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관할 경찰서 등이 내건 ‘주폭과의 전쟁’ 운운의 펼침막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조폭(조직폭력배)’의 오기(誤記)로 여기기 십상이지만 그게 아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어느 보수신문사와 함께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이른바 ‘주폭(주취폭력) 단속’을 선전하는 홍보물인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을 연상케 하는 이러한 여론몰이식 수사가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한다. 우선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마구잡이 수사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반면에 힘깨나 쓰는 이들에게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경찰의 이중잣대 또는 형평성 위배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경찰은 그제 저녁 만취한 상태로 서울 서교동 지구대에서 경찰관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질과 발길질 등 폭력을 휘두른 새누리당 김모 수석전문위원을 연행했으나 다음날 아침 슬그머니 풀어주었다. 그동안 경찰은 주폭사범의 경우 과거 범행을 추적하고, 피해자들에게서 소상하게 진술을 받는 등 최대한 범죄사실을 수집하는 저인망식 수사로 단속 한 달 만에 무려 100여명을 구속했다. 그런데도 김 위원의 경우에는 집권당 고위당직자라는 신분을 의식해서인지 아무런 혐의도 적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속된 100명 가운데 대부분이 무직자나 노숙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똑같은 음주폭력 행위라도 누구는 죄가 되고 누구는 죄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전경 ㅣ 출처:경향DB

형평성 논란과는 별개로 ‘주취폭력’을 마치 새로이 나타난 흉악범죄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해서 일종의 가중처벌을 하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술을 마신 채 저지르는 주취폭력이나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저지르는 ‘보통 폭력’이나 폭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 음주 유무에 관계없이 폭력행위가 있으면 폭력행사의 정도나 피해 상황 따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 기존의 관련법으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찰과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한 대로 술을 마셨건 그렇지 않건 간에 타인에 대한 폭력에는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제 한 몸 누일 공간도 마련하지 못한 채 알코올에 의존해서 지내고 있는 노숙인 등에 대해서는 재활시설에서 치료를 받게 하거나 적정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등 공동체적 배려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경찰은 어제 1개월 동안의 ‘주폭과의 전쟁’이 큰 성과를 거뒀다고 판단해서인지 주취폭력을 성폭력·조직폭력·학교폭력·갈취폭력 등과 함께 5대폭력으로 규정한 뒤 10월 말까지 이의 척결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경찰의 조처는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무차별적 단속은 민간폭력보다 훨씬 위험한 ‘국가폭력’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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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감찰기관의 정보수집 제한에 관한 법률안’(일명 ‘민간인 불법사찰 방지법’)을 엊그제 국회에 제출했다. 진영 정책위의장이 대표 발의하고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서명했다고 한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사건을 계기로 감찰기관의 민간인에 대한 무분별한 정보수집 행위와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 이에 대한 근본적인 근절 방안이 필요했다는 게 새누리당이 법안을 발의한 이유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이런 주장에는 전혀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말 그대로 불법이고, 따라서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단죄가 가능한 사안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형법의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 업무방해, 협박죄, 강요죄 등 적용할 수 있는 법조항도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많은 증거와 진술을 외면하고 보고의 윗선은 박영준 전 차관, 은폐의 윗선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선에서 꼬리 자르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불법을 저지른 당사자와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검찰에 있는 것이지 법 자체에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이 1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민간사찰 문제와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의 소신을 물었다. /강윤중 기자

 

제출한 법안 내용도 의심스럽다. 법안은 공무원에 대한 감찰 사무를 담당하는 감찰기관의 민간인 정보수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불가피한 경우 일정한 요건하에서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테면 공직자의 비위 행위와 관련된 민간인에 대해서는 대상자에게 사전 통지를 한 후 정보수집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불법시하고 있는 현행법과 달리 되레 민간인에 대한 사찰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셈이다. 민간인 사찰 방지법은커녕 ‘민간인 사찰 방조법’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결국 새누리당이 법안을 발의한 것은 검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비난 여론과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피해가려는 꼼수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한나라당 시절부터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노무현 정부 때도 사찰했다” “새누리당도 피해자”라는 등 끊임없이 물타기를 시도해온 그들이다. 이번에 사찰방지법안을 급조해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물타기 의도가 짙어 보인다. 총선 전의 특별검사제 도입 약속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지 않았는가. 이렇게 해서는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결코 풀리지 않는다. 새누리당이 진정으로 불법사찰 척결 의지를 갖고 있다면 야당의 국정조사와 청문회 요구를 수용하는 게 맞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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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수(2009년)가 독일의 6.3배, 일본의 5.1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수치는 산재보험 급여를 받지 못한 경우는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은폐된 희생자들까지 합치면 산재 사망자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 신청을 내고도 승인받지 못한 비율이 2010년 63.9%였다. 이들 중 상당수가 행정소송을 내지만 재판에서 이기기도 쉽지 않다. 지난달 악성 뇌종양으로 숨진 전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윤정씨도 산재 불승인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었지만 끝내 선고 결과를 보지 못했다.

이처럼 ‘은폐된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은 까다로운 산재보험 제도 때문이다.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산재 승인을 받으려면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의학적 인과관계까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데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어서 피해 노동자들이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어제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러한 문제점을 인정하고 의학적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국가나 사업주가 지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토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사용자가 피해 노동자의 질병과 업무가 무관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또 변화하는 산업구조를 반영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병명을 지속적으로 추가하도록 권고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들이 겪은 열악한 상황을 묘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우리는 그동안 산재 승인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역학조사를 통해 새로운 질병을 직업병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위 권고를 환영하며 노동인권 신장에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이번 권고 내용도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지적하고자 한다. 인권위는 의학적 인과관계의 입증 책임을 국가·사업주가 지도록 했지만,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가 입증하도록 했다. 노동계와 산업보건 전문가들은 인권위 권고를 환영하면서도 노동자가 유해·위험요인 노출 경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현장에서 어떤 물질을 쓰는지 사업주들이 잘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 채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가 퇴직 후 발병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향후 법령이 개정될 경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국가나 사업주에게 질병과 업무가 무관함을 입증토록 하는 것은 의학적 인과관계에 논란이 있는 사안을 무조건 직업병으로 인정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반 질환도 무분별하게 산재 판정이 날 가능성이 있다”며 반발하는 재계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인식이다. 과연 노동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가. 노동부가 ‘재계 대변인’이 아니라면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산재보험 제도 개선 작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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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 정책위원


“비정규직의 특징을 요약해 보세요.” 이런 논술 문제가 출제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용불안’ ‘정규직의 절반밖에 안되는 임금’ 등을 써내려갈 것이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절반만 맞는 답이다. 나머지 절반을 요약하자면? “노동자들이 집단적 단결로 자기 처지를 개선할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도록 설계된 고용 형태가 비정규직이다.”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벌어지고 있는 분야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동국대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 동국대가 임금·고용 책임지라”며 지난주부터 파업농성을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용역·도급·파견 노동자들이 결성한 비정규직 노조들의 슬로건도 동일하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아놓은 현대차 사내하청 역시 “우리 진짜 사장은 정몽구 회장, 따라서 현대차가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 현대차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다던 100여개의 서로 다른 하청업체 소속 사내하청 1564명을 일거에 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것만 보아도 하청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이 현대차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용역·도급·파견·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불법으로 취급되고 있다.

 

빗자루에 담긴 천소 노동자들의 절규 ㅣ 출처:경향DB

간접고용의 반대편에는 아예 근로계약이 아니라 도급계약·위탁계약을 체결해 노동자를 개인사업자처럼 둔갑시키는 특수고용 비정규직이 놓여 있다. 학습지 교사, 화물·덤프·레미콘 트럭 기사 등이 잘 알려진 사례인데, 정부와 자본은 이들의 노동자성 자체를 부정해 아예 노동조합 결성을 봉쇄해 버린다. 임금과 노동조건을 교섭할 권리도, 산업재해 보상의 권리도 박탈한다.

직접고용(계약직) 형태를 제외하면 한국 비정규직 대부분이 간접고용과 특수고용에 해당한다. 자본이 이런 형태를 즐겨 쓰는 이유는 단순히 비용절감 문제 때문이 아니다. 간접고용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특수고용은 ‘노동자성’을 부정해서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 3권이 무력화되면 그 뒤부터 임금 삭감과 고용불안 조성은 식은 죽 먹기가 된다.

간접고용·특수고용 확대의 과실은 대부분 재벌들에게 돌아간다. 사내하청의 대부분을 제조업 대기업이 활용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화물운송 분야 역시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사이를 전문 운송업체가 담당한다 해서 ‘3자(三者)물류’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재벌들이 글로비스(현대차), 삼성로직스 등 직접 물류업체를 만들어 특수고용 비정규직을 활용해 이윤을 뽑아낸다 해서 ‘2자(二者)물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이다.

정치권도 차별을 시정하겠다, 고용안정을 실현하겠다 말잔치는 풍성하지만, 비정규직 대다수를 차지하는 간접고용·특수고용 문제 해결의 핵심은 ‘온전한 노동 3권’에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무려 4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 3권 보장을 촉구했으며, 현대차 사내하청·화물연대·건설노조 등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교섭 촉진’ ‘노조 인정’의 수단을 제시하기도 했다.

온전한 노동 3권 보장 방법은 의외로 쉽다. 노동조합법 2조의 ‘근로자’ 개념과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기만 하면 원청의 사용자성과 특수고용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특수고용 노동 3권 보장을 위해 노조법 2조의 ‘근로자’ 개념 확장을 총선 노동 공약으로 발표했지만, 총선이 끝난 후에는 별 얘기가 없다. 결국은 당사자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6월27일 2만명의 건설노동자 상경을 필두로 노조법 2조 개정을 향한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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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모았던 그리스 2차 총선은 중도우파 신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신민주당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잔류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국제금융시장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코스피 주가지수는 1.81%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8.5원 내렸다.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올랐다. 일단 그리스 유로존 탈퇴라는 큰 불확실성이 사라진 데 대한 환영의 표시였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그리스 총선 결과는 이제 한 고비를 넘긴 데 불과하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첩첩산중이다.

새로 출범하는 그리스는 3500억유로의 나랏빚을 지고 있고, 2010년 5월 1100억유로, 지난 2월 13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각각 받은 바 있다. 구제금융 지원을 놓고 이미 맺었던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과 협상을 다시 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민주당조차 구제금융 조건은 이행하되 추가협상을 통해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리스 총선 결과로 난마처럼 얽혀 있는 유로존 위기가 단숨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비마다 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상황이 악화되는 국면이 반복되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해결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한 시민이 2차 총선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ㅣ 출처:경향 DB

그리스 재정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그리스 국민들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스는 2010년 1차 구제금융 당시 2009년 13.6%이던 재정적자를 2014년까지 3% 이하로 줄이기로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정치적 불안정, 사회적 동요로 극심한 경기침체를 빚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가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유로존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유로존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정치적 결단도 필요하다. 독일은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 재정위기 해법으로 프랑스가 들고 나온 유로본드 발행과 유럽중앙은행 위상 강화에 소극적이다. 경제가 어려운 그리스를 돕기 위해 자국의 세금을 투입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독일이 적극 나서지 않고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그리스 총선 이후 후폭풍을 점검한 결과 일단 최악의 상황은 넘겼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겼다고 마음을 놓을 일이 아니다. 유로존의 상황 변화를 꾸준히 살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유럽에 대한 수출이 줄고 있다는 데 있다. 유럽은 중국, 미국에 이어 우리의 3대 수출시장이다. 유럽 이외 다른 곳에 대한 수출을 강화하는 선제적인 통상정책이 필요하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도 유의해야 한다. 우리 금융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 가운데 유럽계 자본은 30%에 이른다. 유럽 상황에 따라 우리 금융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위기 그 자체보다 방심이 오히려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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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합리에 어긋나는 일도 반복되다 보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곤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의 퇴행 현상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비리사학의 복귀도 이런 흐름에 편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갖가지 비리를 저질러 쫓겨났던 사학재단들이 국가권력의 비호와 묵인 속에서 개선장군처럼 속속 돌아와 그동안의 정상화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학교자금 횡령 등의 비리를 저지른 사학재단 임원들에 대한 교육청의 임원취임 승인 취소처분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은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서울행정법원 행정 12부가 서울외국어고 법인 청숙학원의 이모 전 이사장 등 9명이 “임원 취임승인을 취소한 서울시교육청의 처분은 위법하다”며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제기한 ‘임원 취임승인 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의 판결 취지는 “임원취임 취소 처분으로 사학법인 임원이 받게 될 불이익보다 사학비리의 재발방지 등 공익적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것인데 이와 유사한 소송에서 법원이 비리재단 대신 교육청의 손을 들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공익은 사익에 앞선다’는 명제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명제인데도 그동안 ‘사익은 공익에 우선한다’는 몰상식하고 비합리적인 흐름이 압도해왔다. 이 같은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판결은 더욱 값진 것이라고 하겠다.

 

대학 교수들과 총학생회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비리사학들은 수년간 거칠 것 없는 진군을 거듭해왔다. 비리로 쫓겨났던 상지대의 옛 재단 쪽 인사들이 사학분쟁조정위원회라는 ‘비리사학 복귀 도우미’의 지원 속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교를 분규로 몰아넣은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우리는 이번의 판결을 계기로 사학비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립학교에서 비리가 발생했을 때 제동을 거는 방법은 사실상 이사 승인 취소밖에 없다는 점과, 그동안 비리사학을 옹호해왔던 법원이 공익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향후 판결에 상당한 기대를 걸게 된다. 서울교육청의 특별감사에 비리가 적발돼 법적 다툼을 진행 중인 사학재단은 청숙학원 외에도 상록학원(양천고), 진명학원(진명여고), 숭실학원(숭실고) 등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이들에 대한 판결에서도 임원들의 사익보다는 교육의 공공성이 우선되기를 기대한다. 시민사회도 사학비리 문제를 감독관청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 항상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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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욱 변호사

 

부끄러웠다. 황당함과 분노를 넘어 웃음이 나왔다. 대체 뭘 믿고 이러나 싶었다. 언론의 마감시간을 넘겨 몰래 발표하고 주말을 틈타 슬쩍 넘어가려 했다던 ‘내곡동 사저’ 면죄부 건을 접하며 아연했지만, 설마 이 사건에서조차 이럴 줄은 몰랐다. 더 말할 것 없이, 무도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한 시민을 탈탈 털어 기소하고 집요하게 공소유지에 매달리던 의지와 결기를 지닌 대한민국 검찰 아니던가.

이미 2009년 3월에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에 뚜렷이 아로새겨진 불법사찰의 흔적을 기어이 외면하였고, 당사자들이 입을 닫고 증거가 인멸되어 더 이상 수사할 게 없다며 우기던 허물이 있었지만, 공익의 대표자라는 그들의 자긍심은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거라 믿었다. 게다가 “사즉생의 각오로 성역 없는 수사”를 할 거라 다짐하던데….

검찰은 이 사건이 “특정 인물들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배치되는 사람들을 사찰하여 제거하거나 개인 청탁을 받고 감찰을 하게 하는 등 국가기강을 문란하게 한 사건”이라고 정리했다.

 

민간인 불법사찰 비상행동 기자회견 ㅣ 출처:경향DB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하다. 그 특정 인물들은 왜 그랬을까?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한 일들이 많아서? 그런데 청와대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할 것 없이 왜 그리 바빴을까? 총리실 공무원들이 딱하고 불쌍해서? 평소 알지도 못하던 사람한테 뭐 하러 돈은 그렇게 많이 갖다바쳤을까? 열심히 일하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변호사 선임이라도 도와주는 게 도리라서?

심지어 통신회사 사장이 손수 대포폰을 만들어 바치고, 대부분의 시민이 생전 처음 구경하는 관봉 돈다발이 등장한 건 대체 누구에게서 비롯된 조화일까? 관봉은 돌아가신 장인에게서 받았다고? 그 어른은 손수 돈을 찍어내는 분이었던가?

“비선을 통해 VIP에게 일심으로 충성”하자던 일개 서기관은 뭘 믿고 여당 국회의원 자리를 요구했을까? 부여받은 임무에 최선을 다한 자부심 때문에? 참, 그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건 또 뭘까? 어쨌든 나중에 출마해야 하니까?

총리실에서 김종익씨를 음해하는 문건을 손수 만들어 여당 국회의원에게 건네고, 여당 수뇌부가 총출동해서 그의 명예를 훼손한 건 또 왜 그랬을까? 사찰당해 마땅한 불량 시민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느라고?

비자금 관리인이라는 게 터무니없는 음해라는 걸 확인하고도 축의금, 부의금까지 뒤져가며 이 잡듯이 수사해 김종익씨를 기소한 검찰이, 이번에 전달된 돈의 흐름을 찾는 건 왜 그리 더디고 어려웠을까? 은행원들겁주긴 쉬워도 청와대 직원들은 너무 세니 부담스러워서?

피해자는 자살을 결심하게 할 정도로 꼼꼼히 몰아붙이던데,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웬 서면조사가 그리 많았던가? 고령이라 세게 나가면 건강 상할까봐? 아님, 대통령실장까지 지낸 분들이 말주변이 없을까봐 배려한 것인가?

대법원장과 국정원장까지 사찰한 용기와 힘은 대체 어디서 나왔다던가? 언론사 노조가 고발한 사건은 일언반구 없으면서, 전 정권에서도 사찰이 있었다는 물타기까지 꼼꼼하게 배려한 건 타고난 균형 감각의 소산인가? 이래도 그 수사와 결론은 공정하고 떳떳한 것일까.

고작 포항 언저리 출신 몇몇 공직자들의 과욕 때문에 국가 기강이 흔들렸다는 결론을 믿으란 말인가? 이러고도 ‘결과’라며 발표하니 그토록 숨겨주려 했던 ‘한 사람’이 더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는가. 진정 대한민국 검찰은 헌정질서 수호에도, 시민의 인권보호에도, ‘사즉생’을 다짐한 제 조직의 명예에도 관심이 없는 것일까? 이러니 ‘사회적 흉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지 않겠나. 1995년 11월30일,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고 내뱉은 한 검사의 푸념은 세세연년 지속될 불가변의 명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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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더글러스 러미스·번역 손제민 기자

 

지난 5월15일 뢰브너상(Loebner Prize) 경연대회 20주년 행사가 영국에서 열렸다. 인간의 언어에 가장 가깝게 말하는 컴퓨터를 뽑는 대회이다. 컴퓨터들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1950년 제안한 ‘튜링 테스트’를 받는다.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 판별하려는 테스트다. 튜링은 컴퓨터가 언젠가는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심사위원들은 컴퓨터와의 대화, 진짜 인간과의 대화를 둘다 받아적어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가려내야 한다. 뢰브너상은 가장 많은 심사위원들을 속인 컴퓨터에 수여된다. 이 대회는 1991년 이래 해마다 열리고 있다. 아래 편지들은 경연대회에 참가한 컴퓨터에게 쓴 것이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이 ‘멀티터치 테이블 디스플레이’ 시제품으로 지도를 검색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1. 안녕, 컴퓨터야.

나는 네가 조만간 공식적인 컴퓨터 언어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쓰는 자연스러운 언어를 쓸 수 있게 된다고 들었어. 축하해! 그러면 내가 너에게 단어를 하나 가르쳐줄게. 바로 ‘나무’야. 이것은 가장 간단한 종류의 단어야.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야. 우리 인간들은 주로 그 사물을 겪음으로써 뜻을 알게 돼. 네가 우리가 쓰는 의미 그대로 언어를 배우려고 한다면, 너도 그렇게 해야 될 거야. 대개 어린 아이는 어른들이 나무를 가리키며 “나무다! 나무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그 단어를 배워. 그 아이는 그 나무를 바라볼 테고, 만져보기도 하겠지. 그러면서 비로소 ‘아 이게 나무구나’ 이해하게 된단다.

 대부분 인간은 평생 수십 아니 수백, 수천 그루의 나무를 본단다. 우리는 그 위를 기어오르다 떨어지기도 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고, 그 위에 새집을 얹거나 나뭇가지에 그네를 걸어놓기도 해. 나무껍질, 꽃, 수액으로 나무의 냄새를 알게 되고, 또 나무를 깎아낸 뒤의 신선한 냄새, 나뭇잎을 태울 때의 냄새로 그것을 이해해. 과일과 견과류, 메이플 시럽, 유칼립투스 오일 등으로 나무의 맛을 알게 돼. 젓가락이나 이쑤시개를 쓸 때도 나무의 맛을 느끼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거나, 도끼로 나무를 베거나, 쐐기로 나무를 쪼개거나, 나무를 태우거나, 나무로 현악기를 만들 때 나무의 소리를 알게 돼. 책상 위를 쓰다듬거나 망치의 자루를 쥐거나, 야구방망이, 부엌용 칼을 손에 쥠으로써 그 촉감도 알게 되지. 우리 인간들에게 ‘나무’라는 단어는 이러한 경험 그리고 그 보다 더 많은 걸 의미해. 컴퓨터야, 네가 이것을 체득하면 두번째 단어를 가르쳐줄게. 행운을 빈다!

#2. 안녕, 컴퓨터야.

 지난번 편지에서 내가 ‘나무’라는 말을 어떻게 쓰는지, 우리 인간들이 그 말에 어떤 의미를 담는지 알려줬지. 오늘은 일반적인 문제를 소개할게. 우리 인간들이 언어를 사용할 때 단지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이야. 다시말해 우리가 그 말에 정말 의미를 담아서 진지하게 하느냐 여부도 중요해.

 네가 우리처럼 말하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면 이것도 배워야 해. 꽤 어렵다고 느낄지도 몰라. 가령, 누군가 너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했을 때,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말하기는 쉬울 거야. 그런데 네가 정말 반갑다는 걸 상대방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거니? 또 네가 실수를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는데,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만인가요?”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니? 네가 “나중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누군가 네 프로그램을 바꾼 뒤에도 너는 계속 그런 의도를 가질 수 있니? 네가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놀랍습니다”라고 말할 때 너의 기계 작동 속에서 “놀라다”가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 거니? 네가 “내 명예를 걸고 이것은 정답입니다. 내 말에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너는 무슨 뜻으로 “명예”라고 말하며, “책임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거니? 아니면, 누군가 네게 “너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거니?”라고 물으면 너는 뭘 근거로 “예” 또는 “아니오”라고 답할 거니? 우리 인간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의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할 때 그러는 거야. 그러나 너에게, 네 말과 별개로 “정말로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기는 한 거니?
 
이 질문들이 독특한 이유는 아무도 네게 그 답을 가르쳐줄 수 없다는 데 있어. 우리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나면서 그 답을 배워. 너도 아마 그런 방식으로 배워야 할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행운을 빌어!

<번역 손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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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한 농림수산검역본부 축산물안전부장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우려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검역 전문가를 미국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독자적인 수출작업장 검사 권한이 없는 이상 파견 검역관 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주장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독선적 주장이다.

먼저, 비현실적인 조건을 당연한 것처럼 호도하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 공무원에게 독자적인 점검 권한을 인정한 나라는 없다. 그 대신 필요할 때 상대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서 사후 점검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 공무원이 우리나라 도축장을 독자적으로 직접 점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주이석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질병방역부장이 프레즈노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한편, 파견 검역관은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이후 매년 실시하고 있는 수출작업장 정기점검 과정에서 세부사항에 대해 협의하고 실제 점검단의 일원으로 직접 참여하고 있다. 지난 4월 민관합동조사에서도 조사가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이외에도 파견 수의검역관은 수시로 미 농무부(USDA), 식약청(FDA), 의회 관계자와 면담하고 축산단체의 총회에 참여함으로써 주요 정책 자료를 수집한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정책 방향이나 주요 동향 등 중요한 정보를 파악하여 우리나라가 대미 통상 현안 대응 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우리 농식품의 대미 수출에도 앞장서고 있다. 미국의 제도 변경에 따라 통관 문제 발생 시 적극 대응하여 수출 촉진을 측면 지원해 왔다. 그 밖의 많은 활동 실적은 지면상 한계로 일일이 나열하기에 어려울 정도이다.

미국산 쇠고기 관련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파견 수의검역관의 실효성 논쟁은 소모적이다. 파견 수의검역관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모두가 응원해 주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정부도 국민의 식탁에 안전하고 위생적인 식품이 오를 수 있도록 수입 농축수산물에 대한 검역검사에 온 힘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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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두 소상공인진흥원장


지난 10일은 정부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해 전통시장과 동네 골목상권 등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강제휴무를 실시한 날이었습니다.

강제휴무가 실시된 지 한 달 이상이 지난 현시점에서 이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도 강제휴무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이 학계와 업계를 중심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어느 쪽이 바람직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글로벌시대, 자유시장 경제체제하에서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강력한 규제를 해야만 했는가라는 점입니다.

대형마트와 SSM 규제에 찬성하는 쪽은 대형 유통업체의 독과점이 가져올 폐해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집중현상이 빚어지면 영세 상인들의 생계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형유통업체들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협력업체들은 납품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게 되고,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제한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반면 규제를 반대하는 쪽은 시장기능의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다양성을 침해하며, 유통산업 발전을 후퇴시킴으로써 대형마트의 근로자가 대량 실직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정기 휴일 안내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소상공인진흥원과 시장경영진흥원이 공동으로 강제휴업에 대한 현장점검과 그 효과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대형마트·SSM은 휴무일 전날 세일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비자 또한 휴무일을 고려해 사전에 쇼핑을 한다든가, 혹은 인근 지역 대형마트·SSM 등에서 쇼핑하는 등의 소비행동으로 대응하고 있었음이 확인됐습니다. 또한 전통시장과 동네슈퍼들은 경품행사와 이벤트, 특가판매 등 다채로운 고객 참여행사와 고객 서비스 강화 등을 통해 나름의 자구노력을 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제휴무 효과를 보면, 평균 11.7%의 매출 증가효과를 가져왔으며 실구매자를 중심으로 한 방문고객수도 평균 11.5%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강제휴무 규제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논란을 없애고, 의무휴업 도입 초기단계인 현시점에서 중소매 상인과 시장상인에게 긍정의 힘과 활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제는 영세 소매업체를 보호하는 목적만은 아닐 것입니다. 소매업계 근로자들에 대한 휴식과 건강 등 근로복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 유통업체와의 경쟁으로 영세 소매업체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될 경우 우리 경제 전체의 연관효과가 저하될 우려가 높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하부조직을 뒷받침하고 있는 소상공인의 몰락은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업체의 88%가 소상공인임을 감안할 때, 대형마트의 휴무제가 소상공인과 대기업이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대표적인 모델로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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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은대학연구소 2소장 whee212@oouniv.org

 

저번에 ‘멘붕’(멘털 붕괴) 이야기(5월29일자 ‘멘털 붕괴 5월아’)를 했지요. 한 청년이 화답하듯 ‘멘털 복귀 콘서트’ 개최 소식을 알려와 바로 큰일 날 소리라 답신했죠. 그 멘털은 붕괴될 때가 지나 와르르 무너진 거고, 너무 오래 꾸역꾸역 버티다 산산이 부서진 거라고요. 그렇게 붕괴된 멘털을 복구하며 과거로 회귀하는 기득권자들이 여태 작당 중이라 포기시켜야 할 차제에, ‘원점에 다시 서자’는 소박한 취지로라도 ‘복귀’라는 말에 신중하자고요. ‘멘붕’은 심신의 원점을 차원 이동하는 새로운 길찾기의 결정적 계기일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복구, 복원, 복귀는 죄 하지 말자 했어요.

사고 치고 은퇴 선언한 뒤 잠적하거나 오지에서 선행하다가 쓰~윽 복귀하는 거 연예계에만 있지 않지요. 이런 꼼수 떨치려면 멘붕 왔을 때 자신을 그냥 놔둬야 좋아요. 그럼 물 흐르듯 ‘멘창’(멘털 창조)로 이동할지 모르니까요.

멘붕에서 멘창으로 넘어가게 돕는 주문이 각자 있다면 교류하자고 제 것을 먼저 보냈지요. 이 주문 첫마디는 부산 동료에게 선물처럼 얻어들은 건데 효능이 있더라고요. 이 첫마디를 발음하는 순간, 내가 그동안 잘하려고 애쓰느라 번번이 속 끓이고 졸이다가 나를 태워먹고는 아닌 척 굴었는지 아프게 그리고 시원하게 명치가 콕콕 찔렸답니다.

“잘하려고 하지 마.” 주문은 이렇게 시작하죠. “잘하려고 하니까 점점 더 실패하는 게 무서워지잖아. 실패를 안 하려고 하니 자꾸 실수만 줄이고 감추려 하지. 실수 줄이고 감추느라 실수를 의식할수록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실수가 왜 이리 많아지고 커지는지 몰라. 정말 잘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껏 난 해놓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잘하려고 했지만 내가 부족한 건가? 다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안되는 걸까?”

주문은 다시 첫마디로 돌아가요. “잘하려고 하지 마. 결국엔 다 실패하는 거야. 그냥 해. 실패하려고 하는 거야. 그냥 하고 실패해. 그럼 되기 시작해.”

 

멘붕중인 황재균, 탈출을 원해? ㅣ 출처:경향DB

뭐가 되냐고요? 잘하려고 하지 않으면 비로소 내가 잘되는 게 뭔지 보여요. 불안해하면서 잘하려고 할수록 내가 내 따귀 때리고 입꼬리 올리면서 날 괴롭힌 거죠. 그러느라 보지 못하던 날 보게 되는 입구가 멘붕이에요. “이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구나” 하고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구나” 하는 걸 실감하며 다른 출구로 이어진 터널에 입장했다는 신호가 멘붕이에요.

하여 혼자 잘해서 인정받으려 말고 곁에 있는 너에게 눈길 돌리고 허허실실 이거저거 같이 하다 실패라는 걸 겪으면서 그냥 서로 만나는 걸 일삼는 거지요. 이때부터 됩니다. 내가 쓸모 있고 사랑받고 행복해지는 거.

요즘 청년들 보니 생애 첫 20년 이상 일방향으로 달려온 인생궤도를 어떻게든 각도 틀려는 사례가 느는 것 같더군요. 경제적 손익계산 없이 모임을 찾아다니고 모르는 이들과 어울리는 친목과 사교 차원의 사회적 동아리 활동이 번성하는 게 그래요.

지난 16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는 ‘딴따라댄스홀’의 홍대앞, 대학로, 강남반에서 각기 스윙댄스를 배운 청년 수백여명이 모여 대낮 뙤약볕 아래에서 춤판을 벌였잖아요. 로버트 D 버트넘 교수가 나홀로 볼링을 하는 미국인의 증가를 사회공동체 해체와 사회적 자본 축소로 개탄한 것과 반대 방향의 풍경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 여럿이 협동조합을 공부하고, 마을 만들기와 사회적기업을 준비하고, 커뮤니티 축제나 장터를 기획하고, 집회·시위에 참여하면서 왕래 없던 청년들끼리 만나고 모이는 사회적 연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네요.

사례로는 지난해 ‘청춘회춘 프로젝트’에 이어 올해 더 확장된 ‘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의 8월 개최를 앞두고 도시 간 청년 교류를 모색하는 부산의 청년그룹 네트워크가 대표적이죠. 부산의 클럽, 동네잡지, 1인 출판사, 예술단체, 사회적기업 등에 속한 다양한 청년들이 따로 있으면서도 더 큰 사회적 공동체로 연결되는 유연한 과정이 인상적이에요.

이렇듯 새로 등장한 사회적 흐름에 한 발 담그고도 실은 홀로 멘붕 몸살을 앓느라 안간힘 쓰는 청년들에게 꼭 나누고픈 한마디는 댄스든 창업이든 축제든 뭘 하든 “잘하려고 하지 마”예요. “하면 된다”는 토건시대의 멘털이 최종 붕괴한 다음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대안적 삶을 탐색하면서도 자칫 ‘일단 잘하려고 애쓰기’의 덫에 발목부터 잡힐 수 있으니까요.

아무쪼록 잘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냥 하고 빨리 실패하세요. 그때부터 같이 잘되는 게 보이거든요. 그럼 뭘 해도 되기 시작합니다.

아셨죠. 멘털 붕괴의 반대말은 멘털 복귀 아닌 거예요. 멘털 창조예요. 이건 잘하려고 하지 말아야 되는 거예요. 그 청년은 재답신에서 콘서트 홍보 문안을 바꾸긴 늦었으니 당일 다 모이면 “멘털 창조 콘서트”로 정정하고 놀겠노라고 하더군요.

5월에 이어 6월에도 멘붕인 분들, 그냥 만나고 노세요. 곧 멘창 이동 일어날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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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여성작가 여섯 사람이 섹스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단편소설집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문학사상)를 읽어보았습니다. 빨간색 표지가 무척 자극적이었지만 내용은 “아주 은밀한 섹스판타지”라는 도발적인 광고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욕망과 한계를 인정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선을 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돈, 섹스,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것은요?

자신이 욕망 덩어리라는 것을 인정했다가는 하루아침에 매도되기 쉬운 세상에서 검사 출신의 법학자 김두식은 욕망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결심의 결과물로 <욕망해도 괜찮아>(창비)를 내놓았습니다.

김두식은 <헌법의 풍경>(교양인)에서 직접 체험한 법조계의 어두운 현실을 용기 있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헌법 정신의 수호자여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기득권층과 결합해 ‘불멸의 신성가족’을 만들고는 법과 시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통렬하게 고발해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안겨주었지요.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김두식은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말’과 ‘글’의 교감 이상으로 ‘살(몸)’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소설가들이 자기 욕망을 정직하게 털어놓기 위해 소설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하고서도 자신의 ‘색(욕망)’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은 마당에 말입니다.

“욕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끝없이 통제하는 문화 속에서 평생을 보낸” 김두식은 우리 사회의 경계선을 넓히는 도구로 자신의 삶을 이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자신의 억눌린 욕망과 분노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험한 정글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지요.

 

섹스 테마 소설집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를 펴낸 여성작가들 l 출처:경향DB

김두식은 지금은 중산층의 터전’으로 변한 성북동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교사였던 김두식은 “중산층동네와 산동네의 접경지역”에서 살았지만 “삼중당 문고를 품고 살다시피한 똑똑한 문학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에 부자동네 아이들의 화사한 세계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부자 동네 출신 아이들은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재벌 3세’에서부터 그럭저럭 괜찮은 중소기업의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유학을 마치고 아버지 회사를 이어받았습니다. 중산층동네 친구들은 판사, 벤처회사 연구 책임자, 성악가, 헌법연구관 등이 되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만 셋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부자 동네 아이들이 가업으로 이어받은 회사에서 부장이나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두식은 “부자동네 아이들이 앉아 있는 사장실에 결재받으러 드나드는 걸 피하려는 무의식이 우리를 사법시험 합격으로 이끈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산동네 출신 친구 중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공부를 잘해서 최고로 꼽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졸업과 동시에 무조건 돈을 벌어야 했던 그 친구에게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돈과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산동네 출신 친구들은 근본적인 출발선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김두식은 성급한 일반화를 우려하면서도, 친구 부모님들의 소득수준에 따른 순위가 그 자녀인 자신 세대에서도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평준화와 과외금지 조치로 그나마 활발한 신분변화가 일어났다는 학력고사 세대”인 자신 세대의 ‘계층 고착화’가 이렇게 굳어져 있는데 이후 세대는 어떨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지금은 로스쿨의 등장으로 “성적 하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무식한 제도(사법시험)가 가졌던 투명함”마저 사라졌습니다. 고등학교도 철저하게 서열화되었습니다. 이제 서열화는 점점 내려가 머지않아 태어나는 순간부터 서열이 정해질지도 모릅니다.

하긴 그런 서열이 싫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지만요. 저는 김두식의 고백을 통해 검찰이 “권력의 화장지 노릇”이나 하는 원인을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73세의 소설가 김주영은 <잘 가요 엄마>(문학동네)에서 새아버지의 등장으로 인한 좌절감과 수치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황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야 어머니라는 존재의 실체를 정확하게 깨닫고 “어머니에 대한 참회록”을 털어놓을 수 있었답니다. 한때 원망을 넘어 저주까지 했던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 이 소설의 솔직한 고백은 큰 감동을 안겨줍니다.

김려령의 장편소설 <가시고백>(비룡소)에서 18세의 주인공인 천재 도둑 민해일은 친구 허지란의 새아빠 전자수첩과 친아빠 넷북을 연이어 훔칩니다. 해일은 자신이 훔친 사실을 지란에게 고백함으로써 드디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게 아프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떨치고 제 심장의 가시고백을 뽑아내야만 그때서야 믿어주고, 들어주고, 받아주는 연대가 이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너무 늦어 곪아터지기 전에 저마다의 ‘가시고백’을 뽑아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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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권이 소비세율 인상에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자민당·공명당이 지난 주말 현행 5%인 소비세율을 2014년 4월 8%, 2015년 10월까지 1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소비세율 인상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여야의 소비세율 인상 합의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의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데다 여야의 복잡한 정치역학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 등 향후 일정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정치권이 그동안 치열하게 전개됐던 증세 논쟁을 일단락시키고 합의에 이르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교훈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재정적자 규모나 복지 수준 등을 놓고 한국과 일본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절대 수준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재정악화와 복지지출 증가라는 고민거리를 똑같이 안고 있다. 일본은 재정적자가 1000조엔에 이르고, 국가부채의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200%를 넘는 등 세계에서 재정적자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다. 한국도 이명박 정부 들어 재정적자가 커지고, 국가·공공기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정 건전성 문제가 커다란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열악한 복지 수준은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빠른 고령화와 양극화에 따른 복지지출 증가가 ‘발등의 불’이다. 일본의 현실을 ‘강 건너 불’로 치부할 일은 아닌 것이다.

 

한 여성이 도쿄의 증권시세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정부는 지난해부터 재정 안정성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즈음에는 재정악화를 명분으로 정치권이 내놓은 복지공약 점검에 나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재정안정 비전이라고는 균형재정 달성 시기를 2014년에서 1년 앞당기겠다는 것이 전부다. 국가부채나 공공기관부채 축소 계획도 없다. 한 해 32조원에 이르는 기형적인 조세감면을 획기적으로 정리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벌써부터 굵직한 감면제도의 연장 방침을 내놓고 있다. 말로만 재정 안정성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도 다를 것이 없다. 4월 총선에서 여야 정당은 복지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재원마련 방안은 어물쩍 넘어갔다. 여야 모두 표심 눈치를 보느라 복지지출을 위한 증세의 필요성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된다. 정부는 조세감면 제도부터 확실하게 정비하고, 정치권은 복지강화만 떠들 것이 아니라 증세 논의를 시작해 복지강화의 진정성과 책임있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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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우리에게는 국가(國歌)가 없다. 우리나라는 애국가를 국가로 정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애국가를 부르면 쇄신이고, 부르지 않으면 쇄신이 아닌가. 애국가 부르기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라고도 했다. 통합진보당 새로나기특위가 애국가 제창 문제를 검토하는 데 대한 질문을 받고 나온 답변이다.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은 즉각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종북 주사파 세력의 막장 드라마”라며 맹공에 나섰다. 파문이 확산되자 이 의원 측은 “애국가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애국가 제창을 쇄신의 본질인 양 인식하는 데 우려를 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애국가는 이 의원 말대로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국가로 지정된 적이 없다. 대통령령인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과 대통령훈령인 ‘국민의례 규정’에 애국가 제창 관련 내용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령은 법률보다 하위개념인 명령이며, 대통령훈령은 그보다 더 낮은 행정규칙에 속한다.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라는 점도 논란거리가 돼왔다. 그렇다고 애국가 제창 문제를 통합진보당 쇄신의 핵심이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애국가가 국가를 대신해 불려왔고, 대다수 국민이 이를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의원 발언은 국회의원이 최우선시해야 할 국민의 정서와 요구를 간과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 시기적으로도 이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비례대표 부정경선으로 ‘종북’ 논란이 촉발되는 바람에 민생 현안과 측근비리 등이 가려진 상황 아닌가. 거센 사퇴압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원직을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책임한데, 비로소 잦아들기 시작한 이념논쟁에 다시 기름을 부은 까닭은 무엇인가. 만에 하나 “보수에게 떡밥을 던져”(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 ‘적대적 공생’을 시도한 것이라면 더욱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석기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이 의원 발언을 기화로 종북 논란을 재점화하려는 보수세력의 행태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면 시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이 의원의 발언을 정쟁 소재로 삼을수록 자신들의 이중적 면모만 드러낼 뿐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중시한다는 새누리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사열 파문과 관련해 당 차원의 비판 논평 한 줄 내지 않았다.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빼앗고 천문학적 뇌물을 받은 죄로 무기징역형을 받은 이가 장래의 군 지도자들을 사열한 데 눈감고 귀막으면서, 이미 ‘의원 부적격자’로 결론난 인사의 한마디에 나라가 뒤집힐 듯 요란을 떠는 게 과연 정상인가.

우리는 ‘애국가 논란’이 지나친 이념논쟁으로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새누리당이든, 통합진보당 당권파이든 애국가를 정략의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면 깨어 있는 시민들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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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부터 석달여 동안 348만마리의 소·돼지를 매몰한 구제역 피해지역에 정부가 일률적으로 상수도를 가설하면서 막대한 예산이 낭비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주 공개된 국회예산정책처의 ‘토양·지하수 환경보전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8월부터 2011년 7월까지 23만3000여명의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시설 건설에 6411억원(국고 4428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상수도 급수주민 1인당 평균 275만원의 비용이 들어간 것이다. 그나마 사업초기만 해도 1인당 소요비용이 184만원이었지만 구제역 창궐 이후인 2010년 12월 240만원, 2011년 3월 275만원, 동 7월 339만원으로 수직상승했다. 1인당 1000만원이 넘는 사업도 11개나 달했다. 특히 충남 아산시의 경우 주민 102명에게 상수도를 공급하는 데 62억원을 투입했다고 하니 1인당 6000만원을 쏟아부은 셈이다.

관계법령에 따르면 급수인구가 100명 이상 2500명 미만인 경우에는 지하 100m 이하 지점의 지하수를 활용하는 마을상수도 또는 소규모 급수시설을 가설하게 돼 있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더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축매몰지는 5m 깊이에 조성됐기 때문에 100m 이하 깊이의 심부지하수는 오염 우려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해당기간 동안 급수인구 100명 미만의 지역에 상수도를 건립한 사업만 18개에 이른다. 산중에 떨어진 축산농가 1곳에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수㎞의 수도관을 가설했다고 하니 비효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예산낭비가 또 재현된 것은 관계당국이 지역 특성을 감안하거나 주민들을 설득하는 대신 손쉬운 상수도 건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성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 오염 ㅣ 출처:경향DB

더욱이 2011년 관련예산 가운데 상수도 건립과 매몰지 보강공사에만 85.3%가 집중된 탓에 정작 토양 및 지하수 수질오염 환경영향 평가 및 가축폐기물 처리 시스템의 개선 등 지속가능한 사후대책에 투입할 예산이 턱없이 모자란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보고서 지적대로 지하수 오염을 방치한 채 지표수만 공급한 꼴이다. 보고서는 가축매몰지 사후관리사업의 원인으로 담당자들이 토양·지하수 오염에 대한 인식 및 전문성이 부족한 데다 관련부처 간 유기적 역할분담이 안된 점을 꼽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책임행정 의식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부실한 초기대책과 군사작전 하듯 강행한 살처분으로 제2, 제3의 환경재앙 가능성을 남겨두더니 사후관리에서 또다시 천문학적인 예산을 낭비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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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범죄영화들을 보면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세상에서 제일 급하다는 듯이 잡아간다. 결혼식 중인 신랑을, 학생들 앞에서 강의 중인 선생을, 메이저리그 경기 중인 선수를 막무가내로 수갑을 채워 잡아간다. 황당한 일은 잡혀간 바로 다음날 피의자가 풀려나 자기 변호사와 여유롭게 변론준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애초에 왜 잡아간 걸까?

지난 5월 말과 6월 초 MBC 파업주도자들에 대한 연이은 영장기각은 작년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비추어보면 매우 공정하고 당연한 것이다. 이 판결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것 자체를 징계사유를 넘어서 범죄로 보는 법조항이 있었다. 바로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이다. 그전까지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일단은 사업자의 ‘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노동관계법상의 엄격한 절차나 사유를 지켜야만 면책되도록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언제 일을 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를 국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매우 위헌적인 상황이 된다. 노동자들이 ‘공적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과거대로라면 MBC 파업은 일의 결과물(방송)에 보람을 못 찾아서 시작되었고 노동관계법은 그러한 파업사유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쉽게 범죄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그나마 축소 해석하여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의 경우에만 적용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격성’은 전혀 없었다. MBC노조원들의 김재철에 대한 반대는 사장 취임부터 나타났고 공정방송에 대한 수개월의 투쟁 후에야 파업이 시작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영장판사도 무죄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한 것이다.

 

MBC노조원들의 외침 ㅣ 출처:경향DB

혹자는 묻는다. “무죄를 다퉈볼 여지가 있어도” 수사를 위해 또는 범죄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체포구속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과거의 형사제도 역사에서 ‘수갑’은 ‘강력한 수사’나 ‘범죄소탕’의 무기처럼 휘둘려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형사제도에서 체포구속해봐야 수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범죄행위를 중단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체포구속은 강제구금인데 강제구금해봐야 피의자들은 묵비권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이들의 의사에 반하여 가둬놓아도 검경이 수사를 진척시킬 합법적인 방법은 없다. 수사를 진척시키려면 말할 의사가 있는 사람을 신문해야 비로소 의미가 있을 것인데 말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임의동행에 응할 것이며 강제구금은 애당초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또 범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행위를 중단하려는 것도 적법절차원리에 어긋난다.

체포구속 즉 재판 전 구금의 목표는 오로지 피의자를 재판에 세우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피의자가 추후 재판에 출석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이 믿을 만하다면 구금의 목표는 100% 충족되는 것이므로 곧바로 풀려나야만 정석이다. 그래서 미국영화 속에서도 그렇게 급박하게 잡아놓고도 곧바로 풀어주는 것이다. 단,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면 그 사람이 출석할 재판의 의미가 훼손되므로 또는 도주 우려가 있어 출석약속이 무의미하다면 그런 우려가 있을 때만 재판 때까지 감금할 수 있다. 또 이런 엄격한 요건 외에도 모든 사람은 재판 전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의 보호를 받으므로 재판 전 구금은 ‘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예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MBC 파업 집행부는 도주할 가능성이 전무하고 범죄의 성격상 인멸할 증거도 없었다. 즉 재판 때까지 구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위에서 말했듯 MBC 파업은 업무방해죄의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즉 재판출석보장을 위한 초동체포조차도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단 1초라도 이들에게 수갑을 채울 일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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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출 | 푸른아시아 사무총장

 

6월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2011년 6월 노르웨이 난민협회 등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 인한 난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에 그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고 한다. 한반도도 기후변화와 환경재앙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도 난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2009년 8월 나는 아시아 12개 나라의 과학자들과 함께 기후변화 현실을 논의한 적이 있다. 참여한 남아시아의 과학자들은 남아시아가 기후변화의 전시장이 되었음을 선언했다. 2010년 7월, 파키스탄에 내린 폭우는 파키스탄 국토의 20%를 삼켰고, 2000만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2008년 5월, 버마를 강타한 사이클론 ‘나르시스’로 1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지난 2010년 2월부터 4월까지 석 달간 몽골에서 가축 750만마리가 굶어 죽었다. 극단적인 한파로 가축들이 풀을 찾지 못해 굶어 죽었다. 이어서 몽골에는 2만명의 환경난민이 새로 발생했다. 몽골에서 발생한 혹독한 기상악화는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환경난민들은 더 이상 유목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도시로 떠나 몽골 수도 외곽에 환경난민촌을 형성해 살고 있다.

 

버마 난민 어린이들이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유엔난민기구가 정의하는 ‘난민’이란 인종·종교·민족·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인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는 사람들을 말한다. ‘환경난민’이란 환경악화로 생활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환경난민은 박해받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환경난민의 문제를 악순환으로 몰고 있다.

문제는 환경난민이 저개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3월 원전사고이후 현재까지도 15만명의 주민들이 환경난민으로 비참하게 떠돌고 있다.

현재 지구촌의 28억 인구가 환경난민이 될 수 있는 위험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지구생명이 위기에 처하고, 환경난민이 빈곤의 덫에 갇힌 상태에서 나머지 인류는 생존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한국과 같은 선진 산업국에 사는 사람들은 답을 해야만 한다. 지구생명의 위기와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기후변화의 시계를 멈추기 위해 노력하고 환경난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여기에 구원의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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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 한국외대 교수·언론정보학


지난 일주일 동안 경향이 주목한 핵심가치는 ‘민주주의’ ‘인권’ ‘생존’으로 요약될 수 있다. 11일자 1면과 4면에서 6·10 민주화항쟁 25주년을 맞이해 전국에서 개최된 기념행사 소식을 전하고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여전히 시민들이 목말라하는 가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질적 측면에서 매우 악화되었다는 최장집 명예교수 저서의 서문 내용과 함께 두 장의 사진을 게재했고(1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 생도 열병식을 ‘사열’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4면)을 통해 이러한 편집의도를 분명히 했다. 더구나 경향의 지면편집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탄원서 제출(11일), ‘내란죄’ 전(前)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가능성(12일)을 전하는 단신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현재 한국사회의 기막힌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적절한 문제제기였다고 본다.

경향은 또한 검찰의 ‘내곡동 사저 의혹’(11일) 및 ‘불법 민간인 사찰 재수사’(13일) 발표,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12일)을 전하는 기사에서 ‘인권’ 가치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몰인식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하지만 검찰의 ‘내곡동 사저의혹’ 수사결과 발표 보도의 경우 ‘짜맞추기’ ‘봐주기’ 수사라는 세간의 비판 여론을 전하는 데 그쳤다. 검찰의 수사발표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검찰개혁을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과 집권세력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의 가족이 관여한 내곡동 땅매입 과정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규범에서 크게 벗어난 비도덕적 행위이고 그러한 일탈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사건인지를 강도 높게 비판했어야 한다.

 

경향신문 ‘제1기 정치 저널리즘스쿨’ l 출처:경향DB

권력자와 국가기관의 일탈행위 비판은 언론의 기본 책무이다. 보다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청와대가 검찰 수사 내용에 담길 노무현 정부의 ‘직권남용 사례’를 검찰의 재수사 결과와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달라고 일부 언론에 청탁했다는 폭로 기사(14일 1·4면)는 독자에게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평가하는 해석의 틀을 제공했다. 청와대의 협조요청은 이명박 정부와 일부 언론의 공생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지나치게 정파적인 신문과 방송이 ‘불법 민간인 사찰’의 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민들이 청와대와 검찰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왜 철회하는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경향은 케이블방송 방청객 알바비 실태(12일), 학교 내 비정규직(13·15일), 청량리 가판대 형정남 할머니(16일), 대형마트 강제휴무가 재래시장의 재활에 미친 긍정적 영향(16일)을 전하는 기사를 통해 ‘생존’ 위기의 심각성과 서민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전했다. 사례 묘사 중심의 접근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서민들과 감성적으로 동일시하게 만드는 유익한 기사이다. 하지만 서민의 ‘생존’ 이슈에 대한 독자의 숙고를 이끌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책적 차원에서 현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는 뉴스가 필요하다.

물론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강제휴무 의무화에 관한 강동구의 조례 발표 이후 ‘늘푸른 야채’ 가게의 매출액변화를 그래프로 제시했지만 이는 재래시장의 모든 가게에서 발견되는 현상이 아닌 하나의 특수한 사례에 불과하다. 부족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기사처럼 서민의 ‘생존’ 문제를 돕는 정책대안과 이에 관한 정치·사회적 차원의 논의를 촉구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아테네 시민의 이야기와 생각을 관찰기 형식으로 보도한 기사도 그러했다. 그리스 서민의 삶이 어렵고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다는 현실과 함께 그리스 상인들의 전문직업정신 실종을 비판적으로 전했다. 이는 그리스 경제위기의 책임을 정치권과 시민 모두가 함께 져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유로존 위기의 구조적 원인과 이러한 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설명하는 게 독자에게는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그리스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서민의 ‘생존’ 위기를 초래한 원인과 그리스 사회의 그것과는 차원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한다. 직업정신이 철두철미한 한국상인들조차 늘 힘들어하는 삶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서민의 ‘생존’ 위기를 초래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탐사하는 보도가 필요하다.

신문구독은 다른 미디어 이용과 달리 독자의 정치지식 습득을 돕고 정치참여를 촉진하는 데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 관한 소식을 얻기 위해 신문을 이용한다는 응답은 2002년 38.5%에서 2011년에는 16.6%로, 그리고 신문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1984년 49.3%에서 2000년 24.3%, 2011년에는 11.8%로 급감했다(한국언론진흥재단, 2011). 한국의 뉴스 유통시장에서 신문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이어 제3의 미디어로 전락했다. 신문은 저널리즘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실천 방안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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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중국전문가

 

노반은 춘추 말기 기술자이자 과학자로 이름을 떨쳤는데, 여러 나라를 돌면서 건축에 관해 자문하길 좋아했다. 한번은 인간 세상의 천당이라는 별명을 가진 오나라의 수도 고소성을 찾았다. 노반은 고소성의 건축물에 강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이 거리 저 거리를 쏘다녔다. 그러다 문득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푸른 초원 위에 우뚝 솟은 이제 막 지은 것 같은 탑이 눈에 들어왔다.

구경꾼들을 헤치고 탑 가까이 가보니 비단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중년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노인은 이 지역의 이름난 부자였는데, 자신의 덕과 선을 만고에 전하려고 높은 탑을 쌓으려 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가 이 일을 맡아 3년에 걸쳐 나무로 된 멋진 탑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완공된 이 탑이 바로 보아도 기울어져 보이고 옆으로 보아도 기울어져 보이는 것이 아닌가.

 

중국 시안 감제고지 종남산에 위치한 99m짜리 장안탑 ㅣ 출처:경향DB

부자 노인은 자신의 공덕에 손상이 갔다며 벼락같이 성을 내며 이 장인에게 다시 탑을 세우든지 바로 잡든지 해서 제대로 탑을 세우라고 호통을 치던 중이었다. 경제력이 없는 장인으로서는 바로잡는 수밖에 없었는데, 자기 기술로는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탑을 살핀 노반은 장인에게 목재를 조금만 갖다 주면 한 달 안에 이 탑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장인은 반신반의하며 노반에게 목재를 가져다주었다. 노반은 가져온 목재를 각이 지게 깎아 여러 개의 쐐기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기울어진 목탑 사이사이에 박았다. 이윽고 기울어졌던 목탑이 서서히 바로 서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장인은 그 방법을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노반의 대답은 이랬다.

“나무로 짜 맞추는 이런 구조는 각 부품들이 서로 당기고 미는 힘이 센 편이고, 그 힘으로 하나의 큰 유기체를 형성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울어진 부분이 있으면 쐐기를 박아 바로 세울 수 있지요. 쐐기도 각이 있기에 비교적 쉽게 박을 수 있고, 이 각이 기울어진 부분에 큰 힘으로 작용하여 바로 세울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이 하는 일도 완벽할 수 없다. 가정도 기업도 사회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조직이 기울어졌을 때 이를 어떻게 바로 일으켜 세우느냐 하는 데 있다. 노반의 작은 쐐기들처럼 정성을 들여 조직 구석구석의 문제점들을 교정해 나간다면 애당초 완벽한 조직보다 훨씬 더 견실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내성이 생기고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해결해나가는 지혜를 함께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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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

 

깊은 산속에 작은 집이 엎드려 있다. 방문을 열고 사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집으로 향해 난 좁은 길로 부인인 듯한 사람이 양손에 작은 보퉁이를 들고 찾아오고 있는 그림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도상이다. 다름 아닌 인물산수화에서 흔하게 접한 이미지다. 옛 선비들은 원림을 조성하거나 경치 좋은 곳에 집이나 정자를 지어 그 자연을 삶의 공간으로 적극 끌어들였다. 산수화를 채우고 있는 그림들이 바로 그러한 이상적인 공간의 가설화다. 선비들은 탈속적인 정신세계를 체현할 수 있는 은일태도를 강조했는데 자신들의 그 같은 생활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자연이었고 산수화 속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선비는 자연을 관조하고 깨닫고 즐긴 것이다. 자연을 대면하면서 자연의 순환과 이치를 깨닫고 자연의 덕목을 내재화하고 있는 중이다. 자연은 선비들이 공부하고 깨닫는 곳이자 심신을 수양하는 장소였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결과적으로 투명한 외로움과 목숨 가진 유한한 존재들이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서글픔 같은 것을 만난다. 거대한 영원 앞에서 찰나적인 생을 살다 소멸될 운명에 처한 이가 그에 순응하고 투항하며 지극한 행복의 한순간을 기념하고자 한다. 자연으로 회귀할 인간의 운명과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새삼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이광택 '갖고 싶은 원두막 공부방' ㅣ 출처:경향DB


고향인 춘천의 소양강변에서 그림에 전념하고 있는 이광택이 보내온 작은 그림들을 보면서 새삼 산수화 속의 그 인물이 연상되었다(희수갤러리, 5·30~7·3). 작가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그는 깊은 산속에 아주 작은 집을 짓고 그 안에 고요히 앉아 자연을 바라보며 작업에 열중이다. 더러 독서를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그의 소박한 일상이다. 한가하고 고요한 생이다. 동시대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가파른 시욕과 현란한 담론에서 멀찍이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살며 공부하는 그의 일상을 소재로 그려낸 이 그림이 무척 감동스럽다. 그는 “아무리 가난해도 그림만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덧붙여 말하기를 “바쁘디 바쁜 일상에 지쳐 상상의 날개가 꺾인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그림의 쪽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오염되지 않은 도원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다. 그래서 그곳에서 잠시나마 그들을 편안히 쉬게 해주고 싶다”고 한다. 오늘날의 인물산수화를 보고 있다. 나도 저런 생으로 내 삶을 종료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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