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herland@naver.com


 

이영훈의 단편 소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소녀시대는 기적 같은 존재였다. 복통마저도 소녀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가라앉고 있었다.” G20 세계정상회의 때문에 화장실이 폐쇄된 아케이드 내에서 갑작스러운 변의를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소녀시대 생각에 잠시 통증을 잊게 되는 주인공의 말이다.


 소설에서 아케이드는 배설이 은유하는 개인들의 다양한 욕망에 대한 규제로 매끈하게 위생 처리된 문명 시스템을 구조화하고, 소녀시대는 그 안에 은폐된 억압을 잊게 하는 판타지로 기능한다. 소설은 주인공의 복통과 진통제로서의 소녀시대를 통해, 힘겨운 현실에 대한 힐링 판타지로서의 아이돌에 도취된 지금의 우리 사회를 증후적으로 보여준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라는 제목은 그러한 ‘사회 전체의 아이돌 팬덤화’ 현상을 뜻한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일부 집단의 우상에서 어느덧 전 사회적 신화로 확대된 아이돌의 위상과 팬덤 현상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두 드라마가 등장했다. 얼마 전 종영된 tvN <응답하라 1997>과 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가 그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스타를 동경하는 열여덟 살 소녀의 시점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 팬덤 현상이 드러나는 방식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경향신문DB)


먼저 <응답하라 1997>은 19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아이돌 1세대 팬덤 문화를, 사실적으로 재현된 시대상과 성장 서사 속에 아우르며, 급부상하는 10대 하위문화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했다. 그 세계에서는 판타지와 현실이 서로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시원(정은지)의 팬덤 활동은 10대 소녀의 현실에 가로놓인 입시사회의 그늘과 젠더적 규범이라는 이중적 억압의 분출구로 기능했다. 그녀의 팬픽은 아이돌 기획사에서 제공한 판타지를 전유하는 능동적 팬덤 문화였으며, ‘안승 부인(안승호는 토니의 본명, 즉 그의 아내라는 뜻)’이라는 닉네임은 스타와의 분명한 거리를 인식하고 그 간극을 좁히려는 팬덤 주체의 다중적 정체성이었다.


(경향신문DB)


하지만 <아름다운 그대에게>에는 그러한 간극과 긴장관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아이돌 판타지가 현실을 잠식한 시대의 증후만이 떠다닌다. 단적인 예로 <응답하라 1997>에서 시원이 스타 토니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노숙을 하고 담을 넘다 혼이 나는 에피소드는 ‘사생팬의 현실’을 리얼하게 재현하며 현실과의 간극을 확인시키지만, <아름다운 그대에게>에서 재희(설리)가 동경하는 스타 태준(민호)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의 학교로 전학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는 ‘사생팬 판타지’에는 최소한의 현실성조차 거세되어 있다.


그 세계를 지탱하는 것은 현실성과 개연성이 아니라 그 위에 덧 씌워진 아이돌 신화다. 이 드라마는 국내 최대의 연예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자사의 문화자본을 총동원해서 제작하여 일방적으로 배포한 판타지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팬덤의 주체적인 자리도, 현실과의 간극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주인공 재희는 시원처럼 닉네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캐릭터를 코스프레하는 아이돌 스타 설리의 닉네임에 머문다.


이 드라마에 반영된, 현실을 잠식한 아이돌 신화의 가장 궁극적인 사례는 지난 8월에 열린 SM엔터테인먼트의 가상 국가 선포식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SM 음악으로 전 세계가 하나 되는 가상 국가”를 상정하고, 그를 ‘뮤직네이션 SM타운’이라 명명했다. 비록 가상 국가이지만, 아이돌 1세대 당시 ‘타운’에 불과했던 SM엔터테인먼트가 어느덧 ‘네이션’으로 성장한 것은 우리 사회 아이돌 위상의 변화를 반영한 상징적 사건이다.


그리고 이 ‘네이션’은 최근 SM이 강호동, 신동엽, 김병만 등의 톱 예능인과 장동건, 김하늘 등 톱 배우 소속사와 연이어 합병을 이루어내면서 ‘제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물론 그 제국 신화의 구심점에는 여전히 아이돌이 위치한다. SM의 행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1인자 자리를 공고히 함으로써 그 대표 상품인 아이돌의 경쟁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로써 아이돌이 주도적으로 세운 ‘가상’ 국가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더 강력한 신화로의 예고편이 된다.


‘모두가 소녀시대를 좋아해’에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던 아케이드의 입구는 소녀시대의 화려한 광고판이 장식하고 있었다.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그 입구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그 장면이 마치 모든 길은 아이돌 제국으로 통하는 근미래 풍경에 대한 예언처럼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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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연 | 시장경영진흥원 원장


 

지난 6일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상향조정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폭등한 생활물가로 지갑 열기가 두려웠던 소비자들에게는 국가경제가 나아지리라 기대를 갖는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 하지만 희망적인 전망에도 소비심리 회복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12년 추석 소비계획’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0.3%가 올해 추석 지출규모를 ‘지난해보다 줄일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렇듯 추석을 앞두고 장보기가 고민스러운 소비자들에게 전통시장은 좋은 대안이다. 전통시장은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고려해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의 부담을 덜고, 넉넉한 인심을 더해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 전통시장의 가격 경쟁력은 눈에 띈다. 시장경영진흥원의 ‘2012 전통시장 추석 제수용품 가격 비교·조사’를 보면 추석 제수용품 23개 품목의 평균 가격에서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22.8% 저렴한 것으로 확인됐다. 채소·임산물은 31.7%, 선어류는 24.9%, 생육은 23.6%로 추석 장바구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3대 품목 모두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저렴했다.


(경향신문DB)


전통시장의 가격 경쟁력은 추석처럼 특별한 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8월 진행된 시장경영진흥원의 ‘36개 생활필수품 가격 비교·조사’를 보면, 폭염으로 생활물가가 급격히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의 36개 생필품의 평균 가격이 대형마트보다 9%, 기업형슈퍼마켓(SSM)보다 11.2%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통시장의 가격 경쟁력이 단순히 ‘저렴하다’는 의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질 좋은 제품을 싸게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전통시장이 가진 ‘가격 경쟁력’의 핵심이다. 그 예로 전국 16개 시·도 전통시장이 월 2회 시장경영진흥원에서 진행하는 공동구매 및 특가판매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유통마진을 없애 소비자들에게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하게 하고, 상인들은 매출 증대와마케팅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끝으로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태풍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합리적인 가격 책정과 질 좋은 상품으로 소비자가 믿고 만족할 수 있는 전통시장을 만들어 간다면, ‘진심은 통한다’는 옛말이 전통시장에서도 결코 예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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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현 | 국토해양부 지적기획과장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다음 사회는 지식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활동에 필요한 것은 뱅킹이지 뱅크(은행)가 아니며 학교가 사라질지라도 교육과 학습은 영원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말은 스마트 정부에도 그대로 대입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스마트 정부, 즉 국정관리 능력이 우수한 정부는 정부 조직의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관리능력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스마트 혁명 이후 인식의 개념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은 사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책이 아닌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먼저 실행한다. 쇼핑한다는 말도 이제 백화점보다 컴퓨터나 TV 앞에 있다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아졌다. 


정부 역시 변하고 있다. 최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스마트 워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지식사회에 맞는 정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선 정보의 통합과 융합이 필수적이다. 부동산 행정정보 일원화 사업은 국가 부동산 정보를 공간정보 기반으로 한곳에 담는다는 점에서 부처·부서 간 경계를 허무는 노력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경향신문DB)


이 같은 차원에서 정부는 ‘부동산 일사편리’라는 서비스를 통해 각종 부동산 공적 장부에 들어있는 다양한 행정정보를 온라인상에서 쉽고 편하게 접하게 할 계획이다. 사업이 완료되면 기관 간 연계를 늘려 민원인의 방문이 간소화되고 안방 또는 길거리 어디서나 부동산 관련 각종 행정업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이동 시간과 교통 이용을 줄일 수 있어 에너지 절약과 녹색성장이라는 미래 성장과제에도 부합한다.


공간정보 관리의 효율성 강화는 행정 편의성과 에너지 감축뿐 아니라 재난관리,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공간정보의 3D화를 통해 재난 대비 솔루션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민간에서는 스마트폰의 위치정보 기능에 통합된 공간정보를 접목시켜 구글을 능가할 만한 창의적인 공간정보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다. 또 공공과 민간의 기술 융합은 자연스럽게 소통으로 연결될 것이다. 융합과 소통을 같은 차원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세상의 빠른 변화는 제도나 의식보다 기술에 집중되는 경향이 많다. 이 때문에 ‘스마트 디바이스’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변화된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 비로소 융합된 모든 정보가 내 손안에 들어올 ‘넥스트 소사이어티’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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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국회에서 두 차례 청문회가 열리며 정리해고와 노조탄압 문제가 다뤄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 의제’인 비정규직 문제는 아직 소식이 없다.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당사자가 재벌과 정부이기 때문에, 의원나리들도 눈치를 보고 있는 탓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법원도 불법파견이라 판결한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사회 불평등과 억압의 치부가 드러난다. 예를 들면, 2004년에 노동부가 현대차 1만명 사내하청 전원을 불법파견이라 판정했고, 법원과 노동위도 연달아 현대차 불법파견을 인정했건만 누구 하나 사법처리된 적이 없다. 반대로 법을 지키라며 싸웠던 비정규직노조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2010년 대법원의 첫 판결 직후 벌어진 파업으로 울산·아산·전주의 비정규직 노동자 9명이 구속됐고, 300여명이 기소돼 10억원대의 벌금형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10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 아산·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이건 2010년에 당한 피해일 뿐이며 노조가 만들어진 2003년 이후부터 계산하면 3~4배가량으로 늘어난다. 올해 대법원 최종판결 후 임단협 기간에 벌어진 투쟁에서도 수십명이 고소·고발되고 수십억원대 손해배상이 청구되었다. 앞으로도 체포영장과 벌금 폭탄이 기다리고 있다.


비정규직도 현대차를 상대로 고소·고발과 소송을 진행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따져보자. 첫 대법원 판결 직후인 2010년 8월30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차 임원 30명과 하청업체 대표 124명을 서울중앙지검에 불법파견 혐의로 고발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답은 2년째 ‘수사 중’이라는 것이다.


2010년 파업을 이유로 300여명이 사법처리되고 100여명이 해고되는 등 비정규직의 피해는 ‘즉시’ 발생했는데, 재벌의 불법행위는 2년째 수사 중이라고? 25일간의 파업에는 100억원대의 손해배상이 청구되는데, 지난 10년간 1만명 비정규직을 불법파견으로 착취해온 현대차의 범죄행위에는 단 1원의 벌금도 물린 바 없다. 대법원이 분명한 기준과 근거를 들어 불법이라고 판단한 사안인데도 말이다.


자료와 증거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2004년에 이미 노동부가 현대차와 100여개 하청업체 전수조사를 거쳐 불법파견이라 판정한 바 있고, 2년 가까이 검·경의 수사도 진행되었다. 현대차 원·하청 사이에 주고받은 전자메일만 확보해도 불법 혐의는 금방 잡아낼 수 있다. 공안사건 수사에서 노동자를 때려잡을 때에는 잘도 하더니,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그 흔한 압수수색 한번 구경하지 못했다.


지난 8월2일부터 개정 파견법에 따라 불법파견인 경우 2년 미만이라 할지라도 원청이 직접고용 의무를 지게 된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한 달간 현장점검을 통해 지난 9월4일, CJ대한통운 등 5개 업체의 불법파견을 적발하고 2년 미만인 93명의 비정규직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했다고 발표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어째서 노동부의 현장점검은 현대차를 피해갔을까? 2년 미만 불법파견이 성행하고 있을 것이 확실시되는 대표적 사업장에 대해서 말이다.


오히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한 사건에서 울산·충남·전북지노위는 6개월 만에 현장조사까지 마치고 상당수 사건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중앙노동위도 빠른 시간 안에 현장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런데 2010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는, 2년을 넘긴 지난 9월12일에야 노동부가 아산공장 현장검증에 나섰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것일까? 비정규직 양산의 최대 주범인 재벌, 그래서 비정규직 사용으로 가장 많은 이윤을 내고 있는 재벌 앞에서는 법도, 질서도, 공정성도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핵심문제 중 하나인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여전히 ‘계류 중’ ‘수사 중’으로 놓아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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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특성화고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특성화고 취업률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교육뉴스’(2012·7·1)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특성화고 졸업생 4784명 중 1391명이 취업, 29.1%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이는 2010년 취업률 24.2%에 비해 4.9%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명실공히 취업 지상주의의 찬란한 결실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취업 지상주의라는 빛에 드리운 우울한 그림자가 없는지에 대해선 진지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선 특성화고 학생들은 8, 9교시, 소위 방과후학교 수업까지 감당해야 하는 ‘고역’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권이나 사무직 취업이 이전보다 늘긴 했지만 전체 3학년 학생 수에 비하면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기업이라고는 해도 제조(기능)직 진출로 취업률이 그 정도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LCD나 반도체 같은 제조직에 취업하기 위해 8, 9교시 보충수업까지 받아야 하는 것인가?


"내 일자리는…" 고졸취업박람회 열려 (출처: 경향DB)


취업이 최고의 목표요 가치이긴 하지만 합격 학생에 대한 성급한 입사 주문도 생각해볼 문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금융권, 사무직, 대기업 제조직을 막론하고 합격 학생들을 차출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현장실습이 교육과정상 있긴 하지만 이건 아니지 싶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이 인권 문제 등으로 11월 수능 이후로 미뤄졌던 참여정부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심지어 3학년 교육과정에 있는 보통 과목을 조기 이수 등 편법 운영으로 ‘땜방’하면서 취업에 올인하는 실정이고 보면 얼떨떨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나머지 학생들이다. 앞에서 보듯 취업 지상주의에도 불구하고 평균 취업률은 30%를 밑돌고 있다. 3분의 2쯤 되는 학생들은 극히 일부를 빼고 진학한다는 얘기다. 나름 대입 준비를 해야 하지만 특성화고는 3학년 새 학기 시작부터 온통 취업 분위기다. 수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교사들도 비슷하다. 학생들이 취업 면접 준비다 뭐다 해서 한 반에 10명 넘게 빠지는 때도 있다. 그런데도 교사는 아무렇지 않게 열심히 설명하고 학생들이 잘 듣는다면 그건 십중팔구 거짓말일 게다. 특성화고, 취업이 지상명제이긴 하지만 이대론 안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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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환 | 녹색성장위원회 기획단장


동심동덕(同心同德). 좋은 일에 일치단결하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지난 8월31일 광주 에서 개최된 ‘녹색성장 광주 선언 선포식’과 ‘제20차 녹색성장위원회 보고대회’를 진행한 필자가 느낀 소감이다.


지난 2008년 8·15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으로 녹색성장을 선포한 이래 정부는 녹색성장위원회를 발족하고 이를 중심으로 ‘녹색성장 국가전략’과 5개년계획(2009~2013)을 수립했다. 이를 기반으로 경제, 환경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녹색성장을 위한 변화를 모색해 왔다. 


 이번 ‘녹색성장 광주선언’은 중앙과 지역이 함께 녹색성장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과 그 결과를 전 국민이 향유하는데 힘을 모을 것을 다짐했다. 


이어서 열린 보고대회는 지금까지 지자체가 추진한 녹색성장 정책의 성과를 확인·평가하면서, 우수 지자체의 사례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우리나라의 녹색성장이 국가적인 아젠다일 뿐 아니라 모든 지역과 개인의 실천으로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점과 국민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단계가 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광역시는 전기·가스·수도의 절감량을 탄소포인트로 환산해 인센티브를 주는 탄소은행제도를 도입해 가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이 확인됐다. 


순천시는 갈대습지와 흑두루미 보존을 위해 지역 내 음식점과 전신주를 철거하자 관광객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늘어났다. 또한 애벌레를 이용해 음식쓰레기를 처리하고 부산물을 퇴비로 활용하고 있는 제주 신천리의 실천적 삶과 대구 성서 주공아파트의 주민참여 에너지 절약사업, 이산화탄소와 태양열을 이용한 전남 담양의 에너지자립 시설원예 사례 등을 통해 모두의 삶에 다양한 녹색성장 실천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 설립 협정 서명식' 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 대표단 (출처; 경향DB)


녹색성장은 결코 구두선이나 구호가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자본이나 첨단기술이 필요한 사업은 물론, 마을 등 소규모 공동체, 개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실천가능한 정책이다.


8월의 마지막 날 광주에서 지방이 선도하는 녹색성장이 더 큰 대한민국의 초석이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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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도 “옵, 오, 오웁~빤 강남스따일!”이다. 가수 싸이의 독특한 춤과 노래로 구성된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의 질주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 조회수 2억건 돌파, 아이튠즈 음원 차트 1위에 이어 지난주에는 빌보드 싱글 메인 차트 ‘핫 100’ 순위 64위에서 무려 53계단이나 상승한 11위로 도약했다. 엊그제는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대한 ‘좋아요’ 수가 214만여명으로, 일렉트릭 듀오 LMFAO의 ‘파티 록 앤섬(Party Rock Anthem)’이 받은 157만여명을 훌쩍 넘어 유튜브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 7월15일 발표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이렇게 인기가 식기는커녕 오히려 기세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 놀랍다.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의 한 장면. (출처; 경향DB)


‘강남스타일’ 열풍이 기존의 K팝 한류와는 내용과 방식에서 전혀 다르다는 점도 신선하다. 일부 문화권의 10·20대 마니아층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다양한 세대와 계층에 먹혀드는 보편적인 문화코드를 담고 있다는 평가가 그렇다. 아이돌 스타의 만들어진 듯한 화려함이나 세련미보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30대의 희화적인 노래와 춤 동작이 그런 ‘반전’의 열쇠였을 수 있다. 한국어 가사로 정면 승부한 것이라든가 유튜브·트위터 등 SNS를 통한 적극적 마케팅 등 기존의 K팝과는 다른 성공 공식을 만들어낸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꼽힌다.


하나의 문화상품이 전 세계인에게 재미와 자극을 주는 데는 복합적인 요인과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남스타일 신드롬’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새로운 문화현상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문화적 독창성과 보편성에 더해서 시대적 코드가 ‘강남스타일’과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끝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세계에 살면서 숨기고 있던 피로감을 솔직하고 익살스럽게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주류문화의 무게를 걷어낸 비주류적 감성의 유쾌한 반란에 갈채하고 있다.


전혀 강남스럽지 않은 ‘강남스타일’은 ‘강남’으로 상징되는 주류사회, 주류문화를 선망하면서 동시에 조롱한다. 그것이 강남이라는 언어의 틀을 벗어나 쉬운 음악과 몸 동작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는 게 절묘하다. ‘강남스타일’이 이렇게 색다르고 신선한 문화현상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도 유쾌한 일이다. 그 질주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지켜보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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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나는 안철수 후보의 출마가 반갑고 고맙다. 시대착오적 정권의 확장 가능성을 줄이고,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안 후보 곁에 나타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존재는 찜찜하다. 안 후보 캠프 안에 개혁적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을 잘 안다. 이 전 부총리 한 사람만을 두고 성급히 비판할 생각은 없다. 이 전 부총리를 단순히 ‘낡은 인물’로 낙인찍고 폄하할 생각도 없다. 그가 최근 저서나 인터뷰에서 40대 중심세대론과 공정경쟁, 토건국가 극복 등에 관해 꽤 전향적 제안을 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또한 “수평적 의사결정구조 속에서 이 전 부총리 한 사람이 안 후보 정책을 좌우할 수 없다”는 얘기도 대체로 수긍한다.


 그럼에도 조기경보를 울릴 수밖에 없다. 이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기획단장을 맡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장관(노무현 정부에서는 경제부총리 겸임)을 지낸 인사다. 그의 공과가 다 있지만 그가 주요 직책을 맡은 동안 외국자본의 입김은 거세졌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심화했으며 부동산 거품은 부풀었고 소득격차가 커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의 과(過)를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빈부격차’라고 지적한 안 후보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다음 집권기 동안 발생할 수 있는 가계부채 폭발 위기에 대비해 위기관리 경험을 활용할 생각이라는 말도 들린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이 심각하다는 이 전 부총리와 안 후보의 공통된 인식에 동의한다. 또 가계부채 문제는 ‘지금 선제적으로 터뜨려 해결해야 한다’는 이 전 부총리의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 (출처; 경향DB)


하지만 그의 과거를 되짚어보면 의구심이 생긴다. 노무현 정부 시기 부동산 거품을 키운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전 부총리가 기용된 2004년 초는 2003년 발표된 10·29 대책 등이 일정하게 효과를 발휘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향 안정화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카드채 버블 붕괴와 부동산시장의 일시적 침체로 건설업계와 금융권이 함께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이에 2004년 하반기부터 이 전 부총리는 당시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과 함께 연착륙이라는 미명 아래 ‘한국판 뉴딜’ 등 적극적인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을 썼다. 그 결과 2005년 초 ‘판교발 로또’ 열풍을 계기로 부동산 2차 폭등을 초래하고 말았다.


정책 효과는 장단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 이 전 부총리의 단기적 연착륙 대책은 중장기적으로는 경착륙을 조장하는 정책이었다. 이런 식의 대응은 이후 지금까지 지속돼왔다. 그사이 가계부채는 470조원대에서 920조원대로 갑절가량 늘어났다. 그런 사람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더구나 대다수 서민들이 여전히 높은 집값에 고통스러워하는데도 ‘부동산 값은 올려도 안 되지만 떨어뜨려도 안 된다’는 사람을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전직 관료가 장관 등으로 되돌아오는 ‘생(生)노병사(老兵士)’의 문제다. 관료와 규제 대상 기업 간의 유착이 국내 경제정책과 제도를 왜곡하는 양상은 이미 심각하다. 그 같은 유착의 접합점이 금융권이나 건설업계, 산하기관 등의 전직 관료들이다. 그런데 퇴임한 관료가 다시 장관 등 요직으로 올 수 있다면 현직 관료들의 ‘전관예우’는 한층 심해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 전 장관 기용으로 그 폐해는 매우 커졌다. 이 전 부총리는 지금 ‘공직을 다시 맡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기용되기 전에도 그렇게 말했다. 설사 공직에 기용되지 않고 자문 역할에 그친다 해도 그의 존재감이 공직사회와 대중에게 주는 효과는 작지 않다. 트위터에서는 우려가 분출하고 있다. 이헌재, 이미 안 후보와 너무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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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제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2년가량 기업형 룸살롱을 운영하면서 상습적으로 성매매를 알선하고 거액을 탈세한 업자들을 기소했다. 호텔 지하 1~3층과 별관에 182개의 방을 차려 놓고 여성 종업원 400~500명 등 모두 1000여명을 고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성매매는 전용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호텔 객실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하루 평균 200~300회의 성매매가 이뤄져 업소가 2년간 알선한 성매매는 8만8000건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는 유흥업소가 이 밖에도 수두룩할 것이라는 데 있다. 이런 업소가 서울시내에서만 성업 중인 것도 아니다. 시민들로서는 불법행위인 성매매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기가 찰 뿐이다.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기관과 업소의 유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성매매가 워낙 교묘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쉽게 적발하기 어렵다는 말은 핑계로 들릴 뿐이다.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지 어제로 만 8년이 됐다. 그러나 2004년 법 제정 당시부터 일기 시작한 실효성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특별법이 성매매 알선 업주의 성매매 여성 착취나 미성년자 고용 같은 악질 범죄행위를 막는 데는 기여했지만, 성매매를 줄이는 데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면 성매매가 줄어들기는커녕 ‘풍선 효과’로 더 은밀하게 이뤄질 뿐이라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특별법이 일부 부패 경찰관의 배만 불리고 있다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사실 성매매 유흥업소가 대형화·조직화하고 있고, 신종 성매매 업소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 것을 보면 특별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성매매 전단 인쇄해 유포한 일당 검거 (출처 ; 경향DB)


그러나 현실적으로 성매매를 근절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성매매 업소를 단속하는 기관의 의지가 중요하다. 더러 세상에 밝혀지는 것처럼 단속기관이 업소로부터 금품을 상납받으면서 단속은커녕 뒤를 봐주는 비호세력이 된다면 특별법은 영원히 겉돌 수밖에 없다. 성매매 알선업소는 물론 성매수자에 대한 처벌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의 단속과 처벌이 성매매 방지를 위한 근본 대책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성매매의 확산을 막는 방안의 하나일 수는 있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8년을 맞아 성매매 방지와 관련한 제도적인 미비점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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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역사를 흔히 거울에 비유하여 ‘사감(史鑑)’이라 한다. 이 이름에는 역사를 통해 현재 통치자의 행태를 비춰보고 반성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송나라 때의 학자 사마광 등이 편찬한 <자치통감>은 이러한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역대 최고 역사서로서 통치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꼽힌다.


중국 역대 황제 중에 최고의 명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당 태종 이세민은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이른바 당 태종의 ‘세 개의 거울’이다. 


이런 당 태종 곁에는 언제 어디서든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명재상 위징이 있었는데,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은 소중한 거울 하나를 잃었다며 통곡했다고 한다. 


역사상 올바른 위정자, 제대로 된 통치자는 늘 역사를 거울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단속할 줄 알았다. 반면, 역사를 무시하거나 왜곡한 통치자는 예외 없이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출처 : 경향DB)


송나라가 금나라의 극심한 공세에 시달리고 있을 때 악비 장군은 민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악가군을 이끌고 금나라 군대를 괴롭혔다. 꺼져가던 송나라의 국운이 소생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 절체절명의 순간 못난 황제 고종과 간신 진회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악비에게 억울한 죄를 씌워 처형했다(1142년). 역사가 통곡하고 민중이 통곡하는 순간이었다.


청나라 건륭 연간(1736∼95년), 과거에 장원급제한 항주 사람 진간천이 항주 서호가에 위치한 악비의 사당과 무덤을 찾았다. 그는 악비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람들은 송나라 이후부터 회(檜)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했고, 나는 지금 이 무덤 앞에서 진(秦)이라는 성에 참담해 하는구나”라는 시를 읊었다. 


진간천, 그는 간신 진회의 후손이었다. 악비 사후 600여년이 지난 뒤였다.


역사의 평가가 정말 무서운 것은 역사에 한번 오명을 남기면 두고두고 씻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마천은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가 통일 후 불과 10여년 만에 멸망한 원인으로 ‘막힌 언로’를 꼽으면서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 나중 일의 스승이 될 수 있다(前事之不忘, 後事之師也)”고 과거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 ‘과거를 덮자’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사회 지도층에게 묻고 싶다. 그 말 속에 성찰과 반성이 들어 있는지. 그것이 없다면 역사는 판단이 아닌 심판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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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0년 통계를 보면 한국은 단연 ‘사장님들의 나라’다. 


전체 경제활동 인구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OECD 회원국들의 평균은 17%이나 한국은 무려 29%나 된다. 우리에게 친근한 나라인 미국, 독일, 일본, 영국은 각각 7%, 12%, 12%, 14%에 불과하다. 자영업자가 많다는 게 문제될 건 없다. 남 일이 아닌 자기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 대다수의 생활이 점점 더 궁핍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 평균 1600여명의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다고 한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도 비정규직 임금 정도의 월수입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자영업 시장의 열악함은 가히 극에 달한 듯하다. 인구의 큰 부분을 구성하는 자영업 섹터를 지금의 위기 상황에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중산층의 붕괴와 사회통합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법은 두 가지다. 좋은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많이 창출되는 산업구조를 만들어 자영업 시장으로의 노동인구 유입을 줄이든가, 기존 자영업자들의 사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해법은 장기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한국의 현 상품생산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산설비의 자동화와 불균형적 하도급 거래관계의 형성 등으로 유지되는 대기업 주도의 비용절감형 대량생산체계와 가격경쟁력에 의존한 수출지향 산업체계에선 고임금 숙련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많이 나올 수 없다.


반면 뒤의 해법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확립, 불공정 하도급 거래 질서의 개선, 대형마트 및 SSM 규제의 강화, 그리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지역별 공금융기관의 확대 등을 위한 주요 정책 몇 가지만 도입되어도 자영업 시장의 환경은 크게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제는 과연 어느 정당이 그러한 정책 도입을 책임지고 완수해낼 것인가이다. 한국엔 ‘중소상공인 정당’이라고 부를 만한 이념 혹은 정책 정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옷가게에 폐점한 만두가게 간판이 철거되지 않은 채 걸려 있다. (출처: 경향DB)


상기한 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30% 가까이가 자영업자들이며, 그들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은 전체 노동자의 88% 정도를 고용하고 있다. 어느 정당이든 이 정도 규모의 집단으로부터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 정당은 당장 한국의 최강 정당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지금 자신들을 위한 정치적 해법이 채택되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거대 집단을 전문적으로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왜 누구도 이 상황에서 중소상공인의 정치세력화에 나서지 않는 걸까? 


물론 중소상공인들의 낮은 결속력과 조직화 수준 등과 같은 수요 측면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급 측면에 있다. 정치인들이 중소상공인 정당의 탄생을 위해 노력할 인센티브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선거제도다. 지역주의와 결합된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중심의 현 선거제도 하에선 중소상공인들의 ‘정치적 유용성’이 별로 크지 않다. 오직 1등만이 의미가 있는 지역구 선거의 유권자들은 대체로 1등이 될 만한 후보에게만 투표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표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주의가 강력한 변수로 작동하는 한국의 선거정치에선 노동자들도 노동자 정당이 아닌 지역 정당 후보들에게 표를 몰아주곤 한다. 중소상공인들이라고 예외일 리는 없다. 그러니 이러한 제도 조건하에서 누가 중소상공인 표의 결집을 기대하며 그들을 위한 정당 설립에 나서겠는가. 비례대표제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중소상공인들도 ‘지역 1등 뽑기 게임’에 말려 들어 그 귀중한 표를 낭비하지 않고 진정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에 표를 모아줄 수 있다. ‘사장님들’을 위한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정당은 그때에야 비로소 부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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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한 명이 말을 할 때마다 쌍용자동차(쌍용차) 가족대책위원회와 해고자들이 앉아있는 청문회 참관인석에서는 탄식과 울음이 새어나왔다. 청문회에서 진실이 규명되지는 못했다. 그저 정리해고 과정에서의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쏟아진 수많은 말들은 우리에게 법적 진실이 아닌 또 다른 진실을 알려준다.


 한 쪽 증인들은 ‘이윤’과 ‘회피’와 ‘적대’의 말을 쏟아낸다. 쌍용차 부도는 회사의 부채비율을 부풀렸기 때문이고 이것은 상하이차의 ‘먹튀’를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데, 안진회계법인은 회계상 부채비율을 늘리라고 제안만 했다고 말한다. 삼정KPMG는 2000명 이상을 정리해고하는 구조조정안을 내놓고도, 그 근거가 전문가의 위력을 빌린 허위라는 증거를 제시하자 실무자의 실수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유일 쌍용차 회장은 한번도 정리해고자를 만나본 일이 없으며, 22명의 죽음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노동부 장관은 “기업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리해고가 필요하다”는 회사의 말만 앵무새처럼 따라한다.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은 노동자들이 폭력적이고 자신들은 약간 과한 진압만 했고, 여전히 잘한 일 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말에는 ‘사람’이 없다. 그들의 말에는 전쟁터의 적을 대하는 듯한 적대감, 기업의 이윤을 방해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다. 그들이 분노를 내뿜는 대상들이 쌍용차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 이들이고, 살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이들이라는 인식이 없다. 그들에게 노동자는 차가운 서류상의 숫자일 뿐이지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이들이라는 인식이 없다. 회사가 준 자료를 인용한 것이라거나 실무자의 실수일 뿐이라거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등 그들의 말에는 회피만 가득하다.


굳은 표정의 쌍용차 사장 (출처: 경향DB)


그런데 그 맞은편에는 ‘사람’의 말이 있다. 회사가 농성 노동자들을 진압하겠다며 전기와 수도를 끊었을 때, 회사가 포기한 도장공장을 살려보겠다고 농성 중에도 비상발전기를 돌리며 도료가 굳지 않게 만들었다던 바보같은 노동자들의 말이 있다. 무급휴직자들의 조합원 자격 인정을 위해 소송을 지원하고 희망퇴직자들이 쓸쓸하게 죽어갈까 걱정해서 계속 찾아나서고, 공장 안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걱정하고, 함께 투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반드시 함께 정규직으로 복직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말이 있다. 그리고 ‘와락’을 만들어서 죽어가는 이들을 껴안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많은 시민들의 따스한 말이 있다. 


이들의 말에는 연대와 희망과 절실함이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기업이 망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쌍용차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라고 말한다. 많은 죽음들 속에서 힘들지만 여전히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이 연대해서 모든 이들의 권리를 함께 찾아보자고 말한다.


청문회를 통해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이미 진실을 알게 됐다. 글로벌 경제위기 운운하며 일하는 이들을 협박하는 기업과 노동부와 경찰의 논리로는 23번째 죽음을 결코 막을 수 없으며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할 뿐임을 말이다. 모든 이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노력은 고통스러워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청문회를 넘어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국정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단지 이번에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의 온갖 ‘말’이 거짓임을 드러내고,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노동자들과 그에 대한 따뜻한 연대만이 진실임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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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사회부 기자


지난 20일 오후 11시40분. 3년 만에 처음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관련 청문회’가 마무리되는 순간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신상발언을 요청했다. 그는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자리를 마치려 합니다. 뜬눈으로 몇날 며칠을 지새우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일터로 돌아가라는 국민의 채찍이 있었습니다. 많이 미약합니다 저희들이…”라며 쌍용차 정리해고의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 것에 유감을 표했다. 이어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2646명의 정리해고가 이뤄졌던 쌍용차 문제가 더 이상 유령처럼 떠돌 수는 없다”며 “진실규명 전에는 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3년간 22명이 숨졌다. 그러나 이 문제는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는 명확하지 않은 ‘유령 같은 사건’이다. 그 유령의 실체를 밝히고 책임을 묻는 데 13시간40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쌍용차 주요증인 불참 (출처: 경향DB)


쌍용차 인력감축의 주요 근거가 된 생산성지수가 공인되지 않은 회사가 임의로 산출한 수치였음이 밝혀졌다. 쌍용차의 유동성 위기, 자산가치, 부채비율이 조작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기술유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정치적 부담 때문에 상하이차가 한국 철수를 결심했다는 외교통상부의 대외비 문서가 공개됐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과 제한된 발언 기회 때문에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못했다.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거나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해고자·무급휴직자 복직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마힌드라 사장, 2009년 쌍용차 부도 당시 현금 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박영태 공동관리인도 이날 출석을 거부했다. 경찰 과잉진압의 책임자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폭력을 오히려 노조원 탓으로 돌리고 과잉진압을 부인했다.


청문회를 통해 3년간 드러나지 않은 의혹이 새로 제기됐다. 이제 남은 것은 ‘몸통’을 조사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국정조사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26일까지 여야 간사 협의로 쌍용차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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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


오랜만에 오윤(1946~86)의 판화를 다시 보았다(아라아트, 9·19~10·16).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가 남긴, 칼로 새긴 그림들은 유혼처럼 떠돌아 어디선가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 나무의 표면에 칼질을 해서 또렷하게 새긴 이미지는 군더더기 없는 형상의 요체와 흑백의 단호한 대비 속에서 빛난다. 당대 현실에 대한 뜨거운 감정과 분노, 애정 등이 두루 다 녹아서 흐른다. 그 이미지는 기존 미술어법과 판이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장식, 요령, 꼼수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자신이 절실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을 진정으로 형상화할 뿐이다.


그의 모든 판화가 다 좋지만 유독 이 ‘칼노래’는 그 단호함에서 인상적이다. 칼춤을 추는 남자의 눈매가 오윤 그대로다. ‘칼노래’는 최제우가 19세기 한국 땅에 닥친 내외적 상황을 한칼에 자르는 것을 이미지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 모든 삿된 것들을 한칼로 베는 자이다.




그런 존재가 바로 예술가라고 보았을까? 그는 우리 역사 속에서 민중의 삶과 애환,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생존방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른바 살(煞)의 정체를 풀어 신명을 획득한 우리 조상들의 생존방식을 흥미롭게 본 것이다. 그 살풀이로서의 그림, 살을 푸는 행위자로서의 예술가상은 그래서 나온다. 그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근대화 속에서 망실되어 버린 ‘신명과 주술이 지배하는 세계’를 진정 추구했던 이다.


알다시피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망실된 전통 이미지가 지닌 주술성과 영성성, 살풀이의 힘을 회복시킨 이는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간대에 대표작을 내놓고 죽어간 오윤과 박생광이다. 나로서는 그런 오윤의 여정이 압축되어 나온 것이 1984년에서 죽기 직전인 1986년 7월5일 사이에 나온 ‘원귀도’ ‘칼노래’ 같은 작품이라고 본다.


오윤은 억울하게 죽은 숱한 혼령들을 위무하고 그들의 아픈 상처와 한을 보듬는 살풀이로서의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이다. 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민중의 삶과 아픔을 이해하고자 한 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무당이라고 보았다. 그는 “예술가면 무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당만큼 울려주고 감동시켜 보라”고 말한다.


오윤의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내내 그의 육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예술이 살아남는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정말 진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올바른 역사인식이나 인간에 대한 진정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 현실에서 그의 그림이 여전히 감동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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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돈을 주울 때가 있다. 오백원짜리 동전이나 천원짜리를 발견하면 부담없이 돈을 주웠다고 할 수 있는데, 오천원짜리나 만원짜리를 줍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파출소로 가져다 줄 수도 없고, 주인을 찾아줄 수도 없어서 난처할 때가 있다.


고려 공민왕 때의 일이다. 


평민인 형제가 함께 길을 가던 중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서 형과 나누어 가졌다. 나루터에 와서 형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너는데, 아우가 갑자기 갖고있던 금덩이를 물속에 던졌다. 


형이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제가 평소에 형님을 독실하게 우애하였는데, 금을 나누어 가진 다음에는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갑자기 생깁니다.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니, 강에 던져서 잊어버리는 것이 낫겠습니다”고 대답했다. 형도 “네 말이 참으로 옳다”며 금을 물에 던졌다. 그때 같은 배를 탔던 자들은 모두 어리석었던 까닭에, 그 형제의 성씨와 거주하는 마을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이야기로, 안양천이 한강에 합하는 부근에 있던 투금탄(投金灘)의 유래다.


횡재를 하거나 느닷없이 돈이 생긴 사람들치고 의를 상하지 않은 형제가 없고 부부마저 갈라서는 물질만능시대에 투금탄에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얼마나 신선한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길을 가다가 그런 횡재를 할 수 있을까?


부산에서 서울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영남대로’를 열사흘째 걸어서 용인의 동백지구를 지날 때의 일이다. 동백지구 건설이 한창일 때라 아침을 먹을 식당 하나 없었다. 김밥집을 겨우 찾아서 김밥을 시키며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경기 용인시 구갈동 동백지구에 용인경전철이 가로지르는 노선이 만들어져 있다. (출처 : 경향DB)


“이곳이 많이 변하고 있지요?” 


“그럼요, 마을도 없어지고, 들도 없어지고, 논도 없어지고, 2006년이면 아파트에 입주해요. 토박이들은 다 부자가 되었어요. 땅값을 평당 1200만원씩 받았다고 해요. 이렇게 힘들여 만들어도 한 줄에 천원이니, 언제 저런 아파트에 들어가겠어요. 빚 얻어 땅 투기하는 게 더 빠를 거 아니겠어요?” 


이 말을 듣다가 우리 일행이 경험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부산 동래에서 여기까지 열이틀 동안, 네 명이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땅만 보고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백원짜리 동전 한 개와 십원짜리 두 개, 총 120원밖에 못 주웠습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우리도 함께 웃었다. 옛날에는 모두 걸어다녔으니 돈을 흘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들 차를 타고 다니니 누가 돈을 길에다 흘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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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마당극 연출가이자 창작판소리의 소리꾼 임진택은, 언어를 다루는 데에 능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속의 탁월한 말장난들은 관중을 압도한다. 그의 개그 본능은 일상에서도 쉬지 않는데, 그 수준이 우리의 상투적 언어습관을 되짚어보게 하는 지적인 개그들이다. 대화 중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내가 그 사건의 산증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야.”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뭘까? “첫째는, 그 사건을 경험했으니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는 눈을 좌우로 돌려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뭔가 개그적 반전이 있다는 신호이다. “둘째는, 내가 살아있는 점이지.” 듣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폭소 작렬’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자주 쓰이는 ‘산증인’이란 말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아있으니 증인이 될 수 있지, 죽었다면 증인도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참 그럴듯해 보이는 상투적 표현인데, 어디에선가 논리가 어긋나버린 말인 셈이다.


5.16 군사쿠테타 규탄 기자회견 (출처: 경향DB)


 상투적 표현에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 많다. 일반인들이야 가끔 잘못된 상투어를 구사해도 눈감아줄 수 있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 직업적으로 말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이런 상투어를 엉터리없이 구사하는 것을 보면, 나는 ‘빨간 펜’을 대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해진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역사적 판단에 맡긴다’는 말도, 나 같은 글쟁이의 ‘교정 본능’을 자극하는 말이다.


‘역사적 판단에 맡긴다’는 말, 참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이 쓰여야 하는 경우는 언제일까. 그건 ‘바로 지금’ 벌어진 일이어서, 아직 ‘역사적 판단’을 하기에는 시기가 이를 때에 쓰는 말이다. 그러므로 5·16 직후나 유신시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면 합당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 판단에 필요한 역사적 거리가 생기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5·16으로부터 51년, 10월유신으로부터 40년이나 지난 시점이어서 이미 충분한 ‘역사적 거리’가 확보되어 있고, 역사학계에서 이미 역사적 판단이 내려졌으며 심지어 박 후보 자신도 나름의 역사적 판단을 내보였다. 그런데도 또 ‘역사적 판단’ 운운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건, 세간의 역사적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우회적 표현일 것이다. 직설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 즉각 반론이 제기될 것이고, 더 이상 그런 반론을 받고 싶지 않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는 의미로 읽힌다. 심중을 뒤로 감추고 그럴싸한 상투어로 대신하는 일종의 수사적 표현이다.


그의 언어구사에서는 이렇게, 정확한 의미보다 가치, 어감, 효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5·16을 쿠데타(정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경향이다. 쿠데타와 혁명을 가르는 것은 가치판단이 아닌 ‘사실판단’의 문제이다. 그런데 ‘쿠데타는 나쁜 것, 혁명은 좋은 것’이라는 가치판단적 어감에 묶여있으니, 이렇게 사실과 어긋난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5·16이 쿠데타였고, 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면 될 것을, 쿠데타가 아니라고 우기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동학농민혁명이 ‘혁명’이고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정변’(쿠데타)인 이유는, 동학농민전쟁은 좋은 일이고 갑신정변은 나쁜 일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가치평가가 아닌 사실판단의 문제인 것이다.


혁명과 쿠데타의 구별점을 제대로 몰라서라면 상식이 허약한 것이며, 알고도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사실판단의 문제를 가치판단의 문제로 호도하는 태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혹은, 우리 국민들은 사실의 문제들을 종종 가치의 문제로 받아들여 쉽게 감정적으로 들뜨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국민을 진짜로 잘 살게 하는 것보다 감정을 도닥거리는 것을 더 중시할 터인데, 제발 그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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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석 | 서울 노원구청 재무상담사


 


필자는 퇴직 후 구청에서 재무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상담하러 오는 분은 대개 45세 이상의 생활이 아주 어려운 여성들이다. 이들은 생계비에도 모자란 수입으로 하루하루 허덕이고 있고, 신용등급 및 소득이 낮아 은행 등 금융기관의 저리 신용대출을 이용하지 못하고 신용카드 돌려막기나 사금융 늪에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향신문DB)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빈부의 격차가 이토록 심한 줄 몰랐다. 필자는 과거 은행 재직 시 대출상담 고객들에게 거래실적, 소득, 주택 소유 등을 간단히 물은 뒤 거절했던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따지고 보면 은행들은 부자들에게는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되레 높은 이자를 받아 제 배를 불려온 셈이다. 이제라도 금융기관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또 고객상담 시 과거 상담 방법과는 달리 유연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며, 저신용등급 등의 사유로 융자대상이 안되면 금융지원시스템 및 자활제도(신용회복, 개인회생, 신용등급 관리방안) 등을 부연 설명해주는 적극성이 요구된다. 또한 당국은 서민들이 사전 금융교육을 통해 고금리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신용관리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다중 채무자에게는 제도적 방법(개인워크아웃 등)을 활용하여 조금이나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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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가 온다. 비 오는 바다. 비 내리는 섬마을. 이거 죽이는데? 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비 내리는 바닷가는 당장 도시를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는 최고의 로망이니까. 습기를 극한으로 몰고 간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동네 목욕탕과 닮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바닷가에 내리는 비는 감미롭다. 일단 그렇다. 비구름이 반사된 바다는 무거운 청동색으로 낮아지고 수면에는 수많은 동그라미가 생긴다. 동백나무숲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잎사귀에서는 눈물처럼 물방울이 떨어진다. 지나가는 사람은 종종걸음을 치고 창문은 젖어가고 갈매기도 낮게 날다가 이윽고 모래톱에 내려앉아 부리를 깃에 묻는다. 그리고 물안개에 가려 점점 멀어지는 바위섬과 수평선. 세상은 물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든다. 


 

(출처: 경향DB)


이 풍경, 키스처럼 감미롭다. 그래서 바다에 비 내리면 충동적으로 키스가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바닷가에서 혼자 사는 중년 남자에게 그런 기회가 올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좋은 일이란 평생에 세 번 정도밖에 안 생기니까. 결국 섬에 비가 내리면 할 게 없다. 정말 할 게 없다. 우산 쓸 일도 없다. 이곳에서는 우산이 무용지물이다. 이웃집 갈 때 쓰는 정도이다. 바람 없이 잔잔한 비는 일 년에 며칠 안되기 때문.


비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이곳 주민들은 비가 지나가기를 그저 견딘다. 낚시, 밭일, 갯것 어느 것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다. 가게마다 매상이 뚝 떨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문 닫아걸고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거나 화투를 치거나 술을 마신다. 비가 오면 부침개를 해 먹기는 한다. 습기는 후각을 예민하게 한다지만 어떤 시인이 부침개 부치는 소리를 ㅊ ㅊ ㅊ로 썼듯이 청각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하나 그뿐이다.


그러니 몹시 무료해진다. 창가에 앉아 음악을 틀어놓고 비 내리는 바다를 보는 것도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오래 할 짓은 못된다. 키스가 감미롭기는 하지만 몇 시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안다.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면 반나절 입을 대보고 있으면 된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무시로 곰팡이는 번식하고 그동안 잘 말려놓은 미역과 생선도 다시 살아나려 한다. 이불은 꿉꿉하고 방바닥엔 늘 발자국이 생긴다. 비가 지나간 다음에 해야 하는 청소도 지겹다. 그런데 비가 또 온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와도 너무 온다. 죽을 맛이다. 그러니 부러워하실 거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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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상 | 화가·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동북아역사재단 내에서 독도체험관이 문을 열었다. 도심 속에서 동해의 파도 소리, 물새 소리와 태극기가 독도 정상에서 펄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감회가 남달랐다.


동북아역사재단이 독도체험관을 만든 것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찬사를 보낸다. 이제 남은 것은 관리와 운영이다. 많은 사람이 독도체험관을 방문할 것이다. 어린 아이와 어른, 학생과 직장인, 한국인과 외국인 등. 


그런데 지금의 면적과 위치로서는 물리적으로 그 다양하고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듯싶다. 치밀하고 효율적인 운영 및 관리 계획을 세워 독도체험관을 찾는 이들이 문전에서 발걸음을 되돌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독도가 이렇게 생겼구나 (경향신문DB)


 또 독도 영토주권을 국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다양한 교육·홍보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 주길 바란다. 독도체험관은 상설전시관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상 유지만을 하며 관람객이 계속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관람자들을 고려한 다양한 교육·홍보 프로그램을 운영해 서울뿐만 아니라 제주도에서도 그리고 외국에서도 찾아오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도체험관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이곳은 독도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보전·전시하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 독도의 자연·역사를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체험관으로서의 기능, 독도 관련 학교 교과 내용과 연계된 입체 교과서로서의 기능, 문화예술 창작으로 나라사랑 실천을 통한 홍보와 부가가치의 창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독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고, 그것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집약적 전시·체험 공간이다. 대한민국 내의 유사 기관 중 아직 이런 전시기관은 없다. 독도체험관 기획·진행 담당자가 정의하듯 ‘신개념 전시관’이다. 


앞으로 이 기능들을 잘 수행해 독도체험관이 독도 영토주권 수호에 앞장서는 곳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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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 


송강호의 애드리브라고 알려진 영화 <살인의 추억>의 대사다. 


연이어 성범죄가 보도된다. 차마 입에 올리기 싫은 사건이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 가득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도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난 깜짝 놀란다. ‘강간’ 같은 단어를 말할 때면 마음이 편치 않고 옆에 누가 있는지 눈치도 살피게 되는데, 요즘은 뉴스만 틀면 성범죄의 세부 과정이 다 등장한다. 그러니 초등학생 아이들의 대화에 성폭행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정말 우리나라가 강간의 왕국이 된 걸까? 


 인터넷에서 ‘한국, 성범죄’라는 두 키워드로 검색해 보기만 해도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이며, 게다가 미신고 범죄나 합의로 고소가 취하된 경우를 따지면 숫자가 훨씬 더 증가한다고 한다. 구태여 숫자를 따져봐야 뭐하나.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만 보더라도 우리 현실이 적나라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음란물을, 그러니까 포르노를 문제의 원인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포르노는 우리나라에서 조금의 여지도 없이 불법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강력한 청소년보호법이 있어, 합법적인 콘텐츠라 하더라도, 청소년의 정서를 해칠 것 같으면 여성가족부에서 유해매체로 지정할 수 있다. 유해매체가 되면 함부로 열어볼 수 없게 포장돼야 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진열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만연한 음란물이 문제라고? 


포르노가 문제라면, 포르노가 합법인 일본은 그야말로 지옥불구덩이 속이어야 한다. 하지만 창피하게도 일본의 우익 누리꾼들은 우리나라를 강간의 나라라고 조롱할 정도다. 그러니까 포르노는 문제될 게 없는 게 아닌가? 아니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포르노는 불법이다. 그게 문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불법이어서 문제다. 불법이기 때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데, 버젓이 존재한다. 다만, ‘야동’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어서. 누가 만든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포르노가 야동이 되는 그 지점이 문제의 시작이다. 


불법 음란물 혹은 포르노라는 문제적 단어를 대치한 야동. 어감도 귀여운 야동은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는 토크쇼, 스포츠신문 기사, 유머 게시판 등에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다. 심지어 어느 시트콤에서는 완고한 할아버지 캐릭터가 야동을 보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는 에피소드가 나왔고, 한때 국회의원을 지낸 한 배우는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포르노는 불법적인데, 이걸 야동으로 바꿔 모든 세대의 상큼한 취미활동쯤으로 덧칠을 했다. 이런 상황이니 어른들은 물론이고, 청소년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야동을 찾아본다.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에서, 포르노는 야동으로 개명하고, 국민적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패러디. (경향신문DB)


야동이 된 포르노. 분명 불법인데 합법처럼 보이는 이 진기한 현상의 핵심에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많은 불법들이 제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5·16과 12·12다. 5·16과 12·12 모두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반란, 그것도 무력을 사용한 군사반란이다. 그런데 그 불법적 행위를 반란이라 부르지 않고 5·16, 12·12라고 부른다. 5·16? 12·12? 무슨 암호인가? 그래서인지 그 암호에 응답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뭐, 자신의 가치관과 역사의식에 따라 군사반란을 옹호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반란을 숫자로 치환하지는 말자. 그렇게 군사반란이 우리나라를 공산당의 침략에서 구한 구국의 결단이라 생각한다면, 좋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구국의 군사반란이라고 부르시라. 다만, 5월16일 새벽 전차를 몰고, 군대를 동원해 멀쩡한 정부를 전복시킨 명백하고도 객관적인 반란은 반란으로 부르면 될 일이다.


포르노는 포르노로 불러야 하고, 군사반란은 군사반란이라 불러야 한다. 포르노를 야동으로 부르는 순간, 유통과 시청이 말썽꾸러기들의 장난 정도로 포장된다. 근엄한 이순재씨가 ‘야동순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군사반란을 숫자의 조합으로 부르는 순간, 불법이 모호함으로 포장된다. 본질인 반란을 숫자로 가리고 나면,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따위의 주장이 나오게 된다.


5.16혁명? 군사반란


포르노가 야동이 된 우리 사회는 불법이 합법으로 가장되는 사회다. 합법으로 가장된 불법은 약한 자들을 짓누르고 착취하는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병을 뿌리 뽑을 때는 원인균을 박멸해야 한다. 성범죄를 줄이고 싶다면, 우리 사회에서 작동되는 이 왜곡의 메커니즘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포르노는 포르노라 부르고, 군사반란은 군사반란이라 부르자. 용어가 인식을 만들고, 인식이 행동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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