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의 방안 가운데 하나로 ‘규제 샌드 박스’를 언급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작년 3월에 정부 혁신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행정용어 쓰지 말자셨던 분이 왜 이러시나….

 ‘샌드 박스’는 말 그대로 모래 상자인데, 불 났을 때 불 끄라고 또는 눈 많이 왔을 때 길에 뿌리라고 모래 담아둔 상자가 아니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래 놀이터에서 따온 말이란다. ‘규제 샌드 박스’는 ‘Regulatory sand box’의 머리만 번역한 말로,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줘 자유로운 시도를 북돋는 제도란다.

나도 모르는 말인지라 여기저기서 얻어듣고야 이 말의 의미를 겨우 알아챘다. 관료들은 마땅한 우리말이 없어서 샌드 박스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겠지만, 그럼 그냥 ‘모래 상자, 모래판’이라고 하면 안될 까닭이 있을까? 어차피 놀이터 상황에 비유해 나온 말이므로 그런 맥락을 설명해주지 않는 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기왕 설명할 거라면 우리말로 이름 붙이는 게 옳고, 좀 더 잘 다가오는 새말을 만든다면 더욱 좋다.

영화 <말모이>에서 김판수는 ‘도시락’ 같은 우리말이 사라지는 걸 걱정하는 구자영에게 도시락이나 벤또나 배만 부르면 되지 않냐고 맞받아친다. 목적의 맥락에서 보자면 벤또와 도시락은 아무 차이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코리아’라고 부른다 하여 면적과 날씨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싱크홀’이나 ‘땅꺼짐’이나, ‘리스크’나 ‘위험’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 말이다.

그러나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을까? 누가 뭐래도 일제강점기에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쓰게 한 건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악랄한 시도였다. 우리 민족은 살아남았으니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 좀 쓰는 거 무어 그리 큰 문제냐고 하겠지만, 그 논리가 ‘실용’을 가장해 친일을 서슴지 않던 논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 정부에서 우리말 대신 영어를 남용하는 일은 민족을 분열시키는 짓이다. 영어를 알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1등 국민과 영어를 몰라 알 권리를 침해당해도 꾹꾹 참아야 하는 2등 국민으로 세상을 가르고 장벽을 설치하는 짓이다.

문 대통령은 ‘규제 샌드 박스’라는 방안을 들고 온 실무 책임자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그리고 설명을 들은 뒤에는 한 번 더 물어봤어야 했다. 이걸 쉽게 우리말로 바꿀 쑤는 없냐고. 그걸 ‘규제 임시 해제’로 하든 ‘규제 모래 상자’로 하든 그게 ‘규제 샌드 박스’보다 어려울 리는 없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 케어,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의 제로페이, 그리고 문 대통령의 규제 샌드 박스까지 모두 ‘벤또’ 같은 말이다. 이래서야 경제정책에 쏟는 고민과 노력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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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억은 세기말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멀쩡한 줄 알았던 다리가 끊어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의 20대는 장렬했다. 의류 회사 디자이너였던 그의 월급은 고작해야 40여만 원. 쥐꼬리에서 그나마 딸 혼수비를 마련하려고 계를 시작한 어머니에게 절반을 떼어드려야 했다. 하지만 버스비 말고는 돈 쓸 틈도 없이 바빠서 늘 월급이 남았다. 야근과 철야는 밥 먹듯이 하면서 피팅 모델 노릇까지 하느라 정작 밥은 많이 먹을 수 없었던 시절. 그는 노력만큼은 안정한 세상을 보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디자이너로 실력이 쌓이면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내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절 그는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담보 잡혀 산 셈이라고 했다. 아이가 있는 직원한테 ‘네 아이도 너 닮아 머리가 나쁘겠다’는 둥 인격 모독을 일삼는 상사들의 독설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라 여겼고, 날마다 전국 매장의 매출을 취합해 등수를 매겨 공개하는 회사의 비정함을 공정한 경쟁으로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회사에, 일에 얽매인 노예였어요.”

일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내건 가게를 냈지만, 독립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다. 일 년 내내 단 하루도 가게 문을 닫지 못하고,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스스로 정한 시각에 맞추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낸다. 평생 몸에 밴 습성이 하루아침에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즐기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일에만 죽자 살자 매달리지 않아요. 일 말고도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부당한 것을 참지 않고 말하는 게 참 좋아요.”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 기억을 꺼낸 것은 요즘 청년들이 일자리도 없지만, 과거처럼 치열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던 끝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작과 다르게 요즘 청춘에게 희망을 걸면서 말을 끝냈다. 그들은 왜 달리는지 알고 달릴 거라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더 잘 해낼 거라고.

그의 말대로 청년들이 그들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부디!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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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은 지난 17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제주학살(1947~1954) 당시 불법 연행, 구금당했던 수형인들에 대해 공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존재조차 불분명한 국방경비법을 적용해 평생 동안 불온 인사로 낙인찍혀 왔던 90대 촌로는 이제사 보통 사람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1948~1949년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법원의 재심 공소 기각 선고는 당시 대한민국 군경의 행위가 절차적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모두 무효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획기적 사법 판단이다. 특히 전 대법원장이 국정농단 당사자와 불법적으로 재판을 거래하고, 사법부 불신을 자초함으로써 주권자의 비난과 빈축을 사고 있는 이 안타깝고 슬픈 시절에 제주지법은 사법 정의를 실현한 것이다.

제주지법은 1948년 겨울, 이듬해 여름에 걸쳐 자행된 이 극악무도한 공권력의 횡포와 만행이 71년 긴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말하자면 첫 4·3 재심을 무죄 취지로 선고한 것이다. 이들 불법 수형 피해자들에게 가해졌던 당시 형벌이 공소 제기 절차라는 법률 규정을 위반해 아무런 죄가 없던 이들에게 자행된 것이었음을 적시했다. 따라서 제주지법의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 무죄 취지 판결은 인권과 정의의 중대한 승리다. 제주지검의 공소 기각 의견 역시 정의의 수호자다웠다.

이제 누구보다도 주목해야 할 얼굴은 무죄 취지 판결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평생 동안 참으로 흉측한 악법과 불법 재판에 의해 ‘적색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채 침묵과 굴종을 강요당해 왔다. 긴 인고의 세월이 지나 재심 청구를 하고 끝내 죄가 없다는 판결을 받은 이들과 함께 아픔과 통한을 품어 온 가족들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이들 생존 불법 수형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당시 4·3 재판은 불법이며, 판결은 무효이고 잘못된 것이라며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재심 청구는 이들 불법 수형자를 위한 비상구제수단이었다. 4·3도민연대의 집요한 노력과 정성, 헌신적 활동은 4·3 피해자 권리 회복 운동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면서 4·3의 완전한 해결과 이행기 정의 실현에 일대 전환점을 구축했다. 왜냐하면 4·3 해결은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는 조치부터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당시 군사재판 판결이 불법이라고 법원에 의해 확인된 이상 4·3특별법 개정 등 후속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첫째, 정부는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에 의해 희생된 모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이들이 당한 피해의 회복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 특히 법무부 장관은 직권 재심 청구를 통해 당시 불법 재판에 의한 피해자들을 일괄 구제하는 조치를 즉각 추진해야 한다. 둘째, 국회는 1948~1949년 군사재판이 모두 불법이었고, 이들 불법 수형인들의 피해 배상, 명예 회복 등을 담은 입법 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제 새 출발을 하게 될 4·3 무죄 인사들의 만수무강을 빌며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매우 짧지만 70년 만에 터져 나온 최후 진술이 증명된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늦더라도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많은 가치와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인간실천이다.

<허상수 |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전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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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작은 시골마을에서 이태 남짓 살았다. 여름이면 철길 옆 수로로 천렵을 나가 마을 청년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아 국수와 수제비를 넣은 ‘털레기’를 해먹고 가까운 서울에서 벗들이 찾아오면 철길 너머 논둑에서 삼겹살과 소주는 다반사였다. 밤 11시가 넘어 정기 운행 열차가 끊기면 탱크나 장갑차 혹은 자주포 같은 무기가 실린 화물열차가 지나다니곤 하던 철길이 가로지른 그 마을은 ‘내곡리’였고 기차역은 경의선 ‘곡산역’이었다.

방에 난 작은 창으로 마을 사람들의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깊은 밤이면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일부러 철길이 잘 보이는 곳까지 나가 멍하게 앉아 있은 적도 많았다. 군사용 무기들이 실린 화물열차가 지나갈 때만 볼 수 있는 실루엣이 자아내는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무기들은 때로 천막처럼 생긴 덮개 천으로 싸여 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워풀하면서도 도발적인 실루엣까지 가려지지는 않았다. 지붕도 씌워지지 않은 화물차에 덩그렇게 놓인 탱크의 덩치와 길쭉하게 삐져나온 포신 그리고 어둠이 빚어내는 아우라는 어슴푸레한 빈 들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러한 장면들이 뇌리에 쌓이자 서른 즈음의 내 가슴은 쏜살같은 뜀박질 후처럼 마구 뛰었다. 그러나 헐떡이는 마음을 굳이 달래지 않았다. 오히려 분출시킬 방법을 찾았는데 경의선에 대한 사진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처음에는 혼자 기차를 타거나 혹은 기차가 지나다니는 길목의 풍경들을 찾아다니느라 곤혹을 치렀으나 이내 마을에 살던 다른 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 마을 언저리에는 화가 몇이 살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의선모임’을 만들었다. 그러곤 어느 하루, 날을 정하여 작업에 임했는데 방식은 이랬다. 서울역으로부터 문산역까지 각 역마다 2명의 작업자들을 배치하여 그 둘이 책임지고 24시간 동안 그 역과 다음 역까지 오가는 기차 안의 모습이나 바깥의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물론 그 작업은 ‘경의선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사진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또 만만치 않은 카메라 가격 때문에 두어명을 제외하고는 사진기들도 초라했다. 그렇지만 작업 다음날 흑백필름을 현상해보니 하루 동안 찍은 사진은 아주 다양했다. 기차 안에는 일반 시민들과 군인들 그리고 헌병이나 파주 일대 미군들의 모습이 흔했고 기차 밖은 이른 새벽 경의선 낡은 기차를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철길을 잃어버린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철교 교각들이 있기도 했다. 또 그러한 교각에는 더러 북한 체제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자극적인 구호들이 눈에 띄는 붉은색 페인트로 쓰여 있었고 터널 입구나 출구에는 유사시 철길을 차단 할 수 있는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곤 했다. 도로와 맞닿아 있는 철길에도 어김없이 도로에 설치된 도로 차단 구조물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른바 분단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분단풍경’들이었다. 그러한 풍경이 담긴 사진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한 차례씩 전시를 하고 한 권의 책으로 남긴 채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내곡리를 떠났다. 그렇지만 작업을 마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나는 10여년간 분단 전 남북으로 오가던 철길이나 국도는 물론 서해의 말도(唜島)로부터 동해안 고성까지 접경지대를 따라 분단의 흔적을 찾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분단문화에 대한 작업이 뜸해졌지만 어디에선가 경의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신경이 퍼뜩 곤두서곤 했다. ‘경의선모임’이 작업한 구간은 서울역부터 문산역까지였지만 사실 경의선은 1906년 4월3일 개통 당시 용산역부터 신의주역까지 518.5㎞ 구간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철도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2003년 6월4일, 50여년 만에 다시 이어졌지만 다분히 상징적인 일일 뿐 정기적인 운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남한 지역의 경의선은 변화가 상당하다. 비둘기호 낡은 기차가 신형 객차로 바뀌었고 단선으로 운행되던 노선은 개통 당시처럼 복선화가 이루어졌으며 더불어 전철화까지 되었다. 또한 용산역에서 이어지던 경의선 구간 중 철길이 지하로 들어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 지상 구간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공원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용산구 새창고개 구간이 그렇고 마포구 연남동 ‘연트럴파크’, 그리고 와우산 아래 ‘책거리’로 명명된 구간이 모두 ‘경의선숲길’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과 같은 일들은 서울의 일일 뿐 경의선의 일이 아니다. ‘경의선숲길’은 당연히 나의 주의와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동안 견지하고 있었던 경의선에 대한 감정조차 시들해지게 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다시 귀를 쫑긋거리고 경의선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종단철도(TKR: 경의선, 동해선)가 연결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내 철도 공동조사도 무사히 마쳤으니 이번에는 더 이상 미뤄지지 않았으면 싶다. 경의선뿐 아니라 경원선 그리고 철원에서 출발하여 금강산 내금강역까지 달렸던 관광열차인 금강산선 그리고 동해바다를 곁에 두고 달릴 아름다운 철길인 동해선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곳저곳 막무가내로 드나들면 서로 단절되었던 세월만큼 변했을 갖가지 문화의 모습들도 철길이나 도로처럼 단순하게 복원될 수 있을까?

만만치 않다. 경의선 철길이 복원된다는 것은 철길의 연결이라는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복원되어야 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전제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철길의 물리적 연결은 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의 일이다. 그렇다면 나의 일은 무엇일까? 말했듯 나 자신의 복원이다. 열차가 덜컹거리지 않고 이어진 철길을 매끄럽게 달려야 하듯이 우리들 마음속에서도 경의선은 아무런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동안 남북의 분단 못지않은 분단이 남남의 분단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마음속 철길에 깔린 자갈을 골고루 배치하고 흔들리거나 삐뚤어진 침목을 바로 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어쩌면 그 일은 단절되었던 경의선이 다시 이어질 세월보다 훨씬 더 길 수도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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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진(염정아)은 극 초반 자신감에 차 있다. 할머니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본인의 열정(정보력)이라는 강남 3대 교육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최적의 환경에 1등 욕심 많은 딸까지 두었다. 거기에 대한민국 최고의 코디까지 합세하니 서울의대 합격이 어려운 목표로 보이지 않는다.

반면 딸을 하버드에 입학시킨 전력에 독서토론회를 주도하는 열정적인 차민혁 교수(김병철) 집의 경우 눈에 띄는 결함은 기민하지 못한 엄마 노승혜(윤세아)다. 한서진보다 한발 늦는 그녀가 차 교수는 영 성에 차지 않는다. 또 총명한 아들을 뒀지만 말 그대로 ‘그냥’ 좋은 부모인 이수임(이태란)네는 한서진 눈에는 순진하게 굴다 큰코다칠 한심한 부류다. 진진희(오나라)팀은 줏대 없는 엄마에 무기력한 아들까지 총체적 난국이다. 딸 강예서(김혜윤)만 합격을 하면 한서진은 가난하고 불행했던 과거를 털고 일어날 것만 같고 인정받는 며느리가 될 것 같다. 아들 영재(송건희)를 서울의대에 합격시킨 명주 언니(김정란)를 보며 개선 행진할 날이 자신에게도 곧 찾아오리라 믿고 있다.

한서진이 차근차근 딸을 합격의 문턱까지 끌고 가는 동안 다른 가정은 각자의 문제로 파행을 빚는다. 반항, 자학, 사기 등 아이들의 모습은 요즘 학생들의 불행한 모습들을 망라한다. 하지만 결함처럼 보였던 지점들이 아이들의 파멸을 막는 구명줄이 되는 건 아이러니다. 노승혜는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인 남편 차 교수와 이혼까지 선언하며 자식들을 구하고, 진진희는 가출한 수한을 뜨거운 눈물로 끌어안으며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다른 엄마들이 벼랑 끝에서 아이들을 구하는 동안 한서진은 가장 결함 없어 보임에도 끝없이 욕심을 부리다 위태로워진다. 더 확실한 결과를 얻고 싶은 조바심과 타고난 악바리 근성으로 가장 공고한 캐슬을 쌓는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사고가 터질 것만 같다. 그녀에게도 종종 심각한 고민이 찾아온다. 첫 번째는 아이를 너무 몰아세우다 탈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자살한 영재 엄마처럼 되면 어쩌지?’ 하지만 ‘예서는 억지로 공부한 영재와 달리 스스로 열심히 하려는 의욕이 크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두 번째는 수임의 아들 황우주(찬희)가 불행을 겪는 걸 외면한다는 죄책감. 하지만 ‘이제 한 학기만 남았어. 목적지에만 가면 이 불타는 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고 그럼 그만이야’라며 다시 한번 자신을 설득한다.

김주영 선생(김서형)은 맹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서진의 거울이다. 영재의 탈선이 부모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달콤한 말. 한 학기만 넘기면 된다며 빼돌린 중간고사 시험지를 내미는 그녀의 말. 그건 김주영 선생의 말이지만 한서진이 바라던 것들이다.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음에도 그 길을 굳이 걷는 건 한서진이다.

19회에 가서야 한서진네의 결함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바로 예서의 유리 멘털. 예서는 잠을 못 이루며 흔들린다. 예서가 전자레인지에 우유를 터뜨리지 않았다면 한서진은 중도 포기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성공을 향해 가는 데 흔히 걸림돌이라 불리는 유약한 마음이 구원의 단서가 된다는 아이러니를 반복한다.

이 드라마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상위 0.1%가 모여 사는 배타적인 공간을 밖에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길 바랐을까? 오직 내 아이는 이 입시 지옥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이 지옥행 열차에서 함께 뛰어내리자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SKY캐슬>에서 지독하게 자식들의 성공에 집착하는 주요 인물들은 한서진, 차 교수와 같은 서민 출신들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상류 사회를 조롱하는 데 방점이 찍힌 풍자극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선동극처럼 느껴진다.

사회를 공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덕분이다. 시청자 중에는 예서가 서울의대에 합격하는 것을 바라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 응원하는 기분일 수도 있지만 마음을 좀 다잡을 필요가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부러워서 따라갔다간 끝장나는 게 이 게임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이기기 어렵고, 이겨도 지는 게임은 모두 함께 그만두는 게 상책이다.

<김신완 |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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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학원을 할 때였습니다. “선생님, 하기 싫어요!” 제가 대꾸합니다. “그럼 학이 슬퍼할 텐데.” 정적이 흐르다 학생이 한숨 쉽니다. “…, 그냥 할게요.” 어린 학생들만 이럴까요? 자판으로 친구들과 노닥노닥 딴짓하고(파티션 너머에선 ‘열일’하는 줄 알지요), 과목들과 범위 두께에 한숨만 나오고, 내일까지 제출인데 파일 날렸다 핑계 댈까 궁리합니다. 하는 것보다 하는 척 조작하는 게 더 어렵지요. 그럴 거면 그냥 하겠다 싶게,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지만 안 할 순 없어 안 하진 않는 척하는 건 왜일까요.

공부나 일은 궁둥이로 한다지만, 둔부만 한 두부(頭部) 안에도 궁둥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 궁둥이는 살짝 내려앉은 민들레 홀씨마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입니다. 한시도 못 참고 들썩거리고 나풀댑니다. 하기 싫은 그것만 아니면 다 재밌지요. 괜스레 책상을 닦고 책장을 가지런히 맞춥니다. 하기도 부족한 시간을 허비하는 걸 자신도 알지만 영 시작이 안 내킵니다.

‘하기 싫음 시름시름 앓는다’는 현대 속담이 있고 ‘게으른 선비 책장 세듯’이라는 전래 속담이 있습니다. 고금막론, 걱정태산 앞에선 오르고 넘을 일이 까마득할 뿐이지요. 그렇지만 저 선비는 게으른 게 아닙니다. 천성이 게으르면 아무 생각이 없죠. 사실 부지런하고 싶은데 부지런하지 못한 자신이 싫을 겁니다.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을지, 형편없이 실망시키진 않을지, 쏟은 부지런이 부질없는 결과는 안될지, 온통 불안한 게으름들입니다. 뭐든 익숙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그러니 불안의 뭉텅이를 조각내 한 꼭지 정복하고 작은 쾌재(아싸!)라도 부릅시다. 분량, 시간, 기승전결 다 무시하고 설렁설렁 대충 넘기다 내키는 데를 붙듭시다. 흥흥, 나사가 빠져야 몰입에 빠집니다. 안 풀리면 나사 풉시다. 일단 건드리면 암담하지 않습니다. 게으름의 다른 이름은 ‘그저 막막’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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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을 보면 매니저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의 일정을 관리하고, 그와 관련된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또는 ‘회사나 호텔 따위의 경영자나 책임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자는 경영, 관리, 보좌를 하는 일이 중심이고 후자는 경영 책임자를 의미한다. 이런 매니저의 역할이 연예계나 체육계가 아닌 교육계에서도 화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 서울 강남 대치동 등 소위 교육특구 지역의 밤 10시 풍경은 말 그대로 매니저 전성시대였다. 고급 승용차들이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태우려고 줄 서서 대기하다가 순식간에 아이들을 싣고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은, 하루에도 여러 번의 행사를 뛰어야 하는 연계인의 모습과 빼다 박은 듯 비슷해서 이렇게 자녀를 관리하는 엄마들에게 ‘엄마 매니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런 열혈 엄마 매니저들은 연예인 매니저들과 아주 비슷한 일을 했다. 유능한 과외선생이나 잘 가르치는 학원강사들을 찾아내어 계약하고, 촘촘하게 시간 관리를 하는 것이 주 임무였고 정보의 관리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다보니 인맥과 정보를 모을 수 있는 강남과 같은 교육특구 지역이 활동하기에 알맞았다. 이들은 특별한 지역을 중심으로 점점 그 세를 키워서 ‘돼지엄마’라는 이름의 신종 매니저로 진화했다. 입시에 성공한 엄마들이 다른 엄마들의 부탁을 받아 여러 학생들을 졸졸 이끌고 다니는 그룹 관리형 매니저가 되었고, 일부는 아예 학원과 같은 사교육기관의 상담실장이나 주인으로 등극하기도 했으니 이들의 진화는 포켓몬스터나 디지몬의 진화를 넘는 속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급제동이 걸렸다. 그동안 이들의 업무는 학교 수업이 끝난 이후에 시작되어 자정이 넘어서 마무리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대학입시에서 합격자들의 3분의 2를 학교 안의 성취를 통해서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자 학교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확 줄어버렸다. 더구나 재수생들의 몫을 빼면 재학생들에게 학교 밖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거나 또는 엄청나게 대단한 수준이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3년이라는 시간의 벽이었다. 인간의 능력은 워낙 미스터리해서 짧은 기간이라도 극단적으로 압박을 하면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3년간 꾸준히 차근차근 성취를 이루는 것은 물론, 친구들과 협력과 공감을 통해서 함께 성장하는 모습까지 요구하니 이전과 같은 방식의 입시 정답을 만들기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이들의 진화가 과연 여기가 끝일까라는 의문이 들 때쯤, 진화를 뛰어넘는 또 한 번의 창조적(?) 돌연변이를 하게 된다. 그 이름이 ‘코디’. 이들도 기본적으로는 실제 성공을 경험한 돼지엄마들과 같은 노련한 경험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과거와 같이 단순한 학교 밖 시간의 관리자가 아닌 학교의 안과 밖에서 모든 순간을 통제하는 수준이라 엄청난 비용을 요구한다. 그렇다보니 이들을 고용할 수 있으려면 집이 아닌 성에 사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후문이다. 하늘의 성, 스카이캐슬.

돼지엄마들의 이런 놀라운 진화에 대해서 진화생물학자들이 뭐라고 설명할지 정말 궁금하다. 진화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격히 이뤄졌다는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맞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계획되지 않은 자연선택이라는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이론이 맞을까? 생물학까지 동원해야 설명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이 놀랍고도 씁쓸하다.

<한왕근 |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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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개념의 관광이란 말은 1800년대 영국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1838년 스탕달의 <여행자의 회상기(Memories d’un touriste)>란 작품을 통해 ‘관광객(tourist)’이란 단어가 일반화되었다. 1873년 쥘 베른이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쓸 무렵 관광은 삶의 여유를 즐기는 중산 계층의 필수 교양이자 미덕이 되었다. 기술 발달은 20세기의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고, 20세기는 본격적인 대중여행의 길을 열었다. 세계관광기구(UNWTO)의 통계에 따르면 1995년 5억3000여명이었던 전 세계 해외여행자 수가 2012년 10억명을 돌파하였고, 2017년엔 13억2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총인구가 13억6000만명이란 사실을 상기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목적으로 이동하는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찾는 여행지가 지나치게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의 몇몇 지역에 편중된다는 것이다. 유명 관광지로 알려진 지역들은 해당 도시의 수용 능력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는 오버 투어리즘(overtourism)으로 인한 사회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최근 필리핀의 유명관광지인 보라카이가 환경정화를 목적으로 6개월간 관광지 폐쇄를 결정한 것, 하와이가 노숙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거나 에메랄드빛 바다를 자랑하던 몰디브의 산호가 떼죽음하여 생명이 살 수 없는 좀비지대로 변모해가는 등 과잉관광은 심각한 생태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란 새로운 사회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관광지화되다(touristify)’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결합한 용어로 관광객의 과잉 증가로 인한 난개발, 교통 혼잡, 범죄율과 거주 비용 증가 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해 원거주민이 누려야 할 삶의 질이 하락하고, 내몰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등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현대식 호텔과 레스토랑이 유입되면서 주민 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세탁소, 정육점 등 기초 편의시설마저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해 주민들이 관광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지역 활성화의 좋은 본보기였던 통영 동피랑, 서울 북촌 한옥마을 등에서도 마을 원주민이 밀려나거나 관광객과의 마찰이 빚어지고, 이화동 벽화마을은 관광명소가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 스스로 벽화를 지우기도 했다.

그 어느 지역보다 심각한 곳이 제주다. 68만명의 도민이 살고 있는 제주엔 주민의 스무 배가 넘는 1500만명의 관광객이 한 해에 찾는다. 이는 제주보다 주민 인구는 두 배에 불과하지만, 면적은 15배가 넘는 하와이 관광객의 두 배다. 그런데도 제주는 관광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미명 아래 30년 이상 수령을 가진 삼나무 숲길인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강행하고,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동백동산 습지 부근에 골프장, 생태계의 보고인 곶자왈 인근엔 채석장이 성업 중이다. 그마저도 부족해 제2공항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하여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뜨내기 관광객의 눈에는 한없이 아름답기만 한 제주가 68만 도민이 머물러 살기에 행복한 곳일까? 이것이 일부 토건세력과 외지 투자자들의 이득이 아닌 제주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까? 행복지수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부탄 역시 국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관광에 의존하며, 관광 수입으로 무상교육·의료를 시행하고 있지만 관광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 너무 많은 관광객은 국민 삶의 질을 위협하고 생태환경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관광(觀光)이란 고작 서구의 ‘tourism’에 대응하기 위한 번역어로 사용되지만, 이 말은 <역경(易經)>의 “관국지광(觀國之光)”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래 의미는 ‘덕을 지닌 이가 다스리는 나라의 찬란한 문물을 이웃한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본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원희룡 도지사는 관광이 뭔지 모르며,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도 모르는 것 같다. 그에게 묻고 싶다. “무시거가 겅 중허우꽈(무엇이 중요한데)?”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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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는 일주일씩의 시차를 두고 찾아왔다. 이주일 전, 갑자기 남편이 복통과 몸살에 시달렸다. 일주일 전 아이가 비슷한 증세를 보이더니, 일주일을 꼬박 앓았다. 지난 주말, 마침내 나에게도 오한과 복통이 찾아왔다. 왜 놀아주지 않냐며 성화인 아이로부터 누워 쉴 시간을 쟁취하는 동안 지난 2주간 나의 무심함이 빚어낸 풍경들이 보였다. 아픈 남편이 안쓰러운 한편, 병마로 상실된 남편의 노동력을 내가 메꿔야 하자 슬쩍 짜증이 치밀기도 했던 것, 아픈 아이가 떼쓰자 버럭댄 것. 그 순간이 한없이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아프니까. ‘누워 있는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른 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국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건강한 나라와 병의 나라에 동시에 속한 시민으로서의 이중국적이다”라고 수전 손택은 말했다. 건강한 몸과 아픈 몸이라는 ‘이중국적’을 공유한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간신히 짐작해볼 수 있다. 고작 바이러스성 장염과 감기를 갖고 타인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없는 질병과 고통들이 도처에 널렸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은 여전히 이해 불가능성의 영역에 머무는 일이 많다.

서울도서관 서울기록문화관에 걸린 세월호 추본 리본. 김창길 기자

별것 아닌 투병기를 어쭙잖게 꺼내든 것은 최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가능한지 묻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다. 지난해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내놓은 데 이어 사회학자 엄기호는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펴냈다. 최근엔 미국 작가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이란 책이 나왔다.

‘고통을 이해하기’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는 것에 대해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엄기호)는 말이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 미투 운동,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 하지만 역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소화하기 힘든 시대를 관통해왔기 때문이라고.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그러했다. 타인을 집어삼킨 거대한 슬픔을 조롱하고 혐오하기까지 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당한 폭력과 고통에 대해 이해하기보다는 ‘피해자다움’을 평가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건 가능한가? 사실 이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100% 같은 입장과 상황에 처하기는 불가능하며, 100% 같은 고통을 경험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의 아픔을 바탕으로 타인의 고통을 지레짐작하고 이해하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레슬리 제이미슨은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낙태, 희귀병을 앓은 경험 등의 고통을 겪은 끝에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한 촉수를 갖게 되었다. 그조차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질문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탐구한 인상적인 작품을 만났다. 황정은은 연작소설집 <디디의 우산>에서 ‘묵자(墨字)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맹인의 문자가 ‘점자(點字)’라면 비맹인의 문자는 ‘묵자’라는 일침. 그것이 너무도 당연해 부를 필요도 없는 게 ‘묵자’의 세계다.

처음 접해 본 ‘묵자’라는 말에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우리가 거대악에 대해 비판하기는 쉽다. 이명박을, 박근혜를, 최순실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재벌 일가의 부 세습을, 갑질을 비판하는 것도 쉽다. 왜냐하면 나는 재벌도 아니고 부패한 권력자도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묵자’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점자’의 세계에 살고 있는 타인의 고통을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만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무지의 영역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이해의 영역을 늘려가기 위한 노력, 나 자신을 콩알만큼이라도 확장시키려는 노력 말이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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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심심산곡에서 출발하여 바다를 찾아가는 북한강이 심심한 듯 크게 용틀임을 할 때, 이에 호응하여 경기 근방에 가까이 집합한 산들이 막역한 친구처럼 첩첩하게 도열한다. 명지, 연인, 칼봉, 운두 그리고 천마. 마치 돌올한 산악문명이라도 곧 발흥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봄이면 이 산마다에 야생화의 잔치판이 벌어지는 건 이런 지리적 사연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산으로 들 때, 그 산의 이름을 통한 내력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오늘 찾는 곳은 저 문명의 한 축인 축령산이다. 산은 완만하다. 초입에서 잠깐 가파른 길을 더위잡아 오르니 바로 산천경개가 툭 트인 능선이다. 잎이 모두 떨어진 산. 나무는 물론 산의 전모가 훤히 드러난다. 어느덧 남이바위에 서니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적응한 소나무가 홀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저 아래 다정한 인간의 마을에 지곡서당이 있건만 글 읽는 소리 끊어진 지 오래!

축령산은 祝靈山이다. 그 이름이 퍽 희한해서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하는 산, 축령산. 축에 촉발되어 희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 중국소설을 전공하는 분들을 따라 주자(朱子)의 고향 무이산을 갔었다. 주자기념관을 둘러보는데 어머니의 장례식에 관한 자료 중의 여러 글귀가 축(祝)으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것은 결혼식장에 잘못 배달된 조화처럼 아주 낯설고 희한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알고 보니 주자 어머니의 이름이 축씨였던 것. 축령산을 걷는 내내 어쩐지 그때 퍽 낯설었던 옛 생각이 자꾸 났다.

축령산 정상에서 한숨을 돌린 뒤 이웃한 서리산으로 간다. 서로 뽐내지 않으며 그 능선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곡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 등산을 축령산-서리산으로 마무리하고 보니 무슨 근사한 목걸이를 완성하는 기분이었다. 그 목걸이의 고리에 해당하는 곳에 이르니 우람한 나무들이 공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이 지역에 맏형처럼 자리잡고 묵묵히 하늘을 받드는 잣나무였다. 그늘을 좋아해서 아주 단정하고 기품 있게 뻗는 나무. 송무백열(松茂栢悅·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이라고 했던가. 잣나무,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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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이마누엘 칸트는 “동물은 사유하지 못하므로 이성적일 수 없다”고 했다. 데이비드 흄은 “동물들이 인간처럼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고 했고, 피터 싱어는 1975년 펴낸 <동물 해방>에서 “인간 이외의 동물도 고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고 주장했다. 현대에 이르러 동물권에 대한 인식은 흄, 싱어의 주장에 가깝다. 반려동물 250여마리가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살해당한 ‘케어 사태’는 우리가 잊고 있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켜준다.

정부 통계를 보면 2017년 한 해 동안 버려지거나 유실된 반려동물은 10만마리가 넘는다. 이들은 동물보호센터에 들어간 뒤 15%만이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30%는 새 주인을 만났고, 27%는 자연사했으며, 20%는 안락사를 당했다. 버려진 개들에 대한 삶을 추적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펴낸 소설가 하재영씨는 책에서 ‘분양은 그중 일부가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넘겨진다는 것이고, 자연사는 상당수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동물을 죽을 때까지 방치했다는 의미이고, 안락사는 개들의 20% 정도가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근육만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반려동물들이 ‘대량 유기→대량 학살’로 악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이 버려지는 이유는 “사나워서” “가족·이웃과의 부적응” “질병 때문에” 등 다양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무책임이다. 막연히 ‘이쁘다’는 이유로 키우다 여러 이유들을 내세워 내다버리는 것이다. 반려동물 수가 1000만마리에 달하지만, 법으로 의무화된 등록 동물 수가 117만마리에 불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지난해 동물생산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면서 대량 생산에 따른 문제점을 바로잡고 있다고 한다. 올 3월부터는 도사견 등 맹견 5종을 키우는 사람에 대해서는 교육이 의무화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의무적으로 사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독일에서 동물을 키우려면 세금도 내야 한다. 동물권 보호의 시작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려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 제도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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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인이 시장을 잘 내려다볼 수 있는 깎아 세운 듯 높은 언덕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물건을 사서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한다. <맹자> 공손추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맹자는 폭리를 취한 상인을 천장부(賤丈夫), 곧 천박한 사내라 불렀고 천장부가 오른 높은 언덕이 바로 농단(壟斷)이다. ‘가장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이익이나 권리를 독점한다’란 의미를 갖게 된 농단의 어원은 유래조차 상업적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7일 구속수감되었다. 퇴임까지 40년 넘게 입었던 법복 대신 수용자 번호 ‘1222’ 명찰이 부착된 녹색 수의(囚衣)로 갈아입은 그가 받는 주요 혐의 40여개는 ‘사법농단’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의 기본적인 작용의 하나. 어떤 문제에 대해 법을 적용하여 그 적법성과 위법성, 권리관계 따위를 확정해 선언하는 일,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법(司法)을 이렇게 정의한다. 반면 상업(商業)은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를 통하여 이익을 얻는 일이라고 적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사법과 상업을 격리한다. 상법을 적용하는 재판정에서조차 재판은 비상업적이다. 재판은 사고파는 상품이 될 수 없고, 개별적인 재판을 통해 판사가 얻는 이익이 있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이 사실이라면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은 무엇인가?

지난해 6월1일, 경기 성남시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나온 뒤 일주일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 관여한 바 없다”고 단언하며 “대법원의 재판은 정말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달 4일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 50여명은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결의문에서 “관련자들에 대해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고, 이어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의결이 뒤따랐다.

모든 재판은 신성하다. 대법원의 재판만 신성한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신성하다고 힘줘 말하고자 한 단어는 ‘재판’이 아니라 ‘대법원’이 아니었을까? 한쪽에선 신성을 긍정하고, 다른 쪽에선 성역을 부인한다. 신성함과 성역 부인의 간극은 커 보이나, 재판은 신성하되 그 재판을 하는 사람과 조직이 성역화될 수 없다는 의미에선 조화롭다.

기원전 4세기 말 맹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의 정치고문으로 수년간 인과 덕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를 권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선왕이 재물로 회유하며 붙잡으려 하자 맹자는 자신은 농단에 올라 이득을 독점하는 장사꾼이 아니라고 말하고 제나라를 떠난다. 정권의 결탁 제안을 거절한 맹자는 이익 독점을 위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농단이라 말한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거래 대가로 정권에 결탁을 제안한 게 사실이라면, ‘바로 이것이 농단이다’라고 맹자가 외칠 것 같다.

양 전 대법원장,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인해 국민들이 입은 농단의 상처가 깊다. 성역 없는 조사와 공정한 재판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이것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국회가 상처를 치유하는 법안을 마련하면 좋을 성싶다. 자신들에게 드리워진 갖가지 의혹을 변명하듯 기발하고 치밀하게 말이다.

<이상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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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서울 시내를 걷고 있다. 편집자인 내가 주말에조차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이들이 주말에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침에 집을 나와 합정역에 차를 대놓고 내처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없고 종로, 신림, 한남동 이런 식으로 방향을 잡는다. 골목이 보이면 저긴 뭐가 있을까 호기심에 차서 들어가고, 길을 잃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만큼 미로를 헤맨다. 8시간쯤 걷는데, 거리로 따지면 25㎞ 전후이고 걸음수로 3만보가 넘는다.

늘 드나들던 서울이지만 찻길을 벗어나면 못 가본 곳 천지다. 한 번도 발 디뎌본 적 없는 공간에 두 발을 딛고 공기를 들이마신다. 이것이 주는 즐거움은 크다. 서울 시내에는 스타벅스만 많은 게 아니라 시장도 많다. 종로의 방산시장과 중부건어물시장은 이번에 처음 가봤다. 거대한 규모로 도열한 굴비와 그 가공 현장은 여기가 법성포인가 싶을 정도였다. 종로서적이 사라지고 그 많던 극장도 없어지면서 머릿속의 종로는 노인들의 공간으로 이미지화되었는데 이번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춥지 않아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겨울이라서 볕을 따라서 걷는데 이것도 큰 즐거움이다. 볕이 길게 이어진 구역을 발견하면 노다지를 만난 기분이 들고 얼굴과 등판이 볕으로 따뜻해짐을 느끼면 스멀스멀 행복감이 번지기도 한다. 주말 오전의 도시는 한 주를 치열하게 보내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다. 그 한적함이 내게도 전염되어 온다.

이번에 걸으면서 계속 신기한 대목은 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길은 늘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깨를 움츠릴 정도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이나 상가가 그물망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길의 생김새가 더 다양해지고 기발해졌다. 막다른 곳은 없었다. 새삼 인간이란 종족은 집을 짓고 길을 만들면서 문명을 넓혀 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로 나뉜다. 사람은 두 발로 걷고 차는 바퀴를 굴려서 나아간다. 신호등에 멈춰선 차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멎어 있던 바퀴가 햇살을 뿌리며 회전하는 모습이 경이롭게 다가왔다. 저 회전력이 세상을 이렇게 바꿔놓았구나. 바퀴를 돌리는 힘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바퀴는 힘차고 부드럽게 돌아갔다. 뼈와 근육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두 다리는 한쪽 다리가 앞으로 뻗을 때 다른 쪽 다리는 뒤로 뻗는다. 그 차이가 새삼스러웠다.

강도 건너고 산도 넘는다. 지난주엔 양화대교를 건너 문래동 공단으로 넘어갔다. 이번 주엔 한남동에서 남산을 넘어서 을지로로 왔다. 을지로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꽤 보였다. 재개발지역으로 발표됐다가 서울시장의 결정으로 연말까지 전면 보류된 이곳은 요즘 세간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공구상 사이사이에 을지면옥, 양미옥 등 노포가 많다. 처음 가보는 오복식당에서 동태찌개를 사 먹었다. 하루 종일 걷다가 먹는 밥이니 당연히 꿀맛이다. 큰 국물멸치를 내장도 떼지 않고 기름에 살짝 볶은 밑반찬이 인상적이었고 꾸덕꾸덕 발효된 코다리의 살맛은 을지로의 눅눅한 공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30대로 보이는 아들이 서빙을 도우면서 주방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틈틈이 영어 공부 앱을 설명해주는 모습 또한 다정했다. 어머니는 “이 나이에 잉글리쉬라니” 하셨는데 그런 변화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식당을 나와 지하철로 향하는데 골목에 세숫대야를 내놓고 손을 씻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쭈그려 앉아 팔에 비누칠을 하는 모습은 어쩐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활유산이 아닐까 싶었다. 기름밥 먹는 이들이 퇴근 전 다 저렇게 씻지 않았겠는가, 이 골목에 얼마나 많은 세숫대야가 나왔겠는가.

지지난주 세운상가에 갔을 때도 생각났다. 허름한 칼국숫집에 들어가 주문하고 앉았는데 예순쯤 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젊을 때 세운상가에서 일을 한 모양이었다. 식당 주인에게 “예전엔 매일 여기서 밥을 먹었다”며 “장사를 몇 년 하셨냐”고 물었다. 식당 주인이 1993년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감회에 젖어 칼국수를 먹었다.

복합몰에 가게들을 몰아넣는 것, 유명인을 내세운 프랜차이즈,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파트! 이 세 가지는 도시를 재미없게 바꿔놓고 있다. 우린 이 셋을 피해 다녔지만 피하는 게 불가능했다. 안락함의 이면에 도사린 도시경관적 비극만은 아닐 것이다. 소중한 걸 너무 쉽게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이 간절해졌다. 좀 더 머리를 쓰고 이리저리 궁리를 해봤으면 좋겠다. 아들에게 영어 공부 앱을 배우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어쨌든 다음주도 우리는 걸을 것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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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서울 시내를 걷고 있다. 편집자인 내가 주말에조차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이들이 주말에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침에 집을 나와 합정역에 차를 대놓고 내처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없고 종로, 신림, 한남동 이런 식으로 방향을 잡는다. 골목이 보이면 저긴 뭐가 있을까 호기심에 차서 들어가고, 길을 잃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만큼 미로를 헤맨다. 8시간쯤 걷는데, 거리로 따지면 25㎞ 전후이고 걸음수로 3만보가 넘는다.

늘 드나들던 서울이지만 찻길을 벗어나면 못 가본 곳 천지다. 한 번도 발 디뎌본 적 없는 공간에 두 발을 딛고 공기를 들이마신다. 이것이 주는 즐거움은 크다. 서울 시내에는 스타벅스만 많은 게 아니라 시장도 많다. 종로의 방산시장과 중부건어물시장은 이번에 처음 가봤다. 거대한 규모로 도열한 굴비와 그 가공 현장은 여기가 법성포인가 싶을 정도였다. 종로서적이 사라지고 그 많던 극장도 없어지면서 머릿속의 종로는 노인들의 공간으로 이미지화되었는데 이번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춥지 않아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겨울이라서 볕을 따라서 걷는데 이것도 큰 즐거움이다. 볕이 길게 이어진 구역을 발견하면 노다지를 만난 기분이 들고 얼굴과 등판이 볕으로 따뜻해짐을 느끼면 스멀스멀 행복감이 번지기도 한다. 주말 오전의 도시는 한 주를 치열하게 보내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다. 그 한적함이 내게도 전염되어 온다.

이번에 걸으면서 계속 신기한 대목은 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길은 늘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깨를 움츠릴 정도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이나 상가가 그물망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길의 생김새가 더 다양해지고 기발해졌다. 막다른 곳은 없었다. 새삼 인간이란 종족은 집을 짓고 길을 만들면서 문명을 넓혀 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로 나뉜다. 사람은 두 발로 걷고 차는 바퀴를 굴려서 나아간다. 신호등에 멈춰선 차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멎어 있던 바퀴가 햇살을 뿌리며 회전하는 모습이 경이롭게 다가왔다. 저 회전력이 세상을 이렇게 바꿔놓았구나. 바퀴를 돌리는 힘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바퀴는 힘차고 부드럽게 돌아갔다. 뼈와 근육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두 다리는 한쪽 다리가 앞으로 뻗을 때 다른 쪽 다리는 뒤로 뻗는다. 그 차이가 새삼스러웠다.

강도 건너고 산도 넘는다. 지난주엔 양화대교를 건너 문래동 공단으로 넘어갔다. 이번 주엔 한남동에서 남산을 넘어서 을지로로 왔다. 을지로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꽤 보였다. 재개발지역으로 발표됐다가 서울시장의 결정으로 연말까지 전면 보류된 이곳은 요즘 세간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공구상 사이사이에 을지면옥, 양미옥 등 노포가 많다. 처음 가보는 오복식당에서 동태찌개를 사 먹었다. 하루 종일 걷다가 먹는 밥이니 당연히 꿀맛이다. 큰 국물멸치를 내장도 떼지 않고 기름에 살짝 볶은 밑반찬이 인상적이었고 꾸덕꾸덕 발효된 코다리의 살맛은 을지로의 눅눅한 공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30대로 보이는 아들이 서빙을 도우면서 주방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틈틈이 영어 공부 앱을 설명해주는 모습 또한 다정했다. 어머니는 “이 나이에 잉글리쉬라니” 하셨는데 그런 변화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식당을 나와 지하철로 향하는데 골목에 세숫대야를 내놓고 손을 씻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쭈그려 앉아 팔에 비누칠을 하는 모습은 어쩐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활유산이 아닐까 싶었다. 기름밥 먹는 이들이 퇴근 전 다 저렇게 씻지 않았겠는가, 이 골목에 얼마나 많은 세숫대야가 나왔겠는가.

지지난주 세운상가에 갔을 때도 생각났다. 허름한 칼국숫집에 들어가 주문하고 앉았는데 예순쯤 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젊을 때 세운상가에서 일을 한 모양이었다. 식당 주인에게 “예전엔 매일 여기서 밥을 먹었다”며 “장사를 몇 년 하셨냐”고 물었다. 식당 주인이 1993년이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감회에 젖어 칼국수를 먹었다.

복합몰에 가게들을 몰아넣는 것, 유명인을 내세운 프랜차이즈,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파트! 이 세 가지는 도시를 재미없게 바꿔놓고 있다. 우린 이 셋을 피해 다녔지만 피하는 게 불가능했다. 안락함의 이면에 도사린 도시경관적 비극만은 아닐 것이다. 소중한 걸 너무 쉽게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이 간절해졌다. 좀 더 머리를 쓰고 이리저리 궁리를 해봤으면 좋겠다. 아들에게 영어 공부 앱을 배우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어쨌든 다음주도 우리는 걸을 것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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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경향시선

아직 던져지지 않은 돌

아직 부서지지 않은 돌

 

아직 정을 맞지 않은 돌

 

아직 푸른 이끼를

천사의 옷처럼 두르고 있는 돌

 

아직 말하여지지 않은 돌

아직 침묵을 수업 중인 돌

 

아직 이슬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돌

 

그리고 잠시 손에 쥐었다

내려놓은 돌

 

아직 조금 빛을 품고 있는 돌

 

유강희(1968~)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곳에 가만히 앉은 돌멩이가 하나 있다. 햇살 아래 잠든 듯이. 아직은 생김새가 태어난 모양 그대로인 돌멩이다. 손을 타지 않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채로. 푸른 이끼도 입고 있다. 날개를 접은 채. 태어나지 않은 언어를 갖고 있는 돌멩이. 내내 잠잠하게 있는 돌멩이. 아침이면 부시고 맑은 이슬이 이마에 데구루루 구르는 돌멩이. 그리고 한 번 나의 옷깃을 스쳐간 돌멩이. 내면에는 순수와 사랑과 빛을 하얀 새알처럼 품고 있는 돌.

시인은 시 ‘돌아’에서 이렇게 또 썼다. “돌아/ 너무 맑은 날 아침은/ 네 가난한 거죽에도/ 새 옷 한 벌 해주고 싶어// 어느 영원의 반짝이는 개울 하나/ 너랑 손잡고 건너고 싶어”

돌은 작고 고유한 존재요, 하나의 우주요, 돌은 못된 생각이 없는 착한 성격이요, 돌은 우리가 더욱더 가꾸어야 할 그 어떤 반짝임과 밝음일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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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유럽여행을 했다. 이번에도 시작은 독일 항공사 승무원의 편안한 모습들이었다. 한국의 동종업계 종사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이도 많았고, 날씬하지도 않았고, 또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편안했다. 한국인 승무원도 여러 있었지만 안경을 낀 ‘여’승무원은 전부 독일 사람이었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여전했다. 교과서에나 보던 건축물, 엽서에서나 보던 풍경을 마주하는 기쁨도 대단했지만 역시나 기억에 남는 건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모습들이었다. 어떤 식당을 가더라도 수다 삼매경인 노인들로 붐볐다. 혼자서 맥주 한 병만 테이블 위에 두고 온종일 사람구경만 하는 할아버지, 신문의 가로세로 낱말 퀴즈에 몰두하는 돋보기안경을 쓴 할머니들의 여유는 신선했다.

스타벅스 제공

시골 어디를 가더라도 적당한 거리마다 있는 동네빵집의 복작거리는 아침 풍경은 특히 정겨웠다. 가게 안에는 몇 대에 걸쳐 빵집이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흑백사진들이 걸려 있고 손님과 주인은 빵 하나 사고팔면서도 오랜 인연이기에 가능한 잡담을 이어갔다. 동네사람들은 출근하며, 등교하며 여기부터 들렀다. 맛이 끝내준다는 상투적인 거짓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작은 마을이 유지되는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런 기운이 있는 시골은 규모가 작을 뿐 결코 휑한 느낌이 아니다. ‘쇠락’ 같은 표현은 인구의 절반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한국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변한 것도 있었다. 도시는 특색을 알 수 없는 서울의 모습처럼 변해 동질성을 자욱하게 풍겼다. 공항과 중앙역, 그리고 도시의 중심부에는 같은 상호의 가게들이 즐비했고 여러 상점으로 분산되어 있던 제품들은 쇼핑몰 안에 모여 있었다. 고군분투하며 가업을 이어가는 작은 가게들을 찾는 손님은 없었지만 그 옆의 ‘1 EURO SHOP’은 문전성시였다.

우리 가족이 여행 중 가장 많이 한 말은 “저기 스타벅스 있네. 좀 쉬었다가 가자!”였다. 스타벅스 매장이 1000개가 넘는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관광객이 붐비는 유럽 어디에서든 익숙한 로고의 커피전문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프랑스는 좀 인상적이었는데 파리 도심에서 루브르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양 기둥에 좌청룡 우백호처럼 스타벅스, 맥도널드가 있었고 심지어 박물관 안에도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 유물들을 마치 프랑스 소유물처럼 의기양양하게 모아둔 곳에서 미국 기업이 돈을 벌고 있는 게 이상할 이유는 아니지만 순간 명동 번화가와 비슷하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로는 이런 변화를 비판했지만 몸은 이미 한국에서 익숙해진 그곳이 너무 편안했다. 스타벅스는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직원들은 손님과 적절한 무관심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니 테이블 인원보다 좀 부족하게 주문해도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화장실도 다른 어떤 곳보다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긴장된 여행 중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공간 사용이니, 우리 가족은 마치 때가 되면 교회를 가듯이 의례적으로 그곳에 가서 안락함을 구매했다.

한국과 비슷해진 유럽에서 원래의 익숙함을 반복하는 여행이라니, 우려스러운 지구촌 한 가족의 탄생이다. 비행기로 10시간을 날아가서도 동일한 브랜드에 차곡차곡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다양성이 실종되는 문제를 떠나 이건 개인의 행복에 관한 문제다. 거대자본에 무조건 유리한 승자독식 구조가 만드는 무한경쟁 시스템에서 여유로운 노년생활, 편안한 모습의 노동자가 존재할 수 없음은 이미 한국에서 증명되었다. 동네빵집의 운명도 분명 비극적일 것이다. 더 절망적은 것은, 그런 때가 오더라도 유명 브랜드의 빵을 쉽게 구해 먹으면서 익숙함에 위로받을 내 모습이다.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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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유학생 시절, 영어가 서툴러도 즐길 수 있던 유일한 낙은 스포츠 중계 시청이었다. 생소한 미식축구도 중계를 보면서 규칙과 선수들 이름을 익혀 나갔다. 어느 날, 미식축구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은퇴한 한 선수가 스포츠 뉴스가 아닌 일반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주(州) 대법관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곧이어 그는 부대법원장이 되었다. 올스타에 해당하는 ‘프로볼’을 아홉 차례 받고 시즌 최우수선수상(MVP)도 받은 적도 있던 앨런 페이지였다. 그는 20년 이상 부대법원장을 역임하다가 2015년에 은퇴했다.

운동선수는 은퇴하면 당연히 코치나 감독이 되는 줄만 알았던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좀 더 지내다보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1990년대 최고의 쿼터백 중 하나였던 스티브 영은 변호사가 되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인 에미 차우는 스탠퍼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전설적인 야구 감독 토니 라루사는 이미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한 상태에서 마이너리그 감독 일을 시작했다. 로랑 두버네이-타디프라는 미식축구 선수는 작년에 의대를 졸업하고 최초의 현직 의사 선수가 되었다. 소속 팀과 5년 475억원의 초대형 연봉 계약을 마친 직후의 일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긴 하다. 세계 랭킹 50위권까지 오르며 한국 테니스의 간판으로 활약하던 박성희씨는 은퇴 후 대학공부부터 시작해 영국에서 스포츠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강의와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한 매체는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의 미국 변호사 장희진씨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에 따르면, 장씨는 당시 중학생으로서 “기말고사 공부를 해야 하니” 태릉선수촌 입촌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가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한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은 했지만) 공부와 수영을 병행하기 위해 유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박성희씨도 “공부가 하고 싶어서” 비교적 일찍 은퇴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최고 클래스의 운동선수가 틈틈이 법대와 의대를 다니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공부와 운동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심지어 대한체육회를 이끌던 박용성 회장조차 2009년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운동을 할지, 공부를 할지 학생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한 매체 기고를 통해 한 바 있다.

운동선수가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은퇴 후 그럴듯한 직업을 갖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승리를 위해, 금메달을 위해 병기처럼 다뤄지는 세계에서 벗어나 교양과 인권을 습득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이다. 선수촌과 합숙의 목표는 조련이지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을 고발했다. 유도선수 신유용도 미성년자 때부터 오랜 기간 성폭행을 당했다며 전 코치를 고소했다. ‘영미팀’은 컬링계의 불합리와 몰상식을 폭로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기업의 여자축구 감독이 소속 선수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하여 해임된 바 있고, 역도 금메달리스트가 후배에게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힌 적도 있었다. 국가대표 배구 코치가 전년도 프로배구 MVP 선수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한 사건이 있었고, 여자농구팀 감독이 전지훈련지에서 소속 선수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적도 있었다.

심석희·신유용 선수의 절규를 그저 ‘체육계 미투’로 남겨놓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문제가 “여기에도 있더라”라는 정도의 인상을 줄까 걱정이다. 또 잠깐 떠들다가 유야무야되고 피해자만 떠나는 일이 반복될까 두렵다. 선수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이상렬 전 코치는 지금 TV에서 배구 해설을 하고 있고, 당시의 책임자였던 김호철 감독은 지금도 국가대표 감독이다. 여자쇼트트랙 상습 폭행 사건의 중심에 있던 김소희 전 코치는 현재 대한체육회 여성 체육위원이다. 최근 사건의 책임 꼭대기에 있어야 할 이기흥 회장과 전명규 교수는 서로 진실 공방만 벌이고 있다. 지금껏 (성)폭행으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체육인이 과연 몇이나 있는가.

미국 체육계도 깨끗하진 않다. 간혹 폭력감독이 등장하기도 하고 성추행 뉴스도 나온다. 하지만 멱살을 잡은 정도의 물리력을 행사했던 감독은 단칼에 잘리고, 치료를 핑계로 30년 동안 성폭행·성추행해온 팀 닥터에게는 175년의 징역형을 내렸다. 최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과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천명했다. 체육계는 별로 믿지 않는 눈치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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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덫에 걸리는 수가 있다. 그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암일 수도, 큰돈을 빼앗아가는 사기꾼의 마수일 수도, 평생 쌓은 명예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횡액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덫이란 것의 실체도 눈에 보이면 적응하기 마련이다. 가장 두려운 덫은 누가 또 얼마나 깊게 쳐놓은 것인지 알 수 없을 때이다. 3년 전까지 시민 이동수도 이런 덫과는 무관하다고 믿었다. 생면부지의 사람과 원수질 일이라고는 없는,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자식들 교육에 노심초사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니까. 

박근혜 정권이 한창 기세를 떨치던 2015년 어느 겨울날 아침, ‘특수’라는 이름이 붙은 한 관세청 부서의 조사관들이 이동수의 회사에 들이닥쳤다. 당황하긴 했지만 이동수는 누군가 단단히 오해를 했겠거니 여겼다. 의료기 업체에 공급한 플라스틱 부품 때문에 참고인으로 조사받아야 한다고 해서 변호사도 없이 조사에 응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갔다. 관세청 문턱을 넘자마자 ‘첨단’자가 붙은 검찰 부서가 나와 마치 대단한 국가기술이라도 유출된 것처럼 집과 회사, 연구소 세 곳을 동시에 덮쳤다. 참고인이 아니라 특허침해 사건의 공범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끝이려니 했는데 이번에는 국세청이 불렀다. 물건은 3억~4억원어치 팔았는데 세무조사는 100일을 했다. 경찰서 ‘지능’팀을 거쳐 검찰로 다시 한번 넘겨진 뒤에야 조사가 끝났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제야 공포가 엄습했다. ‘이 정도면 청와대가 분명한데,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아니면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 머리에 종기가 생겨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런데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특허를 침해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자 수사관들은 그와 거래하던 회사들을 차례로 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출국금지까지 내려졌다. 항변할 여력조차 없는 사이에 알토란 같던 해외주문이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촛불이 한창 타오르던 2016년 겨울,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됐다. 최순실과의 인연으로 부인 박채윤과 함께 ‘보안 손님’으로 청와대 관저에 들어가 박근혜에게 모종의 시술을 한 ‘비선 의료진’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으로부터 덫이 시작됐다는 것을. 김기춘, 문고리 3인방이 아니라 박근혜가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오히려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죽을 뻔했다.’ 

문재인 촛불정부가 3년차에 접어든 지금, 시민 이동수는 특허침해 사건으로 재판에 불려다니고 있다. 김영재가 등록했던 특허들이 차례로 취소되고 있지만, 그는 건재하다. 박채윤만 안종범 전 경제수석에게 명품가방을 준 혐의로 감방에 갔다왔을 뿐 김영재는 구속도 되지 않았다. 이동수를 상대로 조사를 벌인 권력기관들도 그대로다. 한때 그는 검찰과 경찰, 국세청과 관세청의 공무원들을 모조리 고발하려다 생각을 접었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나섰을 테니까. 나머지는 문재인 촛불정부가 당연히 바로잡겠거니 믿었다. 

그러나 이동수의 기대는 비켜갔다. 지난 2년 동안 이동수가 얻은 것은 자신이 얼마나 깊고 견고한 수렁에 빠져 있었는지를 확인한 것이 전부다. 박채윤으로부터 ‘특허를 침해당해 소송이 붙었는데 상대방이 엄청난 로펌을 동원해 나를 압박한다’는 말을 들은 박근혜가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대책을 주문했고, 우병우는 박병대 대법관을 통해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이런 뜻을 전한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이 청와대에 특허침해 소송 자료를 넘긴 정황도 나와 지난해 10월 우병우의 감방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후 수사는 관련 판사들에 대한 영장 기각 등으로 지지부진하다. 시민을 보호하는 데는 너무나 약했던 장치가 덫을 놓은 자들에게는 금강불괴라는 현실에 그는 억장이 무너진다. 

최근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폭로를 보면서 이동수는 다시 한번 가슴이 철렁했다. 촛불정권마저 권력기관의 힘에 기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부 지시를 ‘청부’와 구분하지 않은 채 충실히 따르는 권력기관을 그대로 두는 한, 자신을 옥죄었던 덫은 언제든 되살아난다고 이동수는 믿는다. 촛불정부가 미적거리는지 무능한지는 이동수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시민 이동수에게 가장 끔찍한 말은 “언제까지 적폐청산만 할 거냐. 지겹다”는 것이다. 지난해 박채윤은 법정에서 “남편은 전문직으로서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다.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한다”며 울먹였다. 그날 이동수는 자신을 범죄자로 오해하지 않고 구김살 없이 대해준 딸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만 없었다면 법정으로 달려갈 뻔했다. 출국금지만 풀렸지 이동수의 몸에 남은 덫의 상흔은 선명하다. 촛불정부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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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정책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한쪽에서는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라 노동시장이 위축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동 가격이 오르니 기존 노동자마저 해고해서 실업률이 증가한다. 기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폭등해 경제가 파탄난다. 다른 한쪽에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어렵게 된 것은 임대료와 카드수수료 같은 다른 요인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최저임금 수준이 OECD 가입국 기준으로 볼 때 결코 높지 않으니 더 올려야 한다. 가계소득이 늘면 소비가 증가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해서 경제가 성장한다.

파탄이냐, 성장이냐 다투는 사이 최저임금이 오롯이 경제 문제인 것처럼 오인되고 있다.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 정책의 원래 취지가 묻혀버렸다. 왜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하는가? 편협한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려면 이러한 질문을 문화적 차원에서 근본화해야 한다. 답은 확실하다. 사람을 다른 사람의 소유물, 즉 노예로 떨어트리지 않기 위함이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노예는 법률적 차원으로 볼 때 주인이 소유한 사물이었다. 주인은 노예를 사물처럼 사고팔고 쓰고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유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근대 시장경제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물일 뿐이다.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재산’이 될 수 없다. 이제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에서 자유인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근대 시장경제에서도 사람의 특정 부분은 사고팔린다. 노동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소유자는 구매자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다.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노동을 팔아 살아간다. 생존만을 위해 노동을 팔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노예의 강제 노동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신분 사회와 달리 근대사회에서 인간은 아직 삶의 행로가 완전히 정해지지 않은 자유인이다. 활동을 통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열린 존재다. 노동은 그러한 활동의 하나다.

이렇듯 근대 시장경제는 사람을 노예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경제 논리에만 맡겨놓으면 사람이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을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여 이를 방지한다. 최저임금 정책은 바로 그러한 방지책의 하나다. 노예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최저 가이드라인이다. 그런데도 온 나라가 최저임금을 기업이 지불해야 할 불필요한 비용으로 보고 저주한다. 사실상 노예제를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기업이 노동을 구매해놓고 마치 인간을 소유한 것처럼 마구 갑질을 해댄다. 

현재 많은 청년이 비정규직과 파견직에 내몰리고 있다.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돕기 위해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란다. 여기에서 고용은 기업의 경제 효율성 문제로 축소된다. 기업은 생존하는 데 잠시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청년은 희망을 빼앗긴다. 그래서 자신의 꿈과 욕망의 수준을 낮춘다. 새로 시작하려는 의지가 봉쇄된다. 청년의 진입을 아예 가로막거나 비정규직과 파견직으로 불태우는 ‘고용 저주 사회’의 노예로 전락한 청년의 가슴속에 원한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러니 사람을 벌레 대하듯 하고 입만 열면 혐오와 증오의 언어가 튀어나온다.

이렇듯 소득주도성장론이 저주에 떠밀리자 이제 혁신성장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제껏 누리던 이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인건비 줄이는 데 모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단기적으로는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법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바보짓이다. 최고의 혁신은 다름 아닌 고용이다. 고용은 새로 오는 자에게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절대적인 환대를 통해 이 땅에 살게 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먼저 와있는 자들의 절대적인 환대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시작도 못해보고 바로 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터 잡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되갚아야 할 차례다. 청년, 새 이야기를 가지고 온 새 사람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절대적으로 환대하자.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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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들었다 놓은 사람은 나폴레옹 3세였다.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제2제정의 황제가 되었지만, 삼촌 나폴레옹 1세의 후광 말고는 달리 설명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파리가 프랑스의 심장이라며 ‘파리 대개조’라 불리는 도시개발을 추진했다. 1853년부터 1870년까지 17년 동안 도시개발을 추진했다. 좁고 굽은 골목길은 넓고 곧게 바꿨고, 상하수도까지 말끔하게 손봤다. 핵심은 보나파르트 왕가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었다. 교차로마다 자기 동상을 세우고 그 중심에는 삼촌의 위업을 과시하는 개선문을 두었다. 곧게 뻗은 길은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보는 것 같은 바리케이드 시가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민중들의 시위에 대응하고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는 게 속셈이었다. 파리 대개조로 가난한 프롤레타리아는 파리에서 쫓겨났고 부르주아만의 도시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파리는 아름답다. 파리 대개조의 후속 작업이 20세기 초까지 이어졌기 때문이고, 작가만이 아니라 문화부 장관으로도 탁월했던 앙드레 말로 등의 부단한 노력이 함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렇게 수도는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쥐고 있는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새로운 권력을 꿈꾸는 사람은 뭔가 근사한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서울도 그렇다. 산업화 시대의 서울시장 중에는 별명이 ‘불도저’였던 사람도 있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직전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은 한강에 인공섬을 띄웠고, 광화문광장을 개발했다. 오세훈의 전임 이명박은 말할 것도 없다. 서울광장을 만들어 잔디를 깔고 청계천 공사로 자신의 대선 출마를 위한 가도를 깔았다. 겨울철엔 스케이트장으로 쓰는 서울광장도, 오세훈이 만든 광화문광장도 그렇다. 급한 일이 전혀 없었는데도 서울시장들은 마치 뭔가 홀린 사람들처럼 일을 재촉했다. 

아고라 때문에 광장은 흔히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나, 대개의 광장은 권위적 통치자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독재자들이나 별로 민주주의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광장에 집착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지금은 공원이 되었지만 군사독재시절의 여의도에는 커다란 광장이 있었다. ‘5·16광장’은 박정희의 군사반란을 기념하는 광장이었다. 200만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쓸모는 관급 반공궐기대회였다. 

촛불집회 같은 역사적 사건이 도드라져 보여서 그렇지, 사실 광화문광장도 시민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광장은 오히려 시민들을 동원하는 권력의 공간이었다. 광장에 많은 시민을 모을 수 있는 힘을 시민들이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실에선 정치권력과 자본권력만이 가능한 일이다. 월드컵 축구 중계나 유명한 아이돌 공연, 또는 그들이 ‘국가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행사를 치를 때를 제외하고, 광장은 그저 순찰을 도는 경찰관들이나 소수의 관광객들만의 공간일 뿐이다. 

광장은 대개 권위주의적 통치의 산물이다. 중국의 톈안먼(天安門)광장은 30년 전 톈안먼사태 때만 잠깐 열렸던 곳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진압한 다음, 광장의 쓸모는 국가 차원의 열병식 따위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호찌민은 위대한 지도자였겠지만, 그가 묻힌 주변은 그저 공산당만을 위한 광장이 되었다. 베트남의 여러 성취는 놀랍지만, 집회와 시위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평양의 김일성광장은 말할 것도 없다. 인민들이 광장에서 멋진 춤을 추며 놀기도 하지만, 그건 북한식 집단주의 원리처럼 하나가 전체를 위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20세기 산물이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의 광장은 모두 19세기의 나폴레옹 3세가 건설한 저 위대한 파리의 방식을 좇았다. 널찍한 광장,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공간, 그리고 일상적으로 대중을 동원하고 싶은 권력의 욕구가 함께하는 광장은 20세기에 만들었든, 심지어 21세기에 만들든 모두 19세기적 발상일 뿐이다.

그래서 광화문광장을 지금보다 3.7배나 넓히겠다는 서울시장 박원순의 발상은 생뚱맞다. 국가상징공간이니 잘 가꾸겠다면서도 설계작품의 이름은 ‘딥 서피스’란다. 굳이 번역하자면, ‘깊은 표면’인데, 책 제목 ‘오래된 미래’처럼 기발하거나 가치지향적이지도 않은 그저 멋 부리기에 불과하다. 

오세훈이 새로 개발한 광화문광장의 준공식이 열린 건 2009년 8월의 일이다. 10년도 안되어 광화문광장을 다시 뒤집어 버리겠다는데, 그래야 할 절박한 사정은 어디에도 없다. 오세훈은 광화문광장 공사를 1년2개월 만에 끝냈다. 박원순도 내년에 공사를 시작해 그다음 해인 2021년에 완공하겠단다. 시장 임기를 마치기 전에 속도전을 하겠다는 거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광장을 넓히고 새로 만드는 것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자원 낭비다. 

이젠 더 이상 서울을 광장 따위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정작 비교해야 할 것은 서울시민들의 삶이다. 서울시민이 얼마나 인간답게 사는지가 핵심이어야 한다. 책방과 도서관은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 미세먼지와 폭염에 고생하는 시민들의 건강권은 어떻게 보장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쿠바 아바나에서 식량난을 극복할 때 했던 것처럼 가능한 모든 곳에 나무를 심어 미세먼지 농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고, 여름의 열기를 다만 2~3도라도 낮추는 노력이 시급하다.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도시가 도시민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박원순은 변했다. 이런 이야기도 귀담아듣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일에든 반대는 있기 마련이라며 간단히 퉁 치고 넘어갈 정도로 배포도 커졌다. 얼마 전 인터뷰에선 자기 정치를 하는 게 나쁘냐고 되묻기도 했다. 제발 박원순은 박원순다워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특장을 지워버려서 이제는 박원순다운 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대선에 나가고 싶어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삽질을 잘해서 얻어지는 자리가 결코 아니다. 그렇게 대통령이 된 사람은 이명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박원순이 왜 이명박의 길을 따라가려는지 모르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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