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인 한 견공이 있다. 공장 한편에서 쇠사슬에 묶여 지내던 백구 ‘1미터의 삶, 진돌이’. 녀석에게 처음 산책과 바다 구경을 시켜주는 등의 체험담을 전하는 채널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마치 보는 사람이 진돌이가 된 듯, 해방감마저 느끼게 한다.

몇개월 전에는 TV에서 우연히 ‘샤넬’을 봤다. 샤넬은 주차장만 지키고 앉아 있다. 산책을 가자고 나서면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됐다. 억지로 질질 끌려나가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줄을 놓으면? 마구 뛰어 주차장으로 되돌아갔다. 샤넬은 군견으로 이용됐던 셰퍼드다. 덩치는 작은 송아지만 하지만 겁쟁이다. 군견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가정에 입양됐다. 이는 한참 지난 재방송인데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나온 사연이다. 샤넬은 군복무 시절 밖에 나와선 용변만 보고 빨리 견사로 들어가야 하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외출에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강형욱 동물훈련사는 풀이했다.

여론을 뜨겁게 달군 ‘메이’의 사연은 또 어떤가. 이 비글은 인천공항에서 검역 탐지견으로 활약하다 은퇴했다. 인간들의 안전을 위해 헌신한 뒤 이병천 서울대 교수의 복제견 연구팀에 지난해 3월 되돌아왔다. 이른바 ‘검역기술 고도화를 위한 스마트 탐지견 개발’을 위해서다. 무슨 인공지능(AI) 로봇견 고안 작업처럼 들린다. 태생부터 철저히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메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비틀대다 폐사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근세에 머물러 있다. 인간의 탐욕을 위해 자연은 언제든, 어떻게든 이용되고 조작되고 파괴돼도 괜찮은 그저 ‘대상물’일 뿐이다. 몸에 좋거나, 덜 해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나와 다른 약한 존재가 고통받아도 마땅한가.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지난해 8월 기자칼럼에서 소개했듯, 몰티즈 ‘소다’를 키워보니 샤넬이나 메이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미국 뉴욕, LA 등에선 모피 제품 판매를 전면금지하는 법안이 나왔다. 모피업계 반발을 무릅쓰고서다. 올 8월 부산 구포 개시장 폐업에 부산 사람들은 77%가 잘한 일이라고 반응했다.

소다를 통해 부쩍 고민되는 지점이 사실 육식이다. 하지만 채식을 실천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다. 또 다른 고민거리는 중성화다. 중성화의 목적은 몇가지 있는데, 의료인들은 각종 호르몬 관련 등 질병 예방을 강조한다. 키우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런저런 편리함 때문이다. 인간 편의를 위해 자연번식을 억제하는 조치가 바람직한가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휴대폰을 쓰기 편하게 만들려고 어떤 부품은 빼버리듯 생명을 대하는 건 아닐까.

질문의 끝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냐’는 데까지 닿는다. 강아지를 키워보고 내린 결론은 오히려 부정적이다. 비윤리적인 ‘강아지 공장’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고안된 생명이더라도 태어난 이상은 잘 보살펴줄 책무가 있다.

몇주 전 동네에 한 코숏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고 한다. 태풍 링링을 앞두고 걱정돼 비를 맞으며 밤중에 플래시를 들고 산을 헤매는 주인의 심정을 일반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고속도로 휴게소를 중심으로 잔인한 추석 연휴가 재연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반려견, 반려묘들이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질까. 깜빡한 ‘엄마, 아빠’가 다시 찾아올 거라고 버려진 곳을 배회하며 비슷한 자동차를 유심히 살펴보던 TV 화면 속 댕댕이들의 모습이 선하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어린 양의 삶이 인간의 삶보다 가치가 덜한 게 아니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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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방송채널을 돌리다 보면 토론방식의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종편은 하루 대부분의 방송시간을 이런 프로그램들로 편성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몇 명의 전문가 패널과 해당 방송사 소속 기자가 그날그날의 사건, 사고를 주제로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재미있는 건 많은 경우 패널로 참여한 이들이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주제들도 논평한다는 점이다. 정치평론가가 연예계 사건도 해설하고, 문화평론가가 법률적 이슈도 해설하는 식이다.

전문가는 오랜 학습기간을 거쳐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한편 지식인은 이러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필요할 때마다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한다. 일단 전문가로 인정받으면 대중적 신뢰와 권위가 생긴다. 방송언론에서 이들을 많이 모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가 곧 지식인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민주화 이후부터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지식인의 역할에 관한 논쟁이 뜨거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런 문제의식이 실종된 느낌이다. 지식인 스스로가 자초한 면도 있고 환경이 바뀐 것도 있다. 민주화 이후 긴 호흡의 통찰이나 치열한 담론생산이 거의 사라졌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에 포섭되어 권력의 향방에 따라 입지를 서로 뒤바꿀 뿐이다. 엄격한 비판정신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결여된 이른바 전문가들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SNS)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려 대중들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전문지식인들의 입지는 전보다 훨씬 좁아졌다. 바야흐로 모두가 지식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중 지식인’ 시대다.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지식을 터득할 수 있는 소질을 타고난다. 조선시대처럼 학문적 지식을 전담하는 신분층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체계가 약화되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누구나 고등학교까지는 교육받는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한다. 소위 ‘대중 지성’이 가능한 시대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환경에서는 지식인의 정의를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인은 건전한 상식, 상당한 전문지식, 그리고 미래의 변화에 대처할 능력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춘 사람이다. 시대와 소통하며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유연한 창의성, 그리고 남들과 소통하고 협력할 줄 아는 덕성을 겸비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지금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50-30 클럽’(5000만 인구에 1인당 소득 3만달러)에 가입할 정도로 큰 나라가 되었지만, 저성장과 양극화의 심화로 국가 경제는 물론 공동체 자체가 위험에 처해 있다. 또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노력으로 1987년 이래 제도적 민주화를 성취해냈지만, 그 ‘87년 체제’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가로막아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렇게 사회가 정치, 경제적으로 양극화되면 상호관용과 상생발전이라는 공동체적 가치가 설 땅은 없다. 지식인의 치열한 고민과 창조적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한국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먼저, ‘More Open’,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보다 포용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소수의 목소리가 존중받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공동의 가치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정치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국내 거주 북한 이탈주민이 3만명을 넘어섰고, 외국인 노동자나 귀화 외국인도 2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와 일상을 함께하며 사는 이웃들이다. 수도권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은 이미 다민족 공동체로 진입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을 ‘타자화’하는 순간 한국사회는 또 다른 갈등의 뇌관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함께 살아갈 방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두 번째는 ‘More Compassionate’, 더 따뜻해져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원조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었다. 다른 나라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다. 첨단 산업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것도 좋지만 도움이 필요한 나라와 희망과 비전을 함께 나누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피폐했던 경제를 재건하고 권위적인 정치체제를 민주체제로 바꾼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산업화와 민주주의 역량을 갖춘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여할 차례가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동반성장 문화가 필요하다. 끝으로 ‘More Confident’, 더 자신감을 갖자. 한국은 과거의 고립된 은둔자나 약한 나라가 아니다. 아직도 여러 가지 과제가 있지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조화로운 체제를 만들면서 글로벌 리딩 국가로 도약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당당하고 주체적이며, 세계에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자신감을 갖고 지구촌 곳곳에서 평화와 안전, 인류의 진보를 위한 역할을 더 확장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국은 그럴 역량을 충분히 갖고 있다.

공동체 내에서 지식인의 위상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본질적 책무는 변하지 않는다. 지식인의 시대는 끝났다고 단정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탈속적이든 세속적이든, 혹은 권력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전문지식의 보유자로서 학문과 현실을 매개하고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 비판하는 지식인의 책무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와 문화, 체제와 인간, 과학기술과 윤리 등 사회 내부에서는 다양한 층위에서 불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시대를 통찰하는 창의적인 지식생산자가 없다면 공동체의 지속이나 인류의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도 지식인은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데 세계를 잘 모를 뿐 아니라 그런 자신에 대한 고민조차 없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문제는 스스로를 성찰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자각하는 것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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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논문 논란을 계기로 앞으로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인사검증 ‘코스’에 자녀 논문 문제가 추가될 것 같다. 조 후보자 딸의 경우 그가 제1저자로 등재된 해당 논문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 가점 요소로 작용했는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다만 조 후보자 딸이 입학할 당시인 2010년은 대학들이 대입전형서류를 5년만 보관하고 폐기하던 때라 논문의 가점 여부가 정확히 확인될지는 불투명하다. 대입전형서류 보관연한이 10년으로 늘어난 건 지난해부터다.

본질적으로 이 사안은 논문을 지도한 교수의 연구윤리 문제다. 한 사립대학 교수는 “조 후보자 딸이 해당 논문에 참여한 기간이나 기여한 내용 등을 봤을 때, 다른 이유를 배제하고서라도, 제1저자 등재는 명백히 부적절해보인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연구부정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의 전반적인 시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내 학술계에 논문을 비롯한 각종 연구성과에 대해 ‘윤리’라는 개념이 등장한 역사는 길지 않다. 2005년 겨울 전 국민을 ‘멘붕’에 빠트린 황우석 사태가 그나마 계기가 됐다. 교육부에 연구윤리 문제를 다루는 전담부서가 생긴 것도 불과 10여년 전인 2007년이다. 논문과 관련된 연구윤리 문제는 그간 논문을 베끼거나 하는 등의 연구자 본인의 부정 문제에서 최근 미성년 저자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고교생의 논문실적이 대입전형의 주요 ‘스펙’으로 각광받으면서부터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2일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조 후보자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각종 의혹에 휩싸여 있다. 강윤중 기자

교육부도 부랴부랴 2017년부터 실태조사에 착수해 미성년 자녀나 친·인척 등을 부적절하게 논문에 저자로 올린 사례를 수십 건 적발했다. 조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매년 수만 건에 달하는 논문을 교육부가 일일이 조사해 부정을 밝힐 순 없는 일이다. 조사과정이 쉬운 것도 아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미성년 논문 문제를 조사하는 공무원에게 ‘내가 장관으로 가서 당신을 혼내주겠다’고 엄포를 놓는 교수도 봤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연구자가 ‘양심’적으로 논문을 써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양심이란 게 자녀문제나 친분 앞에서, 때로는 출세나 영달을 위한 욕심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업기관이자 연구기관을 자임하는 대학이라면 연구자는 물론 연구자가 생산해낸 결과물까지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이에 반해 국내 대학들은 논문 부정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연구자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거나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만 보여왔다. 미성년 저자 논문 문제만 해도 “그런 사례가 없다”는 식의 불성실한 자료를 제출했다가 교육부로부터 재조사 처분을 받은 대학이 여러 곳이다. 대학별로 연구윤리 문제를 전담하는 담당자를 두고 있긴 하지만 인력이 1~2명에 불과해 실질적인 연구부정 검증 및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독립성을 가져야 할 연구윤리 전담 인력이 현재 총장 등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조 후보자 딸 문제를 계기로라도 대학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윤리를 보호하는 데 나서야 한다. 연구윤리를 어긴 연구자에 대한 처벌 역시 대학의 몫이다. 사태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솜방망이 징계만 할 게 아니다. 현행 규정상 연구윤리 위반 연구자에 대해선 대학이 파면까지 처분할 수 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도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있는 수많은 연구자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자의든 타의든,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사안 조사에 착수한 단국대학교의 대응을 지지한다. 이 역시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결론이 나올까.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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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도를 이루는 네 개의 주요 섬 가운데 세 번째로 큰 섬이자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섬인 규슈에는 22개 코스로 이뤄진 규슈올레가 있다.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 출신 공무원이 아이디어를 내서 규슈 지방정부와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함께 만든 길이다. 

간세(조랑말 표식)를 비롯한 모든 것이 한국의 제주올레와 쌍둥이다. 2012년 2월 처음 길을 낸 이후 지난해까지 45만5000명이 걸었고, 이 중 30만명이 한국인이다.

규슈올레길도 당분간 한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선 시민사회의 불매운동 및 여행 자제 운동의 여파다. 역으로 일본 내에서도 한국 여행 자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일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도 여럿 취소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경제를 무기화하면서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교류가 점점 말라가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단칼에 자르기에는 너무 많이 연결돼 있다. 한 예로 올 상반기 한국의 수출이 8.5% 감소했고 일본의 대한 수출도 13.3% 줄어들었다. 한국 제품이 안 팔리면 일본 부품도 함께 잘 안 팔린다. 한국에 들어오는 일제 상품 중 맥주나 옷 같은 소비재는 6.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부품·소재·장비들이다. 

한국 경제가 잘되어야 일본 경제도 잘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들도 아베 정부의 조치를 “일본 기업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침략이라기보단 자충수이다. 

경기 활성화는 두 나라의 교류를 통해 상호 보완이 가능하다. 규슈올레가 만들어지면서 고령화를 걱정하던 한적한 일본 마을에 사람들이 흘러들고, 한국의 올해 상반기 서비스수지는 일본 등에서 온 관광객들이 증가하며 개선되는 식이다. 이처럼 사람이 활발히하게 오가야 경제도, 문화도, 서로에 대한 이해도 풍성해진다.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많이 온다.

더 나은 교류를 위해 과거사 문제는 마땅히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정권 강화나 선거용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두 나라 사람들 사이의 흐름은 이어져야 한다.

<경제부 | 박은하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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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하는 일 때문인지 버스 안에서도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관찰하는 몹쓸 버릇이 있다. 출근길에 만나는 20대 자폐 청년은 정류장까지 배웅 나오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한다. “사랑해” “사랑해”, “차조심” “차조심”. 엄마의 등을 토닥이며 “사랑해”를 반복하는 걸 보고 있으면 어쭙잖게 울컥할 때가 있지만,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동반자 중에서 정체가 궁금한 사람은 따로 있다. 누군가 하면 퇴근길에 가끔 마주치는 ‘공짜 승객’이다. 내가 처음 “돈이 없으니 그냥 태워달라”던 그를 봤을 때만 해도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했었다. 지갑을 두고 나온 것을 뒤늦게 알아챘거나 누군가에게 지갑을 털렸을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보아도 그의 입성은 버스비를 내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승객으로는 안 보였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건장한 체격에 얼굴색도 하얗고,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은 말쑥한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무임승차를 허락했다. 그 후에도 이 남자의 무임승차는 적어도 나와 마주친 날에는 어김없이 계속됐다. 이따금 내리라고 하는 기사도 있었지만, 상습적인 무임승차가 들통났으면 하는 내 바람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를 버스에 태웠다.

그동안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는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려, 곧바로 편의점으로 직행한다. 언젠가 한번 편의점으로 가는 그를 따라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물건을 사러 갔다가 본 적도 더러 있는데 언제나 그의 손엔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버스비로 컵라면이라도 먹는다면 모를까 아이스크림이라니. ‘돈이 있는데도 왜 버스비를 안 내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런 오지랖을 부릴 정도로 덜 붐비는 버스를 타고 다니니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버스에선 언감생심이다. 하루 일감을 얻고, 빌딩 청소와 경비를 하러 집을 나서는 노동자들로 버스의 첫차는 만원이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를 일깨운 건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이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매일 새벽 버스를 타고 중년 여성들이 강남의 빌딩으로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후 이 연설이 다시 회자됐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이달 중순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이들의 고단함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4개 버스노선의 새벽 시간대 배차를 늘렸다. 이들의 출근길은 좀 나아졌을까. 서울시의 생색에 비해 체감 효과는 크지 않다고 한다. 2015년 도입한 ‘조조할인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추승우 서울시의원이 공개한 ‘최근 3년 대중교통 조조할인 현황 자료’를 보면 교통혼잡 분산을 기대한 당초 취지와 달리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두 정책 모두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내 처지를 벗어나 다른 이의 삶을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다. 동 트기 전 집을 나선 노동자들로 버스 첫차가 얼마나 붐비는지, 그 안에서 그들이 새벽잠 쫓으며 밀리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를. 컵라면이 아닌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만 하는 누군가의 ‘현실’은 보이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재빨리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재단해 버린다.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영화 &lt;기생충&gt;을 보면서 나는 내내 불편했다. ‘봉테일’이 꾸며놓은 영화 속 가난이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을 보면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과연 지금의 나는 그들과 다른가.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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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지키는 일은 정부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없다. 국회와 공공기관, 지자체,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지난 28일 ‘장기미집행 공원 해소방안’에 관한 정부와 여당의 당정협의에서 나온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이다. 내년 7월 전국 1987곳 338.1㎢의 도시공원 부지가 일시에 사라질 수 있는 ‘도시공원 일몰’ 시점을 앞두고 정부가 “공원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지난해 4월 처음 나온 대책에 빠져 있던 국공유지 일몰 유예 등 추가 대책이 나온 것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정작 추가 대책을 기다려 온 지자체의 반응은 냉담하다. ‘전형적인 책임 전가와 면피’라는 반응까지 나온다. 핵심적인 정부 역할은 잘 안 보이고, 지자체로 하여금 공원 조성을 유도한다는 식의 대책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정부가 강한 의지만 표명하면서 각론에선 ‘손 안 대고 코를 풀겠다’는 심사가 아닌지 우려된다.

정부 대책을 보면 재정적으로는 당초 최대 50%를 지원하겠다던 지방채 발행 이자를 70%까지 늘려 지원하겠다는 게 전부다. 정부는 우선관리지역 부지 매입에 필요한 지방채 발행액을 2조4000억원으로 추산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5년 동안 많아야 600억원만 지자체에 추가 지원하면 된다. 반면 지자체는 지방채와 자체 예산 4조3000억원 등 최소 6조7000억원의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지자체가 공히 열악한 지방재정을 공원 장기미집행의 주된 이유로 꼽아온 점을 감안하면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국공유지도 마찬가지다. 국공유지를 아예 일몰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정부는 일단 실효를 유예하며 폭탄을 뒤로 넘겼다.  

정부가 일부라도 국비 지원을 결정하고 국공유지를 일몰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면 도시공원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대부분 도로·철도 건설에 쓰이고 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일부를 도시공원에 투자할 수도 있고, 10년, 20년간 장기 계획을 세우면 큰 부담 없이 조금씩 부지를 확보해 갈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원 조성 성과를 평가지표에 반영하겠다며 지자체만 쥐어짜려 한다. 김 장관은 “추가 대책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정책과 지원방안을 고민해 소중한 공원을 지켜 나가겠다”고 했다. 정부는 도시공원을 ‘도시의 허파’라며 미세먼지 저감효과까지 홍보했다. 빠듯하지만 아직 1년여의 시간이 있다. 김 장관의 말처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정부의 노력을 기대한다.

<이종섭  |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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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지금까지 한·미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이 정치적 고려 없이 이뤄진 적은 없다. 그래서 한·미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다”고 말할 때마다 불편함이 느껴진다.

1985년 에티오피아를 철권통치하던 멩기스투 사회주의 정권이 반군 지역에 식량·의료지원을 중단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로널드 레이건 미국 행정부는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에티오피아에 식량지원을 결정한 적이 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 말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은 재난이 아닌 정치 행위로 초래된 인도주의적 위기에 다른 나라가 순수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관여한 경우가 그만큼 드물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가 간에 인도주의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조치들이 정치와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미국이 독일에 대규모 식량지원을 한 것은 독일과 소련의 밀착을 막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도 미국의 식량지원은 중동·남미 등 정정이 불안한 지역에서 외교적 도구로 활용돼왔다.   

1996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은 CBS 방송 시사프로그램 &lt;60분&gt;에서 배고픔의 고통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미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당시 이라크에 가해진 가혹한 경제봉쇄는 취약계층인 어린이·노약자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혔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보다 더 많은 50만명의 어린이가 식량·의약품 부족으로 사망했는데 과연 경제봉쇄 조치가 그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올브라이트 장관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북한 문제에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때로는 대화 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폭발 직전까지 차오른 군사적 긴장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한·미는 인도적 지원을 활용해왔다. 북한 역시 인도적 지원과 정치 행위를 분리하지 않는다. 북한은 대북 식량지원을 ‘신뢰구축 조치’라고 표현한다.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신뢰관계 구축에 필요한 요소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2012년 북·미 2·29 합의는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과 우라늄농축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은 24만t의 영양지원을 한다는 것이 골자다. 핵활동을 중단하는 ‘군사 조치’와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인도적 조치’를 맞바꾼 합의다. 작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북·미 관계개선·비핵화 등과 함께 미군 유해 송환이라는 인도주의적 사업이 ‘정치적 의무’로 한 문서에 같이 담겨 있다. 

이렇듯 북한 문제에서 인도주의적 조치는 정치 행위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됐지만 아무도 이런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북한 문제에서는 인도주의적 조치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되는 것을 모두가 당연시할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지금 한·미는 다시 대북 식량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런데 계산법이 각각 다르다. 한국은 대화 교착상태를 벗어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미국은 제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식량지원 필요성을 느낀다.

지금의 대북 제재는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 유엔 정신에 반하는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 2016년을 기점으로 대북 제재의 목적이 ‘핵무장을 막기 위한 것’에서 ‘완성한 핵을 포기하도록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제재로 북한에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하고 국제적 비난이 일게 되면 제재가 무너진다. 인도적 위기를 초래한 제재를 유지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별도로 해야 하는 기막힌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미 모두 대북 식량지원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안다’. 그러니 이제 식량지원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낯간지러운 레토릭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진정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할 생각이라면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다른 조건을 달아야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절대량의 부족 못지않게 분배·정책·거버넌스 등의 문제가 중요한 원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경제·농업·복지·보건정책의 개혁을 조건으로 제시하거나, 하다못해 북한에 억류 중인 우리 국민의 송환을 협의하는 조건이라면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 찬성할 수 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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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 붙잡혔던 한국인 관광객이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국민보호 책임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9일 자국민 구출작전 도중 함께 억류 중이던 한국인과 미국인을 발견해 함께 구출했다. 이들은 부르키나파소에서 남쪽 베냉으로 이동하다 납치돼 28일간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부가 실종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국민보호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이 국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북부지역은 4단계로 이뤄진 정부의 여행경보 체계 중 3단계(적색경보)에 해당하는 철수권고 지역이며 남부는 2단계(황색경보)인 여행자제 지역이다. 여행 도중 불의의 변을 당해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것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지만, 정정이 불안하고 공관도 없는 지역을 여행하다가 발생한 사건을 정부가 몰랐다고 비난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악의적이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인질로 잡혔다 구출된 한국 여성(왼쪽)이 11일(현지시간) 프랑스 빌라쿠브레 공군기지에 도착해 마중나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가운데) 뒤에서 걸어가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지난해 기준 대한민국의 재외동포는 270만명, 해외여행객은 2870만명이다. 이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정부 인력은 해당 지역 공관과 본부 인원 100여명이 전부다. 정부가 재외국민의 행적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외국민의 동선을 정부가 모두 파악하고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큰 문제다.

지금까지 정부의 영사조력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이 때문에 해외 안전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그때그때 여론과 국민정서에 의해 고무줄처럼 달라져왔다. 정부의 영사조력이 무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도 퍼져 있다. 해외여행 중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연료가 바닥나도 공관에 도와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일까지 있을 정도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올해 초 영사조력법이 제정돼 2021년 발효를 앞두고 있다. 영사업무에 대한 예산·인력의 확대도 필요하지만 이 법이 제구실을 하려면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합리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국민 스스로 일차적 안전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민인식이 시행령과 시행규칙 안에 반영되어야만 한다. 이런 일로 정부를 흠집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트집을 잡는 일부 언론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공격에 대해서는 따끔한 비판을 해줄 수 있는 성숙한 인식도 여기에 포함된다.

<정치부 | 유신모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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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해외 순방 중 급거 귀국한 문무일 검찰총장은 수사권 조정안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민주주의 원리의 핵심은 몽테스키외가 말한 권력분립에 있다. ‘권력의 분산과 균형’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막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민주주의 원리에서 볼 때 가장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조직이 검찰이다. 검찰은 직접수사권,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권, 독점적 영장청구권, 독점적 기소권 등 막강한 권한을 틀어쥐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어떤 외부의 견제도 허용치 않는다. 다른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권한의 집중이다. 이런 구조하에서 검찰조직의 부패와 검찰권의 남용은 필연이다. 수차례 불거졌던 검찰발 부패 스캔들과 검찰권 남용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런 조직의 수장이 기득권 수호를 위해 민주주의 원리를 언급한 사실이 놀랍다. 민주주의 원칙을 신봉한다면 검찰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고 민의에 부합하는 개혁의 길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10일 (출처:경향신문DB)

현재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의 비판은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한 지점에 집중되고 있다. 경찰이 사건 수사를 자의적으로 종결하여 사건을 축소·은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미국가에서 보듯 수사를 하는 기관이 책임지고 종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 다만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행사하는 한 사건 은폐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법안은 여럿 검사의 통제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우선 영장청구 단계에서 검사는 경찰 수사를 인지·통제할 수 있다. 고소인·고발인·피조사자 등 사건관계인이 경찰 수사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 사건은 자동적으로 검찰에 송치된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불송치 결정할 경우에는 반드시 불송치결정문과 수사기록을 검찰에 보내 60일 동안 사후검증을 받도록 되어 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시비가 불거지면 검사는 수사중단과 송치를 요구할 수 있다. 사실상 전건송치에 가까운 통제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통제하에서 경찰 수사가 검찰 모르게 완전히 은폐되는 일은 실제 벌어지기 어렵다. 검찰의 요란한 지적은 침소봉대에 가깝다.

반면 검찰이 입을 닫고 있는 진짜 문제 영역은 따로 있다. 바로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이다. 검찰 수사는 기소권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위험하다. 기소검사가 같은 식구인 수사검사의 위법행위나 권한남용, 인권침해를 사실상 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공약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를 약속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수사권 조정안은 검찰에 광범위한 직접수사권을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 비리 등 중요범죄에 대한 직접수사권을 인정한 것이다. 향후 공수처가 설치되어도 규모가 작기 때문에(25명의 검사, 30명의 수사관)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에서 검찰을 대신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그동안 검찰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고 수사권·기소권 남용의 폐해가 가장 심했던 영역이 바로 이 특수수사 분야였던 점을 상기하면 이번 조정안은 검찰의 핵심 권한을 건드리지 못한 반보의 개혁에 불과한 것이다. 

직접수사 영역에서 검찰은 사건 수사를 독자적으로 진행·종결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반면 경찰 수사와는 달리 검찰 수사에 대한 감시·통제는 거의 없다. 사건을 만들고 왜곡하고 은폐해도 방지하기 어렵다. 검찰의 강압 수사, 무리한 기소에 의한 국민기본권 침해도 막기 어렵다. 기본권 보호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향후 국회 논의는 오히려 이 분야에서 검찰권의 남용을 막기 위한 감시·통제장치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최선의 방안은 검찰의 직접수사를 최대한 제한하는 것이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시민들이 적폐청산 1호로 꼽은 검찰의 선의를 믿고 견제받지 않는 권한을 행사토록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국민기본권의 빈틈없는 보호는 더 철저한 권력의 분산과 권력에 대한 감시·통제를 강화할 때만 가능하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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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월이면 외교부 기자실은 ‘외교문서 시즌’에 돌입한다. 외교부가 기밀유지 연한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들을 공개하기에 앞서 기사 작성을 돕기 위해 미리 배포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1988년 생산된 외교 문서 25만여쪽을 담은 USB가 전달됐다. 문서량이 엄청나다보니 기자들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2주 남짓 되는 기간 동안 각자 맡은 분량을 샅샅이 검토해서 주요 내용을 요약해야 한다.

의무감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외교 현장을 생생한 육성으로 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없지는 않았다. 사관이 사초를 남긴다면, 외교관은 전문으로 존재를 증명하지 않던가.

그런데 할당된 문서 7500여쪽을 살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문서철 중 일부는 “공란”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부 심사에서 다시 5년간 비공개로 전환된 문서들이었다. 상당수는 이미 일반 문서로 분류된 ‘3급 기밀’에 해당했다. 내용 면에서부터 새롭게 보도할 만한 사실을 찾아내기에 제약이 따랐다. 

인위적으로 공개 시점을 정해놓은 부분도 마음에 걸렸다. 현안을 챙기고 취재원들을 만나는 와중에 2주 동안 방대한 양의 문서를 공들여 분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교부는 2019년도 외교문서 공개율은 88%로 지난해보다도 약 2% 증가했으며, 개인정보나 상대국에 민감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밀문서 공개율이 70%에도 못 미치는 미국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외교행정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시작된 외교문서 공개 의의를 살리려면, 더 나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우선 소수의 퇴직 외교관과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지는 공개 대상 문서 심사에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3년쯤 후에는 매년 공개되는 문서의 양이 지금보다 두 배 늘어나는 ‘외교문서 홍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외교문서 분류·이관을 담당하는 인력 확충도 시급해 보인다.

<김유진 | 정치부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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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힘만으로 단단한 주류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영화 &lt;나, 다니엘 블레이크&gt;가 던지는 질문이다.

&lt;나, 다니엘 블레이크&gt;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일을 할 수 없게 된 다니엘이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겪는 고충을 그린 영화다. 다니엘은 질병수당 심사에서 탈락한 후 이를 따지기 위해 담당기관으로 전화를 걸어 보지만, 늘 그렇듯 ‘모든 상담원은 통화 중’이다. 1시간48분이나 기다려 가까스로 통화에 성공한 다니엘이 “요금은 어쩔 거요?”라며 호통을 치지만 돌아오는 답은 담당자에게 문의하라는 것.

이제 그는 심사 결과에 항고하거나, 아니면 실업수당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인터넷으로만 가능한 모든 절차가 마우스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그에게는 ‘구직’보다 어렵다. 그의 사정은 ‘원칙’ 앞에 무력하다.

다니엘은 결국 수치심만을 강요하는 정부의 지원을 포기하고, 저항의 표시로 고용센터 담벼락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전화의 망할 대기음도 바꿔라”라는 글을 남긴다. 마침내 항고가 받아들여지지만, 재판 당일 그는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는 영국의 허울뿐인 복지를 풍자했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우리 현실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수많은 ‘다니엘’이 있다. 지난달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서는 치매를 앓던 80대 노모와 50대 딸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이 받는 정부 지원금은 노인기초연금 25만원이 전부였다. 모녀는 서울시가 2015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자 시작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 대상에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다고 한다. 가난과 무능함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선별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가 조건 없는 기본소득 형태의 청년수당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현금 복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서울연구원과 민간연구소 랩 2050이 서울시에 건넨 제안으로 일종의 ‘정책실험’인데도 ‘예산 낭비’니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청년수당이나 경기도에서 아동수당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와 비슷하다. 기초연금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반대하는 서울 중구 ‘공로수당’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건 우리는 ‘현금 복지’에 대해 무척 엄격하다는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쟁이 이렇게 활발했던 적이 있던가를 돌아보면 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2005년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이명박 정부에서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자는 주장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적은 없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유명무실해진 종부세 등에는 이토록 관대하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복지 대상을 낙오자로 간편하게 분류하는 방식은 왜 의심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다니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은 제도의 허점을 따져 물을 때가 아닌 벽에 정부를 비방하는 낙서를 하고, 법정에서 쓰러졌을 때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 죽음 이후에야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미국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합당하지 않은 사소한 법규”(&lt;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gt;)들을 매일 어기라고 한다. 그는 독일에서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데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가가 일상을 통제하는 관행을 읽는다. 법을 어기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는 아니고, 규칙의 맹목성을 경고한 것이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라고 선언할 때, 합당하지 않은 법에 부단히 시비를 걸 때 세상에는 균열이 생긴다. 살면서 한 번은 반항해 보자.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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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첫번째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투자)가 소득 없이 끝났다. 한진그룹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대한항공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3월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이 이사 연임에 나설 경우 반대표 정도는 던질 수 있겠지만 이건 예전부터 해온 일이다.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해선 이사 해임 규정과 관련한 정관변경을 추진키로 했는데, 이 역시 총수 일가 지분이 30%에 달하는 한진칼에서 국민연금 의도대로 정관이 변경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논의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스튜어드십 코드로 기업의 범법행위에 책임을 묻겠다”고 독려했지만 결과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적어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정치적 독립성에 문제가 없음이 확인됐으니 반겨야 할 일일까.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일 강경 발언을 통해 국민들의 눈높이를 올려놓은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결과다.

애초에 스튜어드십 코드로 기업을 응징하는 ‘정의구현’에 나서겠다는 발상부터 무리수였다. 범죄와 일탈을 일삼는 재벌들을 응징하는 것은 법의 몫이지 국민연금이 할 일은 아니다. 주식을 사고팔아 연금 재정을 늘려야 하는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는 양날의 칼이다. 예컨대 가만히 있으면 주식으로 100원을 벌 수 있는 기업에 스튜어드십 코드로 경영참여에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경영참여로 회사가 나아져 100원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오히려 100원보다 더 못한 수익이 돌아올 걱정을 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소득 없이 끝난 가장 큰 이유다.

적어도 정의구현보다는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번 사안에서 찾아야 하는 첫번째 교훈이다. 연금으로 경영참여까지 갔을 때 장기적으로 재정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객관적 자료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항공 논의에 참여했던 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은 “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회의자료로 만들어 온 200페이지 분량 자료 중 150페이지가량이 증권사 리포트였다”고 한탄했다. 재벌 눈치를 보는 증권사 리포트가 위원들에게 제대로 된 기업분석 자료를 제공했을 리 없다. 상근직도 아닌 전문위원들이 이렇게 급조된 티가 팍팍 나는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참여에 나서자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기금운용본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번엔 왜 못했냐고 타박할 것도 없다. 연금의 기존 주식관리업무만으로도 정신없는데, 객관적인 리포트를 뚝딱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 단계부터 문제제기 됐던 부분이다. 필요하다면 인력과 예산을 더 투입해서라도 보다 양질의 분석자료를 만들어 기금운용위원회와 수탁위를 지원해야 한다.

두번째 교훈은, 예상대로 ‘재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금의 경영참여 여부 논의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말 국민연금은 한진그룹을 만나 입장을 물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수년째 ‘1000원 배당’으로 유명한 남양유업은 국민연금이 배당확대를 요구하자 곧바로 “싫다”고 응수했다. 총수들이 대차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들이 지분을 틀어쥔 채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 스튜어드십 코드로 뭘 하든 별 힘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튜어드십 코드 하나 갖고는 안된다. 재벌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처벌하는 법을 더 만들어야 한다. 국회에 1년 넘게 잠들어 있는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역시 국회에 제출된 상태인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과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개정안이 현 정부의 ‘공정경제’를 실현하기엔 턱없이 함량미달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공정거래법 개정안 작업을 주도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국내 몇 안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적극적인’ 찬성론자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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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주 목요일(1월31일)에 임명 사실을 발표한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야기다. 당시에 기사를 썼지만, 이번 칼럼을 통해 다시 이야기하려 한다. 문체부가 기대한 바와 달리 설 연휴 기간에도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장 인선 절차의 문제점을 잊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 11월 공모를 시작한 지 2개월여 만이었다. 공식 발표는 임명이 결정된 이날이 아니라 다음날(2월1일)이라고 했다.

‘꼼수’란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1일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금요일이었다. 독자들이 더 잘 알겠지만 금요일이 되면 뉴스를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여기에 설날까지 있으니 뉴스 수요는 더욱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일주일이 지난 뒤에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새로 뽑혔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31일 오전 윤범모 관장에게 내정 통보 사실을 확인한 뒤 부랴부랴 기사를 썼다. 문체부는 내정 사실 보도가 이어지자 이날 오후 새로운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선정됐음을 발표했다.

윤범모 신임 관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1979년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계간미술’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전시기획자 겸 비평가로 발을 넓혔고 가천대(옛 경원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큐레이터협회장,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 등도 지냈다.

민중미술 계열과 활발히 교류했다. 1980년대 새로운 미술운동을 일으킨 소집단 ‘현실과 발언’ 창립 멤버였고, 민족미술협의회 산하 ‘그림마당 민’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2014년에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책임 큐레이터로 일했다. 훌륭한 경력을 지닌 기획자이자 미술사학자다. 개인적으로 만나 본 적은 없으나 원만한 성품을 지닌 인물로 알고 있다. 취재원들은 대부분 ‘좋은 분’이라고 평했고 미술기자를 한 선배들에게도 나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인 평가일 뿐이다. 무엇보다 윤범모 관장은 미술관의 관장을 맡아본 적이 없다. 다른 행정경험도 없다. 과천, 서울, 덕수궁, 청주관 등 4개관을 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 예산은 632억원이고 직원도 100명이 넘는다.

이전에 관장 경력이 없다고 해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직 수행을 못하란 법은 없다. 정부가 행정업무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고위공무원 역량평가’라는 제도도 있다. 그런데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윤 관장을 포함해 최종후보로 오른 3명에게 역량평가를 면제시켜주려 했다. 윤 관장을 제외한 2명은 전직 미술관장으로 행정경험이 이미 있었다. 경향신문 등이 ‘내정된 특정 후보를 위해 문체부가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문체부는 역량평가를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역량평가에서 최종후보 3명 중 윤 관장 등 2명이 낙제점을 받았다. 정상적이라면 나머지 1명이 ‘단수후보’로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추천되어야 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떨어진 2명에게 재평가 기회를 부여했다. 윤 관장은 이번에는 통과했고 최종 낙점을 받았다. 윤 관장은 “역량평가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절차를 다 밟았고 다 잘됐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지난 1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벌써 ‘코드 인사’란 말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코드 인사’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정권과 호흡이 맞는 인사가 기관장직을 더 잘 수행할 수도 있다. 문제는 ‘코드 인사’가 아니다. ‘꼼수’로 공모절차를 통과한 것이 더 큰 흠이다.

윤 관장이 앞으로 3년간 보란듯이 관장직을 해내길 기원한다. 진심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기억하겠다. 절차적 정당성에는 분명히 하자가 있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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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발표 내용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뭘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세상에, 고향 촌구석에 고속전철역이라니! 9년 뒤면 설, 추석에 편히 갈 수 있다며 설레야 하나. 한편으론 씁쓸하다. 이게 필요한 짓인가 싶어서다.

자, 대한민국 지도를 펴보자. 당신이 대통령, 장관이라면 어디에다 뭘 만들어주겠는가. 일차적 기준점은 비용·편익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그중에서도 강남권에 뭐든 깔아야 손해를 안 본다. 지방도 대도시 중심으로 엇비슷하다.

왜냐. 가장 욕을 덜 먹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는 사람이 가장 많다. 비용·편익이 높게 나온다. 이렇게 개발해온 게 그동안의 관성이다. 이런 현실에서 영남 골짜기를 관통하는 고속철이라니, 대단한 정치적 결단이다. 균형발전을 향한 원대한 기러기, 고니의 뜻을 어찌 제비, 참새가 알겠냐마는.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1월 30일 (출처:경향신문DB)

결국 문재인 정부도 “구시대적 토건공화국”이니 하는 비판에 맞닥뜨렸다.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일단 경제가 안 좋다고들 난리니 몸이 달았다. 사실 지금 경제 문제라는 게 굉장히 구조적인 거란 사실은 솔직히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재인 정부 잘못만이 아니다. 반도체 고점론이 나오지만 워낙 ‘비정상적 호황’이었다. 위기론에 떠밀려 삼성에 너무 끌려가지 마라. 자동차 산업이 힘든다는 것 또한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최저임금, 주 52시간 논란의 근원도 실은 따로 있다. 과도한 자영업 비중의 구조적 문제 탓이다. 마치 이런 일들 때문에 경제를 망친 정부라는 ‘누명’을 자처하고, 왼쪽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하려는 게 아닌가.

요새 정부·여당 쪽 인사들 움직임을 보면 심히 걱정스럽다. 툭하면 “우리는 반기업이 아니라 친기업”이란 말을 달고 산다. 즉 재벌개혁 하랬더니 그들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모양새다. 우리는 기억한다. 참여정부는 관료와 재벌에 포섭돼 뜻하던 바를 채 이루지 못했다고.

복지체계를 구축하고 교육을 개혁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로 대한민국호 방향키를 틀자는 게 2년 전 겨울에 터져나온 서민대중의 절규다. 현 정부 들어 집값이 얼마나 뛰었는가. 근래 좀 가라앉았다고 안도하고, 성장률 숫자 올리겠다고 땅부터 파겠단다. 성장률 3%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든, 누구를 위한 숫자인가.

국토에 삽질을 해대면 당분간 일자리가 늘고 성장률도 올라갈 것이다. 그걸로 총선과 대선을 유리하게 치를 수도 있다. 4대강 사업의 예타 면제 명분도 균형발전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 쓸 종잣돈을 4대강에 쏟아부었다”며 비판해온 세력이 누구더라. 이런 식이면 유권자들 선택은 늘 빤하다. 그냥 자기 지역에 도로, 철도 많이 깔아주겠다는 놈 찍을 뿐이다. 진보·보수가 무슨 대수냐.

한번 짚어보자. 이른바 7호선의 양주신도시 연장이 왜 필요한가. 광역고속전철인 GTX는 3개나 깔아야 하나. 원인은 베드타운을 너무 크게, 외곽에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지역균형발전은 안 해놓은 채 잠자는 도시만 잔뜩 만든다. 그러곤 ‘균형발전’이란 억지논리를 내세워 도로, 철도를 까는 짓거리를 해온 게 역대 정부다. 예컨대 GTX-B 노선을 깔 게 아니라 인천 남동공단이나 마석 등지에 판교 2테크노밸리 같은 걸 만들어야지. 현실은? 또 GTX 공약을 총선, 대선용으로 우려먹을 일만 남았다. 유권자에겐 ‘희망고문’의 시작이다. ‘이부망천’이란 말이 다시 나돌도록 시민들 판단을 흐리는 정치다.

겉은 생채기가 나도 금방 낫는다. 그러나 속이 허물어지면 간단찮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번 예타 면제는 친기업 행보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루비콘강을 건너는 신호로 보는 이들이 적잖다. 몇 발짝 더 내디디면 돌아나오지 못할 게다. 그 후과는 누구의 몫인가.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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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이~ 어떻게 가라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기사는 한숨을 내뱉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어차피 자정이 지난 시간에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지라 애써 모른 척했다. 

“반대편에서 타야지. 방향도 안 맞는데….” 기사는 백미러로 힐끔거리며 연신 투덜댔다.

“근데 왜 계속 반말이세요?” 

“내가 언제? 이게 무슨 반말이야.”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결국, 세종대로 한가운데서 차를 세웠다. 호기를 부렸지만 정작 택시에서 내려서는 행여 뒤따라올까 다급히 걷는 바람에 눈길에 두 번이나 미끄러졌다. 빈 택시를 다시 잡은 건 30여분을 걷다가 집 근방에 다다라서였다.

일진 사나운 날이었다. 갑자기 내린 눈에, 낭만을 핑계로 길어진 술자리를 탓할 수밖에. 다음날 귀가 후일담을 듣던 후배의 “선배, 녹음했어야죠”라는 말에 ‘아차’ 했지만, 차량번호도 모르니 부아가 치밀어도 도리가 없었다.

사실, 택시 승차거부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승차거부 말고도 택시를 타려면 거쳐야 할 난관은 더 있다. 택시 잡기에 성공해도, 말 걸기 좋아하는 기사를 만나면 ‘폭풍 수다’를 꼼짝없이 견뎌야 한다. 괜히 한마디 거들었다간 궁금하지도 않은 인생 풀스토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기사들의 레퍼토리는 세 갈래다. 개인사나 정치 이야기, 오지랖 넓은 기사라도 만나면 어느 직장에 다니냐, 애들은 있느냐, 끝없는 ‘신상 캐기’가 이어진다. 아마도 일본 교토에서 택시기사가 손님에게 먼저 말 걸지 않는 ‘침묵 택시’가 등장한 것도 택시기사에게 맞장구치는 게 귀찮은 손님의 마음을 대변한 것일 게다. 내 돈 내고 취향과는 상관없는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일도 고역이다. 진이 빠진 퇴근길엔 제발 좀 조용히 가고 싶지만, 음악 소리를 줄여달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져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 일쑤다.

이를테면 ‘승차거부’ ‘말 걸기’ ‘음악 틀기’는 ‘택시서비스 불만 3종 세트’쯤 된다고 해야겠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불만은 단연 승차거부다. 카카오택시 등장에도 승차거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서울시는 승차거부하다 적발된 택시 운행을 두 달 정지하기로 했다. 서울시의 이 같은 강경 방침에도 승차거부는 줄지 않는다. 

승차거부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대중교통이 끊어진 심야시간대 운행하는 택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니 운전할 사람이 없어 법인택시 절반은 차고지에 세워져 있고, 개인택시 기사들은 고령자가 대부분이라 이 시간에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기사들은 사납금 때문에 장거리 위주의 승객 골라 태우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정부가 법인택시의 사납금 폐지·완전 월급제를 도입하고, 고령자의 개인택시 면허를 매입해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택시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모두 달라 합의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카풀’, 승차공유 서비스다. 택시업계는 거세게 반발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카카오 같은 대기업의 카풀시장 진출은 밥그릇을 뺏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나 심야에 택시를 잡지 못해 애태운 기억이 한번쯤 있는 시민이라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감사합니다”를 기분 좋게 외치고, 어르신을 위해 오르막길도 마다하지 않는 기사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름다운 기억보다는 불편한 기억이 조금 더 많을 뿐이다. 이달 내로 서울시내 택시 기본요금이 3800원으로 오른다. 서울시는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과 사납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택시서비스가 좋아지려면 택시기사의 생계 안정이 필수적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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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같이 들려오는 사립유치원 관련 소식은 잊고 지냈던 그 시절, ‘내 경우는 어땠지’ 하고 기억을 더듬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에 관한 한 온 국민이 전문가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기가 지나면 급속도로 무관심해진다.

외향적 성격의 큰아이는 갑작스레 유치원에 가게 된 경우였다. 어린이집 겨울방학이 끝난 후부터 아이는 어린이집이 지겹다고 토로했다. 규모가 작고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일시적 투정인지 판단이 안돼 당시 안면 있는 청소년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유치원에 보내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누리과정 시행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교육 과정에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어린이집은 보육, 유치원은 교육으로 나뉘던 때였다. 새 학기가 한 달도 채 안 남은 때라 부랴부랴 시장조사에 나섰는데 당시 살던 동네에선 ‘엄마 마음’에 드는 유치원을 찾기 힘들었다.

공립은 7세반뿐이었고, 근처 사립유치원은 실내수영장까지 갖춘 시설을 자랑했지만 동네 엄마들 평이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다. 최근 보도를 보고서야 이곳이 규모상 서울시내 톱10 안에 들어가는 유치원인 걸 알게 됐다. 결국 큰아이는 이웃 동네의 자그마한 사립유치원에 가게 됐다. 유치원은 낡은 시골 학교 분위기를 풍겼는데 원비가 저렴했고, 아이들을 많이 뛰어놀게 했다.

아이가 졸업반이 되던 해 누리과정이 시행됐다. 그리고 유치원에선 방과후 수업 중단을 통보했다. 유료 수업인 방과후 활동이 지속될 경우 누리과정으로 인한 원비 하락 효과가 사실상 체감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방과후 수업 중단을 ‘권고’했는데 유치원은 이를 따르겠다고 알려왔다. 좋아하는 건축 수업을 더 이상 못 듣게 된 아이는 실망했다. 그러나 주변 어느 유치원도 누리과정 때문에 방과후 활동을 중단했다고 들은 바가 없어 부모로선 유치원의 교육방식에 신뢰를 더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립유치원 단체 주장처럼 유치원이 마냥 ‘개인사업자’라면 추가 수입원이 되는 방과후 수업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네로 이사오면서 작은아이의 선택지는 큰아이 때보다 넓어졌다. 하원시간이 이르고, 셔틀을 운영하지 않는 공립 병설은 직장맘 입장에서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못됐다. 대신 아파트 단지마다 큰 규모의 사립유치원이 하나씩 있었다.

누리과정 여파로 입학 경쟁이 치열해져 공 뽑기 추첨을 이때 처음 경험했다. 남편과 일정을 나눠 총 3곳에 넣었고, 다행히 그중 한 유치원에 당첨됐다. 둘째아이 유치원은 큰아이가 다니던 곳에 비하면 규모가 크고, 바이올린 수업을 하는 등 세련된 이미지가 강했다. 원비는 그만큼 비쌌다. 방과후 수업도 큰아이 때는 몰랐던, 이를테면 ‘영재두뇌 만들기’와 같은 엄마 마음을 교묘하게 읽는 종류들이 존재했다.

작은애는 해외연수 가는 엄마를 따라 미국에서도 유치원을 다녔다. 한국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과 같은 형태로 매일 아침 7시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갔다가 오후 3시가 다 돼 돌아왔다. 큰 틀에선 초등학교와 다름없었다. 30분 낮잠 시간이 있고, 초등생과 달리 부모 초청행사가 많다는 점 등이 다를 뿐이었다. 부모 입장에선 공립이라 무료고, 학교 내에 있어 안심되는 측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며칠 전 작은아이에게 어느 유치원이 더 좋았냐고 물었다. 아이는 눈을 찡긋하더니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둘 다 좋은 점이 다르단다. 미국 유치원은 놀이시간이 많아서 좋았고, 한국 유치원은 재밌는 활동이 많았다고 했다. 아이의 말이 맞을 것이다. 유치원이 공립이든, 사립이든, 미국 유치원이든, 한국 유치원이든 아이들을 위하는 유치원이라면 어디든 좋지 않겠는가. 유치원이 ‘아이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어른들의 이전투구판이 된 듯해 씁쓸하다.

<문주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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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노동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뉴스에도 잘 안 나온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싸우는 이들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저임금 인상’을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는 처참하게도 다른 이들의 가슴에 닿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를 알리는 뉴스에 누군가는 교통체증이 먼저 떠오르고, 누군가는 ‘귀족노조’ 운운하며 쥐어박는 소리를 할 뿐이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은 이 문제들은 잠시만 헤아려봐도 우리네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출근길에 들리는 커피숍이나 만원에 4개짜리 맥주를 사러 드나드는 편의점의 알바생, 택배를 챙겨주는 경비원, 귀갓길을 동행한 대리기사…. 우리는 이들이 나와 내 가족, 내 아이의 현실이며 미래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접어둔 채, 그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때론 그들을 향해 냉담함과 오만함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사회가 잘못을 알아채는 것은 대부분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 다음이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비정규직 19살 김군의 죽음이 그랬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숨진 김군 가방에서는 밥 먹을 시간조차 없어 급히 끼니를 때우려 했을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그제야 세상은 김군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받아들였고,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 소속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자 청년 정규직들이 집단 반발했다. 정규직 전환에 ‘합리적 차이’를 두기로 하면서 지난달에야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이 과정에서 무기계약직 한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반발은 서울교통공사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도 정규직 교사들과 임용시험 준비생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인천공항공사에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입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서울교통공사의 직원 친·인척 ‘고용 특혜’ 의혹이 터져 나왔다. 취업절벽 시대에 채용비리 문제는 일자리 ‘도둑질’로 받아들여져 국민 공분을 일으킬 사안이다. 분명한 것은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특권을 상징하는 반사회적 범죄로 뿌리뽑아야 하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 자체를 문제 삼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교통공사의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가를 청년들은 다시 묻는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은 공정해야 하고 약자는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주된 근거에는 입사 시험이 있다. ‘바늘구멍’을 뚫고 입사한 자신들과 달리 시험도 안 보고 정규직이 되는 것에 분노가 치밀 법도 하다. 비정규직은 어떤가. 그들은 이 사회가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출발선을 기준으로 영원히 맞닿지 않을 평행선을 그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부 정규직들의 주장대로 비정규직을 그대로 두고 차별만 없앨 수 있을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활동가는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불안에서 출발한다. 비정규직과 차별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라고 했다. 이는 고용불안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물음이라는 것이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고 노동의 비애를 얘기한다. 밥벌이를 위해 낚싯바늘을 삼킨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차별을 없애고, 사회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출발점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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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진전으로 청와대의 대외 행보에 자신감이 붙었다. 남북관계 개선이 외교적으로 얼마나 큰 지렛대를 가져다주는지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감이 지나쳤는지, 최근 밖으로 드러나는 청와대의 언행에는 외교적 고려가 없다.

유럽 순방 기간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스·영국 등을 상대로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추동하기 위해 제재 완화를 논의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이제 북핵 문제는 제재 완화와 같은 행동적 조치가 없이는 더 나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제재 완화 문제를 놓고 북한과 물밑에서 치열하게 협상을 벌이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유럽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제재 완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한국의 시도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것은 문제다.

영국·프랑스 등은 중동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측면에서 미국과 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이 반대하는 대북 제재 완화를 공개 지지하기 어렵다. 외교적 노력은 유럽이 아니라 제재 완화에 가장 부정적인 미국을 ‘조용히’ 설득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면 다른 나라들은 따라오게 된다. 유럽에서 제재 완화를 공론화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미국을 외곽에서 압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외교 무감각증 노출은 처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 방문 때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심지어는 남북통일 이후에도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중국을 긴장시키는 발언을 하면서 중국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협조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북핵 문제의 또 다른 관련국인 일본과는 거의 외교가 중단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의 정밀한 외교가 필요하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통일로 다가가기 시작하는 과정을 주변국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세밀하게 주시하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는 그런 ‘외교적 감수성’이 없어 보인다.

<유신모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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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 20일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내놨다. 전시인 양 제목부터 비장하다. ‘40~50대 가장의 마지막 피난처 건설현장 강력단속 - 불법 체류·취업 외국인 대책 발표.’

법무부는 자료에서 “건설업 노동시장에 불법체류자들의 취업이 증가함에 따라 40~50대 국민의 단순노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며 “내국인 건설업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단계까지 이르러 특별대책을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건설업 불법취업자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해 첫 적발 시에도 바로 출국조치하겠다”며 “(소극적) 고용창출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지난달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00명 증가하는 데 그치며 ‘고용대란’ 비판이 이어지고 이번 달엔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법무부도 덩달아 ‘일자리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대책이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추방’이라니. 난국을 이방인 탓으로 돌리는 편협한 당국의 인식에서 사회 불안기면 슬며시 고개를 들던 파시즘이 엿보이는 건 망상일까?

불법체류자로 이득을 얻는 사람은 따로 있다. 노동시장에선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원청부터 하청에 재하청을 수차례 거쳐 일용직 노동자까지 철저히 수직구조화한 건설업에서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착취 구조의 말단인 건설 노동자를 조금이라도 값싸게 부리길 원한다. 중국동포가 선호되다가 최근엔 동남아시아 출신 불법체류자가 각광받는다. 한국인 절반값이면 부릴 수 있고, 산업재해나 임금체불 등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신분상 약점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외국인 없으면 현장이 안 돌아간다”며 아우성이다.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하도급과 산재·임금체불 문제를 원청에까지 책임을 묻는 등 강력한 조치에 나선다면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려는 기업이 나올까? 법무부 본연의 임무는 ‘고용창출’보다는 건설현장의 불법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더. 2013~2017년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나타난 ‘출입국 사범 처리현황’을 대륙별로 보면, 아시아주 출신의 강제퇴거(강제출국)율이 17~20%로 통계 집계 이후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반면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오세아니아주 출신은 매년 1% 안팎에 그쳤다. 정부가 법을 어긴 모든 외국인에게 똑같이 ‘강력대응’하지는 않는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봐도 좋을 듯하다.

<정대연 | 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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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 유치원’은 하나의 대명사가 될 듯하다. 안전불감증, 무사안일주의, 개발주의가 응축된 대명사. 위태로운 흙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기우뚱 옆으로 무너진 건물은 ‘유치원’이라는, 건물의 외양과 부조화를 이루는 이름과 만나 더욱 극단적 느낌을 자아냈다. 건물이 한밤중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면 정말 참혹한 결과가 초래됐을 터였다.

유치원 측에서 이미 이상징후를 포착하고 공사업체에 항의했지만 공사업체는 무시했다. 구청에서도 제대로 된 현장 점검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눈앞에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건물을 두고 아무도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도동 유치원은 결국 철거되어 폭삭 무너져내렸다.

인근 공사장의 흙막이가 붕괴되면서 건물이 기울어진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에서 사고 닷새째인 10일 파손된 부분의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무너진 유치원을 보고 퇴근하던 날, 내 삶의 지반에도 균열이 느껴졌다. 전염병에 걸려 어린이집을 일주일째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가 길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할머니·할아버지와 집에만 계속 있자니 답답하고 지겨웠던 것 같다. 할머니 손을 잡은 아이를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돌볼 수 있어야 한다’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휴가를 내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는 전적으로 조부모의 손에 맡겨졌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년에 접어든 조부모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이 무너진 건물 틈으로 훤히 드러난 유치원 내벽처럼 선명히 드러났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내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기 위해 남의 가랑이를 찢어져라 붙잡고 있어야 하는가. 내 삶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이제 점점 늙어가는 조부모의 노동이었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누군가의 노년을 착취하면서 바늘 하나 꽂힐 여유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모르고, 대책 없이 맞이했다. 미리 알았다면, 그때도 같은 선택을 했을까? 이것은 내 모성애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질문이다.

무너져내린 유치원을 보면서 매번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출산율이 떠오른 건 그래서다.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은 0.97명을 찍었다.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여성의 삶이 근본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오르지 않는다. 성평등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에서 출산율이 높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그러니까, 출산을 하는 여성의 자궁과 여성의 삶을 분리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삶은 얼마나 종합적인가. 각종 성차별, 남녀 임금격차, 여성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 유자녀 여성이 겪는 직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차별 등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임대주택 몇 채와 출산수당으로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1야당 원내대표가 ‘출산주도성장’을 대안이랍시고 이야기한다. 출산장려금 2000만원, 출산수당 1억원을 지급하자는 것인데, 논박하기도 입이 아프다. ‘출산주도성장’은 출산율 하락 위기에 대한 안전불감증과 성장중심주의가 결합한 가장 천박한 형태의 말이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환원시키며, 아이를 낳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성의 변증법>을 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1970년대에 비혼이나 저출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미 젊은 여성들은 ‘비비탄(비혼 비출산 탄탄대로)’을 삶의 전략으로 택하고 있다. 정상가족 중심의 복지제도, 남녀 임금격차 등을 생각하면 ‘비비탄’의 앞길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 가져오는 여성의 삶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출산율은 그 결과다.

무너지는 것들은 장기간에 걸쳐 이상징후를 드러내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출산율에 관하여 우리 사회는 이상징후를 여러 차례 보냈다. 무너진 유치원이 되지 않으려면, 근본적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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