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결론을 앞질러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몇 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해 온 지도자와 선수들이 있다. 도쿄 올림픽의 책략적 요소가 있긴 해도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수년 동안 노력해온 땀방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국내외의 각종 선발 대회 및 출전권 획득의 과정이 있다. 이는 국제적인 약속이고 절차인 바, 이것이 모두 종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1년 후의 무대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음, 올림픽의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보이콧하는 것보다 의미 있다. 흔히 올림픽을 ‘세계인의 한마당’이요 ‘우애와 친선의 장’이라고 하지만 이는 장내에서 선수들이 펼치는 경연의 일이다. 장외에서는 온갖 스포츠 정치가 난무하고 글로벌 기업과 스포츠 권력이 충돌한다. 이를 분간해야 한다. 선수들의 땀방울에는 성원을 보내되 경기장 밖의 혈전에 대해서는 엄정한 시각으로 스포츠 권력과 일본 정치 책략과 글로벌 자본의 ‘각축전’을 비판하고 개입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시피 아베 정부에게 올림픽은 단순한 일본 사회 통합이나 국제사회에서 이미지 제고 정도가 아니라 보수적인 야욕의 경기장으로 확연해지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를 올림픽의 축포로 덮으려는 시도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현에서 시작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 올림픽’이라는 그들의 목표를 정확히 보여준다. 

성화의 첫 봉송지 결정은, 1964 도쿄 올림픽을 상기할 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 초창기에 성화는 지금처럼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를 전국으로 봉송하여 일종의 올림픽 스펙터클 문화 선전의 장으로 삼은 것은 히틀러였다. 히틀러로서는 성화를 아테네에서 개최 도시 베를린으로 직배송하기보다는 독일 전역의 도시를 순회하게 함으로써 파시즘과 올림픽의 이중 변주곡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를 고도의 전략으로 구사한 것이 1964 도쿄 올림픽이다. 이 대회의 성화 첫 봉송지는 오키나와. 성화는 오키나와의 주요 전적지를 순회하였으며 특히 전사자를 추모하는 히미유리노탑에서 전쟁고아가 성화를 높이 들었다. 그렇게 출발한 성화는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을 거쳐 도쿄에 입성하였고 히로시마 피폭 2세로 ‘원자 소년’이라 불린 청년이 최종 점화자가 되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일본은, 전쟁에 단지 패했을 뿐이며 원폭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임에도 세계 평화에 나선다는 식의 메시지를 정교하게 연출한 것이다. 

이 국가적 기획에 일본 전후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적극 동참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여러 경기장을 취재하면서 인간 신체에 대한 찬사와 올림픽에 대한 헌사를 쏟아냈다. 반면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히로시마 일대를 취재하여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올림픽이 극심했던 안보투쟁과 전공투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자민당 등 일본 우파 정치의 문화적 책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화려하게 마무리된 폐막식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전 세계 인간이 이렇게 손을 잡고 원을 이뤄 춤추는 감동”이라고 썼고, 오에 겐자부로는 무질서하면서도 자유롭게 들어선 외국 선수단과 달리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입장한 자국 선수단에 대해 “꽤나 쌩뚱맞은 느낌”이라고 썼다. 그는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서 올림픽 폐막 3년 후에 스포츠 스펙터클과 파시즘이 기묘하게 뒤엉킨 사태를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에 묘사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가 올림픽 기간 중에 격앙된 ‘애국심 따위는 TV 스위치가 꺼지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봤으나, 일본 우파는 무려 50여년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이윽고 아베 정부에 이르러 전쟁이 가능한 상태로의 헌법 개정, 경제보복, 후쿠시마 사태의 미봉과 정치 선전으로서의 ‘부흥’ 등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면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2020 도쿄 올림픽이 갖는 아베 정부의 정치외교적인 책략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낫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꿈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한편 장외에서는 올림픽에 노골적으로 스며드는 아베 정부의 반평화적인 측면을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올림픽을 알리는 홍보 지도에 왜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었는가를 지속적으로 따져 물어야 하며 후쿠시마는 과연 안전한가에 대해서도 세계적인 평화, 환경, 스포츠 단체들과 연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정부의 시도가 도쿄 올림픽의 여러 문화 행사와 장치들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의 수많은 오에 겐자부로와 만나야 한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아베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에 우려와 비판의 관점을 지닌 수많은 일본 시민들과 만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올림픽의 장외에서 진정한 평화와 우애의 행진을 해야 한다. 올림픽이 진실을 감추고 야욕을 펼쳐내는 장이 아니라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이며 그저 구호일 뿐인 ‘세계인의 축제’를 진정한 평화의 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적극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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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체육분야 구조 혁신을 목표로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5월7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5차례 권고를 발표했다. 1차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권고는 인권침해를 ‘국가주의적, 승리지상주의적 스포츠 패러다임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제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사건을 해결해야 할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등은 체육계 내부와 분리되지 않아 제 기능을 못했다고 지적했다. 1차 권고의 핵심은 체육계 내부로부터 분리된 ‘독립성, 자율성, 신뢰성’를 갖춘 ‘스포츠 인권보호기구 설립’이다.

2차 권고는 학교 스포츠 정상화로 학생 선수 학습권과 일반 학생 신체 활동을 증진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눈에 띄는 것은 ‘합숙소 전면 폐지 실현’이다. 폐쇄적인 성과 중심의 훈련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합숙소는 운동이 끝난 후에도 훈련과 통제가 이어지게 한다. 훈련소 자체가 스포츠의 성격을 스포츠의 정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순이다. 주거 공간이 되어 쉴 수 없는 일의 연장, 사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공간인 합숙소를 유지하게 하는 성과 중심의 훈련이 문제다.

4차 권고는 평등정책 부재를 비판한다.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하여 ‘인간의 몸의 자유 실현 및 신체적, 정신적 복지 증진을 위한 삶의 중요한 행위양식’으로 스포츠를 정의하고, 모든 사람의 ‘스포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위는 스포츠 인권 개념을 아동·청소년, 노인, 여성, 장애인, 이주민, 원주민, 성소수자 등 인구 집단 및 계층별로 유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체육진흥법 1조(목적)는 “나아가 체육을 통하여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이다. 국가가 추구하는 정상 신체들의 단련은 다양한 몸의 자유와 신체 활동을 스포츠를 통해 보장하기 어려웠다. 혁신위는 국가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국위 선양을 목표로 하였던 국가주의 체육정책을 스포츠 인권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권고가 잘 이행되도록 정부와 국회의 노력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대한장애인체육회의 2018년 장애인 생활체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은 23.8%로 낮았다. 장애인은 재활체육에 비해 생활체육에 대한 접근성과 정보가 많지 않다. 치료 목적의 운동이나 2차 장애 예방은 권장되지만 장애를 가진 몸이 운동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이 개입된다. 평창 패럴림픽에서 장애인 선수들을 감동의 영웅으로 등장시켰지만, 정작 올림픽 중계방송 접근권, 시설 접근권 등은 확보되지 않았다. ‘장애를 극복한’ 영웅을 비추던 모니터 밖의 수많은 날글엔 관심이 없다. 생활체육 기반의 낮은 접근성, 장애학생에 대한 스포츠 교육의 다양성 부재와 같은 구조적 열악함은 장애인 스포츠계를 더욱 협소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또 장애로 인해 훈련 전후 과정에서 신변 보조, 이동과 의사소통 등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는데, 이때 신체적 접촉이나 사생활의 개입에 대한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가 공정함의 상징으로 보이지만, 운동장 밖의 일상의 불평등한 룰(차별)들은 운동장도 불평등하게 만들었다. 다시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것으로 운동장뿐만 아니라 몸과 스포츠를 가져와야 한다. 스포츠(운동)에 인권 ‘운동’이 필요한 때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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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끝났다. 수영, 특히 경영은 고독과 싸우고, 질식의 두려움과 싸우는 종목이다. 온몸을 물속에 집어넣은 채 0.01초의 차이를 다툰다. 하루 1만m씩의 훈련이 이어진다. 여러 시간을 헤엄치는 동안 물속에 고개를 박아두는 시간이 많다. 고개를 들면 공기와 물의 저항이 만나 몸을 뒤로 끌어낸다. 고개를 물속에 집어넣으면 공기 없음의, 질식의 공포가 다가온다. 죽을 둥 살 둥 앞으로 헤엄쳐 나아가야 하는 종목이다.

유스라 마르디니(21)는 수영 코치인 아버지를 따라 3살 때부터 수영을 배웠다. 시리아 국가대표를 목표로 수영 실력을 키웠다. 13살이던 2011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됐다. 전쟁은 일상을 때로는 조금씩, 때로는 무참하게 바꿔놓았다. 이듬해 내전은 격화됐다. 다라야 학살 때 마르디니의 집도 무너졌다. 하루는 수영장 지붕에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영 동료 2명이 세상을 떠났다. 2015년 8월, 마르디니는 결심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마르디니는 언니와 숙부 둘과 함께 시리아를 떠났다. 지독한 탈출 여정이 이어졌다. 다마스쿠스를 떠나 레바논의 베이루트, 터키 이스탄불을 거쳤다. 밀수꾼들과 함께 움직였고, 난민들의 숫자는 그때그때 달라졌다. 터키에서 그리스 레스보스 섬으로 넘어갈 때였다. 6명 정원의 통통배에 마르디니와 언니를 포함해 20명이 올라탔다. 한밤 중 바다 한가운데서 고장 난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모두가 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수영선수였던 마르디니와 언니, 수영을 할 줄 아는 또 다른 남자 둘이 물로 뛰어들어 배를 밀었다. 남자 둘은 중간에 포기했지만 언니와 마르디니 둘이 3시간 반을 버텨 여러 생명을 구했다. 마르디니는 “배 위의 6살 꼬마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내내 웃으면서 배를 밀었다”고 했다.

마르디니는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 도착했다. 난민촌에 도착한 뒤 “수영을 하고 싶다”고 전했고, 테스트를 거쳐 독일의 도움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 마르디니는 ‘난민팀’ 소속으로 레이스를 펼쳤다. 올림픽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마르디니는 이번 광주 대회에도 참가했다. 이번에는 난민팀이 아니라 국제수영연맹 독립 선수(IFA) 소속이었다. 마르디니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 슬프다. 수영 경기를 앞두고는 일부러 뉴스를 보지 않는다”면서 “둘 모두 하는 것은 어렵지만, 수영도 열심히 하고, 평화를 위해서도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르디니에게 수영은 평화와 동의어다.

7월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자유형 800m 결승에서 중국의 쑨양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대회 내내 가장 큰 화제는 중국의 스타 수영선수 쑨양(28)이었다.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금메달을 두 개나 땄지만 시상식에서 ‘기념촬영 거부’ 소동이 벌어졌다. 쑨양이 지난해 9월 도핑 수시 검사 때 도핑 검사요원의 자격을 핑계로 자신의 혈액 샘플을 망치로 깨부순 게 가장 큰 이유다. 도핑 위반 혐의가 짙었지만 국제수영연맹(FINA)은 경고 조치만 했다.

대회기간 계속된 이른바 ‘쑨양 패싱’은 기념촬영 거부에서 레이스 뒤 악수 거부까지 이어졌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쑨양이 “죽도록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며 억울해 할 수 있지만 시상식 기념촬영 거부 선수를 향해 “중국을 무시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은 도가 지나쳤다. 마르디니는 내전의 공포 속에 나라를 떠났고 익사의 위기 속에 3시간 반 동안 배를 밀면서 수영을 했다. 쑨양은 자신을 둘러싼 도핑 혐의의 시선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뒤에 숨어 피했다. 스포츠를 위한 나라는 몰라도 나라를 위한 스포츠는 없다. 스포츠 앞에 국기가 설 때, 많은 부정과 불공정이 국기의 그늘에 가려졌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쑨양의 ‘중국 무시 말라’는 발언에서 트럼프가, 아베가 겹쳐 보인다는 점이 무척 씁쓸하다. 다른 많은 마르디니들의 노력이 묻힐까봐 더 그렇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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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스포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980년대 한국 군사정권이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 이용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월드컵은 민족주의의 전시장이고, 올림픽 역시 정치 선전 도구이자 집권세력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가 적지 않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북한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책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대북 정책 수단의 하나로 이용하겠다고 천명했던 셈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정한 ‘올림픽 헌장’은 이런 정치적 외풍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시하고 있다. 올림픽 헌장은 “스포츠와 운동선수를 정치적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면서 “올림픽 현장에서 어떤 종류의 시위도 금지되며 정치적, 종교적, 인종주의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24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부대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자유형 800m 결승에서 중국의 쑨양이 경기를 마친 뒤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말뿐인 조항이 아니다. 이를 위반한 선수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축구대표팀 박종우는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어 보였다가 동메달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메달도 박탈당할 뻔했다.

IOC가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하는 이유는 이념과 이해관계가 아닌, 인체의 힘과 속도로 대결하는 스포츠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가 정치나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IOC도, 선수도, 팬들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스포츠와 정치·사회를 분리하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스포츠 세계만큼은 땀과 노력이 보상받는 곳, 참여자 모두가 규칙을 준수하는 곳, 규칙을 위반할 경우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보전하겠다는 뜻이다. 공정성이 무너질 때 스포츠의 가치는 근간부터 흔들린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지난 28일 폐막한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이례적인 장면을 낳았다. 몇몇 선수들이 공개 시위를 벌였는데, 독재정권이나 인종차별에 항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포츠의 공정성을 지켜달라는 요구였다. 

호주 대표팀의 맥 호턴은 지난 21일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후 메달 시상대에 오르는 것을 거부했다. 금메달리스트인 중국 대표팀 쑨양이 2014년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을 보인 전력이 있고, 지난해 9월엔 자신의 도핑 검사용 혈액 샘플을 망치로 깨뜨려 도핑 관련 기구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틀 후에는 남자 200m 자유형 공동 3위인 영국의 던컨 스콧이 메달 시상식이 끝난 후 1위 쑨양의 악수를 거절했다. 스콧은 언론 인터뷰에서 “쑨양이 수영을 존중하지 않았는데 왜 우리가 쑨양을 존중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시위를 벌인 호턴과 스콧은 선수촌 식당에서 다른 서구 선수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국제수영연맹(FINA)은 선수 행동규범 조항에 ‘메달 시상식 등에서 다른 선수를 겨냥한 의사표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FINA 인사들은 쑨양이 도핑 샘플을 훼손했을 때 미온적인 경고 조치에 그쳐 이번 사태를 부른 장본인들이다. 외부 정치세력이 아니라 스포츠계 내부인들이 스포츠 가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세계반도핑기구는 스포츠중재재판소에 FINA를 제소한 상태다. 호턴과 스콧의 의사표현 방식이 옳고 그름을 떠나, 쑨양의 출전이 선수들에게 대회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던 광주는 본의 아니게도 수영계 공정성 회복을 원하는 선수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로 전달한 장이 됐다. 쑨양 문제를 다룰 스포츠중재재판소의 심리는 9월 시작된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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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의 축구선수를 꼽는 것은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는 질문만큼 어렵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와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둘은 매해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상을 각각 5번씩 수상했다. 최근 10년은 이들의 무대였던 것이다. 메시는 축구선수 가운데 최고연봉 9960만유로(1315억원)를 받는 선수다. 그러나 메시는 스페인리그에서 뛰어난 성적을 냈지만,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은 호날두에게 뒤진다. 월드컵이나 유로컵 등 큰 대회에서 활약상이 뛰어난 호날두를 더 높이 평가하는 팬들도 많다. 어쨌든 맨체스터시티의 신예 케빈 더 브라위너의 표현대로 이들이 ‘비교 불가능한 저 높은 곳에 있는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팀 K리그와 유벤투스 FC의 친선경기. 유벤투스 호날두가 경기 시작전 벤치에 앉아 머리를 만지고 있다.연합뉴스

올해 초 공중파 방송에 ‘축구 오타쿠’를 자처하는 연기자가 출연해 메시와 호날두에 대한 평가를 요구받았다. 그는 메시를 ‘농부’, 호날두를 ‘신사’에 비유했다. 이어 봉사, 헌혈, 깨끗한 사생활 등을 들어 호날두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패널은 호날두의 사생활이 깨끗하다는 평가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호날두는 수많은 여인들과의 스캔들에 성폭행, 탈세 소문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유벤투스가 지난 26일 한국을 찾았다. K리그 올스타와 경기를 하기 위해서다. 경기 주최 측은 호날두가 최소 45분간 뛰기로 계약했다고 홍보했다. 6만5000여 입장권은 온라인에서 2시간 만에 매진됐다. 입장권수입도 최고를 기록했다. ‘호날두의 땀방울까지 볼 수 있다’는 좌석의 입장료는 40만원이었다. 호날두의 방한경기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팬들이 주머니를 털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큰 실망으로 끝났다. 호날두는 1분도 뛰지 않았다. 환호는 야유로 바뀌었다. 호날두는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팬사인회를,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경기를 ‘보이콧’했다. 그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한국을 떠났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트레드밀 위에서 장난치는 영상과 함께 “집에 오니 좋다”는 문구를 올렸다, 호날두 인스타그램 캡처

호날두는 지난 27일 이탈리아로 돌아가 운동하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집에 오니 좋다’는 내용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러나 ‘날강두’에 패싱당한 한국팬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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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도시들이 쇠락하고 있다. 웬만한 군소 도시마다 구도심은 활력을 잃었고 인구 변동, 주거, 교육, 교통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상황의 심각성으로 보건대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미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정책 수립 이후 이명박 정부의 도시 활력 증진, 박근혜 정부의 도시재생 지원사업 등이 전개되었거니와, 각 정부가 바라보는 도시재생의 가치관은 별개로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들어 매년 10조원씩 향후 5년 동안 50조원이 투입되는 것은, 어떤 정파적 관점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 나라의 안전하고 안정된 일상이 파괴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런 중에 늘 보게 되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 ‘해외 사례’다. 공무원이나 시·도의원들이 현지를 방문한다. 열흘 정도 일정을 잡아 서너개 도시를 살펴보게 되는데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몇 개 도시들의 외형을 주마간산으로 살피기 쉽다. 그 도시들이 오랫동안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섬세하게 추진한 과정을 보기보다는 그렇게 하여 가시적으로 보이는 결과들, 특히 특정한 랜드마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의 북부 도시 빌바오다. 역시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이 미술관 때문에 한 해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여든다고 한다. ‘도시재생 빌바오 랜드마크’, 이렇게 검색하여 보면 국내의 수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기관에서, 공무원과 시·도의원들의 출장 보고서에서 ‘랜드마크 하나로 관광객이 모여든다’는 주장을 숱하게 볼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빌바오는 1980년대 이후 거의 한 세대 이상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도시재생 계획을 추진했다. 네르비온강의 수질 개선, 보행 위주 교통체계 개선, 각종 스포츠 시설과 클럽을 통한 실핏줄 같은 인간관계의 회복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시민 중심의, 시민 참여의, 시민이 실제로 활동하는 거버넌스가 원동력이었다. 영국도 1990년대 말에 도시재생뉴딜사업(NDC)을 전개하였다. 이 약자의 ‘C’는 ‘Communities’, 즉 공동체다. 지방정부, 기업, 시민공동체, 학교 등이 거버넌스를 구성하여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추진하였다. 글쎄, 우리의 오래된 관 주도 방식에서 과연 이러한 착상 자체가 가능할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1세기 들어 주요 선진국마다 스포츠클럽을 중심으로 한 시민 스포츠 정책을 확장하였다. 이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정부도 2000년대 이후 스포츠클럽 활성화 정책이 펼쳐졌으나 대체로 ‘관 주도’의 일시적 지원 ‘사업’이었다. 최근에는 3년간 매년 3억원씩, 총 9억원의 국비를 지원하는 ‘K-스포츠클럽 공모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으나 역시 지자체 중심이고 시설 운영 중심이다. 물론 인구 1만5000명당 체육관 1개인 일본에 비해 인구 5만7000명당 체육관 1개라는 절대 부족 요소가 있으므로 시설 확충이 필요하지만, 그게 스포츠클럽이나 그 사회적 문화 형성의 본질은 아니다. 

스포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포츠 이미지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다. 물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지구를 구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신체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고 나아가 정부 정책이 되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건강한 신체’에 부합하지 않거나 어떤 장애나 나름의 소신으로 그것을 거부하게 되면 스포츠 정책의 방외자가 되고 심지어 비애국자가 된다. 이른바 ‘건강’은 특정한 수치와 지표로 객관화되기를 요구한다. 그리하여 특정 목표가 설정되고 대회가 열리고 우승자와 그 밖의 열패자가 생긴다. 스포츠 좀 즐겨볼까 하다가 금세 그만둔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전국의 주요 스포츠 시설들의 동호인 조직조차 대회 참가를 전제로 하는 우승열패 문화가 압도적이다. 

노령화 추세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노인 대상 스포츠와 여가 활동 역시 ‘활력’이 주제다. 그 활력은 물론 신체에 집중되는 바, 그러한 신체를 기본적으로 갖추지 못한 노인들은 이념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배제된다. 또한 ‘활력 넘치는 노인’이란 이미지는 각종 용품 소비와 연결되는 바, 비용 측면에서도 전적으로 배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스포츠클럽 사업이 결국 시설 확충과 그에 따른 인력 충원으로 귀결될 수도 있어 염려스럽다. 앞서 스페인 빌바오를 얘기했듯이, 그들의 도시재생 목표가 관광객 유치가 아니었듯 그 도시의 스포츠 활성화도 시설 확충이 목표가 아니었다. 해체 위기의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여 고립과 외로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을 안정적인 사회 관계로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핀란드는 아예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과 맞물려 전개된 것이었고 최근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 등 이민자가 급증하는 곳에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 형성을 위해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20세기의 국가주도형 스포츠에서 21세기의 시민참여형 스포츠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이로써 도시의 쇠락을 막고 급변하는 사회 변동에 대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도시재생에 스포츠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대한 시설이나 최신 장비까지도 필요 없다. 우선 주민들이 웅크리고 있는 쇠락한 동네부터, 최소한의 사회 행위 동기를 상실하고 있는 가난한 마을부터, 인구 변동이 극심하여 서로의 몸이 부딪치는 지역부터 작은 스포츠 공간을 마련하고 청년 스포츠 전문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대도시의 작은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작은 몸의 움직임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그 지역 공동체가 더 이상 해체되지 않아야 한다. 그 지점에서부터 진짜 도시재생이 시작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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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역동적인 나라가 있을까? 지난 주말에 판문점에서는 남·북·미 3개국 정상이 합동으로 연출해내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큰 사건 앞에 다른 사안들은 쉽게 잠식당해 버리기 일쑤다. 인권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인권의 목소리가 힘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권 중에서도 스포츠인권과 같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다만 스포츠인권과 관련해서는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사건이나 일어나야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뿐이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4차에 걸친 권고안을 발표했다는 뉴스는 주목받지 못한 채 흘러가버렸다. 체육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견인하는 중요한 내용이었고, 그러기에 체육계 내 기득권세력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6월은 U-20 월드컵으로 뜨거웠다. 매번 경기를 드라마같이 치르면서 결승전에 안착하는 그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남자 축구가 월드컵 결승에 올랐으니 그럴 만했다. 그런 한국 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팀의 막내인 이강인이었다. 그가 킬 패스와 발기술로 상대 선수를 따돌리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그래서 준우승 팀임에도 불구하고 이강인 선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세계적인 선수인 마라도나, 메시가 받았던 그 상을 받은 것이고, 당연히 그의 몸값은 올라갔다. 

그런데 만약 이강인 선수가 한국에서 학생선수로 성장했다면 오늘의 그가 될 수 있었을까? 정규 수업 중에도 합숙훈련을 받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당연한 훈련을 받았다면 과연 그는 엘리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는 유년기에 스페인으로 축구유학을 떠났다. 

“낮 12시 반까지 수업이 있었어요, 점심 먹고 다시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했고, 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간식 먹고 6시에 훈련장 가서 9시에 집에 왔어요.” 

그는 운동선수였지만,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모두 다 받았고, 평일에 2시간 정도만 훈련을 했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수업 다 빼먹고, 수업에 들어가도 멀뚱멀뚱 수업에도 따라가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스페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전 학기에 85% 이상 출석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정규 수업 중에는 훈련도 금지되고, 연습이나 대회도 없다. 일본 문부성은 학교운동 운영 원칙에서 평일에는 2시간만 훈련을 허용하고, 주말 연습도 전일 연습을 금하고 있고, 대회 출전을 주말에 했을 경우는 평일 중 하루를 쉬도록 하며, 아침운동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선진국들일수록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일수록 학습권을 인권으로 보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고심을 하고 있고, 이미 그를 위한 시스템이 상식으로 정착되어 있다. 오로지 엘리트 선수만을 육성하는 한국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권고가 지난 5월31일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나왔다. 학기 중에는 주중 대회를 금지하고, 최저학력에 도달한 학생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며, 장시간의 훈련과 합숙을 금지하고, “전국소년체육대회는 학교운동부와 학교스포츠클럽이 참여하는 통합 학생스포츠축전으로 확대·개편”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체육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U-20 월드컵 결승전이 막을 내린 직후인 6월18일,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의회 등 8개 체육단체는 연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위원회 권고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권고라는 것이었다. 소년체전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지금과 같은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학생선수들의 공부를 지원하라는 주장이었다. 1972년에 전격적으로 도입된 국가주의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선택받은 그들, 엘리트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는 그들이 체육계를 대표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2017년 열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는 고졸 754명, 대졸 207명 등 964명의 학생선수가 지원했다. 이 중 100명만이 프로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프로의 문턱을 넘은 100명 중에 그라운드에 서는 기회를 얻은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오로지 운동만 했던 이들의 미래는 누가 보장해줄까? 오로지 소수의 몇 명만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바뀌고, 그런 가운데 스포츠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발굴되는 시스템이어야 다른 학생들도 소외되지 않는다. 

올림픽헌장은 스포츠가 인권임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이다. 모든 인간은 어떠한 차별 없이 올림픽정신 안에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헌장 제4조다. 나아가 헌장 제6조는 이런 권리가 “인종, 피부색, 성별, 성적지향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 없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체육계에 만연한 인권침해와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권고를 6월까지 4차에 걸쳐서 권고했다. 이 위원회의 권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두를 위한 스포츠’다. 올림픽헌장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권고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으로 굳어진 내용들을 권고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체육을 즐길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일, 그래서 합숙소에서 불이 나 청소년 선수 수십명이 사상을 당하는 일이 없고, 미래의 선수생활을 소수의 코치나 감독에게 저당 잡혀서 온갖 인권침해에도 침묵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도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권고가 잘못일 수 없다. 스포츠가 모두가 향유해야 하는 인권임을 부정하는 잘못된 스포츠 시스템은 개혁되어야 한다.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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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류현진의 2019년은 특별하다. 16경기9승2패, 평균자책점 1.83.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전체 1위다. 13.43에 달하는 볼넷 대비 삼진 비율도 마찬가지다. 0.90에 불과한 1이닝당 출루 허용률은 리그 1위다. 그의 공은 빠르지 않다. 평균 구속이 시속 146㎞로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시속 150㎞)에 못 미친다. 지난 2년여간 어깨와 사타구니 부상으로 힘든 시기도 보냈다. 투수가 어깨를 다치면 수술을 하더라도 십중팔구는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이 야구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재기에 성공했고 시속 140㎞대의 공으로 메이저리그를 정복하고 있다. 그 비밀은 뭘까. 

우선 건강한 몸이다.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 한화 시절에도 줄곧 어깨에 염증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못 던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수술 후 2년여의 재활기간을 거치면서 프로 입단 때와 비슷한 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공부하는 류현진’도 한몫했다. 선발 등판 이틀 전 건네받은 전력분석표를 완벽하게 숙지한 뒤 경기에 나선다. 지난해까지는 ‘대충 하던 일’이라고 한다. 

다저스가 게시하고 류현진이 공유한 NL 올스타 선발 투수 류현진 이미지

그의 투구는 예측을 벗어난 트위터 제안으로 외교적 성과를 낸 ‘트럼프의 비무장지대(DMZ) 회동’을 연상케 한다. 지금의 메이저리그는 강속구 투수와 이를 받아칠 준비가 돼 있는 타자들의 시대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최첨단 신기술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런 무대에서 투수 중 하위 9% 수준의 구속으로 타자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타자들의 생각의 허를 찌르는 ‘수 싸움’의 결과다. 전력분석가를 통해 타자를 파악한 뒤 5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섞어 던지는 ‘감성투’로 타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결혼과 함께 심리적 안정을 갖게 된 것도 최고 투수로 발돋움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류현진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나선다. 그는 특히 KBO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완성차’다. 한국 야구를 온전하게 대표하는 인물인 것이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오는 10일 미국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다. ‘메이저리그 몬스터’로 거듭난 그가 보여줄 ‘수 싸움’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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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는 1998년 창단했다. 같은 해 창단한 애리조나가 2001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것과 달리 창단 뒤 10년 동안 줄곧 꼴찌였다. 운도 나빴다. 하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는 ‘부자팀’ 소굴이었다.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과 겨뤄야 했다. 162경기 시즌 100패가 거듭됐다. 

한국선수들도 많이 뛰었다. 서재응, 류제국이 모두 탬파베이를 거쳤다. 지금은 최지만이 뛰고 있다.

10년 동안 꼴찌를 하던 팀은 11년째인 2008년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이름을 데블레이스에서 ‘악마’를 뗀 레이스로 바꿨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가 했던 전략이 ‘머니볼’이었다면 탬파베이가 2008년 이후 하고 있는 야구는 ‘데이터볼’이다. 월 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탬파베이의 새 구단주들은 데이터로 무장하고 팀을 변신시켰다. 첫번째 전략은 ‘시프트’였다. 야구장을 잘게 쪼개고, 각 영역에 따른 타구 확률을 계산했다. 내야수들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게 섰고 상대에게 안타를 덜 허용했다.

시프트를 둘러싼 시선은 차가웠다. 많은 이들이 “야구가 120년 넘도록 지금의 수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감각과 인상이 아니라, 숫자로 들여다본 야구는 달랐다. 10년 전 ‘파격’은 지금 ‘일상’이 됐다.

탬파베이의 전통 파괴 실험은 계속되는 중이다. 

지난해 탬파베이는 ‘오프너’라는 파격을 선보였다. 선발 투수가 나와 5이닝 이상 던지고, 나머지를 불펜 투수들이 나와 막는, 전통적 야구와 완전히 달랐다. 탬파베이는 수준급 선발 3명을 빼고, 나머지 2자리에 선발 투수 대신 ‘오프너’라 불리는 투수를 썼다. 선발 투수가 길어야 1~2이닝을 막는다. 때로 마무리가 먼저 나와 1회를 막았다. 어차피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거라면 앞에 3~6개를 확실하게 막는 게 승리 확률을 높인다는 계산이다. 계산은 정확했다. 탬파베이는 90승72패를 거뒀다. 아메리칸리그 15개팀 중 딱 6위여서 5팀이 나가는 가을야구에 못 갔다. 중부지구 1위 클리블랜드와의 승차는 1경기였다.

올해 탬파베이는 또 다른 파격을 선보이는 중이다. 선발 투수 오프너가 아니라 이번에는 타선의 오프너다. 전통적인 타선은 출루율이 높은 1~2번 타자에 장타력을 갖춘 3~4번 타자로 꾸려진다. 1~2번이 출루하면 3~5번 타자가 홈으로 불러들이는 식이다. 4번 타자는 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가 선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3~5번이 할 일을 2~4번으로 당기는 추세다. 강한 타자를 2번에 세워서,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들어서게 한다. 이른바 ‘강한 2번론’이다. 탬파베이는 한 발 더 나갔다. 굳이 2번을 강하게 할 게 아니라 아예 가장 잘 치는 타자를 1번에 세웠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1번 타순의 OPS는 0.758인데, 탬파베이 1번 타자들의 OPS는 무려 1.008이다. 1번 타자가 때린 홈런이 21개로 가장 많다. 탬파베이 4번 타자의 홈런은 겨우 9개다. 4번보다 훨씬 강한 1번 타자를 쓴다. 또 하나의 전통 파괴 혁신이다.

탬파베이의 올 시즌 연봉총액은 630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다. 그런데도 뉴욕 양키스에 이은 지구 2위를 달리고 있다. 아메리칸리그 전체 4위여서 가을야구에 나설 수 있다. 과감하게 전통을 깬 결과다.

KBO리그에서도 벽 하나가 깨졌다. LG 투수 한선태는 25일 SK전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선태는 프로야구 최초로 야구부를 거치지 않은 ‘비선수 출신’ 선수다. 탬파베이의 ‘오프너’는 막힌 길을 뚫었다. LG 한선태도 가로막던 벽을 부순 오프너였다. 벽이 하나 무너질 때 세상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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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다. 나름 어떤 분야를 알고자 하였고 그 앎이 휴대폰 두께 정도는 되어 어느 정도 좋아하고는 있으나 실은 즐긴다는 게 무엇인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니, 이런 내 경우로 보건대 ‘즐긴다’는 경지는 속없이 히히거리는 것은 아닌 듯싶다.

스포츠는 말해 무엇하랴. 국가대표 출신으로 스포츠혁신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영표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즐기다’는 지든 이기든 상관없이 히히거리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영표 자신이 온몸을 던지며 증명하지 않았던가. 은하계 최고 스타 리오넬 메시가 “축구는 직업이 아니라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규칙이 제한하고 상대방이 압박하는 상황에서 어느 순간 저 드높은 초월의 세계로 질주한다.

경쟁과 승패는 스포츠의 본질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단기간에 결판 난다. 그날그날 승패가 분명하기 때문에, 인생 전체에 걸쳐 어떤 결실이 확인되는 다른 사회적 행위에 비하여, 냉혹한 면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즐기란 말인가. 그럼에도 명장들은 즐기라고 한다.

우리 스포츠 역사에서 감독이 ‘즐겨라’라고 지시한 최초의 사례는 2002 한·일 월드컵 때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그는 폴란드전을 앞두고 팀 전체에 “경기를 즐겨라”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후반 막판에 차두리를 투입하면서 “가서 즐겨라”라고 했고, 2012 런던 올림픽 때는 홍명보 감독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충고는 열심히, 그리고 즐기라는 말”이라고 했다.

도대체 즐긴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틀림없는 사실은 이기면 좋고 져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모든 감독과 선수들이 그러했거니와 숨 막히는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관계자와 팬들의 끓어오르는 열정 또한 그러하다. 무엇보다 당장의 경기에서 승패가 확정되고 이로써 이루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현장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단순히 웃고 떠들다가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스포츠는 그 승패의 엄중함에 의하여 존립한다.

그렇다면 일단 그 경기를 준비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지도나 연습을 건성으로 설렁설렁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일반적인 공부도 힘이 들고 몸으로 하는 스포츠는 당연히 더 힘겹다. 회사든 경기장이든, 소풍 가듯이 가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즐겁게?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점이 중요하다.

경쟁 자체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경쟁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 스포츠 문화에서 다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스포츠가 지닌 본질, 즉 경쟁’을 가벼이 여기는 게 아니라 그 ‘경쟁’에 수반되는 온갖 비정상적인 요소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스포츠를 스포츠답게 하는 것은 당연히 경쟁이다. 그 경쟁에 의하여 몸으로 실천하는 종목에 내재된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되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평생의 참다운 관계가 맺어지며 매일같이 승패를 겪으면서 내면세계가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당연히 목표를 설정한다. 인생의 목표는 저 멀리 뿌옇게 존재하지만 스포츠에서 목표는 당연히 내일 경기의 승리가 아닌가. 그 목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갖 비정상성을 없애야 한다.

이미 스포츠 선진국의 오랜 노력은 결실을 보고 있다. 영국은 오랫동안 스포츠 문화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각 스포츠 조직과 지도자, 학부모, 선수들의 제반 교육, 문화, 언어, 관계를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율적으로 변모시켜왔다. 누구나 차별 없이 스포츠 및 신체 활동에 참여하는 가운데 뛰어난 선수가 자연스레 발굴되고 그 선수는 교육 당국과 스포츠 단체의 유기적 협력 속에서 건강하고 활달하게 성장한다.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 영국이 ‘스포츠강국’인 중국이나 러시아를 제치고 2016 리우 올림픽 2위를 거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 수영선수로서 출전하여 두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했던 스즈키 다이치. 그는 현재 일본 스포츠청을 이끌고 있다. 스즈키 장관이 주력한 것 역시 모든 사람이 스포츠와 신체 활동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기반 위에서 지도자와 선수가 신체적으로 안전하고 생활에서도 안정적인 지속 가능한 생태계 조성이었다. 이 기반 위에서 2020 도쿄 올림픽을 위해 선진적인 엘리트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이 또한 ‘과정’이 중요하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시설과 제도의 완비는 물론 무엇보다 교육권이나 문화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혁신하였다. 이는 지도자나 선수가 은퇴한 이후까지 작동한다. 국가가 이른바 ‘국위선양’을 위해 ‘선발’하면, 그 목표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은퇴한 이후에도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럴 때 선수들은 스포츠를 높은 차원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승패가 분명한 스포츠 현실에서, 그것도 승패 여부에 따라 진학이나 고용 여부가 결정되는 우리 현실에서 지도자와 선수들이 스포츠를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발생하였고 또한 오래 누적된 비정상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혁신을 통하여 무엇보다 현장의 지도자들이 예전보다 더 안정된 조건에서, 저마다의 귀한 경험에 첨단 스포츠과학을 접목하여 그야말로 21세기에 태어난 선수들을 즐겁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아름다운 경우를 얼마 전에 우리 모두가 목격하지 않았던가. 한국 축구 U-20 대표팀의 정정용 감독 역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가서, 즐겨라!”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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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스키 1인자였던 미국의 린지 본은 올해 초 은퇴하면서 “그동안 열몇 살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려니 내가 너무 늙은 기분이었다”는 말을 했다. 본은 1984년생, 만으로 34세밖에 되지 않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선 1980년대 후반생이 중고참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 3월 이후 출생한 선수들이 올해 프로에 입단했으므로 1980년대 후반생이 맏형이 되어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어느덧 우리는 2000년대생이 스포츠 무대에서 입신양명하는 시대에 와 있다.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U-20) 월드컵 최우수선수상(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이 2001년생이다.

누구나 ‘요즘 애들’과 세대 차이를 경험하는 순간이 있다. 지난해 출간된 <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대와 소통해야 할 필요가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어린 선수들에게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이끌어내야 하는 스포츠 지도자들이야말로 ‘요즘 애들’과의 소통 기술이 요구되는 사람들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트래킹 데이터 장비로 투구 궤적과 회전율을 파악하고 타구 발사각을 측정해 선수 훈련과 전력 분석 등에 활용하는 게 유행이다. 감독과 코치 대다수는 이런 데이터 없이도 삼진을 잡고 홈런을 쳤던 세대지만 젊은 선수들은 다르다. 이들은 코치의 경험보다 데이터를 더 신뢰한다. 코치가 투구나 타격 메커니즘 등을 지도할 때 자신의 주장을 데이터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선수를 설득하기 어렵다.

류현진의 LA 다저스 동료인 1994년생 선발투수 워커 뷸러도 이런 부류다. 이닝 수와 실점 등 경기 결과보다 데이터상 공의 움직임과 회전율에 일희일비한다. 마운드에서 8실점을 했어도 데이터가 만족스럽다면 “오늘 대단했다”며 좋아한다. 

메이저리그의 어른들은 이런 선수들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애틀랜타의 1952년생 론 워싱턴 코치는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요즘 선수들은 직업윤리라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한탄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1955년생 감독 네드 요스트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는 “예전엔 감독이 호통쳐도 선수들이 다 귓등으로 흘려들었지만 요즘 선수들은 2주일은 침울한 기분으로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우리 때는 데이터 없이도 잘했다’거나 ‘너희들은 너무 유약하다’고 훈계했다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선수들의 신망을 잃고 현장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현실은 그 반대다. 이들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법을 적극 공부하고 선수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U-20 월드컵 대표팀의 성공 비결 중 하나도 소통이다. 정정용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이 전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술 전개와 옵션을 상세히 설명한 ‘마법노트’를 만들어 나눠줬다. 선수들은 이것을 보며 전술을 몸에 익히고 실전에서 활용했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격려했던 정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팀을 뭉치게 했다.

책을 읽어가며 탐구해야 할 정도로 낯선 세대가 스포츠 주역이 되는 시대에 체육 정책과 체육계 어른들이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4일 정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학교 스포츠 정상화 권고안을 발표하자 경기단체 등 현장 체육인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권고안 철회를 촉구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학교 스포츠의 문제점, 인구 감소에 따른 선수 수급의 어려움, 새로운 가치관을 지닌 세대의 등장 등을 고려하면 현행 제도에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무작정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하지만 정부의 방향이 옳다 해도 현장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실행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상호 소통의 기술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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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나빴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나선 한국 대표팀은 예선 첫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패하면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물리쳤으나 본선 진출은 장담할 수 없었다. 3차전 상대는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였다. 이기기 어려울 것 같던 이날 경기에서 대표팀은 승리해 16강에 올랐다. 지난달 31일에 전해진 16강 진출 낭보는 하루 전 발생한 헝가리 다뉴브강의 참사로 슬픔에 잠긴 국민들에겐 더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이강인(가운데) 등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6일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을 마친 후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우치 _ 연합뉴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죽음의 조’에서 벗어난 대표팀은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던 16강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었고,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혈전 끝에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이어 재치가 빛을 발한 에콰도르전을 기어코 승리로 장식하며 남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결승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16일 새벽,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이 열렸다. 대한민국은 대낮처럼 밝았다. 전국의 도심 광장과 주요 월드컵경기장은 ‘붉은 악마’들의 함성으로 뜨거웠다. 전 국민의 43%가 TV 앞에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막말과 망언으로 싸워왔던 정치권마저 하나로 뭉치게 했다. 대표팀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기에 아쉬운 역전패에도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정정용 감독(왼쪽)이 16일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 패한 뒤 이재익을 위로하고 있다. 우치 _ AP연합뉴스

폴란드에서 열린 축구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팀 정정용 감독과 이강인 등 선수들이 17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2017년 5월 출범한 ‘정정용호’를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강인을 제외하면 알 만한 선수도 코치진도 없었다. 그들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선수권, 프랑스 툴롱컵, 미얀마 알파인컵 등을 거치면서 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는 단단한 ‘원팀’(One Team)이 되어갔다. 그리고 월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감동을 국민들에게 선물했다.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과 베스트 골에 빛나는 조영욱과 최준, 선방쇼를 펼친 이광연이라는 스타플레이어도 탄생시켰다. 원팀이 국민에게 준 선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하고 싶어서 하는 청년들의 도전이 가져온 결과다. 그들은 자율 속에서도 규칙과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선수를 위로하고, 동료를 탓하는 대신 다독인다. 좌절하지 않고 두려움을 모르고 끊임없이 승리를 위해 두드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확인한 것이다. ‘멋지게 놀 줄 아는 그들’ 덕에 국민들은 지난 20여일간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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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 김세윤 김정민 김주성 김현우 박지민 박태준 엄원상 오세훈 이강인 이광연 이규혁 이상준 이재익 이지솔 전세진 정호진 조영욱 최민수 최준 황태현 그리고 공오균 김대환 오성환 인창수 정정용. 

그들은 원팀(One Team)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다. 형은 동생을 믿고, 동생은 형을 따른다. 감독은 말한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그림을 그려라. 그리고 즐겨라.” 믿음은 통합과 뒷심을 끌어냈다. ‘흥(興) 축구’는 압박을 잊게 하고, 그라운드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만들어냈다. 폴란드에서 열리고 있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그 무대이다. 원팀은 지더라도(포르투갈 0-1) 좌절하지 않았고, 질 것 같은 경기는 뒤집었으며(세네갈 3-3, 승부차기 3-2), 강팀을 만나도 두려움이 없었고(아르헨티나 2-1, 에콰도르 1-0), 이겨야 할 팀(남아공 1-0, 일본 1-0)에는 어김없이 승리했다. ‘1983년 4강’을 넘어선 사상 첫 남자팀 FIFA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2일 폴란드 루블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 4강전에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사상 첫 결승 진출을 확정한 뒤 정정용 감독에게 물을 뿌리며 기뻐하고 있다. 루블린 _ 연합뉴스

스무살 청년들의 도전이 놀랍다. 그들은 엄격함과 위계질서 속에 축구를 ‘전투’로 여기는 시대에 종언(終焉)을 고했다. 재미로 시작했고, 재기발랄함을 그라운드에 쏟아내는 축구를 한다. 4강전 승리 뒤 라커룸이 감독과 선수들의 막춤으로 뒤엉킨 ‘클럽’이 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율 속에 지키는 규칙은 확실했다. 위기는 잊고, 포기는 더더욱 없었다. 다 진 줄 알았던 세네갈전의 후반 연장 8분의 동점 극장골이 그랬고, 1·2번 키커가 거푸 실축한 승부차기에서 기어코 역전을 이뤄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포르투갈전 패배 때 고개를 숙이는 대신 “졌지만, 경기장 밖에서 응원해준 형들이 고맙다”는 청년들이다. 국민들에게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는 당찬 주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강인·오세훈·최준 등의 골과 절묘한 연결, ‘빛광연’으로 불리는 골키퍼 이광연의 선방쇼로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다. 

원팀의 승리는 ‘막말’과 망언이 난무하는 정치권에 질린 국민들에게 더없는 위로였다.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는 희망을 선물했다. 이제 원팀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하나만 남았다. 우승이다. 최선을 다한 그들이다. 내친김에 우승으로 열매 맺기를 간절히 기대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이미 그들은 자신들과 국민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은 16일 오전 1시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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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이렇게 심장을 쫄깃하게 한 축구 경기는 지금까지 없었다. 36년 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축구대표팀이 멕시코에서 4강 신화를 쏘던 때도 이 정도로 승부가 극적이지는 않았다. 이날 최고의 패배자는 생중계를 보다 승부가 기울었다며 성급히 TV를 끈 시청자였다. 주인공은 당연히 젊은 태극전사들이다. 이강인, 오세훈 등은 더 이상 틀에 짜맞춘 전술로 무장한 ‘한국형’ 전사가 아니었다. 높은 수준의 기술에 창의력까지 장착한 ‘발칙한’ 전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승부의 또 다른 주역은 비디오판독(VAR·Video Assistant Referee)이었다. 

9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한국과 세네갈전의 경기. 연장 전반 조영욱이 역전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VAR은 고비 때마다 승부의 균형추를 바로잡았다. 후반 14분 이지솔이 상대 수비수에게 밀려 넘어진 것을 심판이 VAR로 확인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0여분 뒤에는 반대로 한국 수비수의 핸드볼 반칙을 잡아냈다. 이날 VAR은 모두 7번 가동됐는데, 심판이 손동작으로 사각형을 그리며 VAR을 선언한 뒤 TV 화면에 ‘check / possibly penalty(페널티킥 가능성)’라는 표시가 뜨면 모두가 가슴을 졸여야 했다. 특히 한국이 2 대 1로 뒤지던 후반 막판 세네갈이 골문에 추가로 넣은 골이 VAR로 취소되지 않았다면 승부는 진작 끝났을 것이다. VAR의 역할은 심판 판정을 돕는 데 그치지 않았다. 국제축구평의회는 이번 대회부터 페널티킥 키커가 공을 차기 전 골키퍼의 두 발이 모두 골라인에서 떨어질 경우 반칙으로 규정했는데, VAR은 어김없이 이를 잡아냈다. 후반 29분 이광연 골키퍼가 막은 세네갈 선수의 첫번째 페널티킥과 승부차기 때 오세훈의 첫번째 킥을 막아낸 세네갈 골키퍼의 선방이 모두 반칙으로 선언됐다.

당초 축구계 일각에서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VAR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VAR이 경기의 재미를 줄일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오히려 오심 논란을 잠재우고 ‘축구 정의’를 구현한다고 보는 게 옳다. 이제 축구 경기에 새로운 풍경이 추가됐다. 골을 먹었다고 마냥 실망하거나 반대로 골을 넣었다고 기뻐하기만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VAR로 바로잡아야 할 곳이 어디 축구의 골뿐이랴.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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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항간에 ‘엘리트스포츠 죽이기’란 말이 떠돈다. 오랫동안 묵묵히 스포츠에 헌신해온 지도자들과 빛나는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 주변으로 이런 표현이 실체도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일부 언론도 이런 자극적인 기사를 쓰고 있으니 이는 지도자의 헌신과 선수들의 노력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그 땀방울을 볼모로 폐습을 유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게 한다. 이참에 스포츠혁신이 ‘엘리트 죽이기’인지 다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전제가 필요하다. 부정과 비리, 폭력과 반인권적인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대다수 지도자와 선수들이 언제라도 위험한 상태에 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살리기냐, 죽이기냐’ 이전의 문제다. 이른바 ‘스포츠 강국’이든, ‘스포츠 선진국’이든 이 반인권적인 상황은 어떠한 이유로도 방치될 수 없다. 이 대전제에 동의하지 않고 ‘죽이기’란 말부터 앞세우면 안된다. 다행히 대한체육회와 진천선수촌, 각 시·도연맹이나 종목단체에서도 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 제도 개선을 나름대로 도모하고 있으니, 이 점을 재론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만약 이 대전제를 부정하면서 ‘죽이기’ 같은 원색적인 표현을 쓴다면 이는 건강한 토론이나 미래지향의 동반이 어렵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음으로, 혁신적인 제도나 정책에 의하여 ‘올림픽 세계 10위권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올림픽 10위권 유지’는 중요하다. 10위권을 유지하겠다는 목표 자체가 ‘국가주의’는 아니다. 그 종목에 비범한 능력과 큰 뜻을 품은 선수들을 과학적으로 육성하여 세계 무대에서 아름다운 승리와 벅찬 감동을 자아내는 것은 스포츠의 귀한 가치 중 하나다.

2016리우올림픽의 국가 순위를 살펴보자. 20위권을 보자. 캐나다, 스위스, 덴마크가 보인다. ‘선진국’이면서 ‘강국’이다. 20위권이 무슨 강국이냐고 힐난한다면 10위권 이내를 보자. 미국과 영국이 1, 2위이고 독일, 일본, 프랑스, 호주, 네덜란드가 있다. 그야말로 ‘강국’이면서도 ‘선진국’이다. 대한체육회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바람직한 해외 사례’를 연구할 때 매번 등장한다. 특히 영국은 일찌감치 인권적이고 과학적인 선진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기반 위에서 엘리트를 육성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누르고 2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올림픽 10위권 유지’를 목표로 삼자는 것은 당연히 ‘엘리트 살리기’ 아닌가. 이를 위하여 국가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스포츠계는 이에 적극 동의하여 폐습을 스스로 고쳐야 한다. 그럴 때, 선수의 능력은 더욱 과학적으로 증진될 것이며 지도자의 헌신은 더욱 고결해질 것이며 모든 엘리트의 꿈은 아름답게 실현될 것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당장 2020도쿄올림픽이 1년여로 다가왔다. 그밖에도 여러 국제대회가 쉼 없이 열린다. 헌신적인 지도자와 꿈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대표를 위하여 지속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부분적인 제도 ‘개선’이야 이런 와중에서도 부단하게 추진하는 것이지만 ‘혁신’은 다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그 입법 과정도 혁신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꼼꼼히 추진해야 한다. 방향을 선회하려면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방향 지시등을 정확하고 지속적으로 켜야 한다. 당장의 올림픽 준비에 곤란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포츠계 일각에서 ‘엘리트 죽이기’ 같은 말을 근거 없이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훈련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할 뿐이다. 

세계스포츠는 급변하고 있다. 급변한다는 것은, 직선으로 저만치 앞서가니 우리도 앞뒤 가릴 것 없이 무조건 달려가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런 개발주의 상상력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가기 어렵다. 정치, 경제, 문화, 인종, 젠더, 환경 등의 21세기적 의제들이 스포츠 내부로 들어와 의미 있게 작동한다는 뜻이다. 이 의제들은 ‘만국공통어’의 속성을 지닌 스포츠에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스포츠의 가치, 내용, 형식, 산업 등에 변화를 유발한다. 누구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 의제들을 활발하게 검토하고 있다. IOC로서는 2024파리올림픽에 브레이크댄싱이나 서핑을 포함시키는 것만큼이나 인권, 평화, 젠더 등의 의제가 중요하다. 요컨대 세계사적 변화로부터 스포츠가 고립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국내 엘리트 지도자와 선수들로 하여금 20세기적 스포츠 개념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인권이나 문화의 관점에서 스포츠를 건강하게 혁신하라는 요구이며 동시에 액체처럼 유동하는 지구촌 환경에서 스포츠 종목과 그 산업이 더욱 풍성하게 변화하여 격렬하게 펼쳐질 것이니 선진 시스템으로 준비하라는 요구다. 

우리 사회를 돌아봐도 이는 확인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 안전망은 부실하고 사회 관계망은 해체되고 있다. 고령화 저출산은 1인 가구와 독거노인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노동시간은 멕시코와 더불어 가장 길고 자살률은 10여년간 1위다. 이 상황에서 스포츠는, 특히 인간 감정의 극한과 그 복합성을 깊이 익히고 있는 엘리트 출신들은 극심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증대되고 있는 국민의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재능 기부’가 아니라 스포츠 가치가 사회화되는 것이며 동시에 20세기의 스포츠 개념으로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로 연결된다. 

요컨대 스포츠를 혁신하여 사회를 혁신하는 것은, 고립을 피하여 연대를 구하는 ‘21세기식 국위선양’인 바, 이는 결코 ‘엘리트 죽이기’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지도자와 선수들이 힘차게 흔들 만한 아름다운 깃발, ‘엘리트 살리기’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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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만큼 남녀 구별이 엄격한 직업도 드물다. 남성은 남성들과, 여성은 여성들과 겨뤄야 한다. 남녀 혼합팀을 구성하는 종목이 있지만 이때도 성비를 맞춰야 한다. 동일한 성끼리 겨루도록 하는 게 공정한 경쟁의 장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런 스포츠계에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한몸에 지닌 간성(間性) 선수, 캐스터 세메냐가 등장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중장거리 육상 스타 세메냐는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800m 금메달을 차지하며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 ‘외모가 남자 같다’며 세메냐의 성별에 의문을 제기했다. 검사 결과 세메냐는 간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간성 규모에 대한 추정은 학자마다 다르다. 전체 인구의 1.7%라고 추정한 연구가 있는 반면 0.018%로 추산한 학자도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형태는 다양하다. 외부 생식기관의 모양새는 남성이지만 난소가 있거나, 외형은 여성이지만 잠복 고환을 가지고 있는 식이다. 겉보기엔 여성인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우도 해당된다. 

국제육상연맹(IAAF)은 세메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지나치게 높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능력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IAAF는 세메냐를 겨냥해 ‘정상적인’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혈액 1ℓ당 2나노몰 이하이며, 대회 전 6개월 동안 약물 투약을 통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5나노몰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세메냐와 남아공육상연맹은 이 규정이 차별이라며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지만 지난 1일 재판소는 IAAF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소는 여성 선수들의 통합을 위해 “이런 차별은 필요하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세메냐는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도핑 아닌 도핑을 해야 하는 셈이다. 

타고난 신체 조건이 탁월한 선수들이 있다. 사실 위대한 선수들은 대부분 그렇다. 세계 수영을 제패했던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발목에 관절이 하나 더 있었고 운동 후 젖산 수치가 남들의 절반에 불과해 피로를 덜 느꼈다. 하지만 누구도 펠프스에게 ‘약물을 복용해 젖산 수치를 높여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특이성을 재능으로 여기고 경이롭게 바라봤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모니카 헤스는 “펠프스의 유전적 차이는 찬양하면서 왜 세메냐의 유전적 차이는 처벌하느냐”고 지적했다. 

운동선수의 신체 조건 중 어디까지가 타고난 재능이고 어디부터가 규제해야 하는 속임수일까. 이 경계를 명확히 나눈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IAAF 규정은 낯설고 두려운 소수자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 아닐까. IAAF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규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기 위해 주삿바늘을 꽂든지, 그게 싫으면 선수 생활을 그만두라고 강요하는 일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외관상 남성처럼 보이는 여성 선수를 지목해 성호르몬 검사를 실시하는 게 반인권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유엔인권이사회는 IAAF 규정에 대해 “불필요하고 모욕적이며 유해하다”는 논평을 내놨다. 세계의사회는 약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는 일은 비윤리적이므로 IAAF 규정을 집행하지 말라고 의사들에게 당부했다. 

세메냐는 약물 투약을 거부하고 IAAF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IAAF 규정에 대한 스포츠중재재판소의 결정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전했다. 간성 선수에 대한 논의가 다른 종목으로 조심스레 확산되리라는 전망이다. 현명한 해법이 필요하다. 꿈과 희망, 인간승리의 드라마여야 할 스포츠가 차별과 배제의 가해자가 된다면 선수와 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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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다’라는 표현이 있다. ‘뿌리 뽑히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런 표현이 식물학의 용어만이 아님을 근현대사 100여년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박경리의 &lt;토지&gt;는 구한말의 ‘뿌리 뽑힌’ 사람들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기나긴 장강대하의 첫머리는 1897년 추석이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는 한가위 풍경으로 시작하는데, 말하자면 오랫동안 한마을에 ‘뿌리내리고’ 사는 풍경이다. 

그러다가 나라도 잃고 땅도 잃어 북간도로 이주한다. 그곳에 ‘뿌리내리려’ 하지만 쉽지 않다. 평생 호미 한번 잡은 일 없는 김훈장도 북간도 메마른 땅에 엎드린다. 김훈장을, 음풍농월하는 선비로 내심 타박하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아무리 망국의 유민 신세라 해도, 한 사람 정도는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천 따지’를 해야 사람 사는 형색인데, 김훈장마저 호미를 집었으니 모두가 ‘뿌리 뽑힌’ 신세가 아닌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 등이 산업화 시대의 ‘뿌리 뽑힌’ 사람들을 묘사했음은 이제 교과서에 등재되었을 만큼 ‘역사’가 되었다. 황석영의 &lt;삼포 가는 길&gt;, 그 마지막에 이르러, 기차가 도착했음에도 정씨와 영달이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들은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던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런 풍경은 다 사라졌는가. 글쎄,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불빛들 뒤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온통 원룸이고 고시원이다. 황석영이나 조세희 이후로 그런 소설이 사라질 듯했지만 안타깝게도 박민규와 김애란과 편혜영의 소설들은 이 거대 도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를 다루고 있다. 다달이 ‘500에 30’을 겨우 내면서 뿌리 뽑힌 채 살아가는 삶 말이다. 

박민규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이렇게 썼다. “가족들은 흩어졌다. 부모님은 시골을, 형은 막노동판을, 나는 나대로 친구의 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시원에 가게 된다. 짐을 나르던 친구가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고 속삭이자 주인공은 강렬한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 

그러니까 ‘뿌리’란 관계다. 뿌리내린다는 것은 실핏줄 같은 삶의 관계를 이룬다는 뜻이다. 뿌리가 뽑힌다는 것은 그 관계가 끊어짐을 뜻한다. 답답하거나 속상하거나 외로울 때, 문자 보낼 사람 없고 목소리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 지독한 외로움! 그것이 ‘뿌리 뽑힌’ 삶이다. 

진천선수촌에 가보았다. 선수촌 시설을 둘러보고 신치용 선수촌장을 비롯하여 여러 지도자와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과연 전체적으로 시설은 웅장하였고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사항 또한 섬세하게 잘 구성되어 있었다. 신치용 선수촌장을 비롯한 행정 관계자들의 자상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선수촌장이 동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현실적 고충과 개선 사항을 활달하게 개진하는 모습에서, 예전의 생활 문화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월 초에 취임한 신치용 선수촌장이 예전의 훈육시설과는 달리 선수촌을 좀 더 활기차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하나둘씩 실천되는 양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운동하는 기계’라든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동떨어져서’ 같은 말도 현장을 방문한 혁신위원들이 아니라 선수촌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스스로 토로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가 새로운 문화로 변모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매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근사한 선수 전용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어느 선수가 얘기했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의 국제적인 시설에 매점 하나 없을까 싶고 또 매점이 당장 급한 시설인가도 싶지만, 실은 이 작은 요청 하나가 우리 선수들의 장래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매점이 있다는 것은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매점을 동심원으로 하여 선수촌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흩어졌다가 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매점은, 하루 종일 땀 흘리며 훈련한 지도자와 선수들이 순간적이나마 정겹고 소박하게 ‘관계’를 맺는 공간이 된다.

어디 매점뿐이겠는가. 국가가 이른바 ‘국위선양’을 목표로 각 종목의 가장 우수한 선수들을 한 장소에 모아서 훈련을 시킨다고 했으면 그것은 당연히 그들의 삶의 뿌리가 아름답게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국가의 목표를 위한다고 해서 가족이 있고 생활이 있고 관계가 있는 지도자들의 현재적 삶의 뿌리를 뽑아서는 안된다. 어쩌면 22세기를 볼 수도 있을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뿌리째 흔들어서도 안된다. 외로울 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답답할 때 언제든 부모님을 만나 어리광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종목 선수들이나 다른 분야로 진출한 친구들과도 어울려야 한다. 관계가 곧 뿌리다. 

그러니 혁신이 필요하다. 웅장하고 세련된 시설은 제대로 갖췄다. 이제 첨단의 스포츠 과학으로 선수들을 가르치고 진실로 인간적인 관계로 선수촌 생활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선수촌의 모든 관계자들 또한 그와 같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어느 관계자의 말처럼 지금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미묘한 상황이지만, 지도자의 삶의 뿌리가 유지되고 어린 선수들의 다양한 삶의 관계, 곧 뿌리가 넓게 내려지는, 그야말로 최고 선수들이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폭넓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중 받으며 ‘뿌리내리고’ 살아가게 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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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문체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의 차관 4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차관급 상임위원이 참여한, 그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혁신 의지가 강력하게 실린 위원회다. 여기에 선수 출신을 중심으로 하여 스포츠와 인권 관련 학자와 활동가 등 15인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출범 초기에는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식의 형편없는 마타도어까지 있었는데, 터무니없는 비방은 그 방향이 옳다는 증거라는 니체의 믿음 아래 혁신위는 곧 한국 스포츠의 아름다운 대전환을 위한 각종 권고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자배구 대표 선수로 탈아시아급 ‘거포’로 활약한 후 학자의 길로 들어서서 오랫동안 무명의 여성 선수들을 따스하게 감싸며 길러낸 김화복,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으로 유럽에 진출하여 은하계 최고의 선수들과 용쟁호투를 겨룬 후 유소년 축구의 혁신에 매진하고 있는 이영표, 동계올림픽 모굴스키의 선구자로 선수들의 인권 침해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고 또한 그 개선을 위해 헌신하는 서정화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여기에 프로선수 출신이자 뛰어난 분석과 해설로 잘 알려진, 그러나 실은 ‘공부하는 학생 선수’라는 선진적인 유소년 성장 모델을 일찌감치 실천해온 이용수, 또한 그같은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 이론과 정책을 20년 이상 연구해온 이용식, 류태호, 이대택 등의 참여는, 혁신위가 한국 스포츠의 안과 밖, 그 이론과 현장, 그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가히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갖춘 곳임을 확증한다. 

여기에 스포츠를 인권과 문화의 관점에서 꾸준히 살펴온 전문가 서너 명이 결합했다. 이 또한 오늘날의 스포츠가 지닌 사회적 복합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필수적이다. 더구나 이 혁신위가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이라는, 결코 ‘개인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십년 누적된 폭력 구조의 치명적인 병폐에 의해 출범한 것임을 고려할 때, 지극히 당연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두 달 남짓 활동하는 동안 혁신위의 출범 근거와 그 타당성은 ‘불행하게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폭력 및 성폭력으로 집약되는 스포츠계의 구조적 모순은 흡사 자욱하게 드리워진 미세먼지처럼 복합적인 것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한 혁신은 스포츠계 전체를 관류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대한체육회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여 체육시스템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으로도 확인된다. 대한체육회가 진천선수촌의 안전시설 확충, 훈련관리지침 개선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곧 현실화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국가 차원에서 과감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국가는 수십년 누적된 국가주의와 승리지상주의를 스스로 개선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온갖 부정비리와 끔찍한 인권 유린이 반복되어 왔다. 국가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그래서 때로는 산하기관의 문제인 것처럼 슬쩍 외면해 온 스포츠의 제도, 여건,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 기재부, 교육부, 여가부 등의 차관이 혁신위에 참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체육회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국가가 개입하고 나서는 게 결코 아니다. 대한체육회가 할 일이 있고 국가가 할 일이 있다. 현장의 낙후한 시설과 환경은 대한체육회가 개선하면 된다. 국가는 그보다 더 총체적이며 장기적인 스포츠 정책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모든 정책 진단과 전환은 국가의 의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항간의 ‘이기흥 체제 흔들기’나 ‘엘리트 체육 죽이기’ 같은 말은 듣자마자 귀를 씻을 정도로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악독한 요설이다. 생각해 보라. 국가가 왜 그런 일을 도모할 것이며 더욱이 민간위원들이 왜 그런 험악하면서도 한 줌의 가치도 없는 일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주말도 없이 활동하겠는가. 

혁신위의 목표는 국가에 국가의 의무를 준엄하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누구나 스포츠를 즐겁게 접하여 평생 신체적 즐거움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할 것, 그중 뛰어난 아이들은 인권과 문화와 학습의 결핍이 없는 조건에서 과학적인 시스템과 상호존중의 문화로 길러낼 것, 열심히 훈련하는 바람에 땀방울은 흘릴지언정 뿌리 깊은 폭력의 구조에 의하여 피눈물은 흘리지 않도록 할 것, 수많은 지도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되고 그 처우가 개선되어 스포츠 전문가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으며 살아가게 할 것.

이를 소홀히 하여 숱한 병폐와 비리와 폭력이 발생하였으니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계 전반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통렬하게 재점검하고 장차 ‘스포츠를 통하여’ 한국 사회를 문화적, 사회적, 인간적으로 선진화시켜야 한다. 혁신위는 그런 이유로 출범한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는 아름다운 분야이고 그 지도자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최고 전문가들이다. 이 순간 스포츠는 ‘도구’가 아니라 ‘가치’로 발전하며, 이럴 때 선수와 지도자들은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 진실로 아름다운 사회적 존중까지 받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하여 지금 우리 스포츠계에서 권위와 명망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기꺼이 동의하고 동참해야 한다. 이를 그 무슨 ‘흔들기’나 ‘죽이기’ 같은 고약한 말로 왜곡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수들의 피눈물 위에 앉아서 오랜 구습이 던져준 서푼어치 추악한 권위에 젖어 스스로 혁신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격이니, 그 무엇보다 새로운 스포츠 환경과 더 나은 삶의 안정을 바라는 모든 스포츠인으로부터 반드시 외면받게 될 것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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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름들은 추억과 결부돼 있다. 미국 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이름이 AT&T 파크에서 오라클 파크로 바뀌었다는 기사를 읽고 얼마간 섭섭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AT&T 파크는 직접 가 본 첫 메이저리그 야구장이었다. 그날 샌프란시스코 선발투수는 지금은 은퇴한 맷 케인이었고 상대팀 LA 다저스의 선발은 류현진이었다. 우리 일행은 AT&T 파크 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고,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가 끝난 후엔 도시의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30여분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AT&T 파크는 우리 일행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했다.

이방인인 나조차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니 샌프란시스코 열혈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얼마나 컸을까. 샌프란시스코 구단이 통신업체 AT&T에 구장 명명권을 판매한 것이 2006년이었다.

21일 대전시청 대회의실 스크린에 대전 새 야구장 부지 결과 발표를 알리는 화면이 떠 있다. 대전 _ 연합뉴스

지난해까지 13시즌 동안 샌프란시스코는 세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배리 본즈가 통산 756호 홈런을 치고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31년 만에 갈아치운 곳도 2007년의 AT&T 파크였다.

지난 1월 샌프란시스코는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에 20년간 구장 명명권을 양도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2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 선수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기록과 명장면을 생산할 것이고, 팬들은 저마다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을 새롭게 쌓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AT&T 파크라는 이름이 팬들에게 불러일으킬 기억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야구장 하나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기대와 아쉬움이 공존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7년 폐장된 동대문야구장이 대표적이다. 이 야구장은 1982년 프로야구 역대 첫 개막 경기가 열렸던 곳이고 프로야구 출범 전에는 고교 야구의 메카였던 곳이다. 그 시절 이곳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동대문야구장이라는 이름은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는 특별한 힘을 갖는다. 2013년까지 프로야구 KIA의 홈구장이었던 광주 무등구장, 지난해부터 ‘이승엽 야구장’으로 불리는 대구 시민운동장 야구장도 그렇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최근 개장한 ‘창원NC파크 마산구장’의 명칭 논란은 안타깝다. 야구장을 뜻하는 영어 ‘파크’ 뒤에 또 ‘구장’이 붙은, ‘역전 앞’처럼 문법적으로도 어색한 이름이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부터 떠올리게 만들어서다.

창원시는 새 구장 명칭을 둘러싼 이견을 조율하고자 명칭선정위원회를 발족해 ‘창원NC파크’로 최종 결론을 도출했다. 하지만 창원시의회는 명칭을 ‘창원NC파크 마산구장’으로 변경한 조례 개정안을 처리하며 위원회 논의 결과를 헌신짝처럼 폐기했다.

마산은 2010년 창원에 통합돼 창원시 2개구의 이름에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NC의 과거 홈구장인 마산구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구 마산지역 정치인들이 새 구장 명칭에 ‘마산구장’을 넣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마산의 이름을 야구장 간판에 박제하고 이를 의정활동보고서에 한 줄 넣어야 구 마산지역 유권자들의 향수와 감정을 자극하고 표심을 잡는 데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 구장의 이름은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숟가락을 얹기 위해 언성을 높이고 핏대를 세우는 투쟁의 장이 돼 버렸다.

창원이 야구장 이름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 사이 대전의 신축 야구장 부지가 결정됐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대전 역시 부지가 결정되기까지 만만찮은 과정을 겪었다. 구의회 의원들이 야구장 유치를 위해 삭발했고, 구청장 비서실장이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 야구장은 새로운 간판을 달고 첫 경기를 치르기까지 어떤 기억을 대전시민들에게 남기게 될까. 창원의 선례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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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전성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1936년부터 1964년까지 29시즌 동안 월드시리즈에 22번 올랐고 16번 우승했다. 1940년대 양키스 감독이었던 조 매카시의 별명은 ‘테일 건’이었다. 비행기 뒤에 달린 기관총이다. 1970년대 양키스를 우승으로 이끈 빌리 마틴 감독의 별명은 ‘히틀러’다. 그 시절 야구 감독은 ‘권위’의 화신이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9년 연속 재팬시리즈를 우승했다. 2차대전 패전국 일본의 전후 부흥시기와 맞아떨어지며 요미우리는 ‘국민 구단’으로 떠올랐다. 그때 감독이 가와카미 데쓰하루였다. 일본 프로야구 첫번째 ‘제왕적 감독’이자 ‘관리야구’의 시초였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다. 보안을 이유로 취재를 제한했고, 선수들의 집에 전화를 걸어 귀가시간을 확인했다. 뭘 하고 있는지는 물론 뭘 먹고 있는지도 감시했다.

관리야구는 한국야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엄한 표정과 카리스마로 스타 선수들을 장악할 수 있어야 팀워크가 유지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는 신화였다. ‘자율야구’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은 1994년 LG 트윈스의 우승 때였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야구를 보고 돌아온 이광환 감독은 관리 대신 선수들의 자율에 방점을 찍었다. 이 감독의 ‘파이브 스타 시스템’은 매 경기 감독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선수 기용이 아니라 정해진 틀 속에서 선수들이 자기 역할을 맡아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그해 신인 3인방(유지현, 서용빈, 김재현)이 펄펄 날 수 있었던 것은 관리가 아니라 자율 덕분이었다. LG는 ‘신바람 야구’ 열풍과 함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5년 전의 일이다.

새해 들어 쇼트트랙 심석희의 용기 있는 ‘미투’로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혔다. 전근대적인 합숙훈련이 문제의 이유로 지적됐다. 스포츠계는 반발했다. 합숙훈련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단체경기만이 아니라 개인경기도 합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경쟁함으로써 자극이 되고 이를 통해 실력이 는다는 논리였다.

논리는 빈약하고 근거는 부족하다. 합숙의 효과는 경기력 향상이 아니라 감시를 통한 권위의 확립, 유지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빌리지 않더라도 합숙은 통제를 낳고, 통제는 감시와 자기 검열로 이어진다. 지켜보는 이와 감시받는 이의 위계는 엄격하다.

지난달 말, 쇼트트랙의 김건우는 동료 김예진에게 감기약을 전해주려 여자 선수 숙소에 들어갔다가 3개월 퇴촌, 국가대표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훈련 관리지침’ 21조 일반수칙 1항 6 ‘남·여 지도자 및 선수는 남자 또는 여자 전용 숙소에 출입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 성폭력 예방을 넘어 오래된 관리와 통제의 냄새가 짙다. 1항 5는 ‘촌 내에서는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착용을 원칙으로 하며, 생활 질서를 해치는 언행과 복장은 허용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심지어 관리지침 8조 2항 1은 국가대표 선수의 임무로 ‘촌 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을 규정했다. 이번 시즌 월드컵 금3, 은2을 딴 김건우와 전국동계체전 금3을 딴 김예진은 이번 징계로 대표선발전에도 못 나간다.

엘리트 스포츠 스타들의 경기력은 과학적 트레이닝 방식의 발전으로 임계점에 다다랐다. 한계를 넘게 하는 것은 통제를 통한 집중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을 통한 창의적 접근이다. 수영 박태환과 피겨 김연아는 되레 ‘선수촌’으로 상징되는 합숙과 통제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다. LPGA 무대를 주름잡는 한국 여자 골퍼들이 단체 합숙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부디, 효율을 핑계로 관리와 통제를 통해 제 권위를 지키려는 ‘꼰대’ 짓은 그만하자.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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