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에 해당되는 글 11157건

  1. 2012.07.05 [사설]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해선 안된다
  2. 2012.07.05 [사설]장애인 고용, 공공부문부터 획기적으로 늘려야
  3. 2012.07.05 [여적]폴로늄과 방사능 테러
  4. 2012.07.05 [정희진의 낯선 사이]약자의 착각
  5. 2012.07.05 [신정일의 길]청개화성, 그 잊혀진 여름의 풍류
  6. 2012.07.04 [정동에세이]손을 내미세요, 붙잡아 드릴게요
  7. 2012.07.04 [기자 칼럼]인사철 앞둔 ‘직장인’ 검사들
  8. 2012.07.04 [사설]‘보육대란’도, 무상보육 정책의 후퇴도 안된다
  9. 2012.07.04 월 15만원 연금… ‘자살 부부’ 유서엔
  10. 2012.07.04 [기고]20세기 정당론과 21세기 현실의 충돌
  11. 2012.07.04 [녹색세상]‘제로톱’ 축구와 국립대 통폐합
  12. 2012.07.04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조선을 뒤흔든 명의 역사왜곡
  13. 2012.07.03 [사설]이상득 수사, ‘만사형통’ 아닌 ‘만사법통’ 보여줘야 (1)
  14. 2012.07.03 [사설]균형재정 늦추더라도 경기회복에 주력해야
  15. 2012.07.03 [사설]문재인 고문에 대한 오보 소동이 말하는 것
  16. 2012.07.03 [정승일칼럼]국제투기자본 돈줄이 된 국민연금
  17. 2012.07.02 [경향마당]‘쿨비즈’에 맞춰 반바지 등교는 어떨까요
  18. 2012.07.02 [경향마당]보호받을 사람은 주폭 아닌 선량한 시민
  19. 2012.07.02 [사설]대통령이 ‘한·일협정’ 처리 과정을 몰랐다니
  20. 2012.07.02 [윤여준칼럼]대선 반면교사 ‘실패한 대통령’들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빠른 속도로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총리 직속 정부 분과위원회는 보고서에서 헌법 해석 수정을 통해 자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가 제3국으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 일본이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제3국을 공격할 수 있는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일본은 지난해 말 ‘무기 수출 3원칙’을 완화한 데 이어 지난달엔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해 핵개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일본의 우경화가 심상치 않다. 


일본은 오랫동안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으나 행사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런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90년 냉전 종식 이후부터다. 일본은 걸프 위기를 둘러싸고 미국으로부터 ‘인적 공헌’을 요구받자 이에 편승해 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하는 등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범위를 넓혀왔다. 특히 2000년대 후반 들어 일본은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중국의 군비 확장을 핑계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 확장 수순을 밟아왔다. 이번 총리 직속 분과위의 요구는 사실상 마지막 금지선을 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미·일 동맹 강화라는 미국의 요구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향신문DB)


일본에 묻고 싶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 9조의 탄생 이유를 잊었는가. 일본은 2차대전을 도발해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더욱이 일본은 군사력을 동원해 주변국들을 침략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금지라는 족쇄를 채운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이 끝난 지 67년이 지났는데도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사과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법 해석’이라는 ‘꼼수’를 통해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가증스럽기 이를 데 없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 정신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편법으로 평화헌법의 근본정신을 훼손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일본의 자위권 행사를 금지시켜놓고도 국제 정세의 변화를 빌미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압박한다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우리 정부도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은 과거사 문제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나아가 동아시아 정세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사안이다.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허용이 바로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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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그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장애인 의무고용률(2.3~3%)을 지키지 않은 국가기관·자치단체 33곳과 공공기관 69곳의 명단을 발표했다. 국가기관·자치단체(공무원 기준)는 전체의 35%, 공공기관은 40.5%에 해당한다.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야 할 공공부문에서 이처럼 장애인 고용을 외면하는 곳이 많은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는 민간기업에 장애인 고용을 독려하거나 민간부문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상시 근로자가 100명 이상인 민간기업의 경우 전체 1만1873곳 중 50.6%가 의무고용률(2.3%)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민간부문 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명단을 보면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모두 공무원뿐 아니라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도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은 공무원 장애인 고용률이 1%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장애인이 적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니 염치가 없다. 교사 자격증이 필요없는 근로자 장애인 고용률도 0.3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생인권 운운하면서 장애인 인권은 무시하느냐”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제정한 국회도 장애인 119명을 의무고용해야 하지만 54명만 채용해 고용률이 1.37%에 그쳤다. 


장애인 고용 촉진을 위한 궐기 대회(1990년대) 경향신문DB


전국에는 현재 250만여명이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지만 미등록자를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소외 계층이다. 이런 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제공이다. 정부가 20여년 전 장애인고용촉진법을 만들고 의무고용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 같은 취지에서였다. 그동안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에서 장애인 고용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 더욱이 최소한의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의무고용률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공공부문에서 장애인 고용률이 저조한 것은 고용을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은 장애인 고용인원이 의무 기준에 미달하면 부담금이라도 부과하지만 공공부문은 그런 제도도 없다. 고작 기관 평가에 반영될 뿐이니 장애인 고용에 소극적인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정부는 무엇보다 공공부문에서 장애인 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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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논설위원



어릴 때 위인전을 몇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퀴리 부인의 위대하고 숭고한 삶을 기억할 것이다. ‘방사능’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고 방사성 원소인 라듐을 발견하는 등 뛰어난 과학적 업적을 쌓아 과학자로서 한 번 받기도 어려운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첫 방사성 원소가 폴로늄이며 거듭된 방사선 피폭으로 매우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퀴리부인(경향신문DB)


방사능의 위력은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데 있지만 그것이 무서운 까닭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전혀 느낄 수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방사선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피폭됐을 때 피해가 바로 확인되는 경우도 드물다. 수십년이 지나서 암에 걸리거나 다음 세대에 유전적 결함으로 나타날 수 있다. 더 가공스러운 것은 우리의 과학이 그런 피해의 메커니즘이나 인과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의문의 죽음을 다루는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의문’이듯이 방사능의 공포도 피해 자체보다 그 과정과 결과의 ‘알 수 없음’에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이끌었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폴로늄에 의해 사망했을 것”이라는 최근 보도를 보고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2004년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한 그가 보름여 만에 병명도 확인하지 못한 채 사망한 게 폴로늄 피폭 때문이라면 ‘방사능 테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06년 비슷한 증세로 25일 만에 사망한 러시아 스파이 알렉산더 리트비넨코보다 앞선, 최초의 폴로늄 암살 희생자가 되는 셈이다.


원소기호 Po, 원자번호 84인 폴로늄은 퀴리 부인이 1898년 발견해 고국 ‘폴란드’에서 따서 이름을 붙인 희귀원소다. 라돈이 방사성 붕괴를 하는 과정에서 주로 생성되며,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치명적이다. 자연계에는 드물지만 해산물, 야채 등에 미량으로 존재한다. 비료 등을 통해 담뱃잎에 축적된 폴로늄은 흡연으로 인한 폐암의 중요한 원인물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아라파트의 소지품에서 검출된 폴로늄210은 반감기가 138일 정도로 짧아 강력하고, 알파 붕괴를 일으키기 때문에 잘 탐지되지도 않는다. 이런 성질을 잘 아는 세력에 의해 폴로늄이 테러의 수단으로 이용됐다면, 또 앞으로 이용된다면 그것은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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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국전쟁 후 소설가 김동리는 ‘젊은 美國의 기빨’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중략)

이번에 韓國을 도와준 偉大한 恩人들

맥아더 릿쥬웨이 트르맨 아이젠하워 等

수많은 이름을 내 맘은 기리 잊지 못할 것입니다.

드러나 당신처럼 내 맘에 고동을 주고

 내목에 흐느낌을 일으킨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어느 義人이 또한 나의 首都를 당신같이

아끼며 사랑하며 지켜주었겠습니까

일찌기 韓國의 어느 港口에 들어왔던 外人의 船舶에서도

당신의 아드님을 비롯한 많은 部下들이

이 고장에 뿌려주신 鮮血에 比하여 더 高貴한

빠이블과 十字架를 우리는 그 속에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원문 그대로 표기)  




지면상 더 생략하려 했으나 손댈 곳이 없다. 순수문학의 대가답게 ‘순수의 결정(結晶)’을 보여준다. 마음이 아프다. 비꼬는 것이 아니다. 구한말 양이(서양 오랑캐)론부터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반미운동까지, 다른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대미관은 계속 변화해 왔지만 미국을 구세주로 보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구한말 가장 중요한 외교문서로 평가받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남하하는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을 조선의 바람직한 대외정책으로 제시했다. 당시 연미론에 반대한 유생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미국은 5만~6만리나 떨어져 있어 우리가 급할 때 당장 와주지 못한다”와 “미국과 힘을 합쳐 러시아를 막는다 해도 또 다른 외적(미국)을 불러들이는 결과”라는 것이다.


전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미사일이 대륙을 오가는 시대이므로, 또 아예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해결’됐다고 치자. 후자는 한·미 수교 1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한 논란거리다. 김동리의 격정적 미국 사랑과 달리, 당시 유생들은 국제정치의 기본인 실용주의, 현실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외교 전문가는 물론 일반 여론까지 MB의 대미 편중 외교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구한말 유생의 식견보다 한참 후퇴한 것이다. ‘G2’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을 고려치 않고 무조건 미국하고만 잘 지내면 된다는 생각과 이를 맹신하는 인사들로 외교팀이 꾸려졌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의 일부 세력은 아직도 미국을 유일한 외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정보보호협정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최근 밀실처리 논란이 된 한·일 정보협정이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국가기밀’이다. 한·미·일 동맹은 명목상으로는 북한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계획에 한국이 ‘총알받이’로 동원된 형국이다. “한국은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일을 돕지 말라”는 중국 정부의 비난은 우리에 대한 ‘걱정’에 가까울 지경이다.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미국과 일본이 피해를 보겠는가? 청일전쟁이 청나라나 일본이 아닌 이 땅에서 벌어졌듯 우리는 그들의 싸움터가 될 공산이 크다.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은 심각한 문제다.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시민으로서’ 나는 이를 재고할 수 있는 대선 후보가 당선되기를 절실히 바란다. 


무엇이 이토록 미국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나는 이 현상을 사대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들은 용미(用美)를 표방한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친해짐으로써, 또 그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심지어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강대국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로부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관계 원리인 “작은 것은 큰 것을 섬기고, 큰 것은 작은 것을 예뻐한다”는 사대자소(事大字小) 심리인가? 아니면, 지금은 힘이 없으니까 일단은 미국을 활용하자는 자발적 종속 논리인가? 그렇다면, 이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전 세계는 물론 우주까지 상대하느라 바쁘다. 미국에 우리는 그들이 활용당해 줄 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겠는가, 그 반대가 많겠는가.


만에 하나, 약자가 강자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약자는 지피지기 상태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전략과 지혜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일 관계에서 약소국인 데다 북한이라는 ‘아킬레스건’까지 있는 우리의 유일한 생존 방식은 유연한 사고를 기반으로 협상의 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국제협상에서 보았듯이 한국 외교 지도자들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무능력과 주눅 든 태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상대는커녕 자신조차 모른다. 우리가 강대국을 이용한다는 자신감은 부풀려진 자아, 망상적 자기애, 도취에 가까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관은 강자를 이용하려는 약자의 자세가 아니라 강자에 대한 동일시 욕망, 허세와 착각에서 나온다. 분명한 점은, 강자는 이러한 약자의 자기분열을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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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예나 지금이나 어떤 모임을 만들어 서로 만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세상사 풍경이다. 하지만 만나서 노는 방법만큼은 예와 지금이 확연히 다르다.


지금은 봄·가을에 꽃구경을 가는 모임도 있고, 꽃사진을 찍는 모임도 있으며, 우리나라의 길과 산천을 걸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걷기 모임도 있다. 그뿐인가. 골프 모임, 식도락 모임, 산악 모임, 낚시 모임, 바둑 모임, 심지어 도박 모임까지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제각각의 형태로 놀이를 즐기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은 어떤 모임을 만들어 어떻게 놀았을까? 


다산 정약용은 잘나가던 학인관료였다. 그러나 정조의 서거 이후 곧 신유사옥이 일어났고, 그 뒤 다산은 유배지로 내몰렸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저작을 남긴 다산도 젊은날에는 풍류를 즐겼다. 당시 정약용과 친교를 맺었던 이치훈, 이유수, 한치응 등 열네명의 뜻 맞는 선비들이 죽란시사(竹欄詩社)라는 풍류계를 맺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규약을 정했다.


전주 덕진공원의 연꽃 (경향신문DB)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필 때와 한여름 참외가 무르익을 때 모이고, 서련지(西蓮池)에 연꽃이 만개하면 꽃구경하러 모인다. 국화꽃이 피어 있는데 첫눈이 내리면 이례적으로 모이고, 또 한 해가 저물 무렵 분(盆)에 매화가 피면 다시 한 번 모인다.


연꽃이 필 때 모였던 서련지는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13번지에 있던 연못이었다. 서울 서쪽에 있으므로 서편 연못, 또는 서지(西池)라고 불렀던 서련지는 연꽃이 많기도 했지만 연꽃이 크기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죽란시사로 맺은 선비들이 동이 트기 전 새벽에 모여서 배를 띄우고 연꽃 틈에 귀를 댔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숨을 죽인 채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것이 바로 연꽃이 필 때 내는 소리였다. 잎이 필 때 청랑한 미성을 내며, 꽃잎이 터지는 그 연꽃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옛 선비들은 마치 꽃이슬을 마음속에 떨어뜨리는 듯한 그 청량감, 즉 청개화성(聽開花聲)을 소중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윽하고도 절절한 멋인 풍류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잎에 가득 술을 따라놓고 연근처럼 구멍이 뚫린 연대로 그윽한 연의 향기와 함께 술을 마시는 풍류 역시 오래전에 사라졌다. 


온 나라에 연꽃이 무성하게 피는 시절이다.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전주 덕진 연못이나 나라 안 곳곳의 연지에서 여름 새벽에 청개화성을 체험해 볼 일이다. 상상만 해도 얼마나 운치 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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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 | 시인·목사 shodance@hanmail.net


 

두 손, 두 발은 서로에게 참말 살갑고 지극하다. 한 손이 다치면 다른 손이 재빨리 그러쥐고선 애지중지 어루만진다. 뜨거운 불에 데거나 칼로 베이거나 했을 때, 순식간에 반대편 손이 스파이더맨보다도 날쌔게 납시어설랑 이리 만지고 저리 살펴보고. 자기에게만 아니라 남에게, 이웃에게 그렇게 다정다감한 손길이 있다. 재난이 생겼을 때나 선한 행동을 해야 할 때 주저없이 나눔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 마치 이웃을 위해 준비된 하나님의 자상한 손이로구나 느껴진다.


무더운 칠팔월, 외출할 때 주로 반바지 차림이다. 여타의 목 뻣뻣한 목사님들처럼 점잔 뺄 일이란 게 아예 없으니깐. 문제는 종종 모기 드라큘라 일가족에게 종아리나 발등을 빨린다는 것. 하지만 얼른 다른쪽 발가락 끝으로 잽싸게 긁어주면 금세 가려움이 그치면서 말짱해진다. 꼼지락 깜지락 부지런을 떨며 긁어대는 손가락 발가락을 보면 신기하고 기특하다. 마디마디 지체들이 서로를 돌보는, 애덕에 가득 찬, 이런 몸짓을 통해서도 사람됨의 길, 나눔과 연대만이 살길임을 조목조목 배우게 된다. 



 세상엔 도무지 스승 아닌 게 없는 법이렷다. 그래 특정인을 과잉 추종하며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일은 허황되고 어리석은 맹신이요, 맹종일 확률이 높다. 신앙생활이란 자기 맘에 쏙 드는 종교인을 만나서 무조건 추종하고 보는 것이 아니다. 경전을 비롯하여 일상생활 도처에 깔린 진실과 진리를 조금씩 발견해 가고, 순리에 따라 흘러가면서 살아갈 때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스페인 산골짝 수도승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욕심을 내지 않으며 병들고 가난한 이웃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영혼이 하느님과 합일하면 할수록 이웃에 대한 동정심이 커간다”고 말했다. 놀라운 기적을 행함보다 비천한 데서 고생함이 낫고, 고생은 많을수록 좋은 일이라 설파하면서 병든 이웃들 속에 잠겨 완덕을 실천하는 생을 살았다. 


자기보다 더 기운이 센 사람, 지혜가 높은 스승을 찾아나서는 게 아니라 성인은 오히려 그 반대되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가 추구한 완덕이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연민, 순종, 정결, 청빈, 고행, 겸손, 찬미, 억제, 기도, 침묵과 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향한 불굴의 투쟁심이었다.


자본주의 세상, 세속화된 오늘의 교회를 비추어볼 때 하나같이 반대되는 선택이 아닌가. 끝도 없는 각축과 경쟁, 약자에 대한 싸늘한 외면과 이익이 날 만한 무엇이라면 인정사정없이 달려들어 독식하고, 권력이나 우월한 존재에 대해선 지나친 아부와 아첨으로 일관하는 세상과 말이다. 


오늘 우리는 왼손이 아프대도 오른손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오른손이 다쳤는데도 왼손이 딴짓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북녘동포가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도 정권 내내 눈을 감고 외면했다. 오른발이 다치면 왼발이 냉큼 몸무게를 지탱하며 앙감질을 해야 하는데, 나 몰라라 길바닥에 주저앉아 원망과 비난으로 지샌 세월이었다.


사람의 목숨이란 마치 풍선과 같은 것. 공기로 꽉 찬 풍선. 멀리 저 하늘로 날아오르고픈 마음으로 부푼 풍선. 하지만 누군가 풍선을 손으로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도리 없이 지상에 머물고 있는 것이렷다. 


가끔 길에서 실로 질끈 묶은 풍선을 들고 걸어가는 꼬맹이들과 마주친다. 행여 날아갈까봐 어찌나 세게 실을 붙잡고 걷는지 귀염둥이들의 팔이 부르르 떨릴 정도다. 마치 그러하듯 우리네 목숨줄을 누군가 애타게 붙잡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며 바라기 때문에, 푸르고 높은 저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고 이 땅에 숨쉬며 거닐고 사는 것이리라.


누군가 그대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보고파 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가 이 세상에 여태껏 생존하며 남아있다는 소리다. 내 목숨을 붙들고 있는 그 사람이 어느 날 문득 나를 자유롭게 놓아준다면 나라는 목숨은, 나라는 풍선은 멀고 높은 창공으로 주저 없이 박차고 날아오르겠지. 나를 꽉 붙잡고 있는 손, 우리 모두를 놓아주지 않는 애모의 손길은 과연 누구의 손일까, 손길일까. 어쩌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누군가의 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손과 발, 상체와 하체, 위로 아래로 튼실하게 엮어진 하나의 운명공동체며 그물코다. 존중하고 배려하며 연민하고 동정하며 나아간다면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 사람 살맛 나는 세상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손을 놓치지 말고 끝내 함께한다면 그날은 분명히 온다. 우리는 미신과 우상에 대한 허황된 믿음만 커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 인간에 대한 믿음이 너무 약해졌다. 양심에 따라 손과 발과 머리통조차 온전히 자유로운 나라가 펼쳐지도록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평등과 평화 넘치는 자유의 바닷가…, 우리 이젠 깨어요. 온 세상이 파도와 같이. 큰 물결 몰아쳐 온다. 너무도 가련한 우리.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 보아요.” 김민기의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당신의 손과 발을 지긋이 바라본다. “내밀어 봐요. 내가 붙잡아 드릴게요.” 오늘 우리 모두의 인사말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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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혁 사회부 기자


요즘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의 주요 관심사는 이달 중순에 있을 검찰 인사다. 그중에서도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 인사가 관심의 초점이다. 사법연수원 18·19기 중 누가 검사장에 오를 것이네,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에 연루된 의혹을 받은 민정비서관 출신 아무개 검사가 검사장 0순위네 하는 얘기가 그럴듯하게 나돈 지 제법 됐다.


승진과 인사에 유독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검찰뿐 아니라 모든 공직사회의 공통점이다. 그럴 만도 하다. 민간기업이야 일의 성과를 돈이나 스톡옵션 따위로 보상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공직사회는 그런 게 없다. 유일한 보상방법이 인사와 승진이다. 공무원들이 승진에 목을 매는 풍조를 무작정 탓할 것만은 아니다.



(경향신문DB)



 문제는 인사와 승진이라는 보상체계가 엉뚱하게 작동한다는 데 있다. 검찰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이 정권 들어 ‘잘 나가는’ 검사의 면면을 보면 공통점이 눈에 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소위 ‘코드수사’의 첨병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 사건, MBC ‘PD수첩’ 사건은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다. 이 정도면 수사 지휘부와 담당 검사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대검 범정기획관으로, ‘물 좋은’ 지역의 지청장을 거쳐 지검 차장으로 살뜰하게 배려했다.


요컨대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검찰 인사의 주된 기준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 해악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요즘 검사들 기개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권의 눈 밖에 나면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풍토에서 어지간한 배포 없이는 곧은 소리, 곧은 수사 하기 힘들다.


요즘 검찰 내부 게시판에 토론이 사라졌다.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의혹 수사 등 검찰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끊일 날이 없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검사는 한 명도 없다. 하다못해 시중의 여론에 항변하거나 억울함을 토로하는 글 한 줄 올라오지 않는다. 아무개 검사가 수사 방향을 놓고 ‘직’을 걸고 지휘부에 맞섰다는 유의 무용담은 옛날 얘기다. 그냥, 침묵이다.


이 침묵에는 어떤 실존의 무게도 없다. 고뇌의 냄새도 맡을 수 없다. 비장함도 찾을 수 없다. 비루한 직장인의 생존본능만 느껴진다. 적당한 체념과 보신주의가 검사들의 정신적 풍경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까짓 바깥의 평판이야 어떻건 검사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안온히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승진과 서열경쟁으로 줄세워진 이 ‘자족적 세계’가 지금은 매우 견고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족적 세계’의 공고화는 검찰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것일 수 있다. 


외부의 험악한 평판보다는 그런 평판에 무신경한 검사들의 반응이야말로 검찰의 근본적 위기를 나타내는 징후일지 모른다. 시인 이성복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했는데, 지금 검찰의 상황이 꼭 이와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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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세 전면 무상보육 정책이 지난 3월부터 시행된 지 몇 달 만에 중단 위기를 맞았다. 자치단체별로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올해 무상보육 예산이 곧 바닥나기 때문이다. 그냥 뒀다가는 ‘보육대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는 처음부터 예상됐지만 정부는 그동안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나라 살림을 꾸리는 기획재정부는 그제 자치단체에 부족한 예산을 지원하기는커녕 과거처럼 선별적 지원 방식으로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민은 물론 정치권의 거센 반발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서둘러 부족한 예산 확보 등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자치단체도 중앙정부의 지원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체적으로 재원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경향신문DB)


0~2세 전면 무상보육 제도가 중단돼서는 안되는 이유는 먼저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면에서 찾을 수 있다. 전면 무상보육은 지난해 12월 새누리당이 올해 예산안을 기습 통과시키면서 보육비 지급 대상을 종전 소득 하위 70% 가정에서 모든 가정으로 확대하면서 이뤄지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국가가 5세 이하의 유아 보육과 교육을 책임지고 지원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새누리당이 보육 지원 대상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확보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데 있다. 정부 예산에 자체 예산을 더해 보육비를 지급하는 자치단체들은 그동안 수차례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정부는 뒷짐을 지다시피 했을 뿐이다. 정부 정책이 수개월 만에 바뀐다면 어느 국민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참다운 복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선별적 복지 제도가 보편적 복지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면에서도 전면 무상보육 정책은 유지돼야 한다. “국가가 재벌의 아들과 손자에게도 보육비를 대줘야 하느냐”면서 전면 무상보육에 반기를 든다면 복지 사회 실현은 요원할 뿐이다. 국가의 복지 혜택은 누구나 누리도록 하면서 필요 재원은 능력에 따라 세금을 더 걷는 방식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 학교 무상급식 논쟁을 거치면서 어렵게 형성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허물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전면 무상보육 제도를 선별 지원 방식으로 바꾸려는 발상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자치단체와 함께 전면 무상보육에 필요한 예산 확보 대책을 마련해 부모의 불안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보육대란’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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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디지털뉴스 편집장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7개월여 남았다. 여당 대선 후보는 8월20일 정해진다. 집권당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임기말 정부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 시집살이 며느리 모드로 들어가는 게 상례이다.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설 처지도 못된다. 말발도 안 먹히거니와 남은 몇 달 동안 여당에서 “탈당하라”는 말 안 들으면 다행이다. 내리막길은 더 험하고 미끄러운 법이다.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와 내곡동 사저 특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형님 비리는 대선자금으로 치닫고 한·일 군사정보협정 책임론까지 불거졌다. 어느 돌부리에 차일지 모른다. ‘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이 있을 때가 그리울 것이다. 그 일심회 멤버들은 감옥소에 들어가 있다. 누구도 시간 앞에선 부복한다. 권력의 시계라고 더디게 갈 리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주요 국정 성과로 위기 극복, 국격 제고, 소외계층 배려, 농업개혁과 노사관계 선진화 같은 4개 항목을 열거해놓고 있다. ‘국격 제고’란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격을 높였다, 세계 6번째 원전수출국으로 도약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 영토가 세계 3위로 넓어졌다는 자랑이 걸려 있다. ‘소외계층 배려’를 보면 복지지출이 역대 정부 최고로 확대되었고, 대학 등록금 인상을 억제했다,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공로가 주르르 열거돼 있다. 무슨 국제회의를 치르면 수십조원의 경제효과가 있을 거라던데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하나하나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경향신문DB)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향해 그토록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월 15만원의 노령연금으로 살아온 60대 부부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유서의 글이다. 시민 4명 중 3명이 가계부채에 시달리며 중산층에서 추락하고 있다. 고등학생 6명 가운데 1명은 성적 비관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자식 세대부터 부모, 그 위의 노년층까지 얼굴에 그늘이 사라지지 않는 나라다. 


청와대의 치적은 딴 나라 얘기 같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라고 하지만 고소득층 20%를 제외한 나머지 80%는 2만달러 이하다. 일정 수준 이상에선 소득이 높아진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도 중요하지만 분배 구조를 개선해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이 나아지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이다. 


국가별 행복지수라는 게 있다. 전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와 기대수명, 환경오염 지표 등을 평가해 점수로 환산한 것이다. 중남미의 소국 코스타리카는 2009년에 이어 올해도 1위를 차지했다. 국민소득은 1만2000달러대로 우리보다 떨어지지만 주변의 중미 5개국에선 가장 높다. 민주주의가 꽃피는 나라, 미주 대륙의 스위스, 중남미의 우등생, 인권공헌 국가, 에코투어리즘의 메카…. 코스타리카를 설명하는 수사들은 찬란하다. 


엊그제 발표된 우리나라의 올해 삶의 질 행복지수는 63위였다. 한국 축구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보다 떨어지는 순위다. 13억 인구를 먹여살리는 중국(60위)보다 뒤에 있다. 한국인의 삶이 답답하고 불만투성이라는 것은 여러 지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자살률, 부패율, 임금격차, 교통사고율…. 좋지 않은 것은 죄다 세계 1~2위를 달린다. 주요 산업은 세계 선두권이고, 삶의 조건도 선진국에 진입했다지만 서민들은 고달프다. 최상급 ‘삶의 조건’과 최하급 ‘삶의 질’이 병존하는 변종 공동체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개인의 삶에 멍울이 들면 사회도 병들게 마련이다. 부의 대물림이 교육 수준의 격차로 이어지고 그런 것들이 뭉쳐 경제·사회적 위상이 달라지는 현상은 갈수록 뚜렷해진다.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대한민국 80%의 집에서 한숨과 비명이 터져나오는데 과두(寡頭)집단이 함께 살자거나 손을 내밀었다는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푸라 비다(Pura vida).’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인사말이다. ‘순수한 인생(Pure life)’이란 의미다. 아등바등하지 않고 고만고만한 것이 좋다는 것이다. 코스타리카 제일의 관광지인 몬테베르테에 가는 울퉁불퉁한 산길을 포장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무산됐다고 한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찾아와 자연이 훼손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생돈 22조원을 들여 강토의 젖줄인 4대강에 콘크리트 반죽을 하고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이 정부와는 확연히 비교된다. 


어느 나라 어느 대통령치고 국민이 못되라고 정치를 펼치지는 않을 터인데, 서민의 삶에서 활력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게 MB정부의 현실이다. 올해 대선의 최대 화두로 복지와 민생이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런 우울한 현실의 반동(反動)이다. 국격 타령도 내 배가 부르고 내 등이 따스워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코스타리카류(流)는 민주주의, 즐거움, 기쁨, 행복을 한 데 묶는 개념이라고 한다. 한류는 K팝에 뭘 묶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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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


 

지난 6월19일 있었던 최장집 교수의 국회 민생포럼 강연 메모를 들여다보면서 난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비효율적인 집단지도체제의 문제 등 적절한 지적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민주당이 20세기 낡은 대중정당 모델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매우 복고적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최장집 교수가 정당정부론이라 부르는 이 모델은 노동자 계급 등 이해관계자에 뿌리내린 바탕 위에 일관된 강령과 규율을 추구하는 당원과 정당 활동가들이 지배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미 한국의 정치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진민 교수 등이 이 산업화 시대의 유물인 대중정당 모델을 폐기하고 21세기 모바일 사회에 조응하는 개방적인 유권자 지지층 중심의 정당 모델을 제기해온 것이 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비슷한 취지에서 나는 최근 ‘동향과 전망’ 학술지에서 시민 개입주의 시대에 조응하는 시민 네트워크 정당론으로 이론화하였다. 한국 진보정당의 롤 모델 중 하나인 프랑스 사회당도 좀 더 시민에게 개방성을 강화하면서 최근 집권에 성공한 바 있다.


최장집 교수 강연, 2012 민주당의 과제 (경향신문DB)



물론 정당 실패를 극복하고자 하는 석학의 수십 년간의 이론적 고투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하지만 핵심은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이다. 광범위한 시민의 개입성을 증가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전통적 계급 기반의 정당 엘리트 모델을 다시 시도하자는 것은 정당을 영원히 협소한 틀에 가두고 부단한 실패를 반복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과거 닫힌 엘리트 모델의 삼성과 보다 개방적 플랫폼의 애플 중 누가 더 강했는가를 생각하면 답은 자명하다.


그가 강연에서 강한 어조로 모바일에 친숙한 그룹의 이념성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기이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가 꿈꾸는 노동자 계급 기반의 대중정당이야말로 그가 경계하는 이념적 경직성의 정당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 진영 대신 권영길을 지지하는 층으로 정당의 기반을 바꾸면 이 경직성이 해결되는 걸까? 그의 경계심과 정반대로 모바일에 친숙한 청년세대와 자유주의 성향의 유권자층 결핍이야말로 오히려 민주당 위기의 핵심이자 집권을 위해 사활을 걸고 구애해야 할 대상이다. 물론 미국의 무브온과 민주당 관계처럼 전투적인 자유주의 그룹과는 상호 간에 적절한 긴장과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최 교수의 사회경제적 뿌리에 근거한 정당의 꿈을 가장 잘 달성하는 방법도 모바일 정당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이 노동자 진영에 지금처럼 신경 쓰는 경우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이제 한국노총 등이 모바일 투표를 통해 수만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모바일 정당을 그저 단순 여론조사 만능주의로 오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디어 엘리트와 여론조사가 지배하고 시민이 관객으로 전락하는 청중 민주주의 시대는 그가 주장하는 당 활동가 지배 시대로의 퇴행이 아니라 시민의 능동적 개입주의 시대로 극복해야 한다. 눈을 들어 세계를 보면 오늘날 앞서가는 정치세력들은 모바일 등 21세기 기제를 오프라인과 결합하여 지지자들과의 심층적 정책과 전략 토의의 실질적 민주주의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이 잠재력을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정당 활동가와 전문가가 강령을 만드는 20세기 방식에 익숙한 이들을 우리는 엘리트 보수주의자라 부른다.


지금 민주당에 꼭 필요한 것은 당 외부의 광범위한 시민 지지자들에게 꿈과 매력을 보여주며 이들을 결집할 애플식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성공적으로 주도하는 자가 몇 달 후 대통령이 될 것이며 반면에 이에 실패하면 퇴행적인 한국식 닉슨 정부가 탄생할 것이다. 이제 20세기 모든 낡은 교과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21세기 교과서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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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국립대 통폐합 논쟁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끝난 유로 2012 축구대회가 생각난다. 우승한 스페인에는 골잡이가 따로 없었다. 결승전의 네 골은 선수 넷이 사이좋게 나누어 넣었다. 한국 대표팀이 좋아하는 원톱이나 투톱 같은 건 아예 두지 않고 미드필더들이 모두 공격에 가담한다. 끊임없이 서로 공을 주고받으면서 골문을 향해서 뛴다. 상대 수비가 에워싸도 정확한 패스로 따돌리고 골을 넣는다.


스페인의 단신 미드필더 사비나 이니에스타는 도움주기의 달인이다. 그들은 긴 패스도 하지 않고 멀리서 중거리슛도 쏘지 않는다. 손발을 맞추어서 골문 앞으로 달려갈 수 있는데 개인 플레이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메시도 그들이 있기에 펄펄 난다. 그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만 가면 맥을 못 추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원톱이나 투톱을 두고 고전적인 경기운영을 하는 자국 대표팀에서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것이다.



유로 2012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선수들이 챔피언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경향신문DB)



 국립대 통폐합 논쟁에서 핵심 쟁점은 축구의 원톱과 같은 서울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반대쪽에서는 통폐합은 서울대를 없애는 것과 다름없고, 1등을 추방하고 나라를 3류로 만들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서울대 캠퍼스는 남지만 현재 형태의 서울대는 사라진다. 서울대가 없으니 서울대에 들어가는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1등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이런 비판 앞에서 통폐합 제안자들은 서울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고 어정쩡하게 변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골잡이 없는 축구경기를 상상하지 못하듯 1등 대학 없는 대학교육도 상상을 못하는 것 같다. 1등이 없으면 어떠냐는 생각은 거의 못한다. 제안자들의 변명도, 국립대가 통폐합되면 몇몇 사립대가 1등이 되리라는 비판도 그런 상상력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도 축구는 좀 낫다. 두꺼운 허리 없이는 골잡이도 힘을 쓸 수 없음을 알고 있으니.


국립대 통폐합안의 핵심 내용은 대학을 평준화하자는 것이다. 그 첫단계가 통폐합을 통해 평준화된 국립대이다. 대학이 평준화되면 중간층이 두꺼워진다. 허리가 강해지는 것이다. 허리가 강하면 웬만한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균형이 잘 잡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발함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머리만 크면 불균형도 커지고 약한 공격에도 잘 넘어진다.


중유럽과 북유럽 대학은 대부분 국립이고 대체로 평준화되어 있다.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이 그렇다. 반면에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한국 등은 대학에 확고부동한 서열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 이들 국가를 사회적 균형이나 경제적 건전성이라는 시각에서 비교해보면 평준화 국가가 더 우위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나라들에서는 노벨상 같은 1등상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에 비해 미국이나 영국에는 하버드니 케임브리지니 하는 1등 대학이 즐비하다. 노벨상 수상자도 쏟아져 나온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그 상을 꽤 받아간다. 그러나 1등은 많지만 허리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서인지 우리나라 형편은 모두 좋지 않다. 


(경향신문DB)


스페인 대표팀에는 스트라이커가 없다. 여러 명이 정교한 패스를 하며 공격을 펼치는 스타일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1등이 방해가 되어서 추방한 셈이다. 그래도 그들은 1등을 앞세워 공격을 펼친 팀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했다. 국립대 통폐합은 바로 우리나라 대학을 스페인 대표팀처럼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도 1등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려대나 연세대 같은 사립대를 원톱으로 내세우려 할지 모르겠다. 그걸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되기 어려울 것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부할 수 있는 개방적인 국립대, 국가에서 등록금을 전액 부담해주는 국립대를 마다하고 폐쇄적이고 값비싼 사립대를 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우승으로 원톱이 없는 축구의 새 시대가 열렸다. 우리 대학교육에서도 국립대 통폐합이 성공적으로 도입되어 원톱이 사라지고 중간이 두꺼워지는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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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옛날 고려 배신 이인임의 후사인 이성계는….”


1394년(조선 태조 2), 명나라 사신이 조선을 위해 가져온 축문의 내용이 해괴했다. 이인임은 고려말 대표적인 친원파였고, 다름 아닌 이성계가 축출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성계의 아버지=이인임’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조선은 즉각 명나라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이것이 200년 가까이 조선의 속을 까맣게 태우는 외교현안이 될 줄은 몰랐다. 


1402년(태종 3), 조선 사신 조온은 명 태조의 유훈인 <황명조훈(皇明條訓)>을 보았다. 경악했다. ‘이방원의 종계(宗系)가 이인임의 후손’이라는 내용이 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조선 조정이 또 발칵 뒤집혀졌다. 그로부터 110여년이 지난 1518년(중종 13), 조선 사신 이계맹은 명의 행정법전인 <대명회전(大明會典)>(사진·서울대도서관 제공)을 보고 억장이 무너진다. “이인임·이성계 부자가 (공민왕-우왕-창왕-공양왕 등) 고려왕 4명을 시해하고 나라를 찬탈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긋지긋한 왜곡이다. 충효를 내세운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명나라의 의도는 신생국인 조선의 ‘길들이기’였다. 불안했던 요동(遼東)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막이었던 것이다. 졸지에 ‘을’이 된 조선은 ‘갑’(명나라)을 상대로 힘겨운 외교전을 벌여야 했다. 


명나라는 어지간히 조선의 애간장을 녹였다. 예컨대 ‘종계’의 개정만 허락하고 ‘4왕 시해’는 의도적으로 개정에서 누락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1588년, 조선의 주장을 담은 <대명회전> 개정판의 반포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선조는 “완성된 책을 가져오라”며 사신 유홍을 보냈다. 명나라는 “황제가 아직 책을 보지 않았으므로 줄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유홍은 ‘피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애원’(泣血궤請)해 겨우 책을 받아냈다. 그러나 명나라는 끝내 <대명회전>의 본문은 손대지 않았다. ‘명태조의 유훈’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본문’이 아닌 ‘부록’에 조선의 주장을 상술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200년 가까운 처절한 외교전은 ‘절반의 성과’로 끝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선조는 이 정도로도 “이제야 금수(禽獸)의 지역이 예의(禮義)의 나라로 변했다”고 기뻐했다. 과연 ‘저자세, 굴욕외교’로 점철된 194년간의 외교전이었다고 돌팔매질을 던져야 할까. 아니 주변국의 집요한 역사왜곡에 속수무책인 작금의 외교와 견주면 그래도 노력은 가상했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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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어제 마침내 대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이 전 의원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는 때를 놓쳐도 한참 놓친 뒤에야 이루어졌다. 지난 4년간 이 전 의원에 대한 조사 요구가 수없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때마다 “조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일축하거나 간단한 서면 조사로 면죄부를 주지 않았던가. 그 결과 로비의혹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정도로 사건이 커진 뒤에야 마지못해 수사에 착수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됐다. 검찰은 솔로몬저축은행 등으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전 의원을 피의자성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뒤 정치자금법 위반 또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 전 의원의 검찰 소환은 역대 정권의 대통령 형제나 친인척 비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구설과 의혹은 그것과 차원이 다른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위세를 업고 이권에 개입하거나 호가호위하는 수준을 넘어서 국정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그렇다. ‘만사형통(萬事兄通)’ ‘상왕’ ‘영일대군’ 등의 별명이 말해주듯이 그 범위가 전방위적이고 그 힘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것처럼 세간에 인식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한나라당 소장파 55명이 연명해 요구한 불출마 요구를 거부하고 국회에 입성한 뒤 온갖 파동과 의혹의 배후에 늘 이름이 올랐던 것이다.

 

부축받는 이상득 전 의원 ㅣ 출처:경향DB

우리는 정권 초기 ‘한나라당 사태’ 때부터 수도 없이 이 전 의원의 자중을 요구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책임을 묻기도 하고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최고 권력자의 혈육이 국정에 개입하고 권력을 행사할 때 어떤 불행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사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의원은 자중하지 않았고 아무도 견제하지 못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침묵했고 검찰은 외면하거나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이번 ‘형님’의 검찰 출석을 놓고도 청와대는 일언반구 없다.

검찰 조사는 이 전 의원이 솔로몬저축은행, 미래저축은행, 코오롱그룹 등으로부터 받은 금품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해야겠지만 단지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대선자금 문제 등을 비롯해 그간에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한 조사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형님 사건’을 대형사건으로 키운 데는 검찰도 책임이 있다. 현 정권 임기 내에 가볍게 털고 가겠다는 정권의 의도에 맞춘 ‘맞춤형 수사’가 될 것이라는 야당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개인비리 사건이 아닌 권력형 비리와 국정농단 사건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만사형통’의 대가는 ‘만사법통(萬事法通)’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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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본격적으로 내년 예산 짜기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는 6월말까지 정부 부처별로 예산 요구안을 모두 받았다. 올해 예산과 비교하면 6.5%(21조2000억원) 늘어난 346조6000억원이다. 이를 토대로 9월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해 국회에 낸다. 정부 예산은 한 나라의 살림살이를 운영하기 위한 계획이다. 어떤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올해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고 내년은 정권 교체 첫 해다. 어느 때보다 복지 예산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 대한 요구가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돈 나갈 곳은 늘어나는데, 들어올 돈은 줄어드는 게 문제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로 낮춰 잡았다. 성장세가 내림세로 돌아서면 세수는 줄어든다. 개인 소비가 줄고 기업이 내는 법인세가 줄기 때문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2년 예산안 발표 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정부가 잡은 내년 예산 편성 기본 방향은 균형 재정 회복과 경기회복 뒷받침이다. 4월에 만든 예산 편성 지침에 있던 성장-일자리-복지의 선순환 구조가 사라지고 대신 경기회복이 들어갔다.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정부는 내년 균형 재정 목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다. 균형 재정은 세입과 세출의 균형이 맞아 적자가 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균형 재정을 회복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현 정부 들어 지난 4년 동안 계속된 대규모 재정적자로 국가채무가 49%(146조원)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형 재정 목표에 무리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부가 본예산 기준으로 균형 재정을 이룬 것은 2003년 한번뿐이다. 균형 재정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좋지만 경기 침체를 보면서 손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무리하게 두 마리 토끼를 잡기보다 경기회복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한다.

내년 복지 분야 예산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사회 양극화를 줄이려면 당연히 지출을 늘려야 한다. 반면 SOC 투자는 크게 줄일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R&D) 분야도 줄이는 게 좋다. 물량을 투입한다 해도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꼭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우선 순위를 따져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업은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각 부처 요구안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정부의 예산 편성은 단순히 재정을 분배하는 차원이 아니다. 어떤 가치에 따라 정책을 만드는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다. 균형 재정을 당분간 늦추더라도 경기 회복에 방점을 찍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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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엊그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 대해 큰 오보를 했다. 동아는 1면 기사에서 문 고문이 “2003년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및 당시 청와대 관계자와 함께 만난 자리에서 금융감독원 담당 국장에게 부산저축은행 검사를 완화해 달라는 전화를 건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문 고문은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있었다. 동아는 당시 문 수석이 “부산저축은행 검사를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검찰은 이 전화가 청탁성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혐의 처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기사 제목은 “문재인, 靑(청와대)서 대주주 앞에 두고 금감원에 전화”였다. 누가 봐도 문 고문이 청탁전화를 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문 고문은 즉각 트위터를 통해 “(저축은행 관련 로비설을 유포한) 이종혁 새누리당 전 의원을 고소하고, 고소인 쪽 참고인 조사를 받았는데, 동아일보가 거꾸로 저를 피의자로 다뤘다”고 비판했다. 부산지검도 이날 “문 고문 쪽의 명예훼손 고소와 관련해 사실 확인을 위해 지난달 문 고문이 고소인 쪽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고 이를 확인했다. 앞서 문 고문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부산은 지난 3월 이 전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보도가 명백한 사실왜곡이며, 문 고문 측의 사과 및 정정보도 요구가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고 본다.

 

기조연설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ㅣ 출처:경향DB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차제에 ‘아니면 말고’식 오보가 일상화한 우리 언론의 병폐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오보는 언론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란 측면도 있지만, 사실을 중시하는 이성적 논리적 접근보다는 주관과 의도를 앞세우는 태도가 이런 황당한 보도의 토양이다. 그러다 보면 마치 교통사고 조사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것 같은 터무니없는 오보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보수·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문 고문 쪽이 “제1야당 대선주자를 흠집내기 위한 악의적 오보”라고 했듯, 대선을 앞두고 유사한 오보사태가 빈발할 개연성은 상당히 높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언론이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는커녕 혼탁선거를 선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박원순 후보에 대한 무지막지한 색깔론을 편 것을 기억한다. 이런 것도 집단적으로 자행된 오보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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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위원

 

일주일 전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같은 재벌계 대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의무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대한항공 등 웬만한 우량 상장사의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 가족 지분보다 국민연금 지분이 더 많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의 사외이사 선임 등에 대해 적극적인 의결권 표시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재벌 오너들의 불투명 경영과 온갖 편법·탈법 문제를 해결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의 하나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라는 주장이 이미 10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얼핏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1년 전엔 곽승준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를 통해 삼성 등에 대한 견제에 나서야 한다고 발언해 개혁적 진보인사들의 찬사를 받았다.

한편 열흘 전 국민연금은 월스트리트에 이어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인 런던 시티에 사무소를 열었다. 이미 세계 4대 규모의 연기금으로 발돋움한 국민연금의 투자를 유치하려고 월스트리트와 런던 시티의 골드만삭스와 JP모건, HSBC 같은 금융회사들은 온갖 추파를 던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운용기금의 15% 수준인 해외 투자 비중을 2016년까지 20% 수준(100조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이미 런던 금융가에 위치한 HSBC 빌딩을 사들였으며 런던의 개트윅 공항, 독일 베를린의 소니센터 등 상용 부동산에도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대체자산(alternative assets) 투자도 급속하게 늘리고 있다. 대체자산 투자란 통상적인 주식·채권 투자가 아닌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국내외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투자와 부동산 프로젝트 투자, 해외 자원개발 투자 등을 말한다. 국민연금의 대체자산 투자는 2009년 말 기금의 4.5%였는데, 불과 2년 만인 2011년 말 12%로 급속히 늘었다.

 

국민연금 관리공단 ㅣ 출처:경향DB

국민연금 자산운용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위탁 투자의 비중도 급증하고 있다. 2010년 10월 말 기준 위탁 운용자산은 74조3474억원이다. 2012년에는 국내 주식 투자의 50% 이상, 해외 투자의 90% 이상이 위탁투자될 예정이다. JP모건 같은 초대형 글로벌 금융회사부터 중규모 토종 헤지펀드 운용사와 소규모 벤처캐피털 운용사에 이르기까지 국민연금 자산을 대신 운용해주는 운용사들은 다양하다. 예컨대 국민연금은 이명박 정부가 정책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토종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산업의 큰손이다. 수익성 지상주의에 물든 국민연금이 국내외 투기자본의 후견자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월스트리트와 런던의 금융회사들에 위탁한 해외투자 기금의 일부는 유럽의 채권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예컨대 국민연금이 JP모건 또는 골드만삭스에 자산 운용을 위탁한 자금의 일부는 그리스 및 유럽 국채시장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그리스 국민들에게 ‘긴축 재정을 하라’ ‘복지를 줄여라’ ‘공무원을 해고하라’ ‘말 안 들으면 신용등급을 깎아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국제금융자본 세력의 든든한 돈줄 역할을 하고 있다. 과연 이런 국민연금에 경제를 민주화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어내는 이들을 위한 든든한 후견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재벌개혁도 마찬가지다. 과연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투자자 이익 극대화와 수익성 지상주의 원칙을 접을 수 있을까? 국민연금이 과연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주총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협력업체 하청단가의 인상에 노력하는 사외이사의 선임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국민연금은 이들 회사에 투자한 국내외 펀드 매니저들과 재테크 개미투자자들과 협력해 이들 회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성과 주가를 높이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며, 그런 사외이사의 선임을 위해 분투할 것이다. 그런 개혁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 투기화이다. 국민연금 주주권이 수익성만을 최고 가치로 행사되면 이윤을 위한 구조조정과 대량해고가 정당화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국민연금더러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우량 기업들에서 재벌 오너들 대신 대주주 역할을 하라고 주문한다. 일종의 연기금 사회주의론이다. 그렇지만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는 회사에 손실이 발생하고 주가가 떨어지는 시기에도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없다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한다. 과연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에 그런 위험한 짐까지 짊어지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연기금 사회주의론은 일종의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 투기적이고 위험한 국제금융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적립식 국민연금을 선진국처럼 부과식 연금으로 환골탈태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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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 서울 노원고 3학년


지난달 5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이벤트홀에서 ‘쿨비즈 패션쇼’가 열렸다. 고유가 시대 에너지를 절약하고 업무효율 향상을 위해 정장과 획일화된 복장에서 간편하고 시원한 복장으로 바꾸는 ‘쿨비즈’ 운동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였다.

나는 이 행사에 시민 모델로 참가했는데 무더운 여름날 에너지 절약과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학교에서도 반바지 등교를 허용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환경의 날인 지난 6월 5일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열린 쿨비즈 패션쇼에 참가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일반인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학생들이 반바지를 입고 학교생활을 하면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도 많은 이점이 있다. 첫째, 학생들이 반바지를 입음으로써 몸의 체온이 내려가 에어컨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시원한 복장으로 인해 학생들이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학습능률이 향상된다. 여름철 긴 바지를 입을 경우 쉽게 땀이 차게 되고, 그 결과 불쾌지수도 상승해 수업이 산만해지기 쉽다. 반바지를 입으면 이런 점들을 개선할 수 있다. 셋째, 여학생들이 쉽게 자전거를 타고 등교할 수 있다. 학교와 어중간하게 떨어진 위치에 사는 많은 학생들이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서 고민한다. 그래서 상당수의 남학생들이 자전거를 이용해 등교한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치마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해서 등교하기가 어렵다. 반바지 등교가 실현되면 이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학교는 교복의 통일성이나 단정함을 잃을까 염려할 수도 있다. 또한 당장 반바지 등교를 현실화하기 힘든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안을 찾으면 된다. 각급 학교에는 학년별로 통일된 체육복 반바지가 있다. 따라서 위에는 생활복을 입고, 아래는 체육복 반바지를 입는다면 통일성을 해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또 대부분의 학교가 여름에는 교복 대신 편하고 시원한 상의 생활복을 권장하듯 반바지 생활복을 단체로 주문해 입을 수도 있다. 이처럼 반바지 등교를 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학생들의 편의와 시원한 여름나기, 에너지 절약을 위해 학교에서도 ‘쿨비즈’를 적극 도입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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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혁 | 서울지방경찰청 폭력계장


이모씨는 2003년부터 만두가게를 하고 있다. 개업하고 얼마 안돼 술에 취한 한 남자가 찾아와 여주인이 혼자 영업하는 것을 보고 “야, 냉면 내놔. 장사 오늘만 할 거냐”며 의자를 걷어차고 행패를 부렸다. 손님들은 모두 빠져나갔고 이씨는 보복이 두려워 음식을 제공했다. 이 남자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시로 찾아와 욕설과 협박을 일삼고 식탁을 뒤엎어 손님들을 쫓아냈다. 돈을 낸 적은 물론 한번도 없었다. 신고해도 경미하게 처벌되는 사실을 알게 된 주폭은 더욱 그녀를 괴롭혔다. 주폭은 그녀의 꿈자리까지 찾아오는 공포가 되었다.

주폭에게 고통받고 있는 우리 주변 영세상인의 이야기다. 주폭의 가장 큰 폐해는 이와 같은 상습성에 있다. 지역주민들은 주폭의 상습폭행에 시달리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못하고 있어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술에 취해 저지른 범행이라며 주폭을 경미하게 처벌했던 관행이 주폭을 안하무인으로 만들고 전과만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나는 잡혀가도 금방 풀려날 사람이다” “경찰도 나를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그들이다.

 

충북 경찰과 주민들이 유흥가를 돌며 주폭 척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일각에서 주폭은 사회적 약자인데 경찰이 가혹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주폭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주폭에게 고통받는 선량한 주민들을 한번이라도 만나봤다면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습적으로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조차 못하는 영세상인·주민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고, 주폭은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한 범법자인 것이다.

서울경찰은 주폭척결을 추진한 지난 한 달여 동안 130여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모두 술의 힘을 빌려 업무방해·폭력·갈취 등을 한 자들이었다. 구속된 주폭 1명당 평균 범행건수가 13건이나 됐고 최고 143건에 이를 정도로 상습적인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런 범죄자들을 결코 사회적 약자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주폭을 엄정하게 처벌하면서도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서울경찰이 최근 서울시병원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주폭의 재활을 위한 병원치료를 돕는 것도 그러한 고민의 결과이다.

법원의 주폭 구속판단도 잇따르고 있다. 경찰이 경미한 사안을 무리하게 수사했다면 법원이 구속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술에 취했다고 형량을 감경하지 않고 오히려 가중처벌하는 방향으로 양형기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는 술의 힘을 빌려 선량한 서민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주폭이 아니라 주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우리의 영세상인과 선량한 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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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국회를 방문해 제19대 국회 개원 연설을 했다. 이 대통령의 개원 연설은 2008년 7월 18대 국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유럽발 세계 재정위기에서부터 12월 대선의 공정한 관리까지 광범위한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놨다.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현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이 대통령은 비판 여론에 밀려 체결 직전에서야 전격 중단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사태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 오전 문제의 협정을 국회에 보고한 뒤 다시 서명 절차를 밟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그럴 요량이라면 이 대통령으로선 마땅히 국회에 그 내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순서다. 개원 연설이 없었더라면 별도로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대신 이 대통령은 세계 경제위기 등을 거론하며 여기에 대처하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공동 책임론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라도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오후 개원식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혹여 이 대통령으로선 연설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잘못된 협정 절차를 질타한 것을 국회나 국민에 대한 해명이라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서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 없이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 국회와 국민에게 협정 내용을 소상하게 공개하고 설명해 오해가 없도록 조치하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협정을 비공개 처리한 과정과 이유를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국민 우롱’이라는 취지의 야당 논평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 그 진실은 청와대가 더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또 하나의 유체이탈 화법에 가까워 보인다.

이 대통령의 이런 화법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친인척·측근들의 비리가 말썽이 나자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권”이라 하고, 최근 해외 순방 중에는 극심한 가뭄을 두고 “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 모두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말해 빈축을 샀던 이 대통령이다. 무슨 사달이 나도 대책을 따지기 앞서 허탈감부터 드는 이유다. 모름지기 책임질 자세가 돼 있는 사람만 사과를 할 수 있다. 그런 자세라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책임감은 없고 군림만 하려 든 대통령의 국정운영 자세가 오늘의 사태를 자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남은 임기 7개월여가 짧지만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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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우리나라가 ‘20-50 클럽’에 가입했다는 뉴스가 최근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다. 세계에서 7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와 총인구수 5000만명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세계에서 7번째로 잘 사는 나라가 된 것 같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양적인 기준으로만 놓고 보아도 1인당 GDP는 아직 30위에도 들지 못했고, 인구수도 25위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몇 년 안에 그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두 지표의 교집합이라는 인위적인 카테고리를 설정할 경우, 세계 7위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20-50 클럽’은 그나마 G20나 G8 같은 실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억지로 만들어낸 일종의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자칫 국가 현실에 대한 착시를 불러올 위험성이 크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은 ‘20-50 클럽’이 그려주는 국가약진의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나라 밖을 보면 세계경제의 중심부인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경제위기라는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안으로는 저성장·고실업, 폭발적인 국가부채와 가계부채, 극심한 양극화 현상, 빠르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 다문화 사회 진입, 강력한 경제민주화 요구 등 엄청난 과제들을 안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은 국가의 약진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약화에 있다.

 

지난 2010년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 및 국제기구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과거 권위주의 시절, 우리는 강한 국가를 경험했다. 그때는 국가가 사회 전체를 통제하면서 국민을 수직적으로 동원하는 체제였기 때문에 국가의 효율성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4반세기 동안 차례로 등장한 국가리더십이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가 운영원리를 세우지 못함으로써 국민통합과 국가역량의 결집에 실패했다. 대통령의 실패다.

경제·사회적 갈등을 관리·조정·해결해야 할 정치는 정파적 이해에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극한적 갈등과 대결의 당사자로 전락하여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말았다. 국회는 신성한 민의의 전당이기는 고사하고 각종 폭력이 난무하는 싸움판으로 전락했고, 정당들은 선거를 앞두고 당명과 로고를 바꾸는 등의 신장개업으로 국민의 심판을 모면하려 드는가 하면 심지어는 공직후보 경선에서마저 불법행위가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의 실패다.

행정부는 어떤가. 관료사회는 능력과 전문성 면에서 민간부문에 압도당한지 오래이고, 정치권과 이익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공직사회의 생명인 자율성, 즉 중립성이 빠르게 약화되었다. 공인의식은 증발해버리고 공공성을 추구해야 할 관료사회는 이익집단이 되다시피 했다. 특히 군이나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들의 능력 저하와 정치화 추세는 엄정한 국법질서 및 안보라는 국가의 근간마저 크게 흔들리게 만들어 국가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관료의 실패다.

이러한 대통령, 정치, 관료의 실패가 국가의 능력을 현저히 저하시킴으로써 심각한 국가의 약화를 불러왔다. 이것이 오늘날 직시해야 할 우리의 솔직한 자화상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비관적인 견해일까.

이제 우리는 ‘20-50 클럽’ 같은 허상에 일시적으로 위로받기보다는 당면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국가능력을 키우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제19대 국회에 의석을 얻은 정당들은 물론 의원 한명 한명에게도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해결방안과 실행계획을 갖고 있는지 묻고 따져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후보들에게는 여러 가지 당면과제에 대해서 실제 어떠한 문제의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역량은 갖추고 있는지 더욱 철저하게 따져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빈약하다거나, 자신의 비전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계획이 부실하거나 역량이 부족한 후보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기는 불행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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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