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시아의 에너지전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워크숍에 참가하느라 도쿄에 다녀왔다. 거리의 차들을 보니 경차가 많고 경유차는 눈에 띄지 않았다. 요즘 미세먼지 탓에 다른 나라에 가면 대기질에 민감해진다. 도쿄의 공기는 서울보다 한결 좋았다. 과거에는 나빴다가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확연히 개선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5년부터 PM10 기준 25㎍/㎥ 이하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만찬자리에서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하나같이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의 “노(No) 디젤카” 정책을 지목했다. 한·일관계나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경유차 그을음을 페트병에 넣어 다니면서 유해성을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중앙정부보다 앞서 신차에만 적용되던 배출가스 규제기준 미충족 경유차를 아예 운행하지 못하게 하면서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비용을 지원하고 대중교통 시설을 확충했다.

당시에도 경유가격이 휘발유가격보다 낮았지만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차가 제작·시판되는 시기와 맞물려 연료비 절감을 위해 굳이 경유차를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의 휘발유가격 대 경유가격은 100 대 84로 100 대 86인 우리보다 약간 더 낮다. 게다가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경유 승용차를 만들지 않아 국산차를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들이 외제차인 경유차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강력한 정책과 기술 발전, 시민 인식과 소비자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지금의 우린 어떨까? 한국에서도 경유차는 도시 미세먼지의 주요 원천이다. 2015년 기준 수도권 미세먼지 발생원의 22%는 경유차로 비중이 가장 높다. 게다가 경유차 미세먼지는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이동하는 생활공간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높고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의 경우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 우려가 심각한데도 2018년 12월 말 현재 국내 경유차 등록대수는 993만대로 전체 차량 2320만대 가운데 42.8%였다. 역대 최고치다. 1년 만에 무려 35만대가 늘었다. 경유차 중 화물차 비중은 33.8%인 데 비해 승용차가 58.1%에 달한다. 연료로서 경유 제조단가가 높음에도 휘발유보다 상대가격을 낮춘 건 경유차가 대부분인 화물차 물류비를 낮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승용차, 특히 SUV 차량 비중이 더 높아져 버렸다. 화물차의 경우, 경유 이외 대안이 별로 없다. 소형 화물차는 LPG 차량이 시판되고 있고 전기차도 일부 있지만 중대형 화물차를 대체하기 위해선 기술발전을 얼마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승용차는 굳이 경유차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휘발유차가 있고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선택할 수 있다. 대중교통이란 대안도 있다. 2018년 이런 친환경차는 46만대, 총차량의 2.0%로 전년 대비 12만대가 늘었을 뿐이다.

15일부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약칭 미세먼지법)”이 시행에 들어간다. 같은 법 10조에 따라 미세먼지특별위원회가 이날 자로 출범한다. 정부가 미세먼지 배출량 통계의 신뢰를 높이면서 다양한 정책을 집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동시에 시민인식도 함께 가야 한다. 경유차를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다. 내가 모는 경유차가 시민 건강을 해친다면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엇보다 경유의 상대가격을 조정해야겠지만 그 이전에도 취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있다.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과 도보를, 자가용을 몰아야 할 상황이라면 작은 친환경차를 선택할 수 있다. 미세먼지 해결은 시민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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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부담 많은 명절이 시작되는 연휴에 방영해놓고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공포체험을 하게 한 <SKY캐슬>의 마지막 회를 보면서 나는 드디어 중학생 엄마가 되었다. 드라마 한 편으로 앞으로의 현실을 속단하는 것도 경솔하고, 이제 겨우 중학생이 되는 아이를 두고 입시전쟁의 서막을 연 것 같은 오두방정을 떠는 건 더더욱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설레는 만큼 두렵고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직 입학하지도 않은 학교의 졸업생 학부모들에게 전해들은 좋은 사례에 기대를 품었다가 뒤따라 나오는 불합리한 사례를 듣고 겪기도 전에 성토했다가 이 나라의 교육제도를 어찌할 것인가 크게 반문했다 작게 흔들렸다 우왕좌왕하면서 마음을 잡아보려 애쓰던 와중에 정작 엉뚱하게 교복을 구입하러 가서 마음이 상했다.

12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교복 매장에서 초당고등학교 신입생 원동준군(17)이 새 교복을 입은 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살피고 있다. 용인시 제공

학교에서 정한 지정업체의 교복은 확실히 다른 업체보다는 저렴했으나 옷감의 소재도 딱 그 정도로 저렴해 보였다. 8만원이나 주고 산 교복 재킷은 원단이 부직포였다. 빨아 입어야 하니 여벌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블라우스도 한 장에 3만원이었다. 섬유로 인한 아토피가 있는 아이라 몸에 닿는 옷만은 따로 구매하고 싶었지만 가정통신문에 적혀 있는 ‘교복지도’라는 문구 때문에 할 수 없이 두 벌이나 샀다. 속에 입는 블라우스 정도는 반드시 지정된 옷을 입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학교에 문의해보고 싶었지만 입학하기도 전에 교복을 가지고 ‘유난을 떠는’ 학부모가 된다며 주위에서 말렸다.

사이즈를 맞춰 보느라 30분 남짓 입고 있던 걸로도 아이의 목덜미는 이미 상처 난 것처럼 벌겋게 됐다. 정해진 공구 기간이 짧고, 그 기간에 가야 입학 전에 맞는 사이즈의 교복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해서 기간에 맞춰서 갔는데도 사이즈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맞는 사이즈를 주문하려면 입학 이후에나 교복을 받아볼 수 있으니 이월상품이나 더 큰 사이즈를 사라 했다. 그런데 사실 교복은 대부분 한번 사서 3년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맞는 사이즈라는 개념 자체가 큰 사이즈를 의미한다. 심지어 나는 이번에 교복 치마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도 새로 옷을 구입하지 않고 입을 수 있도록 허리 상단 부분이 두 겹의 치마를 겹쳐놓은 것처럼 디자인되어 있었다. 지퍼도 안과 밖 각각 두 개였다. 추가 구입으로 인한 가계 소비의 불편을 학생들이 몸으로 고스란히 감당하는 상황이랄까. 이런 상황이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른 업체를 찾아간 학부모에게서도, 다른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에게서도 비슷한 불평을 들었다. 대체 이런 교복을 왜, 무슨 이유로 반드시 입어야 하는 걸까.

몇 년 전 몇 달 정도 미국 공립학교를 경험할 일이 있었는데, 그 지역의 (사립도 아닌) 공립학교가 모두 교복을 입었다. 우리가 입히는 양복 스타일도 아니고, 학교 마크가 달린 교복도 아니었다. 흔히 폴로셔츠라고 말하는 셔츠에 바지 또는 치마를 입으면 됐다. 학교마다 색깔만 달리했는데, 그마저도 한 학교가 대략 서너가지, 많게는 대여섯가지 색을 지정해서 입었고, 저렴한 대량생산 업체인 스파 브랜드에 가면 쉽게 살 수 있었다. 학교 밖에서 사복으로 입기에도 적당한 복장이었다. 체육복이 따로 없었는데, 따로 있지 않아도 될 만큼 활동성이 보장된 옷들이었다. 딱 그 정도의 제한만으로도 보수적인 어른들이 강조하는 단정함이 있었고, 딱 그 정도의 선택과 다양함으로도 아이들이 제 개성을 살릴 수 있었다. 한번 사서 3년을 입기 위해 굳이 크게 살 필요도 없고, 누가 규정한지 모르는 학생다움을 위해 불편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다. 매주 금요일은 규정과 무관하게 사복을 입을 수 있는 날이었는데, 그날에도 원래의 교복을 입고 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교복을 한 번도 입지 않은 세대여서일까. 교복의 장점도 모르고, 향수도 없는 나로서는 지금의 교복제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반드시 교복을 입어야만 한다면 저 정도의 융통성은 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어른 대접도 하지 않으면서 어른들이 입는 기성복을 흉내 낸 옷이나 입혀놓고, 지도와 단속이라니, 그게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접하는 교육 현장의 첫 모습이라니, 입학도 하기 전에 아찔하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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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SKY캐슬>이 주목한 입시 학생부종합전형이 주는 부담은 그야말로 종합적이다. 최대 4종류의 시험, 수많은 학교활동, 자소서, 면접…,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학종이 초래한 교육 윤리의 타락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작은 위선에서 심각한 거짓까지…,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종 주창자들은 어떤 이유로 학종을 옹호하는 것일까? 가장 자주 접하는 그들의 주장 3개를 살펴보자.

첫째, 학종이 강북이나 지방의 평범한 인문계고에 유리하다는 주장. 과연 그럴까? 현존 입시 중 평범한 일반고에 유리하다고 할 만한 전형은 사실상 학생부교과전형(교과전형) 하나뿐이다. 그 정도가 다른 전형에 비해 현저히 크다. 할당제 입시를 제외한다면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혹자는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지균) 같은 예외적 사례를 들어 반박하고 싶을 수 있겠다. 하지만 서울대 지균은 학종으로 보기 어려운 입시다. 서울대 지균의 본질은 학종이 아닌 할당제에 있다. 그리고 지균은 학교에 할당된 두 장의 추천티켓을 대부분 내신 1·2등(또는 문과 1등, 이과 1등)이 갖는다는 점에서 교과전형 성격이 강하다. 서울대는 왜 교과전형 성격의 할당제 입시를 굳이 학종으로 분류할까? 주류 학종인 일반전형이 평범한 일반고에 현저히 불리한 입시란 사실을 물타기 하려는 속셈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 김서형, 염정아가 출연한 JTBC 드라마 'SKY캐슬'의 한 장면. 화면캡쳐

그런데 평범한 일반고에 유리해야만 바람직한 입시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상위권 대학이 그런 입시를 다소 확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수능전형과 논술전형에서 내신 비중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현재로선 교과전형의 확대가 가장 확실하다.

둘째, 학종을 확대해야 객관식 시험과 암기식 공부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 정말 그럴까? 극복은커녕 오히려 더 크게 조장할 수도 있다. 학종의 핵심요소인 학교시험(내신)은 대부분 철저한 객관식 시험이다. 그 폐해를 줄이려 도입된 서술형 문제조차도 실제로는 객관식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서술형 문제가 암기식 공부를 더 심하게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만 탓할 일이 아니다. 현 학교내신제도의 필연적 귀결이다. 객관식 시험과 암기 위주 공부를 정말로 극복하고 싶다면 논술전형의 대폭 확대를 주장해야 마땅하다.

셋째, 수능의 문제가 심각하니까 학종이 정당하다는 주장. 즉 수능의 대항마로 학종을 내세우는 주장.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다. 그 수능이 바로 학종의 구성요소 중 하나다. 또 그들이 말하는 수능의 문제는 대부분 학종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학생을 냉혹하게 줄 세울 수 있냐고? 어떻게 1점 차이로 당락을 결정할 수 있냐고? 문제의식엔 공감하지만 그것은 수능뿐만 아니라 학종과 그 밖의 다른 입시 모두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수능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학종은 수능의 장점 하나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입시 운영의 원칙으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바로 공정성이다. 대다수 국민은 수능을 가장 공정한 입시라 생각한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한 바 있다.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학종은 단점의 화려함에 비해 장점이 너무 빈약하다. 교과전형만큼 일반고에 유리하지 못하고, 논술전형만큼 객관식 시험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능전형만큼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학종은 이도 저도 아닌 입시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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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싸(인사이더)’라고 한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팬들을 몰고 다니며, 거액 연봉을 받는 스포츠 스타도 ‘인싸’라면 ‘인싸’일 것이다. 그러나 ‘인싸’가 주류와 동의어는 아니다. 주류에 진입하려면 인기 외에 다른 조건들도 충족돼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피부색이다. 콜린 캐퍼닉 사건은 검은 피부의 ‘인싸’가 주류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삶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이었던 캐퍼닉은 2016년 경찰이 유색인종을 폭력 진압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었다. 국가 연주 시 기립 자세를 규범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캐퍼닉의 행동은 스포츠계 안팎에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지지자도 많았지만 비판도 들끓었다. 전·현직 군인들은 ‘군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캐퍼닉에겐 애국심이 없다고 욕설을 섞어 비난한 게 결정타였다. 캐퍼닉은 2017년 초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했지만 NFL 32개 구단 중 어느 팀도 캐퍼닉과 계약하지 않았다.

캐퍼닉의 이름이 최근 미국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NFL 슈퍼볼이 하필이면 흑인 민권운동의 요람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것이 계기였다. 캐퍼닉 사건의 찜찜한 기억을 털어내지 못한 NFL은 작정하고 인종 문제를 슈퍼볼 전면에 내세웠다. 캐퍼닉 퇴출에 성난 팬들을 달래면서, 캐퍼닉을 싫어하는 팬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동시에, 캐퍼닉 사건으로 NFL에 입혀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NFL은 경기 개시를 알리는 ‘동전 던지기’를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딸 버니스 킹에게 맡겼다. 민권운동의 거목 앤드루 영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중계 주관방송사 CBS는 NFL 커미셔너 로저 구델이 민권운동의 거점이던 에버니저 침례교회를 방문한 영상을 내보냈다.

국가는 애틀랜타 출신의 흑인 가수 글래디스 나이트가 불렀다. 2016년 나이트는 캐퍼닉의 행동을 비난하던 쪽이었다. 나이트가 국가를 부를 때 경기장 상공에선 미 공군 선더버드의 축하 비행이 있었다. 경기 개시 후 타임아웃 때는 경기를 관전하던 명예훈장 수훈 예비역들이 전광판을 통해 소개됐다. 인종 문제와 애국 코드를 기이하게 뒤섞은 행사였다. NFL은 ‘흑인은 존중하지만 비애국자를 퇴출한 건 정당했다’고 항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행사로 NFL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적어도 캐퍼닉 지지자들에겐 감동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변호사 캣 캘빈은 트위터에 “왜 버니스 킹과 존 루이스, 앤드루 영이 NFL을 엄호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선수들도 감흥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일부 선수들은 슈퍼볼 우승이 결정되기 무섭게 “백악관의 우승 축하 행사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시즌 우승팀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일부 선수들도 백악관 방문을 거부했고 자존심 상한 트럼프 대통령이 알아서 행사를 취소했다.

‘인싸’가 반드시 주류는 아닌 것처럼 주류가 ‘인싸’라는 법도 없다. 부동산 재벌 출신의 백인 대통령 트럼프는 주류 인생을 살았지만 비주류들에게 막말을 일삼고 국제사회의 합의를 휴지조각 취급하다 국내외에서 외면당하는 ‘아싸(아웃사이더)’의 길을 가고 있다. 눈 밝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한, 아무리 주류라 해도 기득권을 믿고 함부로 망언한다면 인생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모독한 국회위원들 앞에 놓여 있는 미래도 꽃잎 흩날리는 ‘인싸’의 길은 아닐 공산이 크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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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재수 없게 땀띠와 감기몸살이 함께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허리께에서 시작된 수포와 통증이 온몸으로 번지고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며칠 아침을 울면서 출근했고, 퇴근해서는 울면서 잠들었다. 그제야 내가 대상포진에 걸렸음을 알았다. 병원에서는 한 달을 먹고 자기만 하며 쉬라 권고했지만 회사에 병가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 일터에 출근한 지 한 달 만의 일이었고, 나는 인사고과에 따라 3개월마다 재계약되는 파견직 노동자였다.

제때 쉬지 못해 후유증으로 신경통이 남았다. 자칫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 싶은 불안함에 아파도 출근을 선택해야만 했던 것의 대가였다. 이런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개인에게 아픔을 감내하는 것만이 아닌 죽음을 감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군과 컨베이어벨트를 청소하던 김용균씨가 죽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던 위험한 작업장은 동시에 정규직 전환이란 희망의 갈림길이었다.

겪어보니 알겠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일하고 덜 쉰다. 계약 연장은 물론 그 끝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을 참는다. 일이 연장되거나 업무의 강도가 높아져도 이를 거절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이 없으니 결국 해야만 한다. 4대 보험 적용이 되지 않거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참아야만 한다.

특수노동으로 분류돼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노동자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지 않으면 쉴 수 있어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통제할 수 없어 자신을 끝까지 소모시킨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니 노동법의 도움을 받기 어렵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용 형태가 불안정할수록, 노동 환경의 질이 낮을수록,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아프다. 김승섭, 박주영, 이나영, 윤서현, 최보경이 2016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고용 형태와 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37편의 연구 중 35편에서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이 유의미하게 나빠짐’이 드러났다. 이들은 음주나 흡연, 사망과 사고 등으로 몸이 아프거나 간접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수면장애나 만성질환, 우울증 등을 더 쉽게 겪었다.

나아가 이러한 노동 양극화는 건강 양극화로 이어진다. 임금은 적은데 생활비는 많이 들면 대개 식비부터 줄여 영양불균형이 오기 쉽다.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 병원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려워지거나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등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위험의 외주화’와 같이 안전 관리가 소홀해진 작업 환경에 노출되면 사망률이나 사고율이 상승한다.

건강이란 실존이자 존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과도 같기에 마냥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 직접고용·정규직화와 동시에 드러나지 않은 노동과 새로운 노동에 대한 인정이 시급하다. 4대 보험의 문턱을 낮추고 혹은 작업 환경의 관리·감독을 강화해 국가 차원의 다면적 제도 마련과 개선이 필요하다.

고용 형태가 우리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면, 삶의 형태가 우리 그림자를 결정하지 않겠는가. 먼저 떠난 그들의 그림자를 뒤따르는 우리를 보아라. 어떤 노동과 어떤 삶을 좇아가고 있는 것 같은가. 이제는 그만 아프고,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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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포비아’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5세대 이동통신(5G)장비를 사용하는 데 따른 ‘정보유출 공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회 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무선통신망에 중국 통신장비의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곧 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미 연방정부는 지난해 중국통신기업의 기술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행정명령을 통해 민간기업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미국에서 화웨이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비상조치다.

매슈 휘터커 미국 법무장관 직무대행(왼쪽에서 두번째)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법무부 청사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 키어스천 닐슨 국토안보장관,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 국장(왼쪽부터)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멍완저우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미국은 중국이 차세대 통신기술인 5G 네트워크에 장비를 공급한 뒤 이를 통해 기밀을 수집하거나 통신 방해를 자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 기업이 미국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어 화웨이를 제재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국, 독일, 일본 등 동맹국들의 모바일, 인터넷 업체들이 화웨이가 생산한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등의 업체들로부터 긍정적인 회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할 처지가 아니다. 국내 통신업체 중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 5G 통신망을 구축했다. 국내 인구의 절반이 몰린 수도권에 화웨이 장비가 설치됐다. LG유플러스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정보유출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무선 장비는 유선 장비에 비해 보안이 허술하다. 또 개발자가 몰래 정보를 유출하는 뒷문을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완벽한 보안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화웨이 제재를 놓고 논란도 있다. 차세대 핵심기술인 5G의 패권을 중국에 넘기지 않으려고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아무 증거 없이 추정된 범죄를 정치화하는 데 국가 안보를 활용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선 안될 말이다. 아직 화웨이가 만든 5G 장비의 보안이 확실하다고 믿을 수 없는 상태다. LG는 물론 정부도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꾀할 수 있도록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보유출을 막고 사이버 안보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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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잘 들어가셨나요? 전 지금 들어왔어요. 오후 8:42

성희: 어머, 제가 너무 늦게 봤네요. 네, 저도 잘 들어왔어요. 고마워요. 전 빈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이렇게 다시 연락을 주셨네요. 오후 10:12

진만: 아니에요! 늦긴요!! 전 또 무슨 일 있으신 줄 알고... 제가 더 고맙죠. 이렇게 답신도 해주시고... 전 정말 오늘 성희씨 만나고 와서 너무 좋았거든요. 진짜 무슨 인연을 만난 거 같고... 오후 10:13

성희: 저도요. 저도 아까 거리에서 처음 진만씨 봤을 때... 그때 퇴근하던 길이었죠? 오후 10:18

진만: 네, 알바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마을버스 기다리고 있을 때 성희씨가 말을 건 거예요. 오후 10:18

성희: 네, 제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진만씨 처음 봤을 때 어떤 인연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용기를 내 말을 건 거예요. 진만씨, 우리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도 되는 거죠? 저는 진만씨를 또 만나고 싶은데... 오후 10:24

진만: 그럼요, 그럼요! 저도 꼭 그러고 싶습니다! 오후 10:24

성희: 그럼 우리 돌아오는 수요일 오늘 봤던 그 카페에서 또 볼까요? 오후 10:42

진만: 네, 네! 제가 거기 일찍 나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후 10:4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 다섯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접니다! 오후 10:11

성희: 네, 진만씨. 제가 또 늦게 봤네요. 핸폰이 진동이라서... 오후 10:32

진만: 아니에요. 오늘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전 성희씨가 안 나올까 봐 걱정했거든요. 제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쑥스럽지만 전 성희씨를 만나고 있는 시간이 정말 좋습니다! 오후 10:34

성희: 네, 저도 진만씨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진만씨, 아까 우리 카페에서 우연히 미자 언니 만났잖아요. 저도 그 언니를 한 6개월 만에 처음 만나는 거였는데, 그 언니가 진짜 실력 있는 상담사거든요. 아까 우리 심리 테스트 해준 것도 그게 정말 받기 어려운 거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운이 좋은 거였죠. 진만씨랑 헤어지고 그 언니랑 같이 지하철 탔는데, 언니가 진만씨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라고, 기회가 되면 또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언니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정말 진만씨가 대단한 사람인가 봐요. 미자 언니가 진만씨에게 연락드려도 되죠? 오후 10:57

진만: 그럼요! 성희씨 선배님인데. 제가 그럴 만한 사람은 아닐 텐데... 좀 얼떨떨하네요. 아무튼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죠. 다음 주에 제가 성희씨와 선배님께 밥을 사도록 하겠습니다! 오후 10:59

 

3. 열하루째 날 - 카톡

미자: 진만씨, 김미자입니다. 오후 8:09

진만: 아, 네. 오후 8:12

미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진만씨는 영적으로 독특한 사람이에요. 굉장히 열려 있고, 또 한편 연약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이 진만씨에게 위기의 시간일 수 있어요. 혹시 요즘 쉽게 지치거나 몸이 무겁지 않으신가요? 오후 8:14

진만: 네... 그거야 제가 상하차 작업도 해서 늘... 오후 8:16

미자: 그거 보세요. 그게 진만씨의 영이 흐려지고 자꾸 장애물이 생겨서 그런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 진만씨의 영을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오후 8:18

진만: 근데, 성희씨는 정말 괜찮은가요? 오늘 나오지도 못하고 연락도 안 돼서 걱정이 되거든요. 감기가 맞는 거죠? 오후 8:20

미자: 네, 감기가 맞아요. 성희도 저한테 간곡히 부탁을 하더라고요. 진만씨를 제대로 설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자기도 열심히 기도해 보겠다고 했고요. 오후 8:23

진만: 네, 고마운 말이네요. 오후 8:28

미자: 진만씨,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성희 통해서 바로 만날 날짜 잡을 테니까, 우리 꼭 얼굴 보고 얘기해요. 제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이게 진짜 진만씨만의 특이한 경우거든요. 오후 8:29

 

4. 열여섯째 날 - 카톡

진만: 네, 좋아요. 제사가 되었든 기도가 되었든 다 해드릴게요. 한데, 성희씨... 성희씨는 어떻게 된 거죠? 성희씨를 만나서 얘기를 듣고 난 후, 제가 말씀대로 다 해드릴게요. 오후 9:11

미자: 진만씨, 지금 성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제가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성희의 영과 진만씨의 영은 서로 상극이에요. 제례를 올려서 그 원흉을 없애야 서로 만날 수 있는 거라니까요! 성희도 제 말 듣고 일부러 진만씨 만나는 거 참고 있는 거예요. 이 뿌리부터 완벽하게 캐내야 하는 거예요. 지금 진만씨 마음 어지럽히는 것도 다 그 마지막 저항인 거죠. 힘들더라도 며칠만 더 참고 기도해 보세요. 오후 9:22

진만: 네... 오후 9:31

 

5. 스무하루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오늘도 연락이 잘 안 되네요... 연락이 안 돼도 그냥 여기에 계속 말할게요. 사실 성희씨... 지금 제 마음이 많이 흔들려요. 같이 사는 친구는 그거 다 사기다, 멍청하게 속지 말라고 말하는데... 저는 계속 그 말을 믿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기라도 좋고 속아도 좋다고요. 그래도 꼭 한번 다시 성희씨 만나서 카페에서 얼굴 보고 커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처럼요... 저는 내일 미자씨 만나서 제례를 드리러 가요. 원래는 70만원인데, 특별히 성희씨 생각해서 50만원에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거 드리면 그분 말처럼 마가 사라진다고 하니까, 그땐 성희씨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마가 사라지든 사라지지 않든, 제 마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성희씨가 이런 제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전부예요. 기다릴게요. 오전 2:47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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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 핫하다. 지난달 10일부터 고교생들이 ‘기후를 위한 낙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유럽연합 본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학생과 어른들도 가세하여 이 시위는 매주 목요일 4주째 계속되고 있다. ‘기후를 위한 젊은이들’로 이름 붙여진 시위대답게 “우리는 기후보다 더 뜨겁다” “나의 미래를 불태우지 마라” “공룡도 멸종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학교 빼먹기? 미래를 위해 싸우기!”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후변화를 늦추자고 외친다.

지난해 12월2일부터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총회가 맥없이 끝난 뒤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일이다. 올 초 다보스포럼에 스웨덴 고교생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구온난화를 막자고 연설한 것도 독일, 스위스 등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기세가 한반도에 도달하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스카이캐슬’ 때문에.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24차 당사국총회가 개막된 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민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브뤼셀 _ 로이터연합뉴스

1995년 13명이 죽고 5000여명이 부상한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사린 테러사건’에 충격을 받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인터뷰하며 일간지에 기고를 하였다. ‘폐쇄회로와 개방회로’라는 제목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소위 엘리트들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가담하게 된 이유를 분석한 글이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옴진리교 같은 사이비 종교들을 폐쇄회로에 비유하였다. 입구는 있으되 출구는 없는 언더그라운드. 그곳은 완벽한 세계처럼 보인다.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라면 모든 사물의 이치는 명백하기에 교주에게 맹종한다. 그것이 평화를 주고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실재하는 세상은 개방회로의 사회다. 이곳의 세계는 불안하고 혼돈스럽다. 그러나 생각이 열려 있어서 설령 결점투성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자기 삶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하루키식으로 보자면 스카이캐슬의 사람들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서, 그 고교생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면 누군가 선동했더라도 시위에 나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갈 가까운 미래가 지구온난화로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에 절박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재기발랄한 슬로건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미 북서부의 체감온도는 영하 50도에 육박하였다. 추위 때문에 땅속 수분이 얼어 부피가 팽창하면서 마치 지진처럼 ‘충돌음’이 울리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반면에 남반구 호주는 연일 48도가 넘는 폭염으로 더위를 피해 뱀들이 사람 사는 집으로 피난을 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온도 차이가 거의 100도에 이른다니 상황판단 제대로 한 유럽의 고교생들이 기특하다. 한편 캐슬에 갇힌 채 어떤 재난이 닥칠지 걱정할 겨를도 없이 입시와 취업경쟁에 내몰린 우리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스카이캐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이미 거대한 폐쇄회로처럼 보인다. 지난여름의 폭염과 현재의 미세먼지, 시한폭탄 같은 플라스틱 문제는 모두 하나의 뿌리, 석유·석탄에 기반한 탄소경제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지난달 29일 정부는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23개 사업을 발표하였다. 대부분은 철지난 토건 사업, 사회간접자본 구축 사업들이다. 지금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현존하는 직업의 8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때이다. 이럴 때 과연 토건 사업이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일까. 차라리 환경교육 예산을 늘려 기후변화에 책임감을 갖는 세계시민을 길러내고, 환경문제 해결을 새로운 사업의 기회로 만들어내는 청년 스타트업들을 육성한다면 사회‘직접’자본이 되지 않을까. 24조원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라도 ‘기후변화 감수성’을 높이는 일에 쓰인다면 탄소경제의 컴컴한 폐쇄회로를 탈출할 디딤돌이 될 것이다. 선거연령을 대폭 낮춰 고등학생 정도라면 사회문제에 눈뜨게 하자. 세상을 바꾸는 건 청춘의 또 다른 의무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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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 청년의 죽음으로 비정규직 제도가 첨예한 사회적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답인지 알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몰리는 산재 사망사고의 근본 대책으로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만, 검토하겠다는 말만 들려온다. 누구나 돈보다 사람이,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반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며칠 전, 정부는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재정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는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정부는 예타 면제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는 4대강사업을 의식한 듯, “지역 전략산업 육성 관련 사업”이 다수 포함되었고,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주도 방식의 사업이라며 과거와 다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차이가 어떻게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으려는 예타의 면제 사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사업 내용을 보면 도로와 철도 건설에 20조원 정도가 투입되는 전형적인 토건 사업이다. 정말 이 프로젝트로 국토균형발전이 이루어지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까? 단기간의 경기부양에 그치고 남는 건 결국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만을 남겼던 과거가 되풀이되는 건 아닐까?

위의 두 가지 사례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본의 논리가 압도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현실이 ‘철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철벽으로 보면, 현실은 ‘원래 그런 것’이다. 현실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는 것, 그저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식한 현실에 희망을 위한 자리가 있을 리 없다. 현실의 부당함도 원래 그런 것이려니 여기고 체념할 뿐이다. 기존의 부당한 현실과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는 의지는 꺾여버리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은 잘려나간다. 하지만 만연해 있다고 해도,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인식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현재는 과거와 다르다. 그 차이는 나와 우리의 노력과 헌신이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다.

철벽과 대조적인 현실 인식도 가능하다. 현실을 ‘약속’으로 보는 것이다. 약속으로 보면, 현실은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는 미완의 가능성이다. 현실에 내재하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 인식은 아무리 강고한 현실도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의 못자리가 된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은 완전하지도 않고 부족한 점도 많다. 그렇다고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대에서 희망을 길러낸다.

현실이 약속보다 철벽으로 보일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현실을 변화의 가능성이 내재된 약속으로 보기 위해선 과거의 기억이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는 현실의 어떤 부분들이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비현실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당장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다양한 굴곡을 그리며 진행되어 서로의 인과관계를 알아차리기 힘들 뿐이다. 심지어 우리는 실패와 패배와 좌절을 통해서 성공하고 승리하고 전진해왔다. 오늘의 변화된 현실이 바로 그 증거다. 여기에 현실을 약속으로 볼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의 강고함에 굴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철벽같은 현실 앞에서 다짐해본다. 첫째,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기. 둘째, 현실에 압도되지 않기. 셋째, 현실을 바꾸기 위한 최선의 길을 식별하기. 넷째, 식별한 길을 전력을 다해 걸어가기. 그러고는 진인사 대천명! 희망의 설, 보내시길 빕니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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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복직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중 일부가 많게는 첫 급여의 절반가량을 가압류당했다고 한다. 2009년 ‘옥쇄파업’ 당시 경찰이 장비파손 등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힘겹게 돌아온 일터에서, 그것도 설 명절을 앞두고 받은 첫 월급이 반 토막 난 것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노조원과 쌍용차범대위, 국가손배대응모임 회원들이 30일 서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복직 한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가압류를 규탄하고, 국가 손해배상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10년간 참담한 시간을 보냈다. 일방적 구조조정에 파업·농성으로 맞서다 회사 측의 직장폐쇄와 국가의 무력진압으로 1700여명은 회사를 떠나야 했고, 165명은 해고됐으며, 30명은 극단적 선택이나 병으로 사망했다. 파업이 끝난 뒤에도 국가와 쌍용차 사측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가압류로 노동자들을 괴롭혔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팀이 손배·가압류를 당한 노동자 236명의 심리·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남성 노동자 10명 중 3명이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또 전체의 3%가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고 응답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와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씨에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씨가 손배·가압류에 따른 고통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으려는 ‘전략적 봉쇄소송’과 다름없다. 경제·심리적으로 위축시켜 또 다른 비판이나 시위를 막아보려는 ‘겁주기’인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29개주는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법을 제정했고, 스웨덴은 이를 헌법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국제노동기구도 2017년 정부에 파업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했다. 쌍용차 파업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손배·가압류 자체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 더욱이 “쌍용차 공권력 투입은 정당하지 않다”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결론도 나와 있지 않은가.

쌍용차 복직자들에 대한 가압류 해제 여부는 검찰의 손에 달려 있다. 경찰은 이미 쌍용차 복직자들에 대한 가압류를 풀어달라는 의견서를 검찰에 전달했다. 쌍용차 사측은 오래전에 소송 및 가압류를 취소했다. 그런데도 국가가 이를 계속 고집한다면 노조활동 방해를 일삼은 ‘창조컨설팅’과 뭐가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제라도 손배·가압류로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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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가 또다시 무산됐다. 지난해 10월 대의원 정족수 미달로 경사노위 참여에 실패한 이후 두번째다. 민주노총은 지난 28일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참여 안건을 상정도 하지 못한 채 폐회했다. 노동계의 중요한 축인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무산되면서 사회적 대화기구의 온전한 가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대화의 길을 스스로 차단한 민주노총의 행보가 안타깝다.

당초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참여 방침을 대의원대회에서 추인받으려 했으나 내부 반발로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대화기구 참여를 통한 협상과 조직 투쟁을 병행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구성원 설득에 실패하면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경사노위 참여 반대파들은 민주노총이 ‘정부의 들러리’가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방증이다. 대의원대회에서는 노동 현안에 대한 여러 의견과 해법이 제시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로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 복귀가 무산되면서 파업이나 집회와 같은 투쟁 전략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정부와의 대화 노력을 포기하면 안된다. 자칫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줄곧 민주노총의 대화기구 참여를 독려해왔다. 지난 25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민주노총의 대화 참여를 중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복귀 무산은 당혹스러운 소식일 수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경사노위를 통해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제 이원화 등을 밀어붙이려는 것 아니냐며 의심한다. 문재인 정부가 경기 침체를 빌미로 재벌개혁과 노동존중 정책에서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결정은 정부의 노동개혁 후퇴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정부는 민주노총에 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얼마나 대화의 장을 조성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무산에 상관없이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불참한 채로 경사노위가 진행된다면 정부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정해놓은 뒤 경사노위를 거쳤다고 노동계를 압박한다면, 이것은 사회적 대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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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gt;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느 추운 밤, 처진 어깨로 귀가한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 한 쪽을 홍차에 적셔 먹는다. 순간 그는 어릴 적 일요일 아침 고모할머니가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의 미각을 떠올린다. 동시에 당시 광장이며 오솔길, 마을과 정원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찻잔에서 솟아남을 느낀다.

이제 너무 유명해진 이 장면은 여러 저술에서 언급되었고, 그중 하나가 오카 마리의 연구서 &lt;기억 서사&gt;이다. 책의 저자는 마트에서 사온 서양배 주스를 컵에 따라 한 모금 넘기는 순간, 오래전 이집트 유학 당시 하숙집 아주머니가 후식으로 내어주던 서양배의 미각과 더불어 한 시절이 또렷이 복각되던 경험에 관해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화가 마들렌 예시보다 더 와 닿았는데, 바로 서양배라는 소재 때문이었다.

대학원 시절, 같은 연구실 선배가 구동독 지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재학시기가 겹치진 않았으나, ‘학부생이 올려다본 똑똑한 조교 오빠’ 같던 그가 사형(師兄)임이 남몰래 자랑스러웠다. 사람이 멋있으니 낯선 구동독 지역인 것도 어딘가 근사하게 느껴졌다. 생경한 이름의 그 도시로 가면 다들 선배처럼 낡은 외투 걸치고, 까슬까슬 야윈 얼굴로 소리 없이 ‘파’ 웃으며 맥주잔을 기울일 것 같았다.

언젠가 필요한 국내논문자료가 있다고 하셔서 구해 보냈더니 답메일에 ‘배 삼형제’란 제목의 사진이 첨부되어 왔다. 날마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양배 몇 알을 사서, 저녁식사 후 룰루랄라 깎아 먹는다 하셨다. “그게 요즘 내 낙이다”라면서. 담백한 그 어조도 괜히 나는 좋았다. 한참 지나 다른 나라에서 맛본 서양배는 단감과 무를 섞은 듯 묘한 식감에 달지도 새콤하지도 않았지만, 종종 사서 깎아 먹었다. 그때마다 상상 속 구동독 지역 도서관과 과일가게, 고단한 얼굴로 과일 깎는 선배가 눈앞에 그려졌다. 서양배는 통상적으로 영국배(English pear)라 불리고 내가 그걸 처음 먹어본 나라는 미국이었지만, 나에겐 ‘독일’이란 단어와 유사한 온도와 빛깔을 지닌 낱말이 되었다.

여러 해 흘러, 바로 그 독일의 한 대학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게 되었다. 도움 주신 선생님께 출국인사 드릴 겸 연구실로 찾아뵈었다. 이런저런 조언을 하던 그분이 문득 생각난 듯 하얀 아스파라거스 시즌이 곧 시작될 텐데 대단히 맛난 계절채소이니 반드시 먹어보라 하셨다. 독일어로 슈파겔이라 부른단다. “이소영 선생 요리 실력은 안 봐도 짐작되지만 그건 물에 데치기만 하면 되니 괜찮아” 하시면서 말이다.

도착한 첫 주에 장을 보러 가니 과연 슈파겔(Spargel)이라 적힌 푯말 아래 ‘마’처럼 생긴 하얀 채소들이 쌓여 있었다. 한 봉지 사서 데치고 얇은 껍질을 벗겨 속살을 베어 물었더니, 파 줄기 맛이었다. 소금 치고 버터 조각 녹여 넣어도 대파의 흰색 줄기 맛만 계속 났다. 그 채소와 황금궁합이라던 어떤 소스를 곁들이니 이번엔 느끼한 파 줄기 맛이 났다.

그럼에도 시장 갈 때마다 장바구니에 담곤 했다. 외워둔 강의안을 잊어버려 정전 같은 정적이 흘렀던 첫수업 날에, “시신을 염하다”를 ‘솔트’란 단어로 표현해버렸던 부끄러운 날에, 수업준비하다 지쳐 뒷산 양떼 사이에서 울었던 날에 늦은 밤 철 이른 슈파겔을 먹었다. 베를린필 연주회 보러가고자 푼푼이 모아둔 돈을 털어 한국으로 면접 다녀온 밤과, 그로부터 일주일 후 지구 저편에서 “축하합니다”로 시작되는 메시지를 받고 해처럼 웃었던 이른 새벽, 이번에는 통통해진 제철 슈파겔을 먹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주먹으로 책상 탕탕 두드리는 게르만식 박수를 쳐준 종강일 저녁, 마침내 삭아서 보드라워진 끝물 슈파겔을 먹었다.  

타인에게 선물한 음악은 상대로 하여금 날 기억하게 만드는 반면 책은 내가 상대를 기억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어느 작가가 썼다지만, 기억은 매개체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리 남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좋은 사람과 고마운 사람은 음악이나 책뿐만 아니라 과일이나 채소 안에서도 아련한 한 시절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솟아나게 할 수 있다. 내게 서양배와 하얀 아스파라거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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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님, 안녕하신지요. 1년여 전 스포츠 전문 방송에서 대화를 나눈 적 있지요. 그날 방송에서 위원님은 IOC 선수위원의 임무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는 것과 선수 권익의 신장과 보호였지요.

사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은, 마치 헌법처럼, 회원국의 모든 임원, 지도자, 선수들이 일체의 타협이나 양보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이념이지요. 그 맨 앞에 ‘올림픽 이념의 기본 원칙’이 천명되어 있습니다.

1항을 보면 올림픽 이념은 ‘인간의 신체, 의지, 정신을 전체적 균형과 조화 속에서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신체만이 아니라 의지도 정신도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선수들이 ‘운동 기계’가 아니라 전인적인 성장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 2항,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또한 6항에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엄중한 ‘이념’에 따라 올림픽의 운영 항목이 열거되지요. 이를테면 1장 2조 ‘IOC의 사명과 역할’은, 위원님이 강조하신 선수 권익 보호 사항입니다. ‘스포츠 윤리 발전’ ‘남녀 평등’ ‘선수들의 의료 및 건강’ ‘선수들의 사회적, 직업적 미래 보장’ ‘스포츠를 교육 및 문화와 접목’ 등이 그것입니다. 이 가치들이 우리의 스포츠와 올림픽에서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옥 훈련’이니 ‘혹사’ 같은 말들이 여전히 횡행합니다.

‘스포츠의 자율성 보존’이나 ‘선수들의 정치적, 상업적 남용 반대’도 2조에 천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막연하게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부당한 정치적 압력이나 지나친 자본의 위력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엽에 스포츠를 정치 선전 수단으로 삼고 올림픽을 자본 이익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지요. 모든 관계의 차단이 아니라 부당한 압력의 차단이 목적입니다. 50조에도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한다’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위원님이 이런 가치를 모를 리 없겠습니다만, 최근 전개되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거대한 전환 속에서 자칫 이 올림픽 정신이 오용되거나 극히 부분의 표현을 맥락 없이 남용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조재범 전 코치 가해 사건이 불거진 이후로 우리 스포츠계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상명하복식 위계질서와 유무형의 모든 폭력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민적인 열망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얻어맞고 심각한 인권 유린 상태에까지 내몰렸는데 그렇게 해서 따낸 금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호소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폭력 실태를 엄중히 조사하는 한편 국위 선양과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 개혁 과제를 전개하겠다고 밝혔지요.

이에 스포츠 현장에서는 한편 공감하면서 또한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러 국제대회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이 당혹해한다는 얘기도 있고 당장 2020 도쿄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막막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유승민 위원님도 의견을 피력했지요. 며칠 전 위원님은 “체육행정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개혁이 필요하지만, 합숙·연금 제도를 폐지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올림픽을 목표로 땀 흘린 선수들의 꿈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선수들의 의견을 듣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선안을 찾자고 제안도 했습니다. 금메달리스트이자 선수위원으로서 충분히 제시할 만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당혹감에 빠진 후배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위원님은 단순한 체육행정가나 경기력 강화위원이 아니라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고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선수위원입니다. 선수들이 폭력의 무한 재생산 구조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몇몇 지도자의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와중에도, 연세대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감독으로부터 ‘동물 학대 수준’으로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다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선수위원이라면 지금 당장 폭력을 멈추라고 호소해야 하며 공포의 상황에 놓여 있는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악을 근절하고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천명하고 있는 올림픽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올림픽 헌장에 제시된 바와 같이 ‘선수들의 사회적, 직업적 미래 보장’ 또한 유 위원님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메달리스트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미래가 보장되는 현행의 제도는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개혁 과제들이 매우 복잡해 하루아침에 대한체육회가 해체되거나 선수촌이 폐쇄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이 유일무이한 해법도 아닐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 권익 보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좁은 의미의 ‘권익’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여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이념으로 ‘올림픽 정신’에 천명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지켜진다면 그 밖의 여러 제도 개선은 얼마든지 다양한 해법이 가능하지요. 우리의 스포츠 개혁과 발전은, 유 위원님의 활동 근거가 되는 고결한 ‘올림픽 정신’의 실천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선수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 ‘권익’이 아니라 그 ‘존엄성과 인권’을!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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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2038년까지 석탄화력 발전소들을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 정부산하 석탄위원회는 지난 26일(현지시간) 현재 42.6GW(기가와트) 수준의 석탄발전 용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2038년에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독일이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약속한 탄소감축 목표를 2030년에 달성하게 된다. 독일은 이를 위해 10여년에 걸쳐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을 65%로 끌어올리기로 했다고 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2022년까지 원자력 발전을 중단키로 한 결정에 이어 에너지 전환에서 독일이 또 한 번의 획을 긋는 셈이다.

독일은 1980년대부터 에너지 전환을 추진해 왔으나 석탄화력이 여전히 전체 발전량의 약 38%에 달하는 등 의존도가 높은 데다 원전중단에 따른 발전설비 감소로 ‘탈(脫)석탄’이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공영방송 여론조사에서 4분의 3이 석탄발전 중단을 지지하는 등 ‘탈석탄’이 사회적 공감대를 굳건히 형성하고 있는 것이 어려운 결정을 가능케 했다. 시민들의 지지는 재생에너지 분야 투자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독일의 에너지·기후변화 전문 연구기관인 부퍼탈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원전·석탄화력보다 많은 36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회원들이 2018년 11월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석탄화력발전소 모형을 만들어놓고 석탄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한국은 현재 석탄화력발전소가 모두 60기로 국내 발전의 40%를 차지한다. 정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이 중 16기를 폐쇄 또는 LNG발전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36기를 대상으로 추가 폐쇄·전환조치를 취하겠다고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혔다. 이에 대해 원전학계와 보수세력들은 원전 가동을 늘리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 하나 짓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무책임한 주장일 뿐이다.

미국의 좌충우돌식 일방주의로 기후변화 방지라는 인류공통의 과제 달성이 난항을 겪는 지금, 독일이 꿋꿋하게 이를 실천해 가는 모습은 다른 나라의 귀감이 된다. 한국도 석탄화력을 대체할 재생에너지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잡음들을 정부가 종합 점검하고, 대안 도출을 위해 시민사회와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정부의 정책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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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봐도 모자라는 제주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비양도의 오름, 차귀도와 수월봉의 절경이 하늘의 여행객을 반긴다. 한라산 영실의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다랑쉬오름의 바람이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선흘과 저지 곶자왈의 이끼 숲과 고요한 아침, 멀리서도 포근한 동백동산의 능선과 먼물깍의 노루 소리, 한여름 시원한 용천수의 기쁨은 또 어떠한가. 쇠소깍의 흐름은 섶섬, 문섬, 범섬으로 펼쳐진다. 연산호 바다 숲은 도화돔, 주걱치, 자리돔의 안식처이고 태평양을 거슬러 온 등 푸른 물고기의 앞마당이며 남방큰돌고래와 오키나와의 기억을 닮은 푸른바다거북의 고향이다. 대자연과의 만남, 바로 우리가 제주로 떠나는 이유다.

그러나 자연이 주는 넉넉함과 아름다움이 알려질수록 제주 관광객 숫자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2010년 이후 제주 관광객은 연평균 10%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고, 2016년에는 관광객 1500만명을 돌파했다. 대부분의 지방이 인구 유출로 고민하는 것에 반해,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 역시 꾸준히 증가했다. 도민 68만명에 연간 관광객 1500만명의 시대, 그 이면은 어떠한가.

지난 연말, 구좌읍 월정리 해녀들은 “동부하수처리장 오폐수 때문에 물질 작업이 불가능하다”며 제주도청에 찾아가 생존권을 요구했다. 섬 주민이 의존하는 지하수는 관측 이래 최저 수위를 기록했고 일부 지역은 제한급수가 실시되었다. 소각장에도 매립장에도 처리량을 넘는 쓰레기가 날마다 쏟아지면서 압축해 쌓아놓거나, 수십억원을 들여 육지로 쓰레기를 보내 처리했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건물이 제주만의 독특한 경관을 망치고, 교통량 증가를 이유로 비자림로 숲길을 벌목했다. 수용력을 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제주의 자연은 훼손되고 주민의 일상은 흔들렸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관광) 현상의 전형이다.

현재 갈등 중인 제주 제2공항 사업은 우리에게 과연 ‘제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토교통부는 2015년 11월 ‘제주 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용역’의 결과에 따라 제2공항 최적 대안으로 성산읍 일원을 선택했다. 제주공항 수요 추이는 2020년 3211만명, 2030년 4424만명, 2035년 4549만명 등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예측됐다. 사전타당성 용역 당시 비용편익은 무려 10.58이었다. 제2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핵심 요지였다. 수요 추이가 적절했는지도 논란이지만, 설령 국토교통부의 제주공항 수요 추이가 맞다 하더라도 ‘과잉관광’을 그대로 용인할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 제주의 자연과 환경이 4500만 관광객을 무한정 감당할 수 있을까.

지난해 ‘제2공항 입지선정 재조사 검토위원회’는 안개일수 오류, 오름 절취 누락, 지반 정밀조사 생략, 철새도래지 평가 제외, 대안지 의도적 탈락 등 제주 제2공항 후보지 선정 과정의 중대한 결함을 확인했다. 제2공항 성산 후보지 선정을 취소하고 원점 재검토를 제안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검토위원회를 강제 종결시키고 1주일 전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 착수보고회를 비공개로 열었다. 국토교통부는 공항사업을 추진하면서 보고서 조작, 비용편익 부풀리기, 주민 의견 무시, 사업 강행 등을 반복하고 있다.

제2공항 사업 추진 절차상의 문제와 함께 양적 팽창 일변도의 개발 정책에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기다. 유네스코 3관왕인 제주 고유의 아름다움과 제주도의 환경·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수용 능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지속가능하지 않겠는가.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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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라는 긴 제목의 에세이집을 낸 적이 있다. 책 내용은 제목 그대로였다. 1960년대 이른바 경제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 우리 경제는 서구에서 300년 만에 이루어진 변화를 불과 30년 만에 이루어냈다. 참으로 놀랍고 무서운 속도였다. 그 긴 제목의 에세이집은 이러한 맹렬한 변화 속도 속에서 과연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자기정립은 가능할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혹시 맹렬한 속도 속에서 갈가리 찢겨져 자신을 잃어버린 채 부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제 한번쯤 느릿느릿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삶의 속도에 비추어 이 맹렬한 속도를 반성적으로 성찰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만 성숙한 삶과 성숙한 사회가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물음을 담고 있는 그 에세이집은 7000~8000부 나가고 언젠가 절판되었다.

그런데 20년 넘게 지나 가끔 그 책을 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기도 하고, 유명한 방송인이면서 작가인 모씨가 자기 책에 참고했다고 언급해서 그런지 간혹 인터넷에서 책 제목을 보곤 한다. 새삼 왜 이러지? 이제 한 지식인의 자기성찰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제도적, 정책적 차원에서 맹렬했던 산업사회의 속도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온 것일까? 하기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 자동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서구 선진국의 지식과 모델을 빨리빨리 받아들여 하루라도 빨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산업사회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사회 패러다임을 버리지 않고 추종할 경우 어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는 4대강 사업이 잘 보여주고 있다.

강은 그걸 중심으로 자연생태계가 형성되어 유지되고 그에 기반하여 인간의 생활생태계가 형성·유지되는 장이며, 그 기억들이 축적되어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의 장이기도 하다. 여기에 흐르는 시간은 느리고 유장하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 깃들여 사는 내부자의 시각을 잃지 않는다면 강을 단기간에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주체의 시각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자연생태계와 생활생태계, 역사의 장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외부자의 시각이다. 그 모든 걸 원천적으로 배제한 채 강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정해진 5년 임기 내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파헤쳤다. 그 결과는 강의 부패와 수중생물들의 죽음, 회복하기 어려운 생활생태계의 왜곡과 역사의 장의 파괴다.

교육이라고 해서 4대강 사업보다 나을까? 그렇게 나아 보이지 않는다. 교육은 최종적으로 교수자와 학습자의 관계에 의해 완성된다는 점에서 인간 삶의 느릿느릿한 시간이 한 축으로 작동하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자의 시각에 입각한 산업화의 맹렬한 속도가 일방적으로 작동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 곤란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서구의 새로운 지식을 하루빨리 받아들여 될 수 있으면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주입·암기케 함으로써 하루빨리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를 모토로 하는 산업화 시대 학교교육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강력한 수단 중 하나였다. 이렇게 해서 서구에서 수입된 지식을 얼마나 잘 암기했나를 측정하는 시험으로 학교와 학생을 줄 세우고 학생은 자신의 적성이나 특기에 상관없이 점수에 따라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산업사회 교육체계가 형성된다. 이런 교육체계에서는 교수자와 학습자 삶의 느릿느릿한 시간이 작동할 여지는 없다. 이러한 산업사회 교육체계는 지능정보화 사회인 오늘날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채 관성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여전히 획일적 서열화 경쟁 속에서 학생들은 자기 삶의 시간을 배제한 채 밖에서 요구하는 속도에 따른 선택을 하고 있으며, 교육정책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대의 5년 미만의 주기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교육에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속도와 함께 교수자와 학습자 삶의 느릿느릿한 시간이 중요한 축으로 작동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면 국가교육위원회는 매우 재미있는 시도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래 관성화된 5년 미만 교육정책 입안과 실행 주기를 새로운 교육 거버넌스를 통해 10년, 20년의 주기로 늘리겠다는 건데, 그것 자체가 산업화 시대의 맹렬하고 맹목적인 속도에 대한 제도적 반성과 성찰로 볼 수도 있어 무척 흥미롭다.  어제 구로 마을축제에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는 학생들 연습을 보러 갔다. 교실에선 죽어 있던 아이들의 눈빛이 노래하며 동작을 펼치는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살아났다. 학교교육 체계에 눌려 있던 아이들 삶의 시간이 살아난다고나 할까? 그러한 눈빛은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아이들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킨다. 무엇이 진정한 교육일까?

우리의 학교는 낙타들에게 곁눈질 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빠른 속도로 사막을 건너 풀과 숲이 우거진 녹지로 가라고만 가르친다. 그러나 소수의 낙타만이 사막을 건너고 대다수 낙타는 사막에 남는다. 학교는 사막에 남는 낙타들에게 너는 낙오했다고 말할 뿐 사막에서 사는 법을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막을 푸른 초지로 바꾸는 것은 이 버려진 낙타들이다. 이 낙타들이 자기 삶의 시간에 눈뜰 때 학교와 사회가 정말로 바뀔 것이다.

<김진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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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1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가 개최됐다. 앞서 소년체육대회는 전국체육대회의 중등부에 포함돼 실시됐으나 이해 들어 전국스포츠소년대회로 독립했다. 학교 엘리트 체육의 서곡이었다.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하고 국가대표로 육성해 스포츠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이후 전국 초·중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신설이 붐을 이뤘다.

전국스포츠소년대회는 국가주의 체육의 시작이었다. 대회 주최자는 민간기구인 대한체육회였지만, 행사의 기획과 진행은 사실상 국가가 주도했다. 대회 슬로건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첫 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들에게 “조국을 위해 충성스러운 국민이 되고 나라, 겨레,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화 채집은 경주에서 진행됐다. 삼국을 통일한 화랑의 얼을 계승해 바른 국가관을 확립하자는 취지였다. 1975년부터는 전국소년체육대회(일명 전국소년체전)로 이름이 변경됐는데, 이 역시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 선수의 덕목도 국가가 요구하는 규율, 질서, 협동단결심, 투지 등이었다.

전국소년체전이 스포츠 향연인 적이 있었다. 대회를 개최한 시·도는 체전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고장을 홍보했다. 주민들은 어린 선수들에게 민박, 교통편을 제공하며 후한 인심을 자랑했다. 선수가 메달이라도 딸라치면 해당 학교와 고향 마을에서는 현수막을 내걸어 축하했다. 반면 축제의 그늘은 더 컸다. 조기 체육, 엘리트 체육이 강조되면서 학생선수들은 스포츠 스타를 꿈꾸었다. 체육특기자 제도는 성적 지상주의를 부추겼다. 선수들은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인권도 존중받지 못했다. 학교 운동부에서 폭력, 성추행이 만연해도 모두 쉬쉬했다.

정부가 성폭력 등 체육계의 고질적 비리 근절책을 내놓으면서 전국소년체전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체전 고등부와 통합해 학생선수, 일반학생 구분 없이 참여하는 학생체육축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50년간 유지해온 엘리트 선수 양성 등 체육 패러다임까지 바꾸겠다고 하니 일선 학교에 ‘공부하는 학생선수’ ‘인권이 존중받는 운동부’가 정착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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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와 폭염으로 못살겠다는 원성이 한계에 달한 지금 친환경을 명목으로 ‘수소사회’로의 전환이 갑자기 급부상했고 정부가 ‘통 크게’ 화답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환경오염을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얻어왔던 에너지회사와 자동차회사를 국민들 돈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왜 수소인가는 잠시 접어두고, 수소사회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과정을 보자. 수소가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라 주장하는 핵심은 국내 독점적 지위의 자동차회사인데, 친환경 이미지는 별로다. 전 세계 주류 친환경자동차인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2%에 불과한 반면 이 회사 디젤차들의 실주행 대기오염물질 발생량은 메이저 회사 중 최고 수준이다. 폭스바겐의 클린디젤 사기가 드러난 것이 2014년이니 이 회사 또한 이미 오래전에 디젤차의 오염물질 배출 문제를 알았겠지만, 국민에게 등 떠밀린 정부가 뒤늦게 ‘클린디젤’ 정책을 폐기할 때까지도 디젤자동차 판매에 열을 올렸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젤의 오염문제에 침묵한 채 돈을 벌어왔던 기업이 정부의 클린디젤 정책 폐기와 동시에 청정에너지로의 획기적 전환을 외치는 상황이 공감이 가지 않는다. 설마겠지만 타이밍은 참 절묘하다.

다시 돌아가서, 왜 수소일까? 답은 간단하다. 2차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에너지만큼 독점적인 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독점을 무너뜨릴 에너지가 확산되고 있다. 바로 태양과 바람 등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다. 독점에서 벗어나 소규모 분산시스템의 구축이 가능한데, 심지어 집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 독립적이며 민주적인 에너지다. 반대로 중앙집중식에 더해 복잡하고 어려운 통제기술을 요하는 수소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따르고, 선점하면 소수 기업이 독점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런데 독점을 위한 초기 위험을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한다? 이것은 집과 직장, 길거리 어디에나 있는 장벽 없는 전기가 아니라 불안에 떨며 충전소를 찾아야 하는 에너지자본에의 ‘노예화’를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주는 꼴이다. 전기차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가 스스로 전 세계에 촘촘히 충전소를 건설하는 것과 완벽하게 대비된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수소’는 전혀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수소 자체는 청정하겠지만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은 미래가 없다. 지금의 미세먼지와 폭염은 과도한 화석에너지 사용이 원인임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수소는 이 화석에너지에서 나온다. 화석에너지 생산은 최근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의 포집(프레킹)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80배나 강한 온난화물질인 메탄이 대기 중으로 대량 확산된다. 이미 수소를 만들기 전 원료생산과정에서 훨씬 많은 오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화석에너지로 수소를 만들고(메탄가스 개질) 또다시 각종 고가의 장치를 통해 자동차를 움직이는 구조가 과연 깨끗할까? 정부의 수소충전소 구축전략에 따르면 대기오염 개선에 효과가 있을 부생수소기반 충전소는 전국에 단 3곳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거의 모두 이런 방식으로 수소를 공급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탈원전과 탈화석에너지가 기반인데 수소는 화석에너지정책의 유지에 불과하다. 여기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독점적 화석에너지자본에의 종속을 연장시켜줄 또 다른 게이트를 만들 뿐이다.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폭염재난의 기폭제가 될 수소사회 대신 친환경 전기충전소를 전국에 확산해야만 한다. 그리고 저렴하게 공급하면 보조금 없이도 국민이 스스로 전기차를 선택하는 셀프혁신을 보일 것이다.

자본이 밀실에서 만들어내는 정부포획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만을 만들 뿐이다. 친환경 전환 시점에서 국민의 건강이 아닌,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책으로의 전환은 미래라는 말을 지구에서 제거하는 지름길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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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배우고 싶어 무작정 기타 책을 사서 연습을 했다. 책 맨 뒤에 코드 연습을 위한 표가 있다. 그 표 위에는 늘 ‘cort’라는 표시가 있다. 그래서 콜트(Cort)기타를 안다. 돈 없고 가난한 시절 콜트기타는 뮤지션을 꿈꾸는 이들에겐 소중한 기타였다. 중저가 브랜드 중에선 최고였다.

문화연대가 지난 13년간 콜트콜텍과 연대하면서 만난 가수 중 대부분은 콜트기타를 알고 있었다. 지금도 처음 기타를 배울 때 썼던 콜트기타를 가지고 있다는 뮤지션도 있었다. 소중한 추억의 기타가 노동자의 눈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가수 이한철은 “예술은 감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기타를 생산한다는 것은 예술과 만나는 것이다. 예술은 감성이 결여된 사람이 하기엔 역부족이다. 박영호 사장처럼 노동을 부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은 예술이며 예술은 계산기로 두드려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도 했다.

밴드 한음파는 “음악인으로서 콜트콜텍과 같은 일에는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기타를 만드는 사람과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공생 관계로 노동자의 착취는 결국 뮤지션에 대한 착취다. 늘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겠다. 박영호 사장이 버틸수록 연대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고 말했다.

그룹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의 톰 모렐로(Tom Morello)와 잭 드라 로차(Zack De La Rocha), MC5의 웨인 크레이머(Wayne Kramer) 등 세계적 뮤지션들도 “기타는 착취가 아니라 자유를 의미한다”며 자신의 기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졌는지 알아봐야겠다며 콜트악기의 노동자들을 응원했다. 

시나위의 신대철을 비롯해 사랑과평화의 최이철, 한상원밴드, 게이트 플라워즈는 사측이 만든 콜트문화재단의 공연 섭외에 좋은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다가,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즉각 사과를 했고, 콜트콜텍 노동자와 함께 후원공연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2007년 당시 콜트악기와 콜텍은 전 세계 기타 시장의 점유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잘나가는’ 회사였다. 재무상태도 안정적이었고, 10년 동안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갑자기 국내 공장을 폐업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한 이유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콜트콜텍은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 펜더, 알바레즈 등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다량의 기타를 납품하고 있었다. 박영호 사장은 30년 동안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쥐어짜 자산규모가 1000억원대에 이른다. 한국 부자순위 140위가 되었다. 이것도 모자랐는지 박 사장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1993년 인도네시아 공장, 1999년 중국 공장을 설립하고는 천천히 국내 생산라인을 축소시켜 나갔다. 

2007년 4월에는 인천 콜트악기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하고, 7월에는 계룡시에 있는 콜텍악기를 위장폐업하고 남아있던 67명 전원을 정리해고했다. 2008년 8월에는 인천 콜트악기마저 폐업했다. 생산 물량을 해외 공장으로 빼돌리고, 서류상 경영위기를 만들어 정리해고와 폐업의 명분으로 삼았다.

올해로 정년을 맞이하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는 13년의 긴 투쟁을 끝내고 싶다고 한다. 정년이 되기 전에 복직해 아빠의 싸움이 정당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저항의 목소리를 냈지만 확고부동한 부의 소유자 박영호 사장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콜텍은 여전히 기타산업 1위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대전에서 콜텍 본사가 있는 등촌동을 거쳐 부평으로, 여의도에서 광화문을 거쳐 최근 등촌동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올해가 지나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복직의 꿈을 찾아서, 일상의 삶을 돌려받기 위해서 말이다.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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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 좀 봐. 이제 갈 데까지 갔나봐. 나한테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네? 코디 있냐고? 있어. 연봉 1억원까지는 내가 직접 확인. 수억원인 사람도 있다는데 이건 미확인. 입시가 복잡해져서 애들이 해야 할 게 늘어나잖아. 그러니까 전략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잖아. 그걸 외주화한 게 컨설턴트. 컨설턴트가 매니저를 겸하면 코디. 

입시제도 바꾸면? 그다지 좋아지지 않을걸. 글쎄. 변별을 수능으로? 애들이 다 학원으로 가. 변별을 내신으로? 교실이 지옥이 돼. 변별을 비교과로? 이건 너무 불공정하잖아. 이러다간 나라가 망해. 뭔가 근본적인 게 필요해. 

진보 동네에 오래된 떡밥이 돌아다니네. 아직도 이 떡밥을 무는 사람들이 있네. 2012년 대선 공약집에 있었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라고 있었지. 그런데 2017년 공약집에선 사라졌어. 문재인 이념이 우경화 되어서? 민주당 의지가 약해져서?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냐. 지방에는 국공립대가 많아. 그런데 서울·수도권엔 없어. 서울·수도권 수험생이 30만명이야. 근데 이 지역 국공립대는 겨우 1만명이야. 국공립대 공동입학? 공동학위? 도저히 그림이 안 나와. 그럼 2012년 공약은? 엉터리. 시뮬레이션도 안 해본 엉터리. 

그다음 떡밥은 ‘공영형 사립대’. 이걸 또 무는 사람들이 있네. 정부가 돈을 주고 사립대를 사자는 거야. 이사진 절반 이상을 공익이사로 바꾸자는 거야. 이걸 도대체 누가 원한대? 망할 위기에 있는 지방 사립대. 여기에 돈을 퍼주자고? 국민들이 반대해. 그러니 기재부에서 ‘빠꾸’당해. 역시 엉터리. 시뮬레이션도 안 해본 엉터리. 

서울대 폐지론? 박원순이 물었던 떡밥? 서울대 없애 보라지. 연고대가 서울대 되겠지. 왕은 왕이어서 왕이 아니거든. 왕으로 대접받으니까 왕이거든.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카를 마르크스 형님이었던가. 

제발 네 어깨에 힘을 빼. 나도 돈 주자는 데 동의해. 공동입학제에 동의하는 유력 대학에 돈을 주자. 매년 교수 1인당 1억원 비율로 퍼주자. 서울대에 2200억원, 연세대에 1600억원, 고려대에 1400억원, 경북대에 1100억원, 동국대에 700억원…씩 지금보다 더 주자. 그 대신 사립대의 자율권, 인정해 주자고. 학생선발권만 가져오자고. 학생선발권 그냥 뺏어오면 위헌결정 날 거거든. 그러니까 그 대신 돈을 주자고. 그러면 정부 예산의 1%로 해결할 수 있어. 5조원으로 해결할 수 있어. 고졸자 3분의 1 이상 수용하는 전국적 공동입학제 만들 수 있어. 이걸로 인기전공 경쟁은 못 막아. 하지만 인기대학 경쟁은 막을 수 있어. 

대학평준화가 아니야. 대학에 돈을 주는 대신, 교육여건의 ‘하한’만 정하고 ‘평가’만 요구하는 거거든. 나머지 돈은 대학 맘대로 쓰게 해주는 거거든. 대학은 솔깃할 거야. 요새 돈이 없으니까. 돈이 없어서 강사들도 자른다잖아. 

가만히 생각해봐. 누구의 기득권도 해치지 않아. 대학은 정부예산 받아서 돈이 많아져. 학부모는 사교육비 줄여서 돈이 많아져. 학계, 교육계 관료 나으리들 기득권도 그대로. 명문대 동문회는 싫어하겠지만. 쪼끔 더 팬시한 상상 해볼까? 나머지 돈의 일부를 장기연구에 쓰기로 해보자. 노벨상 나올 거야. 어때. 이 정도면 해볼 만하잖아? 

꼰대는 반대할 거야. 사립대와 국립대는 근본부터 다르니라~ 에헴. 유럽식 대학평준화가 답이니라~ 에헴. 미친. 거긴 사립대가 없잖아. 한국은 사립대 비율이 세계 최고야. 미친 체제니까 미친 대안이 나오는 거야. 사학에 왜 국민 세금을 퍼주냐고? 그럼 네 대안을 말해봐. 대안을 말해보라고!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잡으려면 필요하잖아. 그러니까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 모두에게 먹이를 주자. 등소평 선생님 말씀. 내가 살짝 바꿔봤어. 

누구는 대학 서열이 문제가 아니래. 학부모의 욕망이 문제래. 도덕선생님 납시오~ 부동산 투기를 비난하면, 집값이 내려가기라도 해? 학부모 욕망을 비난하면, 입시경쟁이 줄어? 요새 교육경쟁이 쌍팔년도 출세경쟁인 줄 알아? 양극화로 인한 공·포·경·쟁이 겹쳤단 말이야.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경쟁! 그래서 적어도 인서울 지거국 하려는 경쟁. 어휴 지친다. 이런 사람들은 10년 뒤에도 똑같은 소리 할 거야. 설교로 밑밥 깔고 훈계질 계속할 거야. 

나도 알아. 이게 만병통치약은 아냐. 대학 서열로 인한 경쟁은 막을 수 있지만, 노동시장 양극화로 인한 경쟁은 못 막아. 하지만 적어도 경쟁을 대학입학 이후로 지연시켜. 진보 양반들은 고개를 젓겠지. 무엇보다 내 ‘발상’이 맘에 안 들겠지. 사회적 타협을 돈으로 하자는 거니까. 

돈으로 가치를 사? 제발 그러자. 돈으로라도 가치를 사자. 애들 다 죽잖아. 아니, 아예 애를 안 낳잖아. 제발 이 떡밥 좀 물어. 

물기 싫어?…그럼 그냥 지옥캐슬에서 계속 살든가.

<이범 |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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