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스포츠와 세상'에 해당되는 글 266건

  1. 2020.03.31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총선에서 홀대받는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
  2. 2020.03.31 [여적]크리스마스 ‘가을야구’
  3. 2020.03.05 [기자칼럼]테러·지진…야구는 힘이 된다
  4. 2020.03.03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코로나가 물러간 이후의 스포츠
  5. 2020.02.25 [기자칼럼]일상의 쳇바퀴가 멈췄을 때
  6. 2020.02.04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계 혁신, 이제 공은 문체부로
  7. 2020.01.14 [기자칼럼]구설수는 드라마로 충분
  8. 2020.01.0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답이 있다는 ‘현장’은 어디인가?
  9. 2019.12.19 [기자칼럼]삭발 야구? 세리머니 야구!
  10. 2019.12.10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선수 혐오와 차별, 유럽 축구장뿐일까
  11. 2019.12.03 [기자칼럼]약은 약사, 야구는 야구인에게
  12. 2019.11.19 [정운찬 칼럼]데칼코마니 같은 류현진과 린드블럼
  13. 2019.11.12 [정윤수의 오프사이드]한국 체육 빛낸 100인…‘기승전스타’를 넘어
  14. 2019.11.07 [기자칼럼]데이비드 로스 효과
  15. 2019.10.17 [여적]기괴한 축구
  16. 2019.10.15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모든 사람’을 위한 스포츠기본법
  17. 2019.09.30 [여적]행복 바이러스 류현진
  18. 2019.09.17 [정윤수의 오프사이드]대한체육회의 시간
  19. 2019.09.05 [사설]군국주의 상징 ‘욱일기’로 올림픽을 휘젓게 하겠다니
  20. 2019.08.20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올림픽, 보이콧보다 참여와 개입이 바람직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아메리카>에서, 강인한 신체에 몰두하는 미국 사회의 욕망을 읽었다. 이유 없이 뛰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프랑스의 사상가가 보기에 ‘뉴욕 마라톤은 물신주의적이며 공허한 승리의 망상’이었다. 레이건의 애국주의가 지배하던 때였다. 그래서 보드리야르는 ‘나는 해냈다’고 외치는 1만여명의 마라토너에게서 강력한 물신주의를, 그리고 피트니스센터에서 뛰는 사람들에게서 ‘창백한 고독’을 읽었다.

글쎄, 우연히도 나는 1995년 11월, 센트럴파크에 있었다. 뉴욕 마라톤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회가 시작된 지 예닐곱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가 본 주자들은 매우 느린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노인도 있었고 휠체어 장애인도 있었고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의 환한 표정에서 ‘물신주의’나 ‘고독’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센트럴파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우린 할 수 있다’는 캠페인도 한편 압도적인 미국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시민들의 소박한 성취에 보내는 따스한 찬사로 들렸다.

한 개인의 신체 활동은 스스로의 건강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집합적 사회 행위다. 특히 큰 사태를 겪고 나면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는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 미국 사회에서 ‘강인한 신체 신드롬’이 크게 유행했듯이, 사태의 한복판에 뚫고 나온 자신의 몸,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된 자신의 육체, 마침내 신선한 공기 속으로 걸어가게 된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사람들은 더욱 사랑하게 된다. 

우리의 경험으로는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가 그 증거다. 조직은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공포스럽게 경험한 이후 사람들은 마라톤을 하게 되었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평의 험준한 대부산에서 유명산으로 달렸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아마도, 현재 우리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대로, 5월이면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짓눌렸던 몸과 마음의 긴장을 털어내기 위해 야외 활동을 많이 할 것이다. 그때, 5월의 따스한 봄바람을 즐기며 걷거나 달릴 때, 더불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게 있다. 한 개인의 건강한 신체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 전체가 건강한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미증유의 혼란 속에서도 비교적 차분히 소박한 일상을 견지하면서 나름대로 우애를 나누고 있다. 사태의 종식 이후, 우리가 더욱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연대다.

그것의 실질적인 구현에 있어 스포츠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신체를 보다 더 건강하게 단련하면서 미증유의 사태를 벗어났다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 전체가 그러한 마음 상태를 온전히 공유해야 한다. 아픈 사람, 약한 사람, 뒤처진 사람을 서로 돌보고 배려하는 사회 관계망의 재구성! 바로 그 소중한 일상성의 회복에 스포츠는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전국에 수많은 인프라가 있고 스포츠 전문가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가치를 국가 정책을 통해 구현하겠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1대 총선에 임하는 주요 정당의 정책을 보면, 스포츠 정책은 대부분 후순위로 밀려 있고 그것도 오래된 자료집에서 슬쩍 표지갈이만 한 듯 천편일률적이다. 스포츠계의 숙원 사업인가 봤더니 실은 지역 건설 사업에 가까운 것인가 하면 아예 스포츠 정책 자체가 포함되지 않은 정당도 있다. 후보들 중에서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와 미래적 가치를 표명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물론 현실 여건에서 스포츠가 국가 정책의 앞에 있기는 어렵다. 보다 더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경제, 노동, 복지 등이 우선 중요하다. 거꾸로 말하면, 스포츠는 아직 보편의 의제가 아니며 어떤 점에서는 특정 직능 분야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와 그 아름다운 영향력이 공기처럼 퍼질 텐데, 그에 대한 관점이나 정책이 태부족한 상황, 그것이 안타깝다. 

아직은 한가로운 소리지만, 대규모 전염병에 대비하여 사전에 방역체계를 구축했듯이, 코로나19 이후의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한 삶을 위해 스포츠와 사회를 다양하게 재구성하고 연결하는 체계를 상상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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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팬은 봄부터 ‘가을야구’를 기다린다. 가을야구는 6개월간의 정규시즌 경기에서 상위권에 든 팀들이 한 해의 챔피언을 다투는 포스트시즌 경기들을 칭한다. 보통은 10월에 열리는데 경기가 치열해지면 11월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프로야구가 성행하는 한국·미국·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11월12일이 역대 가장 늦게 끝난 날로 기록돼 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문에 프로야구 일정이 밀린 2018년 일이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로 일시 중단을 겪은 2001년 챔피언결정전(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11월4일에 끝난 게 메이저리그 100여년 역사상 첫 11월 가을야구였다.

‘가을의 클래식’ ‘가을의 전설’로도 불리는 가을야구가 올해는 크리스마스에 열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스포츠가 중단된 와중에도 재개 방안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메이저리그 쪽에서 나온 얘기다. 슈퍼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공식 제출한 의견이라 하니 우스갯소리로 취급되진 않을 것이다. 6월1일 또는 7월1일 정규시즌 개막, 12월에 포스트시즌을 시작하고 최고 흥행 이벤트인 월드시리즈를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개최하자는 게 보라스의 제안이다. 한겨울 추위 우려에 대해 “미국 내 8개 돔구장과 따뜻한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열면 된다”고 그럴싸한 대안까지 내놓았다. 류현진이 속한 토론토 구단의 로스 앳킨스 단장은 최대한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7이닝 더블헤더(연속 경기)’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보탰다. 국내에서도 야구가 겨울까지 이어진다면 고척돔에서 한국시리즈 전 경기를 치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크리스마스까지 경기가 이어지면 내년 시즌은 언제부터 시작하느냐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발상을 바꾸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 야구는 9회까지 한다, 가을야구는 가을에 한다, 홈팀·원정팀 경기장에서 번갈아 치러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다. 2020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고, 내년 여름 개최가 여의치 않으면 봄에 열릴 판이다. ‘가을야구’라 해서 크리스마스에 열리지 말란 법도 없다. 위기 때는 상식과 관행을 뛰어넘는 게 필요하다. ‘징글벨’과 함께하는 야구, 어쩌면 대박이 터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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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단장들이 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KBO회관에서 긴급실행위원회를 열고 코로나19 예방 관련 정규리그 운영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참석하지 못한 일부 단장들은 화상을 통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2001년 9월11일, 여객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했다.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는 “맨해튼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고 9·11 직후 분위기를 떠올렸다. 미국 내 모든 것이 멈췄다. 야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양키스 선수들은 야구장 대신 제이콥 컨벤션 센터를 찾았다. 피해복구 자원봉사자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곳이었다. 조 토레 감독은 “우리가 여기에 오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야구하는 사람들일 뿐인데”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양키스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모여 들었다. 사인 요청 사진 속 실종자들은 양키스타디움에 있거나, 양키스 모자를 쓰고 있었다. 토레 감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야구였다.

야구는 테러 7일 뒤 다시 시작했다. 뉴욕에서의 첫 경기는 테러 10일 뒤 뉴욕 메츠가 먼저였다. 주전 포수 피아자는 그 경기에서 홈런을 때렸다. 양키스는 이기고 또 이겼다. 그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오클랜드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 테러 현장에서 몸 바쳐 애쓴 소방관들이 시구를 했다. 양키스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승 116승을 거둔 시애틀도 꺾었다. 월드시리즈 7차전 승부 끝 애리조나에 졌지만, 5차전에서 나온 지터의 끝내기 홈런은 뉴욕 팬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2013년 4월15일, 마라톤대회 결승점에서 폭발물 2개가 터졌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 마라톤을 향한 테러였다. 3명이 사망했고, 260여명이 다쳤다. 

야구는 계속됐다. 테러범 체포 이후 첫 홈경기였던 4월20일, 보스턴 레드삭스 주장 데이비드 오티스가 마운드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 지금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레드삭스가 아니라, ‘보스턴’이다. XX, 우리가 XX 사랑하는 도시 말이다. 누구도 우리의 자유를 위협할 수 없다. 우리는 강하다.”

테러 다음날 3루수 윌 미들브룩은 트위터에 “우리 보스턴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겠다”며 #BostonStrong을 붙였다. 이는 시즌 내내 팀과 도시의 상징이 됐다. 전년도 꼴찌로 추락했던 보스턴은 하나로 뭉쳤고 진짜로 강해져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오티스의 월드시리즈 타율은 거짓말 같은 0.686이었다.

2013년 11월3일, 저팬시리즈 7차전 9회초 마운드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올랐다. 전날 6차전에서 160개를 던진 라쿠텐의 에이스였다. 다나카가 요미우리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순간 선수도 팬들도 모두 눈물범벅이 됐다. 라쿠텐은 2011년 닥친 동일본 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역 센다이를 연고로 하는 팀이었다. 창단 뒤 첫 우승이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대지진으로 고난을 당한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지난 3년간을 싸워왔다.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3·11 지진 3년 뒤 11·3 우승이었다.

야구는, 스포츠는 힘이 된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시즌이 시작되면 삼성 라이온즈의 #힘내자_대구 #힘내자_경북은 진짜 힘이 될 수 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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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코로나19’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이렇게 갑자기 반전한다. 오랑시에 갑자기 들이닥친 페스트. 초기에는 다소 주춤하여 도시는 “저녁마다 변함없이 인파로 가득 찼고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갑자기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이 도착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위기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도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고 있다. 시즌 막바지의 혈전이 벌어져야 할 경기장도 텅 비었다. 아니, 물론 그곳이 직장이요 삶의 터전인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그들의 요람이자 무덤을 지키고는 있다. 겨울 시즌 경기들이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중이다. 

누구는 조금 고약한 말도 한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해보니 이제야 관중 귀한 줄 알 거라는 핀잔 말이다. 그런 면도 있다. 관중을 ‘소비자’로만 인식하고 그런 관점에서만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온 폐단이 있다. 몇몇 선수들은 팬들의 성원을 귀찮아하는 듯한 인상마저 남기기도 했다. 함께 스포츠문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여전히 빈곤하다. 그러나 지금의 무관중 경기에서 굳이 그러한 허점을 뾰족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많은 선수와 팬들이 서로를 갈망하고 있다. 비록 지켜보는 관중은 없지만, 환호하는 팬들은 없지만 선수들은 뛰고 달린다. 현장에 가질 못하고 집에서 관전하는, ‘집관’하는 팬들은 선수들을 성원하기 위해 구단 홈페이지를 수시로 찾는다. 이렇게 지금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부재 속에서, 확인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페스트> 상태의 오랑 시민들은 아닌 것이다. 카뮈는 이렇게 썼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연애의 능력과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물론 우리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3월14일로 예정된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1983년 이래 처음으로 모조리 취소되었다. 3월28일로 예정된 개막 경기도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프로축구는 2월29일로 예정되었던 K리그1 개막 경기를 연기했다. 언제 개막전을 치를지도 미지수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 시즌 전체 일정을 다시 짜야 한다. 프로당구협회(PBA)도 3월 초의 PBA-LPBA 파이널 대회를 연기하기로 했다. 

이러한 비상한 상황은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태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일종의 낙관을 품은 방관은 실질을 호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lt;페스트&gt;의 구절처럼, 팬과 선수들이, 부재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절실히 확인하는 이 상황에서, 각 종목의 협회와 구단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번에 확실히 익혀야 한다. 위기대응의 원칙과 그에 따른 상호 간의 태도와 이로써 새롭게 규정되는 매뉴얼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모든 말과 교섭과 결정은 반드시 문서로 기록되어야 한다. 

스포츠는 몸과 몸이 경합하는 세계다. 이때 선수들의 보건안전을 어떻게 구비할 것인지, 다시 말해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실제로 몸을 쓰는 선수들, 땀 흘리고 소리치는 선수들의 경기 중 안전과 일상 속 보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이번 기회에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다시 <페스트>를 보면, 카뮈는, 시민들이 사태 이전과 비교해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여준다. 단지 상황이 호전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새롭게 결속되는 것을! 페스트에 맞서 싸우던 타루는 의사 리외에게 말한다. “페스트만 겪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바보 같군요. 물론 사람이란 희생자들을 위해서 투쟁해야죠. 하지만 더 이상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뭐하러 하는 겁니까?” 그러면서 제안한다. “해수욕을 하러 갑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해안가로 간다. 

우리에게도 곧 그날이 올 것이다. 우리 모두의 필사적인 연대와 노력으로 ‘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이고, 그러면, 새봄이다. 그때 무엇을 하겠는가. 당장 경기장으로 달려가자. 마스크만 끼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너무 바보 같지 않은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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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나들이객들이 오갔을 일요일 한낮 덕수궁 돌담길에 인적이 드물었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로에도 차가 별로 없어 퇴근 시간이 15분 가까이 단축됐다. 코로나19의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도시의 풍경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사람들의 일상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났다.

스포츠도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정규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프로배구는 순위싸움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교통 접근성이 좋은 서울 장충체육관의 경우에는 평일에도 좌석이 매진된 것은 물론이고 입석 관중이 수백명에 달할 정도로 팬들의 발길이 잦았다. 그러나 프로배구는 25일부터 무기한 무관중 경기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보다 앞서 관중을 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여자프로농구의 선례를 따른 것이다. 시즌 개막을 앞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개막 일정 조정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오는 7월 개막하는 2020 도쿄 올림픽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지난 14일 열었던 기자회견에서 나온 기자들의 질문은 모두 올림픽 개최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IOC와 조직위는 “대안은 없다”며 취소나 연기 없이 예정대로 올림픽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정상 개최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외신 보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올림픽이 취소된 건 전시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올림픽 출전 선수 1만1000여명, 패럴림픽 출전 선수 5000여명이 결전의 날을 기다리며 땀흘리고 있다. 스포츠에서 시즌은 매년 돌아오는 것이고 올림픽 역시 4년마다 돌아오는, 불변하는 약속이었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또박또박 훈련하고 경기장에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란 사실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쉼없이 돌아가던 쳇바퀴가 멈추고 일상에 균열이 생기면 그 빈틈 사이로 새로운 갈등이 비집고 올라온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국과 일본, 중국의 스포츠를 강타하기에 앞서 미국 프로야구는 불신이라는 재앙에 맞닥뜨렸다. 메이저리그 휴스턴의 조직적인 사인 훔치기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한다’는 명제는 스포츠를 성립하게 만드는 토대다. 그러나 휴스턴은 사인 훔치기를 통해 상대 선수들을 기만했고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까지 차지했다. 선수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명제가 배반당한 상황에서 이제 어떤 선수가 휴스턴을 떳떳한 경쟁 상대로 인정하려 할까.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이달 중순 스프링 캠프에 소집된 후 휴스턴에 대해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면서 겨우내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불신과 갈등은 이제 공공연해졌다. 휴스턴의 형식적 사과는 다른 구단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선수들은 휴스턴 선수들을 징계하지 않은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를 향해서도 거침없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2020시즌이 약속대로 돌아오고 있지만 선수들은 예전과 같을 수 없다. 바이러스를 진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메이저리그의 일상도 당장 복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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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혁신위의 시간’이 끝났다. 지난해 초, 우리 사회를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스포츠계 성폭력 사건 이후 이를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발족된 스포츠혁신위원회 활동이 7차례의 권고와 각 권고의 제도적 이행을 확실히 점검하고 마무리되었다.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스포츠기본법 추진, ‘학생 선수’를 포함한 엘리트체육 문화 혁신,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다양한 제도 권고 등은 향후 한국 스포츠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부터는 ‘문체부의 시간’이다. 장기적으로는 스포츠계 전체가 실질적인 주체이지만, 현재로서는 혁신위의 권고에 따른 법적이고 제도적인 정비 및 인력, 재정, 문화 등에 대한 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할 단계이고, 이는 당연히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적 의무에 해당한다. 그래서, 어떤 권한의 측면이 아니라 의무의 차원에서 ‘문체부의 시간’이라고 한 것이다.

물론 각 권고를 제도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스포츠계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설득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력이나 재원에 관련해서는 관계 부처 및 국회와의 밀도 있는 공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기는 해도 대통령의 명에 따라 장관이 직접 스포츠계 혁신을 천명하고 차관이 공식 회의에 대부분 참여하여 결정한 7차례의 권고는, 그저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문이 아니라, 스포츠인의 인권 향상과 국민의 활기찬 삶을 위한 국가적 결정 사항이다. 따라서 사안에 따른 완급과 경중은 있을 수 있어도 장기적인 유보나 변형은 있을 수 없다. 속도는 조절할 수 있지만 방향은 흔들려서는 안된다.

혁신위의 공식적인 권고안과는 무관하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권고’하고 싶은 게 있다. 

무엇보다 스포츠계의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 이로써 스포츠가 ‘사회 속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이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는 현재의 참여 구성원 구조, 장기적인 인구학적 재생산 구조, 해당 분야와 다른 분야의 결합 구조 등을 면밀히 분석한다. 아니, 동네에 치킨집 하나 개업하려 해도 유동 인구며 그 나이와 성별을 다 살펴본다. 그런데 스포츠계는 사회 전반의 구조 변화 및 문화적 감수성의 변화와 유리된 채 좁디좁은 칸막이 안에 폐쇄적으로 웅크리고 있다.

이 칸막이를 해체해야 한다. 지금처럼 스포츠계가 장벽을 치고 칸막이를 쳐서 스스로 협소하고 폐쇄적인 ‘이익집단’처럼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스포츠 산업, 과학, 운영, 교육, 국제 관계 등에 지금보다 더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스포츠인들이 각 분야의 세상 속으로 늠름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존중받아야 하고 그렇게 사회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30, 40대 젊은 스포츠 지도자들을 선진적인 관점에서 양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 세대는 20세기 스포츠의 막차를 타고 각 종목에서 성취를 이룬 세대이자 동시에 21세기의 선진적인 스포츠 문화를 경험한 첫 세대다. 해외 진출이나 지도자 유학 또는 단기적인 해외 대회 참가 등을 통해 이른바 ‘스포츠 선진국’에서 스포츠인들이 어떻게 성장하여 그 지역 사회에서 존중받는 직업인으로 살아가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세대다. 

이 젊은 지도자들에게, 혁신위의 권고대로,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계 조건을 마련해주고 이들이 선진적인 스포츠 교육과 문화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우리의 스포츠 문화를 저변에서부터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제 외교, 분쟁, 환경, 성, 과학, 도시 재생 등 스포츠가 세상 속에서 수많은 가치들과 결합하고 이로써 더 많은 산업과 직업으로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첫 세대가 되어야 한다. 

끝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이른바 ‘체육계 현장’이라고 해서 기존의 ‘칸막이’에 따라 견고하게 조직되어 과잉 대표되는 목소리만 들을 게 아니라 그 바깥으로 밀려난 지도자들, 방치된 선수들, 위계질서의 밑바닥에 있는 학생 선수와 학부모들, 이 ‘수많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다. ‘혁신위의 시간’은 그것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문체부의 시간’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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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 구단의 비시즌 풍경을 다룬 작품이다. 1~2회에서 스타 선수 임동규와 신임 단장 백승수의 기싸움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임동규는 자신의 실력과 인기, 입지를 과신해 분란을 일으키다가 백 단장 손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는 운명에 처한다. 임동규처럼 ‘인성 논란’에 휩싸일 법한 프로야구 선수가 현실에도 있을까. 안타깝게도 있다.

‘프로야구의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까지의 공백기’라는 뜻을 담은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탄탄한 연출과 연기, 실감나는 이야기로 ‘야구팬’과 ‘드라마팬’을 사로잡으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SBS 제공

프로야구계에선 새해 벽두부터 폭행 사건이 잇따랐다. NC 2군 코치 ㄱ씨는 신고를 받고 자택으로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ㄱ코치의 부인이 ㄱ코치가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앞서 LG 현역 선수 ㄴ씨는 여자친구와 다투다가 이를 말리던 시민을 폭행해 형사 입건됐다.

폭력, 도박, 성범죄 등 프로야구 관계자의 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를 예방하고 처벌하기 위한 제재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 일반 폭력 사건은 유죄 확정 시 형사처벌 수위에 따라 정규시즌 30경기 이상 출장정지 및 제재금 500만원의 징계를 내린다. 성폭력에 대해선 제명이나 1년 이상의 실격, 72경기 이상 출장정지, 1000만원 이상 제재금 등 더 무거운 징계를 부과한다.

KBO 상벌위원회의 징계와 별도로 구단 차원에서 발빠르게 ‘손절’하기도 한다. 가령 지난해 LG는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된 선수를 임의탈퇴 처분했고 SK도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선수를 임의탈퇴하도록 했다. 범죄 이력이 있는 선수를 끌어안고 가면서 여론의 비난을 감당하기보다 인연을 끊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징계를 받거나 선수 생명이 끝났던 선례가 선수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형법이 범죄를 100% 예방하지 못하듯 제재 규정이 있어도 일부 선수들은 엇나간 행동을 한다. 야구 선수가 스포츠 기사가 아닌 사회 기사를 장식할 때마다 언론에선 제재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처벌 강화도 강화지만 제재만으로는 문제를 뿌리 뽑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야구를 넘어 모든 스포츠의 엘리트 선수 육성 과정을 재검토하고 유소년 단계에서부터 교육을 통해 사회성과 도덕성을 갖춘 인간으로 키워내야 한다. 지난한 과제다.

프로야구팀에 입단하는 것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지난해 8월 열린 2020년도 신인 드래프트 결과를 보면 1078명의 드래프트 신청자 중 9.28%(100명)만이 프로팀에 지명됐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가 모두 프로에서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11명의 동기들 가운데 1군 주전 선수로 자리 잡는 것은 일반적으로 1~2명 정도다. 대부분 소리소문 없이 팀에서 방출돼 다른 생업을 찾아나선다. 이 적은 확률을 통과해 프로에 자리매김한 선수들의 경력이 예기치 못한 일탈 때문에 단절되는 건 본인과 구단, 팬들에게도 손실이다. 팬들이 스토브리그에 보고 싶은 건 선수들의 이적과 계약, 구단들의 전력 구상 등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뉴스들이지 형사 입건 소식이 아니다. 선수를 둘러싼 구설수는 드라마에서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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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장에 답이 있다.’ 자주 쓰이는 말이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맞이하는 중에, 불가피하게 일종의 연말결산 같은 몇 군데의 공적 회의에 참가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모든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네댓 번 들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 그런데 그 ‘현장’은 어디인가?

우선 문자 그대로 ‘물리적 현장’이 있다.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현장 말이다. 공연장이라면 무대의 음향이나 조명 시설에서부터 관람객의 동선에 따른 주차장이나 객석 의자를 점검할 수 있다. 스포츠의 경우에는 운동장이나 훈련장의 시설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행위 패턴을 분석할 수 있다. 이로써 노후 장비를 보수하거나 교체하고 이용자들의 불편 사항을 개선할 수 있으며 더 적극적으로는 첨단 시설이나 장비를 확충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봐서 이러한 물리적 환경에 있어 한국의 스포츠는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다. 엘리트 선수들이 올림픽 등 세계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진천선수촌의 훈련 시설 및 숙소나 식당 등 비훈련 시설은 국제적인 수준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각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 시설 역시 당장 전국 대회를 치러도 될 만큼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스포츠 현장’은 문제가 없는가.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장’이란 물리적 환경만이 아니라 ‘관계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 ‘현장’과 연관된 사람들이 어떠한 조건에서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 점이 중요하다. 조건이란 제도적이고 법률적인 계약 및 고용뿐만 아니라 해당 업무의 권한과 책임까지를 두루 망라한다. 이른바 스포츠 ‘현장’에서 이 부분은 여전히 취약하고 불안하다. 최고 수준의 엘리트 영역에서 학교 체육과 생활 체육에 이르기까지, 그 ‘현장’의 지도자들은 여타의 사회 고용 관계에 비춰볼 때 비합리적인 계약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에 놓여 있다. 대체 불가능한 ‘전문직’임에도 말이다. 이 불안정성에 의하여 ‘관계의 현장’에서 종종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 

대개의 지도자들은 당장의 경기 결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본인은 물론 선수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무한 책임을 진다. ‘아버지’ 역할 내지는 ‘형님 리더십’을 요구받는다. 대개의 지도자들은 개인적인 희생까지 감수한다. 취약한 여건에서, 이는 의연한 선택이며 아름다운 희생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 수준과 사회적 성숙 그리고 무엇보다 스포츠 그 자체의 국제적인 성취에 비춰볼 때 지도자가 무한 책임을 지는 ‘관계의 현장’은 개선되어야 한다. 

이런 ‘현장’에서는 일부 지도자의 ‘형님 리더십’이 자칫 과도하게 발현될 수 있다. 권한 밖의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극히 일부의 고약한 범법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취약한 ‘관계의 현장’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니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할 때, 당연하게도 그 ‘답’은 물리적인 시설이 아니라 지도자와 선수들의 생존 조건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식의 현장’이 있다. 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현장’은 달리 없다. 그 분야에서 주력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집합적인 인식’이 그 분야의 문화와 행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현장’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인식을 집합적으로 공유했기 때문에 자칫 이 ‘인식의 현장’은 하나의 견고한 흐름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요구를 배척하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 그러니 이 ‘인식의 현장’의 긍정적인 면을 유지하되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의 인식과 새로운 문화를 과감히 접목하여 개선해 가야 한다.

대한민국 스포츠 정책의 총괄적인 집행자이자 책임자로 최윤희 문체부 제2차관이 임명되었다. 최 차관은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현장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감을 피력한 바 있다.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본 것이다. 문체부 제2차관은 엘리트 체육 육성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건강한 삶과 문화를 책임지는 자리다. 따라서 이 ‘현장’은 물리적 공간이나 특정 직업군이 아니라 국민 생활 전체와 넓은 의미의 스포츠 관계자 모두를 위한 더 복합적이며 미래적인 ‘현장’이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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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니까 6년 전의 일이다. 한화는 한국시리즈 우승 10회에 빛나는 김응용 감독을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기대가 컸지만 앞선 겨울 에이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한화의 출발은 썩 좋지 않았다. 4월의 날씨는 25도를 오르내리며 초여름을 방불케 했지만 한화 더그아웃은 냉기가 가득했다. 시즌 시작 뒤 연패가 9개까지 쌓였다. 개막 후 10번째 경기를 앞두고 야구장에 나타난 선수들의 머리는 봄볕 속에 더욱 새파랗게 빛났다. ‘삭발’이었다. 외야수 정현석은 아예 눈썹까지 박박 밀었다. 의지와 각오를 잔뜩 드러냈지만, 야구는, 세상의 모든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의지와 각오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연패가 끊어진 것은 4패나 더 이어진 뒤였다.

13연패를 끊던 날, 김응용 감독은 감독 통산 1477승째를 따냈다. 천 번이 넘는 승리와 그만큼의 패배를 당한 노장도 지독한 연패 탈출을 기뻐하는 팬들의 환호 속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감독은 “눈물이 아니었다”고 짐짓 무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오늘 경기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한화의 한 팬은 울먹이며 외쳤다. “매일 져도 계속 응원할 거예요.”

연패 탈출은 ‘삭발’의 힘이었을까. 스포츠심리학자들은 ‘삭발 효과’를 두고 “팀 응집력이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단체경기의 중요한 경기력 요소 중 하나다. 일반 사회조직에도 적용된다. 응집력(cohesion)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특정 목표를 향해 팀이 뭉치는 ‘과제 응집력’과 선수단 내부의 관계를 강화하는 ‘사회 응집력’이다. 삭발은 후자인 사회 응집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스포츠심리학의 여러 연구들은 구미권 스포츠와 동아시아 스포츠의 응집력 차이가 뚜렷함을 드러낸다. 구미권 스포츠는 과제 응집력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동아시아 스포츠, 특히 한국 스포츠는 사회 응집력이 뚜렷하다. ‘우승을 위해 나아가자’는 메시지보다 ‘함께 죽자’는 메시지가 더 강한 힘을 얻는 방식이다. 경기에서 지면 더 강한 단체훈련을 하고, 함께 삭발을 하며 스스로를 괴롭힘으로써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강화해 왔다.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10월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후 셀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선수단 제공

2019년의 야구는 조금 달랐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은 우승 확정 순간 주장 오재원을 중심으로 마운드에 모였다. 휴대전화를 들고 ‘셀카’를 찍었다. 한국시리즈 내내 이어진 ‘셀카 세리머니’의 완성판이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훈련 중 젊은 선수들로부터 ‘세리머니’를 공모했다. 한 손을 뻗어 셀카를 찍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셀카 세리머니’가 당첨됐다. 시리즈를 치르는 동안 안타를 때리고, 타점을 올리면 더그아웃을 향해 ‘셀카 포즈’를 취했다.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같은 포즈로 화답했다. 정규시즌에도 세리머니는 화제였고, 힘을 냈다. LG는 두 손을 흔드는 ‘안녕 세리머니’를 했고, 키움은 이니셜 K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는 ‘K 세리머니’를 했다.

‘세리머니’는 사회 응집력보다는 과제 응집력을 강화시킨다. ‘우리는 하나’에 앞서 팀의 목표를 구체화한다. 팀 승리와 연결되는 안타와 타점 등이 세리머니로 연결된다. 세리머니를 연습하고, 머리에 그림으로써 해당 타석에서의 목표가 더욱 구체화되는 효과를 얻는다. 2019 한국 프로야구는 ‘세리머니의 야구’였다.

어쩌면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삭발 야구’에서 ‘세리머니 야구’로의 변화다. 시대가 바뀌었고, 함께 고생함으로써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하는 ‘삭발의 시대’ ‘극기훈련의 시대’는 2010년대와 함께 끝났다. 2020년대는 팀과 조직의 구체적 목표를 확인하고 이를 하나 된 동작으로 체현함으로써 응집력을 강화시키는 ‘세리머니의 시대’다. 그러니까, 정치에서도 ‘삭발’이라든가, ‘차라리 다 함께 죽자’는 막연한 구호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변했음을 야구가 보여줬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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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시, 유럽의 축구장이 인종차별로 혼란스럽다. 수년 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축구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행위를 근절하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이 끔찍한 악행이 근절될 수 없는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지난 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프레드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연거푸 모욕을 당했다. 코너킥을 차려는 그에게 맨시티 팬은 원숭이 소리를 내며 조롱했고 어디선가 라이터까지 날아왔다. 성난 얼굴을 한 동료 린가드가 프레드는 감싸안으며 위로했지만 프레드의 고통은 단지 라이터에 맞은 외상만은 아니었다. 안정을 되찾은 프레드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어두운 면이 있다. 지금은 2019년이다. 피부색, 머리카락,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호소했다. 프레드를 모욕한 남성은 경찰 조사를 받았고 맨시티는 “우리 홈구장 출입을 영원히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상대팀 감독인 과르디올라도 경기 후 프레드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위로했다. 

이러한 일들이 맨시티 구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0월21일, 맨유가 리버풀을 상대로 벌인 홈경기 도중 맨유 팬이 리버풀 수비수 알렉산더 아널드를 향해 거친 욕설과 인종차별 폭언을 자행했다가 즉시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시즌권 소유자인 이 남성은 맨유의 즉각적인 조치에 의해 영구적으로 올드 트래퍼드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9월에는 웨스트햄 팬이 홈구장 출입 금지령을 받았고 애스턴 빌라 등 많은 구단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레드가 또다시 역겨운 말과 추악한 행동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발롱도르(유럽남자축구선수상) 3회 수상에 빛나는 네덜란드 축구의 ‘레전드’ 마르코 반 바스텐은 생방송 도중 과거 히틀러 나치 시대의 악명 높은 구호 ‘지크 하일(Sieg Heil)’을 외쳐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난 11월23일, 네덜란드 축구팀 헤라클래스를 이끄는 독일인 감독과의 인터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론 그가 축구장 안팎에서 보여준 오랜 활동으로 보건대 ‘나치 추종자’라 볼 만한 여지는 적다. 본인도 네덜란드인 리포터의 어색한 독일어 발음을 놀리기 위해서 그 표현을 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네덜란드 선수들은 축구장에서의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킥오프 후 1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이었다. 온라인 축구게임사 EA에서는 ‘피파 20’에서 반 바스텐을 삭제하기로 결정했고 폭스스포츠도 1주일간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 10월 하순, 잉글랜드 프리미어 사무국은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교육, 단속, 조사 등의 프로그램까지 가동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마스터는 “우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설 자리는 없다”고 공언했으나, 현실은 오히려 가중되는 양상이다. 

11월4일, 손흥민이 에버턴의 미드필더 고메스를 저지하려다 불상사가 벌어진 바로 그 경기에서도 에버턴의 관중이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벌였다. 구단은 “그런 행동은 우리 경기장, 우리 클럽, 지역사회 또는 우리 경기 안에 있을 수 없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새겨진 공인구를 향해 그들은 차별의 언어를 쏟아내고 혐오의 행동을 벌였다. 축구를 모욕하고 선수와 팬들을 모욕하고 자기 자신마저 쓰레기통에 처박는 행동이다.

최근 이런 일이 급증한 것은 유럽 전역에 반난민과 반유럽연합 역풍이 불어닥친 결과로 보인다. 브렉시트 혼란 속에서 지역주의를 우선시하고 있는 잉글랜드나 극우정당동맹이 득세한 이탈리아에서 이 같은 일이 연거푸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된다. 그러나 단언컨대, 브렉시트 혼란에 빠진 모든 잉글랜드 사람이, 극우정당에 가입한 모든 팬들이 다 라이터를 던지고 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회적 원인을 별도로 하고, 그 행위자는 가려내서 처벌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그와 같은 인종차별 행동이 벌어지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현상적으로는, 우리의 여러 경기장에서 유럽과 같은 인종차별이 확연히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이 밀집하는 유럽의 경기장과 우리의 현황을 기계적으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본질은 ‘혐오와 차별’이고 나라마다 그것이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지금 바로 당장 인터넷의 스포츠 뉴스 댓글들을 보라. 그야말로 ‘댓망진창’이다. 한 해 농사가 끝난 프로야구를 시작으로 얼마 전 숨 막히는 시즌이 마무리된 프로축구까지, 그리고 겨울 시즌의 배구와 농구 등 거의 모든 종목에 걸쳐 단순한 비아냥을 넘는 인격 모독이 벌어진다. 중국이나 일본의 팬과 선수들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써서는 안될 모욕적인 언사가 난무한다.

팬들의 발언이 즉발적이라면 그 종목에 관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랜 위계질서에 따른 폭력적 발언이나 차별의 시선이 구조적으로 드리워져 있다. 생중계 와중에도 거친 말을 하는 감독이 있을 정도이니 일반 팬도 거의 없는 유소년 경기에서는 말해 무엇하랴. 여기에는 단순히 감독과 선수 혹은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만 있는 게 아니다. 체육계열 학과에서 ‘여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 및 혐오와 배제 또한 심각하다. 방송 중계에서 ‘용병’이란 말이 사라지고 ‘외국인 선수’라는 말로 ‘순화’되었다 해서 우리의 스포츠에서 혐오와 차별이 줄고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용병’이란 말도 일부 중계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듯하니, 씁쓸하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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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국가 대항전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것은 역시 한·일전이다.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를 취재하던 기자들의 주요 관심사도 누가 일본전 선발투수로 등판하느냐였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보안상의 이유로 일본전 선발을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기자들은 공 잘 던지기로 이름난 투수들을 유력 후보로 꼽아가며 추리에 열을 올렸다. 대회가 하루하루 진행되던 어느날 문득 한 투수가 홀연히 기자들 사이에서 일본전 선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누가 봐도 뜻밖이었던 스무 살의 신예였다.

혹시나 했던 일은 일어났다.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해 여유가 생긴 대표팀이 일본전 선발로 이 젊은 투수를 낙점한 것이다. 베테랑 투수가 등판할 것이라 추측했던 한국 기자들과 일본 대표팀의 허를 찌른,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기자들만 깜깜이였을 뿐 코칭스태프는 계획이 다 있었다. 대회가 개막하기 전에 경기 운영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고 남은 경기에 이 투수를 쓰겠다는 밑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기자들이 감독의 용병술이나 작전 등 경기 운영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시시콜콜 비판 기사를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현장의 야구인들은 외부인들이 알 수 없는 정보를 손에 쥐고 외부인들은 생각지도 못한 수 싸움을 한다. 더그아웃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면서 감독에게 섣불리 훈수 두는 것은 실체 없는 허깨비와 씨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지난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야구를 잘 모르는 국회의원 손혜원이 노련한 야구인 선동열을 야구 문제를 두고 질타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수의 병역 특례가 발단이 된 이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은 국가대표 선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우승이 어려운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는다”는 모욕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병역 특례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에 편승했던 손혜원은 자신이 ‘야알못(아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증명했을 뿐, 경솔한 언행으로 결국 역풍을 맞았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이 국감에 불려나간 이 초유의 사태는 야구인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는 프리미어12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도 부지불식간 작용했다. 행여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철저히 기록 위주로 선수를 선발했다.

그러나 야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에겐 기록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장점은 통계에 오롯이 담기지 않는다. 수비할 때 첫발을 내딛는 방향과 반응 속도, 상대 투수의 버릇을 읽어 2루를 훔치는 눈썰미, 큰 경기일수록 배짱이 두둑해지는 투수의 담력을 숫자는 표현하지 못한다. 기록만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려고 하면 오히려 이모저모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수를 배제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국방부는 지난달 21일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가대표 선발의 구체적 기준·과정 및 관련 자료를 대외에 공개하는 등 공정성·투명성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야구도 이 방침을 따르게 될 것이다. 도쿄 올림픽 대표팀 선발의 첫 번째 원칙은 물론 성적이다. 같은 성적이면 병역 미필자를 뽑았던 관행도 국민 정서에 비춰보면 반성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손혜원 프레임’에 갇혀 쓸모 있는 선수를 발탁하지 못하는 것도 전력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표팀 구성은 불가능하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문가의 시야로, 공정하면서도 소신 있게 선수를 선발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야구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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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물감을 바른 뒤 두 겹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그 위에 두고 눌렀다 떼어내는 방식의 미술 기법을 ‘데칼코마니’라고 한다. 올 시즌 미국과 한국 프로야구에서 데칼코마니 한 듯 각각 닮은꼴 활약을 펼친 두 ‘외국인’ 투수가 있다. LA 다저스의 류현진과 두산 베어스의 조쉬 린드블럼이 그 주인공이다. 1987년생 동갑내기로 각각 MLB와 KBO리그 최고 수준의 성적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두 선수는 MLB, KBO 올스타전 선발 등판과, MLB 사이영상(Cy Young Award) 후보, KBO MVP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평행이론을 펼치며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류현진은 올 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전에서 커쇼를 대신하여 선발로 나선 이후 29경기에 등판해 14승5패에 평균자책점(ERA) 2.32를 기록, 아시아 투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ERA 1위에 올랐다. 특히 5월12일에는 2019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8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전반기 17경기 10승2패 ERA 1.73, 99탈삼진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동양인 2번째이자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2013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82.2이닝을 소화한 류현진은 체력에 대한 우려도 말끔히 씻어냈다. 최근에는 한국인 최초로 뉴욕 메츠의 디그롬, 워싱턴 내셔널스의 셔저와 함께 미국야구기자협회가 발표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최종 후보 3인에 들어갔다.

KBO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평가받았던 더스틴 니퍼트를 이어 슈퍼 에이스 역할을 해내고 있는 두산 린드블럼은 올 시즌 30경기에 등판해 20승을 거두면서 다승, 승률, 탈삼진 부문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ERA도 선두를 달리다 시즌 막바지 2위로 밀린 점을 고려하면 니퍼트도 못한 투수 부문 4관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음에 틀림없다. 또한 그는 1999년 현대 정민태 이후 20년 만에 KBO리그 개막 후 7월까지 16승 이상을 올리는 대기록을 달성했으며 8월18일 잠실에서는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롯데 주형광이 세웠던 15연승을 제치고 홈경기 최다 연승 신기록(16승)을 세웠다.

오늘이 있기까지 두 선수는 야구로 많은 것들을 극복했다. 

2006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번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류현진은 데뷔 첫해부터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며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을 거두며 2012년까지 통산 98승으로 시즌을 마감한 뒤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처음 2년간 28승15패, ERA 3.17을 기록하며 활약했던 류현진에게 팬들의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그는 2015년과 2016년 두 번의 어깨 수술로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나 재활 기간 새로운 구종을 연마하고 제구력을 키우며 성장했다. 

2008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린드블럼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 여러 구단을 거친 후 2015년 롯데자이언츠 외국인 투수로 한국 팬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적 첫 시즌 210이닝으로 KBO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린드블럼은 2016년 시즌 종료 후 아픈 딸을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복귀했다가 2017년 중반 다시 롯데로 돌아왔다. 2015~2017 3년간 74경기에 등판해 28승을 올렸다. 2018년부터는 두산으로 둥지를 옮겨 니퍼트가 떠난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며 리그 유일한 2점대 ERA로 외국인 최초로 최동원상을 수상하고 팀의 2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과 2019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두 선수의 마운드 밖 생활도 화제다. 지난 5월 ‘크랙 캔서 챌린지’(Crack cancer challenge, 소아암 돕기 행사)에 참여한 류현진의 소식이 전해졌다. 린드블럼 또한 2011년 10월 아내와 함께 ‘린드블럼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선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스포츠에는 국경이 없어지고 있다. 글로벌화에 따라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영입에 적극 참여하면서 자국 선수들의 해외 이적도 증가했다. 그들은 타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수한 기록을 쌓으며 리그의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스포츠 문화를 전파하고 국가 브랜드의 위상을 제고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메릴 켈리는 프로 지명을 받은 2010년부터 4년간 마이너리그에서만 뛰었지만, SK와이번스로 이적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119경기에 등판해 48승을 올렸다. 또 2017년 탈삼진 189개로 1위, 2018 한국시리즈 우승 등 KBO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재도전에 성공했다. 2015년 KBO MVP였던 NC 다이노스의 에릭 테임즈도 2014년부터 3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2015년에는 타율(0.381), 득점(130), 2루타(42), 장타율(0.790) 부문에서 1위를 석권하고 2017년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로 유턴, 31홈런으로 활약했다. 또한 미국 복귀 이후 뛰어난 가창력을 겨루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실이 MLB.com에 소개되며 한국과 미국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3년 연속 20홈런을 달성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와 탬파베이 레이스의 최지만도 풀타임 선전하며 한국 야구를 빛내고 있다. 

데칼코마니는 우연하고 다양한 효과들을 끌어낸다. 스포츠 국제 교류에 대한 기대가 바로 이 데칼코마니 같다. MLB 구단 스카우트들이 KBO 구장을 방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올해 7월9일 등판을 마치고 다음날 SNS에 올린 글에서 자신과는 직접 인연이 없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선발 등판을 응원하기도 했다. 닮은꼴 활약을 펼치는 류현진, 린드블럼은 물론 추신수, 최지만, 켈리, 테임즈 등과 같이 앞으로 더 많은 선수들이 긍정적 교류를 통해 한·미 양국 리그에 모범이 될 족적을 남기고 야구라는 공통분모의 경기적, 문화적 동반성장을 이끌어내길 기대해본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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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봤다.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게 된 ‘유산슬’ 유재석씨가 ‘합정역 5번 출구’를 녹음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 ‘업계’의 고수들, 이른바 ‘세션맨’들이 거의 ‘원샷 원킬’로 연주하는 모습은 흐뭇했다. 과연 ‘인생도처 유상수’라, 세상의 모든 분야에는 마땅히 고개를 숙일 만한 고수들이 있다고 했던가. 한편 예능 프로라서 맘껏 웃기도 했지만 또한 그 고수들이 살아냈을 세월을 짐작하니 조금은 숙연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어느 분야든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어디 음악계만 그러하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일하는 분야에서는 그와 같은 고수들, 장인들, 누군가를 빛내는 세션의 자리, 묵묵히 그 분야를 오랫동안 떠받치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머리’로 일하는 사람들은, 뭐라도 조금 틀리거나 어긋나면 대체로 다시 쓰거나 말로 하면 그만이지만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정교하게, 그야말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일한다. 그래야 전후가 맞아 주춧돌이 놓이고 좌우가 맞아 대들보가 올라간다. 

스포츠계 역시 두말할 것도 없다. 물론 ‘머리’도 쓰는 스포츠지만 그 일의 수행 과정 전체는 기본적으로 ‘몸’이 작동한다. 그 몸의 세계에 수많은 사람들이 활동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활동하여 스타 선수를 건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움직여 스타 감독을 지켜낸다. 결국 스타 선수와 감독이 더 많은 빛을 받고 그에 따라 더 많은 명예와 부를 획득하지만, 그 영광 뒤에 수많은 ‘세션맨’들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최근 소식을 들어보니,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축구협회와 재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꽤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코칭스태프’에 대한 조건도 흡족하게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무려 4개월 동안 진행된 협상 과정에서 미확인 루머와 비난도 없지 않았는데, 박항서 감독은 자신과 함께 활동해왔고 또 앞으로 활동하게 될 코칭스태프의 대우까지 꼼꼼히 챙겼다고 하니 스포츠에서 말하는 ‘원 팀’은 바로 이런 결의에서부터 시작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 개인의 덕목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서, 스포츠계 전체가 ‘모두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대한체육회가 역점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국 체육을 빛낸 100인’이 있다. 2020년 7월이면 대한체육회 창립 100주년이 된다. 이를 기념하여 근현대 체육의 역사를 빛낸 100인을 다양한 방식으로 선정하는 사업이다. 탁월한 경기력을 보인 선수들, 헌신적이고 창의적인 결실을 맺은 지도자와 심판들, 행정·외교·홍보·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100인을 엄선한다. 

과거에도 일부 단체나 언론에서 이러한 선정 작업이 있었으나 어떤 경우는 ‘인기 투표’에 가까웠고, 또 어떤 경우는 그 ‘업계의 영향력’에 따른 것이라서 객관성이나 엄밀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무엇보다 스포츠의 특성상 ‘도전과 영광’이라는 스토리텔링이 압도하기 마련인데, 이 점을 지나치게 중시하게 되면, ‘도전’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탈하였거나 그 트랙을 거부한 사람들은 삭제하게 되고 심지어는 ‘영광’의 과정에 묵묵히 조력한 사람마저 망각해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각 시대의 대중적 스타를 나열하는 방식이 되곤 하였는데, 이번의 대한체육회 선정 작업은, 그 분야를 다양하게 나누고, 그 선정 과정을 단계별로 수렴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보다 다양하고 보다 깊이 있는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그 흔한 이벤트나 인기 투표가 아니라 ‘창립100주년 기념사업’ 아닌가. 

누군가를 선정하는 것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선정(동시에 배제) 작업에는 지난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관점이 개입하기 마련이고 그 관점에는 또한 복잡한 문화정치적 시선이 작동하기 마련이다. 이 시선들이 ‘순수’라는 이름 아래 은폐되기보다는 오히려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2021년 개관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국립체육박물관’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문체부가 국민체육공단을 통하여 현 서울올림픽기념관 인근에 건립 중인 ‘국립체육박물관’은 총 사업비 300억원가량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스포츠역사관, 스포츠유물전시관, 스포츠체험관 등이 들어서는 이 박물관은 애초 2019년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여러 이유로 연기되어 현재는 2022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릉선수촌 내 ‘한국체육박물관’이 있으나 예산 등의 이유로 1명의 학예사가 일하는 정도이고, 심지어 국민에게 개방되는 박물관임에도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휴관’하는 형편이라서, 장차 신설될 ‘국립’ 박물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중요한 것은 그 전시의 철학과 방향이다. 개별 단체나 개인의 사설 박물관이 아니고 모름지기 ‘국립’으로 짓고 운영하는 ‘박물관’이니만치 ‘기승전영광’의 도식적인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훨씬 더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역사를 반듯하게 솔질하게 되면 무심코 생략하거나 일부러 은폐해버리는 사건과 인물과 사태들이 발생하게 된다. 더욱이 어느 분야든 ‘국립’이란 이름의 ‘박물관’은 특정 기관의 홍보 공간이 아니다. 수집하고 연구하고 전시하고 사회화하는 공간이다. 

인간의 ‘몸’이 다양하게 작동하는 스포츠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스포츠 100년 역사는 반드시 영광만 있었던 것이 아니며 스타만 존재했던 게 아니다. 특정한 사건을 역사적·정치적·문화적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판별할 수도 있어야 한다.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역사를 거슬러 솔질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몸’으로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복원할 수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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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큰돈을 들여 비싼 선수를 데려오는 게 ‘왕도’에 가깝지만, 비싼 선수들 모아놓는다고 우승할 수 없다는 걸, 미국과 한국의 많은 팀이 스스로 증명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야구는 물론, 우리들이 살아가는 거의 모든 곳에서 ‘진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구슬을 꿰는 ‘실’은 어디에 있을까. 누가 어떻게 꿰어야 할까. ‘팀워크’라는 건 진짜 있는 걸까.

매년 MIT에서는 ‘슬로언 스포츠 분석 콘퍼런스’라는 회의가 열린다. 2017년 슬로언 콘퍼런스에서 독특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인디애나대학 켈리경영학스쿨 교수와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연구원 둘이 함께 연구했다.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 한 명이 팀에 어떤 긍정적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각 개인의 야구실력을 합한 데이터는 그 팀 성적에 20%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계산됐다. 오히려 ‘팀워크’라고 불리는 일종의 ‘분위기’가 팀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의 계산에 따르면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 한 명이 팀에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는 약 44% 수준으로 팀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이 이 연구 결과에 붙인 이름은 바로 ‘데이비드 로스 효과’. 줄여서 ‘로스 이펙트(Ross Effect)’라고 부른다.

데이비드 로스는 빅리그 통산 15시즌을 뛰었지만 통산 타율 겨우 0.229, 연평균 홈런 약 7개로 별 볼 일 없는 타자다. 그나마 포지션이 포수니까 15시즌을 버텼는데, 그마저도 주전이 아니라 ‘백업포수’였다. 100경기 넘게 뛴 시즌이 딱 한 번. 신시내티에서는 브론슨 아로요, 보스턴에서는 존 레스터의 전담포수였다. 시카고 컵스가 레스터와 FA 계약을 할 때 전담포수 로스도 함께 데려갔다. 로스의 커리어 최고 연봉은 31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 400만달러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별 볼 일 없는, 연봉 적은 베테랑 백업포수다.

‘로스 이펙트’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다. 미국 버펄로대학의 케이트 베즈루코바와 체스터 스펠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팀 조직력’을 살피는 연구를 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메이저리그 팀들을 분석해 ‘인싸’와 ‘아싸’로 나눴고, 그 사이의 ‘단층선’을 구별했다. 주전과 후보, 연봉, 나이, 국적, 언어의 차이 등이 메이저리그 팀 내 ‘장벽’인 단층선이다. 단층선의 구조와 범위, 강도 등을 구분하고 팀 성적을 계산한 결과 ‘갈등관리 실패’는 플러스·마이너스 3승, 즉 6승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계산됐다.

그런데 이 연구에 따르면 팀 조직력은 단층선이 거의 없는,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이 모였을 때 오히려 떨어졌다. 단층선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도 이들 단층선의 사이를 오가며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주는 ‘중간자’의 존재가 팀 조직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게 바로 ‘로스 이펙트’의 비밀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뚜렷한 단층선은 연봉과 인종, 언어의 벽이다. 고액 연봉과 저연봉이 갈리고 백인과 히스패닉이 갈라진다. 일반적으로 ‘백인=베테랑=고연봉’이 한 축을 이루고 ‘히스패닉=신참=저연봉’이 한 축을 이룬다. 이 단층선의 양쪽을 아우르는 선수가 팀을 단단하게 만든다. 로스는 나이 많은 베테랑 백인 선수지만, 연봉이 적은 백업포수다. 로스와 반대로 비슷한 선수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카를로스 벨트란이다. 은퇴 시즌, 마흔살 때 연봉이 1600만달러였던 성공한 히스패닉 선수. ‘로스 이펙트’와 마찬가지로 ‘벨트란 이펙트’가 존재했다. 이들은 팀 내 ‘인싸’와 ‘아싸’를 모두 아우를 수 있었다.

로스는 2016년 시카고 컵스를, 벨트란은 2017년 휴스턴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2019시즌이 끝나고 로스는 컵스의 감독이, 벨트란은 뉴욕 메츠의 새 감독이 됐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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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관중석 앞에서 열린 기이한 경기(미국 워싱턴포스트)”, ‘가장 비밀스러운 월드컵 예선 경기’로 “중계방송도, 팬도, 외신도, 그리고 골도 없었다(영국 데일리메일)”, ‘기괴한 경기’였으며 “경기 결과는 부차적이었다”(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에 대한 외신들의 표현이다. 29년 만의 축구대표팀 평양 원정 경기가 평창 동계올림픽 때처럼 남북 평화의 물꼬를 틀기를 기대한 것과 너무나 딴판이다.

남과 북, 0-0 비긴 뒤 악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 선수들(흰 유니폼)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무관중 경기로 열린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상대 선수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한축구연맹 제공

남측 중계진의 방북을 불허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날 평양 경기 장면은 상상 이상으로 썰렁했다. 경기 전날 4만명 관중이 구경할 것이라는 북한 측의 귀띔도 지켜지지 않았다. 상대팀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무중계·무관중 경기를 하면서 일방적으로 자기팀만 응원하기가 멋쩍었던 것일까?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몇 마디 육성과 함께 트위터로 전한, 남북 선수들이 승강이하는 모습은 차라리 정겹게 느껴졌다.

운동 경기는 원래 몰래 하는 법이 없다. 관중은 경기의 흥미를 더 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에는 무관중 경기가 낯설지 않다. 2005년 3월 김일성경기장에서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과의 경기 중 북한 선수가 퇴장당하자 관중이 항의하며 이란 선수들을 위협했다. 이로 북한은 ‘무관중 경기’ 징계를 받아 홈에서 할 예정이던 일본과의 경기를 제3국인 방콕에서 치렀다. 

축구 경기 열기가 갈수록 뜨겁다. 월드컵이나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등 국가대항전은 가히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축구에 평화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평양 경기가 열린 15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은 요르단강 서안 알람에서 팔레스타인과 원정경기를 치렀다. 사우디가 이곳에서 경기를 한 것은 처음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는 것을 기피해 팔레스타인과 제3국에서 경기를 치러왔다. 전날 사우디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동예루살렘도 방문했다. 아랍국가들의 대이스라엘 정책이 변하고 있다는 증좌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린 ‘평양 무관중’ 축구가 더욱 아쉽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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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가 시행된다.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은, 국가의 막대한 지원과 일정한 통제 아래 발전해왔고, 특히 각 지자체의 산하에 편재되어 어렵사리 버텨왔다. 이제 겸직 금지로 인하여 그 ‘지원’과 ‘육성’이 축소되거나 최소한 다른 형태로 급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의 핵심은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이고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스포츠기본법’의 제정이다. 그동안 한국의 체육정책은 ‘국민체육진흥법’에 근거하여 왔다. 1962년 제정된 ‘체육진흥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민체육진흥법’은 1982년에, 88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전면 개정을 하였고 그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일부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고 이 법을 모법으로 하여 새로운 경향이나 산업을 반영하는 하위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한 세대 전에 제정된 이 법의 목적과 정의는 그 이후 급변한 국내외 스포츠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법 1조의 ‘목적’에 표현되고 있는 단어들, 예컨대 ‘체력 증진, 건전한 정신, 명랑한 생활, 국위선양’ 등은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던 무렵에 통용되던 발전주의 국가론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는 바,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적, 문화적, 정서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 법의 2조에 명시된 ‘체육, 전문체육, 생활체육, 선수’ 등의 개념 정의 또한 오늘날 현대 스포츠의 다양성과 시민 저마다의 문화적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양상의 스포츠 경향들, 그와 관련된 선수와 팬과 미디어와 시설과 예산 등은 이 법의 바깥에서 배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37년 전의 법 목적과 정의에 따른 제3조, 즉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진흥 육성 정책도 구조적인 문제를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을 틀어쥐고 있고 대한체육회와 각 산하 단체와 협회와 지도자들은 그 사슬의 각 위계 단위에 놓여 있어 자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로써 권력과 체육의 복잡한 밀월관계가 형성되고, 하루아침에도 적과 동지가 뒤바뀌는 위계질서의 맨 아래에서는 폭력과 비리가 안개처럼 번져 있게 된 것이다. 당장 석 달 후부터 시행되는 겸직 금지 조치가 그나마 이 오랜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뜻밖의 단초가 되고 있어, 이에 ‘스포츠기본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기본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최근 몇 해 사이에는 구체적인 법령의 초안까지 제시되었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에서도 지난 9월 발표한 자체 혁신안에 기본법 제정을 중요하게 담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문광위의 일부 의원들도 이에 대한 의견과 방향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체육계의 현안들이 대개 ‘갈등적’이고 ‘대립적’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당장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미래가 걸린 ‘스포츠기본법’은 얼핏 보기에 ‘대동소이’한 관점을 가진 듯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연구기관의 보고서나 일부 국회의원들이 마련한 초안을 보면 ‘스포츠기본법’이라는 새 용어를 썼으되 여전히 ‘국민’의 ‘체육’을 ‘진흥’하는 것에 집중된, 지극히 체육 내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다. 사회 전반의 역동적인 변화와 국제적인 스포츠 문화 환경의 급변, 이에 따른 젊은 세대의 문화적 욕망과 바로 그 세대 문화에서 성장한 젊은 선수들의 내면을 반영하지 못하였다. 아니, 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혀 없는 제안도 더러 있다. 그저 활기찬 신체 활동을 위해 ‘체육인’이 기능적으로 탑재되는 진흥책에 머물고 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20세기 중엽의 체육 개념에 근거한 인간 신체에 대한 일방적 기준, 그에 따른 체육의 기능적 효과와 수단, 이를 증진하기 위한 물리적 진흥 제안이 여전하다. 물리적 진흥, 이 길로 계속 가면 또다시 정부 지원에 종속되어 한 줌의 자생력도 남지 않게 된다. 

‘스포츠기본법’에서 ‘기본’은 체육정책을 ‘진흥’하기 위한 기본이 아니라, 인간이 누려야 할 사회적, 문화적 권리라는 가치 측면에서 ‘기본’이다. 이 개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기본’에 따르면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존엄성 증진, 각종 차별 금지와 혐오 배제, 모든 생명의 존중과 그에 기반한 모든 사람의 여러 신체적 조건에 대한 가치와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특정하게 이념화된 ‘국민’이 아니라 보편 인권 차원의 ‘모든 사람’이 이 법에 해당되며 바로 그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환경과 조건에서 차별 없이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로써 개인의 행복과 사회 관계의 형성이 이뤄지고 나아가 지역사회 및 공동체의 민주적 발전에 스포츠가 기여하는 것이 ‘스포츠기본법’의 입법 취지여야 한다. 

자칫 ‘좋은 말 대잔치’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이를 ‘기본’을 삼아야 거시적으로는 국제적인 스포츠 다양성에 적극 부응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체육인의 역할이 인정되는 것이다. 

스포츠를 인간의 기본권이 실현되는 장이며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문화적 욕망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럴 때 스포츠 기본권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평등권, 교육권, 건강권, 노동권 등과 동등한 수준에서 결합되어 심도 깊은 내면과 포괄적인 외연을 갖게 된다. 이 모든 권리와 스포츠권이 결합되어야 이른바 ‘체육인’들의 사회적 위상, 생활 안정, 일자리 창출 등도 연결된다. 

조만간 체육계와 국회 등에서 ‘스포츠기본권’이 활발히 논의될 것인 바, 일부 표현만 조금 바꾼 ‘체육진흥책’이 아니라, 체육인 전체의 미래를 걸고 과감히 사회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 ‘모든 사람’들과 역동적으로 성장해가는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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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의 대한민국은 참담하다. 경제 위기감과 일본의 망언·망동, 무능한 정치권 등으로 국민 마음은 편치 않다. ‘조국 사태’는 국민을 둘로 갈라놓았다. 어떤 이는 조국 법무장관 가족비리 의혹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또 어떤 이는 검찰의 ‘과도한 수사’에 절망하고 ‘검찰개혁’을 절규한다. 극과 극의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국민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29일 아침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류현진의 시즌 최종전 승리 소식이 전해졌다. 14승과 함께 그는 아시아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평균자책점 1위라는 새 역사를 썼다. 그뿐이 아니다. 9이닝당 볼넷이 평균 1.18개로 1위, 이닝당 투구수 14.81개로 2위 등 ‘류현진’이라는 이름 석자를 메이저리그 투수성적표 상단에 줄줄이 올려놓았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원정 샌프란시스코전 5회 2사 3루에서 타석에 들어 적시타를 때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뭐 하나 즐거울 것이 없는 요즘, ‘류현진’은 늘 답답함을 달래주는 ‘청량제’였다. 개막 이후 185일간 네이버·카카오 등 양대포털을 장식한 류현진 관련기사는 6만여건에 달했고, 동영상도 수만건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그의 승리 소식, 역투 장면을 보고 또 본 국민은 한둘이 아니다.

‘류현진 야구’에는 ‘교훈’이 있다. 허구연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이제 말하지만 8월1일 콜로라도전을 앞두고 류현진은 허리 통증을 느꼈다. 콜로라도는 그전에 7실점의 아픈 기억을 준 팀이다. 몸 상태를 앞세워 비켜갈 수도 있었다”고 했다. 류현진은 “비겁하다”는 비난이 듣기 싫어 예정된 경기에 나섰고 6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러나 이날의 ‘무리’가 이후 애틀랜타-뉴욕-애리조나로 이어진 3경기 18자책점의 결과로 나타났다. 

그는 신인포수 윌 스미스와 호흡을 맞추면서 유독 실점이 많았지만 스미스 탓도 하지 않았다. 이날도 평균자책점 1위 수성을 위해 굳이 7이닝을 던질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당당하게 선발투수 임무를 마쳤다. 허구연 위원은 “그의 승리는 위로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개인성적보다 공정한 싸움을 즐겼고, 결과에 대해 결코 남 탓을 하지 않는 류현진의 야구를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배워야 한다”고 했다. 류현진이 곧 가을야구에 나선다. ‘행복은 감염된다’고 한다. 그가 또다시 전해줄 ‘국민 행복 바이러스’에 벌써부터 감염되고 싶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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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가 자체 혁신안을 발표했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그래도 기존의 관행에서 진일보한 내용들이 적지 않아서 환영할 만하다. 나로서는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의 개편과 체육인 교육센터 설립에 우선 눈이 간다. 문체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집중적으로 살피고 힘줘서 권고한 것처럼 국가대표 훈련 시스템 개편은 한국 스포츠가 비로소 20세기를 끝내고 21세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기존에는 장기 합숙형이었다. 국가대표가 장기 합숙을 하니 그 아래 단위에서도 합숙만이 유일무이한 방법인 것처럼 수십 년을 보내왔다. 새벽부터 밤까지 달렸고 주말에도 산악을 오르내렸다. 신년이 되면 국가대표 선수들은 얼음을 깨고 차가운 물에까지 뛰어 들어갔다. 국가대표만이 아니라 국가대표가 될지 안될지도 모를 어린아이들도 컴컴한 합숙실로 들어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러나 20세기는 저물고 어느덧 21세기 중엽에 접어들었다. 국제 스포츠의 추세가 달라졌고 가치가 변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도 인구 변동과 세대 문화와 젊은 지도자의 대거 등장으로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학적인 시스템, 개방적인 문화, 활달한 세대 감수성이 전제되지 않는 장기 합숙형은 구조적으로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실제로 끔찍한 폭력이 빈번히 일어났고 급기야 대한체육회장이 공개 사과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사건, 즉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혁신위는 단기 체류형 개편을 권고하였고 이에 대한체육회도 같은 입장을 천명하였으니, 환영할 일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단기 체류형으로 개편한다는 것은 단지 대표선수들의 선수촌 내 숙박 일수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과도하고 반복적인 연습, 훈련 이외 시간의 통제적인 선수 관리, 성인 선수들의 일상생활 제약과 학생 선수들의 교육권 침해, 새벽부터 밤까지 선수들을 관리해야 하는 지도자들의 과도한 노동과 무한 책임, 그 때문에 선수들을 더욱더 통제해야만 하는 악순환의 구조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단기 체류형으로 한다는 것은 국가대표의 선발과 훈련뿐만 아니라 선수촌 안팎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며 그 요체는 선진적으로 지도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경기력을 유지 또는 향상을 위해 과학적인 시스템이 탑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식의 변화, 즉 선수에 대한 존중과 지도자의 전문성 향상이라는 전제들이 필요하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21세기 중엽에 있어 국가대표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까지 던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제도의 탑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단기 체류형은 여러 혁신안 중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혁신안들을 꽉 물고 함께 움직이는 허브가 된다. 그렇지 않고 그저 사건도 자주 터지고 관리하기도 어려워서 선택하는 것이라면, 일시적 부작용이 또 다른 구조적 병폐로 음습하게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 밖에도 대한체육회의 자체 혁신안은 한국 체육계 전체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요소가 많다. 인권과 공정성 실현을 위한 징계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거나 회원 단체에 책임과 권한을 대폭 이양해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점, 그리고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유·청소년 전문스포츠대회 형태로 개편하고 학교별이 아닌 연령별 구분 및 스포츠클럽 등의 개인과 팀까지 참가 허용 등은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앞에 적은 대로, 만시지탄의 안타까움이 있다. 대한체육회로서는 두 번의 중요한 기회가 있었다. 올해 초 관계부처 장관들이 일제히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던 바로 그 상황에서 진지한 사과 이후 과감한 혁신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그러했더라면 8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은 혁신안 제시가 아니라 그중 일부가 현실화되는, 그야말로 미래를 주도적으로 잡아당기는 대한체육회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기흥 회장이 IOC 위원에 선출된 직후인 7월 초다. 이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혁신위의 권고에 공감하며 필요하다면 혁신위원장을 직접 만나는 등 체육 개혁을 위한 대화와 소통의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또한 여러 이유로 무산되었다. 이 회장의 표현대로 “진정하고 잘 살펴보면 분명히 접점”이 나올 수도 있었으며 실제로 혁신위원회는 그러한 대화의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하기도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첨예한 이슈를 갈등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우친 요즘의 언론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대화와 소통’은 일시 중단되었다.

최소한의 사무처도 없이 80여 차례의 회의를 지속하며 일곱 차례의 중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던 혁신위에 비하여 체육회는 인력과 예산과 활용 가능한 유·무형의 자원을 풍부히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혁신위가 주도하고 체육회가 반사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보인 것은, 체육회가 두 번이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만약 체육회가 앞의 두 차례 기회를 선용했더라면 혁신위의 권고는 불필요했으며 아예 출범할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혁신위는 활동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대한체육회는 대한민국과 운명을 함께하는 영구적인 단체다. 스포츠의 제1 원칙, 즉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점에 의거하여 지금이라도 체육회는 좀 더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편안을 선제적으로 발표하고 그것의 실현, 즉 천천히 오는 미래를 상대방 유도복 깃을 당기듯이 바짝 잡아버리는 공세적인 혁신을 주도하기 바란다. 10월 초에 제100회 전국체전이 열린다. 마지막 기회다. 이 중요한 기회를 공허한 항의나 소모적인 비난으로 채우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가는 진일보하는 체육회가 되길 바란다. 혁신위의 시간은 서서히 끝나간다. 지금부터는 ‘체육회의 시간’이다. 부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잡아채기를.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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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4일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의 경기장 내 반입을 허용키로 했다. 조직위는 앞서 욱일기를 떠올리는 패럴림픽 메달을 공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올림픽 경기장 곳곳에 욱일기가 휘날리고, 욱일기가 그려진 메달을 수여하는 장면을 일본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한국·중국 등 태평양전쟁과 강제식민 피해를 입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올림픽 경기장을 욱일기로 채우겠다니, 일본은 진정 ‘정상 국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9월 5일 (출처:경향신문DB)

욱일기(욱일승천기)에는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의미가 있다. 일본 황실의 조상신인 ‘해의 여신’과 뜻이 맞닿아 있다. 2차 세계대전 등 침략전쟁 때마다 일본 ‘황군’이 최전면에 내세웠던 전범기다.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인 것이다. 이를 일본이 모를 리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욱일기 사용 자제를 자국 관광객 안전수칙에 넣었던 것이 일본 정부다. 그런데도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이를 허용한 것은 지구촌 축제의 장을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선전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전쟁 전의 일본을 꿈꾸며 헌법 개정을 추진 중인 ‘아베 신조의 일본’이 황실숭배 제국주의를 소환해 자국민의 민족주의를 일깨우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는 엄연한 올림픽정신의 위반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정치 행위와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IOC는 과거와 같이 욱일기 사용을 방관, 스스로 규정을 위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욱일기 응원과 욱일기 메달 수여를 허용할 경우 ‘수상 거부’ ‘관중 충돌’ 등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헛된 욕망을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꼴이 된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인 양 표기한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대표팀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를 정치적 표현으로 지적한 것이 바로 IOC다. 정부와 국회도 욱일기 사용 금지 촉구를 넘어 국제사회와 연대해 욱일기 사용을 막아야 한다. 

일본은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길 바란다. 욱일기 사용은 과거 식민지배를 받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더없는 상처와 고통만 줄 뿐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 우려부터 해소하는 것이 지금 일본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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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대두되고 있다. 결론을 앞질러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몇 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해 온 지도자와 선수들이 있다. 도쿄 올림픽의 책략적 요소가 있긴 해도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수년 동안 노력해온 땀방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국내외의 각종 선발 대회 및 출전권 획득의 과정이 있다. 이는 국제적인 약속이고 절차인 바, 이것이 모두 종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 지도자와 선수들에게 1년 후의 무대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음, 올림픽의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보이콧하는 것보다 의미 있다. 흔히 올림픽을 ‘세계인의 한마당’이요 ‘우애와 친선의 장’이라고 하지만 이는 장내에서 선수들이 펼치는 경연의 일이다. 장외에서는 온갖 스포츠 정치가 난무하고 글로벌 기업과 스포츠 권력이 충돌한다. 이를 분간해야 한다. 선수들의 땀방울에는 성원을 보내되 경기장 밖의 혈전에 대해서는 엄정한 시각으로 스포츠 권력과 일본 정치 책략과 글로벌 자본의 ‘각축전’을 비판하고 개입해야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시피 아베 정부에게 올림픽은 단순한 일본 사회 통합이나 국제사회에서 이미지 제고 정도가 아니라 보수적인 야욕의 경기장으로 확연해지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여파를 올림픽의 축포로 덮으려는 시도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현에서 시작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 올림픽’이라는 그들의 목표를 정확히 보여준다. 

성화의 첫 봉송지 결정은, 1964 도쿄 올림픽을 상기할 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 초창기에 성화는 지금처럼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를 전국으로 봉송하여 일종의 올림픽 스펙터클 문화 선전의 장으로 삼은 것은 히틀러였다. 히틀러로서는 성화를 아테네에서 개최 도시 베를린으로 직배송하기보다는 독일 전역의 도시를 순회하게 함으로써 파시즘과 올림픽의 이중 변주곡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를 고도의 전략으로 구사한 것이 1964 도쿄 올림픽이다. 이 대회의 성화 첫 봉송지는 오키나와. 성화는 오키나와의 주요 전적지를 순회하였으며 특히 전사자를 추모하는 히미유리노탑에서 전쟁고아가 성화를 높이 들었다. 그렇게 출발한 성화는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을 거쳐 도쿄에 입성하였고 히로시마 피폭 2세로 ‘원자 소년’이라 불린 청년이 최종 점화자가 되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일본은, 전쟁에 단지 패했을 뿐이며 원폭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임에도 세계 평화에 나선다는 식의 메시지를 정교하게 연출한 것이다. 

이 국가적 기획에 일본 전후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적극 동참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여러 경기장을 취재하면서 인간 신체에 대한 찬사와 올림픽에 대한 헌사를 쏟아냈다. 반면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히로시마 일대를 취재하여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히로시마 노트>를 연재하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올림픽이 극심했던 안보투쟁과 전공투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자민당 등 일본 우파 정치의 문화적 책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화려하게 마무리된 폐막식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전 세계 인간이 이렇게 손을 잡고 원을 이뤄 춤추는 감동”이라고 썼고, 오에 겐자부로는 무질서하면서도 자유롭게 들어선 외국 선수단과 달리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입장한 자국 선수단에 대해 “꽤나 쌩뚱맞은 느낌”이라고 썼다. 그는 이러한 비판적 관점에서 올림픽 폐막 3년 후에 스포츠 스펙터클과 파시즘이 기묘하게 뒤엉킨 사태를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에 묘사했다.

그러나 오에 겐자부로가 올림픽 기간 중에 격앙된 ‘애국심 따위는 TV 스위치가 꺼지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봤으나, 일본 우파는 무려 50여년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이윽고 아베 정부에 이르러 전쟁이 가능한 상태로의 헌법 개정, 경제보복, 후쿠시마 사태의 미봉과 정치 선전으로서의 ‘부흥’ 등을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면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2020 도쿄 올림픽이 갖는 아베 정부의 정치외교적인 책략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낫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저마다의 꿈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서는 한편 장외에서는 올림픽에 노골적으로 스며드는 아베 정부의 반평화적인 측면을 널리 알려야 한다. 우리로서는 당연히 올림픽을 알리는 홍보 지도에 왜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었는가를 지속적으로 따져 물어야 하며 후쿠시마는 과연 안전한가에 대해서도 세계적인 평화, 환경, 스포츠 단체들과 연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정부의 시도가 도쿄 올림픽의 여러 문화 행사와 장치들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도 밝혀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의 수많은 오에 겐자부로와 만나야 한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아베 정부의 거침없는 행보에 우려와 비판의 관점을 지닌 수많은 일본 시민들과 만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올림픽의 장외에서 진정한 평화와 우애의 행진을 해야 한다. 올림픽이 진실을 감추고 야욕을 펼쳐내는 장이 아니라 평화를 갈망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연대하는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스포츠에 내재된 가치이며 그저 구호일 뿐인 ‘세계인의 축제’를 진정한 평화의 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 올림픽을 보이콧하기보다는 적극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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