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이파리가 새롭게 나고 있다. 달래장에 밥을 비벼 먹고, 산에서 해 온 머위, 두릅으로 찬을 하고, 쑥국을 끓여 먹는다. 온 사방 벚꽃이 환하게 핀 것을 보면서는 그저 봄이 좋다 싶기만 했다가, 산나물 찬으로 밥을 먹으니 기운이 나고,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올해 봄에는 마당에도 봄꽃들이 피었다. 시골살이 10년이 넘어서야 마당에 꽃을 심고 가꾸게 된 것. 지난가을에 둘째 아이가 심은 것들이다. 아이가 나서서 꽃을 심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마당 꽃밭이라는 것은 언제까지고 다른 일들에 밀려 뒷전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언제부터 풀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좋다고 했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어쨌거나 식물학자가 되고 싶다거나, 식물원을 가꾸겠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한 아이는 초등 1학년이 되어서 제가 심고 싶은 꽃을 골라 심었다. 봄이 와 꽃이 피기 시작하자 아침마다 누나와 동생까지 셋이서 꽃밭을 들여다보고, 이것 좀 봐 하면서 자기들끼리 꽃 이야기를 한마디씩 하고는 학교에 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남아 있던 화분과 마당 빈자리에 풀과 꽃을 더 심었다. 풀꽃 가꾸기를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 거라면 여기에서 마음껏 할 수 있지. 돈도 뭐 거의 안 들고. 심으려는 것에 블루베리와 수국도 있어서, 뒷산 솔밭에 가서 솔잎 흙도 두어 자루 담아 온 다음, 화분에 심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일러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수레를 끌고 냇가에 갔다. “자갈 작은 거부터 가져와. 그러고 나서 모래도 조금 퍼 오고.” 수레에 고무 대야와 모종삽을 싣고 간 아이들은 도무지 돌아올 줄을 모른다. 냇가에서 웃는 아이들 소리가 마당에까지 들린다. 

우리집 시골살이 첫 대목은 아이 이야기다.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 생각보다 일찍 시골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려와 살면서는 시골에서 지낸다는 것, 아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도저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는 것쯤이야 날마다 절감한다. 그래도 서울이었다면, 아이가 셋이 되기는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가 셋이 되어 가는 동안 생각이 꽤나 바뀐 것이 있는데, 아이가 한 명일 때는 마음속에 어떤 기준이 있어서, 아이가 거기에 미치는지 아닌지 따질 때가 있었다. 두 아이일 때는 한 명이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다른 아이와 너무 다르거나 한 것이, 내가 잘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할 때가 많았고. 그러다가 아이가 셋 되고 나서는, 사람이란 얼마나 저마다 타고 나는 게 다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제는 큰아이와 둘째 아이까지 무언가 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아이들과 지내는 생활도 ‘시즌2’가 열리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이 훌쩍 커 가는 만큼 부모인 나도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날이 어찌 열릴지는 아무런 짐작도 못하고 있지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크게 어려움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내가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아침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들이 잠들 때에 같이 있고, 그러는 것. 친구 같은 아빠는 전혀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는 편인데, 날마다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아이 이야기를 듣고, 아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많아진다. 돈 버는 쪽을 많이 포기한 만큼, 식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을 얻은 셈이다. 그 덕분에 아이들과 부모, 서로가 자기 욕심만 내는 일도 별로 없고, 지금 여기서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것을 누리려고 조금이라도 더 애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휴일 아침, 아이들은 더더욱 일찍 일어나더니 자기들끼리 마당에 나가서는 호미를 꺼내들고 잡초를 매고, 꽃밭을 다듬는다. 꽃 피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꽃밭을 어떻게 가꿀지 하는 것도 한참이나 속닥거리고. 다음 장 서는 날에는 아이들하고 마당에서 쓸 물뿌리개 하나를 구해야겠다.

<전광진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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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은 흥에 겨워

건들대는 거야.

천성이 그래,

사는 게 즐거운 거지.


바람 불면 바람과 함께

비 내리면 비와 함께

새들이 노래하면

새들의 날개에 얹혀

같이 날아보는 거야.


그런 게 즐거움 아니냐고

너도 건들대보라고,

죽기 전에 후회 없이

한번 건들대보라고. 

김형영(1944~)


건들대는 것은 몸과 마음에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것일 테다. 언덕을 넘어서오며 버드나무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가만가만 흔들어놓는 봄바람처럼. 조금은 들떠서 조금은 신이 나서 흥에 겨워 살아도 좋겠다. 바람이 저편으로 가면 바람을 따라서가고, 비가 오면 빗방울처럼 수면 위를 뛰고, 새들이 울면 새들의 악보에 맞춰 노래를 하면서 살아도 좋겠다. 너무 무겁고 딱딱하게 살지 않고,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고. 살구꽃이 피는 일에도 신명이 들어 있고, 보리밭이 넘실넘실하는 일에도 신명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김형영 시인은 시 ‘화살시편 29 - 봄을 믿어봐’에서 “봄바람 마신 새들/ 노랫소리 들리지?/ 감기 든 목소리가 아니야/ 목청이 탁 트였어// 믿을 건 봄뿐이야”라고 썼다. 봄바람을 마신 새처럼 봄을 흥얼거리면서 살아도 좋겠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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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 작가 벨 훅스는 <All about Love(올 어바웃 러브)>에서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잘못된 사랑관을 가지게 된 여러 가지 배경 중 하나로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성 구축방식에 주목한다.  

가만히 남성 문화를 생각해 보자. 어린 시절부터 남성은 외로움, 슬픔, 아픔, 참된 감정을 감추고 거짓 자아를 만들어야 강한 남자라고 배운다. 강자에게 눈치 빠르게 복종하고, 약자를 무시하고 지배하며 힘으로 누르는 게 남자답다고 배운다. 그래야 출세하고, 출세하면 모든 걸 가지게 되며 그간의 고통과 비굴함을 보상받는다고도 배운다. 힘 있는 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어떠한 거짓과 기만도 용서받는다는 교훈을 현실에서 직접 체득한다. 

음란물, 성매매, 성희롱, 성폭력, 불법촬영, 접대문화, 클럽문화가 한 줄로 꿰이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남성에게 여성은 지배와 통제라는 남성(성)을 증명하고 구축하는 도구였다. 여성은 부위별로 측정되고 전시되는 살덩이, 뇌 없는 인형, 구멍, 자궁이다. 힘 좀 쓰게 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전리품이거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액세서리다. 더 많이 가질수록, 가졌다고 큰소리 칠수록 ‘쎈’ 놈이 된다. 강압적으로 푼돈으로 기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허세로라도, 함부로 하거나 소유해야 한다. 그래야 남자다! 

문제는 젊은 남성들이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로부터 온갖 무용담을 들으며 남성성의 실천 양식을 물려받았다. 집·학교·군대·직장에서 각종 미디어를 통해 갖은 방식으로 습득했다. 어쩌면 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빨리 더 어린 나이에 ‘남자다움’의 의미를 학습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세대의 여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가 원하는 상에 모든 것을 맞추고 선택되기만 기다리는 여자,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하고 포용해 주는 여자, ‘망나니’를 멋지게 다시 태어나게 해줄 여자, ‘조용히 은거지의 그늘에 숨어’ 아이를 낳아주고 정갈한 밥상을 차려주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두세 배 뻥튀기해 놓은 듯 알뜰히 살림을 키우는 여자는 이제 드물다. 재능으로도, 성적으로도, 힘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지배·통제가 어렵다. ‘남자답게’ 애써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낭패다. 아버지들로부터 전수받은 ‘전통적’ 기술들은 이제 범죄행위가 되었다. 

혼란스러운 자아는 익명 뒤에 숨어 키보드로 분노를 뿜어내거나, ‘믿을 만한’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분열을 봉합하려 한다. 오랜 훈육의 결과 익혀 온 잡기를 공유하며 거짓과 허세로 남성성을 과시하고 불법촬영물과 성구매 경험으로 공모자가 되어 남성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결과는 더 비참하다.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아슬아슬 유지해야 하는 이중생활 때문에 기만의 가면은 늘어만 간다. 여성과 분리된 채 상호 나눌 수 없는 비밀을 쌓아가는 ‘가면무도회’장에서 남성들은 진솔한 감정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피폐해진다. 그럴수록 ‘진짜’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그 ‘여성’은 알 수 없는 대상으로 점점 더 멀어진다. ‘물게’(물 좋은 게스트), ‘와꾸’가 좋은 ‘헤픈’ 물건, 마구 만지고 약물을 먹여 강간해도 되는 ‘싸구려’들과 어떤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 여성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성애 남성들의 실존적 불안은 더 증폭된다. 때로는 생존 전략으로, 때로는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익혀온 남성성이 이제 남성 자신에게도 독이 되었다. 

사랑은 단순히 열정적 감정이거나 일방적으로 쟁취되는 소유물이 아니다. 벨 훅스가 지적했듯 행할 때 비로소 존재한다. 동등한 인간 간 상호 존중을 통해 쌓아올리는 과정이다. 진실은 실천의 토대이고 신뢰는 결과다. 조롱과 무시, 학대와 모욕, 폭력과 혐오는 사랑의 실천과 양립될 수 없다. 남성의 성적 욕망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사회, 여성의 몸을 통해 일방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남자답다고 가르치는 사회, 몸의 주체가 동등한 인간이 아닌 사회, 평등에 대한 요구가 갈등으로 이해되는 사회에서 영적인 성장이 가능한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눈앞에 놓인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자. 사랑을 일회성 욕망, 허세용 전리품,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서비스’로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한 자들은 누구인가. 당신의 자아를 분열시키며 진정한 사랑을 방해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영혼을 황폐화하고 인간다운 삶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진실과 정의에서 멀어지게 하는 그 거울을 남성 스스로 과감히 깨트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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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게이트’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 수사에 착수한 지 두 달이 넘었으나, 핵심 의혹에 대해선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지만 수사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다.

버닝썬 사태는 당초 김상교씨(28)가 지난해 11월 이 클럽에서 여성을 보호하려다가 클럽 관계자와 경찰에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며 촉발됐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지난 1월30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전담수사팀으로 지정하고 150여명의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수사에 나섰다. 사건은 각종 성범죄와 마약, 연예인과 경찰 고위직 간 유착, 탈세 등으로 번지며 게이트급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수많은 의혹 가운데 어느 정도 수사 성과를 거둔 부분은 전 빅뱅 멤버 승리 등 연예인들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불법촬영물이나 음란물이 유포된 부분뿐이다. 가수 정준영씨가 구속되고, 승리와 전 FT아일랜드 멤버 최종훈씨도 수사를 받고 있다. 가수 로이킴과 에디킴도 음란물 유포 혐의로 입건됐다.

3월 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여성연합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버닝썬 관련 공권력 유착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정작 여성들의 분노와 공포를 불러일으킨 클럽 내 ‘약물 성폭력’ 의혹 수사는 진전이 없다. 현재까지 버닝썬 등 클럽과 관련된 마약류 입건자는 53명에 이르지만, 약물 성폭력 가해자는 한 사람도 포함되지 않았다. 경찰 유착 의혹도 마찬가지다. 현직 경찰관 5명이 입건됐으나 대가성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한 상태다. 연예인들의 단톡방에서 ‘경찰총장’으로 거론된 윤모 총경이 입건된 혐의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승리의 해외투자자 성접대 의혹 및 경찰과의 유착 정황 등이 담긴 자료를 대검찰청에 넘기고 수사를 의뢰한 바 있다. 경찰의 공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검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하고도 직접수사는 자제해왔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계속 변죽만 울린다면 검찰이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찰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치부를 파헤치기 어렵다면 조기에 사건을 검찰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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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장, 의원들 말투는 거칠고 언성은 높습니다. 긴 연설과 장황한 훈계 사이로 질문과 답변은 고춧가루처럼 뿌려질 뿐이죠.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등이 드러나면 눈높이가 맞지 않았다, 잘 몰랐다, 배우자가 했다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공수는 바뀌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욕하고 책임지라는 요구도 전형적입니다. 인재풀이 적다는 비판도 빠지질 않죠. 이렇게 식상한 연속극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청와대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그냥 한국 지도층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문재인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명망과 전문성을 고루 갖췄다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부동산 의혹을 받았죠. 다운계약서 작성, 아파트 분양권 전매, 부동산 차명 거래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후보자는 처제 탓으로 돌렸고 송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막말 논란이 더해졌습니다. 한 예로 2016년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박근혜가 씹다 버린 껌”이라 했다고 논란이 됐죠.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문제 됐습니다. 이제 와서 북한 소행이라고 입장을 바꾼 데 대한 추궁이 있었습니다. “편향적 인식”, “친북주의자”, “북한 대변인”, “북한 통일전선부장 후보감” 등 야당 의원들의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김 후보자는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공격을 받아 침몰당했다는 것은 일관적인 입장이었다”고 해명했죠.

사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침몰 직후부터 나왔던 의혹 중 시원하게 풀린 게 거의 없죠. 우선 북한 어뢰에 의해 두 동강이 났다는 정부 설명은 너무 미흡합니다. 배 밑에 긁힌 자국, 깨끗한 절단면, 생존자들에게 고막 파열, 화상 등이 전무한 점 등은 폭발이 있었다면 설명하기 힘듭니다. 정부가 제시한 증거도 미덥지 않습니다. 기껏 찾은, 유일한 증거인 어뢰추진체에는 그 유명한 ‘1번’이라는 글씨가 선명해 논란이 됐죠. 여기서 나온, 폭발 과정에서 생겼다는 알루미늄 산화물은 침전으로 생긴 알루미늄 수화물임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억지로 공개한 CCTV 화면도 조작이고, TOD 화면에 나온 물체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즉 어뢰폭발이 있었는지, 그 증거는 있는지, 다른 원인은 없었는지, 아무 대답도 없는 게 정부의 설명 아닌 설명인 겁니다.

북한 어뢰가 아니면 뭐라는 소리냐고 짜증 낼 수도 있지만, 그 답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닌, 정부가 내놓아야 합니다. 정부가 설마 거짓말을 했겠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크고 작은 범죄를 돌아보면 이는 그냥 희망 사항일 뿐임을 쉽게 알 수 있죠. 그 반대입니다. 그 많은 거짓과 전횡을 언제 다 되돌아볼까 오히려 걱정입니다. 물론 천안함 침몰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으로 46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최소한의 의심을 갖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더군다나 정치 엘리트들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청문회에서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을 밝히고 거짓을 점검하는 대신 야유와 선동으로 일관했습니다. 그것도 색깔 공세를 펴가며 말이죠. 김 후보자도 자신의 의심이 합리적이었음을 주장하기보다 꼬리를 내리며 이에 동조한 셈이 됐죠.

우리 사회는 반공이 국교인 듯합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북한이 범인이라는 믿음을 퍼뜨리고 입맛에 맞는 증거만 축복합니다. 반론과 의심은 불경이라며 처단하죠. 신자들은 멸공의 노래를 부르며 안도합니다. 그 축복 덕택에 우리는 제주도, 광주의 학살에 눈을 감았고 독재를, 그들의 고문과 살인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렇게 피를 불러온 “빨갱이” 딱지를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게 21세기 한국입니다. 그러니 태극기부대가, 박근혜를 향한 그들의 애정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공산주의가 몰락한 게 1990년대 초이지만 여의도는 1950년대 초에 아직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그런 국회에 미래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그냥 국민의 생떼가 아닐까요. 그러면, 그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그 국회는 왜 있는 걸까요. 그 대답을 위해서라도 국회는, 정부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과거 정부의 대응에 대한 조사를 서둘러야 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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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심야 출국을 시도하기 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틀 뒤, 김 전 차관은 태국으로 출국하려다 탑승 직전 출국이 저지된 바 있다. 만약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가 성공했다면 어쩔 뻔했나.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진상조사단은 지난달 20일 대검에 김 전 차관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해달라고 했다. 진상조사단은 출국금지를 요청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검은 김 전 차관이 두 차례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재정신청이 기각됐으며, 새로운 증거가 확인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부했다. 3월22일 김 전 차관은 인천공항에서 태국 방콕행 항공권을 구입해 출국을 시도했다. 탑승 직전,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가 원소속청인 서울동부지검 검사 신분으로 김 전 차관을 입건한 뒤 긴급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해 출국을 막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바 있다. 이튿날인 3월19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진상조사단 활동 2개월 연장을 발표하며 “드러나는 범죄사실은 신속히 수사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김 전 차관은 출입국관리법 제4조가 출국금지 대상으로 규정한 ‘범죄 수사를 위하여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발표 이후에도 대검이 진상조사단 요청을 거부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대검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정식으로 출국금지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 전 차관은 출국을 시도하기 전, 자신이 출국금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속 법무관 2명이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여부를 조회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전 차관이나 그의 부탁을 받은 누군가를 경유해 조회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직도 김 전 차관을 돕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것인가. 법무부와 대검은 제기된 의혹들을 회피하려 말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관련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출국금지 관련 의혹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검찰 ‘김학의 수사단’의 재수사도 신뢰받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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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맘때 서울 사대문 안에서 분신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제는 경희궁자이아파트가 들어선 돈의문 재개발지역에서다. 일식집을 하던 고모씨(당시 67세)는 2016년 4월12일 15년 된 자신의 식당이 강제철거되는 현장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의 가게가 있던 새문안의 ‘맛집 골목’엔 조선시대 골목의 흔적과 1920년대 한옥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2003년 뉴타운 지역에 편입되면서 전부 헐려 근린공원이 될 운명이었는데,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인 2015년 서울시가 용도를 문화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토지와 건물을 재개발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받기로 하고 ‘돈의문박물관마을’ 조성을 추진해 2017년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근린공원이 되면 종로구로 넘어가게 돼 있던 토지 소유권을 놓고 시와 구가 협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예술가들에게 기획전시 공간으로 내줬지만 관람객이 오지 않아 ‘유령마을’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결국 시는 땅 문제는 해결이 안된 채로 지난해 10월 민간에 긴급 용역을 내서 운영주체를 뽑았다.

서울시는 서울 종로구 경희궁 옆 골목 안쪽에 위치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새롭게 꾸며 3일 공개했다. 최미랑 기자  

“전면 철거하는 재개발을 반성하고 재생의 관점에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마을로 만들고자 했다.” 3일 서울시가 새로 단장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공개하며 밝힌 취지다.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를 콘셉트로 잡았다. 

건물들을 신축·리모델링하는 데는 총 300억원이 들었고 운영엔 연간 25억원이 든다. 사라질 뻔한 공간을 지켜낸 만큼 어떻게 다시 꾸몄을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날 공개된 마을을 둘러보니 내용이 참담했다. 보존한 건물 40채 중 16채를 ‘마을전시관’으로 만들었다. 그중 ‘생활사전시관’에는 연탄과 비누, 빨래판과 아궁이 같은 것들을 모아뒀다. 사진관, 이발소, 오락실, 만화방, 구락부(클럽)도 엉성하게 재현했다. ‘새문안극장’에서는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맨발의 청춘>이 상영됐다. 1970년대 교복을 입은 도슨트(관람객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가 “추억의 감성을 느껴보시라”고 강조하는 동안 골목길에선 1990년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또 한옥을 살려 만든 ‘체험전시관’에선 닥종이·자수·한지공예 등 체험수업을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억지로 짜내는 듯한 공간과 프로그램들이었다. ‘인위적인 테마파크 이상의 의미가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건물들이 남아있는 것 자체로 시민들에게 의미가 클 것”이라고 답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마을전시관’에 새롭게 꾸며진 ‘새문안만화방’(왼쪽)과 ‘돈의문콤퓨타게임장’. 서울시는 “스마트폰 터치가 아닌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하고, 웹툰 대신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꼭 가봐야 할 장소로 추천한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최미랑 기자

재개발에 밀려난 세입자들에게 시는 2015년 “편의시설을 들이게 되면 특별분양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업종보다는 ‘콘셉트’에 맞는 것을 들일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뿔뿔이 흩어져 자리 잡은 상인들이 과연 이곳으로 되돌아올까. 시는 ‘살아있는 참여형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삶이 밀려난 자리에 중구난방으로 과거의 생활을 박제해 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최미랑 | 전국사회부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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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년간 전자 및 정보통신 산업의 눈부신 발전은 현대의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큰 변혁을 가져왔다. 지하철을 타면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보다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 오래고, 잠들기 직전까지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보느라 잠을 설치기도 한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모두 휴대폰 중독 상황이라고 할 만큼 우리는 전자기기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어떻게 통계를 잡느냐에 따라, 조사업체에 따라 추정량이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글로벌 전자폐기물 모니터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전 세계적으로 나온 전자폐기물은 4470만t에 달한다. 이 중에서 43만5000t은 폐휴대폰이다.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무게가 36만5000t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전자폐기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생산-소비-폐기라는 선형경제의 전형적인 예라고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생산-소비-회수-재활용의 순환경제로 바꿀 수 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폐휴대폰 하나에서 회수할 수 있는 부품과 금속 등의 값어치가 최소 10만원은 넘는다. 금속만 봐도 금, 은, 팔라듐, 니켈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불과 20% 남짓한 폐휴대폰만 수집·재활용되고 있다는 통계는 한정된 자원의 지구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라 볼 수 없다. 현재 전 세계 1년 휴대폰 판매 대수는 약 15억대이다. 이론적으로 한 해 동안 생산된 휴대폰의 폐기 후 재활용 가치만 150조원이나 된다. 우리나라만 봐도 연간 2000만대 정도의 휴대폰이 폐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만 잘 회수해 재활용해도 연간 2조원 이상의 가치 창출이 가능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전자 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도 있고, 전자정보통신 강국답게 재활용률도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 

재활용을 제대로 하는 것은 단지 자원 순환에서만 좋은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폐전자제품은 인체 유독성 물질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재활용해 유해물질로 인한 환경 오염을 방지해야 한다.

전자제품이 비싸고 귀했던 옛날에는 마을에 한 대 있는 흑백TV 앞에 온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시청했던 적도 있다. 그 귀한 TV가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 부품을 교체하여 고쳐서 사용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고치는 값보다 새로 사는 값이 더 싸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는 엄청난 양의 전자제품 폐기물 생성과 축적이라는 문제를 가져온다. 지구에는 모든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그 자원들로 만든 물건들은 우선 아껴 쓰고 폐기 시에는 회수 및 재활용을 잘해야 한다. 

신기술이 집약된 새 제품을 보면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고, 구형을 가지고 다니면 체면이 안서 신제품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장이 났는데 고칠 수 없거나 고치는 비용보다 새로 사는 것이 비용 최적화를 위해 더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능이 다수 들어가고 빨라지고 더 멋있는 새로운 휴대폰을 가지고 싶은 욕구를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구형 휴대폰을 버리지 않고도 신형 휴대폰처럼 좋게 할 수는 없을까? 초기의 휴대폰들은 대부분 배터리 분리형이었다. 배터리의 성능이 저하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배터리만 새것으로 교체하면 되었다. 지금은 일체형이다 보니 배터리만의 문제인데도 멀쩡한 휴대폰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면 5년 전, 10년 전 판매한 휴대폰이라도 회수하여 부품 교체 등을 통한 기능 및 성능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면 어떨까? 다양한 프로그램의 구동 속도 문제도 클라우드와 연계하여 실제 휴대폰 성능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고성능을 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재활용의 경우에도 폐기 시 회수된 휴대폰에서 어떠한 부속과 부품들을 재활용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고 제조하면 재활용률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두를 가능하게 할 휴대폰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할 경우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조사가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제조 및 서비스사의 형태로 변신하면 어떨까? 제품을 판매한 후 지속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비용을 받고 서비스를 해주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면서도 소비자의 기능 및 성능 향상 욕구는 어느 정도 맞춰줄 수 있을 것이다. 매 1~3년마다 바꾸는 휴대폰보다 더 오래 사용하는 세탁기,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들도 마찬가지로 순환경제의 틀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 제조, 소비, 재활용을 해야 한다.

그러면 전자제품들의 순환경제를 위해 어떠한 것들이 고려되어야 할까? 

우선은 디자인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제품의 수리 및 업그레이드가 용이하게 디자인하고 제조해야 한다. 전자제품의 향상된 기능과 성능에 대한 욕구는 나날이 더욱 증대될 것이므로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과 서비스의 향상이 필요하다. 수많은 휴대폰 하나하나의 성능만을 극대화할 것이 아니라 일정 성능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더라도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로 성능과 기능 향상을 선사할 수 있어야겠다. 전 세계적으로 제조사별로 다른 부품들의 표준화를 더욱 강화하여 폐전자기기 부품 등의 재활용률을 높일 필요도 있다. 기술 개발을 통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금속 등의 회수율도 높여야 한다. 서비스가 강조된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도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유경제의 틀에서 전자제품은 회사 소유로 하고 회사는 제품의 질에 대한 책임을 지며, 소비자는 소유하는 대신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 쓰는 모델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의 지구. 우리뿐 아니라 미래세대도 살아갈 지구의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며 순환경제 시대로의 빠른 전환을 기대해본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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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건 듯 불어 잠자던 모란대에 나무마다 잎 트고 가지마다 꽃피는 3, 4월 긴 해를 춘흥에 겨워 즐기다가 지친 다리를 대동문 앞 드높은 2층루에 실어놓고 패강(浿江, 대동강) 푸른 물 따라 종일의 피로를 흘려보내며 그득 담은 한 그릇 냉면에 시장을 맞출 때!”

식민지시기의 인기 잡지 ‘별건곤’ 1929년 12월호에 실린 평양냉면 예찬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의 한국어로 풀어 써도 바로 읽기가 만만찮다. 요컨대 봄바람 살랑 부는 봄은 생명이 움트는 봄의 정취에 취해 대동강 푸른 물 따라 놀기 좋은 때이며 “가득 담은 한 그릇의 냉면”의 제철이라는 소리다. 여기서 평양냉면을 수식하는 한마디는 “사시명물(四時名物)”이다. 곧 봄여름가을겨울의 냉면 맛이 다 따로 있으니, 사계절이 다 이유 있는 냉면의 제철이라는 뜻이다.

냉면은 식민지시기에 이미 사계절의 별미로 대중에게 자리를 잡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의 미식가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의 품평도 있다. 심노숭의 입에는 메밀국수라면 평안도 것이 최고이고, 그 가운데서도 차게 조리한 국수가 더욱 좋았다. 심노숭이 냉면의 원형에다 지역과 조리법에 미식 담론을 더한 때는 유럽 미식학의 새 장을 연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75~1826)이 프랑스 음식을 열심히 먹고, 먹은 만큼 문자먹방을 하던 때와 겹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마침 새봄에 냉면을 들던 눈 파란 사람이 하하 웃는다. 한때 북미, 유럽에서는 젓가락질할 줄 알고, 게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스시’와 ‘사시미’를 먹을 줄 알면 제법 힙스터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한국에 온 이방인 가운데는 그럴듯한 낯빛으로 “아일럽 냉면!” 하고 말하지 못해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냉면을 해치움으로써 힙스터 단계 승급을 바라는 이도 더러 보인다. 그야말로 세상이 바뀌었다. 몇 해 전만 해도 낯선 음식, 못 먹으면 할 수 없지 하는 분위기가 우세하지 않았나.

잠깐 설명이 필요하다. 음식에서 영어권의 ‘hot’ 그리고 ‘cold’는 뜨거워 입천장 까질 지경이나, 이뿌리 시릴 만큼의 차가움이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 일상의 상온에 견주어 따듯한 정도, 상온 또는 상온보다 살짝 식은 정도가 각각 그네의 ‘hot’이고 ‘cold’이다. 이 땅에 온 많은 이방인이 극단적으로 뜨겁거나 극단적으로 찬 먹을거리는 별로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러니 설렁탕, 삼계탕, 콩나물국밥 등을 코앞에 두고, 바로는 먹지 못하고 숟가락으로 국탕의 표면을 살살 헤집으며 제발 한 김 빠지기를 기다리는 모습, 막 끓어오른 전골을 접시에 덜고서도 한참 기다리는 모습은 그네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냉면에서도 그랬다. 많은 이방인이 살얼음 엉긴 냉면 대접, 또는 얼음이 풀렸다 해도 표면에 이슬 맺힌 면기를 받고 나면 잠깐 멀뚱멀뚱이었다. 같이 앉은 한국인 흉내를 내 육수를 들이켰다가도 싱긋 웃으며, ‘실례지만, 나는 냉기 더 빠지면 먹을게’ 하는 몸짓과 표정을 보이곤 했다. 그러다 확 달라졌다. 너 냉면이야? 나 미식가에 힙스터야! 아시안 퀴진과 코리안 퀴진 다른 줄 알아. 전에 없던 ‘cold’도 감수하고, 볼 미어터지게 사리도 우겨 넣고, 제법 호쾌하게 면기를 탁자에 탁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지! 하는 이방인들과 더러 냉면을 들게 된다. 여기 이르기까지 억지는 소용이 없었다. 

외국인들아, 제발 한국 음식의 대단함을 좀 알아줘 하는 안달복달은 늘 효과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우리는 외래 음식을 감각하고 소화한다. 뒤집어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런지 안 그런지 이방인 친구를 데리고 새봄에 냉면 나들이 한번 하시라. 중간에 “심노숭이라고 브리야사바랭이랑 동시대인이야.” 한마디 슬쩍 찔러 보시라. 그네도 마찬가지다. 내 눈앞의 음식이 연원 깊다는 사실을 멋쟁이의 문자 속으로 증거하면 어쩐지 더 대단해 보이게 마련이다. 분위기 됐을 때 내놓으면 된다. 먹고 있을 때, 듣고 싶을 때 슬쩍 나를 꺼내 보이기. 광고홍보는 이쯤으로 충분하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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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행사로 한 달 넘는 장기간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계획을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작년부터는 북한이라고 답을 하는데, 기도를 섞어서 하는 소리다.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길 빌어본다. 이민이나 월북은 능력도 없고 간뎅이가 붓지 않아서리. 길거리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지구 어디라도 좋아. 시나 편지를 쓸 수 있는 연필과 종이가 있다면 그 어디나 “가즈아”!

북한에 가려면 먼저 생활 북한어 공부를 해둬야 한다. 최근에 여행가 김준연씨가 펴낸 <북한 여행 회화>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먼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식당에서부터 챕터 원이 시작된다. 북한에선 오징어를 낙지라 부르고, 낙지를 오징어라 부른다. 그러니까 연포탕을 만약 주문하면 오징어탕이 나오게 되시겠다. 닭알두부(계란찜), 고기떡(소시지), 줴기밥(주먹밥), 고기마룩(고깃국), 썩장(청국장), 보가지국(복어국), 꼬부랑국수(라면), 곽밥(도시락), 김치남비탕(김치찌개), 발쪽(족발), 날맥주(생맥주), 빼주(고량주), 우림술(과일주) 뭐 이런 식이다. 회화 공부를 왜 해야 한다는 말인지 이제 짐작이 조금 가실 게다.


챕터 투는 호텔. 발바리차(택시), 유람뻐스(관광버스), 초대소(고급호텔), 건발기(드라이어), 간데라(촛불), 색텔레비존(컬러 티브이), 얼군제품(냉동식품), 사과단졸임(사과잼), 썩음막이약(방부제), 쫑대바지(레깅스), 보안원(경찰), 끌신(슬리퍼), 쪽머리 아픔(편두통), 머리물 비누(샴푸), 계단 승강기(엘리베이터)…. 이 정도만 외우면 무사히 먹고 자고는 가능하겠다.

거리나무(가로수)와 드림버들(수양버들)이 늘어선 강변에 앉아 있노라면 이런 방송소리가 들린단다. “남존녀비 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생활양식이 지배하는 남조선 사회에서 녀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하는 코맹맹이소리. 그것마저 영어, 일본어, 한자말이 섞인 온갖 잡탕말….” 이것을 대한민국 표준말이라고 아나운서 리춘희 할머니가 마구마구 뭐라고 까신다나. 흐흐. 맞는 말씀도 있고 아닌 말씀도 있는데, 몸에 좋은 약은 귀에도 쓰고 아프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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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대형마트·백화점·슈퍼 등에서 비닐봉지 사용이 일제히 금지된 이번주, 공교롭게도 두 장의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나는 이탈리아 해안에서 발견됐다는 향유고래. 날카로운 이빨을 자랑한다는 이 고래의 모습은 처참했다. 지난 주말 이탈리아 해안에서 발견된 8m 길이의 고래 배 속엔 무려 48.5파운드(22㎏)의 쓰레기가 담겨 있었다. 상표 및 바코드가 붙은 세제 용기를 비롯해 접시, 쇼핑백, 낚싯줄 등이 나왔다. 이 암컷 고래는 새끼도 배에 품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은 최근 국내 한 미술관에 걸린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의 ‘앨버트로스’다.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그가 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찍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새’ 앨버트로스는 불행하게도 인간의 탐욕과 대량 소비가 불러온 재앙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어미 새는 독약인 줄도 모른 채 주워온 플라스틱을 아기 새에게 먹이고, 죽은 앨버트로스의 배에는 각종 플라스틱 조각들이 가득 차 있다. 슬픔을 넘어 죄책감, 그리고 분노마저 불러일으킨다.

플라스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부쩍 국내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썩지 않는 쓰레기를 품을 수 있는 생태계의 임계치가 넘은 듯 여기저기에서 자연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플라스틱의 폐해가 무서운 것은 최후의 피해자는 인류가 될 것임을 누구나 짐작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벨기에 출신의 미국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가 1909년 발명한 이후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격히 생산량이 증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65년간 플라스틱은 83억t 생산됐고, 이 중 63억t이 쓰레기로 버려졌다. 

특히 방치된 플라스틱이 잘게 쪼개져 생긴 미세플라스틱은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낯설었던 미세먼지가 현재는 일상적인 환경피해가 됐듯 몇 년 후면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공포로 해산물을 마음놓고 못 먹게 될지도 모른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결국 각국 정부도 나서고 있다. 유럽의회는 2021년부터 나이프·빨대·면봉 막대·접시 등 플라스틱으로 만든 10개 종류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주 가결했다. 찬성이 560표로 반대 35표, 기권 28표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법안은 또 2029년까지 플라스틱병의 90%를 재활용하고, 2025년부터는 플라스틱병 제조 시 재생 플라스틱을 25~30%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미국의 경우 주정부 차원에서 움직임이 감지된다. 뉴욕주는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번째로 내년 3월부터 소매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다음달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각 카운티가 종이봉투를 유료화하는 방안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비슷한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중국이 폐비닐 수입금지를 결정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일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재사용률을 끌어올린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이제 쇼핑하러 나서기 전 장바구니를 꼭 챙긴다. 기업체들의 과대포장 문제는 제쳐놓고 일반 시민들만 다잡는다는 불만도 들린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과대포장을 우선 단속하고 비닐봉지 대체재를 만들어 보급하는 게 더 좋았을 법하다. 그러나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의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이다. 과대포장도 따지고 보면 보기 좋고 깨끗한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한 물건은 폐기도 인간이 해야 한다”는 한 환경운동가의 말처럼 이제는 누구라도 나서야 할 때이다.

<문주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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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져 있더라.”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이 남긴 말이다. 최근 ‘할담비(할아버지+손담비)’로 불리며 전국구 스타로 뜬 지병수씨(76)도 이런 기분 아닐까. 지난달 24일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지씨는 손담비씨의 댄스곡 ‘미쳤어’를 춤과 함께 열창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온라인에 올라온 동영상은 조회수가 200만을 넘어섰다. 이후 <연예가중계>에서 손씨와 실제 듀엣 무대를 선보였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지씨는 “아이돌 노래를 좋아한다. 티아라, 카라, 박진영 ‘허니’도 좋아하고, 특히 손담비 노래는 하도 많이 연습해서 잘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방송된 KBS 1TV <전국노래자랑> 종로구편에 출연해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불러 화제가 된 지병수씨(76)가 28일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 기자 jeongk@kyunghyang.com

쌍방향 소통 프로그램인 MBC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 V2>에 배우 강부자씨(78)가 도전장을 던진 건 뜻밖이었다. 문자메시지도 못 보낸다는 그는 “60년 가까이 할머니 역할, 아줌마 역할만 맴돌았는데 나 자신을 변화시켜보려고 나왔다”고 했다. 강호의 고수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로 자웅을 겨루는 마리텔에 들고 나온 무기가 축구라는 점은 의외성을 더했다. 오랜 ‘축덕(축구 덕후)’을 자임한 강씨는 등번호만 보고 선수 이름을 척척 맞히는가 하면, 해외 축구에 대한 정보도 술술 풀어냈다. 축구계 라이벌 호날두와 메시를 두고는 “호날두는 축구를 신사가 하는 것처럼 하고, 메시는 농부처럼 한다”고 비유했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해머니(해외 축구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지병수·강부자씨처럼 적극적이고 왕성하게 사회·문화 생활을 하는 고령자들을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 일컫는다. 이들은 대중문화계의 블루칩이자, 유통업계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이 같은 트렌드의 이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노인빈곤이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1인방송 도전은커녕 1년에 영화 한 편 보기 힘든 노인들이 적지 않다. 노인빈곤을 ‘이미 늙은’ 사람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노인 소득보장체계를 보다 정교히 설계하고, 나아가 현 청장년 세대의 빈곤과 소득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면 ‘미래에 늙을’ 이들은 더 고달파질 터다. 더 많은 ‘시니어’가 ‘액티브’해질 때 공동체에도 활력이 넘칠 것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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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비무장지대(DMZ) 일부 지역이 포함된 ‘DMZ 평화둘레길’ 3개 코스를 이달 말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대상 지역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감시초소(GP) 철거, 유해발굴 등 긴장완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고성·철원·파주 등 3곳이다. 이 중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해안 철책을 따라 금강산전망대까지 방문하는 동부전선의 고성 코스가 우선 개방된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인 화살머리고지의 GP와 도라산전망대 인근 파주GP 등 DMZ 구간이 포함된 중부 철원과 서부 파주 코스는 유엔사령부와의 협의를 거쳐 개방시기를 결정하게 된다. DMZ 내 철책선 통문을 넘어선 GP 지역까지 시민에게 개방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이번 평화둘레길 개방은 의미가 각별하다. 고성, 철원, 파주는 한반도의 3대 축선에 해당되는 군사적 요충지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통로로 이용됐고, 남북이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격전지이다. 지난해 남북관계 정상화 이후 군사적 긴장완화 작업이 추진되면서 전쟁의 비극이 서린 지역들이 민간에 개방될 정도로 평화가 다져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가족, 친지들과 함께 DMZ 내 오솔길을 걸으며 분단현실을 체감하고 평화정착 의지를 굳건히 하는 평화교육 현장이 마련되는 셈이다. 한반도 긴장완화 작업은 시민들의 참여가 뒷받침될 때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평화둘레길 개방을 환영한다.

다만 평화둘레길 운영에서 무엇보다 유념할 것은 시민들의 안전이다. DMZ 내 지역은 남북한 군의 수색조가 정기적으로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곳인 만큼 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 또 DMZ 내에 설치된 남북 GP 간 거리가 1㎞ 안팎에 불과한 데다 남북이 서로 중화기를 배치하고 있어 우발적인 사고가 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가 당초 철원, 파주 코스까지 이달 말 함께 개방하려다 신변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감안해 DMZ 내에 진입하지 않는 고성 코스만 우선 운영키로 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다. 

정부는 평화둘레길을 개방하기 전에 북한 군당국과 안전대책에 대해 면밀히 협의할 것을 당부한다. 정부는 평화둘레길이 개방되는 이달 말 이전에 북한 군당국과의 협의를 완료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 시민들이 안심하고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시민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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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검찰은 300페이지에 달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공소사실은 무에서 무일 뿐입니다. 저는 공소장에 대응해야 합니다. 무소불위 검찰과 마주서야 합니다. 하지만 제게 무기라고는 호미 한 자루 없습니다. 재판은 재판입니다. 공평과 형평이라는 우리 형사소송법 이념이 지배하는 법정이기를 바랍니다. 실체적 진실이 발견되고 형사소송법 원칙과 이념이 구현되는 법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석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말했다. 

그러면서, 영민하고 사명감에 불타는 검사 수십명이 만든 공소사실에 대응하려면 사건을 잘 아는 당사자가 불구속으로 재판받아야 한다고 했다(하지만 보석은 기각됐다). 이렇듯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혐의를 다투기에 앞서 소송법 원칙을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검찰이 공소장일본주의(一本主義)를 위반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장 하나만 제출하라는 원칙이다. 판사와 배심원에게 예단을 주는 서류를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소장에 법령이 요구하는 사항 이외 사실을 적어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하는 것도 금지된다. 

공소장일본주의가 무엇인지 대법원이 가장 치열하게 논쟁한 판결이 문국현 사건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 검찰은 낙선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혐의와는 무관하지만 기업인 출신인 문국현 후보는 기업인 출신 이명박 후보가 부도덕하다고 비판했었다. 검찰은 공소사실과 관계도 없고 입증도 되지 않는 내용을 산만하게 공소장에 적었다. 이 정도라면 소송법에 따라 공소기각을 해야 한다고들 했다. 2009년 대법원이 문국현 사건을 선고했는데, 공소기각 의견을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대법관이 냈다. 

그러나 주심 신영철 대법관을 비롯한 나머지 대법관들이 “1심에서 문제제기해야 했다”며 유죄를 확정했다. 신영철 대법관의 문장은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은데 이때도 다르지 않았다. 요약하면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이 맞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내용이다. 이런 애매한 다수의견을 보충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양승태 대법관이다. “공소사실을 특정하려면 그 배경과 과정을 자세하게 기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양승태 대법관은 2011년 대법관에서 퇴임해 같은 해 대법원장이 된다. 임명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공소장일본주의에 관한 양승태 대법관의 보충의견은 이렇다. “사안이 복잡하거나 범행 수법이 교묘한 경우 또는 상황적 요소에 의해 범죄의 성립 여부가 좌우되는 미묘한 사안에서는 범행에 이르는 과정이나 그 배경 등 전후의 정황에 관한 설명 없이 단순한 범죄구성요건에 직접 해당하는 행위만을 기재하여서는 공소사실을 완성도 높게 특정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 범행의 동기, 배경, 과정, 기타 정황적 사정을 필요한 범위에서 기재하는 것은 형사공판 절차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진행 과정이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은 양승태 대법관은 피고인에게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에 의해 심판의 대상이 특정됨과 동시에 입증의 대상과 심리의 방향도 정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기재는 오히려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렇게 결론 냈다. “공소장의 기재 내용은 필연적으로 증거로 확보되어 있는 내용의 축약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인바, 증거에 의한 입증을 증거의 인용과 혼동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의견이 법정의견이었다면 공소장일본주의는 사실상 폐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형사법정은 검사의 놀이터, 판사의 휴게실, 전관의 영업장이다. 검사는 정의감으로 포장된 출세욕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털어대고, 판사는 복잡한 기록만 들춰도 전문가 소리를 듣는 민사담당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전관은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된다며 거액을 뜯어낸다. 국회와 언론도 다르지 않다. 국회는 작은 사건만 생겨도 형량을 올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다. 언론은 삼류 수사관이 되어 혐의를 인정하라고 피의자를 윽박지르고, 피의사실공표죄의 도구가 되기를 애원한다. 

형사재판에 쓰이는 판례·법률 가운데 제대로인 게 드물다. 전문증거에 불과한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이 있고, 이런 피의자신문에 묵비하면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일제가 본토에서도 안 하던 제도를 식민지 조선에 심었다. 해방 뒤에는 친일파 법률가들이 군사정권에서 유지했다. 피고인 양승태는 대법관 양승태와 싸워야 한다. 공소장일본주의 정도는 만만한 상대다. 그보다 강한 대법관 양승태들이 기다리고 있다. 피고인 양승태가 대법관 양승태를 이기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지금은 호미 한 자루 없지만 결국 밭을 일구고 인권을 전진시키리라 믿는다. 아이러니지만 역사란 이런 것이다. 양승태, 양승태를 이겨라.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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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양승태

꽃샘바람이 매서웠다. 하늘은 금방 잿빛으로 뒤덮였고,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졌다.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목을 움츠리고 녹색 신호등이 점멸하는 횡단보도를 후다닥 뛰었다. 그는 길 건너편 건물 안에 서 있었다. 티셔츠에 얇은 블라우스만 받쳐 입은 그의 얼굴이 파르스름했다. 열여섯 살 소녀에게 날 추운데 두껍게 입고 나오지 그랬냐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군소리다. 그는 생일날 번화가에 나와 점심을 먹는 특별한 시간에 마땅한 옷을 고르느라 전날 밤부터 고심했을 것이다. 꽃샘추위만 아니었다면 봄에 딱 맞는 옷차림이긴 했다.

다행히 식당은 지하철역에서 가까워 오래 걷지 않아도 됐다. 그는 식당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학교 친구들하고 생일파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그는 오물오물 먹으면서 말했다.

“우리 반에 필리핀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애들하고 정말 잘 지내요. 그런데 저는 친구를 못 사귀어요.”

교실에서는 친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그는 큰 눈을 깜박이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내가 좀 다르게 생겼어요?”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아라비아반도의 유구한 숨결이 담겨 있다. 그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사막의 뜨거운 햇빛과 아라비아해의 푸른 바닷물이 그에게 닿아있다. 그러하기에 맞은편에 앉은 나와 다르기에, 너는 더 아름답다는 말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른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당황스럽고 화도 나요.”

우리는 모두 어디서 온 걸까? 그와 나는 알고 보면 우리 모두 우주 어디선가 이 지구로 왔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웃었다. 그는 식당에서 나와 걸으면서 텔레비전에서 제주도에 정착한 난민들의 사연을 봤다며 중얼거렸다. 참 힘들 거예요. 

지구에서 열여섯 해를 산 그는 뻔히 알고 있다. 지구인들의 진짜 질문은 ‘너는 어디서 왔느냐?’가 아니라 ‘너는 왜 여기에 왔느냐?’라는 것을. 그는 꽃샘바람을 뚫고 통통통 뛰어갔다. 그가 매서운 바람을 잘 이겨내며 언제까지나 힘차게 달리길…….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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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화재청이 ‘남북문화유산 정책포럼’을 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참석한 그 자리에서 비무장지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비롯해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안다. 물론 단골손님인 생태계 보존에 관한 내용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개인 생활사나 비무장지대에 있었던 마을과 관련한 조사와 같은 내용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빠졌다. 

어느 특정한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이 빠졌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한탄강이 임진강과 만나고 다시 그 강이 한강과 만나 서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경기도의 비옥한 땅과 강원도의 험준한 산지가 빚어냈을 문화에 대해서 말이다. 문화란 형체가 있어서 유형이라고 불리는 것과 형체가 없어서 무형이라고 불리는 두 가지가 있다. 비무장지대에도 다를 바 없이 유형과 무형 두 가지의 문화가 존재하고 그것 외에 전쟁이 남긴 독특한 문화가 하나 더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경기도 일대의 비무장지대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강과 관련한 삶의 문화가 남아 있다. 약 5년 전, 임진강 일대의 참게잡이를 다시 조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모두 그물로 잡는 것일 뿐 20여년 전 늙은 어부들이 전해주던 새끼줄에 잘 여문 수수를 거꾸로 매달아 물에 넣는 게잡이 방식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밤새 강물에 넣어 놓으면 여문 수수에 게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서 새끼줄을 둘둘 말기만 하면 되었다고 했다. 

강 곁에는 강마을이 있기 마련이고 그 마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은 강이었다. 생활이라는 것은 자연과의 투쟁을 말하는 것이고 그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지혜를 짜내고 자연과 맞서거나 혹은 피하며 삶을 강구한다. 그것이 문화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실 강이나 바다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이나 바다 곁에 사는 이들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해마다 굿을 벌이기도 했는데 비무장지대 인근 강마을에서는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고랑포가 대표적이다. 

민통선에서 해제되긴 했지만 여전히 남방한계선 철조망과 붙어 있는 고랑포는 전쟁 전만 하더라도 경기도 일대에서 내로라하던 나루터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화신백화점의 분점이 있을 정도로 상권이 좋았던 곳이다. 장단이나 개성에서는 수레나 자동차로 농산물이 내려오고 서해바다에서는 새우젓과 소금을 비롯한 갖가지 수산물이 배로 올라왔다. 그곳으로부터 강폭이 현저하게 좁아지는 임진강과 한탄강 상류로는 바다에서 오는 배와는 달리 폭이 좁고 뾰족하게 생긴 배들이 수산물을 싣고 강을 따라 내륙 마을로 흩어졌다. 

물류의 유통이 많은 만큼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돈이 흘러 다녔다. 그러니 임진강 수신(水神)을 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루터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십시일반 돈을 추렴해서 굿을 벌였는데 아주 성대했다. 개성권번에서 기생들과 무동을 불러와서 사흘 동안 굿을 놀 정도였다. 1990년대 후반 그곳을 조사할 때만 하더라도 당시 개성권번의 기생으로 고랑포 고창굿에 참가했던 이가 문산읍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노쇠했던 터여서 지금은 살아계시지 않다. 또 고창굿의 현장 모습을 상세하게 구술해주던 권응찬옹은 젊은 시절 장남면 면서기를 했던 터여서 굿을 치르기 위해 들어갔던 비용과 과정까지 상세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구술 당시 이미 80대 중반이었으니 그도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는 굿이 벌어지는 날이면 고랑포와 가까운 개성이나 파주 그리고 연천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어 발 디딜 틈이 없는 큰 잔치였다고 했다. 이윽고 굿이 절정에 달하면 무당들이 배를 타고 강 가운데로 나가서 주무(主巫)가 강에 세 차례 뛰어들었다가 나오며 수신을 달랬다고 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축제가 벌어졌던 마을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축성 양식이 동시에 보이는 호로고루(瓠蘆古壘)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이 있다. 그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왕릉이나 성에 올랐다가 돌아가는 것이 전부일 뿐 그 누구도 고랑포에서 고창굿이 벌어졌거나 텅 빈 길 양쪽으로 상가들이 즐비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돌아간다. 

지금까지 말한 지역은 민통선을 포함한 접경지대와 비무장지대 전체에 있어서 작은 점과 같은 곳이다. 바다와 깊은 산속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그들이 남겨 놓은 것들은 또 어느 정도일까.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에서는 전쟁 전에 배를 타고 한강 하구인 조강을 건너 북쪽 강안으로 가서 약수를 길어 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마파람이 불기 시작하면 포대에 주워 담다시피 하던 장어잡이는 철조망이 쳐지고 난 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그렇게 비무장지대 일대는 한순간에 문화의 단절이 강제되었던 곳이다. 

그런데 말이다. 비무장지대는 떠나 올 때 이미 다시 돌아가기로 한 약속의 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곳에는 사람이 살았고 마을이 있었으며 그 마을마다 일구어 놓은 세시풍속과 문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사이 나무와 풀이 웃자라고 사람의 공격을 피해 동물들이 숨어들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런 현재가 귀중하지 않다거나 쫓아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에 대한 관심을 그동안 귀에 닳도록 들은 생태계 보존만큼 기울였는지는 의문이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 또한 생태계 보존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다. 

글머리에 말한 포럼이 있던 날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공지가 하나 떴다. ‘숨은 무형유산을 찾습니다. 대국민 제안 공모’라고 말이다. 제안한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비무장지대의 무형유산을 조사하자고 말이다. 온전히 사람이 지닌 무형유산은 사람이 떠나고 나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서둘러 전쟁 전 지금의 비무장지대와 그 인근에 살았던 이들을 찾아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생활의 흔적을 기록해야 한다. 이제 그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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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저)를 읽었다. 그저 직장 생활에서 오는 우울감을 달래볼까 싶어 집었는데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어 푹 빠져 읽었다. 뉴스를 채우는 수많은 갈등은 멀리서 보면 시대정신이라는 전선을 형성한다. 그런데 요즘 여러 사건들이 어지럽게 벌어져도 그것을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전선에 ‘직장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이니 많은 것이 선명해졌다.

촛불로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며 정치적으로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보여준 시민들이지만 직장 문만 열고 들어가면 봉건 사회에서 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IT업체 직원은 사장에게 두들겨 맞아도 참아야 했고 간호사들은 기강이라는 이름 아래서 태움을 당해야 했다. 어떤 승무원은 오너의 딸이 문제 삼은 땅콩 때문에 울분을 삼키며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고, 다른 항공사에선 회장님 앞에서 ‘재롱 잔치’가 벌어졌다. 매장에선 손님이 갑질하며 무릎을 꿇게 해도 직원은 그 수모를 견뎌야 했다.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그렇게 만들었다. 현직 검사는 성추행을 당해 항의한 뒤에는 좌천당해야 했다. 방송사에선 얼마 전까지 장시간 노동이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어 왔다. 함께 일했던 어느 작가는 전에 MC 한 명이 자장라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녹화 때마다 대기실 앞에서 부르스타에 불을 올려야 했다며 씁쓸해했다. 어느 대학 조교는 여전히 담배 심부름을 하고 있고 교수 자제분이 결혼하면 청첩장을 접어야 한다.

어느 특이한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 말하기 어렵다. 여전히 육아휴직을 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엄마들, 노래방에 끌려가서 몇 시간씩 노래를 불러내야 하는 사람들, 퇴근 시간이 오면 존재하지 않는 절묘한 타이밍을 위해 헛되이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나아가 불법이 강요되어도 해야 하거나 모른 척해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게 벌어진다. 직장은 가정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닿지 않는 ‘가까이 있는 변방’이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잃었다. 국민연금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조씨 일가의 추락이 거의 ‘괘씸죄’ 때문이었다는 것에도 방점을 찍을 만하다. 횡령 등 각종 범죄에도 경영권을 지켜 온 다른 그룹 오너들과 비교했을 때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벌인 일련의 사건들은 한편으로 사소해 보이지만 직장인들이 폭넓게 느끼는 공분 포인트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폭발력이 컸다. 조 회장의 대표이사직 상실은 직장 민주주의 결여가 회사 경쟁력 부족의 원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직장 민주주의는 시기상조이거나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어차피 남의 돈 먹는 건데 말 안 들으면 어쩌자는 거냐는 생각도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고, 존망을 두고 일사불란해야 하는 조직이 민주적이면 일이 되겠냐는 생각도 흔했다. 하지만 조직의 비민주성이 조직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슬슬 체감하기 시작했다. 또 젊은 사람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데 ‘직장 내 분위기’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급여가 적더라도 ‘좋은’ 회사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선진적인 기업들이 앞장서서 직장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곳에 인재들이 몰릴 거다. 우석훈 선생의 말처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만 절에는 땡중만 남는다. 미투 운동을 꽤 많은 젊은 남성들이 지지하고 있다. 그건 권력으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다. 미투 운동은 미시 파시즘과의 대결이라고 말할 때 가장 선명하게 이해된다.

국가의 민주화는 시민들이 다른 국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딜 수 있지만 기업의 민주화는 노동자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더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인력이 넘치고 자리가 부족한 시대라 해도 말이다. 다만 직장 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을 우리가 얼마나 가질 수 있고 요구하느냐에 따라 속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남모를 우울감이 거대한 우울감의 한 조각이었다는 기분이 들자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그리고 연결된 어딘가엔 일 때문에 사람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있으니 우리의 감수성을 이 연대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김신완 MBC PD·<아빠가되는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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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5일이 청명(淸明)이고 6일은 한식(寒食)입니다. 청명은 양력인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로 대략 양력 4월5일 무렵에 옵니다. 그리고 한식은 음력 날수로 꼽지만 스물두 번째 절기이자 양력인 동지(12월22~23일)로부터 105번째 날로 정한지라 양력인 청명과 늘 하루 차이 아니면 같은 날에 오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입니다. ‘업어치나 메치나’와 같은 속담이죠. 

조선 중기까지는 한식 날짜가 청명보다 앞에 왔습니다. 그러다 17세기에 더욱 정확한 역법을 새로 만들면서 청명 날짜가 한식 앞에 오게 됩니다(그러니 이 속담은 조선 후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역법이든 신역법이든, 하루 먼저 죽든 하루 더 오래 살든 그게 그거란 말입니다.

흔히 네오내오없다고 할 때 피차일반이라는 말을 씁니다. ‘일반(一般)’은 하나의 경계, 같고 뻔한 바운더리(boundary)라는 뜻입니다. 내가 잘났니 너는 못났니 해봐야 나나 너나 거기서 거기죠. 돈 좀 있고, 아파트 평수 더 넓고, 사짜돌림이면 으레 자기들끼리 모이게 마련입니다. 그런다고 누가 뭐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리 아닌 데서도 잘난 양 목 뻣뻣하고 눈 게슴츠레 내려다보면 상것도 그런 상것이 없지요.

언론에 많이 알려진 ‘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휴거(携擧·예수 재림 때, 구원받을 이를 하늘로 올리다)와 우연찮게도 동음이의네요. 굳이 ‘휴’로 시작되는 아파트 브랜드로 말 만들어 영역 구분한 그게, 과연 아이들이었을까요? 어차피 같은 학교 보내는 처지이고, 아파트 시세 따라 울고 웃는 고만고만한 바운더리입니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어렵듯 고작 집 한 채 가지고 무게 잡는다면, 청명에 죽든 한식에 죽든 똥집 무거워 어떤 휴거인들 죽어도 못 들어갈 겁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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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한 통 썼다. 편지의 형식을 빌린 인터뷰 요청글이었다. 한번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보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마음을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연락처를 알아내고도 하루를 꼬박 망설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인터뷰를 청하는 이유를 적은 뒤 최근에 쓴 몇 건의 인터뷰 기사를 덧붙였다. 일로 쓰는 모든 글이 다 어렵지만 이 글이 근래에 쓴 어떤 글보다도 쓰기 힘들었다. 읽고 또 읽으며 몇 글자를 붙였다 뗐다 한 끝에 전송을 눌렀다. 편지를 보낸 지 11시간쯤 지나서 답을 받았다. 편지의 수신인은 세월호 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이다.

‘비겁하다’는 말이 제일 두렵다. 그건 내가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나는 정면승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힘들고 어렵고 골치아픈 일은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꼭 해야 할 말, 꼭 해야 할 일도 빙빙 돌리고 미루다가 타인에게 더 상처를 주고 폐를 끼치는 일도 많았다. 가끔 강심장 같다는 평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정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중요한 거의 모든 순간에 실은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나의 ‘비겁의 역사’는 길고도 길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태도였다. 2014년 4월 이후 몇 달간은 대한민국의 모든 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세월호 사건을 취재했다. 매일 화가 나 있었고 기사를 써도 써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맡았던 취재가 끝난 뒤에는 의식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피해 도망다녔다. 저 엄청난 분노와 슬픔 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반복해서 다짐했다. 세월호 관련 기록을 정리한 여러 권의 책들도 쌓아만 두고 한 장도 읽지 않았다.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앞을 여러 번 지났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팽목분향소 앞 자갈밭에 놓여 있는 노란 조약돌. 색이 바래고 글씨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러나 도망다닌 5년 동안 세월호 사건에서 조금도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좋아하는 책과 영화와 노래의 모든 슬픈 서사가 창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세월호의 이야기로 읽혔다. 책을 읽다 말고 영화를 보다 말고 노래를 듣다 말고 우는 것도 아닌, 울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몇 번을 멍하니 있었다. 누군가 ‘골든타임’이라는 표현을 쓰면 명치 끝이 아팠다. 2016년 늦가을,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서 촛불시민들 사이로 세월호 유가족들이 탄 차가 들어섰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길을 열라고 외쳤지만, 노란 리본을 단 그 차를 본 순간 내 목소리는 꽉 막혀버렸다.

2019년 4월, 지금 책상에는 세월호 관련 책과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인터뷰를 청한 기자가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기꺼이 자신의 아픔을 들려주기로 결심한 분을 만나기 위해, 그동안 외면하려 애썼던 깊고 어두운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작가들의 글을 모은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신형철씨는 2014년 이렇게 썼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그는 지난해 펴낸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서문에선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가라앉는 걸 본 이후 한동안 나는 뉴스를 보며 자주 울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괴로워 피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눈물도 멈췄다. (중략) 이런 일들을 겪고 나는 무참해져서 이제부터 내 알량한 문학공부는 슬픔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을 말하는 것은 두렵고 아프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어쩌면 100년 뒤에도 이 사건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한다. ‘쫄보’가 될지언정 더 이상 비겁하게 살지 말자는 마음으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가르침을 되새기며. 모두가 침몰한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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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살 것 같은 산청(山淸)의 웅석봉 오르는 길이다. 초입에서부터 경사가 심했다.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라지만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내 고향 거창이 지척이다. 지리산에 더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해복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곳의 공통점은 산비탈에 자리한 마을이라고 한다. 경사로 인한 긴장감이 항상 몸에 전달되기에 그런 것인가 보다. 나보다 키 큰 나무들, 오래 사는 나무들. 저들도 모두 저 험준한 비탈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보는 것도 순간이다. 잠깐 치고 올랐는데 오늘 보려고 작정했던 나무의 군락이 일순 눈에 들어차기 때문이다. 외국어처럼 사뭇 생경한 이름이지만 한국 특산의 히어리다. 꽃이 조롱조롱 달려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새가 날렵하다. 얼핏 보면 먹음직스러운 꽈배기 같더니 가까이에서 보면 눈이 뚜렷한 누에 같기도 하다. 오늘은 한두 그루가 아니다. 웅석봉 한 능선에는 노란 히어리가 붉은 진달래와 한껏 어우러졌다. 바람이라도 불어 출렁출렁 흔들릴 땐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꽃상여(喪輿)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

그리고 그 바닥에는 얼레지가 한창이다. 몇 해를 기다렸다가 나오는 두 잎, 하나만 달랑 올라오는 대궁과 그 끝에 오로지 하나만의 꽃이다. 얼레지는 한 골짜기를 온통 저들의 세상으로 물들이고 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잎이지만 약간의 독성이 있다. 입 있는 것들이 함부로 먹었다가 큰코다치는 잎이다. 

처음 보는 얼레지는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얼레지. 새침하게 토라져 입을 닫은 얼레지도 있고, 쪽진 머리처럼 한껏 뽐을 내는 얼레지도 있다. 민감하기는 이를 데 없어 두툼한 햇빛이 아니라면 함부로 꽃잎을 열지 않는 얼레지.

노랗고 붉은 공중과 보랏빛 골짜기. 그 단정한 빛깔을 어루만지며 바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바람 불 때마다 산 하나를 떠메고 가려는 듯 일제히 나부끼는 얼레지. 이번 바람은 내 오른쪽 뺨을 때리는가. 어머니 생각이 더욱 진하게 났다. 얼레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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