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은 지식공유를 통해 성장해왔다. 지식은 나눌수록 퍼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사회는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지식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닮았다. 둘 다 격리되는 순간 소멸이 시작된다. 다만 바이러스는 퍼져나갈수록 인류를 위협하지만 지식은 퍼져나갈수록 인류를 풍요롭게 한다.

학교체계는 지식공유를 위해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대학은 그런 지식공유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놓여 있다. OECD 교육통계를 보면 주요 국가들의 25~64세 인구 평균 고등교육 이수율은 이미 50%에 근접하거나 넘어서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고등교육 보편화시대”에 살고 있다.

보편화시대 대학의 사명은 대학이 보유한 고급 지식을 보다 넓게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고민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쟁과 사회선발, 학위와 졸업장 중심의 대학과는 다른 모형이 필요하다. 지식을 개방하고 연결하며 융합하고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전파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이런 지식공유의 필요성은 평생학습과 계속교육의 차원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산업 4.0시대에는 더 이상 학부교육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문과 출신들이 공학을 다시 공부한다든지 구조조정되는 인력들이 다른 영역으로 전환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현재 대학 구조는 이런 변화를 받아내기 어렵다. 또한 대학원은 비싸기도 할뿐더러 대부분 학위를 위해 무늬로만 존재할 뿐이다. 재직자들이 다시 빅데이터교육이나 생명과학교육을 받고 싶지만 대학 문을 다시 두드리기에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그렇다고 유튜브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9년 우리나라 평생학습 참여율은 역대 최고치인 43%를 기록했지만, 그 가운데 형식교육(학력 혹은 학위과정)에 참여하는 비율은 1%에 머물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말은 곧 평생학습에 대학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형식교육 비중이 10%를 넘는 덴마크, 영국, 핀란드 등에 비해 적어도 너무 적다.

우리나라 대학의 계속교육 혹은 재교육 기능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는 대학이 너무 학위과정, 전일제학생, 청년층교육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반 재직자교육, 비학위과정, 시간제등록 등은 정규과정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이제 대학의 ‘학점’과 ‘강좌’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위과정을 넘어 비학위과정에 대한 전향적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학위과정 중심의 대학체계는 지식공유를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제한한다. 사회 계층사다리일지는 모르지만 지식공유에 유리한 방식은 아니다. 예컨대 서울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소수 엘리트 학생들만의 독점물일 수 없다. 국민 누구나 그 지식에 접근하고 학습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이다. 학위와 상관없이 새로운 차원에서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비학위과정 모형을 창조할 수 있다. 

최근 고등교육에서의 일련의 변화들, 예컨대 평생교육체제지원사업(LiFE), 대중온라인개방강좌(MOOCs), 대안대학의 등장 등은 이런 흐름을 반영하지만, 이들은 모두 대학의 정규과정을 전일제 학생들만 접근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고전적 기본전제를 그대로 묵인하는 한계를 가진다. 그 뒤에는 여전히 대학=학위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한다.

정규강좌를 대중에 개방하고 학점을 줄 수 있으며, 외국에는 그런 경우가 많다. 학위과정이 아닐 뿐 강좌를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의미의 지식공유이다. 그 학점의 누적을 통해 단기실용자격과정들을 만들 수 있다. 미국 대학들의 입학처 홈페이지에 가면 학부, 대학원과 더불어 성인계속교육 입학 항목이 있다. 정규학생과 비정규학생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현재 우리 고등교육법은 학점을 곧 학위과정의 전유물로 전제하며, 공개강좌는 학점을 부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일반인 대상의 공개강좌는 정규강좌와 별도로 개설하며, 학점은행제로 따로 묶는다. 시간제 학생의 숫자를 비현실적으로 제한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시장에서 가치있는 지식들은 학위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전유물이 되고, 그 외곽에 있는 사람들은 맛보기 버전만 들을 수 있는 차별이 나타난다. 지식 불평등이 대학과 학위제도를 중심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학과 학점에 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지식공유를 위해 고등교육과 평생학습이 만나는 접점을 재설계할 때가 되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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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개정으로 올해 고3 학생 중 만 18세가 되는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와 동등한 정치적 한 표를 가진 학생들이 교실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교사인 나에게도 무언가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적어도 고3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이전과는 다른 의미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학교는 한동안 그 새로운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하고 만들어가는 경험의 시간을 겪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학생들은 일방적인 가르침의 대상이었다. 그 가르침은 ‘내가 알려줄 테니 너는 그것을 받아들여라’라는 지배적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봉건사회에서는 권력의 혈통을 가진 귀족들만 ‘말’할 수 있었고 그들의 말은 세상을 지배하는 질서가 되었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말’은 들려지지 못했다.

지금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이것은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공적 영역에서 ‘말’은 언제나 지위와 힘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었고, 학생과 교사들은 ‘듣는 자’로 머물러야 했으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때로는 두려움과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들려지지 못한 억압된 목소리는 사적 영역이나 SNS를 타고 비난과 혐오, 거짓과 억측이 되어 우리의 공적인 마음을 분열시키고 아프게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막대한 사회적 비효율성을 지속해서 겪고 있다.

안타깝게도 교사 또한 교실에서는 ‘말하는 자’로서 힘을 행사하게 된다. 교사나 교수들이 특정 이슈에 대해 자기 견해를 말하면 학생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것은 주장에 대한 찬반보다도 말하고 듣는 관계의 공정함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표권은 주어졌으나 벌써부터 학생들의 정치적 발언과 참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염려스러운 것은 기성 사회가 그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서로를 비난하거나 혐오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말이 공정하게 들려질 수만 있다면, 모든 차이는 결국 우리의 이해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자원이 된다. 

우리의 염려는 학생들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혐오와 억측으로 우리의 공적인 마음이 분열되고 상처받는 것이며, 그 상처가 학교현장에까지 퍼질 것에 대한 염려이다. 이러한 염려 때문에 그들이 생애 처음으로 행사하게 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선거교육이나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으로 제한해서는 안될 것이다.

올해 투표에 참여하게 된 18세 청년 학생들을 환영하며, 기성세대로서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공적인 영역으로 정중히 초대한다면 그들은 우려 대신 우리의 정치 현실에 새로운 역동을 선물할 것이다. 그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할 일은 학교의 수업과 지역사회를 통해 서로의 다름이 공정하게 들려질 수 있는 민주적인 참여와 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교육적 경험을 모색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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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앞세우자. 작년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입시의 정시 비율 확대 정책은 적절하게 수정해야 한다. 정시 확대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국민 여론을 거듭 검토한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따라서 교육부는 그 결정에 담긴 타당한 취지를 더 나은 방법으로 대입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서울대는 기회균형 선발제도의 실질적 확대를 통해 자신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대입제도 논란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의 공정성 시비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식 제도의 이식이라 할 학종이 가진 자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적 의식은 널리 퍼져 있었지만, (선정적 언론보도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여론이 학종을 ‘금수저’ 전형으로서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는 사실에 대해 안이했던 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정시 비율을 확대하면 형식적 공정성은 개선될지 몰라도 고교 서열체제에서 일반고 학생들이 더 불리하다. 교육부는 서열화된 고교체제가 학종에 반영됨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수능전형에서 더 뚜렷이 반영된다는 객관적 자료가 엄연하다. 지난해 11월 교육부의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조차 수능 위주 전형보다 학종에서 국가장학금 수혜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가 공정하다고 말할 근거가 희박해진다. 

정시 확대의 치명적 약점은 미래형의 창의적 인재를 기르기 위한 고교 교육과정 혁신 로드맵이 혼란에 빠져 수습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2025년에 고교 학점제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이는 교사별 평가제, 절대평가제와 함께 운영되어야지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흔들린다. 점수 따기와 줄 세우기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전면적 혁신을 앞두고 편협하게 해석한 ‘공정성’ 탓에 교육개혁이 퇴행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정시 확대에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이 작용했음은 최근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인터뷰가 재확인해준다. 또 청와대가 4월 총선 득표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국정운영을 위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니 이 결정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권 초기에 수능 절대평가제 전환에 걸린 제동도 코앞의 국민여론 악화를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나는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입시 개혁안은 너무 이상주의적이라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시 확대는 자승자박이다. 교육이 ‘희망 사다리’가 되기 힘든 현실이며, 대입제도 개편으로 사회적 불평등 완화를 꾀하기 어렵다. 실제 서울대 학부생 중에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인 소득 8분위 이하는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이 현실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역설적으로 바로 여기에 서울대의 할 일이 있다.

서울대 교수들은 점수 좋은 학생을 열심히 가르쳐봐야 학문의 길보다는 법학전문대학원이나 (폐지 전의) 의학전문대학원, 고시나 공기업 시험에 몰리는 현실을 이미 겪었다. 그러니 당장의 성적은 떨어져도 잠재력이 큰 학생을 뽑아 학부교육의 활력과 다양성을 강화하면, 특히 기초학문에서 공부의 가시밭길을 택할 후학도 많아지지 않을까. 최소한 현재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며, 다른 대학보다 정부 지원을 훨씬 많이 받으면서도 다수 국민과 동떨어진 귀족학교라는 오명을 피하는 길이다.

가령 기존의 지역균형전형을 강화하여 지난 3년간 서울대 입학생이 없는 고교나 지역을 대상으로 합당한 절차를 통해 몇 명씩 추천받아 자질과 잠재력을 평가하여 선발하면 어떨까? 첫 단계로 50~100명만 뽑아도 학과별 배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속한 인문대학의 경우 수시 지역균형과 정시 광역에 각각 약 50명 안팎의 입학정원이 있다. 이 정원의 일부를 교수진의 논의를 거쳐 ‘실질적 기회균형’의 뜻에 맞게 배정해도 좋다. 또 전국에서 유일하게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는 자유전공학부와 어울리는 일이라서 일부 정원을 시범적으로 돌릴 수 있다. 장애물이 적지 않지만, 차차 성과가 입증되어 확대되면 서울대 외의 대학들도 따라오면서 고교교육 정상화를 돕게 된다. 마침내 입학제도가 대학의 자율에 맡겨지는 일도 앞당겨진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왜 제1야당이 객관적 근거도 없이 정시 50% 확대를 당론으로 삼고 보수언론은 정시 확대를 지지하는지 찬찬히 되돌아봐야 한다.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총선 출마 포기라는 큰 결단을 내린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분발도 기대된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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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숨길 수 없는 세 가지는 기침, 사랑, 가난이라는 말이 있다. 그중에 가난은 주거형태로 드러나는가 보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짓는 어느 소셜믹스 아파트에서 두 주택 사이에 장벽을 세우고 비상계단을 막아서 주민 갈등이 심해졌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LH 공사에서 지은 아파트에 살면 ‘엘사’, 휴먼시아 아파트에 살면 ‘휴거’, 빌라에 살면 ‘빌거지’라며 놀린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 책임의 개인화 사회에서 돈에 따른 차별은 정당한 것이며 가난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게으름 탓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게으름으로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사람을 주거형태로 구분하고 그룹화하여 인지하는 것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에서 비롯한 집단주의적 사고를 나타낸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우리’의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해 경계 밖의 ‘그들’은 깎아내리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가진 생각과 신념은 고착되고 확대 편향되어 반사회적인 어른이 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혐오는 경멸, 증오, 기피, 불쾌함이 복합된 강한 감정이다. 속으로 생각만 해도 옆에 있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혐오감이 언어로 표출되고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징조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언어유희라고 간과했다가는 혐오 표현이 물리적 행위로 이어져 더 심각한 범죄가 될 수 있다. 

이미 유럽 주요 국가들은 혐오 발언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만약 우리 반에 가난을 혐오하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담임으로서 참담한 마음을 추스르고 두 가지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

첫째, 혐오 표현을 하는 학생을 이해해보려고 애쓴다. 재미로 썼을 뿐 잘못인지 몰랐다고 한다면 인권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수업과 반편견 교육이 필요하다. 피해가 될 것을 알고도 썼다면 학생의 내면 상태를 점검하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가정불화, 원만하지 못한 교우 관계, 부모의 높은 기대감, 공허함 등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다. 나약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공격적인 언행으로 자존심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반 아이들에게 집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진실한 인간관계가 기반이 되는 참된 삶을 가로막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설명해준다. 진정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lt;어린 왕자&gt; 이야기와 더불어 사람이 중심에 있는 세상이 되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토의해 볼 것이다. 

가난은 인성 문제가 아니며 집은 생활 공간일 뿐이다. ‘어떤 집에 사느냐?’가 공동체에 소중한 가치를 더하는 것과 무관하다는 신념을 나누면서 말이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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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 에디슨이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2400번의 기회는 있다”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2400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숱하게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상담 일을 하다 보면 회복 탄력성이 낮은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데 한 번만 실수해도 금방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 그런데 약하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약해 보인다.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려면 부모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귀한 자식일수록 천하게 키워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강하게 키우려면 비바람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결핍’이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여도 부모가 대신해주다 보니 고난을 견뎌내는 힘이 충분히 키워지지 않았다. 맞벌이 부모 중에는 아이에게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과보호나 과소비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고, 그 이상은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아이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별로 절실한 게 아니다. 애초부터 대신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즉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이 부모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일이고, 그게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일의 시작이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회복 탄력성도 높다. 그렇다고 무조건 칭찬해서는 안된다. 회복 탄력성을 높이려면 ‘잘한다’는 칭찬보다 ‘괜찮아’라는 격려가 더 효과적이다. 실패했어도 다시 도전을 하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칭찬할 때는 사족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잘하기는 했는데 조금 아쉽다. 아까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고 더 잘해보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격려는 간단명료한 게 좋다. 말이 길어지면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아이와 신뢰가 충분히 쌓였다면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거나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자. “넘어진 게 실패가 아니야.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게 실패지. 네가 다시 일어나면 그건 시련일 뿐이야.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봐. 엄마, 아빠도 함께 달려줄게. 포기는 배추 셀 때만 쓰는 말이라는 것 알고 있지?”

아이들의 실패는 경험일 뿐이다. 그러니 아이가 실패라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믿고 기다리자. 그러면 오뚝이처럼 회복 탄력성이 강한 아이로 자라날 거다.

<강명규 스터디홀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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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복고풍을 뜻하는 레트로가 유행이라더니 졸업식도 레트로인가? 얼마 전 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한 눈물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되고 교장선생님에게서 졸업장을 받고나서 담임선생님에게 안기거나 절하며 많은 아이들이 눈물을 지었다. 그걸 지켜보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지는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특히 선생님과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던 아이들이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 거면 그때 말 좀 잘 듣지”라고 옆에서 볼멘소리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그래서 애들이고, 그래서 선생과 부모 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교실 붕괴’니 ‘공교육의 위기’ 같은 이런 말들이 일상화되는 속에서 그동안 눈물 한 방울 없는 짧고 형식적인 졸업식을 봐오다 ‘이런 졸업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단상 아래 한 줄로 서서 내려오는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주기 위해 기다리던 선생님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답을 찾았다. 아이들 명단이 불릴 때마다 한 명 한 명에 대한 추억과 변화, 성장에 대해 주고받는 선생님들의 대화에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엿보았다. ‘아! 정말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했구나!’ 그리고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우리를 위해 늘 애써 주신다”고.

10여 년 전부터 교사의 권위적인 지도와 체벌의 대안으로 학생인권이 강조되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또 교권 침해가 문제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졸업식을 보면서 적어도 학생인권 침해나 교권 침해라는 단어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특별히 우수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역도 아닌 보통의 공립학교지만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상식적인 학교가 가능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묵묵히 노력하신 한 분 한 분 선생님들 덕분일 것이다.

학교에서 배움의 공동체 수업 모델을 도입한 후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거나, 학생자치가 자리 잡아 가면서 학교 규칙 위반으로 학생을 지도하며 얼굴 붉힐 일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 처음 반응은 “그게 가능해요?”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결이 뭐예요?”라는 질문이다. 그런데 비결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이 학교에 와서 학교 분위기의 영향으로 내가 바뀐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가르치는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려 노력한 것이고(대부분의 교사가 아이들 이름을 다 왼다), 두 번째는 수업에 대해 어느 해보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자청해서 수업공개도 했다는 점이다.

졸업식의 눈물은 과거와 비슷하나 다시 눈물 흘릴 수 있기까지 학교는 긴 세월 충분히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중심을 세우고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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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1500억여원을 들여 개발한 차세대 지방교육 행·재정 통합시스템 ‘K-에듀파인’이 지난 2일 개통 직후부터 일부 시·도에서 먹통 사태를 빚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과부하 문제로 시스템의 주요 서비스 중 하나를 몇 달간 일시 중단했다. 교원들의 업무 경감을 취지로 마련한 시스템이 되레 학교 현장을 마비시키다시피 하는 형국이다. 업무가 상대적으로 적은 방학임에도 접속 지연과 먹통이 반복되면서 개학 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가운데)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이 13일 유치원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K-에듀파인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자료집계’ 서비스가 과부하 문제로 지난 8일부터 중단됐다. 경기교육청은 각 학교에 4월30일까지는 통합 이전의 시스템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이용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K-에듀파인’ 시스템의 공지사항으로 “오류가 발생하여 열 수 없는 문서들이 있습니다. 급하신 문서의 경우 발신처에 요청하셔서 FAX나 우편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올리기도 했다. 개통 이후 열흘가량 하루 3만건 정도의 K-에듀파인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고 한다. 중앙콜센터 연결마저 지연되자, 강원도교육청은 오는 17일까지 K-에듀파인 지원센터를 운영키로 했다.

K-에듀파인은 국공립 유치원, 초·중·고교에서 사용 중인 회계관리와 업무관리를 하나로 통합한 시스템이다. 업무를 통합하고, 결재단계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부담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개통 직후부터 오류가 쏟아지자 현장의 원성이 높다. 좋은교사운동은 13일 ‘K-에듀파인 불통 사태’ 비판 성명서를 내고, 혼란의 원인 규명, 개학에 대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앞서 실천교육교사운동도 지난 8일 “교육부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도입을 서둘러 불상사를 낳았다”며 교육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교사들의 불만은 이해가 된다. 어떤 시스템이든 도입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안착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K-에듀파인은 연초 행·재정 통합시스템 개통에 이어 3월엔 사립유치원용, 5·6월엔 결산 관련 업무 시스템 개통으로 마무리된다. 가뜩이나 사립유치원에선 교육당국의 회계시스템에 대한 반발과 불신이 강한 터이다. 이런 판국에 최소한 기능적인 불안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육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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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대학의 위기가 전 방위적으로 가속화되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의 양적 팽창이 남긴 후유증은 결국 ‘대학의 종말’이라 할 만한 단계로까지 진행되어 버렸다. 국내 대학들이 국공립, 사립, 수도권, 지방 할 것 없이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 등록금은 동결되었고 인구절벽으로 2021년부터 대학 입학자원 역시 25%가 모자란다는 현실도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한계 대학들은 당장 다음 달 교직원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암담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학의 기초학문인 교양교육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실용 학문에 가려 정체성마저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대학들은 학술성이나 보편성이 없는 교과목들, 일회성 프로그램, 심지어 정부 각 부서가 요구하는 혼전순결교육, 통일교육 등이 교양교육과정을 잠식해 왔다. 학생들 역시 교양과목은 쉽게 학점을 따는 수업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에서 교양이란 용어가 “착하게 살자”는 식의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교육부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지 뒤늦게나마 처방전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훼손된 교양교육의 재정립 카드로 교양기초교육의 정상화를 꺼내 들었다. 대학의 각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교육당국의 의지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고등교육을 제자리로 돌리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말 발표된 교육당국의 제3주기 대학기본역량 진단 편람은 교양교육과정의 정의를 명료하게 설정하고 특히 기초학문 능력 제고를 위한 교양교육 체계와 운영여부를 진단요소로 채택하였다. 비록 이 내용들이 최종본은 아니지만 편람에 수록된 것만으로도 현장 대학에서는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양교육은 고등교육에서 전공과 양대 축으로 성장해 왔다. 원래부터 대학의 학부교육은 교양교육과 기초학문교육, 즉 교양기초교육으로 구성되었다. 교양기초교육은 대학교육 전반에 요구되는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폭넓은 이해, 즉 전통적인 자유학예(liberal arts)를 바탕으로 올바른 세계관과 건전한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글쓰기와 양적 추론을 비롯한 리터러시 능력 연마를 필수로 하고, 인문·사회·자연·예술에 기반을 둔 기초학문 교과목 배분이수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영역의 교과목들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다. 2016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제정한 ‘대학 교양기초교육의 표준 모델’ 역시 이러한 배경을 가진다.

지금까지 대학에서는 실용과 전공과목 등에 밀려 교양교육은 늘 뒷전으로 밀려난 채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교양교육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뒤늦게나마 교육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건 다행이다.

이런 점에서 교양교육 관련 학회, 기관들의 책임과 역할도 어느 해보다 무거워졌다. 올해부터는 교양교육이 제 모습을 되찾아 고등교육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상아탑 풍경을 그려 본다.

<박일우 | 한국교양교육학회장·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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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립대학 등록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2019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비회원국 9개국 포함, 46개국 대상 조사에서 2018학년도 한국 사립대학의 연평균 등록금(학부 기준)은 8760달러로, 4위였다. 그나마 2016학년도 3위, 이전엔 오랫동안 2위를 지키던 것에 비하면 다소 낮아진 것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등록금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가 2009년 반값등록금 정책을 추진하며 오랫동안 꽁꽁 묶었는데도 여전히 높다. 지난달 실시된 등록금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90%가 넘는 응답자가 등록금이 “매우 부담” 또는 “약간 부담된다”고 했다. 대학생 36%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거나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많은 돈을 들여 대학에 갈 필요성은 있는 걸까. 한국 대학교육의 평판이 객관적으론 그리 높은 것 같지 않다. 세계 100위권에 드는 한국 대학이 드물고, 노벨상 시상 때마다 해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하는 한국 대학교육 경쟁력은 2011년 59개국 중 39위에서 2017년 63개국 중 53위로 떨어졌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것 같지 않은데도 한국 청년들은 일단 대학 졸업장을 따놓는다. 안 갈 경우 낙인찍히고 손해볼까 두려워서다. 2018년 국내 25~34세 청년의 고등교육(전문대 이상) 이수율은 69.6%로, OECD 평균(44.3%)보다 훨씬 높다. 줄곧 OECD 1위다.

7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교육부에 ‘국가장학금Ⅱ 유형’ 참여 조건인 등록금 동결 또는 인하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불가 방침으로 답했다.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솔직해져야 한다. 학벌체제가 굳건해 대학 졸업장의 학교명이 결정된 이상, 학생도 교수도 굳이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정부 또한 고등교육 투자도, 큰 그림도 없이 뒷짐지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식 학력 인플레가 대학원으로 옮겨붙을 조짐도 농후하다. 왜? 가성비가 뚜렷하니까. ‘2018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학사 초임은 227만여원, 석사 초임은 350만여원, 박사 초임은 561만여원이었다. 전체 사회를 위한 가성비는 어떨까.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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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선거연령 하향 소식을 듣고,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가며 참정권 운동을 해온 청소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삭발을 하고 집회를 하고 성명서를 내며 싸워온 청소년들을 몇 년 동안 인터뷰하며 그 절박함을 가까이서 느꼈던 터다.

한 청소년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좋긴 한데, 걱정이에요.” 기사를 보고 뛸 듯이 기뻐 반 친구들에게 말을 꺼냈더니 “아, 그러냐” 하고 남의 일인 듯 시큰둥하더란다. 21대 총선 얘기에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벌써 끝났냐”고 되물어 당황했다고. 총선이 누굴 뽑는 선거인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건 “수능 준비하기도 바쁜데 또 무슨 필수과목 넣는 거 아냐?” 하는 냉소였단다.

이 얘기가 그리 놀랍지 않았던 건 그간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소수의 청소년 너머에 있는, 다수의 무관심한 청소년들에 대해 익히 들어와서다. 2016년 촛불집회 당시,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을 보고 사람들은 ‘민주시민이 탄생했다’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광장의 중심에 있던 그들을 인터뷰해보니, 교실에는 이 어마어마한 일에도 별 관심 없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사회 이슈를 꺼내면 “공부하기도 바쁜데 언제 뉴스 보냐”고 한단다. 그들은 진작부터 이런 다수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시민임을 자각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현실적인 시민교육을 해야 한다고 피력해왔다. 

진보교육감 3기를 지나며 민주시민교육이 강조되었지만 양적 팽창만큼 질적으로 성장하진 못했다. 여전히 교육현장에선 시민교육을 사회과 영역으로 여기는 데다, 방법을 몰라 헤매는 곳도 많다. 교육과정으로 시민을 기른다는 발상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사실은 모든 교과가 인성교육이며 시민교육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들레’에 기고한 고등학생은 ‘교문 밖에서 스스로 민주시민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주말과 방과후 시간을 쪼개 다양한 동아리와 단체 활동을 하며 세상에 눈을 떴다고. 학교 안의 학생자치, 시민교육은 생기부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반가운 소식이지만, 선거연령 하향 이후 해결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 셈이냐”라는 보수진영의 비난에 나는 “그렇다”고 답하겠다. 인간은 정치적인 존재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한, 우리 삶에 한순간도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학교는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삶의 변화를 꾀하며, 자신과 이웃의 안녕을 살피는 시민을 기르는 정치판이 되어야 한다.

다수의 청소년들이 정치에서 멀어진 건 그들이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왜곡되고 차단된 정보 속에, 경험이 없어서다. 세뱃돈을 모으고 중고장터에 물건을 내다 팔아 단체 활동비를 마련하는 청소년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물었다. “내 문제니까요. 평생 헬조선에서 살긴 싫거든요.” 53만명에 이르는 만 18세 유권자의 선거교육은 정치를 ‘나의 문제’로 여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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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옷을 준비하세요”, “파란색 옷을 준비하세요”. 아기의 성별을 암시하는 이 말은 산부인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의심 없이 ‘분홍색은 딸, 파란색은 아들’로 받아들여진다.

100여년 전만 해도 반대였다. 분홍이 남성의 색이었다. 색의 인문학,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책 &lt;컬러인문학&gt;에는 색에 얽힌 다양한 일화들이 나온다. 1897년 &lt;뉴욕 타임스&gt;는 ‘아기의 첫번째 옷’이라는 기사에서 “분홍은 대개 남자아이의 색으로, 파랑은 여자아이의 색으로 간주되지만 어머니들은 그 문제에서 자신의 취향을 따르면 된다”고 충고했다. 1918년 영국의 &lt;브리티시 레이디즈 홈 저널&gt;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에 따르면 남자아이에게는 분홍이, 여자아이에게는 파랑이 좋다. 분홍은 좀 더 분명하고 강해 보이는 색으로 남자아이에게 더 잘 어울리지만 파랑은 좀 더 섬세하고 얌전해 보여 여자아이한테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분홍을 남성적으로 본 큰 이유는 빨간 피와의 연관성 때문이라고 한다. 최고의 복서로 평가받는 슈거 레이 로빈슨이 1946년 첫번째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고 자축의 의미로 처음 구입한 캐딜락 색깔이 분홍이었는데, 이 취향도 놀랄 만한 것이 아니었을 정도다. 반면 부유한 로마 남성들은 여성적인 색이라는 이유로 파랑을 경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색의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분홍은 여성, 파랑은 남성’이라는 현재의 이미지는 마케팅과 사회화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1950~1960년대부터 ‘시장’에서 ‘여성과 분홍’을 적극적으로 연결시켜 광고했고, 제품과 연관된 이미지도 무의식중에 강화된 셈이다.

2일 ‘정치하는 엄마들’이 일부 영·유아용 옷과 문구류에 여아용은 분홍색, 남아용은 파란색이 정해져 있어 아이들이 색을 고를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이 단체는 성 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핑크 노 모어’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파랑, 분홍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여자답게’ ‘남자답게’가 문제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반쪽으로 가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분홍, 파랑의 모든 좋은 함의를 다 갖춘, 더 넓고 큰 아이들이 ‘나답게’ 자라는 2020년대가 되기를.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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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말을 맞아 학생들이 2차 지필고사 성적과 수행평가 점수를 합산한 2학기 종합 성적표를 받았다. 교과 담당교사가 최종 성적표를 가지고 들어가 학생들에게 점수 확인을 하고 사인을 받는다.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의 여러 반응을 통해 1년간 가르쳐온 수업과 학생들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에 찬우(가명)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마지막 학기 53점에 6등급을 받았다. 그는 자기 성적을 보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고 나도 그와 손뼉을 마주치며 같이 기뻐했다. 그는 평소 한문 공책을 들고 나를 찾아와,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질문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가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해서 그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점차 이해하는 것이 늘어났고, 처음에는 거의 알아볼 수 없었던 글씨도 조금씩 반듯해져 갔다. 시험이 다가오자 깨알같이 적은 종이를 들고 다니며 한자를 외웠다. 그 결과로 받은 이 점수는 그가 지금까지 학교생활 중에 받아본 적이 없는 최고의 점수였다.

찬우는 개념과 의미를 이해하는 데 보통의 학생들보다 어려움이 많았는데, 사물의 모습을 담은 상형문자라는 한자의 특성이 그의 특별한 주의와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그는 한자의 모양을 보면서 뜻과 연결짓고, 관련 단어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한자를 한 글자씩 외웠다. 어떤 학생이 특별한 관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안다는 것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어쩌면 찬우에게는 한자가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신호이자 통로였을지도 모른다.

예은(가명)이도 성적이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늘 맑은 표정으로 수업에 집중하면서 작은 것이라도 정성스럽게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의 학기 말 성적은 68점에 4등급이었는데 나는 그가 받은 점수가 못내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는 자기 점수를 확인하더니 “음, 나쁘지 않네” 하고 편안히 웃으며 사인을 했다.

예은이의 말은 학생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돌아보게 했다. 그래, 그의 말처럼 우리 각자의 존재와 삶이 생각만큼 그리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어차피 다 1등급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등급만 행복하란 법도 없다. 오히려 행복은 허용의 능력이다. 찬우는 찬우가 가진 것을 가지고 찬우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예은이는 예은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예은이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교육을 통해 세상의 희망을 꿈꾸는 것도 이와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장 알맞고 편안한 서식지를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희망을 현실에서 이루어내려면 먼저 우리 각자가 교육에 있어서의 ‘개별성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교사와 부모, 학교와 사회가 우리 안의 획일적인 욕구와 평가 기준을 내려놓고 서로 어떻게 다른지 주목하면서 각자에게 알맞은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허용하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도우며 축복해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디태치먼트>에서 교사 헨리가 “교육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한 말은 내가 알고 있는 교육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명제이다.

이제 학생들은 긴 휴식과 충전에 들어간다. 이 땅의 모든 찬우와 예은이를 응원하며, 그들에게 2020년이 행복한 자기 삶의 서식지를 발견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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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말이면 학교가 겨울방학에 들어간다. 아침에 교실로 들어선 선희의 손에 핫팩이 들려있었다. 방학 특강을 홍보하러 나온 학원 관계자에게 받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방학을 무조건 좋아할 것 같지만 학원을 더 많이 다녀야 해서 싫어하는 경우도 꽤 있다. 방학이 본래의 의미대로 공부를 내려놓고 인생을 풍성하게 해줄 취미를 키우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선진국인 북유럽의 방학은 어떨까? 

핀란드는 사교육의 개념이 없는 나라답게 방학 동안 다음 학년 공부를 선행하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스키, 스케이팅, 수영, 카누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한다. 부모가 직장이 있어 돌봐주지 못하면 지자체, 종교단체에서 주관하는 캠프에 참가하는데 비용이 저렴하다. 저소득층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여행 체험이 가능하다. 지자체, 정부에서는 부모의 소득에 따른 불공평이 학생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핀란드는 OECD 국가 중 학교 수업시수가 가장 적은데도 PISA(국제 학업성취도비교연구)에서 높은 학업성취도를 거둬 많이 놀아도 실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도 공교육의 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3국에 매년 탐방단을 꾸려 배우러 가고 있지만 교육 혁신의 비결이 학교 안에 있을까?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데에는 우리나라와 다른 노동구조가 있다. 노르웨이는 최저임금이 없다. 법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면 그것만 주면 된다는 것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90%가 노조에 가입되어 있어 노사협상을 통해 임금을 정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 비정규직은 자유로운 시간을 얻을 수 있어서 선택하고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많은 연봉과 승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선택한다는 것을 보면 이 나라에서는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 초·중·고졸에 따라 임금이 다르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기 때문에 대학이 무상교육이어도 굳이 진학하지 않는다. 직업을 잃을 경우, 개인이 감당할 고용불안과 위태로움을 사회안전망이 함께 받쳐주어 4년간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위험을 외주화하여 비정규직에게 떠맡기고 임금, 사회적 지위, 각종 처우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두며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대학교수보다 배관공의 월급이 더 많다는 노르웨이처럼 우리도 직업의 차별이 없고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 대다수가 들러리가 되는 입시로 인해 대부분이 엎드려 자는 교실 붕괴 장면쯤은 사라질 것이다. 

유명한 대학을 나오거나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진다 해도 부와 명예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당도했다. 개인파산을 신청한 직업군 2위가 의사, 4위가 한의사, 5위가 치과의사, 취직을 못하는 변호사가 10명 중 4명이라는 통계가 이미 5년 전에 발표되었다. 가방 속에 컵라면을 남기고 간 구의역 김군, 제주도 생수공장 현장실습생 이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문제의식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데도 좀처럼 사회는 움직이지 않아 보인다. 정시를 확대하는 것이 공정하냐 입시제도에만 매달릴 뿐이다.    

촘촘하게 짜인 학원 스케줄로 인해 방학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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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사학재단 설립자와 그의 친·인척을 학교법인 개방이사 대상에서 제외해 족벌경영을 차단하는 내용의 ‘사학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설립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의 임원 취임을 막아 재단 운영에 공정성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비리를 저지른 임원은 즉각 퇴출키로 했다. 사학비리를 구조적으로 차단하겠다는 혁신의지를 담은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학혁신 방안에는 이밖에도 회계 부정 방지를 위한 회계 투명성 제고, 사무직원 공개 채용 등 운영의 공공성 확대, 사립학교 교원의 권리보호 지원 방안 등이 두루 담겼다. 사학혁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학 설립자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비리 임원을 퇴출해 족벌경영을 차단해야 한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이사 정수의 4분의 1을 개방이사로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립적인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자는 도입취지와 달리 개방이사조차 설립자나 임원의 친·인척으로 채워지는 사례가 많아 이사회가 사학비리의 온상이 되곤 했다. 교육부는 임원의 비리 척결을 위해 1000만원 이상 횡령·배임 임원 즉시 퇴출, 임원 간 친족관계 공시, 이사회 회의록 공개 기간 연장(3개월→1년)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교육부의 사학혁신방안은 사학혁신위원회의 사학제도 개선 권고사항, 시·도 교육감협의회의 사학공공성 강화방안 등을 바탕으로 마련됐다. 1년여간의 사학 실태조사와 감사,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 마련한 혁신안인 만큼 사학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사립학교재단의 비리가 근절되고 운영이 투명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사학비리는 구조적이고 반복적으로 진행돼온 사회 적폐다. 사회혁신위가 활동하던 올 상반기에 적발된 사학비리만 775건이나 되고, 승인 취소된 사학임원도 84명에 달했다. 혁신안에 대한 사학재단과 보수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대비해야 한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된 사립학교법이 2년 뒤에 다시 개악된 선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학혁신을 위해 교육부는 사학 내부 고발자 보호, 비리 취약 분야 상시 감시, 감사 처분 미이행 사학에 대한 제재 강화 등의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사학개혁은 교육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만으로 부족하다.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비리 사학 임원 처벌 및 이사회 투명성 강화를 골자로 한 사학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 현장에서 사학혁신이 뿌리내리길 기대한다. 정부의 제재나 감시에 앞서 사학의 자정·혁신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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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5일 발표된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노력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2.7%로 10년 전보다 14.9%나 떨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특성화고 직업교육 업그레이드를 통한 계층 이동성 제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특성화고에는 일반고에 비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이 많이 진학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통하여 취업 역량을 갖추고 이를 디딤돌로 하여 맹자께서 말씀하신 항산(恒産)의 길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한 책무라고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직업교육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다양한 일·학습 병행제 및 선취업 후진학 관련 프로그램들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일반고에 비해 직업교육을 수행하는 특성화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획기적인 개선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기회균등 및 공정성 측면을 강조하며 일반고 역량 강화를 위해 자사고, 국제고, 외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일반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5년간 2조2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중등교육의 한 축인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특성화고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특성화고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반고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중등교육 생태계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일반고에만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직업교육에도 서열이 있다. 2018년 기준, ‘직업교육 특목고’인 46개 마이스터고(학생 수 1만8105명)와 490개 일반 특성화고(학생 수 25만2260명)가 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고교 서열화 문제로 특목고가 폐지돼야 한다면 직업교육의 특목고 문제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마이스터고의 경우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6.6명이고 교육비는 물론 기숙사비까지 제공된다. 이들은 졸업 후 주로 대기업에 취업하게 된다. 이에 비해 특성화고는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9.8명이며 졸업 후 중소기업에 취업하게 된다. 그나마 잦은 정책의 변화로 특성화고는 취업과 진학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취업률까지 극도로 하락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반고 및 마이스터고 아래 삼류 학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낙인효과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마이스터고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반고를 지원하는 것처럼 특성화고에도 일반고나 마이스터고 수준의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극 추진하고 있는 도제교육을 더욱 확충하여 특성화고를 지역 산업과 연계시켜 취업 및 창업에 특화된 ‘특성화 도제학교’로 새롭게 브랜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맹목적 대학진학을 위한 일반고 선호 현상도 줄이고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지역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인데 개천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용타령을 하기보다는 우선 개천을 복원하여 잉어나 이무기가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1세기 개천의 하나는 특성화고라고 믿는다. 노후한 실습장비 교체 및 지능정보기술 보급, 선도적 에듀테크 도입으로 특성화고를 마이스터고 못지않은 ‘특성화 도제학교’, 4차 산업혁명의 기수로 육성하자.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취업과 창업을 통해 등용문에 오르고 용이 되어 나르는 새로운 파천황(破天荒)을 이루게 할 수는 없을까.

<한석수 | 재능고 교장·전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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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내신시험이라고 한다. 학기마다 두 번의 시험 때가 되면 많은 학생들이 학원에서 시험공부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원들에서는 시험이 시작되기 3주 전부터 ‘시험대비기간’을 설정하고 각 학교별 시험문제 출제 유형에 맞춘 예상문제 풀이를 집중적으로 지도해왔다. 

그런데 그 기간이 최근 들어서 4주로 늘어나더니 이제는 아예 1개월 전부터 시험 대비를 하는 학원이 대다수가 되었다. 요즘 학원들은 대부분 단과반이다.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과목이 수학이고 영어와 국어가 주요과목으로 운영된다. 학원들마다 경쟁력을 갖고 중요하게 운영되는 과목이 다르다보니, 시험기간이 되면 각 과목마다 성적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예상문제를 학생들에게 넘치도록 건네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 풀어오도록 압박한다. 그렇다보니 심지어 학교에서도 학원숙제를 해야 겨우 나눠준 문제풀이를 마치고 등원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즈음이 되면 학원과 학교 양쪽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는 수행평가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때다. 학기별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각각 30% 비중이고 수행평가는 40%나 되기 때문에 수행평가도 시험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얼마 전 학종 논쟁 때 나왔던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시험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모둠 발표를 준비한다거나 주제탐구활동을 하는 수행평가는 교과 학원에서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고가의 컨설팅이 필요한 ‘불공정’이라는 주장도 이 때문에 등장하게 된다.

12월 중순에 대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는 2학기 기말고사가 마무리된다. 이후에는 학생들이 조금은 쉴 수 있는 기간이 될까? 그러나 이 시기는 학원가에서는 추가 매출을 챙길 수 있는 기간이다. 

학기 중에는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학원에 와서 겨우 2~3시간 수업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방학기간에는 하루를 모두 학원에서 보낼 수 있다. 그래서 기숙학원도 아닌 일반학원에서 ‘10 to 10 특강’이라고 하여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는 방학 특별 프로그램도 있다. 물론 그 시간에 비례해서 비용이 든다. 요즘은 방학이라고 해도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재충전이나 뭔가를 도전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니다.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또 다른 학습 시즌에 불과하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선행학습을 하고, 사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이 되었다. 2019년은 입시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된 한 해였다. 그러나 사교육 현장은 이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치열해졌다. 지난 교육 논쟁이 이런 비정상적인 경쟁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올 겨울방학을 준비하는 학원가의 분위기가 증언하고 있다.

내년 총선이 지나고 2022년 3월에는 대선이 치러진다. 총선을 앞두고 교육 이슈가 이 난리를 겪었는데 대선을 앞두고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걱정된다. 교육이 정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면 많은 가정들과 우리 청소년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부디 내년에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 누가 먼저 욕심을 내려놓고 국가의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하는지를 국민 모두가 고민해 보는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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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현장의 교사, 교육전문가, 개별 대학, 교육시민단체 등이 새 대입정책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동시에 교사, 학부모, 학생, 대학과 사교육 시장까지 제각기 적응 방법을 놓고 주판알을 튀기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실망이 커서 이 논란에 말을 보태기 싫다. 그러나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삶이 걸린 문제일뿐더러 현 정부의 국민적 지지를 갉아먹을 중대사인지라 몇 가지를 짚어 보자.

첫째, 새 대입정책은 명백히 졸속한 정책 전환이었다. 상당한 갈등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작년 여름에 2022학년도 대입제도를 확정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정치적 변수 탓에 느닷없는 변화를 교육현장에 강요한 셈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개인적 소신과 의지가 작용했다는 점도 정권에 큰 부담거리다.

둘째, 결과론이지만 교육당국과 교육운동단체 등 전문가집단이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 부정적인 여론을 과소평가한 점도 있다. 돈과 인맥과 문화자본으로 가능한 비교과영역의 각종 ‘스펙’, 달리 말해 공교육과 교사가 책임질 수 없는 범위의 활동이 반영되는 입시는 평범한 서민에게 ‘금수저’를 위한 전형, 상위권 대학의 은폐된 고교등급제가 작동하는 ‘깜깜이’ 전형일 수밖에 없다. ‘조국사태’에 앞서 일부 교수가 어린 자녀를 학술논문 공저자로 올리는 연구부정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터라 여론은 더욱 냉랭했다.

셋째, 그렇다고 정시 비율을 높이는 정책이 더 나은 대안이 아님도 분명하다. 정시 확대가 ‘금수저’에게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도 제법 나와 있지만, 수능성적 위주의 입시가 새 시대의 바람직한 제도가 되기는 어렵다. 김종엽 교수의 지적처럼 대학입시의 ‘공정성’은 매우 편협하게 해석되었으며, 우리 사회의 “대략 상층 20%의 관심거리가 아닌 것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기란 무척 어렵다”(‘창작과비평’ 2019 겨울)는 점을 입증했다. ‘공정성’이란 이름 아래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격하며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편협함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넷째, 중요한 대선 공약인 고교체제 개편이 어려워졌다. 교육부는 2025년에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공언했지만, 그것은 다음 정권의 일이다. 현 정부는 당장 시행령만 개정하면 가능했던 과제를, 학교 평가를 통해 폐지를 결정하는 기존 제도를 어정쩡하게 따름으로써 이미 공약을 어겼다. 불과 얼마 전에 전북 교육청의 전주 상산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를 교육부가 막아섰던 일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이대로라면 2025년에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해도 헌법소원에서 정부가 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선의 자녀 교육을 위해 능력껏 애쓸 권리는 민주사회에서 당연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커질 것이다. 

고교체제 개편은 어쩌면 학종의 폐해 극복보다 한층 절실했다. 정책 당국이 우리의 중등교육을 정상화할 의지가 확고했다면, 최소한 이명박 정부 이후 난립한 ‘자율형 자사고’들을 일괄해서 없앤 후 단계적으로 더 오래된 학교들을 설립 목적에 맞게 운영하거나 없애는 쪽으로 나아갔어야 한다.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발표에서 교육부는 “현행 객관식 평가방식으로는 미래인재 양성에 한계”가 있어 사회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교육 비전과 이를 담아낼 새로운 수능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 수능체계는 2025년에 전면 실시할 계획이라는 고교 학점제에 발맞춰 2028학년도부터 도입한다고 하지만,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일정이다.

유일한 해법은 현장 교사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북돋우는 길이다. 교육부도 보도 해명자료를 통해 정규교과과정 내의 비교과영역은 대입에 반영한다고 밝혔지만, 학종을 없애고 수능과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전부 바꾸더라도 공교육 교사의 진취적 노력이 숨쉴 영역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고등학생들이 문제풀이와 점수따기에 질리는 와중에도 양서를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길이며, 그나마 고교 학점제로 가는 징검다리이다.

물론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 사회의 상층 20%가 무관심한 개혁 과제에 투자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의 ‘흙수저’ 청년들은 전문대학에 많이 다닌다. 전문대학의 절대 다수는 사립이며, 일반대학도 80%가 사립이다. 따라서 ‘공영형 사립대 사업’으로 이들 교육기관의 질을 높이고 대학의 구조조정도 순조롭게 해내야 한다. 대입 문제를 대입제도 개편으로 풀 수는 없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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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교육감 타령’이 또다시 나왔다. 이른바 좌파교육감(보수층이 진보성향 교육감들을 지칭) 때문에 학생들의 학력이 계속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일 일부 언론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 한국의 순위가 읽기, 수학, 과학 등 모든 영역에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2006년까지 좋았던 성적이 2009년부터 추락했다며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좌파성향 교육감들이 성적평가를 없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보수언론들은 ‘2018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중·고교생의 과목별 기초학력 미달비율이 대폭 늘었다며 일제히 좌파교육감들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좌파교육감의 잃어버린 10년론’이다.

보수세력이 지칭하는 ‘좌파교육감’의 본격 등장은 2010년부터다. 3년마다 치르는 PISA 평가에서 이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따지려면 2012년 시험부터 얘기해야 한다. 2012년은 2009년보다 성적이 대폭 올랐다. 그 뒤 2015년 시험에선 대폭 떨어졌고, 2018년은 소폭 반등했다. 일관된 하향 추세가 아니다. 보수언론이 주목한 ‘모든 과목 1위 중국’은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4개 도시만 참여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비교 대상인지 의심스럽다. 훌륭한 교육으로 자주 소개되는 이스라엘이 3개 영역 모두 하위권이라는 점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보수세력은 좌파교육감들이 일제고사를 표집으로 전환하고, 자유학기제 등의 도입으로 시험이 줄고 경쟁이 사라져 학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취지인 학습부진아 지원은 유명무실해진 채 성적 공개로 학교별 서열화만 야기했고, 예산과 평가에 연계되며 학교 간 경쟁을 부추겼다. 강제적 문제암기와 시험대비라는 반교육이 횡행하며 초등 일제고사를 표집으로 전환한 것은 박근혜 정부다.

“시험을 치면 칠수록 학습효과가 높아진다? 키를 자꾸 잰다고 키가 커지지는 않는다”(<시험국민의 탄생> 중).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기초학력 부진에 대한 지원인지, 전반적인 성적 상승인지에 따라 면밀한 진단과 지원방법 논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PISA 2018’에서 소폭 오른 한국 학생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어떻게 평균치까지만이라도 끌어올릴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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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서울과학고(영재고)의 의대 진학 과열 양상을 막기 위한 개선책을 내놨다. 내년 신입생부터 의대에 진학할 경우 장학금과 교육비 등을 환수 조치하고 교내대회에서 받은 상을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이공계 인재를 양성한다는 학교 설립 취지와는 달리 해마다 의학계열로 진학하는 학생이 4~5명에 1명꼴로, ‘의대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비판을 받자 내놓은 대책이다. 국비로 지원하는 학교인 만큼 최소한의 책무성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조치다. 실효성을 담보할 후속 방안 등을 통해 의대 쏠림·과열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일 서울과학고의 ‘의학계열 진학 억제방안’에 따르면, 학교는 의학계열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에게는 일반고 학생보다 더 많이 정부가 지원하는 교육비를 환수 조치하기로 했다. 1인당 연간 500만원, 3년 1500만원 내외다. 입학 전형도 변경해 현재 지역별로 1명인 ‘지역인재 우선선발’ 인원을 2021학년도부터는 지역별 2명 이내로 2배가량 늘려 뽑기로 했다.

현재 서울과학고와 같은 전국의 과학영재학교는 모두 8곳이다. 영재학교는 영재교육법에 따라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고자 설립, 해마다 수십억원의 예산이 국비로 지원된다. 그중 서울과학고의 의대 진학률이 가장 높아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지적돼 왔다. 영재학교 8곳의 의대 진학률은 평균 10%가 되지 않지만, 서울과학고는 지난해 졸업생 130명 중 30명이 의학계열 대학으로 진학해 23%를 넘었다. 2003년에 설립된 최초의 과학영재학교인 한국과학영재학교의 경우 의대 진학이 전무하다시피 한 것과 비교된다. 이 학교는 의대에 진학하게 되면 고교 졸업장을 수여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의대 진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서울과학고의 개선책은 의대들의 입시 전형 변화와 맞물려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과학고·영재고 학생의 의대행은 주로 수학·과학 특기자 전형이다. 따라서 국비지원 학비 환수 등을 감수하고라도 의대 진학을 감행할 경우 사실상 이를 막기 어렵다. 교육부의 보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의대 인기가 치솟으면서 대입서열화의 정점에 의대가 자리 잡았고, 과학고·영재고는 의대로 가는 디딤돌로 여겨졌다.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학교운영은 바로잡아야 한다. 서울교육청과 서울과학고의 조치가 효과를 거두고 다른 영재고로 확산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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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8일 교육 불공정·불평등의 해소 대책으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대입 정시 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고교 비교과활동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게 골자다. ‘조국사태’를 계기로 ‘금수저 전형’으로 비판받아온 학종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취지이지만 정시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교육부의 발표는 ‘공정성 강화 방안’이지만, 사실상의 ‘대학입학제도 개편안’이다. 특히 수시 축소, 정시 확대가 교육 현장에 미칠 파급은 클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정시비중이 낮은 서울 16개 대학에서 2022년부터 수능으로 신입생 40% 이상을 선발하도록 할 방침이지만, 수시모집에서 채우지 못해 정시로 이월되는 비율이 10%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정시비율은 50%대로 올라간다. 또한 정시 확대로 교실이 수능을 위한 문제풀이 장소로 변질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사교육시장이 활개를 치고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 교육의 빈부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수업이 입시준비로 전락하면서 학생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별화교육은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필수적인 교사의 권위마저 추락할 터이다. 정시 확대는 곧 공교육 포기다. 

교육부는 학종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자율·봉사·진로활동 등 비교과 영역과 자기소개서를 전형에 반영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논술 위주의 전형과 특기자 전형도 점차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교육부는 학생부 중심의 학종과 수능 위주의 정시로 재편해 입시 전형에서 불공정 요소를 없애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교과 중심의 학생부와 수능 중심의 전형이 공정하고 평등한가는 의문이다. 비교과 영역 학생활동이 학종에 포함되면서 학생의 개성과 다양성을 길러주는 전인교육이 자리를 잡아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수능 위주의 입시에서는 학생의 특성을 살리는 개별화교육은 사라지고 획일화된 진학교육만 판을 칠 것이다.   

이번 입시개편안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 철학·정책과도 배치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정시 축소, 수시 확대라는 입시 정책을 견지해왔다. 지난해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논의에서 정시확대 여론이 적지 않았지만, ‘2022년 대입 개편안’에서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정한 것은 수시 전형이 공교육 이념에 부합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불과 1년여 만에 ‘학종 불공정’ 여론을 이유로 ‘정시 확대’로 급선회했다. 교육부는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의 이유로 ‘학종·정시의 균형을 맞추라는 국민적 요구’라고 답했다. 무엇이 균형이고, 왜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정시 확대’ 발표에 벌써부터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비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들은 일방적인 입시정책 변경에 반발하고 있다. 보수·진보 교육단체 사이의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1년 만에 뒤바뀐 정책 속에서 백년지대계 교육의 미래는 더욱 점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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