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562건

  1. 2019.08.20 [사설]또 장외투쟁, 황교안 대표의 ‘대권놀음’일 뿐이다
  2. 2019.08.19 [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내게 ‘보수냐 진보냐’ 묻는 이들에게
  3. 2019.08.19 [산책자]‘자발적 사과’는 없다
  4. 2019.08.19 [아침을 열며]애국과 민족주의의 이면
  5. 2019.08.19 [정동칼럼]젊은 지도자를 찾습니다
  6. 2019.08.19 [사설]조국 후보자 꼬리 무는 의혹, 명명백백 밝혀져야 한다
  7. 2019.08.19 [사설]김대중 10주기, 한·일관계 ‘DJ·오부치 선언’ 되새기자
  8. 2019.08.16 [이중근 칼럼]군, 틀을 깨는 안보 전략이 필요하다
  9. 2019.08.16 [사설]문 대통령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만들겠다”
  10. 2019.08.16 [사설]‘한·일관계 리셋’의 출발점이 될 광복절을 맞이하며
  11. 2019.08.16 [경향의 눈]일본 본색
  12. 2019.08.14 [기고]양비론을 경계해야 할 시간
  13. 2019.08.14 [기고]미국의 인적자원관리에서 배우는 교훈
  14. 2019.08.14 [특별기고]아, 다시 맞는 8·15 해방의 그날
  15. 2019.08.14 [정동칼럼]위안부 참상 널리 알릴 ‘영문 증언집’
  16. 2019.08.14 [사설]1400회 맞은 ‘수요시위’, 집회 넘어 세계 인권의 상징으로
  17. 2019.08.14 [사설]‘5공 공안검사’ 황교안의 조국에 대한 시대착오적 색깔론
  18. 2019.08.13 [양권모 칼럼]왜 유승민일까?
  19. 2019.08.13 혼돈의 시장과 정치의 역할
  20. 2019.08.13 [사설]한국의 맞대응 조치 발표, 일본이 자초한 일이다

자유한국당이 24일 광화문 집회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장외투쟁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3개월 만에 장외투쟁 재개를 선언한 황교안 대표는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광화문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장외투쟁을 지속해서 열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국민의 경고를 전하겠다”고 밝혔다. 황 대표가 지난 14일 대국민담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며 경고한 ‘특단의 대책’이 고작 장외투쟁이라니 명분과 실효를 운운하기에도 낯뜨겁다. 무엇보다 황 대표 스스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면서, 국회에서 초당적인 대책과 해법 마련에 천착하지 못할망정 다시 거리로 뛰쳐나가겠다니 무책임한 처사다. 정녕 실력과 열정이 있다면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 설득력 있는 대안 제시는 국회라는 마당에서도 능히 가능하다. 더욱이 그 견제와 비판의 ‘운동장’이라 할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대표와 주요당직자들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6일 오후 '긴급 국가안보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오른쪽부터 세번째)가 16일 청와대 앞 분수대 근처에서 개최한 ‘긴급 국가안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사

지난 4월 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항의해 두 달 넘게 전국을 돌며 장외투쟁을 벌여 국회 기능을 마비시켰던 한국당이다. 미뤄진 민생 현안과 일본의 경제보복, 미·중 무역분쟁,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에 따른 대책과 입법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또다시 장외로 나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강력한 투쟁”을 하겠다니 한국당은 대체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생과 안보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정부 실정에 기대어 반사이익만 꾀하고 지지층 결집에 골몰하는 것은 ‘황교안 대권놀음’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황 대표는 당과 자신의 지지율 하락에 따른 리더십 위기를 돌파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려 장외투쟁 카드를 꺼냈을 터이다. 당내에서 나온 지적처럼 “거리투쟁 이외엔 다른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원외 대표의 한계”다. 한국당 지지율이 황 대표 취임 직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황에서, 지난번 장외투쟁 와중에 ‘맛본’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이 어른거릴지 모른다. 자극적인 색깔론과 ‘반문 깃발’에 목매는 장외투쟁으로 일시적이나마 지지층을 결집시켜 상승 효과가 나타났지만 이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3개월도 못 가 주저앉은 지지율이 징표다. 정책 대안과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투쟁’만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낡은 장외투쟁은 황 대표의 대권놀음에는 잠시 마취효과가 있을지언정, 수권정당으로서 한국당에 대한 한 가닥 남은 기대마저 접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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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근무 시절, 칠판에 “소신 없는 판사가 되자”라고 써 놓은 일이 있었다. 방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그걸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판사는 대쪽 같은 소신을 가져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소신 없는 판사가 되자니 웬 말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판사가 한번 소신이라는 똬리를 틀고 앉아 있으면 그것만큼 고약한 일이 없다. 소신이라는 이름 아래 사건을 선입관이나 편견으로 보게 될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소송이나 납세자가 세무서를 상대로 하는 소송에서 어느 일방이 늘 잘못을 저지르거나 나쁘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판사가 사건의 결론을 낸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너는 보수냐, 진보냐?” 글쎄, 그런 단선적 질문에 단순한 답을 내놓기에는 내 머리가 좀 복잡하다. 아니다, 고쳐 말해서 이 시대의 현실이 지독하게 복잡하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의 정치적 성향을 정의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곤란하다. 우선 북쪽에 왕정의 변종에 가까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내 보기에는 그들이야말로 보수적이고 때로 반동적이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말이 내포하는 복잡성과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누가 내 견해에 찬성하겠는가. 이런 분석은 어떨까. 정치학 원론의 풀이에 따라 박정희의 이념적 성향을 보면, 그는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구조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개입에 의한 급진적 개혁을 꾀하였으니 진보적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견해에 동조할 사람도 많지는 않을 듯싶다.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회의에서 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세력이 정치사상사에서 좌파로 분류된다면, 선뜻 이해가 되겠는가. 이렇게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단순명료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보수나 진보라는 낱말을 쓸 때, 그것은 당장의 편의를 고려한 것일 뿐이다. 어느 누구의 특정 문제에 대한 견해나 행위가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를 가르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라고 규정짓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은 그를 어느 개념의 범주에 넣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나 타인을 한쪽으로 밀어넣고, 거기에서 연역하여 자기의 말과 행동을 결정짓거나 남의 말과 행동을 평가한다면 과연 그게 옳을까. 더욱이 우리의 불행한 역사적 경험을 생각하면, 누군가를 좌파나 우파로 일컫는 일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좌파란 말은 해방정국에서의 좌우익 대립을 연상시키고, 그에 이어지는 한국전쟁이라는 처절한 비극과 이에 대한 책임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빨갱이’는 물론이고 좌파라고만 불려도 벌써 안전치 않은 것이다. 반대로 엄혹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에게, 우파란 말은 사실 여하를 차치하고 독재에 부역하거나 동조한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진영논리란 바로 자신이든 남이든 누군가를 이런 분류방식에 따라 규정짓는 태도다. 그 태도는 무지스럽다. 한·일 경제전쟁에서 일본이 도발해 오기 전 대일청구권 문제에 관한 정부의 조치가 미숙했다는 견해에 동조하면 보수적이고, 반대하면 진보적인가. 거꾸로, 이 문제를 놓고 보수주의자라면 정부를 비난해야 하고 진보주의자라면 정부를 옹호해야 하는가. 대북관계, 경제정책, 노동문제, 교육정책 등의 모든 이슈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고유한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견해를 달리한다. 이것을 보수와 진보의 틀로만 이해하거나 결정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종북좌빨이니 강남좌파니 극우꼴통이니 하는 말을 동원하며, 그 말을 듣는 본인이 수긍하지 않을 분류법을 남에게 들씌우는 사람들의 의도는 뭘까. 특히나 강남좌파라는 말에서는, 흑인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백인을 ‘니거러버(‘깜둥이를 좋아하는 자’라는 뜻의 비칭)라고 부르며 빈정대던 인종주의자들의 음험한 악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유의 악성은 오늘날 상당수 인터넷 댓글의 무지막지한 파당성에도 나타난다. 보수를 자처하는 자들의 댓글이 북한 언론매체의 말투를 닮아 있어 실소하였던 일도 있다. 그렇게 양쪽의 댓글들은 상대 진영의 흠집 내기와 욕설로 가득 차 있다. 진영논리란 그런 것이다. 스스로의 정견과 양식을 부정한다. 그 근저에는 자기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증오심이 자리 잡고 있다.

어쩌면 정작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 보수주의자 됨의 뜻도 모를 것 같은 자들이 보수적 견해라면서 무식한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모습이 그렇다. 자기희생이나 공적 책임감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상스러움이 보수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삐뚤어진 냉소주의와 증오심에 빠져 있거나 싸가지 없고 부도덕한 자가 진보를 자처하는 모습도 한심하긴 매일반이다. 병역을 면한 이유가 아무리 보아도 수상쩍은 자가 보수라며 설치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우습게 아는 자가 진보라고 나서는 현실을 보라.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지지층의 결집이나 자기 진영의 이해관계다. 그리하여 허튼 말만 제멋대로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세상엔 회색지대의 지성과 양심이 있음을 기억하라. 정치적 성향에서의 연역적 사고를 버리자. 인간과 사회와 문명은 단순하지 않다. 생긴 대로 보라. 덧붙이건대, 어느 쪽이든 이념적 증오는 반지성적이다. 그리고 악이다. 증오는 개인과 사회를 모두 소진케 한다. 그러기에는 오늘 우리의 처지가 너무 절박하지 않은가.

<정인진 |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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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못할까. 이런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독일의 사례가 불려 나온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반성하고, 교과서에 낱낱이 기록해 교육시킬 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를 역사 기억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을 모셔놓고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치고 있다. 이 극단의 대비가 주는 인지적 충격은 꽤 크다.

그런데 독일이 처음부터 순순히 과오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전후의 폐허에서 패전국 국민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물리적 생존과 정신적 회복이었다. 이윽고 전범 재판이 열렸을 때 독일은 범죄 내용을 최소화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최호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검사 측이 제출한 기소 항목에 있던 ‘제노사이드 범죄’ 부분이 심리에서 빠졌다. 몇 년 뒤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범 재판에서는 기소 항목에서 ‘반인도 범죄’가 독립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고 전쟁범죄 항목에 예속됨으로써 “우리는 적어도 독일보다는 낫다”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조성했다. 이 과정까지는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게 된 것일까. 196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재판 이후부터 기류가 달라졌다. 독일 국민은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이가 지극히 평범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데 충격을 받았다. 이 ‘악의 평범성’ 앞에서 비로소 책임은 몇몇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자각이 싹텄다.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더욱 현실적인 여건이 존재했다. 독일에선 전범세력과 전후 집권세력 간의 단호한 단절이 가능했다. 사실 히틀러는 바이마르공화국 정치 엘리트 입장에서 보자면 ‘듣보잡’이고 지극히 예외적인 일탈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당시 서독과 동독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히틀러와 그의 세력을 죄악시하고 바이마르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성행했다.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집단은 전통 사무라이 계급의 후손들이었다. 처음엔 일본 또한 광적인 군인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떠안겨보려 했지만, 이 쇼와 육군은 극소수만 처형되었을 뿐, 대부분 전후에도 살아남았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심지어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는 복역을 마치고 나와 총리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지정학적 이유다.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의 품에 안겨 아시아 대륙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미국의 품에서 미국몽을 꾸다가 한국에 전쟁이 나자 잠시 일어나 미국의 손을 잡고 외화벌이를 해서 돌아왔다. 한일협정 때 한국이 받았다는 그 3억달러에 해당하는 10년 할부 생산물과 용역보다 수십배는 더 달콤했을 그 돈을 기반으로 일본은 다시 일어섰다. 그 뒤로는 경제성공의 신화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반성할 이유가 없었고 요구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가라타니 고진은 ‘아(亞)주변’이라는 개념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고유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원인을 설명했다. 조선은 중국과 붙어 있어 ‘주변’이 되어 중심국의 지배원리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본은 시쳇말로 사정거리 밖에 있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구조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독일을 보자. 프랑스, 폴란드, 벨기에 등이 국경을 맞댄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조건이다. 프란치스카 세라핌 보스턴대 교수는 “무엇보다 독일은 전후 재건에서 프랑스, 벨기에와의 국경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먼저 화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1949년 이후 미국이 신생국 이스라엘을 지지함으로써 독일이 1953년부터 대규모 배상 지급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맥락”이 되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불가피하고도 자발적인 방식으로 아시아 대륙과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는 끝까지 요구해야 하고 견고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 청산의 정치는 향후에도 양국의 외교적 중심 의제에서 멀어지기 힘들다. 다만, 양심에 따른 반성과 사과에서 이제 일본은 너무 멀어졌다는 판단이다. 최근 방한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와다 하루키의 인터뷰에서 반성의 동력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유독 나뿐일까. 평론가 이명원이 말했듯,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야기한 문제는 ‘한·일 양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라는 점에서 보자면 그렇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경제학적이고 문화적인 힘과 상황의 논리를 조성하는 것이다. 비록 가까운 시일에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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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은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전범 기업 대부분을 변호한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해외 먹튀 사건, 쌍용차 회계조작 사건에서 각각 옥시, 론스타, 쌍용차 등을 대리했다. 자본과 기업 편이다. 국적을, 애국을 따져 물을 일도 아니다. 돈만 벌면 된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방식이다.

누군가는 국적과 애국을 내세운다. 갑질과 불공정 행위로 악명 높던 이랜드는 애국 마케팅 홍보에 들어갔다. ‘태극 물결 챌린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태극기 게양 사진을 올리면 건당 815원을 독립유공자유족회에 기부하는 이벤트다.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이 기업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긴다는 공덕역 부근 경의선 용지 상업 개발을 포기하는 ‘좋은 일’을 할 리도 없다. OK저축은행은 ‘OK대박통장815’ 특판 상품을 내놓았다. 한국 금융자본주의는 광복절을 연계한 ‘대박’도 판매한다. 애국이냐 이적이냐의 이분법을 강조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가족의 사모펀드 논란에서도 지극히 한국적인 자본주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본다.

다국적기업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 결정 전후 애국의 최전선에 선 기업이 됐다. 소설 &lt;토정비결&gt; 작가 이재운은 “한·미·일·중 4국이 펼치는 반도체 세계대전에서 우리 한국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 우리가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 제독을 먼저 떠올리듯 백년이 지난 어느 자리에선가 누가 21세기 초의 반도체 전쟁을 이겼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삼성과 하이닉스를 말할 것”이라고 썼다. 지금 한·일 갈등이 ‘반도체 전쟁’이라면,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3개국의 삼성전자 공장은 노동 착취와 노조 파괴가 벌어지는 군수 공장일 것이다.

여야와 이른바 ‘진보’와 ‘보수’ 진영이 싸우는 듯하지만 의견 일치를 본 게 있다. 보수 쪽은 이참에 ‘기초체력’을 튼튼히 해야 한다며 규제 완화를 주문한다. 정부도 이번 사태가 ‘재난’에 준한다며 특별연장근로 방안을 내놓는다. 신규 화학물질의 신속한 출시나 인허가 기간 단축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 소유 통신사는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 연구회’가 낸 보고서를 ‘반도체 소재 국산화가 어려운 이유는 불산공장 환경규제 때문’이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낸다. 불산 때문에 노동자들이 숨진 사건은 망각된다.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배상 문제로 불거진 한·일 경제 갈등인데 정작 노동은 뒤로 밀려난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일본의 야만적 제국주의 피해자이면서 착취와 수탈의 자본주의 피해자였다. 지금 여기의 노동자들은 어떤가. ‘2018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산재 사고 사망자와 질병 사망자는 2142명, 산재를 당한 전체 노동자는 10만2305명이다. 정부가 실태 조사로 파악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수는 14만8961명이다. 매년 산재 희생 노동자가 일제강점기 전체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 수의 70%에 육박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인 오민규는 최근 프레시안 기고에서 1999년에 발간된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적용 전문가위원회 결말을 소개한다. “이렇게 비참한 조건에서 일본의 민간기업을 위해 대규모 노동력 징집이 벌어진 것은 협약을 위반한 것이다.” 일본 오사카 특수영어교사노조가 1995년 ILO에 한국인 강제징용 문제를 진정해 나온 결론이다. 오민규는 이 연대를 전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정당성을 굳건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도 강제노동 금지협약을 비롯한 ILO 핵심협약을 즉각 비준”하라고 말한다. 일본 도로지바 국제연대위원회는 ‘개헌-전쟁을 향한 아베 정권 타도! 대한국 수출제한을 즉시 철회하라!’에서 “노조 존재 그 자체를 근절하려는 공격이 국가주의-배외주의를 부추기는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아베 정권의 노동 탄압을 전했다.

민족이 실재하는 것인지, 상상의 산물인지는 알 수 없다. 애국이나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보편의 가치를 뒷전으로 밀쳐내 위험하다는 건 분명하다. 난세니 토착왜구니 오랑캐니 하는 말의 범람 속에 부쩍 잦아진 ‘우리’란 말도 톺아봐야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힘세며, 용감하고 재능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나’ 대신 ‘우리’를 대입하면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갈채한다. 그 말을 한 이를 애국자라 부른다.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한 스님의 이 같은 말을 전하며 “이런 난센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수록 평화에 대한 위협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를 제외한 이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점을 경고했다.

‘국민’이든 ‘민족’이든 ‘우리’를 앞세우는 세상은 위험하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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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공화당이야 현직 대통령이 후보로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민주당은 사정이 다르다. 내년 2월부터 시작될 당내 경선에 참여를 선언한 후보는 2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일정한 기준을 만족시켜서 1, 2차 텔레비전 토론에 참여한 후보는 20명이고, 두어 달 후에는 10여 명 수준으로 추려질 전망이다. 현재 민주당 후보 중 지지율 선두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지지도도 만만치 않다. 이 셋은 모두 중앙 정치무대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오랫동안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로 여겨져 왔다. 또 하나 공통점은 모두 70대라는 점이다. 바이든과 샌더스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중 80세를 넘기게 된다.

미국 역사상 만 70세 이상으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사람은 트럼프가 처음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70회 생일에서 두 주가 모자랄 때 대통령에 취임했다. 민주당의 세 주요 후보 중 하나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두 번째 70대 대통령이 되는 셈이고,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무후무한 70대끼리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6월 말의 TV 토론 이후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바이든의 상품성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그를 지지하던 ‘온건한’ 민주당원들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대안으로 밀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샌더스나 워런을 지지하던 ‘좌파’ 민주당원들은 정치 신인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이나 사업가 앤드루 양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해리스는 54세, 개버드는 38세, 양은 44세이다. 이 밖에도 만만치 않은 지지율을 기록 중인 피트 부티지지 후보는 37세, 훌리앙 카스트로 후보는 44세, 베토 오루크 후보는 46세이다. 유권자들이 후보의 나이를 중요 변수로 여기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지만, 이들 젊은 후보는 70을 넘긴 트럼프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일 수 있다. 50세의 클린턴이 73세의 돌을 꺾은 1992년 선거나 47세의 오바마가 72세의 매케인을 상대했던 2008년 선거 양상이 재현될 수도 있다.

나이만 젊은 것이 아니다. 배경도 생각도 기존의 질서와는 판이하다. 해리스는 자메이카와 인도 출신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유색 인종 여성이며, 개버드는 사모아 혈통의 힌두교도이자 이라크전에도 참전했던 현직 여성 군인이다. 양은 대만 이민 2세의 벤처 기업가로,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걸어 화제가 되었다. 부티지지는 공개 동성애자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의 남성 배우자와 함께 백악관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치판에는 이런 ‘젊은 피’들이 끊임없이 수혈된다. 이 다양한 배경의 에너지 넘치고 비전 분명한 신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에서 개버드나 양, 부티지지 같은 대통령 후보가 나올 가능성은 0에 가깝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50세 미만의 당선자가 53명(17%)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정치의 노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만 되면 각 정당은 청년 후보를 찾는다고 분주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젊은 유권자들의 대표자를 만들겠다는 발상인데, 생물학적 나이가 어려야 청년을 대변하는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모자란 생각이거니와 젊은 정치인을 청년 대표로만 소비하다 보면 오바마 같은 ‘모두를 위한 젊은 정치인’은 탄생하기 어렵다.

문제는 노령화의 문제가 여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에서도, 학교에서도, 시민사회에서도, 심지어 친목 모임에서도 ‘젊은’ 리더를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40대는 젊고 50대는 늙었다고 무 자르듯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젊은이 못지않게 창의적이고 도발적이며 힘이 넘치는 60대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젊은 60대’보다 ‘늙은 40대’가 더 많은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닐지. 몸도 마음도 ‘젊은’ 지도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세대론과 세대 갈등이 중요한 사회 쟁점으로 떠오른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소위 ‘586세대’의 권력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언젠가부터 ‘5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민폐’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느낌이다. 논리적 반박의 여지가 많은 감정적 수사라는 판단도 들지만, 현실을 직시하자면 상당 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젊은 지도자’의 대명사였지만, 혁신은 미미하고 성취는 빈약했다. 무엇보다, 아래 세대에게 쉬이 곁을 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개버드와 양이 등장하지 못한 것은 30, 40대의 문제가 아니라 50, 60대의 책임일 확률이 더 높다. 몸도 마음도 ‘늙은’ 지도자들이 주책맞게 나서지 않는 것이 먼저다. 자리를 비워두면, 어디에선가 젊은 지도자들이 튀어나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지금보다 나은 방식으로.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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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가족 재산에 얽힌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2017년 청와대 민정수석 임명 두 달 뒤 부인과 자녀가 10억5000만원을 투자한 사모펀드가 첫 입방아에 오르더니 실소유 관계가 불분명한 가족 간 부동산 거래, 부친 소유 사학재단의 빚을 털고 채권은 챙기려는 동생 부부의 ‘위장 이혼, 위장 소송’ 의혹까지 불거졌다. 직계존비속이 민감하게 맞물려 있는 돈거래지만, 조 후보자가 어디까지 알고 간여했는지 법을 지켰는지는 물음표 영역에 있다. 8·9개각 인사청문회에 ‘조국 블랙홀’이  먼저 열리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세간의 시선은 상식적·합리적 의문에서 시작한다. 사정당국 최정점에 있는 민정수석 가족이 투자·운용 모두 베일에 가려진 사모펀드에 거액을 맡긴 것부터 뒷말을 낳는다. 이 펀드가 투자한 중소기업은 관급 가로등 공사를 한 사실도 알려졌다. 조 후보자 쪽에선 펀드 투자는 합법이고 어디에 투자할지 모르는 ‘블라인드 펀드’라고 했다. 하지만 가족 투자액이 80%나 차지하고 자녀 증여·상속 문제로 연결될 수 있는 사모펀드는 투자실적 보고서도 정기적으로 가족에게 보냈을 테다. 신생 사모펀드 투자 배경과 운용에 명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중소 건설사를 운영한 조 후보자 동생이 2013년 숨진 부친의 사학재단에 물려 있던 연대보증 빚 42억원을 피하고, 공사대금 51억원을 받아내기 위해 아내가 함께 새 건설회사를 세워 ‘위장 소송’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조 후보자는 당시 변론 없이 패소한 사학재단 이사여서 가족들의 이익을 묵인·방조했는지 답할 위치다. 2017년 11월 조 후보자 아내가 부산 아파트 전세금을 동생 전처 명의의 빌라 구입 자금으로 댄 것도 부동산 명의신탁 여부가 규명돼야 한다. 10년 전 이혼했다는 동생 부부는 최근까지 함께 살았다는 목격자도 나와 ‘위장 이혼’ 시비에 휩싸여 있다.

조 후보자와 가족의 재산 의혹은 세금 늑장 신고나 색깔론 시비가 인 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 전력과는 결이 다르다. 사실관계가 미궁인 까닭이다. 조 후보자도 왜 파장이 부푸는지 직감할 터다. 그의 과거가 공직자를 검증한 민정수석이었고, 지금 향하는 곳이 누구보다 법의 잣대가 엄중해야 할 법무장관이다. 조 후보자 쪽에선 18일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뤄졌다”며 청문회에서 모두 소명하겠다고 했다. 그전이라도 물증 제시나 소명은 명명백백히 빠를수록 좋다. 국민은 알권리가 있고, 그 눈높이에서 공직자는 검증대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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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은 18일 문희상 국회의장 등 5부 요인과 5당 대표들이 국립현충원에서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문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양국관계의 해법과 미래비전을 제시했다”며 “우리 국민은 능동적이고 당당하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여야 정치권 인사들도 한목소리로 한·일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킨 김 전 대통령의 통찰과 용기를 기렸다. 여야 정치권의 이런 평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정치권의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도 한·일관계가 최악일 때 추진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 이후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다 급기야 YS 퇴임 한 달 전 일본 정부는 어업협정 파기를 일방 통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DJ는 취임하자마자 외환위기 극복과 북한 핵·미사일 문제 대응을 위해 양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이어받아 양국은 우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노력했다. 오부치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를 재확인해 최초로 공식 외교문서에 명시했고, DJ는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마침내 1998년 10월8일 김 전 대통령은 일본 의회에서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그는 당시 왜색문화가 판친다는 반대에 맞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도 함께 선언했다. 이는 양국 간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 한류 바람으로 이어졌다. 한·일 양국은 이 과정을 진지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작금의 한·일관계 악화는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일본에 기본적 책임이 있다. 삼권분립의 정신에 따라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한국 정부가 막지 않았다며 책임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한·일관계는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 위에서만 재출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한·일 간 문제는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 풀 수 없다. 오는 2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등 난제가 닥쳐 있다. 김 전 대통령과 같은 한·일관계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통찰, 용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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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지난해 12월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동해상에서 광개토대왕함을 겨냥한 위협 비행이 시작이었다. 일본은 위협비행을 하고도 적반하장 격으로 우리에게 사격 예비동작으로 레이더를 쏘았다고 했다. 한 달 뒤 일본은 다시 보란 듯이 이어도 인근에서 대조영함 위를 초근접 위협 비행했다. 영상을 공개한 끝에 초계기에 조사된 레이더 주파수를 내놓으라고 하자 일본 측은 도리어 한국 측에 주파수를 내놓으라는 상식 밖 주장을 폈다. 억지 주장에 물타기로 국제사회를 향해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홍보했다. 심지어 국내에서도 우리 군이 먼저 실수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지난 8개월간 상황을 되짚으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일본의 의도를 너무나 늦게 간파했다는 것이다. 우선 아베 신조 총리가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 사안을 주도했다는 일본의 최초 보도는 위장이었다. 당시 공세를 주도한 것은 분명 방위청이었다. 경제 분야의 한·일 갈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산 해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 패소에 대한 맞대응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한국에 대한 대응 조치들이 지난달 참의원 선거를 위한 아베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도 너무나 상투적이었다. 일본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갈 방향을 정해놓고 있었고, 초계기 공세는 그 시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이 얼마나 치밀하게 한국에 대한 공세를 준비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강상중 교수의 분석대로 아베 총리 개인의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일본의 즉흥적이지 않은 공세를 우리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런 방향은 되돌리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초계기 사건과 이후 드러난 미국의 태도도 주목해야 한다. 해군 전술장교 출신으로 미군 전력의 핵심인 태평양사령관을 지낸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는 한·일 레이더 사건의 진상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연초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미국은 이상하리만치 무섭게 침묵을 지켰다. 미·중 갈등 구도에서 한국이 중국 편에 서지 못하게 견제할 유혹을 느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가능성이 어디까지 현실화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국의 안보는 이미 전인미답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달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가 영공을 침범한 것은 한 예일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일본도 계속 도발을 강화할 것이다. 북한의 압박에도 수시로 대응해야 한다. 안보집단의 의지와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군은 그동안 역량을 보여준 적이 없다. 미국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 다른 전략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탓이다. 일본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에 접근할 당시 해군은 위협비행 장면을 영상에 담지 못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 아래서 일본을 늘 우방국이라고만 믿어온 결과다. 국방부는 미국이 우리 논리에 동의했다고 하지만 미국은 끝내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러시아 공중조기경보기의 영공 침범 때 공포탄까지 쏜 공군의 대응은 훌륭했다. 그러나 곧바로 러시아의 실무협의에 응하고 영공침범에 대한 자료를 넘긴 것은 실책이었다. 러시아 전투기들은 그 후 며칠간 연속으로 한국을 무시한 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을 침범했다. 

광복 후 지난 70년 동안 군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 구도에 안주해왔다. 군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전략적 사고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진지한 접근까지 무디게 했다.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운을 띄우자마자 예비역 장성들이 찬성하는 성명서를 냈다. 미국만 바라보고 온 그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중국으로부터 사드 배치 때보다 몇 배의 보복을 받을 게 뻔한데 다른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광복 후 우리 안보집단의 한계이다. 무기 도입도 필요하지만 인식과 발상의 전환이 더 시급하다. 오늘날 국가들이 글로벌 전략에서는 이해를 함께할 수 있어도 지역 전략에서는 상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중·러 대 미·일의 대결구도가 뚜렷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정은 복잡하다. 중·러 간 경쟁은 물론 미·일의 이해 상충도 눈에 보인다. 최근 아베 총리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간 접근이 이를 시사한다.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유일한 생존방식이라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대북 적대시와 미국 의존적 안보관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삼으면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이다. 냉정한 대응이 기존 체제를 답습하자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과 정치권이 함께 고민하며 이 길을 닦아 나가야 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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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늘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고 분단돼 있기 때문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화두로 제시한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경제에 어려움이 초래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자강(自强)’에 국정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그 방법론으로 책임있는 경제강국,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교량국가, 평화경제 구축을 제시했는데, 꾸준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방향임에 틀림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년관에서 열린 제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자들과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가장 관심을 모았던 대일 메시지에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대화의 문’을 열어놨다. 경축사에는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된다”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며 일본의 경제보복을 비판하는 대목도 담겼지만 수위는 낮았다. 강제징용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과거사 현안도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이라는 포괄적 표현에 머물렀고,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며 미래지향적 관계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내년 도쿄 하계올림픽에 대해 “세계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국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도쿄 올림픽 보이콧 주장에 선을 긋고 일본 정부의 숙원인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지난해 평창을 통해 남북이 화해로 나아간 것처럼 도쿄 올림픽을 한·일 화합의 계기로 삼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일본 정부는 주목하길 바란다.

이번 경축사는 일본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고, ‘경제 자강’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극일(克日)’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외교적 해법을 중시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일 경제전쟁의 엄중한 상황에도 절제된 톤을 유지함으로써 한·일 대화 가능성을 높인 것은 바람직하다. 양국 갈등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면서 ‘출구’를 모색하자는 국면전환 메시지로 봐도 좋을 것이다.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외교당국 간 대화에서 풀어나갈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오는 21일쯤 개최될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한·일관계는 갈등의 터널 한가운데에 있다. 출구를 찾는 일은 한·일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칠지, 갈등 해결의 출발점이 될지는 일본 정부에 달려 있다. 외교당국도 일본과의 대화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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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흔네 번째 광복절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양국 간 경제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맞는 올해 광복절은 어느 해보다도 의미가 각별하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유지돼온 한·일관계의 틀을 전면 리셋(재설정)해야 하는 시작점에 광복절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1965년체제’는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기본틀이자, 냉전 시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 원칙이었다. 공산권체제를 봉쇄하기 위해 미국은 한·일에 군사안보를 보장하고 일본은 한국과 협력하는 대항체제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한·일 국교정상화를 서둘러야 했고, 식민지배의 완전한 청산이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한·일관계는 출발부터 불씨를 안게 됐다.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 냉전체제에 균열이 발생했고,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 달성하면서 한·일관계의 틀도 변화를 요구받게 됐다. 군사정권이 억압해온 식민지배 청산 요구도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양국 갈등으로 ‘정경분리’ 원칙까지 허물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베 신조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는 이 금기를 깬 것이다.

한·일 갈등이 역사·영토 분야를 넘어 경제로까지, 그것도 일본의 선제공격에 의해 확대된 것은 한·일관계의 기본틀이 효력을 상실했음을 확인한 사건이다.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가해자로서의 책무를 더 이상 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일본의 행동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불만이 있겠지만 한국이 경제·안보적 차원에서 자신들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데 대한 당혹감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다음날 발표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남북 화해와 북·미 대화의 진전으로 동아시아 냉전질서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개헌의 명분을 약화시킨다. 일본의 외교전략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파트너의 지위를 굳히는 동시에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개선으로 역내 외교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관계는 1965년체제의 틀 안에 고정시켜 한국이 냉전질서 해체를 주도할 수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급속한 화해와 한국의 식민지배 청산 요구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되며, 이 지점에서 한·일 간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아베 정부의 도발이 형태와 방향을 바꿔가며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한국은 이에 응전하면서 한·일관계를 리셋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한국은 전후 고도성장으로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다. 빈부격차 등 문제도 적지 않지만 전후 최빈국이던 한국이 단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물다. 경제면에서만 본다면 약소국이라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일본의 소재·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최종 조립하는 분업구조가 고착화돼 왔고, 이 ‘약한 고리’를 일본이 치고 들어오긴 했지만 이 역시 극복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달성되긴 어렵겠지만 핵심소재·부품·장비의 공급 다변화와 국산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해 한국 경제의 균형발전을 꾀할 모처럼의 기회이기도 하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루기 위해서도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복원을 통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 정치와 민간 교류를 구분하는 냉정한 시각을 갖춰야 함도 물론이다. 일본에 맞서야 할 때는 의연하고 당당하게 나서면서도, 대화와 협력 기조는 유지하는 ‘균형 잡기’가 한·일관계 리셋의 출발점에 선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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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든 국가든 과거의 경험이 현재나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경험의 강도가 강할수록 잔영도 오래 남는다. 이를 이력효과라고 한다. 자석에 쇠붙이를 붙여놓았을 때 쇠붙이에 없었던 자성이 생기는 것과 같다. 자력이 강할수록 쇠붙이의 자력도 세진다. 한·일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은 양국 간 오랫동안 축적된 과거사의 이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베 신조 정부가 경제적 도발을 했다.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외교적인 사안에 불쑥 경제적인 보복카드를 내민 것이다. 일본은 한국이 가장 아파할 부분을 노렸다. 한국경제의 주력인 반도체산업에 ‘수출규제’라는 칼을 들이댔다. 한국 기업뿐 아니라 일본 기업도 상처를 입는 무리한 조치다.

이를 두고 일본의 우익단체인 ‘일본회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단체에는 아베 총리를 비롯해 일본 의원의 40%가 가입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창립회원이며 내각의 80% 이상이 이 단체 출신이라는 말도 있다. 극우적인 발언을 일삼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아소 다로 부총리도 멤버이다. 이 단체는 천황제 국가의 복원을 꿈꾸고, 2차 대전 도발을 경제 봉쇄에 저항한 자위적 전쟁으로 주장한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실현과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일본 헌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회의에 대한 관심은 아베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군사적 우경화는 오래전에 예견됐다. 이미 30년 전 폴 케네디는 일본 경제력의 폭발적인 성장과 군사력의 과소성장이라는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일본이 ‘상업적 전문지식과 재정적인 풍요만 가지고 국제적 권력정치라는 무질서에서 버틸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월등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들이 그랬듯이 일본도 군사력 증강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걸로 본 것이다. 일본이 소규모 ‘자위대’만 가진 ‘단순한 무역국가’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패전국가로서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전방위 평화외교의 중단을 의미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면서 웃고 넘기지 않고 군사분야에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주변국의 반발을 일으킬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폴 케네디는 군사대국으로의 길을 ‘일본의 딜레마’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선택 시기는 코앞의 미래로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 엔진이 멈추면서 군사대국의 야심도 잠시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일본은 1985년 미국과의 플라자 합의 이후 경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엔화가치 절상으로 일본 제품의 경쟁력은 떨어졌다. 일본은 엔고가 독배인 줄 모르고 즐겼다. 1989년을 정점으로 일본 경제의 거품은 한꺼번에 꺼졌다. 부동산과 증권시장의 참담한 하락을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일본인들은 쇼와(昭和·1926~1989)시대의 마지막을 ‘아름다웠던 시절’이라 부른다. 거품이었지만 한때 풍요했던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메이지 시대 이후 가장 좋았던 때였다는 말도 한다. 축제는 끝났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지우고 싶도록 암울한 헤이세이(平成·1989~2019년)시대다.

아베가 2012년 총리에 올랐다. 금융위기 이후 서서히 경제가 살아나면서 야욕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일본을 움직이는 주체는 소수의 양심세력이 아니라 주류인 우익세력이다. 아베는 일본 우익의 선봉이다. 아베는 레이와(令和·2019~)시대의 출범을 과거와의 단절, 새로운 시대의 출발로 삼기로 작정했다. 아베의 생각은 분명하다. 전쟁 가해자였던 과거 흑역사 청산,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화, 궁극적으로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강대국의 완성이다. 아베는 레이와시대가 시작하자마자 한·일 간 청구권협정 문제를 꺼내들었다. 수치스러운 과거를 땅에 묻는 것이 첫번째로 정리해야 할 막중한 과제인 것이다. 해결방식이 무모한 것도 그 같은 배경에 기인한다.

양국이 대치하고 있다. 일단 꺼낸 칼을 쓰지도 않고 도로 칼집에 넣을 수도 없는 형국이다. 양국의 입장이 천양지차인 만큼 갈등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일청구권 문제는 미래에 벌어질 양국 갈등의 시작일 뿐이다. 독도문제, 일본 평화헌법 개정 등 불씨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장기 극일 플랜을 짜야 한다. 흥분 속에 내부 총질은 필패의 길이다. 힘을 키우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자신감을 갖되 자만은 금물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허황된 꿈을 좇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미래는 생존을 위한 고단한 여정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방책을 고민해야 한다. 국제정치는 꿈이 아닌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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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유세에서 러스트벨트로 상징되는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해 계산된 혐오의 레토릭을 전략적으로 활용했고 이러한 논법은 지금도 종종 등장한다. 가령 과거에 비해 경쟁력을 잃은 미국 경제, 특히 중국의 거센 추격 등 외생변수를 여성과 무슬림,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탓으로 전가하고 이들을 위험한 타자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그중 하나이다. 이런 극우 포퓰리즘적 정서는 이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한국 수출규제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문제는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아베 총리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에 대해 한국 내 여론 분열을 계산했다는 정황들도 발견된다. 최근 국내의 정치적 갈등이 더욱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논쟁과 비평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 싸움의 언어 역시 최소한의 공유지를 벗어나선 곤란하다. 상대방의 존재를 근원부터 부정하는 치킨게임의 언어는 윤리적 차원을 넘어 그 언어가 도달하길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기도 어렵다.

한 예로 여당의 야당에 대한 친일 프레임이 현 상황을 타개할 최상의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감정적 민족주의의 언어들이 지지자를 염두에 둔 전략적 화용론의 일부일지라도, 책임 있는 정당의 언어로 여겨지기 어렵다. 이에 대한 야당의 대응 담론이나 언술들은 더욱 문제적이다. 일례로 국가적으로 공감과 연대를 확장해야 하는 위기상황에서 지혜와 힘을 모으고 신중한 해법을 모색하는 대신, 외교안보라인을 포함해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추경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던 야당 대표의 말은 정치의 패권이나 권력 지향적 속성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대다수 국민 정서상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결과 시민사회의 자발적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여행 보이콧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보다 큰 문제는 언론의 양비론이다. 한때 세계적 경제대국이자 문명화된 국가의 전범으로 여겨지던 일본과 그 정부의 일방적 조치에 대해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엄정한 힘의 논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말이 그중 하나이다. 아베 정부의 ‘내셔널리즘’과 문재인 정부의 ‘극일’ 모두 비이성적이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논조는 또 다른 예이다. 평화헌법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 제9조를 수정해 전쟁이 가능한 이른바 ‘정상국가’로 되돌리려는 역사수정주의자 아베의 경제보복 조치라는 변수와 동북아 질서의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이를 현 정부의 외교실패로 규정하는 보수언론의 양비론은 위험하다.

특히 관련 사태에 대한 정부 인사들의 대응 담론을 신중치 못한 행위라 문제 삼는 것은 표면적으론 언론의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첨예한 국제질서 속에서 내부의 위기를 외부의 갈등으로 전가해 전쟁 같은 위기상황을 조장하는 아베의 위험천만한 정치공학을 용인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 인사들의 말에 대해 전시동원체제 아래의 애국이냐 이적이냐의 양자대립적 논의로 치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그럴듯해 보이는 지적 또한 계산된 양비론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작은 차이를 봉합하고 큰 뜻에 힘을 모아야 하는 준엄한 시점이다.

<류웅재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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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자원관리란 조직의 유효성을 위해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 배치하는 한편 계발하고 유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국내외의 인적자원관리는 다양한 기회와 위협요인에 직면해 있다. 우선 인간의 지적능력과 감성이 과학기술과 결합해 인류의 지속 가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지식혁명의 태동은 물적자원을 중시하는 산업혁명보다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반면에 직접고용을 대치하는 외주의 확산은 조직 내 인적자원관리 기능을 약화시켰다.

인적자원관리의 발전은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 정부의 인적자원관리는 정실주의에서 엽관주의를 경유해 실적주의로 변화했다. 정실주의란 관직을 세습하거나 매매하는 왕조나 권위주의 체제의 인사행정을 의미한다. 반면에 엽관주의란 선거를 매개로 대중의 참여를 용인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관직교체를 둘러싼 정쟁이 격화되자 미국은 1883년 펜들턴공무원법을 제정해 능력을 중시하는 실적주의로 전환하였다.

미국 기업의 인적자원관리는 20세기 초 부상한 GM, 포드, 보잉 등 대기업들의 관리체제가 과학적 관리론에서 인간관계론으로 전환된 일과 관련 있다. 1914년 헨리 포드는 매년 400%에 달하는 이직률을 해소하는 체계적 고용관리를 위해 1일 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1시간 단축하는 한편 최저임금도 100% 이상 인상한 일급 5달러를 지급했다. 이후 고용이 안정되고 소비가 촉진되자 포드사는 국민적 칭송을 받았다. 더불어 노동조합 확대와 최저임금제 시행 및 노동관계법 정비로 인적자원관리의 중요성은 배가됐다.

현대적 인적자원관리의 목표는 효율성과 공공성으로 구분된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약한 인적자원관리의 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해 1964년 민권법을 제정해 약자우대 조치로 대표되는 공정인사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1991년에 개정된 민권법은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나 연방계약이행절차사무국(OFCCP)과 같은 추진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여성의 고용차별 금지와 평등임금에 관한 유리천장법, 장애인의 고용차별 금지와 공공서비스 접근성을 보장하는 미국장애인법 등과 같은 정책수단을 구비했다. 이후 미국은 채용과 승진 및 보상에서 차별이 이루어지는 공공과 민간조직에 수백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규제와 더불어 공정인사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첩경이라는 설득을 병행해 왔다.

우리나라의 인적자원관리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변화를 시작하였다. 청년고용 친화정책 강화, 기간제나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밸 확산, 지역인재 우대 등이 대표적인 우수사례이다. 하지만 공공 일자리의 양적 확대에 부응하는 신규업무 발굴과 임금체계 조정, 성희롱 기준을 둘러싼 남녀 간 갈등의 해소, 장애인 친화적인 조직문화 유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해소, 고용보조금의 효과성 제고 등에서 분발이 요구된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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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들었으나 눈앞이 뽀얘 한참을 머뭇대다가 겨우 긁적거려본다. 8·15, 그때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애들과 들에서 멱자구(개구리)를 구워 먹고 있는데 마을에 라디오가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갑자기 와~ 우리가 마침내 일본 제국주의를 때려 부수었구나, 이제는 왜놈 경찰서와 집을 부수러 간다기에 쫓아가 보고는 눈깔이 떼굴떼굴. 흰쌀이 넘쳐나고 날고기와 갖은 마른반찬, 과자와 과일들이 넘쳐났다. 네놈들만 실컷 처먹었구나. 배알이 뒤틀려 돌아와 “엄마이, 나 밥 줘” 그랬는데 내놓는다는 게 겨우 강냉이 한 자루와 콩국 한 바가지가 아닌가. “야 엄마이, 우리가 왜놈들을 쳐부수었는데 겨우 강냉이 한 자루가 뭐이가? 흰쌀밥 좀 먹자구나.” “얘야, 쌀밥은 있는 놈만 먹는 거다, 네 애비가 쌀 말을 지고 온다면 몰라도.”

나는 그때 퍼뜩 깨우친 것 같았다. 제아무리 민족 해방을 이룩해도 내 것이 없으면 주림은 한이 없다는 거. 그리고 얼마 후였다. 엄마가 “네 애비가 축구선수가 소원인 너를 데불고 서울엘 가신단다. 어서 가서 축구선수가 돼서 돌아오거라.”

그리하여 맨발로 따라온 아, 서울. 와서 보니 그야말로 아득하기만 했다. 중학교를 못 다니니 공을 만져볼 기회가 있어야지. 그리하여 길거리를 헤매며 나는 생각했다. 참된 축구선수란 재주가 있고 뜻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그걸 살릴 수가 없는 이눔의 세상을 발로 차버리는 거, 그게 진짜 축구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길거리의 쓰레기, 깡통, 돌멩이를 걸리는 대로 내지르다 보니 어느덧 아흔이 다 되었다.

이따금 젊은이들이 “선생님, 젊은 날 꿈은 뭐였나요” 물으면 나는 한마디로 자른다. “나는 젊은 날도 없었거니와 꿈도 없었다”며 씁쓸히 고개를 돌린다. “왜 없었어요, ‘젊은 날’이라는 시도 있으신데요.” 이때 나는 멋쩍어 긴 한숨만 들이쉴 뿐 티 나게 내뱉질 못하는 사람이다.

8·15 해방을 이룩한 지 어느덧 일흔넷 해인 오늘, 우리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 38선으로 우리네 허리가 동강났지만 이에 우리들은 어떻게 했느냐 이 말이다. “네 이놈들, 얻다 대고 우리네 허리를 잘랐드냐” 하고 들이대고 싸웠던가, 못했다. 도리어 38선을 국경선으로 받아들이며 오늘에 이르렀다. 여러 해의 실존 경험으로 보면 손바닥만 한 이 땅이 둘로 갈라진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침략이다. 그렇다, 38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땅에 대한 침략인데도 왜 우리들은 전면적 도전을 못했던가 이 말이다. 둘째, 8·15 이후 남쪽에서 왜놈들이 뺏어갖고 있던 재산을 다시 뺏어보니 자그마치 남쪽 재산의 95%로, 그야말로 해방의 실질이요, 따라서 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물질적 기초였는데 그때 미국은 그 많은 재산을 미국의 분단을 받아들이고 분단의 국가화에 동조하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에게만 나누어주었다. 이로써 해방의 실체는 없어지고 나아가 부정부패, 악덕 지배계층이 조작된 것이다. 셋째, 우리 겨레의 중심인 이 땅의 ‘니나(민중)’들은 어정쩡한 지배계층의 정치의식, 윤리, 도덕에 물들지 않고 늘 제 넋을 가지고 살아왔다. 왜 나만 땀을 흘려야 하나, 사람이라고 하면 너도 같이 흘려 다 같이 잘살자는 보편적 인간 정신이 니나들의 역사의식이었는데 그것마저 불순 사상이라며 때려잡았던 것이 이른바 분단국가의 정신적 망발이라. 이 분단시대는 그야말로 인간 정신의 전면적 황폐화를 강요해왔지만 이에 항거하여 니나들의 정신을 올바르게 이어 발전시키는 계기는 못 잡고 있는 이때 다시 맞는 아, 8·15 해방.

아무려나 기념행사도 나쁘지 않고 되새김질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이제 참말로 중요한 건 이 땅에 살고 있는 니나들의 천추의 한을 들이대 보는 게 아닐까. 첫째, 한반도의 강제 분단은 예나 이제나 그 역사적 본질로 보아 마땅히 청산해야 할 침략이라는 것이니 그것을 어느 누구의 안타까운 깨우침으로만 놔두질 말고 이 땅에 사는 사람의 하나같은 아우성으로 소리쳐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한반도에 대한 분단은 이 땅에 대한 아주 노골적인 침략이니 우리 다 함께 그 침략을 짓부수자. 둘째, 참된 해방은 특정한 몇 사람만 큰소리치고 물질적 풍요를 나눠주는 게 아니다. 특정한 사람이 따로 없이 너도나도 다 같이 땀을 흘리고 그리하여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사람은 세상을 살아갈수록 이끼가 끼게 마련. 그렇다, 날마다 때마다 껍질을 깨고 새롭게 태어나는 목숨, 그것을 ‘살티(새 생명)’라고 했다. 참된 해방의 세상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이들이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판에 아베가 어쩌자고 나타나 판을 깨는가. 일본에도 니나들이 들고일어나 일본, 아니 세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뭐? 일본이 근본적으로 바뀌질 않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제국화를 노골화하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이참에야말로 온 세계가 몽땅 일어나 아베의 신제국주의 일본을 청산해 참 세계평화를 일구어야 할 것이다.

<백기완 |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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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1991년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한 김학순 등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날로 올해 제7회를 맞는 국가기념일이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이 순간을 평생 기다려왔다”는 고 김학순의 일성을 듣고 나는 전율하였다. 이른바 ‘유교적 정조문화’를 가졌다는 사회에서 이 고령의 여성은 어떻게 이렇게 날카롭게 인식을 벼릴 수 있었을까. 그때부터 ‘위안부’의 말과 재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9년에는 2000년 12월 도쿄에서 개최될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제 전범 국제여성법정’의 준비 차원에서 증언연구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lt;증언4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gt;(이하 &lt;증언4집&gt;)를 2001년 출간하였다. 그동안 한국에는 1993년 &lt;증언1집&gt;이 출간된 이래 2집(1997), 3집(1999), 4집(2001), 5집(2001), 6집(2004) 등 모두 100건이 넘는 피해자 증언이 축적되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증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재현 방법에 대한 논의에도 진전이 있었다. &lt;증언4집&gt;은 ‘증언자 중심주의’ ‘묻기에서 듣기로’ ‘구술체 재현’ 등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위안부’ 증언연구는 한국의 공권력 피해자 증언연구의 맥락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된 연구이며, 구술사·여성사·피해자 연구 등의 측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되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은 조명되지 않았던 사실과 진실을 밝히는 견인차가 되었고, 법정과 인권기구에서 정의실현을 위한 증거가 되었으며, 이름 없는 고령여성들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 한국의 식민지역사와 아시아역사를 새로 쓰고 새로운 집합기억을 만들어내는 등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중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그간 위안부 증언은 주로 한국어로만 회자되었다. 1995년 영국 학자 키스 하워드가 &lt;증언1집&gt;을 번역한 이래 증언집 전권이 번역된 적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에 여성가족부 지원으로 이뤄진 &lt;증언4집&gt;에 대한 영문 번역사업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이 사업은 서울대 여성연구소와 미국 어바인에 소재한 캘리포니아대학의 한국학센터 간 공동연구로 진행하였다. 위안부 증언은 어려운 한국어이다. 그것은 깊은 침묵 속에 놓인 40여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고, 가공할 성폭력 경험을 언설로 표현해야 하는 언어적, 신체적, 감정적 텍스트이다. 피해자들은 진한 사투리를 사용하였고, 때론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개인의 이야기이자 당시를 함께 살아냈던 집합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얼매나 우리 어매가 속이 상혔겄어. 그 여자가 쌀 내놓으라고 졸르니껜 쌀이 어디가 있겄어? 속이 상하지, 그래서 내가 세상에, 여섯 살 먹어서 뭔 밥 세 숟가락 돌라 먹고, 우리 엄마한테 그렇고롬 맞고, 그러니 일본놈이 쌀밥 줄게 가자 허니 내가 안 따라 가겄어?”(&lt;증언4집&gt;, 최갑순 증언, 173면)

&lt;증언4집&gt;을 출간한 연구원들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그들의 힘과 영혼, 고통과 극복의 서사를 재현하고자 했다. 이런 의미를 살려내는 외국어 번역이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문 1차 번역을 담당했던 UC 어바인의 연구원들은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양국어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제와 한국의 근대역사에 대한 지식과 감각으로 깊이 있는 번역을 해 주었다. 서울대 여성연구소팀은 번역의 대상물인 한국어 &lt;증언4집&gt;과 인터뷰 당시 작성하였던 ‘녹취록’을 바탕으로 증언자가 말한 증언의 의미를 정확하고 풍부하게 짚어내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위안부 증언의 원본은 녹취록이지만 또한 그들의 말 그 자체에 있는데, 해석과 판단의 난점들이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다. 연합군 자료를 조사해 온 강성현 교수(성공회대)가 말하듯이, 당시 연합군 심문자와 피심문자 ‘위안부’ 사이에는 통역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매뉴얼대로 ‘위안부’들을 매춘부라는 뜻의 ‘prostitute’로 표기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명확한 이름조차 없었던 이 인권유린 행위는 1990년대 이후에야 인권 법률가들, 역사연구자 등에 의해 ‘체계적 강간’ ‘성노예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번 &lt;증언4집&gt; 영문 번역은 대다수 고인이 된 증언자의 말을 기억하고 기록했던 한국의 연구자들이 증언자들과 잡았던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머지 한 손을 저 태평양 건너의 연구자들과 맞잡고 진행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미국의 연구자들이 나머지 한 손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내밀 때 ‘할머니들의 언어’는 지구를 돌고 돌아서 메아리치게 되리라 기대한다. 이런 ‘번역의 사슬’로 인해 할머니들은 살아있는 영어로 세계인들에게 말을 하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지역의 이야기가 글로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 및 형식에 대한 번역작업에 대한 지원이 요청된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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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은 1992년 시작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시위)’가 1400번째를 맞이하는 날이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리는 수요시위는 28년째를 지나며 ‘지구상에서 가장 긴 시위’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1991년 8월14일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에 맞서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수요시위의 도화선이었다. 오늘은 특히 한·일 갈등이 격화된 가운데 1400번째 시위가 열리는 데다 김 할머니의 증언을 기려 지난해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이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1400차 수요시위는 서울을 비롯해 호주·영국·일본 등 10개국 34개 도시에서 함께 열린다. 90분간의 행사에서는 각국의 연대성명 발표와 영상메시지 상영, 세계 연대 집회 현장연결도 진행될 예정이다.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들이 1400차 수요시위에 함께하는 모습을 담은 대형 걸개그림과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사진전시회도 열린다.

수요시위의 요구사항은 일본 정부의 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역사교육, 법적 배상 등이다. 애초 30명 남짓으로 시작된 시위는 2002년 500회, 2011년 1000회를 돌파했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들의 호소는 나라를 움직였고, 나아가 세계를 바꿨다. 수요시위에 용기를 얻은 아시아 각국 피해자들이 ‘미투(Me Too)’ 대열에 동참했고, 유럽에서도 그 뒤를 따랐다. 국제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측면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성폭력이자, 전쟁범죄라고 거듭 규정했다. 수요시위는 과거를 지우고 부정하려는 일본의 민낯을 드러내고, 고발했다.

스스로를 ‘떳떳지 못한 몸’이라 여기던 피해자 할머니들은 수요시위를 통해 역사 속에서 걸어나와 시민들에게 용기와 인권, 평화를 몸소 가르쳤다. 이제 수요시위는 단순한 시위를 넘어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연대하는 인권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별세한 후에는 직접적인 사죄와 반성의 기회조차 사라진다는 사실을, 국제무대에서 평화와 인권,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무겁게 깨달아야 한다. “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부끄러운 것임을 깨달았다”는 할머니들의 외침을 언제까지 외면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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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또 꺼내든 것이 시대착오적 색깔론이다. 자유한국당이 조국 법무부 장관 내정자를 공격하기 위해 30년 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까지 악의적 프레임을 덧씌워 소환했다. 황교안 대표는 “국가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는 게 말이 되는 얘기냐”며 조 내정자의 사노맹 관련 이력을 문제 삼고 나섰다. ‘무장봉기’ ‘폭발물 제조’ ‘무기탈취’ ‘자살용 독극물’ 등 공안 조서에나 등장하는 피 묻은 언어들을 쏟아내며 지명 철회를 주장했다. 명색이 제1야당 대표가 독재시대 민주화운동을 억압하고 민주인사를 탄압하던 5공 공안검사의 저열한 인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 참담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황 대표의 ‘사노맹 사건’ 주장은 사실관계부터 잘못됐다. 조 내정자는 황 대표의 지적과 달리 사노맹에 ‘몸담았던 사람’이 아니다. 사노맹 부설 연구기관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을 뿐이다. 1994년 법원은 당시 조국 울산대 교수에 대해 사과원에 가입해 활동했다는 이유를 들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가입죄 등을 적용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노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형을 선고한 것이 아니다. 황 대표가 ‘무장봉기’ ‘폭발물’ 등을 조 내정자에게 연결시키는 것은 당시 법원이 인정한 사실에도 반한다. 더욱이 1994년 국제앰네스티는 사노맹 관련자들을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거나 가혹행위를 받은 정치범 및 양심수’로 규정하고 조 내정자를 ‘올해의 양심수’로 선정했다.

황 대표가 무시무시한 ‘국가전복 조직’으로 묘사한 사노맹조차도 시비될 것이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헌정 질서 확립에 기여했다’며 사노맹을 민주화운동 일환으로 재평가했다. 이는 사노맹이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루고자 만들어진 민주화운동의 한 부류로 평가받고 복권됐음을 뜻한다. 광주시민을 총칼로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군부독재에 맞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운 것은 기리고 자랑할 일이지, 매도되거나 반성할 일이 결코 아니다. 참회할 사람은 독재에 부역하며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자신의 안위만 챙겼던 ‘공안검사 황교안’이다. 오로지 정쟁 때문에 민주화를 위한 희생과 노력을 폄하하고, 국가공권력의 피해자들을 좌익 용공으로 낙인찍어 공격하는 구태정치는 퇴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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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구상”이라기보다, 그 길밖에 안 보이기 때문일 터이다. “유승민 의원과 통합 안 하면 자유한국당 미래는 없다.” 친박에게 배신자로 터부되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하 경칭 생략)을 한국당의 미래와 접속시킨 나경원 원내대표는 최소한 솔직했다. 당대표 바뀐 것 빼고는 달라진 게 별로 없는, 외려 거꾸로 퇴행한 한국당이 이대로는 미래(선거 승리)가 없다는 걸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18%를 기록했다. 6개월 만에 황교안 대표 체제 이전으로 돌아갔다. 철 지난 ‘냉전보수’도 모자라 ‘친일보수’의 덮개까지 쓴 한국당의 퇴화를, 탄핵 2년 만에 당 주류로 복귀한 친박의 존재만큼 위시하는 것도 없다. 한국당의 문제를 기득권·꼰대·웰빙 이미지로 지목한 당혁신위의 진단은 고답적이다. 진단이 엉뚱하면 처방도 돌팔이기 십상이다. 황교안 대표는 선거에서 이기는 “간단한 방법”을 내놨다. ‘3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승민의 바른정당계와 우리공화당을 묶는 통합은 애초 불가능하다. 설령 어찌하여 ‘도로 새누리당’만 되면 무조건 내년 총선과 다음 대선에서 이긴다, 이거야말로 정신승리법이다. 궤멸적 참패를 당한 지난 지방선거가 단순히 보수의 분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선관위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알 수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및 최고위원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왼쪽)와 황교안 대표가 7일 국회에서 개최된 당 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왜 유승민일까. 나경원이 미래까지 거론하며 호명한 건 유승민으로 표징되는 개혁 혹은 합리적 보수의 공간과 이미지다. 황교안 체제에서도 인적 청산 등 혁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어렵다는 게 드러났다. 인물도, 이념도, 정책도 죄다 수구적인 한국당은 스스로 외연 확장이 힘들다. 탄핵 전후로 돌아간 지지율이 징표다. 한국당 지지 행위를 ‘쪽팔려 하는’ 중도 보수층을 되돌리지 않고는 선거에서 이길 방법은 없다. 그 ‘쪽팔림’을 희석시켜줄 존재로 유승민이 필요해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보수 혁신’을 주창했다가 배신자로 찍혀 축출됐고, 탄핵에 참여했고, 여느 보수 정치인보다 사회경제 정책에서 개혁적인 유승민이다. 황교안 다음으로 보수 대선주자 지지율 2위에 올라 있다. 스스로 고쳐쓰기 불능인 꼴통보수의 변화 코스프레를 포장하기 위해 이만한 재료가 없다. 친박의 거부감을 모를 리 없는 나경원이 당의 미래까지 들먹이며 유승민을 스토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남은 재산 정리를 둘러싼 추한 싸움으로까지 비춰지는 바른미래당의 내전으로 옹색해진 유승민(계)의 처지가 그 스토킹을 거리낌 없게 만들었을 게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기득권 양당구도를 강요하는 힘은 맹렬해진다. 더욱이 ‘3당’ 바른미래당이 자멸할 지경인데 이 힘이 가만 놔둘 리 만무하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 연합뉴스

매번 기대 이상의 나락을 보여주는 바른미래당의 막장극을 그래도 시청하는 것은 유승민(계)의 향배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민주평화당 비당권파가 탈당해 제3의 대안신당을 부르짖지만 쪼그라든 ‘호남 기반’에 기생하려는 ‘국민의당 시즌2’는 성공할 수 없다. ‘촛불’과 ‘태극기’ 사이 공간에서 지금 텅텅 비어 있는 곳은 가운데와 태극기 사이 중도우파 땅이다. 바른미래당의 실패도 이 영역을 개척하는 대안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틀린 정당구도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한국당의 극우화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지금은’ 개혁보수의 등대 역할이 더 절실하다.

결국 유승민(계)이 관건이다. 한국당은 아무리 ‘살길’이라고 한들 과거(박근혜)와 절연하고 탄핵을 털고 가지 못할 것이다. 통합을 위해 내밀 수 있는 건 ‘반문연대’의 빈약한 명분과 당선을 담보하는 공천뿐이다. 다름 아닌 유승민을 움직이기에는 턱없다. 굳이 평론을 들이밀 것도 없다. 유승민은 지난 5월 동국대 강연에서 이랬다. “한국당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도저히 바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팔고 태극기 붙잡고 갈 것 아니냐. 그런 보수 하려고 4년째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게 아니다.” 그 강연에서 이런 다짐도 했다. “정치하는 사람은 죽을 때 죽더라도 자기가 추구하는 게 있으면 그걸 끝까지 해봐야 한다. …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한국당에 들어가고 다음에는 저쪽이 기웃거리고 나면 국회의원 한두 번 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래서는 안된다.” 그렇다. “새로운 보수, 건강한 보수가 진짜 힘든 일이지만 그게 옳은 길이라면 누군가 시도하고 그러면서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유승민은 끝까지 개혁보수의 깃발을 놓지 마라. ‘그’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2015년)을 소환하자.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보수정당의 타락을 위장하는 장식으로 쓰이기에는 그가 그리는 보수의 가치가 너무 소중하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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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분쟁이 첨예해지면서 점점 도드라지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기업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요즘 무역분쟁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 조금씩 희망적인 소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앞으로 1년 정도면 우리 기술력으로 이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피해는 일본의 수출 기업에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대표적이다. 관련 기술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큰 피해를 입을 줄 알았던 우리 대기업들이 이미 상당량의 재고를 확보해 놓았다든가 혹은 일본이 아닌 제3국으로부터 대체 수입원을 확보했다든가 하는 소식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우리의 글로벌 기업들이 위기에 빠질 뻔한 나라를 구해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여기서 잠시 무역분쟁 이전으로 돌아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위 10대 재벌 중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에 불려나오지 않은 그룹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재벌에 비판을 쏟아부었다. 강력한 처벌과 재벌 개혁, 더 나아가 재벌 해체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 대기업, 특히 재벌은 때때로 모든 악의 근원처럼 비판받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재벌은 나라를 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이제 차분하게 물을 때가 되었다. 우리에게 재벌은 무엇인가. 무엇이 재벌의 진짜 얼굴인가. 우리의 기업정책은 어디로 가야 하나.

정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예측 가능하고 생산적인 국가·기업 관계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견실한 성장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견실한 성장이 없으면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워진다. 과거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기업 관계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한국은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가 산업정책을 통해 기업을 이끌어 나가고 금융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하며 수출에 매진하는 발전국가체제였다면, 미국 같은 나라는 기업이 무엇을 하든 자유롭게 내버려두되 몇 가지 시장의 규칙을 어기면 엄하게 처벌하는 규제국가체제였다. 한국에서 과거의 국가·기업 관계는 1987년을 기점으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후 30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무엇이 시장의 질서인지 알 수 없는 ‘제도의 공백’ 상태를 이어왔다. 1987년이 기점인 것은 민주화 원년이라서가 아니라 그해 처음으로 재벌이 제2금융권 계열사를 통해 금융에 대한 국가의 지배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92년 대선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더 이상 국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업에 대한 국가의 실질적 견제로서는 최초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제도가 1987년에 도입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 후 규제국가체제로 이행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제3의 어떤 질서를 만들어내지도 못한 채 지금까지 왔다. 혼돈의 시장에서 기업은 규모를 키워갔고 그중 일부는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섰다. 정치는 기업의 권력을 인정하거나(노무현 정부),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대가로 기업을 사적으로 이용하거나(이명박 정부), 기업을 협박하거나(박근혜 정부), 기업에 혼란스러운 시그널을 보내왔다(문재인 정부). 지나간 정부들의 기업정책은 그때마다 달라져왔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표가 필요할 때는 반기업 정서에 기대 기업을 적대시하고 경제가 어려울 때는 기업에 손을 내민다는 점이다. 그러니 기업은 살아있는 권력에 머리를 숙이지만 속으로는 비웃는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치도 기업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대기업, 특히 재벌에 대한 비판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배구조 문제와 만나게 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중은 재벌에 대한 반감을 거두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는 현실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원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들이 하는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다는 근본주의적 태도와 글로벌 대기업에 대한 엄청난 의존도가 더 이상 공존할 수는 없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기업 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지 못하고 처벌과 의존만을 번갈아 해왔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는 직무유기 상태이다. 정치가 먼저 실용주의적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지배구조 문제를 장기적인 과제로 설정하고 그 밖의 영역에서 기업이 꼭 지켜야 할 시장친화적 규칙들을 확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영역에서는 기업의 혁신을 총력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치가 혼돈의 시장을 계속해서 방치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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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정부는 12일 이 같은 내용으로 전략물자수출입고시를 개정해 9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현행 고시는 화이트리스트 대상인 ‘가 지역’과 나머지 국가들인 ‘나 지역’으로 돼 있다. 개정을 통해 이를 3지역으로 세분화하고 일본을 ‘가의2’로 분류하기로 했다. 종전의 가 지역 국가들은 대부분 ‘가의1’로 분류돼 우대조치를 받지만 일본이 속할 ‘가의2’ 국가는 나 지역에 준하는 통제를 받는다. 즉 우대조치인 사용자포괄허가는 예외적으로만 인정되고, 수출 필요서류와 심사기간이 늘어난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고시 시행 전에 “일본이 요청하면 협의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협상의 문은 열어놓은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13일 (출처:경향신문DB)


정부의 이번 고시 개정은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행한 일련의 조치의 판박이이다. 일본은 전략물자 수출입 법령을 바꾸면서 한국만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고, 법령변경은 자국의 권한이라고 했다. 이에 한국도 일본을 상대로 동일한 방식으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켰고, 국내법령 개정은 한국 정부의 고유권한이라고 했다. 가만히 앉아서 불이익을 감당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의 조치는 일본이 자초한 것이다.


정부가 일본에 정면 대응하는 것은 ‘일본의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로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 미온적인 대처로 나갈 경우 일본의 제2, 제3의 도발을 부르고 끌려가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명분 없는 도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자신감도 반영됐을 것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의 이유로 전략물자 관리 부실을 내세웠지만 확인 결과 한국보다 일본이 훨씬 더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이 외교적 사안인 과거사 문제에 경제보복 조치를 내려 자유무역 질서를 깬 것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의 갈등 고조는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한·일 간 경제전쟁의 장기화는 양국 모두에 좋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가 커진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적 피해뿐만이 아니다. 벌써부터 민간교류가 끊기고 수십년간 쌓아온 신뢰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주권국가로서 상대국의 도발에 따른 당연한 대응이다. 하지만 일본이 이에 강력 반발할 경우 자칫 ‘강대강’이 부딪치는 치킨게임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양국 모두 협상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이 같은 자세는 먼저 도발한 일본에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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