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말이 어느새 일상어가 되었다. 거리 두기는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국경의 빗장을 잠그는 등 문단속에 들어간 나라가 벌써 여럿이다. 국가 간 거리 두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공간의 압축을 추구하며 고도의 교통·통신 기술로 세계 전체를 빠르고 긴밀하게 연결해온 세계화인 듯하다. 국제적 거리 두기는 세계화와 정반대 움직임을 뜻한다.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항공, 여행, 관광, 숙박, 식당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파편이 튀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실물경제가 출렁대니 금융경제도 휘청댄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찰스 페로가 주창한 개념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를 떠올린다. 정상 사고는 “상호작용의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이라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고”를 가리킨다. 시스템 속성상 예상할 수는 없어도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정상적인 사고다. 세계화의 전형적 속성이 고도의 상호작용과 긴밀한 연계성임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재난은 세계화의 현실에서 불가피한, 일어나는 것이 정상인 그런 사고다.  

정상 사고는 사소한 발단으로 시작되어 거대한 사태로 내달린다. 코로나19가 어떻게든 인간에게 옮아간 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우연히 일어난 나비효과가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나비효과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꼭 발단일 필요도 없다. 정상 사고는 안전장치로 막을 수 없다. 안전장치를 설치할수록 복잡성과 연계성이 늘어나 사고 발생의 가능성만 높아진다. 답은 긴밀한 연계를 느슨한 연계로 바꾸는 근본적 전환이다. 세계화에 코로나19가 주는 경고는 분명하다. 세계화 체제에서 세계적 재난은 불가피하다. 대책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세계화가 벗어나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할 길은 ‘지역화’다. 세계화로 가장 세계화된 것은 자본의 전 세계 이동이 자유로워진 경제다. 자본의 논리를 구현하는 최적의 환경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노동환경은 혹독해졌고 자연환경은 황폐해졌다. 세계화 경제는 지역 생산이 가능한 것도 이익만 나면 지구 반대편에서 수입하는 ‘미친’ 교역도 불사해왔다. 일정 수준의 자급자족을 기초로 하는 지역화는 불필요한 국제 교역을 없앨 것이다. 지역화로 상호의존의 규모가 세계에서 지역으로 줄어들고 긴밀한 연계가 느슨한 연계로 바뀌면 도미노로 인한 세계적 재난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지역화는 경쟁과 지배가 아닌 협력과 연대를 우선적 가치로 삼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 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온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연결 통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동물의 개체수를 변화시켜 감염병 발생에 영향을 준다.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다른 곳에서 온 바이러스가 쉽게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도 병원균의 번식에 적합한 온상을 마련한다. 세계화 경제는 지역 환경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지만, 지역화 경제는 그렇지 않다. 코로나19로 시작된 거리 두기를 세계화를 지역화로 바꾸는 분수령으로 삼아야 한다.

<조현철 |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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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인천국제공항과 영종도를 특별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공항 및 항만 노동자들에 대한 한시적 해고 금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서 지난달 계약직 노동자 50여명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감염병 검체를 채취하는 임상병리사 10여명, 간호조무사 20여명, 조리원 21명에게 4월에 계약이 끝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병원 측은 “노동법과 관행에 따라 한달 전 계약 만료를 알린 것”이라며 휴업 중인 조리원들에겐 월급 70%를 지급해왔다고 밝혔다. 자체 수입은 없고, 정부가 이달 중 주겠다고 한 ‘손실 보상’도 구체적인 공문은 받은 적 없다고 했다. 주름 깊어진 경영의 직격탄을 밑바닥 계약직들이 먼저 맞은 셈이다. 방호복 입고 땀 흘리던 그들이 받았을 허탈감, 비슷한 처지의 병원 비정규직들이 삭일 아픔이 작지 않을 터다. 그러지 않아도 의료진은 지금 지쳐가고 있다. 병원 측이 1일 노조와의 협상 끝에 재검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전담병원에 약속한 손실 보상을 서두르고, 병원은 고용 유지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1일 ‘코로나19 피해 상담 사례’를 공개하는 자리에서도 다급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항공 수하물을 분류하는 하청회사 노동자는 지난 보름 새 ‘급여 70%를 주는 6개월 유급휴직’→희망퇴직 신청→‘4월만 유급휴직, 5월부터 무기한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통지가 이어졌다고 했다. 대리운전 노동자는 “코로나19보다 생계 위협이 더 무섭다. 코로나 걸려서 자가격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가격리돼 생계지원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서로 눈물나는 얘길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하물 노동자는 정부 근로감독을 바랐고, 특수고용노동자는 법과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바꿔달라고 호소했다.

실물경제 한파에 후행하는 게 고용위기다. 코로나19가 번지는 미국에선 3월 둘째주 28만명이던 실업수당 신청자가 셋째주 328만명으로 12배 늘었다. 미국보다 해고 요건이 까다로운 한국도 2월 실직자는 29%나 급증했다. 4월 중에 발표될 3월 숫자는 전문가들도 얼마나 더 치솟을지 가늠키 어렵다고 한다. 한국에도 저생산-고실업-저소비의 경기침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휴업수당 상향, 4대 보험료 감면 식의 응급처방을 넘어 엄습해오는 해고 한파를 막는 데 선제적 대책과 재정을 집중할 때가 됐다. 

미 동부 애팔래치아산맥 정상을 따라 755㎞의 ‘블루리지’ 산악도로가 놓여 있다. 환상적인 드라이브·관광 코스가 된 이 길은 1930년대 실직 노동자들이 닦았다. 대공황을 넘긴 뉴딜의 중심에 사람과 일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살리고 일자리를 지켜야 경기 회복도 빨라진다. 정부도 기업도 이 경험칙과 해법을 새기며 코로나19 역경을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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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어야 한다!” 100년 전 근대 도시 운동을 이끌었던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말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의 도시들은 도시에 나무를 심고 공원을 조성해왔다. 현재 서울의 1인당 공원 면적은 16.80㎡다. 런던의 33.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뉴욕의 14.7㎡와 유사하며 도쿄의 4.5㎡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1963년 서울의 1인당 공원 면적은 7.7㎡에 불과했다. 그동안 확보한 공원녹지는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녹색의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서울의 여유로운 공원녹지에 대한 인상과 수치에는 착시효과가 있다. 자연공원과 하천변을 제외하면 1인당 공원 면적은 11.82㎡로 줄어든다. 게다가 오는 7월 미집행공원이 실효(일몰)됨에 따라 현재 공원 면적의 79%가 다른 용도로 개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1인당 공원 면적은 2.5㎡ 정도로 쪼그라든다. 단순히 수치의 착시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공원 분포를 보면 지역적 불평등이 크다. 몇몇 대형 공원이 있어 공원 전체 면적이 커 보이지만 실제로 걸어서 넓은 공원을 만날 수 있는 동네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여전히 우리는 공원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미집행공원을 살리기 위한 예산과 시간을 확보해야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소외된 지역을 돌아보고 남아 있는 공간적 가능성을 시민과의 협업을 통해 찾아내야 한다. 학교와 등굣길을 녹색의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옥상과 벽면을 새로운 형태의 녹지로 바꿀 수 있다. 방치돼 있던 도로변의 거대한 빈 땅들을 돌아보고 과감히 도로와 철도를 지하화해 경의선 숲길과 같은 공간을 더욱 늘려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가 진행 중인 ‘3000만그루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어느 도시 부럽지 않은 공원녹지를 확보하면 나무를 그만 심어도 될까? 세계 최고의 공원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런던은 2019년 ‘국립공원도시 런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런던의 목표는 도시 내에 더 많은 공원, 더 좋은 공원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이는 도시 전체를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즉 도시의 100%가 공원인 도시를 구상하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국립공원도시’는 개념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공원을 주거와 다른 공간으로 나누기보다는 주거를 공원 안의 집으로 보자는 개념이다. 이런 발상은 전체가 공원인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도시, 전체가 학교인 도시로 확장될 수 있다.

런던이 제시한 공원녹지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나무를 다시 심어야 한다.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푸르른 도시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일상이 비일상적인 염원이 되어버린 시기에, 꿈처럼 다시 피어난 벚꽃과 목련 아래서 마스크를 쓴 채 연녹색 신록을 만져보려는 아이의 손이 왜 우리가 이 순간에도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김영민 |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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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아메리카>에서, 강인한 신체에 몰두하는 미국 사회의 욕망을 읽었다. 이유 없이 뛰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사상가가 보기에 ‘뉴욕 마라톤은 물신주의적이며 공허한 승리의 망상’이었다. 레이건의 애국주의가 지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나는 해냈다’고 외치는 1만여명의 마라토너에게서 강력한 물신주의를, 그리고 피트니스센터에서 뛰는 사람들에게서 ‘창백한 고독’을 읽었다.

글쎄, 우연히도 나는 1995년 11월, 센트럴파크에 있었다. 뉴욕 마라톤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회가 시작된 지 예닐곱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가 본 주자들은 매우 느린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인도 있었고 휠체어 장애인도 있었고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의 환한 표정에서 ‘물신주의’나 ‘고독’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센트럴파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우린 할 수 있다’는 캠페인도 한편 압도적인 미국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시민들의 소박한 성취에 보내는 따스한 찬사로 들렸다.

한 개인의 신체 활동은 스스로의 건강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집합적 사회 행위다. 특히 큰 사태를 겪고 나면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는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미국 사회에서 ‘강인한 신체 신드롬’이 크게 유행했듯이, 사태의 한복판에 뚫고 나온 자신의 몸,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된 자신의 육체, 마침내 신선한 공기 속으로 걸어가게 된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사람들은 더욱 사랑하게 된다. 

우리의 경험으로는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가 그 증거다. 조직은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공포스럽게 경험한 이후 사람들은 마라톤을 하게 되었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평의 험준한 대부산에서 유명산으로 달렸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아마도, 현재 우리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대로, 5월이면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짓눌렸던 몸과 마음의 긴장을 털어내기 위해 야외 활동을 많이 할 것이다. 그때, 5월의 따스한 봄바람을 즐기며 걷거나 달릴 때, 더불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게 있다. 한 개인의 건강한 신체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 전체가 건강한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미증유의 혼란 속에서도 비교적 차분히 소박한 일상을 견지하면서 나름대로 우애를 나누고 있다. 사태의 종식 이후, 우리가 더욱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연대다.

그것의 실질적인 구현에 있어 스포츠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신체를 보다 더 건강하게 단련하면서 미증유의 사태를 벗어났다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 전체가 그러한 마음 상태를 온전히 공유해야 한다. 아픈 사람, 약한 사람, 뒤처진 사람을 서로 돌보고 배려하는 사회 관계망의 재구성! 바로 그 소중한 일상성의 회복에 스포츠는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전국에 수많은 인프라가 있고 스포츠 전문가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가치를 국가 정책을 통해 구현하겠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1대 총선에 임하는 주요 정당의 정책을 보면, 스포츠 정책은 대부분 후순위로 밀려 있고 그것도 오래된 자료집에서 슬쩍 표지갈이만 한 듯 천편일률적이다. 스포츠계의 숙원 사업인가 봤더니 실은 지역 건설 사업에 가까운 것인가 하면 아예 스포츠 정책 자체가 포함되지 않은 정당도 있다. 후보들 중에서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와 미래적 가치를 표명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물론 현실 여건에서 스포츠가 국가 정책의 앞에 있기는 어렵다. 보다 더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경제, 노동, 복지 등이 우선 중요하다. 거꾸로 말하면, 스포츠는 아직 보편의 의제가 아니며 어떤 점에서는 특정 직능 분야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와 그 아름다운 영향력이 공기처럼 퍼질 텐데, 그에 대한 관점이나 정책이 태부족한 상황, 그것이 안타깝다. 

아직은 한가로운 소리지만, 대규모 전염병에 대비하여 사전에 방역체계를 구축했듯이, 코로나19 이후의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한 삶을 위해 스포츠와 사회를 다양하게 재구성하고 연결하는 체계를 상상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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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시가 청계천·을지로 지역 재개발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재정비사업을 재생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세운재정비촉진사업은 다수 상인들의 고통을 담보로 시행사만 이득을 보는 잘못된 사업이었기 때문에, 공공성을 위해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오랫동안 일해온 세입자들만이 아니라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건물주조차도 원하지 않는 사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됐다면 이미 행정 절차가 진행됐더라도 당장 멈추고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금의 대책은 말 그대로 방향 전환일 뿐이고,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는 개발사업이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업생태계 활성화에 대한 구체적 방안 없이, 철거되는 업체들을 인근의 대체부지로 이주시킨다고 한다. 심지어 재개발구역 해제로 인해 발생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방지책도 없다. 이렇게만 보면 결국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고 주변 지역은 민간에서 알아서 개발하게끔 두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을지로에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허용하고 남은 비좁은 땅에 아파트식 공장을 짓는다면 과연 산업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는 대체부지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현 골목의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는 리모델링형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산업생태계를 살리고자 했다. 한발 물러나 재개발을 인정하고 대체부지를 받아들인다고 한들,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한 우리에게 대체부지는 의미 없다.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오랜 협업관계로 이루어진 제조 특화 지역이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60년 동안 이 지역에서 거래를 하면서 축적된 유통 경로와 신뢰 관계가 지금의 협업체계를 형성했다. 정밀 가공을 중추로 해서 공구, 철물, 기계부품, 조명, 귀금속, 시계, 인쇄, 전자부품 등 여러 제조·유통 업종들이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시장을 이끌어왔다. 이렇게 특화된 점포 하나하나가 특수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한 점포만 사라져도 지역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산업생태계의 구조도 이해 못한 채로 우선 이주부터 하라고 한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의 팔과 다리를 잘라서 다른 곳에 붙이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가든파이브 사태가 반복될까 우려된다. 

이곳은 제조업 르네상스의 발상지다.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산업생태계는 맞춤형 소량 생산에 특화되어 있고, 자원과 정보의 유통과 접근이 용이한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기업 및 공공 연구소, 학교 연구실, 창업가, 예술가 등 창의적인 생산활동을 하는 곳에서 많이 이용한다. 이 같은 산업생태계가 파괴되면 제조업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산활동 전체를 떠받치고 있던 토대가 무너진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방향 전환의 용기를 보여준 만큼, 서울시가 상인들과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고민과 연구를 진지하게 하길 바란다. 재개발로부터 산업생태계와 상인들의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 마련은 지역 주체인 상인들과 머리를 맞댈 때에만 가능하다. 도시 제조업의 미래를 위해 서울시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조무호 | 청계천생존권사수비상대책위원회 정밀지구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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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팬은 봄부터 ‘가을야구’를 기다린다. 가을야구는 6개월간의 정규시즌 경기에서 상위권에 든 팀들이 한 해의 챔피언을 다투는 포스트시즌 경기들을 칭한다. 보통은 10월에 열리는데 경기가 치열해지면 11월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프로야구가 성행하는 한국·미국·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11월12일이 역대 가장 늦게 끝난 날로 기록돼 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문에 프로야구 일정이 밀린 2018년 일이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로 일시 중단을 겪은 2001년 챔피언결정전(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11월4일에 끝난 게 메이저리그 100여년 역사상 첫 11월 가을야구였다.

‘가을의 클래식’ ‘가을의 전설’로도 불리는 가을야구가 올해는 크리스마스에 열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스포츠가 중단된 와중에도 재개 방안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메이저리그 쪽에서 나온 얘기다. 슈퍼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공식 제출한 의견이라 하니 우스갯소리로 취급되진 않을 것이다. 6월1일 또는 7월1일 정규시즌 개막, 12월에 포스트시즌을 시작하고 최고 흥행 이벤트인 월드시리즈를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개최하자는 게 보라스의 제안이다. 한겨울 추위 우려에 대해 “미국 내 8개 돔구장과 따뜻한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열면 된다”고 그럴싸한 대안까지 내놓았다. 류현진이 속한 토론토 구단의 로스 앳킨스 단장은 최대한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7이닝 더블헤더(연속 경기)’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보탰다. 국내에서도 야구가 겨울까지 이어진다면 고척돔에서 한국시리즈 전 경기를 치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크리스마스까지 경기가 이어지면 내년 시즌은 언제부터 시작하느냐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발상을 바꾸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 야구는 9회까지 한다, 가을야구는 가을에 한다, 홈팀·원정팀 경기장에서 번갈아 치러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다. 2020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고, 내년 여름 개최가 여의치 않으면 봄에 열릴 판이다. ‘가을야구’라 해서 크리스마스에 열리지 말란 법도 없다. 위기 때는 상식과 관행을 뛰어넘는 게 필요하다. ‘징글벨’과 함께하는 야구, 어쩌면 대박이 터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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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잠식한 피눈물 나는 현실 속에서도 역설적이게 매년 이맘때 뉴스를 달구던, 우리 사회의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고질적 문제 하나가 사라졌다. 교통량 감소로 이산화질소 배출이 줄어드니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그간 유행처럼 나타난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저감정책이 얼마나 엉뚱한 것이었는지 돌아보자. 

2017년 5월30일 산림청은 ‘도시숲은 미세먼지 잡아먹는 하마’라는 제목으로 도시숲이 미세먼지를 40.9%나 저감시킨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숲이 미세먼지 저감에 탁월하다고 호도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였다. 정작 숲을 얼마나 만들어야 40%를 줄여주는지에 대한 기초적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은 엉성하기 그지없는 보도자료 하나로 말이다.

산림청은 자신들이 만든 제목 하나만으로 이듬해부터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미세먼지 저감 명목의 각종 사업을 추진한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단초를, 그것도 가장 신뢰해야만 하는 정부가 제공한 것이니 이 보도자료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자료를 보면 이 40%의 수치는 단순히 서울 동대문구 도심 한가운데와 홍릉숲 한가운데에서 각각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의 차이를 비교한 것에 불과하다. 숲속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가 낮으니 숲이 미세먼지를 저감시킨다고 발표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냐고? 숲에는 미세먼지 발생원이 없지 않은가? 사막에 미세먼지 농도가 낮으니 모래가 미세먼지 저감에 탁월하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함께 배포한 첨부자료로 이 자료가 얼마나 허황된 보도자료인지 확인할 수 있다. 첨부된 자료에는 ‘1㏊의 숲은 연간 총 168㎏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한다고 했다. 이 수치만 보면, 일반 성인 몸무게의 두 배가 넘는, 엄청난 양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교할 수치가 없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비교할 데이터가 필요하다.

간단하게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총 대기오염물질량과 비교해보자. 국가미세먼지정보센터에 따르면 2016년에 우리나라가 배출한 대표적 대기오염물질 8종류의 총합은 무려 470만t에 달한다. 비교할 수치가 생겼으니 이제 숲을 만들어 대기오염물질 저감효과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국토에서 산림과 녹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약 68%이고 경작지가 21%이다. 초지와 습지, 하천이 약 5%가 조금 넘으니, 국토 중 녹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면적은 6%가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건물과 도로로 개발된 지역이다. 자 그렇다면 국토 전체를 숲으로 만든다면? 이렇게 해도 오염물질 총량이 그대로라고 전제한다면 2% 정도의 대기오염 개선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2019년 사업비 600억원을 들여 만든 숲은 약 60㏊이다. 계산하면 약 10t의 대기오염물질을 추가로 흡수할 수 있었고, 이는 우리나라 총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의 0.0002%가 된다. 대기오염물질 개선이 획기적인가? 1000년을 투자해도 정밀 측정기 오차범위 이내이다.

차라리 지금도 잘려지는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면? 정말 미세먼지 저감을 목적으로 한다면 도심에서 간벌이라는 명목으로 나무를 잘라내는 사업부터 하지 않는 게 우선 아닐까? 예산을 쓰지 않으면 대기오염물질은 훨씬 더 많이 줄어든다. 잘못된 정보로 세금을 쓰기 위한 사업을 만들지는 말자.

<홍석환 |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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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프리랜서’라는 외국어의 세련된 명칭이 영화 스태프의 직업을 규정하는 가장 그럴 듯한 말이라 생각했다. 현장의 많은 스태프들은 프리랜서로 불리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고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프리랜서의 이미지는 자유로운 활동과 고수익이었다.

그러나 촬영 일정은 제작사가 정한 대로 진행되었고 습관처럼 했던 24시간 촬영은 스태프들의 자유로운 시간을 잊게 했다. 일을 하면서도 줄어드는 통장 잔액은 고수익으로 포장된 프리랜서를 달리 보게 했다. 영화 스태프들은 프리하게 일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프리랜서로 ‘퉁쳐’졌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근로계약은커녕 계약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영화를 포함해 콘텐츠를 만드는 이른바 문화산업은 어찌됐건 버텨야 하는 일이 최선인 것으로 알았다.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으니 최저임금보다 못한 임금을 받아도, 24시간 일하는 것이 반복되어도, 쉬는 날이 없어도 감수해야 하는 일은 과연 내일도 모레도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현장 스태프들의 이런 회의와 달리 좋아서 하는 일이니 감내해야 한다는 말에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는 책임론이 덧입혀지며 ‘프리랜서’라고 그럴싸하게 명칭되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특수한 존재로 차별되어 왔다. 종합소득세 신고 무렵에야 내가 낸 3.3%의 세금이 인적용역사업자에 해당되는 사업소득세임을 알게 되고,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부여된 사업자 지위는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프리랜서라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프리(free)하지 않은 현실이 가려졌다. 

CJB청주방송의 고 이재학 PD 역시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해 왔고 그 이름으로 가려진 차별과 혹사를 참고 견디다 못해 처우 개선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해고로 답했다. 이 PD는 부당한 해고였음에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해고가 아니며 부당하지 않다는 주장에 맞서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송을 위해 꿈을 키워왔고 방송을 만드는 일을 즐겨 했던 그에게 더 이상 이 현장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더는 계속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회사는 책임을 피하고 아이템 선정, 섭외, 구성, 촬영, 편집 등 정규직 PD가 해왔던 일을 똑같이 해오면서 수십편의 프로그램을 만든 노동자에게 정규직의 대우는 없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방송에 매진했음에도 증명을 해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회사에 치가 떨렸을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로 취급당하며 최저임금도 못 받고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것이 서러웠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사용종속성’이라고 한다.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확인해내는 일이다. 자유롭지 않은 사정은 계약서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하고 있는 사정을 제대로 확인해야 얼마나 가려져 있었는지 알게 된다. 방송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사용종속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려져 왔던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가려지고 특수할 것 없음에도 특수하다는 말로 은폐되어왔던 것을 드러내야 한다. 오랫동안의 꿈을 좇아 PD가 되었음에도 방송을 만드는 일을 더는 계속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더 이상 회사의 편리에 따라 쓰이고 버려지는 노동자가 존재해선 안된다. 우리의 노동은 하나도 특수할 것이 없다.

<안병호 |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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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원들이 23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사 협력사 및 하청업체 직원들이 무급휴직 혹은 정리해고를 강요받고 있다”며 “인천공항 및 영종지역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고 인천공항 전체 노동자에 대한 한시적 해고금지를 선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경기침체 공포가 커지면서 고용시장에서 대량해고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통계청의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이미 도·소매업 취업자수가 10만6000명 감소했다. 취업자 중 일시 휴직자는 14만2000명 증가했다. 10년 사이 가장 큰 증가폭으로, 휴업·휴직·실직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이달 셋째주 코로나19 관련 해고·권고사직 제보 건수가 첫 주에 비해 3.2배 증가했다. 시장에선 6조5000여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는 ‘4월 위기설’까지 나돈다. 소비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 중 자금사정이 나쁜 기업들이 ‘돈맥경화’로 줄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재계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의 법인·상속세율을 내리고, 노동자 해고 요건은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노동자와 함께 이겨나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기업 먼저 살겠다는 발상이 유감스럽다. 하지만 그 위기감과 절박감에는 공감한다. 한시가 급한데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니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지난 며칠간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를 보면 소극적 자세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휴업수당이나 재난기본소득 도입 등 지원 논의가 더디기 짝이 없다. 현장에서는 벌써 아우성인데 여전히 재정건전성 타령을 하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9%로 독일의 5분의 1 수준, 미국의 절반도 안된다. 프랑스·스웨덴 등이 유급휴가 비용을 정부가 보장하고, 미국은 630여조원을 국민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균형 재정을 고집해온 독일도 200조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준비 중이다. 해외 주요국이 사태 해결을 위해 중장비를 총동원하는데 우리 당국은 삽질만 하는 격이다. 

코로나19 공포는 소비·활동을 위축시켜 실물위기를 불렀고 금융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 체결로 진정 기미를 보이던 금융시장이 23일 다시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대량 실직이 현실화하면 피해는 예측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시장 안정대책과 함께 소비 자체가 어려운 취약계층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실행 가능한 긴급복지지원제 확대는 물론 재난기본소득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일을 잠시 멈추어야 하는 노동자의 유급휴가비 지원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소비가 살아나고 기업도 살 수 있다. 기존의 제도뿐 아니라 새로운 발상으로 대책을 내고 신속하게 집행해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친 뒤 사후약방문을 들고 나서면 무슨 소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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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사면서 내 용기를 내밀었다. 직원은 ‘이거 실화냐’는 얼굴로 반찬통에 케이크 담을 거냐고 확인한다. 넣기 편하라고 입구가 큰 용기로 준비했지만 진상 손님이 된 것 같다.

플라스틱 프리 실천은 용기를 싸들고 다니는 노가다를 필두로 신속·민첩함까지 갖춰야 한다. 미리 체크카드를 꺼내 만발의 준비를 했건만 하필 잔액 부족으로 다른 카드라도 찾는 순간, 이미 비닐봉지에 젓가락과 냅킨과 플라스틱 숟가락이 담겨 나온다. 

이 경우는 그나마 낫다. 마스크가 품절되는 속도로 재빠르게 일회용품을 거절하고 내 용기를 내밀면 쓰레기가 안 나온다. 나는 여행지에서도 밥을 해 먹는 편인데 유럽에선 늘 감탄한다. 마늘 1통, 양파 2개, 감자 3개 등 웬만한 채소와 과일을 죄다 낱개로 판다. 심지어 호박을 원하는 무게만큼 잘라준다. 딸기와 블루베리처럼 무르기 쉬운 과일은 종이계란판 상자에 담겨 있다. 거기서도 세제, 화장품 등 공산품은 플라스틱통에 담기지만, 농산물은 껍데기 없이 알맹이만 파는 경우가 흔하다.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구입할 수 있으니 음식물 쓰레기도 남지 않는다. 국내에선 노가다와 신속·민첩함으로 아무리 ‘노오력’해도 쓰레기가 나온다. 대부분의 농산물이 비닐에 싸여 있거나 몇 개씩 묶음포장돼 있다. 브로콜리는 랩에 싸여 있고 다 못 먹고 냉장고에서 썩어갈 가지가 5개씩 비닐봉지에 담긴 식이다. 먹고 사는 자체가 지구에 민폐랄까.

그래서 ‘쓰레기 덕후’들이 모였다. 약 20일간 40여명의 쓰레기 덕후들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대형마트부터 전통시장까지 총 64곳에서 농축수산물의 포장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대상은 쌀, 양파, 당근, 파, 돼지고기, 고등어 등 보편적인 식재료 40품목, 총 2560개 제품이다. 조사 결과 무포장 제품이 포장된 제품보다 많은 경우는 17.5%로 감자, 당근, 무, 시금치, 고구마, 오렌지, 바나나뿐이었다. 대다수 품목인 82.5%에서 포장된 제품이 더 많았다. 과일 중에서는 오로지 외국산 품목에서만 무포장이 더 많았다. 조사자는 “외국산을 사야 제로 웨이스트 할 수 있는 아이러니”라고 통탄했다.

무포장 제품이 가장 많은 유형은 전통시장, 체인화된 슈퍼마켓, 대형마트, 기업형 SSM, 유기농 매장 순이었다. 전통시장은 무포장 품목이 86%로 가장 많았으나, 가게별로 천차만별이라 실제 포장재 없이 구입하려면 상품별로 다른 가게들을 찾아 헤매야 한다. 역설적으로 유기농 매장에서 포장제품 비율이 가장 높았다. 건강한 먹을거리와 쓰레기 문제가 상충하다니! 유기농 직거래를 선택하려니 플라스틱 포장재가 나오고, 플라스틱 통을 거절하려니 중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사야 산다.

대형마트 중에서는 하나로클럽,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순으로 무포장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무포장 점수가 가장 높은 하나로클럽도 포장제품이 약 60%를 차지한다. 해외 대형마트는 소비자가 다회용 용기를 가져오면 제품을 담아가도록 하고, 영국의 테스코는 묶음포장된 참치캔, 수프 등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발 농산물이라도 비닐 없이 알맹이만 팔면 안될까? 우리에게 포장을 거절할 권리를 달라.

<고금숙 |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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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한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비상저감조치 시행에 나서고 있다. 눈에 띄는 조치는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이다. 석탄화력발전은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의 최대 배출원으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빠른 속도로 퇴출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한국의 대표적인 발전설비 제조 기업인 두산중공업은 변화를 거부한 것처럼 보인다. 두산중공업의 이러한 ‘오판’은 주주뿐 아니라 한국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를 입히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매출 하락이 시작된 2013년 이후 한 번도 당기순이익을 기록하지 못했다. 발전설비 시장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수주잔액이 감소했고, 매출액은 지난 6년간 30.6% 감소했다. 지난 5년간 주가는 85% 하락했고, 신용등급은 A+에서 BBB까지 떨어졌다. 두산중공업이 당장 올해 재융자(refinance)해야 할 채권이 7090억원에 이른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산중공업 경영진은 세계 에너지 시장 동향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지난 한 해에만 미국에서 8개 석탄회사가 도산했고, 호주에서는 상장된 4대 석탄회사가 모두 큰 손실을 내면서 주식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반면 석탄 사업을 정리하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회사들은 성장세를 달리고 있다. 스페인 전력기업 이베르드롤라와 미국 넥스테라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두산중공업은 여전히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중에서도 복합화력 가스터빈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작년 가을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 생산을 시작했지만, 후발주자인 두산중공업이 한국 가스터빈 시장은 확보할 수 있을지라도 지멘스나 GE, 미쓰비시와 같은 전통 강호들과 세계에서 경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설상가상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장치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아시아 가스발전 시장의 잠재력은 점차 줄고 있다.

두산중공업과 거래하는 해외 전력회사, 금융기관, 바이어들은 두산중공업의 경쟁력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두산중공업을 통해 한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한국 정부가 거액의 정책금융을 유치한다는 조건하에서만 두산중공업과 거래하려 하는 이유다. 납세자 관점에서 이런 상황은 명백히 문제가 있다. 두산중공업의 사업 판단 실패에 대한 대가는 누가 치를까? 대우조선해양의 사례에서 경험했듯 공적 자금으로 기업을 살리려는 시도는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부 차원의 응원이 단기적으로 두산중공업의 생존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두산중공업이 납세자들의 지원 없이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가 결코 그 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멜리사 브라운 |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 아시아 담당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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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후행동 청소년들이 13일 서울 광화문 센터포인트에서 정부의 소국적 기후대응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기후변화’가 미국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를 처음 장식한 때가 1988년 6월24일(현지시간)이다. 제목은 ‘지구온난화는 시작됐다, 전문가 상원에서 말하다’였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제임스 핸슨 박사는 전날 미 상원에서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99% 확신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의 증언은 대중들에게 지구온난화·기후변화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그 피해가 미래세대의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경종이었다. 하지만 정부를 움직이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15년은 기후변화의 또 다른 이정표가 세워진 해였다. 그해 12월에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됐다. 195개국이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합의했다. 기후변화 소송에서도 새 역사가 쓰였다. 그해 6월24일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네덜란드 헤이그지방법원은 환경단체 위르헨다와 시민 900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항소법원(2018년 10월)과 대법원(2019년 12월)을 거쳐 확정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5% 감축해야 한다.

그해 8월 미국에서도 의미 있는 기후변화 소송이 제기됐다. 눈에 띄는 점은 원고들이다. 원고 21명은 8~19세의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핸슨 박사의 손녀 소피 키블리핸(당시 16세)도 있었다. 이 소송은 뒷날 스웨덴의 10대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미래세대 환경운동가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기후변화로부터 보호받을 헌법적 권리를 주장하며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했지만 제9항소법원은 지난 1월 청구를 기각했다. “원고의 당사자 적격 사유 부족”이 이유였다.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지난 13일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생명권·환경권 등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냈다. 한국 미래세대의 첫 기후소송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지구온난화 위험에 놓여 있는 다음 세대 청소년들”이라고 했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유독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다. 이 소송의 결말이 궁금하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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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은 며칠째 자취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뭐 미래만 아니면 나쁠 것도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제나 미래가 문제였지, 미래라는 것들 때문에 열 받았지. 망할 미래 같으니라고.

곰곰이 따져보니, 진만은 ‘미래’라는 이름 자체와도 좋지 않은 기억뿐이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진만의 고등학교 동창 중엔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진만이 살던 도시에서 꽤 유명했던 ‘미래내과의원’ 원장의 첫째아들인 ‘최미래’. 나중에 병원을 물려줄 생각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데, 그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미래는 공부를 꽤 잘했다. 선생님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뭐 나중에 병원을 물려받으려면 어쩔 수 있나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장난 삼아 부르던 ‘최 원장’이라는 별명을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최 원장, 그러지 말고 괜찮은 원무과장 한 명 미리 뽑아놓을 생각 없는가? 자네만 괜찮다면 내 대학 입시 포기하고 미리 회계원리 공부만 죽어라 하겠네. 미래는 친구들의 그런 농담을 웃으면서 받아주기도 했다. 

미래는 공부도 잘했지만, 체격도 좋았고 운동도 잘했다. 씀씀이도 나쁘지 않아서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 진만 또한 미래와 함께 김밥천국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돈가스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오백원을 더 내고 라면과 김밥을 먹을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느라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진만에게 미래는 “뭐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어? 김밥천국 따위에서”라고 아무런 악의 없이 툭 내뱉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다가왔는지, 진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장면이 불쑥불쑥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또 하나. 진만의 기억 속에 남은 미래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학교 식당이 내부공사에 들어가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반마다 급식 당번을 정해 밥이니 국이니 직접 가져와야 했는데, 진만의 반에선 늘 미래가 그 일에 끼었다. “선생님, 이건 공정하지가 않은데요?” 사흘 연속 급식 당번을 했던 미래가 담임에게 항의했다. “뭐가?” 담임이 묻자 미래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4교시 수업 끝나기도 전에 가야 하는데 매번 제가 당번이니까요.” 그러자 담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최미래. 원래 동등하지 않은데 동등하다고 말하는 건 나쁜 거야.” 하필 그날은 진만이 미래와 짝이 되어 급식 당번을 맡은 날이었다. “좆밥 같은 기간제가….” 미래는 국이 가득 든 들통을 진만과 함께 나르다가 이렇게 말했다. “기간제들이 겁이 없어, 겁이.” 미래는 계단 앞에서 쉴 때 카악, 퉤! 들통에 침을 뱉기도 했다. “너 오늘 국 먹지 마라. 개새끼들,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진만은 그런 미래에게 화를 내지도, 뭐라 말하지도 못했다. 동등하지 않았으니까. 진만은 나중에야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

진만은 또 다른 ‘미래’를 대학교 3학년 때 만났다. 군 제대 후 부랴부랴 복학하느라 급하게 구한 학교 근처 단독주택 이층 방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때 거기에서 미래를 만났다. 미래는 주인집에서 키우는 조그마한 누런색 믹스견이었다. 대문 옆 목련나무 아래 합판으로 만든 집이 있었고, 거기에 쇠줄로 묶여 지냈다. 일흔이 넘은 주인집 할아버지는 미래를 몹시 예뻐했는데, 미래 역시 할아버지만 보면 마치 여름 성경학교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거의 졸도할 것처럼 좋아했다. 

단, 미래는 그 외 사람들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댔다. 그 집에는 진만 말고도 모두 네 명의 세입자가 살고 있었는데, 미래는 그들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정말이지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우박처럼, 쉬지 않고 맹렬히 짖어댔다. 밤이나 낮이나, 자기 말만 해댄 것이었다. 

한번은 아래층에 사는 사십대 아저씨가 자정 넘어 들어오다가 또다시 사납게 짖어대는 미래와 맞부닥뜨린 적이 있었다. 아저씨는 술이 불콰하게 오른 상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야, 이 개놈의 새끼야, 네가 미래라고? 이 개 같은 미래야. 짖기만 할 줄 아는 놈의 새끼가….” 아저씨는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한 채 계속해서 미래와 말싸움을 해댔다. 

방마다 불이 켜지고 이윽고 주인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왔다. 주인 할아버지는 대뜸 세입자 아저씨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자네 왜 우리 미래한테 뭐라고 그러는가? 얌전하게 잘 있는 미래가 뭘 잘못했다고? 응!” 진만은 방 밖으로 나가서 세입자 아저씨를 돕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라도 보태고 싶었지만, 그저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다. 어차피 결론은 뻔했으니까. 주인 할아버지에게 세입자는 개만도 못한 처지였으니까….

진만은 그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다 자취방에서 함께 사는 정용에게 불쑥 말을 건넸다.

“난 말이야. 그래도 미래 생각만 안 하면 나쁘진 않은 거 같아.”

“그게 뭔 소리야?”

정용이 양말을 개면서 물었다.

“그냥 미래만 생각하면 더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고 올 게 안 오냐?”

“그래도 기분은 덜 나쁘니까.”

정용은 슬쩍 진만을 보다가 이번엔 수건을 개면서 말했다.

“그냥 견디는 거지. 나쁜 걸 견뎌내는 게 민주주의래.”

진만은 뚱한 표정으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진만은 정용과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바로잡지는 않았다. 이 미래나 저 미래나 나쁜 걸 견디는 건 어차피 똑같으니까. 그러면서도 진만은 마치 수능 금지곡처럼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개 같은 미래, 개 같은 미래, 개 같은 미래. 그제야 미래가 조금 우스워졌다.

<이기호 |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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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비상행동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1대 총선 정당 기후위기 평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 탄소배출 억제 정책, 탈탄소 사회 전환을 위한 예산 편성 등에 대해 각 정당의 입장을 물었다. 이들은 “국회 다수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기후위기 대응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날마다 살얼음판이다. 이 전쟁의 주범은 누구인가? 박쥐인가 우한인가 신천지인가.

과거 전 세계를 떨게 했던 에볼라 바이러스, 탄저병 그리고 코로나19 등등 각종 전염병엔 공통점이 있다. 2007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고 폴 엡스타인 박사는 2011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lt;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Changing planet, changing health)&gt;에서 지금 우리를 떨게 하는 코로나19 같은 역병의 주범이 무엇인가를 방대한 연구와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풍토병인데 주로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모기가 급증했고 결국 남미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인간에게 1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기와 해충의 세계에서는 0.1도도 엄청난 변화라서 기후변화 때문에 모기가 ‘좀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박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아진 탓이라고 설명한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14년 서아프리카 지역에선 에볼라 바이러스로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가뭄 때문이었다. 지독한 가뭄으로 먹을 것을 찾아 야생동물을 사냥했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 2016년 시베리아 지역에선 75년 만에 탄저병이 발병하였다. 수십년 전 탄저균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지구 온난화로 해동되면서, 탄저균 포자가 지면 위로 노출된 탓이다. 북극의 동토 아래 어떤 숲속의 마녀가 잠자고 있는지, 언제 깨어나 발톱을 세울지 알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폴 엡스타인은 사람들이 기후로 인한 재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데, 동식물은 고통받지만 사람은 안 그럴 것이고, 피해를 보더라도 가난한 개도국 주민들일 거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 톰 행크스 부부도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NBA 리그도 전면 중단됐다. 선진국은 우수한 과학기술과 청결한 환경, 넉넉한 자본으로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으며, 한국 역시 그 편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 앞에서는 국경이 없음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재난이 일상화되어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환경단체들이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언급한 건 1990년대부터다. 그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였지만 오늘 우리는 세계 최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가난한 나라와 말 못하는 동식물들만 고통받았지만, 머잖아 우리 모두 희귀 바이러스, 식량부족, 기상이변 같은 기후전쟁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환경단체가 아닌 미국 의학협회마저 “기온이 0.5도만 상승해도 우리에겐 참혹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가장 보수적이라는 과학자들도 함께 나선 마당이다.

코로나19의 창궐 앞에서 모두 애태우고 있다. 병든 뿌리를 두고 이파리에 약 바른들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폴 엡스타인의 책은 절판되었지만, 모든 재난의 뿌리, 기후변화를 더 염려하고 대비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선거가 코앞인데 거대 정당들의 기후정책은 애매하기 짝이 없고 기후리더는 정녕 어디 따로 숨긴 것 같다. <재정의>에서 저자 한근태 박사는 정치인을 ‘표식(票食)주의자’라 재정의하였다. 우리 목숨값, 알고 드시는지….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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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베’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가로지르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니, 굉장한 번영을 구가하던 대도시였나 보다(<요나서>). 여기에 ‘요나’라는 예언자가 나타나 니네베의 멸망을 선포한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니네베가 하느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란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언제나 사회의 약자, ‘과부와 고아와 떠돌이’의 하느님이며, 하느님께 대한 죄는 이들의 억압과 착취로 나타난다. 니네베의 번영은 이들 약자의 피땀으로 이뤄졌고, 이들의 울부짖음이 하느님께 닿았나보다. 이 하느님은 이집트의 압제와 수탈에 허덕이던 히브리인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이들을 해방하려 이집트를 쳤었다(<탈출기>).

요나의 경고는 니네베에 들이닥칠 대재앙의 전조로 들렸다. 니네베 사람들은 단식을 선포했고, 임금에서 짐승까지 모두 단식에 들어갔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단식은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사야서>), 약자를 향한 사회적 연대 행위다. 억압과 착취를 일삼던 니네베의 근원적 변화를 위한 사회적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과연 그들은 변했을까?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임박한 파국의 경고를 시대의 징표로 알아들은 니네베 사람들은 극적인 변화를 했고 재앙에서 벗어났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우리는 경험도 상상도 못했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극도의 혼란과 공포가 삶을 엄습하고 옭아맨다. 당연했던 ‘일상’은 사라지고 거리에서 사람들의 얼굴도 사라졌다. 하지만 결국, 특히 의료진과 보건 당국의 헌신 그리고 시민들의 협력으로 이 사태도 잦아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런 희망을 품자, 물음이 쏟아진다. 이 재난으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니네베만큼 변할 수 있을까?

이번 재난을 계기로 우리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과 평등을 ‘정말’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할까? 잠시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할 수 없는, 감염보다 생계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사회 안전망을 만들자고 마음을 모을까? 바이러스 창궐 이전 ‘평온한’ 때에도 네댓 명의 노동자가 매일 산재로 죽어야 하는 사회, 갑질로 인한 좌절과 분노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삶을 버리는 사회를 안전하고 평등한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려 할까? ‘김용균’과 ‘문중원’과 ‘이재학’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방치한 것에 대한 사회적 참회가 가능할까? 너무도 소중한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재앙이 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핵발전소 같은 위험 시설을 기꺼이 포기할까? 기후재난이 현실이 되기 전 온실가스를 과감히 줄이고 그 불편을 기쁘게 받아들일까? 

아니면, 이 환난을 넘기자마자 우리는 서둘러 익숙한 ‘옛날’로 돌아가려고 할까? 효율과 성장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비정규’의 굴레를 강요하며 약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는 일을 계속할까? 기후재난과 핵사고는 있을 수 없다고 고집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훨씬 더 가혹한 재앙, 파국의 문을 스스로 열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를 우리의 ‘진짜’ 문제를 보여주는 시대의 징표로 읽기를, 이 환난의 때를 새 세상을 여는 ‘카이로스’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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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단장들이 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KBO회관에서 긴급실행위원회를 열고 코로나19 예방 관련 정규리그 운영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참석하지 못한 일부 단장들은 화상을 통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2001년 9월11일, 여객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했다.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는 “맨해튼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고 9·11 직후 분위기를 떠올렸다. 미국 내 모든 것이 멈췄다. 야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양키스 선수들은 야구장 대신 제이콥 컨벤션 센터를 찾았다. 피해복구 자원봉사자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곳이었다. 조 토레 감독은 “우리가 여기에 오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야구하는 사람들일 뿐인데”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양키스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모여 들었다. 사인 요청 사진 속 실종자들은 양키스타디움에 있거나, 양키스 모자를 쓰고 있었다. 토레 감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야구였다.

야구는 테러 7일 뒤 다시 시작했다. 뉴욕에서의 첫 경기는 테러 10일 뒤 뉴욕 메츠가 먼저였다. 주전 포수 피아자는 그 경기에서 홈런을 때렸다. 양키스는 이기고 또 이겼다. 그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오클랜드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 테러 현장에서 몸 바쳐 애쓴 소방관들이 시구를 했다. 양키스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승 116승을 거둔 시애틀도 꺾었다. 월드시리즈 7차전 승부 끝 애리조나에 졌지만, 5차전에서 나온 지터의 끝내기 홈런은 뉴욕 팬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2013년 4월15일, 마라톤대회 결승점에서 폭발물 2개가 터졌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 마라톤을 향한 테러였다. 3명이 사망했고, 260여명이 다쳤다. 

야구는 계속됐다. 테러범 체포 이후 첫 홈경기였던 4월20일, 보스턴 레드삭스 주장 데이비드 오티스가 마운드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 지금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레드삭스가 아니라, ‘보스턴’이다. XX, 우리가 XX 사랑하는 도시 말이다. 누구도 우리의 자유를 위협할 수 없다. 우리는 강하다.”

테러 다음날 3루수 윌 미들브룩은 트위터에 “우리 보스턴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겠다”며 #BostonStrong을 붙였다. 이는 시즌 내내 팀과 도시의 상징이 됐다. 전년도 꼴찌로 추락했던 보스턴은 하나로 뭉쳤고 진짜로 강해져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오티스의 월드시리즈 타율은 거짓말 같은 0.686이었다.

2013년 11월3일, 저팬시리즈 7차전 9회초 마운드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올랐다. 전날 6차전에서 160개를 던진 라쿠텐의 에이스였다. 다나카가 요미우리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순간 선수도 팬들도 모두 눈물범벅이 됐다. 라쿠텐은 2011년 닥친 동일본 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역 센다이를 연고로 하는 팀이었다. 창단 뒤 첫 우승이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대지진으로 고난을 당한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지난 3년간을 싸워왔다.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3·11 지진 3년 뒤 11·3 우승이었다.

야구는, 스포츠는 힘이 된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시즌이 시작되면 삼성 라이온즈의 #힘내자_대구 #힘내자_경북은 진짜 힘이 될 수 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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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1일 일본 NHK 뉴스에 의하면, 전날 일본 경제산업성 소위원회는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배출되어 누적되고 있는 삼중수소 등을 포함한 오염수 처분방법으로 해양방출을 추천하는 내용의 정식 보고서를 일본 정부에 제출했다. 이에 근거하여 경제산업성은 지역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해양방출 시기 등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방침이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출에 대하여 후쿠시마현과 이웃한 이바라키현 지사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일본 어업계도 어업 피해 때문에 반대를 표명하고 있으며, 일본 유권자 절반 이상도 반대한다는 것이 최근 여론조사 결과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14일 시민환경단체들로 구성된 탈핵시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에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출 철회를 강력히 요구했다.

현재 사고 원전에서는 삼중수소와 스트론튬 등 방사성물질을 함유한 오염수가 매일 약 170t씩 발생하여 2019년 10월31일 기준 약 117만t이 저장되어 있다. 함유된 삼중수소 방사능은 약 856조베크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내외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환경 범죄에 해당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출을 꾀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그보다 더한 고방사능의 상시적 해양 및 대기 방출을 계획하고 있다. 2022년 본격 가동 예정인 일본 북단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위치한 대규모 재처리공장이 그것이다. 재처리공장이란 원전에서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산에 녹여 화학적으로 처리하면서 핵연료 사용 목적으로(또는 핵무기 제조 목적으로) 내용물 중 1%에 해당하는 플루토늄을 분리 활용하고 나머지는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분리하여 저장한다.

재처리 과정 중 사용후핵연료 내 방사성물질들이 방출되는데, 삼중수소도 이 과정에서 방출된다. 롯카쇼무라 공장이 연간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다른 방사성물질들에 더해 연간 약 9700조㏃의 삼중수소가 해양으로 방출된다. 이는 현재 후쿠시마 오염수 내 삼중수소 총량의 10배 이상이다. 게다가 대기로도 다른 방사성물질들과 함께 후쿠시마 삼중수소 총량만큼의 삼중수소를 매년 방출한다. 2022년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이 가동하게 되면, 환경 차원에서 볼 때 재앙에 가까운 대량의 방사능을 롯카쇼무라 주변 해양과 대기로 상시 방출하게 되는 것이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의 가동 여부는 일본의 핵무기 확산 가능성 또는 테러그룹들의 플루토늄 탈취 가능성 때문에 그동안 국제사회의 우려거리였다. 연간 800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8t의 플루토늄을 분리하는데,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으로 핵무기 1000기의 분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환경적으로도 재앙 수준의 방사능을 상시적으로 해양과 대기로 방출하는 방사성폐기물 방출 공장인 것이다.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이 중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강정민 | 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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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코로나19’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이렇게 갑자기 반전한다. 오랑시에 갑자기 들이닥친 페스트. 초기에는 다소 주춤하여 도시는 “저녁마다 변함없이 인파로 가득 찼고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갑자기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이 도착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위기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도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고 있다. 시즌 막바지의 혈전이 벌어져야 할 경기장도 텅 비었다. 아니, 물론 그곳이 직장이요 삶의 터전인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그들의 요람이자 무덤을 지키고는 있다. 겨울 시즌 경기들이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중이다. 

누구는 조금 고약한 말도 한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해보니 이제야 관중 귀한 줄 알 거라는 핀잔 말이다. 그런 면도 있다. 관중을 ‘소비자’로만 인식하고 그런 관점에서만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온 폐단이 있다. 몇몇 선수들은 팬들의 성원을 귀찮아하는 듯한 인상마저 남기기도 했다. 함께 스포츠문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여전히 빈곤하다. 그러나 지금의 무관중 경기에서 굳이 그러한 허점을 뾰족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많은 선수와 팬들이 서로를 갈망하고 있다. 비록 지켜보는 관중은 없지만, 환호하는 팬들은 없지만 선수들은 뛰고 달린다. 현장에 가질 못하고 집에서 관전하는, ‘집관’하는 팬들은 선수들을 성원하기 위해 구단 홈페이지를 수시로 찾는다. 이렇게 지금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부재 속에서, 확인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페스트> 상태의 오랑 시민들은 아닌 것이다. 카뮈는 이렇게 썼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연애의 능력과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물론 우리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3월14일로 예정된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1983년 이래 처음으로 모조리 취소되었다. 3월28일로 예정된 개막 경기도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프로축구는 2월29일로 예정되었던 K리그1 개막 경기를 연기했다. 언제 개막전을 치를지도 미지수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 시즌 전체 일정을 다시 짜야 한다. 프로당구협회(PBA)도 3월 초의 PBA-LPBA 파이널 대회를 연기하기로 했다. 

이러한 비상한 상황은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태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일종의 낙관을 품은 방관은 실질을 호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lt;페스트&gt;의 구절처럼, 팬과 선수들이, 부재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절실히 확인하는 이 상황에서, 각 종목의 협회와 구단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번에 확실히 익혀야 한다. 위기대응의 원칙과 그에 따른 상호 간의 태도와 이로써 새롭게 규정되는 매뉴얼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모든 말과 교섭과 결정은 반드시 문서로 기록되어야 한다. 

스포츠는 몸과 몸이 경합하는 세계다. 이때 선수들의 보건안전을 어떻게 구비할 것인지, 다시 말해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실제로 몸을 쓰는 선수들, 땀 흘리고 소리치는 선수들의 경기 중 안전과 일상 속 보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이번 기회에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다시 <페스트>를 보면, 카뮈는, 시민들이 사태 이전과 비교해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여준다. 단지 상황이 호전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새롭게 결속되는 것을! 페스트에 맞서 싸우던 타루는 의사 리외에게 말한다. “페스트만 겪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바보 같군요. 물론 사람이란 희생자들을 위해서 투쟁해야죠. 하지만 더 이상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뭐하러 하는 겁니까?” 그러면서 제안한다. “해수욕을 하러 갑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해안가로 간다. 

우리에게도 곧 그날이 올 것이다. 우리 모두의 필사적인 연대와 노력으로 ‘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이고, 그러면, 새봄이다. 그때 무엇을 하겠는가. 당장 경기장으로 달려가자. 마스크만 끼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너무 바보 같지 않은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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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주변인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해안가에 철새들이 모여 있다.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제공

제주 성산에 사는 ㄱ씨는 자신의 집이 제2공항 사업 예정지로 편입된 사실을 어느 날 저녁 뉴스를 보고 알았다. 현 제주공항의 관제시설을 개선하고 보조활주로를 활용하면 ‘제2공항은 필요 없다’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보고서는 은폐되었다. 제2공항 사업 근거인 2045년 항공여객 수요는 ‘사전타당성 검토’ 4560만명, ‘예비타당성 보고서’ 4042만명, ‘기본계획 용역’ 3890만명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애초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제2공항 사업을 설계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지역주민 460명이 서명해 요구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협의 의견 공개를 거부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입지적 타당성이 매우 낮은 계획’ ‘갈등 해소와 주민 수용성 우선 확보’ ‘합동 현지조사’ 등을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집 앞에서 흔히 발견되는 맹꽁이 등 각종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기록되지 않았다.

‘제2공항, 상생방안 마련하고 기본 및 실시설계 착수’.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주 2020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선 상생, 후 공사’를 언급했다. 그런데 상생의 알맹이는 없었다. 상생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연내 강행’만 강조한 것이다. 반면에 올해 제2공항 최대 쟁점인 도민 의견수렴을 위한 공론화 과정은 쏙 빼버렸다. 정보 비공개와 부실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전면 재검토 혹은 도민 의견수렴 후 결정’을 지지한 70% 이상의 여론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제주 언론 4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계획대로 추진’은 불과 22.8%였다.

지난 10년 동안 제주 항공여객은 매년 100만명씩 급증하고, 2019년 항공여객은 3000만명에 육박했다. 하루 평균 약 10만명이 제주를 방문했다. 그사이 제주의 환경 수용성, 사회 수용성은 한계를 초과했다. 차량 증가와 교통혼잡, 하수처리장 용량 초과, 1인당 쓰레기 배출량 전국 최다, 소각장 포화와 폐기물 불법 해외 유출, 중산간 난개발, 지속 가능 이상의 지하수 취수, 땅값 상승률과 범죄 발생률 전국 최고 등 삶의 질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토부의 계획대로라면, 2045년 제주는 지금 항공여객보다 1.5배 많은 4560만명을 수용할 것이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제주 제2공항에 대한 국토부의 일관된 입장은 인텔리 관료 중심, 정보 비공개, 물량 만능이었다. 김현미 장관은 철저하게 ‘성장 환상’에 빠져 있었다.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주도했고, 지역 난개발을 성장이라 불렀다. 코로나19의 충격을 공공부문 건설경제 활성화로 극복하겠다고 했다. 제2공항 사업! 일부에게는 돈을, 다수에게는 절망을 안겨줄 것이다. 김현미의 상생은 딱 그 수준이다. 그런 그가 제2공항 건설 여부를 쥐락펴락하는 상황은 아주 비극적이다. 제주의 미래는 ‘성장 관료’ 말고,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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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목연석(魚目燕石)이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의 눈과 중국 연산(燕山)에서 나는 돌은 모두 옥(玉)과 비슷하지만 옥이 아니라는 뜻으로, 진짜와 비슷하지만 본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주 한전의 2019년 결산실적이 나오자 ‘탈원전=한전 적자’라는 잘못된 주장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며, 에너지전환의 본질이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실 본격적인 ‘탈원전’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2017년 23GW이던 원전 설비용량은 2024년이 되면 27GW까지 늘어난다. 이 기간 중 문을 닫는 원전은 3GW에 불과한 반면, 새로 문을 여는 원전은 7GW에 달하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원전이용률이 하락했던 이유는 과거 건설된 일부 원전에서 콘크리트 공극 등이 발견되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해당 정비작업은 순차적으로 마무리되어, 2019년 2분기 원전이용률은 예년 수준인 82.8%까지 회복되었다. 더구나 원전 예방정비 및 가동은 원안위 승인 등 법적 절차에 따라 시행되는 것이니 정부가 의도적으로 개입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맞지 않다.

2019년 한전 실적이 하락한 주된 이유는 3가지 환경관련 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첫째,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값싼 석탄발전 대신에 값비싼 가스발전을 크게 늘려 발전비용이 증가하였다. 둘째,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작년에 배출권 가격이 크게 올라 이와 관련된 비용도 급증하였다. 셋째,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부터 시행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의 이행비용도 늘어났다. 

일반 제품에 비해 유기농 제품이 더 비싸듯이 환경과 안전을 강조하다보면 결국 관련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전환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정확하게 산출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독일 및 덴마크와 같은 에너지전환 모범 국가에서는 친환경 발전 확대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고, 전기요금 고지서에 친환경 발전으로 인한 추가적 비용이 별도로 적혀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관련한 국민적 논의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에너지전환은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신규 발전설비 투자액 중 67%가 재생에너지에 집중되고 있으며, 세계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8년 26%에서 2040년 67%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전환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로 소비자에게 적절한 가격신호를 제공하여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유도하고 전력의 낭비적 소비를 방지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당장 올해부터 신기후체제인 파리기후협정이 본격 가동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유승훈 |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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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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