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808건

  1. 11:09:01 [정동길에서]‘남산의 부장들’과 박정희 시대
  2. 2020.01.28 [여적]차등의결권
  3. 2020.01.28 비례정당과 갈등의 전략
  4. 2020.01.28 [사설]정치권, 경제 시름 ‘설 민심’ 귀 기울이기를
  5. 2020.01.24 [기고-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바란다]‘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만전을
  6. 2020.01.24 [여적]영수회담의 두 얼굴
  7. 2020.01.24 [사설]검찰 대대적 물갈이 인사, ‘권력 수사’ 굴절로 이어져선 안돼
  8. 2020.01.23 [여적]아빠 찬스
  9. 2020.01.23 [사설]국군의 호르무즈 파병을 우려한다
  10. 2020.01.23 [사설]18세 선거 허용하고 학교 선거교육 제동 걸면 되나
  11. 2020.01.23 [조호연 칼럼]아직은 조국을 놓아줄 수 없다
  12. 2020.01.21 [기고]‘호르무즈 파병 현안’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13. 2020.01.21 [사설]‘추미애 인사’ 후 검찰 내 잇단 파열음 볼썽사납다
  14. 2020.01.20 [사설]‘보수통합’에 선그은 안철수, 제3정당은 비전·정책에 달렸다
  15. 2020.01.20 [사설]조국 두 번째 기소, 이제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 가려져야
  16. 2020.01.15 [양권모 칼럼]‘철수 대 펭수’, 누가 더 정치를 잘할까
  17. 2020.01.15 [사설]협치·부동산·검찰의 ‘확실한 변화’ 강조한 문 대통령
  18. 2020.01.15 [사설]‘검찰과 대등한 경찰’, 혁명적 자기 개혁 필요하다
  19. 2020.01.15 [사설]이제 유아교육 질 높이는 발전방안 모색해야
  20. 2020.01.14 [사설]검찰개혁 입법 마무리, 촘촘한 보완 작업 필요하다

2005년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보러간 관객은 소리도 영상도 없는 검은 스크린을 수분간 견딘 뒤에야 본편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 박정희의 마지막 하루를 그린 이 영화에 대해 아들 박지만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일부 받아들여 특정 장면의 삭제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것은 영화의 프롤로그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자료화면, 에필로그인 박정희의 장례식 자료화면이었다. 재판부는 <그때 그사람들>을 열고 닫는 다큐멘터리 화면 때문에 관객이 영화 전체를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봤다. 백윤식이 김재규, 송재호가 박정희, 김윤아가 심수봉을 연기하는데도 “실제라는 인식을 심어줄 소지가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보수세력의 비난은 더욱 극심했다. 마치 <그때 그사람들>이 신성모독이라도 저지른 듯, “역사와 우리 자신에 대한 모멸감”(동아일보), “영화역사에 대한 실례”(조선일보)라고 비판했다. 

제작진도 논란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때 그사람들>의 제작 과정은 비밀에 부쳐졌다. 제작자 심재명은 통화에서 “조심했다. 김재규 편을 들거나 박정희를 비난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불경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런 시도, 이야기들을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였다”고 말했다. 

제작할 때부터 영화가 신문 문화면이 아니라 사회면에서 다뤄지길 원하는 제작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가 영화 외적인 이슈에 휘말리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발생하고, 흥행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그때 그사람들>이 낸 사회적 소음의 크기에 비교하면 흥행 성적은 좋지 못했다. 

‘남산의 부장들’ 속 한 장면. 사진제공_쇼박스

15년이 흘러 같은 소재를 다룬 <남산의 부장들>이 설날 연휴를 앞두고 개봉했다. 단, <그때 그사람들>이 겪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김재규, 박정희라는 이름 대신 김규평, 박통이라는 배역명을 사용했다. ‘박통’은 박정희의 특징적인 귀, ‘전두혁’은 전두환의 머리 모양을 그대로 따왔으면서도 이름을 달리 붙인 뒤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뗀다. <그때 그사람들>이 권력자를 향한 이죽거림이 진득한 수작 블랙코미디였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개성 있는 캐릭터들에 의지하는 진중한 스파이물에 가깝다. 


이제 박정희는 학문적 평가,

예술적 해석, 유희의 대상이다

박정희 시대의 추억으로

정치적 열정에 불붙일 수 없다

박정희 시대를 청산하자며

유권자를 설득할 수도 없다

역사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15년 사이 달라진 것은 영화 분위기만이 아니다.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도 크게 다르다. <남산의 부장들>의 영화적 재미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이 영화를 법정에 끌고가려는 사람은 아직 없다. 신문 사회면에서 다룰 일도 없다. <남산의 부장들>은 동 시기 개봉작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며 조용히 흥행하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이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도 아니다. 영화 속 박정희 청와대는 독재정권 말기의 썩은 내를 풍긴다. 5·16 초기 젊은 군인의 이상 같은 것은 간데없고,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다. 부하에게 일을 믿고 맡긴다고 했다가, 부하가 일을 하고 나면 왜 그리했냐고 타박한다. 영화 속 박정희는 대통령은커녕 작은 조직의 팀장으로도 부적격인 인물이다. 

박정희의 생물학적 후손이자 정치적 후계자였던 박근혜는 대통령 재직 시절 ‘콘크리트 지지층’을 보유하는 행운을 누렸다. 여느 정권들처럼 박근혜 정부도 크고 작은 실수와 무능을 노출했지만, 지지율이 30%대 이하로 곤두박질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권은 치명상을 입었고, 박근혜는 탄핵과 구속이라는 불명예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도 광화문광장에는 박근혜의 무죄를 주장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떠돌지만, 그들이 다시 사회의 주류가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와 그의 유산에 대한 평가가 일단락된 시기에 나온 영화다. 이제 박정희는 학문적 평가, 예술적 해석, 엔터테인먼트적 유희의 대상이다. 박정희 시대의 추억으로 정치적 열정에 불붙일 수 없고, 박정희 시대를 청산하자며 유권자를 설득할 수도 없다. 역사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남산의 부장들>의 조용한 흥행은 이제 우리가 박정희와 그 유산을 차분하게 평가할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너무나 자주 인용되는, 그러나 여전히 현명한 헤겔의 말을 생각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녘에 날개를 편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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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뉴질랜드계 자산운용회사인 소버린과 (주)SK가 경영권 분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른바 소버린 사태다. 당시 소버린은 SK 주식을 싼 가격에 매집해 14.99%의 지분을 확보했다. 단일주주로는 최대주주로 등극한 소버린은 그해 11월 이사진 총사퇴, 재벌 구조 해체, 최태원 일가의 퇴진 등을 요구했다. SK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 확보에 나섰다.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경영권 확보에 실패한 소버린은 2005년 7월 SK 주식을 모두 외국 투자기관에 팔았다. 매각차익은 1조원에 가까웠다. 이를 계기로 외국계 투기자본의 ‘먹튀 방지책’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차등의결권이란 ‘1주 1의결권’ 원칙에 예외를 인정하여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경영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여 적대적 인수·합병(M&amp;A)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주인 포드 집안이 소유한 지분은 7%이지만 차등의결권에 따라 4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하면 1주에 2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차등의결권을 채택하고 있다. 문제도 있다. 차등의결권은 경영진의 잘못을 견제할 주주들의 권한과 감시를 약화시킬 수 있다. 경영진의 방패막이로 전락해 기업소유주, 대주주의 모럴해저드만 불러올 위험성도 있다. 이럴 경우 피해는 주주의 몫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일 총선 2호 공약으로 ‘벤처 4대강국 실현’을 내걸면서 창업주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로 했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주주 동의를 거쳐 창업주에게 1주당 의결권 10개 한도의 주식 발행을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벤처기업에 안정적인 경영권을 보장해 기업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복수의결권 주식은 현행 법제하에서도 발행 가능하다. 차등의결권 허용이 소수 주주의 권익 침해는 물론 경영세습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차등의결권을 허용한 이유를 벤처인들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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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제도화된 갈등이다. 그리고 갈등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 없는 갈등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우왕좌왕하다가 뒤통수 맞기 십상이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갈등 전략이 필요한 영역 중 하나가 비례정당이다. 자유한국당은 공언했던 대로 비례정당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이루어진 조사들에 따르면 기존의 정당 지지율을 적용해서 한국당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서는 한국당 후보를 찍고 정당투표에서는 비례정당을 찍는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당의 실질적 의석은 지금보다 10석 이상 늘어나고 1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게임이론의 세계적 석학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셸링이 쓴 <갈등의 전략>이라는 책을 보자. 어떤 경우에는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누구나 암묵적으로 합의하는 균형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자. 전쟁과 이산의 경험이 아직 생생하던 197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은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혹시라도 또 한 번의 전쟁이 일어나서 가족이 흩어지게 되면 나중에 어디서 만날까? 정답은 서울역 시계탑 앞이다. 그 당시에는 서울역 시계탑이야말로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서울에서 가장 ‘현저한’ 랜드마크였으니까. 서울이 아니라 뉴욕이라면 그랜드 센트럴 역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1부터 4까지 번호가 붙어있는 똑같이 생긴 네 개의 상자가 있다. 두 사람이 게임에 참여하는데, 상대방과 의논할 수 없는 상태에서 둘이 같은 번호를 고르면 각각 10만원의 상금을 받고 다른 번호를 고르면 빈 손으로 돌아간다. 몇 번을 고를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만약 다른 상자는 흰색이고 1번 상자만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상자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1번 상자는 일종의 시그널이 되고, 두 사람은 동시에 1번을 고를 가능성이 많다. 소위 ‘셸링 포인트(Schelling point)’라고 하는 균형점이다. 그런데 셸링 포인트는 문화적 맥락에 의존한다. 만약 남들과 다른 것은 불행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널리 퍼진 사회라면 둘은 1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1번은 아니다”라는 공통의 인식을 가질 수도 있다.

한국당에 비해 민주당은 비례정당을 창당하기가 훨씬 어려운 입장이다. 만약 한국당만 비례정당을 창당한다면 마치 빨간색의 1번 상자처럼 하나의 시그널, 즉 셸링 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표를 모아주는 시그널이 될까 아니면 최소한 한국당은 아니라는 시그널이 될까. 유일한 빨간 상자를 좋게 볼 것이냐, 나쁘게 볼 것이냐의 문제이다. 

앞에서 한국당에 유리한 시나리오를 검토했으니 이번엔 반대의 시나리오를 보자. 우선 선거법의 빈틈을 이용해서 위성정당을 통해 표를 모으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고 규칙위반이다. 일부 악덕 재벌의 위장 계열사나 조세회피처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선거법 개정을 막기 위해 한국당이 동원했던 알바니아나 베네수엘라 등의 사례는 선거법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당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들 국가에서 위성정당으로 인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력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위성정당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독일이나 뉴질랜드는 어떻게 된 일일까. 알바니아나 베네수엘라는 정치 후진국이어서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는 정치세력이 용납되고, 독일이나 뉴질랜드는 정치 선진국이어서 그런 세력은 응징을 당하기 때문이다. 빨간 상자는 알바니아나 베네수엘라에서는 표를 모으는 시그널이고 독일이나 뉴질랜드에서는 정치적 자살의 시그널이다. 알바니아나 베네수엘라 사례는 선거법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려고 드는 한국당이 알바니아나 베네수엘라 수준의 정당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의당에 표를 모아주는 것이다. 실제로 새해 들어 이루어진 여론조사들을 보면 앞에 소개한 작년의 조사들과는 달리 한국당의 의석은 오히려 줄고 정의당이 약진한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선거법 개정에 동참한 세력들이 공동으로 지분 출자를 하는 공동 비례정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범민주 혹은 다당제의 가치하에 연대할 수 있어서 한국당의 비례정당이 가지는 정치도의적 문제로부터 자유롭고, 그 자체가 하나의 소규모 연정 실험이 될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한국당의 ‘빨간 칠’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 시그널이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든 야든 갈등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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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났다. 여야 정치인들이 전하는 설 연휴 민심을 요약하면 “경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이 느끼고 있는 바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라고 발표했다. 1980년 석유파동,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견될 정도다. 벌써부터 정부가 제시한 올해 성장 목표인 2.4%를 달성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체감 경기가 어렵기만 한 시민들에게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정부 발표는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더불어민주당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서민경제, 체감경기는 악화한 것 같다. 중도층의 정치 불신이 심각하다. 불안하다”고 했다. 

가족과의 덕담은 잠시, 걱정이 더 많았던 올 설이다. 중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공포는 확산되고 있다. 주요 현안인 검찰개혁과 바뀐 선거법은 뒷전으로 밀려날 정도였다고 한다. 국내외 상황이 어수선한데도 우리 정치권은 서로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기보다는 온통 4·15 총선에 쏠려 있다. 정작 시민들은 다가오는 총선보다 일자리 부족과 경기 침체 등 민생을 걱정하고 있는데 그들은 총선의 유불리만 저울질하고 있다. 진짜 민생을 위해 여야가 머리를 맞대달라는 게 설 민심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7일 “설 민심은 한마디로 민생 먼저였다”며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2월 임시국회를 제안했다. 야당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번 설은 총선이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느 때보다 설 밥상 여론의 향배가 향후 선거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권은 민심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호남지역의 한 의원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청년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야당도 다르지 않다. 만사를 정쟁화하는 모습에 등을 돌린 지 오래다. 

정치의 기본은 민심을 정확히 읽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기불황과 현실적 고통에 대한 하소연은 정치권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실망한 민심에 먼저 귀 기울이고 이를 토대로 해법을 제시하는 당이 총선에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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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특별법에 의한 새로운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위원회의 성과적인 활동을 위해선 위원들 간 합의정신이 지켜지고, 전문위원들의 전문성이 제대로 발휘되며, 별정직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필요한 과제가 많다. 다른 과제들도 중요도가 낮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 소명의식 차원에서 특별히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바로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5·18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미 역사적, 법률적 평가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북한군 개입설이나 빨갱이 프레임을 여전히 주장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진상규명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좌우 스펙트럼에 따른 갈등은 거의 치유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 출범하는 진상규명위원회도 최초 발포 명령자, 암매장 의혹 사건 등 조사의 진행에 따라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여지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든 공정한 조사가 진행되었다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예컨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초 발포 명령자로 밝혀지든, 밝혀지지 않든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른 반발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면 그 어떤 정치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로부터 위원회가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절차적 정당성은 20세기 중반 이후 민주주의 법치 원칙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행정절차법의 제정을 비롯해 절차적 정당성을 제고하는 각종 법제도가 구비되어 있다. 아쉽게도 이번 위원회 출범의 법적 근거가 된 특별법에는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을 명시한 조항이 없다. 물론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법적인 의미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더욱 강조할 필요성은 있다.

진상조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들과 곧 선발되게 될 별정직 공무원들이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위원회 활동의 기본 원칙으로 절차적 정당성의 당위성을 늘 환기해야 한다. 별정직 공무원 채용 후 절차적 정당성의 의미와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법학 전문가들의 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조사 활동이 시작된 이후에는 철저하게 절차적 정당성의 원칙에 따라 모든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나아가 조사의 대상이 되는 기관과 당사자들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진상규명에 제대로 협조해야 한다. 

모든 진상규명은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을 바로잡고자 하는 관계자들의 사명감이 아무리 절박하다고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이 보장되는 전제 위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 진상규명은 반대 측으로부터 새로운 거짓주장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할 일이 많고 최장 3년으로 예상되는 활동 기간 동안 격무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는 과거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기록물 60만쪽 분량을 재검토하는 것만도 겨우 몇 십명에 불과한 위원과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해야 할지 가늠이 안된다. 

절차적 정당성은 민주주의 법치 원칙에서 내용적 정당성과 함께 핵심적인 양대 기둥이다.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만 새로운 위원회의 활동이 5·18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권영태 고려대 법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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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DJ’의 얼굴이 선연하다. 1996년 총선 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단독 영수회담한 날이다. 브리핑하던 DJ는 요체만 말한 뒤 당사 지하 복집에 가서 마저 얘기하자고 했다. “칼국수 내놨는데 그것도 대통령 말 듣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YS는 소식가, DJ는 대식가였다. ‘십중팔구는 영수회담의 주도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할 때 떠올리는 컷이다.

영수(領袖). 정치조직 우두머리를 뜻하는 이 말은 오래전부터 대통령과 야당대표 회담에 붙여졌다. 한자가 다르지만, 여당 총재인 대통령(領)과 당수(黨首)의 끝말을 합쳤다고 풀기도 했다. 회담은 화전(和戰)의 고빗길이거나 국가 의제를 놓고 담판을 짓는 자리였다. 1990년 3월 DJ와 노태우 대통령 회동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공약인 ‘중간평가’를 하지 않고, DJ는 5공 청산과 광주시민 명예회복, 지방자치제를 손에 쥐었다. 1997년 대선 전 외환위기 화두로 만나 ‘대선 공정관리’와 ‘퇴임 후 안정’을 담판한 DJ-YS 회동도 정치적 갈림길에 만났다.

영수회담의 또 다른 얼굴은 ‘밀담’이다. 대통령과의 비공개 대화로 ‘야권 원톱’을 인정받던 시절엔 더 그랬다. 1975년 박정희-YS 회동은 ‘싸꾸라’ 시비도 일었다. “자네도 대통령 한번 해야지”라고 했다는 뒷말이 나오고, YS도 독대 후 부드러워지면서다. 2시간30분이나 만난 2005년 노무현-박근혜(한나라당 대표) 회동엔 ‘대연정’이 돌출했다. 탄핵설이 불거지던 2016년 11월 민주당 의총에서 거부된 박근혜-추미애(대표) 회동도 물음표가 달려 있다. 늘 여당 대표와 함께 만나던 박 대통령이 먼저 단독회담을 급제안한 이유가 뭐였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3일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민생부터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영수회담 제안 뒤 청와대에서 “구체적 내용을 물어왔다”면서다. 그는 “이 정권의 소득·성장·분배·고용 모두 KO패”라고 했다. ‘심야토론’ 논전을 원하는 걸까. 정가에선 ‘여·야·정협의체’는 줄곧 걷어차면서 정치적으로 힘든 고비마다 단독 영수회담을 요구하는 ‘저의’도 도마에 오른다. 민생 대화는 누구나 반기지만, 야권 내 ‘영수’ 위상과 밀담을 꾀하는가 싶어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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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23일 고검 검사급 검사 257명, 평검사 502명 등에 대한 검사 인사를 단행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비리의혹, 청와대 감찰 무마·선거개입 의혹 등 이른바 ‘정권 수사’를 지휘해온 일선 검찰청 차장검사들이 모두 교체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원 유임’ 의견을 낸 대검찰청 중간 간부 상당수도 전보조치됐다. 다만 이들의 지휘를 받던 부장검사 및 수사 검사 대부분은 현직을 유지했다. ‘수사팀 공중분해’라는 상황은 피하면서 현 수사의 흐름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 기대되는 인사로 평가된다.

법무부는 인사 배경에 대해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했다. 윤 총장 측근들을 대거 검찰 중심에 포진시킨 지난해 7월 인사를 바로잡는 조치라는 것이다. 수사 중심을 직접수사부서에서 형사·공판부로 이동시켜 홀대받아온 민생사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도 했다. 법무부의 인사 원칙·배경은 능히 수긍된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민주적 통제장치가 하나둘 마련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직제개편에 따른 인사는 검찰개혁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휘부의 대대적 이동으로 현안 수사의 차질이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국 수사’ ‘정권 수사’를 지휘해온 서울중앙지검 4명의 차장검사가 모두 지방청으로 발령났다. 이들 수사에 관여해온 대검 간부 상당수도 이동했다. 이들의 공백으로 관련 수사가 당분간 혼란스러울 것은 불문가지다. 수사 동력 약화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야당 및 보수언론에서 제기하듯 ‘제2대학살’ ‘수사방해’라는 비난은 옳지도 않고, 섣부르다. 이들은 수사의 지휘계통에 있기는 하지만, 직접수사를 하는 실무 검사는 아니다. 무엇보다 ‘지휘부가 교체되면 수사 결론까지 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검찰 조직에 대한 모독이다. 청와대 감찰 무마·선거개입 의혹 수사 실무팀 부장검사들도 모두 현직을 유지했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조국 수사’의 경우 수사팀장인 부장검사까지 전보조치됐으나, 이 수사는 이미 기소까지 끝난 상태다. 공소유지 등의 절차는 남아있는 검사들이 하면 된다. 이런 인사를 놓고 “수사방해” 운운하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추미애 법무장관 취임 이후 단행된 두 차례 인사과정에서 검찰의 분열, 갈등은 날것처럼 드러났다. ‘상갓집 추태’ ‘공개된 사법처리 이견 대립’ ‘수사내용 흘리기’ 등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잇따라 터졌다. 법무부와 검찰은 갈라진 조직을 다시 하나로 묶을 대책을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검찰은 지휘부 교체가 수사 굴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남은 수사와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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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는 서기 1000년경 소아시아에서 갠지스강까지 영토를 넓힌 정복군주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에 비견되는 업적으로 술탄(통치자) 칭호를 처음 얻었다. 그는 회의를 하던 중 신하로부터 “한 튀르크 병사가 집과 침대에서 나를 쫓아냈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마흐무드는 범인이 다시 찾아왔다는 말을 듣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술탄은 집 안의 불을 끄도록 한 다음 범인을 잡아 처형했다. 그리고 기도를 한 뒤 소박한 음식을 요청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술탄은 말했다. “내 아들이 아니면 그 같은 일을 할 사람이 없다. 내가 불을 끈 것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차 없이 정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대의 항의를 듣고 난 뒤 3일간 음식을 넘기지 못했다.” 술탄은 부자지간이라는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조선시대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았다. 꾸짖고 또 꾸짖었다. 무수리의 아들인 영조는 빈약한 정통성으로 대소신료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래서 아들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왕으로 크기를 바랐다. 아비의 정은 내려놓았다. 선위까지 해주었지만 얼음처럼 차갑고 혹독한 훈육을 멈추지 않았다.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상에 앉을 수 없다는 뜻이 단호했다. 아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아버지가 왕인 것이 오히려 불행의 단초였다. ‘아빠 찬스’가 아닌 ‘아빠 페널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19일 앙골라 전 대통령의 딸 이사벨 두스산투스가 ‘아빠 찬스’를 이용해 20억달러에 달하는 부를 쌓았다고 보도했다. 그가 아버지(조제 에두아르두 두스산투스)의 후광을 업고 국영 석유, 다이아몬드 회사 등과 특혜성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세습공천’ 추진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문 의장의 아들 석균씨는 4·15 총선에서 아버지 지역구인 의정부갑에서 출마하려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의 조국 사태’ 조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 의장은 ‘아들의 뜻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석균씨는 “아버지의 길을 걷되, 아빠 찬스는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이 이를 납득할지 의문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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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1일 호르무즈해협에 군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부대를 추가로 파병하는 것이 아니라 아덴만에 이미 파견한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을 호르무즈해협까지 넓히는 방식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참가하지 않고 독자적인 작전 활동으로 한국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파병 요청을 수용하면서 이란과의 관계도 고려한 절충안이다. 미군 휘하로 군을 파견하지 않는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파병의 명분이 약한 데다 향후 감수해야 할 위험요소들이 많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1월23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파병이 중동 현지의 교민과 기업의 안전, 한·미동맹 및 이란과의 관계 등을 두루 고려한 조치라는 설명에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호르무즈해협은 국내 수입 원유의 70% 이상이 통과하는, 한국에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역이다. 이곳에서의 항행 안전이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긴장 고조로 위협받는 만큼 그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유사시 2만5000명에 이르는 중동지역의 교민을 신속하게 대피시키기 위한 복안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궁여지책으로 파병을 결정한 것이라고 몰아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파병 결정으로 분쟁지역에 군대를 보내는 위험을 무릅쓰게 됐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분쟁이 일고 있는 해역에 국군을 파병한 것은 처음이다. 해상은 지상보다 전장의 불확실성과 작전상 위험이 더 크다. 1990년 이후 초기 파병이 주로 의료지원이나 재건의 성격이었던 데 비해 최근에는 전투 부대를 보내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번 파병이 역사상 가장 위험한 파병이 될 것”이라는 정의당 등의 평가는 일리가 있다. 국방부는 청해부대의 임무 확대를 “중동 정세가 호전될 때까지”로 한정했지만 그 임무가 언제 종결될지 알 수 없다. 중동 정세가 워낙 불안하고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언제든 위험요인으로 닥칠 소지가 있다. 이란은 2주 전 미군에 반격을 가하면서 “미국의 반격에 그 우방국들이 가담하면 그들의 영토가 우리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에서 청해부대가 한국 선박만을 호송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의 선박 호송 요청에도 응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찜찜한 대목이다. 때에 따라서는 청해부대가 이란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파병 결정에 대해 미국과 이란 모두 이해했다고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내심 불만스러워할 것은 불문가지다. 특히 이란은 파병에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정부는 국익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임무 확대가 국회 동의를 구할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기존 파병안에도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이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일대로 돼 있지만 유사시 그 외의 해역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이 3.5배로 늘어나고 작전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새로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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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이 4월 총선에 앞서 추진하는 모의선거 교육에 대해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동을 걸었다. 선거 연령이 18세로 낮춰지자 학교 현장에 허용될 선거 활동을 하나하나 짚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올 총선 고3 유권자는 14만명에 달한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21일 “선관위와 협의하고 그 판단을 존중해 모의선거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3~4월 서울 초·중·고교 40곳에서 예정된 모의선거 교육의 사활을 선관위가 쥔 셈이다.

핵심 쟁점은 정부기관이 주관하는 모의선거를 허용할지 여부다. 선관위 유권해석도 왔다갔다했다. 2018년 지방선거 앞에 서울·경기·충북·광주 등의 17개 중·고교에서 YMCA와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주관한 모의선거가 치러졌다. 선관위는 실제 입후보자의 모의선거 결과를 지방선거까지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허용했다. 서울시선관위는 지난해 11월 시교육청 위탁 업체의 모의선거 문의에 ‘결과 공표와 특정후보에게 유불리한 행위는 없도록 하라’는 조건부 허용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지난 19일 서울교육청이 두 차례 유권해석을 토대로 입안한 모의선거에 대해 “시민단체 주최와 공공기관이 하는 것은 다르다”며 법적 판단을 미뤘다. 시교육청은 초·중·고교생 모두 포함된 교육에 ‘18세 프레임’만 걸어 막는다며 맞서고 있다. 종국적으론 시민단체 ‘주관’과 ‘위탁’의 차이를 어떻게 볼지만 남았다.

선관위의 신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모의선거가 하나의 여론조사일 수 있고, 선거법 개정 후 넉 달 만에 고3 선거의 위법성이 없도록 만반의 안전판을 둬야 하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사전 공개를 금지하고 현장감독관을 배치해 막을 수 있다. 조 교육감이 요청한 교내 선거운동 금지도 적절한 선거과열 예방책이 될 터다. 미국은 민간단체가, 캐나다는 정부선거관리기구와 시민단체가 학생투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호주엔 ‘국립선거교육센터’가 따로 있다. 모두 훌륭한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을 선거로 보는 것이다. 선관위는 청소년 선거교육을 주도해도 모자랄 판에 브레이크만 밟으며 소탐대실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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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께서 이제 조국 장관을 좀 놓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우선 검찰의 조국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한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을 터이다. 둘째로 시민사회의 갈등과 혼란 역시 약화될 기색이 없다. 오히려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격화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소망은 소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27일 새벽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후 동부구치소에서 대기하다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다. 4개월간 탈탈 털었지만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비리는 적발하지 못했다. 초라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조 전 장관의 중도 사퇴를 끌어낸 것은 성과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센’ 추미애 장관을 만나게 됐고, 윤석열 총장의 측근들이 무더기로 잘려나갔다. 검찰개혁에 반대해온 검찰이 개혁 입법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점도 아이러니다. 수사 과정에서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수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검찰 신뢰에 감점 요인이다. 세상이 검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검사가 다 맞다는 이른바 ‘검동설’을 신봉한다는 구설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조국 사태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조국과 검찰, 그리고 양측에 공감하는 두 개 시민사회의 거대한 감정이입이 작용하면서 거대한 등장인물군이 형성됐다. 갈등 구도도 선명했다. 예컨대 조국에게 검찰은 개혁 대상이었지만 검찰에 조국은 수사 대상이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이는 검찰 수사를 사활적 게임으로 몰고 갔다. ‘탄핵 보수’에 조국 수사는 천만뜻밖의 선물이었다. ‘상처 입은’ 조국을 공격함으로써 적폐의 치부를 가리고 바닥에 떨어진 존재감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반대로 진보에 조국 사태는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공세를 펴온 진보는 수세에 몰렸다.

한국 사회는 ‘조국 드라마’와 관련해 공명하거나 반발하면서 집단적 확증편향이 작동하는 거대한 두 개의 사일로를 형성했다. 이런 관계 틀은 쉽게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 조국 사건에 커다란 정치적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선악의 문제를 다루는 데 서툴다. 흑백논리 탓에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어느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조국 드라마에 동력을 제공한 분노를 빼놓을 수 없다. 분노의 대상은 ‘바른말 하는 진보의 위선’과 ‘회복 불가 수준의 계층화 사회’, ‘같은 사안에 정반대의 해석을 하는 상대 진영’ 등 다양했다. 공동체 구성원이 둘로 갈려 서로에게 분노하는 상황에서 연대와 공감, 신뢰는 자라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은 ‘아무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민주국가’(자크 랑시에르)다. 이런 척박한 토양 속에서 통합이나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시민사회의 의견이 갈라지고, 상대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려는 행태만 반복될 뿐이다. 그 결과는 분노의 확대와 심화다.  

혹자는 조국 사태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묻고 싶다. 사회 전체가 이분법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는 진실이 가능한가. 가뜩이나 진실은 누군가의 주장 속에서만 존재하고, 한쪽 진영에서만 통용되는 사회 아닌가. 한쪽의 진실은 반대쪽에는 비수가 되는 구조이다. 그러니 누군가 진실을 주장하면 그것이 진실인지 여부를 가리기보다 그 사람의 허점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도덕적 하자나 행실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드물고, 그런 점이 드러나면 그가 주장한 진실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진실이 정치적 의도로 살해당하는 셈이다. 결국 사회 전체가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미치코 가쿠타니) 상황으로 몰려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을 ‘가족비리’ 및 ‘감찰무마 의혹’ 혐의로 재판에 회부했다. 종착역이 가까워진 것이다. 재판이 끝나면 조국 사태는 파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국 사태에 내장된 정치·사회적 폭발력은 여기서 끝날 정도로 간단치 않다. 사실 조 전 장관의 유무죄는 사태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볼 때 빙산의 일각이다. 몸통에 해당하는 불공정과 불평등, 계급과 세습 문제는 해결을 위한 초보적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검찰개혁도 완성되려면 멀었다. 앞으로도 조 전 장관은 끊임없이 소환될 터이다. 희생양으로서든(진보) 위선자로서든(보수) 한국 사회는 아직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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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3일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부대 사령관을 사망케 한 미군 드론 공격으로 새로운 중동전 위험성이 우려된다. 이란은 그의 죽음을 순교로 애도하며 즉각적으로 대미 보복에 나섰다. 지난 8일 이란군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타격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미 대사관을 포함해 각국 공관이 소재한 바그다드 그린존을 타깃으로 삼아 또다시 로켓공격을 감행했다. 이란이 보복반격을 해올 경우 ‘불균형적’ 방식으로 군사공격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가 무색해졌다. 더욱이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2곳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군사적 보복이 아닌 추가 경제제재 카드를 내민 후에 일어난 이란군의 그린존 로켓공격은 트럼프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란은 대대적인 대미 보복전에 나설 것임을 공식화하고 핵합의를 폐기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이란의 행태는 일견 냉정히 계산된 모습을 보인다. 백악관을 공격하자는 분노가 비대했지만 비례적 보복을 강조한 최고지도자의 지시와 뒤이은 일련의 외교적·군사적 행위는 사뭇 절제돼 있기 때문이다. 상황 악화 조짐은 농후하나, 향후 이란 정규군이 직접 대규모 보복전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민간항공기 오인 격추로 인해 군에 대한 이란 국민의 신뢰와 지지도 하락 국면이다. 과거처럼 친이란 세력에 의한 대리전으로 반격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도 기존 엄포와는 달리 수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양국 공히 결정적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당장 선제타격이나 확전으로 사태를 몰고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 정부는 지난해 미국 요청에 따라 오는 2월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에 청해부대를 파견하기로 했다. 호위연합체에 연락장교도 이미 파견한 상태다. 

단계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 상선과 유조선 엄호를 위해 호위연합체와 별개로 청해부대 독자 파견을 우선 고려해볼 수 있다. 동맹국 요청에 답하고 이란과의 관계도 고려한 차선책이다. 한·미동맹을 고려해 정부도 이 안을 염두에 둔 듯하다. 만약 해협 봉쇄 등으로 사태가 전면전 상황으로 악화, 미국의 강력한 파병 요청이 있으면 전투함에 앞서 병원선이나 소해함을 호위연합체에 파견하는 방안이 있다. 물론 추가적 파병은 호주·일본 등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의 파병 상황을 전제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태가 악화되어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이 창설될 경우라도 이들의 입장을 살피며 대처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 일대일 전쟁에 우리 군이 동맹이라는 틀 안에 묶여 무리하게 개입할 경우 국민적 저항 또한 만만찮을 것이다. 그렇다고 외교수장의 답변처럼 미국과 이란을 동일선상에 놓아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는 식의 전략적이지 못한 말을 해서는 곤란하다. 지난 70년 미국의 전략적 셈이 어떻든 과거 미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앞장섰고, 지금은 국방수권법(NDAA)까지 제정하며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를 법제화한 동맹국 아닌가?

한·미동맹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되 국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 선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해상수송로를 통한 원유 및 가스 수송로 확보, 자유 항해 보장 및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 함정 파견은 명분도 있고 국제적으로 용인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일도 정부의 몫이다.

<고성윤 | 한국군사과학포럼 대표·전 국방연구원 현안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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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밤 대검찰청 한 간부의 상가(喪家)에서 양석조 대검 선임연구관 등이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에게 거친 말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재수 청와대 감찰무마 의혹사건’ 관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무혐의 의견을 낸 심 검사장에게 “어떻게 무혐의입니까” “당신이 검사냐”며 따졌다는 것이다. 상갓집에는 일반인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검사들이 고성을 지르며 상급자를 윽박지르고 모욕까지 줬다니 이 무슨 추태인가.

검찰 중간간부(차장·부장검사) 인사를 앞둔 20일 오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왼쪽 사진). 윤석열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연합뉴스

조 전 장관에 대한 불구속 기소는 16일 윤석열 검찰총장 주재로 열린 대검 반부패부 회의에서 결정됐다. 심 검사장은 당시 “민정수석의 정무적 판단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어렵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수사팀 등이 반박했고 윤 총장은 “수사팀 의견이 맞다”고 결론내렸다. 주요 범죄 피의자에 대한 처리를 놓고 검찰총장과 수사 관계자들이 논의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묻는 작업이고, 법에 따른 처리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이런 자리에서 다양한 의견 제시는 권장할 일이다. 이 때문에 검찰 판단을 공격하는 ‘레드팀’을 만들어 의견을 개진토록 하기도 한다. 그런데 특정인의 견해가 공개되면 자유롭게 의견 내기를 주저하게 되고, 공정한 수사결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심 검사장은 자유한국당 등이 검찰 인사와 관련, 추미애 법무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의 사건 형식을 바꿀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으나 이 역시 일부 검사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상갓집 추태’ 발단이 된 조 전 장관 처리 과정에선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한 영장판사의 “죄는 소명된다”는 판단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 검사장의 무혐의 주장이 이례적인 것은 사실이다. 일각의 지적처럼 ‘조국 구하기’가 아닐지라도 그런 의심을 사는 행위를 한 것은 검찰 고위간부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심 검사장의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검찰에서 생각이 다르다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돼서는 안되는 내부 의견을 공개하며 대놓고 모욕을 주는 일이 허용된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검찰 조직이 ‘내 편’ ‘네 편’으로 분열되고, 의사결정 내부 통제장치는 작동하지 않게 된다. 검찰 중간 간부급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현 수사팀을 눌러앉도록 하기 위해 ‘계획된 도발’이라면 더 큰 문제다. 검찰 내부에서 “검사들의 항의가 부적절했으며 적법 절차·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자성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법무부와 대검은 조직문화와 기강을 다잡을 대책을 세워 다시는 이런 볼썽사나운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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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의원이 19일 귀국하며 “실용적 중도 정치를 실현할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부터 바른미래당까지 두 차례의 제3지대 정당을 만들어 부침을 겪은 그가 총선 87일을 앞두고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참패 후 칩거하다 9월 독일로 떠난 지 1년4개월 만이다. 안 전 의원은 인천공항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국정운영 독주를 저지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보수혁신통합추진위에) 관심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도 혁신 경쟁으로 국민의 선택권을 넓히면 (총선에서 여당과의) 일대일보다 더 합이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보수통합 참여가 아닌 제3의 길을 다시 택한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당적 갖고 있는 바른미래당을 리모델링할지, 신당을 창당할지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1년4개월여 만에 귀국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안 전 의원의 제3지대 착점은 새해 벽두의 정치복귀 선언과 신간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됐었다. 극단적 대치로 피로감이 높아진 정치, 전국 득표율로 비례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준연동형비례’ 선거제를 정치 재개의 두 토대로 봤을 터다. 그러곤 설 연휴를 앞둔 휴일에 귀국 이벤트를 한 것이다. 안 전 의원은 20일 국립현충원과 광주 5·18묘역을 참배하고, 처가·친가가 있는 여수와 부산을 찾는다. 그는 귀국 회견 모두·말미에 두 차례나 “바른미래당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했던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첫 동선까지 더해지며 그가 호남 기반으로 중도개혁을 지향한 ‘어게인 국민의당’을 정치 재개의 착점으로 삼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과거의 안철수와 뭐가 달라졌는지 묻자 “간절해졌다”고 했다. 총선도 출마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사람들을 국회에 진입하도록 돕겠다”고 했다. 정치인에게 장기 외유는 유불리가 교차한다. 길을 잃은 정치의 새 출발선으로 삼을 수 있지만, 지지 세력·조직과 존재감은 협소해졌을 수 있다. 평론가들이 보는 안철수 귀국도 비슷하다. 총선 바람을 또 일으키고 싶겠지만 대선 거점만 가져도 다행이란 시각이 많다. 정치가 8년 전보다 나빠졌다는 그의 말엔 ‘새 정치’를 훼손·오염시킨 원인 제공자라는 반론이 붙는다. 무엇보다 정치 입문 9년째인 그의 노선과 정체성은 여전히 모호하다. 귀국 회견에서 지향한 ‘행복한 국민’ ‘공정·안전한 사회’ ‘일하는 정치’는 모두 그러길 바라는 교과서 속 단어들이다. ‘반문’과 ‘반태극기’ 사이 정치공간만 노렸지 시대적 통찰과 대안 없이 명멸한 제3지대 깃발은 한둘이 아니다. 공학만 넘치고 구체성은 없는 게 16개월 전 한국을 떠났던 ‘안철수 정치’였다. 절치부심한 차이가 있는지, 그로선 비전과 정책을 내밀고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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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7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2017년 당시 유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의 뇌물수수 등 비위 사실을 알고도 특별감찰반에 감찰 중단을 지시했고, 금융위에 별도 진상조사 없이 유 전 국장의 사표 처리를 요구했다는 혐의다. 앞서 법원의 1차 판단은 “범죄혐의가 소명된다”였다. 서울동부지법 권덕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조 전 장관에게 청구된 영장을 기각하면서 “법치주의를 후퇴시켰고,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했다”며 “죄질이 나쁘다”고 했다. 도망·증거인멸 우려가 없어 구속사안은 아니지만, 죄가 될 개연성은 있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그러나 권 부장판사의 영장 기각사유가 조 전 장관의 유·무죄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영장심사는 구속 필요성을 따지는 심문이지, 유·무죄까지 판단하지 않는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유·무죄는 다시 시작될 1심 소송에서 드러날 것이다. 쟁점은 청와대 감찰 중단이 직권남용죄에 해당되는지다. 직권남용죄는 직권남용이 있어야 하고, 이런 행위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성립된다. 조 전 장관과 청와대 측은 “검찰에 수사 의뢰할지 등은 민정수석실의 고유권한”이며 “유 전 부시장과 관련해서는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본인이 조사를 거부해 확인된 비위 혐의를 소속 기관에 통보했다”고 주장해왔다. 직권의 남용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도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외압으로 비정상적인 감찰 무마 결정이 이뤄졌다면 직권남용이다”라는 입장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기소는 두번째다. 그는 이미 자녀 입시비리 등 관련 12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기현 경찰 수사’ 청와대 개입의혹을 제외하면 강제수사 전환 143일 만에 그에 대한 검찰수사는 사실상 마무리됐다. 조 전 장관은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고, 정무적 판단에 미흡함도 있었다”면서도 “결론을 정해둔 수사에 맞서 법정에서 하나하나 반박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가지고 있는 증거를 모두 꺼내어 죄의 입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법원은 법리와 증거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가려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은 ‘조국 사태’로 갈라진 여론 수습에 나서길 바란다. 국민들도 이제는 갈등과 분열에서 벗어나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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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이하 경칭 생략)가 연초 정계복귀를 선언한 직후다.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누가 더 정치를 잘할 거라 생각하나?’라는 설문이 올라왔다. 선택지는 안철수와 ‘펭수’ 둘이다. 누구를 내세운들 ‘직통령’ 펭수를 당할 리야마는, 안철수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때 청년들의 희망이었던 안철수로서는 실로 격세지감이다. 다분히 흥밋거리 설문이 눈길을 끈 건 펭수에 반사되는 안철수의 특성 때문이었을 게다. 펭수에게는 있지만 안철수에게는 부족한 게 있다. 메시지의 명료함과 구체성이다. 정치언어로 바꾸면 뚜렷한 노선과 원칙, 정체성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1월7일)에서 안철수의 정치노선을 ‘보수적’으로 인식하는 응답이 28%, ‘중도적’ 17%, ‘진보적’ 9.6%로 나타났다. 그리고 ‘모른다’는 응답이 45%에 달했다. 정치를 시작한 지 9년이 되었는데도 정체성과 노선마저 모호한 셈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경향신문DB

안철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현실정치 복귀를 알린 뒤 토론회 영상 메시지, 당원 신년 메시지, 신간 출간 등을 통해 “다시 정치를 시작한” 동기와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청산”을 기치로 리더십 교체, 정치 패러다임 전환, 정치권 세대교체를 정치개혁의 과제로 제시했다. 신간에서는 미래 3대 비전으로 행복한 국민, 공정한 사회, 일하는 정치를 내걸었다. 소중한 가치들이지만, 안철수만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낡은 정치’ 대 ‘새정치’의 구도는 유효하지 않다. ‘새로움’은 더는 안철수의 무기가 아니다. 1년5개월 만에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비전을 펼치지만, 안철수의 길은 오리무중이다. 세 갈래도 모자라 ‘제4의 길’이 운위되는 지경이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 청산을 누구(세력)와 어떤 노선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하겠다는 것인지가 빠진 탓이다. 귀국하면 이것부터 ‘펭수의 화법’으로 제시해야 한다.

‘조국사태’와 ‘검찰정국’을 거치면서 양극단을 혐오하는 무당층과 중도 영역이 보다 견고해졌다. 극렬한 진영 대립은 지지층 결집과 더불어 정치 염증에 기반한 무당층과 중도층의 확대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한국갤럽의 신년 정기조사에서 무당층은 25%로 자유한국당 지지율(20%)보다 높다. 20대 무당파는 40%에 이르고, 중도층에서는 절반에 육박한다. 외형상으론 ‘안철수현상’을 불렀던 9년 전과 유사한 환경이다. “정치를 그만둘지 심각히 고민했다”는 안철수가 총선을 앞두고 등판한 것은 과거 실패한 ‘다당제시대 개혁’과 ‘기득권 양당의 벽’을 허물 토양이 조성되었다고 나름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 4년차에 치러지는 총선임에도 정권심판보다 야권심판론이 더 높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중도보수가 한국당으로 돌아오지 않은 결과다. 보수통합은 그것을 반전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유승민세력을 더해 단순히 덩치만 키운다고 쉽지 않다. ‘도로 새누리당’으론 무당파와 중도보수가 다 흡수되지 않는다. ‘안철수’라는 제3의 상징이 절실한 이유다. 하지만 안철수가 ‘통합호’에 몸을 싣는 순간, 안철수는 정치적으로 죽는다. 낡은 정치와 기득권 타파, 다당제 개혁과 중도 등 안철수정치의 명분과 자산을 죄다 전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안철수는 역시 ‘펭수의 화법’으로 보수통합에 대한 입장부터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안철수의 정계복귀와 신당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당파와 중도층, 청년층에서 지지와 찬성 여론이 높은 것은 기존 정당이 아닌 새로운 당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다. 극단의 진영 대결 속에서 무당층은 커지고 중도층이 늘어나 다당제 요구는 있으나 이를 묶어낼 구심이 없던 상황이다. 무당파와 중도층의 다당제 동력을 수렴할 수 있느냐가 안철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또 다른 제3당의 길은 분명 고난의 길이다. 기계적 중간과 ‘반문’ 깃발로는 십리도 못 간다. 양대 정당 사이에서 제3당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설정해야 한다. 사회·경제 개혁 메시지가 명료해야 하고, 정치 목표가 무엇인지 보다 명징한 언어로 보여야 한다. 제3당이 철지난 정치세력, 정치인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희망이 없다. 결국 얼마나 대중성 있고 참신한 인물을 참여시키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안철수는 17개월 전 정치일선을 떠나면서 토로했다. “5년9개월 동안 정치를 하면서 다당제시대 개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기득권 양당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미흡한 점도 많았다. 그러나 제가 갔던 길이 올바른 길이라 믿고 있다.” 다시 다당제 개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안철수의 마지막 시간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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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90분간의 회견은 지난해 11월 대화의 폭과 깊이에 갈증을 남긴 ‘국민과의 대화’보다 진일보한 소통이었다. 기자들이 국민적 관심사를 추렸고, 대통령도 각본 없이 때로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비친 자리였다. 내용적으로는, 참신한 국정동력이나 비전 제시보다 국정 현안을 설명하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답이 많았다. 4월 총선이라는 큰 변곡점이 있는 ‘집권 4년차’ 회견의 특징이 도드라졌다.

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하려 손을 든 기자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답은 어느 때보다 ‘협치’에 모아졌다. 문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정치문화가 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생과 멀어져 일하지 않는 정치는 사실상 폐장된 20대 국회로 끝나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나아가 “(총선 후) 야당 인사 가운데서도 해당 부처의 정책 목표에 공감한다면 함께할 수 있다”며 ‘협치내각’ 문호를 열었다. 당이 결합하는 거국내각이나 연정보다 사람을 입각시키는 낮은 단계지만, 갈등을 줄이고 국정과제를 푸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공정한 선거관리부터 야당 목소리 경청까지 신뢰를 쌓는 중심엔 대통령이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부동산 문제에 대해 “반드시 잡겠다.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가격 상승은 원상회복돼야 한다”는 긴 목표를 제시했다. 가격 안정을 넘어 급등한 집값을 집권 초 시점으로 돌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서민들의 좌절과 실수요자 고통을 생각하면 올바른 방향 정립이다. 고가 아파트를 겨눈 ‘12·16대책’ 파장이 저가주택·전세로 튀지 않게 금융 대출·재건축 규제·세금까지 ‘적시·고강도’ 처방을 주저해선 안된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조직문화 개선에 앞장서면 더 신뢰받을 것”이라고 했다. 인사권·수사권이 분리돼 있음을 상기시키고, 윤 총장도 “(인사 갈등) 한 건으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거듭 신임했다. 청와대·법무부와 검찰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란 여론과 대통령 지시를 무겁게 새길 때다.

신년 회견은 긴 패스트트랙 정국이 끝난 뒤에 이뤄졌다. 협치 약속이 총선 뒤로 유예됐지만, 소통·통합 노력은 시와 때가 따로 없고, 겸손한 권력을 약속한 취임사는 끊임없이 소환돼야 한다. “촛불정신이 정해줬다”고 한 정부의 소명도 그 출범 시점만을 뜻하진 않을 게다. 권력기관 개혁의 첫 고비를 넘었지만, 노동존중사회 약속은 흐트러졌고 체감경제는 냉골이 많고 수도권·지방 균형발전과 사회적 대타협은 겉돌고 있다. 진단 많은 회견에 구체적 대안은 적었다. 집권 4년차는 성과로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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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경찰은 66년 만에 검찰과 거의 대등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은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는 사건 등은 수사지휘를 받아야 하고, 통신·압수수색·체포 영장 등의 발부가 검찰을 통해야 가능하므로 대등한 권한의 분산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검찰의 수사지휘 없이 1차 수사종결권을 행사한다. 부패나 경제·선거 등 주요 범죄는 여전히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만 그 외 대다수 민생 관련 범죄는 경찰이 검찰의 간섭 없는 수사를 통해 1차적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다. 경찰에 이런 힘을 나눠준 것은 견제와 균형을 통해 수사기관의 권한 오·남용을 막자는 취지다. 국민의 인권침해 최소화와 수사기관과 정치·경제 권력의 부당한 결탁 여지를 없애는 효과도 기대한다. 검경은 법 시행까지 촘촘한 후속작업에 힘을 기울여 그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1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권한이 커지면 책임 또한 커진다. 그런데 경찰이 검찰과 대등한 권한을 행사할 만큼 건강한지, 역량은 있는지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버닝썬 사건에서 보듯, 경찰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만큼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2018년 공무원 범죄자 3356명 중 절반 가까이가 경찰 공무원이었다. 직권남용·유기가 358건이나 됐고, 강제추행·강간 등 강력범죄 또한 적지 않았다. 검찰 못지않은 독재·군사정권의 앞잡이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던 경찰의 모습도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이는 낮은 윤리의식과 해이한 공직기강의 결과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영장 및 수사심사관제, 사건심사위원회 정착, 수사단계 변호인 참여 확대 등을 통해 경찰 수사의 신뢰를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경찰은 12만여 인력에 수사경찰만 2만명이 넘는다. 범죄 수사는 물론 사회 구석구석의 치안을 담당한다. 거의 독점적인 정보수집권을 가지고 있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공룡조직이 지휘 없는 1차 수사종결권까지 갖는 것에 시민은 걱정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수사역량을 키우고 국민 모두가 수긍할 쇄신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보경찰의 불법사찰 방지, 자치경찰제 도입, 국가수사본부 신설에 따른 투명한 수사지휘권 행사 등을 담은 경찰개혁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혁명적 자기개혁 없이는 힘들여 만든 민주적 통제장치가 ‘먹통’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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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가결이 선포되자, 법안의 첫 발의자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료의원들과 얼싸안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끝까지 마음놓을 수 없는 법안이었다. ‘유치원 3법’은 시민들의 분노가 만들고 통과시킨 법이다. 2018년 사립유치원 비리 실태가 국정감사에서 공개되며 법안이 만들어지고 패스트트랙까지 태워졌지만, 이후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자유한국당의 거센 반발, 총선을 앞둔 지역 유치원들의 압력까지 더해지며 줄곧 무산 위기감이 감돌았다. 법안 통과는 끝까지 감시의 끈을 놓지 않은 여론의 힘 덕분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가운데)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이 13일 유치원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핵심내용은 사립유치원 회계 관리에도 유아교육정보시스템(에듀파인) 사용을 의무화해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교비회계 부정사용의 처벌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또 유치원 설립 요건을 강화하고, 사립유치원도 학교급식법 적용 대상으로 만들어 먹거리 안전을 확보했다. 공공성 있는 교육기관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최소한의 규정이다. 유치원 3법이 만들어지고 통과되는 과정을 거치며, 시장과 공공영역에 한 발씩 걸쳐 있던 사립유치원의 민낯이 드러났다. 또한 유아교육이 공공의 영역으로 나와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도 명확해졌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가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유치원 3법 통과로, 사립유치원 적폐의 극히 일부분이 제거되고 최소한의 기준이 세워졌을 뿐이다. 벌써부터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치원 3법은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세워나가는 출발점이다. 더 큰 틀의 공공성 확보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원하는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집 가까운 곳의 균등한 양질의 유치원에 기왕이면 싼값으로 다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지역이나 부모의 재산상 격차에 따라 교육에서 차별받지 않고, 교사처우와 교육프로그램도 개선해 달라고도 요구한다. 국공립 유치원을 원하는 목소리가 가장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8%)보다 현저히 낮은 국공립 유치원 이용비율(24%)을 시급히 끌어올리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이중적인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 시간도 예산도 많이 들겠지만, 뚝심있게 추진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수십년에 걸쳐 해낸 일이다. 교육의 첫 단계인 유아교육부터 차별받지 않는 평평하고 높은 운동장을 만들어주는 것. 가뜩이나 줄고 있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사회가 서둘러야 할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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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1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13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검찰과 경찰은 기존의 ‘수직적 관계’에서 ‘상호협력 관계’로 바뀌게 된다. 수사의 시작·종결은 경찰이, 기소 및 공소유지는 검찰이 하는 것으로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국정과제인 검찰개혁 입법도 완료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과 함께 검찰을 견제할 민주적 통제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는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66년 만이다. 검찰의 수사·기소·영장 청구 독점권이 무너진 것은 1962년 개헌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도했지만 검찰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수사권 조정 정부안이 확정됐고,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담겨 1년여 만에 통과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이 1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본선 신임 대검 차장 검사와 함께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구본선 신임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수사권 조정안의 핵심은 경찰이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에 대해 검찰 송치 없이 자체 종결할 수 있는 것이다. 기소독점권은 사실 기소할 권리보다는 기소하지 않을 권리에 있다. 경찰로선 강력한 힘을 쥐게 되는 것이다.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면서 경찰 수사단계에서 검찰의 개입 여지도 줄었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경찰 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제한된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도 경찰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인정할 때만 증거로 채택된다. 

(출처:경향신문DB)

수사권 조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령 제정 등 후속 작업이 남아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경찰권 비대화다. 당장 뇌물죄처럼 피해자가 없는 사건은 경찰수사에 대한 이의신청 당사자가 없어 그대로 묻힐 가능성이 크다. 이런 여지를 없앨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정보경찰의 불법사찰 방지 등을 담은 경찰 개혁법 입법도 시급하다. 

검찰은 이제 견제받는 권력이 됐다. 그 결과로 수사권력의 오·남용이 줄면서 국민기본권 침해 역시 크게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검찰과 경찰도 ‘정치 검찰’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검찰은 충실히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여러차례 말해왔다. 검찰은 이제 그 약속을 지킬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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