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전태일(1948~1970)에겐 우리가 몰랐던 ‘꿈’이 있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기업, ‘태일피복’의 창업이다. 1969년 11월1일 일기에 미리 쓴 ‘개업 인사글’을 보면, 그가 그렸던 태일피복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본사는 철저한 품질 관리와 생산원가를 고객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 생산과정을 소개하여 드립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생산원가에서 얼마간의 이익을 붙여 주시면 됩니다. 이윤은 기업주와 종업원이 공평하게 분배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인, 종업원을 건강부터 교육까지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본사의 모토는 정직입니다. 종업원을 기업주와 하등의 차이 없이 대우하고도 사업을 해나갈 수 있다는 기본을 보이기 위한 기업체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양심적이며, 실용적인 상품은 논할 것도 없으며, 모든 기업체의 모범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당시 서울 평화시장 의류공장의 노동환경은 참담했다. 대여섯 평 일터에서 수십명의 노동자들은 밤을 새워가며 일했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고, 환풍기도 없어 먼지가 가득했다. 노동자들은 폐병에 안질, 영양실조 등 갖은 질환에 시달렸다. 전태일은 이런 현실을 타개할, ‘동행의 일터’를 만들려는 꿈을 사업계획서에 담았다.     

서울시가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지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를 기념하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 기념관 정면에는 전태일 열사가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청하며 근로감독관에게 쓴 자필 편지가 패널로 붙어 있다. 서울시 제공

전태일은 196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쓴 사업계획서에 ‘하루 8시간 근무 등 근로기준법 준수’ ‘사장에서 노동자까지 차별 없는 대우’ ‘이윤의 공평 분배’ ‘종업원 건강 보호와 교육’ ‘생산원가 공개’ ‘정당한 세금 납부’ 등이 이뤄지는 태일피복을 설계했다. 구체적 실행계획도 세웠다. 재단·재봉사는 3만원, 품질관리·배달 담당은 1만5000원, 재봉사 조수는 8000원의 월 임금을 받도록 했다. 그때는 시내버스 요금이 15원, 풀빵이 1원 하던 시절이다.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하면서도 재봉사 조수가 3000원, 재봉사가 1만원 정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파격이다. 밝은 형광등과 넓은 창, 환풍기가 있는 일터와 음악감상실·도서실·탁구대·농구대 등을 갖춘 휴게실도 조성할 계획이었다. ‘야간 기술학원’을 설립, 노동자 교육도 꿈꿨다. 전태일은 157명의 직원을 고용, 생산원가 공개로 가격 거품을 빼는 대신, 대량생산을 통해 이익을 키울 계획이었다. 서울시내 모든 의류점의 정보를 파악한 뒤, ‘월 1회 카탈로그 발송’ ‘오토바이를 활용한 주문 후 3시간 이내 배송’ ‘자동차로 고객 배웅’ ‘지역별 대리점 운영’ 등 전략도 세웠다. 매월 한차례씩 장학금·오토바이·피아노 등 사은품 증정행사도 기획했다. 

태일피복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전태일은 자신의 한쪽 눈을 희생할 각오로 자본금을 마련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1970년 11월13일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뒤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꿈은 이뤄졌을까. 하루 8시간 근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근로기준법에 분명하게 적시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법이 정한 ‘주 40시간’도 아닌 ‘주 52시간 노동’을 이야기한다. 경영계는 이마저도 부족하다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 혹은 1년으로 늘리자고 한다. “최저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오른다”고 아우성이지만 지난해 4분기 5분위 배율(최상위 20%의 평균소득을 최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은 5.47배로 통계청 집계 이후 가장 악화됐다. 2014~2017년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평균연봉은 직원 평균연봉의 20배가 넘었다. 안전해야 할 일터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기까지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 등으로 숨지고, 김용균 같은 노동자들이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한 해 1000명에 가까운 생명이 ‘일터에서의 사고’로 억울한 죽음을 맞고 있다. 그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서까지 원했던 노동조합 할 권리도 취약하다. 노조 조직률 10.7%에서 알 수 있듯, 산업현장 곳곳에서 “노조 할 권리를 달라”는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8개 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강제노동 폐지 등 4개 협약에 여전히 비준하지 않았다. 

평화시장과 멀지 않은 청계천변에 오는 30일 ‘전태일 기념관’이 문을 연다. 그곳에 ‘태일피복’ 전시공간이 마련돼,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된다. 그곳에 가면, 그가 꿈꾸던 ‘근로기준법을 지키면서 차별 없는 대우와 공평한 분배가 이뤄지는 세상’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숨진 지 49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다섯번 바뀐 시간이다. 

그런데 모든 노동자는 그가 꿈꾸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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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19년 4월11일 신익희, 이동녕, 조소앙 등 애국지사 29인은 중국 상하이에 모여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의 탄생을 알렸다. 그들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며 우리나라가 ‘황제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새롭게 태어난다고 선언했다. 애국지사들은 또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 새로운 나라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임시헌장 10개 항은 민주와 공화, 평등, 자유, 평화 등 근대 민주주의 헌법의 요소를 다 갖추었다. 이러한 헌법의 가치는 제헌 헌법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해 대한민국의 출발이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누구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임시정부 헌법에서 주목할 조항은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다. ‘민주공화제’란 문구를 헌법에 명시한 것은 세계 헌정사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들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은 황제가 다스린 전제군주국이었다. 일제 강점 직후만 해도 복벽주의, 사회주의, 민주공화주의 등 여러 정치이념이 제시됐다. 이런 와중에서 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민주와 자유를 체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3·1운동은 거대한 민주주의의 학습장이었다. 3·1독립선언서는 새로 건립될 조국은 정의·인도·자유의 나라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중국 상하이의 대표적 여행지로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와이탄(옛 지명 황푸탄)의 현재 모습(왼쪽)과 옛 모습이다. 황푸강변을 따라 유럽풍 건물들이 들어선 와이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한국인에겐 유명 관광지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피끓는 역사의 현장이다.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많은 애국지사들이 조국을 떠나 배를 타고 이곳에 첫발을 내디뎠다.그리고 임시정부를 세웠다. 와이탄의 저 빌딩들 뒤편 ‘루이진얼루’ 주변의 어느 곳이 임시정부 첫 청사이지만, 아직 우리는 그 정확한 장소를 모른다. 1922년 의열단원 오성륜·김익상·이종암 의사가 ‘황푸탄 의거’를 단행한 곳도 여기다. 상하이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이 해방된 고국으로 가는 배를 탄 곳도 여기 와이탄이다. 이준헌 기자

임시정부는 해방을 맞기까지 27년간 임시의정원의 의회정치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임시정부의 활동은 의정원의 법령에 기반해 이뤄졌다. 의정원은 모두 5회에 걸쳐 헌법을 개정하고 법령 제정을 위해 39차례의 회의를 소집했다. 임시정부가 갈등과 분열 속에서도 유일 통합정부를 지켜갈 수 있었던 것은 의회정치의 힘이었다. 광복 후 민주와 자유의 가치는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을 통해 더욱 신장됐다. 특히 6월항쟁과 뒤이은 헌법 개정을 통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등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실현됐다.  

반면 공화주의의 진전은 상대적으로 더뎠다. 공화주의는 군주와 같은 특정한 개인이나 계급이 아닌 공공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념이다. 임시헌장 제3조는 남녀·빈부·계급의 차별이 있어선 안된다며 평등 가치를 내걸었다. 정치·경제·교육에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공화주의 정신이다. 제헌 헌법은 정의·인도·동포애를 명기하며 공화주의 가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현실에서 헌법의 공화주의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빈부·계급 간 격차는 커져가고 있다. 배려, 협력, 포용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특권층이 부와 권력을 독식하면서 소수자 등 소외계층은 각자도생해야 할 처지다. 

10일 국회에서는 임시의정원 100주년 행사가 열렸다. 11일에는 정부 차원의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이 열린다. 여야 원내대표 5인은 3박4일 일정으로 중국 내 임시정부 유적지를 방문 중이다. 그런 행사도 필요하지만 임시정부의 통합정신, 공화주의정신을 되살리는 게 중요하다. 100년 동안 헌법 제1조를 지켜온 민주공화제를 뿌리내려야 한다. 정치권과 국민 모두 민주주의를 내실화하고 공공의 가치를 실천하는 일, 이것이 100년 전 임정 요인들에 대한 응답이다. 언제까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공허하게 외치기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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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합동으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훌륭한 비전임 박사를 대상으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가칭)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학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학 밖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받는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인문사회 학술은 직접적인 이익 창출을 하지 않지만, 국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이다. 세종 시기에 양성된 학자와 그 학문적 성과에 이어진 문화적 융성과 번영은 잘 알려진 일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의 변화를 이루고자 하고 또 과거의 선진국 추격형 국가가 아닌 선도형 국가가 되려면 이 분야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이 분야에 큰 관심을 보여준 관계부처에 고마운 마음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먼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더욱 늘어나야 한다. 2019년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20조원을 넘어 다른 선진국보다 적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국가의 연구비 지원은 그것의 1.5%인 3000억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영국은 국가 연구예산의 9% 이상을 인문사회 분야에 투자하며 미국 또한 7%에 달한다. 이에 비할 때 우리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상당히 빈약한 수준이다. 

둘째, 인문사회 학술에 대한 장기적 정책을 수행하고 그것을 집행할 조직이 필요하다. 학술의 활성화는 단순히 연구지원의 규모를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어느 분야에 어느 정도의 연구 인력이 필요하고, 그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학술정책 전반을 다룰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계의 경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 별도 조직을 통해 해당 분야의 연구·개발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지속적 논의가 가능하다. 그간 인문사회 분야는 어려움을 호소하면 그에 대해 새로운 형식의 연구비를 만드는 미봉책만 제시됐는데, 이는 장기적인 정책과 그것을 수행할 기구의 부재에서 온 것이다.

셋째, 인문사회 학술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 지식세계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비전임 박사에 대한 지원의 확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강사법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거나 일종의 취업 기회 확대로 접근하면 안된다. 생계지원 방식의 연구비 확대가 연구자의 증대로 이어지고 다시 그 때문에 연구비의 부족을 호소하고 이에 따라 연구비가 늘어나는 악순환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학술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장기적인 전망으로 건전한 지식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초점이 놓여야 한다.

끝으로 인문사회 분야에 종사하는 기성 학자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위기는 학문 후속세대의 위기이며 동시에 대학 전체의 위기다. 그런데도 급변하는 세계에서 교수들이 혹여 밀폐된 연구실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거나 자신만의 세계 구축에 열을 올리는 건 아닌지, 사회적 임무를 잊고 편안한 직업인에 만족하는 건 아닌지 성찰이 절실하다. 이것은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번 활성화 방안에서 대학 밖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 것이 대학만이 학문의 근거지였던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대학 밖에서 더 큰 힘으로 전임교수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강재 | 서울대 교수·중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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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났다. 그 봄을 눈물로 통곡으로 보내면서 다시는 흩날리는 벚꽃 잎도, 새파란 하늘도 죄스러워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봄이 다시 왔다. ‘어느덧’이라는 말로 그해 봄은 아득하게 멀어졌다. 기억한다고,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감탄한다. 나 같은 사람은 벌써 멀찌감치 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간은 5년 전 봄날에 멈춰 있다. 그날 아침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 딸을 불러 품에 꼭 안아줬던 기억에서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뒤돌아보아도 아프다. 시간을 가슴에 짓이겨 뭉갰지. 멈추어도 아프다. 시간을 어미 발꿈치로 짓밟고 한 발짝 떼어도 아프다.”*

그해 봄 아이를 보낸 어머니가 쓴 시집을 받고 선뜻 책장을 들춰보지 못했다. 교실 게시판에 있던 달력 사진이 박힌 표지만 며칠 동안 힐끔거렸다. 그 봄날에 아이들은 교내 로봇 대회를 했구나. 과학 탐구 대회도 있었구나.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진학 특강도 들었겠구나. 달력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수학여행 마지막 날인 18일에 적어 놓은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다시 돌아와~”

짧은 수학여행을 아쉬워하며 모두 다시 돌아올 줄 알았던, 다시 돌아와 이제는 스물세 살이 되었을 딸. “내 손으로 너를 지워야”* 했던 어머니는 딸이 성인이 되면 보여주려고 남겨놓았던 배냇저고리를 꺼내 놓고 말한다. 이렇게 슬프게 보려고 남겨둔 게 아니었다고. 딸이 좋아하는 새우의 껍질을 벗겨주던 아빠는 제사상에 새우찜을 올려놓고, 동생을 잃은 언니는 중얼거린다. “왜? 세 개?”*

어머니의 시집은 한 아이의 삶과 그 삶을 함께한 가족의 시간과 기억으로 엮여 있다. 이 가족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같은 아픔을 가진 다른 가족의 기억도 보인다.   

시집을 본 뒤 깨달았다. 그 봄을 기억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잊지 않는 것이다. 봄처럼 피어나던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니 섣부르게 말할 수 없다. 이제 그만하라고. 

*부분은 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유인애)에서 차용.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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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개구리는 잠들지 않는다고 한다. 잠을 자지 않고도 어떻게 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현재까지 과학자에 의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지구에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저 신기하기 그지없는 생명체가 아주 많다. 가을이 되면 알래스카에서 북멕시코로 이동했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가는 흰정수리북미멧새는 무려 7일 동안이나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잠을 아주 많이 자는 동물도 있다. 들다람쥐는 하루에 14~15시간을 잔다. 박쥐는 한 술 더 떠 20시간가량을 잠으로 보낸다. 지구에서 가장 잠을 많이 잔다고 알려진 생명체는 앙증맞은 외모로 사랑받는 코알라이다. 코알라는 자그마치 하루에 22시간 동안이나 잔다. 코알라에 못지않은 잠보 동물도 있는데, 단단한 껍질로 유명한 아메리카 대륙에만 서식하는 포유류 아르마딜로다. 아르마딜로는 무려 20여시간이나 잔다고 한다. 하마나 나무늘보도 많이 자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의 곁에 있는 고양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잠꾸러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렇게 잠을 많이 자는 동물이 있는 반면, 어떤 동물은 도통 자지 않는다. 황소개구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소는 불과 4시간, 노루와 말은 3시간가량, 그리고 기린은 심지어 2시간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만을 잠에 할애한다고 한다. 지구는 잠이 없는 동물과 하루를 거의 잠으로 보내는 동물로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동물은 밤에 자는데, 낮에 잠을 청하는 동물도 있다. 야행성인 고슴도치는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움직인다. 잠이라는 틀로 지구의 생명체를 분류해보면 지구의 종다양성이 실감난다.  

이제 사람의 잠으로 눈을 돌려볼 차례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은 하루 평균 9시간13분을 잠으로 보낸다. 반면 한국인은 7시간41분 잔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이 권장하는 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수면시간은 하루 8시간인데,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이 기준을 밑돈다. 사실상 수면 부족인 셈이다. 평균 수면시간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 사람은 8시간4분가량 자고, 독일 사람은 8시간14분 동안 침대에 있다. 프랑스인도 넉넉하게 잠을 잔다. 프랑스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29분이다. 미국인은 한국인보다 무려 1시간 이상 더 잔다. 그들은 8시간45분간 수면한다. 수면다양성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잠에 할애하는 시간은 나라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수면다양성은 그 나라의 사회환경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국인이 OECD 국가의 평균 수면시간 8시간22분보다 훨씬 덜 자는 이유가 ‘김치’와 ‘마늘’을 먹기 때문일 리 없다.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 다른 나라 사람보다 적게 자고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일 리도 없다. 한국인의 수면 부족 원인을 찾기 위해 노동시간부터 살펴보자. 2017년 기준으로 한국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24시간에 달한다. OECD 국가 평균 1759시간보다 무려 265시간을 더 일한 셈이다. OECD 국가 중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인은 연간 1356시간 일한다. 독일인은 한국 사람보다 1년에 668시간이나 덜 일한다. 

부지런하다고 정평이 난 독일인이 한국인보다 많이 잘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인보다 1년에 668시간을 덜 일한다는 사실로만 설명될 수 있다. 5년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생활시간 조사는 한국인이 왜 잠이 부족한지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를 제공한다. 2014년 통계청의 ‘한국인들의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하루 24시간 중 통근 및 통학에 평균 1시간30분을 소비한다. OECD 평균보다 연간 265시간을 더 일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16%를 통근 및 통학에 써야 하니, 우리에겐 잠을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노루나 말처럼 짧은 시간만 자야 한다. 어떤 아이돌 멤버는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한창 바쁠 때 하루 2~3시간 잔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10대 청소년은 하루 10시간 정도 잘 것을 권유하는데, 교육부의 2016년 조사에 의하면 한국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4명이 6시간도 채 자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쑥쑥 자라던 한국 고등학생의 평균 키는 2016년 조사에서는 10년 전보다 남학생은 0.2㎝, 여학생은 0.5㎝나 줄었다고 한다. 나부터도 하루에 2시간을 통근에 할애한다. 항상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어떤 날은 소처럼 조금 자기도 한다. 그보다 더 여유가 없는 날은 황소개구리를 부러워한다. 소처럼 적게 자야만 하는 날이 쌓이다 보면 코알라가 되고 싶어진다. 오늘도 그렇다. 코알라가 되고 싶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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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보호관찰소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청사가 없는 국가기관이다. 청사 이전 시도가 지역민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2009년 성남시 수정구에서 분당구 구미동으로 청사를 옮기려 했지만 공사는 시작도 못했고, 2010년 노동부가 쓰던 야탑동 구청사에 들어가려던 계획도, 2013년 서현동으로 이주하려던 시도도 물거품이 됐다. 

보호관찰소는 법원에서 보호관찰·사회봉사 수강명령을 받은 이들과 가석방자 등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주민들은 보호관찰소가 지역에 생기면 범죄 전력이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들이 청사를 드나들게 되면서 주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를 들어 이전에 반대했다. 

청사 이전이 무산되자 성남시청의 중재로 민관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대책위는 성남시청에 관찰소 직원들이 업무를 볼 임시행정사무소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보호관찰 대상자의 신고 접수나 구인 등의 업무는 서울동부보호관찰소와 수원보호관찰소에서 진행토록 했다. 직원들을 위한 사무실은 허락했지만 보호관찰 대상자의 출입은 끝까지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행정 사무는 성남시청에서, 보호관찰 대상자 지도·감독 업무는 타 지역 관찰소 2곳에서 처리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다. 

올 초 직원이 늘면서 직원들 대다수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동부보호관찰소의 사무공간이 부족해졌다. 이 때문에 2010년 확보만 해놓고 쓰지는 못하던 야탑청사에 문서고를 옮기고 보호관찰 자원봉사자 교육 및 회의 등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자 했다. 모두 보호관찰 대상자가 출입하는 시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야탑3동 주민들은 지난 3월15일 청사 앞에 현수막과 천막을 치고 반대 집회를 벌였다. 주민들은 민관대책위원회가 2013년 야탑동은 보호관찰소 입지 선정에서 제외한다는 의결문을 지키고, 보호관찰소를 이전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법무부가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민들의 태도와 요구가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묻고 싶다. 변변한 청사도 없이, 직원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부서 간 원활한 소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 제대로 된 보호관찰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보호관찰은 대상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것이자 이들의 재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재범 예방 활동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할 때의 피해는 청사 입지 주변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깝게는 성남시, 넓게는 전국의 시민들이 잠재적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성남지역에 거주하는 보호관찰 대상자는 1000명이 넘는다. 보호관찰소를 없앤다고 해서 이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단만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비록 최선은 아니더라도 훗날 범죄로부터 안전한 성남시, 함께 사는 행복한 성남시를 만들기 위한 차선은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인식 전환을 바란다.

<신달수 | 법무부 수원보호관찰소 성남지소 관찰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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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을 받으면 겸손하면서 당당하게 답변하라.” 군 복무할 때 상급 부대의 검열을 앞두고 지휘관이 지시한 말이다. 참 좋은 말이긴 한데 실천하기 힘든 모순형용으로 느껴져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과연 겸손하면서 당당한 태도가, 그런 삶이 가능할까.

<사기열전>에서 서문 격인 ‘백이열전’ 바로 다음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관중이다. 그런데 제목이 ‘관중열전’이 아니라 ‘관안열전’이다. 안영이라는 인물을 합하여 열전을 구성한 것이다. 사마천은 관중 이야기 뒤에 안영에 대한 짤막한 일화 두어 개를 실어 두고는 논평에서 “안영이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그의 마부가 되어도 좋겠다”라며 흠모의 정을 드러내었다. 열전의 인물평 가운데 몇 안되는 극찬이다. 아랫사람을 인정하고 자기 잘못을 돌이킬 줄 알았으며, 평소에는 자신을 낮추고 검소하게 살았지만 직언을 할 때는 왕의 얼굴빛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겸손하면서 당당한 인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안영의 마부가 어느 날 부인에게 느닷없이 이혼을 통보받았다. 영문을 모르는 마부에게 부인이 그 이유를 말했다. “안영은 왜소한 체구로 재상의 명성을 날리면서도 늘 겸허한 모습인데, 당신은 훤칠한 외모로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 너무도 의기양양하더군요.” 안영과 마부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안영의 관심은 자신의 내면에 있었다. 돌아볼수록 부족하고 부끄러우니 겸손하다. 품은 뜻이 크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니 당당하다. 반면 마부가 자랑스러워한 것은 화려한 재상의 마차를 몬다는 외적 요건 때문이었다. 직함이나 외형의 우월함에서 나오는 것은 당당함이 아니라 거만함이다. 내면을 채운 것이 아니기에 언제든 잃을 수 있으니, 겸손함이 아니라 비굴함이 따른다.

이른바 ‘갑질’이 사회의 화두가 되더니,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포함되어 시행을 몇 달 앞두고 있다. 직위로 인한 횡포를 경험한 비율이 70%가 넘는다는 오늘, 갑질은 일부 재벌가의 일탈적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상호 간에 자행되고 있다. 거만함과 비굴함의 사이를 불안하게 오갈 것이 아니라, 겸손하면서 당당한 삶의 이상을 다시 떠올릴 일이다. 순간순간 나의 만족과 실의가 어디에서 오는지 곰곰이 성찰해 보면서.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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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1일)이면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내려진다. 낙태죄에 대해 위헌 내지 헌법불합치 선고가 내려졌을 경우 행해져야 한 것들은 무엇인가. 먼저 해당 형법조문의 삭제 혹은 개정과 더불어 모자보건법과 그 시행령 등 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는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사유들이 규정돼 있다. 이 사유들이 너무 좁거나 현실의 임신중절과 너무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만약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임신주수를 세 시기로 나누어 임신 12주, 24주, 그리고 36주로 분류해서 접근하는 이른바 ‘3분기법’을 취할 것인지, 임신중절의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예컨대 임신 12주까지는 임부의 의사를 중심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지만, 임신 중기나 후기에는 의사(들)의 개입 정도를 달리하는 등의 방법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연구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임신중절의 고려사유는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가 46.9%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자녀계획(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 조절 등)’과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각각 44.0%, 42.0%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임신중절 정책에 사회경제적 사유들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이런 사유들을 경감시킬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마련한다면 출산 선택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3월 30일 서울 도심에서 낙태죄 관련 찬반 시위가 열렸다.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위 사진)와 광화문네거리 원표공원에서 열린 낙태 반대 집회. 연합뉴스

둘째, 낙태죄 폐지 이후의 ‘가치론’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과제가 중요하다. 그동안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권리는 주로 ‘임부의 자기결정권’으로 말해졌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은 임산부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 노동, 학업 등 전방위적으로 존재를 재구성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낙태결정권은 ‘운명결정권’으로 말해지기도 한다.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낙태금지 정책이 여성에게 가져오는 폐해가 극심한 것으로 근본적으로 성차별적이라고 보는 법학자가 다수 있다. 나아가, 나를 포함한 일군의 사람들은 낙태 문제를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이라는 견지에서 바라본다. 재생산권이란 단지 아기를 낳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권리도 뜻한다. 재생산권이란 성적관계(sexual relations)에서의 젠더평등권과 자기결정권, 임신과 출산에서의 자기결정권과 정보 및 의료서비스 접근권, 낙태 혹은 출산 이후 국가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을 권리를 포함하는 권리의 세트이다. 이는 남성시민도 향유해야겠지만 여성시민의 인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권리목록이다. 또한 이는 재생산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빈곤, 비혼, 장애나 동성애 시민 등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자녀 출산이란 주로 법률혼을 한 비장애인 이성애 가족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혼인 임신 여성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고, 사회적으로도 차별의 시선이 따가워 태아를 중절하고자 할 때 그는 사회에다 책임을 묻기는커녕 낙태라는 범죄행위를 숨어서 치러야 했다. 낙태 사실을 공표할 수도 없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위로받을 곳도 없는 ‘이상한’ 고통을 겪어내야 했다. 시민들의 재생산권을 공평하게 지원하기 위해 국가는 먼저 ‘정상가족’ 모델로부터 빠져나와야 할 것 같다. 

셋째, 재생산권리는 형법이나 모자보건법뿐 아니라 헌법에서부터 그 정신이 흘러내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2018년 3월 국회에 제출했던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는 최초로 재생산권리에 버금하는 조문이 마련된 바 있어 주목된다. 제35조 제3항에 “모든 국민은 임신·출산·양육과 관련하여 국가의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였고, 제33조 제5항에는 “모든 국민은 고용·임금 및 그 밖의 노동조건에서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부당하게 차별을 받지 않으며”라고 규정하였다. 인구의 재생산은 더 이상 국가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 삶의 질, 여성과 남성이 같이 분담하는 평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넷째, 새로운 임신중절의 정책에서 의료적, 경제적, 사회적 상담이나 임신허용의 기준 등이 매우 중요하겠으나 이 프로그램 역시 재생산권에 입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성(sexuality)과 피임교육에 대한 전면적 개혁과 함께 임신중절 및 중절 이후의 적응에 대한 교육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교육은 젠더평등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기존의 ‘성 건강’은 ‘재생산 건강’으로 재규정되고, ‘재생산 건강’은 건강을 넘어 평등과 정의(正義)의 시각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낙태죄 폐지는 그동안 지연되어 온 생명의 재생산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이런 사회 시스템을 생명중심적으로 만드는 일이 다름 아닌 생명존중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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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텃밭을 분양받았다. 두 해 전 인근 지역에 생긴 청소년 종합타운에서는 작년부터 옥상에 열두세 이랑 정도의 텃밭과 열두 개 정도의 텃밭 상자를 만들어 청소년을 포함한 가족 단위의 팀에 분양하고 있다. 일종의 도시농사 운동이라고 해야 하나. 청소년 전문 시설이라는 특성에 의한 일종의 문화 사업이자 교육 사업이다. 

그래서 분양받은 밭은 밭이라기보다는 폭 1m, 길이 2m 정도의 좁은 이랑에 불과하다. 좁다고 말했지만 사실 좁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정도 넓이로도 꽤 많은 작물을 심고 거둘 수 있다. 욕심을 내고 그만큼의 부지런을 떤다면 열 가지 종류의 작물도 너끈히 부족하지 않게 키울 수 있다. 나는 작년에 일곱 가지 종류의 작물을 키웠다. 옥상에 만들어 놓은 인공 텃밭이라 불가능할 줄 알았던 뿌리채소까지 포함된 수다.

교육도 받는다. 어떤 작물을 심을지, 어느 시기에 심을지, 어떻게 하면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2~3주 간격으로 농업 전문 강사를 초대해 교육도 하고 함께 모여 텃밭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외 시간에 분양받은 텃밭을 돌보는 건 각자의 몫이다. 대신 날마다 해야 하는 물 주기는 생업이 따로 있는 저마다의 일상을 존중해 순서를 짜서 돌아가며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물만은 나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노력인 것이다. 그러하니 물 주는 순서만은 마땅히 지켜야 하지만 누구나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약속한 날짜에 오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날은 운영을 맡은 부서 직원들이 물을 준다. 물 주는 일 말고 텃밭에 필요한 나머지 일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덕분에 시들어 죽는 작물은 없지만 고작 한 고랑의 밭마다 작물이 자라는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잡초 하나 없이 지나치게 무성해지지도 야위지도 않고 모든 작물이 고르게 자라는 밭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게나 길러 산발한 머리처럼 모든 작물이 뒤엉킨 밭도 있다. 희한하게 그런 밭은 심은 작물의 종류도 많다. 옥상에서, 혹은 초보가 기르기는 적당하지 않으니 삼가는 게 좋다고 하는 작물도 보란 듯이 심겨 있다. 

그래도 이곳의 옥상텃밭은 밭마다 비교적 구획이 정확하게 나누어져 있고, 직원들이 최소한의 유지관리는 해주어서 이런 밭이 옆에 있다고 큰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청계산 아래 있는 텃밭농장의 텃밭에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 이런 이웃을 만나는 일은 가뭄과 장마, 태풍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힘들었다.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밭을 가꾸고 작물을 살펴도 돌보지 않은 밭에서 넘어오는 잡초와 그 밭의 작물에서 비롯된 병충해는 어떻게 해도 막을 수가 없다. 내 밭과 이웃한 밭 사이의 고랑에 있는 잡초까지 다 뽑고 천연 약제를 넓게 뿌려도 한계가 있다. 

내 밭인지 네 밭인지 모르고 손을 보고 있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두서없이 맥락 없이 든다. 이래서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 들고, 내 것을 포기한다는 건 내 것만 포기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시작이 좋아도 중간에 포기하면 의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대체 이 사람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밭을 방치하는 걸까. 무책임일까, 게으름일까 비난하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서늘해지기도 한다. 그에게 혹 다른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왜 중간에 결국 포기한 사람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숨은 사정 같은 건 헤아려보지도 않고 매도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 부득이하게 포기한 자리를 폐허로 방치하는 시스템의 부당함은 왜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어쩌면 나는 그런 생각들을 키우려 해마다 부지런히 텃밭에 도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텃밭을 가져본다는 건, 그곳에서 작물을 길러본다는 건, 농사의 고단함을 이해하거나 농부의 땀을 헤아리는 정도의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순간 인생의 단면 단면을 깨닫게 하는 공부는 되기 때문이다. 올해의 텃밭 모종 심기는 4월 둘째 주에 시작된다. 내 텃밭은 그래서 지금은 텅 빈, 그러므로 무한한 텃밭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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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불을 대하는 태도는 신속했고, 긴밀했고, 단호했다. 그런 덕분에 더 큰 재앙으로 번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와는 다른 정부의 재난 대응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에 비해서 제1야당은 구태를 버리지 않고 이마저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해서 비난을 받는다. 

모든 일을 이렇게 했으면 대통령도 여당도 지지율이 급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분야의 일은 지지부진하다. 촛불시민들이 원했고, 이 정부 스스로 약속했던 정부의 모습을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4월1일은 만우절이었다. 그날 청와대에 초청받아서 갔다.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집행책임자들이 초청 대상이었다. 80명의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그 자리에 갔는데 이 정부 들어서 처음이고, 노무현 정부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전부터 대화를 갖자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개별적인 사안을 두고 말을 듣는 것 같았으나 정책으로 이행되지는 않은 채 시민사회가 바라던 모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물론 시민사회가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현장 가까이서 정책의 실효성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므로 경청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정부의 대화 태도는 듣기는 하되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은 정부에 쓴소리를 늘어놓았다. 각계를 대표하는 16명의 인사들이 발언을 이어갔다. 그들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부가 잘못하고 있으니 제대로 하라는 따끔한 말들이었다. 한 시간도 더 넘게 진행된 발언을 다 들은 대통령이 마무리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잡았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동반자 관계라고 말했다. 절반의 책임을 나누자는 것처럼 들렸다.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다. 

청와대를 다녀온 뒤로 찜찜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이틀 뒤에 경남 지역 두 곳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진행됐다. 창원성산 투표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단일후보를 냈음에도 신승했다. 겨우 504표. 통영·고성 투표구에서는 자유한국당에 내줬다. 성적표로만 보면 1 대 1일 수 있지만,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실망감이 표로 나타났다는 해석이 강했다. 그러니 여당은 즉각 민심이 무섭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곧 다른 이야기가 들렸다. 낙선은 했으나, 이전 선거보다 지지율이 올랐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고 한 장관 후보자는 청와대가 철회를 했는데도 인사검증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뻗댄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다. 초기의 경청하는 자세에서 불통으로 가려는 것인가? 한다고 하는 대화는 대부분 이벤트이거나 형식적이다. 

이 정권은 종종 촛불정권이라고 말한다. 촛불항쟁 덕분에 탄생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촛불정권이라면, 촛불집회 중에 창원에서 24살 전기공이 했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제 삶이 나아질 기회가 있을까요?…이대로 20년, 30년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놓고는 곧이어 인상효과를 무력화하는 정책을 단행하고,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한다고 해놓고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노조도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하는 정책을 강행하려고 한다. ILO 핵심협약을 도입하지 않으면 유럽연합과의 무역분쟁이 벌어질 지경인데,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해서 노동권과 경영방어권을 일괄 타결하겠다는 말도 들린다. 갈지자도 이런 갈지자가 없다. 교수나 전문가들 말은 경청할지 몰라도 현장의 목소리는 적대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래 놓고 노동존중사회니, 포용국가니 하니 이건 기만이 아닐 수 없다. 

광장에서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했다. 그중에는 재벌개혁도 핵심적인 요구였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재벌에 힘을 실어주었고, 그런 결과는 경사노위에서 말도 안되는 경영방어권을 주장하는 경영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책 &lt;사람이 먼저다&gt;에서 “우리나라는 노동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한 반면, 사업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가 끊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인식이 집권 2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 

적폐청산 작업도 소리만 요란했지 실질적으로 청산된 것이 무엇인지 답답하다. 절차와 요건을 문제 삼으면서 미적대는 동안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리고 과거 정권에 기생했던 관료들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집권 초기에 한 관료가 그랬다고 한다. “2년이 지나기 전에 원래대로 돌아갈 겁니다.”

이제 다음달이면 집권 2년이다. 형식적인 대화니 동반자적 관계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 어디까지 왔는지 허심탄회하게 점검할 수는 없을까? 정부 부처마다 만들어졌던 적폐청산 기구들의 보고서는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았고, 이행되지도 않았다. 촛불정부라면, 촛불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앞의 책 첫머리에는 “사람 사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부자의 편, 기득권 세력의 편이 되는 정권이 아니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던 비정규직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정권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 안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점점 배제되고 있는 듯하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던 대통령의 말을 언제까지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믿고 기다린 결과가 배신으로 흐를까 두렵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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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강원 동해시에서 ‘제8회 수산인의날’ 기념식이 있었다. ‘깨끗한 바다, 풍요로운 어장, 하나되는 수산인’을 주제로 한 올해 기념식은 수산인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수산자원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다진 자리여서 더욱 뜻깊었다.

기념식이 열린 강원도 동해안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 손꼽혀온 곳이다. 국민생선인 명태와 오징어의 주산지로 수산진미(水産珍味)를 찾는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동해안 하면 만선의 꿈에 부풀어 바다를 오가는 어선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포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최근 동해안은 예전의 풍요로움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한때 17만t이나 잡혔던 명태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오징어도 금징어라 불릴 정도로 어획량이 줄면서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가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동해안 어촌이 소멸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는 비단 동해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연근해 어획량은 10년 전 128만t에서 최근 100만t 수준으로 줄면서 수산자원 감소 문제가 대두되었다. 어가인구도 2000년 대비 절반 수준인 12만명으로 줄고, 65세 이상 어업인의 비율이 35%를 넘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수산업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성장으로 쇄신하고자 지난 2월 ‘수산혁신 2030 계획’을 발표하였다. 동 계획은 수산자원 관리부터 생산, 유통, 소비까지 전 단계를 혁신하기 위해 주요 4개 부문에서 다음과 같이 근본적이고 내실 있는 대책을 담고 있다.

첫째, 연근해 어업 부문은 생산지원 중심에서 자원관리 중심으로 대전환한다. 어종별로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을 관리하는 총허용어획량제도(TAC)를 확대 시행하는 한편, 과학적인 자원평가에 기반하여 자원량 대비 과도하게 운영 중인 어선들은 합리적으로 감척하고, 조정 후 운영될 어선들은 설비 개량 등 현대화하여 잡는 어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 나간다.

둘째, 양식어업 부문에서는 친환경·고부가가치 스마트양식 체계를 구축한다. 정보통신·바이오 기술을 융합한 첨단 스마트양식 기술을 확대 보급하고, 생사료 대신 친환경 배합사료를 점진적으로 의무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진입규제 완화와 참치펀드 등 새로운 투자 상품 개발로 규모화·기업화도 적극 지원한다.

셋째, 수산물 유통 부문에서는 복잡한 단계를 축소하여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효율적인 유통 체계를 만들어 나간다. 울진의 붉은대게 가공단지, 포항의 과메기 가공단지처럼 지역특산품과 연계한 수산식품 거점단지를 단계적으로 확충하여 가공산업의 육성에도 힘쓸 계획이다.

넷째, 어촌을 혁신적인 정주·여가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우선 ‘어촌뉴딜 300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여 어촌을 혁신적으로 현대화하고, 어촌계 진입장벽 완화와 귀어학교 설립 확대 등을 통해 귀어·귀촌이 보다 활성화되도록 지원한다. 또한 어촌의 6차 산업화를 통해 전통적인 생산기능에 유통, 가공, 관광기능까지 더함으로써 살기 좋고 즐겨 찾는 어촌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올봄 동해에서 잡은 명태 중 일부가 2015년에 방류한 어린 명태라는 것이 유전자 분석으로 확인되었다.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여온 정부와 어업인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동해에 명태가 다시 돌아왔듯 ‘수산혁신 2030 계획’을 통해 수산업에도 새로운 활력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동서남해 모든 바다에 풍어의 노랫가락이 다시 울려 퍼지고, 2030년에는 수산산업 매출액 100조원, 어가소득 8000만원을 달성하겠다는 우리 수산인의 꿈이 실현되길 소망해본다.

<김양수 |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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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은 글쓰기 외에도 여러 요소로 구성된다. 글을 쓰는 시간이 주를 이루기는 하나 그 앞뒤로, 혹은 사이사이로 끼어드는 딴짓이 있다. 나는 그런 딴짓의 시간이 수업을 지속시킨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안 하는 게 더 편한 일이다. 귀찮음을 극복해야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이 아이들의 귀찮음을 무릅쓰게 만드는가. 나의 오랜 탐구 주제였다. 

수업을 시작하면 입을 쭉 내밀고 토라진 얼굴로 앉아있는 아이가 보인다. 집에서 가만히 쉬고 싶어서 꾀병을 부려 보았지만 부모님께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각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올리브영 같은 화장품 가게에서 샘플을 발라보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모두 다른 컨디션과 다른 사연을 가지고 모인다. 그들과 가장 먼저 하는 건 근황 토크이다. 지난 한 주간 어땠는지, 전하고 싶은 소식이 있는지 내가 묻는다. 성의 없이 물으면 성의 없는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우선 내 근황을 솔직하게 전해야 한다. 굿 뉴스로는 2년 만에 드디어 교정기를 뺀 사실을, 베드 뉴스로는 어떤 잡지에 연재를 하다가 잘렸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럼 아이들도 자신의 최근 소식 중 몇 가지를 엄선하기 시작한다. 날마다 다른 변수와 디테일이 추가되므로 말할 거리는 언제나 생겨난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떤 아이는 글쓰기 수업을 가는 버스 안에서 근황 토크를 준비한다. 또 다른 아이는 카톡 대화 내역을 뒤져보며 한 주간 주고받은 텍스트를 살펴본다. 자신이 말할 차례가 오면 다들 이렇게 말문을 연다. “저는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매주 다르다. 소식을 다 전하고 나면 옆에 있는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나 말고 다른 이에겐 어떤 소식이 있는지 듣는 게 도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잡담을 주고받는 동안 서로를 재미있어 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부러운 마음이나 못마땅한 마음일 때도 있다. 남들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사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욕망이 아이들 마음속에서 달궈지는 것을 나는 본다. 우리는 남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무수히 많은 걸 배우는 존재들이니까. 칠판에 글감을 적는 것은 그 무렵이다. 아이들은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간식을 준비한다. 

열세 살 김도현은 이렇게 썼다. “글감이 주어지면 난 먼저 망설인다. 몇 분간 첫 문장을 생각하며 옆에 놓인 간식을 한 입 베어 먹고 뚫어지게 글감을 쳐다본다.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면 빠르게 캐치해야 한다. 스토리를 구상하고 내가 만족을 느낄 것 같으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어쩔 때는 어려운 글감을 만나면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 느낄 것 같아도 일단 써본다. 그러면 다음에 어려운 글감을 또 만나도 전보다 더 잘 써진다.” 빈 원고지를 앞에 둔 외로운 시간에 누군가는 간식의 힘을 빌려 첫 문장을 쓴다. 글쓰기 수업을 간식의 맛으로 기억하는 아이도 있다. 

열네 살 최가영은 이런 문장을 썼다. “글방에 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참 다양한 간식들을 먹으며 참 많은 글을 썼다.” 이렇게 쓰고서 최가영은 어쩐지 먼 곳을 보는 것 같았다. 글쓰기는 글쓴이를 멀리 가게 만들기도 한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나에게로든 남에게로든 말이다. 그리고 간식은 멀리 갈 체력에 보탬이 된다. 열한 살 김지윤은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간식으로 나온 가래떡을 언니들이 손으로 가지고 놀던 광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가래떡을 가지고 놀던 언니인 열다섯 살 오승아가 쓴 인상적인 순간은 또 다르다. “글방에서 누군가가 특이한 소리로 재채기를 해서 선생님을 비롯한 모두가 웃었을 때. 몰래 먹은 야식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생리컵에 대해 말했을 때. 기다란 가래떡을 먹으며 이걸 찍어먹을 간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서로 다른 기분과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 글쓰기란 여전히 귀찮은 일이지만 아이들은 잡담과 간식을 기억하며 다음주에도 늦잠을 포기하고 수업에 온다. 떠들며 먹고 마시다가 명문장이 얼렁뚱땅 탄생되는 날들이었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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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아주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마을에 불이 나면 내 집으로 옮겨 붙을까 봐 불티를 뒤집어써가며 모두 같이 불을 끕니다. 하지만 강 건너편에서 난 불은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니 몸부림치고 아우성치는 화마가 강물에 어룽거리는 대단한 볼거리일 뿐입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난 불이 사람도 날아갈 바람을 타고 불벼락 비화(飛火)로 날아들어 몇 천 명이 대피하고 밤새 불안에 떨었습니다. 다행히 정부의 빠른 대처로, 전국에서 소방차 872대와 소방헬기 51대가 출동하고 군 병력까지 나서서 시뻘겋게 널름거리며 밀려들던 지옥불을 빠른 시간 안에 끌 수 있었습니다. 소방청으로 승격, 일원화돼 가능해진 전국적인 공조와 한 숨 안 자고 12시간 넘게 불길과 싸워주신 수많은 분들의 노고 덕분이지요(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이게 나라냐 했던 때를 생각하면 아, 이게 진짜 나라구나 싶었을 겁니다.

강원도 산불 발생 나흘째인 7일 오전 초록빛이었던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야산이 불에 타 온통 시커멓다. 푸른빛을 잃은 산악의 풍경이 저 멀리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룬다. 연합뉴스

불은 껐다지만 피해가 상당히 큽니다. 저걸 어쩌나 밤새 발 구르며 같이 안타까워하던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물품을 모으고 성금을 보냅니다. 역시나 정 많고 합심 잘하는 의지의 한국인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길이 번져가는 와중에도 이를 빌미로 싫어하는 정당만 꼬집던 사람도 있었고, 긴급회선인 119로 전화해 나 도지사요, 했던 생각 없는 정치인은 조력도 위로도 없이 촛불정부가 아니라 산불정부라 비꼬고, 터전이 불타버려 망연자실하고 있는 곳에 정치홍보용 사진 찍으러 간 이도 있었습니다. 제 일 아니라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은커녕 팔짱 끼고 시시덕댄 이들을, 우리 또한 팔짱 끼고 잘 지켜봅니다. 남의 눈에 불똥 튀게 하다 제 발등에 불 떨어질 날, 꼭 있을 겁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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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몰아친 밤이었다. 바람은 시뻘건 불씨를 사방으로 날랐다. 불은 바람을 타고 ‘도깨비불’처럼 삽시간에 번졌다. 그날 밤은 모두 쉬이 잠들지 못했다. 노모는 대처로 나간 자식의 안부가, 농부는 창고에 쌓아놓은 못자리가 걱정이었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았지만, 손쓸 틈도 없이 들이닥친 화마를 피해 집을 빠져나오느라 도리가 없었다.

강원 일대를 휩쓴 산불이 일어난 밤을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14년 전 ‘양양 산불’이 일어난 날이다. 주민들에게는 양양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져 천년 고찰 낙산사가 한순간에 무너지던 모습이 떠오른 밤이었을 테다. 이번에도 주민들은 큰불에 밤새 마음을 졸였다. 그나마 하루 만에 불길이 잡혔다. 단시간에 최대 규모의 소방력을 투입해 불과의 사투를 벌인 결과였다. 소방당국은 산불 발생 2시간여 만에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덕분에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전국에서 출동한 소방차들이 밝힌 경광등으로 훤했다.

정부의 대응 체계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화재 현장을 찾아 주민을 만났다. 임기를 하루 남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임식을 취소하고 현장을 지키다 진영 후임 장관에게 임무를 인계했다. 화재 다음날 정부는 피해지역인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인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4일 오후 7시17분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되며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이날 불은 원암리의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변압기가 터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길이 속초 시내 쪽으로 번지며 고성·속초지역 콘도 숙박객과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져 긴급 대피하는 등 밤새 큰 혼란이 빚어졌다. 이 불로 오후 11시30분 현재 1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소방청은 재난 대응 최고 수준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의 소방차를 속초지역에 지원토록 조치했다. 연합뉴스

재난을 당한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당장 피해를 줄일 순 없지만, 정부가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말이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부 시스템의 붕괴를 목격했다. 이는 재난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9·11 사태를 겪은 미국인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은 전적으로 국가의 대응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번 산불 진화에도 시민의 힘이 빛을 발했다. 사람들에게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일조했던 건 소셜미디어(SNS)에 시시각각 올라온 현장 사진들이었다. SNS에서는 목줄에 묶인 탓에 불길을 피하지 못해 털이 검게 그을린 강아지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주민은 화재 현황 지도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했고, 펜션을 운영하는 숙박업자는 빈방을 기꺼이 내주었다.

하지만 큰불에 너나없이 마음을 쏟고 있는 동안에도 정치권은 ‘네 탓’ 공방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촛불 좋아하더니 온 나라가 산불, 온 국민은 화병”이라고 썼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왜 이리 불이 많이 나나”라는 글을 올렸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게시글을 삭제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철수 속초시장은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산불 현장을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의 저자 레베카 솔닛은 이러한 상태를 ‘엘리트 패닉’이라 칭한다. 그는 엘리트 집단으로 대표되는 정부와 관료조직은, 재난 앞에서 스스로 혼란 속에 빠져든다고 했다. 그는 “재난은 사회적 요구를 증폭시키고 새로운 집단에 힘을 부여하는 한편, 정부의 조직적·행정적·도덕적 결함을 노출시킴으로써 정치제도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재난에 맞서 새롭게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타주의를 발휘할 때, 정부는 스스로의 권위를 지키고, 무능을 숨기고자 거짓을 말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대형 재난은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는가?’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재난 뒤에는 취약한 사회 시스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인간 본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재난을 모두 예방할 수는 없다.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책을 세울 수 있을 뿐이다. 내년 강원도의 봄날엔 새까만 재가 아닌 벚꽃잎이 날렸으면 한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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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꼬리가 길다. 기역자로 꼬부라지고 마는가 했는데 리을자로 두 번을 더 꺾고서야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태세다. 여기인가 했더니 아니고 이번인가 했는데 또 가라는 천마산의 정상과 같은 구조인가 보다. 우수(雨水) 지나고 곡우(穀雨)가 코앞인데 기다리는 비는 아니 오시고, 공중의 찬 기운은 발톱을 거두지 않는다. 

ⓒ이해복

경북 의성으로 깽깽이풀을 찾으러 간다. 고운사는 그 연혁을 보면 보통 유서 깊은 절이 아니다. “신라 의상조사가 창건하고 고운 최치원이 중건하였다. (…) 송림이 우거진 등운산에 위치한 고운사는 속세에서 저만치 있는 듯한 청정 수행도량으로….” 주차장에서 산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이 범상치 않다. ‘쪼대’를 아시는가. 어린 시절 가지고 논 찰흙을 이르는 말이다. 좌우에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호위하는 길바닥은 그 쪼대 같은 흙으로 다져졌다. 시멘트와 다르고 아스팔트와는 더욱 다른 그 길은 주위의 소리는 흡수하면서 주변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드문드문 수목장의 흔적도 있는 곳에 제비꽃, 양지꽃, 현호색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저만치 피어나는 건 깽깽이풀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의 기세에 눌려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활짝 핀 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며칠 후면 만개할 깽깽이풀이 조금 아쉬워졌다. 풀 대신 절 구경에 나섰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셨다는 곳에 이르니 ‘아거각’ 현판이 눈썹을 때린다. 이웃한 적묵당의 주련은 이해하겠는데 ‘我渠閣’은 도통 문자 바깥이다. 문 없는 ‘아거각’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자니 섬돌 주위로 가랑잎만 바람에 업혀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와 수소문하니 ‘아거각’은 서산대사가 자신의 영정 뒷면에 남긴 게송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 전에는 그대가 나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그대로구나).” 

이름이 조금 사납기는 하지만 깽깽이풀은 황홀한 꽃이다. 고운사 아거각의 ‘我’자는 아래에 그 어디로 통하는 구멍을 뚫어놓은 독특한 글씨다. 꽃과 글씨를 교대로 떠올리면서 늦은 밤 오래 뒤척거렸다. 깽깽이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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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숲이 되었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난지도는 풀과 잡목이 드문드문 자라는 쓰레기 더미였다. 곁을 지나면서 땅속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거나 퍼런 가스 불이 올라오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쓰레기에서 발생한 메탄가스 등에 자연발화한 불이 붙은 것인데, 3일 넘게 타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땅속 불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달 AP통신은 미국 아칸소주의 리틀록 인근 쓰레기 매립지 지하에서 7개월 넘게 불이 타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 정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이 쓰레기 매립장을 태우던 중 지하 20m 깊이에 묻은 산업폐기물에 옮겨붙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5일 동이 트기 전 강원 속초시 콘도 밀집지역 곳곳에서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전날 발생한 대형 산불로 속초 설악한화리조트 내 드라마 <대조영> 세트장이 전소됐고 관광객이 즐겨 찾는 동해안 일대 캠핑장과 한옥촌, 테디베어 박물관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강원일보 제공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땅속 불은 역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광산마을 센트레일리아(Centralia)의 화재일 것이다. 1962년 5월 쓰레기 매립장에서 시작된 불을 57년이 지난 지금껏 끄지 못하고 있다. 최초의 매립장 화재는 진압했지만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기를 거듭하다 지하 90m 아래에 있는 폐광산의 석탄층에 옮겨붙은 뒤로는 속수무책이다. 이 불로 인근 땅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 1979년 마을 주유소 탱크 10m 아래 온도가 537도로 측정되기도 했다. 1981년에는 집 앞에서 놀던 12세 소년이 땅이 갑자기 갈라지면서 생긴 24m 깊이 구덩이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구출됐다. 이후 인구 3000명의 소도시로 성장했던 이 마을은 이후 20년 만에 유령마을로 변했다. 절망적인 것은 앞으로 획기적인 화재 진압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땅속 석탄이 다 타서 없어져야 이 불이 꺼진다는 것이다. 그 기간이 250년이라고 한다. 

강원도 동해안 산불이 꺼졌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잔불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조한 땅속 깊이 숨어 있는 불씨가 강한 바람을 타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송진이 묻은 소나무 뿌리에 불이 붙으면 땅속 불이 닷새까지도 탈 수 있다고 한다. 군이 열영상 장비까지 동원해가며 땅속 열점을 계속 탐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80%에 이르는 봄철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불씨를 잡는 게 중요하다. 땅 위에 보이는 불보다 더 무서운 것이 ‘땅속 불’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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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표적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는 공인일까, 사인(私人)일까. 대통령이 공인이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경호를 받는다고 그 가족도 당연히 공인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신변보호를 받는 증인도 공인으로 봐야 하지만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공인의 범위를 넓히려는 측에서는 그들의 명예나 프라이버시보다는 언론보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무기로 잡다한 사적 영역까지 감시와 검증의 이름으로 들여다보고 간섭하고 싶어 한다. 특히 언론은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공인의 사생활도 취재보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면서 공인의 범위를 넓게 잡는다. 혹시 제기될지도 모르는 명예훼손 소송의 방어막을 치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예인과 프로 스포츠 선수 같은 유명인까지 공인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은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의 파수꾼(watchdog)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야당은 후보자의 내밀한 영역인 병력이나 수술이력까지 들먹이며 공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것처럼 의혹을 터트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지면을 장식했었다. 대중의 관심이나 흥미를 충족시켜야 하는 언론으로서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공인의 범주가 넓어야 좋다. 신랄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통한 여론형성 기능을 수행하려면 숨 쉴 공간이 넉넉해야 편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공간의 너비를 결정하는 공인 개념의 광폭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공인인가. 전통적으로는 사전적 의미를 중시하여 고위 공직자를 공인이라고 불렀다. 저명한 사람도 공인에 포함시켜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공적 인물이라는 용어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공인 개념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이나 마약, 성폭력 범죄 등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으레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하지만 연예인이 무슨 공인이냐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판례에서 사용하는 공적 인물이나 공인이라는 용어는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언어용법 또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연예인이나 뉴스 앵커 같은 유명인도 공인 내지 공적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공적 관심사에 관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 뉴스 가치가 있는 저명성이나 매체의 노출빈도에 근거하여 유명한 인물을 공인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공직자와 같은 공인으로서의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의 사생활 영역을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 인물의 범주를 넓히면 넓힐수록 표현의 자유는 확장되지만 공적 관심사나 유명도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표지 때문에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될 소지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간혹 연예인이나 유명인 대해서는 과도한 언론의 자유가 발휘되지만, 정치적 책임과 공공성이 강조되어야 할 공인에 대해서는 과잉의 명예보호가 되는 역전현상도 나타난다.

공인이란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하고, 도덕적이고 정당한 공적 활동으로 국민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존재다. 이들에 관한 정보는 공공성을 갖춘 것이므로 알권리에 포함되며 언론보도를 통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공인 내지 공적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이나 일반인이 통상 인식하는 것처럼 공공의 관심사 또는 유명도를 기준으로 공적 인물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더라도 그들에 관한 언론보도를 넓게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 단계에서의 범죄혐의 보도도 마찬가지로 공인보다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보도내용이 공적 관심 사안인지,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인지를 준별해야 한다. 공직자인 공인의 경우에도 내밀한 사적 영역이나 비밀영역에 속하는 사항은 보호받아야 한다. 이러한 영역에 속하는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적법하려면 극히 예외적으로 정보공개의 이익이 더 커야 한다. 일반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여야 하고, 그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그 표현 내용·방법 등이 적절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보도의 자유와 알권리가 개인의 인격권과 명예보다 우선시되는 것이다. 방송인, 유명 스포츠 선수, 뉴스앵커 같은 유명인과 연예인은 공직자인 공인과는 다르다. 그래서 제한적인 공적 인물이라는 개념으로 그들의 사적 공간이나 사생활을 공직자보다 더 넓게 보호하려 한다. 언론은 항상 알권리를 주장하지만 국민은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대통령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공직자인 대통령에 의해 공적 인물이 되었으므로 제한적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 설사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경호를 받고 또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공인은 아니므로 개인정보와 사생활은 공직자보다 더 보호받아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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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점들은 모두 도심지 쪽으로, 종각에서 출발하여 남대문에 이르기까지 구부정하게 뻗어 있는 큰 길가에 모여 있는데 (…) 책방 주인이 목판 위에 비스듬히 늘어놓은 책 뒤, 가게 안쪽에 높직이 웅크리고 앉아 (…)’

모리스 쿠랑의 <조선서지학 서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언어학자이자 동양학자이던 모리스 쿠랑은 1890년 프랑스 공사관의 통역 신분으로 내한한 후 조선의 서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후 우리나라 고서에 관한 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서양인이 되었다. 후대의 많은 학자들이 이 서양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나는 서울의 책점은 거의 다 뒤지고 서점의 책은 다 훑어보았으며, 점차적으로 가장 흥미 있어 보이는 것은 사고 그 밖의 것에 관하여는 간명하게 적어두었다.’ 그의 말처럼 얼핏 간명해 보이는 일이나, 사실 그가 서지로 작성한 책은 3821종에 이른다. 조선 서책에 관한 그의 관심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 경제로까지 확장된다. 당연한 일이다.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므로. <독서의 역사>를 쓴 알베르토 망구엘은 ‘오히려 세계,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일종의 책’이고 ‘세상은 책처럼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책 <독서의 역사>는 <파이 이야기>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유명한 작가 얀 마텔이 자국의 총리에게 독서를 권하는 서한문 형식의 책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에 소개되기도 했다. 캐나다의 전임 총리인 스티븐 하퍼가 그 주인공이다. 얀 마텔은 100여차례에 걸쳐 책과 함께 그 책을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한국에서 번역 출판될 때, 그는 책의 서문을 대신해 당시의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도 편지 한 통을 썼다. 역시 독서를 권하는 내용이지만, 어쩐 일인지 자국의 총리를 욕하는 부분이 더 눈에 띈다. ‘그분에 대해서 이것만은 알아두십시오. 스티븐 하퍼 총리는 절대 문학작품을 읽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퍼 총리는 똑똑하지만, 재미는 없는 사람입니다.’

책상 위에 놓여진 펼쳐진 책의 모습 이미지컷 (출처:경향신문DB)

심지어 스티븐 하퍼 전 총리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니 본받지 말라고까지 말한다. 요즘 도서관에 자주 가는데 서가 사이를 거닐다보니 우리나라 대통령의 독서를 소개한 책도 눈에 띈다. 서문에 의하면 대통령이 엄청난 독서가라고 하는데 그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통령이 읽은 다양한 책을 볼 수 있겠다 싶어 흥미로웠다. 그러나 내가 골라 든 책에는 몇 권의 책만 집중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 소설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기준인지, 저자의 기준인지는 모르겠다. 반면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소개한 책들의 목록도 보인다. 역시 국민들의 시선이 다양하고 다채롭다.

다시 모리스 쿠랑의 <조선서지학 서론>으로 돌아가보자. 책을 빌려주는 사람, 즉 세책가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다. 좀 길게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책을 볼 수 있는 곳은 서점에서만이 아니고, 세책가(貰冊家)도 꽤 많이 있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특히 이야기책이나 노래책과 같은 평범한 책들이고, 이것들은 거의 모두가 한국어로 쓰여 있으며, 어떤 것은 인본(印本)이고 또 다른 것은 수사본(手寫本)이다. (…) 주인은 이런 책들을 매우 헐값으로 빌려 주는데, 하루 한 권에 10분의 1, 2푼 정도이다. 흔히 그는 보증금이나 담보물을 요구하는데, 예컨대 현금으로 몇 냥이라거나, 현물로 화로나 냄비 같은 것들이다. 이런 종류의 장사가 옛날엔 서울에 꽤 널리 퍼져 있었으나, 이젠 한결 귀해졌다고 몇몇 한국 사람들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 직업은 벌이는 좋지 않지만, 점잖은 일로 인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난해진 양반들이 기꺼이 택하는 바가 되었다. 책을 빌려간 사람들은 빌려준 책을 잘 돌려주지 않으므로 세책가의 책은 급속히 줄어들어 도서목록을 대신하고 있는 조잡한 일람표와 매우 불완전하게밖에 일치하지 않는데, 내가 그러한 일람표를 믿고 어떤 책을 달라고 하면 번번이 그것은 분실되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인용문을 길게 소개한 것은 책이 귀했던 시절에 그 책을 빌려주고 또 빌려 읽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가와서이기도 하거니와, 그 책들을 역사에 전하기 위해 한권 한권 찾아다녔던 모리스 쿠랑의 마음이 귀해서이다.

오늘날, 책은 귀하지도 않고 오히려 넘쳐나는 듯 보이는데, 그 미래가 마냥 밝은 것 같지만은 않다. 도서관의 서가를 거닐다보면 ‘책의 미래’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도 보이는데, 그 미래라는 말에는 쇠퇴, 혹은 종말이라는 의미까지도 종종 들어 있는 듯하다. 책은 늘어나도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겠다. 곧 책의날이 다가온다. 4월23일이다. 일년 열두 달 무슨 날 아닌 날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념해야 할 날이니 책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길게 소개해 보았다. 

책이 예전같은 대접을 받지 못할지 몰라도, 그 책이 담고 있는 세계는 여전하다. 그 세계를 해석해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여전하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내가 그 세계가 되니,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세계가 깊어지고 은근해지기도 하겠다. 

조선서지학 서론 (모리스쿠랑 저, 정기수 옮김, 탐구당)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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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며칠 남지 않았다. 헌재는 임신 중지를 결정한 여성과 여성의 요청에 의한 의료인의 행위를 형벌로 처벌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리를 침해하는지 판단한다. 판결의 핵심은 ‘낙태’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 불가피하게 임신을 중단한 여성을 국가가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런데 판결을 앞두고 일부 종교계는 ‘낙태죄’ 존치운동을 벌이며 ‘낙태죄’가 없어지면 ‘성 문란’과 ‘무분별한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 주장한다. 도대체 누구의 ‘성 문란’이 문제이며, ‘무분별한 낙태’란 존재하기는 하는가? 재미있는 것은 이런 주장이 1953년 일본의 형법을 본떠 형법에 낙태죄를 만들 때도 나왔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충분한 책임감과 고민과 자신이 처한 사회적 여건들 속에서 임신을 유지할지 중단할지 결정한다. 자신은 물론 태어날 아이의 전 생애에 걸친 존엄한 삶까지를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결정에 이른다. 그런데 누가 감히 이에 대해 ‘무분별’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3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111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 낙태죄 위헌 촉구 1인 시위 100일 맞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무분별하다’는 말의 의미는 ‘사리에 맞게 판단하고 구별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낙태죄’가 없으면 ‘무분별한 낙태’가 늘어난다는 말은, 여성들은 분별력이 없고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열등한 존재여서 부적절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으로 강력히 규제하여 여성들 스스로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는 명백한 여성에 대한 혐오이고 차별이다. 

‘성 문란’은 어떤가? 이 단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성별은 남성인가? 대부분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순결-정조-성 문란’은 여성에게만 연결되는 성별화된 언어다. 많은 여성과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은 문란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선망하는 능력 있는 남성의 표상이다. 남성에게 성은 때론 폭력까지도 용인되는 ‘자유’의 영역일 뿐이다. 최근 확인된 정준영 카톡방 문화가 그 단적인 증거 아닌가? 결국 ‘낙태죄’ 폐지 반대의 핵심은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는 것, 보다 정확히는 여성이 성적 권리의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한 반대이다. 얼마 전 교황이 신부에 의한 수녀 성폭력을 인정했다. 그런데 해결책은 놀랍게도 수녀원 폐쇄였다. 이들이 삼고 있는 통제와 처벌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장면이다.

‘낙태죄’는 여성을 국가 인구조절정책의 도구로 삼고, 국가에 순응하지 않으면 처벌로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의 논의 기록에 있는 사실이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과 능력, 권리를 가진 주체가 아니라 통제하고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 국가를 위해 여성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 ‘낙태죄’의 본질이다. 여성은 더 이상 이등시민이 아니다. 이제 출발부터 차별을 전제했고, 차별을 유지·강화해온 성차별 악법인 ‘낙태죄’는 폐지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에 대한 처벌과 통제가 아니라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삶을 풍성하게 구성하고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선택지를 보장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사라질 때 그 선택지는 훨씬 넓어질 것이다.

2019년의 정의와 인권 규범에 맞게 헌법재판소가 정의로운 판단을 할 것을 믿는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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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낙태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한 춤꾼은 비로소 구비치는 자기춤을 얻나니 … 딱 한발떼기에 일생을 걸어라.” <님을 위한 행진곡>의 원본인 백기완 선생님의 시 ‘묏비나리’ 한 구절이다. 1979년 박정희 사후 전두환에게 끌려 가 서빙고 보안사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후 15년형을 받고 독방에 갇혔을 때, 5·18 학살 소식에 치를 떨며 감옥 천장에 입으로 쓰며 외웠던 시라 하신다. 박정희 때 함께 고문을 받던 장준하 선생께서는 ‘백기완이는 죽이지 마라. 그가 죽으면 우리나라 민족예술의 보고가 사라진다’고 고문관들에게 부탁하시기도 했다 한다.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 등 고운 우리말을 찾아 살려놓은 것도 그였다. 청년시절 그를 쫓아다니며 배웠다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이야기처럼 ‘전승할 사람을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민족민중문화재’였던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늦게나마 지척에서 십수년 뵐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당시 이건 ‘참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말하던 그.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당시 갑자기 밀어닥친 공권력에 맞서 점거한 포클레인 위에서 전깃줄에 매달려 저항하고 있을 때 맨 먼저 달려와 위험한 순간을 막아준 이도 그였다.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고공농성 157일차에 1차 희망버스 운동을 시작할 때 든든한 배후가 되어 준 이도 그와 문정현 신부님이었다. 이후 진행된 현대차 비정규직, 밀양, 거제조선소 비정규직, 부산생탁, 구미스타케미칼, 삼척동양시멘트 등 모든 희망버스의 1호차 차장은 늘 백기완 선생님과 여러 사회원로들이었다. 2012년 쌍용차에서 스물 두 번째 정리해고 희생자가 났을 때 대한문 앞에 사회적 분향소를 설치하며 경찰들과 회오리가 되어 맞붙던 날도 함께 서 계셨던 기억. 작년 10시간에 이르는 심장수술 이후 지금은 쉽지 않지만, 단언컨대 지난 십수년 선생님만큼 작은 자리 어둔 자리 가리지 않고 노동자 민중 연대를 구체적인 몸으로 실천한 사람은 사회운동하는 이들 중에서도 많지 않다. 그는 받듦을 받는 어른이 아니라 이름 없이 싸우는 노동자 민중들에 대한 길거리 섬김을 그 누구보다 앞서 실천해온 동지였다. 

소원이 있다면 끝까지 거리에서 싸우다 쓰러지고 싶다 하신다. 가진 자들을 위한 법은 법원과 국회와 저 높다란 행정부나 청와대 안채나 고상한 분들의 고담준론 속에 품위 있게, 안전하게 있을지 모르지만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법은 거리와 광장에서 피 터지는 ‘즉자적인’ 한숨과 절규와 아우성 속에 있음을 일찍이 간파하셔서일까. 모든 생명들의 온전한 권리와 존엄을 빼앗고 짓밟는 반생명의 무리들을 “깨트리지 않으면/ 깨져야 하는 (무산자들의) 철학”(시, ‘나의 철학’ 중에서). “야 기완아! 이웃들도 다 어려운데 네 배지만 부르고 네 등만 따스하고자 하면 키가 안 커. 몸뚱어리 키도 안 크지만 마음의 키도 안 큰단 말이야” 하던 가난한 어머니에게 배웠다는 사상. 민중들이 입으로 구전해 왔다는 그 민중사상의 원형.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 그 민중사상이 어떤 것인지를 남겨놓고 가시겠다고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몰래몰래 목숨을 걸고’ 쓰신 ‘버선발 이야기’ 끝장을 덮으며 숙연해진다. 그런 맨발의 시민 민중들이 일궈낸 지난 촛불항쟁의 결실이 함부로 버려지는 오늘. 우리가 다시 ‘버선발’이 돼 걸어야 할 거리와 광장의 역사와 정신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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