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빌리는 고객은 을(乙)이고 은행은 갑(甲)이다.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도 감지덕지다. 그런데 대출을 받으려면 등록세나 인지세, 감정평가수수료와 같은 부대비용이 들어간다. 이것을 근저당 설정비라고 한다. 보통 대출금액의 0.6%에서 0.9%로 1억원을 빌리면 근저당 설정비는 70만원 안팎이다. 이것을 그동안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가 내지 않고 고객이 물었다. 돈을 빌리면서 집을 저당잡히는 것이고, 제때 돈을 갚지 못하면 집 소유권은 은행으로 넘어간다. 당연히 은행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적어도 지난해 7월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돈을 빌리는 고객이 약자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해 7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해 근저당 설정비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가 부담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그 이전에 ‘부당하게’ 근저당 설정비를 냈다고 여기는 대출자들이다. 이들은 근저당 설정비를 되돌려달라며 은행이나 금융회사를 상대로 줄소송을 낸 상태다. 한국소비자원이 앞장서서 4만2000여명의 소비자들을 대신해 1500여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환급소송을 낸 것을 비롯해 현재 10만여명이 소송에 참가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이런 상황에서 대출자들이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이창경 판사는 이모씨가 경기 부천의 한 신용협동조합(신협)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이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사는 담보와 같은 권리를 취득하는 비용은 채권자인 금융회사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결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당연한 결과라면서 환영했다. 은행연합회는 은행과 신협은 상황이 다르다고 해명하고 있다. 은행은 고객이 근저당 설정비를 내면 대신 이자를 깎아주었다는 것이다. 고객 스스로 선택을 했다지만 실제 은행 창구에서 그렇게 했는지는 의문이다. 금융계는 다음달 6일 국민은행을 상대로 270여명의 고객들이 낸 소송 1심 결과가 향후 집단소송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은행 패소, 대출자 승소로 나온다면 최대 10조원대 집단 소송으로 번지게 된다. 소송을 해야만 대출자들은 근저당 설정비를 되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서 고객에게 덤터기를 씌우는 금융계 관행이 더 이상 계속돼선 안된다. 이번 사안이 어떻게 결론이 나든, 낙후한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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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 | 변호사


 

곁에 켜져 있는 TV에선 개그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는, 동네 앞 슈퍼나 미용실의 어느 흔한 오후. 아주머니들이 머리를 맞대고 게임을 하고 있다. 가로 세로로 연결된 동물 머리 모양의 아이콘을 터뜨리는, 묘한 중독성을 가지는 게임. 하루에 허용된 회수를 초과하여 한 두 판 더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선 ‘하트’가 필요하다. 주소록 상의 지인들에게 게임초대 메세지를 발송하면 하트가 생긴다. 누군가에게 하트를 줄 수도 있다. 


게임이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무뚝뚝하던 직장 상사가 하트를 달라고 외쳐대고, 전철 안에서는 모두들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러대고 있으며, 한밤중에도 게임 관련 메세지 알람이 울려 잠이 깬다. 평소 연락하지 않던 주소록의 지인에게, 게임의 고득점의 비결을 묻는 전화를 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게임 그만하고 공부하라던 엄마가 이제는 본인이 더 정신이 없다. 역지사지된다. 화면을 사이에 둔 모녀간의 협동 팀플레이도 변형된 형태의 가족간의 대화다. 한때 포켓볼 당구와 스타크래프트에 열심인 여대생이었던 엄마들이, 김동인의 소설 <광화사(狂畵師)>에 등장하는 소경 처녀처럼 게임의 재미를 알아버리고 나니, 소통방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하트는 대화의 수단(手段)이며 동기(動機)이고 목표(目標)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대화의 내용(內容) 그 자체다. 


(경향신문DB)


 ‘본방 사수’라는 신조어가 상징하듯, 방송 통신의 융합으로 어디서든, 그리고 언제든 생방송과 재방송(VOD)을 시청할 수 있다. 인기리에 방송 중인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여인에게 거지가 이야기한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 


여인은 궁금함을 참지 못 하고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건네준다. 그리고는 답을 듣기 위하여 귀를 쫑긋 세운다. 재미있는 상황과 말투 탓에, 장안의 유행어이다. 누군가로부터 지식을 듣기 위하여 기꺼이 지갑을 열어 흥정하는 재미. 이건 획기적인 사건이다. 전문가에게 자발적으로 댓가를 지불하며 궁금증을 해소해야 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누군가에게 대답해 주며 비용을 책정하여 본 일이 있는가. 이 개그맨들의 대화 내용과 말투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무형의 재화, 즉 지식을 얻고 이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유행어와 함께 자연스레 학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지에게도 오백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으로선, 고마운 지식을 알려준 눈앞의 전문가에게 기꺼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한다.


게임이든 방송이든, 스마트폰 - 태블릿 - 스마트 TV로 이어지는 물적 유통 인프라에 적합한, 심적 자세가 드디어 갖추어진 셈이다. 게임을 백안시하던 문화가 바뀌고 세대간 소통이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누구든 노력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전문가를 대접해 주는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하고 있다. 하트와 오백원이 시나브로 거대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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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작가 이상(李箱·1910~37)은 카페 사장이었다. 1933년 이상이 서울 종로1가에 문을 연 다방 ‘제비’는 당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3개 벽면이 유리로 돼 있어 차를 마시며 바깥을 볼 수 있는 구조도 특이했다. 1934년 5월1일자 잡지 ‘삼천리’에 게재된 ‘끽다점평판기’를 보면 “다방 손님은 주로 화가, 기자 그리고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할 일 없이 차나 마시며 소일하는 유한청년들이었고” “그들은 ‘육색(肉色)’ 스톡킹으로 싼 가늘고 긴 각선미의 신여성들을 바라보며 황홀해했다”고 한다. 


이상은 폐결핵 치료를 위해 머문 황해도 백천온천에서 만난 기생 금홍과 함께 다방을 운영했다. 그러나 이들은 돈이 없어 커피나 홍차를 제때 구비해놓지 못했다. 다방마담 금홍은 영업에 신경을 쓰지 않고 외출하기 일쑤였다. 나라를 잃은 불행중에도 커피 한잔의 낭만을 주던 다방이지만 ‘제비’는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상은 이후 ‘쯔루(鶴)’, ‘69’ 다방도 운영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당시 금홍과 동거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소설 <날개>로 태어났다.  


(경향신문DB)


(재)아름지기가 운영하는 서울 통인동 한옥 ‘이상의 집’이 내년 4월17일까지 한시적으로 ‘제비다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집은 이상이 살았던 집터의 일부이며 이상을 기억하는 통로이다. ‘커피’라는 문화코드를 음미하는 장소로 변신한 이곳은 이상이 제비다방에서 예술가들과 교류했듯이 동시대인들이 문화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아름지기는 화장실에서 시상을 떠올리던 이상을 기념하기 위해 ‘변소’방을 만드는 등 시대의 아방가르드를 대표한 이상의 정신을 담기 위해 ‘이상’다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손숙 연극배우가 일일 마담으로 나서 이상의 누이동생 김옥희의 회고록을 낭독하고, 손님으로 찾아온 안숙선 명창은 즉흥으로 ‘사랑가’를 열창했다. 이 자리에선 연극 연출가 고 이해랑이 서울 명동에서 운영했던 ‘동방싸롱’ 비화도 공개됐다. 그 다방에는 돈없는 예술가들이 하루 종일 ‘벽화’처럼 앉아 있었는데, 커피 한 잔에 10원일 때 손님 한 사람당 평균 1만원의 외상을 지는 바람에 다방은 결국 3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고 한다.


몇 집 걸러 커피집이 생겨나는 이시대에 커피는 뒷전임에도 문화 사랑방으로 남았던 다방의 추억이 그립다. 이상이 살아있다면 다시 제비다방을 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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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어린 왕자’가 좋아하는 꽃이 장미란다. 열정을 불러내는 강렬한 색깔에 마음이 끌려서일까? 매혹적인 향기에 취하면 삿된 생각을 떨쳐낼 수 있어서일까? 겹겹의 꽃 입술이 아스라한 곡선으로 영혼을 위로해줘서일까? 아닐 것이다. 어린 왕자가 외물의 감각적 특성을 비교하고 향유할 행성에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허덕이다 발견한 싹이 장미였고, 인사하듯 뿌린 물에 풍성하게 화답한 게 장미였다. 어린 왕자에게 장미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서로의 삶에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어 마침내 그들은 불가분의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장미에게 어린 왕자는 그저 눈길을 한번 주고받는 나그네가 아니다. 버려진 싹에 온정을 베풀어 굳건한 나무로 키워 꽃을 피우게 한 생명의 은인이다. 마찬가지로 어린 왕자에게 장미는 황량한 가슴에 모성애를 불러일으킨 원초적 고아라고나 할까? 컴퍼스의 바깥다리처럼 밖으로 나도는 어린 왕자를, 자신의 갈증을 풀어 달라고 불러들이는 장미는 족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구속은 삶을 강퍅하게 하는 일방적 강요가 아니다. 타자에게 쏟는 내 정성은 시혜라기보다는 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타인의 정원에 핀 백만 송이 장미보다 내 꽃밭에 핀 한 송이 장미가 더 아름답다고 말한 어린 왕자의 의도가 여기에 있다. 벌레를 잡아주고 해갈해서 피운 꽃에 어린 왕자가 남긴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DB)


 처서가 지나 여름작물을 걷어내고 김장용 무·배추를 심고나면, 내가 ‘사서 하는 고생’이 석 달 동안 지속된다. 어린 왕자처럼 장미에게 쏟는 정성이라면 향기로 보상받고 멋이라도 있을 거다. 하지만 더위가 물러나면 내가 채소를 심는 까닭은 순전히 농부의 마음에서다. 금싸라기가 피어나도 모자랄 땅에 잡초가 웃자라는 것을 보고만 있을 농부가 어디 있겠는가? 심고 남은 씨앗을 버리지 못해 다 뿌리고 나면 빽빽이 올라오는 싹을 솎아주는 걸로 채소와의 씨름 한판이 시작된다. 배추 잎에 기어 다니는 무당벌레는 해충을 먹는대서 살려두고 나비는 예뻐서 두고 보면 어느 틈에 배추벌레가 잎을 갉아먹고 있다. 내가 심어 인연을 맺은 배추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에, 핀셋으로 속 깊은 곳까지 헤집어 애벌레를 찾아 요절낸다. 그렇게 배추와의 스킨십은 11월 중순까지 멈추지 않는다.


배추 포기를 키우고 무 다리에 알통을 넣은 것은 다른 일의 시작이다. 그것들이 얼기 전에 김장 판을 벌여야 한다. “성질 급한 사람이 술값 내더라”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조바심이 난다.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서 키운 무·배추를 얼려서 버릴 수는 없어 이젠 아내를 꼬드겨야 한다. 내가 다듬고 절이고 씻어 버무릴 테니 김장하자고! 다듬으면서 겉잎을 모아 시래기를 만들고, 고르게 소금을 뿌려 짜지 않게 절이려면 정성이 필요하고, 농약을 치지 않아 잎에 붙은 진드기를 씻어 내려면 힘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이 내 몫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귀찮거나 버겁지 않다. 벌레가 먹어 구멍이 송송 난 겉잎은 시래기 재료로 쌓아두고 노랗게 속이 찬 배추를 반으로 갈라 절이며 버릴 것을 아예 없애려 한다. 네 모든 것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배추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려 김칫독에 넣는 것으로 김장은 끝이 아니다. 시래기를 삶아 냉동보관하기 위해 가마솥에 물을 끓인다. 봄부터 가지치기하여 모아둔 마른가지와 장작으로 끓인 물에, 흙과 배추벌레 배설물이 묻은 겉잎을 삶아내면 변신이 일어난다. 저것을 차마 먹을 수 있을까 싶은 배춧잎들이 온갖 오물들을 다 떨어내고 어엿한 시래기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끓는 물의 용솟음이 벌인 조화였다.


나는 시래기를 삶으며 바란다. 소금물에 절인 배추가 몸집을 줄이며 오물을 떨쳐내듯, 가마솥의 끓는 물이 용솟음치며 배춧잎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훑어내듯, 이번 대통령 선거가 한바탕 축제가 되어 우리의 별의별 추태를 깡그리 불살라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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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빈틈없이 대비하되 겉으로 드러내지 말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 설령 위협이 임박했다 하더라도 군 수뇌부는 태산처럼 진중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 공연히 국민을 불안케 하는 것은 오히려 이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잇달아 내놓고 있는 발언들은 이러한 상식을 뒤집고 있다. 김 장관은 엊그제 전군지휘관회의 석상에서 “앞으로 북한의 도발은 천안함, 연평도 피격보다 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근거로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들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군의 특성상 대선을 불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유비무환의 정신을 강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 없이 북풍(北風)에 대한 우려만 키운다면 군의 선거 개입 의혹을 키울 뿐이다.


(경향신문DB)


최근 불거지고 있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준비설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국방부 정보본부는 같은 자리에서 “북한이 12월에서 내년 1월 사이에 발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가 “현재로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고 밝힌 것과 거리가 멀다. 북한이 다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북한이 통상 발사 한 달여 전 국제해사기구에 통보해온 관례에 비춰보면 발사하더라도 대선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시기를 앞당겨 강조하는 것은 “북한이 대선 개입도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면서 김 장관이 지난 8월17일 국회에서 공식 제기한 북풍론의 연장선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올 들어 내놓은 김 장관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대한민국은 진작 ‘준전시상태’에 돌입했어야 한다. 4·11총선을 한 달 앞둔 지난 3월 초에는 연평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3월은 천안함 폭침을 응징하는 달”이라면서 “북한의 도발 시 (북한) 사격량의 10배까지도 대응사격하라”고 지시했다. 10·1 국군의 날에는 평택 2함대를 찾아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으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 뒤 성동격서식 도발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장관이 북한의 도발 근거로 제시한 것은 천편일률적으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이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으로 출범하고 있다는 국내외 대부분의 평가와 궤를 달리한다. 


김 장관의 잇단 경고에도 북한의 도발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어제 남측에서 주장하는 대선 개입설은 “허황하기 그지 없는 날조설”이라고 부인하기까지 했다. 국민이 상시적인 위기감에서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군의 본연의 임무다. 군 수장이 끊임없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한다면 오히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만 높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전방의 ‘노크 탈북’과 국군기무사령부의 파렴치한 범죄 은폐 기도 탓에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다. 김 장관은 위기관리에 만전을 기하되 정치적 시비를 자초하지 않도록 자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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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부원장


 

신임 검사는 집무실에서 피의자를 성폭행하고, 지검 중견 검사는 표리부동한 개혁 꼼수를 벌이다 들통 났다. 고검 부장검사는 조폭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검찰총장은 재벌 봐주기를 지시했다고 한다. 검찰의 위신과 존재이유가 발바닥에서부터 허리, 가슴에서 머리끝까지, 총체적으로 붕괴되고 있는데도 검찰의 상황인식과 태도, 일처리는 갈수록 가관이다.


특히 성폭행 검사에게 강간죄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 대신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를 고집하고 있는 검찰에 국민은 철저히 절망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몇 가지 근본적인 지적과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경향신문DB)


 우선, 검찰개혁은 일제잔재 척결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필자는 열람 가능한 현 유엔 가맹국 193개국의 검찰제도를 전수 분석한 결과, 우리 검찰과 같은 수사권과 수사종결권, 기소 여부를 마음대로 결정하는 기소재량권, 자기들 치부는 은폐하거나 대충 넘어갈 수 있게끔 검사만이 공소 제기할 수 있는 기소독점권에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까지 싹쓸이하듯 장악하고 있는 나라를 찾지 못했다. 


일본도 60여년 전에 철거한 제왕적 검찰 구조를 가진 국가는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일제 군국주의시대의 형사소송법체계를 온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치욕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법원과 경찰은 물론 국가정보원까지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과했으나 검찰만은 오불관언, 안하무인을 자랑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것까지 일본 극우세력과 닮았는지, 몸이 떨린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오빤 강남스타일”은 괜찮지만 “검찰은 일본 제국주의 스타일”만은 안된다.


다음, 검찰개혁은 검찰 내부가 아닌, 국민에 의한 개혁과 그 실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일을 뼈를 깎는 자성의 기회로 삼자” 등의 구두선에 불과한 자성론은 물론, 내부 감찰시스템 점검, 상설특검제 설치 신중 검토 등등 검찰발(發) 미봉책 내지 지연책에 식상한 지 이미 오래다. 국민들은 이렇게 묻고 싶다. “검찰이여, 아직도 깎을 뼈가 남았는가?”


검찰의 말 그대로, 조직의 뼈대에 치명적 문제가 있는데 피부에 연고만 바르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스스로 자신의 뼈를 깎아낼 용기와 인내력은 더욱 없어 보인다. 이제 타인에 의한 외과적 수술, 즉 국민에 의한 개혁을 강제하여야만 할 임계점에 이르렀다.


끝으로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견제하는 제3의 독립적 기관 설치가 절실하다. 과거의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센 권력기관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검찰은 ‘나는 비행기도 멈추게 한다’라고 해도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견제 없는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법이다. 우리나라처럼 일제식민지의 뼈아픈 역사를 겪은 대만도 기득권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2006년 3월에 검사와 법관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범행에 대한 기소권과 수사권을 지닌 ‘특별정사조(特別偵伺組)’를 설치,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역사만큼이나 뿌리 깊은 중국식 부패를 몰아내고 현대판 포청천 관아로 유명한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는 물론, 싱가포르의 부패조사청(CPIB), 호주의 반부패청 ICAC(NSW), 영국과 뉴질랜드의 중대비리조사청(SFO), 유럽연합의 부패방지총국(OLAF), 프랑스 부패예방청(SCPC) 등이 그러한 기관들이다. 이제 우리도 검찰과 법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를 독립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기관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가 시급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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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습니다. 지지하는 후보는 있으신가요? 부동층이 20~25%라고 합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시나요? 혹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이라면, 안철수 후보의 사퇴 때문에 마음 상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안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사퇴 기자회견을 보면서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아직 투표장에 갈지조차 정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투표율은 63.0%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 유권자 중에 3분의 1 이상은 대통령이든 뭐든 투표를 하지 않습니다. 젊은 유권자들은 투표를 더 안 하는 편입니다. 지난 4·11 총선에서도 20대 후반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37.9%에 불과했습니다. 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도 투표율이 낮습니다. 같은 강남구에서도 부자동네보다 서민동네가 투표율이 낮습니다.


 투표를 안 하는 유권자들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정치인들이 혐오스러워서일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정치가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는 체념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도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누구를 안 찍겠다는 것만 정했을 뿐입니다. 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우려가 있는 후보는 찍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표를 누구에게 던질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2011년 상반기까지는 무당파 유권자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투표장에는 꼬박꼬박 갔지만, 지지정당은 없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백지를 투표함에 넣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찍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소수정당인 녹색당 당원이 되어 무당파에서는 벗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에 녹색당 후보는 나오지 못했으니, 여전히 고민입니다. 상대적으로 낫다는 기준으로 투표를 해야 할지, 아니면 당선 가능성에 관계없이 지지할 후보를 찾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강동구민회관에 설치된 투표장이 유권자들의 저조한 참여로 썰렁하다. (경향신문DB)


제가 마지막 순간 투표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투표장에는 꼭 가려고 합니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나와 정치를 이어주는 약한 끈마저도 스스로 끊어버리는 행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더 살기 힘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갈수록 불평등이 심해지고, 기후변화·식량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23개나 되는 원전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가 나는데 계속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미흡하더라도 후보자들의 정책을 살펴보고 내가 투표를 할 이유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물론 투표를 한다고 해서 곧바로 정치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는 투표만 하는 유권자들을 보고 ‘노예’라고 말했습니다. 투표하는 날 하루만 유권자가 주인일 뿐,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공약(公約)이 헛 공약(空約)이 되고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는 것을 봐 왔던 경험을 생각하면, 루소의 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분이라면 이번 대선을 탈바꿈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루소가 살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유권자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정당에 가입해서 그 정당을 통해 의견을 펼 수도 있고,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평소에도 주인으로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이번 12월19일을 ‘노예에서 주인되는’ 날로 정하면 어떨까요. 일단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하고, 이번 선거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날부터 주인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의 지식인인 스테판 에셀은 ‘이 시대의 레지스탕스는 기차를 폭파할 것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불만과 분노를 참여를 통해 풀어놓으라고 말합니다. 권력이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지금도 충분히 자기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살기 힘든 사람들은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진짜 주인이 되는 것이 정치에서 희망을 만드는 길이고, 우리 삶에 희망을 만드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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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몰린 검찰이 ‘위장개혁’의 꼼수까지 부리는 모양이다. 검찰 내부게시판에 실명으로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올린 검사가 동료에게는 “개혁을 하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 우리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고 한다. ‘뇌물 검사’ ‘성추문 검사’에 이은 ‘꼼수 검사’의 등장이다. 도대체 이런 검사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마각을 드러내는 것인가. 분노와 개탄을 넘어 이제는 헛웃음만 나온다.


윤대해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지난 25일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에 근무하는 검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려다 실수로 언론사 기자에게 보냈다고 한다. 해당 언론의 보도로 공개된 메시지에서 윤 검사는 “내가 올린 개혁방안이 검찰에 불리할 게 없다. 일선 청에서 평검사회의를 개최하고… 이런 분위기 속에 총장님이 큰 결단을 하는 모양으로 가야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번엔 박근혜가 된다. (박 후보 공약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공약은 없으므로 그에 대해선 개혁안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한 대목이다. 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맞춰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앞서 그는 내부게시판에 실명으로 올린 글에서 검찰시민위원회 실질화, 수사·기소의 분리, 특임검사제 상설화 등을 제안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경향신문DB)


윤 검사는 “개혁안을 올린 취지를 설명하려 동료에게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수신인으로 보나 메시지 내용으로 보나 그대로 믿기 어렵다. 수신인은 검찰총장 지근거리에서 개혁 실무를 담당하는 대검 기조부 검사이고, 내용도 ‘총장님의 큰 결단’을 강조하고 있다. 윤 검사가 수뇌부와의 교감 아래 게시판에 글을 올렸거나, 아니면 글을 올린 뒤 ‘위장개혁’ 시나리오를 수뇌부에 제안함으로써 충성맹세를 하려 한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대검이 윤 검사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지만, 수뇌부와의 커넥션까지 밝힐 의지가 없는 한 성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지금 전국의 검찰청에서는 검찰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평검사회의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윤 검사의 ‘자백’으로 이 회의마저 자발성과 순수성을 의심받게 됐다. 윤 검사와 다르다고 자부하는 검사들이 있다면 ‘짜고 치는’ 개혁이 아닌 근본적 개혁을 촉구해야 한다. 평검사회의마저 조직의 밥그릇 지키기와 수뇌부의 자리보전 도구로 전락한다면 검찰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 외부에서 메스를 대는 일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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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 200여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공동행동)이 어제 투표 참여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은 “국회 행정안전위에서 투표시간 연장안이 처리되지 못해 사실상 대선 전까지 제도 개선이 어려워졌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은 투표권 보장 신고센터 운영과 투표시간 보장 청구 신청 대행, 투표권 보장 관련 법규 홍보, 지자체 발주 건설현장 선거일 업무 조정 요청 등을 활동 계획으로 들었다.


새누리당의 반대로 투표시간 연장이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투표권 보장 운동이 속도를 내고 있다. 단체들의 조직적 활동은 물론이고 시민 개인 차원의 투표 독려 움직임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몇 인디밴드들은 선거일인 12월19일 투표 인증샷을 제시하면 반값에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고, 한 주문 티셔츠 제작업체는 ‘닥치고 투표’나 ‘보트 포 퓨처’(미래를 위해 투표하라) 등의 문구를 담은 티셔츠를 만들어 배포한다고 한다. 이러한 투표권 보장과 투표 독려 운동은 참정권 보장의 출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10조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피해자들이 일용직이나 임시직, 파견, 용역, 도급직 등 다양한 비정규직 종사자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 4·11 총선 당일만 해도 783곳에 이르는 사업장이 근무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이나 대형마트, 택배업체, 영세중소기업들이었다. 앞서 2008년 총선 때도 기권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64.1%가 ‘근무시간 중 외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투표야말로 삶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하고도 효율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약자들의 기권은 그들의 삶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투표시간 연장으로 건설 노동자도 투표참여 (경향신문DB)


투표율 저조는 민주주의 위기와 맞물린다. 민주주의는 유권자의 참여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정작 18대 대선은 벌써 참여 열기 저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역대 대선 투표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데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퇴장 등으로 선거판을 달굴 요소가 줄어든 탓이다. 게다가 투표시간 연장마저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투표권 보장을 사업자들의 선처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시민들이 파수꾼으로 나서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투표권 보장 운동을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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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 소설가


 

겨울옷으로 갈아입는다. 계절이 끝나면 입던 옷을 빨아 잘 개어놓지만 반년쯤 지나고보면 그게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해놨는지 헷갈린다. 매번 그렇다, 점퍼는 쉽게 찾았는데 겨울바다용 바지가 도통 보이지 않아서 애먹었다.


상자와 가방을 모조리 뒤지고 나서야 찾았다. 주머니에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라이터와 동전 몇 개, 수심 체크용으로 썼던 12호 봉돌이 하나 나왔다. 더럽지는 않은 것으로 봐서 빨기는 했는데 한번 정도 찌낚시 갔다 와서 접어 넣어둔 모양이다.





그리고 뒷주머니에서 담배가루와 뒤범벅이 된 손수건이 납작 구겨진 채 나왔다. 생각해보니 반 년 동안 손수건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아주 중요한 것을 오랫동안 내팽개쳐둔 것처럼 미안해졌는데 내가 초등학교 등교할 때마다 윗옷 주머니에 이것을 네모반듯하게 접어 걸었던 세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흰 항까치를 평생 가지고 계셨다. 분신과도 같았던 그것의 변화무쌍은 끝이 없었다. 자신의 눈물을 닦고, 큰손자 콧물도 닦고, 반대로 돌려서 침 좀 묻힌 다음 작은손자 낯바닥도 닦고, 갓난아이 똥구멍도 닦고, 물일 다녀온 뒤 물안경을 닦고, 손가락 다쳤을 때 싸매기도 하고, 먹고 남은 고구마 덮어놓기도 하고, 더울 때는 머리에도 쓰고, 밭일 하다가 발견한 산딸기를 싸기도 하고, 친구들과 춤출 때 손끝에 쥐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 작은 천조각이 위력을 발휘할 때는 계 모임 가셨을 때이다. 이곳 말로는 ‘기 개리러 간다’고 한다. 할머니가 ‘기 개리러’ 간 날은 나는 동생들과 함께 하염없이 기다렸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 다음 마침내 돌아온 할머니는 ‘아나, 여깄다’ 하면서 동그랗게 변한 그것을 내려놓으셨다. 흰 항까치 안에는 시루떡 세 조각, 굳은 돼지고기 두 조각, 다이아몬드형 부침개, 설탕 시럽을 얹힌 비행기 모양의 과자, 네모난 오꼬시, 현란한 분홍빛의 직사각형 젤리, ‘누가사탕’ 따위가 들어 있었다. 계를 치르는 집은 매달 달라도 내용은 늘 비슷했다. 다 먹고 나면 할머니는 깨끗한 부분을 홀쳐매서 우리들 입을 닦아준 다음 물에 빨아 빨랫줄에 널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던 낡고 흰 항까치.


항까치가 handkerchief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어쨌거나 용도 미달의 내 손수건은 그렇게 아름다워지기는커녕 뒷주머니에서 비참하게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책상 위의 펄프 휴지 쳐다보기가 참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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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진보진영 인사들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그간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남북 화해·협력정책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모인 한반도 평화포럼이 지난 주말 창립 3주년에 즈음해 발표한 ‘2013년 체제를 위한 제언’을 통해서다. 제언은 남북관계의 특성을 고려해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꺼려온 그간의 입장에 대해 국민여론이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성찰에서 출발, 새로운 정책방향을 모색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나아가 북한 주민의 인권(자유권) 신장과 생존권적 기본권 보장이라는 양 갈래의 인권 문제에 대해 등가의 문제의식을 갖고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접근과 상시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을 추진할 것을 다짐했다. 이를 위해 유엔 인권결의안에 찬성을 표하고 필요시 북한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시하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탈피해 북한인권 문제에서 공감대를 찾을 것을 주문해온 우리는 진보 인사들의 이 같은 변화 모색을 환영한다.


(경향신문DB)


진보진영의 제안은 북한의 수용 정도에 따라 착근하기까지 녹록지 않은 조정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럽연합과 인권대화를 가져온 북한으로서도 전혀 생뚱맞은 것은 아니다. 북한이 그동안 외부의 인권 문제 제기에 과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자존심을 중시하는 체제의 특성과 함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기저에 체제붕괴라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경계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의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권 문제를 정치적, 이념적인 문제와 분리시켜야 한다. 북한의 인권 상황이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면서부터다. 남측이 상시적인 인도적 지원과 함께 북한인권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면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최근 이례적으로 주민들에 대한 일선 인민보안원(경찰)들의 인권유린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북한 당국 역시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유화·강경의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난 균형잡힌 대북정책의 추진을 공약했다.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대북 인도적 지원을 투명하게 추진할 것도 다짐했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과도하게 이념화, 정치화하는 한 진보진영과의 공감대 도출은 물론, 북한인권 개선이라는 본연의 목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박 후보는 인도적 지원과 마찬가지로 북한인권 문제에서도 탈정치화 원칙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간 북한인권 문제는 최근의 대북 전단 보내기 소동과 같이 일부 소란스러운 반북단체의 정치적 퍼포먼스로 전락했다. 이번 한반도 평화포럼 제안을 진보와 보수가 담을 허무는 계기로 삼을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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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날로 늘어나는 화장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화장시설 등 장사(葬事)시설 수급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화장·봉안시설과 자연장지를 늘리고 공설묘지 시설은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장례식장 등 장사시설의 바가지 씌우기 등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방향은 구구절절 옳다. 문제는 그런 계획의 실천, 실행 방안에 있다. 장사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이라 관행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거 매장 중심의 장묘 문화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화장률만 하더라도 지난해 71.1%에서 2017년이면 79.9%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화장장부터 늘려야 한다. 그러나 화장시설 확충은 쉽지 않다. ‘내 주위에 위험시설, 혐오시설 등을 설치하지 말라’는 님비 현상 탓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 화장시설이 절대 부족한 지역이 많다. 어렵게 화장장을 설치한 지방자치단체는 타지역 주민에게는 10배 이상의 사용료를 물리고 있다. 죽어도 제때 화장을 할 수 없거나 화장을 하는 데 유족의 부담이 클 것이다.


(경향신문DB)


바람직한 장례 문화는 화장을 한 망자의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자연장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매장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매장 못지않게 자연장을 선호하는 추세라지만 자연장을 어색하게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강하다. 그러다 보니 화장을 하고도 유골을 봉분 형태로 매장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자연장 시설을 만들어 놓아도 호응이 낮다. 장례 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장례 서비스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장례식장에서 유골함 등 장례용품을 팔면서 바가지를 씌우거나 강매하는 행위가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유족으로서는 망자를 되도록 편히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다 장례가 평생 몇 번 되지 않기 때문에 화가 치밀어도 그냥 넘기기 일쑤다. 그동안 이런 문제가 수없이 지적됐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장례식장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겠다는 등의 정부 방침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같은 정부의 장사시설 수급 종합 계획은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없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자치단체부터 장례 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정부의 유인책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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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얼마 전 발령받은 현직 검사가 다른 곳도 아닌 집무실에서 피의자와 ‘유사 성행위’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피의자를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황당하다. 아무리 검사가 권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머리에 새똥도 벗겨지지 않은’ 신참이 저지를 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이 강할수록 오히려 신참들은 규율에 경직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권력에 취한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신참에게까지 권력을 나눠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신참이 권력의 이너서클에 들어올 때까지는 더욱 가혹하게 군다. 오직 상급자의 ‘선심’하에서 ‘의례화’된 방법으로만 권력을 맛보게 하며 신참을 길들인다. 따라서 누가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신참이라는 위치 때문에 눈치가 보여 다른 쪽으로는 눈도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 누가 강제로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된다.


(경향신문DB)


 조폭들만 해도 그렇게 한다. 조폭 출신의 한 친구는 처음 조폭에 몸담았을 때 매일 여자를 옆에 끼고 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집창촌에서 그가 한 일은 연탄 갈고 언니들 빨래 치우는 일이었다. 자기가 상상하던 그 권력은 바닥에서 박박 기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나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신참이 상급자의 눈치도 안 보고 이 권력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신참이라고 하더라도 검사는 피의자에 관한 한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성당에서 있었던 한 강의에서 ‘살아오면서 언제가 가장 모욕적이었느냐’는 질문에 참석자 한 사람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검찰 수사를 받았을 때’라고 대답했다. 나이도 새파란 검사가 반말을 섞어가며 이죽거릴 때 죽고 싶었다고 한다. 한 연륜이 높은 인권활동가도 다시는 검사 앞에 서고 싶지 않다고 했다. 판사조차도 검사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법원 앞에 있는 한 횟집에서 판사들이 먼저 자리 잡고 있던 방에서 검사‘님’들이 오실 예정이라며 바꾸어달라는 요구를 받고 쫓겨난 적도 있을 정도다. 주인 입장에서는 판사야 재판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지만 검사에게 밉보였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수사에서부터 영장청구, 기소까지를 독점하고, 외부로부터 그 어떤 견제도 받지 않았으니 이런 조직에 있으면서 권력에 취하지 않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란 이렇게 신참까지 취하게 한다.


더구나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이런 철딱서니 없는 인간들이 ‘엘리트’로 키워지고,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권력을 ‘항유’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사실이다. 교육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교사들은 이들을 ‘엘리트 싸가지’라고 부른다. 성적이나 부모를 배경으로 약자를 찍어 누르고 교사도 우습게 알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는다. 이렇게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향유하던 아이들이 승승장구하며 세상의 권력도 가진다. 암울한 것은 이런 교육제도 밑에서는 권력을 스스로 통제할 줄 아는 ‘좋은’ 엘리트를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지금의 교육은 특권만 재생산되고 정당화할 뿐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스스로 통제할 줄 모르는 권력이었는데, 이제는 어렸을 때부터 권력을 통제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 조직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더욱더 위험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면 엘리트들, 아니 특권층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나라의 운명을 맡길 ‘좋은’ 엘리트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력을 통제하는 장치를 제도화하는 대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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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검과 성남지청 평검사들이 어제 회의를 열어 검찰개혁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현직 검사들의 거액 수뢰와 성추문으로 검찰이 최대 위기에 직면한 데 따른 일선 검사들의 첫 대응이다.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해 서울북부지검과 서부지검 등에서도 곧 평검사들이 모임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평검사 회의가 열리는 것은 지난해 6월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 이후 1년5개월 만의 일이다. 하지만 당시엔 수사권 조정에 항의하는 ‘밥그릇 챙기기’ 성격이 짙었다. 이번 평검사 회의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법부의 판사회의를 돌아보고자 한다. 사법부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평판사들이 분연히 일어섰다. 1971년과 1988년, 1993년, 2003년 네 차례 있었던 사법 파동이 그것이다. 오늘날의 사법부가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젊고 비판적인 법관들의 분노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안타깝게도 ‘검찰 파동’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검사가 판사들에 비해 자질이든 정의감이든 뒤질 까닭이 없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검찰청법 37조는 ‘검사는 탄핵·금고 이상의 형 선고를 제외하고는 파면되지 않는다’며 신분 보장도 적시하고 있지 않은가.


(경향신문DB)


일선 평검사들은 각 지검·지청별 회의가 끝나는 대로 검찰의 자성과 개혁 방향을 담은 건의문을 한상대 검찰총장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한다. 건의문에 한 총장 등 수뇌부의 진퇴 문제가 포함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검사동일체’니 ‘상명하복’이니 케케묵은 틀에 묶여 있던 소장 검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고 본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정치검사·비리검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검사는 오늘도 사건기록을 보느라 밤을 새우고, 호주머니를 털어 수사비를 충당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제 그들이 말해야 한다. 한 줌도 안되는 비리검사들과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갈 이유가 없다.


어제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12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결과’에서 법무부와 검찰은 경찰과 함께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민원인 16만여명과 공공기관 직원 6만6000여명, 정책고객 1만50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시민이 바라보는 검찰의 냉엄한 현주소다. 시민의 신뢰 회복은 뒤늦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나 상설특검 도입 따위로 이뤄질 수 없다. 누가 보기에도 제 살을 도려내는 게 분명한, 파격적 결단이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평검사들이 움직여야 검찰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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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지난 10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2년째 혼자만의 수사본부를 차려놓고 한 살인마의 뒤를 집요하게 캐고 있는 경찰관의 이야기를 방송했다. 부산 금정경찰서 김정수 경사의 이야기였는데, 그는 2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살인자의 여죄를 찾아내기 위해 주말까지 자진반납하고 불철주야로 개인적인 수사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김 경사는 하마터면 수사기관이 사건 자체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영원히 묻혀버릴 뻔한 살인사건, 이른바 ‘암수범죄(暗數犯罪, Hidden Crime)’를 세상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살인자를 단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김 경사의 이런 행보는 다른 경찰관들의 눈에 바보처럼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괜한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일까? 이런 암수범죄나 미제사건에 매달리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정력이 따르기 마련이다. 게다가 설령 막대한 투입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건이 해결된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다. 또 설사 그런 미제사건을 몇 년에 걸쳐 마침내 해결한다 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고과점수를 받지도 못한다. 


 ‘경찰공무원 승진임용규정’을 보면 살인·강도·소매치기 등 강력범 검거는 3점, 절도범 검거는 1점이다. 도둑 3명 잡으면 살인범 1명 잡는 것과 같고, 게다가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살인사건이나 영구미제사건의 살인범 검거 점수가 똑같다. 실상이 이럴진대 절도범 몇 명 잡아 점수를 높이려 들지 누가 김 경사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일에 뛰어들려고 할까. 


그런데 이 고과제도도 애초에는 경찰관들의 본연의 임무 수행을 독려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리라. 그러나 그 제도가 그 목적 완수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아니 이보다 더한 일이 지금 국립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임용된 교수 480명에겐 이미 적용되었으며 2015년까지는 모든 교수에게 확대 시행될 성과연봉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호봉제를 없애고 1년 동안 낸 성과에 따라 연봉을 주겠다는 것인데 그 목적은 교수들이 연구에 매진하도록 하겠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해 자동적으로 매년 오르던 호봉제를 폐지하고 논문 몇 편 더 쓰면 급료를 올리는 경쟁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교수들이 철밥통을 꿰찼다고 보는 부정적인 시류에 영합해 만든 아주 악의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다.


필자가 국립대에 몸담고 있으니 이에 대해 더는 너저분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성과연봉제가 달성하고자 하는 애초의 목적인 교수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데 이 제도가 백해무익이라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경찰의 인사고과제로 인한 폐단과 마찬가지로, 성과연봉제는 교수의 연구력 향상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경향신문DB)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수들은 연구결과가 확실하게 산출될 매우 자잘한 연구들만 수행하고 일생을 걸고 승부를 걸어볼 만한 굵직한 연구들은 아예 손조차 대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봉을 올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터이니 말이다. 쉽게 이야기해 대부분의 교수가 간단하게 점수를 올릴 방법만 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성과연봉제는 교수들을 탁월한 연구생산을 도모하기는커녕 논문 편수나 올리는 데만 급급한, 꼼수나 피우는 경박한 소인배로 만드는 폐단을 불러오고 있다. 요즈음 과거처럼 놀고먹는 교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녕 연구력 뛰어난 교수를 늘리고 싶다면 연구를 많이 한 교수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면 된다. 또 안 줘도 그만이다. 어차피 교수가 돈을 보고 연구하는 것은 아니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지금 교육과학기술부가 그런 짓을 하고 있다. 교수를 벽돌 찍는 노동자로 취급하는 한 진정으로 세계적인 연구 창출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성과연봉제를 당장 집어치우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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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논설위원


 

고산 윤선도도 ‘오우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노래했던 대나무를 나무인지 풀인지 정의(定義)하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문제인가. 그래도 질문해보자. 대나무는 나무인가 풀인가. 풀이라고 한다. 생물 분류체계상 벼목, 벼과에 속한다니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식물학자에게 물어보니 “쉽게 설명하면 물관과 체관 사이에 부름켜(형성층)가 있는 것이 나무이고 없는 것이 풀”이라고 말했다. 그런 구분법으로 이를테면 야자나무와 바오밥나무는 나무와 풀의 경계선에 있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물론 내게는 쉬운 설명이라고 하기에도, 친절한 가르침이라고 하기에도 버거운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경향신문DB)


그렇다면 좀 쉬운 질문을 해보자. 나무는 동물인가 식물인가. 돌아오는 반응은 코웃음 아니면 호기심일 것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난센스 퀴즈는 아니니까 호기심을 가질 것까지는 없다. 오히려 진지하고 심각한 질문일 수 있다. 그러니까 신중하게 문제를 곱씹어보자. 나무는 식물이다. 풀도 식물이다. 따라서 나무와 풀은 식물이다…. 놀랍게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상식적인 접근밖에 못한다면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가 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나무는 식물과 풀이다! 이게 정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법이 만들어지고 국민이 그것을 지켜야 할지도 모르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니까.


 ‘수목원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현재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서 심의되고 있다. 지난 6일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내용은 지난해 10월18일 정부입법으로 제출됐다가 지난 5월29일 18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같은 이름의 법률안과 거의 비슷하다. 다른 것이라면 제2조(정의)를 크게 손댄 점이다. 수목원의 범주에 식물원 및 정원을 포함하도록 식물원 및 정원 정의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제안서에는 그 이유를 “현행법상 ‘수목유전자원’은 수목원이 대부분 식물종에 대한 보존·연구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감안하고,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산림유전자원’으로 용어를 변경하고, 수목원의 정의에서 식물원·정원 등도 수목원의 기능과 형태를 갖춘 시설이므로 수목원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산림유전자원의 보전 및 자원화의 촉진을 도모하고자 함”이라고 적시했다.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수목(樹木)은 ‘살아 있는 나무, 목본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수목원은 ‘관찰이나 연구의 목적으로 여러 가지 나무를 수집하여 재배하는 시설’이라는 뜻풀이와 함께 ‘나무 동산’으로 순화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풀(초본식물)을 포함한 식물 전체를 의미하는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반면 식물원은 ‘식물의 연구나 식물에 관한 지식을 보급하기 위하여 많은 종류의 식물을 모아 기르는 곳’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도 사전적으로도 수목원보다 식물원이 더 상위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유럽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수목원(arboretum)이 식물원(botanic garden) 안에 포함돼 있거나 따로 수목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 


식물원과 수목원에 대한 정의의 혼란은 야생동식물보호법 등 환경 관련 법을 훼손할 수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제출했다가 역시 18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동식물원진흥법과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산림청이 수목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도 환경부의 반대로 식물원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았던가. 수목원과는 성격이나 목적, 기능이 전혀 다른 정원을 수목원 범주에 포함시킨 것 역시 논란거리다. 조경학계와 조경업계 등이 정원을 산림사업으로 묶기 위해 산림청이 억지 방편을 쓰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수목원·식물원·정원 등에 대해 필요한 관리·감독 장치와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수목원과 식물원의 용례 혼란을 정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게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정의의 왜곡이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어떻게 식물이 나무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정원이 ‘관찰이나 연구의 목적으로 여러 가지 나무를 수집하여 재배하는 시설’의 한 부분일 수 있겠는가. 부처 간 영역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왜곡된 정의가 법이 되어 현실을 규제한다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다시 질문을 해보자. 대나무는 나무인가 풀인가. 풀? 틀렸다. 언어학적으로는 나무이고 생물학적으로는 풀이다. 다음은 더 어려운 문제다. 나무는 동물인가 식물인가. 식물? 틀렸다. 생물학적으로는 식물이지만 법적으로는 식물이 나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정의의 혼란을 야기하는 수목원법 개정안은 폐기하든지 최소한 공론에 부쳐야 할 법안이라고 본다. 수목원 안에 식물원과 정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대나무를 나무라고 우기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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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지난 25일 민속학의 개척자 월산(月山) 임동권 박사가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임 박사는 병상에서 의식을 잃기 전까지 자서전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자신을 한탄했다. 50권의 저서를 남기고도 후학들에게 지식을 전하고픈 그의 욕심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3만여점의 사진과 1만여권의 서적을, 중앙대에 1만6000여권의 책을 기증하고도 자택의 방 3개가 책과 사진으로 가득하니 그럴만도 하다.


임동권 박사 (경향신문DB)


임동권을 모르는 이도 “우리의 ‘설날’을 있게 한 사람”이라고 하면 단번에 알 만큼 그의 업적은 우리 생활에 녹아 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설날은 서양의 설날인 양력 1월1일이었다. 군사정권 당시 공휴일 제정위원장을 맡은 그는 음력설 부활을 주장했지만 기독교계와 재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기독교인들은 음력설을 미신적인 관습이라 폄하했고, 재계에선 이중과세가 생산과 수출 일정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며 반대했다. 월산은 음력설은 ‘이중설’이 아니라 ‘설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라 강조했고, 결국 음력설은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된 후 1990년 ‘설날’이 됐다.


고인은 늘 사라져가는 민족의 흔적들을 안타까워했다. 일제식민과 급속한 산업화로 역사의 갈무리가 이뤄지지 못함을 아파했고, 박제화되는 전통문화를 발굴·복원하고 민족의 고유성을 찾기 위해 60여년을 바쳤다. 전국의 민요와 연희를 채집해 문화콘텐츠로 정립한 고인은 민족의 놀이에 머물던 강강술래, 강릉단오제, 은산별신제, 안동차전놀이 등을 중요무형문화재로 거듭나게 한 주인공이다. 


월산은 또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민속학을 학술적으로 정립하고, 대학 민속학과 설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현대인의 삶을 ‘민속’이라는 키워드로 풀며, 친근한 상상력을 담아 민속학을 설명하곤 했다. “아파트에 이사간 후 고사떡을 돌렸더니 젊은 주부가 ‘미신을 믿지 않는다’며 떡을 거절했다. 그런데 그런 주부들이 자식의 건강과 학업성적을 위해 책가방에 부적을 붙인다”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꼼꼼히 기록해 미래 세대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게 민속학의 존재 이유”라고 했다. 숨을 거둘 때까지 미완의 자서전을 걱정하던 노학자의 집념이 아름답다. ‘월산 철학’의 고고한 향기가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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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균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환경법


 

정부 조직 개편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속속 정치철학을 담을 부처의 신설, 옛 부처의 부활, 그리고 일부 부처의 확대 또는 승격 등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하고 있다. 또 위원회 편집증이 있는 듯 후보들마다 각종 위원회를 입에 올리고 있다. 몇 개월 후면 현재의 정부 조직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정철학을 담고 핵심 정책을 효율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이즈음에서 나는 ‘수자원부’의 신설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의 물관리 주체는 근거 법과 적용대상에 따라 지나치게 다양하다. 크게 수량관리는 국토해양부, 수질관리는 환경부, 상수원 댐 건설과 물공급은 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의 소관 업무이다. 하천 크기에 따라 규제하는 관리 주체가 다르다. 국가하천은 국토해양부, 지방하천은 광역자치단체, 소하천은 기초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식이다. 수질관리 조직은 환경부, 유역환경관리청, 시·도(환경보건국), 시·군·구, 한국수자원공사 등 다기화되어 있다. 상수도관리권도 광역상수도는 국토해양부, 지방상수도는 환경부, 마을상수도는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으로 복잡하게 나뉘어 있다. 이러한 복잡성은 지하수 체제도 마찬가지다. 


(경향신문DB)


 현재 국제적으로 물자원 관리의 큰 방향은 통합수자원관리(IWRM)다. 통합수자원관리는 1992년 ‘더블린 선언’을 신호탄으로 이제 많은 국가가 물관리의 중요한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다. 통합수자원관리의 방점은 ‘통합’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통합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계획의 통합, 수량과 수질의 통합, 지표수와 지하수의 통합, 상류와 하류(유역)의 통합, 토지이용과 물의 통합, 수리권의 통합, 상수도와 하수도의 통합, 해수와 담수의 통합 등등. 그렇다면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법과 조직의 통합으로 압축된다. 


수자원 관련 정책 및 계획을 통합적으로 수립·관리하고 사업 간 연계성을 제고하며, 중복·과잉 투자 등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수자원 관리를 주된 업무로 하는 전담부처나 주관부처의 신설이 요구된다. 단편적인 업무의 조정이나 업무의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각종 위원회의 신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1997년부터 국무총리 산하에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가 운영되었으나 물관리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나 기구가 없어 관련 기관의 갈등은 여전하고 물관련 계획·정책을 조정하는 데 한계가 드러나 결국 2005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현실적인 통합방안을 말하라면 현행 국토해양부와 환경부의 물관련 업무를 통합관리하는 부처의 신설이다. 이러한 체계 개편은 관리조직을 단순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관련 부처의 반발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있는 대안으로 보인다. 


조직의 통합, 신설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행정체계의 개편이 물론 효율적인 물관리를 위한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우리와 같이 물관리 업무가 여러 부처에 나뉘어 있는 나라도 많다는 반증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에 성행하는 ‘부처이기주의’다. 관련 부처 간에 타협, 양보, 조정,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말이다. 조직·기구의 신설이나 개편을 핵심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발의된 물관리기본법안이 한결같이 부처 간 이견 등으로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 좋은 예이다. 


현재의 물관리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그 돌파구는 없어 보인다. 수자원 관리를 주된 업무로 하는 전담부처나 주관부처의 신설은 최고 의사결정자의 근본적인 결단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해방 이후 바뀌지 않은 조직명이 3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쓸쓸하게 한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하다. 나는 화려한 표어보다도 진짜 일 잘할 것 같은 그리고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존속할 것 같은 그런 조직의 탄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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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 | 글로벌물류기업 ‘퀴네앤드나’ 이사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경제성장 정책과 공약이 가시화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정보통신부 부활, 박근혜 후보는 정보기술(IT)과 과학기술을 기존 산업에 접목해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스마트 뉴딜’ 등 전략은 다르지만 정보기술을 미래 성장의 핵심 키워드로 인식하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의 동력 기반으로 활용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경향신문DB)


대권주자들의 정책에서 제시되었듯이 다양한 산업에서 정보기술을 접목한 국부 창출이 가능하기에, 물류정보 시스템과 제반 기기의 융합 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특히 물류정보 시스템은 인력집약적인 분야로, 물류기반시설을 운영해 수익을 창출하는 운송이나 창고업과는 달리 기반시설 보유 없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물류산업 내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 시대에 접어들면서 물류정보는 한층 고차원화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며, 다양한 산업에서 수요가 증대될 것이다. 정보기술 분야 리서치 기업 가트너는 지난해 물류정보 시스템 시장만 하더라도 전년 대비 12.3% 성장한 77억달러에 이르렀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물류관리가 확대되면서 물류정보 및 제반 기기 산업 성장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기술과 물류의 융합을 통한 물류정보산업 육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보기술과 물류의 융합을 통한 국부 창출을 위해 첫째, 정보기술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 탈피해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차세대 물류정보 시스템을 보유할 수 있도록 꾸준한 연구개발과 집중을 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정보기술 대·중소기업 간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해 중소 정보기술 기업들도 상생발전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질서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한 혁신형 물류IT 중소기업 육성, IT 인재 육성, 물류IT 판로 확보와 물류기업들과의 협업 확대 등을 주도해 국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대선주자들이 정보기술 융합 공약을 앞다퉈 제시했지만, 대선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이때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어 어떻게 산업 간 정보기술 융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지 의문이다. 


앞으로 장기불황과 경제침체가 우려되는 가운데 미래 성장가능 산업인 물류와 정보기술의 융합을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 및 고용창출 등 실현 가능한 정책이 대선 과정에서 구체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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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올해처럼 다양한 사극이 쏟아져 나온 해도 드물다. 선거의 시기가 돌아올 때면 권력 다툼을 중심으로 하는 사극을 통해 정치적 열기가 표현되곤 했으니 유별난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의 사극 열풍은 일견 예년의 정치사극 붐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 것도 같다. 상반기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판타지 사극 <해를 품은 달>,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닥터 진>과 <신의>, 멜로와 호러와 코미디와 활극을 뒤섞은 <아랑사또전> 등 다양한 하위장르적 재미를 내세운 퓨전사극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역시 다양한 장르적 외피 아래 은근한 정치적 화두를 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해를 품은 달> <닥터 진> <신의>는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 로맨스를 그린 사극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 개혁을 꿈꾸는 지도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랑사또전>도 아랑(신민아)과 은오(이준기)의 멜로 플롯 외에 탐욕스러운 양반들의 수탈하에 굶주린 백성들의 삶을 원귀들의 그것에 빗대 양극화의 현실을 풍자한 바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현재 방영 중인 사극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통왕조사극 <대왕의 꿈>을 제외하면, <마의> <대풍수> <전우치>는 모두 정치적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하위장르적 재미에 집중한 중심 플롯의 이면에 담아낸다. <마의>는 전형적인 이병훈표 전문직 성공기, <대풍수>는 풍수지리학 관점으로 풀어보는 조선 건국기, <전우치>는 B급 정서를 기반으로 한 활극이면서 흥미로운 정치적 화두로 묶일 수 있다. 그것은 ‘미완의 개혁에 대한 열망’이란 주제다. 


(경향신문DB)


<마의>는 주인공 백광현(조승우)의 아버지 강도준(전노민)과 그의 정치적 동지 소현세자(정겨운)의 이상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들이 바라던 조선은 개인의 꿈이 신분제에 가로막히지 않는 사회이며 그래서 백성들이 보다 개선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국가다. 하지만 이 이상은 공고한 기득권 세력에 부딪혀 좌절되고 도준의 가문은 순식간에 와해되고 만다. 그리하여 다음 세대인 광현이 천민의 신분에서 인의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을 넘어 아버지 세대가 못다 이룬 개혁의 꿈을 완수하는 의미를 지닌다.


<대풍수>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앞서 월화드라마로 방영된 같은 방송사의 <신의>와 이어 보면 더 흥미롭다. <신의>는 강력한 외세에 기생하는 귀족들과 대립하며 백성들을 위한 자주국가를 세우려는 개혁 군주 공민왕(류덕환)을 다뤘다. 그리고 <대풍수>는 그의 개혁이 좌절되면서 기득권이 더 득세하는 암울한 시대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고려 제일의 풍수가 동륜(최재웅)이 발견한 명당은 아직 하늘의 때가 아니어서 봉인되었고, 그 미완의 과제는 아들 지상(지성)에게 남겨진다. 지상은 그 과제를 이어받아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할” 지도자를 찾게 된다. 


앞선 세대가 완성하지 못한 개혁의 과제를 새로운 세대가 이어받는 이야기는 <전우치>에서도 다뤄진다. 이 드라마는 조선의 대표 민중 영웅 홍길동의 후예들 이야기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은 후계자 다툼으로 패망했으며, 그가 떠난 뒤의 조선은 여전히 부패관리들에 의해 억압받는 백성들의 한탄으로 가득하다. 전우치(차태현)는 율도국의 패망을 주도한 반란자를 잡기 위해 조선에 왔으나 점차 홍길동의 뒤를 이어 차세대 민중 영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듯 최근의 사극들이 공통적으로 내포한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2007년 대선 시기 정치사극 붐을 이끌었던 정조 드라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한성별곡-정> <이산>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 등의 작품들은 곧은 이상을 품었으나 결국 보수층에 의해 좌절하고 만 개혁 군주로서의 정조를 그렸다. 그 모습에 노무현 정부 개혁의 한계가 투영되었다는 것이 평자들의 지배적 견해다. 그리하여 최근 사극들이 보여주는 새 세대를 통한 ‘미완의 개혁에 대한 열망’은 정조 이후의 이야기처럼 읽혀진다. 


대신 이 작품들이 바라는 개혁이란 거대한 혁신보다는 일상적 차원의 개선에 가깝다. 홍길동과 같은 이상국가가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과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전우치의 소망처럼.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는 의사(<닥터 진> <마의>), 비리를 추적하는 수사관(<아랑사또전>), 백성들의 길흉화복을 점쳐주는 도사(<대풍수>) 등 민초들의 삶에 밀착된 사극 주인공들의 직업적 특성에서도 암시된다. 


요컨대 최근 사극들의 정치적 화두는 보수 대 진보라는 거대한 이념적 프레임이 아니라 복지, 인권과 같은 민생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최소한의 삶마저 무너져가는 작금의 현실을 반영한, 2012년 사극들의 변화된 정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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