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 꼭 100년 전인 1919년 2월8일 일본의 한인 유학생들이 발표한 ‘2·8독립선언’의 선언서 첫 문장이다. 청년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일제의 수도 한복판에서 ‘우리 겨레의 정당한 요구에 일본이 불응한다면 영원한 혈전(血戰)’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아가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새 국가를 건설’하고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겨레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할 것이라고 밝혔다.

2·8독립선언은 ‘3·1독립선언’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앞서 만주·러시아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중국 땅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의 뜻을 계승한 것이자 향후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최팔용·송계백 등은 일제 경찰의 ‘요시찰 인물’이었음에도 당시 ‘3대 독립선언’의 하나인 2·8독립선언을 결행했다. 그만큼 독립과 새 나라 건설의 뜻이 굳건했다는 의미다.

독립운동 의지들이 뜨겁게 모아지면서 1919년에는 중국, 일본, 서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독립선언이 잇달았다. 일련의 선언은 자주독립국가를 향한 민중들의 의지를 더 다지게 했고, 국제사회에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드러내는 거사였다. 그 토대 위에서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2·8독립선언을 포함해 100년 전 잇단 선언들은 형식이나 내용, 발표 장소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두에 공통적으로 담긴, 일관된 고갱이가 있다. 일제에 맞서 자주독립국가를 만들고, 그 나라는 정의와 자유·평등·평화의 가치가 우선되며, 세계 평화와 인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임시헌장 제1조의 ‘민주공화제’로 집약됐다. 물론 100년 전 그들이 간절하게 이루고자 한 그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된 것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민족공동체였다.

오늘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행사가 서울은 물론 도쿄에서도 마련된다. 다른 독립선언들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관련 기념행사들이 많이 예정돼 있다. 이런 행사가 그저 100돌을 기념하는 형식적 행위에 그쳐선 안된다. 지금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100년 전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라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들의 바람, 피와 땀과 눈물에 응답을 하는 일이어야 한다.

100주년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협력이 요구된다. 독립운동은 남북한이 따로일 수 없다.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어느새 남북은 역사관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남북의 역사관 차이는 예상만큼 크지 않다. 경향신문이 연재 중인 기획시리즈 ‘다 같이 만들어온 세상-다·만·세 100년’에서 처음 공개한 남북 첫 공동역사서 <남북 역사용어 공동연구>(전3권)만 봐도 그렇다. 남북 학자들이 선사시대부터 3·1운동까지의 주요 역사용어를 편찬한 <남북 역사용어 공동연구>를 보면, 독립운동 관련 사건이나 인물 평가가 표현 용어는 다르지만 관점은 비슷하다. 남측의 ‘3·1운동’을 북측은 ‘3·1인민봉기’로 표현하지만 3·1운동의 의미와 중요성은 함께 인식한다. 남쪽에선 안중근을 ‘의사’로 북쪽에선 ‘애국렬사’로 부르지만 그 정신은 모두 높이 평가한다. 유관순이나 신채호·안창호·홍범도 같은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 관련 사건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의 피가 스며든 유적지들은 남북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땅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달 독립운동의 상징인 3·1운동 100주년 행사는 남북 공동으로 치러야 한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것이기도 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면서 공동행사에 대한 남북의 관심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행사를 함께 치러내는 일이야말로 남북 동질성의 한 자락을 회복하는 것이자 독립운동가들에게 남북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응답이다.

또 중국 땅에 묻혀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다시 공동발굴하는 것도 좋다. 분단으로 갈라진 남북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함께 넘나들며 탐방하고, 나아가 세계의 유적지 공동탐방으로 이어진다면 그 의미는 더 커진다. 독립운동사 공동연구 등도 해볼 만하다.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남북 평화정착을 향한 행보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서다. 당연히 대내외적 난관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100년 전 그들이 만들려고 한 민족공동체의 토대를 하나 더 쌓아야 하지 않을까.

<도재기 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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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괴물이 탄생하고, 수단과 방법이 절대화되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정당한 수단이 아닌 반칙이 절대화되면 목적을 상실한 괴물들의 세상이 오게 된다.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려면 목적과 이상이 바르고 뚜렷해야 하고, 절차와 규범과 윤리와 법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는 괴물과 그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그 청산의 과정은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정당한 수단과 방법, 그리고 바른 목적을 향하여 청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을 잡기 위해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한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은 반칙과 특권을 혐오하는 지도층과 자기 성찰이 이루어지는 강고한 지지층이 나와야 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정치의 세계에서는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정치괴물이 탄생한다. 선거법을 위반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죄 없는 사람 잡아다 고문하고, 정적을 인격살인하고, 물리적·정신적으로 반대세력을 협박하면서 권력을 잡으면 괴물정권과 괴물세력이 탄생한다. 우리는 과거에 그 괴물을 보아왔다.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왜 권력을 잡으려 했는지, 그 목적을 잊어버리면서 나라는 쉽게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라가 독재나 파시즘으로 가거나, 경제위기와 거리의 투쟁이 반복되는 혼란스러운 세상이 오게 된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괴물이 먼저인 세상이다.

정책의 세계에서는 특정 세력의 부와 권력을 위하여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을 도외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면 막대한 세금의 낭비와 함께 괴물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불투명한 과정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이며 의무일진대, 비판세력을 반정부세력 혹은 사상범으로 몰고 인격살인까지 하면서 괴물정책을 관철하면 나라는 망가지고, 국가의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불필요한 국력이 낭비되고, 국가는 일반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괴물의 나라가 되어간다. 4대강사업의 교훈이 아직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경제의 세계에서는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경제괴물이 탄생한다. 불법·탈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막대한 재산이 경제수단이 아니라 권력수단이 되는 순간 선출되지 않은 경제권력이 4년, 5년마다 바뀌는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경제괴물로 바뀐다. 이들은 법을 어겨도 죄를 면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을 만들고, 법과 규칙과 윤리를 수호해야 하는 공복과 지도층을 돈의 유혹과 명예의 유혹으로 타락시킨다. 국가는 금권정치와 특권세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민중은 부글부글 끓는다.

이렇게 탄생한 괴물과 혼탁한 사회적 분위기는 사회의 기본을 앞장서서 지켜나가야 할 지식인 세계에서도 괴물을 탄생시킨다. 연구윤리를 어기고, 데이터를 조작하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쌓는 학자들이 나오고, 자신의 연구를 연구 그 자체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음모론과 지지층의 협박과 대중영합으로 방어하는 괴물이 생겨난다. 이제는 기억이 아련해졌지만 한때 나라를 뒤집어 놓은 황우석 사태가 전형적인 예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연구가 학계의 괴물을 탄생시켰으며, 진영싸움을 하는 학계와 언론, 정치가 학문의 발전을 막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대학은 연구와 교육의 장이 아닌 정치판이 되고, 학생과 부모는 공부와 자기개발의 목적을 상실하여 스카이캐슬을 만들고, 언론은 자극적이거나 정파적이 되어 본연의 비판기능을 상실하고, 문화는 천박해지고, 먹거리는 불량해지며, 인간관계는 타도대상 간의 관계이거나 같이 음모를 짜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 추락한다.

이러한 사회의 여론은 법과 윤리를 지키는 비판적 여론이 아니라 누구 편이 이기는가에 몰입하고,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은 인격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여론이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적폐이고, 이를 청산하는 것이 적폐청산이다. 괴물을 잡기 위하여 괴물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괴물의 세상이 온다. 우리 사회는 괴물이 되지 않아도 괴물을 잡을 수 있는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게 순진한 기대라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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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연휴에는 예년에 비해 교통사고, 화재 등 안전사고가 크게 감소했다. 예컨대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우리는 연휴가 끝나자마자 한 응급의료인의 의로운 죽음을 접해야 했다. 설 전날인 지난 4일 저녁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병원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누적된 피로가 죽음을 부른 것이다. 윤 센터장의 명복을 빈다.

윤 센터장이 어떤 의료인이었는지는 순직 당시의 모습이 말해준다. 그는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로 숨졌다. 책상에는 응급의료 관련 서류가 쌓여있었고, 사무실 한쪽에는 남루한 간이침대가 있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국내 응급의료 인력과 시설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다. 이곳 책임자인 윤 센터장이 설 연휴에 퇴근도 못한 채 전국의 병원 응급실과 권역의료센터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족들이 설날 귀성을 약속한 윤 센터장과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숨진 그를 발견했다고 한다. 안타까우면서도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죽음이다.

윤 센터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자원한 이후 25년간 응급의료의 외길을 걸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맡고 난 뒤에는 응급의료기관평가 사업, 응급의료 전용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해왔다. 그는 평소 “부실한 의료체계 때문에 환자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 버려진다”며 질타했다고 한다. 자동심장충격기를 ‘심쿵이’라고 부르며 누구나 친근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윤 센터장은 이국종 아주대 교수와 함께 국내 응급의료계의 양대 버팀목이었다. 이 교수는 저서 <골든아워>에서 윤 센터장을 응급의료체계만 생각하는 의사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말 정신질환자를 돌보던 임세원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데 이어 응급의료에 헌신한 의료인이 또다시 세상을 떴다. 환자만을 생각하다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한 의료인들의 잇단 순직은 척박한 의료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윤 센터장은 생전에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응급환자를 위해 의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응급의료시스템을 완성해 경각을 다투는 환자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그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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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자기 부족에 충실하고, 어떤 부족에 속하는지 따지는 게 중요합니다. 한 부족끼리는 편의도 봐주고 서로 끌어줍니다. 계약도 쉽고 돈거래도 수월해집니다. 서로 참견과 잔소리도 주고받죠. 내부 위계질서도 중요합니다. 나이, 지위 등 권위가 귀할 수밖에요.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간 큰일입니다. 모난 놈이 되죠. ‘사회성’도 없는 놈이 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조심조심,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길들였습니다. 개인으로 온전히 서기가 불안하고 그렇게 서 있는 개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은 그 부작용일 겁니다. 게다가 판단마저 흐려지기 쉽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주장을 교환하기보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게 익숙하니까요. 우리 부족인지 저쪽인지, 우리 부족이면 내 밑인지 위인지 가늠합니다. 그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마저 달라지기도 하죠.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미국 뉴욕에서 공무 연수 중 일행과 스트립바를 방문,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스트립바에 가서 옷 벗은 무희 춤을 즐겼다는 제보가 있었죠. 최 의원은 술집에 갔지만, 계산은 사비로 했다고 맞받았습니다. 공무 수행과 사적 행위의 구분은 따져볼 만합니다. 세금으로 묵은 호텔에서 사비로 술 마시는 것은 괜찮은가? 그렇다면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가? 미국과 한국의 술 문화 비교도 해볼 만합니다. 노래방 도우미랑 어깨동무하는 것과 옷 벗은 무희를 쳐다보기만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 노동의 소비는 정당한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정당한가? 하지만 치열하고 건전한 토론 대신 논의는 부족 따지기로 전락했습니다. 최 의원은 제보자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저쪽 부족이니 믿을 말이 아니라고 말이죠.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관여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까지 됐습니다.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는 1995년에 만들어진 뒤 단일 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적이 없어서 충격을 줬죠. 하지만 이 판결은 놀라운 기술 변화에 따른 우리 사회, 그리고 민주체제에 대한 숙제 또한 주었습니다. 누구나 위키피디아, 유튜브 등에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오늘, 이 법을 어떻게, 얼마만큼 적용해야 하나? 댓글 위력이 얼마나 큰가? 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인터넷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당장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죠. 하지만 김 지사와 지지자들은 판사가 속해있다고 추측되는 부족을 도마에 올렸습니다.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심의관을 지냈으며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경력을 지적했죠. 저쪽의 판단이니 객관적일 수 없다며 말이죠.

저쪽의 보복이라는 주장은 여러모로 비생산적입니다. 첫째, 이미 지적한 대로 생산적 논쟁의 기회를 앗아갑니다. 둘째, 주장의 진위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동기를 알아야 판단할 수 있지만 마음속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죠. 그러니 논쟁은 보복이다, 아니다 사이를 맴돌기만 합니다. 자기들 분노 게이지를 한껏 높이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뿐이죠. 문제 해결은커녕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셋째, 치열한 논쟁 대신 부족의 깃발만 가리다 보면 스스로도 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어느 부족에 속하는지 가리기는 쉽습니다. 증거를 살피고 주장을 가다듬는 게 어렵죠. 쉬운 해결책만 좇다 보면 지성은 마비되고 정체성마저도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한인이 많이 사는 미국 버지니아는 정치 추문으로 요즘 시끄럽습니다. 주지사 노덤의 대학 졸업앨범에서 백인테러집단인 KKK 복장을 한 사람과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이들 중 하나가 노덤 주지사라는 의혹과 함께요. 분노가 폭발했고 사임 요구가 거셉니다. 민주당 진영에서도 말이죠. 인종 갈등 극복은 민주당의 주요 과제이고, 그런 만큼 좌시할 수 없죠. 보수 쪽 정치 공세로 볼 만한 정황증거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들먹이는 대신 대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혹을 제기했건, 그 동기가 무엇이건 민주당 정체성을 위협할 사태임을 직감한 탓이죠.

우리 편 잘못에 적극적으로 침묵하는 부족 마인드는 솔직한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회 발전에 큰 관심 없어. 우리는 이 정도로 퇴화한 부족이야. 우리는 그 정도 잘못은 잘못으로 보지 않아. 고백을 들었으니 선택을 해야겠죠. 부족 멤버십에 흡족하며 같이 퇴화할 것인가. 성찰하며 앞으로 나갈 것인가.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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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공원에 갔다. 서울과 구리에 걸쳐 있는 망우리묘지가 공원으로 탈바꿈한 지는 꽤 됐다. 서울시와 내셔널트러스트 등이 역사인물을 발굴하고 인문학 길을 조성해 명소로 만들었다. 이제 망우산은 공동묘지가 아닌 나무가 울창한 생태 공원이다. 설 전날, 망우리묘지 인물 발굴기 <그와 나 사이를 걷다>(김영식 지음)를 길잡이 삼아 집을 나섰다. 망우리공원에 묻힌 유명인사는 시인 김상용·박인환, 소설가 계용묵·최서해, 화가 이중섭·이인성, 가수 차중락, 독립지사 한용운·오세창 등 50명이 넘는다. 70여만평의 공원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다 만나려면 족히 하루는 잡아야 한다. 이날은 독립운동가로 한정했다.

망우리공원 초입의 역사인물전시장에서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가면 ‘망우리 사잇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15분쯤 오르면 능선에서 도산 안창호의 묘지 터를 만난다. 도산은 독립운동의 밑그림을 그린 임시정부 지도자였다. 살아서 해방을 맞이했다면, 초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큰 인물이다. 1938년 숨진 도산의 유언은 소박했다. 먼저 간 제자 유상규 옆에 묻어달라는 그의 말을 따라 망우리에 묻었다. 그러나 유언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강남에 도산공원이 조성되면서 그곳으로 이장됐다. 유상규의 묘지는 여전히 버티고 있다. 경성의전을 졸업한 의사였던 그는 도산의 비서로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다. 도산 묘터 옆에는 흥사단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이영학의 묘소, 도산의 사위로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김봉성의 묘터가 있다. 강북의 ‘작은 도산공원’으로 불러도 좋겠다.

유상규 묘소 아래 아스팔트 산책로를 따라가면 소파 방정환 묘소가 있다. 방정환은 아동문학가, 교육자, 출판인 등으로 살다가 31세에 요절했다. 3·1운동 때 ‘조선독립신문’을 배포하다 체포됐고 뒤에는 청소년 계몽운동에 앞장선 독립지사였다. 묘소는 망우리에서 가장 아름답다. 자연석의 질감을 살려 쓴 ‘동심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과 ‘동무들이’라고 적은 글씨가 정감이 있다. 이곳에서 50m 남짓에 묘소가 있는 위창 오세창과 호암 문일평은 서화와 역사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독립지사들이다. 오세창은 3·1운동에 천도교 대표로 참여했고, 문일평은 상해 비밀결사에서 활동하고 3·1운동 때 독립청원서를 낭독하며 시위를 벌였다. 문화예술인답게 두 애국지사의 비석과 비문은 조형성이 뛰어나다.

망우리공원에는 이들 이외에 한용운, 오기만, 서광조, 서동일, 오재영 등 9명의 독립운동가가 묻혀 있다. 이 가운데 독립지사로 대한민국장을 받은 만해 한용운의 묘는 최고의 훈격에 걸맞게 일찍 조명을 받았다. 구리시를 굽어보는 산 언덕에 자리한 만해의 묘는 망우리 독립지사들의 묘지를 거느리는 듯하다. 만해의 묘는 2012년 망우리공원에서 유일하게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5년 뒤 나머지 8명의 독립지사 묘들도 가세했다. 묘지가 집단으로 문화재가 된 사례는 드물다. 망우리에 묻힌 죽산 조봉암과 박희도의 사연은 안타깝다. 조봉암은 일제 때 항일운동으로 8년을 복역했으며 해방 후에는 진보당 창당을 벌이며 주도하다 사형당했다. 박희도는 3·1운동 기독교대표로 참여해 2년간 투옥됐으며 이후 필화사건으로 2년을 더 복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애국지사 서훈을 받지 못했다. 조봉암은 일제에 국방헌금을 낸 사실이 발목을 잡았으며, 박희도는 친일 행위로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9월 망우리공원 이태원합장비 옆에 유관순 열사 분묘합장 표지비가 들어섰다. 1920년 10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이태원공동묘지에 매장됐다. 그러나 1935년 이태원묘지가 개발되면서 지금껏 행방불명 상태다. 일제는 이태원의 무연고 묘 2만8000기의 유해를 화장한 뒤 신설된 망우리묘지에 합장하고 위령비를 세웠다. 망우리의 이태원합장묘에 유 열사의 유해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학문적·과학적 확인도 없이 표지비를 세워 사실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망우리공원에는 3·1운동 종교계 대표뿐 아니라 훗날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들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람은 이들뿐이 아니다. 3·1운동이 평가받는 것은 지역·계층을 초월한 민중운동이기 때문이다. 당시 운동에 참여한 백성은 200만명이 넘는다. 이들 중에는 망우리에 묻힌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망우리공원이 현충원·효창원 등 애국지사 묘역과 다른 점은 유명인사와 무명인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공동의 묘지이자 시민의 공원이라는 점이다. 오는 3·1절에는 망우리공원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행사가 마련됐으면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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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오랜만에 사람 소리가 담을 넘는 집집들. 영화 <정무문>에서 이소룡이 한 놈씩 덤비면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격파(?)해가는 것처럼, 첫째부터 막내까지 우르르 몰려온 ‘가족 난리’를 잘 치러냈다. 대개 할아버지들은 손주 사랑이 각별한데, 늘 그렇듯 두 번 고맙다. 한 번은 와주니 고맙고 두 번은 가주니 고맙다.

배며 사과며 통조림, 식용유까지 오랜만에 선물세트로 살림이 늘었겠다. 나는 그런 걸 사올 은인도 없고, 그냥 친구들이랑 떡국이나 쑤어 먹었다. 명절을 대가족과 보낸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피차 고달플 것 같아서 나부터 혼자 잠수를 타고는 했었다.

옛사람들은 세 가지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첫째는 조상 자랑이다. 조상님을 존경하는 것이야 아름다운 미덕이나 그걸 자랑 삼는 순간 조상님 얼굴에 먹칠이 들어간다. 예수를 자랑해야 할 교회가 배후를 알 수 없는 선교사들과 목사를 자랑한다. 오늘날 개신교의 초대박 붕괴 원인이 이게 아닐까. 둘째는 자식 자랑이다. 자식은 잘되어도 고민, 못 되어도 애물단지다. 두고 봐라. 자식 잘된 집치고 행복한지. 자식은 무덤에 누울 때까지 잠재울 수 없는 시련의 파도와 같다. 셋째는 재물 자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이가 가진 재산을 자랑하는 인간이렷다. 사돈네 팔촌까지 벌떼처럼 손 벌리고 몰려올 것이다. 방송에서 집 자랑 돈 자랑 하는 치들을 보면 어리석기가 짝이 없다. 사람들은 그때 환호하는 듯싶으나 쫄딱 망해버리기를 또 바라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자랑해야겠다. 첫째는 눈물이다.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이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비칠 수 있는 사람은 친구로 삼아도 후회 없다. 당신과 헤어지면 눈물을 흘릴 사람이겠기에…. 둘째는 미소다. 미소가 예쁜 사람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는다. 항상 은인이 생긴다. 맑은 미소를 가진 사람은 또한 진실하다. 셋째는 친구다. 여럿이 말고 단 한 명의 친구. 둘도 필요 없다. 그런데 이걸 막상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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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필자는 지난 1월 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의 연차총회, 일명 다보스포럼에 다녀왔다. 다보스포럼 직전에 발표된 올해 전 세계 위협요인들에는 예년과 유사하게 기후변화, 자연재해, 데이터 사기, 사이버 공격 등이 포함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가능성은 낮지만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감염질환의 전파가 거론되었다. 필자가 토론자로 참여했던 여러 세션 중에는 ‘질병X(disease X)’가 있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정의한 질병X는 현재는 사람에게 감염이 안되거나 거의 안되는 질병 요인인데 만약 이들이 변이를 일으켜 사람을 감염시키게 되면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서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질병을 말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지구상 인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억명을 감염시키고 적어도 5000만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스페인 독감은 우리가 예방이나 치료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감염질환이 발생해 전파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2015년 메르스(MERS) 사태를 겪은 한국으로서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 당시 메르스에 180여명이 감염되어 38명이 사망에 이르렀고, 1만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격리되었다. 그보다 12년 전인 2003년에 있었던 사스(SARS) 사태도 기억할 것이다. 8000여명을 감염시켰고 774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여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 외에도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최근에는 감염빈도가 높아진 에볼라 바이러스는 전파가 그나마 느려 다행이지만 감염 시 치명적이고, 몇 년 전 임산부 등 우리를 걱정시킨 지카 바이러스도 계속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감염질환의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전파도 점점 더 넓게 빨라지고 있다. 질병X 세션에서는 이들 감염원의 전파가 최근 왜 더 빠르고 넓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세 가지 원인을 도출해 토론했다. 첫째는 지구촌이 여행, 무역 등 모든 면에서 연결이 너무 잘되어 있고, 둘째는 옛날에 비해 도시를 중심으로 고밀도로 모여 살아서 전파가 잘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기후변화에 의해 모기와 같은 바이러스 매개체의 활동영역이 높아진 것과 지카 바이러스나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무분별한 벌목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여행이나 무역을 줄일 수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도시생활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드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기후변화 문제는 많은 나라가 공감은 하고 대응은 하고자 하지만 빠른 시간에 되지도 않고 뭐 한 가지 만만한 것이 없다. 현재로서는 위생 및 청결상태 유지에 의한 바이러스 감염 확률 저감, 백신 개발과 접종에 의한 예방 강화, 발생 시 전파 최소화, 항바이러스제 등을 이용한 감염자의 신속한 치료가 해답이다.

우선 백신의 경우를 보자.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 우선순위 질병들(priority diseases)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이들에 대한 대비와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2018년에는 이 리스트에 질병X도 추가했다. 예방에 가장 중요한 바이러스 백신의 경우 보통 개발에 5~10년이 걸리는데, 우선순위 질병 도입 후 에볼라 백신의 경우 1년 만에 개발하게 되었다. 또한 전 세계 공동대응체인 전염병 준비혁신 연합체(CEPI)도 발족해 앞으로 백신 개발 등에서 좀 더 효과적이고 빠른 대응이 기대된다.

백신의 접종 또한 매우 중요하다. 감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모든 바이러스에 대해 백신을 맞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만 반드시 맞아야 할 예방백신을 맞지 않는 경우 일어나는 위기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다. 영·유아에게 특히 위험한 홍역은 홍역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데 전염력이 매우 높다. 우리는 생후 12~15개월, 만 4~6세에 한 번씩 두 번 백신접종을 해서 예방해 왔다. 하지만 여행 등을 통해 일부 동남아, 유럽 국가에서 감염되어 귀국하는 사례들이 종종 보고되어 왔다. 올해 들어서는 공중보건 여건이 우수하다고 알려진 일본과 미국에서 수십명의 홍역 발생이 보고되었고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 워싱턴주는 비상사태를 선포 중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 환자의 대다수가 홍역 백신접종을 하지 않아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방백신을 맞지 않아 홍역 등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본인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해를 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가에서 정한 혹은 권장하는 백신접종은 반드시 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도 적극 활용해 전파와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구글은 독감의 발병을 예측하는 독감트렌드(flu trends)라는 서비스를 했다. 이는 구글의 강력한 검색기능을 이용해 사람들이 독감에 걸렸을 때 주로 검색하는 약 40가지 단어들을 기반으로 예측하는 기술인데, 자체의 정확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보완적인 용도 정도로의 사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KT에서 주창한 글로벌 감염병 확산 방지 프로젝트도 있다. 휴대폰 위치정보를 통해 감염국가를 한번이라도 거친 사람은 질병관리본부 등에 통보함으로써 감염병에 대한 대응을 철저히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빅데이터를 이용한 보다 정교한 대응시스템의 개발도 기대된다.

우리는 이미 알려진 바이러스뿐 아니라 질병X에 해당하는 바이러스들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과학, 공학 및 의학기술의 융합을 통한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의 빠른 개발, 개인 위생과 생활환경의 청결, 권장된 백신의 접종, 정보통신기술 등을 활용한 관리와 확산 방지 등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야 점점 더 위협적인 바이러스 감염질환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개개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본인을 위해서라도 감염이 되지 않도록 평소 주의를 기울이고, 감기나 독감에 걸렸을 때 기침 예절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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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돼지고기 사랑’ 운운할 에피소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주 접할 수 있고, 게다가 상대적으로 싼 식료를 결국 사랑하게 되긴 하겠지요.”

설까지 지났다. 제대로 기해년(己亥年)이다. 12지의 동물로 치면 돼지의 해다. 그래서인가, 돼지와 돼지고기에 관해 묻는 전화며 이메일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사랑한다’를 똑 떨어진 명제로 삼는 분들을 겪다가 굳이 위와 같은 답변까지 따로 준비하게 되었다.

인류는 자원을 다음 대에 전수하며 사랑과 기호와 상징을 한 자원에 부여하게 마련이다. 묻는 분께 어깃장 놓기가 아니다. 성심껏 답하느라 앞뒤가 바뀐 소리에 굳이 토를 달고, 내가 할 수 있는 답을 하려는 뜻이다. ‘황금돼지의 해’까지 운운하면 더욱 난감하다.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 오행(五行)의 토에 엮인 것은 10간 가운데 ‘무(戊)’와 ‘기(己)’이고 그 상징색은 황색이다. 금에 엮인 것은 10간 가운데 ‘경(庚)’과 ‘신(申)’이고 그 상징색은 백색이다. 신해년(辛亥年)이 돌아오면 ‘백금돼지의 해’라 하든지, 외국어 쓰기들 좋아하니 플래티넘(Platinum) 가져다가 말을 만들든지, 암만해도 기해년은 황토색, ‘누렁돼지의 해’가 아닌가 싶어 이 글 쓰는 내내 갸웃거리는 중이다.

‘한국인의 사랑’에 이어 ‘황금돼지’에도 어깃장을 놓고 나면 중국 사람 진수(陳壽, 233~297)가 쓴 <삼국지(三國志)>까지 찾아 사전 질문지를 만든 분은  울상이 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제주도에서 돼지를 많이 키운 기록이 있다면서요?”

있긴 있다. 그때에는 제주라고 하지 않고,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큰 섬’이라 했으며, 거기 ‘주호(州胡)’라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들이 “소와 돼지를 잘 기른다[好養牛及猪]”라고 했다. 제주 목축, 목장의 역사는 방목지가 넉넉한 조건과 뗄 수 없다. 몸집이 큰 소도 한때 방목해 키웠을 수 있다. 풀 뜯어 먹게 방목할 수 있는 조건이 ‘잘 기르기’의 조건이기도 하다. 돼지는 어떨까. 3세기 양돈의 실제, 모른다. 저때에도 제주의 주호는 배를 타고 한반도를 오가며 장사를 했다는데, 멧돼지를 생포해 일정 규모의 방목지에서 순치했다가, 시세 좋을 때 뭍으로 싣고 가 팔았는지 모른다. ‘잘 기른다’는 그쯤을 견문한 결과일 수 있다. 그 한마디에는 양돈의 자연 조건, 사회 조건, 기술과 종의 문제 등에 대한 세목은 담기지 않았다. 한편 제주 사람들이 20세기 이후 동물성 단백질을 얻기 위한 가축으로 돼지에 집중해 독특한 돼지고기 음식 문화를 이루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시기는, 안타깝게도 제주 고유종 돼지가 사라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질문자가 순대까지 들고나오면 다시 말을 보탤 수밖에 없다. 지구상 어느 민족도 살코기만 먹은 적 없다. 어느 민족에게도 선지와 창자는 알뜰살뜰 먹을 만한 귀중하고 맛난 식료다. 선지의 양분과 풍미, 그리고 창자의 기름기와 물성과 질감을 결합한 음식은 지구 곳곳에서 먹어온 바다. 서울 종로통에서 보이는 아바이순대나 전주 남부시장 피순대와 구분하기 어려운 소시지도 세계 곳곳에 있다. 영어권의 블랙푸딩, 블러드소시지, 프랑스의 부댕, 중국의 쉐창 등이 좋은 예다. 선지빛깔 아롱진 순대의 기획은 지구 공통이다.

관련한 어깃장 가운데 최악은 아마 ‘추억의 돼지고기 음식’에 대한 답이었을 테지. 개업 60년을 뽐내는 서울 시내 한 돼지고기 음식점에서였다.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다. 육고기와 내장을 다루는 집에서, 식료는 길가에 방치된 채였다. 직사광선 아래, 가로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였다. 채소를 쌓아 올린 붉은 고무통과 음식물쓰레기통이 나란했다. 60년 업력으로 이미 건물을 몇 채나 샀다는 이른바 노포였다. 나는 답했다. 여기 사랑이나 추억을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결별할 것과는 결별하고 새로이 사랑과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새해에 이토록 야박한 순간을 지어냈음을 굳이 고백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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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노동자의 장례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설비점검 도중 숨진 지 58일 만인 7일부터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유가족과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가 요구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공식사과 등을 정부와 여당, 사측이 수용한 결과다.

김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사실상 방치했던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도 28년 만에 이끌어냈다. 내년 1월 시행될 김용균법은 수은·납·카드뮴 등을 사용하는 작업과 유해물질의 제조·사용 등 위험·유해성 높은 작업의 사내도급이나 하도급을 금지하고, 안전·보건 조치 위반에 따른 산업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故김용균씨의 빈소가 마련돼있다. 故김용균씨의 장례식은 7일부터 9일까지 3일장으로 치뤄진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그러나 법 통과에도 불구하고 김씨 빈소를 태안에서 서울로 옮기고, 집회와 단식농성을 통해 ‘도급범위 현실화’ ‘진상규명 및 처벌강화’ 등을 호소해 왔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호소를 받아들여 ‘진상규명위원회의 운영’ ‘공공기관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정규직 전환’ ‘사과문 발표’ 등 후속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대책에도 불구, 아쉬움은 많다. 당정이 내놓은 안을 보면, 김용균씨가 하던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업무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는 ‘핀셋 대책’에 머물렀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규직 전환도 발전소 직접고용이 아닌 5개 발전사의 통합자회사나 한전산업개발을 공기업화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한다. 이는 원청의 의무를 하청에 떠넘기는 위험의 또 다른 외주화와 다를 바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구조적 원인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진상규명위가 오는 6월 말까지 가동된다는 점이다. 김용균법 국회 처리 과정에서 빠졌던 350만명에 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도급 금지업종 확대와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보장할 사용자 벌칙규정 도입, 부당노동행위에 대항할 하청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 활동 보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생명·안전 업무기준의 수립·이행 등을 이제라도 살펴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한 해 수만명에 달하는 산업재해 피해 책임만 하청에서 원청으로 바뀔 뿐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고 김용균씨가 남긴 과제도 영원히 풀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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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동안 100년 전쯤의 역사를 더듬었다. 우리 근대사는 들어갈수록 어둡고 습했다. 더욱이 ‘3·1독립선언’ 부근은 쉽게 지나갈 수 없었다. 숱한 죽음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의 어떤 진혼가로도 잠들게 할 수 없는 죽음들.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의 표현대로 3·1만세시위는 ‘충(忠)과 신(信)을 갑옷으로 삼고, 붉은 피를 포화로 대신한 창세기 이래 미증유의 맨손혁명’이었다. 지도자도 없고 주도세력도 없었다. 모두 ‘대한 독립 만세’만을 외쳤다. 망국의 땅에서 백성들이 서원한 ‘육자진언(六字眞言)’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부르는 주문이기도 했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취조를 받던 양한묵(梁漢默) 민족대표가 급사했다. 아들은 고문으로 숨진 아버지 시신을 받아 인력거에 실었다. 눈물을 뿌리며 집으로 가던 아들은 종로 네거리에서 인력거를 세웠다. 그리고 홀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아버지가 왜 죽었느냐고 소리치던 아들도 결국 맞아죽었다.   

전라도 남원에서는 수만명이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흰옷이 물결을 이뤄 삼십리에 뻗쳤다. 왜경의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흰옷이 붉게 물들었다. 방(房)씨 성을 가진 사내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비보를 접한 아내가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갔다. 왜병에게 붙잡힌 아내는 칼을 물고 자결했다.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노모 또한 하늘을 원망하며 목숨을 끊었다.  

“하느님이시여, 이 지경이 되도록 어찌 가만 계십니까.”

평안도 철산에서 만세를 부르던 열네 살 소년이 총상을 입었다. 소년은 홀어미의 외아들이었다. 어머니 품 안에서 숨을 거두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 가슴속의 피가 불덩이가 될 것이니 저들의 섬나라를 불태우겠습니다.”

온 마을과 산하가 피로 물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이름을 남긴 사람은 그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못했)다. 유일하게 박은식만이 바람이 전하는 소식을 모았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그야말로 피에 젖은 혈사(血史)이다. 늙은 학자는 ‘오장을 칼로 에어내는 듯하고 말보다 눈물이 앞서’ 붓 든 손을 떨어야 했다.

그는 유일하게 당시 피해상황을 집계해서 역사에 남겼다. 독립선언 이후 3개월 동안 202만명이 넘게 집회에 참가해서 죽은 자가 7509명, 다친 자가 1만5961명이었다. 그러나 남모르게 죽어간 사람들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박은식은 조선인이었기에 죽어야 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경배하고 있다. 피를 닦아내고 역사 속에 누였다. 누군가 죽어서 만세시위는 혁명이 될 수 있었다.

‘저 풀을 보라. 들불이 다 불사르지 못한다.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난다.’

모든 사람을 다 죽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죽어서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결국 죽은 자들이 세상을 끌고 왔다. 죽은 자들이 낸 길을 따라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이름 없는 무덤, 허물어진 무덤을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독립투사 후손은 극소수이고, 친일파 자손들도 소수이다. 우리 대다수는 현실에 둔감하거나 용기가 없어서, 또는 운이 좋거나 비겁해서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다. 죽은 자들이 대신 죽어서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다. 

자신의 무덤을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살아도 죽은 이들이었다. 아픔과 한이 가득했던 무덤을 헤치고 나와 진실을 말하고 야만의 시간을 증언했다. 특히 김복동 할머니는 진정한 용서와 평화가 무엇인지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었다. 혼자였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무덤 속에 있는 전쟁 위안부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단단해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들을 대신하여 주먹을 쥐고 당당히 외쳤다.  

산 자들이 김복동 할머니를 묻었다. 이제 할머니는 소원대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마 혼자만 저 하늘로 훨훨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는 말했다.

“우리는 아직 해방을 맞지 않았다.”

그 말이 어찌 일본만을 향한 것이겠는가. 실상 살아있는 우리에게 남긴 말이다. 아직도 제 나라와 민족이 귀한 줄 모르는 대한민국에 남긴 말이다. 할머니는 모두가 함께 날아오를 그날을 위해 자신의 날개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 날개는 맑고 고울 것이다. 저 차디찬 무덤 속의 할머니들이 모두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날은 언제인가. 수없이 많은 날갯짓으로 하늘이 열릴 날은 언제인가.  

봄이 오고 있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후 100번째의 봄, 죽은 자들을 기억하라. 그들의 말을 들으라.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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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이 있다. 거대한 폭력이 그 삶을 평범할 수 없게 만들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오랫동안 수치와 침묵 속에 살아야 했다. 세월이 바뀌어 그 삶은 정의를 향한 용기를 상징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피해 그 자체와 동일시되는 동시에 개인적 삶을 넘어서는 추상적 의미 속으로 수렴되면서, 공적 담론 속에 있으되 그 언어를 빗나가게 됐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 영면하셨습니다. 흰 저고리를 입고 뭉게구름 가득한 열네 살 고향 언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청와대가 게시한 추모의 글이다. 청와대뿐 아니라 김복동님의 소천 소식을 보도하는 언론은 하나같이 그분을 투사가 된 ‘할머니’로 묘사하면서도 양산 출신의 순박한 열네 살 소녀를 소환한다.

일본군 위안소로 징발되어 가는 소녀의 이미지는 제국주의의 침략, 군국주의적 폭력에 주권을 빼앗겼던 국가의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역사와 ‘진실’의 문제에 대한 우리 국가적 자의식의 한 측면을 가리킨다. 주권을 침탈당한 국가를 연약한 ‘소녀’로 표상하는 수사는 피해와 박탈, 취약함과 종속을 여성적 속성으로 못 박음으로써, 국가의 본래적 성별을 ‘남성’으로 설정하면서도 그 국가의 실패는 여성의 이미지로 환치하는 이념적 장치이다. 또 이 이미지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모종의 전제를 집약하여 일반화한다. 피해, 상처 이전의 어떤 완전한 순수에 대한 향수 속에서 피해자를 국가의 이미지와 등치하여 숭고하게 만드는 이 수사는, 어쩌면 국가와 역사를 내세워 개인 김복동의 존재를 지우는 동시에 그분이 평생 입은 피해와 고통에 연루된 국가의 실패를 간과하는 것이다.

김복동님이 66세에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피해 사실을 공개한 1992년 이후 위안부 피해 문제에 헌신한 것은, 오랜 세월 상처를 품고 자신의 감정과 감각에서 유리된 채로 살아야 했던 그분의 생존의 선택이자 또 다른 희생이었을 터이다. 생전에 그분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맨날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 테레비고 신문이고 입이 아프도록 죽도록 말해 놓으면 그 말은 다 어디 가삐고 한두 마디 나오고 그저 ‘김복동 위안부’ ‘위안부 김복동 할매’ … 이기 머, (내가) 위안부라고 선전하는 거밖에 더 되나 말이다. 안 그래?”(‘이진순의 열림’, 한겨레신문 2014년 2월21일자) ‘위안부 할머니’라는 호명 속에서 소략하게 평면화된 자신의 공적 존재가 자신의 힘겨운 발화와 처절히 불일치한다는 이 암시는, 국가의 역사적 상흔으로 상징화됨으로써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상처에 대한 고백이다.

위안부 피해자와 국가의 관계는 그야말로 껄끄러운 것이다. 국가는 그분들의 평범한 일상을 애당초 지켜주지 못했으며, 해방 후 수십년 동안이나 그분들의 피해에 침묵했다. 그분들을 손상된 국가 위상의 표상으로 삼으면서도 일본과의 외교적, 정치적 교섭에서 상징적 정의의 제스처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위안부’ 기지촌 여성들의 성매매를 거의 조장하다시피 직접 관리하며 그들의 인권을 외면했고,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폭력과 성범죄에 대해 아직도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검찰 등 국가기관들의 성불평등, 성폭력적 문화에 대한 개혁의 요구도 거세다. 연로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죽는 날까지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불가역적” 합의 따위에 동의하면서 국가가 실패를 거듭했다는 증거이다. 순박한 소녀와 투사가 된 할머니. 이 상투화된 두 기호로 김복동님을 기리는 애도는 그래서 한없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고단한 여정을 마친 김복동님의 장례가 오늘이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에 대해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썼다. “심지어 이런 곳에서도 사람은 살아남고, 그러므로 살아남기를 원해야 한다. 이야기하기 위해서. 살아 증언하기 위해서.” 살아남았던 사람의 죽음은, 언어에 저항하는 역사를 몸에 새기고 있었던 사람,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의 상실이다. 이 상실을 어떻게 애도해야 좋단 말인가. 남은 이들의 몫은 그분이 요구했던 사과를 받아내는 일만이 아니라, 그분이 살아 견딘 삶과 세계가 망각의 지평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게 하는 일이다. 치유는 가능하지 않으며, 인간적 삶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존재를 비인간화한 폭력을 보상할 수 있는 ‘정의’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일, 즉 그 피해의 치유 불가능성을 상기하는 일, 돌이킬 수 없는 국가의 실패를 복기하는 일이다. 그 불가능과 그 실패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런 폭력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고 우리가 인간을 인간으로 지키는 유일한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운동가, 인권운동가 김복동님, 그리고 같은 날 소천하신 이씨 성의 다른 한 분의 명복을 삼가 기원한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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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에 일본 축구 대표팀의 간판 선수였던 나카타 히데토시에게 일본의 한 우익 신문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일본 대표팀 평가전 성적이 좋지 않은데, 그 이유가 일본 선수들에게는 애국심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당신은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는데, 다음 평가전에 당신이 기미가요를 부르면 선수들과 관중들이 감동을 받아 축구의 신이 경기장에 강림할 것이다. 기미가요를 부를 텐가? 나카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기미가요, 너무 장엄해서 축구하기 전에 부를 만한 노래는 아니죠.” 실제로 그는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았고, 그날 평가전에서 유일하게 기미가요를 크게 따라 부른 선수는 브라질에서 귀화한 산토스였다.

한국의 축구 대표팀은 경기 전 애국가가 나오면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 부른다. 군 복무 중인 선수들은 거수경례로 태극기를 향한다. 조국을 대표해서 경기장에 나서는 선수들은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전사들이다. 특히 한·일전에 나설 때 선수들의 마음은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다. 일본에만큼은 질 수 없다는 정신력은 적어도 역대 일본전의 압도적인 승리의 원동력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투혼은 아마도 우리의 스포츠 내셔널리즘을 압축하는 언어일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방송 인터뷰를 할 때, 대부분의 선수들은 “지금까지 저를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합니다”로 시작한다. 간혹 국가에서 지원한 태릉선수촌에서 맘 놓고 운동한 것이 금메달을 따게 된 큰 힘이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과거 사회주의국가에 있었던,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합숙 훈련소인 태릉선수촌은 한국형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생산기지였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생각한다. 태릉선수촌은 현재 진천으로 이전했지만, 조국이 나를 호명한 것을 인증하는 장소이자, 금메달 꿈을 펼칠 수 있는 꿈의 성지였던 셈이다.

그러나 조국이 부른 태릉선수촌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과 격리돼 성폭력과 반인권적 폭행의 비밀장소가 되었다.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는 조재범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녀가 성폭행을 당한 장소로 지목한 곳이 바로 태릉과 진천 선수촌, 한국체육대 빙상장 라커룸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합숙하는 장소는 외부와 격리돼 일반인들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코치들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빌미로 체벌과 폭행을 정당화한다. 이게 다 너희들 금메달 따게 하려는 것이고, 국위선양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문을 건다. 협회는 코치들의 만행을 알면서도 금메달이란 지상과제를 위해 묵인한다. 금메달과 국위선양은 선수들의 인권 위에 군림한다. 심석희 선수에게 금메달은 개인의 값진 영광이 아니라 강압과 폭력의 대가로 얻은 국가의 전리품이었던 것이다. 심석희 선수의 폭로와 고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시민단체에서 기자회견을 하니, 빙상 체육인들은 다음 올림픽에 금메달 못 따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냐고 겁박을 한다. 금메달로 최종 수렴되는 스포츠 내셔널리즘은 코치와 협회가 폭력을 조장하고 공모하게 만드는 어둠의 속이다.

스포츠 내셔널리즘은 조국 근대화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가난한 시절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는 국가 이데올로기는 스포츠를 통해 대중들을 단결시킨다. 베트남 국민들의 최근 축구 열풍도 그 신화에 해당된다. 그런데 스포츠 내셔널리즘은 대중의 광기와 폭력을 동원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정당한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이다. 그것은 선수들의 인권을 짓밟고,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공포의 주술이다. 제2의 심석희 선수 사태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괴물 같은 스포츠 내셔널리즘을 내파해야 한다. 대표선수들이 합숙하는 선수촌을 해산시키고, 선수 코치들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하며,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주는, 이른바 “금메달이 아니어도 괜찮아, 너희들만 행복하면”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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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유치원 3법’을 저지하기 위해 특정 국회의원에 대한 후원을 알선했다는 서울시교육청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임 이사장 등 지도부가 공금을 유용·횡령한 정황도 포착됐다. 서울교육청은 1월31일 전·현직 지도부 5명을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하고 한유총 법인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수사의뢰키로 했다. 한유총은 지난해 말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이 공개된 이후 유아교육의 공공성 강화 요구는 외면한 채 자신들의 재산과 권리만 챙기려는 후안무치로 비판받아왔다. 이제는 단체 운영의 비위 의혹까지 드러나며 법인 설립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렸다. 미래 세대의 학습권을 볼모로 위법적 행태를 자행해왔다니 어처구니없다.

서울시교육청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를 검찰에 고발하고 수사 의뢰한 31일 서울 용산구 한유총 입주 건물 복도에서 한 사람이 전화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한유총은 전국 사립유치원의 70%가 넘는 3000여곳을 회원으로 둔 최대 유치원 단체다. 그러나 교육청 조사 결과를 보면 ‘적폐의 온상’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한유총은 지난해 11월 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 등 ‘유치원 3법’을 막기 위해 회원 3000여명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의원 후원계좌를 올리고 ‘10만원가량 후원하라’며 독려했다고 한다. 한유총 법인과 지도부, 일부 회원들의 회계 부정도 다수 적발됐다. 회원들에게 한유총 회비를 교비회계에서 내도 된다고 안내했는데, 이는 학부모 부담 교육비는 유아교육에 직접 사용돼야 한다는 원칙을 어긴 것이다. 또 전 이사장과 전 지회장들이 ‘지회 육성비’ 명목의 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횡령한 정황이 드러났고, 물품 구매·용역 계약 과정에서 3억5400여만원어치의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은 사실도 파악됐다.

검찰은 한유총과 관련된 모든 비위 의혹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로비를 시도하고, 학부모들이 부담한 교육비를 마구잡이로 전용하는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한유총은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고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해야 옳다. 명확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법적 대응’ 운운해서는 시민의 시선만 더 싸늘해질 것이다. 교육청은 수사 결과 위법 사실이 확인될 경우 한유총의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해야 마땅하다. 국회는 지난해 처리되지 못한 채 신속처리안건(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된 ‘유치원 3법’을 조속히 통과시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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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내 경험의 차이는 너무 커서 설명이 아예 안되는 것들이 태반이다. 들판에서 메뚜기를 잡아 볶아 먹었다거나, 개구리 다리를 구워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엄마를 원시인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농촌에서 계절마다 잡아먹을 것들은 제각각이었다. 하천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다슬기를 줍는 일은 여름, 겨울의 큰 놀이였다.

1월5일부터 시작된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가 27일 막을 내렸다. 2003년 처음 열릴 때는 화천군민 수만큼인 2만명만이라도 왔으면 한 축제였다. 하지만 개최 첫해 22만명 정도가 찾았고, 올해는 184만명을 화천으로 불러들였다.

한때 ‘축제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함량 미달의 지역축제가 넘쳐나던 때도 있었다. 1960년대부터 지역축제는 있어왔다. 춘향이나 논개, 이순신 등 국가 이념에 맞는 관변 축제를 만들어 관이 주도하고 주민이 동원되었다. 관 주도의 농촌 지역축제는 풍물장터와 연예인 공연을 하고 ‘특산물 아가씨’ 선발대회를 여는 식의 엇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러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고 국정지표에 ‘문화진흥’이 등장하면서 지역축제의 활성화를 중요한 정책으로 삼았다. 지자체마다 축제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화천 산천어축제’와 ‘함평 나비축제’를 꼽는다. 

‘산천어’는 1급수에 사는 담수어로 화천이 산천어를 축제 테마로 내세운 것은 청정한 자연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산천어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멸종위기에 놓인 물고기였다. 열목어나 쉬리와 함께 자연다큐의 주인공 역할을 맡아왔다. 1970년대부터 당시 수산청 주도로 양식이 시도됐다. 이는 생태적 이유라기보다는 ‘고급 식재료’로 주목했기 때문이다. 1974년에는 관광 낚시터에 풀어놓기 위해 산천어와 송어를 교배해 ‘산천어 F1’이란 어종을 개발했고, 1990년대 들어서 본격 양식에 들어갔다. 화천 축제에 쓰인 산천어도 당연히 양식을 해서 풀어놓은 것이다.

결국 올해는 산천어축제가 동물학대와 생명경시를 부추기는 일이라며 축제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여러 환경단체와 동물권 단체의 반대성명도 이어졌다. 양측의 주장도 팽팽하게 부딪친다. 물고기 잡기가 ‘생명경시’인지 ‘추억의 동심’인지로 갈린다. 축제의 규모가 개최 초기보다 훨씬 커졌고 관심도 높기 때문에 개선할 점이 분명 있고 새겨들을 만한 지적이다.

다만 화천에서 ‘산천어’를 테마로 축제를 꾸렸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군사지역이어서 ‘군인 상권’으로 먹고살아야 하지만 남북관계가 꼬여 군인들의 외출이나 면회가 제한되면 지역경제가 어려워진다. ‘평화의 댐’으로 대표적인 관광지였던 파로호가 마르면서 관광객도 줄었다. 산과 물, 공기, 추위가 고장의 자산인 이곳에서 ‘산천어’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농한기에 주민 일자리가 생기면서 소득에 도움을 주고, 농산물 판매로 이어지면서 이 축제가 화천군민들에게는 중요한 행사가 된 것이다. 참여 주민들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 또한 높아졌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사람의 일은 복잡다단하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농촌에서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기 힘들다. 오래전부터 ‘향토축제’란 이름으로 축제를 부추긴 이유는 뭐라도 해보란 뜻이었다. 나비를 길러서 날리고, 산천어를 길러 얼음 강물에 풀 수밖에 없던 속사정이 풀리지 않는다면 결국 어디에서든 또 잡고 먹고 할 것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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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여러분, 지금 전 세계에 나비가 날고 있어요. 이 늙은 나비도 날며 다녀요.” 2015년 8월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 김복동 할머니는 단상에 올라 온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그렇게 외쳤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과거 전쟁에서 저지른 그들의 죄악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해 “강제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일본군 성노예 범죄의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 절통한 상황이었는데도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이겼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故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2017년 5월부터 시작된 암투병 생활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황에서도 희망은 꺾이지 않았고, “전쟁에서도 살아나왔는데, 이까짓 암을 못 이기겠느냐”며 활동을 계속하셨다. 수요시위에도 나와 청춘 세대들에게 좌절하지 말라고 격려하셨다. 투병생활로 목소리에 힘은 많이 빠졌지만 할머니를 찾아온 사람들을 향해서는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여러분도 희망을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소중한 말씀을 사람들의 가슴에 꽂아주셨다. 

2018년 일본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우리는 촛불로 정권을 바꿨어요. 여러분도 힘내서 꼭 일본 정부가 우리들이 죽기 전에 사죄하도록 힘써 주세요”라며 일본사회의 변화를 꿈꾸셨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힘껏 돕겠으니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힘써주세요”라며 총 1억여원의 장학금을 내놓으셨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서 윤미향 정대협 대표가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세계 각지의 무력분쟁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향해서는 힘내서 싸우라고 격려하며 김복동평화상을 만드시고,5000만원의 후원금을 내놓으셨다. 무력분쟁지역 인권운동가 양성에 할머니의 평화의 꿈을 실어 콩고로, 우간다로 날갯짓을 펼쳤다.“한국군에게 우리처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너무나 죄송합니다”라며 베트남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에 적극 참여해 오셨다.

죽을 때까지 인권운동가

1992년 3월에 부산 다대포에 ‘위안부’ 피해자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곧바로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찾아뵈었고, 그때부터 인연이 닿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인권운동가로 함께 걷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유엔 세계인권대회 등 국제인권기구에 직접 참석하여 피해를 증언하셨다. 세계를 돌며 치열하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인권운동가로 살아오셨다. 1992년부터 시작된 수요시위에서는 아무리 더운 날도, 아무리 추운 날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은 빌딩숲을 넘어 하늘을 찔렀다.그 세월이 어언 27년. 67세에 시작한 활동은 94세가 되어도 계속됐다. 할머니의 꿈 ‘살아생전 일본 정부의 사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내가 김복동이다

1월28일 오후 10시41분, 할머니는 고통스러웠던 암투병 생활을 마감하고 고단하고 억울한 숨을 거두셨다. 임종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시고, 당신이 못다 한 재일조선학교 지원도 부탁하셨다. 일본 정부를 향해서는 ‘나쁜 놈들’이라며 분노를 표출하시며 사력을 다해 유언을 남기셨다. 죽을 때까지 인권운동가셨다.

이제 더 이상 수요시위에서 할머니의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을 느낄 수 없다. 더 이상 그렇게 분명하고 힘있게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피력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 유엔인권기구의 최고수장을 만나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고 용감하게 ‘위안부’ 문제를, 전쟁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이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할머니와 이별하는 슬픔이 너무 깊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희망을 잡고 산다’시던 할머니에게 정말 희망을 걸고 사는 여성들이 있다. 세계 각지의 전쟁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이 지난 27년 동안 할머니가 인권·평화 운동가로 걸어왔던 삶을 뒤따르며 외치고 있다. “김복동, 당신은 우리의 마마, 당신은 우리의 영웅, 우리의 희망.” 그리고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이 ‘김복동’이라고 외치고 있다.

할머니의 치열했던 삶과 죽음에 맞닿게 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바로 ‘내가 김복동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김복동의 역사이고, 내가 김복동 할머니의 27년간의 인권·평화운동의 계승자다. 일본군 성노예제 범죄의 가해자인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 이 땅에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만들어갈 김복동. 수천, 수만의 김복동이 다시 살아 할머니께서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김복동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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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일본군 전시 성폭력 생존자이자 인권·평화 운동가였던 김복동 선생께서 93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전쟁, 그리고 그 전쟁에 참전한 남자들은 그의 몸을 강탈하고 강간했다. 살아남아 되돌아온 고국의 독재자는 그의 거대한 상처와 폭력의 기억을 경제차관 몇 푼에 도매금으로 팔아넘겼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수년이 지나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문제는 3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고, 대통령이 된 독재자의 딸은 이번에는 외교를 위해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했노라고 선언했다.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계속해서 싸웠다. 그리고 끝내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 속에서 남은 이들에게 계속 싸워줄 것을 당부하며 숨을 거두었다. 역사의 버거운 상흔들이 고작 하나의 개인이었던 자신에게 몰려드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숨죽이고 가만히 있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여전히 세계 어딘가에서 자행되는 전쟁 성폭력을 규탄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했다.

국민대학교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세움' 학생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어쩌면 그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 폭력의 예사로움을, 광범위함을, 일반성을. 한국에만 국한시켜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전시 강간이 즐비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계엄군에 의한 강간 및 성고문 등이 자행되었음이 드러났다. 국가 단위의 역사는 전쟁을 언제나 승리나 패배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심지어는 거기에서 어떤 명예를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전쟁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을 이들에게 주어지는 승리나 명예는 없다. 반면 패배에 대한 대부분의 대가는 바로 이 무관한 자들이 치르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가 ‘위안부’를 바라보기 두려워한 것은, 그것이 이 사회, 무엇보다도 남자들을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족이라는 이름의 흐릿한 필터를 들지 않으면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없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상당부분 ‘약소국의 설움’에 머물러있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 ‘누이’들을 지키지 못했고, ‘우리’는 여전히 힘이 약해 강대국인 일본에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겪어서는 안될 일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과 분노가 아니라, 힘이 약한 ‘나’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울분이다.

이것은 민족의 설움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일본 군인만 저지르는 악행이 아니라, 지금도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고, 모든 배경과 이유는 뒤로 물러나야 마땅한 것이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비분강개하는 남성들의 수와 모든 강간과 성폭력이 그 자체로 악이고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남자들의 수는 왜 이렇게나 차이가 날까? 왜 일본이 저지르면 악이지만 동포가 저지르는 성폭력은 ‘꽃뱀일 수도 있는’ 문제일까?

때때로 나는 온라인상에 그 많은 남성들이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정당한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아닌지 고민한다. 하지만 그 어떤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간일 수는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처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에 정당한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함이지, 처벌하는 자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폭력에 대한 반대가 없는 ‘미안함’은 그저 남자의 얼굴을 한 ‘민족’에 바치는, 그마저도 자기 자신을 위한 한 조각의 공명심일 뿐이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벌건 얼굴로 여자에게 술 먹이는 법을 떠벌이던 어떤 남자가 떠오른다. 김복동 선생이 일생을 걸쳐서 원한 것은 정의였다. 우리가 고인의 명복을 빌 수 있을 만큼은 정의로울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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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빈틈없이 문을 꼭 닫아야 안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막을 수 있다. 물리학에서도 열림과 닫힘, 안과 밖이 중요하다.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물리학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를 긋는 일이다. 경계의 안을 계 또는 시스템이라 하고, 그 밖은 환경 또는 주위라 한다. 어디까지를 계로 할지, 어디서부터 계를 둘러싼 환경으로 할지에 따라 문제의 성격이 달라지고, 물리학의 적용방식도 달라진다. 갈릴레오가 설명한 자유낙하운동에서 물체의 속도는 시간에 비례해 늘어난다. 이 경우 물체 주변의 공기는 계가 아닌 환경이다. 주변 공기까지 포함한 계를 생각하면 속도 계산을 달리 해야 하고, 지구의 자전도 넣으면 계산은 또 달라진다.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하면 안된다”는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또는 모형으로 생각하면, 결국 아인슈타인이 한 말은, 계와 환경을 가르는 경계긋기에 대한 조언이다. 너무 넓은 영역을 둘러싸도록 경계를 설정하면 문제의 이해나 해결이 어려워진다. 마치, 우리 은하의 모든 원자와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역학 문제를 풀어 1m 높이에서 떨어뜨린 돌멩이의 자유낙하를 설명하려는 시도처럼 말이다. 경계를 너무 작게 그리면, 문제는 정말 쉬워지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마치, 중력조차도 계의 밖에 있어,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돌멩이처럼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은 바로, 단순성을 추구하더라도,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잃을 정도로 과도한 단순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치우친 경계(境界)긋기에 대한 경계(警戒)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주 전체를 계로 하면, 바깥은 없다. 우주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해진 우주의 경계 너머의 존재는 우주 안의 어떤 것에도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우주 안쪽의 존재에 영향을 주는 무언가가 밖에 있다면, 우주의 경계를 잘못 설정한 것일 뿐이다. 더 멀리, 더 멀리, 경계를 확장해 우주 밖 존재가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도록 경계를 정하고 나면, 그 안의 모든 것이 우주다. 따라서, 우주가 하나라면 밖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 질문은 과학적으로 무의미하다. 거기에 뭐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요즘 다중우주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우주 말고도 다른 우주가 부지기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다중우주에 대한 책으로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를 권한다. 우주가 여럿이라면, 우리 우주 밖에 무엇이 있는지는 의미 있는 질문일 수 있다). 우주가 하나라면, 우주 전체는 외부로 통하는 문이 꽉 닫혀 어느 것도 경계를 넘나들 수 없는 닫힌계고, 외부로부터 완벽히 차단되어 있는 고립계다(에너지, 물질 등 그 어떤 것도 출입할 수 없는 계를 고립계, 물질은 통과할 수 없지만 에너지 전달은 가능한 것을 닫힌계라 한다).

당신의 몸은 닫힌계일까, 고립계일까, 아니면 열린계일까. 우리는 음식을 먹고 그 안 에너지를 써서 매일의 삶을 이어간다. 아침에 들은 소식을 점심때 친구에게 알려준다. 우리 몸은 당연히 열린계다. 열린계로는 에너지, 물질, 정보가 밖에서 들어올 수 있고, 일련의 변환과정을 거쳐 밖으로 나간다. 당신이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 늘 벌어지는 일이다. 또, 아이들의 키가 자라고, 새로운 것을 배워 앎을 늘리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키와 함께 자란 아이 몸속 뼈는 밖에서 들어온 원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다시 배열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우리가 매일 살아있는 이유는 내부의 엔트로피를 끊임없이 낮추기 때문이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명은 밖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유입되는 음의 엔트로피로 가능한 자연현상이라 말한다. 내가 고립계면 난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열림은 생명의 필요조건이다.

계와 환경을 나누는 경계는 임의적이다. 경계의 안과 밖의 구분도 모호하다. 우주를 둘로 나눠 왼쪽을 계라 하고 오른쪽을 환경이라 할지, 거꾸로 오른쪽을 계라 하고 왼쪽을 환경이라 할지는 관심을 어느 쪽에 두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은 조선시대 낡은 구습 때문이지만, 둘로 나누고 그중 어느 하나를 계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자연에 없다. 날아오는 야구공을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맞출 때, 야구방망이에 야구공은 경계의 밖이고, 야구공에는 야구방망이가 밖이다. 방망이에 맞은 야구공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싶은지, 야구공에 맞은 방망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싶은지에 따라, 계와 환경을 얼마든지 거꾸로 설정할 수 있다. 물리학뿐 아니다. 우리 집 귀여운 강아지 콩이는 내게는 환경에 속하지만, 콩이라는 이름의 열린계에서 나는 강아지의 환경의 한 부분을 이룬다. 자연의 눈앞에 둘 중 누가 계고 누가 환경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자연은 경계를 알지 못한다. 예외 없이 하나하나 제각각 열린계인 지구 위 모든 생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른 생명의 환경이 된다. 우리는 섬이 아니다. 연결된 서로의 환경이다.

마음에도 문이 있다. 열린 이의 마음은 밖의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내부 상태를 바꾸고, 꽉 막힌 닫힌 이의 마음에는 밖을 향한 문이 없다. 젊어서 열린 마음으로 무언가를 배웠더라도, 나이 들어 밖의 변화에 눈감아 마음의 문을 닫으면, “왕년에는 말이지”를 반복하는 꽉 막힌 꼰대가 된다. 꼰대 고립계의 엔트로피 증가에 맞서는 방법은 딱 하나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다. 닫힌 문으로 안의 공기가 탁해졌다면, 문을 활짝 열어젖힐 일이다.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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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1978년 11월9일자 ‘독립문과 민족정신’ 제하의 사설에서 독립문 이전에 반대한 바 있다. 치욕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독립문을 옮기겠다는 서울시를 질타한 것이다.

영은문은 조선시대 태종 때인 1407년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세운 모화루(모화관) 앞에 만든 홍살문이 전신이다. 영조문이라 부르다 중종 때 명나라 사신 설정총이 영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명나라를 상전으로 받들라는 사대주의의 표현이다. 얼마나 오만방자한, 그러면서도 모욕적인 이름인가. 조선의 왕들은 명과 청의 사신들이 천자칙서를 가지고 오면 이 문까지 나가 큰절을 하고 맞아들였다고 한다. 500년간 이어져온 수치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독립협회를 조직한 서재필은 1898년 사재를 털고 기금을 모아 영은문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자주의식과 독립정신을 새기겠다는 뜻에서다. 지금의 독립문 사거리 한가운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게 세운 독립문은 개발논리에 밀려 쫓겨났다. 서울시가 독립문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도록 도로계획을 확정하면서 이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독립문은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장식물처럼 서 있다. 당연히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은 훼손됐다. ‘여기가 치욕의 장소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게 됐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재구조화란 어려운 용어를 썼지만 개발시대 논리에 포장지만 바꾼 것이다. 서울시는 재구조화의 목표를 세 가지라고 했다. 600년의 역사성,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시민성’, 지상·지하를 잇는 ‘보행성’의 계승·회복이다. 광장 확장, 역사광장 조성, 충무공 동상 이전, 대규모 지하도로 조성, 광역철도역 설치 등이 주요 사업이다.

서울시는 역사성을 살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월대와 해태상을 세우겠다고 했다. 역사는 만들어진 것도 있고 만들어지는 것도 있다. 촛불이 타올랐던 광화문광장은 역사의 현장이다. 그곳에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정의를 외쳤다. 그런데 서울시는 촛불정신을 살리겠다면서 역사의 현장을 부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심장이 뛰는 생명체를 죽여 박제로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종로 한가운데 서 있는 충무공 동상만큼 풍상을 겪은 기념물도 많지 않다. 충무공 동상은 1968년 4월27일 건립됐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이라든가, 동상의 형태나 건립 장소가 잘못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동상의 얼굴이나 칼을 쥔 모습, 옷의 길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또한 ‘지명에 맞게 동상을 충무로로 옮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동상 재건립은 “차라리 그 돈을 서민들을 위해 사용하자”는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이전 문제도 1994년 서울시 문화재위원들이 “충무공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고 동상 자체가 1968년에 세워져 이미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못 박으면서 마무리됐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말하면서 1968년 세워진 충무공 동상 이전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1985년 개업한 ‘을지면옥’ 이전에는 반대했다. 충무공 동상이 을지면옥만도 못하단 말인가.

서울시는 걷기 좋은 환경을 거론하면서 광화문 인근에 대규모 지하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춥거나 비가 올 때 이동의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광역철도까지 들어오도록 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민은 굴속에 사는 동물이나, 혼잡한 도로에서 이리저리 차이는 짐짝이 아니다. 지상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하늘과 산을 조망하며 즐겁게 거닐 수 있는 게 ‘걷기 좋은 서울’이다.

광화문광장은 2008년 대공사를 거쳐 재조성됐다. 여론조사까지 벌여 광장을 중앙에 조성했다. 그런데 불과 10년을 갓 넘어 서울시는 다시 만들겠다고 나섰다. 공사비는 1040억원이 넘는다. ‘돈이 썩어나냐’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도 박원순 시장은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공사를 끝마치겠다는 목표는 2021년이다. 차기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작위적이다.

40년 전 독립문 이전을 반대했던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숱한 시행착오로 예산 낭비와 시민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해 왔다. 그러면서도 낭비와 손실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철저한 책임추궁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이대로 넘어간다면 서울시의 난맥상은 계속될 것이고 문화재를 깔보고 덤비는 작태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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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연 새 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산에는 분홍빛깔 진달래가 움을 틔우거나 기지개를 켜고, 성질 급한 매화 무당은 벌써 방울을 쩔렁이면서 굿판을 벌일 태세다. 어차피 오실 손님이기에 어서 오시라 반기련다. 삼한사온은 옛날 얘기고 이제는 삼한사미라던가. 꼬박 사흘 동안 미세먼지로 극성. 봄꽃이 출렁이는 분홍빛깔 산허리도 먼지에 가려 안 보이고, 아지랑이도 미세먼지에 가려질 판. 어서 빨리 대안에너지, 태양에너지로 가뿐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흙먼지가 일상이었던 지난 시절. 비포장도로뿐인 시골에서 태어나 비포장 마당에서 흙놀이하며 자랐지. 바지 밑단에는 흙먼지가 한 움큼씩 담겨서 털지 않고 방에 들어왔다간 이불도 흙범벅. 시멘트 가루를 먹는지 미숫가루를 먹는지 모를 정도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는 시멘트 먼지가 동네에 자욱했다. 지붕으로 썼던 석면 슬레이트는 아무 데나 버려졌다. 거기다가 돼지고기를 올려서 구워먹던 사람들은 암에 안 걸린 게 기적. 버스가 한번 지나가면 온 동네가 사막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먼지에 휩싸였다. 이맘때면 들불을 놓는데, 논밭의 비닐을 태우자 시꺼먼 연기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공장 굴뚝처럼 연기가 도처에서 뿜어져 올라왔다. 안전하고 청명한 세월이 얼마나 되었던가. 미세먼지 폭풍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틈새시장이라고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들었다. 나도 누가 차에다가 놓고 쓰라며 작은 공기청정기를 보내왔는데, 웅웅거리는 소리가 싫어 쓰지 않고 있다. 진짜 공기청정기는 이 나쁜 먼지들을 말없이 다 들이마시는 저 숲속의 나무들이겠다. 나무에 미안하고 감사하다.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줄이는 방법은 전기며 석유, 석탄, 이런 기존의 에너지를 아껴 쓰고 줄이는 길뿐이다. 숲의 나무들 말고도 공기청정기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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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고인은 전 세계 곳곳에서 피해 사실을 용기있게 증언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고취하고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자들의 초국적 연대를 이끌어낸 여성인권·평화운동가였다. 위안부 문제 다큐멘터리 &lt;낮은 목소리&gt;의 변영주 감독이 추모했듯이 “세상 모든 피해 여성의 깃발”이었다. 고인이 끝내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것이 애통할 따름이다.

14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된 고인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고초를 겪었다. 여성인권운동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1992년이다. 피해 사실을 공개한 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 등에 참석하며 증언을 이어갔다. 2012년부터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전시 성폭력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국경없는기자회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됐다. 고인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 공청회에서 연설한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었다.

고인은 이승을 떠나는 순간까지 일본의 사죄를 요구했다고 한다. 임종을 지킨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유일하게 알아들은 말은 ‘일본에 대한 분노’라는 한마디였다”고 전했다. 29일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타계하면서 남은 피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다. 생존자들도 모두 고령이다. 일본은 더 늦기 전에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를 위해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에 나서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은 각종 기록으로 입증된 사안이다. 역사의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한·일 양국관계의 미래는 과거에 대한 진정한 화해가 전제될 때만 기약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도 일본의 몰역사적 행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한국이 주축이 되어 다른 피해국가들과 연대해 일본의 사죄를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관련 기록물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강인하고 용감했던 ‘역사의 증언자’ 김복동 할머니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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