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언어는 희망을 약속하고, 종교의 언어는 구원을 계시한다. 정치는 시간을 단절시키면서 ‘새것’ ‘새 희망’을 말한다. ‘좋은 옛것’과 ‘나쁜 새것’은 두 갈래의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다. 1948년 7월24일의 일이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취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대한민국도 극적으로 건국이 이뤄졌다. 이승만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을 “새로운 백성”으로 호명했다. ‘백성’은 일반 국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계급사회에서 사대부가 평민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오늘날 백성은 낯선 위계의 언어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에 등장하는 ‘나’와 ‘본인’도 마찬가지다. 권위주의 정부는 대통령과 국가를 동일시했고, 통치권자로서의 절대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2003년 3월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에서 평검사 10명과 마주 앉았다. 강금실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의 기수 파괴 인사에 반발하는 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검사들과 허심탄회하게 검찰개혁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겠다는 게 대통령의 속내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격한 언어와 감정 섞인 설전이 이어졌고 양쪽의 간극만 확인한 채 만남은 끝났다. 검사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검사 출신이 아닌, 청와대의 입김을 받는 ‘믿을 수 없는 외부 인사’들이 검찰 인사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검찰에 넘기라는 얘기였다. 노 대통령이 기대했던 검찰개혁,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어떻게 분산할 건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오가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을 향한 그..
한동훈 법무장관 딸 문제 덕분에 깊고 넓은 교육 불평등과 세밀하게 등급 매겨진 한국인 삶의 계급적 양식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작용하는 구조화된 ‘외부’의 힘은 ‘글로벌’이며 미국이다. 한국 최상층계급은 완전히 글로벌화된 경제와 문화정치의 꼭대기에서, ‘미국’과 ‘영어’를 마음껏 동원하여 지위를 얻고 기득권을 세습한다. 그 자녀들은 이중국적 취득, 영어 유치원, 국제학교, 조기유학, 미국 최상위 랭킹 대학 진학 등의 과정을 밟는다. 아이비리그의 학부, 로스쿨 혹은 메디컬스쿨 등이 단기 목표일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 드는 돈과 이용되는 사회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보통사람들은 짐작조차 어렵다. 그 바로 아래의 상층계급은 최상층을 흉내내거나 자식을 그렇게 만들려 뱁새처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마흔두번째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묘지의 정문인 ‘민주의문’으로 유가족과 함께 걸어서 입장했다. 보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이 문을 통과한 것이다. 앞서 이날 아침 윤 대통령은 KTX특별열차편으로 장관, 대통령실 참모진, 국민의힘 의원 100여명과 함께 광주에 도착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 인사들이 모두 기념식에 참석해 오월정신을 기렸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맞잡은 손을 함께 흔들거나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모처럼 마음을 하나로 모은 행사였다. 그동안 보수 대통령에게 5·18기념식 참석은 풀기 어려운 난제였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5·18정신을 국가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밝혔고, 박근혜 대통령은 20..
오래전 정부 부처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는 농담조 ‘부처 분류법’을 들은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자기 조직의 수장도 못 내는 부처가 맨 아래에 있고, 그 위로 자기네 조직의 수장 정도는 내는 부처, 그리고 그것을 넘어 남의 부처에 장까지 내는 부처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뇌리에 남은 것을 보면 이 분류법에 꽤나 공감했던 모양이다. 그 공직자는 첫번째 부류의 대표로는 교육부를, 그리고 마지막 끗발 있는 부처로는 법무부와 국방부를 꼽았다. 국방부를 예로 든 것으로 볼 때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끝난 지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던 시기인 듯싶다. 5·6공화국의 군인 출신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와 내각 요직에 군인들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군인과 연결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나..
대선이 아직 서너 달 남아 있던 지난겨울 어느 날, 서울 시내 한 식당에 네 사람이 모였다. 나야 아직 깜냥이 안 되지만, 일행 중 두 사람은 학계에서도 손에 꼽는 선거 전문가였다. 나머지 한 사람은 민주당 측의 무게감 있는 인사였다. 네 사람은 정치적 지지로 얽힌 관계는 아니지만 인간적 친분은 오래 쌓아온 사이였다. 이 정치인은 나머지 세 사람에게 다가오는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물었는데, 세 사람은 어찌 된 일인지 본격적인 전망은 안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만 했다. 두 시간 가까이 대화가 겉돌자 정치인은 “이야기들을 안 하시는 걸 보니 전망이 밝지 않은 모양이군요”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일정을 향해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나자 남은 세 사람이 각자 본인의 전망을 꺼내놓았는데, 나는 깜짝 놀랄 수밖..
대북정책은 정부 브랜드로 전임 정부를 차별화하지 않고 장점을 받아들이는 이어달리기라는 신임 통일부 장관의 청문회 발언이 흥미롭다. 새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북한주적론을 공약으로 내걸어서 대북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탓이다. 권영세 장관의 이런 입장이 대통령의 의사인지 분명하지도 않고 남북관계를 둘러싼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역시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언술을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왕에 장관이 된 그에 대한 기대를 굳이 냉소로 덧칠할 이유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어달리기론이 실행되기 위한 몇 가지 전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이어달리겠다는 의지를 전달할 신호보내기 즉 시그널링의 대상 청중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선거 기간 윤석열 후보가 내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건 우리가 지금의 상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떠한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1960년 5월 엇갈렸던 함석헌과 장준하 입장선 그건 ‘선택’ 문제가 아닌 ‘결단’ 문제였을 것이다 2022년 5월을 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세력을 지지함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한국을 어떻게 만든다는 ‘결단’의 표현이어야 지방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도 생각의 갈래를 잡지 못하는 유권자가 많다. 또 지지 정당이 있는 유권자 중에서도 확신이 없는 이들이 많다. 그 중요한 원인 하나는, ‘도대체 이번 선거의 시대적 맥락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갈피를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시대정신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어도, 우리들의 정치적 선택은 항상 지금 우리 사회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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