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27일, 정홍원 당시 총리는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도 거기에 동의해 후임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만 총리직을 수행하라고 한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5개월의 변호사 생활 동안 16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이 문제가 돼 낙마해 버렸다. 정홍원은 계속 총리직에 있어야 했다. 그 후 지명된 문창극 전 기자는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헛소리하는 바람에 낙마했다. 정홍원은 여전히 총리였다. 다행히 국회의원이던 이완구가 총리가 되면서 정홍원은 사의 표명 후 거의 10개월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는데, 그 이완구가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두 달 만에 사퇴하는 일이 벌어진다. 새 총리는 당시 법무장관이던 황교안으로 결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황교안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그는 특검팀의 청와대 조사를 거부하고 특검 연장을 거부하는 등 맹활약한다. 그 황교안은 지금 당 대표에 차기 대선주자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가 됐다면 어땠을까? 당시 야당은 그를 ‘전관예우의 적폐’로 몰아 낙마시켰지만, 업계 사람들은 그 정도 수입이 전관예우치고는 적은 거라고 했으니 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5년여가 흐른 2019년 8월, 법무장관 후보자 조국 교수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교수 생활만 해서 별것 없을 줄 알았건만, 웬걸, 해명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정권 때 총리 후보자들에게 추상같은 잣대를 적용했던 야당은 집권당이 된 지금 조국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조국에 대한 의혹 제기가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라 하고, 안민석은 한국당이 최순실의 은닉재산을 밝혀내는 게 두려워 조국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여론을 살피려고 대형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탐독했다. 하필 그곳이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어서 그런지, 조국이 받는 의혹에 대해 눈물겨운 방어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빈번한 논리가 이것이었다. “적폐세력들이 조국 반대하는 걸 보니 조국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 반드시 법무장관 시켜야겠네.” 이 말에 좀 움찔했다. 내가 적폐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조국이 법무장관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두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이 횡행한다. 일전에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면 친일파라 한 데서 보듯, 조국은 정부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불순세력으로 규정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가 아무 직함이 없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법무장관이 하는 말은 무게가 다르지 않겠는가? 내가 앞으로 2년여를 법무장관이 지정한 친일파로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두렵다. 

둘째, 며느리가 짊어질 부담이 커진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점점 드물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조국 남동생의 아내는 이혼했음에도 시어머니에게 자기 집을 기꺼이 내줘가며 헌신적인 봉양을 한다. 물론 그녀가 시어머니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벌인 적이 있지만, 그거야 모시는 게 어려운 나머지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한 것일 뿐, 실제로 돈을 받으려는 의도는 없었던 모양이다. 21세기에 보기 드문 효부인데, 조국이 일반인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법무장관네 집안이 그런 모범을 보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게 우리 미풍양속으로 뿌리를 내려, 앞으로 며느리들은 설령 이혼을 한다 해도 시어머니 봉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셋째, 가족 간 돈거래가 사라진다. 조국의 신고재산은 56억원, 이 가운데 예금이 34억원이나 된다. 이쯤 되면 빚에 허덕이는 다른 가족들도 신경 써줄 만하지만, 그는 차라리 사모펀드에 전 재산을 내던질지언정 가족들에겐 냉정했다. 특히 2013년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 재산은 21원에 불과해 충격을 줬는데, 이 액수는 웬만한 노숙자보다도 적고,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던 전두환이 재벌 같다. 조국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족 간에 돈을 빌리려고 하면 “법무장관을 봐!”라며 거절하는 일이 속출하지 않을까? 

넷째,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대세가 된다. 과거 조국은 폴리페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학생들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니 정치를 하려거든 교수직을 그만두라는 게 그의 말이었지만, 자신이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장관 후보에까지 오르자 ‘임명직은 괜찮다’며 사표 제출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조국은 대학에서 강의 한 번 안 하고 8월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조국이 장삼이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돼 사회가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이 밖에도 외모지상주의가 강화된다든지, 성적이나 가정형편보다는 권력이 대학 장학금의 척도가 된다든지, 국가에 진 빚은 안 갚아도 되는 풍조가 생긴다든지 하는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만 같으니, 내가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그가 장관에 연연하기보다는 교수로 돌아가길 바라는데, 글을 맺기 전에 정신승리를 해본다. 이 글을 욕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건 내가 두려워서 그러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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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은 반지하에서 아무 계획 없이 살던 이였다. 하지만 4수생인 기택의 아들이 부잣집 박사장 딸의 과외선생이 되자 나머지 구성원들도 다 그 집에 취업하고픈 욕망을 갖는다. 희대의 사기를 동원한 끝에 기택과 아내, 그리고 딸도 결국 박사장 집에서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넷이서 돈을 번다면 얼마 안 있어 반지하를 벗어나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으니, 그건 바로 기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박사장네 가족들은 기택네 가족에게서 불쾌한 냄새를 맡는다. 박사장은 그걸 ‘가끔 지하철을 타면 나는, 행주 삶는 듯한 냄새’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할 때, 사람은 위축된다. 기택은 냄새를 없애보려 노력하지만, 딸의 일갈은 그런 노력이 헛수고임을 말해준다. “그거, 반지하 냄새야.” 결국 분노한 기택은 사고를 치고, 그 대가로 박사장네 가족은 파멸을 맞는다. 여기에 대한 소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인간인데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는 쪽과, 당장 먹고사는 게 중요하니 참아야 한다는 쪽, 둘 다 틀린 의견은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이 한창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우리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맞서고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체결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다. 당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3억달러를 받았는데, 일본에 강제로 징용당한 우리 국민들의 청구권이 여기에 포함됐는지에 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우리 측은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판단하지만, 일본은 한국 정부가 돈을 받아놓고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사안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결론을 낼 때 7명은 다수의견을 냈지만, 3명은 별개 의견을, 2명은 다수의견에 대해 반대의견을 낼 정도였다. 물론 이걸 빌미로 경제전쟁을 선언한 일본의 행위는 치졸하다. 게다가 일본은 식민지배 이외에도 숱하게 우리를 괴롭혔다. 국민들이 일본을 규탄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정부가 볼 때는 이번 사태가 꼭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전쟁에 들어가면 정권의 지지율이 오르는 데다 경제가 나쁜 것에 대한 책임을 일본에 전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본을 매개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한·일관계의 악화는 재앙 그 자체다. 일본음식점 주인은 텅 빈 가게를 보면서 눈물짓고, 여행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부품을 수입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른다. 누군가는 이 사태가 ‘하늘이 주신 전화위복의 호기’라며 일본 부품의 국산화를 주장하지만, 국산화라는 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해 다른 의견을 내거나, 정부가 일본과 협상하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문빠’로 일컬어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그런 사람들에게 ‘토착왜구’ ‘너희 나라로 가라’ 같은 막말을 해대기 때문이다. 정부 대응에 대해 회의적인 멘트를 날렸다는 이유로 방송사 앵커가 하차하기도 했다. 이 나라의 민정수석이란 분도 합세한다.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에 대해 한국 정부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친일파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정권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던 시절을 겨우 견뎌냈는데, 이젠 친일파가 될까 봐 눈치를 보게 생겼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입장을 바꾸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선빵’을 멋지게 맞받아쳐 놓고 인제 와서 굽히자니 영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책임 있는 정부라면 자존심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된다. <기생충>에서 기택이 한 선택은 한 가족만 파탄시켰지만, 정부의 선택은 수많은 이를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처럼 우리 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면 끝까지 싸워야겠지만, 이번 사건은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해석의 문제니 얼마든지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787년 전,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무신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며 항쟁의 길을 택했다. 적당히 항복을 받고 전쟁을 끝내려던 몽골은 이 조치에 격분한다. “(몽골 장수) 살리타는 이참에 아예 고려를 완전히 제압하고자 강화도를 공격하는 대신 분풀이 삼아 한반도 전역을 유린하기로 마음먹었다.”(<종횡무진 한국사 1권>, 463쪽)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사로잡힌 백성은 20만이 넘고, 죽은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467쪽) 결국 고려가 사신을 보내 항복하기까지 했으니, 고려가 그 항쟁으로 얻은 것은 없었다. 물론 지금의 한국은 당시 고려보다 낫고, 지금 일본은 당시 몽골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 경제전쟁이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 큰 손해를 입힐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난, 정부가 자존심을 잠시 접어두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련다. 이러면 내게 어떤 말이 쏟아질지 잘 알고 있기에, 미리 얘기한다. 그래, 나 친일파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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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한 분만 나와주세요. 빨리 빨리 남자분 나오시라고요. 빨리, 빨리!”

철 지난 얘기를 해보자. 지난 5월13일 밤, 술에 취한 중년 남성 두 명이 난동을 부렸다. 경찰이 출동했지만, 취객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특히 같이 출동한 여자 경찰은 근처에 있던 일반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한 끝에 결국 수갑을 채울 수 있었다. 이른바 ‘대림동 여경 사건’이다. 남녀를 떠나서 취객을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 <범죄도시>의 마동석은 상황이 발생하면 한방에 상대를 때려눕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모든 경찰이 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진 않다. 게다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점점 높아지다 보니, 행여 진압과정에서 범죄자가 다치면 경찰관이 징계를 받기도 한다. 경찰의 대응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암사동 10대 난동 사건에서 경찰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대림동 사건 이후 경찰은 경찰관을 폭행하면 테이저건이나 권총을 쏠 수 있게 기준을 바꾼다고 하지만, 이게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간 경찰은 나름의 업무를 잘 수행했으며, 우리 사회가 그래도 평온하게 유지되는 것은 다 이분들의 공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려스러운 것은 요즘 부쩍 늘어난, 휴대폰을 이용한 영상 촬영이다. 대림동 사건만 해도 매일 수도 없이 일어나는 흔해빠진 것에 불과했지만, 누군가가 진압과정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전국적 관심이 쏠린 엄청난 사건이 됐다. 혼자 힘으로 수갑을 채우지 못한 여경에 대한 성토가 빗발쳤고, 이는 여경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경을 없애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오고, “여경만 체력검사 수준이 낮으니 취객조차 제압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인터넷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남경에 비해 여경의 체력검사 기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녀의 신체 골격 자체가 차이 나는 판에 푸시업을 잘한다고 해서 여경이 남성 범죄자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시민의 도움을 요청하는 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질서는 모든 시민들이 협력해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지, 경찰에게만 맡겨두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되니 말이다. 마트에서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범죄자 김일곤의 경우 남경 둘이서 제압하지 못해 지나가던 시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당시 남경들을 욕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걸 보면, 대림동 사건의 여경을 향한 비난에는 여성혐오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이라고 해서 다 힘쓰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아동청소년 및 성범죄 등을 다룰 때 여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표창원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찰 업무의 70% 이상은 사실은 소통이다. 피해자 민원인 말씀 듣고 피해 상황과 갈등을 조정, 중재한다.” 실제 경찰청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의 478개 직무 중 체력과 무관한 직무는 76%인 반면 체력과 관련한 직무는 24%에 불과하단다. 게다가 남경들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일어난 사건을 보자. 강남서에 근무하는 ㄱ경장은 자신이 담당한 교통사고 조사 대상자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여성은 접촉사고를 내서 조사를 받았는데, 이후 상대방과 합의해 내사 종결을 앞둔 상황이었다. ㄱ경장은 상호 합의하에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런 관계가 적절하지 않음은 상식이다. 3년 전에는 이보다 더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학교전담경찰관 두 명이 자신과 상담을 한 여고생들과 성관계를 맺은 것이다. 해당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이들인데, 괜히 상담했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다. 그중 한 명은 이로 인해 자살 시도까지 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이 남경이 아닌 여경이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터. 그렇다면 여경을 증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방방곡곡 울려 퍼져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남경들이 저지른 다른 비리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맡은 성매매업소에 ‘단속이 뜨니 단골손님만 받으라’고 조언하는 등 뒤를 봐준 경찰관 3명이 구속된 게 며칠 전이고, 몇 달 전에는 강남 클럽에서 3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청소년이 출입한 것을 무마해준 경찰이 입건됐다.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버닝썬 사건에도 남경들이 연루됐지만, 이 사건들은 남경 무용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림동 여경의 대응이 미숙했다고 해도, 그게 위 사건들보다 더 중한 일일까? 남경의 엄청난 비리에는 침묵하고 여경의 일에만 흥분하는 이 현상을 여혐 이외의 말로 설명하긴 어려울 듯하다. 

여혐이 우리 사회를 잠식한 게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그 여혐이 경찰이나 소방관 등 힘쓰는 일에 집중되는 것은 그 자리가 좋은 일자리로 인식되고 있는 데다, 남성들이 최소한 힘에서는 여성보다 앞선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경찰 인력은 총 12만487명, 그중 여자 경찰은 1만3594명(11.3%)에 불과하다. 이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수치이고, 고위직 비율을 따졌을 때는 더 한심한 통계가 나오지만, 여혐에 찌든 우리 남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몰랑. 저 자리 우리가 다 가질 거야!”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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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소위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써가면서, 장장 13개월이나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과거사위의 결론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사실 고인의 죽음을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인이 숨질 당시의 수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는 사이 몇몇 범죄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증거는 더 없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과거사위에 기대를 한 결정적 이유는 두 달여 동안 매스컴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윤지오의 존재였다. 장씨 사건의 유일한 증인을 자처했고, 기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막말을 해대는 윤씨를 보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진실이 밝혀지고 악인들이 처벌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실제 조사를 담당한 대검 조사단이 윤씨의 입에 목을 매다시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안타깝게도 윤지오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윤씨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고인과 별로 친하지 않았으며,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윤씨는 ‘16번이나 증언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증언 횟수가 많은 것은 그녀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는 등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윤씨의 진술도 마찬가지다. 10년 전에 조사를 받을 땐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놓고선, 자신이 쓴 책 <13번째 증언>에선 리스트를 언급하며 총 40~50명이 있다고 했다가, JTBC에서는 30명이라고 슬그머니 줄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심지어 장씨의 유족 등 고인이 남긴 문건을 본 다른 사람들은 ‘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으니, 윤씨가 진짜로 리스트를 봤는지조차 의문이 든다. 윤씨는 재수사 불발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다. 정말 이게 우리가 원한 진정한 대한민국이냐”고 했지만, 이런 걸 전문용어로 적반하장이라 한다. 조사단에서 활동한 김영희 변호사도 사과는커녕 같이 애를 썼던 검사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검사들은 성폭행 의혹 부분을 수사에 못 넘기게 하려고 정말 총력전을 했다. … 조직적 차원에서 반대가 있지 않았나 느꼈다.” 하지만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한 마당에 무슨 외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건 어이가 없다. 안 그래도 김 변호사는 윤씨가 기억력이 뛰어나다느니, 진술에 일관성이 있다느니 하면서 시종일관 윤씨를 옹호하는 여론몰이를 해 조사단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았는데, ‘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은 이에 항의하며 조사단을 탈퇴하기까지 했다. 

더 놀라운 점은 윤씨가 이런 결론이 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줬던 김수민 작가에게 윤씨는 다음과 같은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사건은 종결 자체가 불가능하고 … 서로 헐뜯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고.’ 그런데도 윤씨가 자신이 사건을 해결할 것처럼 굴었다면, 그녀에겐 이 기회를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윤씨에 대한 언론들의 태도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윤씨로부터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안달했고,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을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내보내기 바빴다. JTBC <뉴스룸>에서 윤씨가 차량 테러를 두 번이나 당했다며 부서진 차 사진을 내보냈을 때, 국민들은 경악했다. 윤씨가 스마트워치를 눌렀는데 경찰이 9시간이나 오지 않았다는 윤씨의 증언도 충격 그 자체였다. 누군가 윤씨 숙소의 열쇠를 복사했다는 주장까지 나오자 사람들은 윤씨의 신변이 위험에 빠졌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로 인해 여경 5명이 한 달 가까이 윤씨 옆에서 심부름을 해야 했고, 그것도 부족해 사람들은 경호비에 보태라며 윤씨가 공개한 후원계좌에 아낌없이 돈을 보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실제로 윤씨를 위협한 사람은 그녀 아버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때, 이에 대해 사과하는 일이다. 하지만 윤씨가 대국민 사기극을 펼치는 데 앞장선 언론들 중 누구도 여기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윤씨의 교통사고는 학부모의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일어난 접촉사고였지만, JTBC는 그 진상에 끝내 침묵한 데다, 최근에는 장씨의 유족이 진술을 번복한 것이 재수사가 불발된 이유인 것처럼 보도했다. 윤씨의 존재를 처음 대중에게 알린 <뉴스공장>은 그녀에 대한 의혹이 쏟아지는 내내 침묵했고, 과거사위의 결론이 난 뒤엔 엉뚱하게도 김영희 변호사를 불렀다. 역시 윤씨가 출연했던 KBS <오늘밤 김제동>도 마찬가지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윤씨에 대한 의혹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진 지금이라면, 김수민 작가나 김 작가를 대리해 윤씨를 고소한 박훈 변호사 등등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기자를 ‘기레기’라고 비하하는 것에 부정적이지만, 이들의 모습을 보니 그런 말이 왜 유행하는지 이해가 간다. 하기야, 나중에 사과할 언론사라면 미리부터 사실 여부를 철저히 검증했으리라. 이분들에게 윤지오가 올린, 윤씨와 SBS 박원경 기자의 전화통화 영상을 보기를 권한다. 팩트체크는 어떻게 하는지 배울 수 있고, 거짓말을 하는 이가 팩트체크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담겨 있으니, ‘참기자’가 되길 원한다면 꼭 보길 바란다. 계속 기레기로 남아있고 싶다면 안 보셔도 되지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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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지요?” “왜 옷을 야하게 입었나요?”

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를 탓하는 건 대체로 부도덕하다. 비난은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향해야지, 안 그래도 범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덧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대체로 부도덕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어떤 범죄는 피해자에게도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사기를 예로 들어보자. 중고차 딜러가 2018년형 뉴 쏘렌토 2.2 디젤 차량을 1000만원에 판다는 광고를 인터넷에 띄운다. 주행거리도 4만㎞에 불과했고, 무사고란다. 이 정도면 최소한 3000만원은 줘야 할 텐데 1000만원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마음이 급해져 전화를 건다. “지금 당장 갈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팔지 마세요.” 물론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왜 이렇게 싸게 파는 걸까? 가는 차 안에서 딜러에게 전화해 물어본다. 딜러는 웃으며 답한다. “경매장에서 싸게 구입했거든요. 그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 수는 없죠.” 그다음 상황은 안 봐도 뻔하다. 딜러는 구매자가 인터넷에서 본 차가 아닌, 다른 차를 보여준다. “손님이 오시는 동안 다른 분이 사갔어요. 다른 차를 보시죠.” 심지어 차종도, 색깔도 다른 차를 보여주며 “이게 네가 본 차가 맞다”고 우기는 딜러도 있다. 화를 내고 나가는 이도 있겠지만, 소심한 이들은 딜러의 기세에 눌려 침수됐던 차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구입한다. 물론 사기를 친 그 딜러에게 비난이 가해지는 게 맞다. 하지만 당한 이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좋은 차를 제값에 사는 대신 시세보다 2000만원이나 싸게 사려는 욕심이 아니었다면 사기 딜러를 만날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기란 당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9년 3월, 장자연씨가 사망했다. 그가 죽기 전 작성한 문건으로 보건대, 고위층의 술접대 자리에 불려가고, 거기서 험한 일을 겪은 것이 그가 죽음을 결심한 이유로 추측됐다. 안타깝게도 고위층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루된 고위층 인사 중 한 명이 C일보 사주라는 설도 나돌았다. 사람들, 특히 진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권이 바뀌자 과거사위원회는 소위 장자연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캐나다에 살던 윤지오씨를 불렀다. 윤씨는 고인과 같은 소속사 배우로, 장씨처럼 술접대에 불려나간 적이 있었다. 또한 그는 소위 장자연 문건도 본 적이 있다고 했으니, 위원회가 봤을 때 아주 핵심적인 증인이었다. 대통령의 철저한 재수사 지시가 있던 날, 윤지오씨는 자신의 인스타에 이렇게 썼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 됐다.” 윤씨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자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용기를 내서 권력을 고발하는 일에 동참한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가? 

하지만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윤씨는 자신이 장씨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며, 그 때문에 10년간 숨어 살았다고 했다. 늘 감시에 시달렸고, 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숙소와 더불어 여경 5명을 윤씨에게 제공하는 등 신변 보호에 신경을 썼던 것도 그 때문이지만, 그 위협은 전혀 실체가 없었다. 장씨 사망 후 윤씨는 숨어 살기는커녕 한국에서 꾸준히 연예활동을 했고, 캐나다에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일상의 삶을 살았다. 그가 겪었다는 교통사고도 알고 보니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져 생긴, 흔한 접촉사고였다. 스마트워치로 비상호출을 눌렀는데 경찰이 오지 않았다는 것 역시 윤씨가 버튼을 잘못 누른 것에 불과했다. 진실규명에 대한 윤씨의 진정성도 의심받기 시작했다. 윤씨가 고인과 살아생전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는 증언이 나왔고, 문건을 봤다는 것도 사실 여부가 불투명했다. 김수민 작가가 공개한 카톡 문자에 의하면 윤씨는 유가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고인의 이야기를 담은 <13번째 증인>을 출간했고, 책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유가족이 건드릴 수 없게 조치했단다. “IPTV나 언론은 내가 다 가져가려고/ 강연 공연도 조율해 보고”라는 카톡 문자, 경호 비용이 필요하다며 마련한 후원계좌 등등을 보면 그의 의도가 짐작된다. 이렇게 본다면 윤씨가 쓴 다음 카톡 문자도 이해가 된다. “책이 안 팔린다 해도 이슈는 될 테니까, 그 이슈를 이용해서 그간 못했던 것들을 영리하게 해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그 명백한 조짐들에 눈을 감는다. 보수의 본산인 C일보를 때려잡는 게 중요한데 왜 윤지오씨한테 딴지를 거느냐는 게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심지어 그분들은 윤씨의 거짓말을 언급한 이를 C일보의 하수인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분들의 집착은 결국 고소를 당한 윤씨가 내내 한국에 있던 어머니 핑계를 대며 캐나다로 도망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윤씨가 C일보 사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그로 인해 고 장자연씨의 진실을 규명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는 것도 그분들에겐 논외다. 여전히 윤씨를 신봉하는 그분들께 말씀드린다. “기대해 주세요. 당신들이 있는 한 제2, 제3의 윤지오가 또 나올 거예요.”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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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우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거기에는 미흡했다.” 음주운전으로 윤창호씨를 죽인 박모씨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을 때, 윤씨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윤씨의 친구도 비슷한 말을 한다. “한 사람의 꿈을 가져가고 6년을 선고받은 것은 너무 짧다.” 나 역시 이 말들에 동의한다. 정의로운 검사가 되겠다던 스물두 살 청년의 꿈을 짓밟은 행위는 100년의 징역형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대한 대법원 양형 기준은 징역 1년에서 4년6월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판결의 형량은 이례적으로 높았다. 예컨대 2016년 23세의 오토바이 운전자를 치어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후자의 청년이라고 꿈이 없는 것은 아닐진대, 두 사건에서 다른 판결이 나온 이유는 뭘까? 2년여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음주운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졌고, 윤창호법이라는 게 생길 정도로 이 사건이 여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사법부가 예전의 관성대로 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면, 해당 판사가 판사직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재판은 여론을 반영한다. 법이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라는 점에서, 판결에 여론을 반영하는 것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판결이 무조건 여론을 따라가는 게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대중의 여론은 대부분 강한 처벌을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며칠 전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할아버지가 손녀를 성폭행한 사건에 대한 댓글을 보자. “고작 7년? 그냥 죽여버려라. 인간도 아니다.” “7년이라니? 70년이 아니고?” 이런 여론은 의료사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의료행위의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했을 때, 여론은 들끓는다. 당장 의사면허를 박탈하고, 의사를 구속하라고 말한다. 문제는 판사들이 이 여론을 의식해 의사 구속을 남발한다는 데 있다. 2018년 초, 이대병원 신생아실에서 4명의 아이들이 죽었다는 이유로 의사가 구속됐다. 어차피 차트는 경찰에서 가져갔으니 따로 인멸할 증거도 없고, 계속 진료를 해야 하는 의사의 특성상 도주할 가능성도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감염이 의사의 잘못에 의한 것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장전담 판사의 판단은 영 아쉽다. 

이 점이 참작돼 재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의사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것도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횡격막 탈장으로 8세 아이가 사망했을 때, 이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 세 명이 1심에서 한꺼번에 금고 1년~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태권도를 하다가 배를 차였다는 사실을 부모가 얘기하지 않았고, 초기에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그 나이 때 복통의 원인으로 흔한 변비로 추정하고 경과를 관찰하자고 한 것이 형을 살아야 할 만큼 중대한 범죄일까? 자궁 내 태아가 사망했을 때 이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가 구속된 사례도 있다. 분만이 지연되자 지친 산모가 몸에 감은 태아 심박동 검사기를 풀어달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 한 시간 동안 태아의 심박동이 떨어진 탓이었다. 1심 재판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해 의사에게 금고 8월형을 선고했다. 대중들이 환호했으니 이건 좋은 판결일까? 위에서 예로 든 사건들은 윤창호씨를 죽인 음주운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박씨가 음주운전이 살인에 준하는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운전대를 잡았고, 그의 만행이 아니었다면 윤씨가 죽을 일은 없었겠지만, 의사는 가만 놔두면 죽었을 환자들을 살리려고 애쓰다 실패했으니 말이다. 

연이은 의사들의 구속을 바라보는 동료 의사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이 참담함은 국민들의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산부인과의 숫자는 급감했다. 문을 닫는 산부인과가 늘어나고, 그나마 있는 산부인과도 지방흡입에만 전념한다든지, 부인과 진료만 하는 식으로 업종을 바꾼다. 저출산 탓도 일정 부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산부인과가 의료사고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그래서 의사가 법정에 서는 일이 가장 많은 과라는 게 더 큰 요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인구 10만명당 출산하다 숨지는 산모의 수를 뜻하는) 모성사망비가 서울은 3.2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이지만, 제주 16.7명, 경북은 16.2명으로 엄청 높다. 심지어 두메산골이 많은 강원도는 32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스리랑카보다 높은 수치다.” <지방도시살생부>(마강래 지음, 개마고원)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의대생에게 산부인과는 가장 피해야 할 과이고, 소아청소년과와 흉부외과 등 생명과 직결되는 과들도 인기가 떨어진 지 오래다. 10년이 지나면 분만이나 심장수술을 위해 외국에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괜한 엄살만은 아니다. 

의사라고 해서 무조건 구속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의사의 성범죄나 대리수술 같은 범죄에 대해선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처벌이 내려지는 게 맞다. 하지만 환자 진료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의사에게 실형을 선고할 때는 조금 신중했으면 좋겠다. 여론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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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평소 정치에 참여하는 비율은 물론이고, 가장 소극적인 정치참여인 투표에서도 20대의 무관심은 두드러졌다. 대통령 선거를 포함한 거의 모든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가장 낮았으니 말이다. 원래 선거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사람을 뽑는 일이기도 하니, 20대의 낮은 투표율은 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든 한 요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표 불참을 이렇게 변명하곤 했다. “바빠서 못했다.” “그놈이 그놈이다.” “누굴 뽑아도 바뀌는 게 없다.” “청년 후보가 없고 다 나이든 후보뿐이다.” 그러다 보니 조성주 같은,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가 국회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물론 도덕성과 능력이 부족한 보수후보가 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이 현상이 극복된 것은 박근혜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전 대통령 덕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젊은층은 잘못 선출된 권력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몸소 체험했는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대통령 하야를 외치던 장면들은 그들에게 더없이 좋은 민주주의 교육이었다. 이제 20대는 누구보다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집단이 됐다.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대형 커뮤니티의 최다 추천 글은 대부분 정치 관련 이슈로 채워진다.

아쉬운 점은 그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자의 됨됨이를 꼼꼼히 따져보고, 당선된 이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를 감시하는 게 제대로 된 관심이건만, 그들은 당파성에 빠져 편가르기에 매몰돼 버렸다. 자신들이 반대하는 진영의 의혹에 대해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이런 행태는 최근 화제가 됐던 손혜원 의원의 의혹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손 의원은 자신의 조카와 보좌관 등 지인들에게 목포의 건물을 사게 했다. 그 뒤 그는 문광위 위원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 해당 지역이 문화재거리로 지정되게 한다. 물론 그는 순수한 문화재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며, 투기가 전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선의를 십분 인정한다 해도, 그건 공직자로선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 내가 국회의원이 된 뒤 내가 소속된 단국대에 자금을 몰아주고, ‘대학 살리기의 일환이었다’라고 발뺌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손 의원의 부친이 독립유공자에 선정된 것도 석연치 않다. 손 의원은 부친 손용우씨를 독립유공자에 포함시켜 달라며 6차례나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현 정부 들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손 의원이 피우진 보훈처장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했고, 둘은 국회에 있는 손 의원의 방에서 보훈신청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 뒤 보훈처는 심사기준을 변경해 손용우씨를 유공자로 만든다. 손 의원은 “어떤 특혜도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공직자로서 적절한 행동은 아니다.

이쯤 되면 “제가 공인으로서 사려 깊지 못했다”며 사과 정도는 하는 게 정상이지만, 손 의원은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같은 당 금태섭 의원도 손 의원의 행동이 ‘이해충돌의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지만, 손 의원은 흔들림이 없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며 SBS와 금태섭 의원에게 사과하라고 한다. 자신이 뽑은 선수들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동열 감독에게 “사과하든지 사퇴하든지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광경을 떠올리면, 손 의원이 갖고 있는 사과의 기준이 궁금해진다. 손 의원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젊은이들이 손 의원을 편들어 주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점령한 그들은 ‘건물 값이 안 올랐으니 투기가 아니다’ ‘SBS는 적폐언론이니 믿어선 안된다’며 여론몰이를 했고, 손 의원 공격에 동조하는 이들을 ‘알바’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부자라 돈에 관심이 없다’는 손 의원에게 1억5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아주기까지 했으니, 손 의원이 의기양양할 만도 하다. 손 의원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은 정말 그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손 의원이 만일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테니, 이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비단 손 의원뿐이 아니라,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전 기재부 공무원 신재민의 폭로가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났다면, 지금처럼 그가 돈에 미친 사람으로 매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게 진영싸움으로 귀결되는 게 해로운 이유는, 이런 상황에선 제대로 잘잘못을 가리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내 편의 비리는 무조건 옹호하고,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언론을 욕하는 현실에서, 당사자의 잘못은 온데간데없어지니 말이다. 정치에 대한 이런 식의 관심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젊은층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때가 더 나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성보다 당파성에 매몰된 관심이라면, 없는 게 나으니까.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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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씨는 2013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2014년부터 공무원 일을 시작해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서 근무하다 2018년 7월 퇴사한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12월30일, 그는 자신이 왜 기재부를 그만뒀는지에 관한 장문의 글과 영상을 올렸다. 그가 말한 이유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관료사회가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는데, 그 증거로 신씨는 두 가지 사건을 언급했다. 정부가 민간기업인 KT&G의 사장 교체에 개입했다는 게 그 하나고, 정부가 돈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빚을 갚기는커녕 추가로 빚을 지려고 했던 사건이 또 하나였다. 특히 2017년 말 벌어진 두 번째 사건은 국민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빚이 1조원 추가될 때마다 국가가 그에 상응하는 이자 200억원을 매년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1조원의 국채를 갚기로 했다가-이를 바이백이라 한다-하루 전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고, 오히려 4조원의 추가 국채를 발행하는, 즉 빚을 지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금년 국채 발행을 줄이게 된다면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는 것. 정권이 교체된 2017년도에 GDP 대비 채무비율이 줄어든다면 향후 정권이 지속되는 내내 부담이 가기에 국채발행을 줄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국장이 총대를 메는 바람에 4조원의 국채발행은 없던 일이 됐지만, 그로 인해 국장은 기재부와 청와대로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신씨는 이런 현실이 이해가 안됐다고 했다. “이런 행태를 문제 삼아서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면서 정권을 바꾼 것이 아닌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후속기사에 따르면 그의 폭로는 근거가 있다. 2017년 11월15일 정부는 바이백을 취소하는 바람에 채권시장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기재부는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윗선의 지시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기재부는 신씨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국채 추가발행에 대해 여러 기관에서 치열한 토론이 있었고, 그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란다. 또한 기재부는 신씨가 사표를 낸 뒤 공무원시험을 담당하는 학원업체와 계약을 한 것을 빌미로 “스타강사 되겠다고 나가더니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신씨의 저의를 의심하지만, 기재부 공무원을 그만두고 학원강사를 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보다 정확한 것은 정권 말기가 되면 알 수 있을 테니, 여기서는 내부고발자 신씨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한다.

신씨가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글을 올린 이유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서라고 했다. 그러자면 자신이 올린 글을 보다 많은 사람이 읽고 분노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요즘 사람들은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신씨가 올린 글은 A4 용지로 30장 분량, 글이 길어진 것은 인과관계를 제대로 설명하고 국채, 바이백 같은 경제 얘기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나처럼 경제에 문외한인 이도 대번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꽤 많았다.

- 글이 너무 기네요. 요약 좀 부탁해요.

- 고시 논술에서 고생 엄청 하셨겠네요. 도대체 뭔 말인지.

두 번째로, 글의 일부분을 가지고 신씨를 매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씨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보다 회의를 잘 이끌어 가셨고 국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대목이 필요한 이유는 그 후 신씨가 최순실게이트를 접하면서 잠시나마 정부를 믿었던 걸 부끄러워했고, 새로 탄생한 정부에 기대를 걸게 됐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는 다음과 같이 매도당한다.

- 박근혜가 국가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 이런 자의 말을 믿으라고?

- 저런 애국심을 가지고 태극기부대로 갔어야지 그동안 어떻게 견뎠나?

셋째, 글의 의도를 곡해하고 메신저를 공격함으로써 폭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분들이 있었다.

- 2017년 세금이 많이 걷혔다는 건 경기가 호황이었단 건데, 박근혜 때인 2017년이 경제호황이었냐? 너 박빠구나?

- 신재민 주장에 두서가 없네요. ‘학원에서 강의를 하려면 폭로를 해야 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강사는 내부 폭로자들만 하는 건가요?

- 그냥 자기랑 같이 공부해서 사짜 되거나 대기업 취업한 친구들과 연봉 비교해 보고 빡쳐서 때려치고 스타강사 되려는 사람의 노이즈 마케팅 정도로 이해되구요.

- 신재민인가 하는 애, XXX 학원의 작전 아닌가 하는 의심이?

2, 3번째 부류가 안타까운 이유는, 이들이 정치병에 걸려 고의적으로 글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왜곡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긴 글을 읽기 싫어하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첫 번째 부류에게 전달된다. 다수가 믿는 것이 진실이 되는 이 세상에서, 박근혜에게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던 전직 사무관은 ‘박근혜를 그리워하는 젊은 태극기부대원’으로 둔갑한다. 그리고 신씨는, 그 앞선 내부고발자들이 그랬듯,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이 어려운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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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천안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려면 남천안 IC를 타야 한다. 그때마다 천안야구장이 눈에 들어온다. 애써 안 보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다. 부지는 넓은데 이용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보니 금방 눈에 띈다. 비라도 내리면 운동장 곳곳에 작은 웅덩이가 생긴다. 처음 천안야구장을 봤을 땐 건물을 지으려고 땅을 다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완공된 야구장이라고 해서 기절할 뻔했다. 천안지역에도 야구동우회가 170여개나 되다 보니 운동장이 모자란 편인데도, 천안야구장을 이용하는 팀이 거의 없다시피한 이유다. 이 야구장을 짓는 데 든 비용은, 놀라지 마시라, 무려 780억원이다. 이 정도면 프로야구팀 경기장을 지을 수도 있는 돈. 아니 잔디는커녕 누런 흙에 줄만 그어 놓은 야구장에 무슨 돈이 그렇게 들었을까? 알고 보니 공사비는 얼마 안 되고 대부분의 돈이 토지보상비로 쓰였다고 했다. 더 어이없는 일은 공사를 시작하기 전 원래 야산이었던 그 땅이 갑자기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되면서 땅값이 치솟았으며, 덕분에 별반 돈이 안 되는 땅을 갖고 있던 땅주인이 일약 부동산재벌이 됐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이렇게 하냐 싶겠지만, 그 땅주인이 성무용 전 천안시장의 지인이고, 성 전 시장이 줄기차게 야구장 건립을 밀어붙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모든 게 다 이해될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런 사람을 처벌하라고 있는 게 법이니만큼, 검찰수사가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성 전 시장이 최소 구속될 줄 알았다. 여기에 대해 성 전 시장은 이렇게 항변했다. “천안시민을 위해 한 일이다.” 그 땅주인도 천안시민이니 틀린 말은 아닌데, 이 말이 판사마저 설복시켜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낼 줄은 미처 몰랐다. 판사의 말을 좀 들어보자. “피고인이 야구장 건립으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얻은 바는 없고 부지 선정과 이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또는 그 대가로 토지주 등으로부터 부정한 이득을 취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러니까 땅주인에게 돈을 몰아줬을 뿐 성 전 시장 자신은 아무런 이득을 취하지 않았으니 죄가 없다는 얘기다. 이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닌데, 성 전 시장과 판사가 맞는 말 대잔치를 벌이는 사이, 천안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할 국고 780억원은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 예산 1조원을 겨우 넘는 천안시의 재정을 감안하면 그 돈이 너무도 아깝다.

이게 이미 지나간 일이라 되돌릴 수 없다면, 다른 돈이라도 좀 아낄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 한 언론은 문 대통령의 팬카페인 ‘문팬’의 카페지기 박모씨가 올해 2월 코레일유통 비상임이사가 됐다고 보도했다. 원래 코레일유통이 비상임이사를 모집하면서 내건 자격조건은 ‘유통분야 전문가’였지만, 박모씨의 경력은 입시학원 상담실장이 고작이었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이 대표 변호사를 지낸 법무법인의 사무장이던 송모씨는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GKL의 상임이사가 됐다. GKL은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회사, 하지만 송모씨에겐 관광산업 종사 이력이 전혀 없었다. 두 건 모두 낙하산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했지만,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정치에 있어 논공행상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죠. 생업 포기하고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는데 백수로 살라는 건 너무하잖아요?” “모든 나라에서 정권이 바뀌면 주요 인사가 물갈이되는 건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외이사는 원래 전문성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꼭 경험이 있어야 하나? 도덕성도 중요한 경력이다.” “사람 경영하는데 보은인사가 절대 빠질 수 없죠.” “이명박, 박근혜 때는 낙하산 없었어요? 뭐가 문제인지?”

도덕성을 가장 중시한다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마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낙하산이라는 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게 현실이라면, 정권을 빼앗겼을 때 낙하산을 욕하는 위선을 저지르는 대신 우리의 세금을 좀 더 아끼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코레일유통의 비상임이사는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이사회 회의에만 참석하는데, 회의시간은 한 회당 평균 50분 정도다. 12번 모두 참석해도 600분이 고작이다. 일년에 10시간 남짓 일하면서 1700만원을 받는 건 지나치다. 전문성이 거의 필요 없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비상임이사에게 그 4분의 1만 줘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한다면 이후 그 자리에 누가 가든지 낙하산으로 인해 국민이 받는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GKL 상임이사도 마찬가지다. 송씨가 받는 연봉은 1억1000만원, 회사에 큰 도움이 못될 것을 감안하면 많아 보인다. 상임이사의 연봉을 절반으로 깎으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낙하산이 주로 임명되는 공기업 이사 등 임직원의 연봉을 줄인다면, 의외로 많은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낙하산을 임명할 때 어차피 필요도 없는 ‘해당분야 경력’ 얘기는 빼자. 그 대신 ‘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애쓴 분’을 문구에 삽입하자. 낙하산 논란도 저절로 사라질 수 있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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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었던 지난 10월27일, 서울 혜화역에 남성들이 집결했다.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이하 당당위)가 주최한 이 모임은 소위 곰탕집 성추행 판결을 규탄하기 위해 기획됐다. 곰탕집에서 일어난 성추행 가해자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된 것에 항의하는 차원으로, 여성의 말만 듣고 유죄판결을 내린 이 판결이 남성들의 삶에 위협이 된다는 게 당당위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곰탕집 가해자의 부인이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을 때, 인터넷은 이에 동조하는 남성들의 글로 도배됐다. 수많은 남성들이 ‘이러다간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겠다’며 울분을 터뜨렸는데, 이는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져 31만명의 동의를 받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당위의 집회는 전국에서 몰려든 남성들로 미어터져야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지만 막상 집회에 나온 남성들의 수는 60여명에 불과했다. 많은 이들이 이 숫자에 놀랐다. 청원에 동의한 사람들의 1%만 나왔어도 이렇게 민망한 수준은 아닐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남자들이 경제활동을 많이 하니까” “원래 처음엔 사람이 없다” 등등의 변명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전에 혜화역을 점거했던 불법촬영 규탄 시위와 비교하면 설득력이 없다. 참고로 불법촬영 규탄 시위는 5월에 열린 첫 집회에서도 1만명을 동원했고, 더위가 한창이던 8월4일에는 무려 7만명이 모이기까지 했다. 당당위는 12월8일에 2차 집회를 열겠다고 했다가 11월24일로 일정을 앞당겼는데, 이는 연말에 참여율이 떨어질까 걱정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해서 2차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지 않은 이유는 그들에게 ‘절실함’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당하는 일이 자칫하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길 때,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거리로 나선다. 삼복더위에도 여성들이 불법촬영 규탄 시위에 참여한 이유다. 하지만 남성들 중 성추행 가해자가 될까봐 불안해하며 사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조만간 성추행을 저지를 야심이 있는 이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착실하게 일상을 영위하리라. 그렇게 본다면 인터넷에 표출됐던 뭇 남성들의 분노는 방구석에서 여혐을 시전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남성들의 이런 행태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건 5년 전 있었던,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의 죽음에서도 드러난다. 여혐이 이슈화되기 시작했던 2008년, 성재기는 온라인에 남성연대를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차별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라는 게 존재해 더 큰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우리는 막걸리 한잔 하고 흩어질 겁니다. 여가부가 사라지면 우리나라 남녀는 모두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남성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남성들의 많은 수가 경제활동을 하고, 여성에 비해 임금도 많이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성연대가 돈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남성연대는 쭉 가난했다. 월 2000원 이상의 회비를 내는 이가 170명에 불과할 정도였는데, 이는 사무실 운영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액수였다. 설립한 지 5년이 지났을 무렵 그의 부채는 2억원으로 불어났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성재기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 그건 바로 한강에 투신하는 퍼포먼스였다. “이제 저는 한강으로 투신하려 합니다. 남성연대에 마지막 기회를 주십사 희망합니다. … 시민 여러분들의 십시일반으로 저희에게 1억원을 빌려주십시오.” 한마디로 남성연대의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뜻. 그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인명구조 자격증 소지자를 한강에 대기시킨 걸 보면 진짜로 죽을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퍼포먼스는 성재기의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성재기는 불어난 물살에 떠내려갔고, 필사적인 수색 끝에 사흘 뒤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성재기를 죽게 만든 원인은 뭘까? 무모한 퍼포먼스가 가장 큰 이유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벌이도록 만든 건 바로 남성들이었다. 인터넷에서만 소리 높여 남성 역차별을 외치는 대신 단돈 얼마라도 남성연대에 후원했다면 그가 한강에 뛰어드는 일은 없었으리라. 수많은 여성단체들이 여성들, 그리고 그 이념에 동조하는 일부 남성들의 후원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남성이 정말로 역차별당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 어이없었던 건 성재기의 죽음 후 남성들이 보인 행태였다.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남성연대에 후원금이 폭주해야 마땅하건만, 그들은 여가부 홈페이지로 몰려가 무차별 공격을 퍼부은 끝에 결국 홈페이지를 다운시켰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화풀이의 예로 이보다 더 적합한 게 있을까? 이후 남성연대는 양성평등연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 글을 쓰는 김에 링크를 타고 가보려 했지만 ‘이 페이지에 연결할 수 없음’이란 안내문만 뜬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한다. 남성 역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입을 막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 정부가 여성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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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회로(CC) TV 속의 남성이 여성 쪽으로 걸어간다. 남성이 지나가자마자 여성은 남성을 불러 세우고 격하게 항의한다. 그 남성이 자기 엉덩이를 만졌다는 것이다. 소위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해당 남성-A씨-의 아내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 뒤였다. 그 글에 따르면 A씨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며, 높은 분을 모시는 자리여서 성추행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해당 여성, 즉 피해자가 사건 직후 합의금 1000만원을 요구했다는 것도 수상쩍다. 그럼에도 판사가 피해자의 말만 믿고 징역 6개월을 선고했으니 억울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남성들이 이런 판결을 내린 판사를, 그리고 피해자를 욕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말처럼 해당 CCTV로는 성추행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그게 곧 피해자를 안 만졌다는 얘기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흥분했고, A씨에게 공감했다. 심지어 A씨를 위해 모금운동을 하자는 의견도 제법 있었다. 요즘 놀이터로 전락한 청와대 청원은 물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두 번째로 공개된 CCTV는 성추행 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다 잘 내릴 수 있게 돕는다. A씨가 현관 쪽에 서 있는데, 피해자 여성이 걸어와 복도 쪽 방문을 열려고 한다. A씨가 그 여성을 돌아보더니 그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손을 바깥쪽으로 뻗는다. 곧바로 A씨가 항의하고, 그 뒤 양쪽 진영 간에 대치가 이어진다. 이 와중에 A씨는 도망친다. A씨 아내가 쓴 글에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피해자는 합의금을 요구한 적이 없었고, 먼저 합의금 얘기를 꺼낸 쪽은 오히려 A씨였다. 어려운 자리였다는 아내의 글과 달리 A씨는 폭탄주 15잔을 마셨다고 했다. 게다가 A씨는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고, 거짓말탐지기 결과도 ‘거짓’이었다. 남성들의 분노를 촉발한 첫 글에 A씨에게 불리한 대목은 들어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판단을 달리할 법도 하지만, 남성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만졌다는 증거는 있어요?” “증거 없이 징역을 때린 게 문제다.” “판사는 각성하라!”

사실 성추행은 증거가 남지 않는 범죄다. ‘슴만튀’ ‘엉만튀’라는 말처럼 슬쩍 만지고 도망치는데 진술 말고 무슨 증거가 남겠는가? 대부분의 성추행과 달리 곰탕집 사건은 오히려 증거가 많은 사건이다. 그럼에도 ‘증거’ 운운하는 이들은 성공한 성추행은 처벌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음주운전, 살인, 사기 등등 범죄와 관련된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올 때마다 남성이 주를 이루는 네티즌들은 일단 가해자를 욕하고, 다음으로 ‘처벌이 약하다’며 판사를 비난한다. 하지만 성범죄의 경우 남성들이 가해자에게 동조하며 그편을 드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난다. ‘그랩’으로 유명한 윤창중이 박근혜 정부의 대변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편에 서서 피해자를 국제꽃뱀으로 몰았을 남성이 한둘이 아니었으리라.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실수로 여자의 신체부위를 만져서 성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고의와 실수를 구분할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왜? 어쩌면 성범죄의 90% 이상이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통계가 이유일 수 있겠다. 같은 남성으로서 만지고픈 네 마음을 이해한다,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인데 어찌 너를 욕할 수 있겠느냐, 이걸 문제 삼는 여성이 나쁜 거야, 라는 게 그들이 가해자에 빙의하는 이유가 아닐까?

‘성전카페’라는 곳이 있다. 성범죄 전문 상담 카페의 준말로, 4000명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가관이었다. 한 남성이 성범죄를 저질렀는데 어떻게 하면 형을 덜 받을 수 있는지 묻는 글을 올리면 경험자와 법률가들이 댓글로 방법을 알려준다. “미성년자인지 몰랐다고 잡아떼세요.” “합의하에 즐겼다고 하세요.” “쪽지 보내주시면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성범죄자가 결국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는 글을 올리면 축하세례가 이어진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오늘부터 발 뻗고 주무세요.” “부럽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카페 덕분에 무혐의를 받았다고 고마워한다. 성범죄의 재범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카페는 더 많은 성범죄가 저질러지는 세상을 위해 애쓰는 중이다. 이런 카페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카페에 가입을 안 한 이들도 인터넷 댓글로 성범죄자를 응원함으로써 피해여성의 싸우고자 하는 의욕을 짓밟는다. 이렇게 남성들이 가해자를 위해 연대하는 반면, 여성들은 대부분 피해자를 위해 연대한다.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됐을 때, 수많은 여성들이 강남역에 모였다. 피해자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자신이 살아남은 게 단지 운이 좋아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혜화역에서 열리는 규탄시위 역시 몰카범이 남성인 경우도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것일 뿐, 가해 여성을 편들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정부가 혜화역에 모인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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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마십시오. 저희 의사들이 당신을 돕고 당신의 아이를 지킬 것입니다.”

2009년 12월, 프로라이트 의사회가 출범했다.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낙태 시술 근절을 목표로 만들어진 이 단체는 이듬해 2월, 불법 낙태 수술을 하는 병원 3곳과 의사 8명을 검찰에 고발한다. 산부인과 의사가 동료의사를 고발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지만, 그로 인한 파장은 컸다. 그간 암암리에 낙태를 해오던 산부인과들이 시술을 중단한 것이다. 낙태를 하러 온 여성들은 “안 한다”는 말을 듣고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낙태를 포기할 리는 만무했다. 미혼모가 되는 게 두려워서, 원하지 않는 성관계로 인해 임신이 됐을 때, 한 명을 더 낳아 키우는 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기혼자 등등 다들 낙태를 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단속이 상대적으로 덜한 지방병원으로 가기도 했고, 아예 중국으로 원정을 가서 낙태를 하기도 했다. 낙태기피에 따른 비용 상승은 저소득층이나 저연령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타격을 줬는데,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무허가 시설에 몸을 맡겼다가 마취사고나 세균감염 등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출산한 산모 10만명당 사망하는 여성의 수를 나타내는 모성사망률이 2009년 13.5에서 2010년 15.7, 2011년 17.2로 증가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다. 루마니아는 낙태가 전면 금지됐던 20여년 동안 모성사망률이 21에서 128로 증가했지만, 1989년 낙태금지법이 철폐되자 한 해 만에 이 수치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지금도 낙태가 금지된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뜨개바늘이나 막대기 또는 옷걸이로 자가 낙태를 하다가 큰 상처를 입고, 또 목숨을 잃는다. 옷을 거는 도구인 옷걸이가 엉뚱하게도 낙태합법화 운동의 상징적인 도구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나라도 이제 낙태금지법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생명을 죽이지 않기 위해 만든 이 법이 오히려 산모의 목숨을 앗아간다니, 이거 문제가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하는 것을 허용하고, 덕분에 그 나라 여성들은 안전한 곳에서 낙태 수술을 받는 게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먹는 낙태약 ‘미프진’도 의사 처방만 있으면 얼마든지 복용할 수 있다. 임신 초기에 효과가 좋은 미프진은 선진국은 물론 잠비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콜롬비아, 심지어 북한 등등 웬만한 나라에선 죄다 허가를 받은 상태지만,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브로커가 추천하는, 성분이 뭔지도 모르는 가짜 약을 비싼 돈을 주고 사먹고 있으니, 낙태금지법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문이 든다.

고무적인 점은 남성들이 댓글을 다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네이버에서도 낙태합법화에 대한 지지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낙태에 관한 기사마다 추천수가 가장 많은 베스트댓글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낙태합법화 적극 지지함.” “나도 남자인데 낙태는 여자 인권 문제인 것 같다. 낙태금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보다 지금 있는 산모의 인권을 무시한다.” “싸튀충 (사정하고 도망가는 남성을 지칭함) 처벌법부터 만들던가. 애는 뭐 혼자 만들었냐?” “낙태 반대하는 놈들 실명을 밝혀라. 그놈들에게 강제 입양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17일 낙태 수술을 한 의사의 자격을 1개월 정지하는 행정규칙을 공포해 논란을 일으켰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더 이상 낙태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8년 전 그랬던 것처럼 낙태를 하러 간 여성들은 “안 한다”는 말에 쓸쓸히 발길을 돌린다. 그들이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건 다들 알고 있다. 혹시 낙태금지를 강화하는 게 출산율을 높이려는 계략이라면, 이건 번지수가 틀렸다. 프랑스 등 낙태를 합법화한 나라의 출산율이 우리보다 훨씬 높으니 말이다.

1879년 여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마거릿 생어는 열한 명의 자녀를 낳고, 그것도 부족해 여러 차례 유산을 거듭하던 어머니가 한창 나이에 죽는 걸 보고 피임에 관해 생각한다. 생어는 “어머니가 될지 아닐지를 여성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1916년 미국 최초로 산아제한 클리닉을 연다. 그를 불편해한 권력자들 때문에 한 달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지만, 생어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세상과 싸웠다. 그 결과 지금은 피임을 안 한다고 뭐라고 할지언정, 피임을 부도덕한 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낙태가 여성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 2018년 5월, 아일랜드에서는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68%가 낙태금지법 폐지에 투표했다. 놀라운 점은 아일랜드가 보수적인 가톨릭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갑자기 걱정이 된다. 우리가 1등은 못할지라도 꼴찌는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우리 정부는 왜 자꾸 뒤로 가는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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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1. “이건 기생충이 맞습니다.” 내 말에 A는 당황해했다. “선생님, 다시 한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아무리 봐도 이건…” 난 A의 말을 잘랐다. “이것 봐요. 기생충은 제가 님보다 더 잘 알잖아요? 제가 맞다면 맞는 겁니다.” A는 알았다고 하며 내 연구실을 나갔다. 그로부터 5년 뒤, 난 학술지에서 ‘기생충과 구별해야 할 음식물들’이란 기고문을 봤다. 소화가 잘 안 되는 식물의 줄기가 대변으로 나올 경우 기생충과 헷갈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놀란 건 사진에 나온 콩나물이 A가 내게 가져온 물체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알아본 결과 내 진단이 A에게 미친 영향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생충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회사는 A를 해고했다.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기생충 감염 전력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는 사이 A의 가정은 무너졌고, 그의 자녀들도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정 2. “며칠 정도 걸리겠습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자신을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그 사내는 내게 싱싱한 회충알 1만개를 구해달라고 했다. 말은 안했지만 그리 좋은 목적에 쓰일 것 같진 않았다. 싫다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협조하지 않으면 승진에 지장이 있다는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매스컴은 B를 비롯한 몇몇 반정부인사들이 다량의 회충에 감염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더불어 진보인사들의 위생관이 도마에 올랐다.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B였지만, 그는 몇 달간 격리된 채 치료를 받는다는 후속기사를 마지막으로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물론 이건 가상의 시나리오다. 회충은 이제 우리 사회에 없다시피 하며, 있다 해도 약 한 알로 치료되니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많은 이들이 나를 비난할 것이다. 나의 실수에서 비롯된 첫 번째 사례라도 욕을 먹어야 마땅하지만, 두 번째 사례라면 욕을 먹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교수 자리에서 잘리고, 법적으로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전문가에게 기득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자신의 지식을 써달라는 당부의 일환이다. 거기엔 전문가들이 최소한 사적인 이익을 위해 지식을 남용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도 담겨 있다. 전문가들의 범죄가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법부의 만행을 다룬 팟캐스트 <이이제이>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이제이>에 출연한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박상규 기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그 밑에 있는 판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짓을 벌였는지를 고발한다. 한 사건만 보자. 좌우익 대립이 치열했던 1949년, 대구 10월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경찰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잡아들였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정재식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남편이 걱정된 아내 이외식씨는 첫돌이 막 지난 ‘도곤이’를 등에 업고 20리 길을 걸어 경찰서에 찾아간다. 제발 남편을 보게 해달라고 조르자 경찰은 수감된 사람들이 골짜기로 끌려갔다고 말해준다. 시쳇더미들 사이에서 아내는 죽어있는 남편을 찾고 망연자실한다. 억울한 죽음이지만, 국가에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외식은 빨갱이의 아내라며 가족은 물론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이외식이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것은 그런 측면에서 이해가 된다. 그녀 등에 업혀있던 정도곤씨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여기저기서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2009년, 과거사위원회는 절차도 없이 민간인을 살해한 그 사건이 국가의 잘못임을 인정했다. 1심 판결은 아내 이외식에게 3억3000만원, 아들 정도곤에게 2억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돈이 잃어버린 50년을 되돌려주기엔 턱없이 적지만, 어이없게도 국가는 항소했다. 2심을 진행할 당시 사법부의 수장은 양승태였다. 손해배상금은 대폭 삭감돼, 이외식 8800만원, 정도곤 약 5000만원이 됐다. 국가는 이마저도 주지 않겠다고 상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정도곤씨의 배상금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주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중에 밝혀졌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다.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했다.” 소위 재판거래 의혹, 즉 양승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내가 이렇게 국가 돈을 절약해 주고 있으니 내 요구도 좀 들어달라’며 꼬리를 흔든 것이다. 이 파렴치한 행각이 드러난 뒤에도 대법관들은 사죄하기는커녕 의혹 자체를 부인했다. 양승태는 “법과 양심에 어긋난 재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래도 이들에게 기득권의 대우를 해줘야 할까? 이들에게 보내는 존경심을 이제 거두자. 그리고 최저임금인 시간당 8350원을 주자. 신뢰를 저버린 전문가에겐 그것도 아깝지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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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2, 그 이상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다만’이라는 부사에 대한 설명이다.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도 아니고, 뜻을 보니까 무슨 말인지 더 헷갈리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이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만’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문장을 이어주는 데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강씨(32·남)는 올해 1월7일 오전 2시20분께 제주 시내 한 마트 맞은편 도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피해자 A씨(58·여)에게 다가가 갑자기 욕설을 하며 주먹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피해자의 옷과 머리채를 잡아 길바닥에 넘어뜨린 후에도 얼굴과 몸을 수차례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 코뼈를 부러뜨린 것으로 조사됐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씨는 피해자인 A씨와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였다. 그런 강씨가 환갑에 가까운 여성에게 막무가내로 폭력을 저질러 코뼈를 부러뜨린 것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강씨에게는 비슷한 범죄 전력까지 있다. 이런 사람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건 그 자체로 사회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엄격한 처벌이 필요할 터였다. 송 판사 역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징역 3년에 처한다’ 정도는 돼야 문장 흐름이 자연스러울 텐데, 송 판사가 내린 판결은 놀랍게도 집행유예였다. 송 판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형을 정했다.” 그러니까 ‘다만’은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아찔한 반전을 가능케 하는 단어였다. 제주도에 가면 마트 맞은편에서 택시를 기다리지 말자.

또 다른 사례. 대구의 시내버스에 탄 A군(18·남)은 옆에 선 B씨(62·여)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B씨는 해당 사건으로 얼굴, 머리, 어깨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끝내 숨졌다. 당시 폭행을 만류하던 C씨(22)도 A군의 구타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는데, 재판부의 판결은 이번에도 집행유예였다. “죄질이 나쁜 데다 유족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여 피고인의 죄책이 절대 가볍지 않다. 다만 아직 10대에 불과한 피고인이 전과가 없고 초범인 점, 비기질성 정신병적 장애상태에서 범행한 점, 유족이나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 대구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분들은 가급적이면 숨을 부드럽게 쉬자. A군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법부를 ‘다만’에만 의존하는 집단으로 보는 건 그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이씨(39·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지난해 7월, 집에서 여자친구 ㄱ씨(47)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ㄱ씨는 이씨에게 주먹으로 얼굴 등을 수차례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숨졌다. 재판부는 고심했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범죄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래서 재판부는 우리에게 친숙한 ‘그러나’를 등장시킨다.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 부사’인 ‘그러나’는 전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문장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준다. “피해자의 고통, 유족들의 처참한 심정, 여자친구를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인다. … 고심 끝에 피고인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여기서 ‘그러나’를 쓰니까 집행유예란 판결이 좀 더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전처럼 ‘다만’을 썼다면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다음 사례에도 ‘그러나’가 등장한다. 최씨(66·남)는 잠든 아내의 머리를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안 아내가 밥을 차려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물론 이 판결에도 집행유예가 나왔다. “피고인이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아내를 쫓아가 머리를 계속 때리는 등 범행 방법이 무자비하고, 이 때문에 다친 피해자가 피를 많이 흘려 사망할 위험도 컸다. 그러나 범행이 다행히 미수에 그쳤고, 피해자가 입은 상처도 치료돼 현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여기서 ‘그러나’는 피해자의 빠른 회복력과 더불어 이 판결을 이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지금도 사법부는 많은 범죄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엔 ‘다만’과 ‘그러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글쓰기 책을 냈던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다만’과 ‘그러나’의 올바른 용법을 가르쳐 드린다. “사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다만 그 국민이 선량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사법부는 여전히 자신들이 국민들을 위한다고 믿는다. 국민 여론과 배치된 판결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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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사법부

-A씨는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A씨는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며 양해를 구했다.

-B씨도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B씨는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병원에 있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C씨 역시 한동안 연락이 안됐다. 나중에 C씨는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며 양해를 구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위 셋은 중고품 직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에서 자기 물건을 판다고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신기하게도 이들에게 연락이 두절될 사건이 생긴 건 다른 분이 그 물건을 사겠다며 물건값을 지불한 뒤였다. 그리고 이들이 양해를 구하고 다시 연락을 취한 시기는 이들이 물건을 보내지 않자 화가 난 구매자들이 경찰서에 가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다음이었다. 궁금해진다. A, B, C는 정말 연락 못할 사건을 겪은 것일까. 구매자들이 고소 운운하지 않았더라도 이들이 먼저 연락을 취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으리라. 중고나라에서는 판매자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더치트’라는, 사기피해 정보공유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거기서 조회해 본 결과 위 세 명은 최소 3번 이상의 사기를 저지른 이들이었고, 한 명은 그런 경우가 6번이나 됐다. 사기를 치는 이는 비단 이분들만이 아니어서, 중고나라 사이트에는 ‘사기를 당했어요 흑흑’이란 사연이 매일 몇 건씩 올라온다. 희한한 일이다. 왜 중고나라는 이들을 영구적으로 퇴출시키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경찰은 왜 이 사기꾼들을 그냥 방치하는 것일까?

피해를 입은 이가 사기꾼을 고소하려면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피해를 입증할 자료도 챙겨야 하고, 고소장을 접수하려면 경찰서에서 최소한 하루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생의 수업료로 생각하겠다’며 신고를 안해 버린다. 그래도 끝까지 신고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얼핏 생각하기엔 경찰이 사기꾼을 잡으면 다시는 사기를 칠 생각이 없게 강력한 처벌을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냥 벌금만 조금 내면 끝이다. 사기꾼 자신도 놀랄 정도로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 사기를 쳐봤자 신고될 확률이 극히 낮고, 설령 경찰에 잡혀도 벌금만 내면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사기를 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이건 다른 사기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이 왜 복마전인지 아는가? 시중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구매자를 유혹해 폐차 직전의 차를 사게 만드는 사기가 판을 치고 있어서다. 중고나라 사기가 그렇듯 중고차 사기범도 그냥 벌금만 좀 내면 바로 풀려난다. 관대한 처벌이 사기공화국을 만든다는 얘기, 현직 검사인 김웅이 쓴 &lt;검사내전&gt;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사기꾼은 어지간해서 죗값을 받지 않는다. 사기꾼이 구속될 확률은 재벌들이 실형을 사는 것만큼 희박하다. 설사 구속되더라도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쉽게 풀려난다…. 이런 천혜의 환경 조성으로 우리나라 사기범의 재범률은 77%에 이른다. 처벌을 받은 사기꾼 10명 중 8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전과를 가지고 있다.(19~20쪽)”

뜻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사기죄의 형량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게 과연 입법부나 국회의원만의 문제인 것일까. 이 나라에선 중고나라와 비교가 안되는, 스케일 큰 사기가 자주 벌어진다. 자신을 높은 자리로 보내주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해놓고선 자신의 재산만 불린 사람이 있다면, 혹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자기 측근의 꿈만 이루려고 한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단죄돼야 마땅하다. 국민이 할 수 있는 단죄는 선거를 통해 그를 응징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뒤늦게나마 그들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건 저 중의 한 분이 나라를 완전히 거덜 낸 뒤였지, 그 이전까지 선거에서 제대로 된 심판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왜 그럴까? 우리가 남이 아니라서, 존경하는 분의 딸이어서, 저쪽은 왠지 북한하고 친한 것 같아서 등등의 시답잖은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것만 보면 사기꾼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고 징징댈 일은 아니다.

오늘은 지방선거 날이다. 지방선거의 취지는 지역의 일꾼을 뽑자는 것, 누가 우리 지역을 더 발전시킬지에 대한 판단이 표를 던지는 가장 중요한 선택지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방선거 후보자를 정당에서 공천하는 제도 탓에 지방선거는 각 정당에 대한 심판의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무조건 투표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당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지를 꼼꼼히 따져 투표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사기공화국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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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족 중 한 명이 큰 병에 걸리면, 아주 부잣집이 아닌 이상 집안이 거덜난다. 건강보험이 있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는 건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비율(이를 보장성이라 한다)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에서 보장성이 80%를 넘지만, 우리나라의 보장성은 60% 남짓이다. 치료비가 총 5000만원이 든다면 2000만원을 본인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높여서 환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면 적극 환영할 일, 문재인 대통령의 야심작 문재인 케어(문케어)는 이런 취지에서 탄생했다. 문제는 돈이 든다는 것. 국민들이 문케어로 혜택을 보는 것이니만큼 이는 건보료를 인상함으로써 해결하는 게 맞다. 도대체 얼마나 올려야 할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회 예산처에 따르면 보장성을 70%로 올리는 데만도 3.2%의 인상이 필요하단다. 게다가 문케어에 포함된 비급여 보장,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지원 확대 같은 정책들, 그리고 고령인구 증가 같은 환경적 요인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인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건보료는 2017년에 비해 2.04%, 직장인 기준 월평균 2000원이 올랐을 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앞으로도 인상률을 예년 수준을 넘지 않게 관리하겠다는 복지부의 공언이다. 이 정도 인상률로 문케어가 가능할까? 정부는 그간 모아둔 건강보험 적립금 21조원을 사용하면 된다는데, 이건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문케어가 시작되면 적립금은 곧 바닥이 날 테고, 그때가 되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정부가 당장의 인상을 꺼리는 까닭은 지지율이 떨어질까 걱정해서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 10명 중 8명은 문케어로 인해 혜택을 보는 건 좋지만, 추가적으로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런 식이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왜 비판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는 건보료 인상의 불가피함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훨씬 더 좋게 바꾸는 일인데, 지지율이 좀 떨어진들 어떠랴.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는 대신 당장의 지지율을 선택함으로써 보험료 인상의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기로 한 모양이다. 재정불안에 허덕이는 문케어가 제대로 작동할지 의사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용·성형을 제외한 비급여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것 역시 우려스럽다. 비급여는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어서 국민건강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이다. 환자 개인이 좀 더 편하고자 돈을 더 내고 선택하는 게 비급여란 얘기인데, 6인실 대신 2인실에 입원한다든지, 회복기간을 약간 단축시켜주는 추가적인 약을 부담하는 게 그 예다. 개인의 편의를 위한 선택에 국민이 내는 보험료를 쓰는 게 과연 온당할까? 더 우려스러운 일은 비급여 여부의 판단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한다는 사실이다. 심평원은 의사의 정당한 진료행위에 과도한 개입을 하곤 했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을 써도 “왜 이 약을 썼느냐?”며 따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줄 돈을 안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비급여마저 심평원이 관장한다면, 환자들이 돈을 더 내고 좋은 치료를 받는 건 불가능해진다. 또한 의사들이 그동안 원가 이하의 진료수가를 비급여로 메꿔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케어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발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 이기심의 극치네요”라는 댓글에서 보듯, 국민들은 의사를 적폐세력처럼 취급한다. 이건 문케어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반대투쟁을 이끄는 최대집 의협회장이 ‘박사모’라는 게 더 큰 이유다. 박근혜가 무죄이며 억울하게 탄핵당했다고 주장하고,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조작됐다고 하는 등 그가 했다는 일련의 말들엔 그저 한숨만 나온다. 그가 회장이 되고 나서 첫 번째로 추진한 ‘문케어 반대 의사파업’을 하필이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로 잡았던 것도 의협의 앞날이 어둡다는 걸 말해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의협회장이 된 것일까? “내가 선거에 무관심했다.” “설마 박사모가 되겠냐고 방심했다.” 얼마 전 만난 동료 의사들은 이런 반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부 측에 의사들의 우려를 전달하고, 이를 문케어에 반영하려면 정부와의 줄다리기가 필요한데, 여론에서 외면받는 의협회장의 말에 정부가 얼마나 귀를 기울여줄지 의문이다. 

이건 꼭 의협만의 일일까?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단지 경제전문가라는 이유로 돈밖에 모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가 큰 낭패를 봤다. 거기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다음 선거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분을 대통령으로 만듦으로써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다시금 나라를 일으키고 있지만, 잃어버린 9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가 치솟는다. 6·13 지방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신중하게 투표해 의사들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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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드라마는 스토리보다는 보다 자극적인 장면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고 합니다. 여러분 중 상대방 얼굴에 물 뿌리는 거, 혹시 한 번이라도 보신 분 있나요? 전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일은 오직 드라마 안에만 있을 뿐이죠.”

글쓰기 강의를 나갈 때면 한국 드라마에 대해 비판하곤 했다. 다른 분야에 경험이 없는 드라마 작가가 상상만으로 극본을 쓰니 신선한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일반 사람도 드라마를 써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되겠다 싶다. 내가 몰랐을 뿐, 드라마 속의 일들은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 대한항공 전무 조현민은 ‘을’인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을 뿌리고 폭언을 했단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론 조씨는 그런 일 자체를 부인했다. 그녀는 “얼굴에는 (물을) 안 뿌렸고 밀치기만 했다”고 주장한다. 밀치는 게 얼굴에 물을 뿌리는 것보다 덜 나쁘다고 믿는 그녀가 대견해 보이지만, 아쉽게도 조씨의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당시 현장에 있던 광고대행사 직원이 해당 사실을 부인하는 인터뷰를 했을 것이고, 베트남에 있던 조씨가 갑자기 귀국해 취재진 앞에서 “내가 어리석었다”는, 마음에 없는 말도 안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조씨가 그 사실을 부인하는 건 해당 장면을 찍은 영상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그 장면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면, 조씨는 ‘더워 보여서 그랬다’는 식의 변명을 하지 않았을까?

내친김에 대한항공 직원 중 한 명이 조씨의 폭언이 담긴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파일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말투의 천박함도 놀라웠지만, 어떻게 그리 높은 데시벨로 계속 고함을 칠 수 있는지가 더 경이로웠다. 그간 드라마에 조씨 같은 악역이 등장하지 않았던 건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비현실적이기도 했지만, 조씨 역을 맡을 만큼 성량이 풍부한 사람이 없어서였으리라. 그런데 제보자에 따르면 조씨의 이런 폭언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란다. 제3자인 내가 잠깐 듣는 것도 괴롭던데, 이런 폭언을 수시로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할까 싶었다. 땅콩 서비스를 빌미로 비행기를 돌린 조씨의 언니 조현아까지 있으니,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것이야말로 ‘극한직업’으로 분류하는 게 맞다. 물론 대한항공 측은 문제의 음성파일 주인공이 조현민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난 그 사람이 조현민이길 바란다. 조현민 말고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또 있다면, 세상이 몇 배쯤 더 무서워질 거다.

조현아와 조현민, 두 자매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인이 됐다. 정말 신기한 건 이들의 태산 같은 분노다. 재벌가에서 태어나 원하는 걸 다 갖다시피 한 이들이 왜 늘 그렇게 분노에 차 있는지 이상하지 않은가? 음성파일의 막말은 광고대행사 팀장이 제대로 답변을 못하자 벌어진 일이란다. 분노할 기회만 기다리는 사자 앞에서 말이 안 나오는 것도 당연하지만, 설사 준비가 미흡해 답을 못했다 해도 저런 대규모의 분노를 터뜨리는 건 이상한 일이다. 언니가 저지른 소위 땅콩회항도 일반인이 보기엔 별일 아닌 사건으로 촉발됐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분노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됐을 때 표출된다. 자신이 받아야 될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첫 번째 조건이다. 주변인들이 아무리 극진히 모셔도 두 자매는 그 정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주위의 깍듯함이 진심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서인데, 이건 그들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정식으로 입사시험을 봤으면 모형비행기 회사도 들어가지 못할 실력으로 진짜 비행기 회사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남들이 비웃을까 걱정될 수밖에. 조현민이 트위터에 썼다는 ‘명의회손’은 그 단서를 제공한다.

둘째, 분노를 마음껏 표출해도 되기 때문이다. 땅콩회항 때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던 조현아가 다시금 사장으로 일선에 복귀한 데서 보듯, 조현민 역시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대한항공이 자기들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항공사가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대한항공을 안 타고 못 배길 거라는 것도 너무 잘 안다. 여론 때문에 당장은 사과하는 척하지만, 아마도 조현민은 물 뿌린 사실을 폭로한 업체 사람과 음성파일을 언론사에 제공한 제보자를 찾아내 복수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첫 번째 조건은 우리가 바꿀 수 없다. 자기가 더 대접받아야 한다고 우기는데, 어쩌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두 번째, 즉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고위직은 비록 사기업이라 해도 회사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순간적인 실수라면 모르겠지만, 이번 사건처럼 오랜 내공에서 비롯된 만행을 그냥 방치해서야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이 조치는 대한항공은 물론, 조씨 개인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그래도 의대를 나온 내가 보기에 조씨에게 가장 필요한 건 회사일이 아니라 입원이니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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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하 MB)이 드디어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현 상황을 자신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몰아가고 싶은 모양이던데, 아쉽게도 그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이재오씨 한명뿐인 것 같다. 그가 여기까지 온 것은 다들 알다시피 돈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기 때문인데, 그 사랑을 철저하게 숨긴 덕분에 MB가 부정한 방법으로 만든 재산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추측조차 안되는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30조원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금액만 가지고도 MB는 감옥에서 오랜 기간 복역해야 한단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곧 먼 곳으로 떠나는 MB가 벌써부터 그리워지는데, 여기서는 돈, 큰 집, 빠른 차, 명품 좋아하는 부인, 능력 있는 아들 등 모든 걸 다 갖춘 그에게 정작 없는 건 무엇인지 짚어 봄으로써 그에 대한 내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첫째, MB에겐 친·인척이 없다.

혹자는 혈연을 징글징글하게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가친척은 보는 것만으로 좋고, 어려울 때 내 편이 돼주는 존재다. 내가 좋아하는 사촌 형은 늘 술을 사줄 때마다 “우리는 같은 핏줄 아니냐?”며 친하게 지내자고 강조하는데, 내 사촌 형과 달리 MB에게 친·인척은 그냥 이용할 대상일 뿐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형을 도곡동 땅의 주인이라고 우기게 했고, 그것도 부족해 다스라는 기업의 바지사장으로 만들어 이용해 먹었다. 사위에겐 뇌물을 받아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시켰다. MB의 처남은 투병 중에 휠체어를 타고 검찰에 출두하는 등 이용만 당하다 저세상으로 갔다. 처남이 죽자 MB는 처남의 부인 권씨를 자기 재산을 관리하는 데 이용하기까지 하는데, 일가친척을 돕지는 못할망정 이용만 하는 MB에게 진정한 의미의 친·인척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둘째, MB에겐 측근이 없다.

“사건의 전모가 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성실히 임하겠다.” MB 집사로 불린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한 말이다. 실제로 그는 검찰에서 ‘이게 다 MB가 시킨 일’이라고 자백했단다. 이건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강조한,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안기부장을 지낸 장세동의 경우가 좀 극단적이라 해도, 측근들이 이렇게 쉽게 자백하는 건 기이한 일이다. 측근들이 끝끝내 증언을 거부한다면 MB를 포토라인에 세우는 게 가능했을까?

하지만 더 신기한 분은 “자신들의 처벌을 경감받기 위한 허위진술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여전히 자신은 죄가 없다고 우기는 MB다. 정말 자신이 관여한 바가 없다 해도 ‘다 내 탓이니 아랫것들은 놔두고 나를 처벌하라’고 하는 게 우두머리의 자존심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MB에게 측근은 없었고, 측근들 역시 주군을 잘못 정했다.

셋째, MB에겐 지지자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던 날, 삼성동 자택엔 극성 지지자들이 몰려 화제가 됐다. 박사모로 대표되는 그들은 박근혜가 돌아오는 시각은 물론이고 구속되는 날, 공판이 있는 날 등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자리를 지켰다. 언론매체와 다수 국민들은 그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박사모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반면 MB가 검찰에 출두하는 날엔 지지자라고 볼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통령을 지낸 지 오래돼서든지, 박근혜와 달리 임기를 다 마쳐서 그랬다고 볼 수도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큰 범죄로 감옥에 다녀온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따라다니는 지지자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MB의 쓸쓸한 검찰 출두는 이례적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MB님, 당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겁니까?

넷째, 융통성이 없다.

검찰에 따르면 MB는 BBK로 인해 다스가 입은 손실액 140억원을 되돌려 받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을 동원했는데, 이는 다스가 MB 것이라는 의혹을 갖게 만들었다. 돈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벌어진 치정극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과정에서 MB는 미국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삼성에 이 소송비 60억원을 대신 내게 했단다. 이 돈은 고스란히 MB의 뇌물로 변해 그의 뇌물액수가 100억원을 넘기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BBK 돈을 찾는 대신 차라리 기업들한테 140억원을 달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융통성이 있었다면 MB가 지금 이런 처지에 놓이지 않았으리라.

그밖에도 없는 게 몇 개 더 있다. 국가를 자신의 돈을 불릴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개념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고, 대북공작을 위해 써야 할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빼돌리는 행위는 ‘안보의식이 없다’에 해당될 것이다. 임기 중에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던 것으로 보아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말도 가능하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지금 MB는 ‘변호사비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그간 해먹은 재산을 생각하면 그냥 웃기려고 한 말 같은데, 그래서 이 말도 덧붙이련다.

“MB에겐 유머감각도 없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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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당구를 좋아하던, A라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우리들을 모아놓고 당구에 대해 일장 강연을 했다. 그가 했던 말 중 지금도 기억나는 대목은 다음이다.

“당구에 한번 빠지니까 모든 게 당구공으로 보이는 거 있지. 밥을 먹을 때도 밥그릇과 반찬그릇이 당구공으로 보여서, 저걸 어떻게 치면 될지 생각하고 있더라고.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있는 벽지무늬가 또 당구공으로 보여. 그럼 또 저걸 어떻게 칠까 고민하지.”

그 친구 덕분에 당구가 얼마나 중독성이 있는지 깨달은 나는 당구를 절대 치지 말자고 결심했다. 대학에 간 뒤 만난 친구들이 가끔씩 2차로 당구장을 갔지만, 난 그때 멍하니 앉아 있을지언정 절대로 당구 큐대를 잡지 않았다. 내 당구 실력이 30에 불과한 건 전적으로 그 때문인데, A와 달리 내 다른 친구들은 현실을 당구대로 착각하지 않았다. 이걸 보면 당구를 친다고 다 중독이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다 보니 좋든 싫든 북한에 관한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된다. 다들 알다시피 북한은 원래 우리와 한 나라였지만, 이념에 따라 분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소모적인 갈등을 계속하는 대신 하나로 합쳐 강력한 국가를 만들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지속적인 남북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반대로 북한은 6·25라는 비극을 일으킨 국가인 데다 천안함 사건 등 지속적인 도발을 계속하고 있으니, 그냥 남처럼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북한의 경제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그런 나라와 통일하면 우리만 손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을 생각하면 그들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주장들은 다 나름의 근거가 있기에, 자기 생각이 다를지언정 어느 정도 수긍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여기에 속한다.

문제는 북한을 너무 숭상하다 그만 이성을 잃어버린 분들이다. 우리 사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이들을 난 ‘숭북주의자’, 줄여서 ‘숭북’이라 부르련다. 당구에 빠져 밥그릇이 당구공처럼 보인 내 동창 A처럼, 숭북들은 삶의 모든 순간에서 북한을 떠올린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에 나와 있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검토해볼 수 있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곧 나라의 주인인 정치체제이며, 현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추앙받지 않는가? 지난 9년을 포함한 이 나라의 정치사에서 부족했던 것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서였지, 민주주의에 ‘자유’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자유의 가치를 들며 여기에 반대할 수는 있다. 문제가 되는 건 숭북들로, 이들은 자유가 떨어진 ‘민주주의’란 말에서 북한이 주창하는 인민민주주의를 본다. 심지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공산주의’를 떠올리기까지 하니, 북한을 숭상해도 너무 숭상하는 게 아니겠는가?

-현 정부의 기조 중 하나는 지방분권이다. 지방마다 환경이 다르니 정치도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게 타당해 보인다. 물론 여기에 반대할 수는 있다. 때에 따라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숭북들은 놀랍게도 지방분권에서 북한의 연방제를 본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북한이 낮은 수준의 연방제를 한다며 적화통일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지방분권은 연방제와 맥이 통한다.”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동계올림픽 기간에도 이들은 쉬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이란 말을 들으면 강원도에 있는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을 떠올린다. 하지만 숭북들은 평창이란 단어만 들어도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급기야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평창 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다.”

-북한 응원단이 쓰고 있는 가면이 화제가 됐다. 응원단에 따르면 그 가면은 북한에서 미남으로 통용되는 얼굴이란다. 보통 사람들은 ‘아, 북한의 미남상은 저런 얼굴이구나’ 하고 만다. 하지만 숭북들은 그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김일성을 떠올린다. “북한 최고의 미남은 김일성이다. 따라서 저 가면은 김일성 가면이다.”

그 시절 당구를 치던 내 친구들은 다 나름대로 건실한 가장이 된 반면, A의 인생은 그다지 잘 풀리지 않았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누군가 A에게 관심을 가져줬다면 그의 삶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우리는 숭북주의자들이 대책 없는 돌아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지만, 어쩌면 그들도 간절히 외부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제부터라도 북한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료할지 연구해 봐야겠다. 혹시 아는가? 숭북을 유도하는 기생충이 그들의 뇌속에 들어가기라도 한 것인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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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시작되며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반사작용의 일종. 호흡기에 있는 이물질이나 병원체를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우리 몸의 방어기전이다.” 인터넷에 나온 ‘기침’의 정의다. 누군가 기침을 하면 주위에선 “감기 걸렸느냐?”고 묻곤 한다. 감기바이러스가 호흡기에 침투한 경우 기침이 나는데, 이때는 열이 있다든지 청진상 이상소견이 동반되기 마련이라 쉽게 진단이 가능하다. 기침은 다른 질환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감기로 인한 기침은 2주를 넘기는 법이 드물어, 그 이상 기침이 계속된다면 다른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특히 8주 이상 기침이 지속되는 경우를 만성기침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의 5%가 만성기침에 시달리고 있다니 그 빈도가 결코 낮지 않다. 작년 11월 말부터 석 달째 계속되는 기침으로 고생한다는 지인은 결국 병원을 찾았고, 의사로부터 ‘후비루’라는 진단을 받았다. 비염 때문에 만들어진 콧물이 목 뒤쪽으로 흐르다 보니 목이 답답해지고, 이걸 제거하기 위해 기침을 한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만성 기관지염이랄지, 천식, 위식도역류 등도 만성기침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니, 기침이 멎지 않으면 일단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지만 기침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병이 있는 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기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일이다. 7살 때, 난 기침을 심하게 했다. 걱정이 된 어머니는 날 병원에 데리고 가셨지만,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나아지겠지 했지만 기침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어머니는 날 데리고 몇 군데의 병원을 더 찾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용하다는 병원에 찾아간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의사가 날 맞았다. 수시로 기침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의사 앞에서는 기침이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나더러 입을 벌려보라고 하더니,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의사는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그냥 습관입니다. 진짜 원인이 있다면 지금도 기침을 할 텐데, 제 앞에선 안 하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몇 달간 계속되던 내 기침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렇듯 기침을 해야 할 신체적 병변이 없는데도 기침을 계속하는 경우를 습관성 기침이라고 하는데, 이건 어린이에서 더 많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아이가 습관성 기침을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당시의 난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 고팠던 모양이다. 몸이 아프면 야단도 덜 맞고, 관심을 끌 수 있으니 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며 기침하고 있다. 권도현기자

지난 1월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하 MB)이 기자들 앞에 섰다. 민감한 질문마다 답변을 회피하거나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며 눈을 부라리던 그가 기자들을 부른 것은 사정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자신의 측근들이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마당이니, 자신에게도 곧 검찰의 칼날이 미칠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부름을 받은 기자들이 우르르 MB의 삼성동 사무실로 몰려갔다. MB의 말도 듣고, 그간 못했던 질문도 마음껏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MB는 알맹이라곤 하나도 없는, 3분간의 짧은 성명을 마친 뒤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해 버린다. 기자들은 ‘이러려면 왜 우리를 불렀냐’고 항의했지만, MB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의 표정은 자기 할 말을 다한 자의 것이었는데, 설마 그가 “지금의 검찰수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다”라는 말을 하려고 그 쇼를 벌인 것 같진 않았다. 추측건대 그 성명서의 핵심은 기침이었다. 관심을 얻고자 기침을 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는 달리, MB는 ‘내가 많이 아프니까 제발 나한테 관심 좀 갖지 말라’고 검찰에, 기자들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성명서가 부실한 것도, 질의응답을 안 받은 것도 다 이해가 된다.

지난 10여 년간, MB는 늘 건강한 모습을 보여 국민들을 기쁘게 했다. 젊은 시절 기관지확장증으로 병역면제를 받긴 했지만, 대통령 재임 시절 그의 건강이 문제된 적은 없었다. 2017년만 해도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는 기무사 내 테니스장에서 20여 차례나 테니스를 쳤다니, 그의 건강은 믿어도 될 것이다. 그런 그의 건강이 가끔씩 도마에 오르는 건 가끔씩 나오는 기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침은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가 대선후보로 나섰던 2007년, 그는 검증위원들이 자신의 병역의혹을 걸고넘어질 때 7차례나 마른기침을 해댔다. 하지만 검증위원이 대통령직이 격무인데 건강이 버틸 수 있겠느냐고 하자 그 뒤 한 번도 기침을 안했단다. 자신의 의지로 통제가 가능하단 얘기다. 최근의 기침도 마찬가지다. 그 짧은 시간 말을 하는데 기침을 그리 많이 한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텐데, 그때 말고는 그가 그렇듯 격렬히 기침을 한 적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말씀드린다. 그의 기침은 위기탈출용 기침일 뿐 건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검찰이나 국민들이 마음 약해지지 마시라고 말이다. 그리고 수사에 속도를 좀 내자. MB의 바람대로 평창 올림픽 때 전 국민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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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MB, 이명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