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대통령비서실, 교육부, 더불어민주당이 당·정·청 협의를 통해 2019년 2학기 고3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시작하기로 했다. 총 소요액의 정부, 시·도교육청 분담 비율은 50 대 50이라고 밝혔다.

당초 계획보다 앞당긴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전국 시·도교육청과 함께 협력을 약속한다. 고교 무상교육은 교육받을 기회를 확대하고 서민 가정을 비롯한 모든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더 일찍 실현됐어야 한다.

다만 고교 무상교육의 재원 마련 대책에 관해서는 아쉽다. 시·도교육청과 충분한 협의와 설득 없이 교육청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게 고교 무상교육을 하지 않고 있고, 2018년 공교육비 중 정부 투자 비율 역시 초·중·고 87.1%로 OECD 평균 90.4%보다 낮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고교 무상교육 실행방안 연구(2013)’ 보고서도 “우리나라가 고교 무상교육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예외적인 공교육 체제로 비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9일 고교 무상교육 시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열린 당·정·청 협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그동안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고교 무상교육을 위해 추가 재원을 주지 않겠으니 시·도교육청 돈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현재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시·도교육청으로 보내는 교부금으로 충분하다는 이유였다. 

이는 학생을 단순히 단위당 원가 개념으로 취급하여 적용한 과도한 경제논리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로 시·도교육청은 이미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누리과정을 시행하며 부족한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면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있었고, 보육대란 위기까지 이어졌음을 상기해야 한다. 더욱이 누리과정은 보건복지부 사무를 떠안아야 하는 것이었지만 고교 무상교육은 교육당국이 시급히 챙겨야 할 사안이다.

무상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교육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자 공정한 교육,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된다. 이것이 인천시교육청을 비롯하여 각 시·도교육청에서 무상교육을 추진하는 이유다. 현재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급식비나 교복구매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고등학생 학비까지 부담하는 것은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19일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회’에서 “사람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로 누구나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게 하겠다”는 혁신적 포용국가 실현의 의지를 밝혔다. 핵심은 ‘고교 무상교육’이다.

그동안 협력적 관계를 중시해온 대통령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약속을 믿는다. 그 약속은 고교 무상교육을 온전히 정부의 부담으로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교육청은 잠정적으로나마 재정적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원을 분담할 것이다. 고교 무상교육이 완성되는 때까지 당·정·청은 고교 무상교육의 교부율 인상을 포함한 안정적 재원 대책을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기 바란다.

고교 무상교육을 비롯하여 초·중등 교육에 대한 투자는 곧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심지어 영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지출은 줄였지만 교육예산만큼은 증액하였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교육에 대한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교육이 경제·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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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의 원·하청 간 하후상박 임금 연대가 눈길을 끈다. 현대차 정규직의 임금은 적게 올리는 대신 중소협력업체와 비정규직의 임금을 인상해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시작한 현대차 노조의 ‘하후상박 임금 인상’은 원·하청 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 연대’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현대차 노조의 하후상박 임금 인상은 원·하청 간 인상분의 차이가 크지 않아 당장 그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평균 4만5000원 인상된 반면, 115개 하청업체는 평균 5만6106원 인상됐다. 원·하청 간 임금격차 해소는 1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가 높은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상생의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와 올해에 이어 매년 ‘임금 연대’ 전략을 지속하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그동안 대기업 노동자와 협력 원·하청 사이에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상생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실천에 옮긴 사례는 매우 적다. 2015년 SK하이닉스 노사가 임직원 임금 인상분 20%를 협력사에 지원하는 내용의 ‘노사 사회적 책임 실천협약’을 채택한 게 눈에 띌 정도다. 포스코와 협력사 노사가 지난달 ‘상생협력합동연구반’을 구성해 원·하청 격차 해소에 나섰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 노조의 ‘하후상박 연대임금’ 실천은 선구적 역할로 환영할 만하다. 노조는 또 조합의 임금 인상률을 낮추면서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 근절을 사측에 요구하기도 했다고 하니, 상생 사회를 위한 또 다른 노력도 주목된다.

현대차 노조는 제조업 분야에서 최대 규모다. 조합원 연봉이 9000만원이 넘는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조원 자녀 우선 채용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켜 ‘고용 세습’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노사상생의 일자리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다. 노조가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내걸었을 때 내부의 반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시장 양극화, 임금격차 심화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부영 현대차 노조 지부장은 지난 19일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상생 실험이 임금뿐 아니라 고용·복지 등으로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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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해 증명되지 않은 ‘잠재적 위해성’과 ‘환경의 관계성’을 인정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과연 우리 정부가 이런 판결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봄꽃이 만발하지만 우리 숲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농약으로 얼룩진 침묵의 봄이 이어진다. 이맘때면 계곡물이 모자라게 울어대던 개구리와, 짝을 찾느라 분주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잔인한 엔진톱 소리로 바뀐 지 오래다. 가장 깨끗해야 할 숲속에 화학살충제가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명목으로 하늘소를 죽이기 위해 광범위하게 살포되는 살충제는 하늘소뿐만 아니라 유익한 대다수 숲속 곤충들을 죽이며, 특히 꿀벌집단의 붕괴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최근 증가율이 가장 높은 암인 유방암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정부는 늘 안전하다고만 한다. 과연 그럴까? 작년 8월 프랑스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산림에까지 뿌리는 이 살충제를 경작지에서조차 전면 금지시킨 것이다. 프랑스의 선택이 주는 의미는 뭘까? 반세기 전 사용이 금지된 DDT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흙에서 닭으로, 다시 달걀로 옮겨가며 ‘살충제 달걀’로 우리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안전하다던 DDT가 그랬듯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 또한 이미 많은 국가에서 사용을 금지했다. 

재선충 발병지역에서 양서류가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산림에 광범위하게 뿌려진 살충제는 무차별적으로 곤충을 죽이고, 곤충을 먹이로 하는 개구리들 또한 없애고 있다. 이미 지렁이를 포함한 토양무척추동물에게 강하게 독성이 미치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살충제 남용 문제를 폭로한 이후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당시 네덜란드 느릅나무병을 막기 위한 살충제 남용은 소나무재선충에 대한 지금의 정부대응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이 책의 몇 단락을 옮겨본다. 

네덜란드 느릅나무병은 1930년경 유럽에서 들여온 목재에 숨어서 건너왔다. 느릅나무 껍질에 사는 딱정벌레는 이 병을 다른 나무로 옮긴다.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매개체인 딱정벌레를 없애는 방법이 자주 이용된다. 특히 느릅나무가 번성하는 지역에는 약제의 집중 살포가 일상화되었다. 적은 양이 살포된 1954년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곧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죽어가는 울새가 서서히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화학물질이 살포된 지역은 치명적 함정이 되어, 그곳을 찾아온 울새들은 일주일 뒤 모두 죽고 말았다. “살충제를 뿌리는 사람들은 그 약품이 ‘새에게는 무해하다’고 강조했지만 울새들은 바로 그 약품 때문에 죽어갔다.”

강력한 농약은 해충인 느릅나무딱정벌레뿐 아니라 가루받이를 돕는 곤충, 포식성 거미 등 모든 곤충을 죽인다. 가을이 되어 땅에 떨어져 축축해진 낙엽은 아주 천천히 분해된다. 지렁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썩은 잎을 먹어치워 분해를 돕는다. 그런데 나뭇잎을 먹은 지렁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살충제까지 흡수하게 되고, 체내에 그 살충제가 농축된다. 물론 많은 지렁이가 죽었지만, 살아남은 지렁이들은 독극물의 ‘생물학적 증폭기’ 구실을 했다. 많은 연구를 통해 해충 억제 측면에서 새들이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조절능력을 화학약품에 흠뻑 젖은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살충제가 해충뿐 아니라 그 천적인 새들도 함께 죽이기 때문이다. 살충제가 뿌려지고 얼마 후엔 벌레들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벌레의 수를 조절해줄 새들이 없다.

“해충의 천적들이 농약 때문에 사라진다면, 새로운 해충이 등장해 다른 나무들을 공격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통제할 것인가?”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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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 중간고사를 치르기 때문에 요즘을 중간고사 대비기간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중·고등학생이 있는 가정마다 온통 비상이기 마련이다. 학생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밤 12시를 넘기는 날들이 시작되었으니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전쟁이 된다. 적으면 3~4시간, 많아야 5시간에 불과한 수면을 하는 것이니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아침에 별 탈 없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미션일 수밖에 없다. 

이런 비상이 걸리는 곳으로 학원들도 있다. 학원들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2~3주 전부터 시험 대비 수업을 시작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4주 또는 한 달 전부터 시험 대비 수업을 시작한다. 학원들에서 이렇게 긴 내신 시험 대비기간을 설정하는 이유는 학교 성적이 대학입시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학원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즘은 예상 시험문제를 잘 가르치는 경쟁에서 학생들에게 내주는 엄청난 과제 분량의 경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동안은 시험 대비기간을 한 주씩 늘리는 방식으로 경쟁했지만 4주 이상으로 기간을 더 늘리면 사실상 상시 시험 대비라는 무리한 일정이 만들어지기에 대신 숙제를 많이 내주는 것으로 학습 강도를 높이는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학원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학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어서 선호된다. 학생들이 집에 있는 동안 힘겹게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이 아이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학원에서는 할 만큼 했는데 학생이 따라오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가능하니 학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여기에 덧붙여 시험 기간 중 학생들이 학원에 머무는 시간도 늘린다. 평시에 3시간 수업이었다면 4시간 동안 학원에 있게 하고 그중 1시간은 대학생 조교들을 활용해서 시험 대비 문제풀이를 하게 한다. 물론 이 시간도 똑같이 학원비가 과금된다. 

이렇게 학원들마다 숙제량 경쟁과 시간 끌기 경쟁을 하기 때문에 여러 곳의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다니는 학원들마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과목의 성적을 올리는 데 학습시간을 쓰도록 과도한 숙제를 내주다보니 그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학생은 매일 새벽까지 학원 숙제를 하느라 진짜 필요한 자신의 공부를 전혀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면 학생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도 학원 숙제를 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과거와 같이 강의식 수업이 아닌 참여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수업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데다 학원 숙제도 못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된다. 물론, 그런 상황을 모두 다 잘 챙기고 높은 성적을 받아내는 학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소수일 수밖에 없고 나머지 학생들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암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낮아져서 전국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을 정부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처럼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학습량이 부족해서 기초학력이 낮아졌을까? 아니면 불필요하고 부조리한 교육환경에조차 접근 못하는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일까? 과거 권위적인 정부와 어떤 면을 슬금슬금 닮아가는 교육당국의 발걸음이 무서워진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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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했다. 인구 5000만명 이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앞서 3만달러 소득을 달성한 국가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뿐이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세계 7위 경제대국을 실감하기 어렵다. 노동조건이 특히 그렇다. 직장인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에서 최고수준인 반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최하위다. 

고용불안과 노사갈등도 심각하다. 노사 분규가 몇 년씩 지속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복직판결을 받은 KTX 여승무원들은 해고에서 복직까지 12년간의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복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이었다. 지난 1월 복직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노동자들은 75m 굴뚝에서 426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목숨을 건 투쟁이었지만, 그들의 요구는 노조 인정, 고용 승계 등으로 소박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사회원로들과 시민사회 대표자들이 9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정부가 만든 정리해고제를 없애고, 최장기 정리해고 사업장 콜텍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라”며 정부에 콜텍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백 소장을 비롯해 조희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등이 참가했다. 2007년 정리해고돼 13년째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콜텍 노동자들은 2009년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이겼지만, 2012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콜텍 노사는 작년 말부터 지난달까지 8차례 교섭을 해왔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권도현 기자

어제 기타 제조업체인 콜텍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회사 측과 복직을 위한 교섭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2007년 4월 공장을 떠났으니 13년째이고, 4457일이 흘렀다. 그들은 한때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이겨 복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혀 무위로 끝났다. 해고노동자들은 시위, 단식, 길거리 농성, 고공농성 등 온갖 투쟁을 다 벌였다. 중년이었던 그들은 머리가 허연 ‘늙은 노동자’가 됐다. 지난해 정부의 중재로 쌍용차와 KTX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했다. 콜텍과 마찬가지로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을 받아왔던 사업장들이다. 콜텍에도 정부의 역할론이 제기됐던 이유다. 

강산이 변했고 정권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사용자의 노사관, 그리고 노사관계였다. 콜텍은 13년간 교섭이 거의 없었다. 협상이 열려도 회사 대표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다. 교섭이 진척될 리 없었다. 지난달 12일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가 단식에 돌입했다. 정년을 3년 남긴 그는 ‘명예복직’이라도 해야겠다고 했다. 단식 한 달이 지나고 여론이 움직이자 협상이 재개됐다. 국내 최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인 콜텍은 국민소득 3만달러인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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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서 조선이나 자동차 등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제조업 분야의 고용부진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노동연구원이 14일 내놓은 ‘고용위기지역 산업의 일자리 이동지도 구축 기초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연구는 2010년 통영지역에서 고용보험에 가입했던 조선업 종사자 7573명의 고용을 2018년까지 추적한 결과다. 고용위기지역의 현실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연구결과는 호황산업의 침체가 근로자와 지역경제에 주는 충격을 그대로 보여줬다. 고용보험 가입 근로자 10명 중 4명은 일자리를 떠났거나, 고용보험이 유지되지 않는 일자리로 이동했다. 고용보험은 ‘좋은 일자리’를 말할 때 최소한의 조건인 만큼 상당수 근로자가 저임금 일자리로 추락했음을 의미한다. 또 연구결과를 보면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절반 정도만이 조선업에서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전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부분은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근로자들이 항공부품 및 첨단분야에 취업한 것이다. 이는 산업구조조정에도 유관산업에 취업할 기회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들 일자리는 구직자가 스스로 찾은 것이라고 한다. 구직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 일자리를 유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통영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역공동화와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영은 세 차례나 반복적으로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됐다. 지역공동화를 막기 위해 지역에 맞는 신산업 발굴의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용위기지역은 전국에 통영·거제·군산·목포 등 8곳에 이른다. 대부분은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재지정되고 있다. 정부의 지원금 위주 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증거다. 차제에 정부가 세금으로 주는 지역고용촉진지원금, 청년추가고용 장려금, 퇴직자를 고용한 사업주 지원 등의 실효성을 따져봐야 한다. 이와 함께 실직자가 재취업할 수 있도록 연관업종 알선과 맞춤형 재교육 방안도 찾아야 한다. 실직자에게 도움이 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고용위기지역 문제 해결은 지역경제뿐 아니라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절실하다. 미래지향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없이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제조업 일자리 문제 해결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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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쓰레기 수입금지 조치로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겪은 지 1년이 지났다. 우린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난해 8월부터는 커피전문점 내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번 4월부터는 전국 대규모 점포와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지와 쇼핑백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제 시작일 뿐, 아직도 일회용품 사용이 크게 줄지 않았고 규제에 대한 불평불만도 없지 않다.

우리가 몰랐던 사이, 우리 사회엔 해결 못하는 쓰레기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경북 의성군 단밀면 생송2리, 50여 가구밖에 살지 않는 농촌 마을에 재활용을 명분으로 들여다 놓은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다. 보관량(2157t)의 34배가 넘는 분량(17만3000여t)이다. 폐기물이 썩으면서 나온 악취와 침출수로 주변 환경이 오염되고 마을주민들이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 이 ‘쓰레기산’에 불까지 나자 미국 CNN에서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의 단면”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필리핀에 플라스틱 재활용품으로 수출했던 쓰레기가 지역 환경단체의 문제제기로 반송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폐기물 관련 사업장에 쌓아둔 방치폐기물이 85만t, 야산이나 창고에 버려진 불법폐기물이 30만t가량. 모두 소각한다 해도 매해 100억원씩 들여 30년 정도 걸리는 규모이다.

폐비닐은 용융기에서 검은 색소와 섞여 플라스틱 반죽으로 변하고, 4~5㎜ 크기의 플라스틱 펠릿으로 모양이 잡힌다. 자루에 담긴 펠릿은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돼 하수도관 등의 재료가 된다. 김정근 기자

다행히 많은 시민들이 일회용품, 플라스틱 제품 규제를 지지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재활용 쓰레기 대란 1주년을 맞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및 해결 방안에 관한 대국민 인식도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95% 이상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열에 아홉은 플라스틱 제품 사용 ‘전면 금지’ 같은 강한 규제를 원했다. 소비자 규제를 넘어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기업 규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출처:경향신문DB)

환경부의 규제 조치에 대한 다수 기사들은 조치의 문제점이나 관련 업체들의 불평불만을 주로 전한다.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필요하지만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변화란 있을 수 없다. 기사들 아래 댓글이 오히려 인상적이다. 어느 기사에 달린, 아이디 ‘문제없어’란 누리꾼의 댓글이다. “고통 없이는 절대 성공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안 하면 안되는 사업이라 어떤 식으로든 진행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점·새벽배송업체·대기업의 공산품과 대포장 등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 아닐까요? 생활쓰레기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분류해보니 재활용으로 90% 이상 나옵니다. 음식을 담았던 일회용품은 잘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재활용으로 분류해냅니다. 만드는 대기업, 대책 부족한 정부, 항변하는 영세업자 등등을 탓할뿐더러 개인인 나 스스로도 열심히 방법 찾아 동참합시다. 우리 아이들이 쓰레기장에 살게 할 순 없잖아요.” 아이디 ‘티없이살라하네’도 말한다. “문명의 발달로 너무 편리함에 익숙해져 살다 보니 좀 불편하면 힘들어한다. 폐비닐·폐플라스틱이 육지에서는 산을 이루고 바다에서도 섬을 이루어 더 이상 방치한다면 지구는 죽는다. 만들어 쓰고 버릴 뿐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니. 좀 불편하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배달음식 단가 올려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부담하면 되고. 지금 규제를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대책도 없이 과거에 규제를 하지 않은 일이 더 문제다. 내 집에 쓰레기 더미 안고 산다고 생각하면 규제와 비용 부담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일단 나 자신부터 시작해보자. 할 수 있는 일들, 너무나 많다. 다회용컵(텀블러) 사용하기, 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그릇 가져가서 음식 사오기, 과대포장 않는 제품 사기, 다회용품 사용 배달업체 이용하기 등등. 실내 흡연이 당연시되었지만 이젠 실내 흡연은 물론이고 길거리 흡연조차 문제라 본다. 문화가 바뀐 거다. 일회용품 사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아니라 문제로 보는 문화, 부끄럽게 보는 문화로! ‘내’가 그 변화의 시작이 되자.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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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산림청은 산불 진압을 위해 산불재난특수진화대를 운영하며, 이들은 소방청의 경방대원(화재 진압)과 같은 일을 한다. 

하지만 소방관은 정규직이지만 특수진화대원은 매해 10개월씩 일하는 기간제 노동자다. 이들은 산불이 날 때 재난지역에 투입되지만 그때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일한다. 산불 진화훈련, 산불예방 순찰활동, 논·밭두렁 소각행위 단속, 불법 임산물 채취자 단속 및 입산자 통제, 산사태 예방, 임도 및 등산로 주변 풀베기와 잡목 제거 그리고 산불감시초소 및 임도차단기 보수작업, 농업폐기물 수거 및 인화물질 제거작업 등 쉴 틈이 없다. 즉 이들이 계약직 기간제 근로계약을 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얼마 전 경남 김해 분성산에서 3차례(2018년 12월25일과 30일, 2019년 1월6일) 산불이 났지만, 특수진화대의 현장투입은 한 차례뿐이었다. 12월30일과 1월6일 산불이 발생했을 당시, 특수진화대원 총 10명은 현장 산불 진화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특수진화대원들이 단기 계약직으로 계약이 만료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1월6일 발생한 산불은 소방대원들이 진입하기 어려워 완전히 불을 끄는 데 11시간이나 걸렸다. 특수진화대원을 정규직이 아닌 단기 기간제로 운영한 결과다.

지난 4일 발생한 고성, 인제, 강릉 등 강원도 지역의 산불로 특수진화대가 기간제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최일선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는 특수진화대가 기간제일 뿐 아니라 일당 10만원이라는 열악한 처우가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자 산림청은 특수진화대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산림청의 뒷북 정규직 전환 추진 입장에 박수를 보낼 수 없다. 왜냐하면 특수진화대는 이미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어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보면 “상시·지속적인 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 되어야 한다”며 기간제 노동자는 가급적 2017년 말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특수진화대와 유사업무인 산불감시원, 산불예방전문대 등을 상시 지속 업무로 판단한 바 있다.

정부가 2017년 12월 발표한 합동지침에도 특수진화대는 정규직 전환이 진행 중이거나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사업으로 분류돼 있다. 그럼에도 특수진화대 노동자들은 매해 2월에서 12월 사이 10개월짜리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어왔다.

결국 산림청이 당연히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할 특수진화대 노동자들을 속이고 반복해서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어 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 산림청 공무원들의 무지와 정부 지침 위반으로 만성적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일당 10만원이라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내몰린 것이다. 

이제 와서 정부가 무기계약직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눈 가리고 아웅하듯이 처리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또 다른 꼼수가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가 크다. 정부와 산림청은 특수진화대를 계속 기간제 노동자로 채용한 것은 스스로 정부의 지침을 어긴 행위이며, 심지어 불법의 소지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수진화대원을 처우 개선 없는 무기계약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비용 절감과 탄력적 인력 운용을 위해 무한정 늘린 비정규직이 사회 양극화의 핵심적인 원인이 되어 왔다고 진단하면서 정부와 공공부문이 모범적 사용자로서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진짜 그러고 있는가? 수도검침원, 도서관 연장 개관, 건강가정 및 다문화가족 지원, 아동복지교사, 생활체육지도자 활동지원 그리고 특수진화대. 이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미 정규직 전환이 되어야 했지만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자신들의 말에 책임을 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김성환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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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사회 전체의 화두다. 국가, 가정, 개인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자리는 우리 사회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아침마다 전국사회부의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기사보고들에도 수식어만 바뀔 뿐 며칠 걸러 거의 빠짐없이 일자리 관련 대책들이 등장한다. 

일자리 대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단연 광주다. ‘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계의 ‘인기 브랜드’다. 정부가 상반기 중 2곳을 더 선정한다고 하자 제2, 제3의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지자체들의 유치 움직임이 뜨겁다. 

‘상생형 일자리’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한마디로, 임금을 낮추는 대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초유의 노사정 상생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상생의 한 축엔 노조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없다. 부재를 넘어 민주노총은 아예 광주형 일자리 철회를 위한 3년 투쟁 돌입까지 선언한 상태다. 며칠 전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광주형 일자리를 적극 추진했다는 이유로 광주공장 전임 지회장 2명에 대한 제명을 결의했다.  

이유가 뭘까. 민주노총이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이유는 임금 하향 평준화를 불러오며 나쁜 일자리가 확산되고, 지역별로 저임금 기업유치경쟁을 초래해 자동차산업 자체를 공멸시키는 치킨게임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우려다.   

이에 대한 반론은? “30년 가까이 노동운동의 결론을 담아 밤낮없이 뛰며 만들었는데, 민주노총은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광주형 일자리는 비단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시간 고임금 일자리가 과연 좋은 것인지 등 미래 일자리의 가치, 노동과 인권, 여성, 소외계층 문제도 함께 얘기하고 풀어가자는 것이다.” 조합원 제명이 결의된 전임 지회장 중 한 명인, 광주형 일자리의 산파 박병규 광주시 사회연대일자리특보의 말이다.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월급이 적은 대신,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교육과 보육, 주거 등 복지수준을 정부와 지자체가 상당 부분 사회적 임금으로 보전하기로 한 광주형 일자리는 젊은이들이 바라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미래 일자리 가치와도 닿아 있다. 

민주노총과 광주형 일자리가 상생하는, 제3의 길은 없을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이자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이사장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 ‘광주형 일자리’ 협약 자체는 상당히 위험요소가 많지만,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질타했다. 성과에 대해서는 완성차업체가 원·하청 이윤공유를 통해 협력업체들의 이윤율을 제고하고, 낮은 임금수준에 대해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며 구체적 추진전략을 갖고 협상 테이블에서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더 강한 정책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31일 오후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광주형 일자리는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외에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개선’ 등을 4대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노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가 핵심인데, 철학의 공유 없이 외양만 베낀 짝퉁이 여기저기로 퍼질까봐 박병규 특보는 걱정하고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4일 제68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3월 기준으로 조합원이 100만3000명”이라며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투쟁에 앞장서는 민주노총에 한국 사회 노동자들이 운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보수) 결과’를 보면, 2017년 기준 임금노동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287만원,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있는 이의 소득인 중위소득은 210만원으로 나타났다. 150만~250만원 미만을 받는 이들이 25.1%로 가장 많았고, 85만원 미만(16.8%), 85만~150만원 미만(15.9%), 250만~350만원 미만(14.9%) 순이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하다. 조합원 100만 돌파로, 제1의 노총을 눈앞에 두고 있는 민주노총은 월급 250만원 안되는 절반 이상의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는가. 또 하나, 민주노총의 가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강원도 산불의 와중 시민들은 훌륭했다. 위험 앞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서로 손을 내밀었다. 시민들은 서로 연대해 위기를 극복했다.   

시민들이 민주노총에 바라는 것도 연대의 힘이다. 전체 노동자의 대표라 말만 하지 말고, 일하는 모든 이들을 품으라고, 취업난에 신음하는 예비노동자들까지 품으라고, 노조의 존재이유를 묻고 있다. 

반대는 쉽다. 그러나 시민들이 기대하는 건 장외에서 훈수 두고, 판을 깨는 노조가 아닌, 함께 희망을 얘기하고, 나와 내 이웃을 지켜주는 노조다. 반대해야 할 때도 협상 테이블에서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조를 시민들은 원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도 나쁜 일자리도 될 수 있다. 좋은 일자리는 좋은 노조가 만든다.

<송현숙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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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고등학교 무상교육 방안을 확정했다. 올 2학기 고교 3학년부터 시작해 2021년에는 모든 고교생으로 대상을 확대키로 했다. 고교생 1인당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비 등을 포함해 평균 158만여원(2018년 기준)을 지원받게 된다. 고교 무상교육은 사실 때늦은 감이 있다. 고교 진학률이 99.7%에 이르러 사실상 ‘의무교육’화한 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고교 교육 무상화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균등한 기회보장을 위해 조속히 실현해야 할 과제다.

문제는 재원 조달 방안이다. 고교 무상교육에 소요될 예산은 올해 3856억원, 2020년 1조3882억원, 2021년 1조9951억원으로 추산된다. 당·정·청이 확정한 안을 보면, 올해 2학기의 고3 무상교육 예산은 각 시·도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확보하도록 했다. 전면 시행 이후엔 중앙정부가 47.5%, 교육청이 47.5%씩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가 5%를 내게 된다.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감들과 협의한 결과, 모두 고교 무상교육 필요성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 교육감들이 협조한다 해도 3년 뒤 새로 선출되는 교육감들이 이를 거부한다면 과거 ‘누리과정 사태’ 같은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 사업인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소요 예산 중 상당액을 교육청에 떠넘기려 했다. 이에 교육청들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면서 ‘보육대란’이 발생했다.

고교 무상교육이 재원 문제로 좌초하는 걸 막으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분담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은 당·정·청 안대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증액교부금’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야당도 교육기본권 보장이라는 대의에 공감한다면 개정에 협조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당초 교육부가 구상했던 대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 자체를 인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육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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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규모라면 신도시 하나는 너끈히 들어가겠다.’ 인천공항에 들어설 때마다 중얼거리곤 한다. 며칠 전 호주에서 귀국하는 친지를 마중하러 갔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1층 입국장과 3층 출국장은 물론이고 지하 주차장에 공항철도역까지 포함하면 실로 엄청난 크기의 실내 공간이다. 거대할 뿐만 아니라 쾌적하고 안전하고 편리하다. 

입국장에 앉아 가까운 미래를 그려보았다. 누군가 기후변화와 같은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유리 돔을 기획하고 있을 것이다. 유리 돔 내부에는 그야말로 조화와 균형의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다. 깨끗한 공기와 적절한 온도는 기본이고, 먹을거리는 최적의 상태에서 재배되고 양식될 것이다. 에너지 시스템 또한 재생과 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인구가 많지 않을 것이므로 자립과 자치의 마을 공동체가 뿌리내릴지도 모른다. 

인천공항에서 미래도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 때문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플롯은 단순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가 ‘최후의 날’에 직면하게 되자 과학자들이 새로운 행성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압도적 화면, 정교한 스토리 라인, 과학 지식의 적절한 활용, 인류의 미래를 위한 영웅들의 도전과 희생 등등 완성도가 높은 영화였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우주를 배경으로 인류가 새 행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인터스텔라>.

픽션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실제로 지구 행성을 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진전하고 있지만 인류가 ‘또 다른 지구’로 이주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기 전에 인천공항과 같은 ‘유리 돔 도시’가 먼저 생겨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누가 유리 도시에 입주하는가. 또한 지구를 떠날 때 누가 우주선에 탑승하는가. 그리고 새 행성은 어떤 세계를 추구하는가. 몇 년 전 인천공항에서 <인터스텔라>를 떠올리며 붙잡게 된 화두다. 

엊그제 책벌레로 유명한 후배가 “요즘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죠?”라며 신간을 한 권 놓고 갔다. <파란 하늘 빨간 지구>(조천호 지음, 동아시아). 기후변화를 심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번역서를 읽고 난 뒤여서 얼른 집어 들었다. 기후변화에 관해 평균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다고 여겨왔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밑줄을 자주 그었다. 무엇보다도 국내에 이런 시야를 가진 기후 전문 필자가 있었구나 하는 반가움이 앞섰다. 추천사에 나왔듯이 “과학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학자”였다.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을 역임한 대기과학자가 대중들을 위해 쓴 책이지만 그 폭과 깊이가 만만치 않다. 특히 빅 히스토리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기후와 문명의 관계를 조명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4대 문명의 탄생은 물론이고 프랑스대혁명, 산업혁명도 기후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가 등장한 것이나 조선시대의 개막, 영·정조 시기의 문예부흥 역시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문명이 인간 지성의 필연적 결과라고 여기는 것은 오만이다. 인류 문명은 홀로세라는 ‘완전한 기후 조건’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우연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홀로세는 인류가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홀로세에서 ‘인류세’로 진입하고 있다. 인류세란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생태 환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말한다. 현재 인류가 지구에 끼치는 가장 큰 악영향 중 하나가 지구 평균 온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는 특별보고서를 통해 향후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시기를 기준으로 섭씨 1.5도 이하로 낮추자고 결의했다.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이상 올라가면 임계치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인류는 홀로세 기후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폭염, 한파, 해수면 상승, 농경지 상실, 환경 난민, 기후 전쟁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한꺼번에 작동된다. 

지구가 빨개지고 있다. 하지만 지구는 인류에게 관심이 없다. 미래가 우리 인류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속수무책인가? 그렇지 않다. <파란 하늘 빨간 지구>의 저자 조천호 전 원장은 과학계의 경고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과학이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력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독감 약에 빗댄다. 위치정보와 독감 약이 문제를 100%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우리가 신뢰하는 것처럼 과학계의 충고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반세기 전부터 ‘성장’을 멈추고 ‘지속’을 추구해야 한다고 권고해왔다.  

인천공항에서 상상한 ‘유리 도시’는 이미 곳곳에서 우뚝하다. 하지만 극소수 기득권층을 제외한 대다수가 유리 도시 바깥에 거주한다. 가난하고 힘없고 아픈 대다수 인류가 지구의 역습에 내몰리고 있다. 기후변화는 생태 환경 문제 이전에 정의와 윤리의 문제다. 이대로 가다간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극심해질 것이다. 결국 정치의 문제다. 권력에 눈먼 현실정치부터 혁신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지속을 위한 합의를 이뤄낸다면 지구는 다시 푸르러질 것이다. 우리 안에는 아직 홀로세의 ‘파란 마음’이 있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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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진만은 손에 든 메모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광역시 외곽에 있는 아파트 단지 정문 앞이었다. 정문 바로 옆에는 ‘하나로 마트’가 있고, ‘LH세탁소’가 있었다. 그 외 다른 상가는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512동이라며? 바로 저기 있네, 뭐.”

정용이 턱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정문 경비실 뒤편,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은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로 마치 오래된 교과서의 겉표지에 적혀 있는 듯한 숫자 ‘5’와 ‘1’과 ‘2’가 보였다. 가로등이 깜빡깜빡 수선을 피우며 들어오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과 정용은 512동 3, 4라인 입구 계단에 앉았다.

“얼굴도 모르고 핸폰 번호도 모른다는 거지?”

정용이 묻자, 진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입구 계단 옆 화단에는 개나리꽃이 한창이었다. 개나리꽃 때문인지 남루하고 조용한 아파트 단지는 어쩐지 더 쓸쓸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럼 누군지 어떻게 알아보려고?”

“그냥 느낌이지 뭐. 난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진만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김 사장한테 꼬박꼬박 형님이라고 불렀고, 어쨌든 자기 사업을 했던 사람이니까 서른 살은 넘었을 터. 30대 중반의 남자. 전직 돈가스 전문집 사장 최현수씨.

진만은 1년 전 출장 뷔페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처 받지 못한 임금이 있었다. 열하루 치 일당에 추가 근무수당까지 총 76만8000원. 그를 고용했던 김 사장은 매일 일이 끝나면 남은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알바생 한 명 한 명의 손에 쥐여줬던 사람이었다. 진만은 그곳에서 6개월가량 일했는데, 일당도 밀리는 법이 없었고,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도 정확했다. 어느 고등학교 동문회 모임에서 만난 진상 고객(술에 취한 채 알바생에게 계속 자기네 교가를 부르라고 했다)도 김 사장이 나서서 말려주었다.

문제는 마지막 한 달이었다. 김 사장이 아닌 방 실장이라는 사람이 대신 전화를 걸어와 알바 스케줄을 잡더니, 어느 날 그마저도 끊기고 말았다. 김 사장의 전화는 계속 꺼져 있는 상태였고, 찾아가본 사무실도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에이 씨,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만은 지방고용노동청에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주저하지 않았을 텐데, 김 사장은 좀 아니었다. 어쨌든 6개월 동안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진만의 마음처럼 한 달 정도 지난 뒤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 진만아, 내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말없이 떠나왔거든. 내가 너 밀린 임금하고 계좌번호 알고 있으니까,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해줄게. 정말 미안해.

진만은 김 사장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 8개월이 넘도록 진만의 계좌에는 아무런 돈도 입금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내가 고소할까 봐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닐까? 진만에게 76만8000원은 큰돈이었다. 원룸 월세 두 달 치가 넘는 돈이었다. 월말이 되면 진만은 늘 그 돈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김 사장에게서 다시 메일이 도착했다.

- 여기 이 주소로 가면 최현수라고, 돈가스 전문집 하던 친구가 살고 있을 거야. 나한테 300만 원 정도 줄 돈이 있는데, 거기에서 85만 원을 너한테 먼저 주라고 그랬어. 그 친구도 갑자기 가게를 접는 바람에 연락이 계속 안 닿았거든. 엊그제 연락이 닿아서 너 얘기해 놨으니까 가면 돈을 줄 거야. 늦어서 미안하다, 진만아.

“근데 왜 나까지 데리고 온 거야. 너 혼자 받으면 되지?”

정용이 조금 짜증 난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달에 네가 방값 10만 원 더 냈잖아. 그거 그냥 바로 주려고.”

“이건 뭐… 다 물고 물려 있구나.”

최현수씨는 밤 8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3, 4라인으로 들어간 사람은 초등학교 아이 두 명이 전부였다. 진만과 정용은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서 최현수씨를 기다렸다. 봄밤이었지만, 허벅지 아래로 계속 한기가 느껴졌다.

밤 9시쯤, 택배 트럭 한 대가 주차장에 섰다. H택배 유니폼 조끼를 입은 남자가 조수석에 잠들어 있던 남자아이를 업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남자아이는 유치원 가방을 메고 있었다. 진만은 그가 최현수씨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저기, 김성오 사장님이 찾아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최현수씨는 잠깐 진만과 정용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선 짙은 땀 냄새가 났다. 그의 등 뒤에 업혀 있던 아이가 눈을 떴다.

“주말쯤 오실 줄 알았는데….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최현수씨는 아파트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가 “아빠, 누구야?”라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만과 정용은 느릿느릿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이 때문에…. 진만은 어쩐지 자기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하나로 마트 옆 ATM기에 들어갔다 나온 최현수씨는 진만에게 은행봉투를 내밀었다.

“그게 80만 원이거든요. 5만 원은 계좌번호를 적어주시면 다음 주에 바로 보내드릴게요.”

최현수씨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 진만을 쳐다보았다. 정용이 툭, 진만의 옆구리를 쳤다.

“아, 아닌데…. 뭔가 착오가 있나 봐요. 제가 받을 돈은 정확히 76만8000원이거든요.”

진만은 봉투에서 1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 최현수씨에게 내밀었다. 2000원은 따로 자신의 지갑에서 꺼내 맞췄다. 그러곤 정용과 함께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진만은 생각했다. 왜 받아낼 것이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우리가 뭐 뱀인가? 개나리꽃만 지천인 밤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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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 다니다 NGO에 들어와 일한 지 17년째 되었다. 어느 해나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요즘엔 옷을 찢고 녹색괴물 헐크가 될 것 같은 때가 종종 있다. 점점 잦아지고 있다.

한 달 전에 환경부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국민의 불안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때였다. 회의 주제는 생활용품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 규제에 관한 것이었다. 환경부 담당자와 산하 연구기관 그리고 외부 연구기관과 생필품 제조사 측에서 참여했다. 장황하게들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이랬다. 환경부는 규제를 만들고 싶지만 EU에서 제시하는 미세플라스틱 관련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겠다는 공복의 자세는커녕 절실함이 1도 안 느껴지는 회의였다. 우리가 언제부터 EU의 기준을 그토록 열심히 따랐다는 것인지…. 내 안의 헐크가 튀어나올 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일 갤럭시S10을 출시하며 포장을 대폭 줄이고 플라스틱을 없앴다. 실제로 규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규제보다 먼저 움직였고, 회사 자체적으로 금지예상물질을 지정해 사용량을 줄여나가고 있다. EU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2006년 7월부터 시행한 전기·전자제품에 대한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을 학습한 결과이다. LG생활건강은 미세플라스틱이 없는 섬유유연제를 출시했다. 화장품과 의약외품에서 미세플라스틱은 2017년부터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세제 등 생활화학용품엔 아직 규제가 없는 상태임에도 먼저 규제 이상을 지켰다. 세제나 유연제에 향기를 좋게 하기 위해 들어 있는 미세플라스틱 캡슐이 물을 오염시키고 사람 몸에 다시 돌아온다는 걸 고려한 조치이다. 규제를 만들어내는 정부보다 먼저 기업이 발 빠르게 변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의 변화와 사람을 읽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사람의 마음을.

지금 유럽에서는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매주 금요일 정부에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그 숫자가 매주 늘어나서 수만명에 이르고 있고 우리나라 학생들도 참여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 환경이 기후변화로 나빠지고 있으니 들고일어난 것이다. 뉴욕주에서는 내년 3월부터 일회용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이 퇴출된다. 유럽의회도 2021년부터 10종류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법안을 가결하였다. 미국에서는 최초로 하와이 내 모든 식당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쇼핑센터, 소매점 등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플라스틱 소비 1위 국가이며 동시에 국민의 90%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직 어떤 규제도 없는 상태이다. 아마도 작년 4월에 이어 쓰레기 대란이 한번 더 일어나면 그때 범플라스틱 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전문가를 모시고 국민대책회의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미세먼지 앞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속에서 헐크로 변하기 전에 미리 그 마음을 얻는 방법은 없을까. <모두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구글 검색이 그토록 귀중한 이유는 데이터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솔직한 생각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이야기를 구글, 네이버, 다음과 같은 거대 검색엔진에는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선거는 물론이거니와 주요 정책을 입안할 때 그리고 기업이 마케팅 전략 하나를 세울 때에도 대중이 진정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검색엔진을 자주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국민이 미세먼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해법을 원하는지 과연 제대로 알고 있을까? 미세먼지 추경예산이 1조원이라던데 이참에 빅데이터 분석으로 먼저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계절상의 이유로 미세먼지가 잠시 잦아들어 우리 관심에서도 일시적으로 사라지기 전에.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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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체매립지 조성’ 문제가 시급한 사안으로 대두됐다.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의 난지도 매립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대체매립지로 김포군 검단면 일원(현 인천시 서구)에 조성됐으며, 서울시·인천시·경기도가 1992년부터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광역매립장이다.

당초 수도권매립지는 전체 1685만㎡의 부지에 4개의 매립장(제1·2·3·4 매립장)을 만들어 2016년까지 폐기물 매립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쓰레기종량제 도입과 폐기물 재활용 증가로 매립량이 줄면서 2010년경 부지의 52.4%만이 매립됐다. 이에 따라 수도권매립지공사는 매립기간을 연장하려 했다. 하지만 공유수면 매립면허 관청인 인천시는 계획대로 ‘2016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발표했고, 폐기물 대란 위기가 시작됐다. 이후 수년간의 갈등 끝에 2015년 6월 환경부와 서울시·경기도가 인천시에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조건으로 매립기간을 연장하는 4자 합의를 체결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4자 합의는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인천시에 대한 경제적 지원으로 제1·2 매립장 매립면허권과 아라뱃길 등 부지 매각대금 인천시 양도, 반입수수료 50% 가산 징수 및 인천시 지원, 매립지 주변 지역 개발 및 경제 활성화 협력 등이다. 두 번째는 수도권매립지 연장 사용과 관련된 부분으로 잔여 매립부지(제3·4 매립장) 중 3-1매립장(103만㎡)을 사용하고 3개 시·도는 대체매립지 확보추진단을 구성해 대체매립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합의사항 중 인천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현재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대체매립지 조성이다. 현재 3개 시·도는 2016년 대체매립지 확보추진단을 구성하고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속도를 내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립을 시작해 향후 7년간 사용할 예정이던 수도권매립지 3-1매립장으로 들어오는 쓰레기양이 예상보다 많아 조기에 포화상태에 이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되는 일은 대체매립지 조성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이다. 다들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어디엔가는 설치해야 하는 시설임은 안다. 하지만 내 삶의 터전 인근에 설치되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주민 설득에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비선호시설로 꼽히는 환경기초시설은 단순한 보상만으로는 설치하기가 어렵다. 쓰레기 문제로 골치를 앓던 싱가포르 정부가 해양 매립지를 조성해 세계적 관광명소와 환경교육의 장으로 변신시킨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본섬과 30㎞ 떨어진 세마카우섬에 쓰레기매립지를 조성한 싱가포르는 원주민을 본섬으로 이주시키고도 해양오염을 우려한 환경단체가 거세게 반발하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섬 주변의 맹그로브나무 40만그루를 옮겼다가 매립지가 완공되고 난 뒤 다시 옮겨 심을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폐기물 문제에 관한 한 지자체가 중앙정부만 바라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폐기물 처리는 본질적으로 주민 복지 증진에 관한 업무이며, 지방자치법상으로도 자치업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대체매립지 문제도 당사자인 3개 시·도가 머리를 맞대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싱가포르 사례처럼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환경부 등 중앙정부도 지자체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3개 시·도의 지자체장들은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눈치만 보며 시간만 흘려보냈다가는 ‘폐기물 대란’으로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소라 |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생활환경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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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문체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의 차관 4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차관급 상임위원이 참여한, 그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혁신 의지가 강력하게 실린 위원회다. 여기에 선수 출신을 중심으로 하여 스포츠와 인권 관련 학자와 활동가 등 15인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출범 초기에는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식의 형편없는 마타도어까지 있었는데, 터무니없는 비방은 그 방향이 옳다는 증거라는 니체의 믿음 아래 혁신위는 곧 한국 스포츠의 아름다운 대전환을 위한 각종 권고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자배구 대표 선수로 탈아시아급 ‘거포’로 활약한 후 학자의 길로 들어서서 오랫동안 무명의 여성 선수들을 따스하게 감싸며 길러낸 김화복,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으로 유럽에 진출하여 은하계 최고의 선수들과 용쟁호투를 겨룬 후 유소년 축구의 혁신에 매진하고 있는 이영표, 동계올림픽 모굴스키의 선구자로 선수들의 인권 침해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고 또한 그 개선을 위해 헌신하는 서정화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여기에 프로선수 출신이자 뛰어난 분석과 해설로 잘 알려진, 그러나 실은 ‘공부하는 학생 선수’라는 선진적인 유소년 성장 모델을 일찌감치 실천해온 이용수, 또한 그같은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 이론과 정책을 20년 이상 연구해온 이용식, 류태호, 이대택 등의 참여는, 혁신위가 한국 스포츠의 안과 밖, 그 이론과 현장, 그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가히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갖춘 곳임을 확증한다. 

여기에 스포츠를 인권과 문화의 관점에서 꾸준히 살펴온 전문가 서너 명이 결합했다. 이 또한 오늘날의 스포츠가 지닌 사회적 복합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필수적이다. 더구나 이 혁신위가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이라는, 결코 ‘개인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십년 누적된 폭력 구조의 치명적인 병폐에 의해 출범한 것임을 고려할 때, 지극히 당연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두 달 남짓 활동하는 동안 혁신위의 출범 근거와 그 타당성은 ‘불행하게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폭력 및 성폭력으로 집약되는 스포츠계의 구조적 모순은 흡사 자욱하게 드리워진 미세먼지처럼 복합적인 것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한 혁신은 스포츠계 전체를 관류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대한체육회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여 체육시스템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으로도 확인된다. 대한체육회가 진천선수촌의 안전시설 확충, 훈련관리지침 개선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곧 현실화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국가 차원에서 과감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국가는 수십년 누적된 국가주의와 승리지상주의를 스스로 개선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온갖 부정비리와 끔찍한 인권 유린이 반복되어 왔다. 국가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그래서 때로는 산하기관의 문제인 것처럼 슬쩍 외면해 온 스포츠의 제도, 여건,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 기재부, 교육부, 여가부 등의 차관이 혁신위에 참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체육회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국가가 개입하고 나서는 게 결코 아니다. 대한체육회가 할 일이 있고 국가가 할 일이 있다. 현장의 낙후한 시설과 환경은 대한체육회가 개선하면 된다. 국가는 그보다 더 총체적이며 장기적인 스포츠 정책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모든 정책 진단과 전환은 국가의 의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항간의 ‘이기흥 체제 흔들기’나 ‘엘리트 체육 죽이기’ 같은 말은 듣자마자 귀를 씻을 정도로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악독한 요설이다. 생각해 보라. 국가가 왜 그런 일을 도모할 것이며 더욱이 민간위원들이 왜 그런 험악하면서도 한 줌의 가치도 없는 일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주말도 없이 활동하겠는가. 

혁신위의 목표는 국가에 국가의 의무를 준엄하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누구나 스포츠를 즐겁게 접하여 평생 신체적 즐거움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할 것, 그중 뛰어난 아이들은 인권과 문화와 학습의 결핍이 없는 조건에서 과학적인 시스템과 상호존중의 문화로 길러낼 것, 열심히 훈련하는 바람에 땀방울은 흘릴지언정 뿌리 깊은 폭력의 구조에 의하여 피눈물은 흘리지 않도록 할 것, 수많은 지도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되고 그 처우가 개선되어 스포츠 전문가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으며 살아가게 할 것.

이를 소홀히 하여 숱한 병폐와 비리와 폭력이 발생하였으니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계 전반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통렬하게 재점검하고 장차 ‘스포츠를 통하여’ 한국 사회를 문화적, 사회적, 인간적으로 선진화시켜야 한다. 혁신위는 그런 이유로 출범한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는 아름다운 분야이고 그 지도자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최고 전문가들이다. 이 순간 스포츠는 ‘도구’가 아니라 ‘가치’로 발전하며, 이럴 때 선수와 지도자들은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 진실로 아름다운 사회적 존중까지 받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하여 지금 우리 스포츠계에서 권위와 명망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기꺼이 동의하고 동참해야 한다. 이를 그 무슨 ‘흔들기’나 ‘죽이기’ 같은 고약한 말로 왜곡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수들의 피눈물 위에 앉아서 오랜 구습이 던져준 서푼어치 추악한 권위에 젖어 스스로 혁신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격이니, 그 무엇보다 새로운 스포츠 환경과 더 나은 삶의 안정을 바라는 모든 스포츠인으로부터 반드시 외면받게 될 것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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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민철(가명)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욕설까지 섞어서 하는 틱 장애가 심해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여러 해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고 있지만 차도가 없고, 집에 있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대안학교도 몇 군데 면접을 봤으나 잘 안되었다고. 아이 교육 문제부터 주거, 병원 치료까지…. 울먹이며 쏟아놓는 이야기들은 한 시간가량의 전화 통화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번 만나자 했더니 멀리서 민철이를 데리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긴 이야기를 들은 후, 아이를 보낼 만한 학교가 있을지 묻는 엄마에게 나는 한 농촌마을을 권했다. 사실 아이보다 엄마를 생각해서 한 권유였다. 엄마의 저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이 풀리고 여유를 찾아야, 아이의 어려움도 좀 나아질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안전하게 머물 곳이 있고, 부모 말고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줄 이웃들이 있는 느슨한 공동체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내 얘기를 들은 바로 그다음 날부터 무작정 그 마을을 찾아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이 지인들을 통해 전해졌다. 얼마 후 민철 엄마는 긴 문자를 보내왔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이상하게 이곳에선 그냥 살아질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숨통이 트인다’ ‘가슴이 뻥 뚫린 거 같다’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이는 그대로지만 달라진 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그로 인해 민철 엄마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이와 엄마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학교’가 아니라 ‘알로마더’였다. C J 슈나이더가 쓴 <엄마는 누가 돌보지?>에서는 엄마 외에도 아이의 양육에 중요한 역할을 나누어 하는 할머니, 고모, 이모, 언니, 삼촌 등 알로마더(allomother), 알로페어런츠(alloparents)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교사’, ‘부모’라는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에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돕고자 하는 ‘확대가족’의 마음가짐이 인류를 진화시켜왔다. 

학기 초를 맞아 또다시 돌봄 전쟁이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올해 돌봄의 틈새를 메우는 우리동네키움센터를 94곳에 설치하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교육혁신지구 정책도 가정과 학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교육과 돌봄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사회적 제도’ 이전의 유대감과 연결감이 필요하다. 민철 엄마에게서 보듯, 전문적인 ‘상담가’보다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웃’이 심리적으로 더 빠른 치료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난주, 공간민들레 청소년 열두 명이 입학식을 했다. 그들은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자신들의 고민과 계획을 들려주었다. 부모, 교사, 강사, 그들을 응원하는 어른들이 모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질문하고, 조언하고, 공감했다. 입학식은 세 시간 반을 훌쩍 넘겨 끝이 났다. 

여러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올해 내 역할을 가늠해보았다. 손 내밀 때 언제든 잡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들의 성장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응원하는 ‘알로마더’로서의 역할로 충분하지 싶다. 어쩌면 그것이 교육과 돌봄을 회복하는 ‘교육적 사회 만들기’의 시작이기도 할 것이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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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재지정 평가 문제로 교육계가 시끄럽다. 대표적인 자사고인 ‘상산고’ 재지정 평가 기준 하한선을 전북도교육청이 10점 상향해 80점으로 높인 것에 학교 측이 반발했다. 자사고 폐지를 위한 수순이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자사고 재지정 평가 절차에 돌입하자 자사고 연합 측이 이를 거부했다. 재지정 기준 하한선 70점은 자사고 죽이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사실 70점은 자사고를 만든 이명박 정부 시절 재지정 평가 기준이었다. 이를 박근혜 정부가 60점으로 낮추었다가, 현 정부 들어 MB 정부 시절로 회복한 것이니, 자사고 죽이기 정책인지 의아하다. 장담컨대 상당수 자사고들은 70점 하한선을 통과해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자사고의 심각한 폐해를 생각할 때, 재지정 평가 정책이 과연 이를 바로잡을 적합한 도구인가는 회의스럽다. 재지정 평가 정책은 그 평가를 통과한 자사고는 존속시키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국가적 폐해를 생각할 때 자사고 존속은 ‘약속’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위를 해소해야 한다. 즉 자사고 문제를 푸는 길은 재지정 정책이 아니라 시행령을 고쳐 학교의 지위를 일반학교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자사고 문제의 핵심은 고교체계가 서열화되었다는 것이다. 영재고 시험을 치르고 떨어지면 특목고나 자사고에 지원하고, 거기서 떨어지면 자율고나 과학중점학교 등을 거쳐 최종 탈락자들이 일반고를 지원한다. 말이 되는가? 서울대 떨어지면 연대·고대 입시를 치르고 거기서 떨어지면 ‘인서울’ 대학 입시를 치른 후 지방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떨어진 학생들을 전문대가 받아들이겠다면, 어느 국민들이 수용할까? 그런데 이 희한한 입시 정책이 고교 단계에서는 먹히고 있다.

이 체계에 적응하느라 중학생들이 입시 노예가 되어 버렸다. 중학생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춘기를 통과하는 존재다. 내가 네가 아니고 나인 이유를 찾는 시기, 어른이 아닌데 어른 대접 해달라고 요구하는 질풍노도의 존재들이다. 그 터널을 통과하며 자기를 발견하고 세우는 시기다. 어른이 아니니 너희들에게 그 자유를 줄 수 없다고 해도 소용없다. 누르고 감독하는 존재가 아닌, 자식의 친구로 그 위치를 조정하지 않으면 자식의 마음을 만날 수 없다. 그 준엄한 시기에 부모들이 품안에 움켜쥐었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자식들에게 “너는 자유인이니, 네 판단과 감정을 존중하겠다”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관계의 전환을 시도할 때다. 그 시기를 그렇게 거쳐야 자식은 주어진 자유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며 실패 속에서 성장한다. 부모 역시 그래야 자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진로는 ‘결정’할 시기가 아니라 다만 ‘탐색’할 시기일 뿐이다. 

그 엄중한 때에 허다한 부모들이 임박한 고입 걱정에 얼어붙어 그나마 있던 자유마저 회수하며 아이 목을 잡고 입시 트랙을 달리게 한다. 부모가 열어준 여유의 공간 속에서 퇴행과 방종의 사춘기를 거쳐야, 자식은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남의 미래가 아닌 내 미래를 사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 귀한 시도가 모두 억제된 채 경주마로 달리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대입 경쟁이야 어쩔 수 없다 치자. 고입 경쟁만큼은 막아야 한다. 재지정 평가나 고교 입시만 손질할 일이 아니다. 속히 고교체계도 바로잡아야 한다.

<송인수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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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 비나 바람을 기다린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날려 보낼 정도의 비와 바람을 보기도 쉽지 않다. 지난 20일,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전국적으로 내렸다. 기대했던 것만큼 미세먼지를 씻어내진 못했지만, 봄 가뭄만 생각해도 정말 단비였다. 바짝 마른 땅을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얼마 전 미세먼지 대책으로 잠시 화제가 되었던 ‘인공강우’가 생각났다. 과연 이런 정도의 비가 인공강우로 가능할까? 인공강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 기술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개발된 놀라운 기술의 쓰임새를 본다면 이런 짐작도 무리는 아니다. 예상 못한 어떤 결과가 생길지도 모른다. 비 온 후 며칠간, 꽃샘추위를 몰고 온 바람 덕분에 비교적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미세먼지를 날려 보낼 정도의 바람도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그 기술 또한 재앙이 될 확률이 높다. 

눈부신 발달을 거듭해왔지만, 인간의 기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정 목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우리는 잘 모른다. 전기를 생산하려고 만든 석탄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이 될지 몰랐다. 기술의 부산물들이 서로 만나 다시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우리는 잘 모른다. 기후변화가 대기 정체를 일으키고, 대기 정체는 비와 바람을 약화시켜 미세먼지 문제를 악화시킬지 몰랐다. 인간의 기술은 자연 질서를 쉽게 훼손하지만, 훼손된 질서의 복원에는 무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기술로 인한 부작용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문제가 될 때까지. 아무리 놀라운 기술을 동원한다고 해도, 무모하고 미련한 짓이 분명하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도 국내 배출원의 15% 정도를 차지한다는 석탄발전은 좀처럼 줄어들 기세가 아니다. 노후 발전소 10기는 폐쇄키로 했다지만, 7기가 추가 건설 중이라 2030년까지 석탄발전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발전소의 추가 폐쇄 계획은 없고, 30기 이상의 발전소는 성능 개선으로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무엇이 이렇게 석탄발전소의 폐쇄를 가로막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익은 포기할 수 없다는 집착이나 타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미세먼지의 배출원은 우리 안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핵폐기물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으니 임시저장소를 더 만들자는 발상도 원인은 놓아둔 채 문제만 해결해보자는, 아니, 일단 문제를 피해보자는 태도다. 핵폐기물 문제의 해결책은 배출원인 핵발전소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 배출원인 핵발전소는 건드리지 말라는 ‘탈원전 반대’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이렇듯 집요하게 탈핵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핵폐기물의 진짜 배출원도 우리 안에 있지 않을까? 4대강 문제의 근원은 16개의 보에 있으니, 해결책도 보 해체에서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왕 만들었으니, 어떻게든 활용하자는 주장도 원인은 그대로 두고 문제를 무마해보자는 미봉책이다.

미국 대학의 한 연구팀이 대기에 뿌린 미세입자로 햇빛을 차단해서 기후변화를 막는 연구를 한다고 한다. 이 연구도 원인은 놓아둔 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술이 지구에 미칠 다른 영향은 알 수가 없다. 창의적인지 모르겠지만 무모하고 미련한, 오만하고 섬뜩한 발상임은 분명하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대면하는 것은 분명히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리 환영받지도 못하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피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부터 근원을 ‘발본’하고 ‘색원’하지 않는 한, 진정한 문제 해결도 변화도 없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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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날이 잦고, 장기화되고 있다. 물론 중국 탓도 있으나 기후변화로 ‘에어커튼’ 효과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배출원의 미세먼지 유발로 마치 밀폐된 온실에서 연탄을 때는 것처럼 증폭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미세먼지 증폭효과가 가시화된 만큼 주요 배출원인 발전과 수송 부문의 근본적 개선이 절실하다. 특히 석탄발전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무려 40%를 차지하며 미세먼지 유발물질의 주요 배출원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고농도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에 한해 몇몇 석탄발전소의 출력을 약간 줄이는 것에 머물고 있다. 석탄화력을 퇴출시키는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정치권에서 석탄화력발전을 원전으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고립된 국내 전력망에서 출력 조절이 안되는 원전을 더 늘리자는 주장은 마치 기어가 고장난 자동차로 고속도로에 들어가라는 것과 같다. 사실 화력발전소들이 매 순간 전력 수요 변화에 따라 자동출력조절을 하며 전력망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간헐적인 재생에너지의 증가 추세에 더해 원전까지 더 늘어나면 전력망 유지가 매우 어려워진다. 재생에너지의 전력 공급 비중이 20%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멀쩡한 ‘디아블로’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배경이기도 하다.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작대교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에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따뜻한 공기가 서해바다를 지나며 만들어진 안개가 서해안과 내륙지역에 넓게 깔렸다. 포근한 날씨 속에 당분간 미세먼지도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_ 연합뉴스

반면 가스발전은 석탄 대비 적은 미세먼지 배출과 높은 기동성으로 단기간에 석탄발전을 대체할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독점사업자인 가스공사로부터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해야 하는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가스발전으로 석탄발전을 대체할 수 없다. 사실 1980년대부터 정부는 신속한 도시가스 보급을 위해 가스공사로 하여금 주택용 가스비용의 상당량을 한전에 전가시키도록 해왔다. 덕분에 국내 주택용 가스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9위로 저렴하고 도시가스 보급률은 세계 3위이다. 하지만 발전용 가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다. 때문에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해외에서 가스를 직접 도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정부 당국은 불허하고 있다. 도시가스 보조가 줄어들면 뒤따를 정치적 부담 때문이다. 

수송부문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국내 66만여대의 중대형 화물차는 나머지 2200만여대의 자동차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의 미세먼지를 배출한다. 정부가 20년 가까이 이들 중대형 화물차에 연간 1조6000억원대의 유가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국내 트럭의 화물수송 분담률이 OECD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커진 결과다. 일각에서 경유세 인상으로 미세먼지를 줄이자고 하지만, 경유세가 오를수록 화물차 유가보조금도 자동 인상되어 저감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 공허한 주장이다.

결국 정부는 과거의 관행 때문에 최대 미세먼지 배출원이 줄어들지 않게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했다면,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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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름들은 추억과 결부돼 있다. 미국 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이름이 AT&T 파크에서 오라클 파크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읽고 얼마간 섭섭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AT&T 파크는 직접 가 본 첫 메이저리그 야구장이었다. 그날 샌프란시스코 선발투수는 지금은 은퇴한 맷 케인이었고 상대팀 LA 다저스의 선발은 류현진이었다. 우리 일행은 AT&T 파크 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고,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가 끝난 후엔 도시의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30여분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AT&T 파크는 우리 일행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했다.

이방인인 나조차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니 샌프란시스코 열혈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얼마나 컸을까. 샌프란시스코 구단이 통신업체 AT&T에 구장 명명권을 판매한 것이 2006년이었다.

21일 대전시청 대회의실 스크린에 대전 새 야구장 부지 결과 발표를 알리는 화면이 떠 있다. 대전 _ 연합뉴스

지난해까지 13시즌 동안 샌프란시스코는 세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배리 본즈가 통산 756호 홈런을 치고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31년 만에 갈아치운 곳도 2007년의 AT&T 파크였다.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는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에 20년간 구장 명명권을 양도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2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선수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기록과 명장면을 생산할 것이고, 팬들은 저마다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을 새롭게 쌓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AT&T 파크라는 이름이 팬들에게 불러일으킬 기억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야구장 하나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대와 아쉬움이 공존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7년 폐장된 동대문야구장이 대표적이다. 이 야구장은 1982년 프로야구 역대 첫 개막 경기가 열렸던 곳이고 프로야구 출범 전에는 고교 야구의 메카였던 곳이다. 그 시절 이곳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동대문야구장이라는 이름은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는 특별한 힘을 갖는다. 2013년까지 프로야구 KIA의 홈구장이었던 광주 무등구장, 지난해부터 ‘이승엽 야구장’으로 불리는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도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최근 개장한 ‘창원NC파크 마산구장’의 명칭 논란은 안타깝다. 야구장을 뜻하는 영어 ‘파크’ 뒤에 또 ‘구장’이 붙은, ‘역전 앞’처럼 문법적으로도 어색한 이름이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부터 떠올리게 만들어서다.

창원시는 새 구장 명칭을 둘러싼 이견을 조율하고자 명칭선정위원회를 발족해 ‘창원NC파크’로 최종 결론을 도출했다. 하지만 창원시의회는 명칭을 ‘창원NC파크 마산구장’으로 변경한 조례 개정안을 처리하며 위원회 논의 결과를 헌신짝처럼 폐기했다.

마산은 2010년 창원에 통합돼 창원시 2개구의 이름에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NC의 과거 홈구장인 마산구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구 마산지역 정치인들이 새 구장 명칭에 ‘마산구장’을 넣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마산의 이름을 야구장 간판에 박제하고 이를 의정활동보고서에 한 줄 넣어야 구 마산지역 유권자들의 향수와 감정을 자극하고 표심을 잡는 데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 구장의 이름은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숟가락을 얹기 위해 언성을 높이고 핏대를 세우는 투쟁의 장이 돼 버렸다.

창원이 야구장 이름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 사이 대전의 신축 야구장 부지가 결정됐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대전 역시 부지가 결정되기까지 만만찮은 과정을 겪었다. 구의회 의원들이 야구장 유치를 위해 삭발했고, 구청장 비서실장이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 야구장은 새로운 간판을 달고 첫 경기를 치르기까지 어떤 기억을 대전시민들에게 남기게 될까. 창원의 선례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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