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시아의 에너지전환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워크숍에 참가하느라 도쿄에 다녀왔다. 거리의 차들을 보니 경차가 많고 경유차는 눈에 띄지 않았다. 요즘 미세먼지 탓에 다른 나라에 가면 대기질에 민감해진다. 도쿄의 공기는 서울보다 한결 좋았다. 과거에는 나빴다가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확연히 개선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2015년부터 PM10 기준 25㎍/㎥ 이하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만찬자리에서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하나같이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의 “노(No) 디젤카” 정책을 지목했다. 한·일관계나 정치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경유차 그을음을 페트병에 넣어 다니면서 유해성을 시민들이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중앙정부보다 앞서 신차에만 적용되던 배출가스 규제기준 미충족 경유차를 아예 운행하지 못하게 하면서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비용을 지원하고 대중교통 시설을 확충했다.

당시에도 경유가격이 휘발유가격보다 낮았지만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차가 제작·시판되는 시기와 맞물려 연료비 절감을 위해 굳이 경유차를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일본의 휘발유가격 대 경유가격은 100 대 84로 100 대 86인 우리보다 약간 더 낮다. 게다가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경유 승용차를 만들지 않아 국산차를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들이 외제차인 경유차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강력한 정책과 기술 발전, 시민 인식과 소비자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지금의 우린 어떨까? 한국에서도 경유차는 도시 미세먼지의 주요 원천이다. 2015년 기준 수도권 미세먼지 발생원의 22%는 경유차로 비중이 가장 높다. 게다가 경유차 미세먼지는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이동하는 생활공간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높고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지역의 경우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 우려가 심각한데도 2018년 12월 말 현재 국내 경유차 등록대수는 993만대로 전체 차량 2320만대 가운데 42.8%였다. 역대 최고치다. 1년 만에 무려 35만대가 늘었다. 경유차 중 화물차 비중은 33.8%인 데 비해 승용차가 58.1%에 달한다. 연료로서 경유 제조단가가 높음에도 휘발유보다 상대가격을 낮춘 건 경유차가 대부분인 화물차 물류비를 낮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승용차, 특히 SUV 차량 비중이 더 높아져 버렸다. 화물차의 경우, 경유 이외 대안이 별로 없다. 소형 화물차는 LPG 차량이 시판되고 있고 전기차도 일부 있지만 중대형 화물차를 대체하기 위해선 기술발전을 얼마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승용차는 굳이 경유차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휘발유차가 있고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를 선택할 수 있다. 대중교통이란 대안도 있다. 2018년 이런 친환경차는 46만대, 총차량의 2.0%로 전년 대비 12만대가 늘었을 뿐이다.

15일부터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약칭 미세먼지법)”이 시행에 들어간다. 같은 법 10조에 따라 미세먼지특별위원회가 이날 자로 출범한다. 정부가 미세먼지 배출량 통계의 신뢰를 높이면서 다양한 정책을 집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동시에 시민인식도 함께 가야 한다. 경유차를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다. 내가 모는 경유차가 시민 건강을 해친다면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엇보다 경유의 상대가격을 조정해야겠지만 그 이전에도 취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있다.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과 도보를, 자가용을 몰아야 할 상황이라면 작은 친환경차를 선택할 수 있다. 미세먼지 해결은 시민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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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 청년의 죽음으로 비정규직 제도가 첨예한 사회적 의제로 다시 떠올랐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답인지 알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몰리는 산재 사망사고의 근본 대책으로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만, 검토하겠다는 말만 들려온다. 누구나 돈보다 사람이, 이윤보다 생명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반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며칠 전, 정부는 총사업비 24조1000억원 규모의 23개 재정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는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정부는 예타 면제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는 4대강사업을 의식한 듯, “지역 전략산업 육성 관련 사업”이 다수 포함되었고,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주도 방식의 사업이라며 과거와 다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차이가 어떻게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으려는 예타의 면제 사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사업 내용을 보면 도로와 철도 건설에 20조원 정도가 투입되는 전형적인 토건 사업이다. 정말 이 프로젝트로 국토균형발전이 이루어지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까? 단기간의 경기부양에 그치고 남는 건 결국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만을 남겼던 과거가 되풀이되는 건 아닐까?

위의 두 가지 사례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자본의 논리가 압도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현실이 ‘철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철벽으로 보면, 현실은 ‘원래 그런 것’이다. 현실은 이의를 제기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는 것, 그저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식한 현실에 희망을 위한 자리가 있을 리 없다. 현실의 부당함도 원래 그런 것이려니 여기고 체념할 뿐이다. 기존의 부당한 현실과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는 의지는 꺾여버리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은 잘려나간다. 하지만 만연해 있다고 해도,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인식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현재는 과거와 다르다. 그 차이는 나와 우리의 노력과 헌신이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다.

철벽과 대조적인 현실 인식도 가능하다. 현실을 ‘약속’으로 보는 것이다. 약속으로 보면, 현실은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는 미완의 가능성이다. 현실에 내재하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 인식은 아무리 강고한 현실도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의 못자리가 된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은 완전하지도 않고 부족한 점도 많다. 그렇다고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대에서 희망을 길러낸다.

현실이 약속보다 철벽으로 보일 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현실을 변화의 가능성이 내재된 약속으로 보기 위해선 과거의 기억이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는 현실의 어떤 부분들이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비현실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당장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도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다양한 굴곡을 그리며 진행되어 서로의 인과관계를 알아차리기 힘들 뿐이다. 심지어 우리는 실패와 패배와 좌절을 통해서 성공하고 승리하고 전진해왔다. 오늘의 변화된 현실이 바로 그 증거다. 여기에 현실을 약속으로 볼 수 있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의 강고함에 굴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철벽같은 현실 앞에서 다짐해본다. 첫째,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기. 둘째, 현실에 압도되지 않기. 셋째, 현실을 바꾸기 위한 최선의 길을 식별하기. 넷째, 식별한 길을 전력을 다해 걸어가기. 그러고는 진인사 대천명! 희망의 설, 보내시길 빕니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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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와 폭염으로 못살겠다는 원성이 한계에 달한 지금 친환경을 명목으로 ‘수소사회’로의 전환이 갑자기 급부상했고 정부가 ‘통 크게’ 화답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환경오염을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얻어왔던 에너지회사와 자동차회사를 국민들 돈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왜 수소인가는 잠시 접어두고, 수소사회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과정을 보자. 수소가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라 주장하는 핵심은 국내 독점적 지위의 자동차회사인데, 친환경 이미지는 별로다. 전 세계 주류 친환경자동차인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2%에 불과한 반면 이 회사 디젤차들의 실주행 대기오염물질 발생량은 메이저 회사 중 최고 수준이다. 폭스바겐의 클린디젤 사기가 드러난 것이 2014년이니 이 회사 또한 이미 오래전에 디젤차의 오염물질 배출 문제를 알았겠지만, 국민에게 등 떠밀린 정부가 뒤늦게 ‘클린디젤’ 정책을 폐기할 때까지도 디젤자동차 판매에 열을 올렸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젤의 오염문제에 침묵한 채 돈을 벌어왔던 기업이 정부의 클린디젤 정책 폐기와 동시에 청정에너지로의 획기적 전환을 외치는 상황이 공감이 가지 않는다. 설마겠지만 타이밍은 참 절묘하다.

다시 돌아가서, 왜 수소일까? 답은 간단하다. 2차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에너지만큼 독점적인 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독점을 무너뜨릴 에너지가 확산되고 있다. 바로 태양과 바람 등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다. 독점에서 벗어나 소규모 분산시스템의 구축이 가능한데, 심지어 집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 독립적이며 민주적인 에너지다. 반대로 중앙집중식에 더해 복잡하고 어려운 통제기술을 요하는 수소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따르고, 선점하면 소수 기업이 독점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런데 독점을 위한 초기 위험을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한다? 이것은 집과 직장, 길거리 어디에나 있는 장벽 없는 전기가 아니라 불안에 떨며 충전소를 찾아야 하는 에너지자본에의 ‘노예화’를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주는 꼴이다. 전기차시장을 주도하는 테슬라가 스스로 전 세계에 촘촘히 충전소를 건설하는 것과 완벽하게 대비된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수소’는 전혀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수소 자체는 청정하겠지만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은 미래가 없다. 지금의 미세먼지와 폭염은 과도한 화석에너지 사용이 원인임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수소는 이 화석에너지에서 나온다. 화석에너지 생산은 최근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의 포집(프레킹)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80배나 강한 온난화물질인 메탄이 대기 중으로 대량 확산된다. 이미 수소를 만들기 전 원료생산과정에서 훨씬 많은 오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화석에너지로 수소를 만들고(메탄가스 개질) 또다시 각종 고가의 장치를 통해 자동차를 움직이는 구조가 과연 깨끗할까? 정부의 수소충전소 구축전략에 따르면 대기오염 개선에 효과가 있을 부생수소기반 충전소는 전국에 단 3곳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거의 모두 이런 방식으로 수소를 공급하려 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탈원전과 탈화석에너지가 기반인데 수소는 화석에너지정책의 유지에 불과하다. 여기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독점적 화석에너지자본에의 종속을 연장시켜줄 또 다른 게이트를 만들 뿐이다.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폭염재난의 기폭제가 될 수소사회 대신 친환경 전기충전소를 전국에 확산해야만 한다. 그리고 저렴하게 공급하면 보조금 없이도 국민이 스스로 전기차를 선택하는 셀프혁신을 보일 것이다.

자본이 밀실에서 만들어내는 정부포획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만을 만들 뿐이다. 친환경 전환 시점에서 국민의 건강이 아닌,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정책으로의 전환은 미래라는 말을 지구에서 제거하는 지름길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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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각에서 탈원전 반대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 와중에 집권 여당의 한 중진 의원마저 가세해 정부가 백지화하기로 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검토를 주장했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를 이유로 석탄화력 대신 원자력을 늘리는 게 더 낫고 원전 수출을 위해 원자력산업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원전지지자들이 얼마나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있는지, 다음 질문들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1) 원자력 발전, 정말 안전한가? 2) 현재의 탈원전, 너무 급한가? 3) 원전 수출이 경제적으로 득이 될까? 4) 탈원전은 공학 포기에 일자리 줄이는 일일까? 5) 원전은 효율개선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과 공존할 수 있을까? 6) 원자력발전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해결에 도움이 될까?

원전사고는 너무나 치명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기술은 결코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원천적 위험기술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선진 산업국가, 그것도 안전관리국으로 정평 난 일본에서 일어났기에. “원자력 안전은 신화다.” 후쿠시마 사고의 값비싼 교훈이다. 우리 국토는 일본보다 더 좁고 원전 주변지역 인구는 더 많으며 원자로가 훨씬 더 조밀하게, 그것도 한 부지에 더 많이 입지해 있다. 신한울 3·4호기까지 지으면 무려 10기(11.5GW)가 한 지역에 입지한다. 세계 최고 원자로 수에 최대 규모다. 무엇보다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부지와 관리방안도 없이 원전 건설을 늘리는 건 참으로 무책임하다. 지금도 심각한데, 계속 지으면 그 부담은 체증할 것이다. 원전산업을 위해 우리 안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의 탈원전 속도, 외국과 비교하면 사실 너무 더디다. 현재 원전 24기(22.5GW)에서 2022년엔 28기(28.9GW)로 도리어 늘어난다. 2031년엔 18기(20.4GW)로 줄어드나 여전히 현재 시설용량의 90.7%에 달한다. 신고리 5·6호기가 완성되면 자그마치 2083년에 가서야 원전 제로가 가능하다. 만약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된다면? 이 시점조차 뒤로 밀린다.

원전 수출로 돈을 번다? 1기 수출로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 중형차 25만대 수출효과란다. 그렇다면 최근 일본의 미쓰비시가 터키와 베트남에서, 히타치와 도시바가 영국에서 왜 원전 사업을 포기하거나 접었을까? 히타치의 예상 손실액이 무려 3조원에 달하는데도. 후쿠시마 사고 후 원전 안전 규제 강화로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게다가 원전 수출은 대부분 건설 후 운영을 통해 투입 자본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그 사이 사고라도 난다면? 무엇보다 세계 원전시장 축소로 수출할 곳이 없다.

원전 축소가 공학 포기란 건 이해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 분야나 에너지 효율 개선 분야 기술 혁신이야말로 공학적 접근을 필요로 하고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 미국 핵에너지연구소에 따르면 동일 자본 투입으로 재생가능에너지 분야 일자리 창출은 원자력의 2배 이상이다. 이제 업종 전환과 함께 건설 위주에서 벗어나 원전 안전 강화와 해체, 방사선, 사용후 핵연료 처분 등 신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

원자력발전은 에너지전환의 징검다리가 아니라 걸림돌이다. 정지와 운전 재개가 어려운 원전은 지속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생산해내고 중앙집중적 에너지 시스템을 고착화한다. 에너지 수요관리 여지가 적고 수요의 시간별 계절별 편차를 반영한 탄력운영이 어렵다. 그래서 낭비적인 에너지 소비 행태가 지속되기 십상이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는 시간을 다투는 긴박한 문제다. 건설 공기가 긴 원전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효율개선과 절약으로 소비를 저감하면서 공기가 빠른 재생가능에너지 확대가 보다 합리적인 해결방안이다. 그야말로 에너지전환이 긴급히 필요한 이유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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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란다. 몸만 크는 게 아니라 뇌의 기능도 성장한다. 피아제 인지발달론에 따르면 엄마가 눈앞에 없어도 사라진 게 아니란 걸 알려면 24개월쯤 지나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고유한 상상과 추론 능력은 13세 전후에 발달되는데 이때쯤 되면 체험 없이도 결과를 추론하거나 현재 사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연역적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 성숙해진다는 건 아마도 현실 저 아래 거대한 뿌리를 볼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지난 4일 삼성전자가 미세먼지연구소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일 듯한데 반가운 일이다. 초대 연구소장을 맡은 삼성종합기술원 황성우 부원장은 “이번 미세먼지연구소 설립으로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사회적 역량을 결집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회적 역량을 결집’한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역량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조직심리학자 매클랜드 교수는 역량이란 기량, 지식, 태도로 구성되는 잠재적이고 종합적인 능력이라고 했다. 기량과 지식은 측정과 훈련이 가능하지만 태도는 개인의 기질이나 동기처럼 내면화된 것이라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큰 사고를 겪거나 죽음을 앞두지 않고는 변화하기 어렵다. 미세먼지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역량이란 무엇일까.

OECD처럼 경제개발을 위한 조직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기후변화, 초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을 꼽고 있다. 작년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위험요소도 미세먼지였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는 아예 대놓고 환경, 필(必)환경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미세먼지에 관한 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식 그리고 미세먼지 없는 쾌적한 환경에 대한 수요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미세먼지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들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정확한 정보인지 판단해줄 신뢰할 만한 기관은 아직 없는 형편이다. 환경부도 신임 장관이 해결을 위해 몰입하고 있으나 국가가 보증할 만큼 적확한 원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원인별 제거방안이 나올 수 없고, 설령 나온다 해도 입법절차 등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당연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한 상황별 미세먼지 대응방안도 공식적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감정은 불안불안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대응책은 누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부? 지자체? 기업? 환경단체? 그도 아니면 각자도생?

지난 MB 정부 때부터 정부, 기업, 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붕괴됐다.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여파로 기업들은 정부나 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에 더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삼성 미세먼지연구소가 기술적인 해법을 넘어 미세먼지 대응을 위해 사회적 역량을 모으는 데 일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포부가 삼성스럽지 않아 신선하다. 그럴듯한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대기업들이 선의로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많이 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기업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있다. 정부도 기업과 같은 거리로 시민사회와 연대해주기 바란다. 좀 더 많은 이해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들도 생겨났으면 좋겠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환경보호론자들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인 대기업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세계를 짓누르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동감한다. 미세먼지를 포함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와 기업은 물론 고양이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 최근 개편한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유념해주기 바란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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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밤 서울, 보신각 주변은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간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아쉬움과 설렘으로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순간과 순간의 시간에 마음을 쏟는다. 번잡하던 거리는 차분해지고, 주위 사람들도 정겹게 느껴진다.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새로움은 이내 빛이 바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일상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 지배한다. 공간은 무언가를 ‘하는’ 곳이다. 무언가를 내 것으로 만들어 자신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곳이다. 자연에서 더 많은 것을 끌어내고, 더 많은 생산과 소유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공간은 소리 없는 싸움터가 되었다. 시간은 공간을 위해 필요할 뿐, 그 자체의 의미는 사라졌다. 시간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것으로 소비된다. 언제나 ‘더’를 외치는 우리에게 시간은 늘 모자란다. 이동과 소통수단이 발달할수록 더 모자란다. 아무리 시간을 아껴도 우리는 늘 바쁘다. 아니, 아낄수록 바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공간보다 더 근원적인 삶의 토대다. 공간은 시간이 허락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잘 모른다. 공간과 달리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낯선 시간을 피해 익숙한 공간으로 달아나, 일에 몰입한다. 하지만 시간을 외면하는 한 온전한 평화는 없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앗아갈 마지막 순간을 영영 외면할 순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아도 시간의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공간에서 만든 것은 모두 소멸하지만 시간은 영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안식’은 공간에 가려진 시간의 의미를 밝혀준다(아브라함 헤셸, <안식>). 성서는 하느님이 창조를 모두 마치고 이렛날에 ‘안식’했다고 말한다. 히브리어로 안식은 ‘멈춤’에서 나왔다. 안식은 하느님이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바라보는 멈춤의 시간이다. 안식은 우리에게 공간에서 하던 일을 멈추라고 말한다. 안식으로 들어서면, 우리의 관심은 소유에서 존재로 향한다. 공간 속에는 ‘자기 것’이 있지만, 시간 속에는 ‘자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며 앞만 보며 달려온 자신의 삶을 마주본다.

삶을 관조하는 안식은 경쟁과 효율을 위해 생명과 안전을 내팽개친 세상의 실체를 보여준다. 오늘날 세상이 말하는 풍요는 약자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착취의 결과다. 태안화력발전소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으로 불거진 ‘죽음의 외주화’ 논란에도 이윤의 극대화에 최적화된 비정규직 제도는 요지부동인 것을 보라. 지역경제 운운하며 아직도 호시탐탐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노리고, 불과 며칠간의 올림픽 스키경기를 위해 가리왕산의 자연원시림을 밀어버리고는 복원 약속을 번복하는 강원도의 행태를 보라. 안식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착취와 죽음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통로가 된다. 비윤리적이고 반생태적인 현실을 일깨워주는 안식은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이며 세상 만물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안식은 탐욕의 해독제이며 생태적 회심의 길잡이다. 안식이 축복이자 거룩한 시간인 까닭이다.

새해를 맞아 한 해의 평화를 간절히 바라지만, 우리가 지금처럼 생산과 소유와 소비에 집착하는 한 유한한 자원과 무한한 욕구의 세상에서 갈등과 분쟁은 불가피하다. 간디의 말대로, 지구는 모든 사람의 필요는 충족시킬 수 있어도 모든 사람의 탐욕은 충족시킬 수 없다. 아니, 단 한 사람의 탐욕도 충족시킬 수 없다. 탐욕이 아닌 필요의 충족에 만족하려면 안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쁠수록, 더욱 필요하다. 안식을 통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서도 시간 저편, 영원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갈 수 있다. 우리는 더 우리 자신이 되고 세상은 진정 더 풍요롭고 평화롭게 될 것이다. 잊지 말자.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프란치스코 교종, <복음의 기쁨>).

<조현철 |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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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세금을 아이들을 위해 쓰라는 당연한 요구에도 소수 기득권을 위해 묵살하는 사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업환경 요구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사회, 부자가 세금을 조금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의 소득을 높이면 국민이 못살게 된다고 반대하는 사회, 회계를 조작한 회사를 엄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조작을 옹호하는 사회, 부동산 불로소득에 부여하는 세금을 높이는 게 폭탄이라고 하는 사회, 미세먼지와 화학물질 공포의 개선을 위해 규제를 강화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반대하는 사회,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탈세의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 중에는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가 없다는 사회, ‘착한’이란 말로 포장해서 최저임금조차 쥐여주지 않으려는 노동착취를 미화하는 사회, 그래서 피해자만 억울한 사회. 2018년에도 변함없이 우리 사회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사람이 안전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세금이 본래 목적으로 쓰이면 망하는 나라인가? 부정한 회사를 엄벌하면 망하는 나라인가?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높이면 망하는 나라인가? 집값이 수억원 올랐다가 몇천만원 떨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미세먼지가 줄어 좀 더 깨끗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범법자가 아니고서는 인재가 없는 나라인가? 가난한 사람이 소득이 늘어나면 망하는 나라인가? 대기업의 부정부패와 재벌의 갑질이 사라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서울 집중이 분산되면 망하는 나라인가? 남녀노소가 평등해지면 망하는 나라인가? 이 수많은 질문에 동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다 평등한,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길 바라는 국민이 대다수임에도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파렴치한 손들의 방해로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엔이 추구하는 환경적으로 건전한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닌 ‘부와 권력의 세습만이 지속가능한’ 계급이 고착화된 사회로 변모해 있다.

2018년은 우리에게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큰 과제를 안겨준 해이다.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으면서도 소수 기득권 집단이 보여준 응집된 저항의 힘에 절대다수의 정당한 요구가 잠식당하는 무기력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환경적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의 공포를 온 국민이 체험한 해이다. 많이들 잊었겠지만, 이번 여름 더위와 관련한 각종 기록이 경신되면서 온열질환으로만 48명이 숨졌고, 현재진행형인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러면서도 당장 청년의 목숨값으로 연명하는 저질 화석에너지를 포기하지 못하며,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디젤의 가격을 오염자 부담원칙에 입각하여 정상화하지도 못한다.

전문가의 압도적 무용론에도 4대강 사업을 추진한 토건세력의 집요함과는 달리 온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유치원 비리근절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모습은 보다 정의로운,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정부가 돈과 언론의 권력을 앞세운 수구 금권세력에 밀리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잠시 숨죽이던 이들은 조금씩 틈을 비집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 총력을 다하는 상황이 채 임기 절반도 안된 촛불정부에 드리워졌다.

그 어떤 정책이라도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득실이 있기 마련이라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는 없다. 이번 정권에서 대다수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모든 부정부패와 사회문제를 없애고 모두가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는 마법이 아니다. 그간 기득권이 누린 비정상적 혜택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약자들을 위한 민주국가 본연의 정책이 구조적으로 싹을 틔우는 ‘사람이 먼저’인 사회로의 작은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미봉책의 표면적 지원이 아닌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결실을 볼 수 있을까? 경기침체를 빌미로 한 거대 SOC사업의 부활은 더 큰 불안의 징표로 보인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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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이제 10일 정도 남았다. 올 1년간 우리 사회의 주목할 만한 환경사건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이틀 전 환경운동연합이 선정한 10대 환경 이슈는 월성1호기 폐쇄, 신규 원전 4기 백지화, 4대강 보 13개 개방, 침대·생리대 등 생활용품 라돈 검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카페 매장 내 일회용컵 규제·단속, 미세먼지 저감·관리 특별법 통과와 노후 석탄발전소 봄철 가동 중단, 주택가 비닐·스티로폼 쓰레기 수거 대란, 환경부로 물관리 업무 일원화, IPCC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채택, 새만금에 세계 최대 태양광·풍력발전단지 조성 계획 발표 등이다. 여러분은 어떤 사건을 꼽겠는가?

나는 우리나라 관측 사상 최고였던 ‘폭염’을 넣고 싶다. 기후변화가 계속되고 있기에 이번 폭염은 서막에 불과할 뿐 이 기록은 갱신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는 저기 멀리 있는 북극곰이나 가난한 나라 사람들, 또 미래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우리 문제다. 이미 기후변화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 국민은 상당히 많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실시한 2017년 국민환경의식 조사에 따르면, ‘환경’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26.7%)에 이어 기후변화(25.1%)가 두 번째였다. 불과 세 해 전인 2014년에 9.9%였던 데 비해 크게 늘었다. 하지만 가장 우려하는 환경문제로 기후변화를 지목한 이들은 8.2%로, 자연자원의 고갈(20.1%), 대기오염(17.1%), 쓰레기 증가(14.0%), 수질오염(12.8%), 자연재해(9.31%)보다 적다. 여전히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자연재난이란 직접적인 영향을 넘어 지금 세계 경제를 바꾸고 있다.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에너지 전환의 가장 강력한 동인도 기후변화다. 향후 일정 연도부터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만 쓰겠다고 선언해 RE100이라 불리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현재까지 158개나 된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월마트, 이케아, BMW, GM, 스타벅스 등 알 만한 기업이 대다수다. 애플 등 이미 목표를 달성한 기업들도 여럿이다. 이들은 협력업체들에도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으로 부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2017년 2.8%만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이었기에, 이대로 가다간 수출의존도 높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경고음이 울릴 수 있다.

자동차산업에도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차량 배기가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에 나서면서 미세먼지를 야기하는 경유차를 넘어 아예 내연기관차 퇴출이 가시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자동차의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확정했다. 이미 2015년부터 주행거리 1㎞당 130g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2021년에는 2015년 대비 15%, 2030년에는 37.5%를 감축해서 81.25g/㎞까지 줄이도록 했다. 이제 경유차만이 아니라 휘발유차도 설 자리가 없다. 결국 내연기관차 시대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 독일은 2030년, 영국과 프랑스는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전기차 의무판매제를 도입했고 뉴욕 등 9개 주가 도입을 준비 중이며 중국도 2020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스웨덴의 볼보는 내년, 일본의 도요타는 2025년, 디젤 게이트를 야기한 독일의 폭스바겐은 2026년부터 생산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제 바야흐로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정책은 에너지정책을 넘어 경제정책과 만나야 한다. 2018년은 바로 이런 시대적 패러다임이 빠르게 재편된 해였다. 2019년의 시계는 아마도 더 빠르게 움직이지 않을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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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에게 탈원전, 에너지전환은 재앙이다. 그들 자신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재앙이다. 탈원전은 한국 경제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재앙, 태양광은 중금속 범벅의 처치 곤란 폐기물 더미만 남기는 재앙, 풍력발전은 산과 들과 어장을 망치는 재앙일 뿐이다. 이들에게 재앙이 미치는 범위는 대단히 좁다. 남한이라는 공간, 현재라는 시간, 돈이라는 물적 가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지구와 미래라는 시공간, 행복한 삶이라는 가치는 일고의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한다. 전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걸린 기후변화는 저 멀리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핵폐기물을 떠안을 후손들의 행복은 더더욱 관심 밖이다. 자기 이익을 지킬 수만 있다면 필요한 자료와 수치를 부풀려 에너지전환을 공격하는 것만이 이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기득권 수호에만 매달리는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과 달리 인류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원자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지금 인류에게 닥치고 있는 가장 큰 재앙은 기후변화이다. 이들이 보기에 기후변화는 지금 지구와 인류사회를 종종 비상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고, 미래세대가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탈원전, 에너지전환에 대해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과는 정반대로 지구라는 공간, 미래라는 시간, 행복한 삶의 추구라는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제임스 핸슨이다. 그는 1988년 미국 의회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해 최초로 경고했고, 수많은 기후변화 관련 연구논문을 발표한 과학자이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는 미국 나사에서 보낸 50년 가까운 과학자 생애의 대부분을 기후변화와 맞서는 데 바쳐왔다. 몇해 전에는 백악관 앞에서 오일샌드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재생가능에너지의 효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악의적으로 부작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으로는 기후변화를 막기에 역부족이라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탄소세를 점진적으로 올리고 안전이 확보된 원자력발전소를 크게 늘리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손녀딸과 함께 미국 연방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로 침해되는 손녀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항공우주국 고다드우주연구소 제임스 핸슨 소장이 기후 변화에 관한 이론을 나타내는 주사위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원자력 확대라는 핸슨의 주장에 대해 급진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제기되지만, 그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일은 없다. 원자력계의 로비와 그의 원자력 옹호 활동이 연관돼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과 행동은 주목받고 진지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한국의 원자력주의자들 중에서는 기후변화의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독일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비판하는 책을 출간해 원자력주의자들에게서 크게 환영받은 국회의원도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점에 대해선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책에는 오직 에너지전환과 재생에너지 정책이 독일에서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고, ‘대한민국 블랙아웃’이라는 재앙을 예비하는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만 있다.

지금 폴란드 카토비체에서는 세계 기후변화회의가 열리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해마다 열리지만 결과는 초라하기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국 언론과 정치권의 무관심은 놀랄 만하다. 원자력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전환 진영에서도 한마디 들을 수 없다. 이미 평균기온 1.5도 상승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이 확연하게 느껴지는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원자력이 살길인지 에너지전환이 올바른 길인지 조금이라도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원자력주의자들이 오직 남한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부자 되는 삶이라는 구시대적 시야에 갇혀 있다면 그들의 주장은 지지를 넓히지 못하고 원자력 수호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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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즈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컸다. 기회가 돼 우리나라의 심각한 자연환경 훼손 문제 개선을 위해 그간 쌓인 적폐 중 꼭 청산해야 할 한 가지를 주문한 바 있다. 개발자가 작성하는 환경영향평가서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작성토록 바꾸자는 것이었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데 아직까지 우리 법에는 개발할 사람이 예정지의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평가토록 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조성하려 산과 들을 매입했는데, 그곳이 보전을 통한 공익적 가치가 개발가치를 훨씬 능가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보전되어야만 하는 곳이라면 개발당사자는 어떠한 행동을 취할까? 국익을 위해, 나보다는 국민을 위해 희생한다? 그런 일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며 초등학생에게나 감동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외부정보에 눈을 뜨고 사회적 기준에 의한 가치판단이 시작될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정의’보다는 부정한 행위가 훨씬 거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과 법을 집행할 판사들조차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극히 일부에 의해 벌어지는 일탈로 전체를 깎아내리면 안된다며, 자극적인 언론의 문제를 탓하기에는 국민이 느끼는 불신의 골은 이미 너무 깊다. 국민은 이런 적폐를 청산하자고 하는데 청산의 시동도 제대로 걸지 않은 지금, 기득권층은 드러나지도 않은 사회문제 해결에 딴지를 걸며 피로사회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새 정부에 대한 많은 기대 속에 내심 환경영향평가법의 빠른 개정을 바라왔다. 늘 후순위인 환경문제는 역시나 이번 정부에서도 후순위였으며, 그나마 일부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은 알맹이를 쏙 뺀개정안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자연환경관리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자연보전 가치의 인식증진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이 문제를 정부는 왜 해결하지 않는가.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정부도 개발업체와 마찬가지로 보전보다는 개발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리라. 4대강의 졸속 환경영향평가, 사드기지, 최근 문제가 불거진 흑산도 공항이 그렇다. 수많은 정부 주도 개발사업은 토건세력과 정부의 암묵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빠른 진행에만 관심을 가지며 공익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이번 개정된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를 두어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공무원이 다수가 될 위원회에서 정부의 개발사업을 거짓으로 평가할 리는 만무하다. 정부위원이 과반수인 각종 위원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부의 입맛대로 진행되는 과정을 이미 보아오지 않았던가?

일례로 지난 오색케이블카의 환경영향평가 조사자료는, 조사자가 산을 순간 이동하지 않는 이상 시간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조사결과가 자료로 제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를 포함한 정부관계자들은 절대 영향평가서가 ‘거짓’은 아니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조사원본 제출요구를 사업자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를 감시해야 할 환경부 고위관계자는 설마 조사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했겠느냐면서 사업자인 지자체와 조사업체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지자체의 일도 이러한데 중앙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은 어떨지 뻔하다.

제3자가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다면 가장 많은 제동이 걸릴 사업들은 눈앞의 표를 위한 공약에서 시작되는 정부의 대규모 토건사업들이 아닐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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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의 비상근 이사장으로서, 뒤셀도르프를 거쳐 베를린에 머물며 독일의 주요 에너지·기후변화 관련 싱크탱크를 만나고 에너지전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매번 방문할 때마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움직임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앞서 나갈 수 있는 걸까?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켜 광범위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한 후 당시 17기 원자로 가운데 노후원자로 9기를 즉각 정지시키고 남은 8기를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여가기로 했다. 작년에 이미 1기가 문을 닫아 이제 7기만 남았다. 그 사이 재생가능에너지 이용은 점차 늘어나 지난해 전력 생산의 33.3%가 되었다. 원자력은 11.7%에 불과했다. 원자력발전에서 최고 25만명을 고용했는데 이미 재생가능에너지 일자리가 36만개로 원자력을 넘어섰다.

에너지전환이란 목표가 분명하니 흔들림이 없다. 더 이상 에너지전환이 옳으니 그르니, 목표가 현실적이니 그렇지 않으니, 그런 이야기가 설 자리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일 뿐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보다 다양하고 현명한 정책수단을 만들고 이행하며 혁신에 혁신을 더하고 있다. 건물 지붕과 벽면에, 도로와 유휴부지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고 경작지 한가운데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에 떠돌고 있는 가짜뉴스들이 생각나 쓴웃음이 났다. 실리콘 기반 태양광 패널에는 있지도 않은 크롬과 카드뮴 타령에, 전혀 문제가 안되는 빛 반사나 온도 상승, 전자파 등을 거론하는 이들은 이런 모습에 무어라 말할까? 에너지전환이란 화두조차 이념의 대상이 되고 정치화되어버린 우리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따름이다.

독일의 에너지전환이 지금처럼 성장하고 더욱 탄력을 받으며 추진되는 건 무엇보다 든든한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시민들은 에너지전환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기꺼이 수용했다. 저렴한 전력 대신 재생가능에너지 지원을 위해 더 높은 요금을 부담하는 녹색요금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소득 수준이 높지만 추운 날에도 난방온도를 높이지 않고 실내에서 두꺼운 스웨터 껴입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여름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대부분의 시민은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보냈다. 호텔이나 어디에도 하루 온종일 변좌를 데워두는 비데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먼 미래보다는 현재를 더 선호하는 시간선호가 있다고 하는데 독일인들과 대화해보면 이들은 곧잘 말한다, 미래세대를 배려해야 한다고. 경제학의 시간선호를 거스르는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당장의 금전적 이익보다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을 돌아보며 우리와 독일이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지형이나 지리적 조건이 다르고 경제규모와 인구밀도가 다르며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이 걸어온 에너지전환의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는 제조업 비중이 비슷하고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은 유사성이 있기에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차이를 극복하며 에너지전환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시민이자 소비자인 일반대중의 인식과 선택,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에너지전환에는 진보와 보수가,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시민 스스로 에너지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로 나서자. 그런 참여에 이익을 주면서 에너지전환을 지향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인에게 우리의 표를 행사하자. 에너지전환의 길에 함께하는 기업의 상품을 선택하도록 하자. 우리의 정치투표와 경제투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독일시민이 우리에게 그런 변화가 가능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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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남부 보덴호 근방에 솔라콤플렉스라는 기업이 있다. 다가오는 세번째 천년기를 앞두고 그 지역 30·40대 청년들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찾던 중 설립한 사업체이다. 일주일에 걸친 세미나 끝에 그들은 에너지전환이 새 천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2030년까지 인구 26만명이 사는 이 지역의 에너지전환을 완수하겠다는 결의로 기업을 시작했다. 20명이 5억원으로 시작한 솔라콤플렉스는 그동안 크게 성장하여 18년째가 된 지금 출자자 1200명, 자산 1300억원 이상의 중견기업이 되었다. 학교 옥상에 작은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던 초기 사업은 이제 마을 전체의 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하는 큰 규모로 발전했다. 현재 솔라콤플렉스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에너지는 전기와 열을 합해서 약 6000만㎾h에 달한다. 전기로 환산하면 약 2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솔라콤플렉스는 태양광발전소를 지붕이나 벽에만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도 짓는다. 설치 용량을 따지면 땅 위에 있는 것이 지붕 위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이 땅은 밭이나 숲이 아니다. 집을 짓거나 식물을 키울 용도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쓰레기 매립지, 철거된 공장부지 등이다. 지금도 계속 비어 있는 땅을 찾고 있는데, 작물을 재배하는 밭에는 가능한 한 설치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들은 바이오에너지도 상당히 큰 규모로 활용하는데, 이것도 가축분뇨와 목재 찌꺼기가 대부분이다. 에너지작물을 재배하는 등의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이라는 에너지전환의 목표와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에너지전환을 수치상으로만 100% 완수하려면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할 것 같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새만금 간척지를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단지로 활용한다는 ‘새만금 3020 비전’을 발표했다.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인데,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비중 20%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이런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계획에 대해 지역과 야당에서는 크게 반발하지만, ‘새만금 비전’의 졸속적 변경이라는 반발 이유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일각에서 제기되는 햇빛과 바람이라는 공공재를 대자본에 넘겨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더 귀담아들을 만하다. 물론 정부에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하여 펀드 조성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지만, 이는 전체 사업의 극히 일부에 그칠 것이고, 새만금의 호수와 간척지에 들어설 수십조원의 태양광발전소 건설은 대부분 대자본의 참여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햇빛과 바람이라는 공공재는 대자본이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솔라콤플렉스는 독일에서 가장 큰 보덴호 물 위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은 꿈도 꾸지 않는다. 지붕과 활용하기 어려운 땅에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서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에너지전환을 통한 지속가능 사회의 실현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부기관이나 거대자본은 광활한 호수나 간척지에 원자력발전소 서너개와 맞먹는 태양광발전소를 한번에 건설하는 것이 수만개의 작은 발전소 건설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3020을 달성해야 하는 정부에서도 단번에 수치가 크게 올라가는 이런 사업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에너지전환이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재 독점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질 것이고, 에너지전환 반대세력은 이에 편승해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악의적인 ‘왜곡정보’를 더 활발하게 퍼뜨릴 것이며, 이는 에너지전환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은 장기 프로젝트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려는 조급증은 오히려 일을 망친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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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체설이 나도는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이 주도해온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여기에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을 접할 때마다 그 이름이 궁금했었다. ‘혁신성장’도 그랬다. 알고 보니 각기 분배와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이란다. 알고 나니 더 궁금해졌다. ‘분배’라는 말은 왜 빠졌을까? ‘성장’ 대신 왜 굳이 ‘혁신’성장이란 말을 만들었을까? 소득주도성장에서 성장은 여전히 목표로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누구의 소득주도인지 특정되지 않음으로써 소득불균형 문제와 분배의 중요성은 부각되지 않는다. 혁신성장은 규제혁신을 통한 성장이고 규제혁신은 규제철폐나 완화를 뜻하니, 혁신성장은 기존의 성장을 에두르는 말일 뿐이다. 분배를 선명히 내세웠을 때 오는 부담과 과거의 성장 위주 경제정책을 답습한다는 인상을 피하고 싶었을까? 분배를 강조했지만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의 철옹성에 갇혀 있는 현 정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의 실체를 드러낼 수도, 감출 수도 있다. 정명(正名),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지난여름 폭염의 주범으로 기후변화가 주목을 받았지만, 이 이름 자체는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변화 자체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지구적 규모의 폭력”으로 보게 되면 논의할 “우선순위와 가치”가 분명해진다(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누가 얼마만큼 가해자이고 누가 일차적인 피해자인지 따지고 가해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게 된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 특히 약자에 대한 폭력을 막는 정의와 평화와 연대의 활동이 된다.

최근 임시저장소의 포화문제로 ‘사용후핵연료’가 다시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이 이름도 문제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사용하고 난 연탄은 ‘사용후연탄’이 아니라 연탄재라고 한다. 연탄 ‘재’는 쓰고 난 폐기물이고 치워야 할 쓰레기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는 어쩐지 연료라는 인상을 풍긴다. 재처리와 연결되면 더욱 그렇다. 이런 면에선 ‘고준위핵폐기물’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만, 거기에 내재된 치명적 위험을 알려주기엔 여전히 부족한 이름이다. 차라리 ‘죽음의 재’, ‘끌 수 없는 불’이 실체의 정곡을 찌르는 이름이다.

사용후핵연료는 핵반응을 일으키며 엄청난 열을 내뿜는다. 그래서 적어도 10년을 저장수조에서 식힌 후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10만년 이상을 세상에서 분리, 차폐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한 곳에 견고한 영구처분장을 짓는다 해도 완벽한 분리와 차폐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선 애당초 불가능한 요구다. 더구나 10만년은 현생인류의 전 역사를 훌쩍 뛰어넘는, 길어야 100년을 사는 우리 인간이 가늠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기간이다.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을 제대로 논의하려면 진정한 반성이 앞서야 한다. 대책이 없음을 알면서도 죽음의 핵폐기물을 만들어온 우리의 행위가 전기 생산이란 명분으로 윤리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가? 진정한 반성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며칠 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내놓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기초로 원전기술력과 원전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는 합의에서는 반성과 변화의 기미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핵발전이 여전히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탈핵을 선언하고도 수구정당과 핵산업계의 공세에 밀려 머뭇거리는 모습은 분배를 강조하면서도 기존의 성장 정책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빼닮았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핵발전의 실체를 제대로 본다면, 우리가 좇아야 할 “우선순위와 가치”는 경제성이 아니라 안전과 지속가능성이 분명하다. 첫 마음이 맞다. 주권자들은 그 첫 마음을 보고 권력을 위임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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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을 포함해서 가습기살균제, 미세먼지, 폭염, 미세플라스틱 등 열거하기도 버거운 각종 환경문제들에 대한 수습이나 개선에 관한 긍정적 소식은 감감하고 오히려 시간이 가면서 더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는 형국이다. 이 만연한 문제들의 해결을 모색해야만 하는 국정감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 환경부 장관의 전격 교체가 공표되었고 국정감사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환경부 장관 교체발표 바로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구성을 위한 대규모 장차관 교체가 있었다. 이 당시 포함되지 않았던 환경부 장관이 묘한 시기에 교체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난봄 발생한 ‘재활용쓰레기 수거대란’의 대응문제가 이유였지만 그렇게 인정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음 세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알량하게 남겨진 얼마 안되는 자연공원에까지 케이블카와 공항 등 개발사업이 정부의 힘에 기대어 추진되어왔지만 진전은 없었고, 급기야 흑산도공항 건설사업이 공원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바로 장관 교체가 공표된 것이다. 개발본능이라 할 만큼 각종 토건행위에 대한 신봉은 촛불을 통해 일어선 정부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자연공원에서만큼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국가의, 환경부의 지극히 기본적인 업무수행 의지가 내심 못마땅했나 보다.

환경부 장관을 경질시킬 만큼 흑산도공항이 중요할까? 찬성과 반대는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이는데, 이제는 다른 시각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한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들어왔다. 마치 이 경쟁에서 뒤처지면 국가가 곧 망할 것처럼 했지만, 말만 요란했지 현실은 이미 뒤처져 있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적 기업 중 하나는 ‘우버(Uber)’인데, 이미 전 세계 공유경제서비스에 관해 독보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존재감이 없다. 흑산도공항과 4차 산업혁명, 결이 다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처한 현주소와 묘하게 일치되는 안타까운 조합으로 보인다. 우버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아오던 소위 ‘하늘을 나는 택시’를 2년 후인 2020년에 시범운영하고 5년 후인 2023년에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용금액도 1.6㎞당 500원 수준으로 떨어뜨린단다. 대략 계산하면 흑산도에서 육지까지 약 3만원에 각종 제약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2023년은 먼 미래가 아니다. 흑산도공항 건설이 원활하게 추진될 경우 개항이 가능한 해와 같다. 물론 우버의 ‘에어택시’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첨예한 대립이 진행 중인 흑산도공항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국가의 핵심·첨단사업은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국토의 불균형 발전으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늘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고, 특히 도서지역 주민들은 참담한 기분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을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온 것이다. 주민의 염원을 핑계로 추진하는 흑산도공항이 건설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운행 가능한 노선은 서울~흑산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서울 블랙홀을 만들 뿐이다. 현시점에서 ‘미래는 소외된 국민을 우선으로’ 새로운 혁신교통을 개발하여 낙후된 국립공원 도서지역에 우선 배치하겠다는 정책 추진은 어떨까? 이를 준비하기 위한 ‘에너지자립도서’는 어떨까?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정부가 국립공원에까지 구시대적 토건을 추진하고, 이를 막고자 하는 환경부 장관은 경질되었다. ‘촛불민심’ ‘적폐청산’ ‘정의사회’를 외치며 고위공직자 인사배제 원칙을 표명하며 출발한 정권에서 새로 내세운 장관 후보자는 이 ‘원칙’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촛불 이전 인사참사와 변한 것 없는 반복의 레퍼토리이다. 촛불혁명의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 안타까움은 나뿐일까? 초심을 생각해볼 때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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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환경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언니가 있다. 에너지를 허투루 쓰는 일이 없다. 겨울엔 난방을 거의 하지 않고 여름엔 에어컨을 함부로 켜지 않는다. 얼마 전엔 베란다에 미니 태양광도 달았다. 아끼는 걸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싶다며. 쓰레기 문제에도 민감해서 손수건과 텀블러 사용은 기본이다. 언젠가 바빠서 음식을 배달시켰더니 일회용품이 한가득이더라며 이젠 배달을 삼가고 어쩔 수 없을 땐 집에서 그릇을 가져가 담아올 정도다.

어느 날 카톡으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왜 그렇게 애쓰며 사는지. 언니 말이 동식물이 살기 힘들고 자연생태계가 망가지면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잠시 스쳐가는 삶인데 편의만 앞세워서 환경을 망쳐 놓으면 후대 사람들은 어떡하냐고 한다.

그런데 이런 언니네 차가 경유 SUV다. 언니는 운전면허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집 차가 그렇다. 왜일까? 정부의 ‘클린디젤’정책 탓이 컸다. 형부의 출퇴근 거리가 멀어 세금이 낮은 경유차가 더 경제적인 데다 ‘디젤이 클린’하다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클린디젤정책의 잘못이 조금 알려진 요즘엔 경유차 모는 걸 마음에 걸려 한다. 얼마 전 언니가 물었다. 경유차가 미세먼지 주범이라는데 사람들이 1년 내내 운전하는데도 미세먼지가 겨울과 봄철에 더 심한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게 아니냐고. 아무래도 중국이 문제 아니냐고 한다. 중국이 미세먼지에 영향을 미치는 건 맞다. 하지만 중국 스스로 대기오염을 견디지 못해 에너지정책을 바꾸면서 중국 비중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국가 경계를 넘나드는 환경문제 해결엔 시간이 걸리기에 국내 조치부터 먼저 취하는 게 현명한 접근이다. 경유차를 늘 몰아도 계절에 따라 미세먼지 농도 차이가 발생하는 건 기상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쌓이다가 바람이 쓸어가기도 하고 비가 씻어 가기도 한다. 겨울과 봄엔 이런 기상조건이 없으니 더 심하다.

시민과 기업의 선택과 행동에는 정부의 정책 신호가 참으로 중요하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 자동차 총 누적등록대수는 2016년보다 3.3% 늘어서 2252만대가 넘었다. 연료별로 보면 휘발유차가 약 1037만대로 2011년 49.7%에서 46.0%로 다소 준 데 비해, 경유차는 958만대로 같은 기간 36.4%에서 42.5%로 늘었다. 경유 승용차와 경유 승합차가 각각 546만대와 73만대로 약 620만대에 달했다. 2018년 들어 9월 말까지 휘발유자동차는 19만6960대가, 경유자동차는 27만7850대가 더 늘어 전년 말 대비 각각 1.8%, 2.9%씩 늘었다. 미세먼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유차 판매 증가는 휘발유차를 넘어 꺾일 줄 모른다. 환경에 더 큰 부담을 주는데도 경유가격이 더 싸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경유차 세율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11월6일부터 6개월간 유류세를 일괄 15% 인하하기로 했다. 대도시 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인 경유차 증가를 그대로 두고 어떻게 미세먼지 문제를 풀지 의아할 따름이다.

지금 세계는 전기차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기한은 2025년부터 2040년까지 다소 다르지만 노르웨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인도 등이 내연기관차 판매금지를 선언했고 미국과 중국은 전기차 의무판매제 도입을 선언하였다. 물론 전기를 뭘로 만들 것인가도 중요한데 이 국가들에선 재생가능에너지 전력이 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내연기관차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고 전기차 생산은 요원해 보인다. 이대로 있다간 경제가 휘청거릴지도 모른다. 지난 10월8일 인천 송도에서는 1.5도 기후변화 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온도 상승을 막는 건 과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의 실현은 정책과 실천에 달려 있다. 이젠 정말 달라져야 한다. 정부는 지금 어떤 정책 신호를 주고 있는 걸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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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복지 후진국이지만 지원금에서는 단연 앞선 나라다. 많은 이름의 지원금이 다양한 분야로 흘러들어간다. 그런데 이 지원금이 개인에게 직접 지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도 대부분 업체나 단체 같은 곳을 통해서 준다.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종종 매우 높다. 최근 전국에서 유행하는 미니 태양광도 지원금 비중이 대단히 높고 업체를 통해서만 지급된다. 서울시에서는 100만원이 넘는 500W 미니 태양광 비용을 70% 이상 지원해주는데, 지정 업체를 통해서만 설치해야 하고 지원금은 이 업체에 바로 지급된다. 500만원짜리 3㎾ 주택용 태양광 시설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업체에 주는 지원금이 설치비용의 절반이 넘는다.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개인에게 직접 주지 않고 기업체에 주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그 사업에 쓰지 않고 유용하거나 싸구려 제품을 설치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물론 업체도 크게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업체를 선호하는 이유는 개인보다는 다루기가 훨씬 쉽고 짧은 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관료들이 다루기 어려운 개인의 주체적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그들이 주무르기 쉬운 기업체의 영업능력에 의존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과만을 중시하여 업체에 의존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국민 개개인이 수동적 존재로 남게 돼 지원금이 사라지면 사업이 더는 진행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지원이 없더라도 사업이 지속되려면 에너지 전환을 우리 사회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시민이 늘어나고 이들 시민이 주체적 존재로서 태양광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시민이 지속적으로 늘어남과 함께 이에 호응하는 업체들이 값싸게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선순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업체들이 더 많은 수동적 개인을 움직이기 위해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하고, 정부 관료들은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 지원금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2030년 재생에너지 20% 목표 달성을 위해 건설되고 있는 태양광 발전소들이 곳곳에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이유도 정부 관료들이 시민들을 신뢰하지 않고 수동적인 존재로 다루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반발이 그다지 크지 않으니 20%까지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이 계속 수동적인 존재로만 취급되면 20%를 넘어서 30~40%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요즈음 큰 싸움으로 번진 사립유치원 비리 논쟁도 시민을 믿지 못하는 정부 관료들의 지원금 집행 관행, 더 크게는 복지철학에 기인한 바가 크다. 사립유치원 원아에게는 매달 30만원 가까운 지원금이 지급된다. 그런데 이 지원금은 아이들 가정에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에 직접 지급된다. 사정이 있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는 가정은 10만원 정도의 양육수당만 받는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 지급되는 지원금은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것을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되어 있으니 지원금 집행을 위한 행정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치원 학비, 양육수당, 아동수당, 기저귀 지원금 등을 하나로 통합하고, 이 돈을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정액으로 직접 지급하면 행정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복지철학이 아직 빈곤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국정감사에서는 아동수당 지급에서 제외되는 소득상위 10%를 선별하는 데 해마다 최대 1626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모든 가정에 지급할 경우 추가로 필요하다는 1229억원을 크게 넘어서는 돈이다. 그러니 철학을 떠나 비용의 효용성만 고려해도 단순한 지원제도가 더 낫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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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만드는 건 결국 기업.” 지난 4일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열린 제8차 일자리위원회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업무지시 1호가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위원회’ 설치와 운영이었을 만큼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날은 정부가 “일자리 양을 늘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기업의 투자 촉진과 활력을 당부하고 정부는 기업 발전의 도우미가 되겠다고 했다. 이날 일자리위원회가 꼽은 5대 신산업의 내용을 보면, 결국 재벌 대기업에 일자리를 요청하고 최대한 지원을 약속한 셈이다. 고용 부진에 대한 대통령의 답답함과 초조함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2004년 노동부가, 2010년 대법원이 사내하청의 불법파견을 확인했지만 지금껏 파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거부해온 현대·기아차에 과연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해도 좋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SK하이닉스에 준공한 'M15' 반도체 공장을 대형 유리문을 통해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하기야 공공부문도 아닌 일반 기업에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기업은 일자리가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해 투자하고, 거기에 필요한 만큼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니 기업은 수익 극대화에 유리한 형태의 일자리를 선호한다. 설사 신산업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고 해도, 경기가 침체되면 고용은 다시 악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경기는 언제나 부침을 거듭해왔다.

이제는 일자리라면 기업만 생각하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농업이 국가의 근간이라면서도, 우리는 늙고 공동화되는 농촌을 철저하게 방치하고 외면해왔다. 40세 미만 농가가 전체의 1% 미만이고 농가의 평균농업소득은 월 100만원이 안된다.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은 50%와 24% 수준이고, 100% 자급인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은 훨씬 더 떨어진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농사는 좋은 일일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자리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농촌을 기피한다. 도시에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농사에 사람이 몰리도록 하는 것이 마땅히 일자리 창출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90년대 중반, 충북 괴산에서 유기농을 하는 ‘솔뫼 공동체’의 농부들과 반년 남짓 산 적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동시에 농사가 얼마나 큰 만족과 자긍심을 주는 일인지, 한마디로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깊이 깨달았다. 그럴수록, 농사가 사람들이 기피하는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귀농 인구가 조금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귀농을 원하지만 농촌에서의 생계가 막막해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어느 정도 생계만 보장된다면 농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부쩍 늘어날 것이다. 전남 해남군이 발표한 ‘농민수당’은 정부가 농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농사짓고 살겠다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 줄 ‘농민(농가)기본소득’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농민기본소득이 비현실적인 제안인가? ‘현실’적으로만 접근해서는 강고한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결코 터무니없는 제안도 아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계산대로 전국 110만 농가에 월 50만원씩 지급한다면 연간 총 6조6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매년 미국 무기 구매에 쓰는 돈이 10조원 언저리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농민이 더 늘어나면 예산도 더 늘어나겠지만, 소농이 수행하는 공익적 가치를 고려하면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좋은 일자리로 소문난 농사로 사람이 몰리면, 기업도 진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일, 농민기본소득으로 시작하자.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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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무더위 속에서 내내 이어진 BMW 화재사고는 폭염을 어렵게 견딘 시민들의 마음속까지 까맣게 태웠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는 기업을, 정부를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편치 않다. 그러나 이번 BMW 문제는 차량결함이라는 단순 사실에서 나아가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가의 본질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BMW의 화재사고와 2015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는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닌 모든 디젤차량의 대기오염 유발문제라는 본질에서 바라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은 휘발유의 10배에 달한다. 과도한 질소산화물 배출로 인한 도심의 오존농도 증가가 국민 호흡기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심각하기에 디젤차량을 줄이는 것은 그 어떤 대기환경정책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미세먼지만큼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BMW의 사태는 모두 이 질소산화물 배출과 연관된다. 디젤의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유럽연합의 규제는 해가 갈수록 강화되었고 2015년에는 이전 유로5보다 배출기준을 5배나 강화시킨 유로6를 적용하였다. 미국은 그 이전부터 유로6보다 훨씬 강력한 배출가스 규제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거의 모든 승용차와 소형트럭까지 휘발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였다. 폭스바겐은 미국의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 기준을 디젤로 맞추기 위해 거짓조작을 한 것이며, 이번 BMW는 획기적으로 강화된 유로6 기준을 맞추기 위한 기술이 문제가 된 것이다.

7월 29일 강원 원주시 중앙고속도로 춘천방향 치악휴게소 인근에서 주행 중이던 BMW 520d 승용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두 회사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다른 제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는 것이다. 2016년 유럽에서 실제 운행하는 차량의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사하여 발표한 결과는 충격적인데 유로5 기준을 통과한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 실배출량은 회사별로 허용기준의 최소 3.2배에서 최대 7.9배를 초과했으며 유로6 기준 차량은 최대 15.1배를 초과했다. 실주행 시 유로기준을 충족하는 디젤차량을 만드는 회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두 회사는 유로6 기준을 맞추지는 못했지만 질소산화물 초과 배출량이 허용기준의 3배 이내로 가장 적은 회사들이었다. 결국 실현가능성 없는 과도한 기준치의 적용과 이 요구를 안일한 조작으로 맞추기 위한 기업의 무리수가 화를 불러온 셈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부각되지 않은 회사 차량은 안전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차 디젤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유로5 기준을 통과한 차량의 경우 실제 허용기준치의 7.2배를, 유로6 차량 또한 허용기준치의 무려 7.7배를 더 배출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클린디젤이 아닌 더티디젤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이며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디젤차량이 호흡기에 치명적인 질소산화물을 대량으로 방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BMW와 같이 개별 차량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도시 대기오염을 가중시켜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는 훨씬 크다는 것이다. 대기오염 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호흡기질환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실에서도 디젤차량을 위해 지속적으로 디젤 가격을 저가로 유지하는 국가정책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정부의 곳간은 한없이 늘어만 가고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자동차가 사치품인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고, 필수품을 보다 저렴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시대가 바뀌면 세금정책 또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화석연료 자동차의 축소는 향후 급격히 진행되겠지만 그사이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전기차나 수소차에 지원되는 통 큰 세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안다. 지금이야말로 어려운 국민을 위해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을 경유와 같게 낮출 적기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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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에너지전환은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더디기만 하다. 거대 발전시설 입지가 야기했던 사회갈등이 최근엔 태양광시설 설치 예정지역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환경보건영향을 이유로 지역 주민이 태양광 패널 설치를 반대하는 해외사례를 듣지 못했기에 당혹스럽다. 일부 산림 훼손이 심한 경우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엔 잘못된 정보로 혐오시설인 양 반대하는 일도 없지 않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들어설 태양광 시설에 대한 반대다. 서울에너지공사는 서울대공원 정문 주차장 부지에 약 10㎿ 규모의 태양광을 ‘제2호 태양광 시민펀드’ 방식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그런데 얼마 전 사업설명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다. 일부 과천시민들의 반대 때문이다. 해당시설이 도시미관을 해치고 카드뮴과 납 같은 유해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데다 서울시 소유 태양광 시설을 과천시민 돈으로 과천에 설치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주차장에 설치하는 태양광 패널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주장은 처음 듣는다. 주민 거주 지역으로부터 300m 이상 떨어져 있고 이미 콘크리트로 포장된 곳인데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주차장 태양광 설치 사례는 부지기수다. 생각해보라. 넓은 공간에 햇빛을 가리는 방해물이 없으니 다른 데보다 전기 생산에 유리하다. 여름엔 주차 차량 내부가 뙤약볕으로 데워지는 걸 막을 수 있고 패널이 차양막이 되어 보행자들에겐 그늘이 된다. 비가 올 땐 승하차 시 비를 피할 수 있고 겨울엔 폭설이나 바람막이 구실도 한다. 그래서 주차장 태양광 발전소가 쑥쑥 들어서고 있다. 다른 나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대형마트나 고속도로 휴게소, 야구장, 구청, 공장 등의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 시설이 여럿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설치 예정 장소에 직접 가보았다. 그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면 앞서 말한 편익에 더해, 규모가 커서 방문객인 아이와 시민들에게 생생한 에너지전환 교육 현장이 될 법했다.

주차장 옆에는 카드뮴과 납이 들어 있는 죽음의 시설이라며 해골을 그려 놓은 현수막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보급된 태양광 패널엔 정부 규제로 카드뮴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셀과 전선 연결을 위해 납이 소량 사용되긴 하지만 회수해서 재사용하는 데다 납은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컴퓨터에도 들어 있다. 문제가 될 수 없다.

시민펀드 방식을, 과천시민 돈으로 전기를 만들어 과천시민에게 팔겠다는 발상으로 오해하고 수익률이 낮아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사실은 이렇다. 사업방식으로 제안된 시민펀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 국민 대상이다. 과천시민으로 제한할 수 없다. 태양광 생산전력은 20년간 정부가 장기고정가격으로 구매해주기에 수익률이 시중금리보다 높아 과천시민을 배려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미 2015년 서울시는 지하철 기지 4개소에 총 4.24㎿ 규모 태양광 설비를 전 국민 대상의 제1호 태양광 시민펀드사업으로 추진해서 4.18%의 수익을 가입시민에게 돌려준 경험이 있다.

과천시는 과천시민이 소비하는 전력량의 0.1%도 생산하지 않고 있다. 전기 소비량 거의 전부를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고 있다. 과천시의 매월 가구당 평균 전력소비량은 234.9kWh로 전국 평균(221kWh)은 물론 서울시 평균(228kWh)보다 높다.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은 미세먼지나 사고위험이 수반되어 해당 지역주민은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전기를 쓰는 과천시민들이 이런 문제에 무감각해서는 곤란하다. 과천시민들도 이제 내 앞마당에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야 할 때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태양광 발전소가 세워지면 과천시 전력 자급률은 3.3%로 높아진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이 그 출발이 되면 어떨까?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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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지난여름의 폭염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보며 들었던 물음이다. 우울하게 만드는 건 기후만이 아니다. 소득불균형, 실업과 취업난, 집값 폭등, 고령화와 빈곤노인층, 저출산과 인구절벽 등 각종 통계로 드러나는 현실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역설적이게도,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온 결과다. 그러니 지금의 방식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은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해법은 지금과 전혀 다른 길에서 찾아야 한다. 암울한 전망 속에서도 우리가 기존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새롭게 길을 그릴 상상력이 없어서 그럴지 모른다. 현재의 방식이 선택의 전부라고 철저히 학습되었는지도 모른다.

혁신이 절실하다. 혁신은 ‘피(皮)’를 ‘혁(革)’으로 바꾸는, 근원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다. 하지만 우리의 혁신은 외관의 치장에 동원되기 일쑤다. 그래서 혁신이 차고 넘쳐도 우리의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은 규제혁신과 투자증진을 통한 성장확대가 골자다. 기업의 투자증진을 위한 규제혁신은 결국 규제완화를 뜻하니, 혁신성장이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통한 성장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정부는 의료기기, 은산분리, 개인정보의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규제프리존특별법’과 비슷한 ‘지역특구법’ 제정을 서두른다. 모두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부지런히 걸어간다. 급한 건 이해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새로운 길로 갈 수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먼저 문제의 뿌리로 되돌아가 거기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 ‘거기’는 어딜까? 지난 11일 청와대 앞에서 농민들이 “밥 한 공기 300원”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밥 10공기 분량에 해당하는 쌀 1㎏당 최소 3000원의 가격 보장과 수확기 쌀 대책 수립을 촉구한 것이다. 그 전날에는 ‘국민의 먹거리 위기, 농정 적폐 청산과 대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농성단’이 청와대 인근에서 무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우리 농촌이 신음하고 비명을 질러온 지 오래다. 정부가, 우리가 무시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쌀값 약속을 지키라고 상경한 농민들을 기다린 건 물대포였고, 백남기 농민이 희생되었다. 이제 농민들이 다시 비명을 질렀고, 시민들이 거리에 나섰다.

사람의 문제는 결국 ‘먹고사는’ 문제다. 그리고 먹을거리는 도시의 사무실이나 공장이 아니라 농촌의 논과 밭에서 나온다. 농촌이 사람 사는 모든 곳의 뿌리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을 외면해왔다. 그런 농촌이 무너지니, 도시가 무사할 리 없다. 지금 도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농촌에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문제다. 도시에선 할 일과 살 곳을 구하지 못해서 아우성이고, 농촌엔 일할 사람이 모자라고 빈집이 늘어간다. 도시의 삶이 갈수록 황폐해지면서 농촌에 살려는 사람도 꽤 많이 있지만, 실제로 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의 농촌 현실에서는 살아남을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로만 몰렸던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농촌으로 돌아가는 광경, 젊은이와 아이들로 북적되는 농촌 마을을 상상해보자. 우리나라 전체의 혁신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데 필요한 여건을 만드는 것은 혁신을 하겠다는 정부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혁신의 소식은 전라남도 해남에서 들려왔다. 지난 8월 말, 해남군은 전체 농가에 연 6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전국 최초다. 적은 액수지만, 농민수당은 무너지는 농촌 현실과 공익적 가치를 비롯한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농촌을 살리겠다는 정책적 결단이다. 중앙정부가 할 일, 갈 길을 해남군이 먼저 보여주었다. 이제는 이 혁신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도록 정부가 성심껏 전력을 다해 응답할 차례다. 농촌의 성장이야말로 ‘혁신’성장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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