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올해 초 몇 달 사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서부터 타오르던 불길은 캘리포니아 호화주택까지 태워 간담을 서늘케 만들더니, 털이 그을린 코알라며 캥거루들로 눈시울을 적시게 한 호주 산불이 잦아들기도 전에 코로나19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얼어붙은 마음이 환호로 뒤바뀌는 중이다. 숨차다. 심장이 널뛰는 가운데 몇 가지 두서없는 통찰이 있었다.

화마가 덮친 브라질 북부 파라주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8월 26일 재와 연기로 뒤덮여 있다. AP연합뉴스

첫째, 사람도 동물이구나. 그런데 대체로 망각하고 산다. 코로나19는 동물을 매개로 전염되었고, 이는 메르스, 사스 등 대규모 전염병들의 공통점이다. 사람과 동물의 감염병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것은 사람, 동물, 생태계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데 나 혼자 건강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왜 자꾸 잊게 되는 걸까? 긴급구호전문가이자 작가인 한비야는 지구촌이 아니라 ‘지구집’이라고 강조한다. 나도 박쥐도 젖소도 소나무도 한집에 사는 식구라는 걸 바이러스에게 새삼 배웠다.

둘째, 지구온난화의 재앙이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구나. 과학자들은 신종 코로나가 악몽의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인체는 병원성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체온을 올려 대응해왔다. 높은 온도에서 바이러스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이 병원균들도 높은 온도에 적응하게 되어 우리 면역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고, 백신마저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북극의 영구동토 아래 잠자고 있는 미지의 병원균, 밀림 속에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병균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는 건 영화 속의 좀비가 문밖에 서 있는 꼴이다.

셋째, 봉준호의 저력은 혼자 있는 시간에서 나왔구나.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즉각적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 시간은 빈둥거림으로 죄악시돼 왔다. 그러나 사이토 다카시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무리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고, 중요한 순간일수록 혼자가 되라고 했다. 격리가 아니라 성찰과 몰입의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리라. 텅 빈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면 타인의 목소리, 특히 큰 목소리에 가린 힘없는 이들의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다. 다른 말로 하면 공감의 시간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친 영화판에서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기억하고, 밥때를 놓치지 않으며 노동력에 정당하게 보상하는 ‘착한 거장’이 될 수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아카데미 수상소감은 호아킨 피닉스가 더 멋있구나. “우린 자연과 많이 단절돼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갖고 있고, 우리가 우주 중심이라 믿고 있죠. 우린 자연의 세계로 들어가 그들을 침범하고 착취하죠. 우린 소를 인공임신시킬 권리가 있다고 느끼고, 어미의 울부짖음에도, 송아지를 훔치며, 송아지 몫인 우유를 가져다 우리의 커피와 시리얼에 넣죠.”(목수정 번역)

봉 감독 덕분에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100년 만에 폭설이 내릴 정도로 기후변화 좀비들은 지구집 창가에 어른거리고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코로나19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환자들과 치료에 헌신하는 ‘지구집 식구’들의 쾌유를 빌어본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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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움직임이 세계 전역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바이러스 효과’는 세상을 잇고 있는 연결의 밀도와 강도를 잘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의 빠르고 광범위한 확산은 세계를 촘촘히 이어주는 항공교통 때문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으려고 하늘길을 통제하니 당장 관광산업이 주력인 지역들로 불똥이 튄다. 중국 자동차 부품 공장이 휴업을 하니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국내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서고, 협력업체들도 덩달아 피해를 본다.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가동을 멈추는 사업장이 많아지면 국제 분업으로 이어진 산업 분야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재난 상황에 필요한 기본 물품의 적절한 공급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신종 코로나 방역에 기본인 마스크는 전에는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바이러스가 확산되자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1918년 최대 1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처럼, 훨씬 더 힘센 바이러스가 장기간 창궐하여 철저하고 장기적인 봉쇄와 차단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처음에는 지금처럼 마스크 같은 방역 물품이 중요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식량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원인을 불문하고, 장기간의 극단적인 단절과 고립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먹을거리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평균 23%로, 평균 자급률이 101.5%에 달하는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식량자급률은 자급률 100%에 이르는 쌀을 포함해도 46.7%에 불과하다. 식량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재난 대비는 ‘0’의 수준에 가깝다.  

항공교통처럼 차단과 단절이 가능한 연결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기후가 그렇다. 모든 생명체는 기후 속에 있고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기후의 변화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는 ‘되먹임’을 통해 자신의 영향을 증폭하고 변형한다. 기후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을 지나 ‘붕괴’되기 시작하면, 붕괴의 결과를 어느 한 지역 내에 차단할 대책은 전혀 없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기후가 ‘이탈’하기 전에 탄소 배출을 가능한 한 속히 줄여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로 막는 것이다. 바다도 막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일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성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는 것은 전 세계에 그 오염수를 뿌리는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한 퍼져나가기 마련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물론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사태를 종식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국내만의 사태 종결은 실제로는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진원지 중국에서 감염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고도의 방역 태세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웃이 낫지 않았으면 우리도 나은 것이 아니다. 국내에 필요한 안전 조치에 전력을 다하되, 외국 상황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하는 연유다. 세상에 완벽하게 자립적인 존재는 없다. 살기 위해 외부의 관계를 차단한다고 해도,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외부에 있는 타자가 필요하다, 살기 위해. 타자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태도는 우리 자신의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의 문제는 결국 나의 문제고, 그래서 우리의 문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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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살아와 사업동의서에 서명하고 저승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솔스톤과 등산로 5.7㎞를 단 3분 만에 이동할 수 있는 스페이스스톤을 소유한 전문가(AWP양양 풍력사업). 설악산 초입부터 정상까지, 연인원 80명이 투입된 조사를 단 2명이서, GPS보다 수십배 정확한 공간분석능력을 발휘하며 한나절씩 단 이틀 만에 완료하는, 아이언맨 슈트를 착용한 괴력의 전문가(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토양미생물 관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어류와 저서무척추동물을 혼자 조사하는, 위대한 학습능력의 닥터스트레인지급 천재전문가(낙동강 대저대교). 양서류와 파충류, 어류, 포유류의 모든 조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브루스 배너급 천재 필드생태학자(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참으로 불가사의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모셔야 할 이들 히어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처우는 너무나도 열악하다. 이런 능력의 소유자는 대한민국에는 너무 흔하니까?

하루 종일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지구 자전을 거부하는 현상(낙동강 대저대교). 서로 다른 지역의 식물개체가 완벽히 일치하는, 컴퓨터의 ‘복붙 능력’을 비웃는 자연의 위대한 복제력(제주 비자림로). 일반인한테는 정체를 쉽게 노출하지만, 유독 슈퍼히어로급 전문가에게만은 흔적까지도 전혀 보여주지 않는, 전문가를 차별하는 멸종위기 동식물의 완벽한 은신술(제주 비자림로, 거제 남부관광단지, 창녕 대봉늪, 제주2공항 등). 울창한 왕버들군락이 유명한 습지에서, 전문가에게만은 자신을 보여줄 수 없다는 왕버들의 완벽한 은폐술(창녕 대봉늪). 지금까지의 자연과학을 비웃는, 인피니티스톤이 펼치는 우주의 대신비가 한반도에서는 일상처럼 일어난다. 그런데 이 기이한 현상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해가 동쪽으로 지게 만드는 인피니티스톤 하나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야외조사 중 카메라 소프트웨어를 구버전으로, 다시 신버전으로 바꾸는 아이언맨 슈트에 있을 원격 AI 제어기술(낙동강 대저대교). 단 1대로 같은 시간, 서로 다른 3곳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로키의 분신술을 구현한 오염측정기계(낙동강 대저대교). 80곳이 넘는 양식장 운영에도, 단 두 곳만 전문가들 눈에 노출시키는 닥터스트레인지의 슬링링 기술을 구현한 양식장(제주2공항). 5차, 6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온 미래인류도 울고 갈 이런 과학혁명이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일상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혁신기술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더 혁신적 기술이 대한민국에는 넘쳐나니까?

소설이나 영화로는 폭망할 황당무계 히어로와 최첨단 과학기술 이야기는 법률에 의해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의 결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서명·공포한 것에 따른 것이니 공신력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 당연히 이 서류의 분석과 평가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전문가는 한결같이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문외한의 문제제기가 크게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시행하는 사업이거나 정부의 중점추진사업이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 이렇게 정부가 솔선수범하니 힘없는 국민이 어찌 안 따를 수 있겠는가?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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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사회.’ 새해의 바람이다. 현실이 강고하다고 상식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이 현실에 구현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016년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광장의 시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이어야 할 이 말을 목이 쉬도록 외쳤다. 그렇게 정권교체를 이루었어도, 헌법 제1조의 상식과 현실의 괴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65%의 득표로 8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지만,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의 득표에도 15% 미만의 의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국민은 주권자로 행사한 권력의 15% 정도를 빼앗긴 셈이다. 이러한 상식 밖의 정치 현실을 뜯어고치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득권 고수에 혈안이 된 거대 정당들의 어깃장으로 누더기가 되어 ‘준’이라는 딱지가 붙고서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대우는 상식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제도의 도입으로 이러한 노동의 상식이 20년 넘게 부정돼 왔다. 너무나 상식과 어긋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이라는 꼼수였다. 모회사에 철저히 의존하는 자회사 정규직은 실제로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민생경제의 ‘민’은 대체 누구인가? 우리나라 ‘민’의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러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허덕이는 상황을 방치하며 약속하는 ‘민생’경제는 자가당착이며 공허한 말이다. 그런데도 올해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가 아예 사라졌다. 지금 ‘민’에게 절실한 것은 현실의 왜곡을 분칠하는 선심성 대책이 아니라 상식이다. 상식 없이는 정의도 공정도 없다. 

지금의 추세대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기후는 붕괴되고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갈 것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온실가스 배출을 막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6기 폐쇄, 신규 7기 건설이라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적어도 의도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도 상식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준위핵폐기물을 쓰레기로 쏟아내는 핵발전은 멈출 줄을 모른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가동을 멈추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건만, 임시저장소를 추가로 건설해서라도 핵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게 현실이다.  

상식을 외면하고도 끄떡없는 현실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현실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래서 바꿀 수 없다고, 그 부작용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과 이윤이 세상을 움직이는 불변의 원리라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장악하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은 탓이다. 하지만 역사는 세상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오늘의 현실 또한 역사의 산물이다. 그래서 바뀔 수 있다. 이 변화는 우리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을 직시하고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이성과 감정을 동원해 스스로 판단”할 때 시작될 것이다(토머스 페인, <상식>).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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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수 없기에 식물의 경쟁은 동물보다 훨씬 치열하다. 영역싸움에서 밀리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동물과 달리 그 자체가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함께 커가는 동종 간 싸움에서 이기면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종의 침입을 막아냄과 동시에 동종 간 영역싸움, 즉 공격과 방어를 함께하면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게 식물이다. 대개 처음에 자라나는 식물은 상대적으로 방어능력이 뛰어나며, 방어를 뚫고 자란 후발주자는 공격능력을 발휘한다.

소나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운명을 타고났다. 다양한 연유로 척박한 흙이 드러나게 되면 소나무는 빠르게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종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데, 솔잎에 다량 함유된 항생물질이 이 역할을 한다. 다른 종의 침입을 막는 데 힘을 쏟지만 종내경쟁도 녹록지 않다. 10년 전후의 어린 소나무숲이 20년 정도의 젊은 숲으로 바뀌는 동안 절반이 죽게 된다. 그리고 50년 정도의 중년 숲으로 변하면서 또 살아남은 개체의 절반이 죽는다. 그나마 소나무숲으로 유지될 경우에 그렇다는 거다. 바닥에 떨군 솔잎은 해가 가면서 썩게 되고 방어능력이 서서히 사라지는데 이 틈을 타 다른 종이 싹을 틔운다. 이들은 크게 자란 소나무 사이에서 보호받으며 빠르게 성장하는데, 더 이상 소나무의 보호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소나무를 공격한다. 스스로는 공격할 수 없기에 자신에게는 해가 없으면서 소나무를 죽일 수 있는 곤충을 유인한다. 소나무를 죽이는 곤충이 곰팡이와 공생관계를 이루는 이유이다. 이렇게 숲은 성숙해간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비해 참 정 없는 것이 자연이다.

피톤치드. 식물이 병원균이나 곤충, 곰팡이에 저항하려 분비하는 물질이다. 핵심은 다른 식물이 싹을 틔우지 못하게 하는 방어기작에 있다. 숲속에 들어가면 이 물질이 우리 몸에 흡수되어 인체의 방어능력까지 키워준다. 그리고 우리 조상은 이 특성을 활용해 식품을 오래 저장하는 데 쓰기도 했다. 대표적인 음식이 송편(松-)이다. 솔잎을 떡시루에 깔고 그 위에 쌀떡을 올리고 다시 솔잎을, 떡을 차곡차곡 쌓아 쪄낸 이 떡은 찌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솔 향이 배어 송편이라는 이름의 참맛을 내게 된다. 송편의 솔잎은 단순히 떡의 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솔잎의 강한 항균작용으로 쉬이 상하는 떡을 오래 보관하고 이 항균물질을 체내로 받아들이기 위한 조상의 지혜이다. 지금은 추석의 대표음식으로 알려졌지만 옛날 조상들은 정월대보름부터 봄까지 주로 먹던 떡이다. 질병에 가장 취약한 때가 계절이 바뀌는 봄이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그런데 이제 이 향긋한 송편을 맛보기 어렵다. 꽤 오래전부터 꿀벌을 죽이는 농약으로 알려진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를 산림에 뿌려왔기 때문이다. 산속 어느 소나무에 농약을 뿌렸거나 주입했는지 모르기에 아예 먹으려 하지 않는 게 속 편하다. 산림청이 안전하다고 사용하던 바이엘사의 이 농약을 유럽연합에서는 올봄부터 경작지에서조차 사용을 금지시켰다. 정부가 이제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불행히도 멀쩡한 산에 농약을 뿌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왜 숲의 성숙을 막으면서 깨끗한 숲을 오염시키는지, 경쟁에서 도태된 나무의 무덤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는 군색하다.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서 소나무가 잘 자랐던 것은 솔숲의 마른 솔가지와 자연스레 죽은, 경쟁에서 도태된 소나무를 겨울마다 거두어갔기 때문임을 외면하지는 말길 바란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멀쩡한 변화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상황을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30년이면 이미 오래 해보지 않았는가? 2020년에는 자연의 섭리인 숲의 성장을 더 이상 재선충이라는 재난프레임으로 가두어 전국을 농약숲으로, 보기 흉한 플라스틱묘지로 만들지 말길 바란다.

올봄에는 농약냄새 대신 뒷산의 솔잎으로, 그 이름에 걸맞은 향긋한 송편 한 점을 먹고 싶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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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며칠 안 남았다. 2010년대의 마지막 해를 지나 2020년을, 2020년대의 첫해를, 맞이하게 된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시간을 따라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 변화에 민감해져야 변화에 맞는 삶, 변화를 이끌어내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갈수록 기후변화가 단지 기상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우리 경제와 삶 자체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갈수록 강화될 조짐이기에 더욱 그렇다. 가디언지 제안에 따라 “기후위기”로 불릴 만큼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가운데 영국이나 캐나다, EU 등 “기후위기 비상사태”란 인식을 기초로 2050년 온실가스 배출 ‘넷 제로(순 배출량 0)’ 선언 국가들이 늘고 있다. 화석연료 연소가 주된 이유라 기후위기 완화방안으로 에너지 소비 절약과 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확대를 세 축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이 세계적으로 추진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과 경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서는 벌써 달성한 곳도 있지만) 재생에너지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서 몇 년 이내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기존 화석연료나 원자력 발전단가와 같아지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에 도달하고 내연자동차와 원유 수요 정점이 2020년 이후 10년 이내 나타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누군가에겐 상상 너머의 세상처럼 보이지만 이미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아직은 미미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소위 말하는 ‘에너지 시민’이 사회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쓰는 에너지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들어져 어떻게 자신에게 왔는지 인식하고, 다른 지역주민이나 미래세대, 다른 생물종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윤리적 책임감을 느끼기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에너지 생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이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 시민은 낭비되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고효율 기기를 사용하면서 에코마일리지나 탄소포인트제에 가입하고 자신의 집에 태양광이나 미니태양광을 달거나 에너지협동조합의 회원으로 나섰다.

기후변화는 여전히 막연하게 심각하다 여겨질 뿐,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지금, 여기, 우리’ 문제로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한 듯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세먼지를 매개로 에너지에 대한 시민 관심이 부쩍 늘었다. 경유차와 경유를 사용하는 건설 기계, 석탄화력발전이 미세먼지 배출의 41%가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가시적이고 체감 가능하며 당장 우리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문제라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올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란 이름으로 집중 관리에 들어갔고 별다른 사회적 저항이 없었다. 제도 시행의 당위성에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미세먼지의 최대 진원지로 중국을 지목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으나 한·중·일 공동연구를 통해 국내 미세먼지의 약 32%가 중국발로 확인되었다. 국내 배출이 더 많기에 우리 의지와 정책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11월 수입 경유차 구매가 10월에 비해 117.4%나 증가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하지만 지난 8월 1000만대를 넘어섰던 경유차 대수가 정책과 시민 협조로 11월엔 995만대로 낮아졌다.

결국 문제를 인식한 사람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제도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제도의 변화는 결국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이 늘어날 때에야 가능하다. 시민의 압력이 견고한 제도와 구조의 관성을 바꿔낼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엔 더 많은 시민이 에너지 시민으로 탈바꿈하고 이들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약이 있기를 희망해본다. 에너지 전환의 힘은 결국 시민에게서 나온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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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는 어쩐지 조금씩 푸근해진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민족’을 약 4조7000억원에 인수하면서 한국·독일 회사가 아시아 음식배달 시장 평정에 나선다니 기뻤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숙제를 마쳐서 그런지 하마터면 성스러워질 뻔했다.

파타야 코란섬 바위틈마다 폐비닐이 쌓이면서 섬 한가운데엔 5만t의 쓰레기 산이 생겼다. 인도양·남태평양 섬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통에서 못 빠져 나온 소라게 57만마리가 폐사했다. 스코틀랜드 해안에 쓸려온 죽은 고래 배 속에서는 밧줄·그물·플라스틱 컵·장갑이 100㎏ 넘게 나왔다. 태국의 야생 사슴 배 속에서 나온 쓰레기들은 플라스틱만 7㎏에 달한다. 겨우 지난 한 달간 일어난 일들이다. 남의 나라만의 이야기일까. 작년 7월 쓰레기 대란으로 불법 수출된 한국산 쓰레기산이 필리핀에서 매일 밤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르고 있다. 지난 4월 정부는 490억원을 들여서 전국에 산재한 쓰레기 산을 없애겠다 했지만 아무리 치워도 계속 쌓이는 ‘쓰레기산’들은 지자체 세금을 좀먹는 밑 빠진 독이 되었다.

최근 한 모임에서 환경교육 전문가 오창길 박사는 환경교육 예산이 26억원으로 작년보다 두 배 증액됐다고 기뻐했다. 연간 예산 500조원의 나라에서, 수백억원을 들여 쓰레기를 치워도 치워도 계속 쌓이는 나라에서 26억원에 환호하자니 씁쓸했다. 우리나라 폐기물 처리비용은 연간 23조원에 육박한다. 게다가 수도권 쓰레기 대체매립지 조성도 불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현재로서는 줄이기가 답이고, 플라스틱 생산부터 소비, 폐기와 재활용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플라스틱은 석유추출물로 만든다. 당연히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기후재난으로 지구촌이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이산화탄소가 계속 증가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다행히 양식 있는 우리나라 소비자들 77.4%가 대형마트의 플라스틱 포장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환경부에서도 마트나 카페에서 비닐과 플라스틱 컵을 금지했고 플라스틱 천국 장례식장에서도 2021년부터는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된다. 플라스틱 빨대는 2022년부터 금지라는데 왜 그렇게 늦춰져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탈리아 술집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없애려 파스타 빨대를 사용하기도 한다니 젊은 스타트업에 아이디어를 공모해봐도 좋겠는데 나서는 이가 아직 없는 것 같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인 로열 노스 데번 골프클럽은 환경 보호를 위해 내년부터 플라스틱 티(tee)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플라스틱 티가 나무 티에 비해 새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게 유해하고 새 또는 야생동물들이 쉽게 물어가기 때문이다.

독일의 화학기업 바스프는 환경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폐플라스틱에서 오일을 추출하는 기술에 2조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기업뿐이 아니다. 영국의 대학생은 생선 폐기물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 ‘마리나텍스’로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를 올해 수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슈퍼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하였고 기업과 상용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연구팀도 빙어 내장서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드는 미생물을 찾아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북 동안동 농협에서는 ‘컵과일’용으로 좀 비싸도 생분해되는 옥수수 전분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하였고, 경기 성남시에서는 라면봉지 등 폐비닐로 만든 가로수 보호판을 시범적으로 설치하였다. 현대차에서도 제네시스 시트에 가죽을 버리고 내년부터 친환경 플라스틱을 쓰기로 했다니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란다.

플라스틱 덜 쓰고, 재활용되게 잘 버리고, 친환경적 대안을 정부, 기업, 시민이 함께 찾았으면 한다. 특히 아시아 배달시장에 진출할 배달의민족이 거액을 기반으로 꼭, 친환경 용기를 만들어주길 빈다. 당신이 버린 플라스틱, 당신은 안 먹는다. 당신 손자가 먹는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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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콜린스 사전과 옥스퍼드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각각 ‘기후파업’과 ‘기후비상’을 선정했다. 올해 이 두 단어의 사용 빈도가 이전에 비해 100배 정도 늘었다는 선정 이유는 세계적으로 기후에 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아졌고 기후 관련 담론도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열린 ‘기후행동정상회의’도 이런 변화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정상들로부터 기후비상에 걸맞은 말과 행동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힘들다. 2년 전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공식 선언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에서 노후석탄화력발전소 4기 감축과 2022년까지 6기 감축 계획을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책의 일환으로 발표했지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의 추가 건설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내게는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을 향해 반복해 외쳤던 “How dare you?”라는 날선 비판이 ‘올해의 말’로 남는다. 영상에서 본 툰베리의 눈빛과 표정과 억양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절박함,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세계에 대한 원망과 분노, 반드시 변화를 만들겠다는 결연함이 묻어났다. 자신들의 삶을 더 이상 빼앗지 말라며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멸종위기’를 외치는 현실이 보여주듯, 기후위기를 우려하고 대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늘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뿌리인 우리의 삶의 양식을 바꾸자는 생각과 의지는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시사주간 타임이 지난 11일 공개한 타임 표지. AFP연합뉴스

온실가스를 에너지 쓰레기로 보면, 우리는 자원의 한계 이전에 자원을 소비한 결과인 쓰레기의 한계에 먼저 봉착한 것이다. 온실가스만 한계가 아니다. ‘5초-20분-500년’ 1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빨대의 평균 생산-사용-분해시간을 상징하는 숫자다. 플라스틱 제품은 20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니, 우리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소각된 것을 제외하면 지구 어딘가에 고스란히 쌓여 있을 것이다. 코카콜라 회사가 매년 생산하는 플라스틱 병만으로도 지구를 700번 감을 수 있다고 한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 형성된 쓰레기 더미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하여, ‘GPGP’라는 태평양의 쓰레기 더미는 그 크기가 한반도의 6배가 넘는다. 핵발전소의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사용후핵연료를 쌓아온 핵발전소의 임시저장소 포화율은 평균 90%다. 조만간 고준위핵폐기물을 보관할 곳이 없는 핵발전소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핵발전에 대한 근원적 고민은 없고, 임시저장소를 늘릴 생각만 한다. 쓰레기의 근원인 ‘소비주의’ 생활양식은 바뀔 기미가 없다. 생산과 소비는 진작되어야 하고,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쓰레기의 경고는 분명하고 단호하다. “더 이상, 이렇게 갈 수 없다.” 이런 규모의 쓰레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생산과 소비,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아니, 인류의 존속 자체가 지속 불가능하다.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조만간 기후붕괴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은 허황된 위협이 아니라, 오랜 연구 결과에 근거한 과학적 경고다. 우리의 문제는 놀랍게 진보한 기술의 결과라는 사실은 기술의 진보로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지극히 비현실적임을 보여준다. 이 길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호소와 주장이 현실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도 기술의 진보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는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볼 수 있게 된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새해에는 이 말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보고 현실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눈과 마음을 청한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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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터 잡은 마을에 대대로 살아가는 농경사회에서 살기 좋은 땅, ‘명당’을 차지하려는 욕망은 누구나 강했다.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영화적 상상이 화성 이주를 시도하는 우주시대에도 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을 발휘하는 이유일 것이다. 부귀의 땅을 찾는다는 단편적 의미로 변질되어 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이 높아졌지만, 풍수지리(風水地理)는 현대학문인 생태학(風水)과 지리학(地理)이 결합한 융·복합과학이라 할 수 있다. ‘왕을 만드는’ 땅에 대한 탐욕이 아닌 ‘사람 살리는 땅’으로 풍수를 바라볼 때 이 경험과학에 기초한 심층생태학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로 바람을 피하고 물을 얻는 즉, 삶의 터전에서 최우선으로 피할 것과 얻을 것을 조합한 이름이다. 사계절이 반복되는 우리나라에서 과거 농사를 지으며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 가지는 기근과 혹한이다. 이 기근을 막을 ‘물을 얻는 곳’과 혹한을 견딜 ‘바람을 막는 곳’, 바로 배산임수와 좌청룡우백호라는 말로 함축되는 땅이 바로 명당인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화를 면하고 조금이나마 평안하게 살기 위한 곳을 안내하는 지침으로, ‘잘되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지 말자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적 장소는 그리 많지 않고 보통 어딘가는 부족하기 마련이다. 물이 모이는 곳은 필히 빠져나가는 곳이 있기에 대체로 바람막이가 취약한 방향이 생기게 된다. 이 부족의 보완이 풍수의 비보(裨補)로, 보통 찬바람을 막아줄 숲을 마을 외곽에 조성하게 된다. 마을숲은 외부의 찬바람을 막고 마을 안의 온기를 유지하는 곳으로, 모두를 위해 잘 보호되어야 했기에, 많은 전래동화의 소재가 된 토테미즘적 숭배사상이 생겨난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던 경험과학은 이제 생존이 아닌, 더 잘 살기 위한 선택으로 바뀌었고 비과학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 전통지식을 밀어낸 일등공신은 단연 미세먼지의 주범인 화석연료이다. 문제는 여기서 나타난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지역은 분지형 도시 즉, 바람을 잘 막는 곳이다. 보통 미세먼지 농도는 발생량이 월등히 높은 서울과 경기가 높아야 하는데, 백두대간이 가로막은 강원도 영서지방 소도시들이 자체발생 미세먼지가 적음에도 농도가 높은 날이 많은 이유다. 내부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을 가두는 것에 더해, 서쪽에서 불어온 외부 오염물질까지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기에 그렇다.

이제 겨울의 공포는 북풍한파가 아니라 미세먼지가 된 지 오래고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은 모두를 전문가로 만들 정도다. 그리고 설익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도심에 숲을 조성하고 외곽 숲을 간벌하여 밀도를 낮추는 것이다. 오랫동안 외부의 바람을 막고자 숲을 조성해 왔는데 이제 반대로 숲을 조성해 미세먼지를 내보낸다? 숲은 추울 때는 바람을 막고, 미세먼지가 많을 때는 바람을 불게 하는 ‘신박한’ 능력을 지닌 것일까? 안타깝게도 추울 때 미세먼지 농도가 덩달아 높다. 과거 땔감의 채취는 숲의 밀도를 낮췄고, 밀도가 낮아진 숲은 바람을 더 잘 막아왔다. 도심 주변의 숲은 더 이상 연료공급원이 아니니 밀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레 바람이동이 빨라지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숲의 밀도를 낮추는 간벌작업을 미세먼지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밀도가 낮은 숲을 도심에 만들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환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작업을 미세먼지 저감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하늘을 보며 남 탓하기 바쁜 계절이다. 비록 3분의 1이 중국발이라 하지만, 역으로 3분의 2는 우리가 만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분지에서 미세먼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외부의 깨끗한 바람을 얻는, 장풍득수(藏風得水)가 아닌 득풍득수(得風得水)를 위한 도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줄 단기 방안은 없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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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능이 끝나고 대입 결과에 따른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하는 시기, 다시 교육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어느 때부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입시, 그것도 대입과 등치되어 버렸다. 교육은 우리 국민 최대 관심사 중 하나지만, 교육이 화두가 되면 정시냐, 수시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주를 이룬다.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 

며칠 전 유엔환경계획(UNEP)은 ‘온실가스 격차 보고서’를 통해 작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이대로 둔다면 금세기 말 3.2도가량 지구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광범위한 기후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혁명기보다 1도가량 높아졌다. 파리협정을 통해 2도 이내로, 더 노력해서 1.5도 이내로 제한하자고 전 세계가 합의했지만, 갈 길이 멀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별로 많지 않다는 거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일부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런 청소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기후위기에 대해 제대로 알거나 관심을 가진 청소년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기후변화만 문제가 아니다. 미세먼지도 심각하고 폐기물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예전 공해가 심각했을 때는 대부분 산업체가 문제였고 몇몇 기업과 공장을 규제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폐기물 문제는 산업체 책임이 크고 정부 역할이 중요하지만 일반시민 모두가 관여되어 있다.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무엇이 왜 문제인지 알고 해결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에 ‘환경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 환경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학교 관계자들은 말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전등 끄기, 마스크 쓰기 등 필요한 행동수칙을 잘 알려주고 있단다. 환경교육은 그런 것만이 아니다. ‘환경소양’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발생 원인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해당 문제가 현세대의 여러 집단과 지역에, 더 나아가 미래 세대와 다른 생물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을 넘어 사회적인 해결방안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수용성이 높아져 필요한 비용도 기꺼이 부담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중등학교 환경교과 선택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07년 20.6%에서 2018년에는 고작 8.4%에 불과했다. 그나마 환경교과 선택 학교에서도 84%가 환경전공자가 아닌 타 교과 교사인 상치교사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2009년 이후 단 한 명의 환경교사 신규 임용이 없었다. 전문지식을 가진 환경교사가 환경교과를 가르쳐야 한다고 하면 교육부, 교육청, 학교는 한결같이 말한다,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 과목이 너무 많아서 환경교육까지 할 틈이 없다고. 하지만 이제 환경소양은 환경위기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으로, 학생 선택에만 맡겨두는 것은 공교육 당국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최근 ‘환경교육진흥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학교 환경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 반기문 위원장은 환경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교육부 장관을 만나 기후환경 교과과정을 건의하겠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교육이 대입을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곤란하다. 교육은 미래 시민 양성을 위해 마땅히 국가가 해야 할 공공적 임무다. 환경교육은 이제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 교육 당국은 지구 상황과 세계적인 흐름을 주시하고, 학교 환경교육의 책임자로 의무를 다하기 바란다. 학교 환경교육은 교육부의 의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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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복업계 상품기획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과거 데이터가 안 통하기 때문이란다. 최근 2년간 기존 틀과 전년 인기상품 데이터에 의지하는 기획이 시장에서 더 이상 안 먹혀 난리란다. 연간 사업계획대로 움직이기엔 변수도 많고 시즌 구분도 불분명해져서 지금 당장 필요한 아이템을 발굴하느라 매월 분주하다고 한다. 비단 여성복 업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06년도 겨울 무렵 공영방송 9시 뉴스 기자와 인터뷰를 했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구가 더워져 물에 잠기고 태풍 같은 재난도 많아진다는데, 과연 사실인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지난 20세기 동안 4배 증가한 인구가 20세기 100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의 총량은 그 이전 1000년 동안 사용했던 에너지의 10배나 증가했다. 문명은 에너지 소비와 동의어다. 소비의 와중에 20세기에 환경은 집중적으로 파괴됐다고 J R 맥닐의 &lt;20세기 환경의 역사&gt;를 인용해 답했다. 기자의 얼굴엔 짜증이 묻어났다. “석유석탄 에너지의 부산물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지구를 더 덥게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나무가 한반도에서 사라지고, 바닷속은 아열대 어종으로 바뀌어서 밥상이…”라고 열을 내며 이야기하는데 기자가 마이크를 껐다. 기자는 “그만합시다. 아니 환경운동이 중요하긴 한데 그렇게까지 과장해가지고 현실성이 있겠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날 뉴스엔 온난화로 재난이 많아진다는 짧은 멘트만 방송되고 말았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지난 11월15일 1966년 이래 최악의 홍수로 수위가 1.54m에 달하면서 도시의 70%가 물에 잠겼다. 공교롭게도 마침 그때 베네치아 지방 시의원들은 페로 피니 궁에서 기후 비상사태에 대해 토론을 마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안을 부결시켰다. 가디안의 보도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고, 디젤 버스를 오염이 적은 차량으로 교체하며, 난로를 폐기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들을 포함하는 기후변화 대처안이 부결된 지 몇 분 후의 물난리라니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제 기후 재난이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는 게 으스스할 뿐이다.

2018년 세인트 마크 바실리카성당이 물에 잠겼을 때 수리비가 약 220만유로로 추산됐다. 이번엔 오페라 하우스인 테아트로 라 페니스도 파손됐고 무라노 섬의 성당도 심하게 훼손됐다 하니 천문학적 액수가 들 것이다. 여기뿐일까. 지난 11월13일은 캘리포니아 산불 1주기가 되는 날이다. 85명 사망으로 청구된 보험금만 약 13조원에 달한다.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연방준비제도에서는 기후변화로 지난 5년간 미국 경제에 580조원의 손실이 있었고 방치하다간 금융위기를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산하 연구기관인 EIU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성장률이 기후변화로 향후 30년간 3% 하락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제 기후변화는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자리잡았다. 이 위협적 현실에 과학자들이 지난 11월6일 행동에 나섰다. 153개국 1만1000여명의 과학자들은 즉시 기후위기에 대응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막대한 고통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미 닥친 기후위기가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가속화하고 있다”며 “환경과 인류의 운명에 대한 위협이 예상보다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EU에서는 2020년 기후변화 문제 대응에 21%의 예산을 책정했고, 이낙연 총리도 제5차 국토종합계획안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고려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상품이 시장의 지지를 받으면 기업은 돈을 번다. 이 세금으로 정부는 많은 활동을 펼친다. 세상에 유익한 화두를 던지고, 위협을 미리 알리고, 인식을 바꿔온 환경단체는 어떤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제성장과 상관없이 여전히 광야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제 후원의밤 시즌이다. 기후변화에 맞서는 길, 멀지 않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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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의 하나다. 1~2분에 한 대씩, 거의 쉴 새 없이 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이착륙 지연은 일상이다. 지난해 제주공항 이용객은 3000만명에 달했고, 국토교통부는 2045년에는 이용객이 4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의 공항으로는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공항을 신설하면 더 많은 사람이 제주에 올 것이고, 그만큼 경제적 효과도 커질 것이다. 대부분의 운항 노선을 제주에 의존하는 지방 공항들도 활성화될 것이다.” 제2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리다. 

제주공항의 수용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사전타당성조사를 의뢰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기존 공항의 개선과 확장으로 미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용역사업 자체와 보고서가 수년간 은폐되었다는 것이 지난 5월 드러나면서 의문은 증폭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제주공항은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과 그 함의를 외면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 ‘진짜’ 문제는 제주공항의 수용력이 아니라 제주도라는 ‘섬’의 수용력이다. 제2공항은 제주공항이 아니라 제주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전국 30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주 제2공항 백지화 전국행동’이 7일 서울 광화문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연 뒤 제2공항 신설 강행 중단과 입지 선정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공신력 있는 검증 실시 등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제주는 이미 사회적, 환경적 수용력에서 한계에 이르렀다. 2005년에 500만명 정도였던 관광객이 2015년에 1500만명으로 급증했다. 제주도보다 넓은 하와이나 오키나와의 연간 관광객 900만명보다 훨씬 많다. ‘오버투어리즘’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제주도의 현실을 묘사할 때 으레 등장하는 말이다. 공항을 나서면 교통난과 주차난이고, 거의 언제나 ‘공사 중’이다. 쓰레기매립장은 포화상태이고, 매립하지 못한 쓰레기는 노상에 방치되기 일쑤다. 지난 3월엔 쓰레기를 필리핀에 불법 수출했다가 들통이 나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제주하수처리장에서 정화하지 않은 오폐수를 제주 앞바다에 무단 방출하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제주에 사람이 너무 많다. 제주공항보다 제주도가 견디질 못한다. 그런데 공항은 하나 더 지을 수 있어도, 제주도를 하나 더 만들 수는 없다. 기존 공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서, 제2공항 건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악화이고 확대이다. 지금도 숨이 차 헐떡이는 사람의 숨통을 조이는 격이다. 이렇게 가면 제주에 지속 가능한 미래는 없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는 현 정부의 공약이다. 공약이 아니라도, 사회의 안전과 지속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제주의 진정한 안녕과 발전은 공항의 확대가 아니라 섬의 한계를 존중할 때만 가능하다. 제2공항 문제는 ‘성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성장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인가? ‘거인증’은 성장호르몬의 과다분비로 생기는 질병이다. 한계 없는 성장은 당사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준다. 우리 사회의 성장호르몬은 적정한가? 기후위기와 쓰레기를 비롯해 ‘과잉’의 징후는 이미 도처에서 넘쳐난다. 

지금의 인구만으로도 힘든데, 제2공항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늘어나는 그만큼 제주 주민의 삶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제주의 자연과 생활환경은 더 많이 훼손될 것이다. 관광객들은 망가진 제주의 모습에 실망하고 사람에게 치인 채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항 건설인가? 공항 건설로 누가 혜택을 보는가? 반짝 경기라도 아쉬운 정부인가? 토목건설 업체인가? 공군기지가 필요한 건가? 제주도민 대부분이 찬성하는 ‘공론조사’는 왜 거부하나? 정부는 왜 합리적인 비판에 눈과 귀를 막고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듯 밀어붙이기만 하나? 이렇게 제2공항 사업은 의문투성이다. 그리고 의문을 해소할 책임은 입만 열면 공정과 소통을 강조하는 정부의 몫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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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출근을 위해 입은 셔츠의 팔꿈치가 닳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오래 입었나 보다. 주변이 다 해져 꿰매 입지는 못하겠지만 수선을 맡기면 더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옷을 버리지는 않았다. 쓰레기를 손수레로 마을 입구까지 가져다 버려야 하는, 그 흔한 배달음식도 오지 않는 시골에서의 생활은 이전까지 남들에 비해 절제된 소비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고 6년이 지난 지금은 종량제봉투가 채워지는 시간이 크게 늘었음에 나름 거창한 일을 하는 듯 소소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

몇 년 전,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늦은 저녁 한 환경단체 활동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환경보전활동 지원 프로그램 신청서를 영문으로 제출해야 해 영작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출장으로 피곤하기도 했고 좋지 않은 영어실력이기에 사양하려 했으나, 시간은 촉박하고 급히 부탁할 사람이 마땅히 없다기에 수락하면서 어디에 지원하는가를 물었다. 활동가는 ‘파타고니아’라고만 얘기해 주었고 늦은 밤까지 신청서를 작성해 보내주었다. 작업을 하면서 ‘파타고니아’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기에, 우리나라 정부도 외면하는 풀뿌리 환경보전활동에 계획서를 심사하면서까지 지원해주는지 궁금한 생각은 들었으나 굳이 찾아보는 데까지의 행동으로 이르지는 못했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되었던 것인데 말이다. 잊을 만할 즈음 그 활동가에게서 펀드를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제야 이 나라는 어디에 있으며 왜 우리나라 환경단체에까지 지원을 해 주냐고 물어볼 수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등산용품 회사라고.

이후 시간이 지나고 2년 전, 미국 자연공원을 두루 답사하면서 이 브랜드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다른 등산용품에 비해 빛바랜 것 같은 색상과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투박한 디자인에 더해 가격까지 고가인 제품이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이 회사가 단순히 매출의 1%를, 이익의 10%를 전 세계 풀뿌리 환경보전활동에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회사 설립 이후 친환경을 위한 일관된 노력이 꾸준하게 축적된 역사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회사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품이라도 환경적으로 건전하지 않아 생산을 포기했던 창업주의 의지와, 지구환경 개선을 위한 각종 실험과 실천, 그리고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리라. 이제 이 회사의 빛바래 보이는 제품은 화학염색제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리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며, 패스트패션과는 거리를 둔 듯한 투박해 보이는 디자인은 단순함과 실용성을 위한 지속 가능 패션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그 끝에서 자기네 옷을 사지 말고 수선해 입으라고 당당하게 광고하고 있다.

이익보다 환경보전이 우선인 기업운영의 확고한 신념과 실천으로 만들어낸 지속 가능이라는 ‘가치소비’ 트렌드는 환경에 관심이 없던 다른 회사들까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데, 급기야 올봄에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드는 플리스 조끼를 친환경 기업에만 판매하겠다는, 소비자를 판매자가 선택하겠다는 으름장 선언까지 하고 말았다. ‘가치소비’로 눈을 돌린 많은 젊은 회사원들이 이 조끼를 업무용으로 원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기업이 손님을 가려 물건을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이 돈으로 점철된 계급이 아닌, 환경보전의 실천이라니 참 부러울 따름이다.

환경문제는 날로 심해지지만 시민과 정부의 환경가치 인식은 더욱 낮아지는 아이러니의 대한민국이다. 사회의 절대약자를 위해 꼭 필요한 보전활동 자체가 소외된 약자가 됐다. 환경을 생각하고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존중받는 사회로의 환경가치 인식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는다.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학교의 환경교육과 시민들의 풀뿌리 환경활동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꾸준한 지원과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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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 지면에 “어떤 ‘에너지 미래’를 만들 것인가”란 주제로 글을 썼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그림에서 35년 뒤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생활의 변화를 통찰력 있게 그려낸 걸 보고 우리의 에너지 미래를 상상해 보자고 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흔히 언급하는 2050년은 앞으로 30년 정도밖에 안 남았다. 앞의 그림에서 내다본 기간보다 5년이 더 짧다. 이 화백이 1965년에 상상한 재생에너지 이용은 기후위기를 주된 동인으로 더 강력하고도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이제 불가피하고도 비가역적인 세계적 흐름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있기 어렵다. 

오늘은 그런 에너지 전환으로 우리의 일자리가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어릴 때 동네엔 으레 연탄가게가 있었다. 겨울이면 김장하듯 겨우내 태울 연탄을 집집마다 창고 가득 들여놓는 게 일이었다. 이제 연탄배달부들이 별로 없다. 연탄을 연료로 쓰는 가정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또 좀 더 후엔 프로판가스통 배달부들이 있었다. 프로판가스로 취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그분들도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과학기술 발전과 에너지 이용방식 변화는 생활의 변화와 더불어 일자리도 변화시켰다. 기술 변화에 따른 이런 변화는 막기 어렵다. 수용 여부를 결정할 여지가 별로 없다. 이러한 변화는 빨리 감지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사회 혼란과 충격, 고통이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명한 대응은 변화 추세를 먼저 읽어내어 변화 흐름을 좇아가기보다 선도하는 것이다. 변화된 일자리에 맞는 새로운 인력을 길러냄과 아울러 일자리 전환이 기존 일자리 종사자를 실업상태로 몰고 가거나 생계 곤란에 빠지지 않도록 재교육, 재훈련이 필요하고 촘촘한 사회복지 안전망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은 바로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일자리 변화를 가져올 엄청난 사건이다. 에너지 전환이란 화석연료와 원자력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 주된 에너지원이 단순히 바뀌는 것 이상의 변화다. 공급지향적 중앙집중식 에너지체계에서 수요관리 위주의 분산적 에너지체계로의 전환으로,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과 함께 기존 일자리의 축소와 쇠퇴를 동반한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체계에서는 에너지 효율 향상 기술의 개발과 기기 설계 및 제작, 재생에너지 이용 기술 개발과 설비 설계 및 제조, 제품의 유통과 설치, 운영과 유지, 보수, 폐기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다양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효율 향상을 위한 사물인터넷(IoT) 이용이 활발해지고 지역적으로 소형화된 재생에너지 발전소 운영 기술과 전력망 운용기술이 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수요자원거래시장 운용이 활성화되고 에너지 프로슈머 간 거래까지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지난주 열린 아시아미래포럼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화되고, 옛날 방식의 에너지 체계인 원자력과 화석 연료체계를 운영 중인데 이는 곧 쓸모없다는 게 판명날 것”이라며 “태양광과 풍력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저렴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유공장, 파이프라인, 주유소 등은 가동을 멈추고 관련 산업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씨티그룹은 화석연료시대가 저물어감에 따라 100조달러 규모의 화석연료 관련 설비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 발표했다. 석탄화력발전에 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넷플릭스시대에 비디오에 투자하는 격이란 비유도 있다. 최근 영국, 스코틀랜드 해상풍력 가격은 39~41파운드/MWh로서 힝클리포인트C 원전의 93.5파운드/MWh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다.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래서 만들어질 일자리와 줄어들 일자리가 무엇인지 잘 판단해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기후만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 일자리도 바꾸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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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로렌츠(1903~1989)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73년 행동연구가 최초로 노벨상(의학 부문)을 수상했다. 회색기러기가 부화한 후 처음 만난 대상을 어미로 알고 특정 행동을 따라하는 행동, 즉 각인(Imprinting) 학습 현상을 밝혔기 때문이다. 로렌츠 덕분에 탄생 직후 특정한 시기(critical period)에 익힌 행동은 성장 후의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주로 종(種)의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행동양식들이 이때 최초의 양육자를 통해 전수된다고 한다.

2005년도 스탠퍼드 심리학 연구팀의 결과는 더 재밌다. 음식, 옷이나 음악 취향, 심지어 기부행위까지도 어느 연령대까지 해보지 않으면 시도하기 어렵다 한다. 대체로 13세에서 28세 정도까지 젊은 시절에 해보지 않으면 나이 먹어서 새롭게 시도하기 어렵다는 장기종단 연구였다. 그만큼 행동변화가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들을 우리는 잘 새기고 있나?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재난 상황이 우리 생존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 맞나?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배운 적 있는지 묻고 싶다. 1995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가 만든 ‘교육학 용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환경교육은 환경에 관한(about), 환경 내의(in) 또는 환경을 통한(through), 환경을 위한(for) 교육이라고 한다. 즉 개인이나 집단이 인류의 생존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환경보존과 사회정의를 위한 가치와 태도를 개발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기술을 함양하는 교육 활동을 말한다. 좋은 뜻은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실제론 어떤가.

환경 교과목이 독립 교과로 시작된 것은 1992년이다. 마땅한 교사들이 양성되어 있지 않아, 교련 선생님이 수업을 담당했다. 수학 전공자가 수학을 가르치고 영어 전공자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마땅하거늘 2009년 이후 10년 동안 환경교사 임용은 0명이다. 환경수업은 선택 과목으로 분류되어 있어 채택한 학교도 손꼽을 정도다.

작년 5월 국민환경의식조사에 따르면 88.8%의 응답자가 기후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고 응답했고,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환경교육의 확산이라고 답하였다. 엊그제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2019 탈석탄 기후변화대응 국제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성장해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가 됐을 때 기후변화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환경 교육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모두 당위의 세계, 말의 세계에 살고 있다. 환경부가 환경교육 예산을 아무리 높여봐야 그 몇십억원을 기재부에서 깎는다. 민생에 직접 도움되지 않으면 증액하기 어렵다고 한다. 환경을 뺀 민생이란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정부는 이미 내년 SOC 예산을 올해보다 12.9% 늘어난 22조3000억원으로 배정했다. 대부분 철도나 도로 등 토목 공사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라도 환경교사를 늘리고, 공교육을 대신해 민간이 하고 있는 환경교육도 확산하게 지원하면 안되나? 정부 지원 없다고 행동을 멈추랴.

환경운동가들은 환경인지감수성을 높여 행동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고 있다. 예컨대 환경재단이 16년째 해오고 있는 ‘환경영화제’는 복잡한 환경문제를 드라마로 속삭여주는 환경교실이다. &lt;플라스틱 차이나&gt; 다큐 한 편으로 중국 정부는 쓰레기 수입을 중단했다. 망망대해에 한배를 타고 디지털 세계를 떠나 대자연과 교감하며, 선상의 에코라이프를 체험하는 ‘그린보트’는 움직이는 환경학교다. 파도 위에서 자연과 내가 직거래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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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티칸에서는 10월6일부터 27일까지 ‘아마존 지역을 위한 특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가 열리고 있다. ‘아마존, 교회와 통합 생태(integral ecology)를 위한 새로운 길’을 주제로 한 이번 시노드에는 아마존 9개국의 주교들을 중심으로 원주민과 전문가들이 참석하고 있다. 2년 전, 프란치스코 교종은 위기에 처한 아마존 원주민과 열대우림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는 시노드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교회 현안이 아니라 이번처럼 ‘아마존’이라는 특정 지역에 관한 시노드를 개최하는 것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아마존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관심과 우려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학적 원리에 기초해,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연생태계를 환경의 차원만이 아닌 경제, 사회, 문화,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통합 생태”를 제안한다(<찬미받으소서>). 통합 생태의 관점에서, 아마존의 열대우림과 원주민은 불가분의 공동 운명체다. 지난 7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마존의 불’은 그곳의 열대우림을 놀라운 속도와 규모로 집어삼키고 있다. 올해 브라질 아마존에서는 근 8만건에 달하는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지난해에 비해 84%나 늘어난 불은 주로 축산업에 필요한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한 방화로 일어났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쇠고기 수출국이다. 열대우림의 위기는 곧 원주민의 위기를 뜻한다. 아마존의 일부로 살아온 원주민들은 숲이 소실되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원주민의 저항은 생명의 위협을 불러오기 일쑤다. 이렇게, 아마존을 가장 잘 알고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진다. 

아마존 열대우림 소수민족 대표들과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이 7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의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개막 미사에서 최근 발생한 아마존 대화재를 언급하며 아마존 보호를 위한 성직자들의 과감한 행동을 촉구했다. 바티칸 _ AFP연합뉴스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는 원주민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위기다. 기후위기 시대에 아마존은 거대한 탄소 저장소로써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열대우림이 불에 타 없어지면서 머금고 있던 탄소를 뱉어낸다. 숲을 없애고 들어선 축산업도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기온 상승은 가뭄 발생을 촉진하여 땅을 건조하게 하고, 마른 땅은 불에 더 취약해진다. 오늘 우리가 아마존의 악순환에서 목격하는 것은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다(<찬미받으소서>). 

아마존의 불은 형태만 달리하여 세계 곳곳을 삼키고 있다. 이 불을 지피고 퍼뜨리는 것은 제어될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이다. 끝없는 경제성장과 개발의 환상에서 깨어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불이 초래한 기후위기는 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인간이 걸어온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이 시대의 종말론적 징표다. 과학은 분명하게 말한다. 지금의 길은 인간이 자초한 ‘종말’로 가는 길이고, 종착지는 그리 멀지 않다고.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은 과학이 던지는 이 선명하고도 섬뜩한 경고에도 막무가내다. 눈을 감고 보려 하지 않는다.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안’을 찾자는 제안에는 종종 어떻든 현재의 삶의 방식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속내가 들어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은 오래된 길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삶의 방식의 근원적 전환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탐욕에 물들지 않은 맑은 눈은 현실을 직시하고, 분노하고 항의한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초래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기술적으로만 해결하겠다고 하는가(그레타 툰베리). 아무 일도 없는 척, 지금의 길을 계속 가겠다는 기득권의 위선과 기만을 집어치우라는 질책은 새로운 길을 찾자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 이 질책과 호소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아직은 우리가 희망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부끄러움이 우리를 움직인다면 말이다. 우리가 그만큼은 성숙했으면 좋겠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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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1일 지면게재기사-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정부와 기업이 외면하는 사이 그 피해의 중심에서 살아갈 10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의 툰베리 연설은 환경운동의 시대적 흐름이 바뀌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보인다. 그가 변화를 외친 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전환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친환경을 앞세운 수소자동차 밀어붙이기가 국회 내 수소충전소 설치로 브레이크 없는 급가속 채비를 마련한 것이다. 수소에너지가 ‘궁극의 친환경’이라는 이 허황된 구호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가는 굳이 따지지 않는다. 수소사회를 대한민국을 구할 미래과학이라 포장하는 이들이 일반인의 기본적 상식에 비춘 몇 가지 물음에 어떤 답을 할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다는 따위의 얘기는 OECD 회원국 중 재생에너지 생산비율이 꼴찌인 나라에서 하지는 말자. 수소가 자동차의 주 연료인 석유보다 최소한이나마 친환경이려면 물의 전기분해까지는 아닐지라도, 다른 산업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의 수소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 부생수소도 석유산업에서 생성되니 소위 말하는 친환경은 아닐뿐더러 지금과 같은 화석에너지임에는 변함없지만 말이다. 수소사회를 얘기하는 이들은 부생수소를 마치 버려지는 에너지인 것처럼 말한다. 여기서 누구도 말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생긴다. 한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업이 석유화학산업이다. 그 석유화학산업 공정 중에 수소가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그걸 이용해 친환경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왜 굳이 전기가 필요한 그곳에서 즉시 전환해 사용하지 않고 온갖 복잡한 기계장치를 만들고, 또 다른 과도한 화석에너지와 운송비를 들여 자동차에 옮겨 전기를 만들어 써야 할까? 수소가 만들어진 그 자리에서 발전을 한다면 온갖 복잡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을뿐더러 2040년에야 실현된다고 하는 규모의 경제를 당장 실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실로 엄청난 이익을 포기하고 왜 굳이 힘들게 특수트럭으로 옮겨와, 다시 작은 자동차에서 전기로 전환해야만 한단 말인가?

다음으로는 충전소 설치의 확산 가능성이다. 고압가스를 다루는 수소충전소의 안전성은 차치하고라도, 충전소 한 곳을 만드는 데 30억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현재 서울시내 평균 땅값을 고려하면 충전소 1곳을 만들려면 최소 100억원이 든다. 이렇게 만든 충전소에서 하루 약 250㎏의 수소를 충전할 수 있다. 국가 로드맵에 따르면 2030년에 수소 1㎏당 가격을 4000원으로 낮춘다고 하니, 1일 매출은 완판 시 100만원이다. 시골 편의점 매출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소를 무료로 준다고 해도 운영은 불가능하다. 과연 이런 영업장이 전국에 확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제 세금으로 운영보조금을 지급해줄 차례이다. 세계 1위 기술력을 통한 미래 먹거리? 미래수출산업? 우리나라야 눈먼 세금으로 조성비와 운영적자를 메운다고 하겠지만,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인 미국을 생각해 보자. 미국이 한국 자동차산업을 위해 이익창출은커녕 최저임금 노동자 1명도 고용할 수 없는 충전소를 세금으로 지어줄까?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국민 세금으로 미국에 충전소를 지어줄 수 있을까?

이런 간단한 의문들에 뭐 하나 긍정적인 답이 없다. 아무리 수소 관련 미래전망을 뒤지고 헤매도 답들은 주지 않는다. 미래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달하면 알아서 다 해결된다는 허상 말고는 말이다.

자신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실천하는 16세의 거인, 툰베리의 연설과 같이 “당장에 닥친 지구온난화의 세계적 문제에는 관심 없이, 자신들의 배만 부르게 만드는 끝없는 경제성장만을 얘기하는” 우리의 이 상황이 부끄럽다. 친환경은 세계 1위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과학으로 포장한 허상으로 미래세대를 실망시키지는 말자.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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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가을 태풍이 잦아지고 있다. 링링과 타파, 미탁에 이르기까지 9월 이후 태풍 영향을 세 번이나 받은 건 1959년 이래 올해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 기록은 머지않아 깨질 것이다. 기후위기가 원인이기에 갈수록 심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넘기 위한 기후행동이 절실한 때이다.

지난 9월23일, 미국 뉴욕에서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가 열렸다. ‘행동’이란 말을 내건 최초의 기후변화 관련 유엔정상회의였다. 이 행사에서, 지난해 8월부터 스웨덴 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1인 시위를 벌여 전 세계 133개국 160만여 명이 동참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캠페인을 이끌어낸 16세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세계 정상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냈다.

기후행동정상회의 직전, 20~21일에 걸쳐 160여개국 수천개 도시와 마을에서 약 400만명이 ‘글로벌 기후 파업(global climate strike)’에 참가하여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촉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9월21일에 서울과 부산, 대구, 창원, 청주, 홍성 등 전국 10여개 지역에서 동시 다발로 열린 ‘기후파업(Climate Strike)’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이 “지금이 아니면 내일은 없다!” “기후위기,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고 외치며 정부의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포를 요구했다. 27일에는 ‘청소년기후행동’이 광화문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가졌다. 이제 시민들이, 특히 미래세대 대표인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 참여는 이런 집회나 캠페인에 한정되지 않고 있다. 시민 목소리로 직접 대안을 제안하는 여러 자리가 마련되고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서 정부 대책을 뛰어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온실가스 감축, 시민이 답하다!’란 주제로 시민대토론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서울시가 시민과 함께 온실가스 감축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주요 거버넌스 기구인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에너지정책위원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상향식 숙의 행사였다. 8월13일부터 9월10일까지 거의 한 달에 걸쳐 10개 구를 돌아가며 10차례의 릴레이 워크숍을 연 후 열린 마지막 전체 토론회였다. 참여 시민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 강력한 시민행동을 지지하였다. 보다 실효성 있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적 이용을 위해 자동차 유류세와 전기 요금 인상, 화석연료에 탄소세 부과, 가짜뉴스 퇴치와 시민의식 제고 등을 제안하였다. 시민 개개인의 자발적 실천에만 기대는 건 한계가 있다며, 에너지 가격과 요금체계가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적절한 세금 부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9월30일엔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국민정책참여단의 학습과 숙의, 여론조사, 국민대토론회와 권역별 토론회 등 “국민 스스로 정책을 수립하는 상향식 정책결정 방식”을 거쳐서 마련한 국민정책 제안을 발표했다. 12월부터 다음해 3월 사이 시즌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겨울철(12월~다음해 2월)에는 9~14기, 봄철(3월)에는 22~27기의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방안을 제안하였다. 국민정책참여단의 93%가 동의했다고 한다. 매달 전기요금을 2000원까지 인상하는 데는 75%가 동의하였다. 두 방안 모두 미세먼지만이 아니라 기후변화 완화 방안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 그 누구도 비켜가기 어려운, 모두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바뀌어야 할 것은 기후가 아니라 사회와 경제와 정치다. 아니,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이다. 지금 작은 비용을 지불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위험과 피해로부터 우리와 미래세대를 구할 수 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 깨어 있는 기후시민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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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내전(內戰)이다. 50일 넘게 세상 시끄러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모임에서나 사이버 공간에서나 일단 아군과 적군을 나누고 의견이 다르면 집중포화가 시작된다. 싸움이 싫은 사람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싸울 때는 싸워야겠지만 싸움에도 경중이 있다. 작금에 가장 우선순위 높게 싸울 일은 무엇인가?

지난 23일 뉴욕에서 유엔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파리협약을 통해 지구온도가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약속했건만 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은 줄지 않고, 2015~2019년 전 세계 이산화탄소 농도는 2011~2015년 사이 배출량보다 무려 20% 이상 증가한 상태여서 위기감에 소집된 회의다. 지난 6월 유럽의 기온이 46도까지 오르고, 미국은 9월 초 플로리다를 강타한 허리케인 ‘도리언’으로 비상사태까지 선포할 지경이니 이 기후재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각국의 정상이 해결책을 갖고 모였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38년까지 탈석탄국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들과는 무역거래를 하지 않겠다”고까지 하였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삶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지금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파리협약에서 탈퇴했고 중국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아 예상대로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왼쪽)를 비롯한 세계 청소년 활동가들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프랑스·독일 등 5개국 정부를 유엔에 제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뉴욕 _ AP연합뉴스

이 시점에서 월드워치연구소의 창립자 레스터 브라운의 <우리는 미래를 훔쳐쓰고 있다>를 새삼 들쳐보며 불편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달래본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기후재난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그의 결론은 경제다. 세계경제를 개조하는 데 모두 함께 나서자는 것이다. 각국의 군사예산 가운데 13%를 새로운 경제개혁에 투자하면 지구의 환경을 소생시킬 수 있고 기아, 문맹, 질병, 빈곤의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주 작은 예로,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 유류에 포함된 교통환경세가 연간 7조원 정도인데 그중 70% 이상을 도로 항만 등 토목공사에 사용한다. 그 예산의 일부라도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쓴다면 국제무대에서 낯부끄러운 일은 줄어들 것이다. 반기문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관련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니 기대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문제를 주로 해외 연설에서만 언급했다. 부동산 기사보다도 보도량이 적었던 기후재난 기사는 내전 탓에 더 줄었다. 가디언이나 뉴욕타임스, BBC나 CNN에선 한국 언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후문제를 많이 다룰 뿐 아니라 톱뉴스로 올리고 있다. 한국은 왜 그럴까? 댓글이 함정이다. 사이버 시대에 댓글은 민심의 거울이고, 그래서 누군가는 기사 밑에 달리는 ‘좋아요’에 목숨을 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뉴스는 묻히고 만다. 조국 법무장관 사태 와중에 지지자들은 댓글로 사이버 대리전을 치르느라 어린아이들이 학교를 떠나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유에 눈 돌릴 새가 없다.

유엔기후정상회담에서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당신들이 어떻게 감히 이럴 수 있냐”며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고, 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는데 여러분은 오직 돈과 영구적 경제성장에 관한 동화를 이야기할 뿐”이라고 환경문제에 무감한 세계 정상들을 질타했다. 선출 권력은 유권자의 관심 외엔 관심이 없다. 민(民)이 원하지 않는데 관(官)이 왜 먼저 바뀌겠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까. 환경운동의 구루 레스터 브라운이 알려주었다. ‘문명을 구하는 전사’의 자세로 개개인이 함께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찬바람이 조금씩 거세지는데 아이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 지구에서 좋은 대학이 뭔 소용이랴, 고3 엄마는 오늘도 전투복을 챙긴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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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 기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4일 결성된 ‘기후위기비상행동’의 요구다. 절박함이 느껴진다. 기후 문제의 대명사로 사용되던 ‘기후변화’는 문제의 심각성을 왜곡한다는 인식 때문에 사용이 뜸해졌고, 대신 기후위기·기후폭력·기후재난·기후붕괴 같은 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후에 대한 위기감이 한층 커졌음을 뜻한다.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1.5도로 막아야 하며, 2도 상승은 기후파국을 뜻한다고 경고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금처럼 계속되면, 1.5도 상승까지는 12년 정도가 남았고, 이것을 막을 수 있는 국제사회의 정책 결정에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1년 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약속했고, 작년 여름 살인적인 더위가 덮치자 폭염은 재난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작 기후위기의 근원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2020년의 감축목표는 슬그머니 폐기되었고, 2010년 대비 2030년의 감축목표는 국제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문 대통령은 오는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하지만, 관심은 한·미 정상회담에 쏠려 있다. 그런 우리나라가 2018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2017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OECD 4위, 10년간 증가율 2위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국가’로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우리는 몸에 조금만 열이 있어도 힘들어하지만 열로 끙끙대는 지구에는 무심하다. 규모가 너무 커서 실감을 못할 수도 있고, 모두의 문제니 누군가 알아서 할 거라 믿을 수도 있고,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죽는다는 것이니 무서운 느낌이 없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사이 기후는 악화일로에 있다.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lt;구약성경&gt; 신명기) 사람이 살려고 하는 건 당연한데도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살기 원한다면서 생명 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주의 길을 축복의 길로 착각한다. 착각한 줄 알고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고,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화석연료에 기초한 생활양식을 근원적으로 전환해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 정책의 과감한 전환이 요구된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중독된 우리에게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삶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현실을 외면하고, 침묵한다.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같은 대책으로 ‘화답’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기후재난이 자신들의 미래를 앗아갈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청소년들이 밖으로 나와 외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파업 시위로 물꼬를 텄다. 청소년이나 기후난민의 경우에서 보듯이, 기후 문제는 화석연료를 적게 쓰고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쪽이 피해를 더 많이 보는 구조다.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국가, 집단, 개인은 아직은 피해에서 벗어나 있다. 기후재난은 공정하지 않다. ‘조국 사태’는 우리가 불공정에 얼마나 민감하고 분노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런 우리가 원인과 결과에서 모두 불공정한 기후위기에 침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가당착이다. 

지난 4월, 프란치스코 교종은 툰베리에게 지금 가는 길을 계속 가라고 격려했다. 지금은 다수가 외면하고 소수만이 걷는 그 길이 바로 생명과 축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9월21일은 ‘기후위기비상행동의날’이다. 이제는 우리 다수가 침묵을 떨치고 힘을 모을 때다. 모두 함께 기후비상을 외치고, 정부와 기업에 비상대책 수립을 요구할 때다. 내가? “그렇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당장? “그렇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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