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에 대한 처방만 있고 원인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 대책을 보고 난 느낌이다. 정부의 구상은 코로나19 재난으로 생긴 경제 침체를 ‘한국판 뉴딜’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침체는 재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재난의 결과에 대한 적기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재난의 근원을 놓고 사회 전반을 반성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아쉽게도 정부의 구상에서 자연의 지속적 파괴와 값싼 노동력에 기반하는 ‘경제발전’ 패러다임에 대한 진솔한 고민은 찾기 어렵다. 사업만 무성하고 성찰이 없다.

사회 일각의 비판 때문인지, 막판에 ‘그린 뉴딜’을 추가한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과 ‘그린’으로 정리되었다. 급히 불려온 그린 뉴딜이 과연 한국판 뉴딜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답은 뉴딜을 위한 그린인지, 그린을 위한 뉴딜인지에 달렸다. 다음의 질문으로 그린 뉴딜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다. 정부는 그린의 관점에서 지금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사업을 철회하거나 전면 재검토할 것인가? 삼척에서 건설 중인 2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일방적·짬짜미 공론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린 뉴딜을 다짐하는 정부가 그린을 부정하는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법이다.

그린 뉴딜에 관여하는 관료와 전문가들의 내면은 그린인가? 그린으로 가려고 애쓰고 있는가? 녹색이 내면에 스며들면 자족, 절제, 검약, 단순과 같은 태도가 자라난다. 삶에서 소유보다 존재, 경쟁과 지배보다 협력과 공존, 효율과 이윤보다 안전과 생명, 성장과 독점보다 분배와 공유가 훨씬 중요함을 깨친다. 우리 안에 그린이 없으면, 그린 뉴딜에도 그린은 없다. 그린 뉴딜은 그린이 아니라 ‘그리드’(탐욕)에 끌려다니게 된다.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법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 안 된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하고 불평등한지, 현재의 경제가 얼마나 자멸적인지 낱낱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한국판 뉴딜은 여전히 코로나 이전의 성장 패러다임에 매여 있다. 한국판 뉴딜의 일부로 편입된 그린 뉴딜이 이 강고한 패러다임을 극복하긴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속하려는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코로나19 재난으로 우리는 기후위기가 경고해온 성장의 한계와 그 운명을 조금은 앞당겨 실감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자. 코로나19 감염으로 세상이 강제로 멈추었을 때 우리는 당혹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변화의 가능성도 보았다. 사라졌던 소중한 것들이 돌아오는 기쁨을 맛보며 ‘또 다른 세상’이 아직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다. 우리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하며 옥죄어온 성장 ‘이데올로기’다. 한번 자문해보자.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세상’에서 편안했나? 만족했나? 행복했나?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 바로 전환의 때다. 성장은 결국 절대다수의 삶과 자연을 먹이로 삼아 소수의 탐욕에 이바지한 주문이었음을 깨닫고 과감히 전환의 길을 선택할 때, 코로나19는 우리를 주술에서 풀어주는 ‘아픈’ 축복이 될 것이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 대표 hyunchulsj@gmail.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1일 반팔을 입은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걷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폭염재난이란 것도 매년 반복되어 상투적이 되었지만, 그 세어지는 강도에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더 두렵게 만드는 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사태가 폭염재난과 중첩되는 앞으로의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피서를 위한 이동도, 피서지 개방도, 에너지빈곤층을 위한 공공시설 운영도 어려워 보인다. 재난이 늘 그렇듯 코로나 팬데믹 또한 약자를 힘들게 만들었고, 이중의 재난이 닥칠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사회적 약자의 위험수위 또한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구 어디든 사람이 살 수 있게 된 지금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남용으로 맞은 기후위기로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이 생겨나고 있다. 온도가 너무 높아 체온 조절을 위한 땀조차 배출하지 못하는 곳이 늘어간다는 뉴스는 기후재난시대의 걱정을 공포로 바꾸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매년 그래온 것처럼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더욱 뜨거운 여름이 될 것’이라는 예측 같지 않은 예측도 빈도를 높이고 있다.

지구 전체에 드리운 이 거대한 기후재난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먼 북극의 얘기로나 치부된다. 우리나라 온도가 지구 평균의 두 배, 해수면은 지구 평균보다 2.5배나 더 가파르게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불편한 진실임에도 언제나 그랬듯 딴 나라 얘기로 치부된다. 한 줌 빙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굶주린 북극곰 사진과 함께 기후위기를 경고하는 클리셰적 외침은 위기를 타개할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인간의 자업자득이라는 석학들의 주장 역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함은 동일하다. 반면 에너지 전환 주장이 마치 경제를 망칠 악마의 외침인 양 주장하는 기득권의 선동은 공고하다. 이 지루한 상황에서 폭염재난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 우리나라에선 정말 먼 미래 같았던 기본소득제도 논의의 불꽃이 제대로 지펴졌고, 빠르게 전 국민 재난지원금 교부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소득이 끊긴 긴급한 상황을 맞은 많은 국민에게 한 차례의 응급처치는 말 그대로 순간의 해결일 뿐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최악 상황을 대비해야만 하는 이유다.

이번에 급물살을 탄 기본소득제도는 IT시대와 오버랩될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 최대 화두로 떠오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 전에 당장 설상가상으로 다가올 폭염이라는 재난을 피해갈 방안을 준비해야만 한다. 그 방안 중 하나로 기본소득에 앞서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전 국민 기본공제를 빠르게 고민할 시간이다. 모든 가구에 폭염을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전기와 물 등 공공재를 기본으로 제공하는 공제구간을 두는 방안이다. 절약한다면 비용 없이 전기와 물을 쓸 수 있도록 말이다. 필수사용량 기본공제로 발생하는 손실분은 에너지 과소비구간의 누진세 강화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물과 전기의 필수사용공제는 에너지빈곤층을 위한 최소한의 정부지원임과 동시에 기후재난시대를 타개할 에너지 절약의 실천 및 인식전환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재난지원금 교부가 비록 비선별 지원방식을 취했음에도, 나눠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해 걷지 않는 것은 행정력 최소화와 효과 극대화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hwan9430@gmail.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월요병’이 도지는 일요일 자정,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누구보다 빨리, 이미 내일의 출근을 해버린 사람들의 소리가 조용한 골목길을 덮는다. 대형 트럭의 하차 소리, 짐을 옮기는 소리, 합을 맞추기 위해 기합을 넣는 소리 말이다. 청소노동자가 야밤에 우리의 쓰레기를 치운다. 다음날 출근할 때에는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가 말끔히 치워져 있다. 당신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작년 말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카판노리에 다녀왔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다른 어디에도 소각장은 안 된다는 마음으로 20년 전 ‘쓰레기 제로 마을’로 전환한 곳이다. 우유를 자기 용기에 리필하는 우유 ATM, 1년 동안 배출한 쓰레기양을 기록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쓰레기 제로 가족’ 프로그램, 천 기저귀에 붙는 지자체 보조금, 한 장에 만원이나 하는 종량제 봉투…. 유럽 최초의 쓰레기 제로 마을인 카판노리시는 재활용률 90% 이상을 달성하며 소각장을 짓지 않고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한 선례를 보여준다.

그런데 어떤 정책이 가장 인상적이냐는 질문에 의외의 장면이 떠올랐다. ‘밀라노 패션’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유유히 돌아다니던 청소 트럭과 아담한 쓰레기 봉투였다. 청소차는 햇빛에 반짝였고 쓰레기봉투는 적당해 보였다. 이탈리아엔 70ℓ가 넘는 쓰레기봉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서울 마포구엔 종종 터질 듯한 100ℓ짜리 쓰레기봉투가 놓여 있다. 자기 몸통보다 큰 봉투를 들어 올리느라 청소노동자의 몸엔 요추염좌, 추간판탈출증 등이 찾아든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마포구 청소노동자 혼자 하루에 3t이 넘는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이는 5분에 쌀 한 가마니(80㎏)를 들어 올리는 양이다. 게다가 야간노동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요인이다. 국내 청소노동자의 야간노동 비율은 62%다. 깜깜한 밤 청소차 뒤편에서 청소노동자가 떨어지고 깔리고 뭉개진다. 공공 노동 가운데 가장 위험한 업종이 바로 청소업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닥치는 어업이나 임업보다 오히려 청소업에서 다치는 노동자 비율이 더 높다. 

작년에 환경부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지침’을 통해 변화를 도모했지만, 청소업무는 지자체 소관이라 속도가 더디다. 지난 5월1일 노동절에 뜻 맞는 사람들끼리 자기가 사는 곳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다. 청소일 낮에 하면 안 돼요? 광주는 100ℓ 종량제 봉투를 금지했는데 우리는요? 그 결과 서울 서대문구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남겼고 경기 성남시는 주간에 시범운영 중인 청소차 사진을 보내왔다. 생애 첫 민원에 답을 받아 감개무량하다는 반응, 민원은 못 넣었지만 쓰레기봉투에 감사 문구를 써서 내놓은 사연, 관리인께 고구마를 구워드린 이야기가 넘실댔다.

다정한 사람들의 힘으로 다정한 제도를 만들면 좋겠다. 계산대 노동자를 위한 의자 캠페인 청소노동자를 위한 샤워실 설치 국민청원, 쓰레기봉투 크기를 제한하자는 주민의 목소리. 힘없는 사람들의 쫀쫀한 연대가 퍽퍽한 현실을 바꿔낼 수 있다. 존 버거의 말처럼 천국에는 연대가 필요 없어요, 연대는 지옥에서나 필요할 뿐. 100ℓ 봉투를 금지한 지자체는 광주 광산구와 동구, 부산 해운대구, 경기 성남·용인·고양·부천시다. 당신은 어디 살고 계신가요?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큰 병치레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럴 때, ‘병’은 타성에 젖은 삶을 깨우는 죽비다. 코로나19 이후 개인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쩍 늘어난 까닭이다. 이번에 우리는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항공기, 기차, 자동차의 움직임이 줄고 공장이 멈추자, 자연이 돌아왔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잿빛 하늘은 가고 파란 하늘이 돌아왔다. 인도 북부 펀자브주에는 히말라야 경관이 돌아왔다. 우리가 성장을 위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아니 무슨 짓을 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이 변화도 다시 사라질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성장을 한다고 자연생태계를 계속 파괴하면, 바이러스 감염과 재난은 더 자주 더 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런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적 전환이 절박하다.

사회적 전환을 위해 정부와 여당이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첫째, 재난의 최전선이다. 그리 가서, 들으라. 재난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거기에 답을 가져다주지 말고, 거기에서 답을 구하라. 답은 현장에 있다. 이번에 바이러스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취약 고리를 직면해야 한다. 특히 우리 노동인구의 절반이 되는 각종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들어야 한다. 재난에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들이 자기 체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선의가 아니라 ‘제도’가 필요하다.

둘째, 재난의 뿌리다. 그리 가서, 보라. 지금까지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이름으로 자본이 어디서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해왔다. 세계화는 최소의 비용으로 인간과 자연에서 노동력과 자원을 최대한 뽑아내는 데 최적화된 ‘긴밀한 연계’를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사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의 눈으로 보면 세계화는 세상의 본질에 속한다. 그러나 생태적 연결은 배타적 이윤을 주된 목표로 하는 ‘긴밀한 연계’와 그 성격이 판이하다. 모든 것을 잇고 있는 ‘근원적 유대’는 인간 서로에게 존엄과 평등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존중과 돌봄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느슨한 연계’다. 우리가 만든 ‘긴밀한 연계’를 자연의 ‘느슨한 연계’에 부합하게 바꿔야 한다.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법이다. ‘더 빠르게, 더 많이’를 외쳐온 우리에게 코로나19는 ‘천천히, 적절하게’를 주문한다.

재난에 대비한 사회적 체력 강화에 ‘먹을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한때였지만, 우리도 마스크 부족 사태를 겪었다. 그때 마스크가 아니라 식량이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에 몇몇 식량 수출국이 쌀 수출을 금지했던 일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가 간 단절과 고립은 이번보다 훨씬 더 오래갈 수 있다. 기후변화도 세계의 농사에 중대한 위험 요소다. 다수의 악재가 한꺼번에 일어날 때 들이닥칠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4차 산업이 급하다는 우리에게 코로나19는 ‘농업’이 급하다고 주문한다. 

우리 질병관리본부는 ‘K방역’으로 방역의 새 길을 열었다. 우리 정치는 ‘K전환’이라는 새 길을 열 수 있을까? 정부와 ‘거대’ 여당의 실력을 기대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hyunchulsj@gmail.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소위 대한민국 보수의 핵이라는 강남에서 북한의 고위층이었던 태구민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제 더 이상 선거에서 ‘빨갱이’타령은 먹히지 않을 터이니, 선거문화는 분명 진일보할 것이다.

태구민의 당선이 확정된 날 국민청원이 하나 등장했는데, ‘강남구민의 높은 정치의식과 시대정신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강남구 재건축지역에 새터민아파트를 의무비율로 짓자’는 청원이다. 언론은 앞다퉈 도를 넘었다고 비판하지만 곱씹어볼 부분이 많아 보인다. 중요하게는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이며 다른 하나는 왜 국가에 꼭 필요한 시설의 설치가 특정 지역에서는 조롱이라 치부되어야 하는가이다.

현행 소선거구제도에서 망국적 지역주의 다음으로 강한 힘을 발휘해온 것은 단연 부동산 이슈이다. 코로나19와 막말, 비례정당, 검찰개혁 등 강력한 이슈에 묻혔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온갖 지역구 개발공약은 정당과 관계없이 난무했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국가예산을 자기지역으로 돌릴 적임자라 하고, 소위 님비(NIMBY)시설들은 빼내겠다고들 했다. 국회의원 선거가 국가의 고른 발전을 실현할 입법권자가 아닌, 특정지역 부동산 가치상승을 이끌 능력자를 뽑는 선거로 변질된 것이다. 연말이면 뒷구멍 쪽지예산으로 지역구를 챙기는 의원과 정당에 눈살을 찌푸리지만 막상 내 동네라면 평가는 달라져, 헌법이 정한 임무와 관계없이 유능한 의원이, 정당이 된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4%를 넘어,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자체에 집이 남아돈다. 1가구 1주택이면 무려 84만 채가 남는다. 실제 빈집이 140만 채가 넘는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국가를 위해 서울 블랙홀 개발이 아닌 효율적 분산이 과제가 된 지 오래다. 고민 끝에 참여정부가 단행한 행정수도 이전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있었지만 수도권 토건사업은 더욱 심해졌다. 지방 활성화의 기대와는 달리 집과 일터가 분리돼 1가구 다주택이 필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육과 복지·문화인프라 수준의 현격한 차이는 서울, 특히 강남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방과의 격차를 느낄 수 있고 서울, 강남을 떠날 수 없다는 의식은 이들에게 깊이 깔려 있다. 세종시가 만들어진 2012년 이후 온갖 부동산규제대책에도 6년 만에 다주택자가 무려 34%나 증가한 이유일 것이다. 이들의 이동을 위해 서울을 빠르게 연결하는 교통편이 발달했고, 빠른 교통편은 지방을 더욱 소외시키는 악순환고리가 되었다.

헌법에 따라 국가는 제한된 국토와 자원을 보호하며, 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지역구가 아닌 국가 이익을 우선할 의무가 있다. 고준위핵폐기물장과 같이 모두가 반대하는 시설도 어딘가는 만들어야만 한다. 헌법에 반하는 지역우선 개발공약과 쪽지예산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지역구 선거제도로는 국회의원에게 헌법의 의무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수도권 의석수가 절반을 차지하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도에서 지방을 위한 균형발전은 불가능하며 서울블랙홀의 난개발만 가속될 뿐이다. 선거가 끝난 지금이 지속 가능한 국가를 위한 선거제도 논의의 적기로 보인다. 청와대의 답변이 ‘시대정신’을 외면한 뻔한 답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로나19 사태는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한 대문호 커트 보니것의 말을 사실로 입증했다. 그는 “지구의 면역체계는 신종 독감 등으로 우리를 제거하려고 애쓰고 있다네, 지구로선 그 편이 나을 걸세”라 했다. 이토록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봄이 언제였더라? 출입 통제된 브라질 해변에서 멸종위기 바다거북 97마리가 부화했다. 관광객이 끊기자 베네치아 운하의 물이 투명하게 맑아지더니 급기야 60년 만에 돌고래가 헤엄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코로나19는 인류에 대한 ‘셀프 디스’를 시전한 ‘자발적 인류멸종운동’을 돌아보게 한다. 사라지기는커녕 발걸음만 줄여도 지구가 깨끗해지는구나. 다시 커트 보니것으로 돌아오자면 원자력과 화석연료로 온갖 열역학 소동을 피우면서 생명이 살 수 있는 하나뿐인 행성을 파괴하는 우리는 정녕 지구의 암적 존재인가.

코로나19로 인해 일회용 마스크와 비닐장갑, 택배 박스 등이 무수히 버려지고 있다. 이번 총선 투표에서 63빌딩 7개 높이 비닐장갑이 사용되고 버려졌다. 그렇게 뽑은 국회의원 중 몇 명이나 지구를 위해 나서줄까. 또한 집에 콕 박혀 심심해 죽겠는 사람들이 인터넷 선을 타고 부유한다. ‘텔레콤 이탈리아’는 이동이 제한되면서 인터넷 트래픽이 70% 급증했다고 밝혔다. 웹서핑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개미 눈물만큼이나 적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데이터 센터에 접속한 결과 인터넷 관련 산업은 항공 산업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며, 2025년에는 두 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예정이다.

특히 동영상은 매 순간 사진을 이어 붙여 움직이게끔 보이는 밀도 높은 데이터 집합체다. 30분간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6.3㎞를 운전하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고로 인터넷 트래픽의 60%는 동영상이 차지한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의 동영상에서 3분의 1, 넷플릭스 등의 영상 스트리밍에서 3분의 1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포르노에서 나온다. 그러니 n번방의 성착취 동영상은 여성과 지구를 잡아먹는, 인류적으로도 지구적으로도 더러운 범죄다.

며칠 전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심심해 죽겠는 사람들의 다른 행동을 보았다. 딸기에서 씨를 핀셋으로 뽑아 싹을 틔운다. 재활용 화분을 만들어 대파 뿌리를 심어 키운다. 수십 장의 천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에 기부한다. 이 가내 수공업은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발전과 현대화로 보는 사회를 거스른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달으면 좋겠다.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만나지 않아도 삶은 즐겁다는 것, 삶은 깨지기 쉬워서 소중히 다뤄야 하고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온기를 나누는 서로의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돈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 몸을 움직여 ‘지금 여기’의 세계를 살아야겠다. 0과 1의 전기적 신호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화면의 세계가 아니라 견디고 애쓰고 서로의 안위를 묻고 계절감을 체화하며. 이반 일리히의 말처럼 “환경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함께 일하고 서로를 보살피는 사회에서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통찰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길뿐이다”. 일에 떠밀려 바쁜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 그리고 지구를 보살피기 위해 몸을 써서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난의 최전선과 뿌리로 가라  (0) 2020.05.04
태구민과 국토균형발전  (0) 2020.04.24
코로나19의 ‘역설적 교훈’  (0) 2020.04.17
‘거리 두기’와 지역화  (0) 2020.04.03
미세먼지, 정책과 현실  (0) 2020.03.27
포장을 거절할 권리  (0) 2020.03.2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말이 어느새 일상어가 되었다. 거리 두기는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국경의 빗장을 잠그는 등 문단속에 들어간 나라가 벌써 여럿이다. 국가 간 거리 두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공간의 압축을 추구하며 고도의 교통·통신 기술로 세계 전체를 빠르고 긴밀하게 연결해온 세계화인 듯하다. 국제적 거리 두기는 세계화와 정반대 움직임을 뜻한다.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항공, 여행, 관광, 숙박, 식당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파편이 튀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실물경제가 출렁대니 금융경제도 휘청댄다.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찰스 페로가 주창한 개념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를 떠올린다. 정상 사고는 “상호작용의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이라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고”를 가리킨다. 시스템 속성상 예상할 수는 없어도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정상적인 사고다. 세계화의 전형적 속성이 고도의 상호작용과 긴밀한 연계성임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재난은 세계화의 현실에서 불가피한, 일어나는 것이 정상인 그런 사고다.  

정상 사고는 사소한 발단으로 시작되어 거대한 사태로 내달린다. 코로나19가 어떻게든 인간에게 옮아간 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우연히 일어난 나비효과가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나비효과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꼭 발단일 필요도 없다. 정상 사고는 안전장치로 막을 수 없다. 안전장치를 설치할수록 복잡성과 연계성이 늘어나 사고 발생의 가능성만 높아진다. 답은 긴밀한 연계를 느슨한 연계로 바꾸는 근본적 전환이다. 세계화에 코로나19가 주는 경고는 분명하다. 세계화 체제에서 세계적 재난은 불가피하다. 대책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세계화가 벗어나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할 길은 ‘지역화’다. 세계화로 가장 세계화된 것은 자본의 전 세계 이동이 자유로워진 경제다. 자본의 논리를 구현하는 최적의 환경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노동환경은 혹독해졌고 자연환경은 황폐해졌다. 세계화 경제는 지역 생산이 가능한 것도 이익만 나면 지구 반대편에서 수입하는 ‘미친’ 교역도 불사해왔다. 일정 수준의 자급자족을 기초로 하는 지역화는 불필요한 국제 교역을 없앨 것이다. 지역화로 상호의존의 규모가 세계에서 지역으로 줄어들고 긴밀한 연계가 느슨한 연계로 바뀌면 도미노로 인한 세계적 재난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지역화는 경쟁과 지배가 아닌 협력과 연대를 우선적 가치로 삼을 것이다. 

인간과 자연 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혼자 움직이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온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연결 통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동물의 개체수를 변화시켜 감염병 발생에 영향을 준다.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다른 곳에서 온 바이러스가 쉽게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도 병원균의 번식에 적합한 온상을 마련한다. 세계화 경제는 지역 환경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지만, 지역화 경제는 그렇지 않다. 코로나19로 시작된 거리 두기를 세계화를 지역화로 바꾸는 분수령으로 삼아야 한다.

<조현철 |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구민과 국토균형발전  (0) 2020.04.24
코로나19의 ‘역설적 교훈’  (0) 2020.04.17
‘거리 두기’와 지역화  (0) 2020.04.03
미세먼지, 정책과 현실  (0) 2020.03.27
포장을 거절할 권리  (0) 2020.03.20
기후위기 외면하는 거대 정당  (0) 2020.03.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로나19가 잠식한 피눈물 나는 현실 속에서도 역설적이게 매년 이맘때 뉴스를 달구던, 우리 사회의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고질적 문제 하나가 사라졌다. 교통량 감소로 이산화질소 배출이 줄어드니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그간 유행처럼 나타난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저감정책이 얼마나 엉뚱한 것이었는지 돌아보자. 

2017년 5월30일 산림청은 ‘도시숲은 미세먼지 잡아먹는 하마’라는 제목으로 도시숲이 미세먼지를 40.9%나 저감시킨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숲이 미세먼지 저감에 탁월하다고 호도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였다. 정작 숲을 얼마나 만들어야 40%를 줄여주는지에 대한 기초적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은 엉성하기 그지없는 보도자료 하나로 말이다.

산림청은 자신들이 만든 제목 하나만으로 이듬해부터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미세먼지 저감 명목의 각종 사업을 추진한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단초를, 그것도 가장 신뢰해야만 하는 정부가 제공한 것이니 이 보도자료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자료를 보면 이 40%의 수치는 단순히 서울 동대문구 도심 한가운데와 홍릉숲 한가운데에서 각각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의 차이를 비교한 것에 불과하다. 숲속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가 낮으니 숲이 미세먼지를 저감시킨다고 발표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냐고? 숲에는 미세먼지 발생원이 없지 않은가? 사막에 미세먼지 농도가 낮으니 모래가 미세먼지 저감에 탁월하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함께 배포한 첨부자료로 이 자료가 얼마나 허황된 보도자료인지 확인할 수 있다. 첨부된 자료에는 ‘1㏊의 숲은 연간 총 168㎏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한다고 했다. 이 수치만 보면, 일반 성인 몸무게의 두 배가 넘는, 엄청난 양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교할 수치가 없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비교할 데이터가 필요하다.

간단하게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총 대기오염물질량과 비교해보자. 국가미세먼지정보센터에 따르면 2016년에 우리나라가 배출한 대표적 대기오염물질 8종류의 총합은 무려 470만t에 달한다. 비교할 수치가 생겼으니 이제 숲을 만들어 대기오염물질 저감효과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국토에서 산림과 녹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약 68%이고 경작지가 21%이다. 초지와 습지, 하천이 약 5%가 조금 넘으니, 국토 중 녹지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면적은 6%가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 건물과 도로로 개발된 지역이다. 자 그렇다면 국토 전체를 숲으로 만든다면? 이렇게 해도 오염물질 총량이 그대로라고 전제한다면 2% 정도의 대기오염 개선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2019년 사업비 600억원을 들여 만든 숲은 약 60㏊이다. 계산하면 약 10t의 대기오염물질을 추가로 흡수할 수 있었고, 이는 우리나라 총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의 0.0002%가 된다. 대기오염물질 개선이 획기적인가? 1000년을 투자해도 정밀 측정기 오차범위 이내이다.

차라리 지금도 잘려지는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면? 정말 미세먼지 저감을 목적으로 한다면 도심에서 간벌이라는 명목으로 나무를 잘라내는 사업부터 하지 않는 게 우선 아닐까? 예산을 쓰지 않으면 대기오염물질은 훨씬 더 많이 줄어든다. 잘못된 정보로 세금을 쓰기 위한 사업을 만들지는 말자.

<홍석환 | 부산대 교수·조경학>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19의 ‘역설적 교훈’  (0) 2020.04.17
‘거리 두기’와 지역화  (0) 2020.04.03
미세먼지, 정책과 현실  (0) 2020.03.27
포장을 거절할 권리  (0) 2020.03.20
기후위기 외면하는 거대 정당  (0) 2020.03.13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는?  (0) 2020.03.0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사면서 내 용기를 내밀었다. 직원은 ‘이거 실화냐’는 얼굴로 반찬통에 케이크 담을 거냐고 확인한다. 넣기 편하라고 입구가 큰 용기로 준비했지만 진상 손님이 된 것 같다.

플라스틱 프리 실천은 용기를 싸들고 다니는 노가다를 필두로 신속·민첩함까지 갖춰야 한다. 미리 체크카드를 꺼내 만발의 준비를 했건만 하필 잔액 부족으로 다른 카드라도 찾는 순간, 이미 비닐봉지에 젓가락과 냅킨과 플라스틱 숟가락이 담겨 나온다. 

이 경우는 그나마 낫다. 마스크가 품절되는 속도로 재빠르게 일회용품을 거절하고 내 용기를 내밀면 쓰레기가 안 나온다. 나는 여행지에서도 밥을 해 먹는 편인데 유럽에선 늘 감탄한다. 마늘 1통, 양파 2개, 감자 3개 등 웬만한 채소와 과일을 죄다 낱개로 판다. 심지어 호박을 원하는 무게만큼 잘라준다. 딸기와 블루베리처럼 무르기 쉬운 과일은 종이계란판 상자에 담겨 있다. 거기서도 세제, 화장품 등 공산품은 플라스틱통에 담기지만, 농산물은 껍데기 없이 알맹이만 파는 경우가 흔하다.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구입할 수 있으니 음식물 쓰레기도 남지 않는다. 국내에선 노가다와 신속·민첩함으로 아무리 ‘노오력’해도 쓰레기가 나온다. 대부분의 농산물이 비닐에 싸여 있거나 몇 개씩 묶음포장돼 있다. 브로콜리는 랩에 싸여 있고 다 못 먹고 냉장고에서 썩어갈 가지가 5개씩 비닐봉지에 담긴 식이다. 먹고 사는 자체가 지구에 민폐랄까.

그래서 ‘쓰레기 덕후’들이 모였다. 약 20일간 40여명의 쓰레기 덕후들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대형마트부터 전통시장까지 총 64곳에서 농축수산물의 포장 여부를 조사했다. 조사대상은 쌀, 양파, 당근, 파, 돼지고기, 고등어 등 보편적인 식재료 40품목, 총 2560개 제품이다. 조사 결과 무포장 제품이 포장된 제품보다 많은 경우는 17.5%로 감자, 당근, 무, 시금치, 고구마, 오렌지, 바나나뿐이었다. 대다수 품목인 82.5%에서 포장된 제품이 더 많았다. 과일 중에서는 오로지 외국산 품목에서만 무포장이 더 많았다. 조사자는 “외국산을 사야 제로 웨이스트 할 수 있는 아이러니”라고 통탄했다.

무포장 제품이 가장 많은 유형은 전통시장, 체인화된 슈퍼마켓, 대형마트, 기업형 SSM, 유기농 매장 순이었다. 전통시장은 무포장 품목이 86%로 가장 많았으나, 가게별로 천차만별이라 실제 포장재 없이 구입하려면 상품별로 다른 가게들을 찾아 헤매야 한다. 역설적으로 유기농 매장에서 포장제품 비율이 가장 높았다. 건강한 먹을거리와 쓰레기 문제가 상충하다니! 유기농 직거래를 선택하려니 플라스틱 포장재가 나오고, 플라스틱 통을 거절하려니 중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사야 산다.

대형마트 중에서는 하나로클럽,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순으로 무포장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무포장 점수가 가장 높은 하나로클럽도 포장제품이 약 60%를 차지한다. 해외 대형마트는 소비자가 다회용 용기를 가져오면 제품을 담아가도록 하고, 영국의 테스코는 묶음포장된 참치캔, 수프 등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발 농산물이라도 비닐 없이 알맹이만 팔면 안될까? 우리에게 포장을 거절할 권리를 달라.

<고금숙 |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리 두기’와 지역화  (0) 2020.04.03
미세먼지, 정책과 현실  (0) 2020.03.27
포장을 거절할 권리  (0) 2020.03.20
기후위기 외면하는 거대 정당  (0) 2020.03.13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는?  (0) 2020.03.06
‘KM-53’의 집은 어디?  (0) 2020.02.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기후위기비상행동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1대 총선 정당 기후위기 평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 탄소배출 억제 정책, 탈탄소 사회 전환을 위한 예산 편성 등에 대해 각 정당의 입장을 물었다. 이들은 “국회 다수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기후위기 대응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날마다 살얼음판이다. 이 전쟁의 주범은 누구인가? 박쥐인가 우한인가 신천지인가.

과거 전 세계를 떨게 했던 에볼라 바이러스, 탄저병 그리고 코로나19 등등 각종 전염병엔 공통점이 있다. 2007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고 폴 엡스타인 박사는 2011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lt;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Changing planet, changing health)&gt;에서 지금 우리를 떨게 하는 코로나19 같은 역병의 주범이 무엇인가를 방대한 연구와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풍토병인데 주로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모기가 급증했고 결국 남미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인간에게 1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기와 해충의 세계에서는 0.1도도 엄청난 변화라서 기후변화 때문에 모기가 ‘좀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박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아진 탓이라고 설명한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14년 서아프리카 지역에선 에볼라 바이러스로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가뭄 때문이었다. 지독한 가뭄으로 먹을 것을 찾아 야생동물을 사냥했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 2016년 시베리아 지역에선 75년 만에 탄저병이 발병하였다. 수십년 전 탄저균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지구 온난화로 해동되면서, 탄저균 포자가 지면 위로 노출된 탓이다. 북극의 동토 아래 어떤 숲속의 마녀가 잠자고 있는지, 언제 깨어나 발톱을 세울지 알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폴 엡스타인은 사람들이 기후로 인한 재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데, 동식물은 고통받지만 사람은 안 그럴 것이고, 피해를 보더라도 가난한 개도국 주민들일 거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 톰 행크스 부부도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NBA 리그도 전면 중단됐다. 선진국은 우수한 과학기술과 청결한 환경, 넉넉한 자본으로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으며, 한국 역시 그 편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 앞에서는 국경이 없음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재난이 일상화되어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환경단체들이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언급한 건 1990년대부터다. 그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였지만 오늘 우리는 세계 최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가난한 나라와 말 못하는 동식물들만 고통받았지만, 머잖아 우리 모두 희귀 바이러스, 식량부족, 기상이변 같은 기후전쟁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환경단체가 아닌 미국 의학협회마저 “기온이 0.5도만 상승해도 우리에겐 참혹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가장 보수적이라는 과학자들도 함께 나선 마당이다.

코로나19의 창궐 앞에서 모두 애태우고 있다. 병든 뿌리를 두고 이파리에 약 바른들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폴 엡스타인의 책은 절판되었지만, 모든 재난의 뿌리, 기후변화를 더 염려하고 대비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선거가 코앞인데 거대 정당들의 기후정책은 애매하기 짝이 없고 기후리더는 정녕 어디 따로 숨긴 것 같다. <재정의>에서 저자 한근태 박사는 정치인을 ‘표식(票食)주의자’라 재정의하였다. 우리 목숨값, 알고 드시는지….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세먼지, 정책과 현실  (0) 2020.03.27
포장을 거절할 권리  (0) 2020.03.20
기후위기 외면하는 거대 정당  (0) 2020.03.13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는?  (0) 2020.03.06
‘KM-53’의 집은 어디?  (0) 2020.02.28
지구집에 관한 두서없는 통찰  (0) 2020.02.1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니네베’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다. 가로지르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니, 굉장한 번영을 구가하던 대도시였나 보다(<요나서>). 여기에 ‘요나’라는 예언자가 나타나 니네베의 멸망을 선포한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니네베가 하느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란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언제나 사회의 약자, ‘과부와 고아와 떠돌이’의 하느님이며, 하느님께 대한 죄는 이들의 억압과 착취로 나타난다. 니네베의 번영은 이들 약자의 피땀으로 이뤄졌고, 이들의 울부짖음이 하느님께 닿았나보다. 이 하느님은 이집트의 압제와 수탈에 허덕이던 히브리인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이들을 해방하려 이집트를 쳤었다(<탈출기>).

요나의 경고는 니네베에 들이닥칠 대재앙의 전조로 들렸다. 니네베 사람들은 단식을 선포했고, 임금에서 짐승까지 모두 단식에 들어갔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단식은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사야서>), 약자를 향한 사회적 연대 행위다. 억압과 착취를 일삼던 니네베의 근원적 변화를 위한 사회적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과연 그들은 변했을까?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임박한 파국의 경고를 시대의 징표로 알아들은 니네베 사람들은 극적인 변화를 했고 재앙에서 벗어났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우리는 경험도 상상도 못했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극도의 혼란과 공포가 삶을 엄습하고 옭아맨다. 당연했던 ‘일상’은 사라지고 거리에서 사람들의 얼굴도 사라졌다. 하지만 결국, 특히 의료진과 보건 당국의 헌신 그리고 시민들의 협력으로 이 사태도 잦아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런 희망을 품자, 물음이 쏟아진다. 이 재난으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니네베만큼 변할 수 있을까?

이번 재난을 계기로 우리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과 평등을 ‘정말’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할까? 잠시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할 수 없는, 감염보다 생계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사회 안전망을 만들자고 마음을 모을까? 바이러스 창궐 이전 ‘평온한’ 때에도 네댓 명의 노동자가 매일 산재로 죽어야 하는 사회, 갑질로 인한 좌절과 분노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삶을 버리는 사회를 안전하고 평등한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려 할까? ‘김용균’과 ‘문중원’과 ‘이재학’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방치한 것에 대한 사회적 참회가 가능할까? 너무도 소중한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재앙이 가능하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핵발전소 같은 위험 시설을 기꺼이 포기할까? 기후재난이 현실이 되기 전 온실가스를 과감히 줄이고 그 불편을 기쁘게 받아들일까? 

아니면, 이 환난을 넘기자마자 우리는 서둘러 익숙한 ‘옛날’로 돌아가려고 할까? 효율과 성장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비정규’의 굴레를 강요하며 약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는 일을 계속할까? 기후재난과 핵사고는 있을 수 없다고 고집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훨씬 더 가혹한 재앙, 파국의 문을 스스로 열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를 우리의 ‘진짜’ 문제를 보여주는 시대의 징표로 읽기를, 이 환난의 때를 새 세상을 여는 ‘카이로스’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방위비 분담 압박은 미국이 이제 더 이상 혈맹이나 우방이 아닌 부자가 빈자의 고혈을 짜내는 약육강식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한·미국방장관회의에서 다뤄질 예상 내용으로 방위비 분담금 외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사드)가 뜨거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발사대의 추가·전진배치에 관한 논란으로 부상했다.

지난 화요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대한 정부대응 신뢰도가 59%란다. 2016년과 2017년 OECD 발표 우리나라 정부신뢰도가 24%였으니 지금 국민이 정부에 보내는 지지는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당시 정부가 발표하는 말은 믿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다. 사드기지 논란이 극에 달한 시점도 이 정부 불신 시기이다.

당시 사드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성주와 접한 김천 수도산에서 지리산에 방사한 곰인지, 탈출한 사육곰인지, 야생곰인지 알 수 없는 반달가슴곰이 발견된 것이다. 급히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팀의 전문가들이 출동해 포획했는데, 잘 모르겠단다. 양쪽 귓불에 커다랗게 매단 추적기가 떨어졌다면 당연히 크게 흔적이 있었을 텐데 왜 몰랐을까? 베테랑이 이런 기본적인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의문이 시작된다. 작년 11월 이곳과 가까운 덕유산에서 또 다른 반달곰이 포착되었다. 이때는 환경부가 영상만 보고도 귀발신기 흔적이 없는 야생곰이라 발표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포획해서 눈으로 확인해도 모르는 것을 흐릿한 무인카메라 촬영결과로 확인된다? 의문은 더해진다.

빠르게 유전자검사가 이어졌고, 정부는 방사 후 한 번도 지리산 남부를 떠난 적이 없던 KM-53이 직선거리 80㎞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이 비상식적 발표를 믿어야 할까? 24% 신뢰도의 정부 발표를?

곰의 이동은 주로 짝짓기, 동면, 먹이활동을 위한 것이며, 단연 짝짓기 이동이 대부분이라 한다. KM-53은 왜 그 먼 곳으로 갔을까? 곰은 일반적으로 6세 정도가 돼야 짝짓기를 하니 나이를 봐서 배제해도 된다. 동면을 위해 이동했다면? 이미 겨울을 훨씬 지난 시점이니 돌아왔어야 마땅하고 굳이 한겨울에 따뜻한 남쪽 저지대를 두고 험준한 북쪽 산을 넘어갔다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후각이 발달한 곰이 먹이를 찾아 수㎞를 이동하는 것은 보고되고 있는데 역시 환경여건상 수도산으로 이동했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물론 이 또한 다시 돌아왔어야 맞다. 동물의 이동 자체가 본능이니 이유없는 이동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이동은 거의 보고된 바 없다.

서식지라고 한 지리산 남쪽에 풀어놓은 KM-53은 견딜 수 없었는지 빠르게 수도산으로 이동했다가 잡히기를 반복한다. 왜? 동물의 귀소본능이라면 쉽게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원래 수도산에 살던 아이였다면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불신정부라 하더라도 수도산에 사는 곰을 굳이 지리산곰이라 발표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짝짓기를 할 나이인 KM-53이 작년 6월 김천 금오산에서 발견되었다. 수도산과 금오산이 연결되는 한가운데에 사드기지가 있다. 당시도 지금도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환경영향평가이다. 혹여 있을지 모를 ‘멸종위기종 서식처’ 논란을 원천 차단하려 했다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작년 말부터 올해 초 몇 달 사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서부터 타오르던 불길은 캘리포니아 호화주택까지 태워 간담을 서늘케 만들더니, 털이 그을린 코알라며 캥거루들로 눈시울을 적시게 한 호주 산불이 잦아들기도 전에 코로나19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얼어붙은 마음이 환호로 뒤바뀌는 중이다. 숨차다. 심장이 널뛰는 가운데 몇 가지 두서없는 통찰이 있었다.

화마가 덮친 브라질 북부 파라주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8월 26일 재와 연기로 뒤덮여 있다. AP연합뉴스

첫째, 사람도 동물이구나. 그런데 대체로 망각하고 산다. 코로나19는 동물을 매개로 전염되었고, 이는 메르스, 사스 등 대규모 전염병들의 공통점이다. 사람과 동물의 감염병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것은 사람, 동물, 생태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데 나 혼자 건강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왜 자꾸 잊게 되는 걸까? 긴급구호전문가이자 작가인 한비야는 지구촌이 아니라 ‘지구집’이라고 강조한다. 나도 박쥐도 젖소도 소나무도 한집에 사는 식구라는 걸 바이러스에게 새삼 배웠다.

둘째, 지구온난화의 재앙이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구나. 과학자들은 신종 코로나가 악몽의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인체는 병원성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체온을 올려 대응해왔다. 높은 온도에서 바이러스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이 병원균들도 높은 온도에 적응하게 되어 우리 면역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고, 백신마저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북극의 영구동토 아래 잠자고 있는 미지의 병원균, 밀림 속에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병균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는 건 영화 속의 좀비가 문밖에 서 있는 꼴이다.

셋째, 봉준호의 저력은 혼자 있는 시간에서 나왔구나.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즉각적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 시간은 빈둥거림으로 죄악시돼 왔다. 그러나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무리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고, 중요한 순간일수록 혼자가 되라고 했다. 격리가 아니라 성찰과 몰입의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리라. 텅 빈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면 타인의 목소리, 특히 큰 목소리에 가린 힘없는 이들의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다. 다른 말로 하면 공감의 시간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친 영화판에서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기억하고, 밥때를 놓치지 않으며 노동력에 정당하게 보상하는 ‘착한 거장’이 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아카데미 수상소감은 호아킨 피닉스가 더 멋있구나. “우린 자연과 많이 단절돼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갖고 있고, 우리가 우주 중심이라 믿고 있죠. 우린 자연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을 침범하고 착취하죠. 우린 소를 인공임신시킬 권리가 있다고 느끼고, 어미의 울부짖음에도, 송아지를 훔치며, 송아지 몫인 우유를 가져다 우리의 커피와 시리얼에 넣죠.”(목수정 번역)

봉 감독 덕분에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100년 만에 폭설이 내릴 정도로 기후변화 좀비들은 지구집 창가에 어른거리고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코로나19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환자들과 치료에 헌신하는 ‘지구집 식구’들의 쾌유를 빌어본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는?  (0) 2020.03.06
‘KM-53’의 집은 어디?  (0) 2020.02.28
지구집에 관한 두서없는 통찰  (0) 2020.02.14
‘신종 코로나’로 본 세상  (0) 2020.02.07
마블 슈퍼히어로 vs 환경영향평가  (0) 2020.01.31
상식과 현실  (0) 2020.01.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움직임이 세계 전역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바이러스 효과’는 세상을 잇고 있는 연결의 밀도와 강도를 잘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의 빠르고 광범위한 확산은 세계를 촘촘히 이어주는 항공교통 때문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고 하늘길을 통제하니 당장 관광산업이 주력인 지역들로 불똥이 튄다. 중국 자동차 부품 공장이 휴업을 하니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국내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서고, 협력업체들도 덩달아 피해를 본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가동을 멈추는 사업장이 많아지면 국제 분업으로 이어진 산업 분야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재난 상황에 필요한 기본 물품의 적절한 공급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신종 코로나 방역에 기본인 마스크는 전에는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1918년 최대 1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처럼, 훨씬 더 힘센 바이러스가 장기간 창궐하여 철저하고 장기적인 봉쇄와 차단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처음에는 지금처럼 마스크 같은 방역 물품이 중요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식량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원인을 불문하고, 장기간의 극단적인 단절과 고립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먹을거리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평균 23%로, 평균 자급률이 101.5%에 달하는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식량자급률은 자급률 100%에 이르는 쌀을 포함해도 46.7%에 불과하다. 식량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재난 대비는 ‘0’의 수준에 가깝다.  

항공교통처럼 차단과 단절이 가능한 연결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기후가 그렇다. 모든 생명체는 기후 속에 있고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기후의 변화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는 ‘되먹임’을 통해 자신의 영향을 증폭하고 변형한다. 기후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나 ‘붕괴’되기 시작하면, 붕괴의 결과를 어느 한 지역 내에 차단할 대책은 전혀 없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기후가 ‘이탈’하기 전에 탄소 배출을 가능한 한 속히 줄여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로 막는 것이다. 바다도 막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일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성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는 것은 전 세계에 그 오염수를 뿌리는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물론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만의 사태 종결은 실제로는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진원지 중국에서 감염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고도의 방역 태세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웃이 낫지 않았으면 우리도 나은 것이 아니다. 국내에 필요한 안전 조치에 전력을 다하되, 외국 상황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하는 연유다. 세상에 완벽하게 자립적인 존재는 없다. 살기 위해 외부의 관계를 차단한다고 해도,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외부에 있는 타자가 필요하다, 살기 위해. 타자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태도는 우리 자신의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의 문제는 결국 나의 문제고, 그래서 우리의 문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KM-53’의 집은 어디?  (0) 2020.02.28
지구집에 관한 두서없는 통찰  (0) 2020.02.14
‘신종 코로나’로 본 세상  (0) 2020.02.07
마블 슈퍼히어로 vs 환경영향평가  (0) 2020.01.31
상식과 현실  (0) 2020.01.10
올해는 송편이 먹고 싶다  (0) 2020.01.0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망자가 살아와 사업동의서에 서명하고 저승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솔스톤과 등산로 5.7㎞를 단 3분 만에 이동할 수 있는 스페이스스톤을 소유한 전문가(AWP양양 풍력사업). 설악산 초입부터 정상까지, 연인원 80명이 투입된 조사를 단 2명이서, GPS보다 수십배 정확한 공간분석능력을 발휘하며 한나절씩 단 이틀 만에 완료하는, 아이언맨 슈트를 착용한 괴력의 전문가(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토양미생물 관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어류와 저서무척추동물을 혼자 조사하는, 위대한 학습능력의 닥터스트레인지급 천재전문가(낙동강 대저대교). 양서류와 파충류, 어류, 포유류의 모든 조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브루스 배너급 천재 필드생태학자(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참으로 불가사의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모셔야 할 이들 히어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처우는 너무나도 열악하다. 이런 능력의 소유자는 대한민국에는 너무 흔하니까?

하루 종일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지구 자전을 거부하는 현상(낙동강 대저대교). 서로 다른 지역의 식물개체가 완벽히 일치하는, 컴퓨터의 ‘복붙 능력’을 비웃는 자연의 위대한 복제력(제주 비자림로). 일반인한테는 정체를 쉽게 노출하지만, 유독 슈퍼히어로급 전문가에게만은 흔적까지도 전혀 보여주지 않는, 전문가를 차별하는 멸종위기 동식물의 완벽한 은신술(제주 비자림로, 거제 남부관광단지, 창녕 대봉늪, 제주2공항 등). 울창한 왕버들군락이 유명한 습지에서, 전문가에게만은 자신을 보여줄 수 없다는 왕버들의 완벽한 은폐술(창녕 대봉늪). 지금까지의 자연과학을 비웃는, 인피니티스톤이 펼치는 우주의 대신비가 한반도에서는 일상처럼 일어난다. 그런데 이 기이한 현상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해가 동쪽으로 지게 만드는 인피니티스톤 하나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야외조사 중 카메라 소프트웨어를 구버전으로, 다시 신버전으로 바꾸는 아이언맨 슈트에 있을 원격 AI 제어기술(낙동강 대저대교). 단 1대로 같은 시간, 서로 다른 3곳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로키의 분신술을 구현한 오염측정기계(낙동강 대저대교). 80곳이 넘는 양식장 운영에도, 단 두 곳만 전문가들 눈에 노출시키는 닥터스트레인지의 슬링링 기술을 구현한 양식장(제주2공항). 5차, 6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온 미래인류도 울고 갈 이런 과학혁명이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일상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혁신기술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 혁신적 기술이 대한민국에는 넘쳐나니까?

소설이나 영화로는 폭망할 황당무계 히어로와 최첨단 과학기술 이야기는 법률에 의해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의 결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서명·공포한 것에 따른 것이니 공신력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 당연히 이 서류의 분석과 평가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전문가는 한결같이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문외한의 문제제기가 크게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시행하는 사업이거나 정부의 중점추진사업이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이렇게 정부가 솔선수범하니 힘없는 국민이 어찌 안 따를 수 있겠는가?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집에 관한 두서없는 통찰  (0) 2020.02.14
‘신종 코로나’로 본 세상  (0) 2020.02.07
마블 슈퍼히어로 vs 환경영향평가  (0) 2020.01.31
상식과 현실  (0) 2020.01.10
올해는 송편이 먹고 싶다  (0) 2020.01.03
새해엔 에너지 전환 도약을  (0) 2019.12.2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상식의 사회.’ 새해의 바람이다. 현실이 강고하다고 상식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이 현실에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016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광장의 시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이어야 할 이 말을 목이 쉬도록 외쳤다. 그렇게 정권교체를 이루었어도, 헌법 제1조의 상식과 현실의 괴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65%의 득표로 8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지만,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의 득표에도 15% 미만의 의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국민은 주권자로 행사한 권력의 15% 정도를 빼앗긴 셈이다. 이러한 상식 밖의 정치 현실을 뜯어고치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득권 고수에 혈안이 된 거대 정당들의 어깃장으로 누더기가 되어 ‘준’이라는 딱지가 붙고서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대우는 상식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제도의 도입으로 이러한 노동의 상식이 20년 넘게 부정돼 왔다. 너무나 상식과 어긋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라는 꼼수였다. 모회사에 철저히 의존하는 자회사 정규직은 실제로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민생경제의 ‘민’은 대체 누구인가? 우리나라 ‘민’의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러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허덕이는 상황을 방치하며 약속하는 ‘민생’경제는 자가당착이며 공허한 말이다. 그런데도 올해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지금 ‘민’에게 절실한 것은 현실의 왜곡을 분칠하는 선심성 대책이 아니라 상식이다. 상식 없이는 정의도 공정도 없다. 

지금의 추세대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기후는 붕괴되고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갈 것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온실가스 배출을 막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 폐쇄, 신규 7기 건설이라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적어도 의도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도 상식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준위핵폐기물을 쓰레기로 쏟아내는 핵발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가동을 멈추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건만, 임시저장소를 추가로 건설해서라도 핵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게 현실이다.  

상식을 외면하고도 끄떡없는 현실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현실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래서 바꿀 수 없다고, 그 부작용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과 이윤이 세상을 움직이는 불변의 원리라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장악하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은 탓이다. 하지만 역사는 세상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오늘의 현실 또한 역사의 산물이다. 그래서 바뀔 수 있다. 이 변화는 우리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을 직시하고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이성과 감정을 동원해 스스로 판단”할 때 시작될 것이다(토머스 페인, <상식>).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움직일 수 없기에 식물의 경쟁은 동물보다 훨씬 치열하다. 영역싸움에서 밀리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동물과 달리 그 자체가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함께 커가는 동종 간 싸움에서 이기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종의 침입을 막아냄과 동시에 동종 간 영역싸움, 즉 공격과 방어를 함께하면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게 식물이다. 대개 처음에 자라나는 식물은 상대적으로 방어능력이 뛰어나며, 방어를 뚫고 자란 후발주자는 공격능력을 발휘한다.

소나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운명을 타고났다. 다양한 연유로 척박한 흙이 드러나게 되면 소나무는 빠르게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종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데, 솔잎에 다량 함유된 항생물질이 이 역할을 한다. 다른 종의 침입을 막는 데 힘을 쏟지만 종내경쟁도 녹록지 않다. 10년 전후의 어린 소나무숲이 20년 정도의 젊은 숲으로 바뀌는 동안 절반이 죽게 된다. 그리고 50년 정도의 중년 숲으로 변하면서 또 살아남은 개체의 절반이 죽는다. 그나마 소나무숲으로 유지될 경우에 그렇다는 거다. 바닥에 떨군 솔잎은 해가 가면서 썩게 되고 방어능력이 서서히 사라지는데 이 틈을 타 다른 종이 싹을 틔운다. 이들은 크게 자란 소나무 사이에서 보호받으며 빠르게 성장하는데, 더 이상 소나무의 보호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소나무를 공격한다. 스스로는 공격할 수 없기에 자신에게는 해가 없으면서 소나무를 죽일 수 있는 곤충을 유인한다. 소나무를 죽이는 곤충이 곰팡이와 공생관계를 이루는 이유이다. 이렇게 숲은 성숙해간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비해 참 정 없는 것이 자연이다.

피톤치드. 식물이 병원균이나 곤충, 곰팡이에 저항하려 분비하는 물질이다. 핵심은 다른 식물이 싹을 틔우지 못하게 하는 방어기작에 있다. 숲속에 들어가면 이 물질이 우리 몸에 흡수되어 인체의 방어능력까지 키워준다. 그리고 우리 조상은 이 특성을 활용해 식품을 오래 저장하는 데 쓰기도 했다. 대표적인 음식이 송편(松-)이다. 솔잎을 떡시루에 깔고 그 위에 쌀떡을 올리고 다시 솔잎을, 떡을 차곡차곡 쌓아 쪄낸 이 떡은 찌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솔 향이 배어 송편이라는 이름의 참맛을 내게 된다. 송편의 솔잎은 단순히 떡의 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솔잎의 강한 항균작용으로 쉬이 상하는 떡을 오래 보관하고 이 항균물질을 체내로 받아들이기 위한 조상의 지혜이다. 지금은 추석의 대표음식으로 알려졌지만 옛날 조상들은 정월대보름부터 봄까지 주로 먹던 떡이다. 질병에 가장 취약한 때가 계절이 바뀌는 봄이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그런데 이제 이 향긋한 송편을 맛보기 어렵다. 꽤 오래전부터 꿀벌을 죽이는 농약으로 알려진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를 산림에 뿌려왔기 때문이다. 산속 어느 소나무에 농약을 뿌렸거나 주입했는지 모르기에 아예 먹으려 하지 않는 게 속 편하다. 산림청이 안전하다고 사용하던 바이엘사의 이 농약을 유럽연합에서는 올봄부터 경작지에서조차 사용을 금지시켰다. 정부가 이제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멀쩡한 산에 농약을 뿌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왜 숲의 성숙을 막으면서 깨끗한 숲을 오염시키는지, 경쟁에서 도태된 나무의 무덤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는 군색하다.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서 소나무가 잘 자랐던 것은 솔숲의 마른 솔가지와 자연스레 죽은, 경쟁에서 도태된 소나무를 겨울마다 거두어갔기 때문임을 외면하지는 말길 바란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멀쩡한 변화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상황을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30년이면 이미 오래 해보지 않았는가? 2020년에는 자연의 섭리인 숲의 성장을 더 이상 재선충이라는 재난프레임으로 가두어 전국을 농약숲으로, 보기 흉한 플라스틱묘지로 만들지 말길 바란다.

올봄에는 농약냄새 대신 뒷산의 솔잎으로, 그 이름에 걸맞은 향긋한 송편 한 점을 먹고 싶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9년도 며칠 안 남았다. 2010년대의 마지막 해를 지나 2020년을, 2020년대의 첫해를, 맞이하게 된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시간을 따라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 변화에 민감해져야 변화에 맞는 삶, 변화를 이끌어내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갈수록 기후변화가 단지 기상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우리 경제와 삶 자체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갈수록 강화될 조짐이기에 더욱 그렇다. 가디언지 제안에 따라 “기후위기”로 불릴 만큼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가운데 영국이나 캐나다, EU 등 “기후위기 비상사태”란 인식을 기초로 2050년 온실가스 배출 ‘넷 제로(순 배출량 0)’ 선언 국가들이 늘고 있다. 화석연료 연소가 주된 이유라 기후위기 완화방안으로 에너지 소비 절약과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확대를 세 축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이 세계적으로 추진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과 경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서는 벌써 달성한 곳도 있지만) 재생에너지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서 몇 년 이내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기존 화석연료나 원자력 발전단가와 같아지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에 도달하고 내연자동차와 원유 수요 정점이 2020년 이후 10년 이내 나타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누군가에겐 상상 너머의 세상처럼 보이지만 이미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아직은 미미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소위 말하는 ‘에너지 시민’이 사회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쓰는 에너지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들어져 어떻게 자신에게 왔는지 인식하고, 다른 지역주민이나 미래세대, 다른 생물종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기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에너지 생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이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 시민은 낭비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고효율 기기를 사용하면서 에코마일리지나 탄소포인트제에 가입하고 자신의 집에 태양광이나 미니태양광을 달거나 에너지협동조합의 회원으로 나섰다.

기후변화는 여전히 막연하게 심각하다 여겨질 뿐,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지금, 여기, 우리’ 문제로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한 듯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세먼지를 매개로 에너지에 대한 시민 관심이 부쩍 늘었다. 경유차와 경유를 사용하는 건설 기계, 석탄화력발전이 미세먼지 배출의 41%가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가시적이고 체감 가능하며 당장 우리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문제라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올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란 이름으로 집중 관리에 들어갔고 별다른 사회적 저항이 없었다. 제도 시행의 당위성에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세먼지의 최대 진원지로 중국을 지목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으나 한·중·일 공동연구를 통해 국내 미세먼지의 약 32%가 중국발로 확인되었다. 국내 배출이 더 많기에 우리 의지와 정책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11월 수입 경유차 구매가 10월에 비해 117.4%나 증가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하지만 지난 8월 1000만대를 넘어섰던 경유차 대수가 정책과 시민 협조로 11월엔 995만대로 낮아졌다.

결국 문제를 인식한 사람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제도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제도의 변화는 결국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이 늘어날 때에야 가능하다. 시민의 압력이 견고한 제도와 구조의 관성을 바꿔낼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엔 더 많은 시민이 에너지 시민으로 탈바꿈하고 이들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약이 있기를 희망해본다. 에너지 전환의 힘은 결국 시민에게서 나온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식과 현실  (0) 2020.01.10
올해는 송편이 먹고 싶다  (0) 2020.01.03
새해엔 에너지 전환 도약을  (0) 2019.12.27
친환경 ‘배달의민족’ 기대한다  (0) 2019.12.20
툰베리의 “How dare you?”  (0) 2019.12.13
풍수지리와 미세먼지  (0) 2019.12.0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연말에는 어쩐지 조금씩 푸근해진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민족’을 약 4조7000억원에 인수하면서 한국·독일 회사가 아시아 음식배달 시장 평정에 나선다니 기뻤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숙제를 마쳐서 그런지 하마터면 성스러워질 뻔했다.

파타야 코란섬 바위틈마다 폐비닐이 쌓이면서 섬 한가운데엔 5만t의 쓰레기 산이 생겼다. 인도양·남태평양 섬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통에서 못 빠져 나온 소라게 57만마리가 폐사했다. 스코틀랜드 해안에 쓸려온 죽은 고래 배 속에서는 밧줄·그물·플라스틱 컵·장갑이 100㎏ 넘게 나왔다. 태국의 야생 사슴 배 속에서 나온 쓰레기들은 플라스틱만 7㎏에 달한다. 겨우 지난 한 달간 일어난 일들이다. 남의 나라만의 이야기일까. 작년 7월 쓰레기 대란으로 불법 수출된 한국산 쓰레기산이 필리핀에서 매일 밤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르고 있다. 지난 4월 정부는 490억원을 들여서 전국에 산재한 쓰레기 산을 없애겠다 했지만 아무리 치워도 계속 쌓이는 ‘쓰레기산’들은 지자체 세금을 좀먹는 밑 빠진 독이 되었다.

최근 한 모임에서 환경교육 전문가 오창길 박사는 환경교육 예산이 26억원으로 작년보다 두 배 증액됐다고 기뻐했다. 연간 예산 500조원의 나라에서, 수백억원을 들여 쓰레기를 치워도 치워도 계속 쌓이는 나라에서 26억원에 환호하자니 씁쓸했다. 우리나라 폐기물 처리비용은 연간 23조원에 육박한다. 게다가 수도권 쓰레기 대체매립지 조성도 불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현재로서는 줄이기가 답이고, 플라스틱 생산부터 소비, 폐기와 재활용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플라스틱은 석유추출물로 만든다. 당연히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기후재난으로 지구촌이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이산화탄소가 계속 증가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다행히 양식 있는 우리나라 소비자들 77.4%가 대형마트의 플라스틱 포장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환경부에서도 마트나 카페에서 비닐과 플라스틱 컵을 금지했고 플라스틱 천국 장례식장에서도 2021년부터는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된다. 플라스틱 빨대는 2022년부터 금지라는데 왜 그렇게 늦춰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탈리아 술집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없애려 파스타 빨대를 사용하기도 한다니 젊은 스타트업에 아이디어를 공모해봐도 좋겠는데 나서는 이가 아직 없는 것 같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인 로열 노스 데번 골프클럽은 환경 보호를 위해 내년부터 플라스틱 티(tee)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플라스틱 티가 나무 티에 비해 새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게 유해하고 새 또는 야생동물들이 쉽게 물어가기 때문이다.

독일의 화학기업 바스프는 환경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폐플라스틱에서 오일을 추출하는 기술에 2조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기업뿐이 아니다. 영국의 대학생은 생선 폐기물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 ‘마리나텍스’로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를 올해 수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슈퍼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하였고 기업과 상용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연구팀도 빙어 내장서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드는 미생물을 찾아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북 동안동 농협에서는 ‘컵과일’용으로 좀 비싸도 생분해되는 옥수수 전분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하였고, 경기 성남시에서는 라면봉지 등 폐비닐로 만든 가로수 보호판을 시범적으로 설치하였다. 현대차에서도 제네시스 시트에 가죽을 버리고 내년부터 친환경 플라스틱을 쓰기로 했다니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란다.

플라스틱 덜 쓰고, 재활용되게 잘 버리고, 친환경적 대안을 정부, 기업, 시민이 함께 찾았으면 한다. 특히 아시아 배달시장에 진출할 배달의민족이 거액을 기반으로 꼭, 친환경 용기를 만들어주길 빈다. 당신이 버린 플라스틱, 당신은 안 먹는다. 당신 손자가 먹는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영국의 콜린스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각각 ‘기후파업’과 ‘기후비상’을 선정했다. 올해 이 두 단어의 사용 빈도가 이전에 비해 100배 정도 늘었다는 선정 이유는 세계적으로 기후에 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고 기후 관련 담론도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도 이런 변화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정상들로부터 기후비상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힘들다. 2년 전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에서 노후석탄화력발전소 4기 감축과 2022년까지 6기 감축 계획을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책의 일환으로 발표했지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의 추가 건설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내게는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을 향해 반복해 외쳤던 “How dare you?”라는 날선 비판이 ‘올해의 말’로 남는다. 영상에서 본 툰베리의 눈빛과 표정과 억양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절박함,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세계에 대한 원망과 분노, 반드시 변화를 만들겠다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자신들의 삶을 더 이상 빼앗지 말라며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멸종위기’를 외치는 현실이 보여주듯, 기후위기를 우려하고 대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늘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뿌리인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자는 생각과 의지는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시사주간 타임이 지난 11일 공개한 타임 표지. AFP연합뉴스

온실가스를 에너지 쓰레기로 보면, 우리는 자원의 한계 이전에 자원을 소비한 결과인 쓰레기의 한계에 먼저 봉착한 것이다. 온실가스만 한계가 아니다. ‘5초-20분-500년’ 1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빨대의 평균 생산-사용-분해시간을 상징하는 숫자다. 플라스틱 제품은 20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니, 우리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소각된 것을 제외하면 지구 어딘가에 고스란히 쌓여 있을 것이다. 코카콜라 회사가 매년 생산하는 플라스틱 병만으로도 지구를 700번 감을 수 있다고 한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 형성된 쓰레기 더미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여, ‘GPGP’라는 태평양의 쓰레기 더미는 그 크기가 한반도의 6배가 넘는다. 핵발전소의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사용후핵연료를 쌓아온 핵발전소의 임시저장소 포화율은 평균 90%다. 조만간 고준위핵폐기물을 보관할 곳이 없는 핵발전소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핵발전에 대한 근원적 고민은 없고, 임시저장소를 늘릴 생각만 한다. 쓰레기의 근원인 ‘소비주의’ 생활양식은 바뀔 기미가 없다. 생산과 소비는 진작되어야 하고,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쓰레기의 경고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더 이상, 이렇게 갈 수 없다.” 이런 규모의 쓰레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생산과 소비,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아니, 인류의 존속 자체가 지속 불가능하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조만간 기후붕괴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은 허황된 위협이 아니라, 오랜 연구 결과에 근거한 과학적 경고다. 우리의 문제는 놀랍게 진보한 기술의 결과라는 사실은 기술의 진보로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지극히 비현실적임을 보여준다. 이 길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호소와 주장이 현실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도 기술의 진보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볼 수 있게 된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새해에는 이 말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보고 현실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눈과 마음을 청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