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665건

  1. 2019.10.22 [사설]정경심 영장청구, 법원은 오직 법과 원칙 따라 판단해야
  2. 2019.10.22 [사설]WTO 농업 분야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대비는 돼 있나
  3. 2019.10.22 [사설]국회의원 자녀 대입비리 전수조사 특별법안을 주목한다
  4. 2019.10.21 [사설]‘조국 정쟁’으로 날샌 20대 국회 국감, 부끄럽지 않나
  5. 2019.10.18 [기고]남북 분단 민족사의 마지막 남은 과제 ‘여순항쟁’
  6. 2019.10.18 [이중근 칼럼]이 총리 방일, 사명당 외교를 배워라
  7. 2019.10.18 [사설]한국당 공수처 반대, 제2의 패스트트랙 연대 필요하다
  8. 2019.10.18 [사설]대통령의 긴급경제장관회의, 경제활력 계기 되기를
  9. 2019.10.18 [편집국에서]대통령의 공감 능력
  10. 2019.10.17 [사설]‘먼저 온 통일’ 탈북민 제대로 보듬지 못하는 사회
  11. 2019.10.16 [정동길에서]‘살인의 추억’과 ‘마더’ 사이
  12. 2019.10.16 [사설]‘공수처법’ 다음 국회로 넘기자는 황교안, 민의에 도전하나
  13. 2019.10.16 [서민의 어쩌면]SNS 함정에 빠진 조국의 아름답지 못한 퇴장
  14. 2019.10.15 [양권모 칼럼]‘안철수의 시간’은 과연 올까?
  15. 2019.10.15 [사설]‘조국 사퇴’, 이제 혼란과 갈등 접고 검찰개혁 완성해야
  16. 2019.10.15 [여적]불쏘시개
  17. 2019.10.15 [아침을 열며]보수반동의 세계
  18. 2019.10.15 [정동칼럼]성공과 승리를 측정하는 방법
  19. 2019.10.15 [사설]광장에서 표출된 민심, 이제 ‘정치의 시간’이다
  20. 2019.10.15 [사설]일왕 즉위식 계기 이낙연·아베 대화, 한·일관계 물꼬 트길

검찰이 21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강제수사 전환 55일 만이다. 그사이 수십곳에 대한 압수수색 등 전방위적 수사가 이뤄졌고, 조국 전 법무장관 동생과 조카 등 관련자에 대한 소환·구속·기소 등이 이뤄졌다. 정 교수에 대한 재판도 시작됐다. 수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조 전 장관 연루 의혹 정도다. 곧 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법원은 직접 심문을 통해 ‘조국 수사’에 대한 첫 사법적 판단을 내놓을 것이다. 검찰은 범죄 혐의가 중대하고 정 교수의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 교수 측은 “검찰이 사실관계를 오해하고 있다”며 “법원 영장심사에서 명확하게 해명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은 여론과 정치권의 압박에 휘둘리지 말고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기를 바란다.

검찰이 21일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정 교수에게 제기된 혐의는 이미 기소된 사문서 위조까지 포함, 모두 11개에 이른다. 자녀 입시비리 관련 허위작성공문서행사 등 4개 혐의, 사모펀드 관련 업무상횡령 등 3개 혐의, 증거 위조·은닉 교사 등이다. 사안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검찰이 정 교수의 뇌종양·뇌경색 호소에도 불구, 영장 청구라는 강수를 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먼지털기식 검찰 수사에 대한 논란은 피해 가기 어렵다. 증거인멸을 놓고도, 그 과정과 진실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검찰 수사가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여론재판’에 회부된 조 전 장관 가족의 인권은 심각한 침해를 받았다. 그 책임은 온전히 검찰의 몫이다. 검찰은 ‘정치검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왜 계속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인권보장을 최우선 가치로 둔 검찰개혁’ 약속을 차질없이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국민 신뢰를 되찾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정치권은 ‘조국사태’를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맡기고 민생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지난 두 달여간 정치권은 조국사태를 빌미 삼아 정쟁이나 일삼고, 검찰·사법부를 겁박했다. 정 교수 영장청구에 대해 “기각하면 사법부 치욕의 날이 될 것”이라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엄포는 삼권분립이 엄존하는 민주주의를 부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혼란과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은 안팎으로 힘든 경제를 살리고, 국민이 바라는 ‘공정한 사회’를 조성하는 것이다. 정부도 조국사태의 사법적 해결과 별개로, 특권과 반칙을 청산할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국사태가 단순한 진통을 넘어 더 나은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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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한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를 곧 발표할 계획이다. 한국은 1995년 WTO 출범 당시 농업 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요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불응할 경우 독자적으로 중단조치에 나서겠다고 하자 대만, 브라질,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이에 한국 정부도 동참하는 것이 미국의 통상 압박이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실리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10월 22일 (출처:경향신문DB)

개도국 지위 포기로 우려되는 건 농업 분야의 피해다. 정부는 한국 농업의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존 특혜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특혜의 지속 여부는 앞으로 협상에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협상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고,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종전과 같은 특혜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농축수산물 관세장벽이 붕괴되고 있다. 그나마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쌀 등 주요 농산물을 특별품목으로 지정·보호해왔다. 그러나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 외국산 수입쌀의 관세를 낮춰야 한다. 그리고 쌀값 등 농산물 가격 안정에 쓰이는 농업보조총액도 절반 정도 삭감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1조49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대폭 낮춰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농업을 지킬 보루에 구멍이 뚫리는 셈이다.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WTO 개도국 지위 포기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결정이 ‘통상주권과 농업의 포기선언’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농민단체들과 만나 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농민단체는 정부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농민들의 주장에 과도한 대목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WTO 개도국 지위를 받은 지 20년 이상 흘렀어도 농업소득은 정체상태에 있다. 도시와 농촌 간 소득격차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 모두 농업의 활성화에 손을 놓고 있었던 탓 아닌가. 정부는 이번 사태로 인한 농업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다. 차제에 우리 농업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장기적인 활성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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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자녀의 대입전형을 전수조사하는 특별법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1일 발의한 데 이어 자유한국당·정의당 등도 관련법 마련을 예고했다. 사사건건 갈등해온 정치권이 이 법안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여야 모두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만큼 입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장도리]2019년 10월 21일 (출처:경향신문DB)

지난주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최근 10년간 자녀 입시를 치른 전·현직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입시특혜 여부를 조사하는 ‘고위공직자 자녀 입시비리 조사를 위한 특별법안’을 내놓았다. 이어 21일 박찬대 민주당 의원도 ‘국회의원 자녀의 대학입학전형조사과정에 관한 특별법안’ 발의를 발표했다. 조사기간은 1년 이내, 조사 대상은 20대 국회의원으로 하고, 혐의가 있을 땐 검찰고발과 수사요청 등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조사대상을 현역 국회의원뿐 아니라 차관급·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로 넓히되, 조사기간은 6개월로 줄이자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정의당은 현역 의원을 포함한 18~20대 국회의원 전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정부기관·지방자치단체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직계 자녀 중 2009~2019학년도에 4년제 대학을 입학한 경우로 조사대상을 대폭 넓힌 안을 준비 중이다.

각당의 특별법 발의는 이른바 ‘조국 정국’에서 촉발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전체 지도층으로 향했다. 지난달 말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자녀의 입시비리를 국회 차원에서 전수조사하자고 제안했고, 민주당이 호응했다. 나아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거리낄 게 없다”고 찬성 입장을 밝히며 급물살을 탔다. 

조국 정국이 폭로와 문제제기의 시간이었다면 이젠 정리와 해결의 시간이다. 법안 취지에 여야 모두 동의한 만큼, 상식선에서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상류층의 대입 특권 의혹이 거세게 일었고, 총선이 6개월 남은 시점에서 각당이 이 법안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마저 정치적 셈법으로 대응한다면 역풍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번 법안 발의를 계기로 다시는 입시특혜 논란이 일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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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이번주 마무리된다. 12개 상임위는 21일, 기획재정위 등 3곳은 24일 각각 상임위별 종합감사를 끝으로 종료한다. 올 국감은 예상했던 대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블랙홀이 되면서 상임위 곳곳에서 ‘조국 난타전’이 펼쳐졌다. 야당의 ‘조국 때리기’와 여당의 ‘조국 지키기’가 정면충돌하는 바람에 민생·정책 국감은 뒷전으로 밀렸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간을 이렇게 허비해도 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여야는 지난 14일 조 전 장관이 사퇴한 이후에도 여진을 이어갔다. 이대로라면 청와대를 상대로 한 운영위 국감 등 남은 일정도 마지막까지 조국사태에 묻힐 게 뻔하다. 예년 같으면 매일 쏟아지는 의원발 국감자료도 올해는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다른 야당들도 정책 이슈 면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넘어 역대 최악의 국감이란 말을 들어도 싸다. 

여야 대립의 골이 깊어지면서 일부 의원들의 욕설·막말·고성으로 볼썽사나운 장면도 벌어졌다. 한국당 소속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김종민 민주당 의원을 향해 “웃기고 앉았네. XX 같은 게”라고 욕설을 했다. 행정안전위 국감에서는 조 전 장관 호칭을 둘러싼 대립 속에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같이 탄핵됐어야 할 의원이 한두명이 아니다”라고 하자,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은 “야, 너 뭐라고 얘기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실망을 넘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지금 나라는 경기 침체와 북·미 비핵화 협상, 한·일 갈등,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시급히 다뤄야 할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국회에는 1만건도 넘는 법안들이 먼지만 쌓인 채 방치돼 있다. 20대 국회 법안 처리율은 30%도 안된다. 반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여야 정쟁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엊그제 주말에도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또다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조 전 장관 사퇴로 일단락될 듯하던 시민들의 ‘광장정치’가 되살아난 건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 간 정치적 공방은 피할 수 없지만, 할 일은 하고 싸워야 한다. 국회는 22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예산 심의에 들어간다. 이번만큼은 민생을 살피는 데 소홀함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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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순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두 달 후인 10월19일부터 27일까지 전남 여수·순천에서 피비린내 나는 학살극이 벌어졌다. 오는 19일은 그 비극이 일어난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수많은 민간인이 아무런 재판도 없이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해안 절벽, 산기슭에서 처형됐다. 모두 ‘빨갱이’로 몰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누가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진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심지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여수·순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눈총을 이 지역 사람들은 대놓고 받아야 했다. 

이 같은 특정 지역 따돌림은 ‘사회적 천형’으로 남아 아직도 아픈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그래도 그날의 행적들이 이제 ‘여순항쟁’으로 재평가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여순항쟁은 ‘대구 10월’(1946년)과 ‘제주 4·3’(1948년),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과 역사적 고리로 이어져 있다.

여순항쟁은 제주 4·3과 더불어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 무력봉기이자 대중운동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제주 4·3이 없었으면, 여순항쟁도 없었다. 여수 주둔 14연대가 이승만 정부의 제주도 진압명령에 반기를 들지 않고 그대로 제주로 건너가 학살명령을 실행했다면, 정부군의 대규모 초토화 작전에 따른 그 아픈 ‘여순항쟁’은 없었을 것이다. 또 14연대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분단거부운동을 지역사회가 수용하지 않았더라면, 14연대가 지역사회와 결합하지 않고 지리산으로 바로 입산했더라면 단연코 ‘여순항쟁’은 없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제주 4·3의 주장이 정당한 것이라면 여순항쟁도 정당한 것이며, 5·18의 진압이 부당한 것이라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여순항쟁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여순항쟁의 진실을 외면하다 ‘동포 학살’이라는 국가 공권력의 일탈을 다시 보게 됐다. 여순항쟁 발발 32년 후인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에 복종한 군대가 광주를 처참히 유린했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가 반복된 것이다.

‘그날의 여순’을 언제까지 놔둘 것인가. <이충무공전서>를 보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란 말이 있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여수·순천은 이충무공과 더불어 왜적에 포위된 채 병기, 병참, 병력 일체를 자급자족하며 임진왜란 7년을 죽기살기로 싸운 ‘구국의 성지’다. 그때 이곳 목을 지키지 못하였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존재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여수·순천은 그런 자부심과 애국심으로 여순항쟁에 참여했다. 그런 시민들을 ‘킬링필드’나 ‘동티모르 학살’처럼 야만적으로 학살했다. 무려 1만1131명(1949년 집계)이 희생됐다. 당시 미 군사고문단 한 명은 “여순 진압은 약탈과 강간이었으며, 의심할 것도 없이 이 과정은 가장 난폭한 꿈이 이루어지듯이 진행됐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여순사건특별법은 16·18·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 4번째 상정됐다. 2019년 1월3일 현재, 5개 법안이 139명의 의원 동의로 발의됐다. 그러나 최초 발의에서부터 2년6개월째 행안위에서 잠자고 있는 중이다. 71년 통한의 세월 동안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조차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나라의 도리가 아니다. 

이제 남북 분단의 마지막 남은 민족사의 금기요, 과제가 여순항쟁이다. 제주 4·3은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되는데, 왜 여순항쟁은 특별법 제정이 안되는가. 여순은 제주 4·3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역사인데도 말이다. 민족공동체가 여순을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했더라면 이렇게 사회적 천형처럼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첫걸음을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에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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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 한국 정부를 대표해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는 이낙연 국무총리는 한·일관계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 이후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이 총리의 발언을 보고 강경 대응 방침을 굳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총리가 지난 5월 편집방송인협회 토론회에서 “대법원 판결에 정부가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 것에서 한국의 입장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 총리의 발언을 한국의 대일본 정책의 신호로 봤다는 얘기다. 이 총리는 일본을 읽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일본 관계자들을 만난다. 직접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묻는 일본인 취재원도 여럿 있다. “한·일 갈등의 시기에 이 총리보다 더 적임이 있기도 어렵다”는 표현이 딱 맞다. 비슷한 평가를 받은 사람이 400년 전에 있었다. 임진왜란 후 조선과 왜국 간 국교 정상화의 물꼬를 튼 사명당 유정(사명대사)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임진왜란은 16세기 말 동북아 판도를 바꾼 국제전쟁이었다. 그런 만큼 전쟁이 끝난 뒤 관계를 회복하는 일 역시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였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승려인 유정이 사절단 대표로 뽑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승병장이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일본 내 평판에 기인한 바가 컸다. 유정은 전란 초기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4차례 만나는 과정에서 명과 왜의 ‘조선 분할 통치’ 음모를 알아채 조정에 보고한 공로도 세웠다. 그러면서 일본 진영에서 보여준 당당한 처신과 인품으로 일본의 호감을 샀다. 당대의 한 시인은 “우리나라에 3정승이 있다고 말하지 마라. 나라의 안위가 모두 한 승려의 귀환에 달렸다”는 말로 그의 일본행에 대한 조선의 기대를 표현했다. 이 총리처럼 유정도 왜국으로부터 신뢰받는 발신자였던 셈이다. 

지금은 유정이 조선과 왜국 간 국교 재개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역사적으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1604년 도일하는 유정에게 당대 조정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왜에 대한 정탐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왜국을 장악하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강화 의지와 일본 내 정치적 위상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강화 교섭은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유정은 쓰시마를 거쳐 왜의 수도인 교토에 모두 4개월간 머물며 정탐은 물론 강화 협상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도쿠가와와는 두 차례 면담했다. 나머지 시간은 시와 붓글씨로 승려, 관료들과 교유했다. 소프트파워를 이용해 일본의 호감을 산 것이다. 결국 이런 교유를 통해 도쿠가와 막부와 의견을 교환한 끝에 수교 재개 원칙에 합의하고 포로 송환도 관철하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 한국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선두를 달리는 이 총리에 대한 일본의 관심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정의 귀국 후 조선과 왜국 간 수교가 금세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후 2년 가까운 곡절을 겪고서야 조선통신사가 탄 배가 왜국으로 가면서 공식적으로 수교가 이뤄졌다. 이 총리 방일로 한·일 갈등이 곧 풀리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이 총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 중심은 징용 배상금 현금화를 위한 일본 기업 재산의 몰수와 다음달 발효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조치의 시행이다. 두 사안이 현실화할 경우 한·일관계는 물론 한·미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한·일 갈등을 풀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내 기업으로 하여금 선제적으로 배상금을 지불토록 함으로써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몰수를 해결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거기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정이 협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상당한 재량을 갖고 있었던 덕분이다. 유정은 ‘공식적 임무를 띤 비공식 사절’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유연하고 담대하게 협상에 임했다. 유정과 같은 접근이 이 총리에게도 필요하다. 2박3일 동안 일본 정·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아베 총리의 속마음도 듣고 와야 한다. 그러려면 이 총리가 재량을 갖고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정의 품에 국서가 없었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친서를 보내는 것보다 재량권을 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일은 임진왜란처럼 7년 동안 전쟁을 한 사이가 아니다. 한·일 양국 모두 이 총리의 방일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유정의 방일 때와 가장 다른 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조선 강화 의지가 분명했지만 아베 총리의 관계개선 의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7년 전란으로 악화될 대로 악화된 양국 간 화해를 위해 현해탄을 건너던 유정의 결의와 전략을 이 총리는 새길 필요가 있다. 

*하우봉 전북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논문 ‘임란 후 국교재개기 사명당 유정의 강화활동’(역사학보 173집, 2002)을 참조함.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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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판사·검사·국회의원·장군·경무관 이상 경찰 등 6000여명의 비리를 수사하는 기구다. 살아있는 권력,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성역 없이 수사하자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쪼개는 검찰개혁의 핵심이기도 하다. 죄지은 자는 두려울 것이지만, 죄 없는 사람은 걱정할 까닭이 없다. 모두가 찬성이다. 이제껏 공수처 설치에 반대해온 검찰도 동의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딱 한 군데, 자유한국당만 반대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게슈타포를 만들어 친문 독재의 끝을 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이 정권의 비리와 부패는 영원히 묻힌다. ‘친문 무죄, 반문 유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10월18일 (출처:경향신문DB)

여야는 지난 16일 3당 원내대표와 각 1인이 참여하는 ‘2+2+2’ 회의에서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논의했지만 현격한 의견 차이만 확인하고 끝났다. 한국당은 공수처를 ‘장기집권 사령부’로 규정하며 절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한마디로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공수처법안은 발의됐다 폐기되기를 반복해왔다. 시민 80% 이상이 공수처 신설에 찬성하고 있다. ‘조국사태’는 견제받지 않는 검찰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케 했다. 그런데 시민의 대표라는 의원들은 시민의 입법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야당 입장에서 새로운 수사기구가 만들어지면 야당 탄압에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다. 과거 독재정권에서 대통령이 사정기관을 좌지우지하던 때도 있었다. 여당 내에서도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지금 국회에는 민주당안과 바른미래당안 2개의 공수처 설치 법안이 올라가 있다. 여야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공수처의 중립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더 촘촘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17일 “10월29일부터 본회의에 검찰개혁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며 “남은 13일 동안 한국당이 전향적인 제안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물론 한국당까지 포함해 합의안을 만드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원만하게 법안 처리에 합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공조 정신을 되살려 검찰개혁을 완성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오기 힘든 검찰개혁의 기회를 이번엔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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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소집,  현안 및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대통령이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을 불러 회의까지 주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경제를 총괄하는 홍남기 부총리가 미국 방문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만큼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미·중의 무역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확대됐다. 10개월째 이어지는 수출 하락세는 개선 기미가 안 보인다. 경제성장률은 ‘2% 지지선’을 지켜낼지 의문일 정도로 하락하고 있다. 투자·소비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엔 물가마저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일본형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일 간 경제 갈등 역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시장을 불안케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고용 사정이 호전되는 분위기가 있지만 일자리 핵심인 40대와 제조업 고용여건은 여전히 최악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경제를 챙기는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한 일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지금은 경제와 민생에 힘을 모을 때로, 정부가 중심을 잡고 경제활력과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출기업 지원·기업투자환경 강화를 통한 민간활력 제고’와 ‘확장적 재정운용, 고용·사회안전망 강화 등 정책 일관성 유지’ ‘정부 간, 정부와 기업 간 협력 강화를 통한 산업·인구구조 대응 및 상생 생태계 구축’ 등을 주문했다. 민간활력을 높이기 위한 공공주택과 광역교통망 조기 공급 및 착공, 교육·복지·문화 인프라 구축 등 건설경기 활성화도 언급했다. 

대통령의 당부는 엄중하고 절박하다. 각 부처는 이날 제시된 정책들을 차질없이 추진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단 건설투자를 통한 경기부양은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집행할 일이다. 정부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국회다.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8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 국회엔 ‘기업지배구조’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탄력근로제’ 등 수많은 개혁 및 민생 관련 법안이 잠자고 있다. 최근엔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현안들도 쌓이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난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힘을 모아도 극복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판국이다. 그럼에도 야당들이 민생·개혁 법안을 정쟁의 볼모로 삼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생을 돌보지 않는 정치는 존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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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두 달 넘게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정국은 일단 끝이 났다. 문재인 대통령, 정치권, 법무부·검찰이 보여주는 ‘포스트 조국’ 행보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키워드는 검찰개혁이다. 장관 대행인 법무차관을 청와대로 부른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직접 챙길 뜻을 분명히 했다. 언론에 사전에 일정을 알린, 사실상 대국민 메시지다. 검찰개혁을 법적·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역할을 할 정치권은 그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법무부는 법무부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검찰개혁안 마련과 실행에 들어갔다. 다들 검찰개혁의 ‘속도전’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법무부에 ‘이달 중’ 방안을 마련하라고 시한을 박았고,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9일부터 검찰개혁안의 본회의 안건 상정이 가능하다며 야당을 재촉한다. 시대적 과제가 된 검찰개혁을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짓고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시간은 유한하다. 검찰개혁의 완수는 해를 넘기면 힘겨워진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는데, 검찰개혁에 대해 이렇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적이 없었다. 검찰개혁은 무엇보다 조국 정국을 거치며 시민들의 명령이 됐다. 그럼에도 총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뒷일은 어찌될지 모른다. 당·청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이유일 터다. 한데, 검찰개혁안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을 두고 민주당은 “국민의 명령”이라며 드라이브를 걸지만,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마음대로 수사청”이라며 호응할 생각이 별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개혁 입법이 서둘러 매듭지어진다고 해도 사회가 조국 정국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다음달에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다. 지금 내치·외치 어느 것 하나 순탄하지 않다. 정부 출범부터 몰아친 적폐청산 작업과 한반도 상황은 국정운영의 큰 틀을 지탱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한다고 평가받는 국정 분야다. 하지만 적폐청산이 길어지면서 피로도가 늘고, 북·미 협상이 삐걱대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멈춰 섰다. 집권 전반기 서민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이전보다 나빠졌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문재인 정권의 위기라고 불릴 만한 ‘큰일’은 없었다. 조국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적잖은 이들이 반대층으로 돌아서거나 중도층·관망층으로 옮겨갔다. 조국 사퇴 이후 국정 지지도가 반등했다는 여론조사도 나오지만 여전히 40% 초반이다. 이 과정에서 뼈아픈 것은 문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경향신문·한국리서치 여론조사(9월29일~10월1일 실시)에서 ‘문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능력’에 대해 ‘잘한다’는 긍정평가(48.0%)는 ‘잘 못한다’는 부정평가(49.6%)에 밀렸다. 2년 전 경향신문·한국리서치 조사에서 긍정평가가 81.4%였으니, 그야말로 곤두박질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기 “국민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손을 먼저 놓아버린 국민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조 전 장관의 개인적 흠결 때문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의 거취를 둘러싸고 여론이 격렬하게 나누어졌음에도 ‘조국 수호’를 요구하는 지지층의 얘기만 듣는 태도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대국민 신뢰 회복을 하지 못하면 국정운영의 동력을 살려가기 어렵다.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 대통령의 포부는 결국엔 “꿈같은 희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서초동·광화문에서 확연하게 갈린 시민들의 외침이 직접민주주의 행위이지 국론분열이 아니라던 문 대통령도 결국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을 국정의 앞순위로 끌어올리며 국면 전환에 분주하다. 대기업 행사에 잇따라 참석하고 경제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것도 그런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제와 민생 문제는 어느 정부에서건 국정의 중심 과제였던 만큼 문 대통령이 이를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정·정의의 문제에 대한 대책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불공정성이 새삼스럽진 않지만 조국 사태가 불공정 구조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시켰고, 특히 청년층의 분노가 컸다. 향후 국정운영은 대국민 공감 속에서 이뤄지기를 바란다. 국론이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국민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은 부단하게 이뤄져야 한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다”던 문 대통령의 말이 떠오른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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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탈북민 보호기간을 현행 5년에서 최대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탈북민 모자 아사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통일부는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탈주민법에 거주지 보호기간이 5년으로 돼 있지만,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탈북민 위기가구 등을 대상으로 거구지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세부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올 6월 말 현재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 수는 3만3022명에 달한다. 정부는 초기 정착을 돕기 위해 5년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정착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말 서울 임대아파트에서 탈북여성 한모씨(42)와 아들(6)이 굶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초기 지원에 초점을 둔 제도의 맹점이 드러났다. 탈북민들을 사회 적응도에 따라 평가해 보호기간을 늘리고 좀 더 세심히 살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비극이었을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하나 보호기간을 늘리는 정도로 끝날 문제는 아니다. 탈북민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남북하나재단의 지난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 직업유형 중 단순노무종사자 비율(22.5%)이 가장 높았고, 임금근로자 중 3년 이상 근속한 비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북한에서 일류 대학을 나오고 전문성도 갖췄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다. 북한에서 의사였던 한 탈북민이 청소용역 업체에서 일하다 건물에서 실족사한 일도 있다. 가족들은 그가 “남한의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차별받는 풍조를 가장 힘들어했다”고 했다. 적지 않은 탈북민이 한국에 들어왔다가 제3국으로 떠나거나 아예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이런 현실을 웅변한다. ‘탈북민 디아스포라’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자녀들에게까지 차별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찾은 한국 땅을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다.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자 통일의 시험장’으로 불린다. 탈북민에 대한 포용은 분단 극복과 통일을 위한 예비과정이다. 탈북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탈북민들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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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에 기반한 영화다. 감에 의존해 수사하는 지역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과학수사를 신봉하는 서울 파견 형사 서태윤(김상경)이 공조해 연쇄살인범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실제 사건이 그러했듯이 두 형사는 영화 막판에 가서도 범인을 잡는 데 실패했다. 경찰들이 용의자를 좁혀가는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만 쫓기고 얻어맞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렀을 뿐이다.

십수년이 흘러 형사를 그만둔 박두만은 우연히 최초 희생자가 발견된 장소를 지나다 옛 수사 과정을 떠올린다. 박두만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박두만의 시선은 픽션의 한계를 넘어 객석에 있을지 모르는 범인을 노려보는 듯하다. 봉준호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가 특정됐다는 소식에 “드디어 범인의 얼굴을 봤다. 범인을 잡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인 경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형사 박두만(송강호·왼쪽)과 서태윤(김상경)은 한팀이 되어 용의자의 뒤를 쫓는다. _ 싸이더스 제공

봉준호는 <살인의 추억> 이후 6년 뒤 <마더>를 선보였다. <마더>는 <살인의 추억>만큼 흥행이 되거나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살인의 추억> 못지않은 수작이다. 어수룩한 아들 도준(원빈)이 한 소녀의 살인범으로 몰리자 홀어머니 혜자(김혜자)가 진범을 찾아 아들의 누명을 벗기려는 내용이다. 

개봉 당시엔 몰랐지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드러난 뒤 알 수 있는 사실은 <살인의 추억>과 <마더>가 한 쌍으로 묶인 영화라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이 정의를 구현하려는 형사들의 집념을 다뤘다면, <마더>는 부조리한 사법절차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수법이 여느 것들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모방범죄라고 결론내렸다. 경찰은 피해자 부근에서 용의자의 체모를 발견했고, 이를 근거로 농기계 수리공 윤모씨를 체포했다. 윤씨는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2010년 가석방됐다.

이춘재가 8차 사건 역시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물론 이춘재가 자신의 행적을 과장해 말했을 수 있다. 법적으로는 여전히 윤씨가 범인이다. 

하지만 시민과 언론과 국가가 최악의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라고 닦달하는 와중에 경찰 수사에 여러 무리수가 있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범행을 자백했다가 현장검증에서 자백을 번복한 이도 있고, 재미교포 심령술사가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불려가 고초를 겪은 이도 있다. 경찰 수사의 피해자 중 몇 명은 훗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 승소하기도 했지만, 일상이 파괴되거나 결국 죽음에 이른 이도 있다.

윤씨 역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다. 고아였던 윤씨는 초등학교를 3년만 다닐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경찰에 잡혀간 윤씨는 3일간 잠을 자지 못한 채 취조를 받았고, 소아마비를 앓아 불편한 한쪽 다리로 쪼그려뛰기를 하는 고문을 당했다고 말한다. 법정에서도 윤씨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었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따로 선임하지 못했다. 국선변호인은 결심공판 때 처음 나타나 “선처해 주십시오” 한마디만 했다고 한다.

윤씨가 진범이든 아니든, 제대로 된 수사와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가장 끔찍한 범죄자조차 가장 정당한 사법절차를 거쳐야 한다. 시민의 법감정에 어긋날지라도, 그런 과정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다.

<마더>에서 혜자는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무시무시한 사법절차의 굴레에서 빼낸다. 혜자는 아들 대신 범인으로 지목돼 수감 중인 종팔을 면회간다. 외모로 짐작해보건대 종팔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듯하다. 혜자의 아들 도준이 안락한 삶을 누렸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종팔은 도준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한 이였다. 혜자는 종팔에게 “엄마 없어?”라고 묻고는 흐느낀다. 종팔에겐 변호사도, 친구도, 엄마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자신의 작은 몸과 마음으로 경찰들의 수사를 홀로 묵묵히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살인의 추억> 속 박두만의 모델이 된 하승균 전 임실경찰서장은 “형사는 알파가 있어야 수사를 한다. 알파란 범인에 대한 적개심 같은 거다”라고 했다. 불의를 목격했을 때 피가 거꾸로 솟구침을 느끼고, 그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해 범인을 찾는 동력으로 이어가는 경찰과 검찰이 있기에 사회정의는 잠정적으로나마 유지된다. 하지만 정의는 합리적이고 정당한 제도 위에서 실현돼야 한다. 무엇보다 돈 없고 인맥 없고 권력 없는 이들일수록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 주인공들은 종종 느리고 거추장스러운 사법절차의 굴레를 뛰어넘어 사적 복수를 행해 관객에게 쾌감을 준다. 현실에선 그 느리고 거추장스러운 과정이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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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요구인 검찰개혁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검은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개혁의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조국 법무장관 거취를 놓고 대립하던 상황이 해소된 만큼, 이제 검찰개혁을 법적·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소명은 국회에 주어졌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라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의 처리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의 엄중한 명령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조 장관 사퇴 직후 입장문을 내고 공수처법을 20대 국회에서 논의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현재의 공수처법은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연장 시나리오일 뿐이다. 공수처법은 다음 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했다. 그간 공수처법 등 사법개혁 법안 논의에 단 한 차례도 응하지 않아온 한국당이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공수처법을 다음 국회로 넘기자는 것은 오만의 극치다. 한국당은 검찰개혁의 대의를 대놓고 무시할 수 없으니까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과 공수처법안을 분리해 공수처법은 다음 국회로 넘기자는 속보이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검찰개혁의 본령은 검찰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제한하고, 민주적 통제하에 검찰을 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공수처 설치는 이러한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역대 정권마다 검찰개혁방안으로 공수처 설치가 제기되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5일 “장기집권 사령부 공수처는 절대 불가하다”고 말했다. 설령 정치권력으로부터 악용될 소지가 우려된다면, 공수처 조직과 시스템 보완을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면 될 일이다. ‘집권연장’ ‘장기집권’ 프레임을 씌워 아예 공수처를 봉쇄하려는 것은 결국 검찰개혁을 무산시키려는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공수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듯이 ‘조국사태’와 무관하게 시민 절대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당시 정권의 핵심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공수처법을 발의했고, 지금도 현역인 심재철·김성태·김영우 한국당 의원 등이 동참했다. ‘정치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무엇보다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공감대가 형성되어온 것이다.

광장의 절실한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분명 서초동이나 광화문 집회 공히 검찰개혁의 대의에는 뜻을 같이했다. 한국당은 입으로는 “사법개혁”을 운위하면서도 공수처법을 막아 ‘가짜’ 검찰개혁을 도모하는 반동을 멈춰야 한다. 검찰개혁 문제를 정권에 대한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이용하며 시대정신을 외면할 경우, 다음 ‘촛불’은 국회로 향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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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무장을 뽑으라면 십중팔구 이순신 장군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이 가장 큰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으리라.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일본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우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3국을 통일한 김유신의 업적이 더 커 보인다. 우리에게 대국이었던 수나라 군사를 수장시킨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도 업적 면에선 이순신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순신이 최고의 무장이 된 이유는 뭘까? 모함으로 인한 투옥과 백의종군, 12척으로 133척에 달하는 적을 물리친 명량해전, 자기 죽음을 부하에게 알리지 말라 한 마지막 순간까지, 이순신에게는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드라마가 있었다. 김유신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거라곤 자기 잘못을 말한테 뒤집어씌워 목을 벤 게 다이지 않은가?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이순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접촉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이 잘못했다며 서로 삿대질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접촉사고의 경위를 글로 써보면 어떨까. 싸울 때는 몰랐던 자기의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종이 위에 쓰인 사건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글이 주는 ‘자기 객관화의 힘’, 즉 일기를 쓰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이는 자기성찰로 이어진다. 이순신이 고매한 인격을 갖출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일기를 쓴 덕분이란 얘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전격 사퇴했다. 그로 인해 두 달여 동안 극심한 국론분열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사퇴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때 우리가 믿고 따른 지식인이었던 분이 이렇게 몰락한 이유는 그가 SNS 중독자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에 신음하던 시절, 조국은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SNS 글을 지속해서 써댔다. 

- 1명의 피의자 때문에 5천만이 고생이다 : 2016년 11월,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박근혜 하야를 외쳤을 때.

- 이제 민심은 즉시 ‘하야(下野)’를 넘어 ‘하옥(下獄)’을 원하고 있다 : 2016년 12월, 200만이 넘는 인파가 광화문에 모였을 때.

- 검찰은 왜 최순실을 긴급체포하지 않고 귀가시켜 공범들과 말 맞출 시간을 주는가 :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건 당시 해외에 머물던 최순실이 귀국했을 때.

- 피의자 박근혜, 첩첩이 쌓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모른다’와 ‘아니다’로 일관했다. 구속영장 청구할 수밖에 없다 : 2017년 3월, 박근혜 재판 때.

잘생긴 서울대 교수가 저리도 멋진 말로 정권을 비판하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조국은 스타 지식인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SNS엔 치명적인 함정이 있었다. 차분하게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일기와 달리 SNS는 그 속성상 ‘촌철살인’을 지향한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지고 임팩트 있는 글을 쓸지 노력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허세가 끼어들고, ‘내가 머리가 아픈 것은 남보다 열정적이기 때문인가’ 같은 오글거리는 말도 SNS에서는 일상이다. 그러다 보면 실제의 자신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소위 ‘조국사태’에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웠던 것도 조국의 삶이 그가 SNS에서 했던 말과 전혀 다른, 기득권의 관행에 절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국이 과거에 썼던 SNS 글들은 결국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조국이 구린 일은 죄다 아내에게 미루고 자신은 몰랐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가 반기문을 향해 날린 “알았으면 공범이고 몰랐으면 무능이다”를 찾아왔고, 그의 딸과 관련해 불거진 입시비리 의혹엔 “대학 수험생 입시 관리를 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스펙을 만들어 오지, 하며 놀랄 때가 많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못마땅해할 때는 “편집과 망상에 사로잡힌 시민도, 쓰레기 같은 언론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특히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제멋대로의 검증도, 야멸찬 야유와 조롱도 허용된다”를, 온갖 의혹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틸 때는 “도대체 조윤선은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는 것인가? 우병우도 민정수석 자리에서 내려와 수사를 받았다”를 가져왔다. 조국 때문에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집회를 할 때는 “1명의 피의자 때문에 5천만이 고생이다”를 찾아왔다. 

이런 일이 잦자 사람들은 ‘구(舊)조국’과 ‘신(新)조국’이 다른 사람이라거나, 조국이 자신의 앞날을 예언한 ‘조스트라다무스’였다는 식으로 그를 조롱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와중에도 조국이 SNS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기 아내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는 동안, 조국은 SNS의 프로필 사진을 ‘서초동 조국수호 집회’로 바꿨다가 50분 만에 내리고 잇따라 서로 다른 자신의 사진으로 수차례 변경했다. 

수만개의 글을 SNS에 쓰는 대신 그가 그 열정으로 ‘조국일기’를 썼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허물을 잘 알았을 테니 법무장관은 꿈도 꾸지 않았겠고, 설령 후보자로 지명됐다 해도 바로 물러났을 것이며, 사퇴 할 때 자신이 검찰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단 말로 사람들을 실소하게 만들진 않았으리라. 그의 사퇴에 대해 2017년 탄핵 당시 박근혜를 가리킨 구조국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련다.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심도 사라지게 만드는 퇴장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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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안랩’의 주가도 출렁거렸다. ‘안철수의 예언’으로 이름붙여진 대선 유세 동영상이 새삼 화제를 모았다. 안철수 전 의원은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신간을 내며 소식을 알렸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광장 대결이 절정이던 시점(10월4일)에 나온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낙연 총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 이어 안철수가 깜짝 3위를 차지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안철수가 현실 정치를 주름잡는 대선주자들을 제친, ‘안랩’의 주가마저 출렁이게 할 정도로 뜻밖의 결과다. 제3세력의 상징성과 문재인 대통령 경쟁자였다는 이미지가 겹치면서 반사효과를 거둔 거겠지만, ‘정치 유배’ 중인 안철수가 이리 등장하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조국 법무장관의 사퇴로 어렵게 출구가 열렸지만, 두 달여 지속된 ‘조국 사태’가 여론 지형을 뒤집어 놓은 결과다.

조국 사태는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다 싫다’는 무당층을 늘렸다. 서초동에서 이탈한 중도층도 광화문은 외면하고 무당파로 돌아섰다. ‘조국 싸움’에서 울타리 밖의 존재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광화문은 물론 서초동 촛불에도 노동자와 농민, 청년, 사회적 약자들이 설 자리는 비좁았다. 기존 정치시스템이 불평등 격차와 사회 갈등 의제를 제대로 해결 못하고 되레 갈등을 증폭시키자, 가운데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들”이라며 기성 정당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 창간 여론조사(10월3일)에서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24.8%에 달했다. 매주 정기조사를 실시하는 한국갤럽 조사에서 무당층은 꾸준히 25% 안팎이다. 특히 청년층의 ‘정치 이탈’이 확연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9~29세의 무당층은 절반에 육박한다. 특권의 성채 속에서 이뤄진 ‘그들만의 리그’를 목격한 청년들은 여야, 심지어 정의당에 대한 지지도 철회했다. 청년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과 정의당 지지율도 떨어지는, 기성 정당에 대한 ‘손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6년 촛불과 2017년 대선 참여의 소중한 기억이 훼손되면서, 청년들이 총체적 정치냉소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은 집권세력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2016년 총선부터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까지 청년들의 적극적 참여가 현 여권의 선거 승리의 미래성을 부여하는 힘이었다.

갤럽 조사에서 안철수는 무당층과 19~29세에서 이낙연 총리와 황교안 대표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새정치’의 브랜드가 남아 있지 않은 ‘국외자’ 안철수를 호명할 만큼 무당층과 청년들의 기존 정치시스템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깊다는 징표다. 

조국 장관 사퇴를 계기로 질서 있는 수습 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건 조국 사태의 가장 큰 후과는 정치냉소 확대와 20대의 정치 이탈이다.

무당층 확대, 정치불신 강도, 청년의 이탈 등 2012년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킨 때와 유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안철수는 더 이상 새로운 정치의 열망을 담지하기 쉽지 않다. 지난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3위를 하면서 안철수의 효용가치는 밑천을 드러냈다. 촛불 국면에서의 모호한 행보, 바른정당과의 통합, 서울시장 선거 당시 김문수 한국당 후보와 단일화 추진 등 우왕좌왕하면서 중도노선의 명분마저 금가고 무엇보다 새정치의 남은 상징성마저 잃어버렸다. 

안철수는 신간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에서 “주변의 기대와 응원에 신경을 쓰다가 나만의 속도를 잃어버리면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된다. 돌아보니 어떤 때는 무리한 적도 있다”고 했다. ‘오버 페이스’ 때문으로 변호하기에는 ‘새정치’ 실패의 내상이 너무 깊다. 사실 조국 정국 속에서 호명된 안철수는 실패하기 이전의 제3세력과 새정치를 표징하던 그 ‘안철수’다.

안철수는 유승민 의원이 절박하게 내민 손을 잡지 않고 미국행을 택했다. 안철수 스스로 정치 이유로 삼은 양당 기득권 타파와 극중주의 깃발을 들기에 명분도 세력도 준비도 미약하기 때문일 터이다. ‘오버 페이스’하면 끝장이라는 것을 이번에는 간파한 셈이다. 지나간 물을 되돌려 물레방아를 돌리려면 백배의 공력이 필요하다. ‘중도’에 대한 정치적 에너지가 더욱 커지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제3지대 공간이 제도적으로 확보되고, 그러고도 대안 인물이 부재할 때야 안철수의 마지막 등판 기회가 마련될 터이다. 물론 좌절을 맛본 강고한 기성 정당의 벽을 헤쳐나갈 내공과 시대정신을 갈파하는 새로운 비전을 장착해야 그 기회는 ‘안철수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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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장관 지명 66일, 취임한 지 35일 만이다. 조 장관은 “더는 대통령님과 정부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제가 자리에서 내려와야 검찰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한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를 둘러싼 의혹이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급락시키고 국정운영의 부담을 가중시키자 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사퇴를 놓고 여야 간 평가는 달랐지만, 두 달 넘게 지속된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법무부 청사 나가는 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사의를 표명한 후 정부과천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그동안 나라는 둘로 쪼개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분열과 대립을 겪었다. 가뜩이나 진영 논리가 팽배한 터에 여론은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로 두 동강이 났다. 정치권은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기는커녕 되레 진영싸움을 부추기며 대의민주주의 위기를 자초했다. 분명한 것은 서울 서초동이나, 광화문 집회 모두 검찰개혁의 대의에 뜻을 같이했다는 점이다. 조 장관에 반대하는 여론도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검찰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조 장관을 사퇴시키고 해야 한다고 했다.

조 장관은 사퇴의 변에서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하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그는 이날 특수부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검찰개혁안을 마지막으로 발표했다. 이 개정안은 15일 국무회의에 상정돼 의결될 예정이다. 장관으로서 시행령 등을 개정해 할 수 있는 자체 개혁안은 매듭을 지은 셈이다. 그러나 이는 검찰개혁 중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검찰개혁의 본령은 비대해진 검찰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것이다. 이번 조 장관 일가 수사만 하더라도 검찰은 주어진 권한을 넘어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인준 절차를 무력화하고 장관 임명을 좌지우지하려 했다. 특수부 검사 수십명을 동원해 한 가족을 탈탈 터는 게 정상적인 검찰권 행사인지 많은 시민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통과시켜 검찰개혁을 완성하는 역할은 온전히 국회의 몫이 됐다. 서초동 촛불집회는 지난 주말 잠정 중단하며 “검찰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촛불을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수 야당이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끌거나 시늉만 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호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 못지않게 언론개혁도 시급한 과제임을 일깨워줬다. 시민들은 의혹 부풀리기, 인권침해, 검증되지 않은 피의사실 유포 등 무책임한 보도를 쏟아낸 언론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언론은 깊은 자성과 성찰을 요구받고 있고, 이에는 ‘경향신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신뢰받는 언론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지난 두 달 동안 경제와 안보·외교 등 국정 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정치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였다. 정부·여당은 그간의 국정운영 방식을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야당은 과도한 정치공세는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혼란과 갈등을 접고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 미완의 개혁과제는 박차를 가해야 한다. 조 장관 사퇴가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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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에렉투스가 불을 이용한 142만년 전부터 인간과 동고동락한 말이 있다. 쉽게 불이 붙도록 먼저 태우는 ‘불쏘시개’다. 돌을 튕기고 나뭇가지를 문질러 불붙이던 선사시대엔 낙엽·풀·잔가지·털·관솔이, 문명시대엔 종이·지푸라기·영지버섯이, 지금은 번개탄·기름도 그 역할을 한다. 동해안 산불에서 300m를 날아다닌 솔방울도, 노트르담성당 불길을 키운 지붕 밑 800년 된 참나무도 사람들은 불쏘시개라고 했다. 인터넷에 불쏘시개를 치면 기사 44만건이 뜬다. 도화선·촉매·신호탄·마중물과 비슷한 말인데, 불로 비유하는 인간사가 유독 많고 널리 알려진 순우리말의 멋스러움도 더해졌을 터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사퇴 의사를 밝힌 후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조 장관은 특수부 축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안을 발표한 뒤 약 3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불쏘시개는 정치적으로 변화의 촉발점에 쓰인다. YH사건→김영삼 의원직 박탈→부마항쟁→10·26으로 이어진 유신 말기 사건은 연쇄적으로, 1990년 지방자치제를 연 김대중 전 대통령 단식에도 이 제목이 뽑혔다.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2000년의 동교동 권노갑, 2012년의 친박 허태열, 올해 이해찬·양정철은 물갈이의 십자가를 자임했다. 4차례나 험지에서 지역 벽에 도전한 ‘바보 노무현’도 불쏘시개로 불렸다. 꼭 의도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2003년 9월4일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일어난 ‘이미경 의원 머리채’ 사건은 그날만 의원 31명이 탈당계를 낸 분당의 불쏘시개가 됐다. 두번 구속된 안희정은 2002년엔 정치자금 투명화, 올핸 미투(MeToo)의 불길을 댕겼다. 트럼프·김정은이 주고받은 친서가 비핵화 협상을 촉발시킬 때도, 담뱃세·금리·온실가스·동남권신공항이 세상 이슈가 될 때도 곧잘 따라붙는 말이 불쏘시개다.

조국 법무장관이 14일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물러났다. 66일간 대한민국 뉴스 중심에 섰던 사람의 사퇴 변에 불쏘시개가 소환된 것이다. 조 장관은 지난 1일 출석한 국회에서도 “제게 주어진 시간까지 제 일을 하고자 한다. 불쏘시개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했었다. 그 분기점을 정부 몫 검찰개혁안이 발표된 날로 잡은 셈이다. 불쏘시개는 야당이 대통령에게 요구한 ‘읍참마속’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겸손한 표현이지만, 더 큰 태풍을 예고하는 말일 수도 있다. 조국이 불쏘시개가 된 촛불은 검찰개혁과 공정사회였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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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지면게재기사-

요즘 국제뉴스들을 보면 보수반동의 득세라는 말이 실감난다.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가지는 않을 텐데도, 그리 비친다.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의 비정상적 행보가 튀어 그럴지 모르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식 밖 언사는 질릴 만한데도, 최강국 대통령 말이다보니 여전히 신경이 쓰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과거 지우기’ 행태는 또 어떤가.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열대우림의 화재가 지속되면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까지 조명됐다. 이들의 극단적 언행은 2차 대전 즈음 유럽을 휩쓸었던 파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는 퇴행하고 있는가. 

트럼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시스트다. 이주민·난민·빈민·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노골적 편견을 드러내고, 환경이슈는 제쳤다. 힘의 논리를 앞세워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 미국 대통령이야. 어쩔래?” 하는 식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처하는 행태는 고개를 흔들게 했다. 지난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대선 라이벌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부패 의혹 조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짜뉴스’라고 우긴다.

현안에 대한 입장도 편의에 따라 바뀐다. 터키군의 시리아 쿠르드 자치지역 침공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자 “터키 경제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홍콩 사태를 두고 “인도적 해결” 운운하더니, 미·중 무역협상이 일부 타결되자 “(시위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했다. 사실,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잠시나마 그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조변석개 행태를 보면서 그가 소명의식을 갖고 다뤄야 할 비핵화 이슈를 재선과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한 한갓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만 커지고 있다.

아베는 ‘제국주의 일본’의 재림이 가능하다는 헛된 공상을 한다.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수준을 넘어 과거를 적극 미화한다. 지난 4일 임시국회 연설에서 “일본이 내걸었던 큰 이상은 세기를 초월해 국제인권규약을 시작으로 국제사회의 기본원칙이 됐다”고 주장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도 불편한 과거를 묻어버리려는 막가파식 속성에서 비롯됐을 테다. 후쿠시마의 파국적 상황을 덮는 수단으로 도쿄 올림픽을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받는다.

문제는 ‘유사 트럼프’와 ‘유사 아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보우소나루는 아마존의 무분별한 상업적 개발을 허용, 두 달째 지속되는 아마존 열대우림 화재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그는 세계의 비판 여론을 음모론과 막말로 대응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국제사회 반대에도 시리아 쿠르드 자치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비판이 커지자 “군사작전을 비난하면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 360만명을 유럽에 보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법을 넘는 공권력으로 ‘징벌자’ 별명이 붙었다.

극단적 지도자들의 행태에는 공통점이 있다. 도 넘은 ‘자국 제일주의’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의 행태는 지나치다. ‘주판알’만 튀기느라 동맹에 대한 신의도 저버리는 트럼프나, 과거의 잘못을 보복으로 되갚는 아베의 근본은 똑같다. 그런데도 이들의 지지기반은 비교적 탄탄하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많은 수의 국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을 테지만, 미국 내에서 트럼프의 골수 지지층은 여전하다 한다. 아베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한가. 이들이 내세운 자국 제일주의가 일정부분 국내 지지를 얻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외부 적을 설정하고, 곪고 있는 내치에 쏠리는 국민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견 타당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테다. 상식적 정치세력의 지지부진, 혹은 실패가 보수반동 득세를 부른 것은 아닐까. 실제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기성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파고들어 뜻밖의 승리를 거뒀다.

그래서 보수반동의 득세를 남의 나라 일로만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트럼프나 아베 같은 극단적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보수야당 리더들의 면면을 보라. 시민들은 눈을 부릅떠야 한다. 조국 논란을 관리 못해 중도층 이탈을 부른 여권도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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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지면게재기사-

“지난 2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 온 문재인 정부를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신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조사회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치자. 당신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을 할 것이다. 90점이든 40점이든. 이어서 “그 점수를 주신 기준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과연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합당한 기준인가? 남들도 그 기준에 동의할 수 있을까? 혹시 20년 전에나 통용되던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더힐티브이(The Hill TV)의 크리스털 볼과 인터뷰를 한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앤드루 양은 매우 흥미로운 발언을 했다. 일부 발췌인용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지향하는 경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GDP는 우리를 벼랑 끝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의) GDP는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지만 자살, 약물 남용, 스트레스, 가정경제의 불안정도 기록적입니다. 측정도구가 잘못된 겁니다. 우리의 행복과 건강, 약물로부터의 해방, 깨끗한 공기와 수질, 우리 아이들의 행복 등에 최적화된 지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분석국에 가서 말할 겁니다. 이봐요, GDP는 거의 100년이 되었어요. 낡고 거의 무용지물이 됐다고요. 업그레이드를 합시다. 시대에 맞는 ‘미국 채점표(scorecard)’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건강과 수명, 정신 건강 등이 반영된 지표 말입니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여전히 100년 전 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혹은 남들의) 성적을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공을 측정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발전의 기준도, 승리의 판정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대학교수의 평가방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무조건 연구를 많이 해서 논문만 많이 쓰면 ‘점수’가 올라갔는데, 이젠 그 논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점수’가 바뀐다. 야구선수의 성과를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따졌던 투수의 승수나 타자의 타율도 이제는 평균자책점이나 진루/장타율에 그 자리를 내줬다. 확고해 보이던 기준도 시대가 바뀌면 성긴 구석이 발견되고, 환경이 바뀌면 정당성도 떨어진다.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세면서 내가 이겼네 네가 이겼네 하는 다툼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1987년 12월,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각각 여의도 광장에서 유세를 벌이며 서로 100만명을 넘겼다고 우겼다. 소위 군중 숫자로 ‘세 싸움’을 하던 시절이다. 불과 5년 후 선거에서는 후보들이 대규모 유세를 안 하기로 합의하면서 소위 ‘100만 유세’는 사라졌다. 27년 전이다.

이 쓸데없는 싸움을 부추기는 언론의 보도기준은 무엇인가? 인근 지하철역 하차 승객이나 휴대전화 접속 기록을 따지며 부득부득 승패를 결정짓겠다는 언론사들은 이 시대 언론의 사명이 방문자 수 증가와 수익의 극대화라 생각하나? 양극화시켜놓고 양극화가 문제라며 한탄하면 회사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가? 남들 페이스북 내용 쫓아다니며 특종, 단독 타이틀 붙여 클릭 장사하는 기자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언론사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앤드루 양의 발언은 정곡을 찌른다. 그는 측정도구가 과연 타당한지 묻는다. 정확하고 엄밀하게 측정하면 ‘신뢰도’는 올라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애초에 측정하고자 했던 그 무엇”을 측정했다는 보장은 없다. 최첨단 디지털 저울로도 키를 잴 수는 없듯이. GDP는 우리의 행복을, 우리 자손들의 건강을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수치이다. 지금 우리는 이 정부의 성공을, 혹은 여야 대결의 승자를 무슨 기준으로 따지고 있는 것인가? 일단 군중의 숫자는 아닌 것 같다. 뜬소문 하나로 들쭉날쭉하는 지지율도 타당한 잣대는 아니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국정 운영의 점수를 매기는 우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언론의 보도행태를 욕하거나 상찬할 때의 기준은 무엇인가? ‘조국 수호’도 ‘조국 파면’도 이 시대 이 사회의 안녕함을 판정할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검찰개혁도, 대통령 탄핵도 결국 더 큰 목표를 위한 수단이고, 언론의 ‘팩트 체크’도 공정한 보도와 건전한 비판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양비론이 아니다. 양비론을 넘어서자는 얘기다.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이 중요할지에 대한 논의를 좀 하자는 것이다. 그런 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자리에 나와 또 표창장 얘기나 한다면 정치인들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하고, 옳다구나 싶어서 삿대질 사진을 특종으로 싣는 언론이 있다면 우리나라 기자들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아직 기대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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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지면게재기사-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12일 서초역 4거리 2.7㎞를 열십자로 꽉 메운 인파 속에서 열렸다. 마지막 9번째 집회의 주제는 “우리는 언제든 다시 모인다(We’ll Be Back)”였다. 참석자들은 ‘최후통첩문’에서 검찰의 과잉수사 중단, 패스트트랙 안건(공수처·검경수사권조정 법안) 신속 처리, 자유한국당의 정치 복귀, 언론적폐 청산과 정론직필을 촉구했다. “낡은 시스템을 여기서 끊자”고 외치며 줄지 않은 대오와 함성으로 촛불집회 ‘시즌1’을 마감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원한 길 건너편 서울성모병원 앞에서는 우리공화당과 보수단체가 연 맞불집회가 열렸다. 주말 밤 대검찰청 벽에 레이저로 쏘아진 ‘검찰개혁’ ‘조국수호’ 옆에는 보수단체가 쏜 ‘조국 구속’ 글씨도 맺혔다. 숫자 싸움까지 벌인 두 갈래의 민심이 동시에 맞부딪친 상징적 장면이었다.

광장은 숨 고르기 시작했다. 서초동 집회는 끝났고, 한국당도 광화문 집회를 중단했다. 민심은 충분히 표출됐고, 의제는 삼척동자도 알 만큼 공유됐고, 이제 답을 제대로 내놓으라는 압박이 정부와 국회로 향하고 있다. 장관 지명 후 75일째를 맞는 ‘조국 피로감’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반환점을 돈 국정감사가 무엇을 지지고 볶고 소환하고 있는지, 철도 파업과 학교비정규직 파업은 왜 술렁이는지, 돼지열병과 태풍 이재민은 얼마나 악전고투하는지 눈 밖에 벗어나 있다. ‘조국’에만 꽂혀 하루를 여닫다 보니 생긴 일이다. 국정과 민생은 내상이 깊어졌다. 예외 없이 정치도 검찰도 언론도 메신저로서의 신뢰에 경고등이 켜졌다. 끼리끼리 확증편향만 키워가면 편가름과 선동만 커질 뿐이다. 광장의 요구는 분명하다. 검찰개혁은 일치하고, 조 장관 거취는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갈리고 있다. 정쟁의 쳇바퀴를 세우고 질서 있게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에 바통을 넘긴 광장의 민심이다. 그 출구의 끝은 청와대일 테다.

‘정치의 시간’은 시작됐다. 마지막 서초동 촛불집회가 열린 날 법무부·검찰이 검찰개혁을 화두로 대좌했고, 그 답을 갖고 13일엔 고위당정청회의가 열렸다. 법무부 규정을 고친 구체적인 특수부 축소 방안과 인권보호 수사 방안은 15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키로 했다. 조 장관이 “끝을 보겠다”던 검찰개혁의 정부 몫은 그날 매듭짓는 셈이다. 그 후엔 패스트트랙 두 안건을 5당 정치협상회의에 올린 국회 몫이 남는다. 첫 회의에 불참한 한국당은 오늘도 “조국 구하기용 가짜 당정”이라고 날을 세웠다. 정부에 쏟아진 검찰개혁 국민 제안만 1847건이다. 그 열망에 맞게, 광화문 집회를 접은 약속대로 한국당은 국회 협의에 대승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 속에서 이견을 다투라는 게 광장의 요구다. 대통령이 언급하고 조 장관도 인정한 거취 판단의 마지막 잣대는 ‘검찰개혁의 제도적 완성’이다. 검찰 수사 끝에 정치적 분기점은 여야가 사법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 시점으로 다투는 11월 초나 12월 초가 될 공산이 커졌다. 지치고 쪼개진 시민들에게 정치의 답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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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오는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에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다고 총리실이 13일 발표했다. 이 총리는 22일 출국과 함께 오후 즉위식에 참석한 후 2박3일 동안 일본에 머물며 정·재계 주요 인사들을 만난다. 청와대는 “(한·일관계는)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이 총리의 즉위식 참석이 한·일관계 개선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1년 동안 악화일로인 양국 관계가 이 총리의 방일을 계기로 회복의 길로 들어설지 주목된다.

이번 일왕 즉위식은 1990년 11월 아키히토(明仁) 일왕 즉위식 이후 29년 만에 있는 일본의 국가적 경사이다. 한국을 대표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한·일 양국의 뜻이 맞지 않아 이 총리가 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아베 신조 총리는 즉위식에 참석하는 50여개국 대표와 개별 회담을 하는데, 이 총리와도 회담 일정을 조율 중이다. 아베 총리와 이 총리가 회담하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우선 대법원 징용판결 이후 1년 만에 처음으로 양국 최고위 지도자가 공개석상에서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 총리는 언론인 시절 도쿄특파원을 지내고 국회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을 역임해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일본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만나왔다. 이 총리가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데다 최고의 일본통인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이 수행한다. 양국의 관계 개선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양국 간 갈등은 일본이 한국의 3권분립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 총리는 이를 이해시켜야 하고, 일본은 열린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 현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어렵다면 최고위층 간 관계 개선 의지라도 확인해야 한다.

양국 간 입장차가 여전해 한·일관계가 당장 개선되기를 바라기는 쉽지 않다. 아베는 한국이 국가 간 약속을 어겼다며 한국이 먼저 갈등을 푸는 조치를 내놔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한국 측은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면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다음달에는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시행과 더불어 징용피해자 측이 배상을 현금으로 받아내기 위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할 수 있다. 한·일관계가 파국적 상황에 이르기 전에 양국은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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