 농사 짓는 곳이 없으니, 겨울 들녘이 비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겠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지난 십 년 사이 온통 푸르던 겨울 논에 밀과 보리를 심는 것이 해마다 줄어들었다.

십 년 전 시골에 왔을 때, 논농사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네 이웃들이 짓는 것을 따라 지었다. 가을에 벼를 베고 나면, 다들 겨울 논을 비워 두지 않고, 밀이나 보리를 심었다. 그게 10년 전이었는데, 겨울 들판이 어디나 푸른 밀밭, 보리밭 그랬다. 그러다 정부가 하던 보리 수매가 중단되었고, 밀 계약 재배를 하던 기업체도 더 이상 밀을 사들이지 않았다. 밀가루를 빻던 방앗간도 하나 사라졌다. 그러고는 푸르던 평사리 겨울 들판도 텅 비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논은 여전히 밀농사를 짓고 있다. 토종밀, 흔히 앉은뱅이밀이라고도 하는 것. 밀농사에 대해서라면 마을에서 가장 신참인 내가 그나마 지금까지 밀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봄이네 살림’이라는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이 밀가루를 팔아주었기 때문이다. 토종밀로 빵을 굽는 것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월인정원’ 같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논도 겨울 농사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운이 좋았던 덕분이고, 농사가 아주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밀 타작을 하고 밀가루를 빻았던 날에는,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밀가루를 하염없이 만지작거렸다. 갓 빻은 밀가루로 전을 부치고, 반죽을 밀어 칼국수나 수제비 따위를 해 먹었다. 집에서 빵을 구워먹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심지어 호떡 같은 것까지도. 정작 밀알이라고는 평생 본 적도 없었는데, 어쩌다가 직접 농사까지 짓게 되고 그걸로 음식을 해 먹으니 스스로도 더 특별한 경험으로 느꼈다.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고.

밀농사를 지으면서 좋았던 것은, 아이들이 마음껏 빵과 국수와 또 다른 밀가루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아토피 증상이 꽤 있었던 큰아이는 시중에서 파는 수입 밀가루는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농사지은 밀가루는 괜찮았다. 블로그를 통해 인연이 닿은 사람 중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여럿 있었다. 그러니까 흔히 밀가루가 문제라고 말하는 경우가 꽤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밀가루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걸, 지난 십 년 동안 밀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되었다. 어떻게 농사짓는지, 가루를 내는지, 보관하는 동안 어떤 처리를 하는지 따위에 따라 같은 이름의 밀가루도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그리고 정말 맛이 좋다. 아마도 맛이 없었다면, 차라리 안 먹는 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를 텐데. 우리 밀이라고 다 입맛에 맞는 건 아니었는데, 직접 농사 짓는 토종밀만큼은 무엇을 하든 아이들이 좋아라 하며 먹는다.

해가 바뀌면서 들리는 가장 반가운 소식 중 하나가 정부에서 밀 수매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35년 만이라고 했다. 밀이든 보리든 겨울 농사는 논농사만큼 손이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겨울에 밀밭을 둘러보는 걸음은 일에 쫓겨 종종거리지는 않는다. 모내기하는 때나, 가을걷이할 때만큼은 일이 두 배인 셈이지만, 그래도 농사지은 것을 내다 팔 수만 있으면, 지금처럼 겨울 들판이 비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 밀이 사라지지 않게끔 애쓴 사람들이 있다. 나는 토종밀농사를 지켜오신 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옆집이 밀 방앗간이었고. 온 마을이 어디 드러내지도 않고 토종밀농사를 지어 왔다. 정부 밀 수매가 이런 사람들을 돕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잔뜩 쌓인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리는 없겠지만, 농사와 사람들 먹을거리에 대해서 이 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정부라는 것은 분명하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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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아 강물을 받아요

그 물로 얼굴을 비벼요

물고기 냄새와 달빛 냄새가

나네요

아침 해가 강물에게 들려준

얘기를 느낄 수 있어요

 

손에서 얼굴 냄새가 나요

평생 화장수 한번

바르지 않았죠

슬픈 날은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나요

반짝반짝 흘러내리는 별

내 몸 어딘가 이리 많은 별이

있었다니 신비해요

별이 있어 세월 내내

행복했지요

별이 있어 해와 달도

외롭지 않았지요

 

슬플 때면 강으로 가요

쭈그리고 앉아

강물로 얼굴을 비벼요

얼굴이 환해지니

그리운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곽재구(195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깨끗한 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했으면 좋겠다. 물고기들의 집인 강물을 떠서. 초승달과 만월의 빛이 밤새 하얗게 내린 강물을 떠서.

그렇게 강물로 얼굴을 감쌌으면 한다. 슬픈 날엔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외롭고 쓸쓸하고 어두운 시간과 장소에 별이 살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별은 스스로 빛을 모아 빛나면서 슬픔을 견뎌내기 때문일 테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도 강에 대해 노래했다. ‘물고기와 나’에서는 “물고기는 몸이 예쁘다/ 하루종일 물속에서 춤을 춘다”라고 썼고, ‘강물’에서는 “물을 보면 좋아요/ 종일 노래 불러요”라고 썼다. 강물에서 춤과 노래를 발견했다. 우리의 일상을 강물처럼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한다면 우리도 보다 다양한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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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노인 ‘우공’은 집 앞을 가로막은 태행산과 왕악산 때문에 답답했다. 산을 깎아내리기로 결심한 우공은 온 가족과 함께 산을 옮기는 공사에 착수했다. 이웃들이 비웃자 우공이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나서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나서서 할 것이다. 자자손손 계속 깎으면 언젠가는 평평하지 않겠는가.” 이 말을 들은 산신은 놀라서 두 산을 멀리 옮겨버렸다. <열자>에 나오는 ‘우공이산’ 이야기다. 중국인들은 꾸준함, 인내의 상징으로 즐겨 인용한다. 마오쩌둥은 이 고사를 들어 홍군의 항일전쟁을 독려했다고 한다. 화가 쉬페이훙은 이 고사를 대형 유화로 그려냈다. 이 그림은 중국국가박물관의 로비 벽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

오는 16일이면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꼭 10년이 된다. 시대의 ‘큰어른’이었던 김 추기경의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한다. 사진은 2010년 2월3일 선종 1주기를 기념해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추모사진전의 모습. 연합뉴스

톨스토이 단편 ‘바보 이반’의 주인공 이반은 군인과 장사꾼인 두 형과 달리 이익과 출세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착하고 성실하고 근면했다. 우애심도 깊어 가정이 화목했다. 이를 시기한 악마가 형제들을 불행에 빠뜨리려 하지만, 이반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마가 이반의 바보 같은 삶에 감화를 받는다. 이반은 마침내 악마에게서 얻은 만병통치약으로 공주를 구하고 왕위에 오른다. 러시아 민담에서 유래한 이반의 이야기는 눈앞의 이익과 쾌락을 버리고 성실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삶이 행복에 더 가깝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고 김수환 추기경도 ‘바보’였다. 성직자로서 교회 안에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어려운 길을 택했다. 평생을 노동자, 빈민, 농민과 함께했다. 대통령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2007년 8월, 김 추기경은 동성중·고 개교 100주년 기념전에 한 그림을 출품했다. 크레파스로 얼굴을 그린 뒤 아래 여백에는 ‘바보야’라고 썼다. 자화상이었다. 이후 ‘바보’는 추기경의 별명이 되었다. 김 추기경은 이에 대해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명하게 사는 일은 어렵다. 난득호도(難得糊塗). ‘바보’의 삶은 더 어렵다. 노자는 “커다란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大智若愚)”고 했다. 오는 16일은 ‘바보 성자’ 김수환 추기경의 10주기다. 그의 큰 빈자리를 ‘바보의 나눔재단’이 채워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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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행렬이었습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복받치는 감정이었습니다. 와야 될 것 같아서요, 이대로 보내 드릴 순 없어서요, 너무 죄송해서요, 잊지 않으려고요.

2019년 1월28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생존자, 여성인권운동가, 식민지 조선과 분단 대한민국을 한 여성으로 살아냈던 김복동 할머니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셨습니다. 시민장으로 치러진 장례기간 내내 국내외 수많은 시민들이 찾아왔습니다. 광주에서, 전주에서, 춘천에서, 진천에서, 대구에서, 제주에서, 수원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대학생이, 고등학생이, 중학생이, 초등학생이, 회사원이, ‘그냥’ 학생이, ‘일반’ 시민이라고 밝히는 분들이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선생님이 학생들과 직장인들끼리 친구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수업 마치고 공부하다 저녁 퇴근 시간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꽃을 들고 편지를 들고 정성들여 만든 작품을 들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눈이 빨개지도록 오열하며 할머니를 뵈러 왔습니다.

일본의 공식 배상을 요구하며 싸워 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이곳은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1천372회의 수요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연합뉴스

평안하게 잠드세요, 현세의 고달픔 잊으시고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보내 드려 죄송합니다. 비통함과 진심 어린 애도의 마음 한편으로 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 컸나 봅니다. 그래도 나비모양의 쪽지에 빼곡히 메워지는 조문객들의 압도적인 감정은 존경과 감사, 새로운 세상을 향한 결심이었습니다. 용기 내 세상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용기와 행동에 저도 힘을 얻었습니다. 항상 잊지 않고 함께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저희가 열심히 싸우고 연대하겠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여성인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할머니가 어떤 길을 가셨는지,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마음으로 느끼고 상호 전이되던 감정의 중핵에는 새로운 희망과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추념을 넘어 결단의 감정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요. 왜 수많은 우리들은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에 유독 몸과 마음이 움직였던 걸까요.

고인(故人)이 1992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밝힌 이후, 수많은 국내외 증언활동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를 ‘의제화’하고 여성인권에 관한 국제규범을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내고 성폭력이란 용어조차 생경할 당시 떳떳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용기, 일관되게 문제해결을 요구하던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 수많은 공격과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단호했던 목소리로 현실 비판과 평화를 향한 낙관적 전망을 잃지 않았던 생전의 행보에 대한 경외심 때문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말하는 증언자에 그치지 않고 다른 약자들과 피해자들에게 말 건네고 손 내미는 활동가로서의 실천이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비겁한 우리를 흔들어 깨웠기 때문일 겁니다. 생존자로 자신을 드러낸 이후 그의 삶은 다른 이들을 돕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바쳐졌습니다. 나비기금을 만들고 콩고, 베트남, 팔레스타인, 우간다, 인도네시아 등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기여해 왔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 지진이 나면 앞장서 피해복구를 위해 기부하고 분쟁지역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거금을 쾌척하며 핍박받는 재일조선인 학교 아이들의 교육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병석에 계신 와중에도 베트남 전시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제에 조화를 보내고 그 자녀들을 걱정하며 지원에 힘을 보태셨습니다. 생전에 아낌 없이 나누었던 그가 남긴 통장 잔액은 160만원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도, 행할 수도 없는 그 숭고한 정신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도 죄송했나 봅니다.

공식적인 장례절차는 2월1일 천안 망향의동산에서 엄수된 안장식과 2월3일 삼우제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정신은 다시 살아나 더 큰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와 비난, 좌절과 고통이 아니라 근본적인 세상의 변화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실천 정신은 우리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시민들의 조의금은 여성, 인권, 평화, 노동, 통일 등 시민단체에 기부되었고, 활동가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분쟁지역 및 재일조선인 학교 아이들과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다시 날려 올려질 수많은 희망나비가 온 세상을 덮을 때 비로소 고인은 편안히 영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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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의 ‘유럽유대인학살추모공원’에는 2711개의 검은 비석들이 ‘관’처럼 늘어선 듯한 거대한 돌무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기념비’다. 축구장 2배쯤의 크기로 독일 내 지식인들과 시민사회의 요구를 독일 의회가 받아들여 2004년 12월 세워졌다. 2700만유로(약 344억원)가 투입된 이 기념비는 유대인 추모와 함께 ‘과거 범죄행위에 대한 세대를 거듭한 독일인의 반성’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월호 광장 철거를 밝힌 다음날인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합동분향소의 모습.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삼전도비(三田渡碑)가 있다. 삼전도비는 1637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신하임을 나타내는 쪽빛 군복을 입고, 세번 무릎을 꿇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린 곳에 세워진 청나라 태종의 공덕비다. 치욕스러운 역사의 기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영화 <남한산성>에 출연한 배우 김윤석씨(김상헌 역)는 “승리의 역사보다 패배의 역사가 더 처절하고 더 많은 교훈을 준다”고 말한 바 있다.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는 ‘2·1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기억공간’이 있다. 국민성금 5억2000만원을 들여 2003년 사고 당시 현장을 그대로 재현,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당한 대참사의 교훈을 시민들이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모두가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잊지 않으려는 ‘기억의 공간’들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이 이르면 다음달 철거되고, ‘세월호 기억공간’이 들어선다고 한다. 세월호 천막은 2014년 4월16일 대참사 직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이 세운 뒤 지금까지 304명의 희생자 및 미수습자들을 추모해온 시민공간이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숨져가는 순간,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국가와 어른들의 수치스러운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한 공간을 서울 한복판에 조성한다는 것이다. 최근 <기억 전쟁>을 펴낸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라며 “기억은 ‘기록된 문서’보다 실체적 진실에 훨씬 가깝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재단장 중이다. 세월호 기억공간이 참사로 숨진 304명과의 대화가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도록 조성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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