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스포츠와 세상'에 해당되는 글 225건

  1. 2019.02.12 [기자칼럼]‘인싸’의 조건
  2. 2019.01.29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지금 당장 선수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호해야
  3. 2019.01.28 [여적]전국소년체전
  4. 2019.01.15 [시론]스포츠계 미투가 들불처럼 일어나길
  5. 2019.01.15 [사설]체육계 미투 확산, ‘침묵의 카르텔’ 뿌리 뽑는 계기로
  6. 2019.01.10 [기자 메모]‘평창 올림픽서 쇼트트랙 금 5개’ 벅찬 목표 성적 제일주의 매몰…정부가 먼저 반성해야
  7. 2018.12.07 [여적]트워크
  8. 2018.12.0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언론부터 올바른 스포츠 용어 사용을
  9. 2018.11.20 [김민아 칼럼]‘팀킴’도 가만있으라고?
  10. 2018.11.06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학교 체육 정상화할 마지막 기회
  11. 2018.10.10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진격의 국가’와 88올림픽
  12. 2018.09.10 [기고]88 서울 올림픽과 한국의 스포츠과학
  13. 2018.09.0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급가속과 코너링이 뛰어난 황인범
  14. 2018.08.0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의연하다 르브론 제임스 !
  15. 2018.07.26 [여적]외질 논쟁
  16. 2018.07.1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크로아티아와 ‘한여름 밤의 꿈’
  17. 2018.07.12 [기자칼럼]좋은 사장님이 되려면
  18. 2018.07.06 [기고]월드컵 동북아 공동개최의 시너지
  19. 2018.06.29 [사설]기적 같은 독일전 승리, 한국축구 다시 시작하자
  20. 2018.06.12 [정윤수의 오프사이드]‘3천만 감독’이라도 있을 때 잘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싸(인사이더)’라고 한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팬들을 몰고 다니며, 거액 연봉을 받는 스포츠 스타도 ‘인싸’라면 ‘인싸’일 것이다. 그러나 ‘인싸’가 주류와 동의어는 아니다. 주류에 진입하려면 인기 외에 다른 조건들도 충족돼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피부색이다. 콜린 캐퍼닉 사건은 검은 피부의 ‘인싸’가 주류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삶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이었던 캐퍼닉은 2016년 경찰이 유색인종을 폭력 진압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었다. 국가 연주 시 기립 자세를 규범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캐퍼닉의 행동은 스포츠계 안팎에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지지자도 많았지만 비판도 들끓었다. 전·현직 군인들은 ‘군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캐퍼닉에겐 애국심이 없다고 욕설을 섞어 비난한 게 결정타였다. 캐퍼닉은 2017년 초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했지만 NFL 32개 구단 중 어느 팀도 캐퍼닉과 계약하지 않았다.

캐퍼닉의 이름이 최근 미국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NFL 슈퍼볼이 하필이면 흑인 민권운동의 요람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것이 계기였다. 캐퍼닉 사건의 찜찜한 기억을 털어내지 못한 NFL은 작정하고 인종 문제를 슈퍼볼 전면에 내세웠다. 캐퍼닉 퇴출에 성난 팬들을 달래면서, 캐퍼닉을 싫어하는 팬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동시에, 캐퍼닉 사건으로 NFL에 입혀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NFL은 경기 개시를 알리는 ‘동전 던지기’를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딸 버니스 킹에게 맡겼다. 민권운동의 거목 앤드루 영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중계 주관방송사 CBS는 NFL 커미셔너 로저 구델이 민권운동의 거점이던 에버니저 침례교회를 방문한 영상을 내보냈다.

국가는 애틀랜타 출신의 흑인 가수 글래디스 나이트가 불렀다. 2016년 나이트는 캐퍼닉의 행동을 비난하던 쪽이었다. 나이트가 국가를 부를 때 경기장 상공에선 미 공군 선더버드의 축하 비행이 있었다. 경기 개시 후 타임아웃 때는 경기를 관전하던 명예훈장 수훈 예비역들이 전광판을 통해 소개됐다. 인종 문제와 애국 코드를 기이하게 뒤섞은 행사였다. NFL은 ‘흑인은 존중하지만 비애국자를 퇴출한 건 정당했다’고 항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행사로 NFL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적어도 캐퍼닉 지지자들에겐 감동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변호사 캣 캘빈은 트위터에 “왜 버니스 킹과 존 루이스, 앤드루 영이 NFL을 엄호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선수들도 감흥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일부 선수들은 슈퍼볼 우승이 결정되기 무섭게 “백악관의 우승 축하 행사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시즌 우승팀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일부 선수들도 백악관 방문을 거부했고 자존심 상한 트럼프 대통령이 알아서 행사를 취소했다.

‘인싸’가 반드시 주류는 아닌 것처럼 주류가 ‘인싸’라는 법도 없다. 부동산 재벌 출신의 백인 대통령 트럼프는 주류 인생을 살았지만 비주류들에게 막말을 일삼고 국제사회의 합의를 휴지조각 취급하다 국내외에서 외면당하는 ‘아싸(아웃사이더)’의 길을 가고 있다. 눈 밝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한, 아무리 주류라 해도 기득권을 믿고 함부로 망언한다면 인생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모독한 국회위원들 앞에 놓여 있는 미래도 꽃잎 흩날리는 ‘인싸’의 길은 아닐 공산이 크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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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님, 안녕하신지요. 1년여 전 스포츠 전문 방송에서 대화를 나눈 적 있지요. 그날 방송에서 위원님은 IOC 선수위원의 임무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는 것과 선수 권익의 신장과 보호였지요.

사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은, 마치 헌법처럼, 회원국의 모든 임원, 지도자, 선수들이 일체의 타협이나 양보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이념이지요. 그 맨 앞에 ‘올림픽 이념의 기본 원칙’이 천명되어 있습니다.

1항을 보면 올림픽 이념은 ‘인간의 신체, 의지, 정신을 전체적 균형과 조화 속에서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신체만이 아니라 의지도 정신도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선수들이 ‘운동 기계’가 아니라 전인적인 성장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 2항,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또한 6항에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엄중한 ‘이념’에 따라 올림픽의 운영 항목이 열거되지요. 이를테면 1장 2조 ‘IOC의 사명과 역할’은, 위원님이 강조하신 선수 권익 보호 사항입니다. ‘스포츠 윤리 발전’ ‘남녀 평등’ ‘선수들의 의료 및 건강’ ‘선수들의 사회적, 직업적 미래 보장’ ‘스포츠를 교육 및 문화와 접목’ 등이 그것입니다. 이 가치들이 우리의 스포츠와 올림픽에서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옥 훈련’이니 ‘혹사’ 같은 말들이 여전히 횡행합니다.

‘스포츠의 자율성 보존’이나 ‘선수들의 정치적, 상업적 남용 반대’도 2조에 천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막연하게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부당한 정치적 압력이나 지나친 자본의 위력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엽에 스포츠를 정치 선전 수단으로 삼고 올림픽을 자본 이익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지요. 모든 관계의 차단이 아니라 부당한 압력의 차단이 목적입니다. 50조에도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한다’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위원님이 이런 가치를 모를 리 없겠습니다만, 최근 전개되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거대한 전환 속에서 자칫 이 올림픽 정신이 오용되거나 극히 부분의 표현을 맥락 없이 남용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조재범 전 코치 가해 사건이 불거진 이후로 우리 스포츠계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상명하복식 위계질서와 유무형의 모든 폭력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민적인 열망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얻어맞고 심각한 인권 유린 상태에까지 내몰렸는데 그렇게 해서 따낸 금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호소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폭력 실태를 엄중히 조사하는 한편 국위 선양과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 개혁 과제를 전개하겠다고 밝혔지요.

이에 스포츠 현장에서는 한편 공감하면서 또한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러 국제대회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이 당혹해한다는 얘기도 있고 당장 2020 도쿄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막막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유승민 위원님도 의견을 피력했지요. 며칠 전 위원님은 “체육행정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개혁이 필요하지만, 합숙·연금 제도를 폐지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올림픽을 목표로 땀 흘린 선수들의 꿈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선수들의 의견을 듣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선안을 찾자고 제안도 했습니다. 금메달리스트이자 선수위원으로서 충분히 제시할 만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당혹감에 빠진 후배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위원님은 단순한 체육행정가나 경기력 강화위원이 아니라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고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선수위원입니다. 선수들이 폭력의 무한 재생산 구조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몇몇 지도자의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와중에도, 연세대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감독으로부터 ‘동물 학대 수준’으로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다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선수위원이라면 지금 당장 폭력을 멈추라고 호소해야 하며 공포의 상황에 놓여 있는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악을 근절하고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천명하고 있는 올림픽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올림픽 헌장에 제시된 바와 같이 ‘선수들의 사회적, 직업적 미래 보장’ 또한 유 위원님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메달리스트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미래가 보장되는 현행의 제도는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개혁 과제들이 매우 복잡해 하루아침에 대한체육회가 해체되거나 선수촌이 폐쇄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이 유일무이한 해법도 아닐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 권익 보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좁은 의미의 ‘권익’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여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이념으로 ‘올림픽 정신’에 천명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지켜진다면 그 밖의 여러 제도 개선은 얼마든지 다양한 해법이 가능하지요. 우리의 스포츠 개혁과 발전은, 유 위원님의 활동 근거가 되는 고결한 ‘올림픽 정신’의 실천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선수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 ‘권익’이 아니라 그 ‘존엄성과 인권’을!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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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1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가 개최됐다. 앞서 소년체육대회는 전국체육대회의 중등부에 포함돼 실시됐으나 이해 들어 전국스포츠소년대회로 독립했다. 학교 엘리트 체육의 서곡이었다.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하고 국가대표로 육성해 스포츠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이후 전국 초·중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신설이 붐을 이뤘다.

전국스포츠소년대회는 국가주의 체육의 시작이었다. 대회 주최자는 민간기구인 대한체육회였지만, 행사의 기획과 진행은 사실상 국가가 주도했다. 대회 슬로건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첫 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들에게 “조국을 위해 충성스러운 국민이 되고 나라, 겨레,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화 채집은 경주에서 진행됐다. 삼국을 통일한 화랑의 얼을 계승해 바른 국가관을 확립하자는 취지였다. 1975년부터는 전국소년체육대회(일명 전국소년체전)로 이름이 변경됐는데, 이 역시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 선수의 덕목도 국가가 요구하는 규율, 질서, 협동단결심, 투지 등이었다.

전국소년체전이 스포츠 향연인 적이 있었다. 대회를 개최한 시·도는 체전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고장을 홍보했다. 주민들은 어린 선수들에게 민박, 교통편을 제공하며 후한 인심을 자랑했다. 선수가 메달이라도 딸라치면 해당 학교와 고향 마을에서는 현수막을 내걸어 축하했다. 반면 축제의 그늘은 더 컸다. 조기 체육, 엘리트 체육이 강조되면서 학생선수들은 스포츠 스타를 꿈꾸었다. 체육특기자 제도는 성적 지상주의를 부추겼다. 선수들은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인권도 존중받지 못했다. 학교 운동부에서 폭력, 성추행이 만연해도 모두 쉬쉬했다.

정부가 성폭력 등 체육계의 고질적 비리 근절책을 내놓으면서 전국소년체전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체전 고등부와 통합해 학생선수, 일반학생 구분 없이 참여하는 학생체육축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50년간 유지해온 엘리트 선수 양성 등 체육 패러다임까지 바꾸겠다고 하니 일선 학교에 ‘공부하는 학생선수’ ‘인권이 존중받는 운동부’가 정착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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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문재인 대통령은 진천선수촌을 전격 방문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설득하려는 취지였다. 올림픽 직전이라 당시 진천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국가대표선수들을 모아 격려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심석희 선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엔 감기몸살이라고 둘러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14년 ‘은사’(고마운 스승이라는 뜻이다)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폭행으로 선수촌을 이탈(실상 탈출에 가깝다)한 사실이 알려졌다. 기록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수촌 내 골방에서 무차별 폭행이 가해졌고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선수촌에서 나온다?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맞아서 죽을 것 같았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린 선수가 홀로 겪어야 했던 수치심과 모멸감은 도무지 실감하기 어렵다. 심석희 선수는 주 종목인 1500m에서 예선탈락을 했고 마지막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결정짓고 펑펑 울었다. 우리는 이제야 그 눈물의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만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이 없었다면? 혹은 문재인 대통령이 일정에 없는 진천방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 순간 쇼트트랙 주장선수였던 피해자가 선수촌을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조재범 성폭행 의혹 사건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상습상해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 9월,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는 이제 성폭력 혐의를 추가로 받고 있다. 심석희 선수가 직접 재판에 나와 엄벌을 호소했던 지난 12월17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강간상해 등의 혐의로 조 전 코치를 추가 고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심 선수는 2014년(당시 고등학생이었다)부터 올림픽 직전까지 4년간 지속적 성폭행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돌아보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여제자 성추행 사건이 터졌고 바로 그 빈자리에 조재범 코치가 장비 담당 코치로 선임됐다. 우리는 성추행 사건으로 자리가 생겨 들어간 그가 똑같은 짓을 반복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체육계 성폭력이 조재범이라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쌓여온 소위 구조적인 문제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방증이다.

어린 선수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한 지도자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선수가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오직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목표 이외에는 가능하지 않다. 대부분의 학창시절 동안 운동만 해온 선수는 이제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것밖에 할 게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선수가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느낄 때 지도자는 그가 배워 온 유일한 지도방법인 폭언과 구타를 사용한다. 간혹 심하게 때린 날에는 따로 자신의 방으로 불러 직접 피멍이 든 몸에 파스를 발라준다. “네가 미워서 때린 게 아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다”라며 달랜다. 이렇듯 체육계 성폭력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견디는 폭력과 맞물려 있다. 혹 몹쓸 짓을 하고 마음이 안 놓일 때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이 바닥에서 완전히 매장시킨다며 겁을 주면 된다. 유도 유망주이던 2011년 고교 1학년 때부터 2015년까지 유도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지난해 3월 경찰에 고소하고 최근 언론과 인터뷰를 한 신유용씨도 “(성폭행 당시 코치가) ‘누군가한테 말하면 너와 나는 유도계에서 끝’이라고 협박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때 피해자인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가슴에 묻고 침묵하든가 혹은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내든가. 침묵을 선택하면 평생 그들의 가슴이 멍들고, 발설을 선택하면 그들의 인생이 망가진다. 코치의 위협은 공갈이 아닌 실재였던 것이다.

선수생활을 그만둘 각오를 하고, 성폭행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 해도 이후 겪어야 할 시간은 혹독하다. 얼마 전 만난 전직 체조협회 간부 성폭행 사건 피해자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나의 질문에 두 시간 내내 눈물만 흘렸다. 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억을 지우는 약 좀 구해주세요.” 그가 내게 한 말이다. 발설을 택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침묵을 택했을 거라고 단언한다. 다양한 형태의 2차 피해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주위의 시선도 싸늘하다. 가해자는 당당하게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하고 피해자는 마치 죄인인 양 고개를 숙인다. 법의 심판을 호소해도 경찰, 검찰, 그리고 사법부의 대부분인 남성들은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한다.

지난해 사회 전 영역에서 미투의 광풍이 몰아칠 때 유독 스포츠 분야는 조용했다. 선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코치와 감독,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폐쇄적인 합숙소와 훈련장,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묵인, 방조 심지어 공조하는 침묵의 카르텔까지.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에 최적화된 체육계 관행과 성문화가 오히려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지금까지 스포츠계의 미투에 무수한 미(Me)만 존재하고 연대하고 지지하는 투(Too)가 없었던 까닭이다. 

한 가지 더 뼈아픈 지적을 하자면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에 대해 우리 모두가 일종의 공범이라는 점이다. 올림픽 메달은 선수들이 일상적으로 겪은 비정상적인 훈련 과정을 덮고도 남았다. 국민들은 열광했고 올림픽 메달순위에 집착했다. 지난해 문체부 감사를 통해 파벌과 체벌로 멍든 빙상연맹의 관리단체 지정을 권고하자 빙상계 원로들이 연판장을 돌리면서 저항했던 논리가 바로 이거다. ‘올림픽 때 메달 따줬는데 뭐가 문제냐?’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낸 심석희 선수의 고발이 스포츠계 미투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길. 더 이상 체육계에 성폭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발본색원하길. 만약 이번에도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피눈물 흘리는 선수를 만나야 할 것이다.

<정용철 |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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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가 확산되고 있다. 전 유도선수 신모씨가 고교 재학 중이던 2011년부터 졸업 후인 2015년까지 당시 코치 손모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14일 폭로했다. 신씨는 손씨를 고소했으나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그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조재범 성폭행’ 고발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언제까지 피해 당사자들의 용기에만 의존해야 하나. 그들이 인생을 걸고 세상에 나설 때까지 법과 제도와 시스템은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젊은빙상인연대와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100인의여성체육인,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8개 체육·시민단체들이 1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조재범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신씨에 따르면, 손씨는 신씨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성관계 사실을 부인하라’며 돈을 주려 했다고 한다. 금품으로 회유하려는 데 분노한 신씨는 지난해 3월 손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피해 사실을 아는 유도계 인사들이 증언을 거절하는 바람에 수사는 답보에 빠졌다. 대한유도회는 사건이 공론화된 후에야 손씨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도회 측은 “신·손씨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아 징계를 논의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해명이 군색하다. 신씨는 지난해 말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관련 글을 올린 바 있다. 손씨는 유도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가족 중에도 유도계 인사가 있다고 한다. 그는 한겨레 인터뷰에선 ‘과거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연이은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증언은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져왔던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드러난 일뿐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한 조사와 수사,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본다. 신씨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체육계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데는 ‘침묵의 카르텔’ 탓이 크다. 가해자가 관련된 개별 경기단체 차원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나 징계가 이뤄지기 어렵다. 강력한 조사권을 가진 독립기구를 만들어 스포츠계의 썩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체육계 성폭력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조사할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일을 서두르기 바란다. 여성 운동선수들의 용기있는 증언이 한국 스포츠의 낡은 악습을 뿌리 뽑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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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상주의가 악마를 낳았고, 희생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의 선수 상습 성폭행 사건은 체육계에 널리 퍼져 있는 성적제일주의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결과만을 최고로 여기는 환경이 현장의 부조리를 눈감아주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노태강 제2차관의 긴급 브리핑을 통해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했다. 선수 성폭행 사건이 알려진 뒤 문체부 전 직원이 출근해 밤새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문체부는 먼저 자신들의 문제점을 돌아봐야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현장에 강요한 이들이 정부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 12월16일 대한체육회는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비 종목별 경기력 향상대책 보고회’를 열고 평창에서 금8·은4·동8개로 종합 4위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체 금메달 8개 중 빙상연맹의 몫은 7개. 쇼트트랙에서 5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2개를 딴다는 내용이었다. 금메달 7개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 전체가 거둔 종합 5위(금6·은6·동2) 성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빙상연맹의 목표는 최대치를 강요한 문체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발표를 마친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은 단상에서 내려온 뒤 “자발적으로 설정한 목표인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지 큰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새 정권에서도 정부는 한국 선수단의 성적이 국내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의 성공으로 직결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개막을 3개월여 앞둔 선수단 격려 현장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목표를 달성하면 선수들의 이름으로 시를 짓겠다”고 했었다.

성적제일주의는 지상명령이 되어 현장 관계자들을 옥죄었다. 언어 폭력, 폭행 등의 수단도 묵인됐다. 선수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곳은 태릉·진천 국가대표 선수촌과 한체대 빙상장 등의 지도자 라커룸이다. 코치가 선수에게 가하는 위해 상황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장소지만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현장에서는 이를 모른 채 눈감는 식의 결과로 이어졌다. 국가대표 훈련의 관리 책임을 빙상연맹, 대한체육회를 넘어 정부에도 묻게 되는 이유다.

<김경호 선임기자 | 스포츠부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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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이 3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트위터에 대표팀의 귀국을 환영하며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의 라이오니스(잉글랜드 여자대표팀의 애칭 ‘암사자’)들이 오늘 엄마, 배우자, 딸들로 돌아간다.”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FA는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2004년 FIFA 회장이던 제프 블라터는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몸에 착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혀야 한다”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렌나르트 요한손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 “기업들은 빗속에서 땀 흘리며 뛰는, 사랑스러운 여자선수들의 모습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 게 팔린다”고 말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블라터도, 요한손도 더 이상은 ‘회장님’이 아니다. 여자축구의 위상도 달라졌다.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가 여자 부문을 신설했을 정도이다. 섹시즘도 사라졌을까?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노르웨이 출신 아다 헤게르베르그(23·리옹)가 첫 여성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연평균 35골을 넣는 세계 최고 골잡이는 프랑스 DJ 마르탱 솔베이그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트워크(twerk·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흔들며 추는 춤) 출 수 있으세요?” 헤게르베르그는 단호하게 “아니요(No)”한 뒤 몸을 돌렸다. 이내 자리로 돌아와 가벼운 춤을 추긴 했지만, 역사적 순간은 훼손되었다.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영국에 사는 인도계 소녀 제스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를 꿈꾼다. 그의 방에는 데이비드 베컴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다. 제스는 베컴이 차듯 절묘한 각도의 슛을 만들어내기를 갈망한다. 지금 이 순간, 지구촌의 많은 소녀들이 헤게르베르그 사진을 보며 꿈을 키우고 있을 터다. 그들에게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이나 섹시한 엉덩이춤을 강요하지 말라. 그들은 헤게르베르그처럼 멋진 슈팅을 하고 싶을 뿐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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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딩’을 하는 게 늘 두려웠다. 성인남자 평균 신장에 조금 못 미치고 일찍 안경까지 쓰는 바람에, 마음 같아서는 98 프랑스 월드컵 때 ‘헤딩’으로만 브라질 골문을 두 번이나 흔들어버린 지단처럼 해보고 싶었지만, 동네축구에서는 조금 한가로운 좌우 외곽에서 ‘센터링’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럼에도, 나의 ‘센터링’이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으로 집중되고 동료 선수가 온몸을 뒤틀어 ‘헤딩 슛’을 터트리는 광경! 아름다웠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용어들은 ‘헤더’와 ‘크로스’로 변했다. 머리로 패스를 하거나 슛을 하는 것은 이제 헤딩(heading)이 아니라 헤더(header)다. 오랫동안 사용되던 센터링이나 핸들링도 ‘잘못된 일본식 영어’(재플리시)로 간주되어 크로스나 핸드볼 파울로 변했다. 문법적으로 좀 더 예민한 사람은 헤딩 패스 대신 헤디드(headed) 패스가 맞다고 강조한다. 솔직히 ‘느낌적 느낌’으로는 헤더가 헤딩 같지는 않다. ‘자장면’은 ‘짜장면’이어야 하는 것처럼, 헤딩은 거칠고 메마른 운동장에서 온몸을 던지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헤더는 세련된 기술처럼 들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용어의 ‘새로 고침’은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부르자는 ‘발음 사대주의’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고 무시해도 좋지만, 스포츠는 일정한 제도와 규칙의 ‘세계적 약속’이다. 세대 간의 언어 감각도 다를 수 있다. 컴퓨터로 축구 게임을 하며 유럽 축구에 몰두한 세대가 벌써 30~40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에게 ‘헤더’나 ‘크로스’는 낯선 용어가 아니다.

각 종목의 전술 변화에 의해 새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요즘 축구 중계에서 흔히 듣는 용어가 ‘빌드업’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차범근 해설위원은 ‘공격 작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동안 이 용어가 정착되는 듯하다가 요즘은 ‘빌드업’으로 통일되고 있다. 이는 ‘공격 작업’의 원어가 ‘빌드업’에 가까운 면도 있지만, 몇 해 사이에 펩 과르디올라와 위르겐 클롭으로 대표되는 ‘점유율과 빌드업’의 전술 관계에 의하여 ‘빌드업’이 의미 있는 용어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골키퍼를 포함한 최후방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최전방까지 의미 있게 연결되는 복잡한 공격 과정을 가리킬 때, ‘빌드업’을 쓰는 게 맞다.

11월26일, 한국체육기자연맹이 주관한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 정착을 위한 스포츠미디어 포럼’에서도 이와 관련한 주장이 의미 있게 제기되었다. ‘파이팅’ 같은 말이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라는 점을 들어 ‘아자’ ‘힘내자’ 같은 말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시합’ ‘계주’ ‘기라성’ 같은 일본식 조어도 ‘경기’ ‘이어달리기’ ‘쟁쟁한’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다.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고쳐 쓸 수 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파이팅’이 비록 일제 시대 용어이기는 해도,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그 말에 다른 의미를 충분히 덧붙여 집합적 감수성을 녹아낸 것이라면 그 나름의 무게가 있다. 문법으로도 틀리다고 하면, 영어 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런 의미로 ‘파이팅’을 외친다고 하면 될 일이다. 선수들이나 일반 회사에서나 ‘파이팅’을 ‘적군 섬멸’의 뜻으로 쓰는 사람은 없다. 이를 ‘아자’ 혹은 ‘으랏차차’라고 부르면 좋겠으나 언어 행위는 시간의 적층 위에서 생성/공유되는 것이다.

‘기라성’처럼 단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뜻하는 ‘일본식 조어’라는 의미에서 바꿔야 한다면, 근대 이후 우리 학문과 일상에 녹아 있는 거의 모든 생활 언어를 조선시대로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고유한 우리말’ 중의 어떤 것은 생활 조건의 측면에서 ‘농업 봉건’의 산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일제강점기가 아니더라도 사멸했거나 변화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 제기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끝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토론과 활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좀 더 알맞은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날의 심포지엄과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일제 잔재의 청산은 ‘일본식 조어’를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랜 식민 피지배와 그 이후의 독재 과정에서 내면화된 사회의 작동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 일이다. 약육강식과 기회주의가 거의 유일한 생존 방식 아니었던가. 이 점에 있어 스포츠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폭력과 위계질서가 내면화된 일상 말이다.

내친김에 덧붙이자면, 천편일률적인 묘사나 동시대의 감수성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기사가 일본식 조어보다 더 문제적이다.

‘자로 잰 듯한 패스’나 ‘전광석화 같은 중거리슛’은 복잡하고 미묘한 경기를 딱 그 정도로만 보았음을 말해주며 ‘국위선양’이나 ‘태극전사’ 혹은 ‘맏형 리더십’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전히 스포츠 미디어가 ‘독재의 잔재’인 국가주의와 가족주의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준다. ‘비치발리볼’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라. ‘섹시 화끈한 비치발리볼 경기’ ‘뜨겁게 달군 노출 패션 비치 발리볼’ ‘눈요기 여름스포츠 비치발리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줄줄이 나온다. 전반적으로 보면, 급변하는 인터넷 언론 환경 때문인지, 스포츠계의 폐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탐사 기사나 심층 진단 시리즈가 줄고 개인 블로그를 쓰는 듯한 ‘팬심 기사’가 넘쳐나는 것도 큰 문제다.

어쩌면 문제의 핵심은, 오래전에 우리를 강점했던 일본이나 그 잔재 용어들이 아닐 수도 있다. 21세기의 중엽을 향해가는 지금에도, 일제와 독재가 강제한 생존 조건을 벗어나지 못한 스포츠 현실에서 국가주의적, 남성적, 신체적 우월성의 신화에 갇혀 틀에 박힌 시선과 진부한 표현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스포츠언론의 현 상태가 더 문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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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종목에서 국가대표를 지낸 한 선수는 지난여름을 해외에서 보냈다. 폭염을 피해 출국한 게 아니다. 앞서 그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개혁을 촉구하는 움직임에 참여했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연맹 부회장)로 대표되는 기득권세력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결국 홀로 외국으로 떠났다. 개인훈련을 하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서야 귀국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컬링 전 국가대표 ‘팀킴’이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사위인 김민정·장반석 감독으로부터 폭언과 사생활 통제, 비인격적 대우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겨울동화’에 열광하던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컬링계 내부를 아는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터질 게 터졌을 뿐이라고 했다.

컬링 전 여자 국가대표팀인 김경애 김영미 김선영 김은정 김초희(사진 왼쪽부터) 가 1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최근 불거진 논란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팀킴은 “가족이라 칭하는 틀 안에서 억압, 부당함, 부조리에 불안해했고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격려금과 포상금을 제대로 배분받지 못했으며,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과 편지도 뜯겨진 채로 받았다고 했다. 김·장 감독 부부 아들의 어린이집 행사에 동원되고, 스킵(주장) 김은정 선수의 결혼을 이유로 포지션 변경을 강요당했다고도 했다. 실체적 진실은 19일 시작된 문화체육관광부·경상북도·대한체육회 합동감사에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출신 피터 갤런트 전 코치도 팀킴을 100% 지지한다고 밝힌 걸 보면 팀킴 주장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김 전 부회장 측은 “감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스포츠, 인권을 만나다>의 공동저자인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상당수가 인지하고 있던 일인데도, 결국 피해 당사자들이 입을 열어야 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사건이 한국 스포츠인권의 미래를 가름할 것으로 봤다.

“지도자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세 가지 선택 중 하나를 하게 됩니다. 운동을 그만두는 유형이 있고, 남아서 버티며 똑같은 괴물이 되어가는 유형도 있습니다. 나머지가 팀킴처럼 내부고발하는 유형인데, 드물고 귀한 경우지요. 만약 이번 폭로가 그대로 묻힌다면 ‘팀킴을 봐라’ 이렇게 될 수 있어요. 팀킴 같은 국제적 스타플레이어가 나서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선수들의 무기력증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가 오랜 기간 해당 종목을 일궜다는 ‘개척자 프레임’으로 독재적 전횡을 하는 사례가 다른 종목에도 많습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스포츠의 낡은 악습이 사라지느냐, ‘학습된 무기력증’의 심화로 이어지느냐 갈림길이 될 겁니다. 기성 스포츠계가 결단을 내려 제대로 처리하고, 시민들도 계속 주목했으면 합니다.”

서지현 검사. 정지윤 기자

검찰의 내부고발자 서지현 검사가 최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함으로써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의 본격 시발점이 된 서 검사는 검찰이 변한 게 없다고 했다. “검찰에서 제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해요. 우리는 너를 괴롭힌 사람을 잘 대해주고 있다. 서지현을 다시 검사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우리 조직은 아무 문제가 없다….”

지난 17일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폭로 이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누군가 말했다. ‘이제 가만히 있어라. 그만하면 됐지 않으냐.’ 나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더 가만히 있는가? 가해자에 대한 1심 판결조차 나지 않았다. 상정된 미투 관련 법안은 하나도 통과가 안됐다 한다. 뭐가 그만하면 됐단 말인가?”

곳곳에 ‘가만히 있으라’투성이다. 검찰에선 서지현을 보라, 고 한다. 서지현을 배제하고, 대신 서지현을 공격한 이들을 껴안으면서. 팀킴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김경두 전 부회장, 김민정 감독과 올림픽 전부터 대화하려고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너희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았는지 아느냐’는 말뿐이었다. 얘기를 하려는 선수를 배제하려고 했다.”

KBS 드라마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이다. 백진상 팀장(강지환)은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강인한 사장(인교진)에게 저항한다. 직원들은 침묵한다. 강인한은 “영웅 행세하면 박수라도 쳐줄 줄 알았느냐”며 비웃는다. 백진상은 “뭐라도 소리를 내. 벨소리든 발소리든. 내 말에 동의는 하지만 겁은 나고, 그렇지만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의사표시를 하라”고 외친다. 하나둘씩 휴대전화 알람 소리가 들리더니 박수가 터진다.

팀킴과 서지현의 입을 막는다 해도 또 다른 이들의 알람이 울려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립되기 전에, 영웅 행세한다는 비웃음을 듣기 전에 법과 제도와 시스템이 먼저 알람을 울려주기 바란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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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도모할 때, 그 일의 가치와 명분이 우선 중요하지만, 과연 그 일을 실현해 낼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이 충분한가, 이 점 또한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아쉬웠던 것은, 한국 스포츠문화의 전반적인 개혁, 특히 학교 체육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여러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정작 책임 있는 당국의 핵심에서는 이에 관하여 무지하거나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그나마 어떤 사건에 의하여 그들로서도 불가피하게 참석하게 될 때조차 대단히 방어적이었다. 나름의 노력과 시간들은 또 하나의 ‘잃어버린 10년’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국위선양’의 깃발만이 펄럭이는 분위기 속에서 스포츠문화의 폐습들은 더 많이 생산되고 확산되어 어느덧 어디서부터 누가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적폐’가 되고 말았다.

그랬는데, 이제는 조금 기대를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범위를 학교 체육 정상화로 좁혀 보면, 적폐에 따른 비극적 사건들과 파탄의 양상들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잠시 검색해보니 최근까지도 현장 지도자들의 폭행 및 성폭력은 지속되고 있다. 체육교과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상태고 그런 대로 유지되는 교과의 실제 내용, 그러니까 체육이 무엇이며 몸이 무엇이며 건강한 신체 활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여전히 20세기의 개발주의식 신체관이 지배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학교체육진흥회’가 출범했다. 지난 10월26일 창립 총회를 가졌으며 연말까지 조직 구성을 완료해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 면면이 중요하다. 창립 총회에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안민석 국회 문체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의 관심과 영향력 아래에 교육부 추천 2명, 시·도교육청 추천 3명, 문체부(대한체육회 포함) 추천 3명, 외부 2명 등의 실무적 이사진이 구성된다.

위 언급한 인사들은 그간 한국의 스포츠, 좁게는 학교의 체육문화에 대해 지속적 ‘관심’을 보여왔다. 엘리트 체육 위주의 성적 지상주의가 아니라 보다 많은 학생들의, 보다 다양한 관점의, 보다 일상화된 건강한 체육 문화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유은혜 장관은 “학생·학부모·학교 관계자들의 다양한 요구 충족을 통해 참여 학생들의 교육적 경험을 확대하는 등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정권에서 ‘참 나쁜 사람’으로 찍혀 고초를 겪었던 노태강 차관은 체육국장 시절부터 학교 체육의 ‘정상화’에 관심이 많았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국위선양’ 일변도의 체육정책에 이의를 제기했던 안민석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계를 대표하는 조희연 교육감 역시 억압과 통제에 따른 훈육적 신체관 대신 자율적이고 다양한 신체의 자유와 문화를 강조해온 학자였다. 조 교육감의 저서 <동원된 근대화>는 사회통제로서의 반공 규율과 개발주의 담론으로서 국가주의적 동원체제가 어떻게 한국 사회의 집합적 심성을 구성했는지를 밝힌 책이다. 조 교육감은 ‘학교체육진흥회’를 최고 수준에서 책임질 이사장으로 추대된다고 한다.

간략히 살폈듯이, 당장은 학교 교육 문제지만 장차는 한국 사회의 가까운 미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의제가 되는 ‘학교 체육 정상화’에 있어 이른바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면면은 지난 ‘잃어버린 10년’과는 확연히 다르다. 단순히 ‘스포츠를 사랑하는’ 개인적 관심이 아니라 장관, 국회의원, 교육감 등의 무게로 참여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 또한 정책적으로 막중하며 역사적으로 중대하다.

여기에 결정적인 인사는 대한체육회다. 진흥회의 구조라는 면에서는 문체부 옆에 의자 하나를 더 놓는 정도지만, 대한체육회는 다른 모든 기구의 책임과 역할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무겁다. 우리 스포츠의 일상 문화가 전근대적이고 학교 체육 또한 붕괴되기 일보 직전인 작금의 사태에 있어 대한체육회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거꾸로 얘기하면 대한체육회가 어떤 가치와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의해 오랜 ‘적폐’가 하나둘씩 해결될 수도 있다.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날 무렵 어느 인터뷰에서 “소수 정예를 키워서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이제 우선 학교 체육이 정상화돼야 한다. 그래야 저변이 확충되고 아이들도 스포츠를 통해 민주시민으로 양성된다”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의 긍정적인 책임을 질 때가 되었다.

비영리법인이라는 조직의 성격상, ‘학교체육진흥회’가 수많은 이해관계가 뒤엉켜 있어 그야말로 ‘고르디아스의 매듭’이 되고 만 지금의 (학교) 스포츠 현실을 일시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관심’과 ‘영향력’을 언급했다. 위의 인사들 모두 학교 체육 정상화에 오랫동안 ‘관심’을 표명해왔고 이제는 그것을 실천할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조직의 입장에 따라 약간의 이견과 불가피한 조절이 있을 수는 있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한국 사회의 다른 뜨거운 의제들과 같이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할 정도는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현재의 인적 구성에서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말 참담한 현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도 “학교 체육이 제대로 서야 우리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고 강조하면서 “운동부 중심의 학교 체육을 전면 개편하고 일반 학생들의 학교 체육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대통령에서 실무 장관과 국회의원, 체육회장, 각 시·도 교육감까지 의견 일치가 되기도 드문 일이다. 학교 체육을 정상화해 우리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건강하게 경쾌하게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게다가 ‘국론 분열’도 없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역사적 과제 아닌가.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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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무려 전체 9권 3800쪽 분량의 <제5공화국 전사>를 확보했다고 해서, 나는 당장이라도 편집국에 찾아가고 싶었다. 혹시 신문사 안에 부탁할 만한 사람이라도 없나 하고 생각도 해봤다. 법정 공방까지 벌여가며 1년5개월 만에 확보한 ‘전사’를, 염치불구하고 복사를 하든지 아니면 밤새워 필사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전사(全史)’가 아니라 ‘전사(前史)’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5공화국의 전체사가 아니라 5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의 기록 말이다. 이런 ㅠ.ㅠ

물론 이 자체로 엄청난 기록이다. 10·26 시해 사건과 12·12 사태 그리고 무엇보다 5·18 광주항쟁에 관한 핵심 인물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형사적 죄책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전체사’였다고 하면, 요즘의 내 집중적인 관심사, 즉 88서울올림픽에 대한 5공 수뇌부들의 이데올로기를 실체 그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88올림픽에 대한 핵심 행위자들의 기획과 집행이 중요한 까닭은, 이 엄청난 스포츠 스펙터클에 대한 기존의 이해는 이른바 ‘3s 정책’ 정도이기 때문이다. 각종 프로스포츠와 특히 88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는 특정 국면의 타개 전술 정도가 아니다. 국가는 그렇게 수세적이고 방어적이지 않다. 특히 매우 공격적인 독재정권이 권력을 부당하게 찬탈하여 국가의 운전대를 잡게 되면, 그 순간 이후 국가는 폭주한다.

5·16이 그랬고 12·12가 그랬다. 권력을 움켜쥔 군부는 의회나 언론 같은 브레이크 장치를 제거해 버리고 순식간에 진격한다. 거의 1년 안팎에 정치와 행정의 중심을 거머쥘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일거에 동원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전개하고 거대한 문화 통치 전략을 구사한다.

스펙터클 문화 통치라는 측면에서, 5공화국이라는 진격의 국가는 88올림픽을 기획하고 그것을 ‘범국민적’으로 집행하여 결국 그 책임자가 ‘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대단원으로 강력하게 자기 조정을 해나갔다. 정치학계에서는 1987년 민주화 운동과 그해의 대통령 선거 결과를, 그람시가 말한 ‘수동혁명’이란 관점에서 분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문제 설정이 크게 보아 타당하다면, 나는 88올림픽이야말로 국가권력의 강력한 수동혁명의 엔진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반드시 덧붙여야 할 판단 근거들은, 극단의 정치와 스포츠 스펙터클 신드롬 사이에 넓게 퍼지기 시작한 1980년대의 중산층 문화다. 긴박한 정치 정세와 다소 무관하게, 1980년대는 3저 호황과 내수 소비 활황 속에서 컬러 TV와 마이카와 외식으로 대표되는 중산층 문화의 확산 과정이었다. 그 정점은 물론 아파트다. 이 경제문화의 조건에서, 진격의 국가가 휘날리는 88올림픽이라는 깃발을 따라 ‘범국민적’인 중산층 욕망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이렇게 두루 살필 때, 88올림픽을 ‘3s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의 극히 작은 부분을 가리킬 뿐이다.

어느덧 88올림픽 30주년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나는 이러한 관심사에 자극을 주는 작업들을 보게 되었다. 스포츠 전문기자 위원석은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전후로 한 박정희 대통령 및 그 무렵의 스포츠 권력자들의 기록을 통하여 88올림픽이 비틀거리는 3공화국의 짙은 한숨 속에서 이미 기획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김운용이나 박세직의 자서전은 물론 전두환과 노태우의 회고록도 참조하고 있는데, 이 기록들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검증은 더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1980년대 전후의 혼란 속에서 권력 수뇌부들이 올림픽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권력의 중심이 지향하는 바와 그 언어들을 검토하건대 결코 올림픽은 ‘3s’ 같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다.

위원석이 참조하였듯이, 허진석이나 박재구가 쓴 학위 논문들도 올림픽을 특정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국가권력 그 자체의 작동 원리 속에서 접근하고 있어 흥미롭다. 88올림픽을 사회학적 측면에서 연구해온 박해남도 국가권력이 스포츠팬들보다 훨씬 더 스포츠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밝혀왔다. 그가 오랜 연구를 총집하여, 88올림픽의 정치사회적 성격을 학위 논문으로 결산하였다고 하니, 읽고 싶다.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은 관심을 어려운 자료나 논문에 기대지 않고, 그저 편하게 57분 정도로 화면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인터넷을 검색하면 된다. KBS 스포츠국의 이태웅 피디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88/18> 말이다. 지난 9월16일에 방영되었는데, 88올림픽도 1988년 9월17일에 개막되었으니, 정확히 30주년이다.

무려 15테라바이트(TB) 분량의 KBS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일단 40시간 분량을 추려내고 이를 다시 약 57분으로 적극적인 편집과 연출을 한 작품이다. <천하장사 만만세> <공간과 압박> <숫자의 게임> 등 독특한 ‘작가주의적’ 관점의 쾌작을 만들었던 이태웅 피디는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 올림픽이 관련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판단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TV 다큐의 공식과도 같은 쉼 없는 내레이션이나 과장된 효과음 하나 없이, 오로지 당시의 방송 화면들과 88올림픽에 직접 관여한 사람들의 인터뷰만으로 이어지는데, 그 형식 자체가 흥미롭다.

이 다큐는 허화평으로 시작해서 그의 논평으로 끝난다. 다큐의 끝에서 그는 말한다. “88올림픽이, 전두환 정권으로 하여금, 싫어도, 절대 그런 생각이 없었어도,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도록 만들었다.” 글쎄, 여러 각도의 자료와 해석이 더 필요하지만, 최소한 더 이상 ‘3s 정책’ 같은 말로 스포츠 스펙터클을 판단하는 것은 부족하고 게으른 것임을 확증하는 ‘5공 실세’의 증언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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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30년 전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반쪽 대회로 치러진 뒤 개최된 서울 올림픽은 동서화해 무드가 조성된 역사적인 올림픽이었다. 서울 올림픽의 모토는 ‘화합과 전진(Harmony and Progress)’, 슬로건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The World to Seoul, Seoul to the World)’였는데, 당시 160개국에서 8465명이 참가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였다.

88서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4위라는 올림픽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개최국의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성적이었고, 그 이면에는 올림픽 유치 이후 추진된 꿈나무선수 발굴과 스포츠과학의 지원에 힘입은 바 컸다. 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전신인 스포츠과학연구소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다.

IOC를 비롯해 많은 올림픽 개최국들은 스포츠과학의 발전을 공유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해오고 있다. 최초의 올림픽 학술대회는 1897년 프랑스 르 아브르(Le Havre)에서 ‘교육과 위생’을 주제로 개최되었고, 이후 스포츠과학 학술대회의 면모가 갖춰진 것은 1964년 도쿄 올림픽부터이다. 이때부터 올림픽 스포츠과학학술대회는 IOC에 의해 올림픽대회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개최되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기념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도 이 차원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학술대회에는 58개국에서 1670명의 학자들이 참가하여 7일 동안 역대 최대 규모의 스포츠과학자 대회로 진행되었다.

대회 개최 장소인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는 당시 총장 장충식 박사의 헌신적 노력으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에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기념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우리나라 스포츠과학 발전에 기념비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올림픽기념 국제스포츠과학학술대회를 개최한 이후 30년 넘게 지속적으로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올림픽 유산을 잘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에서 스포츠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덕분에 한국 스포츠과학자들은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적인 학자나 학술단체와의 교류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학술 교류를 통해 수집된 전문적이고 다양한 정보는 스포츠현장에 활용되어 대한민국의 스포츠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편 스포츠에서는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말처럼 스포츠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없이는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번에 폐막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4년 만에 일본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비하여 오래전부터 선수 저변 육성으로부터 경기력 향상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 과학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88서울 올림픽 개최 이후 30년간 쌓아온 스포츠시스템의 성과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기초종목 육성과 스포츠 저변을 견고히 하는 향후 30년에 대한 새로운 전략과 스포츠과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신욱 | 단국대 교수·한국체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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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결승전의 숨은 MVP는 김민재”라면서 “일본의 역습을 잘 막아냈다”고 극찬했다. 과연 그랬다. 김민재는, 특히 일본전에서, 폭우를 쓸어버리는 자동차 와이퍼처럼 깔끔하고도 신속하게 일본 공격을 차단했다. 최용수 SBS 해설위원은 황의조를 극찬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황의조가 골을 터트렸을 때 “클래스가 다르다. 옛날의 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베트남전에서 황의조가 골을 넣자 “옛날의 저를 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부끄럽다. 사과하고 싶다”고 축하했다. 한편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수비수 김진야를 “정말 대단하다. 뛰어난 기술과 지치지 않는 체력”이라고 격려했다. 김진야는 이제 ‘철강왕’으로 불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사실 손흥민을 잠시 괄호 안에 넣고 젊은 후배들부터 극찬하는 마음일 것이다. 6월의 러시아와 달리 8월의 인도네시아에서, 그라운드 안의 독전관은 손흥민이었다. 그는 골키퍼 자리를 빼놓고는 거의 모든 역할을 수행했다. 자신이 공을 찰 수 있음에도 황희찬이 의욕을 보이자 뒤로 물러섰고 금메달 결승골을 터트릴 수 있음에도 이승우가 ‘나와, 나와’ 하자 순간적으로 공과 멀어졌다. 조제 무리뉴 감독은 페널티킥을 실패하는 선수가 아니라 그 자리를 두려워하는 선수를 싫어한다고 했는데, 손흥민은 어디에나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손흥민이나 득점왕 황의조를 괄호 안에 넣고, 누가 이번 대회 MVP냐고 묻는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황인범이라고 외치고 싶다.

거의 모든 골에 관여한 황인범은, 현대 축구에서 요구되는 세 가지 요소, 즉 탁월한 개인 기술과 높은 수준의 전술 이해 그리고 막판까지 이 두 요소를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체력 안배 기술을 갖고 있다. 단순히 물리적인 ‘체력’이 아니라 그것을 완벽하게 조율하여 90분 내내(때로는 120분) 최고의 기술 상태를 유지하는 ‘밸런스’ 말이다. 황인범의 땀은 그라운드 모든 곳을 골고루 적셨다.

황인범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공을 정확히 간수한다. 이로써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자신의 공간을 명확하게 지배한다. 공을 안정적으로 간수해야 공간을 지배하게 되는데, 경기 초반에 이 능력이 의심받을 경우 상대 수비수들은 여지없이 달려든다. 이럴 때, 공간 지배는 고사하고 황급히 패스부터 하게 되는데 의미 있는 공격 작업은 무망해진다. 반면 황인범의 첫 터치는 환상적이다. 일본전의 결승골, 이승우가 파리채를 휘두르듯이 터트린 슛은, 바로 직전 상황에서 아주 높이 떠오른 공을 황인범이 제 몸의 일부처럼 완벽하게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수차례 이런 장면을 보여줬기에 최용수 해설위원은 “공을 저렇게 간수하는 선수는 근래 보기 드물다”고 극찬했다.

이렇게 공을 다스린 후 황인범은 어떻게 했던가. 그는, 흡사 대여섯 개의 눈이라도 달린 듯 지체 없이 킬 패스를 찔러 넣거나 좌우로 흔들면서 공간을 찾아 나섰다. 공은 언제나 그의 발에서 1m 이내에 머물렀다. 그의 패스는 간결했고 빨랐으며 정확했다. 가까이로 손흥민을 보았고 멀리로 황의조를 의식했다.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 이해도의 측면에서도 황인범은 원숙했다. 김학범 감독은 베트남전에서 황인범 대신 이승우를 선발 투입했다. 기술적인 우위가 확연하게 증빙되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골을 집어삼키기 위한 공격 전술이었다. 반면 일본전에서는 황인범이 먼저 그라운드를 종횡으로 누볐다.

김학범 감독은, 특유의 세밀한 기술 축구를 가진 일본전의 승부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조커를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병법을 선수들에게, 무엇보다 황인범에게 정확하게 지시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안정감 있게 경기 템포를 유지하되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거세게 밀어붙인다는 전략! 이를 위하여 황인범은 평소 포지션에서 조금은 더 밑으로 내려와서 견고하게 팀 밸런스를 유지했다.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왔고, 이승우가 투입되었으며, 황인범 또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팀 전체의 무게중심이 황인범에 의하여 공세적으로 전환되면서, 골이 연거푸 터졌다.

걸출한 스타에 비유를 하자면, 한순간에 수비 라인을 허물어 버리는 전성기의 이니에스타 혹은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와 같은 기술을, 그 우아한 스타일을, 그 완벽한 밸런스를, 무엇보다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 명령서를, 황인범은 그라운드에서 정확하게 구현해냈다.

미래의 잠재력이 아니라 입증된 실력이란 점에서, 소속팀이나 대표팀에서 황인범은 귀한 선물이다.

프로축구 K리그2의 대전시티즌은 최근 5경기 무패로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골이 귀하다. 이 상황에서, 유성중과 충남기공을 거친 프랜차이즈 스타 황인범이 조기 전역하여 가담하면 상위권 도약이 가능하다.

파울루 벤투 감독도 일찌감치 황인범을 선발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기성용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혔다. 만약 그가 그렇게 결정한다면 아쉽기는 해도 막을 수는 없다. 머지않아 그날이 오기 마련이다. 그 대안을 ‘신중하게 서두르는’ 게 정답이다.

이미 황인범은 리스본의 양대 라이벌인 명문 벤피카와 스포르팅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벤투 감독은 바로 그 도시 출신이다. 감독은 자기 스타일을 몸으로 구현할 선수를 찾기 마련이다. 공세적인 패스 축구를 지향하는 벤투 감독의 전술 플랜에 황인범이라는 엔진이 탑재된다. 같은 포지션에 주세종과 이재성이 있어 당장 주전이 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기성용 혼자 전담하던 공격 루트 찾기에, 급가속이 가능하고 코너링이 뛰어난 황인범이 가담하게 되면, 그 어떤 공성전에서도 일단 슈팅 찬스만큼은 낚아챌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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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하여 15년,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고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에도 기여한 르브론 제임스. 203㎝의 거구로 강력한 파워와 현묘한 기술로 코트를 지배했지만, 그가 가장 잘 다스린 것은 그 자신이었다. 데뷔 14년차 되던 2017년 11월, 무려 1082경기 만에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최고 수준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코트 바깥의 경기에서는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고향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아이 프로미스(I Promise)’를 개교한 뒤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올 초에도 “인종주의가 우리를 정복하고 우리를 분열시키도록 둬선 안된다”고 트럼프를 비판한 제임스는 “트럼프가 스포츠를 이용해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트럼프도 제임스를 비아냥거리며 마이클 조던을 존경한다고 언급했다. 아차, SNS는 하등 필요 없는 것이라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랬던가. 트럼프는 실수했다. 마이클 조던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0세기 스포츠의 최고 영웅인 마이클 조던은 “난 르브론 제임스를 지지한다”고 즉각 대응했다. 조던은, 자신이 백인 주류 사회로부터 ‘성공한 흑인’으로 선택받는 것을 불편해하고 그런 ‘호의’를 거절해온 사람이다. 조던처럼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조던은 거부해왔다. 그랬는데, 트럼프가 제임스를 비난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들먹거린 것을 조던은 불쾌해한 것이다. 조던은 덧붙였다. “제임스는 지역사회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르브론 제임스가 설립한 학교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새로운 개념의 학교를 준비해왔다. 단지 억만장자 스포츠 스타가 기부하여 설립하는 자선 학교가 아니라 수업의 체계와 방식,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관계가 ‘전혀 다른’ 학교를 제임스는 상상해왔다. 그의 어머니는 16살 때 제임스를 낳아 남편 없이 혼자 키웠다. 극심한 가난과 인종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생각했다.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가 필요하다고. 개교를 하면서, 제임스는 울었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지뉴도 그랬다. ‘파벨라’, 즉 판자촌에서 성장한 호나우지뉴는 2006년 12월, 고향 포르투 알레그리에 3만6000여평 규모의 국제 규격 축구장과 다목적 연습장, 2개의 수영장과 4000석 규모의 실내경기장이 있는 학교, 아니 학교라기보다는 하나의 공동체 마을을 설립했다. 학교 안에 병원까지 있고 그 밖의 공동체 시설이 들어섰다. 이 ‘학교’를 개교하면서 호나우지뉴는 기념 슛을 했는데, 자기 평생 가장 의미 있는 킥이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두 경우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우리의 스포츠 문화와 교육 말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스포츠 교육은 제자리걸음이다. 일반 학생들은 스포츠를 즐기기가 쉽지 않고 장차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은 일반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다. 진학, 병역, 취업 등과 관련하여 모든 학생들, 지도자들, 학부모들의 입장이 뒤엉켜 있어서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다. 엉킨 실타래를 칼로 내리쳐서 끊어야 할 텐데,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나 각 종목의 협회에서 몇 차례 그런 시도를 했으나 무딘 칼날이었고, 그 후의 대안도 마땅치 않아서 실타래는 더 엉키고 말았다.

그런 현실 때문인지, 스포츠를 교육한다는 것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다른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 그 내용 자체가 여전히 20세기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의 교과목은 대체로 기능적이고 도구적이다. 신체적 능력에 집중되어 있어서 스포츠에 내재된 역사와 미학과 정서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기가 어렵다. 스포츠를 사회 전체와 떼어놓음으로써, 이 의미 있는 행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가치가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최근의 일만 복기해보자. 21세기의 다문화와 이민, 난민의 상황들. 이를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통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프랑스 대표팀이 ‘성공’했다는 게 아니다. 그 ‘성공 신화’와 실제 유럽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 생생한 교육 자료라는 얘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하여 베켄바워, 루메니게, 비어호프, 히츠펠트 같은 독일 축구계의 리더들 그리고 보아텡이나 뮐러 같은 현역 스타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외질 선수의 독일 대표팀 은퇴 사례 역시 의미 있는 공부가 된다. 국가 부르기가 강요된다면 차라리 부르지 않겠다고 했던 지네딘 지단의 사례처럼, 외질의 대표팀 은퇴는 국가와 스포츠,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의 관계, 이민과 다문화 등 우리가 이미 겪고 있거나 곧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될 상황을 숙의하게 해준다.

말하자면 ‘스포츠 하기’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읽기’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스포츠를 통해서 복잡한 역사도 배우고 다양한 가치와 상충되는 윤리적 난제도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누가? 이 중요한 사안들을 스포츠 연구자나 전공자가 아니라 무엇보다 선수들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미 몸속에 이러한 난제들이 뒤엉켜 있는 그들에게 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스스로 겪는 수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에, 우리의 선수들이, 스포츠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방송까지 진출해서 유명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에 참여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진짜 스타’가 되는 것이다. 가난과 차별에 맞서 지단이 싸웠고 호나우지뉴가 눈물을 흘렸으며 제임스가 연대를 하고 있다. 그런 행렬에 우리 선수들, 우리의 스타들도 함께하는 풍경을 상상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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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대표팀이 파리로 입성하자 샹젤리제는 환영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표팀 선수들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다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새롭게 탄생하는 분위기였다. 많은 이민자를 받아온 프랑스는 반이민정서가 팽배하고 히잡 착용 등의 문화적 충돌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번 우승으로 사회통합 분위기가 연출됐다. 프랑스 대표선수 23명 가운데 21명이 이민자 출신이다. 그중 15명은 아프리카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팀은 ‘레블뢰(파란색·대표팀의 유니폼도 파란색)’로 불리지만 유색인종 선수들의 활약이 뛰어나면서 ‘블랙·블랑·뵈르(흑인·백인·북아프리아계)’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 우승이 인종과 종교의 화합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 것이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가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로 발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다. 프랑스 대표팀은 이날 오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를 4-2로 꺾고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파리 _ EPA연합뉴스

그러나 프랑스와 땅을 맞댄 독일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예선탈락한 후 인종차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 메수트 외질 선수에 대한 비난이 대표적이다. 그는 터키 이민자의 후손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며 올해의 선수상을 5차례나 수상한 스타플레이어다. 그런데 지난 5월 터키 대통령과 사진을 찍은 뒤 ‘독재자와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독일이 예선탈락한 뒤 축구팀 단장은 “국가대표로 뽑은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며 탈락의 책임을 그에게 전가했다. 승리엔 트로피가, 패배엔 희생양이 필요했던가. 외질의 아버지는 “9년 동안 독일을 위해 뛰었으나 그들은 외질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 23일 국가대표팀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SNS에서 “저는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 하나는 독일을 향한 마음이고 하나는 터키를 향한 마음”이라면서 그러나 “팀이 이기면 독일인이었지만 지면 이민자였다”고 토로했다. 최근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면서 인종차별과 무례함을 느꼈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올여름 독일 대표팀의 진정한 패배”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더 큰 패배는 차이와 다양성이 무시되고, ‘화합을 통한 공존’이라는 진보의 믿음이 깨진 데 있다. 더구나 아리안 인종론으로 전대미문의 학살을 자행한 역사적인 짐이 있는 독일로서는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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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대회 우승팀 독일 축구대표팀의 ‘캡틴’ 필립 람과 러시아의 슈퍼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피파 트로피를 들고 입장했을 때,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는 ‘황금의 엑시터시’가 울려 퍼졌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품으로, 세 명의 총잡이가 욕망의 극한에 이르러 최종 승부를 겨루는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음악이다.

순간, 나는 탁월한 선곡이라고 생각했다. 월드컵 결승전이라, 전 세계 10억명이 몰입하는 최고 수준의 황홀경 아닌가. 과연 마지막 최종전은 10억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예측불허의 상황을 거듭하며 끝까지 극단의 황홀경을 선사했다. 누구도 연출할 수 없는 폭우까지 내려 450g도 안되는 축구공이 빚어낸 한 달의 여정을 시원하게 적셨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들이었다.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누구도 최종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극장 골’의 연속, 736명의 모든 출전 선수가 주연이었다. 각국 대표팀은 저마다 개인적 사연과 그 나라의 집합적 열망을 러시아 전역에 투사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장 인상 깊은 팀은 이란과 벨기에. 흡사 지옥의 게임에 출전한 듯한 이란은, 비록 ‘뷰티풀 게임’을 보여주지는 못했어도, 어차피 인생이란 진흙탕에서 기어 나오는 것이라는 듯, 그들만의 방식대로 마지막 한 방울 땀까지 잔디에 적셨다. 벨기에는 3위로 등극하는 마지막 경기까지 독창적인 드리블과 패스로, 축구란 1초 전에는 무의미했던 공간을 신묘한 상상력으로 유의미하게 창조하는 우아한 행위임을 입증했다.

반면 잉글랜드는 마지막 경기를 무기력하게 끝냈다. 이미 그들의 응원가인 ‘축구가 집(잉글랜드)으로 돌아오고 있네’라는 노래는 준결승전 후 맥이 풀린 다음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복장. 그는 모든 경기마다 세련된 조끼를 입고 나왔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전통주의를 상징함은 물론 최근 영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이후 점점 세계 경제의 핵심에서 고립되고 이에 따라 테레사 메이 내각의 주요 장관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홍역 속에서 유일한 즐거움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끄는 축구팀의 선전이었다. 안타깝게도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은 잔디 위에서 할 일을 다했다. ‘신영국병’을 치유하는 것은 선수들의 의무가 아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프랑스를 물리치고 우승했을 때, 독일 언론은 “트로피는 이탈리아, 진정한 챔피언은 독일”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은 적이 있다. 그 대회에서 독일은 3위를 했는데, 2차 대전과 분단 이후 독일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거리와 광장에서 국기를 흔들고 국호를 외치는 일이 사실상 중지되었으나 월드컵으로 인하여 어두운 역사가 드리웠던 오랜 심리적 부채를 조금은 씻어낼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자면, 이번 대회 우승은 프랑스가 했지만 진정한 챔피언은 크로아티아다. 아, 물론 시상대에서, 폭우가 내리자마자 잠시나마 혼자서 우산을 썼던 푸틴이 진짜 우승자이긴 하지만 말이다.

축구장 바깥의 크로아티아 상황은 여의치 않다. 2008년에 9%였던 실업률이 2014년에는 무려 22.7%였다. 2018년 초, 11.5%로 다소 안정화되었지만 고등교육을 받거나 일정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국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아드리아해 주변의 아름다운 관광 도시가 크로아티아를 연명시키고 있다.

2017년 6월 선거를 통해 수도 자그레브 시장으로 6번째 당선된 반디치 시장은 2014년 부패 혐의로 긴급 체포된 적도 있다. 그럼에도 6차례나 당선되었는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시민들은 반디치 시장의 부패를 알고 있으나,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인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매우 공격적으로 연합 전술과 대중 정책을 구사해온 우파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 기반이 되는 가톨릭 세력과 함께 점점 더 민족주의적 발언과 인종 혐오를 앞세운다. 아드리아해의 보석 두브로브니크 같은 곳에서는 크로아티아의 이런 혼란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골든볼’을 수상하며 이번 대회 최고의 선수로 떠오른 모드리치는, 어쩌면 월드컵 이후 심각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 크로아티아 검찰이 크로아티아 최고 구단인 디나모 자그레브의 마미치 전 회장을 횡령과 탈세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팀 소속이었던 모드리치의 ‘거짓 증언’을 재판에까지 회부했기 때문이다. 마미치는 크로아티아의 모든 축구팬이 혐오하는 부패의 상징이다. 이 자에게 모드리치가 연봉의 일부를 상납하고 거짓 증언까지 했다는 것이 유죄로 확정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어쩌면 크로아티아 팬들이, 그리고 시상대에서 모드리치를 눈물로 포옹해준 콜린다 대통령이 모드리치를 용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이 축구장의 ‘엑시터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축구장의 열기에는 정치적 열광이 늘 어느 정도 투사되기 마련인데, 직업적으로 그것을 부풀리거나, 없으면 만들어내기도 하는 정치인들이 월드컵의 엑시터시를 한여름 밤의 꿈으로 흘려보낼 리 만무하다.

모드리치를 포함한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1990년대 초반 내전 시대에 태어나 끊이지 않는 포성 밑에서 축구를 배웠다. 그랬는데 이제 그들의 월드컵 쾌거가 자국민의 자유를 일정하게 제한하거나 다른 인종이나 종교에 불관용의 도구로 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축구장의 엑시터시가 발칸반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는 파시즘의 전조가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여름 밤의 꿈’이 낫지 않은가. 선수들의 땀과 팬들의 눈물이 장외의 정치적 열광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지금의 발칸반도에서는.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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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는 1998년 창단했다. 함께 생긴 팀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다. 애리조나는 ‘사막 방울뱀’이 팀 이름이다. 탬파베이는 ‘악마 가오리’다. 둘 다 신생팀답게 패기 넘치는 ‘쎈’ 이름을 썼다. 애리조나는 김병현 때문에 국내팬들에게도 친숙하다. 창단 3년째이자, 김병현이 뛰던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탬파베이는 따라가지 못했다. 기를 썼지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보스턴과 뉴욕 양키스 등 쟁쟁한 팀이 워낙 많았다. 우승은커녕 꼴찌를 도맡아 했다. 1998~2007년 10시즌 동안 9번 꼴찌였다. 100패를 넘긴 게 3번, 99패도 2번이었다.

팀 성적이 나쁘니, 돈을 벌기 힘들었다. 돈이 없으니 투자를 못하고, 성적은 계속 바닥이었다. 빈센트 나이몰리 구단주는 닦달했다. 온갖 일에 참견을 하면서 비용을 쥐어짰다.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구장 내 음식물 반입 금지 규정’을 감시했다. 한번은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들고 온 견과류 한 봉지를 트집 잡았다. 경기장에서 내쫓았다. 당뇨병 ‘비상식’이었다는 해명도 소용없었다. 단체관람을 온 노부부는 결국 경기장에서 쫓겨나 버스에서 3시간 동안 동료들을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외부 음식물을 발견하면 해당 관중에게 다가가 ‘어느 문으로 들어왔냐’고 물었다. 나이몰리는 해당 문을 지키는 직원을 해고했다.

팀이 바뀐 것은 구단주가 바뀌고 나서였다. 2005시즌이 끝나고 월스트리트 출신들이 탬파베이를 인수했다. ‘악마 가오리’에서 ‘악마’를 뺐다. 새 이름 레이스(rays)는 가오리라는 뜻과 함께 ‘햇살’을 뜻했다. 2년 동안 내실을 다진 뒤 2008년 대변신에 성공했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양키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10년 동안 꼴찌만 하던 팀의 극적인 대변신이었다. 탬파베이 성공 이유 중 하나는 ‘시프트’였다. 내야수들의 위치를 상대 타자 타구 성향에 따라 폭넓게 이동시켰다. 새 경영진은 월스트리트 출신답게 숫자를 분석해 방향을 제시했다. ‘혁신의 대명사’인 탬파베이 조 매든 감독과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다. 만년 꼴찌는 수비에서 1등이 됐다. 점수를 덜 주고, 경기를 이겼고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시프트는 전통적인 수비 위치와 다르게 선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반대한다. “야구가 120년 동안 수비 포지션을 유지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증거는 없지만 오랫동안 해왔으니 그게 맞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탬파베이의 성공 이후 시프트는 대세가 됐다. 2011년 메이저리그 경기 전체에서 수비 시프트는 2350번 이뤄졌다. 2016년에는 2만8130회로 늘었다. 5년 사이 10배 넘게 증가했다. 시프트에도 중요한 요소가 있다. 야구공은 예측 불가능하다. 확률은 존재하지만, 확률이 100%를 뜻하지는 않는다. 수비 위치를 볼펜으로 콕 짚어줄 수는 없다. 수비수는 자신의 수비 범위와 송구 능력을 감안해 시프트 위치를 정한다.

KBO리그에서 가장 내야 수비가 강한 팀은 두산 베어스다. 유격수 김재호와 2루수 오재원은 엉뚱해 보일 정도로 과감하게 수비 위치를 옮긴다. 벤치의 지시가 아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 감이 올 때가 있다. 그러면 직접 수비 위치를 조정해주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면서도 “만약 감독이 수비 위치를 조정했고, 그게 맞아떨어졌을 때 더 큰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제대로 했는데, 무슨 문제? 김 감독은 “감독의 수정 지시가 적중하면 그다음부터 선수가 감독 눈치를 보느라 제 마음껏 움직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한마디도 안 하고 참는다. 그게 두산 내야 수비가 강한 이유이자 비결이다.

좋은 사장님이 되려면? 다시 말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야구 시프트의 교훈. 만기친람하지 말 것. 옛날부터 해오던 게 무조건 좋은 거라고 우기지 말 것. 참견하고 싶어도 맡겨둘 것.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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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에게 제안한 한국과 북한, 중국, 일본과의 2030년 월드컵 공동개최 구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동북아 평화 콘텐츠는 한반도 통일 이전과 이후  영원한 자산이고 스포츠로 보면 이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인판티노는 유능한 인물이다.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 때 유럽챔피언스리그라는 상품을 성공적으로 운영했고 국가대항인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본선 참가국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하는 것을 주도했다. FIFA가 각 나라에서 4~5개의 경기장을 활용해 적어도 2개 국가, 많게는 3~4개의 국가가 대회를 공동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은 그가 관철시킨 월드컵 출전국을 2026년부터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한 것과 연관 있다. 한 국가에서 80개 경기를 다 치르는 것은 운영상 어려움이 있고 흥행 반감 위험도 있다.

FIFA는 월드컵 축구라는 상품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민간 비영리 국제스포츠단체다. 이들은 축구의 저변 확대를 통해 파이를 키우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파이를 키우는 핵심에는 브릭스 국가(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및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멕시코 등 신흥경제 국가와 중계권을 구입하는 미디어사, 스폰서를 구입하는 글로벌기업이 있다. 출전국이 증가하면 그만큼 저하될 수 있는 흥행의 위험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이 때문에 2~4개 국가의 공동개최는 흥행도 유지되고 비즈니스도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미 2026년 월드컵은 미국, 멕시코, 캐나다의 공동개최로 확정됐다.

경제강국인 한·중·일이 자국팀 경기만 개최해도 FIFA의 주 수입원인 입장권, 중계권, 스폰서십 규모는 훨씬 커진다. 아디다스 등 글로벌기업의 마케팅 경쟁도 달아오른다. 북한도 비즈니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평양에서 월드컵을 보고 원산에서 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월드컵 로컬스폰서는 개최국 권한이라 북한 내 주력상품이나 기업을 공식스폰서로 하여 세계에 알리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중국은 세계적 스포츠마케팅 기업인 스위스 인프론트사를 완다그룹이 인수하면서 스포츠계의 영향력을 키우며 거대한 시장을 앞세워 단독개최를 희망하고 있지만 2026년부터 출전국의 확대로 명분이 약해졌다.

동북아 공동개최는 이 지역의 관광과 다양한 산업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남북한·중·일 동북아시아는 지리적으로 보면 하나의 콘텐츠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원소스멀티유즈형 지역이다. 서울에서 응원하고 교토를 관광하거나 베이징에서 축구를 보고 원산에서 서핑을 할 수 있는 2시간 거리는 최대의 장점이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미 스포츠는 평창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 안의 정치를 경험하며 규모를 키웠다. 지정학적으로 첨예한 한반도에 축구를 통해 동북아 평화와 경제공동체의 역량을 쌓을 수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그동안의 FIFA의 검은 뇌물 의혹을 걷어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투명하고 윤리적인 조직 개혁의 책무를 갖고 있다. 1년 전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 월드컵 구상에 대해 비전을 언급만 하는 것으로도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며 믿음을 갖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년 후 러시아 월드컵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다시 만난 인판티노 회장은 그때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면서 대통령의 열성과 추구하는 가치가 힘을 발휘했다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FIFA 월드컵 동북아 공동개최를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호응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비즈니스의 핵심인 상대방의 가치를 만족시켜주는 고도의 지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축구장 인프라를 갖고 있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열리는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스포츠대회의 주기성 때문에 축구협회를 비롯한 스포츠단체의 명분이 살아나고 조직 풍토가 변하지 않는 원인을 제공한 역설도 있으나 세계에 선보여도 존경받는 스포츠체계를 만들고 연마하여 역사적인 장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다.

<신재휴 서울시립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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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러시아 월드컵 한국·독일전을 앞두고 한국의 2-0 승보다 오히려 독일의 7-0 승 가능성이 더 크다는 해외베팅업체의 평가가 있었다. 그만큼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7-1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패배시킨 독일 축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반면 스웨덴·멕시코전에서 부진했던 한국 수비진은 극심한 비난여론 속에 ‘멘털 붕괴’ 상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우려는 기우로 판명됐다.

한국 선수들은 세계최강 독일의 슛을 육탄으로 막아냈다. 부진에 대한 자책감과 팬들의 비난이 선수를 ‘죽기 살기’로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떨어져 출전을 포기할 생각까지 품었던 장현수 선수는 “너 때문에 진 게 아니다”라는 동료들의 다독거림에 마음을 다잡았다. 김영권 선수 역시 “월드컵 준비 4년 동안 너무 힘들었지만 이 순간을 위해 견뎠다”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선수들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눈물로 쏟아냈다. 국가대표의 무거운 짐을 진 선수들에게 던졌던 돌팔매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세계최강 독일을 탈락시킨 것은 세계축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근본 문제가 선수들의 막판 불꽃투혼 뒤에 숨어 은근슬쩍 넘어갈까 우려된다. 2002년 4강과 2010년 16강에 진출한 한국축구는 2014년 브라질에 이어 이번 러시아 월드컵까지 2회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국축구의 실패’라 규정할 수 있다. 스웨덴·멕시코전 패배에서 봤듯이 실패한 체력관리, 섣부른 전술실험 등 지도자의 경험 부족이 도드라졌다. 이제는 세계축구의 흐름에 맞는 외국인 명장급 지도자를 영입해야 한다.

한국축구는 이미 뿌리째 흔들렸다. 축구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K리그는 차이나머니로 무장한 중국리그와 선진시스템을 구축한 일본리그에 밀리고 있다. 유능한 선수들이 줄줄이 빠져나가 리그의 인기는 바닥을 기고 있다. 2011년 1000억원을 넘은 대한축구협회 예산은 700억~900억원대로 추락했다. 재임 중 2000억~3000억원대로 예산을 늘린다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약속은 공수표가 되었다. 전국의 월드컵 열기에서 확인하듯 축구는 협회장의 것도, 축구인의 것도 아니다. 축구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것이다. 새판을 짜서 출발하지 않으면 한국축구는 4년 후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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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은 들러리”.

아, 화가 난다. 어쩌다 이런 촌평까지 듣게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정작 당신네 팀들은 지역예선 5위로 탈락했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무튼, SI는 러시아 월드컵 32개국 전력을 6개 등급으로 분류했다. 우리 대표팀은 최하위다. 호주, 이란, 파나마,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만약 우리가 저 6등급 팀들과 한 조가 되어 맞붙는다고 해도 16강이 가능할까, 조심스럽다. 개최국 러시아, 아시아의 강호들, 더욱 굳세고 빨라진 호주를 이길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 레오강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식 또한 상큼하지 않다. 사실상 1.5군인 볼리비아를 돌파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투톱 김신욱과 황희찬을 ‘트릭’이라고 했다. 트릭?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인공이 내뱉는 마지막 대사만큼이나 난해하다. 어느 팀을 상대로 한 연막작전인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2 한·일 월드컵 때 마지막 평가전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였다.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솔 캠벨과 경합했던 우리 선수는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솔 캠벨은 전성기 때 신장 189㎝에 무려 100㎏의 거구로 100m를 10초대에 주파했다. 스웨덴이나 독일과 맞싸운다면 그런 정도의 평가전 상대여야 했다.

마지막 평가전은 세네갈인데, 장외 정보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비공개는 어쩔 수 없다 해도, H조에서 일본과 맞붙는 세네갈에 조금 이로울 뿐, 이 평가전을 ‘가상의 멕시코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와 일본이 많이 다르듯, 세네갈과 멕시코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곧 대회가 열리는데 무슨 불평의 소리냐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을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연히 그렇다. 그 점에서는 정말 ‘모두가 한마음’이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은, 전 세계 6개 나라뿐이다. 게다가, 지난번 칼럼에 썼듯이, 공은 둥글다. 신태용 감독도 스웨덴의 평가전을 본 후 그랬다. “공은 둥글다.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말이다. 기본적인 태도는 이렇게 모두가 같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이, 그리고 이영표 해설위원이 한 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은 5월19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평상시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리그 관중들 꽉 차고 그런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을 욕하고, 훈계하면 난 너무 좋겠다”면서 “그러나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3000만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덧붙이기를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영표 해설위원도 “솔직히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기는 것을 좋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러한가. 객관의 지표는 그렇다고 말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관중은 지속적으로 급감했다.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계속 감소다. 그때까지는 연평균 1만명 안팎이었으나 그 이후 8년 가까이 7000여명 수준이었고 올해 상반기는 5000명 정도다. FC서울이나 수원삼성 같은 ‘리딩 클럽’의 관중 수도 줄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로 우리 국민이, 축구팬들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되었는가. 쾌활하고 독창적이며 선진적인 마케팅은? 부재했다. 승부조작이나 심판 판정 같은 문제도 있었다. 각 팀들이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이기는 것만 좋아’한 것은 구단과 감독들 아니었을까, 이렇게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른바 ‘졌잘싸’, 즉 졌지만 잘 싸웠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이면에는, 이기면 더 좋지만 납득이 가는 패배, 다음 경기를 기대하는 패배, 그런 경기를 해달라는 뜻이다. 과연 각 프로팀들과 신태용의 대표팀이 그리 해왔는가,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그것이 축구의 한 부분이다. 월드컵 때라도 3000만이 감독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축구의 특성상,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판단력이 있어야 응원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 응원하고 열광하고 때로는 비판도 하는 게 축구다. 평범 속에 깃든 비범, 단순성에 녹아 있는 복잡성, 열광 안에 숨어 있는 비판, 비판에 담긴 절실한 열망. 그것이 축구다. 그것을 읽어야 한다.

예전에는 월드컵 때문에 지방선거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축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반대했다. 정치 무관심은 월드컵 때문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 때문이라고. 이제는 반대 현상이다. 지방선거와 북·미 정상회담 때문에 월드컵 관심이 줄지 모른다고 한다. 틀렸다. 각각은 각각의 내러티브로 움직인다. 월드컵 열기가 저조하다면 그것은 축구하는 사람들이 자초한 결과다. 게다가 난 그런 판단조차 반대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다들 밤을 샐 것이고 16강을 염원한다. 제발, 어느 한 팀이라도 이기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문제의 원인을 뒤죽박죽 섞어서, 마치 다른 조건들 때문에 곤란하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탄생 200주년이 되는 어느 사상가가 말했다. 문제의 원인은 내부에 있으며, 문제는 그 해결의 열쇠까지 안고 태어난다고. 한국 축구 내부의 상황에 의한 문제를 ‘3000만이 감독이 되어 무조건 이기기만 바라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단정하지 않기를 바란다. 잘못 하면 정말 무플의 고립무원으로 추락해 축구 산업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데, 이 무슨 안이한 진단인가. 21세기 인터넷 시대의 최고 명언,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을, 거듭 생각하자. 쓰디쓴 비판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침묵일 뿐<햄릿>의 마지막 대사).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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