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388건

  1. 2019.03.06 [사설]‘5·18 망언’ 징계 유야무야 한국당, 과거로 가자는 건가
  2. 2019.03.04 [아침을 열며]태극기 세력을 믿으셔야 합니다
  3. 2019.03.04 [여적]‘빨갱이’ 유래
  4. 2019.03.04 [편집국에서]인생은 늦게 동참하는 자를 벌하리라
  5. 2019.02.28 [경향의 눈]선수 대신 심판이 ‘링’에 오르면
  6. 2019.02.28 [사설]황교안 신임 대표, ‘도로 친박당’된 한국당
  7. 2019.02.27 [사설]갈등 치유에 중점 둔 사면, 의미 있지만 폭이 적어 아쉽다
  8. 2019.02.27 [사설]‘100년 조세개혁’은커녕 용두사미로 끝난 재정특위
  9. 2019.02.26 공화국의 배신자들
  10. 2019.02.26 [양권모 칼럼]‘어대황’이라고, 기독교 근본주의 제1야당 대표의 출현
  11. 2019.02.26 [기자칼럼]극한 선언, 나는
  12. 2019.02.25 [사설]‘태블릿PC 조작설’ 지지 황교안, 탄핵 불복만 남았나
  13. 2019.02.22 [이중근 칼럼]한국당, 니들이 선관위 상임위원을 알아?
  14. 2019.02.21 [사설]문 대통령 ‘남북경협 상응조치’ 제안, 트럼프 수용해야
  15. 2019.02.21 [사설]‘박근혜 탄핵’ 부당하다는 황교안, 헌정질서 부정하나
  16. 2019.02.20 [조호연 칼럼]국민고통에 둔감한 ‘식물정당’
  17. 2019.02.20 [사설]민주당의 도 넘은 반(反)법치 행태, 집권여당 맞나
  18. 2019.02.20 [사설]극우 막말과 망언 난무한 자유한국당 전대 연설회
  19. 2019.02.19 [사설]여야, 언제까지 민생과 개혁을 내팽개칠 건가
  20. 2019.02.19 [사설]‘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엄중히 진상 밝혀야

돌아가는 꼴이 역시 ‘도로 박근혜당’답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체제가 출범했으나, 첫 시험대인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부터 뭉그적대고 있다. 황교안 대표체제 이후 처음 열린 5일 의원총회에서 이종명 의원의 제명 안건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당 윤리위에서 제명 결정이 난 이 의원에 대해서는 의총의 표결 절차가 필요하다. 이날 의총에서 이 의원의 제명 의결이 진행되지 않음으로써 전당대회 이후로 유예된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도 마냥 지연될 판이다. 황교안 지도부가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 의지가 없는 것은 물론 ‘통합’을 빌미로 징계 자체를 유야무야하려는 작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 두번째)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황 대표는 지난 4일 민주평화당 예방 당시 5·18 망언 관련자 징계를 요구받고 “과거에 붙들리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정치를 하자”고 즉답을 피했다.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옹호하고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한 5·18 망언 문제를 ‘과거’로 치부한 꼴이다. 한국당은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모독하고 희생자들을 ‘괴물집단’으로 매도한 용서받지 못할 망동에 대해 진정 어린 사과도, 걸맞은 단죄도 없이 책임을 피해 왔다. 여론에 밀려 억지춘향 격으로 5·18 망언 의원 징계를 논의한 끝에 이종명 의원은 제명하고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로 징계를 유보한 게 고작이다. 당내 선거 규정을 빌미로 망언을 묵인하고 되레 이들이 당내 경선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징계쇼에 불과했다.

황 대표는 당선 이후 “당 윤리위에서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여기에 윤리위원장마저 사퇴해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 논의는 더욱 미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 대표가 “당내 통합”을 앞세우는 걸 보면 최고위원에 선출된 김순례 의원, 전대에서 태극기부대의 전폭적 비호를 받은 김진태 의원에게 무거운 징계를 내릴 뜻도 없어 보인다. 첫 당직 인사가 ‘친박’ 일색으로 이뤄진 것으로 봐도 그렇다. 보수 재건이나 대안정당으로 거듭남을 위한 혁신 산통을 감내하기는커녕 태극기부대 눈치나 살피는 ‘도로 친박당’에 안주하려는 모습이다. 반역사적이고 자기파괴적인 5·18 망언을 징치하지 않고는 한국당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반헌법적, 반역사적 망동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정치”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그 미래와 민주주의,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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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극기 세력입니다. 탄핵의 결정적 증거였던 태블릿 PC는 조작이고 ‘무죄’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즉시 풀려나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입니다. 다들, 심지어 자유한국당에서도 ‘한 줌도 안되는 세력’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대회장 안팎에서 ‘의리남’ 김진태 의원을 열렬히 응원했고 배신자 오세훈 전 시장에게 야유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지원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신임 대표가 됐고, 김순례 의원은 5·18 망언논란에도 최고위원에 당선됐습니다. 우리 스스로 당의 주류임을 증명한 것이죠. 이제 우리 요구를 하려 합니다.

당무의 최우선은 박 전 대통령 석방에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황 대표도 ‘태블릿 PC’ 조작 가능성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고 있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선 “객관적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정치적 책임을 물어 탄핵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탄핵 원인무효’ 주장에 공감한 겁니다. 그러므로 황 대표는 전대 과정에서 던진 발언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우선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위한 전 국민적 서명운동을 진행하십시오. 대선 무효 투쟁의 병행도 고민해야 합니다. 대선 무효를 주장해온 김진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내 특위를 꾸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황 대표는 당선 후 “이제는 미래로 나아가는 일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했는데, 만약 이것이 박 전 대통령을 외면할 심산에서 나온 것이라면, 전대 때 ‘배신자’ 논란이 재연될 것이고, 태극기가 분노할 것입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2월 28일 (출처:경향신문DB)

당당하게 군사정권 후예임을 선포하십시오. 5·18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는 당내 주장이 커지고 있으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명예회복 작업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김진태·이종명 의원은 5·18의 북한군 개입설을 펴는 지만원씨에게 국회 발언 기회를 줬고, 김순례 의원은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모두 한국당의 자랑스러운 정치적 유산입니다.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고,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은 내려야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운동 이력은 한국당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김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도 “수구반동적인 집단 속에 개혁보수 상징인 김영삼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는 자체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예를 중시해온 정통 보수정당 한나라당은 아들의 절절한 요구를 거절하지는 않겠지요. 이종명 의원에 대한 제명 결정을 거둬들이고, 미뤄뒀던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는 없던 일로 해야 합니다.

보수통합 대상은 대한애국당이 돼야 합니다. 황 대표는 “(태극기 세력은) 대한민국의 지금까지 발전, 부흥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할을 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같이할 수 있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태극기를 대표해온 대한애국당은 일관되게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해왔습니다. 이런 의리 있는 당을 외면하고, 기회주의자인 바른미래당 탈당파와 통합을 시도한다면 태극기 세력은 등을 돌릴 것입니다.

당사는 태극기 세력이 모여 있는 광화문 동화면세점 인근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핵심 지지층과 내밀한 소통을 고민하자는 취지입니다. 광화문 자릿세가 비싸다면 그나마 한국당 인기가 높은 대구·경북(TK)으로 이전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촌스러운 당기도 바꿔주세요.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태극기 집회에 자주 등장했던 이스라엘기까지 섞은 창조적 당기를 고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설픈 보수개혁 딱지는 떼어내십시오. 2012년 대선 때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경제공약은 ‘재벌, 가진 자 우선’이라고 해야 합니다. 재벌이 잘돼야 경제도 잘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핵무장’ ‘멸공’ ‘간첩색출’ 등 화끈한 대북 관련 공약도 검토해보십시오. 2차 미·북 정상회담 무산을 지켜본 국민들도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한국당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태극기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고작 2%’라고 하지만, 단단한 2%가 어설픈 20%보다 낫습니다. 한 보수신문에서 “자유한국당은 역시 폐업이 답이다”라고 썼던가요. 어느 영화 대사를 인용하렵니다. “살려는 드릴게.” 우리가 한국당을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보수 언론도 문 닫으라는데, 살아남는 것만도 어디인가요. 그러니 태극기 세력을 믿으셔야 합니다. 태극기를 당내 중심으로 들이셔야 합니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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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은 ‘빨갱이’ 유래를 이렇게 풀이했다. “빨갱이는 북한의 붉은 기나 공산혁명을 상징하는 색깔 빨강 혹은 적화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빨갱이’는 항일 유격대원을 지칭하는 빨치산에서 나왔다. 당시 항일 유격대원 가운데 공산주의 신봉자들이 많았고, 거기서 이어져 한국전쟁 때 공산당 유격대원도 빨치산으로 부르게 됐다. 이 말이 나중에는 공산주의자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됐다.”(<세상을 바꾸는 언어>) 본래 당원이나 유격대원을 뜻하는 파르티잔(partisan)에서 빨치산과 빨갱이가 연유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의미의 ‘빨갱이’ 단초는 일제강점기 말 이승만의 편지에서 발견된다. 1942년 10월10일 미국 당국에 광복군 편입을 제안한 이승만의 편지는 “호놀룰루에서 얼마 전 이곳에 도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전경무에 따르면, 그의(한길수 지칭) ‘조직’은 50명이 못 되는 한국 ‘빨갱이들’ 이상은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자신과 반대되는 조직을 빨갱이로 몰아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길수는 특별히 공산주의와 연관 기록이 파악되지 않는다. 이승만의 이러한 인식이 한국 사회 ‘빨갱이’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앞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손 태극기를 들고 시민들과 함께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실제 상징 언어로 ‘빨갱이’가 대두한 것은 해방정국, 이승만의 등장부터다. ‘빨갱이’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미 군정과 친일파 반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 씌우는 주술로 쓰였다. 친일파 청산을 거론해도, 외세 배격을 주장해도 ‘빨갱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탄압받고 죽임을 당했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 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 자들이 민족분열을 시키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독립신보, 1947·9·12) 그래서 ‘이 자들’에게는 백범 김구도 빨갱이가 되었다. “이승만은 국민을 좌와 우로 나누어 비국민을 제거 대상으로 보고 각종 단체와 민주인사까지 빨갱이로 몰아서 정치보복과 학살을 자행했다”(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아마도 이런 역사적 자취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 문화’를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로 강조한 배경일 터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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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시기 동독과 서독 국민들이 경험한 ‘우리는 하나’라는 깊은 연대감은 국제적 상황이 통일에 대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통일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의 회고록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 서문의 한 부분이다. 때로 역사는 ‘희망’과 ‘낙관’의 힘으로 전진한다. 그의 ‘기억’은 격변 속에 있는 한반도 운명에도 의미심장하다.

북·미 정상의 하노이 담판은 28일 안타까움으로 막을 내렸다. ‘하노이선언’으로 명명될 공동서명식도 하지 못한 채 후일을 기약하고 두 정상은 헤어졌다. 지난해 6월12일 역사적인 싱가포르선언 이후 261일 만의 만남이었지만, 악마가 숨은 디테일은 끝내 넘어서지 못한 셈이다. 반세기 넘게 일상적 전쟁의 불안이 배회하던 한반도 운명이 변화하는 길 위에는 다시 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하노이 담판 결과만큼이나 이로 인해 닥칠 우리 사회와 정치의 모습이 우려스럽다. 북·미 회담을 앞두고 “역사적 대전환”에 대한 기대와 “핵보유 협상”이라는 폄훼가 엇갈렸던 진보·보수의 거리를 더욱 벌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단절은 ‘이념의 분단선’처럼 명료하다. 독일과 달리 우리는 반도 남쪽에서도 ‘한마음’이란 연결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당장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횡행했던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 대변인이 아닌가”(황교안 신임대표) 같은 목소리들이 기세등등해질 터다. 하지만 그 또한 답이 아님을 모두 안다. 그토록 그들이 북핵을 우려한다면 북한이 핵능력을 키워갈 동안 어떻게 ‘통일 대박’ 같은 환상에 빠져 팔짱을 끼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당 모습은 한반도 평화·안보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지층에 대한 선동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보수정치의 모습은 “김정은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이왕 김정은의 속마음을 재단할 양이면, 그에 기반해 정치노선을 정할 것이면 ‘긍정의 가정’에 기대야 한다. 그래야 출구와 목표가 보인다. 동유럽 소비에트의 몰락처럼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인생은 늦게 동참하는 자를 벌하리라.”

구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9년 10월7일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방문한 동베를린에서 남긴 말이다. 한 달여 뒤인 11월9일 베를린 장벽은 극적으로 붕괴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사에 남은 그 충고가 실은 동독 지도자들이 아니라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고 했다.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을 감안하면 그의 고백은 예언이 됐다. 바이츠제커는 회고록에 “우리는 역사를 재촉해서도 안되고 놓쳐서도 안된다. 고르바초프에 따르면 책임 있는 정치는 역사의 방향을 제때 인식하고 인도적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기록했다.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선택이 없었다면 당시 ‘둠스데이 클락(지구종말의 시계)’의 초침을 빠르게 돌리던 미·소의 극한 대립은 인류의 재앙이 됐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 책임 있는 정치는 역사의 저류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 순응하고 적극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 상황은 여러 ‘절박한 필요’들이 만나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는 이런 필요들이 계기가 돼 필연으로 이행한다. 고사(枯死)의 상황을 탈출해야 하는 북한과 다시 전쟁만은 절대 안된다는 남측의 절실함, ‘제재·긴장의 쳇바퀴’를 벗어나야 하는 미국의 이해가 만난 절체절명의 기회다. 당장은 멈칫해도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국가 운명과 관련한 책임 있는 정치의 자세가 실상 거창한 게 아니다. 정치적 이해로 국민 마음을 갈라놓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것으로 불안을 더욱 키우지 않는 것이다. 국가 운명과 정치적 이해를 나눠 선동하고 분열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무책임이다,

실상 지금 시점에서 이 길의 끝은 누구도 확신하긴 어렵다. 김정은조차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북핵의 운명은 지금 종착역을 예단하지 말고, 북한이 연 공간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방치된 10년’의 교훈에서 보듯 북한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회다.

문재인 정부 때 일이라고 그것이 문재인 정부나 그들 세력의 성과로 기록되는 게 아니다. 후세 민심은 정확히 기억할 것이다. 이 국면에서 각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마음을 모으고, 희망을 키워, 운명을 개척했는지 말이다. 국가 운명을 ‘패거리의 이해’로 바꿔치기한 임진왜란의 동서 붕당의 참혹함이 대대손손 집단기억 속에 각인돼 있듯 말이다. 이건 “오로지 분단을 유지한 상태에서 반공 하나로 연명해온 집단”이란 의심을 받는 그 정치세력에 하는 이야기다. 역사의 변두리에서 의심으로 머뭇거릴 여유가 지금 우리에겐 없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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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역할은 시대와 사회경제적 상황, 집권 정파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시장의 자율성에 맡기는 소극적인 정부(작은 정부)가 있는가 하면, 국민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부(큰 정부)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 확대를 지적하면서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런데 작은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면, 큰 정부는 ‘정부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은 공정성을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알뜰주유소가 만들어졌다. 출발은 ‘국제 원유 가격과 국내에서 팔리는 기름 가격의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원인을 정유사의 과점, 국내 주유소들의 담합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이를 바로잡겠다면서 직접 주유소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도로공사와 농협을 통해 기름을 대량으로 싸게 구매해 민간 주유소보다 낮게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알뜰주유소에는 세제지원 혜택까지 주면서 기름가격이 100원 낮은 주유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 결과는 달랐다. 민간 주유소와의 기름값 차이는 20~30원 수준에 불과하다. 2015년 국감에서는 ‘알뜰주유소의 기름값 인하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오히려 일반 주유소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다. 알뜰 주유소의 기름값은 약간 저렴하지만 민간 주유소와는 달리 부가서비스 혜택이 줄었다. 시장이 혼탁해지면서 민간 주유소와 알뜰주유소 간에 책임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결과다.

이와 유사한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제로페이’다. 제로페이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결제 시스템이다. 결제 방식은 체크카드와 같다. ‘통장잔액을 이용한 자금이체’다. 제로페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자영업자 지원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자영업자를 위한 각종 방안의 하나로 카드수수료 인하가 추진됐다.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자영업자와 소비자 사이에 카드회사뿐 아니라 카드단말기를 설치하고 영수증을 수거하는 이른바 ‘밴사’들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 단계를 생략해 소비자와 자영업 점포를 직접 잇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 제로페이다. ‘제로’라는 의미는 영세자영업자(매출 8억원 이하)에게 수수료가 없다는 뜻이다. 자영업자들은 고객이 카드로 결제할 경우 일정 규모의 수수료를 카드사에 내야 한다. 그러나 중간 단계가 사라지면서 자영업자들이 내는 비용도 없거나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신용카드보다 적고, 이용도 불편한 게 사실이다.

정부가 자영업자들을 돕겠다는 선의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이미 제로페이와 유사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이 20곳 이상 시장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제로페이처럼 자영업자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혈세 낭비 논란도 있다. 지난해 말 제로페이 시범서비스에 들어간 서울시는 대대적인 마케팅 행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는 구청별로 목표 가맹점 수를 할당하고, 한 건에 1만5000원의 유치 수당을 지급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적은 미미하다. 사업이 제대로 될지도 모르는 곳에 돈을 쏟아붓다보니 낭비라는 말이 나온다. 더구나 제로페이는 은행 전산망에 무임승차하는 형태다. 시스템 관리에 은행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은행들은 공공기관에서 요구하니 마지못해 협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공기업이 아닌 은행에 언제까지 매년 수백억원에 달할 부담을 지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연초에 “제로페이가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속속 제로페이에 동참하고 있다. 제로페이의 확산을 위해 50만원 이내에서 후불제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 물론 간편결제 시스템의 발전은 필요하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도모하고 인센티브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민간의 몫이다. 

급할수록 정도를 찾아가야 한다. 이미 민간에 플레이어가 있다면 공정한 게임이 지켜지도록 관리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플레이어로 칼자루를 쥐고 경기장에 나서겠다고 하면 시장의 규율은 누가 잡을 것인가.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선수 대신 심판이 ‘링’에 오른다면 결과는 뻔하다. 경기가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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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27일 전당대회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했다. 황 대표와 함께 당을 이끌어갈 최고위원 5명도 뽑았다. 한국당은 지난해 7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지 9개월 만에 정상체제를 갖추게 됐다. 황 대표는 앞으로 2년간 당내 계파 갈등을 해소하고 보수를 재편해 내년 총선에 대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한국당 입당 한 달여 만에 제1야당의 대표 자리를 거머쥔 황 대표를 보는 시선은 착잡하다. 황 대표는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부에서 2인자를 지낸 사람이다. 한데도 이제껏 제대로 된 사죄나 반성은 없었다. 폐족 위기에 몰렸던 친박계는 황 대표에게 줄을 서며 똘똘 뭉쳤다. 친박계의 후안무치와 이기주의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황 대표는 친박계를 대표할 가능성이 높아 ‘제2의 박근혜당’이 현실화할 공산이 커졌다. 황 대표의 취임이 친박세력 결집과 박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 주장으로 이어진다면 정치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2월 28일 (출처:경향신문DB)

한국당은 이번 전대에서 태극기세력으로 대표되는 강성보수에 사로잡혀 극우로 회귀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5·18 망언’의 당사자인 김순례 의원이 최고위원에 선출된 건 대표적인 사례다. 참으로 개탄스럽다. 전대 내내 유례를 찾기 힘든 망언과 반민주적 퇴행이 지속되면서 극우세력의 준동은 예고됐지만, 우려는 현실화됐다. 황 대표 역시 탄핵 부정에 태블릿PC 조작설까지 제기하며 극단주의 세력에 추종했다. 개표 결과 황 대표는 당원들에서 55.3%를 득표한 반면 여론조사에선 37.7%로 중도 성향의 오세훈 후보(50.2%)에게 크게 밀렸다. 극우세력에 기대는 태도가 당내 지지층에선 환호를 받았을지 몰라도 시민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는 의미다. 민심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전대 결과는 예상대로 김병준 비대위체제에서 인적 청산도, 보수 혁신도 실패한 한국당이 탄핵 2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음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황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맞서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치열한 전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답답한 노릇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야당의 합리적 견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바라는 건 ‘전투’가 아니라 비판할 때는 비판하더라도 협조할 것은 과감하게 협조하는 새로운 야당의 모습이다. 새 지도부가 당을 살리는 길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보수의 새 가치와 비전을 바탕으로 건강한 보수로 거듭 나 정부를 견제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그러자면 극단적 우경화로 치닫는 당심(黨心)보다는 합리적 민심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극우에 끌려가서는 내년 총선은 물론 수권정당의 꿈도 영영 멀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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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26일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2017년 말에 이은 두 번째 특사다. 전체 대상자 4378명 가운데 일반 형사범이 4242명으로 다수이며, 시국사건으로는 ‘7대 집회’ 관련자 107명이 포함됐다. 사면 여부를 두고 관심을 모았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특사는 민생·생계형 사범 위주였던 첫 특사에 비해 대상과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당히 ‘절제된’ 사면권 행사로 귀결됐다. 법무부는 “사회적 갈등 치유와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건을 위주로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안중근 의사 묘소에 참배한 뒤 묘비를 둘러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사드 배치, 밀양 송전탑, 제주 해군기지, 광우병 촛불집회, 세월호 관련 사건, 쌍용차 파업 등 7대 집회 관련자들이 특사 대상에 포함된 것은 지극히 온당한 조치다.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정책 집행에 따라 처벌받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면 대상자의 범위가 제한적인 것은 아쉽다. 제주군사기지범도민대책위원회 측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와 관련해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 199명에 이르는데, 사면 대상(19명)은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며 실망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한상균 전 위원장이 사면 대상에서 빠진 것도 보수진영의 반대 여론을 과도하게 의식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첫 특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공약을 지킨 점은 바람직하다. 과거 경제활성화 등의 미명으로 재벌총수 등 경제인들에게 마구잡이로 은전을 베푼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아 다행이다. 이전 정권에서 요식행위에 그쳤던 사면심사위원회가 실질적 기능을 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어린 자녀를 둔 여성 수형자 4명은 당초 사면 대상에 들어있지 않았으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검토해보자는 사면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추가로 포함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엄격하게 행사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과거 법 적용의 오류를 교정함으로써 ‘적극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측면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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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26일 ‘재정개혁 보고서’를 냈다. 미래를 위한 중장기 재정개혁 로드맵 마련을 목표로 10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하면서 낸 권고안이다. 보고서는 조세 분야의 개혁과제로 부동산 보유세 부담의 적정화, 주식양도차익 과세대상 확대, 상속세·증여세제 합리화 등을 권고했다. 예산 분야에서는 재정정보의 공개와 통합적·거시적 재정운용, 재정제도 혁신 등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로드맵은 없고 방향만을 제시한 것이 대부분이다. 100년 가는 조세·재정 개혁방안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고려하면 용두사미 같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중장기적 조세·재정 개혁의 필요성은 누누이 지적돼 왔다. 현재의 조세체계는 특정 산업이나 계층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개편되면서 형평성이 약하다. 또 낮은 조세부담률은 재정수요에 맞게 올려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잠재성장률 둔화, 복지지출 증가로 인한 수요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번 재정개혁특위에서 ‘안정적인 재원마련의 틀’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권고안이 그런 기대에 못미치는 게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조세개혁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최근 정부는 2023년까지 332조원의 재원을 들여 포용적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재원마련을 위한 장기계획은 고사하고 당장의 로드맵조차 서있지 않다. 물론 당장 몇년간은 초과세수로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조세개혁 자체가 물 건너갔다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는 안된다. 추상적인 수준의 권고안이라도 구체적인 조세개혁 로드맵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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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일이다. 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사회모델 비교연구를 위해 몇몇 나라를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의료, 연금, 복지 등을 담당하는 관료를 만났다. 프랑스는 GDP 대비 공적사회지출이 30%를 넘어서 OECD 1~2위를 다투고, 우리에 비하면 거의 세 배 가까이 된다. 문제는 프랑스의 재정적자가 30년 넘게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적사회지출 30위권 바깥의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흥청망청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재정적자가 너무 쌓이고 있는 것 아닌가요? 반면 복지지출은 과도해 보이는데?” 그가 곤혹스러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 즉각 답이 돌아왔다. “프랑스에는 사회적 최저선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동지들이 사회적 최저선 미만으로 살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그들을 위한 지출을 줄이는 건 처음부터 고려사항이 될 수 없습니다. 재정적자는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지들이라고? 처음부터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도 아닌 관료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이런 말이 나오는 배경에는 프랑스의 역사와 공유된 사회적 가치가 있다. 공화국을 함께 만들었다는 자부심 말이다.

프랑스혁명의 3대 정신으로 흔히 자유, 평등, 박애를 든다. 앞의 두 단어는 괜찮은데 ‘박애’라는 번역은 적절치 않다. ‘박애’의 ‘박’은 한자의 ‘넓을 박(博)’인데, 이렇게 되면 박애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박사’라고 할 때의 ‘박’도 같은 글자인데, 박사는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전공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요즘은 ‘우애’라는 번역도 쓰는데, ‘박애’보다는 낫지만 이것도 ‘친구를 사랑한다’는 밋밋한 뜻밖에 전달하지 못한다. ‘박애’의 원문은 프랑스어로 ‘fraternit’이고 영어로 옮기면 ‘fraternity’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동지애’ 혹은 좀 넓은 뜻으로 옮겨도 ‘형제애’가 된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절대왕정을 무너뜨렸고, 오랜 기간의 역사적 간난신고를 거치며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이루어낸다. 귀족과 성직자만 인간으로 대접받던 세상에서 모든 시민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세상으로의 전환은 세계사의 획기적인 변곡점이고, 목숨을 걸고 이 전환을 함께 만들어낸 사람들은 ‘동지’이고 ‘형제’이다. 그러니 그들을 사랑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것이 공화국이다.

마침 위에 인용한 관료가 소속된 부서의 이름은 ‘보건연대부(Ministry of Health and Solidarity)’이다. 우리로 치면 복지부에 해당하지만, 그들의 관점은 공적사회지출이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복지’가 아니라 ‘동지들의 연대’를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작명이다. ‘자유, 평등, 동지애’는 1946년 프랑스 제4공화국 헌법에 처음 명시되었고, 1958년 채택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5공화국 헌법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공화국의 핵심 가치이다.

이런 역사가 다른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헌장에도 나와 있다. 임시헌장 1조는 민주공화국, 3조는 평등, 4조는 자유를 각각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혁명의 3대 정신이 모두 담겨있는 셈이다. 마침 2월18일자 경향신문이 마련한 윤평중 교수와 김호기 교수의 대담은 이 점을 잘 상기시켜주었다. 두 학자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100년 전에 이미 제국에서 민국으로의 전환을 이루었고 민주와 공화는 유신헌법이나 5공화국 헌법도 감히 지워버리지 못한 채 유지되어 온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수구적 퇴행의 늪으로 달려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와중에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세 사람이 역사왜곡 전문가를 내세워 저지른 망언 파동이 큰 물의를 빚고 있다. 그들이 저지른 망언은 단순히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망언은 단순히 민주주의 역행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공화국, 즉 우리의 공동체에 대한 배신행위이다.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공화국이 있을 수 없었듯이,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공화국은 없다. 진보·보수가 다를 수 있고 정책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의 공동체 자체를 배신한 자는 더 이상 우리의 동지가 아니다. 알고도 정치적 이득을 위해 망언 소동을 일으켰다면 스스로의 후안무치에 부끄러워해야 하고, 몰라서 그랬다면 스스로의 무지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징계나 제명이 문제가 아니다. 공화국의 배신자들은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의 어떤 공적인 자리에도 설 수 없게 해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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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태극기부대의 포연으로 자욱하지만, ‘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탄핵’을 끝까지 반대했던 비율은 15~18% 정도다(2017년 2월 한국갤럽 여론조사). 극우, TK(대구·경북), ‘박정희-박근혜 신도’ 등의 최대 교집합으로 한국당을 죽어도 버리지 않을 콘크리트 지지층 규모다. 작금의 20%대 한국당 지지율은 이 절대 지지층에 현 정부에 실망한 합리적 보수층이 유입돼 형성됐다. 보수의 폐허 속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 득표율이 24%였다. 상승했다지만, 여전히 ‘홍준표 득표율’ 어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지지율 상승에 취할 상황도, 희망고문에 설렐 수준도 아니다. ‘중도 확장성’을 무너뜨릴 ‘탄핵 이슈’를 건드린 건 황교안 후보의 ‘실책’이 아닐 것이다. 결코 스러지지 않을 콘크리트 지지층에게 내보이는 황교안의 존재 증명이다. (합리적 보수정당이 아닌) 한국당에서 당권을 잡아 ‘큰 꿈’을 도모하려는 황교안이다. 한 번은 ‘탄핵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고백이 필요했다. ‘어대황’인 국면에서 나름 계기를 포착했을 터이다. 오세훈만큼의 ‘탄핵 역사성’ 인정을 기대하는 건 황교안을 잘못 평가한 것이다. 탄핵 부정, 실로 황교안‘다운’ 커밍아웃이다.

황교안‘다운’을 구축하고 있는 세 갈래 층위는 ‘공안검사 황교안’ ‘전도사 황교안’ ‘박근혜 황태자 황교안’이다. 각각 소위 애국보수 세력, 선거 때면 막강한 결집력을 발휘하는 보수 개신교, 태극기부대를 위시한 친박 세력에 어필하는 토양이다. 세 세력은 고스란히 한국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이룬다. ‘탄핵 총리’의 태생적 한계를 지닌 황교안이 졸지에 보수의 희망으로 부상하고, 차기 대선주자 선두에까지 오른 뒷배가 이들이다.

황교안을 보수 진영의 다른 정치인들과 구분짓는 건 단연 기독교다. 전도사인 그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50년 동안 주일 예배를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검사 시절에도 부임하는 곳마다 예배모임을 만들어 ‘검찰 복음화’ ‘지역 복음화’를 부르짖었을 정도다.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 때 종교적 편향이 이슈가 될 정도로, ‘전도사 황교안’의 언행을 보면 전형적인 보수 개신교의 멘털리티를 드러낸다. ‘장로 대통령(이명박)’을 만들어 권부로서 지위를 누렸던 보수 개신교계가 황교안의 등장에 고무되고 호응하는 것은 필연이다.

황교안과 보수 개신교의 강력한 교집합은 북한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 노선이다. 미국의 기독교 복음주의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함께 세계의 조소거리가 되었지만, 유독 한국에서 꽃을 피워 개신교의 주류가 되었다. 미국 복음주의의 사탄화 대상이 이슬람인 반면 한국의 복음주의에서는 북한 정권과 남한의 종북이다. 그래서 보수 개신교계가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유례없는 강단을 보여준 황교안을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다윗”으로 호명했을 게다. 실제 황교안에게 통합진보당 해산은 ‘신앙이 된 반공’ 소명의 실천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안 찍은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고 했던 전광훈 목사(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는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직후 주일 예배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사람 황교안 장로가 법무부 장관이 됐다. 황 장로가 한칼에 해치웠다. 황 장로가 이정희와 법정에서 싸울 때, 아침에 꼭 나한테 전화를 했다.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그러면 내가 늘 메시지를 넣었다. (중략) 통진당 해체는 하나님이 이기신 거다.”

세속의 정치를 종교적 계시로 받아들이면 위험하다. 신앙이야 자유지만, 공직과 정치를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장으로 보거나 공직 재임 중 일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관철됐다고 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교회 간증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어떠한가. “2015년 국무총리로 있을 때 가뭄이 극심했다. 함께 동역하는 분들과 기도를 시작했는데 2주 후에 비가 내렸다. 또 국정의 어려움 중 하나가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인데 생명을 살리는 법안인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이 10여년이 지나도 통과가 안돼 기도를 시작했는데 두 달 후에 통과가 된 일도 있었다.”

‘탄핵 총리’의 본색을 드러낸 황교안보다 정교일치를 내면화한 듯한 제1야당 대표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 더 무섭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공존·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는 동행이 힘들다. 근본주의에서 ‘악’은 오로지 물리쳐야 할 대상일 뿐이다. 황교안과 보수 개신교 목회자들에게 지금 최고 악은 북한 정권과 ‘주사파’ 문재인 정부이다. 원리주의적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제1야당 대표의 출현은 한국 정치를 혐오적 대립과 증오의 대결 구도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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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힘만으로 단단한 주류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영화 &lt;나, 다니엘 블레이크&gt;가 던지는 질문이다.

&lt;나, 다니엘 블레이크&gt;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일을 할 수 없게 된 다니엘이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겪는 고충을 그린 영화다. 다니엘은 질병수당 심사에서 탈락한 후 이를 따지기 위해 담당기관으로 전화를 걸어 보지만, 늘 그렇듯 ‘모든 상담원은 통화 중’이다. 1시간48분이나 기다려 가까스로 통화에 성공한 다니엘이 “요금은 어쩔 거요?”라며 호통을 치지만 돌아오는 답은 담당자에게 문의하라는 것.

이제 그는 심사 결과에 항고하거나, 아니면 실업수당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인터넷으로만 가능한 모든 절차가 마우스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그에게는 ‘구직’보다 어렵다. 그의 사정은 ‘원칙’ 앞에 무력하다.

다니엘은 결국 수치심만을 강요하는 정부의 지원을 포기하고, 저항의 표시로 고용센터 담벼락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전화의 망할 대기음도 바꿔라”라는 글을 남긴다. 마침내 항고가 받아들여지지만, 재판 당일 그는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는 영국의 허울뿐인 복지를 풍자했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우리 현실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수많은 ‘다니엘’이 있다. 지난달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서는 치매를 앓던 80대 노모와 50대 딸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이 받는 정부 지원금은 노인기초연금 25만원이 전부였다. 모녀는 서울시가 2015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자 시작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 대상에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다고 한다. 가난과 무능함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선별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가 조건 없는 기본소득 형태의 청년수당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현금 복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서울연구원과 민간연구소 랩 2050이 서울시에 건넨 제안으로 일종의 ‘정책실험’인데도 ‘예산 낭비’니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청년수당이나 경기도에서 아동수당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와 비슷하다. 기초연금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반대하는 서울 중구 ‘공로수당’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건 우리는 ‘현금 복지’에 대해 무척 엄격하다는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쟁이 이렇게 활발했던 적이 있던가를 돌아보면 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2005년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이명박 정부에서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자는 주장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적은 없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유명무실해진 종부세 등에는 이토록 관대하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복지 대상을 낙오자로 간편하게 분류하는 방식은 왜 의심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다니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은 제도의 허점을 따져 물을 때가 아닌 벽에 정부를 비방하는 낙서를 하고, 법정에서 쓰러졌을 때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 죽음 이후에야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미국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합당하지 않은 사소한 법규”(&lt;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gt;)들을 매일 어기라고 한다. 그는 독일에서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데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가가 일상을 통제하는 관행을 읽는다. 법을 어기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는 아니고, 규칙의 맹목성을 경고한 것이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라고 선언할 때, 합당하지 않은 법에 부단히 시비를 걸 때 세상에는 균열이 생긴다. 살면서 한 번은 반항해 보자.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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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단초가 됐던 최순실씨 태블릿PC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과연 탄핵이 타당한 것인지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탄핵 절차 부정에, 태블릿PC 조작에 이제 남은 건 탄핵 불복 선언뿐이다. 사실 탄핵 불복도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 경선 과정 내내 발언을 종합하면 이미 피력한 거나 다름없다.

태블릿PC 조작설은 법원 판결을 통해 여러 차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난 가짜뉴스다. 박 전 대통령 1, 2심 재판부는 일관되게 “위·변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작설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보수논객 변희재씨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선 “이제 태블릿PC 조작설은 의견의 영역이 아닌 거짓말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고검장에 법무장관까지 지낸 황 후보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시정잡배들이나 주장할 만한 조작설을 꺼내든 건 그게 당대표 선거에 득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19일 서울 중구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합동TV토론회에서 황교안 당 대표 후보자가 토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는 2016년 12월 재적의원 299명 중 234명 찬성으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의결했다. 석달 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황 후보 주장 같은 절차상 하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거니와 태블릿PC 조작 따위는 애초 쟁점도 아니었다. 황 후보는 헌재 탄핵 결정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자격으로 낸 대국민담화를 통해 “헌재 결정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려진 것이다. 우리 모두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탄핵을 부정하고 있다. 명백한 자기 부정이다. 그때의 황교안과 지금의 황교안은 다른 사람인가 시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황 후보는 23일 경선 마지막 TV토론회에선 태블릿PC 조작설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을 시인할 수도 없고, 친박 지지층의 표도 놓치지 않으려는 비겁한 회피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황 후보는 한국당 지지층에선 호감도 1위지만, 일반 시민들에게선 2위로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의 가치인 법치주의를 부정함으로써 당심(黨心)은 얻었을지 몰라도 더 많은 민심을 잃었다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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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변에서 믿기지 않는 소문이 소리 없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모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이 도로에서 비서를 하차시킨 뒤 가버렸다는 것이다. 비서의 업무수행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내린 벌이라고 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간부도 외진 도로에서 하차당했다는 말이 들렸다. 직원을 상대로 선관위의 임무를 잘 나타낸 여덟 글자 구호(엄정중립, 공정관리)를 제대로 외우는지 불시 퀴즈를 내는가 하면, 이 상임위원이 선호하는 음료의 온도를 잘못 맞췄다가 직원이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요새 같으면 ‘위원님 갑질’로 미투 운동이라도 벌어졌을 법하지만 당시 선관위는 속으로만 전전긍긍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라는 위세에 감히 맞서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도 나오게 마련이다. 하필이면 당시 중앙선관위원장이 원칙주의자 김능환 대법관이었다. 김 위원장은 사무처의 보고를 받은 뒤 조직 체계에 허점이 있음을 간파했다. 상임위원이 선관위의 결재라인에 있는 게 문제의 근원이라고 본 것이다. 선관위 사무총장 출신의 상임위원이 사무처 위에 군림한 전례 때문에 옥상옥이라는 비판도 있던 터였다. 이 상임위원은 꽤 강하게 반대했지만 김 위원장은 특유의 논리와 카리스마로 상임위원의 결재라인 배제를 관철시켰다. 내부 위임전결 규정을 개정한 것이다. 이때부터 상임위원은 선관위 사무처의 활동에 대해 보고를 받을 뿐 업무를 직접 지시할 수 없게 됐다. 선관위 직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한국당은 한 달 넘게 문재인 대통령의 조해주 상임위원 임명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서 선관위를 입맛대로 부리려고 그를 앉혔다는 게 한국당의 주장이다. 선관위 상임위원은 허수아비도 아니지만 선관위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우선 국회와 대법원이 지명한 다른 선관위원들이 그런 독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선관위 조직을 실제 지휘하는 것은 같은 장관급인 선관위 사무총장이다. 교수 시절 극우적인 칼럼으로 인사청문회에서 질타당한 문제의 상임위원도 중립성 훼손은 시도조차 못했다고 한다. 속마음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는 재임 내내 선관위의 중립성을 강조했다. 외부의 청탁에는 단호히 대응했다는 증언도 있다. 지난 10년 사이 선관위 중립성은 이 정도로 정착해 있다.

조해주 상임위원 임명에는 분명 우려할 대목이 있다. 선관위에서 조 상임위원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어부지리로 기용됐다는 설이 파다하다. 유력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검증은 통과했지만 정무수석실이 제동을 거는 바람에 그가 대타로 급부상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기용에는 함정이 있다. 퇴직했다가 최고위직으로 컴백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조 상임위원이 문재인 캠프를 위해 선거법 자문을 한다는 소문이 났을 때 선관위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사무차장(차관급)에 오르지 못하자 몹시 억울해했다고 한다. 조 상임위원처럼 절치부심 끝에 정무직으로 되돌아오는 사례가 거듭된다면 선관위의 ‘심판’ 자격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당이 진정 선관위의 공정성 훼손을 걱정했다면 이런 점에 주목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당은 줄곧 문 대통령의 행위만 비판하고 있다. 이는 선관위 상임위원이라는 직책과 달라진 실상을 모르는 엉뚱한 주장이다. 그게 아니라면 공세를 위한 공세이다. 선관위 주변에서는 한국당이 과거 자신들이 상임위원을 통해 중립성을 위반하려 했음을 자인하는 것밖에 안된다는 말이 돌고 있다. 옛날 도둑질 생각에 제발 저린 격이라는 것이다. 선관위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점에서 저의를 의심받고 있다.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면 상임위원을 통해 선관위를 조종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 선관위의 중립성을 제고하려면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상임위원이 여권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것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대신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임명하는 것도 대안이다. 실제 5공화국 이전에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상임위원을 뽑아 보냈다. 선관위 사무총장이 바로 상임위원으로 가는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 사무총장이 상임위원으로 가려고 선관위 조직을 이용해 정치권에 봉사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 한국당이 과거 선관위에 한 일은 잊은 채 중립성 운운하는 것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당은 조 상임위원 임명 철회나 자진 사퇴 주장을 접고 새로 전략을 짜야 한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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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미국의) 상응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 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둔 시점에서 한·미 정상이 북한에 제시할 보상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북·미 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한껏 높이고 있어 고무적이다.

북·미 정상회담 성공의 관건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미국이 어떤 보상책을 약속하느냐는 것이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북한은 연일 안팎으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 미국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제재 완화를 공식 언급할 정도로 자세가 유연해졌다. 미국이 할 일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고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를 통한 경제협력 방안을 내놓는 것이다. 이 점에서 대북 보상책 중 일부를 맡겠다는 문 대통령의 제안은 시의적절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철도와 도로 연결은 바로 시행할 수 있다. 남북이 합의된 절차에 따라 준비를 착착 진행해온 덕분이다. 여기에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한다면 금상첨화이다. 문제는 미국의 대북 제재이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미국의 짐을 덜면서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미국은 제재 완화를 통해 이를 대북 유인 카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남북경협은 미국의 상응조치와 무관하게 남측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남북경협은 공짜로 북한에 주는 것이 아니라 통일비용을 미리 나누어 내는 것이다. 남북경협은 침체 국면에 빠지고 있는 경제에 활로도 제공할 수 있다. 남북경협은 궁극적으로 남북의 경제적 통일에 기여하면서 완전한 통일국가로 가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보수 일각에서 벌써부터 문 대통령의 제안을 북한에 대한 퍼주기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비현실적인 목표를 앞세워 남북경협을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일이다. 아무 일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미 정상은 지난해 1차 싱가포르 회담에서 포괄적인 수준의 비핵화 합의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에는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을 만드는 단계까지 반드시 가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은 문 대통령의 제안을 대북 보상책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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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사실상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고 나섰다. 황 전 총리는 지난 19일 당대표 후보 TV토론에서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거 입증이 되지 않았다. 과연 탄핵이 타당한 것인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형사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있었다.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탄핵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는 변명을 깔았지만, 결국은 탄핵에 절차적 하자가 있어 타당하지도 않고 동의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재판에서 내세운 ‘직접 돈 수수 여부’를 이유로 탄핵의 절차성을 문제 삼는 속셈이야 모를 바 아니다. 그에게 ‘배박’의 굴레를 씌운 옥중의 ‘탄핵 대통령’을 향한 애타는 구애일 터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되새길 필요도 없이 탄핵의 사유는 ‘헌법을 위배’한 그 많은 국정농단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은 국회의 탄핵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라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촛불을 든 주권자의 심판이기도 하다. 황 전 총리의 ‘탄핵 부정’은 이러한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것이고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국정농단 시기에 법무부 장관과 총리를 했고, 탄핵 후 대통령권한대행을 수행한 황 전 총리가 탄핵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한 ‘자기 부정’이다. 당시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자격으로 낸 대국민담화를 통해 “헌재의 결정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려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국가이다. 우리 모두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황 전 총리는 그간 탄핵 찬반을 묻는 질문에 즉답 없이 ‘국민통합’을 운위하며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자가당착을 시인할 수도 없고, 친박 지지층도 거스르지 않으려는 비겁한 회피였던 셈이다.

이제 태극기부대가 한국당 전당대회 마당을 점령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급기야 탄핵을 부정하면서 본색을 드러낸 꼴이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을 위해’ 특검 연장을 거부했다고 고백했던 황 전 총리다. 태극기부대를 껴안기 위해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 부정을 서슴지 않는 그에게서 ‘국정농단의 공범’ ‘탄핵 총리’ 꼬리표가 선명해진다. 시대정신에 반하는 반동·수구가 설 자리는 없다. 황 전 총리가 가는 길은 태극기부대와 더불어 극우정당 ‘도로박근혜당’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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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고나 국가폭력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비정상적일 때가 많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과 아픔을 나누려 하기보다 오히려 돌을 던지는 식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유가족·시민과 반목했다. 유족을 노숙인에 비교하거나 이성을 잃은 집단으로 몬 것이다. 국정 책임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죄의식이나 부끄러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겉으로는 유족이 과도한 특혜를 요구하거나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를 댔다. 그보다는 전대미문의 참사 앞에서 정권의 부담을 덜기 위해 유족과 국민감정을 억누르려고 하다가 반발하자 급기야 적대감을 갖게 된 측면이 더 컸다.

누구든 정치적 이익과 배치된다고 판단되면 적대하는 행동에서 나치에 부역한 독일의 정치사상가 카를 슈미트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정치는 선악이나 시비에 구애되지 않으며 오로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슈미트의 주장은 한국당의 행보와 정확히 부합한다. 한국당은 사회악이나 부패, 부당한 자본권력과 싸운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 지지세력이거나 이념적 동지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당의 DNA에는 상식과 선의, 배려, 관용, 통합, 도덕, 성찰, 신의 등의 덕목이 들어설 자리가 좁다. 이런 특성은 5·18민주화운동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이종명·김순례 의원은 5·18을 폭동으로 몰고, 유공자들을 괴물집단으로 매도했다. 역사 부정, 헌법질서 부정 행위다. 그럼에도 한국당 지도부는 “5·18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며 망언 의원들을 감싸고 돌았다. 이번 사태가 일부의 일탈을 넘어 당 전체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한국당에 5·18은 타협 불가의 원칙 같은 존재인 셈이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5.18 긴급대응 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망언 국회의원 퇴출과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20일 밤 7시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규탄집회를 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우철훈 기자

실제로 한국당에는 5·18에 대해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광주 시민을 총칼로 짓밟은 것은 혼란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정치 행위였다는 시각이 엄존한다. 한국당의 정치적 뿌리와 법통이 전두환 신군부와 연결돼 있는 사실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니 5·18을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기려야 할 성취로 보는 시민 다수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5·18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진상조사위 출범을 방해하고 편향적 극우인사를 조사위원으로 추천하는 ‘반(反)5·18행태’가 끊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간헐적으로 한국당 내부 반발이 제기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성찰이나 체질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5·18과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한국당의 태도를 요약하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의식 결여로 표현할 수 있겠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은 세계 보편의 관습이다. 더구나 두 사건은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한 국가적 비극 아닌가. 그럼에도 세금을 지원받는 공당이 시민의 억울한 죽음과 대량 학살에 대해 반복적으로 패륜적 행각을 계속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2월 20일 (출처:경향신문DB)

한국당은 자신들의 행보가 헌법 가치에 배치된다는 점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당은 강령에서 ‘따뜻한 사회 구현’을 혁신 가치로 내세웠다. 또 시민의 인권을 최우선적 가치로 앞세우고 있다. 한국당은 이런 내부 규범을 얼마나 구현하고 있다고 보나. 한국당의 인간미 없는 정치를 곱게 봐줄 시민은 드물 터이다. ‘정치 아닌 정치질’이란 항간의 비판에 더 눈길이 간다.  

일본의 사상가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현대를 무통문명으로 정의했다.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려는 현대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 부끄러움 등에 공감하지 못하고 타인을 일방적으로 짓밟으면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무통인간이 권력을 가지면 폭력적으로 돌변해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게 되며 몰염치해서 어떤 비판에도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된다. 한국당은 자신의 작은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시민의 큰 고통에는 둔감한 ‘무통정당’ ‘식물정당’이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책걸상’ 발언에서도 이런 특성이 드러난다. 탄핵 대통령이 시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유력 당권주자를 ‘탄핵’하고, 한국당이 그 한마디에 출렁이는 것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정치가 시민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면 시민 역시 정치에 대해 예의를 다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한국당이 끝내 자정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외부에서, 시민이 나서서 바꿀 수밖에 없다. 한국당이 국가폭력과 대형 사고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했는가를 기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끊임없이 기록하고 고발해야 한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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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19일 국회에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1심 판결문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율사 출신 의원들이 주축이 된 민주당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대책 특위’는 이날 외부 전문가가 발제하는 방식으로 “(1심 재판부가) 드루킹의 신빙성 없는 진술에만 의존했다” “직접 증거가 없다”며 판결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형사소송법 대원칙을 망각한 판결”이란 주장까지 나왔다. 외부 전문가의 입을 빌렸지만, 민주당의 입장과 한가지일 것이다. ‘재판 불복’이란 말만 안 했을 뿐 사실상 재판을 부정한 것과 다를 바 없다. 3권분립이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행동이다.

이해찬 대표는 전날 “(김 지사가) 20일쯤 보석을 신청할 것”이라며 “정상적인 법원 판단이라면 도정에 차질이 없도록 결정하는 게 상식”이라고 했다. 법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보석 신청을 받아들여야 정상이고, 기각하면 비정상적·몰상식한 법원이란 말인가. 바로 이런 게 재판에 간섭하는 사법농단이다. 이러면 보석 결정이 내려지거나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다 해도 역시 신뢰받지 못하는 사법불신의 악순환만 초래할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특위가 19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김경수 지사 판결문 분석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판결에 불만이 있고 억울한 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심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2심, 3심에서 증거를 대고 법리를 다투는 것이 순리다. 그러라고 3심제가 있는 것이다. 보통 시민들은 모두 그렇게 해오고 있다. 지금 민주당처럼 법정 밖에서 판결문을 흔들고, 법관을 인신공격하고, 항소심을 겁박하는 건 법치의 파괴나 다름없다. 만약 일반 피고인 측이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똑같은 행동을 하면 그땐 뭐라 할 것인가. 여당 의원들은 김 지사 유죄 판결이 나온 날부터 ‘양승태 적폐세력의 보복판결’이라며 재판부를 매도하고 인신공격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결정과 중형선고에 반발하는 태극기부대와 하등 다를 게 없다. 시민단체도 아닌 집권당이 특정 재판 결과를 공격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 개탄스럽다.

지금 여당의 사법부 공격 행태는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정당이 진영논리나 정략적으로 접근해 판결을 폄훼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재판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집권당의 이런 대응은 사법 적폐청산의 대의를 변질시키고, 사법개혁의 동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민주당은 ‘김경수 살리기’를 통해 일부 지지층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더 많은 시민들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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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미래를 책임질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망발과 반민주의 퇴행이 난무하는 난장의 전대가 연출되고 있다. 제1야당의 전대가 태극기부대를 위시한 극우 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한 꼴이다. 지난 18일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장 역시 ‘5·18 망언’ 당사자인 김진태 의원을 지지하는 태극기부대가 판을 쳤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에게는 “빨갱이” “너네 당으로 가라”는 고함과 욕설이 빗발쳤다. ‘5·18 망언’ 사과와 징계 조치에 반발한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 극복론’을 펴는 오세훈 후보, 5·18 망언을 공개 비판한 권영진 대구시장 등에도 막말을 퍼부었다. 연설회장에서는 ‘탄핵 부역자 나가라’ ‘문재인 탄핵’ 등의 구호가 물결쳤다. 표심을 노린 당권 주자들의 부추김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갈수록 극단의 우경화 목소리가 전대를 휩쓸고 있다.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 당권 주자인 오세훈·김진태·황교안 후보가 17일 서울 금천구 호서대 벤처타워에서 개최된 유튜브 토론회에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제공

당 대표 연설회에서는 5·18 망언을 성찰하는 발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전대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는 태극기부대 눈치를 보고, 외려 당 대표 후보들은 앞다퉈 색깔론과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며 동조했다. 한국당의 퇴행적 우경화가 단순히 태극기부대에 국한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5·18 망언도 문제지만, 당 지도부의 어이없는 대처가 결과적으로 극우 목소리를 키우고, 당이 ‘태극기세력’에 포획되는 걸 자초했다. 당 밖의 국민이 아니라 당내 일부 극렬 지지세력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역사적 퇴행과 극우정치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이날 연설회에서 “저딴 게 무슨 대통령” “짐승만도 못한 종북 주사파 정권” “문재인 민족 반역자 처단” 같은 막말을 쏟아냈다. 공당의 전대 연설회에서 이런 망발과 반헌법적 발언이 나오고, 이게 환호를 받는 것이 한국당의 자화상이다. 극우의 망동을 제어하고 통제할 자정 기능, 리더십도 무너진 상태다. “일부 이상한 모습”(나경원 원내대표)이라고 치부하는 걸 보니 아예 문제의식조차 없다. 김병준 비대위체제에서 ‘박근혜 청산’도, 보수 혁신도, 인적 청산도 실패하면서 극우 세력의 준동은 예고된 결과다. ‘박근혜 옥중정치’에 휘둘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대 양상은 한국당이 태극기세력으로 대표되는 강성보수에 사로잡혀 극우로 회귀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극우에 이끌려서는 한국당은 절대 바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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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월 임시국회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한 채 지난 17일로 회기 종료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김태우 폭로’ 의혹 특별검사 도입과 손혜원 의원 부동산투기 의혹 국정조사 등을 놓고 극한 대치를 벌인 탓이다. 2월 국회도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18일 국회에서 만나 2월 임시국회 개최 등 국회 정상화 방안을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입장 차만 확인했다. 오죽하면 시민단체들이 이날 여의도에서 국회를 열라고 시위했을까. 참으로 비생산적인 국회다.

국회 공전의 폐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 통과시키기로 한 ‘유치원 3법’은 더 거론하기조차 민망하다. 택시기사들이 잇따라 분신하고 있는 카풀 허용범위 결정이나,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등 수많은 민생법안들이 국회에 쌓여 있다. 권력기구 개편을 위한 법안들도 낮잠 자고 있다. 태평성대의 국회도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를 공전시키는 일들이 이런 민생현안보다 중하다는 판단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민들의 소중한 한 표가 사표(死票)가 되지 않도록 하는 선거제도 개편도 뒷전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1월 중에 선거제도 합의안을 도출하기로 했지만 논의 한 번 제대로 못했다. 내년 선거에 대비한 선거구획정안을 다음달 15일까지 국회에 제출하려면 2월 국회에서 선거제 개편안이 의결돼야 한다. 이러다가 선거구제 개편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영업자고 기업이고 할 것 없이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정치권이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 여야는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로 팍팍한 시민들의 생활고를 덜어줘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살릴 일도 못 살리는 게 경제와 민생이다. 정치개혁 법안 처리도 신속히 처리해 나가야 한다. 내년 총선부터 비례성이 강화된 새 선거구제를 도입하려면 지금 서둘러도 쉽지 않다. 두 거대 정당이 꼼수로 현행 선거구제를 고수하다 소탐대실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한국당은 소속 의원들의 ‘5·18 망언’으로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 대여 투쟁을 이어나가봐야 손해만 볼 뿐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상시 국회’를 지론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실천해야 한다. 국회에 복귀해 민생을 챙기는 것으로 흐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민주당도 야당과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경제가 악화되는데 국회를 장기간 공전시키는 것은 여당으로서 무책임하다. 오는 27일 한국당의 새 지도부 선출을 계기 삼아 여야는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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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다시 제기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환경부 압수수색에서 감사관실 컴퓨터의 장관 보고용 폴더에 담긴 ‘산하기관 임원 조치사항’이란 제목의 문건을 찾아냈다고 한다. 해당 문건에는 감사 대상 임원 이름 뒤에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감사’ ‘거부 시 고발 조치 예정’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야당에선 “명백한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라며 “이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없다”고 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이미 지난해 말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이 제기한 바 있다. 당시 그는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사표 제출 현황’ 문건을 공개하며 “이 문건의 작성과 보고 과정에서 청와대 특별감찰반이 관여했다”고 주장했었다. 이 때문에 국회 운영위가 열리고 자유한국당이 집요하게 공세를 폈으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정황이 나오지 않아 일단락된 게 얼마 전이다. 지금까지 김은경 전 장관과 환경부는 표적 감사나 장관 보고를 줄곧 부인해왔다. 청와대도 “그런 문건을 보고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문건을 보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게 됐다. 설사 청와대는 몰랐더라도, 부처 차원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임원을 교체하는 관례를 따르지 않았을까 의심을 살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유린한 국가폭력”이라고 했다. 이어 “다음 정부는 절대 그런 못된 짓을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시민 대다수는 그렇게 믿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장차관급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문재인 정부에서 특정 인물들을 배제하기 위해 비슷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면 그 죄는 중하면 중했지, 덜하지 않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조차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제기된 의혹의 사실관계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결코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로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청와대와 환경부는 먼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인사들이 단골로 언급하는 ‘춘풍추상(春風秋霜·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한다)’이란 바로 이런 경우에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의혹이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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