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교육'에 해당되는 글 545건

  1. 2020.05.26 [학교의 안과 밖]n번방에 대한 n분의 1의 책임
  2. 2020.05.12 [사설]또 일주일 미뤄진 등교, 교육당국은 중심 잡고 혼란 줄여야
  3. 2020.05.06 [학교의 안과 밖]내 아이를 알게 된 소중한 기회
  4. 2020.05.06 [사설]두 달 만의 등교개학, 선제적·체계적 준비 필요하다
  5. 2020.04.28 [학교의 안과 밖]코로나19가 가져다준 변화와 배움
  6. 2020.04.14 [학교의 안과 밖]가본 적 없는 ‘낯선 길’ 찾기
  7. 2020.04.10 [사설]온라인개학 첫날 드러난 문제점, 서둘러 보완해야
  8. 2020.04.07 [사설]이틀 앞둔 ‘온라인개학’, 학생 간 격차와 혼선 없게 준비해야
  9. 2020.02.25 [기고]불평등교육 ‘국민투표’로 바꿔요
  10. 2020.02.25 [학교의 안과 밖]‘최고’보다 ‘최선’의 학창시절
  11. 2020.02.12 [정동칼럼]고등교육 보편화시대의 대학
  12. 2020.02.04 [학교의 안과 밖]고3의 ‘첫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13. 2020.01.31 [정동칼럼]정시 비율 논란과 서울대가 할 일
  14. 2020.01.28 [학교의 안과 밖]‘가난 혐오’에 대응하는 방법
  15. 2020.01.21 [학교의 안과 밖]“포기는 배추 셀 때만 쓰는 말이야”
  16. 2020.01.14 [학교의 안과 밖]추억의 졸업식을 소환하다
  17. 2020.01.14 [사설]‘1500억 에듀파인’ 개통 직후 서비스 중단이라니
  18. 2020.01.08 [기고]교양기초교육의 제자리 찾기
  19. 2020.01.08 [여적]대학등록금 가성비
  20. 2020.01.07 [학교의 안과 밖]시민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여성들은 성희롱과 성폭력에 관한 다양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남자들이 들으면 ‘그게 실화냐’고 눈이 똥그래지는 성폭력의 경험들이, 여자 둘만 모여도 쉼 없이 쏟아진다.

여고 시절, 지각하면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는 남선생이 있었다. 지각 버릇을 고쳐주려 그런다고 했다. 지각과 브래지어 끈이 대체 뭔 상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잘못을 했으니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속바지를 입었는지 검사하겠다며 지휘봉으로 교복 치마를 들추는 선생이나, “공부하느라 힘들지” 하면서 귓불을 만지는 선생 앞에서도 그저 몸을 움츠리기만 했다. 남성이자 어른이자 선생인 그의 권위에 눌려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상상조차 못했다. 못 견딜 정도로 기분이 더러울 때는 뒤에서 “그 자식, 변태야” 하면서 힘없는 우리끼리 선생을 욕하는 게 전부였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살면서 밥 먹듯이 겪게 될 성폭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내게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그들의 행위가 성희롱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몰랐다는 건, 누구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의 무지는 교사가 된 후에도 계속되었다. 인권을 중시하고 학생을 존중하는 대안학교 교사들도 젠더 문제에서만큼은 한참 뒤처져 있었다. 여학생들의 속옷을 감추는 남학생의 행위를 ‘짓궂은 장난’으로 생각했고, 늘 어리게만 보던 남자아이가 컴퓨터실에서 야동을 보다 들켰을 땐 ‘벌써 그럴 때가 됐나’ 하면서 대견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최근 n번방 사건을 지켜보며 분노와 함께 심한 자책의 마음이 들었다. 교사로서 나의 무지가 이 사회의 비뚤어진 성인지 감수성에 일조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n번방을 최초로 개설하고 운영한 문형욱(텔레그램명 ‘갓갓’)은 범행 목적을 묻자 “잘못된 성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미리 준비한 답일지라도 그냥 흘려들을 순 없었다. 교묘하고 악랄한 수법만큼이나 충격을 안긴 건 26만명이라는 가담자 수였다. n번방에 분노하는 우리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2년 전, 한 남고생이 여성혐오와 음담패설로 얼룩진 10대 남자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민들레’에 공개했다. 독자들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적나라한 글을 지면에 실은 것에 불편을 표하기도 했으나, 나는 안다. 그들의 말이 오늘의 n번방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n번방은 하나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문화적 현상’의 일부다. n번방과 유사한 사건 혹은 그의 시발점이 되는 잘못된 성 문화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을 지탄하기 전에 부모로서, 교사로서, 시민으로서 자신의 젠더의식을 샅샅이 성찰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뼈아픈 후회와 반성으로 강력한 갈등과 균열과 전복을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문화는 균열을 전제로 도래할 것이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편집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울 이태원 클럽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학교들의 등교 재연기가 발표된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책상이 간격을 유지한 채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오는 13일로 예정된 고교 3학년들의 등교개학을 목전에 두고 또다시 모든 학년의 등교 수업을 일주일씩 연기하기로 했다. 고교 3학년은 오는 20일로, 다음달 1일이었던 중1·초5~6학년의 등교일은 6월8일로 늦춰진다. 서울 이태원의 클럽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지역 감염 우려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재연기는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개학 이후 빠듯한 입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려던 고3생들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당국은 조속히 재연기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 건강이 최우선인 만큼 교육부의 개학 연기 조치에는 무리가 없다. 더구나 이날 방역당국은 클럽발 감염 확진자가 13일까지 급증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고3 학생들의 등교에 우려를 표했다. 서울, 경기, 충북 교육감 등도 고3 개학을 최소 일주일 늦출 것을 제안했다. 지난 5일까지의 연휴기간 시민들의 이동이 늘어나며 감염병 확산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난 4일 교육부가 잠복기 2주일도 지나기 전에 고3 학생들의 등교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이미 성급하다는 지적이 무성했다. 학생들의 건강권을 얘기하면서도 ‘입시가 방역을 이긴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던 터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등교개학은 학생들의 안전이 담보된 뒤에 최대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교육청과 각 학교는 우선 개학 연기에 따른 온라인수업 연장과 등교수업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교육당국의 기대대로 오는 20일 고3 등교수업이 제대로 시작될지도 불투명하다. 이태원 집단 감염을 넘어서도 문제는 남는다. 방역당국은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는 완화와 유행을 반복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교육당국은 지난 두 달 넘게 계속 상황에 밀려 개학을 연기해왔다. 이제는 향후 돌발 상황과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더 이상 땜질식 대응으로 학교현장에 혼란을 가중시켜선 안 된다. 감염병 상황이 예측 불가능한 탓도 있지만 교육당국의 결정이 너무 늦고 불투명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기존의 학사일정에 억지로 기간만 맞춰, 문제가 없다는 말만 해선 안 된다. 잦은 학사일정 변경 등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고3 수험생들에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하다.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가 협력해 남은 1학기 교육 과정과 시험 일정, 평가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조속히 내놔야 한다. 교육당국이 중심을 잡아야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빨리 일어나! 온라인수업 들어야지. 엄마가 컴퓨터 켜놨으니까 빨리 세수하고 와!”

오늘도 우리 집 아침은 분주하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여전히 방학이라는 두 아이와 온라인개학도 개학이라며 컴퓨터 앞으로 등교시키려는 아내의 실랑이 한판이 벌어진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온라인수업이 시작된 후 아내가 정말 바빠졌다. 큰애의 과학실험을 도와주다가 작은애의 수학 문제를 풀어주고, 점심을 먹인 후에는 숙제를 시켜 온라인으로 제출해야 하니 아이 개학인지 아내의 개학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동안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학교와 학원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온라인수업이 시작된 후 아내가 우리 집 선생님이 된 거다.

처음에는 부모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어 불만이 많았지만, 아이를 가르쳐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아이가 수업을 어떻게 듣는지, 문제는 어떤 식으로 푸는지 성적표만으로는 알 수 없던 것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글 읽는 습관이다. 우리 아이는 책을 빨리 읽어서 속독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단어를 건너뛰며 읽고 있었다. 이러니 문제를 틀릴 수밖에. 꼼꼼히 읽지 않으니 맞는 것 찾으라는데 틀린 것 찾고, 모두 찾으라는데 하나만 찾고 있었던 거다. 문제점을 알게 되니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방향이 보였다. 먼저 아이와 함께 소리 내서 글을 읽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 치는 연습을 시작했다. 짧은 글을 읽고 제목도 달아보고, 출제 의도를 파악하는 연습까지 하자 아이의 변화가 느껴졌다. 역시 아이를 바꾸는 것은 부모의 관심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내친김에 수학도 가르쳐봤다. 지난 학기 문제집에서 까다로운 문제들을 골라 풀어보게 하니 구멍난 곳들이 드러났다. 선행학습을 제법 했기에 자기 학년 내용은 제대로 알 줄 알았는데 구멍이 많이 뚫려 있었다. 그동안 헛공부한 것이다. 수학은 상위개념을 활용하면 문제 풀이가 쉬워지니 선배들의 공식을 이용해 문제를 푸는 얄팍한 기술만 늘어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문제 해결 전략을 수립하는 수학적 사고력인데 말이다. 나 역시 진도 경쟁에 빠져 아이를 웃자라게 했다는 생각에 반성이 됐다. 그래서 선행학습을 멈추고 지난 학기 진도부터 다시 복습하기 시작했다. 개념부터 꼼꼼히 읽고 틀린 문제는 정확히 풀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풀게 하니 기본기가 탄탄해졌다. 문제도 일일이 식을 써서 풀게 하자 암산으로 대충 풀던 습관이 조금씩 고쳐졌다. 학교나 학원에서 단체로 진도를 나가느라 놓쳤던 부분이 메워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게 됐을 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의 공부 습관을 돌아보고 구멍난 부분을 메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 땐 동지애까지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다. 가끔은 이렇게 뒤돌아보며 다져가는 시기를 가져야겠다.

<강명규 스터디홀릭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초등학교 1∼3학년생들의 온라인 개학이 시작된 20일 오전 서울 노원구 화랑초등학교 1학년 4반 홍성미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두 달 넘게 닫혀 있던 초·중·고교의 교문이 드디어 열린다. 오는 13일 고등학교 3학년을 시작으로, 20일(고2, 중3, 초1~2학년, 유치원), 27일(고1, 중2, 초3~4학년), 다음달 1일(중1, 초5~6학년) 등 4차례에 걸쳐 순차적 등교개학이 진행된다. 6일부터 코로나19 대응체계가 ‘사회적(물리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되는 것과 발을 맞춘 조치이다. 등교개학은 당연히 반길 일이지만 바이러스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만큼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빈틈없는 방역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교내 소독과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밀집 공간에 많은 학생이 있는 몰리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급식환경을 재정비하는 것도 필수이다. 개학에 따라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수칙을 엄수하도록 안내하는 조치도 차질 없이 해야 한다. 초안만 마련된 세부수칙을 개학까지 남은 기간 동안 더욱 촘촘히 다듬어 일선에 전달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공동체 안에서 낙인찍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개학하게 되면 바이러스 확산 위험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교육·보건 당국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한 플랜 A, B, C를 세워놓아야 한다. 유사시 교육 주체들이 당황하지 않고 질서 있게 대응할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상황 발생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연락망과 시스템 등을 갖춰놓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동안 교육당국은 1~2주 단위로 개학을 연기하며 단기적 처방으로 대응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등교개학 방침도 빠듯한 고3 학생들의 대입 일정에 맞춰 조정한 결과이다. 앞으로도 학사 일정 등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장기적·종합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의 학습권과 건강권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가을 이후 코로나19 2차 유행을 예상하는 만큼 교육당국은 최악의 경우를 포함해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들의 수업과 진학 지도에 차질이 없도록 교육당국과 학교는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입시 반영 비중이 높은 3학년 내신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에 학교·지역에 따른 불이익·불공정 논란이 있어선 안된다. 무엇보다 굵직한 일정과 기준을 신속히 제시해 불투명성을 제거하는 것이 시급하다. 교육과 입시는 민감한 사안이다. 교육당국은 학교의 자율에만 맡기지 말고 선제적·적극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K방역처럼 등교개학에서도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 온라인개학을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들이라 다른 사람은 어떤지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물리적 거리 두기로 만남을 자제하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 지면을 빌려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달린 엄혹한 현실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들릴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첫 번째 변화는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는 점이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 밥을 먹는 일상을 60여일 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각종 모임과 학원 수강 등으로 바빠 하루 한 번 가족과 마주 앉아 식사하는 것이 어려웠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역설적으로 일상은 더 간결하고 평화로워졌다.

두 번째는 우리가 얼마나 연결된 존재인지,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입장과 이익을 주장하는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를 공멸의 길로 이끌 수도 있고 공감과 배려의 물결이 상생의 길로 이끌 수도 있다는 걸 눈으로 보고 몸소 체험하는 날들이었다. 어려운 시기 상대적으로 생계가 안정적인 직업군에 속한 사람으로서 자영업자, 취준생, 실직자들의 고통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 실천도 필요하겠지만 이번 기회에 최소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됐으면 좋겠다.

세 번째는 온라인개학을 하게 되면서 원격수업에 대해 적극 고민하고 원격수업에 필요한 기능을 익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게 늘 즐겁지만은 않다. 특히 자발적으로 배우는 게 아닐 경우는 더 그렇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이 일 때는 그 물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줄지는 몰라도 흐름을 타야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다. 그러기에 변화의 요구에 저항하기보다 적극적 수용이 필요하다. 미래사회, 바이러스로 인한 위험 경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디지털 교육으로 전면이행은 아닐지라도 부분적 도입은 이미 현실이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효율성과 편리함의 추구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이다. 대단위로 한 작물을 키우면 관리도 쉽고 수확량도 높지만 병이 오면 그 단지 전체 농사가 망하게 되는 것처럼 대도시 중심의 소비문화 추구가 결국 바이러스 전파에 취약한 생태계를 만들었다. 앞으로는 효율성보다는 지속 가능성과 다양성, 공동체성을 우선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100여일이 지났다. 신화에서는 100일이면 곰이 사람으로 변신할 수도 있는 시간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사재기와 약탈, 의료 시스템의 붕괴, 국가의 강제적 봉쇄, 이런 것 없이도 고난을 잘 헤쳐왔다. 앞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도 부디 한마음으로 지혜를 모아 함께 헤쳐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통의 적 앞에서 단결은 쉬우나 그 적이 물러가면 다시 자기 이익을 지키느라 혈안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교육부가 온라인개학을 발표한 뒤, 세부적인 방법이 정해지지 않자 학교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가느라 뜨거운 몇 주를 보냈다. 어디가 방향이고 중심인지 다 같이 모르는 상황에서 각종 정보와 질문, 의견들이 쏟아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는 용광로처럼 타올랐다. 누군가 의견을 내면 모두가 주목했고 뭔가를 만들어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다 같이 몰려들어 배웠다.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다른 방법을 찾아 공유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학교가 문을 열었다. ‘다 같이 모르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소통과 경청, 협력적 배움의 공간이 생겨났다.

참여와 의사결정의 과정에는 우리 대부분이 겪고 있는 중요한 딜레마가 있다. 조직이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구체적인 지침을 정해주면 사람들은 그들이 알려준 대로 따라가면 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동시에 그 결정 과정에 늘 자신의 존재는 무시되고 있다는 분리감을 느끼고 마음을 접으며 내가 이 일에 얼마큼 발을 담글지 가늠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개인과 조직, 삶과 일이 분리되면서 마음의 참여는 갈수록 멀어지고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생생함을 잃어버린다. 원칙과 방향을 정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가장 좋은 답을 알고 있다’면서 어떤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생각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면 방침이나 계획이 모호할수록 좋은 것일까?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은 나아가야 할 방향, 책임과 소통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을 느낀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이처럼 상황이 언제나 이중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리는 이 딜레마로 인해 늘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업무상 회의나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늘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답답한 상황이 반복되기도 한다.

움베르트 마투라나는 “당신은 당신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딜레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존재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자신과 너무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우리에게는 ‘내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아줄 누군가가 서로에게 필요하다. 그래야 각자가 알고 있는 ‘믿음’을 내려놓고 더 큰 전체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부터 온라인학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교육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개선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문제는 ‘참여와 소통의 방법과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상황에 이중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각자가 ‘아는 것’을 보류하며 함께 참여하고 소통할 때, 두려움과 호기심은 공동의 지혜와 협력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진정한 새로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조춘애 광명고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9일 오전 인천 연수구 선학중학교에서 열린 온라인개학식에서 교사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의 고3과 중3 학생들이 9일 오전 일제히 사상 첫 온라인개학을 했다. 충실한 준비로 무난하게 수업을 진행한 학교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상당수는 처음 접하는 화상 원격수업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혼란을 겪었다.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한 첫날 수업이었다. 

원격수업은 교사와 학생의 화상 연결로 진행하는 ‘실시간 쌍방향형’, EBS 콘텐츠나 교사가 녹화한 동영상을 보고 토론하는 ‘콘텐츠 활용형’, 독후감 등 과제를 내주는 ‘과제 수행형’ 등 3가지 유형 중 교사가 선택할 수 있다. 촉박한 일정으로 대부분 수업이 EBS 강의 콘텐츠를 활용한 수능 특강으로 진행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EBS 온라인 클래스에서 발생한 접속지연 등 부작용과 혼란은 예상보다 컸다. 중학교용 사이트에서 처음부터 접속 시스템에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지난달 온라인 특강 때부터 문제를 드러냈는데 개학일까지도 보완되지 못한 것이다. 교사가 준비한 수업의 내용과 질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당장 학교별 학생부 기록 등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학교별 수업 수준 격차로 학생들이 불리해지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과 수업을 지켜본 부모들은 종일 수업에 따른 낮은 몰입도를 걱정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마련한 온라인 간담회에서는 “강의를 켜놓고 딴짓 한다” “원격수업으로 학력격차가 커지지 않을까” 등의 우려가 이어졌다. 이런 틈을 노려 일부 학원들이 학교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등 편법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회 때만 영상 연결로 확인하고 이후 수업은 과제만 내준 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과제를 끝내고 오후에는 학원에 가는 현상도 벌어졌다. 모두 온라인개학의 취지를 흐리는 행태로, 교육당국은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처음 시행하는 온라인개학과 원격수업인 만큼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드러난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책을 마련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루빨리 수업의 질을 높여 수업다운 수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오는 16일엔 중·고 1~2학년과 초등 고학년이, 20일엔 초등 저학년이 순차적으로 온라인개학을 한다. 전학년이 온라인개학을 하게 되면 인터넷 트래픽이 몇 배로 커지고 그만큼 접속 불편도 심해진다. 온라인개학의 성공 여부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현장의 만족도에 달렸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의 의견을 끊임없이 경청하면서 불편 사항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상황에 대비해 서둘러 원격수업을 안착시켜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종암중등학교에서 교사가 온라인 원격수업을 하고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사상 초유의 ‘온라인개학’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9일 고3·중3 학생들을 시작으로 20일 초등 저학년까지 순차적으로 원격수업이 시행된다. 그런데 6일 학교별로 시스템을 점검한 결과 곳곳에서 원격수업 준비 미비가 확인됐다. 처음 있는 일인 만큼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학교 문을 연 후 이 같은 일이 반복되어선 안된다. 기술적인 문제는 물론 새 교육방식으로 인한 교육격차 등 예상되는 문제들을 전반적으로 점검해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6일 원격수업 준비 점검과정에선 적지 않은 문제가 노정됐다. 이날 오전 원격수업 지원 사이트인 ‘EBS 온라인 클래스’의 서버가 먹통이 됐다. 교육부 장관이 주재한 ‘온라인개학 지원 1만 커뮤니티 원격교육 선도교원 임명식’ 현장조차 통신 두절로 수분 동안 화면 멈춤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지원하는 ‘e학습터’는 지난 주말 서버 증설 작업 도중 작업자 실수로 전국 각지의 교사들이 올려둔 하루치 수업자료가 삭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교육당국이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학습공백을 줄이겠다며 EBS 온라인 실시간 특강을 시작한 지난달 23일에도 접속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불통사태가 벌어졌다. 온라인수업을 위해 가장 기본으로 갖춰야 할 안정적인 서버마저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패드, 스마트폰 중 1개도 없는 스마트기기 미보유 학생은 22만3000명이라고 한다. 교육부는 중3·고3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스마트기기 대여를 7일까지 완료하기로 한 만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기기가 없어 수업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차별 논란이 불가피하다. 

온라인개학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균질한 교육이다. 가정환경과 학교 상황, 교사의 준비도에 따라 온라인교육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최근 늘어가는 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맞벌이가정 등의 경우 디지털기기가 있어도 교육환경이 갖춰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장애학생 중에선 온라인개학 안내조차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원격교육이 교육격차를 벌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준비해야 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권고한 대로 교육격차 방지를 위해 EBS 등 원격수업용 프로그램을 수업에 활용하고 평가에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초유의 사태를 맞아 교육당국은 최대한 현장과 접촉하면서 문제점을 적극 보완해 나가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몇 년 전 평등과 공평의 차이를 설명하는 그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돌며 공감을 얻었다. 세 사람이 담 너머로 경기를 보려고 하는데, 키가 담 높이보다 큰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같은 높이의 받침대에 올라서니 두 사람은 경기를 관람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은 여전히 경기를 볼 수 없다. 받침대 없이도 경기를 볼 수 있는 사람 대신 키가 가장 작은 사람에게 받침대 두 개를 받쳐주니 비로소 세 사람 모두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이 그림 하나로 많은 사람이 공평의 의미를 쉽게 받아들였다.

프랑스에서 친구가 위의 그림에 한 컷이 더해진 그림을 보내왔다. 키가 가장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밟고 올라서서 경기를 관람하고, 다른 이는 그가 마실 음료와 간식을 받쳐 들고 있었다. 프랑스 사회를 풍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씁쓸하게도 우리의 학교를 떠올렸다. 노동시간으로 따지자면 과로사 기준인 주당 60시간이 넘는 시간을 학습하며 경쟁하는 탓에, 이긴 사람이 혼자 독식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성적이든 일자리든 너무나 힘들게 얻은 성과라 진 사람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다. 내가 낙오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하기 쉽다.

교육은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교육에 공평보다 공정이라는 잣대를 먼저 들이민다. 부모의 경제적 자산뿐 아니라 사회적 인맥과 문화적 소양이 이미 공정하지 않은데 말이다. 똑같이 가르쳐야 공정하고, 순위를 공정하게 정해 선발하는 것에만 집중하니 교육이 오히려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 개천에서 난 용은 개천을 돌보기는커녕 개천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고, 사교육 도움 없이는 용이 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교육 현실이다. 이런 차이를 메우려면 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경제적 불평등을 다룬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에서 수상했다. 영화는 부자에게 기생해야만 살 수 있는 충(벌레)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불합리하게 여겨 없앴다고 생각한 신분이 다시 부활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불평등 해소라는 사회적 요구를 낳고 있다. 

공평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교육정책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안되었다. 하지만 제시된 해결방안은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71개 교육시민단체가 4·15 총선을 앞두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우선 시행할 교육정책을 온라인 국민투표로 정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 투표로 정한 교육과제를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내밀어 21대 국회에서는 꼭 실행하도록 정책협약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코로나19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지 못한다. 온라인 국민투표를 홍보하기도 어렵다. 4·15 총선 교육공약 선정 온라인 국민투표는 http://edu415.net에서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교육공약 선정 홍보대사가 되어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한 한 걸음을 함께 내딛기를 요청한다.

<변춘희 | 교육단체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고등학교 입학식이 다가오자 새 출발을 앞둔 아이들 표정에 희비가 드러난다. 가고 싶은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그러지 못하는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복이 마음에 안 든다, 건물이 낡았다 등 아이들 입에서 투정 섞인 소리가 새어 나온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모양이다.

요즘은 어느 고등학교에 가느냐가 어느 대학에 갈지 결정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등학교가 대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이 확대되며 학생부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수시모집은 학생, 학부모, 학교가 함께 뛰는 3인4각 경기다. 아이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부모와 학교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아이의 발목을 잡게 된다. 하지만 부모와 학교가 기대 이상의 지원을 해주면 아이는 자기 실력 이상의 결과를 거둔다. 이게 학생부 전형의 묘미이자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기 힘든 부분이다. 어쨌든 대입 수시모집을 준비하려면 부모의 관심뿐 아니라 학교의 역량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맘때면 전학이나 재배정 문의를 많이 받는다. 수시에 강한 학교를 원했는데 정시에 강한 학교에 배정되었거나 내신 관리가 쉬운 학교를 원했는데 정반대의 학교에 배정되었으니 학교를 바꾸고 싶다는 거다. 하지만 이미 배정받은 학교를 바꿀 방법은 마땅치 않다. 건강문제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재배정해주지 않고, 전학도 다른 학군으로 이사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소만 잠시 옮겼다가 돌아오면 안되냐고 묻는 부모도 있는데 불법인 데다 3개월 이내에 돌아오면 처음 배정받은 학교로 다시 배정된다. 3개월 이후 돌아오면 학교를 옮길 수 있지만, 수업 진도나 시험 기간이 달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학교를 옮길 생각을 하면 학교에 정이 붙지 않아 교우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설명하면 자퇴까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설마 자퇴까지 하겠는가 싶었는데, 지난해 고졸 검정고시 응시자 중 10대 청소년 비율이 역대 최고치(67.7%, 4만3816명 중 2만9659명)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 물론 그들 모두가 대학에 잘 가기 위해 자퇴한 학생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서울대 정시 합격자 중 검정고시 출신 비율이 전년도보다 2배 이상 증가(1.4%→3.5%)한 점을 고려하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자퇴한 학생이 적지 않아 보인다.

어쩌다 고등학교가 대학을 가기 위한 곳이 되었나 싶어 마음이 무겁다. 교육을 하다 보면 입시도 해결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교육과 입시가 따로 논다. 아이들 모두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기에 이제는 현실을 생각해야겠다. 학교는 어디에 배정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하나의 기회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린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문을 힘껏 열고 들어가 최선의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최고보다 더 좋은 최선도 있으니까.

<강명규 스터디홀릭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류의 문명은 지식공유를 통해 성장해왔다. 지식은 나눌수록 퍼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사회는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지식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닮았다. 둘 다 격리되는 순간 소멸이 시작된다. 다만 바이러스는 퍼져나갈수록 인류를 위협하지만 지식은 퍼져나갈수록 인류를 풍요롭게 한다.

학교체계는 지식공유를 위해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대학은 그런 지식공유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놓여 있다. OECD 교육통계를 보면 주요 국가들의 25~64세 인구 평균 고등교육 이수율은 이미 50%에 근접하거나 넘어서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고등교육 보편화시대”에 살고 있다.

보편화시대 대학의 사명은 대학이 보유한 고급 지식을 보다 넓게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고민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쟁과 사회선발, 학위와 졸업장 중심의 대학과는 다른 모형이 필요하다. 지식을 개방하고 연결하며 융합하고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전파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이런 지식공유의 필요성은 평생학습과 계속교육의 차원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산업 4.0시대에는 더 이상 학부교육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문과 출신들이 공학을 다시 공부한다든지 구조조정되는 인력들이 다른 영역으로 전환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현재 대학 구조는 이런 변화를 받아내기 어렵다. 또한 대학원은 비싸기도 할뿐더러 대부분 학위를 위해 무늬로만 존재할 뿐이다. 재직자들이 다시 빅데이터교육이나 생명과학교육을 받고 싶지만 대학 문을 다시 두드리기에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그렇다고 유튜브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9년 우리나라 평생학습 참여율은 역대 최고치인 43%를 기록했지만, 그 가운데 형식교육(학력 혹은 학위과정)에 참여하는 비율은 1%에 머물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말은 곧 평생학습에 대학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형식교육 비중이 10%를 넘는 덴마크, 영국, 핀란드 등에 비해 적어도 너무 적다.

우리나라 대학의 계속교육 혹은 재교육 기능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는 대학이 너무 학위과정, 전일제학생, 청년층교육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반 재직자교육, 비학위과정, 시간제등록 등은 정규과정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이제 대학의 ‘학점’과 ‘강좌’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위과정을 넘어 비학위과정에 대한 전향적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학위과정 중심의 대학체계는 지식공유를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제한한다. 사회 계층사다리일지는 모르지만 지식공유에 유리한 방식은 아니다. 예컨대 서울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소수 엘리트 학생들만의 독점물일 수 없다. 국민 누구나 그 지식에 접근하고 학습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이다. 학위와 상관없이 새로운 차원에서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비학위과정 모형을 창조할 수 있다. 

최근 고등교육에서의 일련의 변화들, 예컨대 평생교육체제지원사업(LiFE), 대중온라인개방강좌(MOOCs), 대안대학의 등장 등은 이런 흐름을 반영하지만, 이들은 모두 대학의 정규과정을 전일제 학생들만 접근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고전적 기본전제를 그대로 묵인하는 한계를 가진다. 그 뒤에는 여전히 대학=학위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한다.

정규강좌를 대중에 개방하고 학점을 줄 수 있으며, 외국에는 그런 경우가 많다. 학위과정이 아닐 뿐 강좌를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의미의 지식공유이다. 그 학점의 누적을 통해 단기실용자격과정들을 만들 수 있다. 미국 대학들의 입학처 홈페이지에 가면 학부, 대학원과 더불어 성인계속교육 입학 항목이 있다. 정규학생과 비정규학생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현재 우리 고등교육법은 학점을 곧 학위과정의 전유물로 전제하며, 공개강좌는 학점을 부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일반인 대상의 공개강좌는 정규강좌와 별도로 개설하며, 학점은행제로 따로 묶는다. 시간제 학생의 숫자를 비현실적으로 제한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시장에서 가치있는 지식들은 학위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전유물이 되고, 그 외곽에 있는 사람들은 맛보기 버전만 들을 수 있는 차별이 나타난다. 지식 불평등이 대학과 학위제도를 중심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학과 학점에 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지식공유를 위해 고등교육과 평생학습이 만나는 접점을 재설계할 때가 되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선거법 개정으로 올해 고3 학생 중 만 18세가 되는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와 동등한 정치적 한 표를 가진 학생들이 교실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교사인 나에게도 무언가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적어도 고3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이전과는 다른 의미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학교는 한동안 그 새로운 의미가 무엇인지 탐색하고 만들어가는 경험의 시간을 겪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학생들은 일방적인 가르침의 대상이었다. 그 가르침은 ‘내가 알려줄 테니 너는 그것을 받아들여라’라는 지배적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봉건사회에서는 권력의 혈통을 가진 귀족들만 ‘말’할 수 있었고 그들의 말은 세상을 지배하는 질서가 되었다. 그리고 절대다수의 ‘말’은 들려지지 못했다.

지금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이것은 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공적 영역에서 ‘말’은 언제나 지위와 힘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었고, 학생과 교사들은 ‘듣는 자’로 머물러야 했으며,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때로는 두려움과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들려지지 못한 억압된 목소리는 사적 영역이나 SNS를 타고 비난과 혐오, 거짓과 억측이 되어 우리의 공적인 마음을 분열시키고 아프게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막대한 사회적 비효율성을 지속해서 겪고 있다.

안타깝게도 교사 또한 교실에서는 ‘말하는 자’로서 힘을 행사하게 된다. 교사나 교수들이 특정 이슈에 대해 자기 견해를 말하면 학생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것은 주장에 대한 찬반보다도 말하고 듣는 관계의 공정함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표권은 주어졌으나 벌써부터 학생들의 정치적 발언과 참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염려스러운 것은 기성 사회가 그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서로를 비난하거나 혐오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말이 공정하게 들려질 수만 있다면, 모든 차이는 결국 우리의 이해를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자원이 된다. 

우리의 염려는 학생들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혐오와 억측으로 우리의 공적인 마음이 분열되고 상처받는 것이며, 그 상처가 학교현장에까지 퍼질 것에 대한 염려이다. 이러한 염려 때문에 그들이 생애 처음으로 행사하게 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선거교육이나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으로 제한해서는 안될 것이다.

올해 투표에 참여하게 된 18세 청년 학생들을 환영하며, 기성세대로서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공적인 영역으로 정중히 초대한다면 그들은 우려 대신 우리의 정치 현실에 새로운 역동을 선물할 것이다. 그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할 일은 학교의 수업과 지역사회를 통해 서로의 다름이 공정하게 들려질 수 있는 민주적인 참여와 관계를 배울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교육적 경험을 모색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결론부터 앞세우자. 작년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입시의 정시 비율 확대 정책은 적절하게 수정해야 한다. 정시 확대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국민 여론을 거듭 검토한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따라서 교육부는 그 결정에 담긴 타당한 취지를 더 나은 방법으로 대입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서울대는 기회균형 선발제도의 실질적 확대를 통해 자신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대입제도 논란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의 공정성 시비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식 제도의 이식이라 할 학종이 가진 자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적 의식은 널리 퍼져 있었지만, (선정적 언론보도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여론이 학종을 ‘금수저’ 전형으로서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는 사실에 대해 안이했던 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정시 비율을 확대하면 형식적 공정성은 개선될지 몰라도 고교 서열체제에서 일반고 학생들이 더 불리하다. 교육부는 서열화된 고교체제가 학종에 반영됨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수능전형에서 더 뚜렷이 반영된다는 객관적 자료가 엄연하다. 지난해 11월 교육부의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조차 수능 위주 전형보다 학종에서 국가장학금 수혜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가 공정하다고 말할 근거가 희박해진다. 

정시 확대의 치명적 약점은 미래형의 창의적 인재를 기르기 위한 고교 교육과정 혁신 로드맵이 혼란에 빠져 수습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2025년에 고교 학점제를 실시할 예정이지만, 이는 교사별 평가제, 절대평가제와 함께 운영되어야지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흔들린다. 점수 따기와 줄 세우기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전면적 혁신을 앞두고 편협하게 해석한 ‘공정성’ 탓에 교육개혁이 퇴행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정시 확대에 문재인 대통령의 소신이 작용했음은 최근 모 시사주간지에 실린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인터뷰가 재확인해준다. 또 청와대가 4월 총선 득표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했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국정운영을 위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니 이 결정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권 초기에 수능 절대평가제 전환에 걸린 제동도 코앞의 국민여론 악화를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나는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입시 개혁안은 너무 이상주의적이라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시 확대는 자승자박이다. 교육이 ‘희망 사다리’가 되기 힘든 현실이며, 대입제도 개편으로 사회적 불평등 완화를 꾀하기 어렵다. 실제 서울대 학부생 중에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인 소득 8분위 이하는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이 현실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역설적으로 바로 여기에 서울대의 할 일이 있다.

서울대 교수들은 점수 좋은 학생을 열심히 가르쳐봐야 학문의 길보다는 법학전문대학원이나 (폐지 전의) 의학전문대학원, 고시나 공기업 시험에 몰리는 현실을 이미 겪었다. 그러니 당장의 성적은 떨어져도 잠재력이 큰 학생을 뽑아 학부교육의 활력과 다양성을 강화하면, 특히 기초학문에서 공부의 가시밭길을 택할 후학도 많아지지 않을까. 최소한 현재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며, 다른 대학보다 정부 지원을 훨씬 많이 받으면서도 다수 국민과 동떨어진 귀족학교라는 오명을 피하는 길이다.

가령 기존의 지역균형전형을 강화하여 지난 3년간 서울대 입학생이 없는 고교나 지역을 대상으로 합당한 절차를 통해 몇 명씩 추천받아 자질과 잠재력을 평가하여 선발하면 어떨까? 첫 단계로 50~100명만 뽑아도 학과별 배정이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속한 인문대학의 경우 수시 지역균형과 정시 광역에 각각 약 50명 안팎의 입학정원이 있다. 이 정원의 일부를 교수진의 논의를 거쳐 ‘실질적 기회균형’의 뜻에 맞게 배정해도 좋다. 또 전국에서 유일하게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는 자유전공학부와 어울리는 일이라서 일부 정원을 시범적으로 돌릴 수 있다. 장애물이 적지 않지만, 차차 성과가 입증되어 확대되면 서울대 외의 대학들도 따라오면서 고교교육 정상화를 돕게 된다. 마침내 입학제도가 대학의 자율에 맡겨지는 일도 앞당겨진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왜 제1야당이 객관적 근거도 없이 정시 50% 확대를 당론으로 삼고 보수언론은 정시 확대를 지지하는지 찬찬히 되돌아봐야 한다.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총선 출마 포기라는 큰 결단을 내린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분발도 기대된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 세상에 숨길 수 없는 세 가지는 기침, 사랑, 가난이라는 말이 있다. 그중에 가난은 주거형태로 드러나는가 보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짓는 어느 소셜믹스 아파트에서 두 주택 사이에 장벽을 세우고 비상계단을 막아서 주민 갈등이 심해졌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LH 공사에서 지은 아파트에 살면 ‘엘사’, 휴먼시아 아파트에 살면 ‘휴거’, 빌라에 살면 ‘빌거지’라며 놀린다고 한다. 

물질만능주의, 책임의 개인화 사회에서 돈에 따른 차별은 정당한 것이며 가난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게으름 탓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게으름으로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사람을 주거형태로 구분하고 그룹화하여 인지하는 것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에서 비롯한 집단주의적 사고를 나타낸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우리’의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해 경계 밖의 ‘그들’은 깎아내리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가진 생각과 신념은 고착되고 확대 편향되어 반사회적인 어른이 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혐오는 경멸, 증오, 기피, 불쾌함이 복합된 강한 감정이다. 속으로 생각만 해도 옆에 있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혐오감이 언어로 표출되고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징조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언어유희라고 간과했다가는 혐오 표현이 물리적 행위로 이어져 더 심각한 범죄가 될 수 있다. 

이미 유럽 주요 국가들은 혐오 발언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만약 우리 반에 가난을 혐오하는 학생이 있다면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담임으로서 참담한 마음을 추스르고 두 가지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

첫째, 혐오 표현을 하는 학생을 이해해보려고 애쓴다. 재미로 썼을 뿐 잘못인지 몰랐다고 한다면 인권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다양한 수업과 반편견 교육이 필요하다. 피해가 될 것을 알고도 썼다면 학생의 내면 상태를 점검하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가정불화, 원만하지 못한 교우 관계, 부모의 높은 기대감, 공허함 등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다. 나약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공격적인 언행으로 자존심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반 아이들에게 집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진실한 인간관계가 기반이 되는 참된 삶을 가로막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설명해준다. 진정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lt;어린 왕자&gt; 이야기와 더불어 사람이 중심에 있는 세상이 되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토의해 볼 것이다. 

가난은 인성 문제가 아니며 집은 생활 공간일 뿐이다. ‘어떤 집에 사느냐?’가 공동체에 소중한 가치를 더하는 것과 무관하다는 신념을 나누면서 말이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발명왕 에디슨이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2400번의 기회는 있다”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2400번의 도전 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숱하게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부른다. 

현장에서 상담 일을 하다 보면 회복 탄력성이 낮은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데 한 번만 실수해도 금방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의 회복 탄력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 그런데 약하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약해 보인다.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려면 부모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귀한 자식일수록 천하게 키워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아이들도 강하게 키우려면 비바람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결핍’이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여도 부모가 대신해주다 보니 고난을 견뎌내는 힘이 충분히 키워지지 않았다. 맞벌이 부모 중에는 아이에게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과보호나 과소비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여기까지는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고, 그 이상은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아이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건 별로 절실한 게 아니다. 애초부터 대신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즉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참고 견디는 것이 부모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일이고, 그게 아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일의 시작이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회복 탄력성도 높다. 그렇다고 무조건 칭찬해서는 안된다. 회복 탄력성을 높이려면 ‘잘한다’는 칭찬보다 ‘괜찮아’라는 격려가 더 효과적이다. 실패했어도 다시 도전을 하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칭찬할 때는 사족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잘하기는 했는데 조금 아쉽다. 아까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고 더 잘해보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격려는 간단명료한 게 좋다. 말이 길어지면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아이와 신뢰가 충분히 쌓였다면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거나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자. “넘어진 게 실패가 아니야.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게 실패지. 네가 다시 일어나면 그건 시련일 뿐이야.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봐. 엄마, 아빠도 함께 달려줄게. 포기는 배추 셀 때만 쓰는 말이라는 것 알고 있지?”

아이들의 실패는 경험일 뿐이다. 그러니 아이가 실패라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믿고 기다리자. 그러면 오뚝이처럼 회복 탄력성이 강한 아이로 자라날 거다.

<강명규 스터디홀릭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즘 복고풍을 뜻하는 레트로가 유행이라더니 졸업식도 레트로인가? 얼마 전 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한 눈물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되고 교장선생님에게서 졸업장을 받고나서 담임선생님에게 안기거나 절하며 많은 아이들이 눈물을 지었다. 그걸 지켜보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지는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특히 선생님과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던 아이들이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 거면 그때 말 좀 잘 듣지”라고 옆에서 볼멘소리 하시는 분도 있었지만 그래서 애들이고, 그래서 선생과 부모 자리가 필요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교실 붕괴’니 ‘공교육의 위기’ 같은 이런 말들이 일상화되는 속에서 그동안 눈물 한 방울 없는 짧고 형식적인 졸업식을 봐오다 ‘이런 졸업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단상 아래 한 줄로 서서 내려오는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주기 위해 기다리던 선생님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답을 찾았다. 아이들 명단이 불릴 때마다 한 명 한 명에 대한 추억과 변화, 성장에 대해 주고받는 선생님들의 대화에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엿보았다. ‘아! 정말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했구나!’ 그리고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우리를 위해 늘 애써 주신다”고.

10여 년 전부터 교사의 권위적인 지도와 체벌의 대안으로 학생인권이 강조되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또 교권 침해가 문제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졸업식을 보면서 적어도 학생인권 침해나 교권 침해라는 단어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특별히 우수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역도 아닌 보통의 공립학교지만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상식적인 학교가 가능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묵묵히 노력하신 한 분 한 분 선생님들 덕분일 것이다.

학교에서 배움의 공동체 수업 모델을 도입한 후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거나, 학생자치가 자리 잡아 가면서 학교 규칙 위반으로 학생을 지도하며 얼굴 붉힐 일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 처음 반응은 “그게 가능해요?”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비결이 뭐예요?”라는 질문이다. 그런데 비결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년 이 학교에 와서 학교 분위기의 영향으로 내가 바뀐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가르치는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려 노력한 것이고(대부분의 교사가 아이들 이름을 다 왼다), 두 번째는 수업에 대해 어느 해보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자청해서 수업공개도 했다는 점이다.

졸업식의 눈물은 과거와 비슷하나 다시 눈물 흘릴 수 있기까지 학교는 긴 세월 충분히 혼란스러웠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중심을 세우고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교육부가 1500억여원을 들여 개발한 차세대 지방교육 행·재정 통합시스템 ‘K-에듀파인’이 지난 2일 개통 직후부터 일부 시·도에서 먹통 사태를 빚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과부하 문제로 시스템의 주요 서비스 중 하나를 몇 달간 일시 중단했다. 교원들의 업무 경감을 취지로 마련한 시스템이 되레 학교 현장을 마비시키다시피 하는 형국이다. 업무가 상대적으로 적은 방학임에도 접속 지연과 먹통이 반복되면서 개학 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가운데)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바른미래당 임재훈 의원이 13일 유치원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K-에듀파인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자료집계’ 서비스가 과부하 문제로 지난 8일부터 중단됐다. 경기교육청은 각 학교에 4월30일까지는 통합 이전의 시스템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이용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K-에듀파인’ 시스템의 공지사항으로 “오류가 발생하여 열 수 없는 문서들이 있습니다. 급하신 문서의 경우 발신처에 요청하셔서 FAX나 우편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올리기도 했다. 개통 이후 열흘가량 하루 3만건 정도의 K-에듀파인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고 한다. 중앙콜센터 연결마저 지연되자, 강원도교육청은 오는 17일까지 K-에듀파인 지원센터를 운영키로 했다.

K-에듀파인은 국공립 유치원, 초·중·고교에서 사용 중인 회계관리와 업무관리를 하나로 통합한 시스템이다. 업무를 통합하고, 결재단계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 업무부담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개통 직후부터 오류가 쏟아지자 현장의 원성이 높다. 좋은교사운동은 13일 ‘K-에듀파인 불통 사태’ 비판 성명서를 내고, 혼란의 원인 규명, 개학에 대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앞서 실천교육교사운동도 지난 8일 “교육부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도입을 서둘러 불상사를 낳았다”며 교육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교사들의 불만은 이해가 된다. 어떤 시스템이든 도입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안착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K-에듀파인은 연초 행·재정 통합시스템 개통에 이어 3월엔 사립유치원용, 5·6월엔 결산 관련 업무 시스템 개통으로 마무리된다. 가뜩이나 사립유치원에선 교육당국의 회계시스템에 대한 반발과 불신이 강한 터이다. 이런 판국에 최소한 기능적인 불안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육당국의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20년은 대학의 위기가 전 방위적으로 가속화되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의 양적 팽창이 남긴 후유증은 결국 ‘대학의 종말’이라 할 만한 단계로까지 진행되어 버렸다. 국내 대학들이 국공립, 사립, 수도권, 지방 할 것 없이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 등록금은 동결되었고 인구절벽으로 2021년부터 대학 입학자원 역시 25%가 모자란다는 현실도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한계 대학들은 당장 다음 달 교직원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암담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학의 기초학문인 교양교육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실용 학문에 가려 정체성마저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대학들은 학술성이나 보편성이 없는 교과목들, 일회성 프로그램, 심지어 정부 각 부서가 요구하는 혼전순결교육, 통일교육 등이 교양교육과정을 잠식해 왔다. 학생들 역시 교양과목은 쉽게 학점을 따는 수업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에서 교양이란 용어가 “착하게 살자”는 식의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교육부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던지 뒤늦게나마 처방전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훼손된 교양교육의 재정립 카드로 교양기초교육의 정상화를 꺼내 들었다. 대학의 각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교육당국의 의지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고등교육을 제자리로 돌리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말 발표된 교육당국의 제3주기 대학기본역량 진단 편람은 교양교육과정의 정의를 명료하게 설정하고 특히 기초학문 능력 제고를 위한 교양교육 체계와 운영여부를 진단요소로 채택하였다. 비록 이 내용들이 최종본은 아니지만 편람에 수록된 것만으로도 현장 대학에서는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양교육은 고등교육에서 전공과 양대 축으로 성장해 왔다. 원래부터 대학의 학부교육은 교양교육과 기초학문교육, 즉 교양기초교육으로 구성되었다. 교양기초교육은 대학교육 전반에 요구되는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폭넓은 이해, 즉 전통적인 자유학예(liberal arts)를 바탕으로 올바른 세계관과 건전한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글쓰기와 양적 추론을 비롯한 리터러시 능력 연마를 필수로 하고, 인문·사회·자연·예술에 기반을 둔 기초학문 교과목 배분이수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영역의 교과목들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다. 2016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제정한 ‘대학 교양기초교육의 표준 모델’ 역시 이러한 배경을 가진다.

지금까지 대학에서는 실용과 전공과목 등에 밀려 교양교육은 늘 뒷전으로 밀려난 채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교양교육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뒤늦게나마 교육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건 다행이다.

이런 점에서 교양교육 관련 학회, 기관들의 책임과 역할도 어느 해보다 무거워졌다. 올해부터는 교양교육이 제 모습을 되찾아 고등교육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상아탑 풍경을 그려 본다.

<박일우 | 한국교양교육학회장·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 사립대학 등록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2019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비회원국 9개국 포함, 46개국 대상 조사에서 2018학년도 한국 사립대학의 연평균 등록금(학부 기준)은 8760달러로, 4위였다. 그나마 2016학년도 3위, 이전엔 오랫동안 2위를 지키던 것에 비하면 다소 낮아진 것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등록금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가 2009년 반값등록금 정책을 추진하며 오랫동안 꽁꽁 묶었는데도 여전히 높다. 지난달 실시된 등록금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90%가 넘는 응답자가 등록금이 “매우 부담” 또는 “약간 부담된다”고 했다. 대학생 36%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거나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많은 돈을 들여 대학에 갈 필요성은 있는 걸까. 한국 대학교육의 평판이 객관적으론 그리 높은 것 같지 않다. 세계 100위권에 드는 한국 대학이 드물고, 노벨상 시상 때마다 해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하는 한국 대학교육 경쟁력은 2011년 59개국 중 39위에서 2017년 63개국 중 53위로 떨어졌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것 같지 않은데도 한국 청년들은 일단 대학 졸업장을 따놓는다. 안 갈 경우 낙인찍히고 손해볼까 두려워서다. 2018년 국내 25~34세 청년의 고등교육(전문대 이상) 이수율은 69.6%로, OECD 평균(44.3%)보다 훨씬 높다. 줄곧 OECD 1위다.

7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교육부에 ‘국가장학금Ⅱ 유형’ 참여 조건인 등록금 동결 또는 인하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불가 방침으로 답했다.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솔직해져야 한다. 학벌체제가 굳건해 대학 졸업장의 학교명이 결정된 이상, 학생도 교수도 굳이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정부 또한 고등교육 투자도, 큰 그림도 없이 뒷짐지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식 학력 인플레가 대학원으로 옮겨붙을 조짐도 농후하다. 왜? 가성비가 뚜렷하니까. ‘2018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학사 초임은 227만여원, 석사 초임은 350만여원, 박사 초임은 561만여원이었다. 전체 사회를 위한 가성비는 어떨까.

<송현숙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연말 선거연령 하향 소식을 듣고,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가며 참정권 운동을 해온 청소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삭발을 하고 집회를 하고 성명서를 내며 싸워온 청소년들을 몇 년 동안 인터뷰하며 그 절박함을 가까이서 느꼈던 터다.

한 청소년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좋긴 한데, 걱정이에요.” 기사를 보고 뛸 듯이 기뻐 반 친구들에게 말을 꺼냈더니 “아, 그러냐” 하고 남의 일인 듯 시큰둥하더란다. 21대 총선 얘기에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벌써 끝났냐”고 되물어 당황했다고. 총선이 누굴 뽑는 선거인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건 “수능 준비하기도 바쁜데 또 무슨 필수과목 넣는 거 아냐?” 하는 냉소였단다.

이 얘기가 그리 놀랍지 않았던 건 그간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소수의 청소년 너머에 있는, 다수의 무관심한 청소년들에 대해 익히 들어와서다. 2016년 촛불집회 당시,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을 보고 사람들은 ‘민주시민이 탄생했다’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광장의 중심에 있던 그들을 인터뷰해보니, 교실에는 이 어마어마한 일에도 별 관심 없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사회 이슈를 꺼내면 “공부하기도 바쁜데 언제 뉴스 보냐”고 한단다. 그들은 진작부터 이런 다수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시민임을 자각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현실적인 시민교육을 해야 한다고 피력해왔다. 

진보교육감 3기를 지나며 민주시민교육이 강조되었지만 양적 팽창만큼 질적으로 성장하진 못했다. 여전히 교육현장에선 시민교육을 사회과 영역으로 여기는 데다, 방법을 몰라 헤매는 곳도 많다. 교육과정으로 시민을 기른다는 발상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사실은 모든 교과가 인성교육이며 시민교육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민들레’에 기고한 고등학생은 ‘교문 밖에서 스스로 민주시민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주말과 방과후 시간을 쪼개 다양한 동아리와 단체 활동을 하며 세상에 눈을 떴다고. 학교 안의 학생자치, 시민교육은 생기부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반가운 소식이지만, 선거연령 하향 이후 해결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교실을 정치판으로 만들 셈이냐”라는 보수진영의 비난에 나는 “그렇다”고 답하겠다. 인간은 정치적인 존재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한, 우리 삶에 한순간도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학교는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삶의 변화를 꾀하며, 자신과 이웃의 안녕을 살피는 시민을 기르는 정치판이 되어야 한다.

다수의 청소년들이 정치에서 멀어진 건 그들이 미성숙해서가 아니라 왜곡되고 차단된 정보 속에, 경험이 없어서다. 세뱃돈을 모으고 중고장터에 물건을 내다 팔아 단체 활동비를 마련하는 청소년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물었다. “내 문제니까요. 평생 헬조선에서 살긴 싫거든요.” 53만명에 이르는 만 18세 유권자의 선거교육은 정치를 ‘나의 문제’로 여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