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391건

  1. 2019.03.26 결손민주주의와 장기 386
  2. 2019.03.26 [사설]반민특위에서 반문특위로, 나경원의 망언과 궤변
  3. 2019.03.25 [사설]김은경 전 장관 영장, 철저한 수사로 진실 규명해야
  4. 2019.03.21 [여적]슬라맛 쁘탕
  5. 2019.03.21 [사설]바른미래당 선거제 개혁 앞장서더니 이제 와 발목 잡나
  6. 2019.03.19 [양권모 칼럼]‘출신지 세탁’으로 탕평 인사, 명분과 치졸 사이
  7. 2019.03.19 [사설]비례성 강화 선거제 개편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한국당
  8. 2019.03.19 [사설]대기업까지 상속공제하는 건 과도한 특혜다
  9. 2019.03.18 선거제도 개혁이 꼭 필요한 이유
  10. 2019.03.14 [문화와 삶]나경원의 희극
  11. 2019.03.14 [사설]민간 SOC사업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정부
  12. 2019.03.13 [사설]색깔론에 비방으로 가득 찬 한국당 원내대표 연설
  13. 2019.03.12 [박래군 칼럼]탄핵 2년의 현장, 광화문광장
  14. 2019.03.12 [사설]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없애는 게 선거제 개혁인가
  15. 2019.03.11 [사설]왜 금강산, 개성공단 재개 절대 안된다는 건가
  16. 2019.03.11 [사설]탄핵 2년 ‘박근혜 석방’ 요구 또 다른 국기문란이다
  17. 2019.03.08 [편집국에서]김정은, 워싱턴 갈까
  18. 2019.03.08 [정동칼럼]아슬아슬한 중재외교
  19. 2019.03.08 [사설]세계여성의날, 여성과 남성 모두의 자유를 위하여
  20. 2019.03.08 [사설]이해충돌 갈등 현안 해결 선례 남긴 카풀·택시 대타협

최근에 나온 흥미로운 논문 두 편을 소개할까 한다. 하나는 2016년 말 ‘시민과 세계’에 실린 신진욱 중앙대 교수의 <한국에서 결손민주주의의 심화와 ‘촛불’의 시민정치>라는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달 ‘한국사회학’에 실린 이철승 서강대 교수의 <세대, 계급, 위계: 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라는 논문이다. 신진욱의 논문은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말에 이미 결손민주주의 개념을 통해 사태의 원인과 향후 전망을 발 빠르게 분석해낸 통찰력이 돋보이고, 이철승의 논문은 필자가 평소 ‘386세대의 유통기한 만료 선언’이라고 부르던 현상과 거의 정확하게 같은 문제의식을 정교화한 것이어서 반가웠다. 두 논문을 교차해서 보면 오늘날 한국 정치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준다.

“대선불복인가요?” 2013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정치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칼이다. 국가정보원과 군의 대선개입 의혹을 문제 삼으려 하면 새누리당은 대선불복 프레임으로 모든 비판을 억눌렀다.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역대 어느 대선에서도 선거사범을 문제 삼아 대선불복의 길을 걸은 일이 없다”고 했고,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선불복의 유혹은 악마가 야당에게 내미는 손길”이라고 했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것은 위헌이고, 선거법 위반이고, 국정원법 위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대선불복인가요?” 이 한마디에 변변히 힘 한 번 못 써보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신진욱의 논문이 말해주는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가 점점 더 퇴행하여 여러 결함을 가진 ‘결손민주주의’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흔히 1987년은 민주주의 원년으로 불린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87년 민주화의 핵심은 대통령직선제라는 ‘제도’를 되찾은 것이었다. 그런데 특정 제도가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민주주의를 판별한다면 민주주의는 ‘없는 것’ 혹은 ‘있는 것’이 되어버리고, 마치 컴퓨터의 알고리즘처럼 0과 1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1987년 이전에는 0(권위주의), 87년 이후에는 1(민주주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세력은 민주주의적 선거제도라는 껍데기만을 뒤집어쓴 채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모두 훼손한다. 언론장악, 민간인 사찰, 정치적 의사표현에 대한 검열과 처벌, 마침내는 선출되지 않은 비선실세에 대한 권력 위임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아있을 뿐 모두 훼손되었지만 선거체제라고 하는 바로 그 껍데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진다. “대선불복인가요?” 이 한마디에 야당이 힘을 쓸 수 없었던 이유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민주주의의 내용적 요소 중 정치적 기본권과 시민적 자유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문제의 근원인 수평적 책임성, 즉 권력의 상호견제에 있어서는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박상훈의 책 <청와대 정부>가 울림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철승은 “386세대가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에 대항하여 시민사회로부터 국가를 점유해가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386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더 내적으로 응집된 ‘세대의 권력자원’을 시민사회, 시장, 국가를 가로질러 수립”했다. 그들의 권력은 이제 시작이다. 언론 부문에서 이 현상에 일찌감치 주목해온 ‘주간경향’ 정용인 기자가 ‘장기 386’이라고 부르는 현상이기도 하다. 여러 실증자료를 통해 근거를 제시한 뒤 이철승은 ‘세대 간 형평성의 정치’를 촉구한다. 나 또한 386세대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뜨거웠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은 30년 전 일이고, 386세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던 1990년대 이후 20년에 걸쳐 보상받았다. 젊은 세대 일부의 극우화 경향이 처음 관찰되던 몇 년 전, 나는 이것이 ‘386세대의 유통기한 만료 선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고 해서 도덕적 우위와 정치적 정당성을 독점하려는 태도를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386세대의 자기절제 없이 젊은 세대의 우경화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 논문을 교차하면 한국 정치의 보이지 않는 난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386세대는 결손민주주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직선제 쟁취라는 체제변화에는 성공했지만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채우는 데에는 지지부진했던 386세대에게 남아있는 소명은 무엇이고, 그들의 아성에 들어오지 못했던 젊은 세대와 여성에게 넘겨야 할 소명은 무엇인지 구분하는 자기 절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쟁취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실천하는 민주주의’를 내면화할 수 있을 것인가. 30년 만에, 그들은 다시 한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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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했다”는 발언으로 궁지에 몰리자 뒤늦게 내놓은 해명이라는 게 가관이다. 나 원내대표는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다”라는, 귀를 의심케 하는 해괴한 해명을 내놓았다. 친일 청산의 대의를 부정하고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의를 짓밟는 자신의 발언에 시민사회와 역사학계에 이어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직접 규탄 성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자, ‘반문특위’ 궤변으로 발뺌하려는 수작이다. ‘반민특위 발언’으로 드러난 극우적 역사인식도 경악스럽지만, ‘민’을 ‘문’으로 바꾸는 말장난으로 물타기를 하려는 천박한 발상도 목불인견이다.

임우철 애국지사(101)와 독립유공자 후손 600여명은 지난 22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역사 왜곡”이라며 나 원내대표의 의원직 사퇴와 사과를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는 임 지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다.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색출해서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이 정부의 ‘반문특위’를 반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나 원내대표는 25일에도 반문특위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 화살을 돌려 자신의 뒤틀린 역사인식을 변호하려는 비겁한 회피다.

나 원내대표의 반민특위 발언은 단순 실수가 아니다. 그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해방 후 반민특위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거센 비판이 쏟아진 이튿날에도 의원총회에서 “반민특위 활동이 잘돼야 했지만, 결국 국론 분열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분명 2019년 ‘반문특위’가 아니라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언급하면서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했다. 당시 국론을 분열시킨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민족 죄과를 숨기려 방해공작으로 반민특위를 좌초시킨 친일파와 이승만 정권이다. 친일세력의 반동을 정당화하는 망발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토착왜구’라는 치욕적인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101세의 독립지사가 “반민특위의 숭고한 활동과 역사를 왜곡하고 독립운동가를 모욕했다”며 피맺힌 분노를 토하는 것이 2019년의 비루한 현실이다. 정녕 나 원내대표가 친일파를 비호하고 반민특위를 부정할 뜻이 아니었다면, 더는 호도하지 말고 발언을 사죄하고 독립유공자들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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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지난 22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장관이 재임 시 박근혜 정부에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임원 후임자들을 공모하는 과정에서 환경부가 일부 지원자에게 면접 자료를 미리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김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명된 장관으로는 최초로 구속될 위기에 몰렸다.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22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을 추려 사표 제출을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7월 31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 전 장관. 연합뉴스

지난해 말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수사관이 관련 의혹을 제기했을 때 김 전 장관과 환경부는 이를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자진 사퇴를 거부하는 인사들을 상대로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감사’ ‘거부 시 고발 조치 예정’ 등을 계획한 사실이 검찰의 압수수색 문건에서 드러났다. 김 전 장관은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 “임원 동향은 파악했지만 사퇴 압력을 넣지는 않았다”고 했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시민들이 김 전 장관과 환경부의 해명을 믿기 어렵게 된 것이 현실이다. 청와대도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가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해온 체크리스트”라고 말을 바꾼 바 있다. 최근에는 청와대가 바라는 대로 인사가 이뤄지지 않아 김 전 장관 측에서 청와대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실에 경위를 해명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인사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김 전 장관과 청와대가 어떤 상의를 했으며, 그 일이 과연 적법한지를 가리는 일이다. 여권은 공공기관 임원 인사권을 갖는 대통령이 해당 부처 장관과 인사 문제를 협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적폐라 해도 적법한 방법으로 청산해야 한다. 혹여 박근혜 정권 때처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불법적으로 배제했다면 말이 안된다.

25일 진행되는 구속적부심에서 김 전 장관이 구속될 경우 수사는 곧바로 청와대를 향하게 된다. 검찰은 조만간 신 비서관을 소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찰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해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검찰이 더 이상 살아있는 권력에 약하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청와대 역시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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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드린다. 팀 애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열린 미국 노동정책자문위원회에서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애플이 미국 내 투자를 많이 했다”며 한 말이다. 그런데 애플의 CEO는 팀 쿡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백악관 안보회의에서는 아시아국가 부탄을 ‘부톤’으로, 네팔을 ‘니플’로 잘못 불렀다. 유럽 테러를 이야기하면서 테러가 발생하지도 않은 스웨덴을 언급하기도 했다.

말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총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태평양 전쟁때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가 당시 스즈키 간타로 일본 총리가 ‘모쿠사쓰(默殺·묵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무조건 항복과 완전한 파멸 중 하나를 택하라”는 미군의 통지에 “당분간 보류한다”는 뜻으로 말한다는 것이 “무시하겠다”로 이해되면서 원폭투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호주 방문 때, 맬컴 턴불 당시 호주 총리와 루시 여사에게 “이렇게 환대해주셔서 당신과 당신의 맛있어 보이는(delicious) 부인께 감사드린다”고 영어로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프랑스어로 ‘매력적’이라는 뜻을 가진 델리시외즈(delicieuse)를 딜리셔스(delicious)로 혼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2016년 연설에서 “스스로 발전시키고(라즈비바츠)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려던 것을 “옷을 벗고(라즈디바츠) 땀 흘릴 때까지 일하라”고 잘못 전달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에게 ‘슬라맛 소르(selamat sore·안녕하세요)’라고 인도네시아어로 인사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말레이시아어 인사말 ‘슬라맛 쁘탕(Selamat petang)’을 잘못 말한 것이다. 두 나라는 전통적인 ‘앙숙’ 관계여서 모하맛 총리는 물론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불쾌했을 법하다.

청와대 측은 “현지어 인사말 작성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외교 참사’다. ‘작은 구멍에도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구를 청와대는 새겨들어야 한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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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지역구 225석, 권역별 비례 75석, 연동률 50% 적용’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혁 합의안을 마련해 정당별 추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리기 위한 절차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내에서 합의안과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대 목소리가 분출해 변수로 등장했다. 패스트트랙 상정에는 ‘전체 의석의 5분의 3’ 또는 소관 상임위인 ‘정개특위 재적의원 5분의 3’의 찬성이 필요하다. 의석 분포상 바른미래당이 당내 추인을 받지 못해 이탈할 경우 패스트트랙은 어려워진다.

바른미래당은 20일 의원총회를 열어 선거제와 패스트트랙 상정을 논의했으나 유승민 전 대표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강력 반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의총으로 넘겼다. 바른미래당 의원 29명 중 10명 안팎이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공수처법과 관련해 당안이 관철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과의 공수처법 조율도 난제지만, 선거제 합의안과 패스트트랙 자체에 반대하는 의원들 입장이 강경해 추인이 제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한국당의 반대는 충분히 예상된 것이지만, 일부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여야 4당이 어렵사리 마련한 선거제 개혁이 자칫 좌초될 위기에 처한 모양이다.

여야 4당 합의안은 정당득표율을 의석수와 정확히 일치시키는 완전 연동형과는 거리가 있지만, 현행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비해 표심의 왜곡을 줄이고 지역주의에 기반한 거대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완화하는 개혁의 취지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계층의 의사가 반영되는 의회 구성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그런 선거제 개혁 방향을 추동해온 바른미래당에서 이제 와 개혁의 발목을 잡는 ‘반동’의 기류가 대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눈앞의 이해에 집착해 ‘정치개혁의 최고’라는 선거제 개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선거제 합의안을 추인했다. 바른미래당도 단식투쟁까지 해가며 지탱해온 선거제 개혁의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는, 역사에 죄를 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한국당이 결사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실패하면 선거제 개혁은 물 건너간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선거제 개혁의 성패가 달렸다는 점을 명심하고 반대 의원들의 설득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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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치졸한 방식’이라고 꼬집었지만, 청와대가 창안한 ‘출생지 대신 출신 고교 표시’ 방식은 분명 분식 효과를 냈다. 7명의 새 장관 후보자는 출신 고교 기준으로 분류하면 서울 4명, 인천 1명, 경북 1명, 강원 1명이다. 지역 논란에서 비켜선 서울과 수도권 출신의 우위가 두드러진다. 덕분(?)에 박근혜 정부에서 전북 출신으로 호명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경기고 졸업을 앞세워 ‘서울’로 돌아왔다. 역대 정권 중 편파 인사가 가장 극심했던 박근혜 정부는 조각 당시 호남 출신 장관을 2명으로 발표했다. 선대 고향이 전북 고창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을 포함시킨 결과다. 태어나고 자란 것은 물론 전북도 정무부지사까지 지낸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금오공고를 다녀 ‘경북’ 포장이 씌워졌다. 이명박 정부 때 유인촌을 연상시킨다. ‘뼛속까지’ 서울 사람인 유인촌은 이명박 정부 조각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 내정되면서 전북으로 출신지가 바뀌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북 완주 피란지에서 태어났다는 설명을 달았다. 정권마다 탕평을 꾸미려 변화무쌍한 세탁 방법을 개발해온 셈이다. “지연 중심 탈피”(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라는 어설픈 명분을 제쳐두고, 종전의 출신지 기준으로 재분류하면 호남 4명, 부산·경남 2명, 강원 1명으로 바뀐다. ‘고교 기준’으로 지역 분포가 확 바뀐 셈이다. 놀라운 탕평 기술이다.

정권마다 고위공직 인사를 하면서 ‘고향 세탁’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탕평의 대의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인사 공약’의 앞줄에 지역 탕평을 내세우는 이유다. 분명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출신지를 중시하는 전근대적인 인사 관행의 고리를 끊어가야 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살아 출신지 자체가 모호해진 시대 변화를 감안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탕평 인사를 팽개칠 수 없다. 지나친 편중 인사가 초래하는 폐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균형발전과 사회적 탕평을 통해 지긋지긋한 지역주의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악마적인 지역감정에 불을 붙이는 인화성 높은 사안이 인사 차별 시비다.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정치 세력에 발판을 마련해 주고, 지역주의 선동의 자양분이 되기 일쑤다. 실제 사실과 유리된 ‘참여정부 호남홀대론’이 어떻게 악성으로 진화해 2016년 총선에서 작동했는지를 돌이켜보면 된다.

지역균형 인사를 계량적으로 평가하는 분석 모델이 있다. 인구 대비 차관급 이상 정무직 진출 비율을 비교분석한 연구다.(<행정논총, 제56권 3호> ‘정무직 공무원의 균형인사’) 정무직 숫자가 인구에 비해 많으면 우대지역(+), 적으면 홀대지역(-)으로 분류된다. 노무현 정부는 영남 3.93%, 호남 2.06%로 영호남이 크게 차이가 없는 우대지역으로 나타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영남 4.76%, 호남 -7.43%로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영남 5.68%, 호남 -10.09%로 편중이 극심해졌다. 특정 지역이 지나치게 ‘과소대표’되는 -10% 이하가 나온 것은 이승만 정부 때 호남(-12.42%) 이후 처음이다. 다른 지역의 역대 정부에서 -10%대를 기록한 적이 없다.

민주화 이후 어렵게 진척시켜온 지역차별과 인사편중 개선 지표를 물거품으로 만든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 탓에 영정조 시대의 화두였던 ‘탕평’이 5G 시대에도 과제가 되었다. 문 대통령도 대선 기간 수없이 탕평과 통합의 인사를 공약했다. 이런 다짐까지 했다. “장차관 인사 때마다 지역별 비율을 국민께 보고 드리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편중 인사의 유혹을 끊어 내겠다는 뜻이었을 터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 정권의 극심한 지역편중은 빠르게 전복되어 정상화되었다. 앞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 1기 내각 당시 문재인 정부는 호남 6.54%, 영남 5.33%였다.

편중 인사 유혹을 버려야 하는 것은 이제부터다.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충성도와 지지기반에 집착하는 인사 수요가 커지기 때문이다. 출신지를 ‘고교 기준’으로 바꾸고서야 ‘3·8 개각’의 탕평을 말할 수 있는 지점이 위험신호일지 모른다. 출신지를 분식한들 명분은 사라지고 세탁의 의도만 뾰족해질 뿐이다. TK(대구·경북)와 충청권 언론 등에서 나오는 뾰족한 언어들이 자극적이다. 탕평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악인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개선된 것만으로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다. “치졸하게” 출신지 세탁까지 하게 된 지금이 초심을 돌아볼 때다. “현 정부 인사에 대해 국민들이 역대 정권을 통틀어서 가장 균형인사, 탕평인사, 통합적인 인사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고 계신다. 앞으로 끝날 때까지 그런 자세로 나가겠다. 지역탕평, 국민통합 이런 인사 기조를 끝까지 지켜나갈 것을 약속 드리겠다.”(취임 100일 기자회견)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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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여야 4당 지도부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안 단일안에 합의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이들 4당은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처리하기로 하고, 당내 추인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일각에서 선거제 개편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아예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법안을 모두 막겠다고 나섰다. 시민적 요청에 따라 어렵사리 도출된 선거제 개편안이 기로에 섰다.

4당 간 합의된 선거제 개편의 핵심은 ‘지역구 225석·권역별 비례 75석 고정, 연동률 50% 적용’이다. 현재의 의원 정수 300명을 그대로 둔 채 지역구를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이는 각 정당의 득표율을 100% 연동시켜 비례대표를 뽑자는 시민들의 요구와 거리가 있다. 의원을 늘리는 데 반대하는 여론을 감안하면서도 득표율과 의석수 간 편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짜내다 궁여지책으로 낸 타협안이다. 이 개편안이 채택되면 전국 단위가 아닌 권역별로 득표율과 비례대표 의석수를 연동함으로써 그나마 사표를 줄여 소수의견을 반영할 단초는 마련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한국당은 이런 선거제 합의를 정의당 등 좌파 정당만 키워주는 정치적 야합이라며 개편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도 독재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이라면서 통과시킬 수 없다며 막아섰다. 한국당은 그동안 선거제 개혁안을 두고 당의 안조차 내놓지 않은 채 버텨왔다. 그런데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이 뜻을 모으자 뒤늦게 모든 정당 간 합의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후안무치하다. 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에 반대하는 것은 영남 등 강세지역에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뜻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시민들을 바보 취급하는 공당답지 않은 주장을 접어야 한다.

선거제 법안은 모든 정당 간 합의로 처리하는 게 원칙이다. 선거제를 다른 법안들과 연계해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반드시 선거제 개편을 이뤄내야 한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병폐는 거대 양당의 극한대결이고, 이는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에서 기인하고 있다. 한국당이 이런 시민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4당만으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게 옳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 내 반대파들도 대의와 현실을 존중하는 자세로 선거구제 개혁에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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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가업상속공제 대상과 공제액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상속·증여세법 개정논의가 진행 중이다. 가업상속공제란 중소·중견기업의 승계과정에서 상속세가 경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깎아주는 것이다. 논의되는 주요 내용은 대상기업을 현재의 연매출 3000억원 미만에서 1조2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공제한도도 5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상속세를 공제받기 위해 지켜야 할 조건의 완화도 들어있다. 정부와 여당도 가업상속공제의 완화에 긍정적이다.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가업승계를 활성화하고, 경제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제요건 완화는 자칫 과도한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7년 가업승계제도가 도입될 당시 대상은 중소기업이었고 공제한도도 1억원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대상과 공제한도가 늘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이번에 공제대상 기업을 3000억원 미만에서 1조2000억원 미만으로 완화하는 것은 대기업에까지 혜택을 주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당초 중소·중견기업에 가업승계를 돕겠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부 고액자산가와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은 조세정의에도 어긋난다. 지나친 상속세 혜택은 기업혁신을 저해하고 부의 세습만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회에는 가업상속공제와 관련해 “현재의 과세체계가 일부 기업인들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이를 줄이자는 내용의 법안도 올라와 있다.

국회와 정부는 가업승계세제의 논의에 앞서 운영실태를 파악해 보아야 한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가업상속공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이용실적이 저조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370만개 중소·중견기업 가운데 이용하고 있는 곳은 연간 60곳에 불과하다.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공제를 받으려면 피상속인의 경영기간, 가업용 자산의 유지, 정규직 노동자 수 유지 등을 충족해야 한다. 이 조건들은 현실적으로 지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먼저 현 제도의 보완작업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공제대상과 공제액을 확대하는 것은 나중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차제에 실증적인 자료 분석을 통해 가업승계세제 전반에 대한 장기적인 개선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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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을 패스트트랙으로 결정할지가 곧 정해진다.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 간에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이다. 

자유한국당은 뒤늦게 패스트트랙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국당의 최근 행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행태가 한국 정치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선거제도를 꼭 바꿔야 한다. 몇 가지 짚어보자.

첫째, 약속을 밥 먹듯이 깬다. 작년 12월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에 합의한 내용을 보면 올해 1월 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처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당은 당론조차 정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그리고 법으로 정해진 선거구 획정 시한이 다 되어서야 비례대표제 폐지와 의석수 축소라는 진정성이 전혀 없는 안을 내놓았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심상정 위원장(가운데)과 여야 간사들이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에서 선거제 개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영민 기자

둘째,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말을 수시로 바꾼다. 한국당은 합의처리를 주장하지만, 19대 국회 시절 자신들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을 때에는 ‘무조건적인 합의를 강요하는 것은 의회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법안을 밀어붙이려 해서 물의를 빚었다. 2016년에는 직권상정 요건도 안되는데 테러방지법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게 해서 통과시켰다.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일 때에만 직권상정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국회법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패스트트랙은 너무나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이다. 도저히 합의가 안될 경우에는 패스트트랙을 쓰는 게 당연하다. 그러지 않으면 정치개혁, 검찰개혁은 불가능하다.

셋째, 국민들을 기만한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는 위헌이다. 헌법 41조 3항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구를 안 정해도 위헌인 것처럼, 비례대표제를 폐지해도 위헌이다. 헌법은 선거구와 비례대표제의 존재를 전제하고, 구체적인 것은 법률로 정하라고 한 것이다. 또한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의원수 축소가 아니라 국회의원 특권 폐지인데, 그런 얘기는 쏙 빼놓았다. 국회의원 연봉 대폭 삭감, 국회의원 1명당 9명의 개인보좌진 축소, 국회의 예산 사용을 감시하는 독립기구 설치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당은 여기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넷째, 여성·청년·소수자들을 배제한다. 지금 17%에 불과한 여성의원 비율도 그나마 비례대표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여성의원들도 시작은 비례대표로 한 경우가 많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그런 경우이다. 전체 여성의원의 83.4%가 비례대표이거나 비례대표 출신이라는 것은 비례대표제가 성평등 친화적인 선거제도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국가인 덴마크는 20·30대 국회의원 비율이 41.3%인데, 대한민국은 1%에 불과하다. 2016년 총선의 경우 253개 지역구에서 당선된 20대는 없었고, 30대도 단 1명이었다. 그나마 만 39세였다.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참여를 위해서도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당의 머릿속에는 여성·청년·소수자들은 없다. 한국당은 지역구 여성할당제를 강화하겠다지만, 막상 발의한 법안을 보면 위반했을 때 제재 수단도 없다. 껍데기뿐인 법안이다. 한국당의 주장대로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면 국회는 더욱 기득권화되고, 여성·청년·소수자들은 더 배제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당의 행태를 볼수록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꼭 바꿔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토록 무책임하고 대안 제시 능력도 없으며 기득권화된 정당이 탄생한 것도 지금의 선거제도 탓이다. 국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고, 오로지 지역구만 관리하면 재선할 수 있는 선거제도,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상대방의 발목만 잡아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선거제도가 지금의 괴물 같은 기득권 정당을 낳은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온갖 갑질·비리·저질행태로 정치를 불신하게 해 놓고, 그 불신을 이용해서 선거제도 개혁을 방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국회를 불신하니, 국회의원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들의 국회 불신을 초래한 자신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해야만, 정당이 책임지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유권자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당에 책임을 묻기 쉬워진다. 만약 지금의 시기를 놓친다면, 국민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의 정치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봐야 한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이런 정당이 사라질 수 있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선거제도 개혁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과 야 3당에도 촉구한다. 작은 이익을 탐할 때가 아니다. 지금 한국당의 방해에 밀려 패스트트랙으로 가지 못하면, 그 결과는 파국뿐이다. 완벽한 합의가 어렵다면, 가능한 수준에서 합의해서 패스트트랙으로 가고 추가 협상을 해도 된다. 최소 270일, 최대 330일 후에 국회 본회의 표결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협상할 시간은 있다. 문제는 지금 시기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개혁의 기차는 지금 출발해야 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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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연설에서 대통령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비유했다. 영상자료를 보니 문제의 발언은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였다.

이 대목에서 나 원내대표는 일부러 또박또박 한 단어 한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신의 발언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이미 짐작했던 것이며 혹시라도 자신의 의도가 관철되지 못할까 봐 확실히 해두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던 것이다. 이 발언에 항의하는 의원들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돌리는 장면도 보았다.

절로 웃음이 났다.

연설의 이 대목에는 비유법 가운데 과장, 은유, 인유 등이 사용되었는데 북에 대한 태도를 문제 삼아 시비를 걸던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이제는’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마치 지금까지는 전혀 비난하지 않았는데 마침내 참을 수 없게 되었다는 식으로 과장했고, 마찬가지로 ‘낯 뜨거운 이야기’ 운운하는 부분 역시 한결같이 현 대통령을 비난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과장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과장법은 의도적인 왜곡이지만 아쉽게도 수사학 혹은 비유법에 왜곡이라는 분류항은 없다.

또한 대통령을 수석대변인과 동일시했으므로 은유법인 셈이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므로 인유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또박또박 말하는 방식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점층법을 사용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더 있지만 각설하고 짧은 문장에서 여러 비유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이 대목이 세심하게 기획되었음을 뜻한다. 예상된 반응에 비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제스처도 기획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어떤 식으로 어조를 유지해야 할지, 예상되는 반응에 어떤 제스처를 취하며 대응해야 할지, 사후에 용이하게 발뺌을 하려면 인유를 사용하는 게 나을지 등 여러모로 고심했을 노고가 눈에 보인다.

다양한 비유법을 동원한 이유는 물론 그게 거짓말임을, 밑도 끝도 없이 옹호하거나 대변한 적 없다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고골의 말이 떠올랐다. 고골의 희곡 <검찰관>은 1836년 4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특히 보수파에 큰 충격을 주면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고골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인지 혹은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러시아를 떠나 외국에 체류했고 40대 중반에 우울증, 정신분열 등으로 고통받으며 끔찍하게 죽었다. 고골은 이 작품의 창작 동기를 “러시아에 존재하던 추악한 것과 모든 종류의 불의를 한데 엮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리게 해보자”는 거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한바탕 웃음, 바로 이게 고골의 남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창작에서 동기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 한바탕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인 듯하다. 고골은 지인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한다는 것은 진리를 말할 때에만 나올 법한 진리에 가까운 어조로 자연스럽고 순진하게 거짓을 말함을 뜻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거짓말이 가지는 희극적인 모든 것이 있다.”

태연함과 순진함을 가장한 거짓말, 이미 간파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간파당할 수 없다는 듯이 진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기가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고골이 하지 않은 말을 하나 덧붙이고 싶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진실을 대면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거짓말은 홀로 솟아나는 게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하다. 나 원내대표가 대면한 적 있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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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민간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13일 열린 ‘제 10차 경제활력 대책회의’에서 19조원 규모의 민간투자사업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골자는 2020년 이후 착공이 예정됐던 12조6000억원 규모의 13개 민자사업을 연내에 착공하고, 11개 민간사업 4조9000억원 규모의 사업도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민간이 투자 가능한 사업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해 민간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뜻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을 끌어들이면서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절차를 어물쩍 넘기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정부가 연내 착공하겠다는 13개 대형사업은 환경영향평가나 주민 민원 때문에 지연돼왔다. 이런 사업들에 속도를 내다가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사업의 필요성과 부작용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11개 민간사업(4조9000억원)의 착공시기를 평균 10개월 앞당기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민자 적격성 조사’의 기준을 법 개정을 통해 완화하겠다고 했다. 민자 적격성 조사란 민자사업에 대해 사업타당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성 항목을 빼기로 했다. 부실화를 예방할 장치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정부는 시민우려를 감안해 ‘투명한 사업정보 공개’를 통해 불신을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기업 행태로 볼 때 이런 조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1월30일 (출처:경향신문DB)

정부는 지난 1월 24조원 규모의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경기부양과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들었다. 그러나 이번 사업들은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국가균형발전을 말하면서 서울·수도권의 대규모 ‘SOC 속도전’에 나서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SOC사업으로 온 나라가 공사판이 될 것 같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 ‘SOC사업으로 경기부양을 하지 않겠다’면서 관련 예산도 삭감했다. 그러나 결국 ‘삽질 경제’로 돌아서는 것 아닌가 싶다. 경제성이 검증되지 않은 SOC사업은 부실화될 공산이 크고,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음 세대에 발생 가능성이 큰 후유증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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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70여년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도 했다. 연설에선 ‘좌파정권’이란 말만 5차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석에서는 삿대질과 고성이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여야 의원들끼리 몸싸움까지 벌이는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나 원내대표는 도를 넘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위헌” “먹튀정권, 욜로정권, 막장정권”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연설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정치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원이 아니라 시민을 상대로 한 연설이다. 그러자면 그에 걸맞은 품격이 따라야 한다. 2015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연설은 상대 당으로부터도 보수의 지평을 넓혔다는 극찬을 받았다. 나 원내대표의 ‘네거티브 연설’은 건강한 보수를 기대해 온 시민들을 실망시켰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오며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주먹을 쥐고 손을 들어올리며 웃고 있다(위 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나 원내대표 연설에 항의하며 한국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아래). 연합뉴스·권호욱 선임기자

연설 중엔 ‘초당적 경제원탁회의’ ‘국론통일을 위한 7자회담’ 등 정부·여당이 경청할 만한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제안들도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에 다 묻혔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취임하며 “반대정당이 아닌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연설은 그런 다짐과는 정반대였다. 민주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윤리위 회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거꾸로 연설을 방해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처음 개원한 3월 임시국회는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당은 지난 2월 전당대회 때부터 마치 릴레이를 하듯이 저급한 색깔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아침 회의 때마다 ‘좌파정권’이란 말을 달고 산다. 아마 이날 연설도 이런 당내 극우화 기류에 최근 지지율 상승에 따른 자신감이 어우러져 나왔을 것이다. 험한 말을 골라 쓴다고 야당성이 부각되는 게 아니다. 한국당이 지난 대선·지방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한 건 케케묵은 색깔론, 막무가내식 반대로 중도층의 외면을 받았던 게 주원인으로 꼽힌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보면 수권정당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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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광화문광장 인근에 갈 때는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는 이스라엘기가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도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안된다. 또 고성능 스피커에서 나오는 연설은 듣지 말고, 깃발에 쓰인 구호는 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5·18은 북한 인민군의 폭동” “민족반역자 문재인 끌어내리자!” “박근혜 무죄 석방” “탄핵 무효”와 같은 주장과 구호는 이곳에서는 매우 점잖은 것들이다. 군인들에게 내란 선동하는 구호들도 튀어나오고, 누구누구를 찢어 죽이자는 험한 말도 난무한다. 대한민국에서 이만 한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의 경연장을 찾기 힘들 것이다.

시대를 착각하게 하는 군가들도 들린다. 군복을 입은 노인들이 넘쳐나고, 그들 중에는 박정희 흉내를 낸다고 선글라스를 낀 이들도 많다. 황교안 대표의 당선을 축하하고 벌써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게 하소서”와 같은 목사의 기도 소리도 들린다. 성적인 설교로 유명해진 정광훈 목사가 대표로 있는 한기총이 태극기부대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북·미회담이 실패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공산주의를 무찔러야 한다는 주장은 단골 메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전하는 유튜브 채널만 믿는다. 1000만 유튜버들을 조직해서 승리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만이 진실이라는 확증편향이 지배하는 게 이들의 세계다. 그러니 탄핵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며, 그것도 헌법재판소의 음모이므로 탄핵 결정 2주년 집회는 당연히 헌재 앞에서 열렸고, 헌재는 당장 사라져야 할 악마 기관이라 한다.

2년 전 헌재의 박근혜 탄핵 결정에 눈물 흘리며 승리를 자축했던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탄핵 결정 뒤에 잦아들 것이므로 무시하자고 했던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촛불항쟁의 중심지인 광화문광장 일대를 매주 주말 점령하고 있다. 2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그들은 지치지 않고 나오고 있고, 최근에는 오히려 세력이 더 강화되고 있다. 서울역, 대한문, 동아일보사, 동화면세점, 종각, 교보문고 앞 등에서 보다 극우적임을 경쟁하던 각각의 세력들은 집회 뒤에는 꼭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씩 돈 다음에 해산한다. 매주 주말 광화문 일대는 이들의 집회와 시위로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

그런 광화문광장의 초입에 세월호 천막이 있다. 세월호 참사 3개월 뒤인 2014년 7월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맨바닥에 앉아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40일간 단식을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서 격려했던 곳이다. 교황은 세월호 노란 리본을 떼라는 한국 천주교 성직자에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뒤에 몽골 텐트가 들어섰고, 분향소와 전시관, 시민들의 공간이 자리를 잡았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활동들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펼쳐지는 소중한 장소다. 2016년과 2017년의 촛불항쟁은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발화된 항쟁은 끝내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요즘 매주 주말마다 이곳을 지키는 유가족과 시민들은 태극기부대 대오에서 날아오는 온갖 악담과 모욕들을 견뎌내야 한다. 지겹다, 이제 그만해라에서 빨갱이, 종북좌파까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주장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혀를 끌끌 차면서 “죽은 애들 앞세워 돈 뜯어내는 떼쟁이”라고도 한다. 경찰이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당장 천막 쪽으로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다. 어떤 때는 태극기부대 시위 대오 중에서 쇠구슬이 날아오기도 했고, 지난해와 올해 3·1절 때는 일부 시위 대오가 난입해서 전시물을 부수고 촛불조형물을 불태웠다. 태극기부대의 공격 대상이 되어 버린 세월호 천막은 4년7개월 만인 이번 주에 철거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새롭게 단장된 기억공간이 들어선다.

주말 이곳에 나와 보면, 이런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그해 겨울 꼬박 촛불을 들고 이 광장을 지켰나 회의감이 밀려온다. 저들이 석방을 주장하는 박근혜씨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도 할 수 없었다. 청와대로 가는 길엔 몇 겹의 경찰 차벽이 들어섰고,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장착한 경찰들이 막아섰다. 촛불항쟁 덕분에 지금 광화문을 거쳐 행진해서 청와대로 가고, 그 앞에서 집회도 할 수 있게 된 것이 겨우 2년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넘실대는 촛불 바다의 감동은 가뭇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정치개혁이 지연돼 이런 정치판이 만들어졌다. 탄핵 이전에 구성된 20대 국회는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을 잡아왔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꾼 적폐세력들은 개헌, 선거법, 권력기관의 개혁법안들을 모두 막아섰다. 국회는 촛불항쟁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 책임은 한국당에만 있지 않다. 정부는 이벤트와 레토릭만 근사하게 하면서 국민들의 기대감을 높여만 놓았지 촛불정신에 부합하는 정책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책임 있는 개혁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요즘은 개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경사노위가 대표적이다. 경사노위는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해서 사회적 대화를 제기하고, 노동계의 양보를 형식적으로 완성하는 기구로 활용한다. 정해진 답에 청년, 여성, 비정규직 대표를 들러리 세우려 한다. 초기부터 다부지게 적폐청산과 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한 탓에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노동제의 효과는 사라지고 있다. 경사노위를 통해 노동권이 후퇴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니라 지금도 무권리 상태에서 신음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이다. 이들만 더 골병들게 된다.

그러니 주말 광화문광장은 정치 실패를 증명하는 뚜렷한 증거를 보여준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가짜뉴스와 혐오가 판치는 주말 광화문광장에 나와 보기를 권한다. 답은 현장에 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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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마지못해 내놓은 선거제 개편안이 실로 가관이다.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이 선거법 패스트트랙 추진을 가시화하자 지난 10일에야 자체 개편안을 내놨다. 현행 300석인 국회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는 내용이다. 내각제 개헌이 선행되지 않는 한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천명했다. 지난해 12월 여야 5당 원내대표의 선거제 개편 합의를 파기한 것은 물론 비례성을 강화하는 개혁의 대의를 허무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현행 무자비한 승자독식 선거제가 국민주권의 행사 결과를 심각히 왜곡하고, 대립적인 정치문화를 구조화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민심 그대로’ 선거제를 위해서는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 비례대표 의원 수를 확대하면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는 방향이 선거제 개혁의 뼈대가 된 배경이다. 한국당의 ‘비례대표 폐지’ 주장은 선거제 개혁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반동이자, 현행 선거제의 빈약한 비례성마저 무너뜨리는 개악이다.

지난 5개월 동안 한 번도 협상안을 내놓지 않고 버티던 한국당이 정치혐오 여론에 편승해 ‘의원정수 축소·비례대표 폐지’ 역제안을 하고 나선 속셈은 뻔해 보인다. 우선 협상안을 제시한 것을 내세워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명분을 희석시키려는 술책이다. 그리고 개혁은커녕 현행 승자독식의 선거제를 극단화하자는 ‘청개구리안’을 내놓은 건 선거제 논의 판 자체를 깨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여야 4당은 선거제 단일안을 마련해 15일까지 패스트트랙에 올리겠다고 한다. 한국당 제안이 ‘몽니’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다. ‘패스트트랙’이 최후의 합법적 수단으로 강구된 것이지만, 끝내 선거법 개정이 제1야당을 빼고 진행되는 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사태를 예까지 끌고온 것은 전적으로 한국당에 책임이 있다. 한국당은 이제라도 실행하지도 못할 “의원직 총사퇴” 운운하는 겁박을 거두고 진정성 있는 선거제안을 내놓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패스트트랙 절차가 시작되더라도 협상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조정하고 타협할 시간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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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지난 8일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을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보수세력들이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이 남북경협을 위한 제재 완화에 부정적임에도 정부가 아랑곳없이 남북경협론자를 지명해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김연철 내정자를 “ ‘남북경협’ ‘북한 퍼주기’에 매몰된 인사”라고 했다. 보수언론들은 ‘강성 햇볕론자’로 평가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자해적 수단”이라고 비판한 것도 문제 삼았다. 

보수세력들의 비판은 근시안적이다. 통일부는 분단국의 특성을 반영해 통일 업무를 추진하는 정부조직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해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만큼 때로는 국제사회와도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외교부 외에 통일부를 별도로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통일부의 수장으로 남북경협을 강조하는 전문가를 내정한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인가. 

미국 국무부 당국자가 지난 7일(현지시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제재 면제를 검토하냐는 질문에 “노(No)”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들어 보수언론들은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를 추진하는 정부·여당이 ‘분별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미국이 안된다고 하니 한국은 입을 다문 채 가만 있으라는 말로 들린다.   

금강산관광은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사업으로 북한 핵개발과 무관하다. 관광은 유엔의 대북 제재 대상도 아니고,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민의 북한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한국의 독자 제재에 유엔 제재가 추가로 겹치며 복잡하게 꼬여있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사안은 아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기업활동과 재산권 등 헌법적 권리가 3년 넘게 침해당하고 있다.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물론 국익을 위해서도 남북경협이 절실하다는 점을 보수세력들은 외면하고만 있을 것인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단계적 비핵화’론이 힘을 잃은 듯 보인다. 하지만 70년간 불신이 쌓인 북·미가 비핵화를 단번에 타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단계적 비핵화는 재추진돼야 하고, 남북경협 카드도 여전히 유효하다. 새 통일부 장관이 추진할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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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파면 선고를 받은 지 2년을 맞았다. 지난 주말과 휴일 보수단체들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이른바 태극기집회를 열고 ‘박근혜 석방’을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대리인을 맡았던 변호사는 “억울하게 희생된 박 전 대통령을 구출하고 문재인 정권의 퇴출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년 동안 주말마다 지겹게 봐왔으니 딱히 새로울 건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집회 규모가 좀 더 늘어났다는 정도다. 얼마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나자 덩달아 기대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헌재는 2년 전 “(박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행위”라며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이어 진행된 법원의 형사재판에서도 뇌물 등 거의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중형이 선고됐다. 헌법과 법률 위반에 대한 당연한 단죄일 뿐 어디에도 절차상, 내용상 문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아스팔트’ 극우 세력이 탄핵 2년이 넘도록 주말마다 서울 중심가를 휩쓸고 난장을 펼치는 모습은 그냥 한풀이로 보고 넘어가기엔 더 참기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3월 8일 (출처:경향신문DB)

그보다 심각한 건 그런 세력을 은근히 비호하고 부추기면서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보수야당의 행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구속돼 계신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의견을 감안한 조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정치적으로 때가 되면 사면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국정원 특활비·공천개입 등 3개 재판이 걸려 있다. 이 중 공천개입은 징역 2년이 확정된 상태이고, 나머지 둘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실적으로 보석도, 사면도 불가능하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검사·판사 출신이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을 계속하는 건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무책임한 행태요, 탄핵을 이끈 다수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껏 반성은커녕 범행을 부인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며 ‘옥중 정치’까지 시도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밖에서는 일부 정치인과 단체들이 이에 호응하며 사법질서를 부정하고 있다. 국정농단에 이어 또 새로운 국기문란 행위를 저지르는 꼴이다.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대법원의 신속한 단죄만이 이들의 입을 틀어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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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7일, 옛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고르비)가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서명하기 위해서였다. 옛 소련 지도자로서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레이건과의 세 번째 회담이기도 했다. INF 조약 서명은 군축과 냉전 종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라이트는 다른 데 있었다. 마지막 날 미국인으로부터 받은 환대였다. 백악관에서 차를 타고 가던 고르비는 차를 세우고 군중들에게 다가갔다. 백악관 산책으로 불리는 고르비의 돌발행동에 경호원들은 경악했지만 미국은 고르비 열풍에 사로잡혔다. 고르비 인기는 회담 닷새 뒤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증명됐다. 고르비에게 우호적 인상을 받은 미국인은 65%였다. 61%를 기록한 레이건보다 더 많았다.

1년2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1986년 10월, 두 정상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두 번째 만났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어떠한 합의는 물론 기자회견조차 없었다. 3차 회담 전망도 불투명했다. 회담 실패 원인은 스타워스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에 대한 이견이었다. 회담 동안 거친 신경전이 벌어졌다. 한 단어가 문제였다. 고르비는 연구용으로 제한할 것을 원했다. “양보할 수 없어요.”(레이건) “그것이 나의 마지막 요구조건입니다.”(고르비) “그 한마디 때문에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리려 합니까.”(레이건) “나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고르비) “이렇게 헤어지면 너무 안 좋군요. 우리는 협정을 맺을 뻔했어요.”(레이건) “나는 협정을 원했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고르비)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레이건)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고르비)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던 두 사람이 워싱턴에서 재회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복잡한 국내외 사정이 있었다. 레이건은 레이캬비크 회담 직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상원의 영향력을 잃었다. 그건 SDI 추동력 상실을 의미했다. 반면 SDI를 군축과 연계하려는 고르비의 시도를 중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85년 1차 제네바 회담 직전에 터진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레이건 행정부 도덕성에 치명타가 됐다. 레이건에게 이를 만회할 대외정책이 필요했다. 이것이 고르비의 INF 추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고르비의 사정도 비슷했다. 국내에서는 자신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반발이 컸다. 미국은 인권 문제와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압박했다. 고르비는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가택연금 해제와 아프간 철수 선언으로 두 장애물을 제거했다.

저서 &lt;정상회담&gt;에서 레이건-고르비의 회담을 다룬 케임브리지대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는 레이캬비크는 실패했지만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일대일 정상회담의 장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심하게 요구했는지, 또 얼마나 과격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레이놀즈 교수는 낙관주의자 레이건이 제네바에서의 긍정적인 인상을 믿고, 인간 고르비가 레닌주의를 극복할 것이라는 감을 잡았다고 했다. 고르비도 회담 전까지 레이건을 초강대국을 이끌기에 적절하지 않은 ‘바보 광대’라고 말했지만 레이캬비크 이후 레이건을 결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두 정상 간 환상적인 케미는 하룻밤 새 찾아온 게 아니었다. 제네바 회담 때부터 멀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오면서 만든 결과였다. 이후 레이건의 모스크바 답방, 고르비의 뉴욕 방문이 이어졌다. 그렇게 두 정상은 임기 동안 모두 다섯 차례 회담을 했다.

북·미 정상 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비핵화 협상 전망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3차 회담 개최 여부도 안갯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30여년 전 이야기는 부질없어 보일 터이다. 당시 미·소와 지금 북·미 상황은 비교 대상이 안된다. 더욱이 트럼프는 레이건이 아니고, 김정은도 고르비가 아니다. 하지만 김정은-트럼프의 두 차례 회담은 공교롭게도 고르비-레이건의 셔틀 회담 과정과 닮은꼴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이 처한 상황도 레이캬비크 이후의 레이건-고르비와 다를 바 없다.

김정은도 워싱턴에 갈까. 지금은 꿈같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행히 두 나라 모두 추후 회담 의지를 드러내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두 정상 간 신뢰와 상호존중, 문제해결 의지가 있다면 비관할 이유가 없다. 김정은의 워싱턴 방문이 실현된다면 트럼프의 평양 답방도 가능하다. 32년 전 고르비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워싱턴으로 가 군축과 냉전 종식의 초석을 닦았듯 김정은이 워싱턴으로 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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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북·미 비핵화 협상은 이른바 한국의 중재외교로 시작되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대북 특사단을 이끌고 2018년 3월5일 방북하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다. 북한이 2017년 11월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지 불과 약 3개월 후에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핵포기 의사를 확인한 셈이다. 3월8일 정의용 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바로 미국으로 출발하여 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면서 북·미 간 비핵화 정상회담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을 복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중재외교의 시작은 북한이 핵을 완성하자마자 다시 포기한다는 의사를 우리를 통하여 미국에 제의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핵무력을 완성하자마자 즉시 포기한다는, 상식적으로 볼 때 매우 이상한 제의를 우리가 미국에 전달하면서 중재외교가 시작된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에 그 제의를 전달하기 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 제의의 진의와 내용에 대해 매우 정확한 분석 및 확인을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에 속았거나, 아니면 우리가 미국을 속였거나, 그것도 아니면 매우 무성의한 중재자의 위치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의 중재를 받아들여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2018년 6월 개최되었다. 그런데 이 정상회담의 합의문은 미국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는다.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매우 추상적인 합의문이라는 비판이다.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국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역사상 최대로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아가면서 무리하게 완성한 핵무력을 불과 3개월 후에 포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제의를 믿을 수 있는지, 그 증거를 달라는 요구가 중재국인 우리에게 빗발친다. 우리가 동맹국 미국에 중재외교를 한다면, 여기서 그 증거를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지 확보하여 알려주고,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중재 능력을 의심받고, 또 동맹국으로서의 신뢰가 의심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한 우리의 노력은 너무나도 미진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 진정성을 말해준다는 동어반복적 ‘해명’이나 북한이 이제는 경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는 점, 북한이 시장화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북한 비핵화 의지의 증거로 ‘해석’하여 제시하였다. 이러한 해명이나 해석들은 사실 설득력이 없는 내용들이다. 비핵화와 관련하여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명확히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이 제시한 북한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 확인 방법은 북한의 핵목록 신고이다. 하지만 이것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타격 리스트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북한이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외의 방법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 후 어떻게 스스로의 안보를 담보할 것인지 그 구상을 담은 비전과 계획을 확인하는 일이다.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국가라면, 재래식 전력도 약하고, 동맹도 없이 강대국에 둘러싸인 국가가 그러한 안보 비전 없이 핵을 포기할 수가 없다. 당연히 그 구상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상이 있다면, 비핵화의 전체적인 로드맵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를 확인하는 작업이 있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작업을 중재외교를 자임한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직접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하였다. 지금 밝혀진 바에 따르면 북한은 그 그림이 없었거나, 그걸 논의할 생각이 없었다.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제 화살은 우리를 향한다. 미국은 우리의 중재 능력 및 의지를 의심하고, 최악의 경우 결렬의 책임을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그러한 조짐은 이미 하노이 정상회담 이전부터 보였다. 우리의 중재외교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것보다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미국에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였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과 긴밀한 정보공유를 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 증거는 회담 결과 예측 실패뿐만이 아니라 결렬 이후 수일이 지났음에도 우리 정부가 동맹국 미국으로부터 회담의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브리핑을 계속한 것에 있다.

우리가 다시 중재외교를 시작하려면 신뢰 회복부터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가 깨진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다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실패의 책임을 우리가 다 떠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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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3월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 1만5000여명이 뉴욕의 럿거스광장에 모여들었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은 10시간 노동제를 요구했다.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외쳤다. 이날의 함성을 기리는 뜻에서 3월8일이 ‘세계여성의날’로 정해졌다. 그날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성들의 연대는 공고하던 남성 기득권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 사회의 젠더 격차는 심각하다. 지난해 말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지수’에서 한국은 149개국 중 115위에 그쳤다. 성별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1위다.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3.2%에 불과하다. 출산·육아로 인한 불이익, 승진에서의 ‘유리천장’은 여전하고 여성 노동자가 많은 돌봄·가사 노동은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들불처럼 번진 미투 운동은 성차별이 야기한 폭력과 억압, 착취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거리로 나선다. 이들의 분노와 용기는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판결을 통해 권력형 성폭력에 경종을 울렸다. 서울시는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입법 측면에서의 변화는 더디다. 미투 운동 이후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대다수가 처리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이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로 OECD 최하위 수준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정치대표성 확대를 통해 법·제도적 개혁을 앞당겨야 한다.

최근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두고 ‘젠더 갈등’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치(精緻)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며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전 세대 남성들이 누리던 지배적 남성성을 향유하기 어려워진 데서 온 박탈감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배우 에마 왓슨은 2014년 유엔에서 ‘HeForShe’ 캠페인을 시작하며 연설했다. “성평등은 바로 당신(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성공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에 취약해지고 불안정해지는 것을 봤다. 남성이 지배할 필요가 없다면 여성은 지배당하지 않아도 된다. 남성과 여성 둘 다 마음놓고 감성적이거나 마음놓고 강해질 수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며, 평등과 연대를 여성의 언어로 말하는 신념이다. 111주년 세계여성의날이 여성과 남성 모두 한 걸음씩 더 자유로워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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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택시·카풀 상생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평일 오전 7~9시와 오후 6~8시 등 출퇴근 시간 카풀(승차공유)서비스를 허용하고, ‘택시 운전기사 사납금제 폐지 및 월급제 시행’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 상반기 중 출시’ 등 6개 항을 담은 합의문을 채택했다. 택시업계는 ‘생업의 공유’를 허용했고, 카풀 업계는 플랫폼 기술 제공과 ‘제한 운영’으로 한발 물러섬으로써 대화를 시작한 지 44일 만에 극적인 타결에 성공했다. 이번 대타협은 무엇보다 첨예한 이해충돌에 따른 ‘갈등’도 대화와 양보로 해결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카풀서비스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1994년에 이미 허용한 제도다. 25년이 지나서야 문제가 된 것은 카카오와 같은 ‘공룡플랫폼’ 기업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택시업계 생존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부산택시운송사업조합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카풀 플랫폼 업체가 자가용 운전자 200만명을 모집, 그중 80%가 하루 2차례만 운행해도 택시 시장의 59%는 카풀서비스가 차지한다고 한다. 개인택시 운전기사의 ‘퇴직금’이라 할 수 있는 ‘택시권리금’의 폭락도 불가피하다. 이러니 3명의 택시 운전기사가 분신까지 하면서 카풀서비스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AI)·빅데이터·자율주행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한 카풀서비스는 미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도 앞다퉈 도입·시행하고 있다.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회사 ‘우버’의 시장가치는 135조원에 달할 정도다. ‘시민 편익의 증대’라는 공유경제의 핵심 가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이다. 시민의 절반 이상이 카카오 카풀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에 택시업계가 이번에 통 큰 양보를 한 것이다.

택시·카풀 업계의 상생은 이제 출발선을 막 지났다. 큰 고비를 넘긴 만큼 택시산업을 옥죄고 있는 요금 및 차량유종제한 등 규제 완화와 근로시간에 부합하는 월급제 등이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 당정과 업계는 실무논의기구를 즉각 구성, 택시업계 정상화에 협조해야 한다. 택시업계도 불러도 오지 않는, 잡아도 가지 않는 ‘승차거부’ 등을 없애 국민들의 교통편익 증대에 앞장서야 한다. 이번 대타협을 계기로 ‘증세’ ‘복지 확대’ ‘사회안전망 강화’ ‘학습권 보장’ 등을 놓고 대립·충돌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다른 갈등도 성숙한 치유의 길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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