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시, 유럽의 축구장이 인종차별로 혼란스럽다. 수년 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축구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행위를 근절하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이 끔찍한 악행이 근절될 수 없는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지난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프레드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연거푸 모욕을 당했다. 코너킥을 차려는 그에게 맨시티 팬은 원숭이 소리를 내며 조롱했고 어디선가 라이터까지 날아왔다. 성난 얼굴을 한 동료 린가드가 프레드는 감싸안으며 위로했지만 프레드의 고통은 단지 라이터에 맞은 외상만은 아니었다. 안정을 되찾은 프레드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어두운 면이 있다. 지금은 2019년이다. 피부색, 머리카락,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프레드를 모욕한 남성은 경찰 조사를 받았고 맨시티는 “우리 홈구장 출입을 영원히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상대팀 감독인 과르디올라도 경기 후 프레드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위로했다. 

이러한 일들이 맨시티 구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0월21일, 맨유가 리버풀을 상대로 벌인 홈경기 도중 맨유 팬이 리버풀 수비수 알렉산더 아널드를 향해 거친 욕설과 인종차별 폭언을 자행했다가 즉시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시즌권 소유자인 이 남성은 맨유의 즉각적인 조치에 의해 영구적으로 올드 트래퍼드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9월에는 웨스트햄 팬이 홈구장 출입 금지령을 받았고 애스턴 빌라 등 많은 구단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레드가 또다시 역겨운 말과 추악한 행동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발롱도르(유럽남자축구선수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네덜란드 축구의 ‘레전드’ 마르코 반 바스텐은 생방송 도중 과거 히틀러 나치 시대의 악명 높은 구호 ‘지크 하일(Sieg Heil)’을 외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난 11월23일, 네덜란드 축구팀 헤라클래스를 이끄는 독일인 감독과의 인터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그가 축구장 안팎에서 보여준 오랜 활동으로 보건대 ‘나치 추종자’라 볼 만한 여지는 적다. 본인도 네덜란드인 리포터의 어색한 독일어 발음을 놀리기 위해서 그 표현을 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네덜란드 선수들은 축구장에서의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킥오프 후 1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이었다. 온라인 축구게임사 EA에서는 ‘피파 20’에서 반 바스텐을 삭제하기로 결정했고 폭스스포츠도 1주일간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 10월 하순, 잉글랜드 프리미어 사무국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교육, 단속, 조사 등의 프로그램까지 가동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마스터는 “우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설 자리는 없다”고 공언했으나, 현실은 오히려 가중되는 양상이다. 

11월4일, 손흥민이 에버턴의 미드필더 고메스를 저지하려다 불상사가 벌어진 바로 그 경기에서도 에버턴의 관중이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벌였다. 구단은 “그런 행동은 우리 경기장, 우리 클럽, 지역사회 또는 우리 경기 안에 있을 수 없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공인구를 향해 그들은 차별의 언어를 쏟아내고 혐오의 행동을 벌였다. 축구를 모욕하고 선수와 팬들을 모욕하고 자기 자신마저 쓰레기통에 처박는 행동이다.

최근 이런 일이 급증한 것은 유럽 전역에 반난민과 반유럽연합 역풍이 불어닥친 결과로 보인다. 브렉시트 혼란 속에서 지역주의를 우선시하고 있는 잉글랜드나 극우정당동맹이 득세한 이탈리아에서 이 같은 일이 연거푸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브렉시트 혼란에 빠진 모든 잉글랜드 사람이, 극우정당에 가입한 모든 팬들이 다 라이터를 던지고 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회적 원인을 별도로 하고, 그 행위자는 가려내서 처벌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그와 같은 인종차별 행동이 벌어지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현상적으로는, 우리의 여러 경기장에서 유럽과 같은 인종차별이 확연히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이 밀집하는 유럽의 경기장과 우리의 현황을 기계적으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본질은 ‘혐오와 차별’이고 나라마다 그것이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지금 바로 당장 인터넷의 스포츠 뉴스 댓글들을 보라. 그야말로 ‘댓망진창’이다. 한 해 농사가 끝난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얼마 전 숨 막히는 시즌이 마무리된 프로축구까지, 그리고 겨울 시즌의 배구와 농구 등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단순한 비아냥을 넘는 인격 모독이 벌어진다. 중국이나 일본의 팬과 선수들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써서는 안될 모욕적인 언사가 난무한다.

팬들의 발언이 즉발적이라면 그 종목에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랜 위계질서에 따른 폭력적 발언이나 차별의 시선이 구조적으로 드리워져 있다. 생중계 와중에도 거친 말을 하는 감독이 있을 정도이니 일반 팬도 거의 없는 유소년 경기에서는 말해 무엇하랴. 여기에는 단순히 감독과 선수 혹은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만 있는 게 아니다. 체육계열 학과에서 ‘여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 및 혐오와 배제 또한 심각하다. 방송 중계에서 ‘용병’이란 말이 사라지고 ‘외국인 선수’라는 말로 ‘순화’되었다 해서 우리의 스포츠에서 혐오와 차별이 줄고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용병’이란 말도 일부 중계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듯하니, 씁쓸하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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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국가 대항전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것은 역시 한·일전이다.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를 취재하던 기자들의 주요 관심사도 누가 일본전 선발투수로 등판하느냐였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보안상의 이유로 일본전 선발을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기자들은 공 잘 던지기로 이름난 투수들을 유력 후보로 꼽아가며 추리에 열을 올렸다. 대회가 하루하루 진행되던 어느날 문득 한 투수가 홀연히 기자들 사이에서 일본전 선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누가 봐도 뜻밖이었던 스무 살의 신예였다.

혹시나 했던 일은 일어났다.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해 여유가 생긴 대표팀이 일본전 선발로 이 젊은 투수를 낙점한 것이다. 베테랑 투수가 등판할 것이라 추측했던 한국 기자들과 일본 대표팀의 허를 찌른,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기자들만 깜깜이였을 뿐 코칭스태프는 계획이 다 있었다. 대회가 개막하기 전에 경기 운영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고 남은 경기에 이 투수를 쓰겠다는 밑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기자들이 감독의 용병술이나 작전 등 경기 운영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시시콜콜 비판 기사를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현장의 야구인들은 외부인들이 알 수 없는 정보를 손에 쥐고 외부인들은 생각지도 못한 수 싸움을 한다. 더그아웃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면서 감독에게 섣불리 훈수 두는 것은 실체 없는 허깨비와 씨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지난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야구를 잘 모르는 국회의원 손혜원이 노련한 야구인 선동열을 야구 문제를 두고 질타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의 병역 특례가 발단이 된 이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은 국가대표 선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우승이 어려운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는다”는 모욕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병역 특례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에 편승했던 손혜원은 자신이 ‘야알못(아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증명했을 뿐, 경솔한 언행으로 결국 역풍을 맞았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이 국감에 불려나간 이 초유의 사태는 야구인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는 프리미어12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도 부지불식간 작용했다. 행여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철저히 기록 위주로 선수를 선발했다.

그러나 야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에겐 기록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장점은 통계에 오롯이 담기지 않는다. 수비할 때 첫발을 내딛는 방향과 반응 속도, 상대 투수의 버릇을 읽어 2루를 훔치는 눈썰미, 큰 경기일수록 배짱이 두둑해지는 투수의 담력을 숫자는 표현하지 못한다. 기록만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려고 하면 오히려 이모저모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수를 배제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국방부는 지난달 21일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가대표 선발의 구체적 기준·과정 및 관련 자료를 대외에 공개하는 등 공정성·투명성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야구도 이 방침을 따르게 될 것이다. 도쿄 올림픽 대표팀 선발의 첫 번째 원칙은 물론 성적이다. 같은 성적이면 병역 미필자를 뽑았던 관행도 국민 정서에 비춰보면 반성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손혜원 프레임’에 갇혀 쓸모 있는 선수를 발탁하지 못하는 것도 전력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표팀 구성은 불가능하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문가의 시야로, 공정하면서도 소신 있게 선수를 선발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야구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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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물감을 바른 뒤 두 겹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그 위에 두고 눌렀다 떼어내는 방식의 미술 기법을 ‘데칼코마니’라고 한다. 올 시즌 미국과 한국 프로야구에서 데칼코마니 한 듯 각각 닮은꼴 활약을 펼친 두 ‘외국인’ 투수가 있다. LA 다저스의 류현진과 두산 베어스의 조쉬 린드블럼이 그 주인공이다. 1987년생 동갑내기로 각각 MLB와 KBO리그 최고 수준의 성적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두 선수는 MLB, KBO 올스타전 선발 등판과, MLB 사이영상(Cy Young Award) 후보, KBO MVP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평행이론을 펼치며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류현진은 올 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 커쇼를 대신하여 선발로 나선 이후 29경기에 등판해 14승5패에 평균자책점(ERA) 2.32를 기록, 아시아 투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ERA 1위에 올랐다. 특히 5월12일에는 2019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8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전반기 17경기 10승2패 ERA 1.73, 99탈삼진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동양인 2번째이자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2013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82.2이닝을 소화한 류현진은 체력에 대한 우려도 말끔히 씻어냈다. 최근에는 한국인 최초로 뉴욕 메츠의 디그롬, 워싱턴 내셔널스의 셔저와 함께 미국야구기자협회가 발표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최종 후보 3인에 들어갔다.

KBO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평가받았던 더스틴 니퍼트를 이어 슈퍼 에이스 역할을 해내고 있는 두산 린드블럼은 올 시즌 30경기에 등판해 20승을 거두면서 다승, 승률, 탈삼진 부문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ERA도 선두를 달리다 시즌 막바지 2위로 밀린 점을 고려하면 니퍼트도 못한 투수 부문 4관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는 1999년 현대 정민태 이후 20년 만에 KBO리그 개막 후 7월까지 16승 이상을 올리는 대기록을 달성했으며 8월18일 잠실에서는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롯데 주형광이 세웠던 15연승을 제치고 홈경기 최다 연승 신기록(16승)을 세웠다.

오늘이 있기까지 두 선수는 야구로 많은 것들을 극복했다. 

2006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번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류현진은 데뷔 첫해부터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을 거두며 2012년까지 통산 98승으로 시즌을 마감한 뒤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처음 2년간 28승15패, ERA 3.17을 기록하며 활약했던 류현진에게 팬들의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그는 2015년과 2016년 두 번의 어깨 수술로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나 재활 기간 새로운 구종을 연마하고 제구력을 키우며 성장했다. 

2008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린드블럼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 여러 구단을 거친 후 2015년 롯데자이언츠 외국인 투수로 한국 팬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적 첫 시즌 210이닝으로 KBO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린드블럼은 2016년 시즌 종료 후 아픈 딸을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복귀했다가 2017년 중반 다시 롯데로 돌아왔다. 2015~2017 3년간 74경기에 등판해 28승을 올렸다. 2018년부터는 두산으로 둥지를 옮겨 니퍼트가 떠난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며 리그 유일한 2점대 ERA로 외국인 최초로 최동원상을 수상하고 팀의 2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과 2019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두 선수의 마운드 밖 생활도 화제다. 지난 5월 ‘크랙 캔서 챌린지’(Crack cancer challenge, 소아암 돕기 행사)에 참여한 류현진의 소식이 전해졌다. 린드블럼 또한 2011년 10월 아내와 함께 ‘린드블럼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선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스포츠에는 국경이 없어지고 있다. 글로벌화에 따라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영입에 적극 참여하면서 자국 선수들의 해외 이적도 증가했다. 그들은 타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수한 기록을 쌓으며 리그의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스포츠 문화를 전파하고 국가 브랜드의 위상을 제고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메릴 켈리는 프로 지명을 받은 2010년부터 4년간 마이너리그에서만 뛰었지만, SK와이번스로 이적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119경기에 등판해 48승을 올렸다. 또 2017년 탈삼진 189개로 1위, 2018 한국시리즈 우승 등 KBO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재도전에 성공했다. 2015년 KBO MVP였던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도 2014년부터 3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2015년에는 타율(0.381), 득점(130), 2루타(42), 장타율(0.790) 부문에서 1위를 석권하고 2017년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로 유턴, 31홈런으로 활약했다. 또한 미국 복귀 이후 뛰어난 가창력을 겨루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실이 MLB.com에 소개되며 한국과 미국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3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와 탬파베이 레이스의 최지만도 풀타임 선전하며 한국 야구를 빛내고 있다. 

데칼코마니는 우연하고 다양한 효과들을 끌어낸다. 스포츠 국제 교류에 대한 기대가 바로 이 데칼코마니 같다. MLB 구단 스카우트들이 KBO 구장을 방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올해 7월9일 등판을 마치고 다음날 SNS에 올린 글에서 자신과는 직접 인연이 없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 등판을 응원하기도 했다. 닮은꼴 활약을 펼치는 류현진, 린드블럼은 물론 추신수, 최지만, 켈리, 테임즈 등과 같이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긍정적 교류를 통해 한·미 양국 리그에 모범이 될 족적을 남기고 야구라는 공통분모의 경기적, 문화적 동반성장을 이끌어내길 기대해본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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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봤다.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게 된 ‘유산슬’ 유재석씨가 ‘합정역 5번 출구’를 녹음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 ‘업계’의 고수들, 이른바 ‘세션맨’들이 거의 ‘원샷 원킬’로 연주하는 모습은 흐뭇했다. 과연 ‘인생도처 유상수’라, 세상의 모든 분야에는 마땅히 고개를 숙일 만한 고수들이 있다고 했던가. 한편 예능 프로라서 맘껏 웃기도 했지만 또한 그 고수들이 살아냈을 세월을 짐작하니 조금은 숙연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어느 분야든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디 음악계만 그러하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일하는 분야에서는 그와 같은 고수들, 장인들, 누군가를 빛내는 세션의 자리, 묵묵히 그 분야를 오랫동안 떠받치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머리’로 일하는 사람들은, 뭐라도 조금 틀리거나 어긋나면 대체로 다시 쓰거나 말로 하면 그만이지만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정교하게, 그야말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일한다. 그래야 전후가 맞아 주춧돌이 놓이고 좌우가 맞아 대들보가 올라간다. 

스포츠계 역시 두말할 것도 없다. 물론 ‘머리’도 쓰는 스포츠지만 그 일의 수행 과정 전체는 기본적으로 ‘몸’이 작동한다. 그 몸의 세계에 수많은 사람들이 활동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활동하여 스타 선수를 건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움직여 스타 감독을 지켜낸다. 결국 스타 선수와 감독이 더 많은 빛을 받고 그에 따라 더 많은 명예와 부를 획득하지만, 그 영광 뒤에 수많은 ‘세션맨’들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최근 소식을 들어보니,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축구협회와 재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꽤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코칭스태프’에 대한 조건도 흡족하게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무려 4개월 동안 진행된 협상 과정에서 미확인 루머와 비난도 없지 않았는데, 박항서 감독은 자신과 함께 활동해왔고 또 앞으로 활동하게 될 코칭스태프의 대우까지 꼼꼼히 챙겼다고 하니 스포츠에서 말하는 ‘원 팀’은 바로 이런 결의에서부터 시작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 개인의 덕목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포츠계 전체가 ‘모두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대한체육회가 역점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국 체육을 빛낸 100인’이 있다. 2020년 7월이면 대한체육회 창립 100주년이 된다. 이를 기념하여 근현대 체육의 역사를 빛낸 100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선정하는 사업이다. 탁월한 경기력을 보인 선수들, 헌신적이고 창의적인 결실을 맺은 지도자와 심판들, 행정·외교·홍보·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100인을 엄선한다. 

과거에도 일부 단체나 언론에서 이러한 선정 작업이 있었으나 어떤 경우는 ‘인기 투표’에 가까웠고, 또 어떤 경우는 그 ‘업계의 영향력’에 따른 것이라서 객관성이나 엄밀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무엇보다 스포츠의 특성상 ‘도전과 영광’이라는 스토리텔링이 압도하기 마련인데, 이 점을 지나치게 중시하게 되면, ‘도전’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탈하였거나 그 트랙을 거부한 사람들은 삭제하게 되고 심지어는 ‘영광’의 과정에 묵묵히 조력한 사람마저 망각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각 시대의 대중적 스타를 나열하는 방식이 되곤 하였는데, 이번의 대한체육회 선정 작업은, 그 분야를 다양하게 나누고, 그 선정 과정을 단계별로 수렴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보다 다양하고 보다 깊이 있는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그 흔한 이벤트나 인기 투표가 아니라 ‘창립100주년 기념사업’ 아닌가. 

누군가를 선정하는 것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선정(동시에 배제) 작업에는 지난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관점이 개입하기 마련이고 그 관점에는 또한 복잡한 문화정치적 시선이 작동하기 마련이다. 이 시선들이 ‘순수’라는 이름 아래 은폐되기보다는 오히려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2021년 개관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국립체육박물관’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문체부가 국민체육공단을 통하여 현 서울올림픽기념관 인근에 건립 중인 ‘국립체육박물관’은 총 사업비 300억원가량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스포츠역사관, 스포츠유물전시관, 스포츠체험관 등이 들어서는 이 박물관은 애초 2019년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여러 이유로 연기되어 현재는 2022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릉선수촌 내 ‘한국체육박물관’이 있으나 예산 등의 이유로 1명의 학예사가 일하는 정도이고, 심지어 국민에게 개방되는 박물관임에도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휴관’하는 형편이라서, 장차 신설될 ‘국립’ 박물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중요한 것은 그 전시의 철학과 방향이다. 개별 단체나 개인의 사설 박물관이 아니고 모름지기 ‘국립’으로 짓고 운영하는 ‘박물관’이니만치 ‘기승전영광’의 도식적인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훨씬 더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역사를 반듯하게 솔질하게 되면 무심코 생략하거나 일부러 은폐해버리는 사건과 인물과 사태들이 발생하게 된다. 더욱이 어느 분야든 ‘국립’이란 이름의 ‘박물관’은 특정 기관의 홍보 공간이 아니다. 수집하고 연구하고 전시하고 사회화하는 공간이다. 

인간의 ‘몸’이 다양하게 작동하는 스포츠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스포츠 100년 역사는 반드시 영광만 있었던 것이 아니며 스타만 존재했던 게 아니다. 특정한 사건을 역사적·정치적·문화적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판별할 수도 있어야 한다.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역사를 거슬러 솔질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몸’으로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복원할 수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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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큰돈을 들여 비싼 선수를 데려오는 게 ‘왕도’에 가깝지만, 비싼 선수들 모아놓는다고 우승할 수 없다는 걸, 미국과 한국의 많은 팀이 스스로 증명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야구는 물론, 우리들이 살아가는 거의 모든 곳에서 ‘진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구슬을 꿰는 ‘실’은 어디에 있을까. 누가 어떻게 꿰어야 할까. ‘팀워크’라는 건 진짜 있는 걸까.

매년 MIT에서는 ‘슬로언 스포츠 분석 콘퍼런스’라는 회의가 열린다. 2017년 슬로언 콘퍼런스에서 독특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인디애나대학 켈리경영학스쿨 교수와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연구원 둘이 함께 연구했다.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 한 명이 팀에 어떤 긍정적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 개인의 야구실력을 합한 데이터는 그 팀 성적에 20%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계산됐다. 오히려 ‘팀워크’라고 불리는 일종의 ‘분위기’가 팀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의 계산에 따르면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 한 명이 팀에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는 약 44% 수준으로 팀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이 이 연구 결과에 붙인 이름은 바로 ‘데이비드 로스 효과’. 줄여서 ‘로스 이펙트(Ross Effect)’라고 부른다.

데이비드 로스는 빅리그 통산 15시즌을 뛰었지만 통산 타율 겨우 0.229, 연평균 홈런 약 7개로 별 볼 일 없는 타자다. 그나마 포지션이 포수니까 15시즌을 버텼는데, 그마저도 주전이 아니라 ‘백업포수’였다. 100경기 넘게 뛴 시즌이 딱 한 번. 신시내티에서는 브론슨 아로요, 보스턴에서는 존 레스터의 전담포수였다. 시카고 컵스가 레스터와 FA 계약을 할 때 전담포수 로스도 함께 데려갔다. 로스의 커리어 최고 연봉은 31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 400만달러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별 볼 일 없는, 연봉 적은 베테랑 백업포수다.

‘로스 이펙트’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다. 미국 버펄로대학의 케이트 베즈루코바와 체스터 스펠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팀 조직력’을 살피는 연구를 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메이저리그 팀들을 분석해 ‘인싸’와 ‘아싸’로 나눴고, 그 사이의 ‘단층선’을 구별했다. 주전과 후보, 연봉, 나이, 국적, 언어의 차이 등이 메이저리그 팀 내 ‘장벽’인 단층선이다. 단층선의 구조와 범위, 강도 등을 구분하고 팀 성적을 계산한 결과 ‘갈등관리 실패’는 플러스·마이너스 3승, 즉 6승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계산됐다.

그런데 이 연구에 따르면 팀 조직력은 단층선이 거의 없는,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모였을 때 오히려 떨어졌다. 단층선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도 이들 단층선의 사이를 오가며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주는 ‘중간자’의 존재가 팀 조직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게 바로 ‘로스 이펙트’의 비밀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뚜렷한 단층선은 연봉과 인종, 언어의 벽이다. 고액 연봉과 저연봉이 갈리고 백인과 히스패닉이 갈라진다. 일반적으로 ‘백인=베테랑=고연봉’이 한 축을 이루고 ‘히스패닉=신참=저연봉’이 한 축을 이룬다. 이 단층선의 양쪽을 아우르는 선수가 팀을 단단하게 만든다. 로스는 나이 많은 베테랑 백인 선수지만, 연봉이 적은 백업포수다. 로스와 반대로 비슷한 선수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카를로스 벨트란이다. 은퇴 시즌, 마흔살 때 연봉이 1600만달러였던 성공한 히스패닉 선수. ‘로스 이펙트’와 마찬가지로 ‘벨트란 이펙트’가 존재했다. 이들은 팀 내 ‘인싸’와 ‘아싸’를 모두 아우를 수 있었다.

로스는 2016년 시카고 컵스를, 벨트란은 2017년 휴스턴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2019시즌이 끝나고 로스는 컵스의 감독이, 벨트란은 뉴욕 메츠의 새 감독이 됐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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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관중석 앞에서 열린 기이한 경기(미국 워싱턴포스트)”, ‘가장 비밀스러운 월드컵 예선 경기’로 “중계방송도, 팬도, 외신도, 그리고 골도 없었다(영국 데일리메일)”, ‘기괴한 경기’였으며 “경기 결과는 부차적이었다”(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에 대한 외신들의 표현이다. 29년 만의 축구대표팀 평양 원정 경기가 평창 동계올림픽 때처럼 남북 평화의 물꼬를 틀기를 기대한 것과 너무나 딴판이다.

남과 북, 0-0 비긴 뒤 악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 선수들(흰 유니폼)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무관중 경기로 열린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상대 선수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한축구연맹 제공

남측 중계진의 방북을 불허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날 평양 경기 장면은 상상 이상으로 썰렁했다. 경기 전날 4만명 관중이 구경할 것이라는 북한 측의 귀띔도 지켜지지 않았다. 상대팀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무중계·무관중 경기를 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팀만 응원하기가 멋쩍었던 것일까?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몇 마디 육성과 함께 트위터로 전한, 남북 선수들이 승강이하는 모습은 차라리 정겹게 느껴졌다.

운동 경기는 원래 몰래 하는 법이 없다. 관중은 경기의 흥미를 더 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에는 무관중 경기가 낯설지 않다. 2005년 3월 김일성경기장에서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 중 북한 선수가 퇴장당하자 관중이 항의하며 이란 선수들을 위협했다. 이로 북한은 ‘무관중 경기’ 징계를 받아 홈에서 할 예정이던 일본과의 경기를 제3국인 방콕에서 치렀다. 

축구 경기 열기가 갈수록 뜨겁다. 월드컵이나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등 국가대항전은 가히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축구에 평화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평양 경기가 열린 15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은 요르단강 서안 알람에서 팔레스타인과 원정경기를 치렀다. 사우디가 이곳에서 경기를 한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는 것을 기피해 팔레스타인과 제3국에서 경기를 치러왔다. 전날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동예루살렘도 방문했다. 아랍국가들의 대이스라엘 정책이 변하고 있다는 증좌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평양 무관중’ 축구가 더욱 아쉽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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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가 시행된다.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은, 국가의 막대한 지원과 일정한 통제 아래 발전해왔고, 특히 각 지자체의 산하에 편재되어 어렵사리 버텨왔다. 이제 겸직 금지로 인하여 그 ‘지원’과 ‘육성’이 축소되거나 최소한 다른 형태로 급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의 핵심은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이고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스포츠기본법’의 제정이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정책은 ‘국민체육진흥법’에 근거하여 왔다. 1962년 제정된 ‘체육진흥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민체육진흥법’은 1982년에, 88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전면 개정을 하였고 그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일부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고 이 법을 모법으로 하여 새로운 경향이나 산업을 반영하는 하위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한 세대 전에 제정된 이 법의 목적과 정의는 그 이후 급변한 국내외 스포츠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법 1조의 ‘목적’에 표현되고 있는 단어들, 예컨대 ‘체력 증진, 건전한 정신, 명랑한 생활, 국위선양’ 등은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던 무렵에 통용되던 발전주의 국가론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는 바,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적, 문화적, 정서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 법의 2조에 명시된 ‘체육, 전문체육, 생활체육, 선수’ 등의 개념 정의 또한 오늘날 현대 스포츠의 다양성과 시민 저마다의 문화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양상의 스포츠 경향들, 그와 관련된 선수와 팬과 미디어와 시설과 예산 등은 이 법의 바깥에서 배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37년 전의 법 목적과 정의에 따른 제3조, 즉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진흥 육성 정책도 구조적인 문제를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을 틀어쥐고 있고 대한체육회와 각 산하 단체와 협회와 지도자들은 그 사슬의 각 위계 단위에 놓여 있어 자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로써 권력과 체육의 복잡한 밀월관계가 형성되고, 하루아침에도 적과 동지가 뒤바뀌는 위계질서의 맨 아래에서는 폭력과 비리가 안개처럼 번져 있게 된 것이다. 당장 석 달 후부터 시행되는 겸직 금지 조치가 그나마 이 오랜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뜻밖의 단초가 되고 있어, 이에 ‘스포츠기본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기본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최근 몇 해 사이에는 구체적인 법령의 초안까지 제시되었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에서도 지난 9월 발표한 자체 혁신안에 기본법 제정을 중요하게 담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문광위의 일부 의원들도 이에 대한 의견과 방향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체육계의 현안들이 대개 ‘갈등적’이고 ‘대립적’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당장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미래가 걸린 ‘스포츠기본법’은 얼핏 보기에 ‘대동소이’한 관점을 가진 듯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연구기관의 보고서나 일부 국회의원들이 마련한 초안을 보면 ‘스포츠기본법’이라는 새 용어를 썼으되 여전히 ‘국민’의 ‘체육’을 ‘진흥’하는 것에 집중된, 지극히 체육 내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다. 사회 전반의 역동적인 변화와 국제적인 스포츠 문화 환경의 급변, 이에 따른 젊은 세대의 문화적 욕망과 바로 그 세대 문화에서 성장한 젊은 선수들의 내면을 반영하지 못하였다. 아니, 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혀 없는 제안도 더러 있다. 그저 활기찬 신체 활동을 위해 ‘체육인’이 기능적으로 탑재되는 진흥책에 머물고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20세기 중엽의 체육 개념에 근거한 인간 신체에 대한 일방적 기준, 그에 따른 체육의 기능적 효과와 수단, 이를 증진하기 위한 물리적 진흥 제안이 여전하다. 물리적 진흥, 이 길로 계속 가면 또다시 정부 지원에 종속되어 한 줌의 자생력도 남지 않게 된다. 

‘스포츠기본법’에서 ‘기본’은 체육정책을 ‘진흥’하기 위한 기본이 아니라, 인간이 누려야 할 사회적, 문화적 권리라는 가치 측면에서 ‘기본’이다. 이 개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기본’에 따르면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존엄성 증진, 각종 차별 금지와 혐오 배제, 모든 생명의 존중과 그에 기반한 모든 사람의 여러 신체적 조건에 대한 가치와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특정하게 이념화된 ‘국민’이 아니라 보편 인권 차원의 ‘모든 사람’이 이 법에 해당되며 바로 그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환경과 조건에서 차별 없이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로써 개인의 행복과 사회 관계의 형성이 이뤄지고 나아가 지역사회 및 공동체의 민주적 발전에 스포츠가 기여하는 것이 ‘스포츠기본법’의 입법 취지여야 한다. 

자칫 ‘좋은 말 대잔치’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이를 ‘기본’을 삼아야 거시적으로는 국제적인 스포츠 다양성에 적극 부응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체육인의 역할이 인정되는 것이다. 

스포츠를 인간의 기본권이 실현되는 장이며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문화적 욕망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럴 때 스포츠 기본권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평등권, 교육권, 건강권, 노동권 등과 동등한 수준에서 결합되어 심도 깊은 내면과 포괄적인 외연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권리와 스포츠권이 결합되어야 이른바 ‘체육인’들의 사회적 위상, 생활 안정, 일자리 창출 등도 연결된다. 

조만간 체육계와 국회 등에서 ‘스포츠기본권’이 활발히 논의될 것인 바, 일부 표현만 조금 바꾼 ‘체육진흥책’이 아니라, 체육인 전체의 미래를 걸고 과감히 사회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 ‘모든 사람’들과 역동적으로 성장해가는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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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의 대한민국은 참담하다. 경제 위기감과 일본의 망언·망동, 무능한 정치권 등으로 국민 마음은 편치 않다. ‘조국 사태’는 국민을 둘로 갈라놓았다. 어떤 이는 조국 법무장관 가족비리 의혹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또 어떤 이는 검찰의 ‘과도한 수사’에 절망하고 ‘검찰개혁’을 절규한다. 극과 극의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국민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29일 아침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류현진의 시즌 최종전 승리 소식이 전해졌다. 14승과 함께 그는 아시아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평균자책점 1위라는 새 역사를 썼다. 그뿐이 아니다. 9이닝당 볼넷이 평균 1.18개로 1위, 이닝당 투구수 14.81개로 2위 등 ‘류현진’이라는 이름 석자를 메이저리그 투수성적표 상단에 줄줄이 올려놓았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원정 샌프란시스코전 5회 2사 3루에서 타석에 들어 적시타를 때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뭐 하나 즐거울 것이 없는 요즘, ‘류현진’은 늘 답답함을 달래주는 ‘청량제’였다. 개막 이후 185일간 네이버·카카오 등 양대포털을 장식한 류현진 관련기사는 6만여건에 달했고, 동영상도 수만건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그의 승리 소식, 역투 장면을 보고 또 본 국민은 한둘이 아니다.

‘류현진 야구’에는 ‘교훈’이 있다. 허구연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이제 말하지만 8월1일 콜로라도전을 앞두고 류현진은 허리 통증을 느꼈다. 콜로라도는 그전에 7실점의 아픈 기억을 준 팀이다. 몸 상태를 앞세워 비켜갈 수도 있었다”고 했다. 류현진은 “비겁하다”는 비난이 듣기 싫어 예정된 경기에 나섰고 6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이날의 ‘무리’가 이후 애틀랜타-뉴욕-애리조나로 이어진 3경기 18자책점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는 신인포수 윌 스미스와 호흡을 맞추면서 유독 실점이 많았지만 스미스 탓도 하지 않았다. 이날도 평균자책점 1위 수성을 위해 굳이 7이닝을 던질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당당하게 선발투수 임무를 마쳤다. 허구연 위원은 “그의 승리는 위로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개인성적보다 공정한 싸움을 즐겼고, 결과에 대해 결코 남 탓을 하지 않는 류현진의 야구를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배워야 한다”고 했다. 류현진이 곧 가을야구에 나선다. ‘행복은 감염된다’고 한다. 그가 또다시 전해줄 ‘국민 행복 바이러스’에 벌써부터 감염되고 싶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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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자체 혁신안을 발표했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그래도 기존의 관행에서 진일보한 내용들이 적지 않아서 환영할 만하다. 나로서는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의 개편과 체육인 교육센터 설립에 우선 눈이 간다. 문체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집중적으로 살피고 힘줘서 권고한 것처럼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 개편은 한국 스포츠가 비로소 20세기를 끝내고 21세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기존에는 장기 합숙형이었다. 국가대표가 장기 합숙을 하니 그 아래 단위에서도 합숙만이 유일무이한 방법인 것처럼 수십 년을 보내왔다. 새벽부터 밤까지 달렸고 주말에도 산악을 오르내렸다. 신년이 되면 국가대표 선수들은 얼음을 깨고 차가운 물에까지 뛰어 들어갔다. 국가대표만이 아니라 국가대표가 될지 안될지도 모를 어린아이들도 컴컴한 합숙실로 들어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나 20세기는 저물고 어느덧 21세기 중엽에 접어들었다. 국제 스포츠의 추세가 달라졌고 가치가 변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도 인구 변동과 세대 문화와 젊은 지도자의 대거 등장으로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학적인 시스템, 개방적인 문화, 활달한 세대 감수성이 전제되지 않는 장기 합숙형은 구조적으로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실제로 끔찍한 폭력이 빈번히 일어났고 급기야 대한체육회장이 공개 사과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사건, 즉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혁신위는 단기 체류형 개편을 권고하였고 이에 대한체육회도 같은 입장을 천명하였으니, 환영할 일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단기 체류형으로 개편한다는 것은 단지 대표선수들의 선수촌 내 숙박 일수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과도하고 반복적인 연습, 훈련 이외 시간의 통제적인 선수 관리, 성인 선수들의 일상생활 제약과 학생 선수들의 교육권 침해, 새벽부터 밤까지 선수들을 관리해야 하는 지도자들의 과도한 노동과 무한 책임, 그 때문에 선수들을 더욱더 통제해야만 하는 악순환의 구조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단기 체류형으로 한다는 것은 국가대표의 선발과 훈련뿐만 아니라 선수촌 안팎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며 그 요체는 선진적으로 지도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경기력을 유지 또는 향상을 위해 과학적인 시스템이 탑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식의 변화, 즉 선수에 대한 존중과 지도자의 전문성 향상이라는 전제들이 필요하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21세기 중엽에 있어 국가대표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까지 던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제도의 탑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단기 체류형은 여러 혁신안 중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혁신안들을 꽉 물고 함께 움직이는 허브가 된다. 그렇지 않고 그저 사건도 자주 터지고 관리하기도 어려워서 선택하는 것이라면, 일시적 부작용이 또 다른 구조적 병폐로 음습하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대한체육회의 자체 혁신안은 한국 체육계 전체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요소가 많다. 인권과 공정성 실현을 위한 징계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거나 회원 단체에 책임과 권한을 대폭 이양해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점, 그리고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유·청소년 전문스포츠대회 형태로 개편하고 학교별이 아닌 연령별 구분 및 스포츠클럽 등의 개인과 팀까지 참가 허용 등은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앞에 적은 대로, 만시지탄의 안타까움이 있다. 대한체육회로서는 두 번의 중요한 기회가 있었다. 올해 초 관계부처 장관들이 일제히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던 바로 그 상황에서 진지한 사과 이후 과감한 혁신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그러했더라면 8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은 혁신안 제시가 아니라 그중 일부가 현실화되는, 그야말로 미래를 주도적으로 잡아당기는 대한체육회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기흥 회장이 IOC 위원에 선출된 직후인 7월 초다. 이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혁신위의 권고에 공감하며 필요하다면 혁신위원장을 직접 만나는 등 체육 개혁을 위한 대화와 소통의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또한 여러 이유로 무산되었다. 이 회장의 표현대로 “진정하고 잘 살펴보면 분명히 접점”이 나올 수도 있었으며 실제로 혁신위원회는 그러한 대화의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하기도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첨예한 이슈를 갈등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우친 요즘의 언론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대화와 소통’은 일시 중단되었다.

최소한의 사무처도 없이 80여 차례의 회의를 지속하며 일곱 차례의 중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던 혁신위에 비하여 체육회는 인력과 예산과 활용 가능한 유·무형의 자원을 풍부히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혁신위가 주도하고 체육회가 반사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보인 것은, 체육회가 두 번이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만약 체육회가 앞의 두 차례 기회를 선용했더라면 혁신위의 권고는 불필요했으며 아예 출범할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혁신위는 활동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대한체육회는 대한민국과 운명을 함께하는 영구적인 단체다. 스포츠의 제1 원칙, 즉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점에 의거하여 지금이라도 체육회는 좀 더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편안을 선제적으로 발표하고 그것의 실현, 즉 천천히 오는 미래를 상대방 유도복 깃을 당기듯이 바짝 잡아버리는 공세적인 혁신을 주도하기 바란다. 10월 초에 제100회 전국체전이 열린다. 마지막 기회다. 이 중요한 기회를 공허한 항의나 소모적인 비난으로 채우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가는 진일보하는 체육회가 되길 바란다. 혁신위의 시간은 서서히 끝나간다. 지금부터는 ‘체육회의 시간’이다. 부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아채기를.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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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4일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의 경기장 내 반입을 허용키로 했다. 조직위는 앞서 욱일기를 떠올리는 패럴림픽 메달을 공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올림픽 경기장 곳곳에 욱일기가 휘날리고, 욱일기가 그려진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을 일본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한국·중국 등 태평양전쟁과 강제식민 피해를 입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올림픽 경기장을 욱일기로 채우겠다니, 일본은 진정 ‘정상 국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9월 5일 (출처:경향신문DB)

욱일기(욱일승천기)에는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의미가 있다. 일본 황실의 조상신인 ‘해의 여신’과 뜻이 맞닿아 있다. 2차 세계대전 등 침략전쟁 때마다 일본 ‘황군’이 최전면에 내세웠던 전범기다.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인 것이다. 이를 일본이 모를 리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욱일기 사용 자제를 자국 관광객 안전수칙에 넣었던 것이 일본 정부다. 그런데도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이를 허용한 것은 지구촌 축제의 장을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선전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전쟁 전의 일본을 꿈꾸며 헌법 개정을 추진 중인 ‘아베 신조의 일본’이 황실숭배 제국주의를 소환해 자국민의 민족주의를 일깨우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는 엄연한 올림픽정신의 위반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치 행위와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IOC는 과거와 같이 욱일기 사용을 방관,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욱일기 응원과 욱일기 메달 수여를 허용할 경우 ‘수상 거부’ ‘관중 충돌’ 등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헛된 욕망을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꼴이 된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인 양 표기한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대표팀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를 정치적 표현으로 지적한 것이 바로 IOC다. 정부와 국회도 욱일기 사용 금지 촉구를 넘어 국제사회와 연대해 욱일기 사용을 막아야 한다. 

일본은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길 바란다. 욱일기 사용은 과거 식민지배를 받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더없는 상처와 고통만 줄 뿐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 우려부터 해소하는 것이 지금 일본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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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결론을 앞질러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몇 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해 온 지도자와 선수들이 있다. 도쿄 올림픽의 책략적 요소가 있긴 해도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수년 동안 노력해온 땀방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국내외의 각종 선발 대회 및 출전권 획득의 과정이 있다. 이는 국제적인 약속이고 절차인 바, 이것이 모두 종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1년 후의 무대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음, 올림픽의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보이콧하는 것보다 의미 있다. 흔히 올림픽을 ‘세계인의 한마당’이요 ‘우애와 친선의 장’이라고 하지만 이는 장내에서 선수들이 펼치는 경연의 일이다. 장외에서는 온갖 스포츠 정치가 난무하고 글로벌 기업과 스포츠 권력이 충돌한다. 이를 분간해야 한다. 선수들의 땀방울에는 성원을 보내되 경기장 밖의 혈전에 대해서는 엄정한 시각으로 스포츠 권력과 일본 정치 책략과 글로벌 자본의 ‘각축전’을 비판하고 개입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시피 아베 정부에게 올림픽은 단순한 일본 사회 통합이나 국제사회에서 이미지 제고 정도가 아니라 보수적인 야욕의 경기장으로 확연해지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를 올림픽의 축포로 덮으려는 시도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현에서 시작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 올림픽’이라는 그들의 목표를 정확히 보여준다. 

성화의 첫 봉송지 결정은, 1964 도쿄 올림픽을 상기할 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 초창기에 성화는 지금처럼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를 전국으로 봉송하여 일종의 올림픽 스펙터클 문화 선전의 장으로 삼은 것은 히틀러였다. 히틀러로서는 성화를 아테네에서 개최 도시 베를린으로 직배송하기보다는 독일 전역의 도시를 순회하게 함으로써 파시즘과 올림픽의 이중 변주곡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를 고도의 전략으로 구사한 것이 1964 도쿄 올림픽이다. 이 대회의 성화 첫 봉송지는 오키나와. 성화는 오키나와의 주요 전적지를 순회하였으며 특히 전사자를 추모하는 히미유리노탑에서 전쟁고아가 성화를 높이 들었다. 그렇게 출발한 성화는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을 거쳐 도쿄에 입성하였고 히로시마 피폭 2세로 ‘원자 소년’이라 불린 청년이 최종 점화자가 되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일본은, 전쟁에 단지 패했을 뿐이며 원폭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임에도 세계 평화에 나선다는 식의 메시지를 정교하게 연출한 것이다. 

이 국가적 기획에 일본 전후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적극 동참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여러 경기장을 취재하면서 인간 신체에 대한 찬사와 올림픽에 대한 헌사를 쏟아냈다. 반면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히로시마 일대를 취재하여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올림픽이 극심했던 안보투쟁과 전공투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자민당 등 일본 우파 정치의 문화적 책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화려하게 마무리된 폐막식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전 세계 인간이 이렇게 손을 잡고 원을 이뤄 춤추는 감동”이라고 썼고, 오에 겐자부로는 무질서하면서도 자유롭게 들어선 외국 선수단과 달리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입장한 자국 선수단에 대해 “꽤나 쌩뚱맞은 느낌”이라고 썼다. 그는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서 올림픽 폐막 3년 후에 스포츠 스펙터클과 파시즘이 기묘하게 뒤엉킨 사태를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에 묘사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가 올림픽 기간 중에 격앙된 ‘애국심 따위는 TV 스위치가 꺼지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봤으나, 일본 우파는 무려 50여년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이윽고 아베 정부에 이르러 전쟁이 가능한 상태로의 헌법 개정, 경제보복, 후쿠시마 사태의 미봉과 정치 선전으로서의 ‘부흥’ 등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면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2020 도쿄 올림픽이 갖는 아베 정부의 정치외교적인 책략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낫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꿈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한편 장외에서는 올림픽에 노골적으로 스며드는 아베 정부의 반평화적인 측면을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올림픽을 알리는 홍보 지도에 왜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었는가를 지속적으로 따져 물어야 하며 후쿠시마는 과연 안전한가에 대해서도 세계적인 평화, 환경, 스포츠 단체들과 연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정부의 시도가 도쿄 올림픽의 여러 문화 행사와 장치들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의 수많은 오에 겐자부로와 만나야 한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아베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에 우려와 비판의 관점을 지닌 수많은 일본 시민들과 만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올림픽의 장외에서 진정한 평화와 우애의 행진을 해야 한다. 올림픽이 진실을 감추고 야욕을 펼쳐내는 장이 아니라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이며 그저 구호일 뿐인 ‘세계인의 축제’를 진정한 평화의 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적극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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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체육분야 구조 혁신을 목표로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5월7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5차례 권고를 발표했다. 1차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권고는 인권침해를 ‘국가주의적, 승리지상주의적 스포츠 패러다임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제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사건을 해결해야 할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등은 체육계 내부와 분리되지 않아 제 기능을 못했다고 지적했다. 1차 권고의 핵심은 체육계 내부로부터 분리된 ‘독립성, 자율성, 신뢰성’를 갖춘 ‘스포츠 인권보호기구 설립’이다.

2차 권고는 학교 스포츠 정상화로 학생 선수 학습권과 일반 학생 신체 활동을 증진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눈에 띄는 것은 ‘합숙소 전면 폐지 실현’이다. 폐쇄적인 성과 중심의 훈련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합숙소는 운동이 끝난 후에도 훈련과 통제가 이어지게 한다. 훈련소 자체가 스포츠의 성격을 스포츠의 정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순이다. 주거 공간이 되어 쉴 수 없는 일의 연장, 사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공간인 합숙소를 유지하게 하는 성과 중심의 훈련이 문제다.

4차 권고는 평등정책 부재를 비판한다.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하여 ‘인간의 몸의 자유 실현 및 신체적, 정신적 복지 증진을 위한 삶의 중요한 행위양식’으로 스포츠를 정의하고, 모든 사람의 ‘스포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위는 스포츠 인권 개념을 아동·청소년, 노인, 여성, 장애인, 이주민, 원주민, 성소수자 등 인구 집단 및 계층별로 유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체육진흥법 1조(목적)는 “나아가 체육을 통하여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이다. 국가가 추구하는 정상 신체들의 단련은 다양한 몸의 자유와 신체 활동을 스포츠를 통해 보장하기 어려웠다. 혁신위는 국가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국위 선양을 목표로 하였던 국가주의 체육정책을 스포츠 인권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권고가 잘 이행되도록 정부와 국회의 노력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의 2018년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은 23.8%로 낮았다. 장애인은 재활체육에 비해 생활체육에 대한 접근성과 정보가 많지 않다. 치료 목적의 운동이나 2차 장애 예방은 권장되지만 장애를 가진 몸이 운동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이 개입된다. 평창 패럴림픽에서 장애인 선수들을 감동의 영웅으로 등장시켰지만, 정작 올림픽 중계방송 접근권, 시설 접근권 등은 확보되지 않았다. ‘장애를 극복한’ 영웅을 비추던 모니터 밖의 수많은 날글엔 관심이 없다. 생활체육 기반의 낮은 접근성, 장애학생에 대한 스포츠 교육의 다양성 부재와 같은 구조적 열악함은 장애인 스포츠계를 더욱 협소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또 장애로 인해 훈련 전후 과정에서 신변 보조, 이동과 의사소통 등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는데, 이때 신체적 접촉이나 사생활의 개입에 대한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가 공정함의 상징으로 보이지만, 운동장 밖의 일상의 불평등한 룰(차별)들은 운동장도 불평등하게 만들었다. 다시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것으로 운동장뿐만 아니라 몸과 스포츠를 가져와야 한다. 스포츠(운동)에 인권 ‘운동’이 필요한 때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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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끝났다. 수영, 특히 경영은 고독과 싸우고, 질식의 두려움과 싸우는 종목이다. 온몸을 물속에 집어넣은 채 0.01초의 차이를 다툰다. 하루 1만m씩의 훈련이 이어진다. 여러 시간을 헤엄치는 동안 물속에 고개를 박아두는 시간이 많다. 고개를 들면 공기와 물의 저항이 만나 몸을 뒤로 끌어낸다. 고개를 물속에 집어넣으면 공기 없음의, 질식의 공포가 다가온다. 죽을 둥 살 둥 앞으로 헤엄쳐 나아가야 하는 종목이다.

유스라 마르디니(21)는 수영 코치인 아버지를 따라 3살 때부터 수영을 배웠다. 시리아 국가대표를 목표로 수영 실력을 키웠다. 13살이던 2011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됐다. 전쟁은 일상을 때로는 조금씩, 때로는 무참하게 바꿔놓았다. 이듬해 내전은 격화됐다. 다라야 학살 때 마르디니의 집도 무너졌다. 하루는 수영장 지붕에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영 동료 2명이 세상을 떠났다. 2015년 8월, 마르디니는 결심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마르디니는 언니와 숙부 둘과 함께 시리아를 떠났다. 지독한 탈출 여정이 이어졌다. 다마스쿠스를 떠나 레바논의 베이루트, 터키 이스탄불을 거쳤다. 밀수꾼들과 함께 움직였고, 난민들의 숫자는 그때그때 달라졌다. 터키에서 그리스 레스보스 섬으로 넘어갈 때였다. 6명 정원의 통통배에 마르디니와 언니를 포함해 20명이 올라탔다. 한밤 중 바다 한가운데서 고장 난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모두가 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수영선수였던 마르디니와 언니, 수영을 할 줄 아는 또 다른 남자 둘이 물로 뛰어들어 배를 밀었다. 남자 둘은 중간에 포기했지만 언니와 마르디니 둘이 3시간 반을 버텨 여러 생명을 구했다. 마르디니는 “배 위의 6살 꼬마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내내 웃으면서 배를 밀었다”고 했다.

마르디니는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 도착했다. 난민촌에 도착한 뒤 “수영을 하고 싶다”고 전했고, 테스트를 거쳐 독일의 도움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마르디니는 ‘난민팀’ 소속으로 레이스를 펼쳤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마르디니는 이번 광주 대회에도 참가했다. 이번에는 난민팀이 아니라 국제수영연맹 독립 선수(IFA) 소속이었다. 마르디니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 슬프다. 수영 경기를 앞두고는 일부러 뉴스를 보지 않는다”면서 “둘 모두 하는 것은 어렵지만, 수영도 열심히 하고, 평화를 위해서도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르디니에게 수영은 평화와 동의어다.

7월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자유형 800m 결승에서 중국의 쑨양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대회 내내 가장 큰 화제는 중국의 스타 수영선수 쑨양(28)이었다.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금메달을 두 개나 땄지만 시상식에서 ‘기념촬영 거부’ 소동이 벌어졌다. 쑨양이 지난해 9월 도핑 수시 검사 때 도핑 검사요원의 자격을 핑계로 자신의 혈액 샘플을 망치로 깨부순 게 가장 큰 이유다. 도핑 위반 혐의가 짙었지만 국제수영연맹(FINA)은 경고 조치만 했다.

대회기간 계속된 이른바 ‘쑨양 패싱’은 기념촬영 거부에서 레이스 뒤 악수 거부까지 이어졌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쑨양이 “죽도록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며 억울해 할 수 있지만 시상식 기념촬영 거부 선수를 향해 “중국을 무시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도가 지나쳤다. 마르디니는 내전의 공포 속에 나라를 떠났고 익사의 위기 속에 3시간 반 동안 배를 밀면서 수영을 했다. 쑨양은 자신을 둘러싼 도핑 혐의의 시선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뒤에 숨어 피했다. 스포츠를 위한 나라는 몰라도 나라를 위한 스포츠는 없다. 스포츠 앞에 국기가 설 때, 많은 부정과 불공정이 국기의 그늘에 가려졌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쑨양의 ‘중국 무시 말라’는 발언에서 트럼프가, 아베가 겹쳐 보인다는 점이 무척 씁쓸하다. 다른 많은 마르디니들의 노력이 묻힐까봐 더 그렇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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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스포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980년대 한국 군사정권이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 이용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월드컵은 민족주의의 전시장이고, 올림픽 역시 정치 선전 도구이자 집권세력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가 적지 않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북한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책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대북 정책 수단의 하나로 이용하겠다고 천명했던 셈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정한 ‘올림픽 헌장’은 이런 정치적 외풍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시하고 있다. 올림픽 헌장은 “스포츠와 운동선수를 정치적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면서 “올림픽 현장에서 어떤 종류의 시위도 금지되며 정치적, 종교적, 인종주의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자유형 800m 결승에서 중국의 쑨양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말뿐인 조항이 아니다. 이를 위반한 선수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축구대표팀 박종우는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어 보였다가 동메달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메달도 박탈당할 뻔했다.

IOC가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하는 이유는 이념과 이해관계가 아닌, 인체의 힘과 속도로 대결하는 스포츠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가 정치나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IOC도, 선수도, 팬들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스포츠와 정치·사회를 분리하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스포츠 세계만큼은 땀과 노력이 보상받는 곳, 참여자 모두가 규칙을 준수하는 곳, 규칙을 위반할 경우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보전하겠다는 뜻이다. 공정성이 무너질 때 스포츠의 가치는 근간부터 흔들린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지난 28일 폐막한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이례적인 장면을 낳았다. 몇몇 선수들이 공개 시위를 벌였는데, 독재정권이나 인종차별에 항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포츠의 공정성을 지켜달라는 요구였다. 

호주 대표팀의 맥 호턴은 지난 21일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후 메달 시상대에 오르는 것을 거부했다. 금메달리스트인 중국 대표팀 쑨양이 2014년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을 보인 전력이 있고, 지난해 9월엔 자신의 도핑 검사용 혈액 샘플을 망치로 깨뜨려 도핑 관련 기구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틀 후에는 남자 200m 자유형 공동 3위인 영국의 던컨 스콧이 메달 시상식이 끝난 후 1위 쑨양의 악수를 거절했다. 스콧은 언론 인터뷰에서 “쑨양이 수영을 존중하지 않았는데 왜 우리가 쑨양을 존중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시위를 벌인 호턴과 스콧은 선수촌 식당에서 다른 서구 선수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국제수영연맹(FINA)은 선수 행동규범 조항에 ‘메달 시상식 등에서 다른 선수를 겨냥한 의사표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FINA 인사들은 쑨양이 도핑 샘플을 훼손했을 때 미온적인 경고 조치에 그쳐 이번 사태를 부른 장본인들이다. 외부 정치세력이 아니라 스포츠계 내부인들이 스포츠 가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세계반도핑기구는 스포츠중재재판소에 FINA를 제소한 상태다. 호턴과 스콧의 의사표현 방식이 옳고 그름을 떠나, 쑨양의 출전이 선수들에게 대회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던 광주는 본의 아니게도 수영계 공정성 회복을 원하는 선수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로 전달한 장이 됐다. 쑨양 문제를 다룰 스포츠중재재판소의 심리는 9월 시작된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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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의 축구선수를 꼽는 것은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질문만큼 어렵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와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둘은 매해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상을 각각 5번씩 수상했다. 최근 10년은 이들의 무대였던 것이다. 메시는 축구선수 가운데 최고연봉 9960만유로(1315억원)를 받는 선수다. 그러나 메시는 스페인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냈지만,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은 호날두에게 뒤진다. 월드컵이나 유로컵 등 큰 대회에서 활약상이 뛰어난 호날두를 더 높이 평가하는 팬들도 많다. 어쨌든 맨체스터시티의 신예 케빈 더 브라위너의 표현대로 이들이 ‘비교 불가능한 저 높은 곳에 있는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팀 K리그와 유벤투스 FC의 친선경기. 유벤투스 호날두가 경기 시작전 벤치에 앉아 머리를 만지고 있다.연합뉴스

올해 초 공중파 방송에 ‘축구 오타쿠’를 자처하는 연기자가 출연해 메시와 호날두에 대한 평가를 요구받았다. 그는 메시를 ‘농부’, 호날두를 ‘신사’에 비유했다. 이어 봉사, 헌혈, 깨끗한 사생활 등을 들어 호날두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패널은 호날두의 사생활이 깨끗하다는 평가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날두는 수많은 여인들과의 스캔들에 성폭행, 탈세 소문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유벤투스가 지난 26일 한국을 찾았다. K리그 올스타와 경기를 하기 위해서다. 경기 주최 측은 호날두가 최소 45분간 뛰기로 계약했다고 홍보했다. 6만5000여 입장권은 온라인에서 2시간 만에 매진됐다. 입장권수입도 최고를 기록했다. ‘호날두의 땀방울까지 볼 수 있다’는 좌석의 입장료는 40만원이었다. 호날두의 방한경기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팬들이 주머니를 털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큰 실망으로 끝났다. 호날두는 1분도 뛰지 않았다. 환호는 야유로 바뀌었다. 호날두는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팬사인회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경기를 ‘보이콧’했다.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한국을 떠났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트레드밀 위에서 장난치는 영상과 함께 “집에 오니 좋다”는 문구를 올렸다, 호날두 인스타그램 캡처

호날두는 지난 27일 이탈리아로 돌아가 운동하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집에 오니 좋다’는 내용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러나 ‘날강두’에 패싱당한 한국팬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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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들이 쇠락하고 있다. 웬만한 군소 도시마다 구도심은 활력을 잃었고 인구 변동, 주거, 교육, 교통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상황의 심각성으로 보건대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미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정책 수립 이후 이명박 정부의 도시 활력 증진, 박근혜 정부의 도시재생 지원사업 등이 전개되었거니와, 각 정부가 바라보는 도시재생의 가치관은 별개로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들어 매년 10조원씩 향후 5년 동안 50조원이 투입되는 것은, 어떤 정파적 관점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 나라의 안전하고 안정된 일상이 파괴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런 중에 늘 보게 되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 ‘해외 사례’다. 공무원이나 시·도의원들이 현지를 방문한다. 열흘 정도 일정을 잡아 서너개 도시를 살펴보게 되는데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몇 개 도시들의 외형을 주마간산으로 살피기 쉽다. 그 도시들이 오랫동안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섬세하게 추진한 과정을 보기보다는 그렇게 하여 가시적으로 보이는 결과들, 특히 특정한 랜드마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의 북부 도시 빌바오다. 역시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이 미술관 때문에 한 해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여든다고 한다. ‘도시재생 빌바오 랜드마크’, 이렇게 검색하여 보면 국내의 수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기관에서, 공무원과 시·도의원들의 출장 보고서에서 ‘랜드마크 하나로 관광객이 모여든다’는 주장을 숱하게 볼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빌바오는 1980년대 이후 거의 한 세대 이상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도시재생 계획을 추진했다. 네르비온강의 수질 개선, 보행 위주 교통체계 개선, 각종 스포츠 시설과 클럽을 통한 실핏줄 같은 인간관계의 회복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시민 중심의, 시민 참여의, 시민이 실제로 활동하는 거버넌스가 원동력이었다. 영국도 1990년대 말에 도시재생뉴딜사업(NDC)을 전개하였다. 이 약자의 ‘C’는 ‘Communities’, 즉 공동체다. 지방정부, 기업, 시민공동체, 학교 등이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추진하였다. 글쎄, 우리의 오래된 관 주도 방식에서 과연 이러한 착상 자체가 가능할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1세기 들어 주요 선진국마다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한 시민 스포츠 정책을 확장하였다. 이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정부도 2000년대 이후 스포츠클럽 활성화 정책이 펼쳐졌으나 대체로 ‘관 주도’의 일시적 지원 ‘사업’이었다. 최근에는 3년간 매년 3억원씩, 총 9억원의 국비를 지원하는 ‘K-스포츠클럽 공모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으나 역시 지자체 중심이고 시설 운영 중심이다. 물론 인구 1만5000명당 체육관 1개인 일본에 비해 인구 5만7000명당 체육관 1개라는 절대 부족 요소가 있으므로 시설 확충이 필요하지만, 그게 스포츠클럽이나 그 사회적 문화 형성의 본질은 아니다. 

스포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 이미지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다. 물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지구를 구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신체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고 나아가 정부 정책이 되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건강한 신체’에 부합하지 않거나 어떤 장애나 나름의 소신으로 그것을 거부하게 되면 스포츠 정책의 방외자가 되고 심지어 비애국자가 된다. 이른바 ‘건강’은 특정한 수치와 지표로 객관화되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특정 목표가 설정되고 대회가 열리고 우승자와 그 밖의 열패자가 생긴다. 스포츠 좀 즐겨볼까 하다가 금세 그만둔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전국의 주요 스포츠 시설들의 동호인 조직조차 대회 참가를 전제로 하는 우승열패 문화가 압도적이다. 

노령화 추세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노인 대상 스포츠와 여가 활동 역시 ‘활력’이 주제다. 그 활력은 물론 신체에 집중되는 바, 그러한 신체를 기본적으로 갖추지 못한 노인들은 이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배제된다. 또한 ‘활력 넘치는 노인’이란 이미지는 각종 용품 소비와 연결되는 바, 비용 측면에서도 전적으로 배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스포츠클럽 사업이 결국 시설 확충과 그에 따른 인력 충원으로 귀결될 수도 있어 염려스럽다. 앞서 스페인 빌바오를 얘기했듯이, 그들의 도시재생 목표가 관광객 유치가 아니었듯 그 도시의 스포츠 활성화도 시설 확충이 목표가 아니었다. 해체 위기의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여 고립과 외로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을 안정적인 사회 관계로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핀란드는 아예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과 맞물려 전개된 것이었고 최근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 등 이민자가 급증하는 곳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 형성을 위해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20세기의 국가주도형 스포츠에서 21세기의 시민참여형 스포츠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이로써 도시의 쇠락을 막고 급변하는 사회 변동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재생에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한 시설이나 최신 장비까지도 필요 없다. 우선 주민들이 웅크리고 있는 쇠락한 동네부터, 최소한의 사회 행위 동기를 상실하고 있는 가난한 마을부터, 인구 변동이 극심하여 서로의 몸이 부딪치는 지역부터 작은 스포츠 공간을 마련하고 청년 스포츠 전문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대도시의 작은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작은 몸의 움직임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그 지역 공동체가 더 이상 해체되지 않아야 한다. 그 지점에서부터 진짜 도시재생이 시작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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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역동적인 나라가 있을까? 지난 주말에 판문점에서는 남·북·미 3개국 정상이 합동으로 연출해내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큰 사건 앞에 다른 사안들은 쉽게 잠식당해 버리기 일쑤다. 인권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인권의 목소리가 힘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권 중에서도 스포츠인권과 같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다만 스포츠인권과 관련해서는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사건이나 일어나야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뿐이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4차에 걸친 권고안을 발표했다는 뉴스는 주목받지 못한 채 흘러가버렸다. 체육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견인하는 중요한 내용이었고, 그러기에 체육계 내 기득권세력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6월은 U-20 월드컵으로 뜨거웠다. 매번 경기를 드라마같이 치르면서 결승전에 안착하는 그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남자 축구가 월드컵 결승에 올랐으니 그럴 만했다. 그런 한국 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팀의 막내인 이강인이었다. 그가 킬 패스와 발기술로 상대 선수를 따돌리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그래서 준우승 팀임에도 불구하고 이강인 선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세계적인 선수인 마라도나, 메시가 받았던 그 상을 받은 것이고, 당연히 그의 몸값은 올라갔다. 

그런데 만약 이강인 선수가 한국에서 학생선수로 성장했다면 오늘의 그가 될 수 있었을까? 정규 수업 중에도 합숙훈련을 받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당연한 훈련을 받았다면 과연 그는 엘리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는 유년기에 스페인으로 축구유학을 떠났다. 

“낮 12시 반까지 수업이 있었어요, 점심 먹고 다시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했고, 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간식 먹고 6시에 훈련장 가서 9시에 집에 왔어요.” 

그는 운동선수였지만,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모두 다 받았고, 평일에 2시간 정도만 훈련을 했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수업 다 빼먹고, 수업에 들어가도 멀뚱멀뚱 수업에도 따라가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스페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전 학기에 85% 이상 출석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정규 수업 중에는 훈련도 금지되고, 연습이나 대회도 없다. 일본 문부성은 학교운동 운영 원칙에서 평일에는 2시간만 훈련을 허용하고, 주말 연습도 전일 연습을 금하고 있고, 대회 출전을 주말에 했을 경우는 평일 중 하루를 쉬도록 하며, 아침운동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선진국들일수록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일수록 학습권을 인권으로 보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고심을 하고 있고, 이미 그를 위한 시스템이 상식으로 정착되어 있다. 오로지 엘리트 선수만을 육성하는 한국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권고가 지난 5월31일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나왔다. 학기 중에는 주중 대회를 금지하고, 최저학력에 도달한 학생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며, 장시간의 훈련과 합숙을 금지하고, “전국소년체육대회는 학교운동부와 학교스포츠클럽이 참여하는 통합 학생스포츠축전으로 확대·개편”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체육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U-20 월드컵 결승전이 막을 내린 직후인 6월18일,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의회 등 8개 체육단체는 연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위원회 권고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권고라는 것이었다. 소년체전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지금과 같은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학생선수들의 공부를 지원하라는 주장이었다. 1972년에 전격적으로 도입된 국가주의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선택받은 그들, 엘리트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는 그들이 체육계를 대표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2017년 열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는 고졸 754명, 대졸 207명 등 964명의 학생선수가 지원했다. 이 중 100명만이 프로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프로의 문턱을 넘은 100명 중에 그라운드에 서는 기회를 얻은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오로지 운동만 했던 이들의 미래는 누가 보장해줄까? 오로지 소수의 몇 명만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바뀌고, 그런 가운데 스포츠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발굴되는 시스템이어야 다른 학생들도 소외되지 않는다. 

올림픽헌장은 스포츠가 인권임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이다. 모든 인간은 어떠한 차별 없이 올림픽정신 안에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헌장 제4조다. 나아가 헌장 제6조는 이런 권리가 “인종, 피부색, 성별, 성적지향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 없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체육계에 만연한 인권침해와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권고를 6월까지 4차에 걸쳐서 권고했다. 이 위원회의 권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두를 위한 스포츠’다. 올림픽헌장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권고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으로 굳어진 내용들을 권고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체육을 즐길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일, 그래서 합숙소에서 불이 나 청소년 선수 수십명이 사상을 당하는 일이 없고, 미래의 선수생활을 소수의 코치나 감독에게 저당 잡혀서 온갖 인권침해에도 침묵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도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권고가 잘못일 수 없다. 스포츠가 모두가 향유해야 하는 인권임을 부정하는 잘못된 스포츠 시스템은 개혁되어야 한다.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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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류현진의 2019년은 특별하다. 16경기9승2패, 평균자책점 1.83.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전체 1위다. 13.43에 달하는 볼넷 대비 삼진 비율도 마찬가지다. 0.90에 불과한 1이닝당 출루 허용률은 리그 1위다. 그의 공은 빠르지 않다. 평균 구속이 시속 146㎞로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시속 150㎞)에 못 미친다. 지난 2년여간 어깨와 사타구니 부상으로 힘든 시기도 보냈다. 투수가 어깨를 다치면 수술을 하더라도 십중팔구는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이 야구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재기에 성공했고 시속 140㎞대의 공으로 메이저리그를 정복하고 있다. 그 비밀은 뭘까. 

우선 건강한 몸이다.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 한화 시절에도 줄곧 어깨에 염증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못 던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수술 후 2년여의 재활기간을 거치면서 프로 입단 때와 비슷한 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공부하는 류현진’도 한몫했다. 선발 등판 이틀 전 건네받은 전력분석표를 완벽하게 숙지한 뒤 경기에 나선다. 지난해까지는 ‘대충 하던 일’이라고 한다. 

다저스가 게시하고 류현진이 공유한 NL 올스타 선발 투수 류현진 이미지

그의 투구는 예측을 벗어난 트위터 제안으로 외교적 성과를 낸 ‘트럼프의 비무장지대(DMZ) 회동’을 연상케 한다. 지금의 메이저리그는 강속구 투수와 이를 받아칠 준비가 돼 있는 타자들의 시대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최첨단 신기술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런 무대에서 투수 중 하위 9% 수준의 구속으로 타자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타자들의 생각의 허를 찌르는 ‘수 싸움’의 결과다. 전력분석가를 통해 타자를 파악한 뒤 5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섞어 던지는 ‘감성투’로 타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결혼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갖게 된 것도 최고 투수로 발돋움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류현진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나선다. 그는 특히 KBO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완성차’다. 한국 야구를 온전하게 대표하는 인물인 것이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오는 10일 미국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다. ‘메이저리그 몬스터’로 거듭난 그가 보여줄 ‘수 싸움’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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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는 1998년 창단했다. 같은 해 창단한 애리조나가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것과 달리 창단 뒤 10년 동안 줄곧 꼴찌였다. 운도 나빴다. 하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부자팀’ 소굴이었다.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과 겨뤄야 했다. 162경기 시즌 100패가 거듭됐다. 

한국선수들도 많이 뛰었다. 서재응, 류제국이 모두 탬파베이를 거쳤다. 지금은 최지만이 뛰고 있다.

10년 동안 꼴찌를 하던 팀은 11년째인 2008년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이름을 데블레이스에서 ‘악마’를 뗀 레이스로 바꿨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가 했던 전략이 ‘머니볼’이었다면 탬파베이가 2008년 이후 하고 있는 야구는 ‘데이터볼’이다. 월 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탬파베이의 새 구단주들은 데이터로 무장하고 팀을 변신시켰다. 첫번째 전략은 ‘시프트’였다. 야구장을 잘게 쪼개고, 각 영역에 따른 타구 확률을 계산했다. 내야수들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게 섰고 상대에게 안타를 덜 허용했다.

시프트를 둘러싼 시선은 차가웠다. 많은 이들이 “야구가 120년 넘도록 지금의 수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감각과 인상이 아니라, 숫자로 들여다본 야구는 달랐다. 10년 전 ‘파격’은 지금 ‘일상’이 됐다.

탬파베이의 전통 파괴 실험은 계속되는 중이다. 

지난해 탬파베이는 ‘오프너’라는 파격을 선보였다. 선발 투수가 나와 5이닝 이상 던지고, 나머지를 불펜 투수들이 나와 막는, 전통적 야구와 완전히 달랐다. 탬파베이는 수준급 선발 3명을 빼고, 나머지 2자리에 선발 투수 대신 ‘오프너’라 불리는 투수를 썼다. 선발 투수가 길어야 1~2이닝을 막는다. 때로 마무리가 먼저 나와 1회를 막았다. 어차피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거라면 앞에 3~6개를 확실하게 막는 게 승리 확률을 높인다는 계산이다. 계산은 정확했다. 탬파베이는 90승72패를 거뒀다. 아메리칸리그 15개팀 중 딱 6위여서 5팀이 나가는 가을야구에 못 갔다. 중부지구 1위 클리블랜드와의 승차는 1경기였다.

올해 탬파베이는 또 다른 파격을 선보이는 중이다. 선발 투수 오프너가 아니라 이번에는 타선의 오프너다. 전통적인 타선은 출루율이 높은 1~2번 타자에 장타력을 갖춘 3~4번 타자로 꾸려진다. 1~2번이 출루하면 3~5번 타자가 홈으로 불러들이는 식이다. 4번 타자는 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가 선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3~5번이 할 일을 2~4번으로 당기는 추세다. 강한 타자를 2번에 세워서,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들어서게 한다. 이른바 ‘강한 2번론’이다. 탬파베이는 한 발 더 나갔다. 굳이 2번을 강하게 할 게 아니라 아예 가장 잘 치는 타자를 1번에 세웠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1번 타순의 OPS는 0.758인데, 탬파베이 1번 타자들의 OPS는 무려 1.008이다. 1번 타자가 때린 홈런이 21개로 가장 많다. 탬파베이 4번 타자의 홈런은 겨우 9개다. 4번보다 훨씬 강한 1번 타자를 쓴다. 또 하나의 전통 파괴 혁신이다.

탬파베이의 올 시즌 연봉총액은 630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다. 그런데도 뉴욕 양키스에 이은 지구 2위를 달리고 있다. 아메리칸리그 전체 4위여서 가을야구에 나설 수 있다. 과감하게 전통을 깬 결과다.

KBO리그에서도 벽 하나가 깨졌다. LG 투수 한선태는 25일 SK전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선태는 프로야구 최초로 야구부를 거치지 않은 ‘비선수 출신’ 선수다. 탬파베이의 ‘오프너’는 막힌 길을 뚫었다. LG 한선태도 가로막던 벽을 부순 오프너였다. 벽이 하나 무너질 때 세상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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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나름 어떤 분야를 알고자 하였고 그 앎이 휴대폰 두께 정도는 되어 어느 정도 좋아하고는 있으나 실은 즐긴다는 게 무엇인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런 내 경우로 보건대 ‘즐긴다’는 경지는 속없이 히히거리는 것은 아닌 듯싶다.

스포츠는 말해 무엇하랴. 국가대표 출신으로 스포츠혁신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영표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즐기다’는 지든 이기든 상관없이 히히거리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영표 자신이 온몸을 던지며 증명하지 않았던가. 은하계 최고 스타 리오넬 메시가 “축구는 직업이 아니라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규칙이 제한하고 상대방이 압박하는 상황에서 어느 순간 저 드높은 초월의 세계로 질주한다.

경쟁과 승패는 스포츠의 본질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단기간에 결판 난다. 그날그날 승패가 분명하기 때문에, 인생 전체에 걸쳐 어떤 결실이 확인되는 다른 사회적 행위에 비하여, 냉혹한 면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즐기란 말인가. 그럼에도 명장들은 즐기라고 한다.

우리 스포츠 역사에서 감독이 ‘즐겨라’라고 지시한 최초의 사례는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그는 폴란드전을 앞두고 팀 전체에 “경기를 즐겨라”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후반 막판에 차두리를 투입하면서 “가서 즐겨라”라고 했고, 2012 런던 올림픽 때는 홍명보 감독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충고는 열심히, 그리고 즐기라는 말”이라고 했다.

도대체 즐긴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틀림없는 사실은 이기면 좋고 져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모든 감독과 선수들이 그러했거니와 숨 막히는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관계자와 팬들의 끓어오르는 열정 또한 그러하다. 무엇보다 당장의 경기에서 승패가 확정되고 이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현장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단순히 웃고 떠들다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스포츠는 그 승패의 엄중함에 의하여 존립한다.

그렇다면 일단 그 경기를 준비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지도나 연습을 건성으로 설렁설렁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일반적인 공부도 힘이 들고 몸으로 하는 스포츠는 당연히 더 힘겹다. 회사든 경기장이든, 소풍 가듯이 가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즐겁게?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점이 중요하다.

경쟁 자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경쟁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 스포츠 문화에서 다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스포츠가 지닌 본질, 즉 경쟁’을 가벼이 여기는 게 아니라 그 ‘경쟁’에 수반되는 온갖 비정상적인 요소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스포츠를 스포츠답게 하는 것은 당연히 경쟁이다. 그 경쟁에 의하여 몸으로 실천하는 종목에 내재된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평생의 참다운 관계가 맺어지며 매일같이 승패를 겪으면서 내면세계가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당연히 목표를 설정한다. 인생의 목표는 저 멀리 뿌옇게 존재하지만 스포츠에서 목표는 당연히 내일 경기의 승리가 아닌가. 그 목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갖 비정상성을 없애야 한다.

이미 스포츠 선진국의 오랜 노력은 결실을 보고 있다. 영국은 오랫동안 스포츠 문화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각 스포츠 조직과 지도자, 학부모, 선수들의 제반 교육, 문화, 언어, 관계를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율적으로 변모시켜왔다. 누구나 차별 없이 스포츠 및 신체 활동에 참여하는 가운데 뛰어난 선수가 자연스레 발굴되고 그 선수는 교육 당국과 스포츠 단체의 유기적 협력 속에서 건강하고 활달하게 성장한다.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 영국이 ‘스포츠강국’인 중국이나 러시아를 제치고 2016 리우 올림픽 2위를 거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 수영선수로서 출전하여 두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했던 스즈키 다이치. 그는 현재 일본 스포츠청을 이끌고 있다. 스즈키 장관이 주력한 것 역시 모든 사람이 스포츠와 신체 활동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지도자와 선수가 신체적으로 안전하고 생활에서도 안정적인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이었다. 이 기반 위에서 2020 도쿄 올림픽을 위해 선진적인 엘리트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이 또한 ‘과정’이 중요하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시설과 제도의 완비는 물론 무엇보다 교육권이나 문화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혁신하였다. 이는 지도자나 선수가 은퇴한 이후까지 작동한다. 국가가 이른바 ‘국위선양’을 위해 ‘선발’하면, 그 목표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은퇴한 이후에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럴 때 선수들은 스포츠를 높은 차원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승패가 분명한 스포츠 현실에서, 그것도 승패 여부에 따라 진학이나 고용 여부가 결정되는 우리 현실에서 지도자와 선수들이 스포츠를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발생하였고 또한 오래 누적된 비정상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혁신을 통하여 무엇보다 현장의 지도자들이 예전보다 더 안정된 조건에서, 저마다의 귀한 경험에 첨단 스포츠과학을 접목하여 그야말로 21세기에 태어난 선수들을 즐겁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아름다운 경우를 얼마 전에 우리 모두가 목격하지 않았던가. 한국 축구 U-20 대표팀의 정정용 감독 역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가서, 즐겨라!”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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