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은 며칠째 자취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빈둥거리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러다가 뭐 미래만 아니면 나쁠 것도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언제나 미래가 문제였지, 미래라는 것들 때문에 열 받았지. 망할 미래 같으니라고.

곰곰이 따져보니, 진만은 ‘미래’라는 이름 자체와도 좋지 않은 기억뿐이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진만의 고등학교 동창 중엔 ‘미래’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진만이 살던 도시에서 꽤 유명했던 ‘미래내과의원’ 원장의 첫째아들인 ‘최미래’. 나중에 병원을 물려줄 생각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데, 그 덕분이었는지 몰라도 미래는 공부를 꽤 잘했다. 선생님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뭐 나중에 병원을 물려받으려면 어쩔 수 있나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친구들이 장난 삼아 부르던 ‘최 원장’이라는 별명을 내심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최 원장, 그러지 말고 괜찮은 원무과장 한 명 미리 뽑아놓을 생각 없는가? 자네만 괜찮다면 내 대학 입시 포기하고 미리 회계원리 공부만 죽어라 하겠네. 미래는 친구들의 그런 농담을 웃으면서 받아주기도 했다. 

미래는 공부도 잘했지만, 체격도 좋았고 운동도 잘했다. 씀씀이도 나쁘지 않아서 친구들이 많이 따랐다. 진만 또한 미래와 함께 김밥천국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돈가스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오백원을 더 내고 라면과 김밥을 먹을 것인가, 한참을 고민하느라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진만에게 미래는 “뭐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어? 김밥천국 따위에서”라고 아무런 악의 없이 툭 내뱉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다가왔는지, 진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장면이 불쑥불쑥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또 하나. 진만의 기억 속에 남은 미래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학교 식당이 내부공사에 들어가 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반마다 급식 당번을 정해 밥이니 국이니 직접 가져와야 했는데, 진만의 반에선 늘 미래가 그 일에 끼었다. “선생님, 이건 공정하지가 않은데요?” 사흘 연속 급식 당번을 했던 미래가 담임에게 항의했다. “뭐가?” 담임이 묻자 미래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4교시 수업 끝나기도 전에 가야 하는데 매번 제가 당번이니까요.” 그러자 담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최미래. 원래 동등하지 않은데 동등하다고 말하는 건 나쁜 거야.” 하필 그날은 진만이 미래와 짝이 되어 급식 당번을 맡은 날이었다. “좆밥 같은 기간제가….” 미래는 국이 가득 든 들통을 진만과 함께 나르다가 이렇게 말했다. “기간제들이 겁이 없어, 겁이.” 미래는 계단 앞에서 쉴 때 카악, 퉤! 들통에 침을 뱉기도 했다. “너 오늘 국 먹지 마라. 개새끼들,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진만은 그런 미래에게 화를 내지도, 뭐라 말하지도 못했다. 동등하지 않았으니까. 진만은 나중에야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

진만은 또 다른 ‘미래’를 대학교 3학년 때 만났다. 군 제대 후 부랴부랴 복학하느라 급하게 구한 학교 근처 단독주택 이층 방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때 거기에서 미래를 만났다. 미래는 주인집에서 키우는 조그마한 누런색 믹스견이었다. 대문 옆 목련나무 아래 합판으로 만든 집이 있었고, 거기에 쇠줄로 묶여 지냈다. 일흔이 넘은 주인집 할아버지는 미래를 몹시 예뻐했는데, 미래 역시 할아버지만 보면 마치 여름 성경학교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거의 졸도할 것처럼 좋아했다. 

단, 미래는 그 외 사람들은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댔다. 그 집에는 진만 말고도 모두 네 명의 세입자가 살고 있었는데, 미래는 그들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정말이지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우박처럼, 쉬지 않고 맹렬히 짖어댔다. 밤이나 낮이나, 자기 말만 해댄 것이었다. 

한번은 아래층에 사는 사십대 아저씨가 자정 넘어 들어오다가 또다시 사납게 짖어대는 미래와 맞부닥뜨린 적이 있었다. 아저씨는 술이 불콰하게 오른 상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야, 이 개놈의 새끼야, 네가 미래라고? 이 개 같은 미래야. 짖기만 할 줄 아는 놈의 새끼가….” 아저씨는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한 채 계속해서 미래와 말싸움을 해댔다. 

방마다 불이 켜지고 이윽고 주인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왔다. 주인 할아버지는 대뜸 세입자 아저씨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자네 왜 우리 미래한테 뭐라고 그러는가? 얌전하게 잘 있는 미래가 뭘 잘못했다고? 응!” 진만은 방 밖으로 나가서 세입자 아저씨를 돕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라도 보태고 싶었지만, 그저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다. 어차피 결론은 뻔했으니까. 주인 할아버지에게 세입자는 개만도 못한 처지였으니까….

진만은 그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다 자취방에서 함께 사는 정용에게 불쑥 말을 건넸다.

“난 말이야. 그래도 미래 생각만 안 하면 나쁘진 않은 거 같아.”

“그게 뭔 소리야?”

정용이 양말을 개면서 물었다.

“그냥 미래만 생각하면 더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고 올 게 안 오냐?”

“그래도 기분은 덜 나쁘니까.”

정용은 슬쩍 진만을 보다가 이번엔 수건을 개면서 말했다.

“그냥 견디는 거지. 나쁜 걸 견뎌내는 게 민주주의래.”

진만은 뚱한 표정으로 정용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진만은 정용과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바로잡지는 않았다. 이 미래나 저 미래나 나쁜 걸 견디는 건 어차피 똑같으니까. 그러면서도 진만은 마치 수능 금지곡처럼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개 같은 미래, 개 같은 미래, 개 같은 미래. 그제야 미래가 조금 우스워졌다.

<이기호 |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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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유 회사에 입사를 한 지 한 달 만에 진만은 사표를 내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뭐야, 잘린 거야?”

편의점에서 퇴근하고 돌아온 정용은 진만을 보자마자 바로 그 말부터 했다. 진만은 양말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어쩐지 몸이 조금 홀쭉해 보였다. 얼굴은 거무튀튀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야. 내가 스스로 관둔 거야.”

진만은 몸을 반쯤 일으켰다가 도로 자리에 누웠다. 끙, 작게 신음도 냈다. 그는 한 달 동안 모텔 생활을 하면서 우유 판촉 행사만 하다가 돌아왔다. “어머니, 우유 하나 드세요. 어머니, 이젠 어머니 뼈도 생각하셔야죠.” 진만은 낯선 도시에서 한 달 내내 그 말만 입에 달고 살았다. 처음엔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것이 ‘어머나’로 잘못 발음해서 함께 판촉 활동을 하던 김 과장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진만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모텔 생활이었다. 그는 김 과장과 같은 방을 썼는데, 모텔의 구조상 퀸사이즈 침대에 김 과장과 나란히, 같은 이불을 덮고 잘 수밖에 없었다. 진만은 최대한 침대 가장자리에 붙어서 잤다. 자고 일어나면 늘 목 부위가 뻐근하고 아팠다. 김 과장은 잠들기 전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잤는데,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친화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모텔 옆방에서 생활하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어떤 날엔 진만이 있는 방으로 한국 사람, 베트남 사람, 중국 사람, 몽골 사람이 모두 모여 TV를 크게 틀어놓은 채 술을 마시기도 했다. 진만은 침대에 앉아 멀거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 이게 무슨 아세안 경제장관회의인가, 왜 저 베트남 친구는 저리도 순대를 잘 먹는 것인가.

“나, 몸이 안 좋아.”

진만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가?”

“열도 나고, 목도 아프고….”

“감기인가 보네.”

정용은 추리닝으로 갈아입으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진만이 돌아왔으니, 이제 한 사람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야 했다. 까짓것, 내가 자지, 뭐. 정용은 그렇게 양보했다.

“나, 그거일지도 몰라….”

진만은 그러면서 자신이 전염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중국 사람과 몇 번 접촉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른 자라. 우리 편의점에도 하루 대여섯 명씩 중국 사람들 꼭 온다.”

“아니야. 나 진짜 심각하다고. 몸에 힘도 하나 없고, 막 어지럽고 그래… 나 사실… 자가격리하려고 회사 그만둔 거야.”

“자가격리?”

진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린 방도 하나뿐인데?”

정용은 그렇게 말하면서 또 한편 ‘자가격리’라는 단어가 참 이상한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 집도 없고, 자기만의 방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가격리를 하는가? 뭐, 마음으로 하는 건가?

“그러니까 네가 더 조심하라고….”

이게 무슨… 정용은 대꾸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진만이 계속 소리 내 기침을 하자, 정용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병원부터 가봐. 괜히 걱정하지 말고.”

“갔다가 정말 전염병이면 어쩌라고.”

“어쩌긴? 치료받는 거지.”

정용의 말에 진만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다시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 보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

정용은 그날 평상시보다 일찍 자취방에서 나왔다. PC방이라도 갔다가 편의점으로 출근할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오늘은 아예 찜질방이라도 가서 자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그게 서로에게 더 나은 거 아닌가? 진만이 자가격리할 수 있도록… 그러다가 정용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건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짓이 아니던가? 옮았으면 벌써 옮고도 남았을 텐데, 이제 와서 자가격리는 무슨… 정용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전염병이 자꾸 들춰내는 것만 같았다. 마음을 들키는 것만 같았다. 그게 불편하고, 또 화가 났다.

정용은 편의점에서 퇴근하자마자 체온계와 마스크, 생수와 컵라면들을 사 들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진만은 어디서 구했는지 이미 마스크를 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손에는 위생장갑을 끼고 있었다.

“뭐 좀 먹었어?”

정용도 마스크를 쓴 채 물었다.

“응. 컵라면하고 삼각김밥.”

“왜? 뭐라도 시켜 먹지?”

“한 그릇을 어떻게 시켜….”

진만은 계속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정용은 체온계를 천천히 진만의 귀에 가져갔지만 이내 손을 거두었다. 진만이 몇 번 기침을 했기 때문이다.

“돼지들은 말이야….” 

기침이 잦아들자 진만이 입을 열었다. 

“구제역 같은 전염병이 돌면 그냥 다 파묻어버리잖아. 옆에 있는 애들까지 싹 다….”

정용은 대꾸하지 않고 다시 조심조심 진만의 귀에 체온계를 넣었다.

“걔네들은 왜 격리시키지 않고 다 묻어버리는 걸까? 그게 돈이 덜 드나…?”

진만이 베고 있는 베개에선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그러겠지, 아마도 돈이 덜 들어서겠지. 정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정말 정말 못됐어. 그치?”

진만이 그렇게 말했을 때, ‘삐’ 하고 체온계가 소리를 냈다.

36.7도. 

정용은 체온계를 바라보다 마스크를 풀었다. 진만도 힐끔 체온계를 바라보았다.

“너도 참 네가 못났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진만은 계속 웅크린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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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후의 편의점은 초등학생들의 차지다. 다른 편의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용이 일하는 편의점은 늘 그랬다.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두 곳이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편의점은 가깝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편의점 내 테이블에 앉아 삼각김밥을 불닭볶음면이나 국물떡볶이에 찍어 먹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용은 속으로 그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이들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학원 숙제를 하기도 했고, 연예인들의 뒷담화에 열을 올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봤다. 중2병이 일찍 찾아온 6학년 아이들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블루레몬에이드를 두 시간에 걸쳐 천천히 마시기도 했고, 연애를 하는 아이들은 하리보 한 봉을 사이에 둔 채 ‘여보’ ‘자기’ 해 가며 말랑말랑한 서로의 볼을 꼬집어대기도 했다.         

정용이 일부러 밤 9시 근무로 옮긴 것은 그 꼴을 보기 싫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쓰레기가 지나치게 많이 나와서 그랬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늘 무언가가 묻어 있거나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이들 옆에서 계속계속 그걸 치우다 보면 어쩐지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아이를 만난 것은 밤의 편의점에서였다. 6학년이었고, 남자아이였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밤 10시15분 정확하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안경을 쓰고 롱패딩에 무거운 백팩을 멘 아이. 아이는 늘 혼자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컵밥을 먹었다. 그게 저녁인 듯싶었다. 아이는 밥을 먹으면서도 영어 단어장을 보았고, 중간중간 필통을 꺼내 어떤 대목에 밑줄을 긋기도 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무언가를 흘리지도 않았고, 밥을 먹고 나면 물티슈로 테이블을 깨끗이 훔치기도 했다. 편의점을 나갈 때면 정용을 바라보며 깍듯이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꼭 그런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정용은 그 아이에게 자주 눈길이 갔다. 밤에 혼자 다니는 아이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정용은 아이에게 슬쩍 사이다를 내밀기도 했고, 츄파춥스 사탕 하나를 건네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예의 바르게 받았다. 한 달 넘게 아이는 꾸준히 편의점에 왔지만, 정용은 그 이상 다가가진 않았다. 부모님은 뭐 하시니? 집은 어디니? 왜 혼자 밥을 먹니? 그딴 건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정용은 무언가 다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정용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 날이었다.

“형…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는 고개를 숙이진 않았지만 정용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말했다. 말인즉슨 일월 첫째 주 금요일에 있는 졸업식에 자신과 함께 가달라는 것이었다. 졸업식? 졸업식은 이월이 아닌가? 알고 보니 요즘 초등학교 졸업식은 대부분 일월에 열린다고 했다.       

아이의 학교는 특이하게 졸업식장에 부모나 형제 중 한 명과 함께 입장한다고 했다. 함께 단상에 올라 한 명은 졸업장을 받고, 또 한 명은 학교에서 준비한 선물을 받는 것, 그게 전통이라고 했다.

“한 시간이면 되거든요. 오전 열 시부터 열한 시까지만….”

정용은 그 말을 하는 아이에게 또다시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그것 역시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생각해볼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용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한 시간, 단지 한 시간일 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내내 어떤 은근한 자부 같은 것이 느껴져 귓불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졸업생은 모두 백십명이었다. 정용은 학교 강당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아이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른 아이들은 의자에 앉은 채 계속 떠들고 부모와 함께 셀카를 찍어댔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곧은 자세로 앉아 단상을 쳐다보다가 이따금 안경을 닦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아이가 불러도 말없이 웃어주기만 했다. 괜히 어색하고 긴장한 것은 정용이었다. 아이에게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저도 모르게 허벅지에 계속 힘을 주기도 했다. 식이 모두 끝나면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같이 먹어야지.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정용은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식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졸업생이 한 명 한 명 단상에 올라올 때마다 강당 뒤편 대형화면에 아이의 사진과 함께 장래희망이 적힌 글귀가 떠올랐다. 정용은 그제야 아이의 이름이 ‘김호창’이라는 것과 아이의 꿈이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그래, 의사도 되고, 병원도 차리렴. 그래서 나중엔 오늘 같은 날은 아예 기억도 하지 마렴. 정용은 그렇게 아이를 응원해주었다. 정용은 아이의 진짜 친형처럼 손을 잡고 단상에 올랐고, 정중하게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식이 모두 끝나고 정용은 아이와 함께 운동장으로 걸어 나왔다. 아이는 꽃다발도 없이 졸업장만 든 상태였다.

“어디, 짜장면이라도 먹으러 갈까?”

정용이 묻자,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에요.”  

아이는 그렇게 말한 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편지봉투였다.

“형,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아빠가 많이 넣지는 못했대요.”

아이는 그러면서 다시 한번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편지봉투에는 삼만원이 들어 있었다. 정용은 그 봉투를 든 채 잠깐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뒤돌아 교문 쪽으로 걸어갔다. 정용은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수치심과는 또 다른, 어떤 무섬증 때문이었다. 교문에 내걸린 ‘축 졸업’ 플래카드가 바람에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이기호 |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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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방해만 하지 마.”

그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진만에게 말했다. 4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짧은 헤어스타일에 갈색 구두를 신은 남자였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15분 늦게 아파트 정문 입구에 도착했지만,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진만을 한번 슬쩍 훑어보곤 인사 대신 방해 운운, 말부터 꺼낸 것이었다. 진만은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은커녕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어쨌든 그는 직장 선배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는 마치 여러 번 같은 집을 찾아왔던 집달리처럼 가장 가까운 아파트 동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나 유치원에 간 오전 9시15분, 혁신도시 내 신규 입주 아파트 단지는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일이 시작된 것이었다.

진만은 입사한 우유 회사의 내규에 따라 최초 3개월 동안 수습사원 신분으로 판촉 활동을 해야만 했다. 선배 사원과 2인 1조로 짝을 이뤄 정해진 구역 내 우유 배달 신청을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일이었다. 수습 기간엔 최저 시급에 해당하는 급여와 중식비, 교통비가 나왔고, 숙박비의 경우 따로 회사 영업 경비로 처리되었다. 실적에 따라 2개월 뒤부터 추가 수당을 더 받을 수 있었고, 부서 배치가 변동될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나이는?”

진만과 짝을 이룬 선배 사원이 아파트 현관 출입문 인터폰을 누르며 물었다. 그의 시선은 인터폰 화면을 향해 있었다.

“네? 아… 스물여덟 살입니다.”

“운전은? 1종이야, 2종이야?”

그와 진만 사이에 계속 인터폰 알림음이 흘렀다.

“면허는 아직….”

그의 인상이 확 구겨질 찰나, 인터폰에서 ‘누구세요?’하는 젊은 여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인터폰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말했다.

“어머니, 우유 공짜로 2개월 드시고, 뽀로로 매트도 하나 받아 보시라고 인사 올렸습니다.”

그는 좀 전 진만을 대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 전혀 다른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마치 중국의 변검처럼 순식간에 가면을 바꾸는 기술처럼 보였는데,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인터폰에서 ‘됐어요’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는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른 층 인터폰을 눌렀다.

“사람들은 앞에선 김 과장이라고 불러. 성이 뭐야?”

“네… 저는 전 씨인데요.”

“좋아, 전 대리… 아침 9시부터 점심 먹을 때까지는 방문 판촉, 오후 2시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는 좌판 판촉이야. 시키는 일만 하면 되고, 일 때려치울 거면 저녁에 숙소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말해. 괜히 사람 번거롭게 만들지 말고.”

그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또다시 인터폰에서 ‘누구세요?’라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까보다 조금 더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였다.

“어머니, 우유도 공짜로 드시고 프라이팬도 하나 받아보시라고 인사 여쭙니다.”

그의 얼굴이 또 바뀌었다.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고 난 뒤부터 그와 진만은 아파트 단지 정문 입구에 플라스틱 탁자를 펼쳐 놓고 영업을 시작했다. 진만은 주로 유치원생과 함께 걸어오는 엄마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줬고, 김 과장은 그런 엄마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니, 지금 드시는 우유와 저희 회사 우유하고는 이게 젖소부터 다르거든요. 젖소가 스트레스받고, 먹는 게 시원치 않으면 어떻겠어요? 아무리 무항생제니 유기농이니 해도 이게 저급 원유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다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저희 회사 젖소들은요, 얘네들은 그냥 포비 같은 애들이에요. 아시죠, 포비? 매일 뽀로로랑 노는 포비.”

포비는 백곰이 아닌가? 백곰과 젖소는 과연 무슨 관계인가? 먼 친척인가? 진만은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김 과장은 오후에만 3건의 약정서를 새로 받아냈다. 그는 약정서를 쓰고 있는 젊은 엄마한테 ‘한 달에 3천원만 더 내면 요거트도 따로 넣어드린다’는 말도 했다.

저녁 6시 무렵, 그들 앞에 한 여자가 약정서를 들고 찾아왔다. 오후에 새로 우유 배달 신청 계약을 한 30대 여자였다.

“이거 좀 취소하려고요?”

탁자에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던 김 과장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요?”

여자는 아무래도 일 년 뒤에 이사를 할 거 같은데, 24개월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때 가서 위약금 낼 일이 생길 거 같다고 말했다.

“안돼요.”

김 과장은 처음 여자를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전산 입력 다 했거든요. 이미 대리점에서도 물량 주문 넣었구요.”

여자는 ‘여기 이 서류 뒤에 48시간 내 해지 가능’이라고 적혀 있지 않으냐고 따졌다. 여자의 목소리는 조금씩 올라갔다. 김 과장 얼굴 바로 앞에 서류를 내밀며 흔들기도 했다.

“아주머니.”

김 과장이 주위를 둘러보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오늘 여기서 하루 종일 떠들면서 3만원 벌었어요. 둘이 합쳐서 3만원.”

여자는 당황한 듯 굳은 자세로 김 과장을 바라보았다.

“해지하고 싶으면 내일 회사로 전화하시라구요. 우리 일당도 그때까지니까.”

김 과장은 그 말을 끝으로 플라스틱 탁자의 다리를 접었다. 진만도 말없이 그 일을 도왔다. 지금 김 과장에게 더 이상 못하겠다고,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맞을까? 진만은 계속 망설였다. 그런 그들 앞에서 여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만 가지. 전 대리.”

한쪽 팔에 서류를, 다른 쪽 팔에 프라이팬 박스를 든 김 과장이 앞서 걸어갔다. 진만은 접은 플라스틱 탁자를 들고 뒤따랐다. 확실히 포비는 아닌데… 이건 그냥 젖소인데… 저급 원유 나오는 젖소. 진만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젖소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두 마리.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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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재앙 2019.12.20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훠훠~ 서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니 절로 힘이납니돠~ 쩝쩝~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통유리 너머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바로 옆 정수기에 붙어 있는 ‘사용 시 주의사항’ 항목들을 한 자 한 자 읽어나갔지만, 저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사무실 안에는 모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두 명은 평상복 차림이었고, 한 명은 정장 재킷에 넥타이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한 사람은 바로 좀 전까지 진만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사무실 안에서는 종종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만은 양 손바닥을 바지에 쓱쓱 문질러보았다. 이제 곧 진만의 차례였다. 안 떨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귓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허벅지 뒤편도 자꾸 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진만은 눈을 감은 채 숨 호흡을 길게 한 번 내쉬었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바지 위에 계속 자신의 이름을 써 보았다. 그래도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이윽고 사무실 통유리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넥타이를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진만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피했다.

“다음, 전진만씨!”

안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진만은 ‘네!’ 하고 오른쪽 손을 번쩍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만이 학교 선배의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주의 일이었다. 이거 원래 이번 졸업생들한테만 소개해주는 건데, 특별히 너한테도 연락해주는 거야. 모교의 학생 취업 담당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는, 정부 지원을 받는 ‘지역 기업 프로젝트’ 사업의 일자리를 소개해주었다.

“지역 기업이면 그게 좀….”

“왜? 그게 지금 걸린다는 거? 네가?”

선배의 목소리가 대번에 굳어졌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여기서 출퇴근하기가 어떤지….”

“당연히 멀지. 근데 그게 뭐?”

진만은 주눅 든 목소리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선배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바로 다음날까지 보내라고 했다. 자체 개발한 치즈와 유가공 제품을 판매 유통하는 회사이며, 연봉은 2400만원, 4대 보험이 적용된다고 했다.

“치즈라면 아주 환장한다고 쓰고, 농촌에서 아예 뼈를 묻겠다고 써.”

“정말 그렇게 써요…?”

“비유적으로 그러라는 거지. 비유적으로… 비유적인 게 뭔지 몰라?”

선배는 그러면서 잠깐 침묵을 지켰다. 그러곤 뜬금없이 ‘우리 잘하자’라고 말했다. 너, 다른 스펙도, 영어 성적도 없잖아? 진만은 가만히 선배의 말을 듣기만 했다.

회사는 군청에서 가까운 신축 건물 이삼층을 통째로 임대해 쓰고 있었다. 이층은 영업부와 관리부였고, 삼층은 사장실과 임원실, 회의실이 위치해 있었다. 면접은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전진만씨는 뭐 다른 자격증이나 경력은 없으시고?”

진만의 맞은편에 앉은 두 명 중 머리가 약간 벗어진 남자가 물었다. 그가 사장이라고 했다.

“네, 뭐… 대신 아르바이트를 좀 많이 했습니다.”

진만은 처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선배 얼굴을 봐서 서류까지는 제출했지만, 최종 면접까지는 이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력서엔 대학 졸업 외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거기에 삼계탕집 설거지 아르바이트와 택배 아르바이트를 써넣을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최종 면접 대상자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게 그제 오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진만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 우리 회사도 이렇다 할 경력은 없으니까.”

사장이 바로 옆 폴라티를 입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그러곤 혼자 우하하하, 큰소리로 웃어댔다.

“주소를 보니까… 저쪽 광역시 쪽이네요. 그럼 만약 입사하게 되면 거처를?”

폴라티 남자가 묻자, 사장이 대신 대답했다.

“거처가 뭔 상관이야? 그런 거 상관하지 않고 지원한 게 훌륭한 거지.”

사장은 진만을 보며 “안 그래요?” 하고 물었다. 그러곤 또 우하하하, 웃어댔다. 저 양반이 뭔 오래된 치즈를 드셨나, 왜 저렇게 웃어대지? 진만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덕분에 긴장은 좀 잦아들었다.

“자, 우선 먼저 하나 말씀드릴 것은…”

폴라 티 남자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무조건 3개월은 영업을 뛰어야 해요. 그다음에 실무 배치예요. 그게 우리 원칙이죠.”

말인즉슨 3개월 동안 전국 아파트 단지를 돌며 우유와 요구르트를 팔고 배달 계약을 올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실적을 본 후 다시 부서 배치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기간에도 정해진 급여는 보장한다고 했다.

“난 있잖아, 오히려 그게 더 나은 거 같아. 여기 사무실에 매일 앉아 있으면 갑갑하잖아. 군산도 가고, 여수도 가고, 거제도도 가고, 얼마나 좋아? 매일매일 엠티 가는 기분이지 뭐?”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 또 웃었다.

“괜찮겠어요?”

폴라티 남자가 재차 물었다. 진만은 잠깐 침묵했다. 에이 씨, 그러면 그렇다고 미리 말을 해주던가… 꼭 면접장에서 그런 걸 묻고… 진만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대답은 전혀 다른 식으로 나왔다.

“네. 뽑아만 주시면 뼈를 묻도록 하겠습니다.”

진만은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정작 계속 억울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물으면, 내가 뭐라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진만은 다시 손가락으로 바지 위에 자신의 이름을 조용히 썼다. 그런 진만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사장은 “그거 봐, 다 한다니까. 요즘 애들이 이렇게 훌륭해” 하면서 우하하하, 웃어댔다. 진만은 잠자코 사장의 웃음소리를 듣고만 앉아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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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이 일하는 편의점 바로 옆 상가는 한 은행의 자동화기기 창구였고, 다시 그 옆은 통닭 한 마리에 칠천원씩 파는 옛날통닭 전문점이었다. 옛날통닭 두 마리를 사면 만이천원.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운영했는데, 따로 배달은 하지 않고 홀에 테이블 네 개를 두고 생맥주와 소주를 함께 팔았다. 정용은 퇴근할 때마다 옛날통닭 전문점 안을 힐끔 바라보곤 했다. 손님이 한두 명 앉아 있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부부가 한 테이블씩 꿰차고 앉아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마치 지금 막 싸운 사람들처럼 말이 없었고, 지친 표정들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얼마 전이던가, 실제로 정용은 편의점 밖으로 재활용품을 내놓기 위해 나왔다가 옛날통닭 전문점 부부가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신경질이야, 신경질이!” 아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발끝으로 툭툭 입간판을 차던 남편이 대꾸했다. “모르면 관두든가….” “아까 그 닭 때문에 그러는 거야? 성희 엄마한테 준 통닭?” 여자가 묻자 “닭이 남아나지, 아주 남아나.” 남자가 퉁명스럽게 뇌까렸다. “아이고 이 쪼잔한 인간아, 성희 엄마한테 우리가 꾼 돈이 얼만데? 아까도 이자 받으러 온 거 몰라서 그래? 성희 엄마 아니었으면 우리 벌써 길바닥에 나앉았다고!” 마르고 키가 큰 아내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새된 목소리를 내질렀다. 남자는 살집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담배를 문 채 계속 이죽거렸다. “한 마리만 주면 되지, 두 마리까지 싸줄 게 뭐야” 남자가 먼저 점포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여자는 한참 동안 혼자 씩씩거렸다. 그러다가 우두커니 서 있던 정용과 눈이 마주쳤다. 정용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지만, 여자의 눈이 그렁그렁해져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 뒤로 정용은 퇴근할 때마다 버릇처럼 그들 부부의 상황을 살폈다. 장사라도 잘되면 괜찮으련만, 그럴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더 나빠진 건 자동화기기 창구 바로 앞에 한 노부부가 자리를 잡고 붕어빵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노부부는 리어카에 붕어빵 기계를 싣고 와 장사를 시작했다. 붕어빵 두 개에 천원, 이천원을 내면 다섯 개를 주었다. 팥 붕어빵뿐만 아니라 슈크림 붕어빵도 팔았는데, 그게 꽤 맛이 좋은 모양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퇴근 무렵만 되면 노부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이 보였다. 정용도 몇 번 퇴근하면서 그 붕어빵을 사간 적이 있었다. 붕어빵 맛은 둘째 치고 정용에겐 그 노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로 할머니가 붕어빵을 굽고, 할아버지가 그것을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방식으로 일했는데, 부부 사이가 마치 이제 막 결혼한 사람들처럼 금실이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는 자주 할머니의 등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물러주었고, 할머니는 틈만 나면 할아버지의 입속으로 견과류 따위를 넣어주었다. 언젠가 한번 비 오는 날엔 할아버지가 우비를 입은 할머니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은 채 우산을 받치고 서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붕어빵 맛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에이 참, 꼭 여기서 저런 것을 팔아야 하나?”

편의점 점장은 붕어빵 노부부를 볼 때마다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냈다.

“그래도 뭐 우리랑 겹치는 걸 파는 것도 아니니까요….”

정용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붕어빵을 산 사람들이 편의점에 들러 우유나 탄산음료를 사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왜 겹치는 게 없어? 붕어싸만코는 뭐, 같은 붕어 아닌가?”

정용은 멀거니 편의점 점장을 바라보았다. 저건 뭔 붕어 같은 소리인가? 정용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편의점 점장은 정말로 심각하게 붕어빵 노부부를 자신의 경쟁업체로 여기는 듯했다. 그는 정용이 출근할 때마다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네가 나가서 말 좀 해봐.”

“제가요…?”

“여기 말고 다른 곳 가서 하시라고 그래. 저쪽에 가면 공원도 있다고.”

정용은 그때마다 일단 편의점 밖으로 나오긴 나왔다. 하지만 차마 붕어빵 노부부에게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는 괜스레 붕어빵 리어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점장이 “말했어?”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라고 대충 둘러대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하루, 점장이 또다시 보채서 편의점 밖으로 나온 정용은 노부부 앞에 서 있는 옛날통닭집 아내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 저희도 정말 힘들어요.”

옛날통닭집 아내가 말했지만, 노부부는 못 들은 척 계속 붕어빵만 굽고 있었다.

“사람들이 통닭 사러 왔다가 그냥 붕어빵만 사 들고 간다고요.”

“미안해요, 미안해. 우리도 이게 먹고살아보겠다고 시작한 일이라서….”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리어카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거, 너무하네”, “어르신들이 하는 일인데” 하면서 수군거렸다.

“저희는 월세도 내야 한다고요….”

옛날통닭집 아내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자 옛날통닭집 점포 안에서 남편이 나와 아내 옆에 섰다. 그는 잠깐 동안 노부부 쪽을 노려보다가 조용히 자신의 아내를 일으켜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아내의 어깨를 감싼 손을 풀지도 않았다. 정용은 그들이 점포 안으로 사라진 후에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용이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자 점장이 물었다.

“말했어?”

“네.” 정용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뭐래?”

“그냥 다 미안하대요.”

“미안하대? 그게 전부야?”

“네….”

점장은 편의점 유리창 밖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에이 씨, 나도 편의점 밖에 나가서 어묵이나 팔아볼까?”

정용은 묵묵히 그 말도 견디면서 서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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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은 집안 분위기가 어딘가 모르게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가구도, 벽지도 그대로였는데, 그런데도 그 느낌을 지울 길 없었다. 뭐지? 진만은 마치 마감 후 물품이 맞지 않은 알바생처럼 다시 한번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변할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 지은 지 삼십 년 된 방 두 칸짜리 연립주택이었다. 군데군데 금이 간 마룻바닥과 누리끼리하게 변한 싱크대 위 타일들, 그리고 흐릿한 형광등 불빛까지, 모두 예전 그대로였다. 이상하네? 진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거기, 침대 바로 앞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예전에 방영되었던 사극이었다. 진만은 가만히 할아버지를 따라 TV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야 무엇이 달라졌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삼계탕집 주방 알바를 그만두고 진만은 오랜만에 아버지와 할아버지, 단둘이 살고 있는 안양집에 들렀다. 그가 근무했던 삼계탕집은 추석 당일 하루만 쉬었다. 그러니 어디 갈 수가 있나? 생각해보니 설날에도 그랬고, 여름휴가 때도 그랬다. 알바는 남들 쉴 때 더 일이 많은 법. 꼭 일 년 만에 가는 안양집이었다. 같은 계절이어서 그런가, 별다르게 다른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봄에 오면 좀 다르려나? 진만은 그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어디 안 좋으세요?”

진만은 마침 앉은뱅이 밥상에 이른 저녁을 차려 안방으로 들어오던 아버지에게 물었다. 연립주택 인근 오피스텔 야간경비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는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밥상에는 진만이 왔다고 그랬는지 제육볶음과 쌈이 올라와 있었다. 

“왜? 뭔 일 있었어?”

그의 아버지가 할아버지 쪽을 힐끔 한번 바라보고 되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를 보고도 통 말씀이 없으셔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만은 다른 것을 묻고 싶었다. 이 냄새, 예전과 달리 집에서 나는 이 냄새는 과연 무엇인가? 비릿하고, 고릿하기도 한 이 냄새가 왜 계속 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예전엔 저만 보면 계속 이 말 저 말 물었는데….”

아버지는 묵묵히, 그러나 바쁘게 젓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몰라. 요즈음 저렇게 자꾸 깜빡깜빡하셔.”

“병원엔 안 가보셨고요?”

진만은 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는 계속 TV를 보며 느릿느릿 숟가락을 들었다.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야. 나도 깜빡깜빡하는데, 뭘….”  

그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진만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팔십대, 그의 아버지도 이미 육십대였다. 냄새에는 아마 그 두 사람의 것이 다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출근한 후, 진만은 설거지를 마치고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 재밌어?”

TV에선 계속 사극이 방영되고 있었다.

“응. 궁예가 이제 막 다른 미륵이 있다고 왕건을 의심하기 시작할 거야.”

진만은 멀거니 TV 속 애꾸눈 궁예를 바라보았다.

“네 아빠도 이 할아비를 자꾸 의심해.”

할아버지는 마치 은밀한 소식이라도 전하듯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말했다.

“아버지가요?”

“응. 내가 가짜 가시오가피즙을 산 거라고… 자꾸 날 의심해.”

진만은 곰곰 따져 보았다. 분명 그런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무슨 문화홍보업체에 속아 삼백만원어치 가시오가피즙을 사 들고 들어왔을 때가…. 하지만 그건 진만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 그게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

“의심하는 게 아니고 할아버지…그냥 너무 비싸니까 속상해서 그랬지.”

“나도 속상하거든. 그게 뭐 나 먹으려고 산 건가? 고생하는 우리 아들 먹이려고 한 거지.”

진만은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할아버지는 옛일을 추억하는 걸까? 그도 아니면 지금을 옛날로 믿고 있는 걸까? 진만은 어쩐지 꼭 후자일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저렇게 방금 당한 일처럼 속상해할까? 진만은 그 생각을 하니까 왈칵 겁이 났다.

“할아버지, 요샌 뉴스 안 봐?”

“안 봐.”

“왜? 할아버지 맨날 뉴스만 봤잖아?”

“보면 속상해. 맨날 디제이만 나오고… 디제이 대통령 된 거 꼴 보기 싫어서 아예 안 봐.”

TV에선 다시 궁예가 자신을 보고 미륵이 아니라고 말하는 고승에게 마군이구나, 노여워하는 모습이 잡혔다.

다음날 오전, 진만은 퇴근한 아버지를 잡고 말했다.

“할아버지 아무래도 병원 모시고 가야 할 거 같아요.”

“왜? 너한테 뭐라고 그러셔?”

“자꾸 옛날 일만 말하세요.”

아버지는 잠옷으로 갈아입다가 잠깐 진만을 바라보았다.

“그게 뭐? 잘못된 거야?”

진만은 아버지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아니, 그게 그냥 놔두면… 진만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말끝을 흐렸다.

“놔둬. 병원에 가봐야 약도 없고… 우리 둘 사는데 옛날 일 말한다고 잘못될 것도 없어.”

진만은 그런 아버지 앞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속상한 거 있으면 속상해하고, 화낼 거 있으면 화도 내야지.”

아버지는 잠옷 차림 그대로 할아버지의 아침 밥상을 차렸다. 

“걱정 말고 너도 밥 먹고 얼른 내려가. 아직까지 아무 문제없어. 태조 왕건도 있고… 저 드라마 계속 재방송해. 그러니까 괜찮아.”

진만은 아버지를 도와 밥상에 수저를 놓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이 속상했을까? 나는 또 나중에 그 속상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만은 그게 막막하기만 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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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전화를 걸어온 민화는 마지막 코끼리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마지막 코끼리?” 

나는 이불을 끌어 올리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오늘 오후 2시49분에 지구상 마지막 코끼리가 죽을 거래. 이제 세상에 코끼리는 없어.”

언론은 늘 ‘마지막’, ‘멸종’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며 인간의 ‘마지막’ 남은 감수성을 자극해왔다. 사실은 복제 기술 덕분에 생명 종 다양성은 얼마든지 실현 가능해졌다. 인간도 과학기술상으로는 복제 가능한 세상이다. 단지 불법일 뿐이다. 코끼리 복제가 어려울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호기심에 민화를 따라가기로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후 2시경 안락사 장소인 ‘종 다양성 연구소’에 도착했다. 마지막 코끼리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이미 10만 명이나 있었다. 하늘에는 대형 코끼리 애드벌룬이 띄워졌다. 웃고 있는 분홍 코끼리였다. 자율주행차 운전석에 앉은 민화는 인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올해로 몇 살이지?” 

나는 민화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렇지 제 나이도 잊냐? 백마흔.” 

“오늘 죽는 코끼리는 몇 살일까?”

코끼리 나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차는 스스로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민화가 이어서 말했다.   

“코끼리는 보통 60년을 산대. 인간 평균수명 150세의 절반도 못 사는 셈이야.”

오후 2시35분이 되어서야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니 3층 높이 축사가 있었다. 사람들은 축사 앞 원형 울타리 주변을 에워쌌다. 주변이 어수선한 가운데 상인이 인파들을 헤치며 외쳤다. 

“마지막 파리! 마지막 모기도 있어요!”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가 가져온 건 파리와 모기 화석이었다. 그것들은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후 멸종되었다. 복제 기술이 있지만 꿀벌과 달리 수익성이 없으므로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아이들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파리, 모기 화석을 사주어야 했다. 민화는 호박에 갇힌 곤충처럼 통째로 화석이 된 모기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당장 윙윙 소리를 낼 것 같은 모기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모습을 한 채 시간에 갇혀 있었다. 요즘은 사체를 빠르게 냉동시킨 후 고분자 크리스털에 넣는 급속 화석이 유행이다. 이렇게 하면 크리스털 안에 갇힌 멸종 생물들은 죽기 전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오후 2시45분이 되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유니폼을 입은 사육사가 나왔다. 그는 코끼리가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2년이나 축사 생활을 했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안락사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제 나옵니다. 큰 박수를!”

높이가 3m는 될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코끼리가 고개를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마지막 코끼리는 큰 문과 대비될 정도로 조그마했다. 게다가 앙상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곳에 지구상 최고의 육지 동물은 없었다. 코끼리가 느린 속도로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자기를 보러온 구경꾼들을 잠시 둘러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난데없이 울타리 주변을 돌았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사육사가 그런 명령을 한 게 아니었다. 민화가 말했다. 

“서커스 출신 코끼리들의 습관이야. 곧 죽을 녀석이 원형 무대만 보면 돌아.” 

삐익삐익 소리도 냈다. 관중들을 향해 했던 팬서비스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다 힘없이 주저앉았다. 울타리 주변이 조용해졌다. 

“코끼리는 공룡 멸종 이후 육상 동물 중 가장 큰 동물이란다.” 

내 옆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속삭였다. 2시47분이 되자 사육사는 코끼리를 축사로 데려갔다. 

축사 앞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 코끼리의 안락사 장면이 AR(증강현실)로 펼쳐질 예정이다. 2시48분 눈앞에 코끼리가 쓰러져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 49분 간호사가 주사기를 가져온다. 녀석의 등에 긴 주삿바늘이 꽂힌다. 

“잘 가, 알리.” 

사육사가 외친다. 50분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다. 눈을 감는다. 51분 코끼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가 코끼리 코에 귀를 갖다 대더니 입을 삐쭉인다. “죽었나봐.” 52분 코끼리 머리 위로 흰 천이 씌워진다. 53분 코끼리는 화면 밖으로 옮겨진다. 

AR 화면이 꺼졌다. 민화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하얀 가루가 담겨 있었다. 

“뭐야?” 내가 물었다. 

“남편 유골.”

“그걸 왜?”

“난 항상 이걸 들고 다녔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려고 말이야. 그런데 50년째 들고 다닐 줄은 몰랐어.”

민화가 주머니를 뒤집었다. 하얀 뼛가루가 땅에 떨어졌다. 

“인간이 한계수명을 넘어 무병장수까지 실현하는 동안, 코끼리는 왜 사라져 갔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사육사가 다시 나왔다. 

“마지막 코끼리 화석이 나왔습니다. 최첨단 급속 화석화 방식으로 5분 만에 부위별 화석을 얻는 데에 성공했죠. 먼저 코끼리 코 화석부터 선보이겠습니다. 추모하는 마음으로 기부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방금 죽음을 지켜본 코끼리는 어느새 토막토막 잘린 화석이 되었다. 코 다음으로 상아, 그다음으로는 귀, 그리고 다리 화석이 나왔다. 코끼리 코와 상아 화석을 원하는 사람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야 했다. 이곳은 흡사 경매장 같았다. 

사람들이 원했던 부위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코끼리 발톱 화석에 기부금을 냈다. 크리스털 안에는 귀여운 발톱이 담겨 있었다. 코끼리 발톱을 본 건 처음이었다. 민화는 내가 산 화석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돌아가는 길에 애드벌룬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봤다. 한없는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웃고 있는 분홍 코끼리였다.

<김재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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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절대 웃으면 안된다, 알았지?”

조의금을 내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던 진만과 정용에게 접수대 뒤에 앉아 있던 영걸이 마치 은밀한 지령이라도 전달하듯 말했다. 

영걸은 진만과 정용의 대학 동기였다. 대학교에 다닐 땐 함께 PC방도 다니고 축구도 하면서 꽤 친하게 지냈는데, 졸업 이후 연락이 뜸했다. 전해 들은 말로는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경기도 어디 의류상가에서 일한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입고 있는 와이셔츠도, 양복도 말끔해 보였다. 비록 장례식장 접수대 뒤에 앉아 있었지만 어쩐지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용과 진만은 늘 입고 다니는 하얀 면티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뭔 소리야?” 정용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들 뒤로 바로 다른 조문객 두 명이 들어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냥 빨리 절만 하고 나오라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과 정용의 대학 동기인 형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어젯밤의 일이었다. 형수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기숙사 룸메이트로 2년 가까운 시간을 진만, 정용과 함께 보낸 친구였다. 

전남 무안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집의 장남이자 대형 특수농기계 자격증 보유자이기도 했던 그는, 손재주가 좋았다. 빨래 건조대를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책상 뒤편을 말끔하게 정리한 것도 그였고, 진만이 부러뜨린 이층 침대 원목 사다리를 사감이 보기 전에 멀쩡하게 수리해낸 것도 형수였다. 기숙사 내에 그의 손재주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 문고리가 망가지거나 세탁기 호스가 빠졌을 때마다 ‘오공! 오공!’ 어김없이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는 때 이른 탈모 증상으로 인해 옆머리를 최대한 가운데로 끌어모으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만화 속 손오공의 모습을 빼닮았고, 그것이 그대로 그의 별명이 되었다. 진만과 정용은 ‘오공’ 대신 ‘햇양파’라고 불렀는데, 그거나 이거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고향인 무안으로 내려갔다. 기숙사에서 같이 술을 마실 때도 몇 차례 자신이 경영학을 전공한 것은 양파 협동조합 운영에 도움이 될까 싶어 그런 거라고 말한 바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무안의 특별한 황토에 대해서 여러 번 얘기했었고, 그 땅에서 나는 양파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진만과 정용은 그럴 때마다 말없이 안주로 사 온 양파링만 깨지락깨지락 먹었다. 이거야 원, 황토 안 깔린 고향에서 자란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또 한편 해야 할 일이 확실한 그가 부럽기도 했다. 양파든 부추든 미나리든 어쨌든 무언가 정해져 있었으니까.

사실 진만과 정용은 장례식장에 오기 전 조의금 문제 때문에 잠깐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정용은 그래도 십만원은 해야 한다고 말했고, 진만은 오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럼 너는 오만원 하고 나는 십만원 하면 되겠네, 정용이 말하자 진만이 바로 발끈했다. 그럼 나는 뭐가 되냐, 뭐 누구는 십만원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이러는 줄 아느냐, 목소리까지 높이며 화를 냈다. 그래도 우리가 걔한테 얻어 마신 양파즙이 얼마인데, 라고 정용이 말끝을 흐리자, 상황이 그렇잖아, 상황이, 하면서 진만이 더 크게 씩씩거렸다. 결국 그들은 조의금 봉투에 오만원씩만 넣었다.

신발을 벗고 빈소 안으로 들어가 남들 다 하는 것처럼 향을 피우다가 진만과 정용은 슬쩍 형수의 아버지, 그러니까 돌아가신 고인의 영정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진만은 저도 모르게 흡, 안간힘을 다해 숨을 참았는데, 그러지 않고선 곧바로 웃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형수의 아버지는, 그러니까 고인이 된 구석민 어르신은, 형수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만 머리카락만 하얗게 셌을 뿐이었다. 평생을 양파 농사를 지은 분답게 영정 속 고인의 피부는 벌겋게 그을려 있었다. 그러니… 아아,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도… 자꾸만 형수의 별명인 ‘햇양파’가 떠올랐던 것이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웃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진만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종아리에 힘을 주었다. 절을 하려고 섰는데 저도 모르게 상체가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정용도 진만과 마찬가지로 숨을 참고 있는지 목과 이마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절을 하기 시작했다. 삼육구, 삼육구, 일, 이, 짝! 진만은 계속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칠레 수도는 산티아고, 콜롬비아 수도는 보고타, 대한민국 양파의 수도는 무안, 무안에서 나오는 햇양파… 아니다, 아니다, 참아야 한다… 진만은 겨우 두 번 절을 올렸는데 그사이 귀밑머리 아래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다행히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 잘 참았는데… 형수와 맞절을 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풉, 하고 소리를 내고 말았다. 형수 아버지 때문이 아니었다. 상주인 형수의 머리가, 아마도 며칠 제대로 감지도 못한 게 뻔한 형수의 가운데 머리카락이, 더 뾰족하게 하늘로 솟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줘서 고맙다.” 육개장을 먹고 주차장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형수가 따라 나와 인사를 했다. 조의금을 받던 영걸도 따라 나왔다. “네가 더 나빠, 이 새끼야!” 진만이 영걸의 배를 주먹으로 툭 쳤다. 자기가 웃음을 참지 못한 게 다 영걸 때문인 거 같았다. “양파값 많이 떨어졌다며?” 정용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 몇 해 걸러 한 번씩 꼭 그래.” 형수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진만은 자신이 더 큰 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그들은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힘내, 햇양파.” 이번엔 진만이 웃지 않고 말했다. “그 좋은 황토, 어디 가겠냐?” 형수가 진만을 보며 슬쩍 웃었다. 형수의 나이는 올해 스물여덟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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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만은 자취방으로 돌아오다가 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삼십대 초반쯤 되어 보였는데, 검은색 항공 점퍼에 색 바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가르마를 타지 않고 얌전히 아래로 내린 머리카락은 눈썹을 다 가리고 있었고, 입술 바로 위쪽엔 무언가에 베인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마른 체형이었고, 키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얀색 손수건을 손목에 마치 팔찌처럼 묶고 있었다는 점이다. 남자가 담배를 피우거나 휴대폰을 귀에 댈 때 그 손수건이 도드라져 보였다. 

진만은 그 남자 이야기를 정용에게 꺼냈다.

“좀 이상하더라고…. 인상도 안 좋고.”

“뭐 볼일이 있나 보지. 우리 동네에 사람이 좀 많이 사냐?”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용은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말했다. 그 말이 맞긴 했다. 원룸촌이 있고 임대아파트 단지가 있고, 또 걸어서 5분 거리에 커다란 가구공장 단지도 있으니까. 아침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나가 보면 낯선 얼굴들이 마치 주차장에 깔아놓은 조약돌들처럼 다닥다닥 한 곳을 보고 서 있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밤에는 그 많은 사람이 다 외박을 하나 싶게 동네가 조용했다. 진만이 어렸을 땐 무슨 돌림노래처럼 하루 건너 한 번씩 이웃에서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 또 그 사람들을 말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싸울 사람이 있어야 싸우지. 정용은 툭 그런 말을 했다. 요샌 부부도 카톡으로 싸운대. 이쪽 방 저쪽 방 각각 떨어져서. 그게 더 깔끔하긴 하지. 

“아니 볼일이 있는 거 같진 않고…. 계속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로 서 있더라고. 그것도 사흘 연속.”

“별게 다 이상하네. 신경 꺼. 사람들은 네가 더 이상해 보일 거야.”

“내가? 내가 뭐가 어때서?”

“너 맨날 빈 페트병 들고 동사무소 간다며? 거기 정수기 물 받으러.” 

“아니, 그건 그냥 거기가 편의점보다 더 가까우니까….”

“구질구질하게. 거기가 무슨 약수터냐? 동사무소 직원들은 그럼 다람쥐냐?”

진만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음날 진만은 집으로 돌아오다가 다시 그 남자와 마주쳤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날과 사정이 좀 달랐다. 남자는 늘 있던 곳이 아닌, 한 원룸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이층 불 꺼진 유리창을 노려보면서 입 모양만으로, 소리는 전혀 내지 않은 채, 계속 욕을 하고 있었다. “씨발년아!” 그는 분명 그렇게 욕했다. 한 손으로 무언가 집어 던지는 시늉을 하기도 했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진만만 남자를 본 것은 아니었다.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보았으나, 남자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남자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이고 가던 길을 갔다.

아이 씨, 어쩌지….

진만은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처음 남자를 봤다면 아무렇지 않게, 남들처럼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벌써 네 번째였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 딱 한 명 존재하는 목격자처럼 여겨졌다. 진만은 일부러 발길을 돌려 남자의 앞을 다시 한번 지나쳤다. 남자는 여전히 이층 유리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만은 골목길 코너를 돌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지금 어떤 남자가 원룸 건물 앞에서 욕을 하고 있다는 거죠?”

“아니, 소리를 내진 않는데요. 분명히 욕은 맞고요, 발길질도 하고 있어요.”

“발길질이요? 지나가는 사람한테요?”

“아니요. 지나가는 사람은 아니고 이층에 대고요.”

112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니까 욕을 하긴 하는데 소리는 안 나고, 발길질을 하긴 하는데 사람한테 하는 건 아니란 말씀이시죠?”

“네….”

“그럼 뭐가 문제인 거죠?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이 피해 본 게 있으신가요?”

이번엔 진만이 침묵을 지켰다.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저희 관할 경찰에게 순찰을 돌아보라고 연락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통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진만은 순찰차가 올 때까지 남자에게서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남자는 이제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저러다 말겠지. 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 진만은 그냥 자취방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진만이 있는 골목길로 순찰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됐네. 진만이 혼잣말을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남자가 또다시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남자는 순찰차의 경광등이 보이자마자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던 트럭 아래로 몸을 숨겼다. 진만은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순찰차에 탄 경찰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진만이 순찰차 쪽으로 다가가서 그 사람이 저 밑에, 저 트럭 아래 몸을 숨겼어요, 말을 하면 됐지만, 그러자면 그 남자에게 들킬 것만 같았다. 남들에겐 아무 피해도 입히지 않고 허공에 발길질을 한 남자에게…. 진만은 망설였다. 그리고 그 망설임이 끝나기도 전에 순찰차는 천천히 골목길을 벗어났다. 남자가 트럭 아래에서 기어 나와 툭툭, 아무렇지도 않게 바지를 터는 모습이 보였다.

그다음 날 오후, 진만은 물류창고로 출근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진만이 종종 들르던 편의점 앞이었다. 그 출입문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에고, 세상에 끔찍해라. 알바생이 뭔 죄가 있다고….”

한 중년 여자가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 시간에 알바한 게 죄지 뭐.”

남자는 짧게 말했다. 진만은 어젯밤 남자를 떠올렸으나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 이곳은 그 남자가 있던 원룸 건물과 떨어진 곳이니까, 그 남자는 거기에 볼일이 있었으니까.

“손수건으로 그랬다면서요?”

“그걸로 다짜고짜 목을….”

“에고 참….”

두 사람은 까치발을 든 채 계속 편의점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진만도 최대한 까치발을 높이 들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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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진만은 손에 든 메모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광역시 외곽에 있는 아파트 단지 정문 앞이었다. 정문 바로 옆에는 ‘하나로 마트’가 있고, ‘LH세탁소’가 있었다. 그 외 다른 상가는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512동이라며? 바로 저기 있네, 뭐.”

정용이 턱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정문 경비실 뒤편,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은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로 마치 오래된 교과서의 겉표지에 적혀 있는 듯한 숫자 ‘5’와 ‘1’과 ‘2’가 보였다. 가로등이 깜빡깜빡 수선을 피우며 들어오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과 정용은 512동 3, 4라인 입구 계단에 앉았다.

“얼굴도 모르고 핸폰 번호도 모른다는 거지?”

정용이 묻자, 진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입구 계단 옆 화단에는 개나리꽃이 한창이었다. 개나리꽃 때문인지 남루하고 조용한 아파트 단지는 어쩐지 더 쓸쓸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럼 누군지 어떻게 알아보려고?”

“그냥 느낌이지 뭐. 난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진만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김 사장한테 꼬박꼬박 형님이라고 불렀고, 어쨌든 자기 사업을 했던 사람이니까 서른 살은 넘었을 터. 30대 중반의 남자. 전직 돈가스 전문집 사장 최현수씨.

진만은 1년 전 출장 뷔페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처 받지 못한 임금이 있었다. 열하루 치 일당에 추가 근무수당까지 총 76만8000원. 그를 고용했던 김 사장은 매일 일이 끝나면 남은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알바생 한 명 한 명의 손에 쥐여줬던 사람이었다. 진만은 그곳에서 6개월가량 일했는데, 일당도 밀리는 법이 없었고,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도 정확했다. 어느 고등학교 동문회 모임에서 만난 진상 고객(술에 취한 채 알바생에게 계속 자기네 교가를 부르라고 했다)도 김 사장이 나서서 말려주었다.

문제는 마지막 한 달이었다. 김 사장이 아닌 방 실장이라는 사람이 대신 전화를 걸어와 알바 스케줄을 잡더니, 어느 날 그마저도 끊기고 말았다. 김 사장의 전화는 계속 꺼져 있는 상태였고, 찾아가본 사무실도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에이 씨,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만은 지방고용노동청에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주저하지 않았을 텐데, 김 사장은 좀 아니었다. 어쨌든 6개월 동안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진만의 마음처럼 한 달 정도 지난 뒤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 진만아, 내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말없이 떠나왔거든. 내가 너 밀린 임금하고 계좌번호 알고 있으니까,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해줄게. 정말 미안해.

진만은 김 사장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 8개월이 넘도록 진만의 계좌에는 아무런 돈도 입금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내가 고소할까 봐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닐까? 진만에게 76만8000원은 큰돈이었다. 원룸 월세 두 달 치가 넘는 돈이었다. 월말이 되면 진만은 늘 그 돈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김 사장에게서 다시 메일이 도착했다.

- 여기 이 주소로 가면 최현수라고, 돈가스 전문집 하던 친구가 살고 있을 거야. 나한테 300만 원 정도 줄 돈이 있는데, 거기에서 85만 원을 너한테 먼저 주라고 그랬어. 그 친구도 갑자기 가게를 접는 바람에 연락이 계속 안 닿았거든. 엊그제 연락이 닿아서 너 얘기해 놨으니까 가면 돈을 줄 거야. 늦어서 미안하다, 진만아.

“근데 왜 나까지 데리고 온 거야. 너 혼자 받으면 되지?”

정용이 조금 짜증 난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달에 네가 방값 10만 원 더 냈잖아. 그거 그냥 바로 주려고.”

“이건 뭐… 다 물고 물려 있구나.”

최현수씨는 밤 8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3, 4라인으로 들어간 사람은 초등학교 아이 두 명이 전부였다. 진만과 정용은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서 최현수씨를 기다렸다. 봄밤이었지만, 허벅지 아래로 계속 한기가 느껴졌다.

밤 9시쯤, 택배 트럭 한 대가 주차장에 섰다. H택배 유니폼 조끼를 입은 남자가 조수석에 잠들어 있던 남자아이를 업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남자아이는 유치원 가방을 메고 있었다. 진만은 그가 최현수씨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저기, 김성오 사장님이 찾아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최현수씨는 잠깐 진만과 정용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선 짙은 땀 냄새가 났다. 그의 등 뒤에 업혀 있던 아이가 눈을 떴다.

“주말쯤 오실 줄 알았는데….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최현수씨는 아파트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가 “아빠, 누구야?”라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만과 정용은 느릿느릿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이 때문에…. 진만은 어쩐지 자기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하나로 마트 옆 ATM기에 들어갔다 나온 최현수씨는 진만에게 은행봉투를 내밀었다.

“그게 80만 원이거든요. 5만 원은 계좌번호를 적어주시면 다음 주에 바로 보내드릴게요.”

최현수씨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 진만을 쳐다보았다. 정용이 툭, 진만의 옆구리를 쳤다.

“아, 아닌데…. 뭔가 착오가 있나 봐요. 제가 받을 돈은 정확히 76만8000원이거든요.”

진만은 봉투에서 1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 최현수씨에게 내밀었다. 2000원은 따로 자신의 지갑에서 꺼내 맞췄다. 그러곤 정용과 함께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진만은 생각했다. 왜 받아낼 것이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우리가 뭐 뱀인가? 개나리꽃만 지천인 밤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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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잘 들어가셨나요? 전 지금 들어왔어요. 오후 8:42

성희: 어머, 제가 너무 늦게 봤네요. 네, 저도 잘 들어왔어요. 고마워요. 전 빈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이렇게 다시 연락을 주셨네요. 오후 10:12

진만: 아니에요! 늦긴요!! 전 또 무슨 일 있으신 줄 알고... 제가 더 고맙죠. 이렇게 답신도 해주시고... 전 정말 오늘 성희씨 만나고 와서 너무 좋았거든요. 진짜 무슨 인연을 만난 거 같고... 오후 10:13

성희: 저도요. 저도 아까 거리에서 처음 진만씨 봤을 때... 그때 퇴근하던 길이었죠? 오후 10:18

진만: 네, 알바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마을버스 기다리고 있을 때 성희씨가 말을 건 거예요. 오후 10:18

성희: 네, 제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진만씨 처음 봤을 때 어떤 인연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용기를 내 말을 건 거예요. 진만씨, 우리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도 되는 거죠? 저는 진만씨를 또 만나고 싶은데... 오후 10:24

진만: 그럼요, 그럼요! 저도 꼭 그러고 싶습니다! 오후 10:24

성희: 그럼 우리 돌아오는 수요일 오늘 봤던 그 카페에서 또 볼까요? 오후 10:42

진만: 네, 네! 제가 거기 일찍 나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후 10:4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 다섯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접니다! 오후 10:11

성희: 네, 진만씨. 제가 또 늦게 봤네요. 핸폰이 진동이라서... 오후 10:32

진만: 아니에요. 오늘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전 성희씨가 안 나올까 봐 걱정했거든요. 제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쑥스럽지만 전 성희씨를 만나고 있는 시간이 정말 좋습니다! 오후 10:34

성희: 네, 저도 진만씨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진만씨, 아까 우리 카페에서 우연히 미자 언니 만났잖아요. 저도 그 언니를 한 6개월 만에 처음 만나는 거였는데, 그 언니가 진짜 실력 있는 상담사거든요. 아까 우리 심리 테스트 해준 것도 그게 정말 받기 어려운 거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운이 좋은 거였죠. 진만씨랑 헤어지고 그 언니랑 같이 지하철 탔는데, 언니가 진만씨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라고, 기회가 되면 또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언니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정말 진만씨가 대단한 사람인가 봐요. 미자 언니가 진만씨에게 연락드려도 되죠? 오후 10:57

진만: 그럼요! 성희씨 선배님인데. 제가 그럴 만한 사람은 아닐 텐데... 좀 얼떨떨하네요. 아무튼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죠. 다음 주에 제가 성희씨와 선배님께 밥을 사도록 하겠습니다! 오후 10:59

 

3. 열하루째 날 - 카톡

미자: 진만씨, 김미자입니다. 오후 8:09

진만: 아, 네. 오후 8:12

미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진만씨는 영적으로 독특한 사람이에요. 굉장히 열려 있고, 또 한편 연약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이 진만씨에게 위기의 시간일 수 있어요. 혹시 요즘 쉽게 지치거나 몸이 무겁지 않으신가요? 오후 8:14

진만: 네... 그거야 제가 상하차 작업도 해서 늘... 오후 8:16

미자: 그거 보세요. 그게 진만씨의 영이 흐려지고 자꾸 장애물이 생겨서 그런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 진만씨의 영을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오후 8:18

진만: 근데, 성희씨는 정말 괜찮은가요? 오늘 나오지도 못하고 연락도 안 돼서 걱정이 되거든요. 감기가 맞는 거죠? 오후 8:20

미자: 네, 감기가 맞아요. 성희도 저한테 간곡히 부탁을 하더라고요. 진만씨를 제대로 설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자기도 열심히 기도해 보겠다고 했고요. 오후 8:23

진만: 네, 고마운 말이네요. 오후 8:28

미자: 진만씨,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성희 통해서 바로 만날 날짜 잡을 테니까, 우리 꼭 얼굴 보고 얘기해요. 제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이게 진짜 진만씨만의 특이한 경우거든요. 오후 8:29

 

4. 열여섯째 날 - 카톡

진만: 네, 좋아요. 제사가 되었든 기도가 되었든 다 해드릴게요. 한데, 성희씨... 성희씨는 어떻게 된 거죠? 성희씨를 만나서 얘기를 듣고 난 후, 제가 말씀대로 다 해드릴게요. 오후 9:11

미자: 진만씨, 지금 성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제가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성희의 영과 진만씨의 영은 서로 상극이에요. 제례를 올려서 그 원흉을 없애야 서로 만날 수 있는 거라니까요! 성희도 제 말 듣고 일부러 진만씨 만나는 거 참고 있는 거예요. 이 뿌리부터 완벽하게 캐내야 하는 거예요. 지금 진만씨 마음 어지럽히는 것도 다 그 마지막 저항인 거죠. 힘들더라도 며칠만 더 참고 기도해 보세요. 오후 9:22

진만: 네... 오후 9:31

 

5. 스무하루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오늘도 연락이 잘 안 되네요... 연락이 안 돼도 그냥 여기에 계속 말할게요. 사실 성희씨... 지금 제 마음이 많이 흔들려요. 같이 사는 친구는 그거 다 사기다, 멍청하게 속지 말라고 말하는데... 저는 계속 그 말을 믿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기라도 좋고 속아도 좋다고요. 그래도 꼭 한번 다시 성희씨 만나서 카페에서 얼굴 보고 커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처럼요... 저는 내일 미자씨 만나서 제례를 드리러 가요. 원래는 70만원인데, 특별히 성희씨 생각해서 50만원에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거 드리면 그분 말처럼 마가 사라진다고 하니까, 그땐 성희씨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마가 사라지든 사라지지 않든, 제 마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성희씨가 이런 제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전부예요. 기다릴게요. 오전 2:47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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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 뒤쪽으로 재개발을 하다가 수년째 방치된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다. 정용은 그곳을 오르다가 평소엔 보지 못했던 커다란 바위 하나가 길 한가운데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바위는 리어카 크기만 했는데, 절반쯤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이 밖으로 나왔는지 아랫부분이 검고 축축한 모습이었다. 이게 왜 여기 나와 있지?

정용은 바위 둘레를 돌아보며 괜스레 발뒤꿈치로 툭툭 윗부분을 쳐보았다. 윗부분은 제법 평평해 보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누군가 정 같은 것으로 계속 내리친 듯 모나고 깨진 흔적이 많았다. 그 길은 정용이 아주 가끔 마을버스 대신 걸어서 알바하는 편의점까지 가는, 말하자면 지름길이었다. 평상시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구청이나 다른 기관에서도 관리하지 않는 듯 산을 관통하는 작은 오솔길을 제외하고는 온통 잡풀과 빈 막걸리병,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비닐봉지, 오래된 시멘트 포대 같은 쓰레기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다. 야산의 3분의 1은 터파기 공사를 하다가 중단된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었고, 잡풀과 소나무에는 회갈색 먼지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용은 잠깐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웠다. 요 며칠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대기를 메우더니 바로 그제부턴 날씨가 많이 풀리기 시작했다. 등으로 흘러내린 땀이 그다지 차갑게 느껴지진 않았다. 정용은 담배를 피우면서 어제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메시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어머니는 아버지 혈압이 160까지 올라갔다며, 네가 한번 들렀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정용은 그 문자를 보고도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았지만, 대신 밤늦도록 잠을 설쳤다. 그러고도 다른 날보다 일찍 잠이 깼다. 그는 자취방 벽에 기대앉아 멀거니 스마트폰으로 포털 화면 메인에 나와 있는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대형교회에서 차명 계좌 수백 개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그는 또 포털 화면 맨 아래쪽에 배치된 어느 늙은 교수의 동영상 강의도 보았는데, 그는 유럽의 식민지배와 제국주의가 상속받지 못한 자들의 울분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말을 했다. 식민지로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 상속에서 밀려난 차남이나 서자 출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용은 그 강의를 끝까지 다 보지 않고 중간에서 멈췄다. 그는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바 시간까지는 아직 세 시간도 더 남아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야산 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 바위, 젊은이하고 상관있소?”

반대편 길에서 올라온 한 남자가 정용 앞에 멈춰 서서 물었다. 그는 등산화에 등산조끼, 큼지막한 배낭을 멘 차림이었는데, 얼핏 봐서도 60대 초반은 되어 보였다. 그는 손에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다.

“아니요. 저는 그냥 잠깐…”

정용이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남자가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럼, 내 일 좀 하리다.”

남자는 배낭에서 굵고 긴 밧줄을 꺼냈다. 롤러처럼 생긴 둥근 막대도 몇 개 꺼냈는데, 대부분 쇠로 되어 있는 거 같았다. 배낭 옆에는 접이식 군용 야삽도 매달려 있었다. 정용은 바위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 남자가 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남자는 등산조끼를 벗어 빈 배낭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더니, 이윽고 놀랍도록 맹렬한 속도로 야삽을 이용해 바위 아래를 파 내려갔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땅은 여전히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바위 아래 흙을 파 내려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는 그의 머리와 이마는 어느새 벌겋게 변해버렸다.

“이게…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죠?”

정용이 같은 자리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정용은 어쩐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겠소.”

남자가 허리를 한 번 펴면서 말했다. 그의 목울대 근처로 퍼런 힘줄이 보였다.

“뭔 조화인지 웬 두꺼비처럼 어느 날 아침부터 여기 앉아 있었소.”

남자는 배낭에서 작은 페트병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연한 갈색을 띠는 알 수 없는 물이 들어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마셨다. 무언가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나온 것 같았다.

“한데, 어르신이 이걸 왜…?”

정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좋지 않소? 할 일도 없었는데…”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야삽을 들었다. 정용은 그냥 그대로 편의점 쪽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기로 했다. 아직 출근 시간까지 두 시간도 더 남아 있었다. 정용은 발로 쓱쓱 남자가 퍼낸 흙을 뒤쪽으로 밀어냈다.

“에헤이, 하지 마소. 젊은 사람이 뭐 한다고…”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야산엔 정용과 남자 외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고,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았다. 남자의 야삽 날이 땅속에 숨은 돌멩이와 부딪히는지 가끔씩 쇳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하지 마세요. 이게 무슨…”

정용은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마치 웅얼거리듯 내뱉었다. 남자가 일을 멈추고 정용을 돌아보았다. 정용은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

“이건 몇 명이 달라붙어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괜히 힘만 뺏기고…”

“허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소. 나는 이런 걸 보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남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 후, 다시 땅을 팠다.

그러니까, 그렇게 어르신 좋아서 하는 일만 하지 마시라구요! 차라리 일을 하고 돈을 버세요! 그 힘으로 다른 일을 하시라구요! 이게 뭡니까, 이게! 다른 사람 마음 불편하게 만들고….

정용은 그렇게 남자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남자 앞에 버티고 있는 바위를 계속 노려보았다. 정용은 그 바위가 먼 후대까지 이 자리에 계속 버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젊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고, 나이 든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들면서. 정용은 몸을 돌려 반대편 길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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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까지 상하차 알바를 끝내고 자취방으로 돌아온 진만은 곧장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뜬 시간은 밤 10시. 함께 사는 정용은 편의점 알바를 나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진만은 라면을 끓여 먹을까 하다가, 추리닝 바지에 점퍼만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김밥천국에 갈 작정이었다. 월급을 받은 날이니까, 오랜만에 ‘스페셜 정식’을 먹을 생각이었다. 경양식 돈가스에 원조김밥이 함께 나오는 ‘스페셜 정식’은 팔천원이었다. 진만은 정용과 함께 일주일에 두세 번씩 김밥천국에서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그때는 늘 짬뽕라면에 원조김밥, 떡라면에 공깃밥 하는 식이었다. 가격은 육천오백원. ‘스페셜 정식’과는 불과 천오백원 차이였지만, 그래도 주문은 늘 그렇게 했다.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진만은 마음이 가벼웠다.

밤 10시를 넘긴 시간이었지만, 김밥천국엔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두 명이 함께 온 테이블도 있었지만, 진만처럼 혼자 온 사람이 더 많았다. 양복 차림의 사람도 있었고, 교복을 입은 학생도 눈에 띄었다. 혼자 온 사람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밥을 먹거나 밥을 기다리거나, 모두 한결같은 포즈였다. 진만은 알바생이 안내한 대로 야구모자를 질끈 눌러쓴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야구모자 남자 역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진만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예전, 진만은 산 중턱에 이층짜리 건물을 짓는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었다. 카페인지 가든인지, 예스러운 기와를 올린 건물이었는데 거기에서 시멘트와 모래를 나르는 일이었다. 산 중턱이어서 당연히 ‘함바집’이 없었다. 오전엔 간식으로 카스텔라와 우유가 나왔고, 점심은 산 아래 한솥도시락에서 ‘도련님 도시락’이나 ‘고기고기 도시락’ 같은 걸 단체 배달시켜 먹었다.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한 10월 초였지만, 오전 내내 시멘트와 모래를 나르다 보면 신발까지 땀범벅이 되었다. 머리칼과 눈썹은 시멘트가 묻어 희끗희끗하고 뻣뻣해졌다. 인부들은 손도 씻지 않고 그대로 공사현장 바로 앞에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었다. 진만도 인부들 틈에 끼어 밥을 먹었는데, 그게 좀 불편했다. 며칠 함께 일해서 낯이 익은 인부들은 밥을 먹으면서 계속 참견을 했다. 군대는 다녀왔냐, 고향은 어디냐, 그 김치는 남길 거냐, 등등. 진만은 대답하느라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도시락을 받자마자 약수터에 갔다 온다는 핑계를 대고 건설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등산로 옆 잘려나간 나무둥치에 앉아 혼자 먹었다. 쓸데없는 질문도 없고, 간섭도 없어서 좋았지만, 이번엔 등산객들이 문제였다. 등산객들은 힐끔힐끔 진만을 쳐다보며, 역력히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중년 여성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등산로를 올라오다가 진만을 발견하자마자 ‘에구머니나!’ 소리치기도 했다. 진만은 그날 이후부턴 그냥 하던 대로 인부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야구모자 남자가 시킨 라면이 먼저 나왔고, 곧바로 진만이 시킨 ‘스페셜 정식’도 같은 테이블에 놓였다. 진만이 시킨 ‘스페셜 정식’은 둥근 플라스틱 접시에 돈가스와 원조김밥이 함께 담겨 나왔다.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먹으려던 야구모자 남자가 흘깃 진만 앞에 놓인 ‘스페셜 정식’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다시 후루룩 소리를 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진만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최대한 조용하게 돈가스를 썰었다. 여기 돈가스가 이렇게 컸나. 진만은 처음으로 그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거 좀 조용히 먹읍시다.”

야구모자 남자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오십대 중반의 사내가 말했다. 사내는 정수리가 훤히 드러난 대머리였는데, 술을 한잔 걸쳤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사내 앞에는 짬뽕라면이 놓여 있었다. 라면을 후루룩 소리 내어 먹는 게 문제였는지, 아니면 야구모자 남자 손에 쥐어져 있던 스마트폰이 문제였는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다만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간격이 지나치게 좁았다는 것, 그건 명확했다. 진만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조용히 원조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에이씨, 별 꼰대 같은 게 다….”

야구모자 남자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작게 혼잣말을 했다. 대머리 사내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들은 모양이었다.

“너 이 자식, 지금 뭐라고 그랬어? 뭐라고 그랬어!”

대머리 사내가 젓가락을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야구모자 남자도 지지 않고 젓가락을 매장 바닥에 내던지면서 일어났다. 김밥천국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대머리 사내와 야구모자 남자에게로 쏠렸다.

“이 자식이 진짜! 너 몇 살이야!”

대머리 사내가 멱살이라도 잡을 듯 야구모자 남자에게 다가섰다. 야구모자 남자도 물러서지 않았다.

“에이 씨발, 조용히 라면이나 처먹지 왜 지랄인데!”

“이 자식이 그래도!”

대머리 사내가 야구모자 남자의 가슴을 툭 밀치자, 야구모자 남자가 진만의 돈가스 그릇 바로 옆에 놓여 있던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알바생이 ‘꺅!’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대머리 사내는…마치 무슨 분신술이라도 쓰는 사람처럼, 재빠르게 매장 밖으로 도망쳤다. 야구모자 남자는 그런 대머리 사내를 쫓지 않았는데, 그는 다시 툭 나이프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혼잣말을 했을 뿐이었다. ‘좆도 아닌 새끼가….’ 그는 자리에 앉는 대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알바생에게 라면값을 치르고 김밥천국 밖으로 빠져나갔다.

진만은 그 모든 일을 굳은 듯 지켜보았다. 야구모자 남자가 나간 후, 사람들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라볶이를, 비빔밥을 먹기 시작했다. 진만 또한 자신의 ‘스페셜 정식’을 내려다보았다. 돈가스는 아직 채 반도 썰지 못한 상태였다. 야구모자 남자가 손에 쥐었던 나이프는 테이블 위에 사선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진만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다시 그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돈가스를 썰기 시작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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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진만은 욕실 거울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건 뭐 너무 예민하잖아. 욕실문 밖에선 계속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저와 그릇이 서로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알 굵은 우박이 슬레이트 지붕 위로 쏟아지는 것처럼 요란했다. 정용은 왜 저렇게 쉽게 화를 내는가? 저것도 병은 아닐까? 진만은 쉽게 욕실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정용은 원래 그런 친구가 아니었다. 말이 좀 없어서 그렇지, 요즘처럼 벌컥 화를 내거나 계속 미간을 웅크리고 다니는 친구는 아니었다. 정용이 편의점 알바를 하는 시간에, 진만은 종종 그곳 테이블에 앉아 폐기등록 된 삼각김밥을 얻어먹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정용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그때도 정용은 뭐랄까, 마치 주유소 앞에 세워둔 막대풍선처럼 감정 없이 사람을 대하고 똑같은 표정으로 포스기를 찍는 알바생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자정 무렵이었는데, 그때도 진만은 편의점 안 테이블에 앉아 휴대폰으로 그날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었다. 정용은 계산대 뒤에 서서 검수기를 꺼내 물건 수량을 확인하고, 빈 물품을 창고에서 꺼내오느라 잠시도 쉬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님들은 끊이지 않고 계속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중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정용에게 벌컥 화를 냈다.

“너도 나 무시하냐?”

정용은 남자의 얼굴을 1~2초 정도 말없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니, 손님. 그게 아니구요. 비닐봉지도 따로 20원을 받게 되어 있어서요….”

“그러니까 너도 내가 20원짜리로 보이냐구?”

남자가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물품은 소주 한 병이 전부였다. 진만은 앉은 채로 허리를 길게 빼 남자와 정용을 바라보았다. 정용은 잠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가 이내 비닐봉지에 소주를 담았다. 네, 여기 있습니다, 손님. 정용은 인사말도 빼먹지 않았다.

“잘해, 새끼야. 너도 그러다가 20원짜리 되니까.”

남자는 끝까지 욕을 하고 나갔지만, 정용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손님을 받고 계속 물품 정리를 했다.

“화 안 나?”

손님이 뜸해졌을 때 진만이 정용에게 물었다.

“화나지….”

정용은 계산대 위에 빨대와 나무젓가락을 채우면서 말했다.

“비닐봉지 그냥 주다가 20원씩 받으라는 놈들한테 화가 나지. 걔네들은 20원을 서로 주고받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 애들이거든. 책상에 앉아서 툭툭. 20원 내라고 하면 일회용품 사라질 거다, 툭툭.”

그랬던 정용이 변한 것이었다. 그제는 퇴근한 정용이 원룸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다 말고 무언가를 세게 바닥에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방에 누워 있던 진만은 슬쩍 욕실 쪽으로 가 보았다.

“뭐야, 왜 그래?”

정용은 진만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탈탈,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욕실 바닥에는 빈 로션통이 뚜껑과 분리된 채 나동그라져 있었다. 정용이 샀으나, 진만도 함께 쓴 로션. 며칠 전부터 뚜껑에 달린 펌프를 누르면 휘파람 소리만 나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던 로션.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정용은 아무 말 없이 침대에 가 누웠다. 진만은 그런 정용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빈 로션통을 치웠다.

“저기….”

진만은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방에 불이 꺼진 지 20여분이 지난 뒤였다. 정용은 침대에서, 진만은 바닥에 요를 깔고 누운 상태였다.

“요즘 나한테 뭐 화나는 일 있어?”

정용은 끙, 소리를 내며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로션 때문에 그래? 네가 사 놓은 걸 내가 막 써서? 그거 내가 인터넷에 주문했는데….”

“뭔 소리야? 잠이나 자. 나 피곤해….”

정용은 2주 전부터 편의점 알바 외에 따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시작했다. 숯불갈비집 설거지 아르바이트였다. 접시만 400개 넘게 닦는 아르바이트. 정용은 토요일, 일요일 밤 9시까지 근무하고, 바로 일요일 밤 10시부터 다시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다.  

진만은 정용이 계속 화를 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유튜브에서 무슨 심리학과 교수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화가 나면 그때그때 풀어야 한대. 그래야 마음의 병도 안 생기고 속병도 안 생긴대.”

진만은 아예 정용 쪽으로 돌아누워 말했지만, 정용은 반응이 없었다.

“남들한테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병이 될 수 있고….”

진만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정용이 휙 이불을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용은 침대에 앉은 채 진만에게 말했다.

“야, 도대체 어떤 새끼가 그딴 소리 하니?”

진만은 정용의 말에 살짝 어깨를 웅크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새끼 교수 맞아? 네가 그 새끼 유튜브에 들어가서 댓글 좀 달아. 똑똑히 알고 지껄이라고.”

정용은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고 말을 이었다.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 치는 줄 아냐구?”

진만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정용의 말을 듣기만 했다.

“피곤해서 그런 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안 피곤한 놈들이나 책상에 앉아서 친절도 병이 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구!”

정용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진만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정용은 지금 피곤하니까. 피곤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잠자는 것뿐이 없으니까. 진만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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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하다 보면요, 진짜 이상한 사장들, 황당한 점장들 많이 만나잖아요.”

“그야, 그렇죠…. 한데 어디 그게 사장들만 그런가요? 같이 일하는 알바 중에도 이상한 애들이 진짜 많아서….”

“진만씨는 아직… 괜찮죠?”

“네? 뭐가요?”

“아니, 우리 사장한테 이상한 말 안 들었냐고요?” “이상한 말이요? 아니오, 저는 아직….”

“그런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기 나중에 하면 안될까요?”

“잠깐이면 돼요. 이게 진짜 중요한 이야기거든요.”

“제가 버스를 놓치면 걸어가야 하는데….”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 사장이 겉만 보면 진짜 멀쩡하잖아요. 숯불갈비집 사장 같지 않고 카운터에 와이셔츠 입고 앉아서 책이나 보고…. 나는요, 맨 처음에 우리 사장이 부모 잘 만나서 가게 물려받은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한데, 알고 보니까 우리 사장이 원래 절에 들어가서 고시 공부하던 사람이래요. 몇 년 그렇게 하다가 포기하고 내려와서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나 뭐라나. 암튼 그 돈으로 카페 운영하다가 거기서도 또 돈을 더 벌어서 차린 게 지금 이 숯불갈비집이래요.”

“아니, 진짜 제가 막차를 놓치면….”

“진만씨도 우리 사장이 홀서빙 도와주는 거 한 번도 못 봤죠? 우리 사장은요, 아무리 바빠도 카운터에서 일어나질 않아요. 바쁠 땐 알바들이 불판도 닦다가 다시 그 손으로 반찬도 내가고, 테이블도 정리하고, 그래야 해요. 진만씨도 이제 보름 가까이 되었으니까 알 거 아니에요? 우리 사장은 알바가 해야 할 일, 사장이 해야 할 일, 딱딱 구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손님이 기분 나빠하든 말든 아닌 건 때려죽여도 아닌 사람인 거죠.”

“저기 그러면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면서 얘기할까요? 제가 진짜 택시비가 없어서요.”

“사실, 전 여기 딱 한 달만 일하고 그만둘 생각이었거든요. 진만씨도 해봐서 알겠지만 이 알바가 이게 장난이 아니잖아요. 숯불도 만들고 기름때도 벗겨내고 서빙도 하고…. 말이 알바지 무슨 조선시대 노비 같잖아요. 그러고 시급 천 원 더 얹어 받는 건데, 여름 되니까 진짜 못 해먹겠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월급만 받으면 그다음 날 바로 때려치우려고 했는데 한 이십 일쯤 됐을 때던가, 사장이 저만 따로 부르더라고요.”

“저기, 걸음 좀 빨리해주셨으면….”

“손님들 뜸해졌을 때 저를 룸으로 부르더니, 대뜸 가족 중에 제 명까지 못 살고 일찍 돌아가신 분이 없냐고 묻는 거예요.”

“사장님이요? 상수씨한테요?”

“네. 그러니까 좀 이상하잖아요. 그전까지는 뭐해라, 뭐해라, 지시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 가족 얘기를 묻고, 그것도 일찍 죽은 사람이 있냐 없냐, 물으니까….”

“거, 왜 그랬을까요?”

“기분이 좀 더럽더라고요. 자기가 사장이면 사장이지, 알바한테 별소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죠. 우리 집은 아버지가 좀 편찮으셔서 그렇지 부모님 두 분 다 멀쩡하게 살아 계시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여든 넘어서까지 사셨고…. 그래서 그냥 대답도 안 하고 멍하니 바라만 봤더니 사장이 더 이상한 말을 하는 거예요.”

“어떤…?”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옛날부터 귀신을 좀 본다는 거예요. 사람들 어깨에 올라타 있는 귀신을. 사실 자기가 절에 들어간 것도 고시 공부하러 간 게 아니라, 그거 좀 안 보이게 해달라고 부처님한테 빌러 갔다는 거예요. 한데 절에 있으면서도 계속 신도들 어깨에 붙어 있는 귀신들이 보이니까 그냥 그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거예요. 자기가 카운터에만 앉아 있는 이유도 손님들한테 있는 귀신이 자기한테 넘어올까 봐 그러는 건데…. 사장이 그 귀신이 내 어깨에도 한 명 있다는 거예요. 중년 남자 귀신이….”

“네? 아니, 그게 무슨….”

“저도 처음엔 그냥 사장이 놀리려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괜히 심심하니까 저러나, 하고 말았죠. 한데, 그 말이 자꾸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 거예요. 일할 때도 괜히 어깨가 무거워지는 거 같고. 그래서 막 들고 가던 숯도 쏟을 뻔하고. 그리고 더 결정적인 건 우리 외삼촌 중 한 분이 아파트 공사장 비계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는, 한 십 년 전 어머니가 했던 말을 기억해낸 거예요. 그러니까 더 죽겠는 거예요.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거울도 못 보겠고.”

“어어, 그럼 진짜… 우리 사장이….”

“제가 그렇게 일주일간 계속 잠도 못 자고 고생하다가 우리 사장한테 사정했다는 거 아니에요. 정말 제 어깨에 누가 있는 게 맞냐고? 그럼 이걸 어찌해야 하냐고?”

“그랬더니 사장이, 아니, 사장님이 뭐래요?”

“사장이… 그게 쉽게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거예요. 자기가 저를 보면서 계속 기도를 드릴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눈앞에 있으라고. 어깨 위 귀신 때문에 네 인생이 지금까지 제대로 풀리지 않은 거라고.”

“좀 무시무시하네요. 그런 얘기는 진짜 어디 영화에나 나오는 건지 알았는데….”

“그래서 제가 여기서 일한 지 벌써 반년이 넘었잖아요.”

“그래, 좀… 괜찮아졌어요? 사장이 진짜 기도도 해주고?”

“기도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근데 진만씨, 진짜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더, 더 있어요?”

“우리 갈비집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두 분도 다 어깨에 귀신이 있다는 거예요. 사장이 그 아주머니들한테도 그렇게 말해서 아주머니들도 벌써 이 년 넘게 여기서만 일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만두지도 못하고.”

“네?”

“이게 뭘 뜻하는지 아시겠죠? 세상에 진짜 이상한 사장이 많다니까요. 그러니까 진만씨도 조심하라고요.”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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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은 대학교 2년 선배인 철민의 전화를 받았다.

“너, 송 교수님 알지? 송 교수님이 이번에 정년퇴임하시잖니.”

철민 선배의 말인즉슨, 학과 동문회에서 송 교수의 정년퇴임식을 광역시에 있는 한 호텔 연회장에서 열기로 했는데, 시간 괜찮으면 꼭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제가요? 제가 그런 자리에 왜….”

정용은 말꼬리를 흐렸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뜻을 전했다고 생각했다. 원래 그런 자리는 성공한 제자들이나 참석하는 행사가 아니던가. 화환도 보내고, 꽃다발도 들고 가고,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처럼 봉투에 돈도 넣고…. 직업이라곤 택배 상하차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고 있는 처지인데…사촌여동생 결혼식도 부조금이 없어서 못 갔는데….

“그냥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거야. 그런 행사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제자들 몇 명 왔나, 그게 제일 중요하거든. 경비는 다 채워졌으니까 넌 그냥 와서 밥만 먹고 가면 되는 거야.”

철민 선배는 학과 내 소모임 회장을 2년 연속 맡으면서도 평점 4.0 아래로 한 번도 내려간 적 없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졸업하던 그해, 학과 교수 추천을 받아 지역인재전형으로 공기업에 입사해 지금까지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 추천서를 써준 사람이 바로 송 교수였다. 정용은 철민에게 노력해볼게요,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송 교수보다도, 철민을 보는 게 어쩐지 정용에겐 더 자신 없는 일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학부 시절, 송 교수에 대한 추억은 별다른 게 없었다. 송 교수는 허리가 좋지 않아 늘 왼쪽 허리를 한 손으로 짚은 채 강의를 하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강의 시간을 꽉꽉 채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휴강도 없었고, 중간고사 기간이나 축제 기간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는 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학생들과 무람없이 지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송 교수는 학술답사나 엠티 같은 학과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했지만, 학생들과 둘러앉아 술자리를 함께하진 않았다. 늘 밤 9시만 되면 소리 없이 숙소로 사라지곤 했다. 세상에, 엠티에 양복 입고 오는 교수님은 전 세계적으로 저분밖에 없을 거야. 그게 바로 송 교수였다.

“그래서? 갈 거야?”

진만이 정용에게 물었다.

“뭐 일도 없고…가서 밥이나 얻어먹고 오지, 뭐.”

정용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자리 가는 제자가 따로 있고, 갈 수 없는 제자가 따로 있나? 오기 같은 게 생기기도 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갈까?”

“넌 송 교수님한테 배우지도 않았잖아?”

“과는 달라도…뭐 어쨌든 동문이니까….”

정용은 갑자기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퇴임식은 오후 5시부터 시작되었다. 호텔은 정용이 생각한 것보다 크지 않았고, 연회장도 일반 식당 정도로 작았다. 정용은 연회장 앞에 코르사주를 단 채 서 있는 송 교수를 보고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양복을 입고 있는 송 교수는 불과 2년 만에 다시 보는 것이었지만, 마치 오래전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낯설어 보였다.

“어어, 그래. 자네들도 왔는가?”

송 교수는 악수를 청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교수님, 새 출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진만이 허리를 숙인 채 말했다. 정용은 그 옆에서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송 교수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퇴임식은 동료 교수와 제자 대표의 축사, 그리고 송 교수의 퇴임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이거 봐라, 이거. 마지막까지 강의하신단다.”

연회장 같은 테이블에 앉은 철민 선배가 프린트된 유인물을 나눠주며 말했다. 유인물 맨 위에는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진만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TV프로그램 ‘짤방’을 소리 죽여 보았다. 정용은 송 교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연회장에 온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구두를 신지 않은 사람은 자신과 진만뿐인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진지하게 송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었다. 그래, 사는 게 팍팍하지 않으면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이 궁금하기도 하겠지. 최저임금이니 고용상황이니 하는 것들보다, 한국 현대사의 쟁점들도 만만치 않게 중요한 거겠지. 정용의 마음은 점점 더 뾰족하게 변해갔다. 정용은 이 자리에 온 것을 후회했다.

 

식사는 뷔페식이었다. 정용은 음식을 한 번 갖다 먹고 난 후, 연회장 밖 주차장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연회장 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오는 것 같아서 자세히 보니, 송 교수였다. 정용은 황급히 담배를 감췄다.

“같이 한 대 피우세.”

송 교수는 정용의 옆에 섰다.

“정용군, 박정용군 맞지? 4학년 때 내 강의 C학점 받은….”

정용은 말없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송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다.

“한심하지, 이런 자리?”

“네? 아니, 저는 저기….”

송 교수는 한 손으로 계속 허리를 짚고 있었다.

“나이 들면 이런 자리 아니면 젊은 사람들을 잘 못 만나.”

정용은 고개를 돌려 담배 연기를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내가 죽기 전에 자네들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겠나? 그 생각하면서 오래 말했네.”

연회장 쪽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은 모양이었다.

“정용군.”

“네, 선생님.”

“와줘서 고맙네. 늙은이들 말 귀담아듣지 말고, 우리 서로 얼굴만 기억함세.”

정용은 계속 자신의 운동화만 내려다본 채 서 있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기용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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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 무렵, 진만은 남들은 다 먹는 삼계탕은 먹지 못하고, 그 대신 더위를 먹고 말았다.

몇 달 전에도 한 번 해봤던 물류창고 야간 상하차 알바를 닷새째 했을 때였다. 저녁 출근 준비를 위해 샤워를 하는데 이상하게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도 무겁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어, 뭐지? 진만은 샤워기를 든 채 가만히 변기 위에 앉았다. 현기증도, 무력감도, 나아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진만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시간은 밤 9시부터 오전 9시까지였다. 지역에 따라 분류된 박스를 트럭에 쌓는 일이었는데, 예전에 한 번 해봐서 그런지 사흘 정도 하니까 몸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이런 더위에, 대낮에 일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밤에도 이렇게 더운데… 진만은 쉬는 시간마다 함께 일하는 알바생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아는 어떤 형은요,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는데요, 거긴 노가다 십장 아저씨가 삼십 분마다 호스로 물을 뿌려준대요’ ‘어디에? 건물에?’ ‘아니요, 인부들한테요’ ‘인부들이 무슨 젖소냐?’ ‘근데 그 형은 그게 너무 고맙대요. 그거 아니면 쓰러진다고…’ 그래,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러니 이런 야밤에 알바를 할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진만은 그렇게 생각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대낮이었다. 잠을 자야 하는데… 도통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진만의 원룸은 친구 정용과 함께 사는 반지하의 월세방이었다. 대낮에도 해가 들지 않아 겨울엔 몹시 추웠다. 그러니 반대로 여름엔 시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겨울엔 없던 습기만 더 더해진 꼴이었다.

더운 건 마찬가지인데 습기가 사라지지 않으니, 매일 무슨 적도 부근 정글에 장판 하나 깔고 잠을 자는 것만 같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일 때마다 쩍쩍, 장판과 팔꿈치, 장판과 종아리가 접착제처럼 서로 헤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먹는 것보다 자는 게 더 중요한데… 진만은 자다 깰 때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다시 누웠지만, 늘 그때뿐이었다. 더위는 무심하게도 반지하 월세방에도 공평하게 찾아왔고, 진만은 늘 피곤한 상태 그대로 다시 물류창고로 나가야만 했다. 그러니, 몸에 이상이 온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진만은 욕실에서 나와 팬티만 입은 차림으로 방바닥에 누웠다. 팀장에게 몸이 좀 안 좋아서 오늘 못 나갈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니, 바로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래, 아프면 쉬어야지. 그래, 너 대신 다른 알바생들이 박스 3000개만 더 쌓으면 되니까, 괜찮아. 아프면 쉬어야지, 계속.’ 진만은 그 문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몸에 힘이 없는 것은 여전했고, 현기증은 서서히 두통으로 바뀌고 있었다. 뭐 좀 시원하게 잘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한 댓 시간만 깨지 않고 쭉 잘 수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진만은 허리를 일으켜 원룸 안을 둘러보았다. 죽부인 같은 거, 안고 자면 시원한 거… 원룸 안에는 짐이 거의 없어서, 죽부인 대용으로 쓸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진만은 무릎걸음으로 붙박이장 앞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비어 있는 컴퓨터 박스가 하나 있었다. 진만과 정용은 거기에 양말을 넣어두곤 했다. 컴퓨터 박스의 재질은 종이였지만, 비닐 코팅이 되어 있어서 표면은 그런대로 차가웠다. 진만은 양말을 모두 비우고 컴퓨터 박스를 방 한가운데로 가져왔다. 그런 다음, 누운 상태 그대로 배와 가슴 위에 컴퓨터 박스를 올려놓았다. 시원했다. 약간, 서늘한 느낌마저 일 정도로 컴퓨터 박스는 차가웠다. 무게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마치 얇은 대나무 합판을 맨살 위에 올려놓은 것만 같았다. 진만은 두 눈을 감은 채 양팔로 가슴 위에 있는 컴퓨터 박스를 끌어안았다. 훨씬 더 기분이 나아졌다. 두통도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진만은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진만은 무언가 자신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어 슬쩍 두 눈을 뜨고 말았다. 컴퓨터 박스를 안고 있는 자세 그대로였지만, 어쩐 일인지 무게감이 달랐다. 이게 왜 이러지? 진만은 몸을 조금 버둥거려 보았지만,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컴퓨터 박스를 끌어안고 있는 양팔도 풀 수가 없었다. 가위구나! 이게 말로만 듣던 가위눌림이구나! 진만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컴퓨터 박스에서 누군가의 머리가 스윽,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낯선 할아버지의 머리였다.

진만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곤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주여… 진만은 초등학교 이후 교회를 다녀본 적 없지만, 대뜸 그 말부터 먼저 나왔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가위눌림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올라온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기도를 하니까 바로 가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썼다. 주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모두 주님에게 오라 하셨지 않나요… 주여, 제게서 이 무거운 컴퓨터 박스를 거두어 주소서… 그래서 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할아버님을 당신 곁으로 데리고 가소서… 진만은 한참을 속으로 기도한 후 다시 슬쩍 눈을 떠보았다. 하지만 박스는 그대로였다. 할아버지는 박스 위로 삐죽 이마와 눈만 나온 상태로 진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는 호스를 들고 있었다. 아아, 노가다 십장이었구나, 노가다 십장 할아버지였어!   

정용은 퇴근 후, 방으로 들어오면서 진만이 팬티만 입은 채로 컴퓨터 박스를 배 위에다 올려놓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저건 또 뭐 하는 짓일까? 정용은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진만을 바라보기만 했다. 진만은 웅얼웅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주여, 제가 젖솝니까? 제가 젖소는 아니지 않습니까?”

정용은 다시 원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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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용은 한 여자를 보았다. 목이 다 드러나는 짧은 헤어스타일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흰 면티를 입은 여자였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고개가 그쪽으로 갔다. 밤 10시가 지난 시각,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거나 교차로 앞에 정차할 때마다 술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들큼한 과일 향이 났다. 사람들은 과육 안에 점점이 박힌 씨처럼 혼자 서 있거나 좌석에 앉아 졸고 있었다. 여자는 정용과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좌석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뭐지? 아는 얼굴인가? 정용은 유리창에 비친 여자의 얼굴을 훔쳐보며 속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명확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었다. 알바하다가 본 얼굴인가? 정용은 편의점과 피시방과 한과 공장과 택배 물류창고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데, 왜 자꾸 고개가 그쪽으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건 마치 트럭에 쌓아 올린 택배 박스 하나를, 아무 표정 없는 택배 박스 하나를, 오랫동안 쳐다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정용은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여자와 정용은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정용은 여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걸어가면서 그렇게 스스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버스에서 몇 번 마주쳤을 수도 있고, 마트 같은 곳에서 봤을 수도 있지. 낯이 익어서 무의식중에 시선이 간 것이겠지. 정용은 일부러 여자와의 거리를 조금 더 벌렸다. 여자는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걸었다. 편의점 옆을 지날 때, 여자는 잠깐 걸음을 멈췄으나, 그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한 손으로 얼굴 근처 날벌레를 쫓더니, 이내 다시 동네 쪽으로 걸어갔다. 정용도 같은 곳에 서서 잠깐 여자의 행동을 따라 했다.

여자가 들어간 곳은 ‘원흥 원룸’이었다. 정용이 사는 원룸 건물은 ‘원흥 원룸’ 옆 골목으로 5분쯤 더 걸어가야만 나왔다. 하지만 정용은 여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 ‘원흥 원룸’ 앞에 서 있었다. 이층 구석방에 불이 켜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용은 그 여자가 누구인지 또렷하게 기억해냈다. 단순히 같은 동네에 사는 여자가 아니었다! 정용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여자의 이름은 김명희. 정용이 대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군 입대 전에 들었던 교양 과목을 함께 수강했던 여자다. 그때도 정용은 강의 시간 내내 자꾸만 그 여자 쪽으로 시선으로 돌리곤 했다.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자꾸만 고개가 갔다. 그 여자를 7년 만에 다시 한동네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날 이후 정용은 밤마다 원룸에서 나와 ‘원흥 원룸’ 앞까지 걸어갔다. ‘원흥 원룸’ 뒤로는 단독 주택이 몇 채 있었고, 긴 초등학교 담벼락이 이어져 있었다. 밤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 않았고, 골목이 좁아 차들도 잘 다니지 않았다. 정용은 ‘원흥 원룸’ 옆 전봇대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길고양이와 눈을 맞추거나, 그도 지겨워지면 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가만히 철봉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여자는 늘 밤 10시가 넘어서 원룸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같은 숄더백을 메고 있었으며, 옷도 하루는 면티, 하루는 폴라티, 하는 식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생수와 컵라면을 사오는 날도 있었고, 식빵과 우유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오는 날도 있었다. 정용은 그 모든 것을 전봇대 뒤에 서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예전, 대학교 때처럼 정용은 그녀에게 말을 걸진 못했다. 조별과제를 같이한 적도 있었는데, 몇 번인가 전화번호를 따로 물어보려다가 결국은 입을 떼지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휘파람을 불면서 괜스레 남자 기숙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여자 기숙사 근처를 맴돌았을 뿐, 그것이 전부였다. 정용은 퇴근한 여자의 방에 불이 꺼질 때까지 두세 시간 더 그 앞에 머물다가 조용히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정용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누군가 정용의 손목을 움켜쥔 것은 그로부터 2주 정도 지난 뒤의 일이었다. 11시 무렵 언제나처럼 ‘원흥 원룸’ 근처 전봇대에 기대 서 있던 정용의 앞으로 한 여자가 휘청휘청 걸어왔다.

“너, 이 새끼, 누구야? 너 스토커지, 너 스토커 맞지!”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키가 작은 여자였다. 여자에게선 술 냄새가 났다.

“너, 내가 여기 사는 거 어떻게 알았어? 너, 내 뒷조사했어? 하, 이 새끼 봐라. 너 이름 뭐야? 진규? 창근이? 아니아니 영진이. 맞지? 하영진!”

정용은 여자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여자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놀랄 만큼 컸고, 하나둘 ‘원흥 원룸’의 창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너, 내가 여기 찾아오지 말라고 그랬지? 찾아와서 뭐? 네가 뭐? 네가 날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그런 거야?”

김명희의 방 창문도 열렸다. 정용은 잠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빨리 여자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여자는 더 꽉 정용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런 거야? 날 좋아해서 늘 여기 서 있는 거야?”

여자가 정용의 눈을 보면서 물었다. 여자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그러나 조금 슬퍼보이기도 했다. 정용이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네, 좋아해요. 사랑한다고요!”

정용이 그렇게 말하자 손목을 잡고 있던 여자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여자는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제야 정용은 후다닥, 자신의 원룸이 있는 골목길로 뛰어갈 수 있었다. 하나둘, 다시 ‘원흥 원룸’의 창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김명희의 창문도 닫혔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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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답신

오해하지는 말고 끝까지 들어주셨으면 해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쪽이 보내온 카톡을 보고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그래도 마냥 모른 척할 수만 없어서 이렇게 용기를 내 답문을 보내는 거예요. 솔직하게 이야기할게요.

사실 저는 오늘 소개팅을 나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제 처지에 지금 소개팅이라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거죠. 미향이가 지난주부터 계속 자기 얼굴을 봐서 한 번만 나가달라고 부탁 문자를 보내왔는데, 그때마다 거절했어요. 미향이 얘가 날 앞으로 얼마나 보겠다고 이러는 걸까?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아까 낮에 제가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사실 그건 작년 여름까지만 맞는 말이었어요. 미향이도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던 거죠. 저는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시험 문제집 한 번 펼쳐보지 않은 상태예요. 뭐, 포기 상태인 거죠. 그쪽도 공무원 준비한다니까 잘 아실 테죠. 시험 한두 번 보고 나면 스스로 답이 나오잖아요? 이건 마음잡고 몇 년만 노력하면 되겠다, 운만 좋으면 다음 시험에 붙을 수도 있겠다, 괜한 자신감이나 아쉬움 같은 것이 생기고…. 한데, 전 시험을 볼 때마다 더 주눅이 들더라고요. 내가 안되는 길을 억지로, 억지로, 가고 있구나, 불가능한 일들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구나…. 그런 마음을 꾹꾹 숨긴 채 삼 년을 더 붙잡고 있었는데…. 작년 여름엔 그냥 스르르, 언제 손에서 빠진지 알 수 없는 반지처럼, 어느 순간 놓고 말았어요. 그래 봤자, 저는 학원에서 공부한 것도 아니고, 혼자 자취방에서 인강으로만 준비한 거라서, 삶이 그리 달라지는 것도 없더라고요. 낮에는 변함없이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를 했고, 밤에도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어요. 인강만 안 들었을 뿐, 계속 컴퓨터로 시시한 연예인 소식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앉아 있었죠. 그 생활을 일 년 가까이 한 거예요. 잠드는 시간도 예전 인강을 듣고 컴퓨터를 끄는 그 시간과 똑같이….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변했는지조차 알지 못한 상태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으면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지낸 거죠. 그러니, 제가 무슨 소개팅에 나갈 마음 같은 게 있었겠어요? 그건 그저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건네는 시답지 않은 농담 같은 말이었을 뿐이죠.

한데, 사흘 전에 문득 생각이 변했어요. 이건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도 한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말할게요. 그날 밤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슨 음식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계속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한두 시간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한데도 제가 의자에서 일어나질 못하더라고요. 제가 사는 곳은 원룸이어서 화장실까지는 불과 몇 걸음 되지도 않는데… 머리로는 분명 화장실을 가고, 손을 씻고, 다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사실 계속 가지 않은 채 요의를 참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결국 속옷에 찔끔 지리기까지 했어요…. 그때야 문득 두려운 마음 같은 것이 들더라고요. 내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미향이한테 문자를 보내 소개팅에 나가겠다고 한 거예요. 무언가라도 당장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저도 소개팅은 처음이고, 물론 그쪽도 처음이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만나자마자 짜장면을 먹으러 간 건 너무 하셨어요. 저는 그래도 가볍게 차를 한잔 마시고, 점심시간이었으니까 그런 다음에 파스타 같은 걸 먹으러 가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들었던 소개팅의 기본 코스였거든요. 한데, 그쪽에서 근처에 기가 막힌 짜장면집이 있다고, 그쪽으로 가자고 했을 때부터, 조금 기분이 상했던 게 사실이에요. 거기다가 우리 그 집 앞에서 대기를 삼십 분이나 했잖아요? 소개팅을 나왔는데, 짜장면집 앞에서, 오늘 처음 만난 남자와 나란히 서서 삼십 분이나 기다린다는 게, 그게 저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 그쪽이 더 싫어진 것도 맞고요. 그러다 보니까 짜장면집에 들어가서도 그쪽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겠더라고요. 입맛도 없고, 그쪽이 후루룩 후루룩 소리 내서 먹는 모습도 싫고…. 어쩐지 그 모든 게 제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짜장면을 먹다가 말고 일부러 화장실도 다녀온 건데… 돌아오다 보니까 그쪽이… 그쪽이 제 짜장면을 조금 덜어서 먹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안 본 척했지만 제가 그걸 봤어요…. 그걸 보니까… 그냥 모든 게 다 서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커피라도 한잔하자는 그쪽의 말을 거절한 거예요.

솔직하게 말하는 제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그쪽도 모솔이고, 처음이라서 그랬겠죠. 그쪽도 오랫동안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대하는 게 어색해서 그랬겠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린 다 그 정도로 살고 있고, 버티고 있는 거겠죠. 미안해요. 내 마음은 지금 딱 그 정도인 거 같아요. 그쪽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겨우 그 정도가 지금의 내가 누굴 이해할 수 있는 최대치인 거 같아요. 이 정도라도 된 것이, 그래서 이렇게 답문을 보내는 것이, 저로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잘 지내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시길 바랄게요.

 

2. 재답신

죄송합니다. 제가 소개팅이 처음이라서…. 저도 친구 대신 나간 자리였거든요. 공무원 시험은 원래 소개팅 나가기로 한 친구가 준비하는 거고, 저는 그냥 알바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데… 그래서 나갔는데… 죄송합니다. 짜장면은… 그쪽이 안 드셔서 불까 봐 그만… 죄송합니다. 저도 그쪽이 힘내시길 바랄게요.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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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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