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언어는 희망을 약속하고, 종교의 언어는 구원을 계시한다. 정치는 시간을 단절시키면서 ‘새것’ ‘새 희망’을 말한다. ‘좋은 옛것’과 ‘나쁜 새것’은 두 갈래의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다. 1948년 7월24일의 일이다.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취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대한민국도 극적으로 건국이 이뤄졌다. 이승만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국민을 “새로운 백성”으로 호명했다. ‘백성’은 일반 국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계급사회에서 사대부가 평민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오늘날 백성은 낯선 위계의 언어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에 등장하는 ‘나’와 ‘본인’도 마찬가지다. 권위주의 정부는 대통령과 국가를 동일시했고, 통치권자로서의 절대권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한동훈 법무장관 딸 문제 덕분에 깊고 넓은 교육 불평등과 세밀하게 등급 매겨진 한국인 삶의 계급적 양식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작용하는 구조화된 ‘외부’의 힘은 ‘글로벌’이며 미국이다. 한국 최상층계급은 완전히 글로벌화된 경제와 문화정치의 꼭대기에서, ‘미국’과 ‘영어’를 마음껏 동원하여 지위를 얻고 기득권을 세습한다. 그 자녀들은 이중국적 취득, 영어 유치원, 국제학교, 조기유학, 미국 최상위 랭킹 대학 진학 등의 과정을 밟는다. 아이비리그의 학부, 로스쿨 혹은 메디컬스쿨 등이 단기 목표일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 드는 돈과 이용되는 사회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보통사람들은 짐작조차 어렵다. 그 바로 아래의 상층계급은 최상층을 흉내내거나 자식을 그렇게 만들려 뱁새처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
대북정책은 정부 브랜드로 전임 정부를 차별화하지 않고 장점을 받아들이는 이어달리기라는 신임 통일부 장관의 청문회 발언이 흥미롭다. 새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북한주적론을 공약으로 내걸어서 대북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은 탓이다. 권영세 장관의 이런 입장이 대통령의 의사인지 분명하지도 않고 남북관계를 둘러싼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 역시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언술을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왕에 장관이 된 그에 대한 기대를 굳이 냉소로 덧칠할 이유는 없다. 이런 점에서 이어달리기론이 실행되기 위한 몇 가지 전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이어달리겠다는 의지를 전달할 신호보내기 즉 시그널링의 대상 청중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선거 기간 윤석열 후보가 내건..
차별금지법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생각해둔 글감들이 있었다. 글을 준비하는 동안 다른 필자들의 글을 읽었는데, 내가 꺼내려고 했던 이야기의 대부분이 들어있었다. 글감이 자꾸 사라져 당황했지만, 그건 그만큼 우리가 겪는 일상의 차별들이 어디서나 만연하고 보편적인 형태로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이 법이 소수를 위한 법이 아니라 만인을 위해 필요한 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차별금지법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처럼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다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위험한 징후는 그런 짓을 대놓고 해도 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속내를 감추는 것은 위선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헤아리고 배려하기 위한 공존의 규칙이자 사회화의 기능이기도 하다. 형식화된 에티켓은 계급의 옷이지만..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가다듬었다는 취임사는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는 시대적 사명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인 국민은 모두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고, 자유 시민과 함께 반지성주의로 오염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책임의식을 표출하였다. 제시된 시대적 사명은 국민주권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당연한 원칙의 확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맥락을 곱씹어보면 강조점이 주어지는 가닥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자유’ 시민으로 규정한 국민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국민의 ‘민주’ 시민성이 강조되어 왔던 문화를 고려하면 냉전시대의 구호를 연상시키는 ‘자유’ 시민으로 국민을 호명하는 취지를 다시 한번 되씹어보게 한..
학습연구년을 마치고 올해 학교에 복귀한 두 선생님을 만났다. 필자도 연구년을 마치고 대학 강단에 섰다. 일 년의 공백 후 마주한 세 학교의 상황은 엔데믹을 준비하는 교육 현실의 지표일 수 있다. 다소 열악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지역의 초등학교 4학년 교실.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기초학력미달이다. 협동학습을 시도하지만 아직은 잘 안 된다. 수업을 방해하는 정서적 문제를 가진 학생도 있어 학습장애와 함께 정서장애도 대처해야 한다. 학력을 쌓기도, 사회적 관계를 맺기도 취약했던 시기를 보낸 아이들이다. 거리 두기로 단축되었던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이 이제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올해가 정말 중요하다. 부유한 지역에 위치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기초학력미달 학생은 없다. 대부분 학력과 인성의 문제가 없고,..
우리나라의 생존과 발전, 평화의 전략은 미국의 세계전략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자 동맹국인 관계로 그 영향이 때로는 직접적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 온 미국의 세계전략이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신냉전 시대로의 회귀’로 그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세계전략의 특징과 내용,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세계전략과 충돌하고 있는 중국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그리고 미·중 간 전략경쟁이 한반도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우선, 최근 미국의 세계전략의 특징과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미국은 세계 강대국 정치 판짜기에서 러시아를 봉쇄하고 고립시키고 있다. 조 ..
‘표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개 KS 마크나 세계 표준을 떠올릴 것이다. 최근에 회자된 세계 표준의 예는 2020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K방역 세계 표준화’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면서 세계 표준을 더 이상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표준을 선점하는 단계에까지 올라섰다. 이제 세계 표준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앞서 세워나가는 ‘기준’이 되었다는 의미다. KS 마크와 관련해 우리는 표준을 획일적인 규격으로 종종 오해한다. 기계나 제품의 경우 표준은 일정한 크기와 모양을 규정한 규격이 맞다. 그러나 품질이나 안전 및 환경과 관련된 표준은 규격이 아니라 최소한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한글맞춤법통일안 같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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