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가명) 어머니는 무심했다. 예민하고 강박적 행동을 하는 예나가 걱정되어 연락하면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마다 자신이 예나를 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강조했다. 6학년이 되자 예나의 체중이 심각하게 줄었다. 친구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섭식장애를 앓게 된 것이다. 예나의 섭식장애 기저에는 애착(attachment) 문제가 있었다. 존 볼비는 주 양육자와 아이가 맺는 애착이 정서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안정형 애착 관계를 맺는 양육자는 아이의 요구를 즉시 알아차리고 민감한 감수성으로 대응한다. 아이의 욕구를 수용하거나 자제시키며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면 아이에게는 안전기지(secure base)가 생긴다. 낯선 놀이에 ..
설 명절 연휴 때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로버트 D 퍼트넘의 이란 책을 빌려왔다. 연휴에 틈을 내어 읽었지만 책은 절반 정도에서 멈췄다. 하지만 얼른 시간을 내어 더 읽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다. 퍼트넘은 1940년대 출생하여 ‘사회적 자본’에 관한 이론으로 명성을 날린 미국의 사회학자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신뢰나 규범 혹은 연결망 등으로 해서 갖게 되는 힘이 실제 자본처럼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 퍼트넘의 이 책은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하는데 사람들 사이의 이런 긍정적 관계가 어떤 힘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1950년대만 하더라도 인종에 크게 관계없이 마을 아이들 모두가 어렵지 않게 주변 어른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봄이다. 입춘이 지나고 언 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사한 꽃으로 봄을 알리는 구근의 새싹들이 여기저기 삐죽이 내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봄’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생함을 여린 새순들, 개나리, 진달래의 화사한 모습으로 떠올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너희들이 와야 학교는 봄’이라는 현수막이 떠오른다. 작년 봄 코로나로 개학이 늦어지며 아이들을 기다리며 교문에 걸려 있던 이 문구가 얼마나 마음을 울렸던지. 드문드문 학교에 다녀가는 아이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아니라 학교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가 혈관의 맥박처럼 우리 사회 생기의 근원이었음을 깨닫는다. 작년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이게 뭐지?’ 하며 대응하다 끝났지만 올해는 새 학기 준비를 두 가지 버전으로 하면서..
지난해, 교육에서 드러난 큰 차이 중 하나는 지역별 등교 일수였다. 수도권에선 등교 일수가 20일이 안 되는 학교가 있었던 반면에 지역의 소도시에서는 90일 이상 등교한 곳도 있었다. 지역 전파가 심하지 않던 상반기만 해도 시골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를 갔다. 확진자가 거의 없고 유동 인구도 적은 덕분이었다. 길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육 환경의 변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특히 대도시에 거주하는 가정 가운데 시골로 이주를 고려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당장 귀촌이 어려우면 가족 일부라도 시골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보호자들의 시의적인 고민을 반영한 교육정책이 새로 도입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과 전남교육청의 협약으로 올 3월부터 시행하는 농·산촌유학 제도다. 일본에서 시작해 2000년대 초반부..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 온라인 무기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수업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과 함께한 올해 나의 수업이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을지,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온라인 수업을 할 때, 비디오를 꺼놓는 학생이 많아서 나는 매번 출석을 확인할 겸 ‘정연이~ 건우~’ 이런 식으로 학생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고, 학생이 대답하면, 다시 ‘네’라고 확인해주었는데, 자기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리며 친구들의 존재에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머무는 이 시간이 나는 참 따뜻하고 좋았다. 설문을 받아보니 선생님이 매번 이름을 불러주어 너무 좋았고, 그날 수업이 편안해졌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고맙게도 학생들 또한 매번 자기 이름이 불리는 것을 통해 자신이 여기 존재하고 함께 참여하고..

특목고·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해졌다는 주장은 거짓이거나, 적어도 과장이다. 중학교 졸업자는 매년 45만명 안팎이다. 외고·국제고, 자사고, 과학고·영재학교 입학 정원은 약 2만2000명이다. 중졸자의 5%, 고작 고교 학급당 1~2명 차이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화’되다니? 다만 서울로 한정하면 이명박 정부 때 워낙 많은 자사고를 지정해서 학급당 5명 정도 차이났다. 자사고가 밀집된 강북 일부 지역은 충격이 더 심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일반고 황폐화는 특목고·자사고 때문이 아니다. 이른바 ‘교실 붕괴’는 이미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 교실 붕괴의 첫 번째 원인은 ‘문화적 부조화’, 즉 체벌과 주입식 교육이 횡행하는 학교 문화와 풍요와 다양성을 맛보며 자란 신세대 사이의 미스매치다. 두 번째 ..
올해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가운데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문민정부 이후 여러 교육개혁 관련 대통령자문기구들이 있었지만 이번 국교위는 개혁을 위한 임시자문기구가 아니다. 오히려 교육에 관한 포괄적 의사결정을 일상화하는 새로운 초당적 교육권력기구라는 점에서 새롭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국교위가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과 정책을 논의 결정하고, 교육부가 그것을 집행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10년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 교육은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오래된 적폐로서 인간교육상실 문제, 교육 양극화와 노동시장 문제, 암기식 선발중심교육 문제 등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미래교육체계 설계와 평생학습체계 구축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야 한다. ..
한 편의 영화를 빨리감기하여 휙휙 스쳐본 것만 같은 2020년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학교는 오랜 역사와 촘촘히 얽힌 시스템 덕분에 할 건 다 해야 학기가 마쳐지고 방학에 들어갈 수 있다. 해마다 학기말이면 교육과정 평가회를 갖는데 2020년에는 12월 중순부터 세 번에 걸쳐 일 년의 교육과정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 번은 학년을 중심으로 한 통합교육과정에 대한 평가, 또 한 번은 학교 운영 전반에 걸친 조직 진단을 겸한 평가, 마지막으로 학생·교사의 성장 이야기를 듣는 평가의 시간까지 세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평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 일단 그 시간이 즐겁고 감동적이었으며 구성원들 사이에 소통과 이해가 깊어졌고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무언가 가슴 안에 새로운 도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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