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484건

  1. 2019.06.26 [서민의 어쩌면]여경과 여혐
  2. 2019.06.26 [정동칼럼]연금개혁, 정부안 넘어서야
  3. 2019.06.26 [사설]국회 정상화, 더 이상 한국당 기다릴 이유 없다
  4. 2019.06.25 [기자칼럼]과연 남의 일인가
  5. 2019.06.25 [사설]국회 정상화 합의 뒤집은 한국당의 무책임과 몽니
  6. 2019.06.24 [사설]참을 수 없이 천박한 황교안 대표의 ‘아들 스펙 발언’
  7. 2019.06.21 [사설]“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별” 발언 황교안, 변명 대신 사과하라
  8. 2019.06.20 [사설]군, 북한 어선이 부두에 들어올 때까지 까맣게 몰랐다니
  9. 2019.06.20 [사설]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한·일관계 회복 시발점으로
  10. 2019.06.20 [사설]민주당, ‘경제원탁회의’ 못할 게 뭐 있나
  11. 2019.06.19 [사설]기소된 손혜원 의원, 정치도의적 책임 어떻게 질 텐가
  12. 2019.06.18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교훈
  13. 2019.06.18 [사설]한국당의 끝없는 ‘몽니’가 초래한 여야 4당만의 국회 소집
  14. 2019.06.18 [사설]윤석열 총장 내정자, 검찰개혁 소명 깊이 새겨야
  15. 2019.06.17 [아침을 열며]집권 여당이 안 보인다
  16. 2019.06.17 [사설]시민의 인내도 한계 넘었다, 한국당 빼고라도 국회 열라
  17. 2019.06.14 [사설]‘추경 국회’ 외면한 채 추경토론회만 연 한국당
  18. 2019.06.14 [편집국에서]주권자의 명령
  19. 2019.06.11 [사설]국회도, 민생도 외면하는 한국당 공당 책무 잊었나
  20. 2019.06.11 [양권모 칼럼]양정철의 팔자 혹은 순명

“남자 한 분만 나와주세요. 빨리 빨리 남자분 나오시라고요. 빨리, 빨리!”

철 지난 얘기를 해보자. 지난 5월13일 밤, 술에 취한 중년 남성 두 명이 난동을 부렸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취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특히 같이 출동한 여자 경찰은 근처에 있던 일반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한 끝에 결국 수갑을 채울 수 있었다. 이른바 ‘대림동 여경 사건’이다. 남녀를 떠나서 취객을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 <범죄도시>의 마동석은 상황이 발생하면 한방에 상대를 때려눕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모든 경찰이 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진 않다. 게다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점점 높아지다 보니, 행여 진압과정에서 범죄자가 다치면 경찰관이 징계를 받기도 한다. 경찰의 대응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암사동 10대 난동 사건에서 경찰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대림동 사건 이후 경찰은 경찰관을 폭행하면 테이저건이나 권총을 쏠 수 있게 기준을 바꾼다고 하지만, 이게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간 경찰은 나름의 업무를 잘 수행했으며, 우리 사회가 그래도 평온하게 유지되는 것은 다 이분들의 공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려스러운 것은 요즘 부쩍 늘어난, 휴대폰을 이용한 영상 촬영이다. 대림동 사건만 해도 매일 수도 없이 일어나는 흔해빠진 것에 불과했지만, 누군가가 진압과정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전국적 관심이 쏠린 엄청난 사건이 됐다. 혼자 힘으로 수갑을 채우지 못한 여경에 대한 성토가 빗발쳤고, 이는 여경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경을 없애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오고, “여경만 체력검사 수준이 낮으니 취객조차 제압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인터넷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남경에 비해 여경의 체력검사 기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녀의 신체 골격 자체가 차이 나는 판에 푸시업을 잘한다고 해서 여경이 남성 범죄자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시민의 도움을 요청하는 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질서는 모든 시민들이 협력해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지, 경찰에게만 맡겨두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되니 말이다. 마트에서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범죄자 김일곤의 경우 남경 둘이서 제압하지 못해 지나가던 시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당시 남경들을 욕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걸 보면, 대림동 사건의 여경을 향한 비난에는 여성혐오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이라고 해서 다 힘쓰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아동청소년 및 성범죄 등을 다룰 때 여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표창원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찰 업무의 70% 이상은 사실은 소통이다. 피해자 민원인 말씀 듣고 피해 상황과 갈등을 조정, 중재한다.” 실제 경찰청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의 478개 직무 중 체력과 무관한 직무는 76%인 반면 체력과 관련한 직무는 24%에 불과하단다. 게다가 남경들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일어난 사건을 보자. 강남서에 근무하는 ㄱ경장은 자신이 담당한 교통사고 조사 대상자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여성은 접촉사고를 내서 조사를 받았는데, 이후 상대방과 합의해 내사 종결을 앞둔 상황이었다. ㄱ경장은 상호 합의하에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런 관계가 적절하지 않음은 상식이다. 3년 전에는 이보다 더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학교전담경찰관 두 명이 자신과 상담을 한 여고생들과 성관계를 맺은 것이다. 해당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이들인데, 괜히 상담했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다. 그중 한 명은 이로 인해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이 남경이 아닌 여경이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터. 그렇다면 여경을 증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방방곡곡 울려 퍼져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남경들이 저지른 다른 비리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맡은 성매매업소에 ‘단속이 뜨니 단골손님만 받으라’고 조언하는 등 뒤를 봐준 경찰관 3명이 구속된 게 며칠 전이고, 몇 달 전에는 강남 클럽에서 3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청소년이 출입한 것을 무마해준 경찰이 입건됐다.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버닝썬 사건에도 남경들이 연루됐지만, 이 사건들은 남경 무용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림동 여경의 대응이 미숙했다고 해도, 그게 위 사건들보다 더 중한 일일까? 남경의 엄청난 비리에는 침묵하고 여경의 일에만 흥분하는 이 현상을 여혐 이외의 말로 설명하긴 어려울 듯하다. 

여혐이 우리 사회를 잠식한 게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그 여혐이 경찰이나 소방관 등 힘쓰는 일에 집중되는 것은 그 자리가 좋은 일자리로 인식되고 있는 데다, 남성들이 최소한 힘에서는 여성보다 앞선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경찰 인력은 총 12만487명, 그중 여자 경찰은 1만3594명(11.3%)에 불과하다. 이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수치이고, 고위직 비율을 따졌을 때는 더 한심한 통계가 나오지만, 여혐에 찌든 우리 남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몰랑. 저 자리 우리가 다 가질 거야!”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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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금개혁 토론 자리에 참여하면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입장의 차이를 떠나 여러 전문가들이 피로와 무기력을 토로한다. 예전에는 연금제도를 튼튼히 세워보겠다고 나섰는데 이번엔 그러한 의욕을 갖기 어렵다는 고백이다. 무엇보다 지금 논의되는 정부안이 연금개혁의 과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즉 공적연금으로 노후를 보장하고 재정 불안도 해소할 수 있을까에 응답하기보다는 정부 임기 동안 논란만 피하려는 미봉책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대안을 내놓을 엄두는 나지 않으니 속절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는 탄식이다. 근래 연금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배경 중 하나이다.

마침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대담한 제안을 내놓았다. 외국 연금을 둘러보고 가진 지난주 기자간담회와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든, 전문가든 국민연금개혁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먼저 대전환의 방향을 언급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민연금을 낸 돈만큼 받는 소득비례 방식으로 바꾸자, 기초연금은 50만~60만원으로 올리면서 조세 기반도 확충하자’로 요약된다. 국민연금에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금 조정하는 정부의 ‘부분개혁안’과 비교해 현행 연금체계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구조개혁안’으로 불릴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보도자료까지 내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비판할 만큼 정부 내부에선 획기적인 내용이다.

정부안과 무엇이 다른가? 먼저 기초연금의 대폭 인상이다. 정부안은 역대 처음으로 ‘최저노후소득보장’을 담았다고 자랑한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해 대략 ‘공적연금 100만원’을 구현한다. 그런데 여기에 해당하는 대상은 평균 소득, 평균 가입기간을 가진 사람이다. 정작 하위계층 노인들은 최저노후소득을 보장받지 못한다. 포용국가를 주창하면서 실제 어려운 노인들은 포용하지 않는 연금안이다. 노인 절반이 빈곤한 우리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건 기초연금이다. 지금보다 두 배가량 기초연금을 올리자는 제안이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물론 세금 확충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다.

두 번째는 국민연금 급여구조의 재설계이다. 보통 서구에서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개별 소득에 완전비례하도록 설계하고 소득재분배는 별도로 기초연금을 통해 도모한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비례급여가 절반, 기초연금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균등급여가 절반으로 구성돼 있다. 서구의 이원체계가 국민연금 제도 하나에 통합돼 있는 셈이다. 이후 기초연금이 새로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연금체계에서 재분배 몫이 중복으로 존재하게 되었고, 학계와 정치권 일부에서 국민연금을 완전비례연금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제시돼 왔다. 이러면 국민연금은 젊었을 때 소득과 연동하는 노후보장제도로, 기초연금은 세금을 재원으로 재분배를 증진하는 제도로 역할이 명확해진다. 이때 국민연금에서 재분배 기능이 사라져 하위계층의 국민연금액이 낮아지는 문제는 기초연금 인상으로 보완한다.

세 번째는 국민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이다. 정부안은 보험료율을 인상하므로 재정안정화 조치도 담았다고 설명한다. 사실이 아니다. 소득대체율 인상분만큼만 올리기에, 애초 연금개혁 논의를 촉발한 현행 국민연금의 재정불균형은 그대로 놔둔다. 재정안정화에 있어선 국민연금개혁 없이 그냥 넘어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르지 않다. 이사장의 구체적인 재정안정화 방안은 알 수 없으나 국민연금을 완전비례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재정의 지속가능성 논점도 적극적으로 다루어지리라 기대한다. 

사실 위 구조개혁은 선진국 연금체계가 발전해온 방향이다. 서구 연금에서 현재 세대들은 수지균형에 맞게 보험료를 내면서 동시에 하위계층의 노후도 보장한다. 심지어 수명이 늘어나면 수급연령을 늦추거나 급여를 조정하는 자동안정화장치까지 갖춰가고 있다. 내부 수지불균형과 초고령화 위험을 방치하면서 단지 ‘연금지급 법제화’에 의존하려는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낸 것보다 2배 이상 평생 받으며 기금이 소진돼도 지급되는 마법의 제도’로 홍보한다. 이 정도면 국민연금에 감탄하고 고마워해야 하건만 여전히 시민들은 무언가 개운치 않다며 의문을 떨치지 못한다. 지급 보장은 법률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질적 기반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연금 논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그만큼 정부안이 좁은 틀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이사장의 제안대로 연금개혁의 지평을 넓히자. 노후 빈곤에 처한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두껍게 지급하면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도 추구하는 구조개혁까지 이야기하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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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25일 일부 상임위는 열리고, 일부는 반쪽 운영되고, 일부는 개회조차 하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외교통일위원장은 “당파를 초월해서 대한민국 힘과 지혜를 모으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며 회의를 진행했다. 한국당 의원들도 참석했다. 의원들은 외교부·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과 악화일로인 한·일관계 등 현안을 따졌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는 한국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 ‘반쪽 상임위’를 열었다. 한국당 의원들은 입맛대로 찾아먹는 뷔페식당처럼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상임위만 선별적으로 참석했다. 국회는 온전히 열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열린 것도 아닌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오른쪽)가 2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및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이렇게 된 데는 전적으로 한국당에 책임이 있다. 한국당은 전날 여야 3당 원내대표의 국회 정상화 합의를 2시간 만에 의총에서 뒤집고 합의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한국당 강경파 의원들은 3당 합의내용에 대해 “아무것도 얻어낸 게 없다”고 반발했다고 한다. 학생이 학교에 가는 게 당연하듯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등원하는 건 대의기관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다. 여기에 뭘 얻고 말고 할 게 있단 말인가. 시민의 대의를 받들어 입법활동을 해야 할 국회를 인질로 잡고 정치공세를 벌이는 모습에 시민들도 진저리를 치고 있다. 이제 국회에 “들어오라”고 호소하는 대신 “아예 나가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데도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우리 의원들의 의견이 국민의 의견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이 서명한 합의문을 면전에서 퇴짜 맞고 리더십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그의 항변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기존 합의대로 6월 임시국회 의사일정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당연하다. 지금 국회에는 차일피일 미루고 표류해온 법안이 1만건 넘게 쌓여 있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말로는 민생을 챙기겠다면서 국회를 무력화하고 장외에서 정부 비판만 하고 있다. 그렇게 문을 닫은 지 석 달이 다 된다. 

국회 정상화는 정치권의 합의를 넘어 국회의원의 당연한 의무요, 시민의 명령이다. 시민의 대표가 시민의 삶에 관심이 없다면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국회의원이기를 포기하고 국회를 박차고 나간 마당에 더 이상 기다릴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에서 사회권을 내놓지 않을 경우 국회법에 명시된 대로 다른 정당 제1교섭단체 간사가 사회권을 넘겨받아 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한국당이 없어도 국회가 운영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국회를 정상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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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하는 일 때문인지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몹쓸 버릇이 있다. 출근길에 만나는 20대 자폐 청년은 정류장까지 배웅 나오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사랑해” “사랑해”, “차조심” “차조심”.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사랑해”를 반복하는 걸 보고 있으면 어쭙잖게 울컥할 때가 있지만,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동반자 중에서 정체가 궁금한 사람은 따로 있다. 누군가 하면 퇴근길에 가끔 마주치는 ‘공짜 승객’이다. 내가 처음 “돈이 없으니 그냥 태워달라”던 그를 봤을 때만 해도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했었다. 지갑을 두고 나온 것을 뒤늦게 알아챘거나 누군가에게 지갑을 털렸을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보아도 그의 입성은 버스비를 내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승객으로는 안 보였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건장한 체격에 얼굴색도 하얗고,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은 말쑥한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무임승차를 허락했다. 그 후에도 이 남자의 무임승차는 적어도 나와 마주친 날에는 어김없이 계속됐다. 이따금 내리라고 하는 기사도 있었지만, 상습적인 무임승차가 들통났으면 하는 내 바람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를 버스에 태웠다.

그동안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는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려, 곧바로 편의점으로 직행한다. 언젠가 한번 편의점으로 가는 그를 따라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물건을 사러 갔다가 본 적도 더러 있는데 언제나 그의 손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버스비로 컵라면이라도 먹는다면 모를까 아이스크림이라니. ‘돈이 있는데도 왜 버스비를 안 내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런 오지랖을 부릴 정도로 덜 붐비는 버스를 타고 다니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에선 언감생심이다. 하루 일감을 얻고, 빌딩 청소와 경비를 하러 집을 나서는 노동자들로 버스의 첫차는 만원이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를 일깨운 건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이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매일 새벽 버스를 타고 중년 여성들이 강남의 빌딩으로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후 이 연설이 다시 회자됐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이달 중순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이들의 고단함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4개 버스노선의 새벽 시간대 배차를 늘렸다. 이들의 출근길은 좀 나아졌을까. 서울시의 생색에 비해 체감 효과는 크지 않다고 한다. 2015년 도입한 ‘조조할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추승우 서울시의원이 공개한 ‘최근 3년 대중교통 조조할인 현황 자료’를 보면 교통혼잡 분산을 기대한 당초 취지와 달리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두 정책 모두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내 처지를 벗어나 다른 이의 삶을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다. 동 트기 전 집을 나선 노동자들로 버스 첫차가 얼마나 붐비는지, 그 안에서 그들이 새벽잠 쫓으며 밀리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를. 컵라면이 아닌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만 하는 누군가의 ‘현실’은 보이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재빨리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재단해 버린다.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영화 &lt;기생충&gt;을 보면서 나는 내내 불편했다. ‘봉테일’이 꾸며놓은 영화 속 가난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을 보면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과연 지금의 나는 그들과 다른가.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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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무책임과 몽니가 빚어내고 있는 국회의 모습이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24일 막판 정치력을 발휘해 국회 정상화 합의에 도달했을 때만 해도 정치 복원의 기대가 컸다. 국회가 파행된 지 무려 80일 만의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최대 쟁점인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와 관련해서는 ‘각 당의 안을 종합하여 논의한 후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고 정리했다. ‘합의 처리’를 요구한 한국당과 ‘합의 처리를 노력한다’고 맞선 민주당 안을 절충한 결과다. 상대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고집하면 협치를 이룰 수 없다. 무능과 이전투구에 국회의 존재 이유를 묻는 목소리가 임계점에 달한 시점이다. 더 늦기 전에 공존의 정치 계기를 마련한 터인데, 이를 무참히 깨고 나선 게 다시 한국당이다.

한국당은 의원총회에서 “삭발까지 했는데 얻은 게 뭐냐”며 막무가내로 합의안 추인을 거부했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한다”는 조항이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게 주된 추인 반대 이유라고 한다. 패스트트랙을 철회하고 다시 논의하자는 것은 결국 불법행위를 정당화해주지 않으면 국회를 열 수 없다는 얘기다. 국회법 절차인 패스트트랙을 육탄전으로 막고 장외로 뛰쳐나간 한국당이 이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회 정상화를 물거품으로 만든 것은 후안무치라는 말로도 모자란다. 자기 당 원내대표가 도장 찍은 합의문을 금세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면 의회정치는 설 땅을 잃는다.

결국 국회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국회는 이날 여야 4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를 열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청취했다. 국회가 문을 열었지만, 한국당이 계속 불참할 경우 추경안과 민생법안 처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당이 말로만 민생을 챙기겠다는 건 위선이고 기만이다.

한국당은 국회 정상화 합의안 추인을 거부하면서 전날 밝힌 대로 검찰총장·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북한어선 입항 사건과 수돗물 사태 관련 상임위에만 선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국회 전체의 정상화는 거부하면서 정부 공격의 호재가 걸린 상임위만 골라 열겠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공당임을 포기하는 처사다. 지금 국회에는 노동관계법, 유치원 3법 등 각종 민생법안이 산적하다. 재난과 경기 대응을 위한 추경안은 국회로 넘어온 지 두 달 가까이 됐지만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당이 합의를 뒤집은 것은 아마도 내년 총선을 의식해 강경투쟁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이다. 착각이다. 정략적 이해에 매몰되어 민생과 경제를 외면한다면 심판의 화살은 한국당을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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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공감 능력 자체를 의구해야 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아들 스펙 발언’은 청년 문제에 대한 천박한 인식과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황 대표는 지난 20일 숙명여대 특강에서 ‘내가 아는 어떤 청년’의 취업 성공담을 소개했다. “학점도 3점이 안되고 토익은 800점 정도 되고 다른 스펙은 없는데” 큰 기업 다섯 군데에 합격했다는 그 청년은 바로 황 대표의 아들이다. 취업을 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취업전략이 문제인 것처럼 훈계하면서 자기 자식을 성공 모델로 자랑한 꼴이다. 죽어라 스펙을 쌓아도 취업의 문턱에조차 다가가지 못하고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스펙 없이 신의 직장에 취업한 사례는 애초 염장 지르기에 그치기 십상이다. 게다가 그 사례의 주인공이 ‘KT 취업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제1야당 대표의 아들이라니. 스펙도 없고 학점·토익점수도 별로인데 대기업 5곳에 합격한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황교안의 아들’이라는 거대한 스펙이 그 기적의 배경일지 모른다.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며 특혜를 받았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다를 게 없다는 힐난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6월 24일 (출처:경향신문DB)

황 대표는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황 대표는 “스펙 쌓기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해명하면서, 아들의 스펙도 슬쩍 정정했다. “1학년 때 점수가 좋지 않은 아들은 그 후 학점 3.29, 토익은 925점으로 취업하게 됐다”고 했다. 아마도 ‘무스펙 아들’의 KT 취업이 의도와 달리 ‘특혜 의혹’을 방증하는 걸로 비화되자 스펙을 바로잡고 나선 모양이다. 특혜 의혹이야 수사로 규명돼야겠지만, 결국은 아들의 학점과 토익점수까지 속여가며 취업 과정에서 좌절하는 젊은이들을 우롱한 셈이다. 

황 대표는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듯하다. 장관과 총리까지 지낸 제1야당 대표 아들의 취업 성공기를 스펙 극복 모범 사례로 든 것 자체가 취업난에 고통받는 청년들의 상처를 후벼판 것이다. 오죽하면 보수정당인 바른미래당조차 “청년에 대한 이해 수준이 참담하고 소통도 공감도 제로”라며 “강의를 할 게 아니라 아들의 특혜 의혹부터 밝히는 게 먼저”라고 힐책했을까 싶다. 이토록 청년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정당과 정치인이 입으로는 ‘청년, 청년’을 외쳐대니 진정성이 느껴질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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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0일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별’ 발언 논란에 “터무니없는 비난”이라고 항변했지만, 그는 전날 분명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해주어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기본 가치는 옳지만, 형평에 맞지 않는 차별 금지가 돼선 안된다. 한국당이 법 개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국인 근로자 임금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6월21일 (출처:경향신문DB)

뭐라 변명해도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위험하고 사실 왜곡이며 인종차별을 담은 혐오발언이다. 첫째, 명백히 외국인 노동자, 즉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현행법과 국제 협약에 배치된다. ‘국적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및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황 대표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이주노동자를 표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며 반사이득을 취하려 한 극우 포퓰리즘의 본색을 드러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둘째, 경제적 사실관계도 틀렸다.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 경제에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부터 사실 왜곡이자 명백한 혐오표현이다. 2018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들이 낸 소득세는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주노동자는 내국인이 일하지 않는 최하층의 3D업종에서 주로 일하며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오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의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주노동자의 경제유발 효과는 86조7000억원에 달했다.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해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이주노동자를 불러들이고 고용한 것인데, 황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열악한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마저 강탈하려는 인종차별적 발상이다. 더욱이 외국인 노동자 임금을 인위적으로 낮추면 오히려 내국인 저소득층을 일자리에서 쫓아내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이러니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형평을 빙자한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 조장이라는 점이다.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집권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유럽의 극우 정당을 흉내낼 요량이면 잘못 짚었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내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인식은 보편적이지 않다. 결국 황 대표의 발언은 박약한 인권·노동 감수성에 인종차별적 인식, 거기에 경제적 무지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꼴이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반인권적 발언을 철회하고, 상처받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먼저 정중히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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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북한 주민 4명을 태운 채 강원 삼척에서 발견된 북한 어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북한 어선은 당초 발표한 대로 삼척 인근 해상이 아니라 삼척항 부두에 접안했다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는 것이다. 군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 어선은 지난 12일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뒤 14일 밤 삼척 동쪽 5㎞ 해상에서 엔진을 끄고 기다리다 해가 뜨자 삼척항으로 진입했다. 이어 북한 주민들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리려다 112에 신고됐다. 4년 전 북한군 1명이 동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초소까지 다가와 귀순한 일명 ‘대기 귀순’ 사건과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어선이 NLL을 넘어 3일간 돌아다녔는데도 감시망이 전혀 포착하지 못한 점이다. 당시 경비함과 P-3C 대잠초계기가 정상적으로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NLL 130㎞ 이남까지 내려온 이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삼척항 인근에 있는 영상감시체계가 이 선박을 1초간 2번 포착했지만 감시병들은 이를 지나쳤다. 해양수산청과 해경도 CCTV로 이 선박을 관측하기는 했으나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측 어선으로 오인했다. 망망대해에서 작은 어선을 찾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군과 해경의 해상·해안 3중 감시망이 한꺼번에 모두 뚫린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초 군 당국은 조사 결과 해상 및 해안 감시에 허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어선이 길이 10m, 폭 2.5m밖에 되지 않은 작은 목선인 데다 파도에 반사돼 관측할 수 없었다며 노후화한 관측 장비 탓을 했다. 또 선박이 움직이지 않아 다른 물체로 오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북한 선박은 28마력 엔진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계 실패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고 사건을 축소, 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19일 “경계작전 실태를 되짚어보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남북 간 긴장완화 조치로 가뜩이나 경계 태세에 우려가 큰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유감스럽다. 진상을 조사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해상·해안 경비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노후화된 관측 장비를 교체하고, 장병들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감시 능력도 키워야 한다. 허물을 덮으려는 군의 고질적인 병폐도 차제에 뿌리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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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과 관련, 한국과 일본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일본에 제안했다고 19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함으로써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일본이 이를 수용할 경우 일본 정부가 요청한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 1항 협의절차의 수용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일본에 전달했다”고 했다. 이를 일본 정부가 수용하면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강제동원 일본 기업과 포스코 등 한국 기업이 함께 출연해 만들어진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제공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 당시 법원행정처는 일제 강제징용 재판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정부의 이번 제안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을 지우기 어렵다. 대법원이 지난해 10월31일 신일철주금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외교부·법무부 등이 참여하는 차관급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한·일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여러 의견이 쏟아졌고, 이번 제안도 진작에 거론돼온 방안 중 하나다. 딱히 새로운 내용도 아닌 방안을 내놓는 데 8개월 가까이 걸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최근 한·일관계는 전방위로 파열음이 일고 있지만, 핵심 원인은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판결이다. 물론 이 문제는 사법부와 행정부의 입장이 엇갈린 사안인 만큼 대응하기가 까다롭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정리한 공식입장에 배치되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미온적이었다. 한·일 간 국장급 회담을 몇번 여는 시늉만 냈을 뿐 답을 미루면서 일본이 중재위원회 회부를 요구하는 사태에 이르도록 한 것은 유감스럽다.

이를 일본이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본 외무성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도 벌써부터 나온다. 하지만 한국이 처한 제반 여건들을 감안한다면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추가소송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반발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내놓은 제안인 만큼 일본도 대승적 견지에서 검토할 것을 당부한다. 이번 제안이 악화된 한·일관계 복원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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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여야 3당 원내대표에게 국회 정상화의 걸림돌이 돼온 ‘경제청문회’ 대신 토론회 형태의 ‘경제원탁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문 의장은 지난 18일 여야 3당 원내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 “각당 경제통 의원들과 민간 경제 전문가들이 참여해 경제상황에 대해 토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원탁회의를 해볼 수 있지 않느냐”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경제청문회 개최를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내건 채 꿈쩍도 하지 않는 자유한국당에 복귀 명분을 주는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두 원내대표는 찬성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일단 국회를 정상화한 다음에 논의할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그간 추가경정예산안 처리가 한시가 급하다고 비명을 질러온 여당이 이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문희상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 경향포럼 행사에 앞선 차담회에서 환담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지금 우리 경제는 벼랑 끝으로 몰린 상태다. 대외 경제여건은 악화되고 있고, 투자와 소비는 계속 위축되고 있다. 미·중 간의 무역전쟁이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경제의 하방 위험이 커졌다는 건 모두가 인식하는 바다. 이 마당에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굳이 국회 정상화의 조건이 아니더라도 ‘현인(賢人)회의’를 해야 할 현안들이 넘쳐나고, 여당이 앞장서 이런 자리를 만들자고 해도 모자랄 판이다. 아마 원탁회의가 성사되면 정부를 공격하며 정치공세를 펼치려는 야당에 멍석을 깔아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겠지만, 너무 경직된 생각이다. 여당은 지금 그렇게 시시콜콜 앞뒤를 잴 만큼 한가하지 않다. 

마지막 국회 본회의가 열린 지 75일째다. 이 정도면 휴업이 아니라 사실상 폐업 상태다. 정부는 4월 하순에 추경안을 국회로 넘겼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심사는커녕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주 52시간 근무제 등 국회에서 다뤄야 할 다른 민생법안도 수두룩하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라고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 국회 문을 걸어 잠근 채 말로만 민생을 챙기겠다는 건 위선이요, 기만이다.

정국을 풀 책임은 여당에 있다. 그래서 여권의 국정 책임은 무한대라고 하지 않는가. 때로는 마음에 차지 않아도 먼저 양보하고 포용하는 게 여당다운 태도이다. 대국적 차원에서 여당은 경제원탁회의를 수용하고, 한국당은 조건 없이 등원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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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문화재거리 부동산 매입으로 투기 의혹을 받아온 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법정에 서게 됐다. 서울남부지검은 손 의원을 부패방지권익위법 및 부동산실명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손 의원이 목포시청 관계자로부터 비공개 자료를 사전에 입수한 뒤 이를 활용해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봤다. 지난 1월 의혹이 불거진 뒤 손 의원은 이를 부인하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를 고소했다. 검찰은 그러나 일부 의혹이 사실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손혜원 의원이 지난 1월23일 목포 역사문화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검찰에 따르면 손 의원은 2017년 5월과 9월 목포시의 ‘도시재생 사업계획’ 자료를 확보한 뒤 이를 토대로 남편 명의의 문화재단과 지인으로 하여금 14억원 상당 부동산을 매입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 부동산 가운데 7200만원 상당 토지·건물은 손 의원이 조카 명의를 빌려 차명 보유한 것으로 판단했다. 손 의원과 관련된 부동산은 국토교통부가 지난 4월 확정한 ‘1897 개항문화거리’ 도시재생 뉴딜사업 구역에 모두 포함돼 있다. 검찰은 같은 자료를 활용해 부동산을 사들인 손 의원 보좌관, 문제의 자료를 빼돌려 부동산 투자에 이용한 지역 인사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다만 손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로서 문화재청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무혐의 처분했다.

18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손혜원 의원 사무실에 출입문이 닫혀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기소된 후 손 의원은 페이스북에 “다소 억지스러운 검찰 수사 결과 발표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재판을 통해 목포 부동산에 대한 차명 건이 하나라도 밝혀지면 전 재산 기부는 물론 국회의원직도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소가 곧 유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명확한 사실관계는 향후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손 의원의 입장 표명은 책임 있는 정치인답지 않다고 본다. 검찰 수사 결과의 핵심은 ‘업무상 취득한 비공개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부분이다. 손 의원은 그러나 여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5개월 내내 강도 높게 조사받은 분들, 고생 많으셨다”고 위로하면서 정작 주권자를 향한 유감 표명은 없었다.

손 의원은 재판 과정에서 무죄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정치도의적 책임은 분명히 해야 한다. 국회도 손 의원 기소를 계기로,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입법에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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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사고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2009년 5월23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조금은 느긋한 주말 기분에 젖어 침대에서 TV를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자막이 떴던 순간의 기억이다.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는데, 왜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내가 학교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의 학교에는 선진국에 비해 안전 인프라가 한참 부족한 상태에서 연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밤을 새우며 실험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간혹 일어난다. 그 장면을 떠올린 것일까. 정당정치와 사회적 합의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정치개혁을 위해 단기필마로 분투하다가 마침내 목숨을 버린 그를 보며 폭발사고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설명해야만 했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야만 했다.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 설명 말고, 정치개혁을 시도한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도록 하는 한국 정치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사회과학자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나 한 사람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다음날 선배 정치학자 한 분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16명의 학자들이 1년간 노무현 정부를 연구했다. 1주기를 맞아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2011년 책이 출판되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부검’이라고 하고 싶었다. 폭발사고를 연상케 한 섬광 같은 비극의 통보로부터 시작된 책의 취지에 걸맞은 제목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책은 다른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원래의 제목으로 남아있다. 책을 세상에 내놓고도 마음의 짐은 쉽사리 덜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조용히 그를 애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8년 만에 다시 열어보니, 이 책에 포함된 내 원고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두 번째 시도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인지,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그 시도는 또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는 첫 번째 시도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우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시도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었는데, 무심한 세월이 흘러 어느새 그 두 번째 시도가 진행 중이니 그걸 지켜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그때 나는 4대 개혁 입법의 실패로부터 세 개의 교훈을 도출했었다. 

첫째, 사회적 소수파 정권의 개혁 전략은 사회적 기득권 정권의 전략과 달라야 한다. 사회적 소수파 정권은 기업도, 언론도, 관료도 자기편으로 가지지 못한다. 기득권을 가진 야당은 굳이 ‘반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수파 정권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철옹성 안에 ‘주둔’하면서 적들이 지치고 분열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철옹성은 안보와 성장이다.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국회로 돌아와 ‘반격’하지 않고 종북타령이나 하면서 ‘주둔’하는 이유이다. 

둘째, 갈등의 전략을 고민하고 생태적 통제(ecological control)에서 벗어나야 한다. 갈등에는 야당을 상대로 하는 대외적 갈등과 당내에서 벌어지는 대내적 갈등이 있다. 철옹성 안에 주둔하기만 하는 적을 상대로 준비되지 않은 공격을 할 때마다 병사들은 지치고 마침내 대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열린우리당이 여러 개의 계파로 갈라져 요란하게 갈등했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갈등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생태적 통제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상대에게 너무도 분명히 알려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뻔히 밟아나갈 길목만 차단하면 쉽게 나를 통제할 수 있다. 과거 한나라당은 4대 개혁 입법의 본질에 대해 아무런 정면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장외집회를 이어가면서 경제를 망가뜨리고 북한에 종속된다는 거짓 선동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결국은 경제와 안보라는 길목을 거쳐가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지지세력을 찾을 수 있는 정책을 먼저 해야 한다. 진보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대부분 공공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꼭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공공성은 공공의 이해에 봉사하지 개인의 이해에 봉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지세력은 찾기 힘들고 반대세력은 쉽게 찾아진다. 개혁을 초창기에 하지 않으면 힘이 빠져 못한다는 말이 정말로 불변의 진리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탄탄한 지지세력을 조직해 나갈 수 있는 작은 정책부터 시작해서 임기 말에 돌이킬 수 없는 개혁을 이루는 것이 나은 전략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시도는 철저하게 전략적이어야 한다. 예측 가능한 개혁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냉정이 필요하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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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일 동안 닫혀 있던 국회의 문이 어렵사리 열리게 됐으나, 자유한국당의 끝없는 몽니 때문에 일단 ‘반쪽’ 정상화에 머물 판이다. 여야의 막판 협상이 접점 찾기에 실패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만으로 국회 소집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바른미래당 주도의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17일 국회에 접수했다. 소집요구서 제출 이후 3일이 걸리는 만큼 6월 임기국회는 오는 20일 개회된다. 여야 4당만의 국회 소집을 불러온 것은 전적으로 한국당의 책임이다. 한국당은 여당과 협상하며 이견이 좁혀질 때마다 새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절충 기회를 차단해왔다. 지난주엔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재구성을 등원 조건으로 내걸더니, 이번엔 난데없이 ‘경제실정 청문회 개최’를 새로 내세웠다. 추가경정예산안을 50일 넘도록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추경의 필요성을 따지기 위한 경제청문회를 열자는 건 국회 정상화는 안중에도 없는 정치공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 경제위기와 실정 등을 따지고 싶으면 해당 상임위와 대정부질문, 예산결산특위에서 현안 질의 등을 통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파행 국회를 규탄하는 범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한국당이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챙기기 위해 정상적인 국회 운영에 훼방을 놓고 있다며 선거제와 국회의 개혁,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촉구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한국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경제 청문회 개최와 함께 ‘패스트트랙 원천 무효와 사과’를 등원 조건으로 못 박았다. 한국당이 정쟁에만 골몰하는 상황에서 여야 4당만의 국회 소집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다만 국회가 열리더라도 한국당이 반발할 경우 추경안과 민생법안 처리에 난항이 불가피하다. 자칫 국회를 소집해놓고도 본회의 한 번 열지 못한 4월 임시국회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특히 한국당의 어깃장으로 6월 국회에서마저 추경안 처리가 불발되면, 추경 효과는 급속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여야 4당은 국회를 열어 놓지만 말고 상임위와 특위 활동을 통해 민생 현안을 보살피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황교안 대표는 의총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투쟁을 쉽게 양보할 수 없다”고 강경 노선을 주도했다. 사사건건 반대와 강경으로 일관해 정부·여당을 궁지로 내몰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착각이다. 정략적 이해에 매몰되어 민생과 경제를 외면하고 국회를 방치한다면 심판의 화살은 한국당을 향하게 될 터이다. 국민 10명 중 8명이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지지할 정도로 들끓는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정녕 황 대표 말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투쟁정치를 접고 이제라도 ‘개문발차’한 국회에 동승해야 한다. 민주당도 대화의 끈을 놓지 말고 한국당을 설득해 국회를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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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했다. 윤 내정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을 지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중앙지검의 국정농단·사법농단 수사를 지휘하는 등 ‘적폐청산 수사’의 상징으로 각인돼온 인물이다. 특히 그는 문무일 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5기수 아래다. 검찰 관행에 비춰보면 윤 내정자보다 선배인 고위간부 상당수가 용퇴할 가능성이 크다. 파격적 총장 발탁이 검찰 조직의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윤석열’은 그에 대한 호오를 불문하고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검사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이라는 브랜드를 선택함으로써 선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첫째, 적폐청산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만큼 적폐청산 기조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돼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윤 내정자 지명을 통해 적폐청산의 고삐를 늦출 뜻이 없음을 확인했다. 둘째, 검찰의 변화와 쇄신 필요성이다. 법조인이자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인 문 대통령은 검찰의 생리를 잘 안다. 지금까지 유지돼온 총장 인사 관행을 깨뜨림으로써 인적쇄신을 포함한 대대적 개혁을 견인하겠다는 뜻이 드러났다.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 중앙지검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윤 내정자도 자신이 발탁된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차기 검찰총장의 최우선 과제는 검찰개혁의 완수다. 윤 내정자의 검찰개혁에 대한 구체적 견해는 아직 드러난 바 없다. 그는 특수부 검사 시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권 분산 방안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장 지명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관련 질문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국회 청문회에서 윤 내정자는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내부 반발을 넘어 개혁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입증해야 한다. 보수야당의 ‘코드 인사’ 비판과 관련해서도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윤 내정자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윤 내정자가 인사청문절차를 통과한다면, 6년 전 밝힌 소신대로 검찰을 특정세력·인사가 아닌, 주권자 전체에게 봉사하는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검찰주의자’로서의 과거와 결별하고, 시민의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이는 ‘새 검찰의 초대 총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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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요즘 여권이 돌아가는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다. 국정의 주요 축인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여당을 대신해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권을 공격하며 정치 전면에 섰다. 대통령 최측근의 행보는 여당 대표보다 도드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에 열린 공간은 넓지 않아 보인다. 막말과 퇴행적 행태로 일관하는 한국당은 논외로 치더라도, 최근 여권을 지켜본 단상은 이렇다. 

청와대는 최근 작심하고 한국당과 대립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야당 상대는 여당의 몫인데도, 국회를 담당하는 청와대 정무라인이 연이틀 전면에 섰다. 강기정 정무수석은 12일 민주당·한국당 정당해산 청구를 요구한 국민청원에 “총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하다는 국민의 질책”이라고 했고, 복기왕 정무비서관은 13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을 요구한 국민청원에 대해 “국회의원만 견제받지 않는 나라가 특권이 없는 나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인가”라고 했다.    

국회 파행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것일 수 있지만, 청와대의 잇단 발언은 국회 정상화 협상을 주도하는 여당 지도부에 타격을 입혔다. 강 수석은 14일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찾아 “소통이 부족했다면 더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야당을 궤멸 대상, 심판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한국당 심증은 더 굳어졌다. 한국당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정무감각이 결여된 것이다. 만약 한국당 주장대로, 두 사람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이라면 그건 더 심각하다. 고위 공직자가 국정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행보는 여당 내부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는 지난 5월14일 첫 출근길에 문 대통령과 연락했느냐는 물음에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면서도 “이심전심”이라고 했다. 이전 정권의 대통령 측근이라면 속사정이야 어떻든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에서 말을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양 원장은 굳이 “이심전심”이라는 말을 꺼냈다. 이후 민주당 지도부의 언행보다 ‘대통령 최측근 양정철’의 일거수일투족에 여권 안팎의 시선이 쏠리는 상황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28일 (출처:경향신문DB)

행보도 거침이 없다. 그는 국가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과 공개 회동했고, 전국을 돌며 유력 주자인 광역단체장들을 만나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민주연구원과 전국 광역지자체 연구원의 업무협약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여권에서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서훈 국정원장과도 만났다. 사적 만남이라는 해명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의 행보 탓에 이 만남은 실체보다 더 큰 논란을 초래했다. 민주연구원을 ‘총선병참기지’로 만들겠다는 그의 일성은 ‘연구원 주도의 물갈이’가 있을 거라는 여권 내부 웅성거림을 키웠다.   

작금의 상황들이 반복되는 한 여당 위상은 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다. 설사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권위와 신뢰성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야당은 국회가 교착될 때마다 청와대만 바라볼 것이다.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 측근의 그림자에 묻히는 상황도 심상치 않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이전처럼 정치적 파급력이 없고, 오로지 독한 말로 한국당을 공격할 때 인용될 뿐이다. 의원들은 사석에서 이 대표의 말이 아닌 양 원장이 던진 발언들에 대한 독해를 시도할 정도다.   

물론 이런 상황은 민주당이 자초했다. 대통령 지지율에 업혀가느라, 자생력을 키우지 못했다. 청와대 심기만 살폈다. 개각 참사에 청와대의 안일한 현실인식에도 용기 있게 직언한 사람은 없었다. 양 원장 행보에 대해서도 뒤에서 수군거릴 뿐 누구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못한다. 여당 관계자는 “누가 지금 양비(양 원장)를 말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수 의원들은 한국당의 비정상적 행태만 조롱하면 총선까지 문제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현실인식에 젖어 있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다. 여당의 왜소화는 간과할 수 없다. 여권의 신경은 여당의 비정상적 상황이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에만 온통 쏠려 있겠지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입법활동으로 청와대·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제구실을 못한다면 국정은 흔들리게 되고, 그 피해는 정권을 넘어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금 여권의 시급한 과제는 여당의 위상 재정립을 고민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정치의 영역에서 여당을 더 존중해야 하며, 양 원장은 대통령 최측근의 무게를 새겨야 할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에게 지금의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깊이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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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협상이 최종 단계에서 좀처럼 타결되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지난주 이른바 ‘경제청문회’ 개최를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내놓은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그 전주엔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재구성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다 양 특위의 활동기한 연장 여부가 국회 정상화 이후 추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선(先) 경제청문회, 후(後) 추경 심사’를 고집하는 것이다. 협상 타결을 위한 진지한 접근으로 보기 어렵다. 이쯤 되면 한국당이 정말로 국회 정상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자신이 있다면 경제청문회부터 먼저 국민들에게 보여드리고, 그다음에 추경 심사에 돌입하자”고 했다. 국회가 청문회를 열어 현안을 따지는 건 필요한 일이다. 최근의 경제현실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대외 여건 악화와 국내 투자·소비 위축 등으로 심상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국회가 열리면 기획재정위 등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부처 보고와 현안 질의를 통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그게 국회 본연의 임무이기도 하다. 한데도 한시가 급한 추경 논의를 뒤로 제쳐 두고 난데없이 경제정책의 공과를 살펴보자는 건 누가 보더라도 엉뚱한 정치공세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16일 오전 국회에서 경제청문회를 요구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는 4월에 이어 5월에도 단 한번 열리지 못한 채 6월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 이 정도면 휴업이 아니라 사실상 폐업 상태다. 20대 국회 법안처리율은 28.9%에 불과하다. 최악의 국회로 불린 19대 국회 처리율이 34.2%였던 것에 비교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부끄러운 성적표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말로는 민생을 챙기겠다면서 국회 문을 걸어 잠근 채 장외에서 정부 비판만 하고 있다. 시민들의 인내도 한계를 넘어섰다. 성난 민심은 부적격한 국회의원을 임기 중 소환해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소환제에 80% 넘게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야당의 투쟁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반대할 건 반대하더라도 국가적 위기 앞에 힘을 모아야 할 때도 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지금 여야가 힘을 합쳐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번 주말까지 국회가 문을 열지 못하면 한국당을 빼고 여야 4당으로만 국회를 소집하겠다”고 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회 중앙홀에서 단독 소집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이제는 더 기다릴 수 없다. 여야 4당은 한국당을 빼고라도 국회를 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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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한 여야 간 협상이 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 최대 난관인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서 절충점을 찾아 합의문까지 쓰는 단계에서 협상이 틀어졌다. 자유한국당이 추가경정예산의 필요성을 따지기 위해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13일 이런 논리를 내세우며 국회에서 ‘재해 및 건전재정 추경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다 성사된 국회 정상화 합의까지 틀어버리는 제1야당의 처사에 말문이 막힌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6월13일 (출처:경향신문DB)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경제청문회를 열어 무엇이 문제인지 소상히 밝히고,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정책 집행자의 자격도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명백한 모순이다. 정부가 경제를 운용하는 것은 맞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정부가 하려는 일에 일부라도 협조했다면 여당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경제가 ‘폭삭 망했다’면서도 추경은 논의조차 거부했다. 직접 민생을 챙긴다며 국회 밖으로 돌았다. 이제 와서 왜 추경이 필요한지 따지기 위해 경제청문회를 열자고 하니 말이 안된다. 한국당이 갑자기 청문회를 요구하는 속셈은 뻔하다. 청문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한껏 비판한 뒤 그것을 명분 삼아 등원하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미 국회를 외면할 수도, 추경을 거부할 수도 없게 돼 있다는 것은 온 천하가 안다. 국회에 등원해야 한다는 압박이 당내에서도 커지고 있다. 장외투쟁의 역풍에 밀려 등원하면서 명분까지 챙기겠다는 것은 시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 합의를 틀어놓고 “청와대가 야당을 조롱하고 압박하면서 재를 뿌리고 있는데 어떻게 국회를 열 수 있겠느냐”고 또다시 남 탓을 했다. 한국당은 지금 등원에 조건을 내걸거나 명분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국회가 공전하는 데 실망한 시민들이 한국당 해산 청원에 이어 국회의원 소환제를 거론하는 판이다. 한국당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이다. 아무리 제1야당이라고 해도 정부 비판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그게 건강한 여야관계이고, 민주주의다. 중재를 맡아온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이번 주말까지 국회를 열지 못하면 단독소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더 이상 민생을 외면하지 말고, 남 탓도 하지 말고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민생을 팽개쳐놓고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말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도 야당 설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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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편과 의원정수 확대가 지금 정치개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꽉 막힌 정치에 변화를 줄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이 선거제는 지금 정치권의 가장 날카로운 논쟁점이다.

세대·지역·계층을 불문하고 균열 중인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게 있다면 “정치, 이대론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같아선 어떤 문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절감(切感) 때문이다. 정치는 지금 모든 실패와 악덕의 상징처럼 존재한다.

지난달 패스트트랙 정국은 ‘동물국회’의 아수라장을 다시 불러냈다. 이후 국회는 간판만 걸린 ‘빈집’이다. 추가경정 예산안은 13일로 딱 50일째 멈춰 서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가 모두 ‘불확실성’의 나락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다.

제1야당은 밖으로만 돌며 지지층 규합에 골몰 중이다. 여당은 ‘단독국회’를 으를 뿐 속수무책이다. 외려 야당은 “(단독국회를) 청하지 못하지만 바라는 바”(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라고 야유한다. 멀어지는 여야의 거리만큼 지지층의 적대감도 커졌다. 정치인들은 이 적대감을 동력으로 삼아 더욱 ‘악’하게 싸운다. 적대는 혐오로, 혐오는 ‘죽기 살기’식 저주의 정치로 악화됐다.

한국정치의 비극은 국회 5분의 4를 두 정당이 점령한 ‘양극화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이런 양극화 구조를 만들고,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1 대 1 다툼’에 지지층을 붙들어맬 편가름에 매달리고, 자신들 득점보다는 상대 실점에 기댄다. 애초 ‘협력 정치’의 싹이 트긴 쉽지 않다.

공통분모가 ‘지금 정치론 안된다’라면 출발점도 그곳이다. 정치의 구조·제도·문화를 모두 바꿔야 한다. 야당이 되면 “제도 탓이 아니다. 운용이 문제”라고 하지만, 매번 입장만 바꿔 반복되는 것을 보면 맞지 않다. 제도는 문화를 만들고, 문화는 그 제도를 운용할 사람을 결정한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제도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제도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이 시기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가 다를 뿐이다. 권위주의 정권 동안 민심이 직접 반영되는 통로로서 지역구 다수대표의 장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원화된 이해관계를 담기엔 역부족이다. 마치 3차원 입체영상 시대를 살면서 흑백TV 시절에 갇힌 꼴이다.

특히 표심과 의석의 불일치는 제도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소외와 불만, 갈등을 만든다. 지역에 따라 40% 가까운 표심이 정치적 대리인을 내지 못하는 사표가 된다면 그들은 ‘불만스러운 다수’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처럼 지지층도 극단화하는 이유다.

선거제 ‘개혁’의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할까. 지금 정치의 소명은 ‘통합’이다. 양극화하는 정치를 다극화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다당제 안착 필요는 그래서 생겨났다.

문제는 비례대표 확대는 지역구 축소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 기득권의 벽은 선거제 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선거구 획정의 과거사를 보면 의석 하나를 놓고 사생결단하는 게 정치인들 생리다. 국회 의석을 줄이면 선거제 변화에 동의한다는 한국당 입장은 그래서 거짓이다. 의원들의 기득권 욕망을 부추겨 좌초시키겠다는 ‘떼쓰기’에 가깝다.

정치를 바로잡을 책임과 권리, 힘은 오직 주권자에게 있다. ‘이대론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정치적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소진하고 만다면 주권자의 ‘직무유기’다.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바꾸는 일에는 딱 주권자들이 명령한 만큼만 움직인다.

주권자들이 막힌 정치의 숨길을 열어줘야 한다. ‘의원정수 확대’ 결단을 고민해야 한다. 정수 확대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권리와 책임을 삐뚤게 사용하는 제도의 결함이 문제다. 주권자들은 의원정수와 함께 권한과 책임의 수정도 명령해야 한다. 권력을 줄이고, 책임을 더하는 급부가 따라 붙어야 한다.

국민소환제는 그 대표적인 예다. 정치인 언행에 대한 주권자들의 책임 추궁이 명료해진다면, 거짓·막말·선동과 같은 황폐한 정치는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국회 전체 권력의 크기가 동일하다면 정수 확대는 개별 의원의 권력을 줄이는 일이다. 주권자들은 ‘정당해산’을 청원하기보다 의원정수 확대와 국민소환제 도입을 청원했어야 했다. 

문제는 남는다. 지금의 정당 문화를 감안하면 의원정수 확대에 걸맞은 공명한 공천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는 두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이라면, 용기를 내 시작해야 한다. 시작조차 않으면 변화하고 발전시켜 나갈 기회조차 없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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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는 매월 초 정례 모임을 갖는다. 1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일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이날 서울 남영동 옛 대공분실에서는 6·10민주항쟁 제32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황 대표는 이자리에도 불참했다. 대신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표현의 자유’ 억압 실태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에겐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의나 민주화의 전기를 이뤄낸 시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보다 자당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하는 게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지금처럼 언론과 야당이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향해 저주와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낸 적이 또 있었을까 생각하면 이른바 ‘표현의 자유’ 토론회는 그다지 시급한 자리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황 대표는 지난달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무리한데 이어 민생투쟁 시즌2 행보를 시작했다. 지난번에 중도층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고 보고, 이번엔 여성·청년층을 주 공략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말이 민생투쟁이지, 오로지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뿐이다. 의미 있는 대안을 내놓고, 어떻게 예산을 뒷받침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황 대표는 지난 주말 “정부가 민생을 팽개치고 정치 놀음할 때 우리가 민생을 챙겼다. 민생대장정을 누가 했는데 이제 와서 민생을 팽개친 사람들이 들어와서 민생을 챙기라고 한다”고 했다. 황 대표가 장외투쟁을 통해 무슨 민생을 어떻게 챙겼다는 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회는 국회법이 규정한 ‘매 짝수월 임시국회 개회’도 지키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안은 47일째 심사조차 못하고 방치돼 있다. 그밖에 민생안정과 경제활력을 위한 법안도 산적해 있다. 헝가리 유람선 사고 대응,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 대북 식량지원 등 시급한 현안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데도 3월 임시국회 이후 본회의를 한 번도 열지 못한 입법부 부재 상태가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안팎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빨갱이’ ‘천렵질’ 같은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당 말대로 정부 정책이나 추경안에 문제가 있다면 야당이 이를 따지고 고치는 건 당연하다. 국회는 그러라고 있는 장(場)이다. 국회법에 명시된 회의조차 거부하며 바깥에서 민생을 거론하는 건 위선이요, 기만이다. 이도저도 다 하지 않겠다면 제1야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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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 민주연구원장을 글감으로 하느냐 하겠지만, “대통령과 연관되는 상징성과 영향성, 상관관계가 너무 커서” 그(양정철 민주연구원장)에 대해 쓴다.

돌이켜보면 그의 퇴장은 강렬했다. 그의 “숨을 콱콱 막히게 하는” 복심, 왕의 남자, 실세, 최측근 같은 권력의 수식이 무엇이든 변치 않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거리가 제일 가까운 측근이라는 사실이다. 결코 정치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떠밀어 호랑이 등에 태워,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을 있게 한 주역이다. 그런 그가 정권 출범과 동시에 조건 없이 퇴장을 선언한 것은 신선했고 아름다웠다. 정권마다 비극으로 점철된 측근정치의 사슬을 끊어내는 용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주인이 된 지 이레가 되는 날 새벽 기자들에게 발송한 ‘제 역할은 여기까지 입니다’라는 문자메시지의 진정성을 제척할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잊혀질 권리를 달라”며 떠나 2년 동안 대통령 근방에도 얼씬거리지 않고 해외를 떠돌며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두어온” 처신으로 입증해 보였다.

왜 그리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두려 했을까. 세 가지 이유를 자기 언어로 정리한 적이 있다. 오래 모셨던 사람들이 곁을 내줘서 새 사람들이 끊임없이 수혈될 수 있는 인적 구조를 만들고, ‘친노 패권’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대통령과 가깝고 특별하게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는 내가 비록 덜 중요하고 덜 높은 자리를 맡아도 결국은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부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2018년 1월 한겨레신문 인터뷰). 집권 전반기 친노 패권, 측근정치, 비선, 인의 장막 프레임이나 논란이 등장하지 않은 건 그와 이호철 등 최측근들의 희생적 퇴장에 힘입었다.

그의 복귀 역시 강렬했다. “5년 백수” 다짐을 거두고, “정권교체의 완성은 총선 승리”라는 출사표를 앞세워 민주연구원 사령탑으로 돌아온 그가 일으킨 정치적 소용돌이가 세차다. 야인 양정철의 일거수일투족도 뉴스거리였는데, 정치 무대로 돌아온 그에게 각광이 쏟아지는 건 필연이다. “지인과 함께한 오래전 약속인” 국정원장과의 만남이 사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그이기 때문일 터이다. “총선 병참기지” 민주연구원장 양정철이 한 달 새 보여준 행보는 실로 광폭이다. 

압축하면 이렇다. 민주연구원장 취임 이틀 만에 국회의장을 독대했다. 그 이틀 뒤엔 광화문 시민문화제에 참석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직접 차기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 그 사흘 뒤엔 서훈 국정원장과의 만남이 있었다. 지난 3일에는 민주연구원과 광역지자체 연구원들과의 업무협약 행사를 계기 삼아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를 따로 만났다. 10일에는 경남 창원을 찾아 ‘이심전심의 동지’ 김경수 경남지사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지자체 연구원과의 정책협약이 민주연구원의 역할을 벗어난다고 보지는 않는다. 업무협약 자체가 아니라 ‘민주당의 정치 참모’(이재명 경기지사) 양정철이 대선 예비주자들과 줄지어 만나는 것이 자극적이다. 인사치레일지라도 박원순 시장에게 “우리 민주당의 주요 자산”이라고 대놓고 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분명 권력은 ‘크기’가 아니라 ‘거리’에서 나온다. 정치적 존재감과 위상을 이토록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보이기도 힘들다. ‘원외대표’라는 별칭이 단지 비난과 시샘의 산물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해외 유랑 시절 자신의 존재가 문 대통령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곁’을 지켰지만 대통령 문재인과는 ‘거리’를 지켰던 양정철은 다시 곁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청와대만이 곁이 아닐 게다. “정권교체의 완성인 총선 승리를 위해 피하고 싶은 자리를 맡았다”고 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자리였다는 건 그만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일 터이다. 당장에 그가 물러남으로써 죽였던 패권, 측근정치 프레임을 회생시킬 수 있다. 국정원장과의 만남을 위시해 일련의 대선주자 줄만남이 과도한 시비를 일으키는 게 함의하는 바가 있다. ‘양정철’이라는 존재만으로 “비정상적 시선”이 쏠리고,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주의하는 것일 수 있다. 그의 동선과 행보에 대통령이 대입되고, 연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가 말한 대로 대통령 측근의 팔자다. 측근정치에서 위세와 충정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모질게 두어온 권력과의 거리를 접고, 대통령 곁으로 돌아온 ‘양날의 칼’은 경계가 무디어지는 순간 내부를 베기 십상이다. 본디 권력이란 칼에는 날이 있을 뿐 손잡이가 없는 법이다. 끝내 돌아온 지금이야말로 “이전 정부와 대통령 측근들을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글에서 큰따옴표로 인용한 것은 모두 인터뷰 등에서 나온 양정철 원장의 말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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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