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스포츠와 세상'에 해당되는 글 239건

  1. 10:44:07 [기자칼럼]오프너, 그리고 한선태
  2. 2019.06.25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비정상성’을 없애야 진짜 즐길 수 있다
  3. 2019.06.18 [기자칼럼]2000년생이 온다
  4. 2019.06.17 [사설]U-20 축구대표팀, 그대들 덕에 행복했습니다
  5. 2019.06.13 [사설]‘축구 새 역사’ U-20 축구대표팀의 놀라운 도전
  6. 2019.06.10 [여적]VAR의 위력
  7. 2019.05.28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 혁신이 엘리트 살리기다
  8. 2019.05.07 [기자칼럼]간성 선수가 연 ‘판도라의 상자’
  9. 2019.04.30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진천선수촌과 ‘뿌리’
  10. 2019.04.02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를 통하여’ 사회를 혁신하자
  11. 2019.03.26 [기자칼럼]‘역전 앞’ 야구장
  12. 2019.03.07 [기자칼럼]선수촌, 감기약, 미셸 푸코
  13. 2019.03.05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운동부 학생들을 교실로
  14. 2019.02.20 [기고]대한체육회·문체부의 ‘헛발질’
  15. 2019.02.12 [기자칼럼]‘인싸’의 조건
  16. 2019.01.29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지금 당장 선수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호해야
  17. 2019.01.28 [여적]전국소년체전
  18. 2019.01.15 [시론]스포츠계 미투가 들불처럼 일어나길
  19. 2019.01.15 [사설]체육계 미투 확산, ‘침묵의 카르텔’ 뿌리 뽑는 계기로
  20. 2019.01.10 [기자 메모]‘평창 올림픽서 쇼트트랙 금 5개’ 벅찬 목표 성적 제일주의 매몰…정부가 먼저 반성해야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는 1998년 창단했다. 같은 해 창단한 애리조나가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것과 달리 창단 뒤 10년 동안 줄곧 꼴찌였다. 운도 나빴다. 하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부자팀’ 소굴이었다.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과 겨뤄야 했다. 162경기 시즌 100패가 거듭됐다. 

한국선수들도 많이 뛰었다. 서재응, 류제국이 모두 탬파베이를 거쳤다. 지금은 최지만이 뛰고 있다.

10년 동안 꼴찌를 하던 팀은 11년째인 2008년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이름을 데블레이스에서 ‘악마’를 뗀 레이스로 바꿨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가 했던 전략이 ‘머니볼’이었다면 탬파베이가 2008년 이후 하고 있는 야구는 ‘데이터볼’이다. 월 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탬파베이의 새 구단주들은 데이터로 무장하고 팀을 변신시켰다. 첫번째 전략은 ‘시프트’였다. 야구장을 잘게 쪼개고, 각 영역에 따른 타구 확률을 계산했다. 내야수들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게 섰고 상대에게 안타를 덜 허용했다.

시프트를 둘러싼 시선은 차가웠다. 많은 이들이 “야구가 120년 넘도록 지금의 수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감각과 인상이 아니라, 숫자로 들여다본 야구는 달랐다. 10년 전 ‘파격’은 지금 ‘일상’이 됐다.

탬파베이의 전통 파괴 실험은 계속되는 중이다. 

지난해 탬파베이는 ‘오프너’라는 파격을 선보였다. 선발 투수가 나와 5이닝 이상 던지고, 나머지를 불펜 투수들이 나와 막는, 전통적 야구와 완전히 달랐다. 탬파베이는 수준급 선발 3명을 빼고, 나머지 2자리에 선발 투수 대신 ‘오프너’라 불리는 투수를 썼다. 선발 투수가 길어야 1~2이닝을 막는다. 때로 마무리가 먼저 나와 1회를 막았다. 어차피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거라면 앞에 3~6개를 확실하게 막는 게 승리 확률을 높인다는 계산이다. 계산은 정확했다. 탬파베이는 90승72패를 거뒀다. 아메리칸리그 15개팀 중 딱 6위여서 5팀이 나가는 가을야구에 못 갔다. 중부지구 1위 클리블랜드와의 승차는 1경기였다.

올해 탬파베이는 또 다른 파격을 선보이는 중이다. 선발 투수 오프너가 아니라 이번에는 타선의 오프너다. 전통적인 타선은 출루율이 높은 1~2번 타자에 장타력을 갖춘 3~4번 타자로 꾸려진다. 1~2번이 출루하면 3~5번 타자가 홈으로 불러들이는 식이다. 4번 타자는 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가 선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3~5번이 할 일을 2~4번으로 당기는 추세다. 강한 타자를 2번에 세워서,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들어서게 한다. 이른바 ‘강한 2번론’이다. 탬파베이는 한 발 더 나갔다. 굳이 2번을 강하게 할 게 아니라 아예 가장 잘 치는 타자를 1번에 세웠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1번 타순의 OPS는 0.758인데, 탬파베이 1번 타자들의 OPS는 무려 1.008이다. 1번 타자가 때린 홈런이 21개로 가장 많다. 탬파베이 4번 타자의 홈런은 겨우 9개다. 4번보다 훨씬 강한 1번 타자를 쓴다. 또 하나의 전통 파괴 혁신이다.

탬파베이의 올 시즌 연봉총액은 630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다. 그런데도 뉴욕 양키스에 이은 지구 2위를 달리고 있다. 아메리칸리그 전체 4위여서 가을야구에 나설 수 있다. 과감하게 전통을 깬 결과다.

KBO리그에서도 벽 하나가 깨졌다. LG 투수 한선태는 25일 SK전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선태는 프로야구 최초로 야구부를 거치지 않은 ‘비선수 출신’ 선수다. 탬파베이의 ‘오프너’는 막힌 길을 뚫었다. LG 한선태도 가로막던 벽을 부순 오프너였다. 벽이 하나 무너질 때 세상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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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나름 어떤 분야를 알고자 하였고 그 앎이 휴대폰 두께 정도는 되어 어느 정도 좋아하고는 있으나 실은 즐긴다는 게 무엇인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런 내 경우로 보건대 ‘즐긴다’는 경지는 속없이 히히거리는 것은 아닌 듯싶다.

스포츠는 말해 무엇하랴. 국가대표 출신으로 스포츠혁신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영표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즐기다’는 지든 이기든 상관없이 히히거리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영표 자신이 온몸을 던지며 증명하지 않았던가. 은하계 최고 스타 리오넬 메시가 “축구는 직업이 아니라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규칙이 제한하고 상대방이 압박하는 상황에서 어느 순간 저 드높은 초월의 세계로 질주한다.

경쟁과 승패는 스포츠의 본질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단기간에 결판 난다. 그날그날 승패가 분명하기 때문에, 인생 전체에 걸쳐 어떤 결실이 확인되는 다른 사회적 행위에 비하여, 냉혹한 면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즐기란 말인가. 그럼에도 명장들은 즐기라고 한다.

우리 스포츠 역사에서 감독이 ‘즐겨라’라고 지시한 최초의 사례는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그는 폴란드전을 앞두고 팀 전체에 “경기를 즐겨라”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후반 막판에 차두리를 투입하면서 “가서 즐겨라”라고 했고, 2012 런던 올림픽 때는 홍명보 감독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충고는 열심히, 그리고 즐기라는 말”이라고 했다.

도대체 즐긴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틀림없는 사실은 이기면 좋고 져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모든 감독과 선수들이 그러했거니와 숨 막히는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관계자와 팬들의 끓어오르는 열정 또한 그러하다. 무엇보다 당장의 경기에서 승패가 확정되고 이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현장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단순히 웃고 떠들다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스포츠는 그 승패의 엄중함에 의하여 존립한다.

그렇다면 일단 그 경기를 준비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지도나 연습을 건성으로 설렁설렁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일반적인 공부도 힘이 들고 몸으로 하는 스포츠는 당연히 더 힘겹다. 회사든 경기장이든, 소풍 가듯이 가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즐겁게?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점이 중요하다.

경쟁 자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경쟁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 스포츠 문화에서 다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스포츠가 지닌 본질, 즉 경쟁’을 가벼이 여기는 게 아니라 그 ‘경쟁’에 수반되는 온갖 비정상적인 요소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스포츠를 스포츠답게 하는 것은 당연히 경쟁이다. 그 경쟁에 의하여 몸으로 실천하는 종목에 내재된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평생의 참다운 관계가 맺어지며 매일같이 승패를 겪으면서 내면세계가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당연히 목표를 설정한다. 인생의 목표는 저 멀리 뿌옇게 존재하지만 스포츠에서 목표는 당연히 내일 경기의 승리가 아닌가. 그 목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갖 비정상성을 없애야 한다.

이미 스포츠 선진국의 오랜 노력은 결실을 보고 있다. 영국은 오랫동안 스포츠 문화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각 스포츠 조직과 지도자, 학부모, 선수들의 제반 교육, 문화, 언어, 관계를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율적으로 변모시켜왔다. 누구나 차별 없이 스포츠 및 신체 활동에 참여하는 가운데 뛰어난 선수가 자연스레 발굴되고 그 선수는 교육 당국과 스포츠 단체의 유기적 협력 속에서 건강하고 활달하게 성장한다.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 영국이 ‘스포츠강국’인 중국이나 러시아를 제치고 2016 리우 올림픽 2위를 거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 수영선수로서 출전하여 두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했던 스즈키 다이치. 그는 현재 일본 스포츠청을 이끌고 있다. 스즈키 장관이 주력한 것 역시 모든 사람이 스포츠와 신체 활동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지도자와 선수가 신체적으로 안전하고 생활에서도 안정적인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이었다. 이 기반 위에서 2020 도쿄 올림픽을 위해 선진적인 엘리트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이 또한 ‘과정’이 중요하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시설과 제도의 완비는 물론 무엇보다 교육권이나 문화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혁신하였다. 이는 지도자나 선수가 은퇴한 이후까지 작동한다. 국가가 이른바 ‘국위선양’을 위해 ‘선발’하면, 그 목표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은퇴한 이후에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럴 때 선수들은 스포츠를 높은 차원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승패가 분명한 스포츠 현실에서, 그것도 승패 여부에 따라 진학이나 고용 여부가 결정되는 우리 현실에서 지도자와 선수들이 스포츠를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발생하였고 또한 오래 누적된 비정상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혁신을 통하여 무엇보다 현장의 지도자들이 예전보다 더 안정된 조건에서, 저마다의 귀한 경험에 첨단 스포츠과학을 접목하여 그야말로 21세기에 태어난 선수들을 즐겁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아름다운 경우를 얼마 전에 우리 모두가 목격하지 않았던가. 한국 축구 U-20 대표팀의 정정용 감독 역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가서, 즐겨라!”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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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스키 1인자였던 미국의 린지 본은 올해 초 은퇴하면서 “그동안 열몇 살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려니 내가 너무 늙은 기분이었다”는 말을 했다. 본은 1984년생, 만으로 34세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1980년대 후반생이 중고참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 3월 이후 출생한 선수들이 올해 프로에 입단했으므로 1980년대 후반생이 맏형이 되어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어느덧 우리는 2000년대생이 스포츠 무대에서 입신양명하는 시대에 와 있다.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U-20) 월드컵 최우수선수상(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이 2001년생이다.

누구나 ‘요즘 애들’과 세대 차이를 경험하는 순간이 있다. 지난해 출간된 <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대와 소통해야 할 필요가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어린 선수들에게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이끌어내야 하는 스포츠 지도자들이야말로 ‘요즘 애들’과의 소통 기술이 요구되는 사람들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트래킹 데이터 장비로 투구 궤적과 회전율을 파악하고 타구 발사각을 측정해 선수 훈련과 전력 분석 등에 활용하는 게 유행이다. 감독과 코치 대다수는 이런 데이터 없이도 삼진을 잡고 홈런을 쳤던 세대지만 젊은 선수들은 다르다. 이들은 코치의 경험보다 데이터를 더 신뢰한다. 코치가 투구나 타격 메커니즘 등을 지도할 때 자신의 주장을 데이터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선수를 설득하기 어렵다.

류현진의 LA 다저스 동료인 1994년생 선발투수 워커 뷸러도 이런 부류다. 이닝 수와 실점 등 경기 결과보다 데이터상 공의 움직임과 회전율에 일희일비한다. 마운드에서 8실점을 했어도 데이터가 만족스럽다면 “오늘 대단했다”며 좋아한다. 

메이저리그의 어른들은 이런 선수들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애틀랜타의 1952년생 론 워싱턴 코치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요즘 선수들은 직업윤리라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한탄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1955년생 감독 네드 요스트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는 “예전엔 감독이 호통쳐도 선수들이 다 귓등으로 흘려들었지만 요즘 선수들은 2주일은 침울한 기분으로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우리 때는 데이터 없이도 잘했다’거나 ‘너희들은 너무 유약하다’고 훈계했다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선수들의 신망을 잃고 현장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현실은 그 반대다. 이들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법을 적극 공부하고 선수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U-20 월드컵 대표팀의 성공 비결 중 하나도 소통이다. 정정용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이 전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술 전개와 옵션을 상세히 설명한 ‘마법노트’를 만들어 나눠줬다. 선수들은 이것을 보며 전술을 몸에 익히고 실전에서 활용했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격려했던 정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팀을 뭉치게 했다.

책을 읽어가며 탐구해야 할 정도로 낯선 세대가 스포츠 주역이 되는 시대에 체육 정책과 체육계 어른들이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4일 정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학교 스포츠 정상화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기단체 등 현장 체육인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권고안 철회를 촉구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학교 스포츠의 문제점, 인구 감소에 따른 선수 수급의 어려움,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세대의 등장 등을 고려하면 현행 제도에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무작정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하지만 정부의 방향이 옳다 해도 현장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실행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상호 소통의 기술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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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나빴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나선 한국 대표팀은 예선 첫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패하면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물리쳤으나 본선 진출은 장담할 수 없었다. 3차전 상대는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였다. 이기기 어려울 것 같던 이날 경기에서 대표팀은 승리해 16강에 올랐다. 지난달 31일에 전해진 16강 진출 낭보는 하루 전 발생한 헝가리 다뉴브강의 참사로 슬픔에 잠긴 국민들에겐 더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이강인(가운데) 등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6일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을 마친 후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우치 _ 연합뉴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죽음의 조’에서 벗어난 대표팀은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던 16강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었고,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혈전 끝에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이어 재치가 빛을 발한 에콰도르전을 기어코 승리로 장식하며 남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결승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16일 새벽,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이 열렸다. 대한민국은 대낮처럼 밝았다. 전국의 도심 광장과 주요 월드컵경기장은 ‘붉은 악마’들의 함성으로 뜨거웠다. 전 국민의 43%가 TV 앞에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막말과 망언으로 싸워왔던 정치권마저 하나로 뭉치게 했다. 대표팀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기에 아쉬운 역전패에도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정정용 감독(왼쪽)이 16일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 패한 뒤 이재익을 위로하고 있다. 우치 _ AP연합뉴스

폴란드에서 열린 축구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 정정용 감독과 이강인 등 선수들이 17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2017년 5월 출범한 ‘정정용호’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강인을 제외하면 알 만한 선수도 코치진도 없었다. 그들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선수권, 프랑스 툴롱컵, 미얀마 알파인컵 등을 거치면서 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는 단단한 ‘원팀’(One Team)이 되어갔다. 그리고 월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감동을 국민들에게 선물했다.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과 베스트 골에 빛나는 조영욱과 최준, 선방쇼를 펼친 이광연이라는 스타플레이어도 탄생시켰다. 원팀이 국민에게 준 선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어서 하는 청년들의 도전이 가져온 결과다. 그들은 자율 속에서도 규칙과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선수를 위로하고, 동료를 탓하는 대신 다독인다. 좌절하지 않고 두려움을 모르고 끊임없이 승리를 위해 두드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확인한 것이다. ‘멋지게 놀 줄 아는 그들’ 덕에 국민들은 지난 20여일간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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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김세윤 김정민 김주성 김현우 박지민 박태준 엄원상 오세훈 이강인 이광연 이규혁 이상준 이재익 이지솔 전세진 정호진 조영욱 최민수 최준 황태현 그리고 공오균 김대환 오성환 인창수 정정용. 

그들은 원팀(One Team)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다. 형은 동생을 믿고, 동생은 형을 따른다. 감독은 말한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그림을 그려라. 그리고 즐겨라.” 믿음은 통합과 뒷심을 끌어냈다. ‘흥(興) 축구’는 압박을 잊게 하고, 그라운드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만들어냈다. 폴란드에서 열리고 있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그 무대이다. 원팀은 지더라도(포르투갈 0-1) 좌절하지 않았고, 질 것 같은 경기는 뒤집었으며(세네갈 3-3, 승부차기 3-2), 강팀을 만나도 두려움이 없었고(아르헨티나 2-1, 에콰도르 1-0), 이겨야 할 팀(남아공 1-0, 일본 1-0)에는 어김없이 승리했다. ‘1983년 4강’을 넘어선 사상 첫 남자팀 FIFA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2일 폴란드 루블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 4강전에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사상 첫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정정용 감독에게 물을 뿌리며 기뻐하고 있다. 루블린 _ 연합뉴스

스무살 청년들의 도전이 놀랍다. 그들은 엄격함과 위계질서 속에 축구를 ‘전투’로 여기는 시대에 종언(終焉)을 고했다. 재미로 시작했고, 재기발랄함을 그라운드에 쏟아내는 축구를 한다. 4강전 승리 뒤 라커룸이 감독과 선수들의 막춤으로 뒤엉킨 ‘클럽’이 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율 속에 지키는 규칙은 확실했다. 위기는 잊고, 포기는 더더욱 없었다. 다 진 줄 알았던 세네갈전의 후반 연장 8분의 동점 극장골이 그랬고, 1·2번 키커가 거푸 실축한 승부차기에서 기어코 역전을 이뤄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포르투갈전 패배 때 고개를 숙이는 대신 “졌지만, 경기장 밖에서 응원해준 형들이 고맙다”는 청년들이다. 국민들에게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는 당찬 주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강인·오세훈·최준 등의 골과 절묘한 연결, ‘빛광연’으로 불리는 골키퍼 이광연의 선방쇼로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다. 

원팀의 승리는 ‘막말’과 망언이 난무하는 정치권에 질린 국민들에게 더없는 위로였다.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는 희망을 선물했다. 이제 원팀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하나만 남았다. 우승이다. 최선을 다한 그들이다. 내친김에 우승으로 열매 맺기를 간절히 기대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이미 그들은 자신들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은 16일 오전 1시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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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이렇게 심장을 쫄깃하게 한 축구 경기는 지금까지 없었다. 36년 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멕시코에서 4강 신화를 쏘던 때도 이 정도로 승부가 극적이지는 않았다. 이날 최고의 패배자는 생중계를 보다 승부가 기울었다며 성급히 TV를 끈 시청자였다. 주인공은 당연히 젊은 태극전사들이다. 이강인, 오세훈 등은 더 이상 틀에 짜맞춘 전술로 무장한 ‘한국형’ 전사가 아니었다. 높은 수준의 기술에 창의력까지 장착한 ‘발칙한’ 전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승부의 또 다른 주역은 비디오판독(VAR·Video Assistant Referee)이었다. 

9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한국과 세네갈전의 경기. 연장 전반 조영욱이 역전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VAR은 고비 때마다 승부의 균형추를 바로잡았다. 후반 14분 이지솔이 상대 수비수에게 밀려 넘어진 것을 심판이 VAR로 확인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0여분 뒤에는 반대로 한국 수비수의 핸드볼 반칙을 잡아냈다. 이날 VAR은 모두 7번 가동됐는데, 심판이 손동작으로 사각형을 그리며 VAR을 선언한 뒤 TV 화면에 ‘check / possibly penalty(페널티킥 가능성)’라는 표시가 뜨면 모두가 가슴을 졸여야 했다. 특히 한국이 2 대 1로 뒤지던 후반 막판 세네갈이 골문에 추가로 넣은 골이 VAR로 취소되지 않았다면 승부는 진작 끝났을 것이다. VAR의 역할은 심판 판정을 돕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국제축구평의회는 이번 대회부터 페널티킥 키커가 공을 차기 전 골키퍼의 두 발이 모두 골라인에서 떨어질 경우 반칙으로 규정했는데, VAR은 어김없이 이를 잡아냈다. 후반 29분 이광연 골키퍼가 막은 세네갈 선수의 첫번째 페널티킥과 승부차기 때 오세훈의 첫번째 킥을 막아낸 세네갈 골키퍼의 선방이 모두 반칙으로 선언됐다.

당초 축구계 일각에서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VAR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VAR이 경기의 재미를 줄일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오히려 오심 논란을 잠재우고 ‘축구 정의’를 구현한다고 보는 게 옳다. 이제 축구 경기에 새로운 풍경이 추가됐다. 골을 먹었다고 마냥 실망하거나 반대로 골을 넣었다고 기뻐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VAR로 바로잡아야 할 곳이 어디 축구의 골뿐이랴.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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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항간에 ‘엘리트스포츠 죽이기’란 말이 떠돈다. 오랫동안 묵묵히 스포츠에 헌신해온 지도자들과 빛나는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 주변으로 이런 표현이 실체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일부 언론도 이런 자극적인 기사를 쓰고 있으니 이는 지도자의 헌신과 선수들의 노력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그 땀방울을 볼모로 폐습을 유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게 한다. 이참에 스포츠혁신이 ‘엘리트 죽이기’인지 다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전제가 필요하다. 부정과 비리, 폭력과 반인권적인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대다수 지도자와 선수들이 언제라도 위험한 상태에 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살리기냐, 죽이기냐’ 이전의 문제다. 이른바 ‘스포츠 강국’이든, ‘스포츠 선진국’이든 이 반인권적인 상황은 어떠한 이유로도 방치될 수 없다. 이 대전제에 동의하지 않고 ‘죽이기’란 말부터 앞세우면 안된다. 다행히 대한체육회와 진천선수촌, 각 시·도연맹이나 종목단체에서도 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 제도 개선을 나름대로 도모하고 있으니, 이 점을 재론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만약 이 대전제를 부정하면서 ‘죽이기’ 같은 원색적인 표현을 쓴다면 이는 건강한 토론이나 미래지향의 동반이 어렵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음으로, 혁신적인 제도나 정책에 의하여 ‘올림픽 세계 10위권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올림픽 10위권 유지’는 중요하다. 10위권을 유지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국가주의’는 아니다. 그 종목에 비범한 능력과 큰 뜻을 품은 선수들을 과학적으로 육성하여 세계 무대에서 아름다운 승리와 벅찬 감동을 자아내는 것은 스포츠의 귀한 가치 중 하나다.

2016리우올림픽의 국가 순위를 살펴보자. 20위권을 보자. 캐나다, 스위스, 덴마크가 보인다. ‘선진국’이면서 ‘강국’이다. 20위권이 무슨 강국이냐고 힐난한다면 10위권 이내를 보자. 미국과 영국이 1, 2위이고 독일, 일본, 프랑스, 호주, 네덜란드가 있다. 그야말로 ‘강국’이면서도 ‘선진국’이다. 대한체육회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바람직한 해외 사례’를 연구할 때 매번 등장한다. 특히 영국은 일찌감치 인권적이고 과학적인 선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기반 위에서 엘리트를 육성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올림픽 10위권 유지’를 목표로 삼자는 것은 당연히 ‘엘리트 살리기’ 아닌가. 이를 위하여 국가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스포츠계는 이에 적극 동의하여 폐습을 스스로 고쳐야 한다. 그럴 때, 선수의 능력은 더욱 과학적으로 증진될 것이며 지도자의 헌신은 더욱 고결해질 것이며 모든 엘리트의 꿈은 아름답게 실현될 것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당장 2020도쿄올림픽이 1년여로 다가왔다. 그밖에도 여러 국제대회가 쉼 없이 열린다. 헌신적인 지도자와 꿈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대표를 위하여 지속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부분적인 제도 ‘개선’이야 이런 와중에서도 부단하게 추진하는 것이지만 ‘혁신’은 다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그 입법 과정도 혁신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꼼꼼히 추진해야 한다. 방향을 선회하려면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방향 지시등을 정확하고 지속적으로 켜야 한다. 당장의 올림픽 준비에 곤란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포츠계 일각에서 ‘엘리트 죽이기’ 같은 말을 근거 없이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훈련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할 뿐이다. 

세계스포츠는 급변하고 있다. 급변한다는 것은, 직선으로 저만치 앞서가니 우리도 앞뒤 가릴 것 없이 무조건 달려가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런 개발주의 상상력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기 어렵다. 정치, 경제, 문화, 인종, 젠더, 환경 등의 21세기적 의제들이 스포츠 내부로 들어와 의미 있게 작동한다는 뜻이다. 이 의제들은 ‘만국공통어’의 속성을 지닌 스포츠에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스포츠의 가치, 내용, 형식, 산업 등에 변화를 유발한다. 누구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 의제들을 활발하게 검토하고 있다. IOC로서는 2024파리올림픽에 브레이크댄싱이나 서핑을 포함시키는 것만큼이나 인권, 평화, 젠더 등의 의제가 중요하다. 요컨대 세계사적 변화로부터 스포츠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국내 엘리트 지도자와 선수들로 하여금 20세기적 스포츠 개념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인권이나 문화의 관점에서 스포츠를 건강하게 혁신하라는 요구이며 동시에 액체처럼 유동하는 지구촌 환경에서 스포츠 종목과 그 산업이 더욱 풍성하게 변화하여 격렬하게 펼쳐질 것이니 선진 시스템으로 준비하라는 요구다. 

우리 사회를 돌아봐도 이는 확인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 안전망은 부실하고 사회 관계망은 해체되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은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노동시간은 멕시코와 더불어 가장 길고 자살률은 10여년간 1위다. 이 상황에서 스포츠는, 특히 인간 감정의 극한과 그 복합성을 깊이 익히고 있는 엘리트 출신들은 극심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증대되고 있는 국민의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재능 기부’가 아니라 스포츠 가치가 사회화되는 것이며 동시에 20세기의 스포츠 개념으로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로 연결된다. 

요컨대 스포츠를 혁신하여 사회를 혁신하는 것은, 고립을 피하여 연대를 구하는 ‘21세기식 국위선양’인 바, 이는 결코 ‘엘리트 죽이기’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지도자와 선수들이 힘차게 흔들 만한 아름다운 깃발, ‘엘리트 살리기’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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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만큼 남녀 구별이 엄격한 직업도 드물다. 남성은 남성들과, 여성은 여성들과 겨뤄야 한다. 남녀 혼합팀을 구성하는 종목이 있지만 이때도 성비를 맞춰야 한다. 동일한 성끼리 겨루도록 하는 게 공정한 경쟁의 장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런 스포츠계에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한몸에 지닌 간성(間性) 선수, 캐스터 세메냐가 등장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중장거리 육상 스타 세메냐는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800m 금메달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 ‘외모가 남자 같다’며 세메냐의 성별에 의문을 제기했다. 검사 결과 세메냐는 간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간성 규모에 대한 추정은 학자마다 다르다. 전체 인구의 1.7%라고 추정한 연구가 있는 반면 0.018%로 추산한 학자도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형태는 다양하다. 외부 생식기관의 모양새는 남성이지만 난소가 있거나, 외형은 여성이지만 잠복 고환을 가지고 있는 식이다. 겉보기엔 여성인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우도 해당된다. 

국제육상연맹(IAAF)은 세메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지나치게 높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능력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IAAF는 세메냐를 겨냥해 ‘정상적인’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혈액 1ℓ당 2나노몰 이하이며, 대회 전 6개월 동안 약물 투약을 통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5나노몰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세메냐와 남아공육상연맹은 이 규정이 차별이라며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지만 지난 1일 재판소는 IAAF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소는 여성 선수들의 통합을 위해 “이런 차별은 필요하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세메냐는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도핑 아닌 도핑을 해야 하는 셈이다. 

타고난 신체 조건이 탁월한 선수들이 있다. 사실 위대한 선수들은 대부분 그렇다. 세계 수영을 제패했던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발목에 관절이 하나 더 있었고 운동 후 젖산 수치가 남들의 절반에 불과해 피로를 덜 느꼈다. 하지만 누구도 펠프스에게 ‘약물을 복용해 젖산 수치를 높여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특이성을 재능으로 여기고 경이롭게 바라봤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모니카 헤스는 “펠프스의 유전적 차이는 찬양하면서 왜 세메냐의 유전적 차이는 처벌하느냐”고 지적했다. 

운동선수의 신체 조건 중 어디까지가 타고난 재능이고 어디부터가 규제해야 하는 속임수일까. 이 경계를 명확히 나눈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IAAF 규정은 낯설고 두려운 소수자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 아닐까. IAAF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규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기 위해 주삿바늘을 꽂든지, 그게 싫으면 선수 생활을 그만두라고 강요하는 일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외관상 남성처럼 보이는 여성 선수를 지목해 성호르몬 검사를 실시하는 게 반인권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유엔인권이사회는 IAAF 규정에 대해 “불필요하고 모욕적이며 유해하다”는 논평을 내놨다. 세계의사회는 약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는 일은 비윤리적이므로 IAAF 규정을 집행하지 말라고 의사들에게 당부했다. 

세메냐는 약물 투약을 거부하고 IAAF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IAAF 규정에 대한 스포츠중재재판소의 결정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전했다. 간성 선수에 대한 논의가 다른 종목으로 조심스레 확산되리라는 전망이다. 현명한 해법이 필요하다. 꿈과 희망, 인간승리의 드라마여야 할 스포츠가 차별과 배제의 가해자가 된다면 선수와 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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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다’라는 표현이 있다. ‘뿌리 뽑히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런 표현이 식물학의 용어만이 아님을 근현대사 100여년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박경리의 &lt;토지&gt;는 구한말의 ‘뿌리 뽑힌’ 사람들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기나긴 장강대하의 첫머리는 1897년 추석이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는 한가위 풍경으로 시작하는데, 말하자면 오랫동안 한마을에 ‘뿌리내리고’ 사는 풍경이다. 

그러다가 나라도 잃고 땅도 잃어 북간도로 이주한다. 그곳에 ‘뿌리내리려’ 하지만 쉽지 않다. 평생 호미 한번 잡은 일 없는 김훈장도 북간도 메마른 땅에 엎드린다. 김훈장을, 음풍농월하는 선비로 내심 타박하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아무리 망국의 유민 신세라 해도, 한 사람 정도는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천 따지’를 해야 사람 사는 형색인데, 김훈장마저 호미를 집었으니 모두가 ‘뿌리 뽑힌’ 신세가 아닌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 등이 산업화 시대의 ‘뿌리 뽑힌’ 사람들을 묘사했음은 이제 교과서에 등재되었을 만큼 ‘역사’가 되었다. 황석영의 &lt;삼포 가는 길&gt;, 그 마지막에 이르러, 기차가 도착했음에도 정씨와 영달이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들은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던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런 풍경은 다 사라졌는가. 글쎄,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불빛들 뒤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온통 원룸이고 고시원이다. 황석영이나 조세희 이후로 그런 소설이 사라질 듯했지만 안타깝게도 박민규와 김애란과 편혜영의 소설들은 이 거대 도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를 다루고 있다. 다달이 ‘500에 30’을 겨우 내면서 뿌리 뽑힌 채 살아가는 삶 말이다. 

박민규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이렇게 썼다. “가족들은 흩어졌다. 부모님은 시골을, 형은 막노동판을, 나는 나대로 친구의 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시원에 가게 된다. 짐을 나르던 친구가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고 속삭이자 주인공은 강렬한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 

그러니까 ‘뿌리’란 관계다. 뿌리내린다는 것은 실핏줄 같은 삶의 관계를 이룬다는 뜻이다. 뿌리가 뽑힌다는 것은 그 관계가 끊어짐을 뜻한다. 답답하거나 속상하거나 외로울 때, 문자 보낼 사람 없고 목소리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 지독한 외로움! 그것이 ‘뿌리 뽑힌’ 삶이다. 

진천선수촌에 가보았다. 선수촌 시설을 둘러보고 신치용 선수촌장을 비롯하여 여러 지도자와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과연 전체적으로 시설은 웅장하였고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사항 또한 섬세하게 잘 구성되어 있었다. 신치용 선수촌장을 비롯한 행정 관계자들의 자상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선수촌장이 동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현실적 고충과 개선 사항을 활달하게 개진하는 모습에서, 예전의 생활 문화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월 초에 취임한 신치용 선수촌장이 예전의 훈육시설과는 달리 선수촌을 좀 더 활기차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하나둘씩 실천되는 양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운동하는 기계’라든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동떨어져서’ 같은 말도 현장을 방문한 혁신위원들이 아니라 선수촌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스스로 토로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가 새로운 문화로 변모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매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근사한 선수 전용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어느 선수가 얘기했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의 국제적인 시설에 매점 하나 없을까 싶고 또 매점이 당장 급한 시설인가도 싶지만, 실은 이 작은 요청 하나가 우리 선수들의 장래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매점이 있다는 것은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매점을 동심원으로 하여 선수촌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흩어졌다가 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매점은, 하루 종일 땀 흘리며 훈련한 지도자와 선수들이 순간적이나마 정겹고 소박하게 ‘관계’를 맺는 공간이 된다.

어디 매점뿐이겠는가. 국가가 이른바 ‘국위선양’을 목표로 각 종목의 가장 우수한 선수들을 한 장소에 모아서 훈련을 시킨다고 했으면 그것은 당연히 그들의 삶의 뿌리가 아름답게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국가의 목표를 위한다고 해서 가족이 있고 생활이 있고 관계가 있는 지도자들의 현재적 삶의 뿌리를 뽑아서는 안된다. 어쩌면 22세기를 볼 수도 있을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뿌리째 흔들어서도 안된다. 외로울 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답답할 때 언제든 부모님을 만나 어리광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종목 선수들이나 다른 분야로 진출한 친구들과도 어울려야 한다. 관계가 곧 뿌리다. 

그러니 혁신이 필요하다. 웅장하고 세련된 시설은 제대로 갖췄다. 이제 첨단의 스포츠 과학으로 선수들을 가르치고 진실로 인간적인 관계로 선수촌 생활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선수촌의 모든 관계자들 또한 그와 같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어느 관계자의 말처럼 지금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미묘한 상황이지만, 지도자의 삶의 뿌리가 유지되고 어린 선수들의 다양한 삶의 관계, 곧 뿌리가 넓게 내려지는, 그야말로 최고 선수들이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폭넓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중 받으며 ‘뿌리내리고’ 살아가게 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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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문체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의 차관 4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차관급 상임위원이 참여한, 그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혁신 의지가 강력하게 실린 위원회다. 여기에 선수 출신을 중심으로 하여 스포츠와 인권 관련 학자와 활동가 등 15인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출범 초기에는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식의 형편없는 마타도어까지 있었는데, 터무니없는 비방은 그 방향이 옳다는 증거라는 니체의 믿음 아래 혁신위는 곧 한국 스포츠의 아름다운 대전환을 위한 각종 권고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자배구 대표 선수로 탈아시아급 ‘거포’로 활약한 후 학자의 길로 들어서서 오랫동안 무명의 여성 선수들을 따스하게 감싸며 길러낸 김화복,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으로 유럽에 진출하여 은하계 최고의 선수들과 용쟁호투를 겨룬 후 유소년 축구의 혁신에 매진하고 있는 이영표, 동계올림픽 모굴스키의 선구자로 선수들의 인권 침해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고 또한 그 개선을 위해 헌신하는 서정화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여기에 프로선수 출신이자 뛰어난 분석과 해설로 잘 알려진, 그러나 실은 ‘공부하는 학생 선수’라는 선진적인 유소년 성장 모델을 일찌감치 실천해온 이용수, 또한 그같은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 이론과 정책을 20년 이상 연구해온 이용식, 류태호, 이대택 등의 참여는, 혁신위가 한국 스포츠의 안과 밖, 그 이론과 현장, 그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가히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갖춘 곳임을 확증한다. 

여기에 스포츠를 인권과 문화의 관점에서 꾸준히 살펴온 전문가 서너 명이 결합했다. 이 또한 오늘날의 스포츠가 지닌 사회적 복합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필수적이다. 더구나 이 혁신위가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이라는, 결코 ‘개인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십년 누적된 폭력 구조의 치명적인 병폐에 의해 출범한 것임을 고려할 때, 지극히 당연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두 달 남짓 활동하는 동안 혁신위의 출범 근거와 그 타당성은 ‘불행하게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폭력 및 성폭력으로 집약되는 스포츠계의 구조적 모순은 흡사 자욱하게 드리워진 미세먼지처럼 복합적인 것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한 혁신은 스포츠계 전체를 관류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대한체육회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여 체육시스템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으로도 확인된다. 대한체육회가 진천선수촌의 안전시설 확충, 훈련관리지침 개선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곧 현실화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국가 차원에서 과감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국가는 수십년 누적된 국가주의와 승리지상주의를 스스로 개선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온갖 부정비리와 끔찍한 인권 유린이 반복되어 왔다. 국가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그래서 때로는 산하기관의 문제인 것처럼 슬쩍 외면해 온 스포츠의 제도, 여건,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 기재부, 교육부, 여가부 등의 차관이 혁신위에 참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체육회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국가가 개입하고 나서는 게 결코 아니다. 대한체육회가 할 일이 있고 국가가 할 일이 있다. 현장의 낙후한 시설과 환경은 대한체육회가 개선하면 된다. 국가는 그보다 더 총체적이며 장기적인 스포츠 정책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모든 정책 진단과 전환은 국가의 의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항간의 ‘이기흥 체제 흔들기’나 ‘엘리트 체육 죽이기’ 같은 말은 듣자마자 귀를 씻을 정도로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악독한 요설이다. 생각해 보라. 국가가 왜 그런 일을 도모할 것이며 더욱이 민간위원들이 왜 그런 험악하면서도 한 줌의 가치도 없는 일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주말도 없이 활동하겠는가. 

혁신위의 목표는 국가에 국가의 의무를 준엄하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누구나 스포츠를 즐겁게 접하여 평생 신체적 즐거움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할 것, 그중 뛰어난 아이들은 인권과 문화와 학습의 결핍이 없는 조건에서 과학적인 시스템과 상호존중의 문화로 길러낼 것, 열심히 훈련하는 바람에 땀방울은 흘릴지언정 뿌리 깊은 폭력의 구조에 의하여 피눈물은 흘리지 않도록 할 것, 수많은 지도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되고 그 처우가 개선되어 스포츠 전문가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으며 살아가게 할 것.

이를 소홀히 하여 숱한 병폐와 비리와 폭력이 발생하였으니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계 전반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통렬하게 재점검하고 장차 ‘스포츠를 통하여’ 한국 사회를 문화적, 사회적, 인간적으로 선진화시켜야 한다. 혁신위는 그런 이유로 출범한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는 아름다운 분야이고 그 지도자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최고 전문가들이다. 이 순간 스포츠는 ‘도구’가 아니라 ‘가치’로 발전하며, 이럴 때 선수와 지도자들은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 진실로 아름다운 사회적 존중까지 받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하여 지금 우리 스포츠계에서 권위와 명망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기꺼이 동의하고 동참해야 한다. 이를 그 무슨 ‘흔들기’나 ‘죽이기’ 같은 고약한 말로 왜곡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수들의 피눈물 위에 앉아서 오랜 구습이 던져준 서푼어치 추악한 권위에 젖어 스스로 혁신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격이니, 그 무엇보다 새로운 스포츠 환경과 더 나은 삶의 안정을 바라는 모든 스포츠인으로부터 반드시 외면받게 될 것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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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름들은 추억과 결부돼 있다. 미국 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이름이 AT&T 파크에서 오라클 파크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읽고 얼마간 섭섭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AT&T 파크는 직접 가 본 첫 메이저리그 야구장이었다. 그날 샌프란시스코 선발투수는 지금은 은퇴한 맷 케인이었고 상대팀 LA 다저스의 선발은 류현진이었다. 우리 일행은 AT&T 파크 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고,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가 끝난 후엔 도시의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30여분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AT&T 파크는 우리 일행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했다.

이방인인 나조차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니 샌프란시스코 열혈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얼마나 컸을까. 샌프란시스코 구단이 통신업체 AT&T에 구장 명명권을 판매한 것이 2006년이었다.

21일 대전시청 대회의실 스크린에 대전 새 야구장 부지 결과 발표를 알리는 화면이 떠 있다. 대전 _ 연합뉴스

지난해까지 13시즌 동안 샌프란시스코는 세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배리 본즈가 통산 756호 홈런을 치고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31년 만에 갈아치운 곳도 2007년의 AT&T 파크였다.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는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에 20년간 구장 명명권을 양도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2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선수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기록과 명장면을 생산할 것이고, 팬들은 저마다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을 새롭게 쌓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AT&T 파크라는 이름이 팬들에게 불러일으킬 기억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야구장 하나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대와 아쉬움이 공존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7년 폐장된 동대문야구장이 대표적이다. 이 야구장은 1982년 프로야구 역대 첫 개막 경기가 열렸던 곳이고 프로야구 출범 전에는 고교 야구의 메카였던 곳이다. 그 시절 이곳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동대문야구장이라는 이름은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는 특별한 힘을 갖는다. 2013년까지 프로야구 KIA의 홈구장이었던 광주 무등구장, 지난해부터 ‘이승엽 야구장’으로 불리는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도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최근 개장한 ‘창원NC파크 마산구장’의 명칭 논란은 안타깝다. 야구장을 뜻하는 영어 ‘파크’ 뒤에 또 ‘구장’이 붙은, ‘역전 앞’처럼 문법적으로도 어색한 이름이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부터 떠올리게 만들어서다.

창원시는 새 구장 명칭을 둘러싼 이견을 조율하고자 명칭선정위원회를 발족해 ‘창원NC파크’로 최종 결론을 도출했다. 하지만 창원시의회는 명칭을 ‘창원NC파크 마산구장’으로 변경한 조례 개정안을 처리하며 위원회 논의 결과를 헌신짝처럼 폐기했다.

마산은 2010년 창원에 통합돼 창원시 2개구의 이름에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NC의 과거 홈구장인 마산구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구 마산지역 정치인들이 새 구장 명칭에 ‘마산구장’을 넣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마산의 이름을 야구장 간판에 박제하고 이를 의정활동보고서에 한 줄 넣어야 구 마산지역 유권자들의 향수와 감정을 자극하고 표심을 잡는 데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 구장의 이름은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숟가락을 얹기 위해 언성을 높이고 핏대를 세우는 투쟁의 장이 돼 버렸다.

창원이 야구장 이름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 사이 대전의 신축 야구장 부지가 결정됐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대전 역시 부지가 결정되기까지 만만찮은 과정을 겪었다. 구의회 의원들이 야구장 유치를 위해 삭발했고, 구청장 비서실장이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 야구장은 새로운 간판을 달고 첫 경기를 치르기까지 어떤 기억을 대전시민들에게 남기게 될까. 창원의 선례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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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전성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1936년부터 1964년까지 29시즌 동안 월드시리즈에 22번 올랐고 16번 우승했다. 1940년대 양키스 감독이었던 조 매카시의 별명은 ‘테일 건’이었다. 비행기 뒤에 달린 기관총이다. 1970년대 양키스를 우승으로 이끈 빌리 마틴 감독의 별명은 ‘히틀러’다. 그 시절 야구 감독은 ‘권위’의 화신이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9년 연속 재팬시리즈를 우승했다. 2차대전 패전국 일본의 전후 부흥시기와 맞아떨어지며 요미우리는 ‘국민 구단’으로 떠올랐다. 그때 감독이 가와카미 데쓰하루였다. 일본 프로야구 첫번째 ‘제왕적 감독’이자 ‘관리야구’의 시초였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다. 보안을 이유로 취재를 제한했고, 선수들의 집에 전화를 걸어 귀가시간을 확인했다. 뭘 하고 있는지는 물론 뭘 먹고 있는지도 감시했다.

관리야구는 한국야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엄한 표정과 카리스마로 스타 선수들을 장악할 수 있어야 팀워크가 유지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는 신화였다. ‘자율야구’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은 1994년 LG 트윈스의 우승 때였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야구를 보고 돌아온 이광환 감독은 관리 대신 선수들의 자율에 방점을 찍었다. 이 감독의 ‘파이브 스타 시스템’은 매 경기 감독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선수 기용이 아니라 정해진 틀 속에서 선수들이 자기 역할을 맡아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그해 신인 3인방(유지현, 서용빈, 김재현)이 펄펄 날 수 있었던 것은 관리가 아니라 자율 덕분이었다. LG는 ‘신바람 야구’ 열풍과 함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5년 전의 일이다.

새해 들어 쇼트트랙 심석희의 용기 있는 ‘미투’로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혔다. 전근대적인 합숙훈련이 문제의 이유로 지적됐다. 스포츠계는 반발했다. 합숙훈련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단체경기만이 아니라 개인경기도 합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경쟁함으로써 자극이 되고 이를 통해 실력이 는다는 논리였다.

논리는 빈약하고 근거는 부족하다. 합숙의 효과는 경기력 향상이 아니라 감시를 통한 권위의 확립, 유지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빌리지 않더라도 합숙은 통제를 낳고, 통제는 감시와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 지켜보는 이와 감시받는 이의 위계는 엄격하다.

지난달 말, 쇼트트랙의 김건우는 동료 김예진에게 감기약을 전해주려 여자 선수 숙소에 들어갔다가 3개월 퇴촌, 국가대표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훈련 관리지침’ 21조 일반수칙 1항 6 ‘남·여 지도자 및 선수는 남자 또는 여자 전용 숙소에 출입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 성폭력 예방을 넘어 오래된 관리와 통제의 냄새가 짙다. 1항 5는 ‘촌 내에서는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착용을 원칙으로 하며, 생활 질서를 해치는 언행과 복장은 허용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심지어 관리지침 8조 2항 1은 국가대표 선수의 임무로 ‘촌 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을 규정했다. 이번 시즌 월드컵 금3, 은2을 딴 김건우와 전국동계체전 금3을 딴 김예진은 이번 징계로 대표선발전에도 못 나간다.

엘리트 스포츠 스타들의 경기력은 과학적 트레이닝 방식의 발전으로 임계점에 다다랐다. 한계를 넘게 하는 것은 통제를 통한 집중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을 통한 창의적 접근이다. 수영 박태환과 피겨 김연아는 되레 ‘선수촌’으로 상징되는 합숙과 통제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다. LPGA 무대를 주름잡는 한국 여자 골퍼들이 단체 합숙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부디, 효율을 핑계로 관리와 통제를 통해 제 권위를 지키려는 ‘꼰대’ 짓은 그만하자.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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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선수가 되길 바라는 운동부 학생이 꼭 교실에 들어가야 되는가?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을 따라가기도 어렵고, 그래서 아마 책상에 엎어져 잠을 자는 수가 많을 텐데 굳이 교실에? 이렇게 또 반문해도 내 대답은 마찬가지다. 그렇기는 해도 일단 교실에 ‘들어가야만’ 한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현행의 학교 또 교실이 어떤 풍경인가를. 이른바 전인교육은 찾아보기 어렵고 결국은 바늘끝만 한 입시 지옥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곳, 그래서 꽤 많은 학생들이 정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 채 잠을 자는 수가 많고 심지어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도 부분적으로는 학원에서 맹진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다들 교실에는 들어간다. 운동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교실 밖을 전전해서는 안된다.

왜 그런가. 거창한 교육적 가치나 숭고한 이념이나 적절한 현실적 이유 등을 다 떠나서, 오로지 단 한 가지 이유뿐이다. 기존의 온갖 스포츠 제도가 반강제로 강요하는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장기에 학교에서 고립되면 어른이 된 후 사회에서도 고립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러면 안된다. 한 인간이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학교로부터 고립되고, 장차 사회로부터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이른바 ‘운동하는 사람들’이라는 오해와 편견에 갇혀 살아서도 안된다. 수학을 조금 잘하는 친구들, 피아노를 조금 잘 치는 친구들, 과학을 조금  더 좋아하는 친구들. 그들은 모두 학교에 있다. 학교에서 여러 교과목을 배우면서 저마다의 진로 또한 준비한다. 그런데 왜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은 고립되어야 하는가.

나는 조재범 전 코치의 폭행 및 성폭력 사건을 비롯하여 숱하게 발생하는 스포츠계의 수많은 문제들은 이렇게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학교와 사회라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으로부터 이탈하고 고립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학창 시절’에서 이탈한 선수들은 성인이 되어 ‘국가대표’라는 비좁은 통로로 들어가서는 점점 이 사회의 폭넓은 관계와 정서로부터 ‘고립’되고 만다.

오직 국위 선양의 국가주의 패러다임에만 몰두했던 수십년 한국 스포츠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이 ‘사회화’ 과정을 이루지 못했다. 반강제적인 ‘이탈’과 ‘고립’에 의하여 스포츠계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리그에는 그 사회의 기본적인 상식이나 관념이나 정서가 스며들기 어렵다.

비록 현실의 학교가 부족한 구석이 많고 더러 비교육적인 파행이 벌어지는 곳이기는 해도 일단 교실에서 여러 친구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교육적이다. 잠을 깨워주는 친구도 있고 어울려 밥을 같이 먹는 친구도 있다. 성격도 다르고 희망도 다르고 감수성도 다른 친구들, 그 생활의 공동체 안에서 사람은 성장한다. 그렇게 하여 사회에 나왔을 때도,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감수성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무엇보다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말’은 기본적인 언어 활동을 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집과 학교에서, 특히 ‘교실’에서 수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체득하는 것이다.

박찬호 선수는 미국에 진출했을 때 코치들이 쉼없이 자기에게 질문을 했고 자신은 그저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만 반복했음을 떠올린 적 있다. 실은 잘못을 추궁한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던졌는가’를 질문한 것이고,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뜻을 자연스럽게 피력하는 모습에서 박찬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기성용 선수는 중학교 때 호주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의 또래 친구들이 심지어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코치 선생님들과 팔짱을 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박찬호나 기성용 정도면, 이미 성장기에 출중한 기량을 드러냈을 텐데, 국내의 스포츠 ‘훈육’ 환경에서는, 스스로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이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스포츠야말로 생활 공동체에 긍정적인 기운을 확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포츠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고립을 해체하고 서로 능동적으로 섞여서 일상을 활기차게 만든다. 적극적인 신체활동과 교류는 날로 피폐해지고 고립되어 가는 현대적 삶의 불안을 치유한다.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혹은 같은 종목을 선호하는 사람들끼리 스포츠를 통해 활력을 주고받으며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것, 오늘날 한국 사회가 스포츠계에 바라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새로운 지도자상이다.

스포츠 문화를 ‘혁신’한다는 것은 폭행 및 성폭력의 조건을 개선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쳐서 ‘고립’의 시대를 끝내는 데 있다. 이로써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편견이 씻어질 것이며 스포츠가 사회 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각 종목의 지도자들은 ‘아이들을 교실로 들여보내자’는 나의 호소를, 여러 현실론을 근거로 얼핏 외면하기는 해도, 마음 깊이 공감하는 바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학교로부터 고립되고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몸소 체험했던 대다수 지도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제자와 자식들이 폐쇄된 위계질서에 편입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공동체에서 적절한 경제적 대우와 사회적 존중을 받았으면 하는 그 애틋한 마음들, 그것의 현실화가 스포츠계의 혁신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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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성폭력 문제로 체육계는 물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대통령까지 나서 근절 의지를 강력히 천명했지만 정작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헛발질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올림픽 메달 연금과 소년체전을 폐지하고, 대한체육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겠다는 문체부의 발표 이후 체육계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됐다.

이 문제들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 논의되어 온 체육계의 뜨거운 쟁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선 선수들의 인권 회복에 집중하고 그 후에 지혜와 여론을 모아 서서히 풀어가야 할 사안들이다. 그러나 정부의 안이한 대책은 앞으로 제2, 제3의 심석희가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이기홍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이사회에 앞서 체육계 폭력과 성폭행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한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김정근 기자

엘리트 체육을 퇴보시킬 수 있는 정부의 섣부른 대책에 체육계는 한목소리로 반발하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과 공포를 이겨내고 자신을 세상에 던진 심석희 선수의 용기는 자칫 “이 문제 때문에 메달 연금이나 소년체전만 없어지게 되지 않았느냐”는 주변 체육인들의 원망에 묻혀버릴 판이다. 심 선수에게 너무도 민망하고 미안한 상황이 됐다. 향후 대대적으로 폭력, 성폭력 실태조사를 시행하겠다고 하면서 문체부가 섣불리 발표한 대책은 오히려 선수들의 입을 막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정부의 어설픈 대책은 체육계와 전문체육 선수들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내놓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심 선수의 폭로 직후 이런 분위기는 충분히 예견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조재범 전 코치는 여전히 결백을 주장하고 있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어느 누구도 내 탓이고 우리 탓이라는 자책과 반성을 내놓지 않았다. 대한체육회장이 여론에 떠밀려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성을 하지 않기로는 문체부 장관과 체육을 담당하는 제2차관도 마찬가지다. 체육계의 폭력, 성폭력은 조금만 고개를 돌려봐도 확인할 수 있는 문제였다. 굳이 10년, 20년 전 일들을 들추지 않아도 현재 어떤 일이 얼마나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지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공무원들이라면 살펴봐야 할 문제들이었다. 몰랐다면 엄연히 직무태만이고, 알고도 눈감고 있었다면 직무유기다.

문제 해결의 출발은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와 체육계 현장에만 화살을 돌리지 말고 자신들에게 먼저 엄격해야 한다. 일만 터지면 혁신위원회니 무슨 위원회니 만들어 자신들의 잘못과 허물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거나 시간만 보내려 해서는 안된다.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으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각의 혁신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은 졸속의 압권이다.

대한체육회장은 이미 체육계와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잃었다. 비상근직이고 명예직인 대한체육회장이 존경과 신뢰를 잃으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자신의 말대로 현안을 ‘조속히’ 해결하고 빨리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문체부 장관·차관은 좀 더 분명한 처신과 정부다운 대책을 보여야 한다. 어렵사리 피워놓은 군불을 살리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어서야 되겠는가.

<강신욱 | 단국대 교수 전 한국체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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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싸(인사이더)’라고 한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팬들을 몰고 다니며, 거액 연봉을 받는 스포츠 스타도 ‘인싸’라면 ‘인싸’일 것이다. 그러나 ‘인싸’가 주류와 동의어는 아니다. 주류에 진입하려면 인기 외에 다른 조건들도 충족돼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피부색이다. 콜린 캐퍼닉 사건은 검은 피부의 ‘인싸’가 주류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삶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이었던 캐퍼닉은 2016년 경찰이 유색인종을 폭력 진압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었다. 국가 연주 시 기립 자세를 규범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캐퍼닉의 행동은 스포츠계 안팎에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지지자도 많았지만 비판도 들끓었다. 전·현직 군인들은 ‘군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캐퍼닉에겐 애국심이 없다고 욕설을 섞어 비난한 게 결정타였다. 캐퍼닉은 2017년 초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했지만 NFL 32개 구단 중 어느 팀도 캐퍼닉과 계약하지 않았다.

캐퍼닉의 이름이 최근 미국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NFL 슈퍼볼이 하필이면 흑인 민권운동의 요람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것이 계기였다. 캐퍼닉 사건의 찜찜한 기억을 털어내지 못한 NFL은 작정하고 인종 문제를 슈퍼볼 전면에 내세웠다. 캐퍼닉 퇴출에 성난 팬들을 달래면서, 캐퍼닉을 싫어하는 팬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동시에, 캐퍼닉 사건으로 NFL에 입혀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NFL은 경기 개시를 알리는 ‘동전 던지기’를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딸 버니스 킹에게 맡겼다. 민권운동의 거목 앤드루 영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중계 주관방송사 CBS는 NFL 커미셔너 로저 구델이 민권운동의 거점이던 에버니저 침례교회를 방문한 영상을 내보냈다.

국가는 애틀랜타 출신의 흑인 가수 글래디스 나이트가 불렀다. 2016년 나이트는 캐퍼닉의 행동을 비난하던 쪽이었다. 나이트가 국가를 부를 때 경기장 상공에선 미 공군 선더버드의 축하 비행이 있었다. 경기 개시 후 타임아웃 때는 경기를 관전하던 명예훈장 수훈 예비역들이 전광판을 통해 소개됐다. 인종 문제와 애국 코드를 기이하게 뒤섞은 행사였다. NFL은 ‘흑인은 존중하지만 비애국자를 퇴출한 건 정당했다’고 항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행사로 NFL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적어도 캐퍼닉 지지자들에겐 감동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변호사 캣 캘빈은 트위터에 “왜 버니스 킹과 존 루이스, 앤드루 영이 NFL을 엄호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선수들도 감흥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일부 선수들은 슈퍼볼 우승이 결정되기 무섭게 “백악관의 우승 축하 행사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시즌 우승팀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일부 선수들도 백악관 방문을 거부했고 자존심 상한 트럼프 대통령이 알아서 행사를 취소했다.

‘인싸’가 반드시 주류는 아닌 것처럼 주류가 ‘인싸’라는 법도 없다. 부동산 재벌 출신의 백인 대통령 트럼프는 주류 인생을 살았지만 비주류들에게 막말을 일삼고 국제사회의 합의를 휴지조각 취급하다 국내외에서 외면당하는 ‘아싸(아웃사이더)’의 길을 가고 있다. 눈 밝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한, 아무리 주류라 해도 기득권을 믿고 함부로 망언한다면 인생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모독한 국회위원들 앞에 놓여 있는 미래도 꽃잎 흩날리는 ‘인싸’의 길은 아닐 공산이 크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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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님, 안녕하신지요. 1년여 전 스포츠 전문 방송에서 대화를 나눈 적 있지요. 그날 방송에서 위원님은 IOC 선수위원의 임무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는 것과 선수 권익의 신장과 보호였지요.

사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은, 마치 헌법처럼, 회원국의 모든 임원, 지도자, 선수들이 일체의 타협이나 양보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이념이지요. 그 맨 앞에 ‘올림픽 이념의 기본 원칙’이 천명되어 있습니다.

1항을 보면 올림픽 이념은 ‘인간의 신체, 의지, 정신을 전체적 균형과 조화 속에서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신체만이 아니라 의지도 정신도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선수들이 ‘운동 기계’가 아니라 전인적인 성장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 2항,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또한 6항에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엄중한 ‘이념’에 따라 올림픽의 운영 항목이 열거되지요. 이를테면 1장 2조 ‘IOC의 사명과 역할’은, 위원님이 강조하신 선수 권익 보호 사항입니다. ‘스포츠 윤리 발전’ ‘남녀 평등’ ‘선수들의 의료 및 건강’ ‘선수들의 사회적, 직업적 미래 보장’ ‘스포츠를 교육 및 문화와 접목’ 등이 그것입니다. 이 가치들이 우리의 스포츠와 올림픽에서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옥 훈련’이니 ‘혹사’ 같은 말들이 여전히 횡행합니다.

‘스포츠의 자율성 보존’이나 ‘선수들의 정치적, 상업적 남용 반대’도 2조에 천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막연하게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부당한 정치적 압력이나 지나친 자본의 위력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엽에 스포츠를 정치 선전 수단으로 삼고 올림픽을 자본 이익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지요. 모든 관계의 차단이 아니라 부당한 압력의 차단이 목적입니다. 50조에도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한다’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위원님이 이런 가치를 모를 리 없겠습니다만, 최근 전개되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거대한 전환 속에서 자칫 이 올림픽 정신이 오용되거나 극히 부분의 표현을 맥락 없이 남용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조재범 전 코치 가해 사건이 불거진 이후로 우리 스포츠계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상명하복식 위계질서와 유무형의 모든 폭력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민적인 열망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얻어맞고 심각한 인권 유린 상태에까지 내몰렸는데 그렇게 해서 따낸 금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호소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폭력 실태를 엄중히 조사하는 한편 국위 선양과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 개혁 과제를 전개하겠다고 밝혔지요.

이에 스포츠 현장에서는 한편 공감하면서 또한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러 국제대회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이 당혹해한다는 얘기도 있고 당장 2020 도쿄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막막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유승민 위원님도 의견을 피력했지요. 며칠 전 위원님은 “체육행정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개혁이 필요하지만, 합숙·연금 제도를 폐지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올림픽을 목표로 땀 흘린 선수들의 꿈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선수들의 의견을 듣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선안을 찾자고 제안도 했습니다. 금메달리스트이자 선수위원으로서 충분히 제시할 만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당혹감에 빠진 후배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위원님은 단순한 체육행정가나 경기력 강화위원이 아니라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고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선수위원입니다. 선수들이 폭력의 무한 재생산 구조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몇몇 지도자의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와중에도, 연세대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감독으로부터 ‘동물 학대 수준’으로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다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선수위원이라면 지금 당장 폭력을 멈추라고 호소해야 하며 공포의 상황에 놓여 있는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악을 근절하고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천명하고 있는 올림픽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올림픽 헌장에 제시된 바와 같이 ‘선수들의 사회적, 직업적 미래 보장’ 또한 유 위원님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메달리스트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미래가 보장되는 현행의 제도는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개혁 과제들이 매우 복잡해 하루아침에 대한체육회가 해체되거나 선수촌이 폐쇄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이 유일무이한 해법도 아닐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 권익 보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좁은 의미의 ‘권익’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여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이념으로 ‘올림픽 정신’에 천명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지켜진다면 그 밖의 여러 제도 개선은 얼마든지 다양한 해법이 가능하지요. 우리의 스포츠 개혁과 발전은, 유 위원님의 활동 근거가 되는 고결한 ‘올림픽 정신’의 실천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선수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 ‘권익’이 아니라 그 ‘존엄성과 인권’을!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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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1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가 개최됐다. 앞서 소년체육대회는 전국체육대회의 중등부에 포함돼 실시됐으나 이해 들어 전국스포츠소년대회로 독립했다. 학교 엘리트 체육의 서곡이었다.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하고 국가대표로 육성해 스포츠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이후 전국 초·중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신설이 붐을 이뤘다.

전국스포츠소년대회는 국가주의 체육의 시작이었다. 대회 주최자는 민간기구인 대한체육회였지만, 행사의 기획과 진행은 사실상 국가가 주도했다. 대회 슬로건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첫 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들에게 “조국을 위해 충성스러운 국민이 되고 나라, 겨레,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화 채집은 경주에서 진행됐다. 삼국을 통일한 화랑의 얼을 계승해 바른 국가관을 확립하자는 취지였다. 1975년부터는 전국소년체육대회(일명 전국소년체전)로 이름이 변경됐는데, 이 역시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 선수의 덕목도 국가가 요구하는 규율, 질서, 협동단결심, 투지 등이었다.

전국소년체전이 스포츠 향연인 적이 있었다. 대회를 개최한 시·도는 체전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고장을 홍보했다. 주민들은 어린 선수들에게 민박, 교통편을 제공하며 후한 인심을 자랑했다. 선수가 메달이라도 딸라치면 해당 학교와 고향 마을에서는 현수막을 내걸어 축하했다. 반면 축제의 그늘은 더 컸다. 조기 체육, 엘리트 체육이 강조되면서 학생선수들은 스포츠 스타를 꿈꾸었다. 체육특기자 제도는 성적 지상주의를 부추겼다. 선수들은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인권도 존중받지 못했다. 학교 운동부에서 폭력, 성추행이 만연해도 모두 쉬쉬했다.

정부가 성폭력 등 체육계의 고질적 비리 근절책을 내놓으면서 전국소년체전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체전 고등부와 통합해 학생선수, 일반학생 구분 없이 참여하는 학생체육축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50년간 유지해온 엘리트 선수 양성 등 체육 패러다임까지 바꾸겠다고 하니 일선 학교에 ‘공부하는 학생선수’ ‘인권이 존중받는 운동부’가 정착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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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문재인 대통령은 진천선수촌을 전격 방문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설득하려는 취지였다. 올림픽 직전이라 당시 진천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국가대표선수들을 모아 격려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심석희 선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엔 감기몸살이라고 둘러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14년 ‘은사’(고마운 스승이라는 뜻이다)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폭행으로 선수촌을 이탈(실상 탈출에 가깝다)한 사실이 알려졌다. 기록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수촌 내 골방에서 무차별 폭행이 가해졌고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선수촌에서 나온다?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맞아서 죽을 것 같았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린 선수가 홀로 겪어야 했던 수치심과 모멸감은 도무지 실감하기 어렵다. 심석희 선수는 주 종목인 1500m에서 예선탈락을 했고 마지막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결정짓고 펑펑 울었다. 우리는 이제야 그 눈물의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만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이 없었다면? 혹은 문재인 대통령이 일정에 없는 진천방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 순간 쇼트트랙 주장선수였던 피해자가 선수촌을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조재범 성폭행 의혹 사건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상습상해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 9월,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는 이제 성폭력 혐의를 추가로 받고 있다. 심석희 선수가 직접 재판에 나와 엄벌을 호소했던 지난 12월17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강간상해 등의 혐의로 조 전 코치를 추가 고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심 선수는 2014년(당시 고등학생이었다)부터 올림픽 직전까지 4년간 지속적 성폭행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돌아보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여제자 성추행 사건이 터졌고 바로 그 빈자리에 조재범 코치가 장비 담당 코치로 선임됐다. 우리는 성추행 사건으로 자리가 생겨 들어간 그가 똑같은 짓을 반복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체육계 성폭력이 조재범이라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쌓여온 소위 구조적인 문제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방증이다.

어린 선수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한 지도자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선수가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오직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목표 이외에는 가능하지 않다. 대부분의 학창시절 동안 운동만 해온 선수는 이제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것밖에 할 게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선수가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느낄 때 지도자는 그가 배워 온 유일한 지도방법인 폭언과 구타를 사용한다. 간혹 심하게 때린 날에는 따로 자신의 방으로 불러 직접 피멍이 든 몸에 파스를 발라준다. “네가 미워서 때린 게 아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다”라며 달랜다. 이렇듯 체육계 성폭력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견디는 폭력과 맞물려 있다. 혹 몹쓸 짓을 하고 마음이 안 놓일 때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이 바닥에서 완전히 매장시킨다며 겁을 주면 된다. 유도 유망주이던 2011년 고교 1학년 때부터 2015년까지 유도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지난해 3월 경찰에 고소하고 최근 언론과 인터뷰를 한 신유용씨도 “(성폭행 당시 코치가) ‘누군가한테 말하면 너와 나는 유도계에서 끝’이라고 협박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때 피해자인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가슴에 묻고 침묵하든가 혹은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내든가. 침묵을 선택하면 평생 그들의 가슴이 멍들고, 발설을 선택하면 그들의 인생이 망가진다. 코치의 위협은 공갈이 아닌 실재였던 것이다.

선수생활을 그만둘 각오를 하고, 성폭행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 해도 이후 겪어야 할 시간은 혹독하다. 얼마 전 만난 전직 체조협회 간부 성폭행 사건 피해자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나의 질문에 두 시간 내내 눈물만 흘렸다. 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억을 지우는 약 좀 구해주세요.” 그가 내게 한 말이다. 발설을 택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침묵을 택했을 거라고 단언한다. 다양한 형태의 2차 피해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주위의 시선도 싸늘하다. 가해자는 당당하게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하고 피해자는 마치 죄인인 양 고개를 숙인다. 법의 심판을 호소해도 경찰, 검찰, 그리고 사법부의 대부분인 남성들은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한다.

지난해 사회 전 영역에서 미투의 광풍이 몰아칠 때 유독 스포츠 분야는 조용했다. 선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코치와 감독,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폐쇄적인 합숙소와 훈련장,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묵인, 방조 심지어 공조하는 침묵의 카르텔까지.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에 최적화된 체육계 관행과 성문화가 오히려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지금까지 스포츠계의 미투에 무수한 미(Me)만 존재하고 연대하고 지지하는 투(Too)가 없었던 까닭이다. 

한 가지 더 뼈아픈 지적을 하자면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에 대해 우리 모두가 일종의 공범이라는 점이다. 올림픽 메달은 선수들이 일상적으로 겪은 비정상적인 훈련 과정을 덮고도 남았다. 국민들은 열광했고 올림픽 메달순위에 집착했다. 지난해 문체부 감사를 통해 파벌과 체벌로 멍든 빙상연맹의 관리단체 지정을 권고하자 빙상계 원로들이 연판장을 돌리면서 저항했던 논리가 바로 이거다. ‘올림픽 때 메달 따줬는데 뭐가 문제냐?’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낸 심석희 선수의 고발이 스포츠계 미투로 들불처럼 번져나가길. 더 이상 체육계에 성폭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발본색원하길. 만약 이번에도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피눈물 흘리는 선수를 만나야 할 것이다.

<정용철 |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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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에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가 확산되고 있다. 전 유도선수 신모씨가 고교 재학 중이던 2011년부터 졸업 후인 2015년까지 당시 코치 손모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14일 폭로했다. 신씨는 손씨를 고소했으나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그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조재범 성폭행’ 고발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언제까지 피해 당사자들의 용기에만 의존해야 하나. 그들이 인생을 걸고 세상에 나설 때까지 법과 제도와 시스템은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젊은빙상인연대와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100인의여성체육인,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8개 체육·시민단체들이 1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조재범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 및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신씨에 따르면, 손씨는 신씨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성관계 사실을 부인하라’며 돈을 주려 했다고 한다. 금품으로 회유하려는 데 분노한 신씨는 지난해 3월 손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피해 사실을 아는 유도계 인사들이 증언을 거절하는 바람에 수사는 답보에 빠졌다. 대한유도회는 사건이 공론화된 후에야 손씨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도회 측은 “신·손씨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아 징계를 논의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해명이 군색하다. 신씨는 지난해 말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관련 글을 올린 바 있다. 손씨는 유도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가족 중에도 유도계 인사가 있다고 한다. 그는 한겨레 인터뷰에선 ‘과거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연이은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증언은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져왔던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드러난 일뿐 아니라 개연성이 있는 범위까지 철저한 조사와 수사,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본다. 신씨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체육계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데는 ‘침묵의 카르텔’ 탓이 크다. 가해자가 관련된 개별 경기단체 차원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나 징계가 이뤄지기 어렵다. 강력한 조사권을 가진 독립기구를 만들어 스포츠계의 썩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체육계 성폭력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조사할 독립기구를 설치하는 일을 서두르기 바란다. 여성 운동선수들의 용기있는 증언이 한국 스포츠의 낡은 악습을 뿌리 뽑는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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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상주의가 악마를 낳았고, 희생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의 선수 상습 성폭행 사건은 체육계에 널리 퍼져 있는 성적제일주의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결과만을 최고로 여기는 환경이 현장의 부조리를 눈감아주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노태강 제2차관의 긴급 브리핑을 통해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을 위한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했다. 선수 성폭행 사건이 알려진 뒤 문체부 전 직원이 출근해 밤새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문체부는 먼저 자신들의 문제점을 돌아봐야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현장에 강요한 이들이 정부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4년 12월16일 대한체육회는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비 종목별 경기력 향상대책 보고회’를 열고 평창에서 금8·은4·동8개로 종합 4위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체 금메달 8개 중 빙상연맹의 몫은 7개. 쇼트트랙에서 5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2개를 딴다는 내용이었다. 금메달 7개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 전체가 거둔 종합 5위(금6·은6·동2) 성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빙상연맹의 목표는 최대치를 강요한 문체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발표를 마친 김재열 빙상연맹 회장은 단상에서 내려온 뒤 “자발적으로 설정한 목표인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지 큰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새 정권에서도 정부는 한국 선수단의 성적이 국내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의 성공으로 직결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개막을 3개월여 앞둔 선수단 격려 현장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목표를 달성하면 선수들의 이름으로 시를 짓겠다”고 했었다.

성적제일주의는 지상명령이 되어 현장 관계자들을 옥죄었다. 언어 폭력, 폭행 등의 수단도 묵인됐다. 선수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곳은 태릉·진천 국가대표 선수촌과 한체대 빙상장 등의 지도자 라커룸이다. 코치가 선수에게 가하는 위해 상황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장소지만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현장에서는 이를 모른 채 눈감는 식의 결과로 이어졌다. 국가대표 훈련의 관리 책임을 빙상연맹, 대한체육회를 넘어 정부에도 묻게 되는 이유다.

<김경호 선임기자 | 스포츠부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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