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교육'에 해당되는 글 484건

  1. 2019.08.20 [학교의 안과 밖]홈스쿨링 돕는 의무교육
  2. 2019.08.08 [시론]법의 렌즈로 본 자사고 문제
  3. 2019.07.31 [공감]학교 복장규정과 교육제도
  4. 2019.07.30 [학교의 안과 밖]‘노노재팬’과 논쟁수업
  5. 2019.07.22 [시선]고교 입시가 유별날 때 벌어지는 일
  6. 2019.07.19 [기고]자사고 줄어들면…‘강남8학군’ 부활?
  7. 2019.07.18 [사설]서울교육청, ‘일반고 중심의 교육정상화’가 맞다
  8. 2019.07.16 [학교의 안과 밖]갈등 속에서 더 좋은 교사 되기
  9. 2019.07.12 [편집국에서]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0. 2019.07.12 [정동칼럼]공영형 사립대, 미룰 수 없다
  11. 2019.07.10 [사설]서울 자사고 대거 지정취소, 교육정상화로 이어져야
  12. 2019.07.09 [학교의 안과 밖]교사와 학생을 더 많이 믿어줘야
  13. 2019.07.03 [기고]대학에 묻는다, ‘학문후속’ 의지 있는가
  14. 2019.07.02 [학교의 안과 밖]이젠 내신의 문제를 살펴야 할 때
  15. 2019.06.25 [기고]국가교육위 출범, 새로운 교육 생태계 위한 첫걸음
  16. 2019.06.25 [학교의 안과 밖]4년제 고등학교
  17. 2019.06.25 [사설]교육부의 사립대 종합감사, 사학 발전 계기 되기를
  18. 2019.06.21 [사설]설립취지 위배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당연하다
  19. 2019.05.24 [사설]시대착오적 ‘사랑의 매’ 진작 없앴어야 했다
  20. 2019.05.21 [학교의 안과 밖]스승의날과 교육의날

홈스쿨러 부모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링크 하나가 공유됐다. 딸아이를 입학시키지 않고 홈스쿨링한 엄마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최근 기사였다. 아이가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집에서 직접 가르친 이 엄마가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한 정황은 없었으나, 판사는 “장기간 외부와 격리된 생활로 아이의 복지를 저해했다”며 아동복지법 위반(아동 유기, 방임)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채팅방의 홈스쿨러 부모들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불안해했다. 간혹 비정상적인 부모의 아동학대가 기사화되며, 홈스쿨링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례적인 이번 판결은 개인에게 교육의 선택권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홈스쿨링은 1990년대 말 시작된 대안교육운동과 그 흐름을 함께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안학교와 함께 입시와 경쟁 중심의 공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활기를 띠었다. 당시 귀농·귀촌 운동과도 맞물리면서 가족 모두가 시골로 이주해 홈스쿨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일을 돕거나 시골생활을 함께 꾸리며 필요한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했다.

최근에는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안’ 가기보다는 ‘못’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러 이유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를 도시 속에서 고립시키지 않기 위해서 부모는 직장을 그만두고서라도 아이를 돌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의무교육은 ‘의무를 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교육인 셈이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에서 ‘학교 밖 청소년’ 혹은 ‘학업 중단 학생’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홈스쿨러를 구분하는 경계 또한 모호해졌다. 한 홈스쿨러는 ‘혼자 집에 갇힌’ 듯한 용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세상에서 배우는 자, 로드스쿨러라고 칭하기도 했다. 일부 부모는 학습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개인 맞춤형 특별 교육으로 홈스쿨링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홈스쿨링은 미국은 물론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합법이고, 아시아·아프리카까지 이를 허용하는 나라가 점점 늘고 있다.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가 도처에 널린 세상에, 학교 시스템만을 고집하는 일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다양한 교육의 형태를 허용해 오히려 공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지평을 넓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일찍이 홈스쿨링을 합법화한 미국에서는 홈스쿨러들이 혼자 하기 어려운 음악이나 미술, 체육 같은 수업을 공교육에서 함께 듣기도 한다. 집단적으로 듣는 수업을 줄이고 개인의 진도와 관심에 따른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는 하이브리드 스쿨도 미래 교육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학교 아닌 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법으로 처벌할 게 아니라 홈스쿨링의 장점을 살리되 그 개별화가 각자도생이 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그 개별화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올해 2학기부터 고등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된다. 의무교육 기간이 연장된다고, 한 해 5만명 가까운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실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20만명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제대로 풀어갈 ‘실력’일 것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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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련 굵직한 행정소송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사고 지정 취소와 관련한 소송 기사들이 수십건씩 포털을 채운다. 갈등과 분쟁이 가득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이지 다른 누구가 아니다. 애초에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교육정책 하나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교육을 흔들고 있다. 

자사고 제도가 애초에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큰 이유는 우리 헌법정신에 반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함으로써 매우 분명하게 교육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교육의 기회균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국민 누구나가 교육에 대한 접근 기회, 즉 취학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함을 뜻하므로,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국가로 하여금 능력이 있는 국민이 여러 가지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의 재정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국민에게 취학의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게끔 그에 필요한 교육시설 및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부과한다.”(99헌바63, 2001·1·18)

이에 비추어 볼 때 자사고 제도는 어떠한가. 학교교육을 통해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일반고의 3배,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엔 연간 학비가 2500만원으로 일반고의 9배에 달하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수준이다. 교육과정의 다양성은 재력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각자의 적성과 흥미, 진로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의 경험을 제공하여 그 잠재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학교교육의 목적이 있다. 사회통합전형이 있다고 하지만 서열의 정점에 있는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들은 법령상 의무규정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사회통합전형 학생들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자사고 제도는 헌법 제31조 제1항의 교육기회의 균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교육에 미치는 부작용도 상당하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하듯 우수 학생 선점에 기반하여 대학입시에 치중한 결과 고교서열화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2018헌마221, 2019·4·11). 혹자는 자사고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일반고와 자사고가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교육생태계가 파괴된 현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내뱉는 말이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려면 전제가 있다. 출발선 등의 조건을 유사하게 맞추어야 한다. 자사고와 일반고의 조건은 이미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입학생들의 내신 성적만 보더라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우리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교육을 정상화하며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선 법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유일한 길이다. 지정 취소를 통한 폐지는 소송을 전제하고 있어 법적 혼란이 더 크고 갈등과 분쟁이 심화될 소지가 높다. 이미 지정 취소가 예정된 학교들 거의 모두가 행정소송을 예정하고 있고 전북교육청은 교육부에 대한 권한쟁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안이 아니다. 법령에 따르면 평가결과가 우수할 경우 자사고로 재지정되어야 한다. 자사고 제도 자체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법령 개정을 통하여 일괄적으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자사고 측에서는 신뢰보호이익의 원칙, 학교선택권 침해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다양성이라는 자사고 제도 신설의 목적 자체가 형해화된 지금, 자사고 제도에 대한 신뢰보호가치가 높지 않으며 교육기회의 균등 및 고교서열화 해소 등의 공익적 가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신뢰보호의 이익이 더 크다고 볼 여지도 적다. 또한 선 지원 후 추첨제, 일반고 안에서 학생 중심 선택의 교육과정 다양화 제도가 마련되고 있는 만큼 과도하게 학교선택권을 침해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밝힌 것처럼 학교 제도는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가가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교육정책을 탄력적·합리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크다. 또한 교육과 학교 제도에 관하여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이 발견될 경우 이를 시정하여야 하는 것은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국가의 의무이다(2018헌마221, 2019·4·11). 국가는 헌법의 교육기회 균등의 가치를 수호하고 아이들의 잠재력이 발현할 수 있는 학교교육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및 그 시행령을 개정하라. 그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홍민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상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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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니는 학교 복장규정을 새로 정하는 데 학부모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해서 회의에 참석했다. 교복 길이, 덧입는 옷의 종류, 화장과 머리 모양,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정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의견을 설문으로 제시할 수도 있었으나 사전 논의에서 결정된 내용이 설문에 반영될 거라서 나는 참석을 택했다. 개선하고 싶은 안이 있었고, 복장과 두발의 자율이라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 각각 어떤 입장인지도 궁금했다. 혹시라도 학교에서 ‘학생다움’을 강조해 보수적인 결정을 유도하면 적극적으로 아이들 편에 서야지 홀로 투사인 척 그런 오지랖 넓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학교가 보수적일 거라는 건 나의 편견이었다. 특히 교사들의 의견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 세 그룹 중 가장 파격적이었다. 안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원하는 어떤 방향도 동의했다. 어떤 안은 교사들이 낸 것이 가장 파격적이었다. 그렇게 입장이 정해지기까지를 설명하는 교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까지 교사로서 자신들이 지도해 온 ‘학생다움’이 복장과 외모, 태도가 아니었나 생각했다는 것, 그리하여 처음부터 학생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교사에게는 또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해보았다면서 학생에게 학생다움이란 수업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고, 교사에게 교사다움이란 그 수업을 준비하고 도와주는 것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꺼내놓지도 못한 오해를 삼키며 부끄러웠는데, 한편으로 신선한 감동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치마 길이와 명찰, 머리 길이로 인한 체벌이 하루를 시작하는 교육이었던 나는,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밝은 미래를 엿본 기분이었다. 

학생들의 입장은 다소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학급 내의 토의를 거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 기성세대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지나침을 배제하려는 어떤 기준이 있었다. 무릎 아래 치렁치렁 늘어진 치마도 싫지만 다리 전체가 훤히 드러나는 치마도 적당하지 않은 것 같고, 화장은 하고 싶지만 입술과 피부 정도의 가벼운 화장만 허용하는 게 맞는 거 같고, 액세서리는 나쁠 것 없지만 안전을 위해서 목걸이나 늘어뜨리는 귀걸이는 안될 것 같다고 하고, 실내화는 귀찮지만 청소할 때를 생각하면 구분해서 신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다. 풀어놓는다고 지구 반대편으로 겁 없이 달려 나갈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기특하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중도의 보수성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도 궁금했다. 그것이 스스로 자신의 테두리를 검토하고 정해나가려는 자의 자정능력이라면 바람직하지만, 안전한 곳만 골라 디디며 살도록 훈련받은 자의 내성이라면 조금 쓸쓸한 일일 터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아이들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 그래도 토론이라는 과정을 거쳤으니 세상의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인지했을 테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 넓어진 테두리에서 살다 보면 스스로가 결정한 삶을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깨닫게 되겠지 기대해볼 뿐이다. 

복장 규정 개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데, 현재의 교육제도 개정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사고 존립 논쟁도, 수시와 정시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자유학년제와 진로탐색체험에 대해서도 각각의 교사 단체와 각각의 학부모 단체만 첨예하게 옳고 그름을 논할 뿐, 지금 그 교육 과정을 겪어내는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불합리한지, 무엇이 부당한지, 어떤 방향을 바라는지 묻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교육에 대한 권리가 복장에 대한 권리만 못한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만약 묻는다면 이 아이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도 궁금하다. 학생 50% 이상의 의견이 나오면 교사, 학부모의 의견과 무관하게 무조건 반영하게 되어 있는 복장규정처럼 학생 50% 이상의 의견이 무조건 반영되는 교육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현재의 교육제도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지, 나는 그 결과도 농담처럼 궁금하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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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방에서 학생 상담을 하다가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노노재팬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일본제 필기도구를 많이 쓰고 있는데, 쓰던 것은 버리지는 않지만 새로 구입할 때는 꼭 원산지를 확인해서 일본제가 아닌 것을 고르고, 가능하면 국내 제품을 사용한단다. 그런 맥락에서 얼마 전 방학식 날에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방학 중 노노재팬 활동 캠페인을 하려고 했다가 학교에서 ‘정치적으로 미묘한 사안에 대한 캠페인은 불가’라고 허락을 받지 못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요즘 노노재팬 운동이 정부나 단체, 어떤 기관의 주도가 아닌 순수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그 동력들 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무렵부터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의 수요시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고, 위안부소녀상 건립운동에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렇게 중·고등학생들의 참여가 적극적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입시제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교과서를 익히고 문제의 정답을 잘 맞히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역량도 입시 평가 대상이 되면서 시간을 쪼개서 참여하는 다양한 사회활동이 강조되었고 학생들이 교과서 밖으로도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런 의미 있는 활동에도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예컨대, 지금 노노재팬 캠페인의 경우,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인가 아니면 아베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경제정책에 대한 반발인가, 또는 우리 정부의 잘못된 외교정책에 따른 인접국의 반발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한데도 이에 대해서 학생들이 공부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반론하며 토론하는 과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 배움의 과정 중인 학생들에게 적절한 탐구와 토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한·일 갈등 과정에서 발견해야 하는 문제의 핵심과 앞으로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적 역량을 준비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단순하게 친일은 나쁘고 우리는 옳다는 선동적 논리나, 우리가 잘못했으니 빨리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정치적 해법만 횡행하는 현실은, 자칫하면 건강하게 시작된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캠페인이 방향성을 잃고 극단의 논리로 흐르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17년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기반한 서울형 민주시민 논쟁수업은 큰 의미가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란 구서독에서 1976년에 ①학생에게 강압적인 교화와 주입식 교육 금지. ②학문적·사회적 논쟁 상황을 교실수업에서 그대로 재현. ③학생 실생활과 관련 있는 주제에 대해 학생 자신의 이해관계를 스스로 판단·결정하는 원칙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학생들은 ‘교복 입은 민주시민’이기 때문에, 학교의 교실뿐만 아니라 청소년수련관이나 청소년문화의집과 같은 청소년 기관에서도 상시적으로 교육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겠다. 최근 한·일 간의 갈등은 어른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짐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아주 좋은 세계시민 학습 주제라는 것을 이해하자.

<한왕근 |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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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와 특목고가 늘어나면서 교육 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고 사회 공동체의 신뢰관계가 무너졌다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먼저, 낙담의 시기가 빨라졌다. ‘성공하려면 좋은 대학에 가라’는 과거의 나쁜 조언은 더 악랄해져, ‘이상한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큰일 난다’는 협박이 부유한 지 오래다. 이는 특별한 곳에 가니 마니가 중학교 교실에서 가려진다는 말이니, 어린 나이에 인생의 쓴맛을 느끼는 개인들이 많아졌음을 뜻한다. 성인들도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하는 ‘실패자’라는 오명을 열다섯 살 남짓한 청소년들이 마주하면서 “대학 가기 글렀다. 내 인생은 망했다”면서 자조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일까?

낙담의 조기화만큼 일반고는 달라졌다. 과학과나 외고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의 삶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 학교들은 동네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는 천재들이나 발탁되어 따로 공부하는 곳 정도로 이해되었다. 당연히 고교 입시에 집착하는 중학생들도 드물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일반고는 좋은 곳에 ‘못 간’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덩달아 명문대 진학은 자신의 그릇이 아니라는 체념이 늘면서 ‘우리 주제를 알자’는 공기가 학교에 팽배해졌다. ‘대학 입시’만을 목표로 했던 과거의 학교가 좋았다는 것이 아니라, ‘고교 입시 실패’라는 말이 빈번해지면서 평범한 고등학생이 자신의 생애를 불합격으로 규정하는 지금이 이상하다는 말이다. 이 지경이니 일반고 중에는 ‘우리 학교는 특목고에 아쉽게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다’면서 어떻게든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특별함을 인정받으며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쪽과 반대편에서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해야만 하는 집단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사실은 자녀가 명문대에 가길 원한다면 명문고에 입학시켜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강박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문제는 이 난리가 딱 그 학교 정원만큼의 가정에서 벌어지겠는가. ‘자사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 ‘특목고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권고는 사람 가려 전달되지 않는다. 모두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니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은 일상이 되고, 집착의 세월이 길고 두꺼운 만큼 개인이 체감하는 실패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관문을 잘 넘어간 이들이 좋은 리더가 되면 다행이겠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분류된, 그러니까 삶의 궤적이 유사한 엘리트끼리 모인 집단의 ‘합의된 결정’은 위험천만하다. 공동체 안에 다양한 계층이 존재함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체험하지 못하고 그저 부모님께 들었던 대로만 세상 이치를 이해하고 사람을 평가하는 이가 ‘결정권자’라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은 공부 열심히 해서 이 자리에 이르렀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이 정치인, 법조인, 교육자, 언론인이 되어 여론을 생산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게다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자들은 사람을 철저히 가려내는 이 틀을 유지하려고 한다. ‘어떤’ 고등학교라는 무기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만연하다. 학교 야구잠바를 입으면서 특정한 무리들은 출신 고등학교 이름을 옆면에 새긴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구조를 고치려고 하자 여기저기서 반대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소모적인 논쟁이 지난한 가운데 자사고 학생들이 문화제를 열어 직접 공연을 한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자신들이 입시 기계가 아니라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의지라고 일부 언론에서는 해석하기 바쁘다. 그렇다면 더 의문이다. 왜 그 좋은 과정을 모든 학생이 배우지 못한다 말인가? 다양성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청소년의 권리인데, 이것이 초등학교 때부터 맞춤형 학원을 다녔기에 중학교 교과 성적이 우수할 수밖에 없는 일부만이 향유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이야말로 철폐 사유 아닌가.

오찬호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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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9일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소재 자율형사립고(자사고) 13곳에 대한 재지정 평가에서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 등 8개 학교의 재지정 취소를 발표한 이후 각양각색의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특히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되면 고교 서열화가 심화된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 하향 평준화가 된다, 강남8학군이 부활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박탈된다 등 볼멘소리도 적지 않게 나왔다. 이 중 필자로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강남8학군이 부활된다’는 것이다.

강남8학군(강남구·서초구)은 1970년대 강남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강북에 있던 경기고·휘문고·중동고·서울고·숙명여고 등이 이곳으로 이전하고, 이 학교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 실적이 높아지면서 입시의 뜨거운 지역이 되었다. ‘교육특구’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사교육의 대명사 대치동 학원가라는 상징적인 거리까지 생겨나게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주장하며 일반고 종합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8학군은 1970년대 이후 한 번도 죽은(?) 적이 없다. 다만 201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학생부(교과·종합)전형이 도입되면서 다소 불리해진 적은 있다. 교과 성적(내신) 등 학생부 기록 사항이 수능처럼 전체 수험생을 대상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학교에서 평가하여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부전형으로 선발하는 모집 인원이 2020학년도 대학입시의 경우 전체 4년제 대학 모집 정원의 67.0%로 많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된다고 해서 바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강남8학군이라고 해서 유리하고 불리하고 한 것도 아니다. 

만약 대학입시 제도가 과거 학력고사와 수능 성적으로만 선발할 때로 돌아간다면 강남8학군은 입시에서 ‘대박’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행 대학입시 제도로 볼 때 그럴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차,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정시 수능전형으로 30% 이상을 선발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니 강남8학군이 좀 더 유리해질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고려대·서울대·연세대 등 상위권 대학이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60% 이상 선발하는 것을 유지하는 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만 놓고 보면 강남8학군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 그런데 왜 강남8학군의 열기가 식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서울대와 의학계열 합격자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울대 2019학년도 합격자수 상위 50위권에 강남8학군 고등학교가 무려 11곳이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것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보다 정시 수능전형 합격자수가 많다는 것과 재수생 비율이 매년 적지 않다는 점이면.

강남8학군 자사고들의 2019학년도 서울대 최초 합격자수를 수시와 정시로 나누어 살펴보면, 세화고 수시 7명·정시 18명, 세화여고 수시 4명·정시 9명, 중동고 수시 8명·정시 12명, 현대고 수시 8명·정시 5명, 휘문고 수시 5명·정시 19명 등으로 현대고만 수시 합격자수가 많았고, 나머지 학교들은 정시 합격자수가 많았다. 졸업생 중 재수 비율은 2019년 2월 졸업자를 기준으로 휘문고 63.9%, 중동고 61.9%, 세화고 50.8%, 현대고 50.3%, 세화여고 43.9% 순이었다. 이처럼 강남8학군 자사고들만 봐도 서울대 합격은 정시 수능전형이 수시 학생부종합전형보다 두 배 이상 많고, 재수 비율은 50%를 넘는다.

‘모로 가도 서울대만 가면 된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사고를 확대할 때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 다양한 교육이 정시 수능전형으로 대거 합격시키는 것이었나? 

강남8학군은 자사고가 일반계고로 전환된다고 해서 다시 뜨는 곳이 아니라 원래부터 떠 있던 곳이다. 우리 사회와 정부는 ‘모로 가도 서울대만 가면 된다’는 식의 교육 방식에 대해 깊이 있게 고뇌했으면 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는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유성룡 입시분석가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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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어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될 학교를 포함한 일반고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9일 서울지역 자사고 8개 학교에 대해 지정취소 결정을 내린 지 1주일여 만이다. 교육부는 지정취소된 자사고에 대해 이달 안에 재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서울교육청이 자사고 폐지 최종 확정에 앞서 일반고 전환 자사고에 대한 지원방안을 발표한 것은 그만큼 교육청의 고교교육 정상화 의지가 확고함을 방증한다.

서울교육청의 일반고 지원 방향은 재정 확대와 교육과정 다양화로 모아진다. 서울교육청과 교육부는 일반고로 전환한 자사고에 20억원을 지원한다. 교육청은 기존 일반고처럼 ‘일반고 전환 자사고’에 매년 8000만~1억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교육과정 다양화를 위해 일반고로 전환한 자사고는 고교학점제선도학교나 교과중점학교 등을 지정받을 수 있다. 수강 학생이 적거나 교사 수급이 어려운 소인수 과목에는 강사비를 지원받고, 기존 일반고와 네트워크로 상생할 수 있도록 맞춤형 프로그램도 제공받을 수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주장하며 일반고 종합 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교육청의 지원방안은 고교교육을 일반고 중심으로 정상화하겠다는 청사진이다. 당장은 자사고 지정취소 학교가 일반고로 순조롭게 자리 잡도록 지원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전체 일반고를 종합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담화문을 내 고교교육의 방향으로 평등교육, 학생 맞춤형교육, 학교별 특색교육을 제시했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과정 다양화와 특성화를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앞으로의 과제다.

도입 20년이 된 자사고는 사실상 시효를 다했다. 설립 취지인 다양성교육, 특성화교육은 사라지고 입시전문기관으로 전락했다. 자사고 폐지 여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에 따라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확산추세다. 올 들어 자사고 4곳이 재정상 이유를 들어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했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대세다. 이제 일반고를 중심으로 고교체제를 개편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조희연 교육감은 고교체계 개선을 위해 자사고의 법적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개정과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위한 국민적 공론화를 제안했다. 관련기관과 부처가 적극 검토할 사항이다. 서울교육청의 일반고 종합지원 대책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고교체제 개편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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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과월호를 나눠준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이가 직접 책을 가지러 오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택배로도 보내주는 책을 굳이 가지러 오다니, 무거울 텐데. 게다가 지방에서 서울까지. 들른 김에 차 한 잔 할 수 있느냐고, 머뭇머뭇하는 목소리에서 하고픈 말이 아주 많은 마음이 읽혀 여유 있는 날로 약속을 잡았다.  

찾아온 그는 앳된 얼굴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교대를 졸업하고 발령받은 지 일 년 만에, 학교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일 년 동안 꾸준히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교실에서 자신의 역할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통제하는 사람, 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람이었다며. 나는 흔히들 학교를 파놉티콘에 비유하고 교사를 간수 역할에 비유하는 것이 좀 불편했지만, 일면 사실이기도 했다. 많은 시도를 하고 있지만 한국 공교육이 ‘입시’와 ‘성적’이라는 목적을 바꾸지 못하는 한 교사의 역할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념에 차 있는 사람보다 갈등 속에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다”는 우치다 다쓰루(<교사를 춤추게 하라>, 박동섭 옮김, 민들레)의 말을 인용하며, 이제 겨우 첫발을 뗐으니 학교가 어떤 곳인지, 그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알 때까지 더 견뎌보시라 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을 찾아 고민을 나누시라고도 했다.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은 좀 내려놓고 내 교실만이라도 덜 불행하게 꾸려보겠다는 작은 목표로 1인 교육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해보시는 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조언을 건네면서도 사실 자신은 없었다. 학교를 더 오래 경험하는 것이 그에게 좋을지, 오래 머무른다고 지금과 다른 결론을 낼 수 있을지, 본인이 원하는 대안의 길을 공교육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 다만 최선을 다해 그를 위로하고 싶었고, 진심으로 그의 교직 생활을 응원하고 싶었다. 질문을 던지며 갈등하는 그가 고마웠다. 

교사란 무엇인가. 새삼스러운 그 질문에 답을 찾으며 아이들 곁에 있는 이는, 적어도 내가 알기엔 많지 않다. 사범대학이 임용고시 대비 학원으로 전락한 것을 한탄하던 대학생이나 교장 눈치, 학부모 눈치에 분란을 만들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젊은 교사들을 흔히 보아온 탓이다. 

제일 불행한 교사는 ‘아이들을 싫어하는 교사’다. 싫어하는 존재들과 인생의 긴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불행한 일은 없다. “그래도 선생님은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니, 그 예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좀 더 힘을 내보시라”며 도움이 될 만한 교사단체나 교사 연수프로그램 등을 알려주면서 그를 힘껏 설득했다. 

두 시간 남짓한 얘기 끝에 같이 점심을 먹고,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돌아서는 젊은 선생님 가방에 잡지 과월호와 함께 책 몇 권을 찔러 넣었다.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또 들르시라는 말과 함께. 그가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게 붙잡고 싶었던 건, 갈등하는 교사일수록 더욱 아이들 곁에 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모른 채 위험하게 질주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자리가 어디쯤 있는지 고민하는 교사라면 ‘어른들이 원하는 것들’을 해내느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할 겨를도 없는 아이들에게 분명 다른 삶을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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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우열반 편성을 안 하는 이유가 뭐예요.”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섞어놓으면 학습능률이 떨어지는 건 뻔하잖아요.” “어차피 대학 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된 것이고, 몬가는 학생은 몬가는 기예요.” “보충수업은 어떻게 하실 거죠. 대학생 과외도 허용된 이 마당에 과외를 못할 것도 없지만요, 그래도 어디 대학생들이 선생님들만 하겠어요.” “아니 무슨 체육시간이 일주일에 세 시간이나 돼요. 애들이 피곤해 해요.” “음악, 미술은 시험과목에 없는데 빼는 게 어때요.” “점심시간 50분을 20분으로 줄이고 30분은 자율학습을 시켜주세요.” “도서관 이용은 성적순으로 해주세요.”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한 장면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성적을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교직원들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이들의 요구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영화는 1986년 1월15일 새벽,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중학교 3학년생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전교 1등을 하던 이 학생의 유서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이은주(이미연)의 내레이션으로 소개된다.

“난 1등 같은 건 싫은데, 난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이 되기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정말 남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슬픈 것을 보면 울 줄도 알고,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 웃을 수도 있는 사람인데. 엄만 언제나 내게 말했어, 그러면 불행해진다고.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그치만 엄마, 성적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미워해야 하고 성적 때문에 친구가 친구를 미워해야 하는데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하나님 왜 이렇게 무서운 세상을 만드셨나요. 선생님 왜 우릴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살게 내버려두셨나요.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서울교육단체협의회, 특권학교폐지촛불시민행동 등 교육,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시교육청 앞에서 이날 발표된 자립형사립고 운영평가 결과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을 성적으로 줄 세우지 말라는, 목숨을 던져 외친 이 중학생의 호소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에 대한 반성도 컸다. 영화가 나온 지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는 김대중 정부가 교육부의 이름을 교육인적자원부로 바꿀 때부터 알아봤다. 사람을 ‘인적자원’이라니. 영화 주인공의 얘기처럼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닌’ 사람을 인적자원이라고 하는 정부가 ‘줄 세우기’를 없애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평준화 교육을 보완한다며 ‘자립형 사립고’라는 것을 만들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던 이명박 정부는 한술 더 떴다. 교육의 효율성, 자율과 경쟁이라는 명분을 들어 ‘자율형 사립고’를 대거 세웠다.

그래서 결과는. 한국의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 됐나. 일본이 몇 가지 핵심 부품·소재의 수출을 막았다고 나라 전체에 비상이 걸리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의 교육은 실패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모두 의대를 가겠다고 하는 현상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의대를 가야 한다고 해서 온 학생들도 있다”(이재영 서울대 의대 교수)며 대학이 학생들에게 다른 길을 찾아주는 것은 ‘줄 세우기’ 교육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결과, 사람들은 만족해 하고 있는가.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2위였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192개국 중 30위로 준수하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경제적 성과에 훨씬 못미친다. 유엔에서 발표한 ‘2019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54개국 가운데 54위다. 싱가포르·일본 등과 함께 1인당 국민총소득 30위권 국가 중에서 행복지수와 차이가 큰 나라에 속했다. 특히 ‘긍정적인 정서’ 순위가 101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왜 우리는 경제수준에 비해 행복지수가 떨어질까. 아마 잘살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과잉은 개인적으로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면서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입시 명문으로 유명한 특목고에 진학한 자녀가 경쟁에 견디지 못해 가출했다는 지인들의 얘기를 지금도 가끔 듣는다. 학교를 뛰쳐나간 자녀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PC방에서 함께 밤을 새운 적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목적은 1등이 아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아이들의 행복을 막는 것이라면 자사고든 뭐든 없어져야 한다. 그것이 어른들의 일이고, 정부의 일이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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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형 사립대’(정부책임형 사립대) 시범사업은 왜 절박할까? 얼마 전 교육부는 현재의 대입정원을 기준으로 불과 4년 후인 2023학년도에 부족한 ‘입학자원’이 무려 9만9061명이라고 밝혔다. 입학정원 1500명의 대학을 70개 가까이 없애야 하는 꼴이다. 고등교육법에 따른 4년제 일반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사이버대학 등은 현재 총 357개교이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등 다른 법률에 따른 대학도 15개교가 있지만, 단순계산으로 전체의 20% 안팎에 이르는 대학이 5, 6년 후부터 차례로 사라질 참이다. 하도 어마어마한 사태라서 이 지경이 될 줄 뻔히 알면서 엉뚱한 정책에 매달려온 당국을 비판할 짬도 없다.

이 사태를 시장논리에 맡겨 대학과 학과가 학생을 못 채우면 문 닫는 게 순리라고 하면 그만일까? 지난 7월3일 교육부 사학혁신위원회가 1년5개월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낸 백서는 사학에 만연한 비리와 부정을 다시 확인해주었다. 모 대학은 신입생 충원율을 위해 교직원을 동원해 입학 정원 절반을 가짜 학생으로 채웠듯이, 대학 운영권을 쥔 비리집단은 온갖 편법을 통해 학생 등 구성원과 지역사회에 피해를 끼치며 버틸 것이다. 비리사학에 시장의 정상적 작동은 없다. 공영형 사립대의 절박함이 여기에 있다.

공영형 사립대 주창자들은 국제 기준에 따라 대학 예산의 50% 이상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듯이 전국 모든 사립대에 당장 정부가 예산의 50%를 지원하는 일은 부실비리 대학에 국민 세금을 퍼붓는다는 비판 때문에 불가능하다. 현 정부의 대선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사업 진척이 더딘 가장 큰 이유이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자격을 갖춘 대학들을 몇 곳만이라도 선정하여 그 규모에 따라 100억~300억원을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즉 당장 예산의 50%를 지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부족하고 정책 당국의 의지는 더욱 모자란 상황에서 시범사업의 물꼬를 트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다시 정상화된 강원도 모 대학의 연 예산은 약 740억원이다. 이 대학에 우선 연 100억원을 지원하고 매년 적절하게 증액한다면 연구와 교육을 위해 이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다. 또 경기도의 모 대학은 정상화의 기틀을 잡은 교수들이 어려운 학교 재정에도 ‘시간강사 해고 제로’를 다짐하고 있다. 이 대학의 예산은 더욱 적어 연 520억원이다. 내년에 50억원만 지원해도 학교는 활기로 가득 찰 것이다.

시범사업에 대해 회의론도 나올 수 있다. 적절한 정부 지원이 따라도 연구와 교육의 질은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달라진다. 심지어 대학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운 교수와 직원들이 공영형 사립대 지원을 받더라도 학생들을 교양 있는 민주시민이자 유능한 사회인으로 잘 길러낼지는 냉정히 말해 별개의 문제이다. 할 일은 산같이 쌓여 있다.

그러나 서너 대학이라도 시범사업을 개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비리집단을 몰아낸 학교라고 해도 대부분 임시이사체제이며 소위 ‘자율개선대학’ 밑의 ‘역량강화대학’이라 불안정하다. 그 틈을 노린 비리세력은 학교 안팎에서 복귀를 위해 종종 말썽을 일으킨다. 또 노골적인 비리 가담자는 아니어도 대학의 앞날을 확신하지 못해 몸을 사리는 이도 많다. 하지만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대학 발전을 지원할 때, 적폐집단을 더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일이 한결 쉬워진다.

나아가 시범대학들의 약진을 보며 전국 각지의 사립대, 특히 상대적으로 안정된 신분 위에 현실 변화에 둔감한 교수들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대학 운영자에게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 이들이 망가질 위기의 학교를 알뜰하게 살릴 주역으로 다시 태어나야 대학 간 통폐합이나 네트워크화가 효율적이고 내실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촛불의 길에 현상유지는 불가능하며,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맙소사, 몇 년 안에 대입 정원 10만명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대학 규모는 줄여도 대학 숫자까지 정원 감축에 맞춰 기계적으로 줄이면 안된다. 지역에 자리한 알찬 소규모 대학 하나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나라의 균형발전에 끼치는 긍정적 역할은 지대하다. 한국 대학이 활력이 넘치는 학문 생태계를 이루도록 향후 10년 동안 연 4조, 5조원 이상을 늘리는 과감한 고등교육 장기투자계획이 나와야 한다. 국제 지표와 우리의 경제 역량에 비춰 하등 무리한 일이 아니며, 그 첫 단추는 공영형 사립대이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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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8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재지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지정취소 결정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은 9일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 결과 대상 13곳 가운데 8곳이 지정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지정취소 절차를 진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올해 지정취소 통보를 받은 자사고는 지난달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한 전주 상산고, 부산 해운대고, 경기 안산동산고를 포함해 11곳으로 늘었다.

현재 전국에는 자사고 42곳이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올해 평가 대상 24곳의 46%인 11곳이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하면서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정부 정책이 탄력을 받게 됐다. 물론 지정취소 통보를 받은 11곳이 모두 일반고로 바뀐다고 단언할 수 없다. 교육부의 최종 동의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국정과제인 만큼 교육부가 교육청의 지정취소 결정에 반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은 실현단계에 들어섰다고 봐도 무방하다.

9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 결과 공개 간담회에서 박건호 교육정책국장이 평가 대상 학교의 현황 등이 적힌 문서를 들고 평가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자사고란 ‘일반 사립고와 달리 교육과정과 학교운영에 더 많은 자율권을 보장받는 학교’를 말한다. 교육과정 운영을 다양화해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자는 게 지정 취지다. 취지대로라면 고교교육의 다양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자사고들이 ‘교육 다양성’이라는 취지와 달리 ‘대입 진학교육’에 몰입하고 있다. 상산고의 경우 학생의 약 20%가 의대에 진학하면서 ‘의대 입시 사관학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이 때문에 자사고에는 서열화, 과열경쟁, 사교육비 등의 꼬리표가 붙는다. 자사고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고교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여론은 어느 때보다 높다. 2016년 한국교육개발원 여론조사 결과 고교평준화 찬성률(64.7%)이 반대(20.9%)의 3배나 됐다. 지난달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자사고·특목고 축소’ 설문조사에서도 찬성이 반대의 2배였다. 

그렇다고 40여곳의 자사고를 한꺼번에 일반고로 강제전환할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5년마다 하도록 돼 있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일반고 전환을 유도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자사고를 지원하는 학생에게 일반고 지원 기회를 금지한 대통령령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헌재는 일반고와 동일하게 후기에 입학전형을 실시하도록 한 대통령령에 대해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자사고가 완전 폐지될 때까지는 자사고와 일반고가 함께 경쟁하는 고교체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해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방향은 옳다. 일각의 반발이 있지만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는 각 교육청의 자사고 지정취소 결정에 맞춰 점수 경쟁 위주의 고교교육, 서열화된 고교체계를 바로잡는 교육개혁에 나서야 한다. 자사고 방식의 경쟁 위주 교육을 지양하면서 일반고 육성을 통한 교육의 다양성·수월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반고 전환과정에서의 지원도 필요하다. 아울러 달라진 교육환경에 걸맞은 방향으로 대입제도도 개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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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자사고

학교(school)의 어원인 스콜라(schola)에는 ‘프리타임, 레저, 토론’이라는 뜻이 있다. 단어의 의미로 보면 본래 학교라는 곳은 일상을 넘어서 자유롭게 삶의 의미와 기쁨을 추구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 내면에는 존재와 삶의 원대한 진실을 찾고자 하는 근원적인 열망이 있으며 이 열망으로 학교를 세우고 수많은 정신과 물질세계의 진보를 이루어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의 학교는 이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입시교육은 존재와 세상을 폭넓게 탐구할 기회를 가로막고 있고 경쟁과 통제의 교육 방식은 여전히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통제는 필연적으로 저항과 힘겨루기를 불러오기 때문에 수시로 배움의 공간을 위협한다. 교사가 엄하게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떤 학생이 웃으며 “야, 졸라 무섭다!”고 말하는 순간 교사의 내면은 참혹한 상처를 입는다. “교직생활 그렇게 하시면 안되죠.” “정년까지 안 하고 싶으신 모양이네.”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을 꾸짖다가 울분을 못 이겨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하면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학부모 항의를 받게 되고 잘못된 지도 방식에 대해 사과할 수밖에 없다. 심한 경우, 학생에게 한 대 얻어맞을 수도 있는데 교직의 어려움은 이 모든 수모를 어린 아이들 앞에서 겪고도 다음날 다시 교단에 서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들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점점 아이들에게서 물러나 문제가 생기면 지도하기보다는 교권보호위원회에 신고해 행패를 부린 학생에게 최소한의 벌을 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실제로 교사는 학생을 교권침해로 신고하고, 학생은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며 학생들은 서로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학부모들까지 가세하여 변호사를 동원하고, 교실 참관을 요구하기도 하며 심지어 시험문제와 생활기록부 내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면서 수업과 평가 영역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학생과 교사를 믿지 않으면서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조차 잊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내려진 벌일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으면 교단을 떠나라고 하지만 이 같은 교육풍토에서는 누가 와도 사람만 바뀔 뿐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육당국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절차와 규정을 더 세밀하게 만들어 내려보내고 교사들은 매뉴얼 몇 쪽 몇 줄에 나오는 문구에 교사 자신의 지혜와 영혼을 내맡겨버린다. 이렇게 교육은 점점 가르침과 배움에서 멀어져 행정업무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다시 우리 안에 있다.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정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교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고, 모든 교사들 또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좋은 교육을 위한 충분한 힘을 이미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두려움을 내려놓고 상대를 초대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지금이라도 교사와 학생들을 믿고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역할, 권한과 책임을 주어야 한다. 가르침과 배움을 향한 그들의 선한 열망을 초대하여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대화를 함께 시작할 때 좋은 교육의 씨앗은 다시 싹틀 수 있다. 이제 곧 방학이다. 숨 가빴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어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가만있자. 이것이 과연 내가 할 일이었던가?”

<조춘애 |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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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학문후속세대’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을 때 이미 ‘위기’라는 말이 함께 나왔다. 이들에게 ‘위기’자를 떼고 어엿한 세대주로 독립시키고자 BK21, 기초학문 지원 육성, 박사후 연수 지원, 시간강사 연구 지원 등 온갖 이름의 사업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위기’와 함께하고 있다.

학문후속세대는 ‘대학에 전임교원으로 채용되기 전 박사 학위자 등 연구자’로 정의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실체가 모호하다. 대학원 진학과 학위 취득을 거쳐 정규직 교원 임용이라는 순조로운 삶을 경험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부족 등을 이유로 그 자리마저 줄이고 있다.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일에 어쩌란 말이냐는 소리도 들린다. 교수랍시고 으스대는 사람들한테 세금을 쓰자고? 학문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을 얻기 위해 학기당 9~12학점 강의를 하려고 시·도를 넘나들며 일주일 내내 뛰고 있다. 학생들은 교수라 부르지만 실제는 학교에서 배정하는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강의하면서 학문적 성과를 내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금수저와 천재만으로 학문의 후속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강사들은 부당한 지원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교육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공정한 학문 경쟁이 이뤄지는 기반을 만들자는 것이다. 강사료를 현실화하고, 강의 준비와 학생 평가를 해야 하는 방학 기간에 임금을 지급하며, 퇴직금은 물론 사회보험을 보장해 패스트푸드점에  취직하지 않아도 되게 하자는 거다. 1년 단위로 고용하되 무조건 재임용이 아니라 지원 기회를 보장해 최소한의 직업 안정성을 제공하자는 게 무리한 요구인가.

많은 대학들이 강사를 ‘초빙’하고 ‘겸임’시키면서 강사 수를 줄이자 일부 언론은 “강사법이 강사를 내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환경 기준을 강화해 저공해 고연비 차를 만들라고 하면 차를 좋게 만드는 것이 맞지 차 팔기 어려워졌다고 비난해서야 되겠는가. 강사법 정착은 학문후속세대 독립의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논의 중인 학술연구교수 사업도 추경에 적극 반영해 대상자 수를 대폭 확대하고 지원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그동안 생계 때문에 학문적 성과를 낼 수 없던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

대학은 과연 학문후속 의지가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대학원생으로, 조교로 써먹고 등록금까지 받다가 졸업하면 학문후속세대 양성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수십년째 시간강사가 담당하는 과목은 교수를 채용해야지 강사법 때문에 강사 구하기 어려워졌다고 불평해선 안된다. 이번 강사법과 학술진흥법 개정이 ‘학문후속세대’가 더 이상 위기에 내몰리지 않는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선일 | 경희대 교수·민교협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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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기간이다. 중간고사를 치른 지 두 달 만이다. 진부한 얘기겠지만 학생들 시험 부담이 말도 못하게 크다. 

학생만큼은 아니겠지만 학교(교사)의 고사 부담도 엄청나졌다. 더 완벽하고 치밀하게 치러야 한다는 압박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규 고사만큼은 아니지만 수행평가 또한 점점 그렇게 돼가고 있다. 

내신(중간고사+기말고사+수행평가)이 입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입시정책이 낳은 결과다. 그러나 내신 또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현실이 입증하는 듯하다. 우선 입시경쟁이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 전국적 경쟁은 완화됐겠지만 학교 친구들 간의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졌다. 사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수능 사교육은 감소됐겠지만 대신 내신 사교육이 증가했다. 객관식 시험의 폐해 또한 전체적으론 전혀 극복되지 않았다. 

선행학습 문제는 어떨까? 선행학습의 양상에만 변화가 있을 뿐 선행 부담은 여전한 듯하다.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내신도 중요성이 커지면 수능 못지않게 선행학습을 유발할 수 있다. 사실 내신 선행과 수능 선행이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다. 수능 사교육과 내신 사교육이 중첩되는 것처럼 이 둘 또한 상당 부분 중첩된다. 물론 차이점도 크다. 수능은 시험 범위가 방대하고, 내신은 수업 진도가 시험 직전에 끝나는 것이 선행 유발의 주요 요인인 듯하다. 

수능이 요구하는 학습량은 방대하다. 내신의 개별 고사 하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많은 공부를 수업 진도만 따라가며 해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학부모·학생의 생각은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내신은 수업 진도가 시험 직전에 끝난다. 8~10개의 시험 과목 진도가 대체로 시험 며칠 전에 끝난다. 수업 진도만 따라가도 내신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다른 모든 것은 동일하고 선행학습 여부에서만 차이가 나는 두 학생이 있다고 하자. 한 학생은 선행학습을 많이 하고, 다른 학생은 선행을 하지 않고 수업 진도만 충실히 따라가며 공부한다. 중간·기말 고사 2~3일 전, 두 학생은 어떤 공부를 하고 있을까? 한 학생은 시험범위 전체에 대한 학습을 마치고 실전 대비 문제풀이 공부에 힘을 쏟고 있을 것이다. 다른 학생은 시험이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배운 내용을 익히는 데에 힘을 쏟고 있을 것이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한 학생은 실전 대비 공부를 하고 있는 데 반해 다른 학생은 이제 막 배운 내용을 익혀야 하는 상황이 다른 여러 과목에서 동시에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어느 학부모의 하소연이 실상을 말해준다. “내신 경쟁은 시험 전에 선행을 몇 바퀴 돌렸느냐가 정말 중요해요. 시험 전에 선행을 많이 돌린 순서대로 등수가 나온다고 보면 돼요.” 

현재의 고교 내신 또한 냉혹한 줄 세우기를 근간으로 하는 입시요소다. 수능, 대학별 고사 등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자주 하는 얘기지만 입시의 세계는 나쁜 놈들의 세계다. 내신 또한 착한 놈(입시)이 결코 아니다. 학생들을 더 가까이서 더 빈번하게 괴롭힌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제일 나쁜 놈일 수 있다. 이제는 내신과 내신제도의 폐해와 문제점을 살펴봐야 할 때다. 

(그동안 저의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기정 | 서울 구암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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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말이 강박이 된 지 오래다. “행복하세요!”라는 말이 마치 힘든 일상을 감추기 위한 주술처럼 느껴진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폭력 없는 행복한 학교’라는 현수막이 부적처럼 나부끼는 것을 볼 때면,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폭력의 실체는 외면한 채 행복한 학교를 외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말이다.

아이들끼리 일어나는 싸움은 폭력의 한 측면일 뿐,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한국방정환재단이 조사한 ‘국제 비교로 본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에 따르면 최근 6년 동안 한국 학생들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어린이·청소년은 22.8%로 최고치에 가깝다. 그런데도 별로 놀랍지 않다는 게 더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 지난 2월 &lt;추적 60분&gt;에서는 자해에 빠져 있는 청소년의 실상이 낱낱이 보도된 바 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 10명 중 1명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자기 몸에 고통을 가함으로써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아이들. 취재진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주변의 말과 시선”을 자해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생명 존중 교육을 강화하고, 학교에 전문 상담사를 파견하는 일이 필요하겠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우리 교육의 병폐를 뿌리 뽑지 않는 한, 아이들의 자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학교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차와 등급이 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를 압도한 지 오래다. 자유와 평등, 평화와 연대는 대학 입시라는 욕망 앞에서 그저 허울뿐인 담론으로 치부될 뿐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했던 정권도 이 거대한 욕망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새로운 틀 위에서 교육 생태계를 설계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지금으로써는 국가교육위원회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국가교육위원회의 핵심은 ‘초정권적, 초정파적 사회적 합의기구’라는 것과 10년 단위의 중장기 국가교육 비전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에 맞추어진 짧은 주기로는 국가교육 철학을 담아내기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내에 성과를 내야 하고, 유권자의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의 생리로는 교육의 백년지대계는 난망할 수밖에 없다. 정권과 정파를 넘어서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절실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을 두고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듯하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독립성 보장 문제, 교육부의 옥상옥(屋上屋)이 될 것이라는 우려 등은 국가교육회의 측에서도 되새겨야 할 문제일 것이다.

다만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을 정치적인 유불리(有不利)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절할 필요가 있겠다. 지금 상정해야 할 궁극적인 의제는 진정한 배움과 아이들의 삶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해(害)하고 있는 아이들의 절규 앞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추태는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폭력의 가해자라는 측면에서 어른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권력, 혹은 교육에 가까이 있는 어른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이 진정한 배움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부족한 부분은 치열한 토론을 통해 보완해 나가면 될 일이다. 교육이 인간의 소외를 부추기는 일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정치와 교육계의 대승적인 결단이 있길 바란다.

<이충일 | 오산 다온초 교사·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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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제는 6-3-3-4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4년제 고등학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 같다. 물론 실제로 학제에 대한 것은 아니고 재수생 비율이 높은 자율형사립고인 상산고가 5년마다 진행되는 자사고 재지정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논란인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고등학교를 3년 다니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다수가 재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학교는 전라북도에 소재한 전국단위 자사고다. 학교게시판에 공지된 내용에 따르면 2019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40명을 비롯하여 275명이 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는데 그중에서 재학생 비율이 48%, N수생이 52%라고 한다.

이렇게 대입 합격자 중 대입 재수생의 비율이 높은 것은 2018학년도에 재수를 선택한 학생들의 비율이 무려 57%나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학교알리미에 올라온 재수생 비율을 보면 47.7%로 전국 21.6%나 전라북도의 14.4%에 비해 크게 높다.

다수의 학생들이 상위권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인 것은 분명한데 굳이 재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 학교는 일반고에 비해 자율성이 많이 보장되는 자사고로서 국민공통교육과정의 50%와 선택교과의 100%를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학교의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면 당연히 요즘 대입 전형의 대세인 ‘학생부종합전형’에 최적화된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시 학생부전형으로 진학하는 학생보다 정시 수능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더 많다. 2018학년도에는 서울대에 수시전형으로 9명이 합격했으나 정시 수능전형으로는 수시의 두 배가 넘는 21명이 합격하였고, 이 중에서 재수생이 다수로 알려져 있다. 결국 우수한 학생들을 전국에서 모집할 수 있는 자사고로서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갖게 된 자율권을 수능 학습에 최적화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 결과 수능에 강한 재수생을 양산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같은 전국단위 자사고인 하나고의 경우 서울대에 합격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재학생들이어서 대조가 되고 있다.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해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수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교육과정을 요구하는 교육 수요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찬성하는 쪽은 수능 대비 교육이 중심이 되면 고등학교 교육 환경이 황폐해지기 때문에 수능형 자사고의 운영을 반대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교육목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생활역량을 갖춘 건강한 시민의 육성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학입시가 최우선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해제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교육이 어떤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큰 틀의 논의와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정시 수능전형의 확대를 밀어붙인 정부가, 수능에 적극 대응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자사고를 반대하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학부모들은 교육정책의 혼란이 두렵고, 사교육계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혼란을 자꾸 만드는 정부의 어설픈 손길이 걱정되는 이유다.

<한왕근 |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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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개교 이후 한번도 정부의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16개 대학에 대해 강도 높은 종합감사를 벌이겠다고 24일 발표했다. 이와 함께 사립혁신법 개정 등 사학적폐 청산 작업도 본격 추진키로 했다. 대학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공공연하게 자행돼온 사학법인의 횡령과 회계부정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사립유치원 개혁에 이은 문재인 정부의 사학개혁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교육부가 다음달부터 2021년까지 실시키로 한 종합감사 대상 대학은 경희대·고려대·서강대·연세대·가톨릭대·건양대·영산대 등 서울과 지방의 16곳이다. 모두 학생정원이 6000명 이상이면서 개교 이래 단 한번도 정부의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대학들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7조원 상당의 정부 재정을 지원받는 사립대 가운데 일부에서 상식과 원칙에 어긋난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종합감사의 배경을 밝혔다. 교육부 집계를 보면 전체 278개 사립대 중 개교 이후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대학은 111곳(대학 61, 전문대 50)으로 전체의 40%다. 적잖은 사립대들이 매년 막대한 정부 예산을 지원받고도 수십년 동안 ‘감사 무풍지대’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립대 사학법인의 횡령과 회계부정 등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전체 사학비리는 1367건에 비위 액수는 총 2600여억원이나 됐다. 사립대 1곳 평균 4.7건, 9억여원꼴이다. 대학 비리는 이사장 자녀의 대학 특채, 회계 조작을 통한 횡령, 법인카드 용도 외 사용에서 보듯 회계·채용·입시·학사 등 전 영역에 걸쳐 있다. 감사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는 부정 사례들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사학법 개정’ 등 사학개혁을 시도했으나, 야당의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학개혁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다음달 초 사학혁신위원회의 사학법 개정 방안 등 구체적인 개혁안이 발표된다. 사립대학은 사학재단의 소유이지만, 예산 지원을 받는 공적 교육기관이다. 건전한 사학의 자율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금이 투입되는 사학을 감독하는 일은 정부의 의무이자 권리다. 치밀하고 강도 높은 감사로 사학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사립대학 종합감사가 사학의 ‘고인 물’을 걷어내고 대학교육의 공공성·투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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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와 경기 안산동산고등학교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심사에서 탈락했다. 전북교육청은 20일 “상산고가 재지정 평가에서 79.61점을 받아 기준점수(80점)에 미달했다”며 자사고 지정취소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경기교육청도 안산동산고가 기준점수(70점)에 미달했다며 지정취소 방침을 발표했다. 

자사고 지정취소는 학교 관계자 청문과 교육부 장관 동의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교육부 장관이 동의하면 이들 학교는 내년 3월 일반고로 전환된다. 과거 자사고 지정이 취소돼 일반고로 전환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산고의 경우 신입생을 전국단위로 모집하는 소위 ‘입시 명문고’라는 점에서 교육현장에 미치는 파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 자율형사립고 학부모 연합회 회원들이 전북 상산고의 자사고 취소 결정이 내려진 20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명박 정부는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고 교육의 수월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고교 다양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도입·확대된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는 고교 서열화의 온상으로 지목돼왔다. 이들 학교가 성적 우수학생을 선점하면서 일반고 황폐화는 가속화했다.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권리는 국·영·수 위주의 입시교육 수단으로 변질됐다. 상산고의 경우 전국의 중학생 가운데 수학·과학 우수자들을 모아 다수의 의대 합격자를 배출해왔다. 일반고 2~3배에 달하는 등록금은 계층 간 위화감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에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포함시킨 것은 당연한 조치였다.

상산고 측은 평가 결과가 형평성과 공정성에 어긋난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이 재지정 기준점을 타 시·도(70점)보다 높은 80점으로 잡은 데다, 자신들이 받은 점수가 기준점에 불과 0.39점 모자란다는 게 이유다. 기준점 설정은 교육감의 고유 권한이다. 그럼에도 학교와 학부모들이 불만이 있다면 청문 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하면 된다. 

단추를 잘못 끼웠음을 발견했다면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는 게 해결책이다. 출발부터 잘못된 자사고체제를 그대로 놓아둔 채 공교육 정상화를 논하기는 어렵다. 전북과 경기 외 다른 지역도 재지정 심사 대상에 오른 자사고에 대해 엄격한 기준으로 공정하고 치밀하게 평가해야 한다.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에 대해선 다양한 지원책을 모색하는 한편 기존 일반고 육성책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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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은 단순한 양육 대상이 아닌 행복을 누려야 하는 권리 주체다.’ 23일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은 아동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동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바라보면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아동권리 선언’이다. 가정에서 보호하기 어려운 아동은 국가에서 보호·양육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고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또 아동이 행복할 수 있도록 건강권·놀이권을 확대해 가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올바른 인식이고 정책 방향이다. 

정부 아동정책의 기본 방향은 국가 책임 확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의료기관이 모든 신생아를 의무적으로 국가에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고,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민간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며, 아동의 창의성·사회성 개발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놀이혁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것은 민법상 규정된 부모의 ‘체벌 권한’을 없애 아동의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대목이다.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가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부모가 아이를 폭행해도 처벌받지 않거나 받아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처벌을 받는다.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는 ‘사랑의 매’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자녀 학대를 막기 위해서다. 2013년 1만3000건이던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2017년 3만4000건으로 4년 사이에 3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부모에 의한 체벌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스웨덴 등 세계 54개국은 아동에 대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는 2010년 이후 몇몇 지자체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체벌을 금지하고 있으나 가정 내 체벌을 막는 방안은 여태 마련되지 않았다.  

가정 내 체벌은 가부장적 유교사회의 인습이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로 여기는 비뚤어진 사고도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사회 민주화가 확산되고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전근대적 체벌과 훈육은 시대착오적이다. ‘사랑의 매’란 없다. 자녀에게 트라우마만 남길 뿐이다. 100년 전 어린이운동을 펼친 방정환 선생은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라’고 말했다. 민법 개정 못지않게 아동권에 대한 사회인식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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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스승의날’은 스승을 존경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교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1982년에 기념일로 제정된 날이다. 

나는 올해 스승의날에 여러 학생, 학부모들에게서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받았다. 직접 쓴 손편지와 카드, 작은 꽃다발을 받았고, 한참 전에 졸업한 제자들은 내가 여름마다 고생하는 것을 기억했는지 땀방지제, 손수건도 보내주었다. 

물론 이렇게 스승의날 선물을 거리낌 없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신분이 ‘강사’이기 때문이다.

보통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등에 따른 교원을 ‘교사’라고 하고, 또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주 스승의날에 선물을 받은 선생들은 ‘강사’, 못 받은 사람들은 ‘교사’라고 구분하면 된다. 

출처_ 경향신문DB

스승의날에 선물을 받아도 되는 강사들의 유형도 무척 다양하다. 학교 밖 사설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강사들과 학교에서 가르치더라도 단기 강사계약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강사라고 하는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계약직 교과 강사들과 학교생활기록부 기록과는 상관없는 방과후 비교과 수업을 담당하는 강사들은 사실상 또 다른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정규직 강사들은 대학에서도 전체 강의 중 26.9%(2015년 1학기)를 담당할 정도다. 이들의 신분 또한 초·중등 강사들의 입장과 비슷하게 위태로운 상태라서 조만간 대학 강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강사들의 처우를 규정한 고등교육법개정안이 시행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량 해고가 진행되고 있어서 강사들을 대우해 주자는 것인지 아니면 몰아내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도 하다.

국어사전에서도 교사의 뜻을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등에서 소정의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선생의 뜻을 ‘남을 가르치는 사람,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아는 것이 많은 사람’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하는 또 다른 이름인 ‘교수’는 사람들이 일종의 계급적 의미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일반적인 호칭을 ‘선생’이라고 하자는 데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선생들을 위한 기념일의 이름이 ‘스승의날’이다. 인하대 국문학과 김문창 교수는 ‘스승’이라는 말의 어원이 자기보다 ‘높은’ 승려를 일컫는 단어인 ‘사(스승 師)승(스님 僧)’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고, 스승의날에 축하 케이크를 자를 수는 있어도 한 조각도 먹어서는 안되는 날이라면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적절한 기념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스승의날은 왜 존재하는가? 또 이날에 감사와 축하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스승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소한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어야 스승의날을 제대로 기념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사단체인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는 2년째 스승의날을 ‘교육의날’로 변경하자는 청원을 내고 있으니 그들에게 귀 기울여 보자. 선생님들이 쓸데없는 청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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