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교육'에 해당되는 글 470건

  1. 2019.06.25 [기고]국가교육위 출범, 새로운 교육 생태계 위한 첫걸음
  2. 2019.06.25 [학교의 안과 밖]4년제 고등학교
  3. 2019.06.25 [사설]교육부의 사립대 종합감사, 사학 발전 계기 되기를
  4. 2019.06.21 [사설]설립취지 위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당연하다
  5. 2019.05.24 [사설]시대착오적 ‘사랑의 매’ 진작 없앴어야 했다
  6. 2019.05.21 [학교의 안과 밖]스승의날과 교육의날
  7. 2019.05.15 [사설]무너진 교권, 퇴색한 스승의날
  8. 2019.05.14 [사설]논문 자녀 등재, 국비로 해외 학회 참가, 바닥난 교수윤리
  9. 2019.05.10 [정동칼럼]고등교육의 혁신, 연구자 지원부터
  10. 2019.04.30 [학교의 안과 밖]학교폭력과 화이부동
  11. 2019.04.23 [학교의 안과 밖]혼란 속 ‘외고·자사고 정책’
  12. 2019.04.22 [기고]고교 무상교육 ‘안정적 재원 대책’ 약속 꼭 지켜야
  13. 2019.04.16 [학교의 안과 밖]학원으로 내몰리는 중·고교생
  14. 2019.04.10 [사설]OECD 막차 탄 ‘고교 무상교육’, 안정적 재정 뒷받침돼야
  15. 2019.04.02 [학교의 안과 밖]‘알로마더’가 되기로 했다
  16. 2019.04.01 [기고]고입 경쟁에 유보된 ‘사춘기’
  17. 2019.03.18 [기고]사립유치원 앞에 놓인 두 가지 선택
  18. 2019.03.13 [사설]사교육비 역대 최고, 공교육 정상화 정책이 무색하다
  19. 2019.03.06 [기고]고등학교 무상교육을 기다리며
  20. 2019.03.05 [기고]보완책 시급한 교육부 조기 영어교육정책

행복이라는 말이 강박이 된 지 오래다. “행복하세요!”라는 말이 마치 힘든 일상을 감추기 위한 주술처럼 느껴진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폭력 없는 행복한 학교’라는 현수막이 부적처럼 나부끼는 것을 볼 때면,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폭력의 실체는 외면한 채 행복한 학교를 외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말이다.

아이들끼리 일어나는 싸움은 폭력의 한 측면일 뿐,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한국방정환재단이 조사한 ‘국제 비교로 본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에 따르면 최근 6년 동안 한국 학생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어린이·청소년은 22.8%로 최고치에 가깝다. 그런데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게 더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 지난 2월 <추적 60분>에서는 자해에 빠져 있는 청소년의 실상이 낱낱이 보도된 바 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 10명 중 1명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자기 몸에 고통을 가함으로써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아이들. 취재진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주변의 말과 시선”을 자해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생명 존중 교육을 강화하고, 학교에 전문 상담사를 파견하는 일이 필요하겠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우리 교육의 병폐를 뿌리 뽑지 않는 한, 아이들의 자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교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차와 등급이 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를 압도한 지 오래다. 자유와 평등, 평화와 연대는 대학 입시라는 욕망 앞에서 그저 허울뿐인 담론으로 치부될 뿐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했던 정권도 이 거대한 욕망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새로운 틀 위에서 교육 생태계를 설계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지금으로써는 국가교육위원회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국가교육위원회의 핵심은 ‘초정권적, 초정파적 사회적 합의기구’라는 것과 10년 단위의 중장기 국가교육 비전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에 맞추어진 짧은 주기로는 국가교육 철학을 담아내기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내에 성과를 내야 하고, 유권자의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의 생리로는 교육의 백년지대계는 난망할 수밖에 없다. 정권과 정파를 넘어서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절실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을 두고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듯하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독립성 보장 문제, 교육부의 옥상옥(屋上屋)이 될 것이라는 우려 등은 국가교육회의 측에서도 되새겨야 할 문제일 것이다.

다만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을 정치적인 유불리(有不利)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절할 필요가 있겠다. 지금 상정해야 할 궁극적인 의제는 진정한 배움과 아이들의 삶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해(害)하고 있는 아이들의 절규 앞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추태는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폭력의 가해자라는 측면에서 어른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권력, 혹은 교육에 가까이 있는 어른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이 진정한 배움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부족한 부분은 치열한 토론을 통해 보완해 나가면 될 일이다. 교육이 인간의 소외를 부추기는 일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정치와 교육계의 대승적인 결단이 있길 바란다.

<이충일 | 오산 다온초 교사·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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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제는 6-3-3-4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4년제 고등학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 같다. 물론 실제로 학제에 대한 것은 아니고 재수생 비율이 높은 자율형사립고인 상산고가 5년마다 진행되는 자사고 재지정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논란인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고등학교를 3년 다니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다수가 재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학교는 전라북도에 소재한 전국단위 자사고다. 학교게시판에 공지된 내용에 따르면 2019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40명을 비롯하여 275명이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중에서 재학생 비율이 48%, N수생이 52%라고 한다.

이렇게 대입 합격자 중 대입 재수생의 비율이 높은 것은 2018학년도에 재수를 선택한 학생들의 비율이 무려 57%나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학교알리미에 올라온 재수생 비율을 보면 47.7%로 전국 21.6%나 전라북도의 14.4%에 비해 크게 높다.

다수의 학생들이 상위권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인 것은 분명한데 굳이 재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 학교는 일반고에 비해 자율성이 많이 보장되는 자사고로서 국민공통교육과정의 50%와 선택교과의 100%를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학교의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면 당연히 요즘 대입 전형의 대세인 ‘학생부종합전형’에 최적화된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시 학생부전형으로 진학하는 학생보다 정시 수능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더 많다. 2018학년도에는 서울대에 수시전형으로 9명이 합격했으나 정시 수능전형으로는 수시의 두 배가 넘는 21명이 합격하였고, 이 중에서 재수생이 다수로 알려져 있다. 결국 우수한 학생들을 전국에서 모집할 수 있는 자사고로서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갖게 된 자율권을 수능 학습에 최적화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 결과 수능에 강한 재수생을 양산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같은 전국단위 자사고인 하나고의 경우 서울대에 합격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재학생들이어서 대조가 되고 있다.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해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수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교육과정을 요구하는 교육 수요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찬성하는 쪽은 수능 대비 교육이 중심이 되면 고등학교 교육 환경이 황폐해지기 때문에 수능형 자사고의 운영을 반대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교육목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생활역량을 갖춘 건강한 시민의 육성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학입시가 최우선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해제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교육이 어떤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큰 틀의 논의와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정시 수능전형의 확대를 밀어붙인 정부가, 수능에 적극 대응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자사고를 반대하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학부모들은 교육정책의 혼란이 두렵고, 사교육계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혼란을 자꾸 만드는 정부의 어설픈 손길이 걱정되는 이유다.

<한왕근 |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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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개교 이후 한번도 정부의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16개 대학에 대해 강도 높은 종합감사를 벌이겠다고 24일 발표했다. 이와 함께 사립혁신법 개정 등 사학적폐 청산 작업도 본격 추진키로 했다. 대학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공공연하게 자행돼온 사학법인의 횡령과 회계부정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사립유치원 개혁에 이은 문재인 정부의 사학개혁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교육부가 다음달부터 2021년까지 실시키로 한 종합감사 대상 대학은 경희대·고려대·서강대·연세대·가톨릭대·건양대·영산대 등 서울과 지방의 16곳이다. 모두 학생정원이 6000명 이상이면서 개교 이래 단 한번도 정부의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대학들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7조원 상당의 정부 재정을 지원받는 사립대 가운데 일부에서 상식과 원칙에 어긋난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종합감사의 배경을 밝혔다. 교육부 집계를 보면 전체 278개 사립대 중 개교 이후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대학은 111곳(대학 61, 전문대 50)으로 전체의 40%다. 적잖은 사립대들이 매년 막대한 정부 예산을 지원받고도 수십년 동안 ‘감사 무풍지대’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립대 사학법인의 횡령과 회계부정 등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전체 사학비리는 1367건에 비위 액수는 총 2600여억원이나 됐다. 사립대 1곳 평균 4.7건, 9억여원꼴이다. 대학 비리는 이사장 자녀의 대학 특채, 회계 조작을 통한 횡령, 법인카드 용도 외 사용에서 보듯 회계·채용·입시·학사 등 전 영역에 걸쳐 있다. 감사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는 부정 사례들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사학법 개정’ 등 사학개혁을 시도했으나, 야당의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학개혁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다음달 초 사학혁신위원회의 사학법 개정 방안 등 구체적인 개혁안이 발표된다. 사립대학은 사학재단의 소유이지만, 예산 지원을 받는 공적 교육기관이다. 건전한 사학의 자율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금이 투입되는 사학을 감독하는 일은 정부의 의무이자 권리다. 치밀하고 강도 높은 감사로 사학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사립대학 종합감사가 사학의 ‘고인 물’을 걷어내고 대학교육의 공공성·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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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와 경기 안산동산고등학교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했다. 전북교육청은 20일 “상산고가 재지정 평가에서 79.61점을 받아 기준점수(80점)에 미달했다”며 자사고 지정취소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경기교육청도 안산동산고가 기준점수(70점)에 미달했다며 지정취소 방침을 발표했다. 

자사고 지정취소는 학교 관계자 청문과 교육부 장관 동의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교육부 장관이 동의하면 이들 학교는 내년 3월 일반고로 전환된다. 과거 자사고 지정이 취소돼 일반고로 전환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산고의 경우 신입생을 전국단위로 모집하는 소위 ‘입시 명문고’라는 점에서 교육현장에 미치는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 자율형사립고 학부모 연합회 회원들이 전북 상산고의 자사고 취소 결정이 내려진 2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명박 정부는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고 교육의 수월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고교 다양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도입·확대된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는 고교 서열화의 온상으로 지목돼왔다. 이들 학교가 성적 우수학생을 선점하면서 일반고 황폐화는 가속화했다.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권리는 국·영·수 위주의 입시교육 수단으로 변질됐다. 상산고의 경우 전국의 중학생 가운데 수학·과학 우수자들을 모아 다수의 의대 합격자를 배출해왔다. 일반고 2~3배에 달하는 등록금은 계층 간 위화감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에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포함시킨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

상산고 측은 평가 결과가 형평성과 공정성에 어긋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이 재지정 기준점을 타 시·도(70점)보다 높은 80점으로 잡은 데다, 자신들이 받은 점수가 기준점에 불과 0.39점 모자란다는 게 이유다. 기준점 설정은 교육감의 고유 권한이다. 그럼에도 학교와 학부모들이 불만이 있다면 청문 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하면 된다. 

단추를 잘못 끼웠음을 발견했다면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는 게 해결책이다. 출발부터 잘못된 자사고체제를 그대로 놓아둔 채 공교육 정상화를 논하기는 어렵다. 전북과 경기 외 다른 지역도 재지정 심사 대상에 오른 자사고에 대해 엄격한 기준으로 공정하고 치밀하게 평가해야 한다.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에 대해선 다양한 지원책을 모색하는 한편 기존 일반고 육성책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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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은 단순한 양육 대상이 아닌 행복을 누려야 하는 권리 주체다.’ 23일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은 아동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동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바라보면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아동권리 선언’이다. 가정에서 보호하기 어려운 아동은 국가에서 보호·양육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고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또 아동이 행복할 수 있도록 건강권·놀이권을 확대해 가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올바른 인식이고 정책 방향이다. 

정부 아동정책의 기본 방향은 국가 책임 확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의료기관이 모든 신생아를 의무적으로 국가에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고,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민간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며, 아동의 창의성·사회성 개발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놀이혁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것은 민법상 규정된 부모의 ‘체벌 권한’을 없애 아동의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대목이다.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부모가 아이를 폭행해도 처벌받지 않거나 받아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처벌을 받는다.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는 ‘사랑의 매’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자녀 학대를 막기 위해서다. 2013년 1만3000건이던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2017년 3만4000건으로 4년 사이에 3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부모에 의한 체벌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스웨덴 등 세계 54개국은 아동에 대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는 2010년 이후 몇몇 지자체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체벌을 금지하고 있으나 가정 내 체벌을 막는 방안은 여태 마련되지 않았다.  

가정 내 체벌은 가부장적 유교사회의 인습이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로 여기는 비뚤어진 사고도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사회 민주화가 확산되고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전근대적 체벌과 훈육은 시대착오적이다. ‘사랑의 매’란 없다. 자녀에게 트라우마만 남길 뿐이다. 100년 전 어린이운동을 펼친 방정환 선생은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라’고 말했다. 민법 개정 못지않게 아동권에 대한 사회인식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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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은 스승을 존경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교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1982년에 기념일로 제정된 날이다. 

나는 올해 스승의날에 여러 학생, 학부모들에게서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받았다. 직접 쓴 손편지와 카드, 작은 꽃다발을 받았고, 한참 전에 졸업한 제자들은 내가 여름마다 고생하는 것을 기억했는지 땀방지제, 손수건도 보내주었다. 

물론 이렇게 스승의날 선물을 거리낌 없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신분이 ‘강사’이기 때문이다.

보통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등에 따른 교원을 ‘교사’라고 하고, 또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주 스승의날에 선물을 받은 선생들은 ‘강사’, 못 받은 사람들은 ‘교사’라고 구분하면 된다. 

출처_ 경향신문DB

스승의날에 선물을 받아도 되는 강사들의 유형도 무척 다양하다. 학교 밖 사설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강사들과 학교에서 가르치더라도 단기 강사계약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강사라고 하는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계약직 교과 강사들과 학교생활기록부 기록과는 상관없는 방과후 비교과 수업을 담당하는 강사들은 사실상 또 다른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정규직 강사들은 대학에서도 전체 강의 중 26.9%(2015년 1학기)를 담당할 정도다. 이들의 신분 또한 초·중등 강사들의 입장과 비슷하게 위태로운 상태라서 조만간 대학 강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강사들의 처우를 규정한 고등교육법개정안이 시행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량 해고가 진행되고 있어서 강사들을 대우해 주자는 것인지 아니면 몰아내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도 하다.

국어사전에서도 교사의 뜻을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등에서 소정의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선생의 뜻을 ‘남을 가르치는 사람,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아는 것이 많은 사람’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하는 또 다른 이름인 ‘교수’는 사람들이 일종의 계급적 의미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일반적인 호칭을 ‘선생’이라고 하자는 데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선생들을 위한 기념일의 이름이 ‘스승의날’이다. 인하대 국문학과 김문창 교수는 ‘스승’이라는 말의 어원이 자기보다 ‘높은’ 승려를 일컫는 단어인 ‘사(스승 師)승(스님 僧)’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고, 스승의날에 축하 케이크를 자를 수는 있어도 한 조각도 먹어서는 안되는 날이라면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적절한 기념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스승의날은 왜 존재하는가? 또 이날에 감사와 축하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스승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소한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어야 스승의날을 제대로 기념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사단체인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는 2년째 스승의날을 ‘교육의날’로 변경하자는 청원을 내고 있으니 그들에게 귀 기울여 보자. 선생님들이 쓸데없는 청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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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중학교 교사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린 글이 교사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학생들이 수업 중에 떠들고 욕설을 하는 것은 다반사요, 지도를 하려 해도 ‘학생 인권’ 운운하며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사는 “(학교)교육은 다 무너졌다”면서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수 있게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1만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글에 동의를 표했다.

교사의 권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통용되지 않은 지 오래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졌고, 오히려 상해와 폭행, 모욕 등 교권침해 사례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사건은 2010년대 초반까지 200건대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501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주목할 점은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절반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교사들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협박,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수업방해, 폭언·욕설, 폭행 등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증가도 간과할 수 없다.

출처:경향신문DB

교권침해는 교사의 사기저하로 이어진다. 교총이 최근 교원 54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4%가 교원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답했다. 65.6%는 교권이 보호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교권침해와 무관치 않다. 지난 2월 말 명예퇴직한 교사는 601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늘었다. 교권 추락에 따른 상실감과 피로감은 교사가 교단을 등지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교사는 미래의 동량을 기르는 교육자다. 소명의식을 갖고 가르치는 교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퇴근 후에는 학부모의 민원 전화나 카카오톡 메시지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학생인권조례 도입이 교권침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고 교육 현장은 민주화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교권침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학교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사의 권리도 학생의 인권 못지않게 중요하다. 교권회복과 학생인권조례가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교사가 긍지와 보람으로 일할 때 교육이 살아난다. 오늘은 스승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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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고교 1년생 아들을 자신의 논문 공저자로 올렸던 서울대 교수가 경찰의 내사를 받자 사직한 일이 있었다. 이 교수는 아들이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도 계속해서 자기가 쓴 논문의 제1저자 또는 공저자로 등재했다. 부자가 ‘함께 쓴 논문’은 43편이나 됐다. 이처럼 자신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올린 대학교수는 한둘이 아니었다. 정부 연구비를 받아 해외 부실학회에 참석하고 꼼수로 논문을 발표한 교수도 수백명이나 됐다. 땅에 떨어진 교수들의 윤리의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교육부가 13일 발표한 ‘2007년 이후 교수들의 자녀 공저자 논문 등재 및 부실학회 참가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교수 맞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조사 결과 서울대·포항공대·가톨릭대 등 대학교수 87명이 자신의 논문 139건에 자녀를 공저자로 올렸다. 이 중 12건은 자녀의 기여가 없는데도 공저자에 올렸다고 교육부는 확인했다. 공동등재 논문이 자녀의 대학입시에 활용됐는지는 더 조사해야 하지만,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 최근 4년간 90개 대학에서 교수 574명이 800회 넘게 해외 부실학회에 참석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부분은 국가 지원연구비를 펑펑 쓰며 부실한 논문으로 연구실적을 부풀렸다. 이게 과연 학문상아탑에서 일하는 교수가 할 일인지 묻고 싶다. 

(출처:경향신문DB)

교육부는 자녀를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린 교수나 해외 부실학회 참석 교수에 대해서는 연구사업 참여제한, 연구비 환수 등의 조치를 취했다. 또 연구부정이 많은 대학은 특별조사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대학 연구윤리 확립과 연구관리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구부정 행위자는 최대 10년간 국가 연구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며 연구비 부정 사용 시 형사고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연구 부정을 막을 수 없다.

이참에 대학과 교수에 대한 정부의 평가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연간 수조원대에 이르지만, 논문 실적을 기준으로 연구자를 지원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러다보니 교수들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부실논문, 공저자 논문들을 양산하고 있다. 논문 이외에 번역, 서적 출간 등으로 평가 기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학문을 연구하고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교수들이 양심적이고 책임 있는 연구문화 조성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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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선생이 훌륭한 학생을 길러낸다. 대학원 학생이 뛰어난 학자이자 선생으로 성장해야 우수하고 경쟁력 있는 고등교육기관이 생긴다. 고등교육 혁신에서 연구자 지원책이 필수적인 이유이다.

교육부는 고등교육 혁신방안을 6월 안에 발표할 계획이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첫째, 학문사회가 하나의 집단으로서 새로운 기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강사법 논란에서 드러나듯, 대학이 망가지고 있지만 전임교수가 비정규교수와 알차게 연대하고 협력하는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 과거의 정책 실패에 관한 뼈저린 자기비판이 부족한 교육부가 주도하는 한, 학문사회가 그나마 지닌 혁신 의지와 역량도 죽이기 십상이다. 셋째, 상당한 재정투입이 따라와야 하지만, 현재 정부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문사회과학은 공부하려는 이가 점점 줄고 이미 배출된 박사들은 자리가 없어 말 그대로 붕괴 직전이다. 자연과학 등 이공계도 어렵기는 매일반이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공계 박사과정생은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통해 등록금 면제와 생활장학금 혜택을 받지만, 인문사회계는 대개 자기 돈을 내고 공부한다. 장차 전임교수가 될 전망이 불투명한 현실에서 이처럼 어려운 환경은 젊은이가 자신있게 공부길을 택하는 것을 막는다.

인문사회과학을 택한 박사 신입생에게 등록금 면제와 최소 5년간 월 150만원의 생활장학금을 줘야 엄정한 학사관리 속에 학생을 신명나게 키울 수 있다. 자연스럽게 탁월한 신진 학자가 우수한 학위논문과 함께 배출될 것이다. 물론 전국 인문사회계 대학원 정원 조정과 네트워크화 등의 개혁이 함께 가야 한다.

대학원 혁신을 전제로 매년 박사과정생 1만명에게 생활장학금을 줄 때 재정 부담은 얼마일까? 등록금을 연 800만원으로 잡고 1인당 2600만원, 연 2600억원이 든다. 현지조사나 해외연수 등 논문준비와 집필을 지원할 재정으로 400억원을 더한다면 연 3000억원이 필요하다.

당장 과도한 부담이라는 반발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박사를 따는 것이 외국 유학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수한 한국 학생이 외국 대학에 가면 생활장학금까지 받고 공부한다. 언제까지 고급의 인재 양성을 해외 대학에 의존하는 식민지적 학문 풍토를 방치할 셈인가. 압도적으로 미국 위주인 유학에서 돌아와 교수 자리를 잡는 경로는 진지한 학문의 길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을 위한 투자의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학자는 됐고, 교수가 꿈!”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캠퍼스에서 오갈까.(유학 무용론으로 오해 말기 바란다. 유학이나 해외연수가 필수인 분야도 많고,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한 한국에서 여성에게는 아직 국내 수학보다 유학이 현명한 선택이기 쉽다.)

어렵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생활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전임박사들을 돌아보자. 전국의 인문사회계 미취업 박사는 3만명을 훌쩍 넘지만, 한국연구재단의 비전임박사 대상 각종 사업 지원자는 지난 3년간 놀랍게도 평균 4300여명에 불과하다. 이는 비전임 연구인력 전체의 15% 미만이며, 이들의 실정이 사업 응모에 필요한 연구실적을 채우지 못할 만큼 열악하다는 방증이다.(물론 부실한 국내 대학원에서 허술하게 배출되는 박사도 많다.)

지난 4월 교육부는 비전임박사 대책으로 ‘인문사회 학술연구교수’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연 3000명을 지원하겠다는 비교적 진전된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계획을 단일 유형으로 통합하고 지원자를 1000명만 늘려 연 4000명으로 한다면, 현행의 지원자격을 충족하는 박사를 거의 모두 선발하는 획기적인 강점이 있다. 수혜자에게 직접 혜택이 가니 강사법 시행에 따른 대학 지원금 증액보다 효과적이며, 부실대학 지원 시비와도 무관하다. 이들의 소속도 다변화하여 대학에서 연구하며 강의를 맡거나 각종 연구기관에서 원하는 연구에 몰두할 수 있고,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의 실험에 뛰어들 수도 있다. 4000명의 학술연구교수에게 1인당 연 4000만원의 급여를 주되, 지원 인원을 매년 600명씩 늘려 10년 후 최종적으로 1만명을 지원한다면 연 4000억원이 필요하다.(늘리기만 하면 600명보다 적어도 좋다.)

인문사회 분야의 박사생활장학금 도입과 비전임박사를 위한 학술연구교수라는 새 직군의 정착에 드는 재정은 당장은 2000억원 미만이며, 점차 늘어나 10년 후 최종적으로 연 7000억원(+물가 인상분) 이하가 든다. 물론 큰돈이며, 투자의 타당성 확보를 위해 준비하고 개혁할 일도 많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재정을 감당치 못할 만큼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취약한가? 이 돈이 아까울 만큼 인문사회 분야 학문연구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가?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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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교내 도서관에 갔는데, 어떤 아이가 혼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요즘에도 이런 학생이 있나? 그의 책상 위에는 판타지 소설, 과학 잡지, 철학서들이 잔뜩 쌓여있다. 순간 궁금했다. 이 아이는 누구랑 어울릴까? 얼마 뒤 복도에서 그 아이가 내가 가르치는 현우(가명)와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현우는 수업이 끝나면 제일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시작종이 치면 교실로 돌아오는 아이였다. 아이들은 현우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가끔 현우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화를 더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현우도 그들 사이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하고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교실에 있는 것이 그에게는 힘든 일이다. 다행히 그 두 아이는 다름 안에서 함께 어울리고 밥도 먹는 친구가 됐으니 그들의 학교생활은 그나마 괜찮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여리고 미숙하기 때문에 교우관계에 갈등이 생기고 따돌림을 겪게 되면, 그들의 심리와 감정, 반응 방식은 손상을 입고 움츠러든다. 이런 아이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점심시간이다. 급식실에서 친구 하나 없는 식탁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것은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짝을 지어주기도 하지만, 아이들 관계라는 게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아이들은 자신도 저렇게 혼자 남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작은 차이도 경계하고 멀리한다. 그래서 교실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는 친구 주변에 몰려들게 되고, 끊임없이 무리를 지으며 결속을 다진다. 이제 누군가 교실의 어떤 아이를 욕하면 같이 동조해야 하고, 듣기 거북한 성적 표현도 따라 하거나 함께 웃어야 한다. 교실은 이렇게 누구도 진정으로 홀로 되지 못하며, 동시에 누구도 함께 공존하지도 못하는 메마른 들판이 된다. 많은 학교폭력이 이 메마르고 척박한 그늘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또다시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싶어진다. 학교는 가정교육과 대중매체가 문제라고 하고, 부모들은 학교와 교사의 책임이라고 한다. 그러면 다시 학교와 교사는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하고, 정부는 사회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에 끼어서 정책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책임자 교체를 반복한다. 제도 자체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진정한 책임은 우리 자신도 제도의 일부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모두가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데 있다. 

논어(論語)에 ‘평화로움을 추구하되 같아지려 하지는 않는다’란 뜻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다. 동일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신과 다른 것은 부정하고 배제하게 되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은 끊이지 않는다. 아까운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무엇보다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교실이 서로 다른 차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화이부동’의 공간이 되려면 그런 모습을 현실에서 실제로 보여주는 어른들이 필요하다. 

4월의 새순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하늘거리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봄과 같은 존재이다. 이 아이들이 구김 없이 마음껏 배우고 성장할 때 우리 모두의 가을은 달콤하고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교실을 비옥한 옥토로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는 각자가 있는 공간에서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떤 비료를 줄 수 있을까?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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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인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을까? 최선은 외고·자사고의 존립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 제91조의3 등의 개정을 통해 일반고로의 전환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다른 정치세력이 반발하지 않을까? 이 공약은 정치권의 합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유승민·심상정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또 시행령 개정이라 그 권한이 정부에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면 외고·자사고를 그대로 두면서 공약의 취지를 살리는 길은 없었을까? 학생 선발을 일반고처럼 오로지 추첨으로만 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안철수 후보의 대선공약이었다. 이도저도 다 버겁다면? 공약 이행을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국민에게 피로감만 줄 바엔 차라리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낫다. 그런데 정부는 어떻게 했나? 정부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먼저 헌법재판소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린 전략이 있다. 학생들의 외고·자사고 지원을 곤란하게 만들어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케 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외고·자사고의 선발 시기를 일반고와 일치시키고, 외고·자사고 지원학생의 (평준화 지역) 일반고 지원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선발 시기의 일치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 하지만 효력이 작다. 그래서 함께 시행한 것이 외고·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의 일반고 지원을 막는 것이다. 효력이 크지만 비교육적인 게 문제다. 이것은 외고·자사고 지원 학생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방식이다. 어린 학생들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도저히 문재인 정부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책이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자립형사립고(자사고) 학생 선발 시기 및 이중금지 지원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한 자사고의 헌법소원 심판 청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11일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헌재는 작년 6월에도 가처분 결정을 내려 효력을 정지시킨 바 있다. 헌재가 개혁의 발목을 잡은 게 아니다. 애초에 정부 정책이 문제였다.

시행을 앞둔 전략도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있는 교육감 권한을 이용해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았지만 교육감들이 의지를 갖는다면 곧 시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 전략보다 더 참담하게 실패할 것이다. 외고·자사고와 교육청 간에 소모적 갈등만 남을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존재하는 특목고와 자사고에 대한 교육감의 재지정 심사권은 이들 학교 다수를 폐지할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 아니다. 정부와 교육감이 이들 조항을 외고·자사고의 폐지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이후의 법적 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몇 개 학교만 일반고로 전환한 후 생색내기를 할 거라면 몰라도 이것은 공약 실현의 효과적 방법이 아니다.

승패 여부를 떠나 바람직한 전략이 아니다. 이것은 외고·자사고 구성원들에게 모욕을 주는 방식이다. 외고·자사고 구성원이라 해서 교육적으로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외고·자사고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기관으로 변질되지 않았냐고?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것은 일반고도 마찬가지다. 외고·자사고가 훨씬 심하기야 하겠지만 그것은 그들 학교에 성적 우수생이 많은 데서 비롯된 면이 있다. 일반고도 성적이 우수한 학교의 경우는 입시에 목매는 정도가 외고·자사고에 뒤지지 않는다. 외고·자사고 공약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략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기정 서울 구암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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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대통령비서실, 교육부, 더불어민주당이 당·정·청 협의를 통해 2019년 2학기 고3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시작하기로 했다. 총 소요액의 정부, 시·도교육청 분담 비율은 50 대 50이라고 밝혔다.

당초 계획보다 앞당긴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전국 시·도교육청과 함께 협력을 약속한다. 고교 무상교육은 교육받을 기회를 확대하고 서민 가정을 비롯한 모든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더 일찍 실현됐어야 한다.

다만 고교 무상교육의 재원 마련 대책에 관해서는 아쉽다. 시·도교육청과 충분한 협의와 설득 없이 교육청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게 고교 무상교육을 하지 않고 있고, 2018년 공교육비 중 정부 투자 비율 역시 초·중·고 87.1%로 OECD 평균 90.4%보다 낮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고교 무상교육 실행방안 연구(2013)’ 보고서도 “우리나라가 고교 무상교육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예외적인 공교육 체제로 비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9일 고교 무상교육 시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열린 당·정·청 협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그동안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고교 무상교육을 위해 추가 재원을 주지 않겠으니 시·도교육청 돈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현재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시·도교육청으로 보내는 교부금으로 충분하다는 이유였다. 

이는 학생을 단순히 단위당 원가 개념으로 취급하여 적용한 과도한 경제논리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로 시·도교육청은 이미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누리과정을 시행하며 부족한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면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있었고, 보육대란 위기까지 이어졌음을 상기해야 한다. 더욱이 누리과정은 보건복지부 사무를 떠안아야 하는 것이었지만 고교 무상교육은 교육당국이 시급히 챙겨야 할 사안이다.

무상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교육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자 공정한 교육,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된다. 이것이 인천시교육청을 비롯하여 각 시·도교육청에서 무상교육을 추진하는 이유다. 현재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급식비나 교복구매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고등학생 학비까지 부담하는 것은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19일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회’에서 “사람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로 누구나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게 하겠다”는 혁신적 포용국가 실현의 의지를 밝혔다. 핵심은 ‘고교 무상교육’이다.

그동안 협력적 관계를 중시해온 대통령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약속을 믿는다. 그 약속은 고교 무상교육을 온전히 정부의 부담으로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교육청은 잠정적으로나마 재정적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원을 분담할 것이다. 고교 무상교육이 완성되는 때까지 당·정·청은 고교 무상교육의 교부율 인상을 포함한 안정적 재원 대책을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기 바란다.

고교 무상교육을 비롯하여 초·중등 교육에 대한 투자는 곧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심지어 영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지출은 줄였지만 교육예산만큼은 증액하였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교육에 대한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교육이 경제·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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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 중간고사를 치르기 때문에 요즘을 중간고사 대비기간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중·고등학생이 있는 가정마다 온통 비상이기 마련이다. 학생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밤 12시를 넘기는 날들이 시작되었으니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전쟁이 된다. 적으면 3~4시간, 많아야 5시간에 불과한 수면을 하는 것이니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아침에 별 탈 없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미션일 수밖에 없다. 

이런 비상이 걸리는 곳으로 학원들도 있다. 학원들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2~3주 전부터 시험 대비 수업을 시작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4주 또는 한 달 전부터 시험 대비 수업을 시작한다. 학원들에서 이렇게 긴 내신 시험 대비기간을 설정하는 이유는 학교 성적이 대학입시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학원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즘은 예상 시험문제를 잘 가르치는 경쟁에서 학생들에게 내주는 엄청난 과제 분량의 경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동안은 시험 대비기간을 한 주씩 늘리는 방식으로 경쟁했지만 4주 이상으로 기간을 더 늘리면 사실상 상시 시험 대비라는 무리한 일정이 만들어지기에 대신 숙제를 많이 내주는 것으로 학습 강도를 높이는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학원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학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어서 선호된다. 학생들이 집에 있는 동안 힘겹게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이 아이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학원에서는 할 만큼 했는데 학생이 따라오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가능하니 학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여기에 덧붙여 시험 기간 중 학생들이 학원에 머무는 시간도 늘린다. 평시에 3시간 수업이었다면 4시간 동안 학원에 있게 하고 그중 1시간은 대학생 조교들을 활용해서 시험 대비 문제풀이를 하게 한다. 물론 이 시간도 똑같이 학원비가 과금된다. 

이렇게 학원들마다 숙제량 경쟁과 시간 끌기 경쟁을 하기 때문에 여러 곳의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다니는 학원들마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과목의 성적을 올리는 데 학습시간을 쓰도록 과도한 숙제를 내주다보니 그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학생은 매일 새벽까지 학원 숙제를 하느라 진짜 필요한 자신의 공부를 전혀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면 학생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도 학원 숙제를 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과거와 같이 강의식 수업이 아닌 참여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수업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데다 학원 숙제도 못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된다. 물론, 그런 상황을 모두 다 잘 챙기고 높은 성적을 받아내는 학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소수일 수밖에 없고 나머지 학생들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암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낮아져서 전국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을 정부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처럼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학습량이 부족해서 기초학력이 낮아졌을까? 아니면 불필요하고 부조리한 교육환경에조차 접근 못하는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일까? 과거 권위적인 정부와 어떤 면을 슬금슬금 닮아가는 교육당국의 발걸음이 무서워진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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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고등학교 무상교육 방안을 확정했다. 올 2학기 고교 3학년부터 시작해 2021년에는 모든 고교생으로 대상을 확대키로 했다. 고교생 1인당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비 등을 포함해 평균 158만여원(2018년 기준)을 지원받게 된다. 고교 무상교육은 사실 때늦은 감이 있다. 고교 진학률이 99.7%에 이르러 사실상 ‘의무교육’화한 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고교 교육 무상화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균등한 기회보장을 위해 조속히 실현해야 할 과제다.

문제는 재원 조달 방안이다. 고교 무상교육에 소요될 예산은 올해 3856억원, 2020년 1조3882억원, 2021년 1조9951억원으로 추산된다. 당·정·청이 확정한 안을 보면, 올해 2학기의 고3 무상교육 예산은 각 시·도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확보하도록 했다. 전면 시행 이후엔 중앙정부가 47.5%, 교육청이 47.5%씩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가 5%를 내게 된다.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감들과 협의한 결과, 모두 고교 무상교육 필요성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 교육감들이 협조한다 해도 3년 뒤 새로 선출되는 교육감들이 이를 거부한다면 과거 ‘누리과정 사태’ 같은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 사업인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소요 예산 중 상당액을 교육청에 떠넘기려 했다. 이에 교육청들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면서 ‘보육대란’이 발생했다.

고교 무상교육이 재원 문제로 좌초하는 걸 막으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분담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은 당·정·청 안대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증액교부금’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야당도 교육기본권 보장이라는 대의에 공감한다면 개정에 협조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당초 교육부가 구상했던 대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 자체를 인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육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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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민철(가명)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욕설까지 섞어서 하는 틱 장애가 심해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여러 해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고 있지만 차도가 없고, 집에 있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대안학교도 몇 군데 면접을 봤으나 잘 안되었다고. 아이 교육 문제부터 주거, 병원 치료까지…. 울먹이며 쏟아놓는 이야기들은 한 시간가량의 전화 통화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번 만나자 했더니 멀리서 민철이를 데리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긴 이야기를 들은 후, 아이를 보낼 만한 학교가 있을지 묻는 엄마에게 나는 한 농촌마을을 권했다. 사실 아이보다 엄마를 생각해서 한 권유였다. 엄마의 저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이 풀리고 여유를 찾아야, 아이의 어려움도 좀 나아질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안전하게 머물 곳이 있고, 부모 말고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줄 이웃들이 있는 느슨한 공동체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내 얘기를 들은 바로 그다음 날부터 무작정 그 마을을 찾아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이 지인들을 통해 전해졌다. 얼마 후 민철 엄마는 긴 문자를 보내왔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이상하게 이곳에선 그냥 살아질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숨통이 트인다’ ‘가슴이 뻥 뚫린 거 같다’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이는 그대로지만 달라진 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그로 인해 민철 엄마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이와 엄마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학교’가 아니라 ‘알로마더’였다. C J 슈나이더가 쓴 <엄마는 누가 돌보지?>에서는 엄마 외에도 아이의 양육에 중요한 역할을 나누어 하는 할머니, 고모, 이모, 언니, 삼촌 등 알로마더(allomother), 알로페어런츠(alloparents)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교사’, ‘부모’라는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에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돕고자 하는 ‘확대가족’의 마음가짐이 인류를 진화시켜왔다. 

학기 초를 맞아 또다시 돌봄 전쟁이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올해 돌봄의 틈새를 메우는 우리동네키움센터를 94곳에 설치하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교육혁신지구 정책도 가정과 학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교육과 돌봄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사회적 제도’ 이전의 유대감과 연결감이 필요하다. 민철 엄마에게서 보듯, 전문적인 ‘상담가’보다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웃’이 심리적으로 더 빠른 치료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난주, 공간민들레 청소년 열두 명이 입학식을 했다. 그들은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자신들의 고민과 계획을 들려주었다. 부모, 교사, 강사, 그들을 응원하는 어른들이 모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질문하고, 조언하고, 공감했다. 입학식은 세 시간 반을 훌쩍 넘겨 끝이 났다. 

여러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올해 내 역할을 가늠해보았다. 손 내밀 때 언제든 잡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들의 성장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응원하는 ‘알로마더’로서의 역할로 충분하지 싶다. 어쩌면 그것이 교육과 돌봄을 회복하는 ‘교육적 사회 만들기’의 시작이기도 할 것이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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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재지정 평가 문제로 교육계가 시끄럽다. 대표적인 자사고인 ‘상산고’ 재지정 평가 기준 하한선을 전북도교육청이 10점 상향해 80점으로 높인 것에 학교 측이 반발했다. 자사고 폐지를 위한 수순이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자사고 재지정 평가 절차에 돌입하자 자사고 연합 측이 이를 거부했다. 재지정 기준 하한선 70점은 자사고 죽이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사실 70점은 자사고를 만든 이명박 정부 시절 재지정 평가 기준이었다. 이를 박근혜 정부가 60점으로 낮추었다가, 현 정부 들어 MB 정부 시절로 회복한 것이니, 자사고 죽이기 정책인지 의아하다. 장담컨대 상당수 자사고들은 70점 하한선을 통과해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자사고의 심각한 폐해를 생각할 때, 재지정 평가 정책이 과연 이를 바로잡을 적합한 도구인가는 회의스럽다. 재지정 평가 정책은 그 평가를 통과한 자사고는 존속시키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국가적 폐해를 생각할 때 자사고 존속은 ‘약속’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위를 해소해야 한다. 즉 자사고 문제를 푸는 길은 재지정 정책이 아니라 시행령을 고쳐 학교의 지위를 일반학교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자사고 문제의 핵심은 고교체계가 서열화되었다는 것이다. 영재고 시험을 치르고 떨어지면 특목고나 자사고에 지원하고, 거기서 떨어지면 자율고나 과학중점학교 등을 거쳐 최종 탈락자들이 일반고를 지원한다. 말이 되는가? 서울대 떨어지면 연대·고대 입시를 치르고 거기서 떨어지면 ‘인서울’ 대학 입시를 치른 후 지방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떨어진 학생들을 전문대가 받아들이겠다면, 어느 국민들이 수용할까? 그런데 이 희한한 입시 정책이 고교 단계에서는 먹히고 있다.

이 체계에 적응하느라 중학생들이 입시 노예가 되어 버렸다. 중학생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춘기를 통과하는 존재다. 내가 네가 아니고 나인 이유를 찾는 시기, 어른이 아닌데 어른 대접 해달라고 요구하는 질풍노도의 존재들이다. 그 터널을 통과하며 자기를 발견하고 세우는 시기다. 어른이 아니니 너희들에게 그 자유를 줄 수 없다고 해도 소용없다. 누르고 감독하는 존재가 아닌, 자식의 친구로 그 위치를 조정하지 않으면 자식의 마음을 만날 수 없다. 그 준엄한 시기에 부모들이 품안에 움켜쥐었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자식들에게 “너는 자유인이니, 네 판단과 감정을 존중하겠다”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관계의 전환을 시도할 때다. 그 시기를 그렇게 거쳐야 자식은 주어진 자유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며 실패 속에서 성장한다. 부모 역시 그래야 자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진로는 ‘결정’할 시기가 아니라 다만 ‘탐색’할 시기일 뿐이다. 

그 엄중한 때에 허다한 부모들이 임박한 고입 걱정에 얼어붙어 그나마 있던 자유마저 회수하며 아이 목을 잡고 입시 트랙을 달리게 한다. 부모가 열어준 여유의 공간 속에서 퇴행과 방종의 사춘기를 거쳐야, 자식은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남의 미래가 아닌 내 미래를 사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 귀한 시도가 모두 억제된 채 경주마로 달리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대입 경쟁이야 어쩔 수 없다 치자. 고입 경쟁만큼은 막아야 한다. 재지정 평가나 고교 입시만 손질할 일이 아니다. 속히 고교체계도 바로잡아야 한다.

<송인수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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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에 대한 법인 설립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또 이를 발표한 이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는 한유총의 개학연기 투쟁과 반복적인 집단 휴원 및 폐원 협박, 그리고 ‘처음학교로’와 정보공시 참여 거부 등이 헌법 제31조가 보장한 국민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으며, 한유총의 설립 목적과도 맞지 않고, 민법 제38조가 규정한 ‘공익을 해하는 행위’로써 법인의 설립허가 취소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결정이 정부가 ‘공익’을 자의적으로 정의해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를 약화시키는 선례로 남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그럼에도 검토를 거듭한 끝에 설립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는데, 서울시교육청은 우리 시민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지키는 것이 교육청의 더 중요한 의무라고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유총의 반교육적인 일부 강경 지도부의 방침은 수십년간 유아교육에 헌신해온 다수 유치원의 의지에 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유총의 강경 노선은 다수 유치원으로부터 기각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유총이 공식적으로 개학연기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던 1533개 유치원 중 실제 참여 유치원은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설립 허가 취소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다수의 사립유치원은 단순히 정부의 압박에 마지못해 개학연기 투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도부의 반교육적 방침이 다수 국민의 기대에 배치되고, 또한 학부모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는 점을 깊게 인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립유치원들은 유아교육의 황무지에서 사재를 털어 국가가 담당해야 할 유아교육에 헌신해 왔다. 그런데 일부 반교육적인 강경 지도부에 의해 휘둘리는 사이, 국민들과의 괴리가 커졌다. 특히 사립유치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 한 계기는 아마도 2018년 10월5일 국회 토론회 무산 사태일 것이다. 이는 2017년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장애인 학부모가 무릎 꿇었던’ 강서 특수학교 공청회 이후 특수학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던 것과 유사하다. 

지금 사립유치원 앞에는 달라진 사회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 길과 과거로 회귀하거나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후진적 길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그동안 유아교육에 헌신해온 사립유치원들이 국민의 달라진 인식과 눈높이에 맞게 미래지향적 유아교육의 길로 함께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호소드린다. 

많은 사립유치원 원장과 운영자들께서 그동안 유아교육에 대한 사립유치원의 헌신과 기여가 폄하되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난 기간 유아교육에 대한 어렵고도 지난한 헌신을 시민들이 다시 생각해볼 마음의 여백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립유치원 운영의 미래지향적 전환은 필수다.

익숙한 과거와 과감히 단절하는 고통스러운 과정 없이 시민들의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가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미래지향적 유아교육으로 전환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럴 때 사립유치원이 다시 시민들, 특히 학부모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조희연 |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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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중·고교생의 1인당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9만1000원에 달했다. 2007년 사교육비 조사를 실시한 이후 가장 높다. 연간 사교육비 총액 역시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사교육비는 19조5000억원으로 2012년 이후 최대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교육 강화정책이 무색할 정도다.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2.8%로 전년 대비 1.7%포인트 상승했다. 초등학생이 82.5%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 69.6%, 고등학생 58.5%였다. 소득 계층별로는 저소득층의 참여율은 증가한 반면 고소득층 비율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교육열이 높은 상류·중산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교육이 이제 학령과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가정으로 확산되고 있다. SKY캐슬은 더 이상 드라마 속에만 있지 않다.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사교육을 시키겠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사회 분위기도 사교육 시장 의존도를 높이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이는 자녀가 적을수록 1인당 사교육비가 높은 데서도 확인된다.

공교육 불신은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방과후학교’ 비용은 2015년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다. 자율학습을 위해 제작된 EBS 교재를 구입하는 비율 역시 5년째 감소 추세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방과후학교가 저렴하지만 교육의 질에서는 사교육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공교육 내실화는 사교육을 경감할 수 있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대책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사를 신뢰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방과후학교를 활성화하고 초등돌봄교실을 확충하는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생존경쟁을 위해 올인하는 사회에서는 공교육 강화만으로 사교육 의존을 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교육격차는 기회 균등, 제도 공정성만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교육 가치가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돼선 안된다. 부모의 돈과 정보력이 아닌 학생의 재능과 특기, 꿈이 대학의 선택 기준이 돼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는 더디더라도 성적지상주의와 학벌주의가 철폐되고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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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3이 되는 첫째 아이가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중학교 때에 비해 교육비 부담이 늘어나 부담스러웠다. 3개월마다 수업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중3이 되는 둘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내년부터는 둘째 아이 고등학교 수업료 부담까지 더해지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한 달에 이틀 남짓 쉬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 꼬박 13시간씩 시장에서 일하는 우리와 같은 소상공인들에게는 고등학교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아이들 학비 부담이 여간 큰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국가 복지정책이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나, 우리 같은 40~50대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것 같다. 아동, 청년, 노인 등 대부분 연령대가 복지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 우리 세대는 지금껏 세금은 꼬박꼬박 내면서도 각종 복지 혜택에서는 소외된다고 느낀다. 이 세대는 소위 ‘낀 세대’로서 아직도 위로는 부모님을 챙겨야 하고, 아래로는 중고생 자녀들에게 들어갈 돈이 태산이다.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세대가 아닐까 한다. 

우리 세대가 자녀를 키울 때는 모든 게 자비였는데, 지금은 산전 검사부터 출산비용까지 지원되고 육아수당에 어린이집·유치원 교육비도 지원되고 예방접종도 무료가 되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학비 부담은 없었는데, 자녀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40만원가량의 등록금 고지서가 분기별로 날아온다. 대학 등록금보다야 낫다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부담은 상당하다. 

우리 세대는 아무런 혜택 없이 아등바등 자녀들을 키워왔는데, 올해부터는 부모의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 대해 아동수당도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등학생들의 학비도 지원해 주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심지어 국공립대학 입학금이 폐지되고 사립대학의 입학금도 점차 폐지된다고 하며, 대학생 3명 중 1명은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국가장학금으로 지원받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교육은 정규교육이며 공교육인데, 다른 비용도 아니고 공교육 이수를 위한 학비를 지원받는 것은 같은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세수가 늘어났다고 하는데, 늘어난 세수에 대한 혜택도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편 현재 저소득층 자녀나 농어민 자녀에게는 고등학교 학비가 전액 지원되고 있으며,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 자녀들도 사원 복지 차원에서 고등학교 학비를 지원받고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재 자녀의 고등학교 학비를 자비로 부담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 직원 등 서민층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교육이 기본교육이 된 지 이미 오래인데 서민층만 혜택을 받지 못하고 학비를 부담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최근에 정부에서도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천명하면서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이야말로 이에 부합하는 정책이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올해 2학기부터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시행한다는 소식은 반가운 뉴스다. 국가는 모든 학생들이 가정의 여건과 관계없이 마음 놓고 공부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학부모의 교육열에 기대어 공교육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용수 | 대전 태평시장  상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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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2018년 10월4일 유은혜 장관 취임과 더불어 유치원 방과후 과정에서 ‘놀이 중심 영어’를 허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는 이전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에 관한 법 시행을 1년 유예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러한 중요한 영어 관련 정책들이 충분한 학술 및 현장 연구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제한하기로 하였다가 허용되는 등 체계성과 일관성이 결여된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특히, 현재 초등학교 1·2학년은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있는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2018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영어교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련 법안 또한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당장 이번 주부터 신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유치원에서 영어를 접한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은 학교에서 방과후에도 영어를 여전히 배울 수 없게 되어 있다. 결국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학원 뿐이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내놓은 교육행정의 결과가 학교 영어교육을 갈팡질팡하게 하고, 학부모들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사립유치원 개학연기 사태에 대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절차도 문제이지만, 교육적 관점에서도 고려해봐야 할 부분이 많다. 그동안 10세 이전에는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교육부의 유치원 방과후 ‘놀이 중심 영어’ 허용을 통해, 영어 시작 연령이 5세(만 3세)로 낮춰졌다. 교육부가 학부모들의 의견 수렴과 요구를 통해 허용하였다고는 하지만, 5세 아동의 언어적, 인지적, 심리 및 정의적 영역 발달에 대한 교육적 연구를 얼마만큼 기반으로 하여 이 정책을 내놓았는지도 의심스럽다.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허용과 관련하여 명확하게 이해해야 할 부분이 놀이식 교육이다. 유아교육에서 놀이교육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놀이 중심 영어’는 놀이교육이 중심이 되면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야 한다. 아동의 언어 및 전체적인 영역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아동의 연령에 따른 방법론적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는 교육부의 방향대로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가 허용된다면, 이를 어떤 철학을 가지고 개념화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유치원 ‘놀이 중심 영어’와 초등학교 3·4학년 영어과 교육과정 사이에 존재하는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 영어 과정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교육적 큰 틀의 개념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고, 없다면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전문가들이 해야 할 또 다른 시급한 일들이 있다. 우선, 유치원의 방과후 특성화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와 각 유치원의 영어프로그램에 관련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5세부터 7세까지 연령별 수준에 맞는 놀이식 영어교육에 관한 세부 운영기준을 이론적·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놀이식 영어교육과 관련해서는 영어전담 회화강사와 같은 제도보다는 현 유치원 교사의 연수가 우선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성격과 교육방법이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유은혜 장관의 말대로 교육에 있어 중요한 주체가 학부모와 학교일 수 있고, 이들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 정책을 시행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의 대상인 학생들이다. 특히,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영역의 교육은 루소의 철학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아동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면 효율이 떨어지고, 흥미를 잃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교육에서 무언가 가르치는 것을 제한하거나 허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호기심을 갖고 배움을 쌓아가도록 환경과 내용,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선호 | 서울교대 교수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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