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쓰레기 수입금지 조치로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겪은 지 1년이 지났다. 우린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난해 8월부터는 커피전문점 내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번 4월부터는 전국 대규모 점포와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지와 쇼핑백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제 시작일 뿐, 아직도 일회용품 사용이 크게 줄지 않았고 규제에 대한 불평불만도 없지 않다.

우리가 몰랐던 사이, 우리 사회엔 해결 못하는 쓰레기가 늘어만 가고 있었다. 경북 의성군 단밀면 생송2리, 50여 가구밖에 살지 않는 농촌 마을에 재활용을 명분으로 들여다 놓은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다. 보관량(2157t)의 34배가 넘는 분량(17만3000여t)이다. 폐기물이 썩으면서 나온 악취와 침출수로 주변 환경이 오염되고 마을주민들이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 이 ‘쓰레기산’에 불까지 나자 미국 CNN에서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의 단면”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필리핀에 플라스틱 재활용품으로 수출했던 쓰레기가 지역 환경단체의 문제제기로 반송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폐기물 관련 사업장에 쌓아둔 방치폐기물이 85만t, 야산이나 창고에 버려진 불법폐기물이 30만t가량. 모두 소각한다 해도 매해 100억원씩 들여 30년 정도 걸리는 규모이다.

폐비닐은 용융기에서 검은 색소와 섞여 플라스틱 반죽으로 변하고, 4~5㎜ 크기의 플라스틱 펠릿으로 모양이 잡힌다. 자루에 담긴 펠릿은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돼 하수도관 등의 재료가 된다. 김정근 기자

다행히 많은 시민들이 일회용품, 플라스틱 제품 규제를 지지하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재활용 쓰레기 대란 1주년을 맞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및 해결 방안에 관한 대국민 인식도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95% 이상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열에 아홉은 플라스틱 제품 사용 ‘전면 금지’ 같은 강한 규제를 원했다. 소비자 규제를 넘어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기업 규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출처:경향신문DB)

환경부의 규제 조치에 대한 다수 기사들은 조치의 문제점이나 관련 업체들의 불평불만을 주로 전한다. 그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필요하지만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변화란 있을 수 없다. 기사들 아래 댓글이 오히려 인상적이다. 어느 기사에 달린, 아이디 ‘문제없어’란 누리꾼의 댓글이다. “고통 없이는 절대 성공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안 하면 안되는 사업이라 어떤 식으로든 진행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점·새벽배송업체·대기업의 공산품과 대포장 등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 아닐까요? 생활쓰레기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분류해보니 재활용으로 90% 이상 나옵니다. 음식을 담았던 일회용품은 잘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재활용으로 분류해냅니다. 만드는 대기업, 대책 부족한 정부, 항변하는 영세업자 등등을 탓할뿐더러 개인인 나 스스로도 열심히 방법 찾아 동참합시다. 우리 아이들이 쓰레기장에 살게 할 순 없잖아요.” 아이디 ‘티없이살라하네’도 말한다. “문명의 발달로 너무 편리함에 익숙해져 살다 보니 좀 불편하면 힘들어한다. 폐비닐·폐플라스틱이 육지에서는 산을 이루고 바다에서도 섬을 이루어 더 이상 방치한다면 지구는 죽는다. 만들어 쓰고 버릴 뿐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니. 좀 불편하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배달음식 단가 올려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부담하면 되고. 지금 규제를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대책도 없이 과거에 규제를 하지 않은 일이 더 문제다. 내 집에 쓰레기 더미 안고 산다고 생각하면 규제와 비용 부담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일단 나 자신부터 시작해보자. 할 수 있는 일들, 너무나 많다. 다회용컵(텀블러) 사용하기, 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그릇 가져가서 음식 사오기, 과대포장 않는 제품 사기, 다회용품 사용 배달업체 이용하기 등등. 실내 흡연이 당연시되었지만 이젠 실내 흡연은 물론이고 길거리 흡연조차 문제라 본다. 문화가 바뀐 거다. 일회용품 사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아니라 문제로 보는 문화, 부끄럽게 보는 문화로! ‘내’가 그 변화의 시작이 되자.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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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 다니다 NGO에 들어와 일한 지 17년째 되었다. 어느 해나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요즘엔 옷을 찢고 녹색괴물 헐크가 될 것 같은 때가 종종 있다. 점점 잦아지고 있다.

한 달 전에 환경부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국민의 불안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때였다. 회의 주제는 생활용품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 규제에 관한 것이었다. 환경부 담당자와 산하 연구기관 그리고 외부 연구기관과 생필품 제조사 측에서 참여했다. 장황하게들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이랬다. 환경부는 규제를 만들고 싶지만 EU에서 제시하는 미세플라스틱 관련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겠다는 공복의 자세는커녕 절실함이 1도 안 느껴지는 회의였다. 우리가 언제부터 EU의 기준을 그토록 열심히 따랐다는 것인지…. 내 안의 헐크가 튀어나올 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일 갤럭시S10을 출시하며 포장을 대폭 줄이고 플라스틱을 없앴다. 실제로 규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규제보다 먼저 움직였고, 회사 자체적으로 금지예상물질을 지정해 사용량을 줄여나가고 있다. EU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2006년 7월부터 시행한 전기·전자제품에 대한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을 학습한 결과이다. LG생활건강은 미세플라스틱이 없는 섬유유연제를 출시했다. 화장품과 의약외품에서 미세플라스틱은 2017년부터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세제 등 생활화학용품엔 아직 규제가 없는 상태임에도 먼저 규제 이상을 지켰다. 세제나 유연제에 향기를 좋게 하기 위해 들어 있는 미세플라스틱 캡슐이 물을 오염시키고 사람 몸에 다시 돌아온다는 걸 고려한 조치이다. 규제를 만들어내는 정부보다 먼저 기업이 발 빠르게 변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의 변화와 사람을 읽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사람의 마음을.

지금 유럽에서는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매주 금요일 정부에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그 숫자가 매주 늘어나서 수만명에 이르고 있고 우리나라 학생들도 참여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 환경이 기후변화로 나빠지고 있으니 들고일어난 것이다. 뉴욕주에서는 내년 3월부터 일회용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이 퇴출된다. 유럽의회도 2021년부터 10종류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법안을 가결하였다. 미국에서는 최초로 하와이 내 모든 식당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쇼핑센터, 소매점 등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플라스틱 소비 1위 국가이며 동시에 국민의 90%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직 어떤 규제도 없는 상태이다. 아마도 작년 4월에 이어 쓰레기 대란이 한번 더 일어나면 그때 범플라스틱 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전문가를 모시고 국민대책회의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미세먼지 앞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속에서 헐크로 변하기 전에 미리 그 마음을 얻는 방법은 없을까. <모두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구글 검색이 그토록 귀중한 이유는 데이터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솔직한 생각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이야기를 구글, 네이버, 다음과 같은 거대 검색엔진에는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선거는 물론이거니와 주요 정책을 입안할 때 그리고 기업이 마케팅 전략 하나를 세울 때에도 대중이 진정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검색엔진을 자주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국민이 미세먼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해법을 원하는지 과연 제대로 알고 있을까? 미세먼지 추경예산이 1조원이라던데 이참에 빅데이터 분석으로 먼저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계절상의 이유로 미세먼지가 잠시 잦아들어 우리 관심에서도 일시적으로 사라지기 전에.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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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 비나 바람을 기다린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날려 보낼 정도의 비와 바람을 보기도 쉽지 않다. 지난 20일,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전국적으로 내렸다. 기대했던 것만큼 미세먼지를 씻어내진 못했지만, 봄 가뭄만 생각해도 정말 단비였다. 바짝 마른 땅을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얼마 전 미세먼지 대책으로 잠시 화제가 되었던 ‘인공강우’가 생각났다. 과연 이런 정도의 비가 인공강우로 가능할까? 인공강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 기술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개발된 놀라운 기술의 쓰임새를 본다면 이런 짐작도 무리는 아니다. 예상 못한 어떤 결과가 생길지도 모른다. 비 온 후 며칠간, 꽃샘추위를 몰고 온 바람 덕분에 비교적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미세먼지를 날려 보낼 정도의 바람도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그 기술 또한 재앙이 될 확률이 높다. 

눈부신 발달을 거듭해왔지만, 인간의 기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정 목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우리는 잘 모른다. 전기를 생산하려고 만든 석탄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이 될지 몰랐다. 기술의 부산물들이 서로 만나 다시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우리는 잘 모른다. 기후변화가 대기 정체를 일으키고, 대기 정체는 비와 바람을 약화시켜 미세먼지 문제를 악화시킬지 몰랐다. 인간의 기술은 자연 질서를 쉽게 훼손하지만, 훼손된 질서의 복원에는 무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기술로 인한 부작용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문제가 될 때까지. 아무리 놀라운 기술을 동원한다고 해도, 무모하고 미련한 짓이 분명하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도 국내 배출원의 15% 정도를 차지한다는 석탄발전은 좀처럼 줄어들 기세가 아니다. 노후 발전소 10기는 폐쇄키로 했다지만, 7기가 추가 건설 중이라 2030년까지 석탄발전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발전소의 추가 폐쇄 계획은 없고, 30기 이상의 발전소는 성능 개선으로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무엇이 이렇게 석탄발전소의 폐쇄를 가로막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익은 포기할 수 없다는 집착이나 타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미세먼지의 배출원은 우리 안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핵폐기물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으니 임시저장소를 더 만들자는 발상도 원인은 놓아둔 채 문제만 해결해보자는, 아니, 일단 문제를 피해보자는 태도다. 핵폐기물 문제의 해결책은 배출원인 핵발전소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 배출원인 핵발전소는 건드리지 말라는 ‘탈원전 반대’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이렇듯 집요하게 탈핵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핵폐기물의 진짜 배출원도 우리 안에 있지 않을까? 4대강 문제의 근원은 16개의 보에 있으니, 해결책도 보 해체에서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왕 만들었으니, 어떻게든 활용하자는 주장도 원인은 그대로 두고 문제를 무마해보자는 미봉책이다.

미국 대학의 한 연구팀이 대기에 뿌린 미세입자로 햇빛을 차단해서 기후변화를 막는 연구를 한다고 한다. 이 연구도 원인은 놓아둔 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술이 지구에 미칠 다른 영향은 알 수가 없다. 창의적인지 모르겠지만 무모하고 미련한, 오만하고 섬뜩한 발상임은 분명하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대면하는 것은 분명히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리 환영받지도 못하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피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부터 근원을 ‘발본’하고 ‘색원’하지 않는 한, 진정한 문제 해결도 변화도 없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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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가 열렸다. 3인 가족이면 1억원 넘게 벌었다는 얘기다. 선진국 진입의 징표라는 이 기준을, 인구 2000만명을 넘는 국가 중에서는 아홉 번째로 달성했다.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 아닌가? 그런데도 정부는 이 호재가 남의 나라 일인 양 조용하기만 하고, 오히려 국민은 정부의 경제무능을 하염없이 탓하여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다. 이 기회를 틈탄 수구세력은 국가위기라 선동하며 극복을 위해 기업의 효율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 김용균씨, 고 황유미씨는 그들의 기억에 없다. 최저임금을 낮춰야만 하고 사람의 생명을 돈 몇 푼으로 바라보는 저열한 기업의 노동환경개선 속도를 늦춰야 한단다.

미세먼지와 폭염의 고통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감내해야만 한단다. 기업이 지금보다 돈을 더 잘 벌어야 국민이 잘산단다. 그래서 규제를 타파해야 한단다. 급기야 정부는 타당성도 없는 토건사업에 수십조원을 쏟아붓는단다. 기업만 배불린 ‘4대강사업’은 ‘고향의 강’ ‘생태하천’사업으로 둔갑하여 더 빠른 속도로 하천을 유린하고 모든 산에 케이블카를, 모든 지자체에 공항을 건설할 기세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진다. 개인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다반사이고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할 말들로 설명하려 하지만 정작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경제는 더욱 그렇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한국은 자원이 없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한다. 그럼 수출이 잘되면 국민이 잘살아야 하는 것이 기본 이치이다. 작년 한국의 수출은 역사상 최초로 6000억달러를 돌파했고 경상수지 흑자는 80개월 넘게 연속되고 있다. 2008년까지 많아야 200억달러 수준이었던 연간 흑자규모는 2009년을 시작으로 가파르게 상승하여 2013년부터는 매년 700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상상하기 어려운 돈을 벌어들이는 동안에도 저축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무를 늘려 2013년 500조원이 채 안되던 빚이 작년에는 700조원을 돌파했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 무역 흑자는 5000억달러를 넘었고 빚은 200조원이 넘게 증가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고, 정부가 돈을 뿌렸는데도 정작 대다수 국민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피폐해지고 빚만 늘어갔다. 대기업의 재산은 주체할 수 없이 늘었는데 일자리는 줄고 실업자가 늘어난다. 파이가 커지는데 국민에 돌아오는 양은 더 작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주류라고 하는 사람들은 기업을, 자본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하고 자본의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전하게 일할 환경을 만들면,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게 하면 기업이 힘들고, 돈이 정체되고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위기가 온다는 논리는 말이 안된다. 좀 솔직해지면 안될까? 규제 완화 정책은 극소수의 기득권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이다. 오죽하면 무노동의 건물주가 최고 선망의 직업이 되었겠는가?

낙수효과는 없다. 이제 경제성장이 우리를 잘살게 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기업의, 자본의 효율성 강화라는 명목으로 시행된 각종 규제 완화로 서민은 더욱 어려워졌음을 인식해야만 할 때이다. 지금 주장하는 효율성 강화는 쉬운 해고와 낮은 임금체계로 노동을 착취하거나 환경파괴행위를 용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강화된 효용은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지만 정작 국민의 삶과 국토는 유린된다. 미국의 리먼사태 이후 경제부양에 쏟아부은 돈의 90%는 정작 위기를 초래한 1%의 부자에게 돌아갔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다. 경제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예비타당성조사도 없이 퍼붓는 토건비용은 부자들의 배만 불릴 뿐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언어모순에서 벗어나, 촛불정부의 초심으로 돌아간 ‘나눔주도성장’이 절실해 보인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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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뜬금없어 보이긴 하지만 문제 하나 낼까 한다. 다음 중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① 건물 내 금연 ② 커피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금지 ③ 종량제 봉투로 쓰레기 버리기 ④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 차량 강제 2부제. 아마도 적지 않은 독자들은 ④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① ② ③ 모두 관련 제도 시행 초기에는 반발이 없지 않았다.

며칠 전, 몇 년 전에 나온 한국영화를 보다가 음식점에서 흡연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영화 제작연도를 찾아보니 2013년이었다. 건물 내 흡연 금지가 2015년부터 실시되었으니 그때로서는 자연스러웠으련만. 건물 내 금연제 도입으로 영업이 어려워질 거란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지난주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렀는데 일회용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작년 플라스틱 폐기물 대란 이후 일정 규모 이상 매장에서는 머그잔 사용이 필수가 되었기에 일회용컵 사용이 오히려 낯설고 불편했다. 제도 시행 초기 기사를 찾아보라. 머그잔 사용이 세척공간이나 인력고용문제로 영업에 지장을 줄 거라거나 세척이 잘 안되어 위생문제가 발생할 거란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지금 별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방독면을 착용한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석탄발전 OFF 미세먼지 BYE'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더 멀리 가보자. 처음 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되었을 때 사회적 반발이 적지 않았다. 돈 주고 산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버려야 하는 게 부담스러워 환경부를 비난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너무 당연한 일로, 재활용품 분리배출도 기본 상식이 되었다. 전국 동시 쓰레기 종량제 시행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 그래서 세계적인 모범사례가 되었다.

이런 거다. 한때 당연하게 생각한 일도 상황이 바뀌면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된다. 우리 시민은 이런 실천으로 문화를 바꿔낸 이력이 있다. 시민을 믿고 정부는 좀 더 강력한 대책을 세우면 어떨까? 미세먼지는 이제 사회재난으로 비상 상황에 걸맞은 비상조치가 필요하다. 배출가스 5등급차량 운행제한은 이미 당연한 일이 되었다.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비상시 차량 2부제를 넘어 대중교통이 닿는다면 아예 자가용 출퇴근 금지도 고려해볼 일이다. 민간차량 2부제도 비상시엔 채택할 만하다. 도시 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이자 1급 발암물질 배출원인 경유(승용)차 감축과 퇴출을 위해 경유의 상대가격 조정에 나서야 한다. 흡연권만이 아니라 혐연권이 존중되듯 경유차 배기가스를 마시지 않을 권리도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시민도 미세먼지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민 개개인이 미세먼지 피해자일 뿐 아니라 배출원이기도 하다. 전력의 40%가 석탄화력인 상황에서 전력 소비를 줄이면서, 봄철 석탄발전소 전면 일시정지에 따른 일정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스크 구입이나 공기 청정기 구입·운영 비용보다 더 적은 비용 부담으로 사회 전체 공기를 맑게 할 수 있다. 경유차 운전자라면 지난 정부의 클린디젤정책을 탓할 수도 있지만 비상상황에선 협조가 필요하다.

이틀 전 국회에서 미세먼지 대책 관련법 8개가 본회의를 통과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들이 친환경차를 일정비율 이상 생산·판매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친환경차 의무제 도입 조항이 대기환경보전법에서 빠진 건 유감스러운 대목이다. 국내 자동차업계 현실을 고려한 조치라는데 참으로 근시안적이다. 세계는 경유차를 넘어 내연기관차 퇴출로 가고 있기에, 친환경차 생산시장에 확실하게 진입하지 못하면 자동차산업에 위기가 올 수 있다. 더 기본적으로는 소비자에게만이 아니라 생산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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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요한복음 1장 1절). 사회변화를 이끈 시작에도 항상 언어가 있었다. 30여년 전에 ‘환경’을 말할 땐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은 상식이 되었다. 최근 인구에 회자된 말씀이 있었으니 바로 ‘성인지 감수성’이다. 전도유망했던 정치인의 재판에서 1심을 뒤집고 법정 구속시킨 근거가 될 만큼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인지 감수성은 확장성이 있는 개념이라 ‘환경인지 감수성’으로 응용해 보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 수준이 높아졌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일본에서 생산된 것은 먹지도 사지도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으로 일회용 안 쓰기 운동이 SNS상에서 심심찮게 펼쳐진다.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의 환경의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재난을 겪지 않고서 할 수도 있었던 일인데 어째서 대책은 항상 사후약방문이어야만 할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오늘 새벽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후반 추가시간 4분 극적인 페널티골을 만들어내며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연패로 부진했던 맨유를 구한 이는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대행이다. 어떻게 감독 한 명 바뀐 걸로 마법 같은 드라마가 연출될 수 있을까. 우리도 히딩크 감독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축구만 그런 게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두머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미세먼지 지옥에 갇혀 지낸 동안 정부가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가 세월호 갑판쯤 앉아 있는 것이 아닐까 앞이 캄캄했다. 이게 과장인가? 아니다. 당장 사람이 안 죽어서 그런지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도 없다. 암과 뇌졸중 같은 중증질환을 일으키고 생존과 직결되는 공기의 대재앙이 전 국토에 엄습했는데, 국민의 불안과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야 가까스로 대책을 ‘지시’하였다. 어린이들에게는 긴급하게 공기청정기를 지급하라고도 하셨고…. 청와대 앞에서 노구를 이끌고 1인 시위를 하는 환경운동가의 갈라진 목소리 사이사이로 깊은 탄식이 배어나왔다. 환경인지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환경은 모든 생명의 기초이며 지구상 모든 생물의 생존에 가장 크고 즉각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고 느끼며 실천하는 능력이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안전, 쾌적한 환경을 지켜야 할 위정자의 환경인지 감수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지도자를 뽑는 사람은 누구인가. &lt;아픔이 길이 되려면&gt; 권두에 저자 김승섭은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고 썼다. 선출직 지도자에게는 유권자의 욕망이 새겨진다. 그러니 이 환경재난 가운데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국민의 불안을 당리당략의 계산 속으로 넣는 세력도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여전히 초미세먼지는 나쁨을 가리키고 있지만 어제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이 정도만 돼도 보통 하늘이 이렇게 감사한 것인 줄 몰랐다는 감격의 언어들이 SNS에서 돌고 있다. 사람들의 이 평범한 일상을 지켜줄 이는 누구인가. 벌써부터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다음 대선 후보자의 지지율이 하루 걸러 발표되고 있다. 이제 4월 지나면 미세먼지는 관심에서 사라질 것이나 연이어 무시무시한 폭염이 기다리고 있다.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선거’인지 감수성만 높은 정치인은 이제 스스로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정치인이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성질 급한 우리 국민들이 언제 국회를 로봇으로 채울지 모른다. 굿럭!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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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허가는 위법이지만, 취소는 안된다.’ 지난 2월14일 서울행정법원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취소청구소송에서 내린 판결 요지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의 ‘중대사고’ 고시 누락 등 위법 사항이 있지만, ‘공공복리’를 고려했을 때 건설허가 취소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건설허가 취소로 예상되는 1조원의 손실 등이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위법 내용이 안전에 관련된 것이라면, 오히려 건설허가 취소가 공공복리에 맞지 않을까.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핵발전소 반경 30㎞ 내에 사는 380만 주민의 안전보다 중요한 공공복리는 없다.

지난 2월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안을 의결했다. 지진 안정성과 다수호기 안정성 평가를 하지 않았고, 가압기 안전방출밸브에서 누설이 발견되는 등 몇 가지 중대한 쟁점 사안이 있지만, 추후 보완을 조건으로 승인한 것이다. 뭐가 급했는지, 설연휴 하루 전날에 9명 정원의 원안위 위원 중 4명만 참석해 결정했으니, 위법은 아니라도 졸속은 분명하다. 탈핵을 선언한 정부에서도 원전을 싸고 도는 원안위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수백만명이 살고 있는 부산과 울산은 운영허가를 받은 신고리 4호기와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로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 되었다. 핵발전소의 절대 안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절대’는 없다. 기술적으로 실증되었다는 핵발전소의 안전은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이론과 실제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 차이가 재앙이 될 수 있음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이미 ‘실증’되었다. 이론으로 주장하는 안전과 현실로 입증된 사고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중시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핵발전소의 안전 불감증 이면에 자본의 논리가 있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온 ‘비정규직’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어 온 것은 그것이 자본의 논리를 관철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산재 사망사고가 대부분 하청노동자들에게 일어나도 비정규직이 건재한 것도 그것이 수익의 극대화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의 기술적 안정성과 경제성 주장 저 밑에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자본의 꿈틀거림이 있다. 이익을 위해 사람과 생명을 무시하는 자본의 냉혹함은 경제성과 안전성으로 포장된다. 높은 이익이 보장되는 한, 자본은 결코 핵발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핵발전소에서도 자본의 논리와 생명의 논리가 충돌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오복음 6, 24).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다. 탈핵은 단지 발전 방식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한 자본의 폭주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다.

중대 핵사고만이 아니라 사용후핵연료도 핵발전의 실체를 폭로해준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이 방출되는 고준위핵폐기물로 핵발전소 내의 임시저장소에 보관해왔다. 임시저장소는 고준위핵폐기물에 요구되는 안전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위험한 공간이다. 더구나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이런 공간마저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이 난감한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려면 핵폐기물은 답이 없고, 핵폐기물을 배출하는 핵발전도 답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겸손’이 절실히 필요하다.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를 앞둔 3월6일, ‘핵폐기물 답이 없다’ 시민선언이 예정되어 있다. 이날은 가톨릭교회가 회개와 정화를 위한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기도 하다. 이날 신자들은 이마에 재를 받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창세기 3, 19). 흙(humus)에서 온 사람(human)이 세상에서 취할 근본 태도가 겸손(humility)임을 마음에 새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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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노벨상을 꼭 타겠노라며 과학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상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현실은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기에도 힘들다는 것을 알아가지만, 그래도 과학자들이 얘기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첨단기술은 마치 당장이라도 우리에게 대단한 선물을 안겨줄 것이라 기대하며 전폭적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물만 넣으면 움직이는 자동차도 우리를 현혹하는 흔한 미래과학 중 하나였고 그것이 지금 수소전기차라는 이름으로 다가와 환경문제와 에너지문제를 해결할 과학혁명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로 둔갑되어 막대한 세금을 허비하기 시작했다. 과학으로 포장한 허상에 사회가 이렇게 조용한 것이 참으로 놀라운 미스터리다. 친환경으로 포장한 4대강이 그랬듯 이미 돌이 굴러갔으니 아마 끝장을 볼 때까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눈먼 세금으로 하는 일이니 이 일을 진행하는 관료가 나중에 문책을 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정부는 이 거대한 돌을 굴리기 전에 과연 어디까지 고민한 것일까? 수소과학이라는 허상이 가지는 친환경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수소에너지의 친환경은 물(H2O)에서 산소를 떼어내 얻은 수소를 다시 산소와 결합시키면서 전기를 생산할 때 현실이 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수소가 결합될 때 전기가 생성된다면 분리시킬 때는 전기를 소비해야 하지 않을까? 당연하다. 그런데 전기로 고생해서 물을 분해하고(수전해) 분해한 수소로 다시 전기를 만들어 자동차를 움직인다? 지금까지의 굳건한 과학이론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깨고, 분리를 위한 전기보다 결합할 때 만들어지는 전기의 양이 더 많아지는 새로운 법칙이 생긴 걸까? 만약 그렇다면 수소전기차는 한 번 물을 넣어주면 다시는 연료주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전기로 물을 분해하여 수소를 만들고, 역으로 수소가 산소와 결합하면서 만든 전기로 차도 움직이고, 남는 전기로 다시 물을 분해하는 과정을 무한반복할 수 있기에 그렇다.

당연히 말이 안된다. 그래서 수소생산 방식은 친환경적인 수전해가 아니라 화석연료의 주성분인 메탄(CH4)에서 탄소를 분리시켜 얻는다. 방법도 쉽고 수전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메탄 생산과정에서 발생한다. 땅속에서 가스를 추출할 때 이산화탄소보다 80배나 강력한 온난화물질인 메탄이 대기로 확산되는 것이다. 이런 반환경적 방법을 쓰는데도 아직까지 매우 비싸다. 동일하게 세금을 낸다면 먼 미래에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도 수소의 단가는 휘발유보다 싸지기 어려우며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하면서도 다른 친환경에너지보다 저렴하지도 않은 데다, 비싸고 복잡한 기계장치를 추가해야만 하는 것이 수소차의 본질이다. 여기에 정부가 제조기업에 차량 한 대당 최대 4000만원을 세금으로 안겨준다. 이 돈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현재의 기술로 만든 전기차 구매와 이 차가 평생 사용할 전기를 생산할 햇빛발전소를 지을 거금이다. 폭염시대에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동반하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값비싼 자동차를 지원하는 것이 옳을까, 같은 돈으로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고 이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지원하는 것이 옳을까? 수소자동차에 지원할 세금을 헬조선에 지친 청년들이 쇠퇴한 지역사회로 돌아가 마을을 활성화할 진취적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무료로 전기차를 지원해주는 정책은 어떨까?

탈원전과 탈화석, 친환경을 앞세운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역사는 되풀이된다. 공론화 없는 수소사회로의 급진적 방향전환은 마치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을 보는 듯하다. 당시 전문가들이 했던 말 중에 ‘보를 설치하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이 허탈한 궤변이 현재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수소는 궁극의 친환경에너지’와 무엇이 다를까?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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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시아의 에너지전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워크숍에 참가하느라 도쿄에 다녀왔다. 거리의 차들을 보니 경차가 많고 경유차는 눈에 띄지 않았다. 요즘 미세먼지 탓에 다른 나라에 가면 대기질에 민감해진다. 도쿄의 공기는 서울보다 한결 좋았다. 과거에는 나빴다가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확연히 개선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5년부터 PM10 기준 25㎍/㎥ 이하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만찬자리에서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하나같이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의 “노(No) 디젤카” 정책을 지목했다. 한·일관계나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경유차 그을음을 페트병에 넣어 다니면서 유해성을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중앙정부보다 앞서 신차에만 적용되던 배출가스 규제기준 미충족 경유차를 아예 운행하지 못하게 하면서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비용을 지원하고 대중교통 시설을 확충했다.

당시에도 경유가격이 휘발유가격보다 낮았지만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차가 제작·시판되는 시기와 맞물려 연료비 절감을 위해 굳이 경유차를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의 휘발유가격 대 경유가격은 100 대 84로 100 대 86인 우리보다 약간 더 낮다. 게다가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경유 승용차를 만들지 않아 국산차를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들이 외제차인 경유차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강력한 정책과 기술 발전, 시민 인식과 소비자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지금의 우린 어떨까? 한국에서도 경유차는 도시 미세먼지의 주요 원천이다. 2015년 기준 수도권 미세먼지 발생원의 22%는 경유차로 비중이 가장 높다. 게다가 경유차 미세먼지는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이동하는 생활공간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높고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의 경우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 우려가 심각한데도 2018년 12월 말 현재 국내 경유차 등록대수는 993만대로 전체 차량 2320만대 가운데 42.8%였다. 역대 최고치다. 1년 만에 무려 35만대가 늘었다. 경유차 중 화물차 비중은 33.8%인 데 비해 승용차가 58.1%에 달한다. 연료로서 경유 제조단가가 높음에도 휘발유보다 상대가격을 낮춘 건 경유차가 대부분인 화물차 물류비를 낮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승용차, 특히 SUV 차량 비중이 더 높아져 버렸다. 화물차의 경우, 경유 이외 대안이 별로 없다. 소형 화물차는 LPG 차량이 시판되고 있고 전기차도 일부 있지만 중대형 화물차를 대체하기 위해선 기술발전을 얼마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승용차는 굳이 경유차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휘발유차가 있고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선택할 수 있다. 대중교통이란 대안도 있다. 2018년 이런 친환경차는 46만대, 총차량의 2.0%로 전년 대비 12만대가 늘었을 뿐이다.

15일부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약칭 미세먼지법)”이 시행에 들어간다. 같은 법 10조에 따라 미세먼지특별위원회가 이날 자로 출범한다. 정부가 미세먼지 배출량 통계의 신뢰를 높이면서 다양한 정책을 집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동시에 시민인식도 함께 가야 한다. 경유차를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다. 내가 모는 경유차가 시민 건강을 해친다면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엇보다 경유의 상대가격을 조정해야겠지만 그 이전에도 취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있다.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과 도보를, 자가용을 몰아야 할 상황이라면 작은 친환경차를 선택할 수 있다. 미세먼지 해결은 시민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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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 청년의 죽음으로 비정규직 제도가 첨예한 사회적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답인지 알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몰리는 산재 사망사고의 근본 대책으로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만, 검토하겠다는 말만 들려온다. 누구나 돈보다 사람이,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반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며칠 전, 정부는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재정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는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정부는 예타 면제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는 4대강사업을 의식한 듯, “지역 전략산업 육성 관련 사업”이 다수 포함되었고,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주도 방식의 사업이라며 과거와 다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차이가 어떻게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으려는 예타의 면제 사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사업 내용을 보면 도로와 철도 건설에 20조원 정도가 투입되는 전형적인 토건 사업이다. 정말 이 프로젝트로 국토균형발전이 이루어지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까? 단기간의 경기부양에 그치고 남는 건 결국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만을 남겼던 과거가 되풀이되는 건 아닐까?

위의 두 가지 사례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본의 논리가 압도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현실이 ‘철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철벽으로 보면, 현실은 ‘원래 그런 것’이다. 현실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는 것, 그저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식한 현실에 희망을 위한 자리가 있을 리 없다. 현실의 부당함도 원래 그런 것이려니 여기고 체념할 뿐이다. 기존의 부당한 현실과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는 의지는 꺾여버리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은 잘려나간다. 하지만 만연해 있다고 해도,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인식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현재는 과거와 다르다. 그 차이는 나와 우리의 노력과 헌신이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다.

철벽과 대조적인 현실 인식도 가능하다. 현실을 ‘약속’으로 보는 것이다. 약속으로 보면, 현실은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는 미완의 가능성이다. 현실에 내재하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 인식은 아무리 강고한 현실도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의 못자리가 된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은 완전하지도 않고 부족한 점도 많다. 그렇다고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대에서 희망을 길러낸다.

현실이 약속보다 철벽으로 보일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현실을 변화의 가능성이 내재된 약속으로 보기 위해선 과거의 기억이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는 현실의 어떤 부분들이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비현실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당장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다양한 굴곡을 그리며 진행되어 서로의 인과관계를 알아차리기 힘들 뿐이다. 심지어 우리는 실패와 패배와 좌절을 통해서 성공하고 승리하고 전진해왔다. 오늘의 변화된 현실이 바로 그 증거다. 여기에 현실을 약속으로 볼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의 강고함에 굴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철벽같은 현실 앞에서 다짐해본다. 첫째,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기. 둘째, 현실에 압도되지 않기. 셋째, 현실을 바꾸기 위한 최선의 길을 식별하기. 넷째, 식별한 길을 전력을 다해 걸어가기. 그러고는 진인사 대천명! 희망의 설, 보내시길 빕니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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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와 폭염으로 못살겠다는 원성이 한계에 달한 지금 친환경을 명목으로 ‘수소사회’로의 전환이 갑자기 급부상했고 정부가 ‘통 크게’ 화답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환경오염을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얻어왔던 에너지회사와 자동차회사를 국민들 돈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왜 수소인가는 잠시 접어두고, 수소사회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과정을 보자. 수소가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라 주장하는 핵심은 국내 독점적 지위의 자동차회사인데, 친환경 이미지는 별로다. 전 세계 주류 친환경자동차인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2%에 불과한 반면 이 회사 디젤차들의 실주행 대기오염물질 발생량은 메이저 회사 중 최고 수준이다. 폭스바겐의 클린디젤 사기가 드러난 것이 2014년이니 이 회사 또한 이미 오래전에 디젤차의 오염물질 배출 문제를 알았겠지만, 국민에게 등 떠밀린 정부가 뒤늦게 ‘클린디젤’ 정책을 폐기할 때까지도 디젤자동차 판매에 열을 올렸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젤의 오염문제에 침묵한 채 돈을 벌어왔던 기업이 정부의 클린디젤 정책 폐기와 동시에 청정에너지로의 획기적 전환을 외치는 상황이 공감이 가지 않는다. 설마겠지만 타이밍은 참 절묘하다.

다시 돌아가서, 왜 수소일까? 답은 간단하다. 2차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에너지만큼 독점적인 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독점을 무너뜨릴 에너지가 확산되고 있다. 바로 태양과 바람 등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다. 독점에서 벗어나 소규모 분산시스템의 구축이 가능한데, 심지어 집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 독립적이며 민주적인 에너지다. 반대로 중앙집중식에 더해 복잡하고 어려운 통제기술을 요하는 수소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따르고, 선점하면 소수 기업이 독점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런데 독점을 위한 초기 위험을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한다? 이것은 집과 직장, 길거리 어디에나 있는 장벽 없는 전기가 아니라 불안에 떨며 충전소를 찾아야 하는 에너지자본에의 ‘노예화’를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주는 꼴이다. 전기차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가 스스로 전 세계에 촘촘히 충전소를 건설하는 것과 완벽하게 대비된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수소’는 전혀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수소 자체는 청정하겠지만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은 미래가 없다. 지금의 미세먼지와 폭염은 과도한 화석에너지 사용이 원인임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수소는 이 화석에너지에서 나온다. 화석에너지 생산은 최근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의 포집(프레킹)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80배나 강한 온난화물질인 메탄이 대기 중으로 대량 확산된다. 이미 수소를 만들기 전 원료생산과정에서 훨씬 많은 오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화석에너지로 수소를 만들고(메탄가스 개질) 또다시 각종 고가의 장치를 통해 자동차를 움직이는 구조가 과연 깨끗할까? 정부의 수소충전소 구축전략에 따르면 대기오염 개선에 효과가 있을 부생수소기반 충전소는 전국에 단 3곳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거의 모두 이런 방식으로 수소를 공급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탈원전과 탈화석에너지가 기반인데 수소는 화석에너지정책의 유지에 불과하다. 여기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독점적 화석에너지자본에의 종속을 연장시켜줄 또 다른 게이트를 만들 뿐이다.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폭염재난의 기폭제가 될 수소사회 대신 친환경 전기충전소를 전국에 확산해야만 한다. 그리고 저렴하게 공급하면 보조금 없이도 국민이 스스로 전기차를 선택하는 셀프혁신을 보일 것이다.

자본이 밀실에서 만들어내는 정부포획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만을 만들 뿐이다. 친환경 전환 시점에서 국민의 건강이 아닌,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책으로의 전환은 미래라는 말을 지구에서 제거하는 지름길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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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각에서 탈원전 반대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 와중에 집권 여당의 한 중진 의원마저 가세해 정부가 백지화하기로 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검토를 주장했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를 이유로 석탄화력 대신 원자력을 늘리는 게 더 낫고 원전 수출을 위해 원자력산업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원전지지자들이 얼마나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있는지, 다음 질문들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1) 원자력 발전, 정말 안전한가? 2) 현재의 탈원전, 너무 급한가? 3) 원전 수출이 경제적으로 득이 될까? 4) 탈원전은 공학 포기에 일자리 줄이는 일일까? 5) 원전은 효율개선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과 공존할 수 있을까? 6) 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해결에 도움이 될까?

원전사고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기술은 결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원천적 위험기술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선진 산업국가, 그것도 안전관리국으로 정평 난 일본에서 일어났기에. “원자력 안전은 신화다.” 후쿠시마 사고의 값비싼 교훈이다. 우리 국토는 일본보다 더 좁고 원전 주변지역 인구는 더 많으며 원자로가 훨씬 더 조밀하게, 그것도 한 부지에 더 많이 입지해 있다. 신한울 3·4호기까지 지으면 무려 10기(11.5GW)가 한 지역에 입지한다. 세계 최고 원자로 수에 최대 규모다. 무엇보다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부지와 관리방안도 없이 원전 건설을 늘리는 건 참으로 무책임하다. 지금도 심각한데, 계속 지으면 그 부담은 체증할 것이다. 원전산업을 위해 우리 안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의 탈원전 속도, 외국과 비교하면 사실 너무 더디다. 현재 원전 24기(22.5GW)에서 2022년엔 28기(28.9GW)로 도리어 늘어난다. 2031년엔 18기(20.4GW)로 줄어드나 여전히 현재 시설용량의 90.7%에 달한다. 신고리 5·6호기가 완성되면 자그마치 2083년에 가서야 원전 제로가 가능하다. 만약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된다면? 이 시점조차 뒤로 밀린다.

원전 수출로 돈을 번다? 1기 수출로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 중형차 25만대 수출효과란다. 그렇다면 최근 일본의 미쓰비시가 터키와 베트남에서, 히타치와 도시바가 영국에서 왜 원전 사업을 포기하거나 접었을까? 히타치의 예상 손실액이 무려 3조원에 달하는데도.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 안전 규제 강화로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게다가 원전 수출은 대부분 건설 후 운영을 통해 투입 자본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그 사이 사고라도 난다면? 무엇보다 세계 원전시장 축소로 수출할 곳이 없다.

원전 축소가 공학 포기란 건 이해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 분야나 에너지 효율 개선 분야 기술 혁신이야말로 공학적 접근을 필요로 하고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 미국 핵에너지연구소에 따르면 동일 자본 투입으로 재생가능에너지 분야 일자리 창출은 원자력의 2배 이상이다. 이제 업종 전환과 함께 건설 위주에서 벗어나 원전 안전 강화와 해체, 방사선, 사용후 핵연료 처분 등 신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

원자력발전은 에너지전환의 징검다리가 아니라 걸림돌이다. 정지와 운전 재개가 어려운 원전은 지속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생산해내고 중앙집중적 에너지 시스템을 고착화한다. 에너지 수요관리 여지가 적고 수요의 시간별 계절별 편차를 반영한 탄력운영이 어렵다. 그래서 낭비적인 에너지 소비 행태가 지속되기 십상이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는 시간을 다투는 긴박한 문제다. 건설 공기가 긴 원전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효율개선과 절약으로 소비를 저감하면서 공기가 빠른 재생가능에너지 확대가 보다 합리적인 해결방안이다. 그야말로 에너지전환이 긴급히 필요한 이유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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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란다. 몸만 크는 게 아니라 뇌의 기능도 성장한다. 피아제 인지발달론에 따르면 엄마가 눈앞에 없어도 사라진 게 아니란 걸 알려면 24개월쯤 지나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고유한 상상과 추론 능력은 13세 전후에 발달되는데 이때쯤 되면 체험 없이도 결과를 추론하거나 현재 사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연역적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 성숙해진다는 건 아마도 현실 저 아래 거대한 뿌리를 볼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지난 4일 삼성전자가 미세먼지연구소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일 듯한데 반가운 일이다. 초대 연구소장을 맡은 삼성종합기술원 황성우 부원장은 “이번 미세먼지연구소 설립으로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사회적 역량을 결집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회적 역량을 결집’한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역량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조직심리학자 매클랜드 교수는 역량이란 기량, 지식, 태도로 구성되는 잠재적이고 종합적인 능력이라고 했다. 기량과 지식은 측정과 훈련이 가능하지만 태도는 개인의 기질이나 동기처럼 내면화된 것이라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큰 사고를 겪거나 죽음을 앞두지 않고는 변화하기 어렵다. 미세먼지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역량이란 무엇일까.

OECD처럼 경제개발을 위한 조직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기후변화, 초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을 꼽고 있다. 작년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위험요소도 미세먼지였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는 아예 대놓고 환경, 필(必)환경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미세먼지에 관한 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식 그리고 미세먼지 없는 쾌적한 환경에 대한 수요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세먼지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들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정확한 정보인지 판단해줄 신뢰할 만한 기관은 아직 없는 형편이다. 환경부도 신임 장관이 해결을 위해 몰입하고 있으나 국가가 보증할 만큼 적확한 원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원인별 제거방안이 나올 수 없고, 설령 나온다 해도 입법절차 등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당연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한 상황별 미세먼지 대응방안도 공식적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감정은 불안불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대응책은 누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부? 지자체? 기업? 환경단체? 그도 아니면 각자도생?

지난 MB 정부 때부터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붕괴됐다.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여파로 기업들은 정부나 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에 더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삼성 미세먼지연구소가 기술적인 해법을 넘어 미세먼지 대응을 위해 사회적 역량을 모으는 데 일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포부가 삼성스럽지 않아 신선하다. 그럴듯한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대기업들이 선의로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많이 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기업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있다. 정부도 기업과 같은 거리로 시민사회와 연대해주기 바란다. 좀 더 많은 이해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들도 생겨났으면 좋겠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환경보호론자들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인 대기업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세계를 짓누르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동감한다. 미세먼지를 포함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와 기업은 물론 고양이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 최근 개편한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유념해주기 바란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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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밤 서울, 보신각 주변은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간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아쉬움과 설렘으로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순간과 순간의 시간에 마음을 쏟는다. 번잡하던 거리는 차분해지고, 주위 사람들도 정겹게 느껴진다.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새로움은 이내 빛이 바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일상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 지배한다. 공간은 무언가를 ‘하는’ 곳이다.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어 자신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곳이다.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끌어내고, 더 많은 생산과 소유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공간은 소리 없는 싸움터가 되었다. 시간은 공간을 위해 필요할 뿐, 그 자체의 의미는 사라졌다. 시간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것으로 소비된다. 언제나 ‘더’를 외치는 우리에게 시간은 늘 모자란다. 이동과 소통수단이 발달할수록 더 모자란다. 아무리 시간을 아껴도 우리는 늘 바쁘다. 아니, 아낄수록 바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공간보다 더 근원적인 삶의 토대다. 공간은 시간이 허락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잘 모른다. 공간과 달리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낯선 시간을 피해 익숙한 공간으로 달아나, 일에 몰입한다. 하지만 시간을 외면하는 한 온전한 평화는 없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앗아갈 마지막 순간을 영영 외면할 순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아도 시간의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공간에서 만든 것은 모두 소멸하지만 시간은 영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안식’은 공간에 가려진 시간의 의미를 밝혀준다(아브라함 헤셸, <안식>). 성서는 하느님이 창조를 모두 마치고 이렛날에 ‘안식’했다고 말한다. 히브리어로 안식은 ‘멈춤’에서 나왔다. 안식은 하느님이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바라보는 멈춤의 시간이다. 안식은 우리에게 공간에서 하던 일을 멈추라고 말한다. 안식으로 들어서면, 우리의 관심은 소유에서 존재로 향한다. 공간 속에는 ‘자기 것’이 있지만, 시간 속에는 ‘자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며 앞만 보며 달려온 자신의 삶을 마주본다.

삶을 관조하는 안식은 경쟁과 효율을 위해 생명과 안전을 내팽개친 세상의 실체를 보여준다. 오늘날 세상이 말하는 풍요는 약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착취의 결과다. 태안화력발전소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으로 불거진 ‘죽음의 외주화’ 논란에도 이윤의 극대화에 최적화된 비정규직 제도는 요지부동인 것을 보라. 지역경제 운운하며 아직도 호시탐탐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노리고, 불과 며칠간의 올림픽 스키경기를 위해 가리왕산의 자연원시림을 밀어버리고는 복원 약속을 번복하는 강원도의 행태를 보라. 안식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착취와 죽음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통로가 된다. 비윤리적이고 반생태적인 현실을 일깨워주는 안식은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이며 세상 만물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안식은 탐욕의 해독제이며 생태적 회심의 길잡이다. 안식이 축복이자 거룩한 시간인 까닭이다.

새해를 맞아 한 해의 평화를 간절히 바라지만, 우리가 지금처럼 생산과 소유와 소비에 집착하는 한 유한한 자원과 무한한 욕구의 세상에서 갈등과 분쟁은 불가피하다. 간디의 말대로,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는 충족시킬 수 있어도 모든 사람의 탐욕은 충족시킬 수 없다. 아니, 단 한 사람의 탐욕도 충족시킬 수 없다. 탐욕이 아닌 필요의 충족에 만족하려면 안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쁠수록, 더욱 필요하다. 안식을 통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서도 시간 저편, 영원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더 우리 자신이 되고 세상은 진정 더 풍요롭고 평화롭게 될 것이다. 잊지 말자.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의 기쁨>).

<조현철 |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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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세금을 아이들을 위해 쓰라는 당연한 요구에도 소수 기득권을 위해 묵살하는 사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업환경 요구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사회, 부자가 세금을 조금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의 소득을 높이면 국민이 못살게 된다고 반대하는 사회, 회계를 조작한 회사를 엄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조작을 옹호하는 사회, 부동산 불로소득에 부여하는 세금을 높이는 게 폭탄이라고 하는 사회, 미세먼지와 화학물질 공포의 개선을 위해 규제를 강화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반대하는 사회,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탈세의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 중에는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가 없다는 사회, ‘착한’이란 말로 포장해서 최저임금조차 쥐여주지 않으려는 노동착취를 미화하는 사회, 그래서 피해자만 억울한 사회. 2018년에도 변함없이 우리 사회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사람이 안전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세금이 본래 목적으로 쓰이면 망하는 나라인가? 부정한 회사를 엄벌하면 망하는 나라인가?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높이면 망하는 나라인가? 집값이 수억원 올랐다가 몇천만원 떨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미세먼지가 줄어 좀 더 깨끗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범법자가 아니고서는 인재가 없는 나라인가? 가난한 사람이 소득이 늘어나면 망하는 나라인가? 대기업의 부정부패와 재벌의 갑질이 사라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서울 집중이 분산되면 망하는 나라인가? 남녀노소가 평등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이 수많은 질문에 동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다 평등한,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길 바라는 국민이 대다수임에도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파렴치한 손들의 방해로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엔이 추구하는 환경적으로 건전한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닌 ‘부와 권력의 세습만이 지속가능한’ 계급이 고착화된 사회로 변모해 있다.

2018년은 우리에게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큰 과제를 안겨준 해이다.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으면서도 소수 기득권 집단이 보여준 응집된 저항의 힘에 절대다수의 정당한 요구가 잠식당하는 무기력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환경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의 공포를 온 국민이 체험한 해이다. 많이들 잊었겠지만, 이번 여름 더위와 관련한 각종 기록이 경신되면서 온열질환으로만 48명이 숨졌고, 현재진행형인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러면서도 당장 청년의 목숨값으로 연명하는 저질 화석에너지를 포기하지 못하며,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디젤의 가격을 오염자 부담원칙에 입각하여 정상화하지도 못한다.

전문가의 압도적 무용론에도 4대강 사업을 추진한 토건세력의 집요함과는 달리 온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유치원 비리근절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모습은 보다 정의로운,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정부가 돈과 언론의 권력을 앞세운 수구 금권세력에 밀리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잠시 숨죽이던 이들은 조금씩 틈을 비집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 총력을 다하는 상황이 채 임기 절반도 안된 촛불정부에 드리워졌다.

그 어떤 정책이라도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득실이 있기 마련이라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는 없다. 이번 정권에서 대다수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모든 부정부패와 사회문제를 없애고 모두가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는 마법이 아니다. 그간 기득권이 누린 비정상적 혜택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약자들을 위한 민주국가 본연의 정책이 구조적으로 싹을 틔우는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의 작은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미봉책의 표면적 지원이 아닌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결실을 볼 수 있을까? 경기침체를 빌미로 한 거대 SOC사업의 부활은 더 큰 불안의 징표로 보인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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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이제 10일 정도 남았다. 올 1년간 우리 사회의 주목할 만한 환경사건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이틀 전 환경운동연합이 선정한 10대 환경 이슈는 월성1호기 폐쇄, 신규 원전 4기 백지화, 4대강 보 13개 개방, 침대·생리대 등 생활용품 라돈 검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카페 매장 내 일회용컵 규제·단속, 미세먼지 저감·관리 특별법 통과와 노후 석탄발전소 봄철 가동 중단, 주택가 비닐·스티로폼 쓰레기 수거 대란, 환경부로 물관리 업무 일원화, IPCC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채택, 새만금에 세계 최대 태양광·풍력발전단지 조성 계획 발표 등이다. 여러분은 어떤 사건을 꼽겠는가?

나는 우리나라 관측 사상 최고였던 ‘폭염’을 넣고 싶다. 기후변화가 계속되고 있기에 이번 폭염은 서막에 불과할 뿐 이 기록은 갱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는 저기 멀리 있는 북극곰이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 또 미래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우리 문제다. 이미 기후변화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 국민은 상당히 많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실시한 2017년 국민환경의식 조사에 따르면, ‘환경’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26.7%)에 이어 기후변화(25.1%)가 두 번째였다. 불과 세 해 전인 2014년에 9.9%였던 데 비해 크게 늘었다. 하지만 가장 우려하는 환경문제로 기후변화를 지목한 이들은 8.2%로, 자연자원의 고갈(20.1%), 대기오염(17.1%), 쓰레기 증가(14.0%), 수질오염(12.8%), 자연재해(9.31%)보다 적다. 여전히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자연재난이란 직접적인 영향을 넘어 지금 세계 경제를 바꾸고 있다.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에너지 전환의 가장 강력한 동인도 기후변화다. 향후 일정 연도부터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만 쓰겠다고 선언해 RE100이라 불리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현재까지 158개나 된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월마트, 이케아, BMW, GM, 스타벅스 등 알 만한 기업이 대다수다. 애플 등 이미 목표를 달성한 기업들도 여럿이다. 이들은 협력업체들에도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으로 부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2017년 2.8%만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이었기에, 이대로 가다간 수출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경고음이 울릴 수 있다.

자동차산업에도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차량 배기가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에 나서면서 미세먼지를 야기하는 경유차를 넘어 아예 내연기관차 퇴출이 가시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자동차의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확정했다. 이미 2015년부터 주행거리 1㎞당 130g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2021년에는 2015년 대비 15%, 2030년에는 37.5%를 감축해서 81.25g/㎞까지 줄이도록 했다. 이제 경유차만이 아니라 휘발유차도 설 자리가 없다. 결국 내연기관차 시대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 독일은 2030년, 영국과 프랑스는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전기차 의무판매제를 도입했고 뉴욕 등 9개 주가 도입을 준비 중이며 중국도 2020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스웨덴의 볼보는 내년, 일본의 도요타는 2025년, 디젤 게이트를 야기한 독일의 폭스바겐은 2026년부터 생산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제 바야흐로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정책은 에너지정책을 넘어 경제정책과 만나야 한다. 2018년은 바로 이런 시대적 패러다임이 빠르게 재편된 해였다. 2019년의 시계는 아마도 더 빠르게 움직이지 않을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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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에게 탈원전, 에너지전환은 재앙이다. 그들 자신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재앙이다. 탈원전은 한국 경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재앙, 태양광은 중금속 범벅의 처치 곤란 폐기물 더미만 남기는 재앙, 풍력발전은 산과 들과 어장을 망치는 재앙일 뿐이다. 이들에게 재앙이 미치는 범위는 대단히 좁다. 남한이라는 공간, 현재라는 시간, 돈이라는 물적 가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지구와 미래라는 시공간, 행복한 삶이라는 가치는 일고의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한다. 전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걸린 기후변화는 저 멀리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핵폐기물을 떠안을 후손들의 행복은 더더욱 관심 밖이다. 자기 이익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필요한 자료와 수치를 부풀려 에너지전환을 공격하는 것만이 이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기득권 수호에만 매달리는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과 달리 인류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원자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지금 인류에게 닥치고 있는 가장 큰 재앙은 기후변화이다. 이들이 보기에 기후변화는 지금 지구와 인류사회를 종종 비상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고, 미래세대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탈원전, 에너지전환에 대해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과는 정반대로 지구라는 공간, 미래라는 시간, 행복한 삶의 추구라는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제임스 핸슨이다. 그는 1988년 미국 의회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해 최초로 경고했고, 수많은 기후변화 관련 연구논문을 발표한 과학자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는 미국 나사에서 보낸 50년 가까운 과학자 생애의 대부분을 기후변화와 맞서는 데 바쳐왔다. 몇해 전에는 백악관 앞에서 오일샌드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재생가능에너지의 효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악의적으로 부작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으로는 기후변화를 막기에 역부족이라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탄소세를 점진적으로 올리고 안전이 확보된 원자력발전소를 크게 늘리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손녀딸과 함께 미국 연방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로 침해되는 손녀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항공우주국 고다드우주연구소 제임스 핸슨 소장이 기후 변화에 관한 이론을 나타내는 주사위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원자력 확대라는 핸슨의 주장에 대해 급진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제기되지만, 그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일은 없다. 원자력계의 로비와 그의 원자력 옹호 활동이 연관돼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은 주목받고 진지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 중에서는 기후변화의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독일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해 원자력주의자들에게서 크게 환영받은 국회의원도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점에 대해선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책에는 오직 에너지전환과 재생에너지 정책이 독일에서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고, ‘대한민국 블랙아웃’이라는 재앙을 예비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만 있다.

지금 폴란드 카토비체에서는 세계 기후변화회의가 열리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해마다 열리지만 결과는 초라하기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 언론과 정치권의 무관심은 놀랄 만하다. 원자력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전환 진영에서도 한마디 들을 수 없다. 이미 평균기온 1.5도 상승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원자력이 살길인지 에너지전환이 올바른 길인지 조금이라도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원자력주의자들이 오직 남한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부자 되는 삶이라는 구시대적 시야에 갇혀 있다면 그들의 주장은 지지를 넓히지 못하고 원자력 수호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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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즈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컸다. 기회가 돼 우리나라의 심각한 자연환경 훼손 문제 개선을 위해 그간 쌓인 적폐 중 꼭 청산해야 할 한 가지를 주문한 바 있다. 개발자가 작성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작성토록 바꾸자는 것이었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데 아직까지 우리 법에는 개발할 사람이 예정지의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평가토록 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조성하려 산과 들을 매입했는데, 그곳이 보전을 통한 공익적 가치가 개발가치를 훨씬 능가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보전되어야만 하는 곳이라면 개발당사자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국익을 위해, 나보다는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 그런 일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며 초등학생에게나 감동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외부정보에 눈을 뜨고 사회적 기준에 의한 가치판단이 시작될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정의’보다는 부정한 행위가 훨씬 거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과 법을 집행할 판사들조차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극히 일부에 의해 벌어지는 일탈로 전체를 깎아내리면 안된다며, 자극적인 언론의 문제를 탓하기에는 국민이 느끼는 불신의 골은 이미 너무 깊다. 국민은 이런 적폐를 청산하자고 하는데 청산의 시동도 제대로 걸지 않은 지금, 기득권층은 드러나지도 않은 사회문제 해결에 딴지를 걸며 피로사회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새 정부에 대한 많은 기대 속에 내심 환경영향평가법의 빠른 개정을 바라왔다. 늘 후순위인 환경문제는 역시나 이번 정부에서도 후순위였으며, 그나마 일부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은 알맹이를 쏙 뺀개정안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자연환경관리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자연보전 가치의 인식증진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이 문제를 정부는 왜 해결하지 않는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부도 개발업체와 마찬가지로 보전보다는 개발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리라. 4대강의 졸속 환경영향평가, 사드기지, 최근 문제가 불거진 흑산도 공항이 그렇다. 수많은 정부 주도 개발사업은 토건세력과 정부의 암묵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빠른 진행에만 관심을 가지며 공익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이번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두어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공무원이 다수가 될 위원회에서 정부의 개발사업을 거짓으로 평가할 리는 만무하다. 정부위원이 과반수인 각종 위원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입맛대로 진행되는 과정을 이미 보아오지 않았던가?

일례로 지난 오색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조사자료는, 조사자가 산을 순간 이동하지 않는 이상 시간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조사결과가 자료로 제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관계자들은 절대 영향평가서가 ‘거짓’은 아니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조사원본 제출요구를 사업자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를 감시해야 할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설마 조사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했겠느냐면서 사업자인 지자체와 조사업체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지자체의 일도 이러한데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은 어떨지 뻔하다.

제3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다면 가장 많은 제동이 걸릴 사업들은 눈앞의 표를 위한 공약에서 시작되는 정부의 대규모 토건사업들이 아닐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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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의 비상근 이사장으로서, 뒤셀도르프를 거쳐 베를린에 머물며 독일의 주요 에너지·기후변화 관련 싱크탱크를 만나고 에너지전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움직임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앞서 나갈 수 있는 걸까?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켜 광범위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한 후 당시 17기 원자로 가운데 노후원자로 9기를 즉각 정지시키고 남은 8기를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여가기로 했다. 작년에 이미 1기가 문을 닫아 이제 7기만 남았다. 그 사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점차 늘어나 지난해 전력 생산의 33.3%가 되었다. 원자력은 11.7%에 불과했다. 원자력발전에서 최고 25만명을 고용했는데 이미 재생가능에너지 일자리가 36만개로 원자력을 넘어섰다.

에너지전환이란 목표가 분명하니 흔들림이 없다. 더 이상 에너지전환이 옳으니 그르니, 목표가 현실적이니 그렇지 않으니, 그런 이야기가 설 자리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일 뿐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보다 다양하고 현명한 정책수단을 만들고 이행하며 혁신에 혁신을 더하고 있다. 건물 지붕과 벽면에, 도로와 유휴부지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고 경작지 한가운데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 떠돌고 있는 가짜뉴스들이 생각나 쓴웃음이 났다. 실리콘 기반 태양광 패널에는 있지도 않은 크롬과 카드뮴 타령에, 전혀 문제가 안되는 빛 반사나 온도 상승, 전자파 등을 거론하는 이들은 이런 모습에 무어라 말할까? 에너지전환이란 화두조차 이념의 대상이 되고 정치화되어버린 우리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따름이다.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지금처럼 성장하고 더욱 탄력을 받으며 추진되는 건 무엇보다 든든한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시민들은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기꺼이 수용했다. 저렴한 전력 대신 재생가능에너지 지원을 위해 더 높은 요금을 부담하는 녹색요금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소득 수준이 높지만 추운 날에도 난방온도를 높이지 않고 실내에서 두꺼운 스웨터 껴입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여름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대부분의 시민은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보냈다. 호텔이나 어디에도 하루 온종일 변좌를 데워두는 비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먼 미래보다는 현재를 더 선호하는 시간선호가 있다고 하는데 독일인들과 대화해보면 이들은 곧잘 말한다, 미래세대를 배려해야 한다고. 경제학의 시간선호를 거스르는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당장의 금전적 이익보다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을 돌아보며 우리와 독일이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지형이나 지리적 조건이 다르고 경제규모와 인구밀도가 다르며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걸어온 에너지전환의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는 제조업 비중이 비슷하고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은 유사성이 있기에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차이를 극복하며 에너지전환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시민이자 소비자인 일반대중의 인식과 선택,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에너지전환에는 진보와 보수가,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시민 스스로 에너지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로 나서자. 그런 참여에 이익을 주면서 에너지전환을 지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인에게 우리의 표를 행사하자. 에너지전환의 길에 함께하는 기업의 상품을 선택하도록 하자. 우리의 정치투표와 경제투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독일시민이 우리에게 그런 변화가 가능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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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부 보덴호 근방에 솔라콤플렉스라는 기업이 있다. 다가오는 세번째 천년기를 앞두고 그 지역 30·40대 청년들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찾던 중 설립한 사업체이다. 일주일에 걸친 세미나 끝에 그들은 에너지전환이 새 천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2030년까지 인구 26만명이 사는 이 지역의 에너지전환을 완수하겠다는 결의로 기업을 시작했다. 20명이 5억원으로 시작한 솔라콤플렉스는 그동안 크게 성장하여 18년째가 된 지금 출자자 1200명, 자산 13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이 되었다. 학교 옥상에 작은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던 초기 사업은 이제 마을 전체의 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하는 큰 규모로 발전했다. 현재 솔라콤플렉스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에너지는 전기와 열을 합해서 약 6000만㎾h에 달한다. 전기로 환산하면 약 2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솔라콤플렉스는 태양광발전소를 지붕이나 벽에만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도 짓는다. 설치 용량을 따지면 땅 위에 있는 것이 지붕 위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이 땅은 밭이나 숲이 아니다. 집을 짓거나 식물을 키울 용도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쓰레기 매립지, 철거된 공장부지 등이다. 지금도 계속 비어 있는 땅을 찾고 있는데, 작물을 재배하는 밭에는 가능한 한 설치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들은 바이오에너지도 상당히 큰 규모로 활용하는데, 이것도 가축분뇨와 목재 찌꺼기가 대부분이다. 에너지작물을 재배하는 등의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이라는 에너지전환의 목표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에너지전환을 수치상으로만 100% 완수하려면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할 것 같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새만금 간척지를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단지로 활용한다는 ‘새만금 3020 비전’을 발표했다.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데,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비중 20%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런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계획에 대해 지역과 야당에서는 크게 반발하지만, ‘새만금 비전’의 졸속적 변경이라는 반발 이유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일각에서 제기되는 햇빛과 바람이라는 공공재를 대자본에 넘겨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더 귀담아들을 만하다. 물론 정부에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하여 펀드 조성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지만, 이는 전체 사업의 극히 일부에 그칠 것이고, 새만금의 호수와 간척지에 들어설 수십조원의 태양광발전소 건설은 대부분 대자본의 참여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햇빛과 바람이라는 공공재는 대자본이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솔라콤플렉스는 독일에서 가장 큰 보덴호 물 위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은 꿈도 꾸지 않는다. 지붕과 활용하기 어려운 땅에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에너지전환을 통한 지속가능 사회의 실현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부기관이나 거대자본은 광활한 호수나 간척지에 원자력발전소 서너개와 맞먹는 태양광발전소를 한번에 건설하는 것이 수만개의 작은 발전소 건설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3020을 달성해야 하는 정부에서도 단번에 수치가 크게 올라가는 이런 사업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에너지전환이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재 독점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질 것이고, 에너지전환 반대세력은 이에 편승해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악의적인 ‘왜곡정보’를 더 활발하게 퍼뜨릴 것이며, 이는 에너지전환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은 장기 프로젝트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려는 조급증은 오히려 일을 망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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