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재 | 언론인

봄볕 따가운 4월 중순 천관산 자락, 이름 높은 ‘장흥표고’ 농장이다. 버섯 종균을 참나무 토막에 삽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캡슐 모양의 종균을 참나무 구멍에 넣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번개처럼 움직인다. 일흔네 살 ‘능주댁’이나 팔순 ‘운봉댁’의 잽싼 손길에서 나이를 가늠할 길이 없다. 아침 8시 시작된 작업은 오후 6시까지 계속된다. 일손은 하루 두 차례 새참과 점심 때 잠시 멈출 뿐이다.

할머니들 솜씨는 한 치 오차 없이 움직이는 고성능 전동 로봇의 그것 그대로다.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신통할 따름이다. 그 나이에 그 기력, 그 솜씨가 놀랍다. 칠순 팔순 할머니들의 손놀림에서 강건한 힘을 느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강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온몸이 성한 데가 없는 게 그들이다. 농촌 마을 고샅에선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들을 흔히 만난다. 그 허리, 그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는 수십 년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인생 역정의 흔적일 따름이다. 젊은 사람 못잖은 일솜씨를 자랑하는 능주댁도 60년 농사일에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몇년 전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았다. 걸음걸이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논밭을 드나드는 형편이다. 그러나 밭일을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엉덩이에 붙인 채 쪼그리고 앉아 일할 수 있게 만들어진 5000원짜리 농사용 방석이 단짝이다.

 

표고버섯 수확 I 출처:경향DB

▲ “농촌의 해체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의 실종
외국 농산물이 식탁을 꾸리는 비용을 줄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농촌 아낙의 조건 없는 헌신을 어찌 대신할 수 있겠는가”

농촌 아낙에게 극한의 노동은 숙명이다. 농사일이라는 게 하늘,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이다. 변덕 날씨를 탓할 수도, 때를 놓치면 작물을 제대로 거둘 수도 없다. 젊은 축에 끼는 육십객 ‘화뱅이댁’의 꾸부정한 허리가 안쓰럽다. 가녀린 몸매의 그녀는 일 앞에서 당차고 욕심도 많다. 그는 한참 일이 밀어닥칠 땐 달빛을 등불 삼아 밤이 이슥하도록 밭일에 매달린 후유증을 피하지 못했다.

문명의 혜택도 농촌 남정네와 아낙 사이에 불공정하다. 농기구 기계화가 농촌 일손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있다. 영산강 유역에선 수십만 평 규모의 기업형 농장도 더러 눈에 띈다. 수십 사람 몫의 일을 단숨에 해치우는 트랙터와 콤바인, 이앙기, 포클레인 등 중장비 덕분이다. 문제는 그 기계화의 혜택이 남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로부터 쟁기질과 논일은 남자 몫, 밭일은 여자 몫이었다. 땅을 갈아엎거나 벼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기계는 잇달아 상용화돼 남자들의 일손을 획기적으로 줄여놓았다. 그러나 씨 뿌리고 모종을 옮기고, 김매고, 밭작물을 수확하는 기계의 개발은 더디고 더디다. 섬세한 여인의 손길이 필요한 구석은 아직 넓은 셈이다.

밭일은 아낙들의 차지다. 불볕더위 속 콩밭 매는 일은 가히 ‘고문’이다. 7월의 무성한 콩밭은 한증막이다. 그 속에 웅크린 채 김매는 작업은 극한의 지구력과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여름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린 채 고추 따는 일도 마찬가지다.

‘남산댁’도 대단위 농장의 단골 일꾼이다. 그의 출근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반이다. 마을을 순회하며 인부들을 실어 나르는 봉고차가 도착하는 시간이다. 영암의 농장까지는 백리 넘는 길이다. 일을 끝내고 다시 그 봉고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어둠이 짙은 밤이다. 별을 보고 일터로 나가 별을 보고 집에 돌아온다. 그의 남편이 부르는 그녀의 별칭은 ‘새벽반’이다.

기업형 농장인 만큼 사시사철 쉬지 않고 갖가지 작물을 재배한다. 남산댁은 한 달에 보름 이상 일한다. 벌써 6~7년째다. 그녀에게는 매운 중노동도 즐겁다. 노동의 대가로 집안 살림에 보태고 병환에 시달리는 친정아버지에게도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터다. 그동안 맏아들은 대학을 나와 취업했고, 졸업을 앞둔 둘째도 일자리가 보장돼 있다.

게다가 농촌 아낙들은 두겹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고된 농사일에 밥상 차리기, 빨래, 청소 따위 집안일도 대부분 아낙 몫이다. 그나마 세탁기가 있어 다행인가. 농민들의 입성이 예전과 달리 말끔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늘에 감사하는 농민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지난해 양파 풍작으로 값이 폭락해도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배추 값이 곤두박질해 그대로 갈아엎을지언정 하늘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인가. 두어 달 전까지 겨우내 추위에 떨던 배추들의 그 앙상한 몰골이 황량한 들판에 가득했다. 그래도 올해 다시 양파를 파종하고 가을엔 김장용 배추를 키울 것이다.

농민들은 젖 달라고 보채거나 우는 데도 서툴다. 그 쪽에는 역시 대기업이나 강력한 조직을 갖춘 이익집단의 힘과 술수가 높다. 그래선지 올해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은 농민을 유혹하는 뾰족한 방책을 내놓지 않았다. 시늉만의, 구름 잡는 방책뿐이었다. 진지한 고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숫자도 적고 힘도 약한 농민에 대한 무관심이 노골적이다. 밀가루에 고무신, 막걸리를 퍼붓던 박정희 시절의 추억을 자아낸다.

시장경제 체제는 농민들의 노동 강도를 한껏 높이고 있다. ‘농한기’는 진즉 사라졌다. ‘돈’의 흐름을 따라 작목이 바뀌고 다양화됐다. 비닐하우스는 겨울철에도 일손을 놀리지 않는다. 그러나 삶은 고단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노예로 전락한 터다. 값이 오르면 값싼 중국산을 수입해 시장을 메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값이 폭락하면 그 희생은 고스란히 농민의 몫이다.

육신의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는 농민, 특히 아낙의 힘이 오늘도 농촌을 지키고 있다. 그 조건 없는 헌신으로 자식들을 대학 보내고 나라의 인재로 키워낸다. 그 헌신은 또한 한국인 고유의 유전자, 고난을 헤쳐 가는 저력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 위대한 힘이 위기를 맞고 있다. ‘경쟁력’이라는 잣대에 밀려 농촌과 농업, 농민을 얕잡아 본 지 오래다. 농촌 해체의 그림자 속에는, 함께 사라지고 있는 값진 한국인의 유전인자가 숨어 있다. 한국 아줌마의 강인한 생명력이 그것이다.

농촌의 해체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의 실종을 의미한다. 외국 농산물이 식탁을 꾸리는 비용을 줄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농촌 아낙의 조건 없는 헌신, 하늘의 순리를 믿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대신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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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미스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번역 | 손제민 기자

1970년대 초반 일본 학생들의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 핵시설 견학을 주선한 바 있다. 견학 시점을 나가사키 원폭투하 기념일(8월9일)에 맞췄다. 이 때문에 견학 안내자는 당혹스러워했다. 자신들이 만든 플루토늄으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핸포드 핵시설 노동자들 사진 앞에 섰을 때 안내자의 목소리는 중얼거리듯 작아져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핸포드 핵시설이 얼마나 안전한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는 매우 활기를 띠었다. 그는 플루토늄 폐기물은 깊은 구덩이에 매립되며 누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모니터된다고 말했다. 내가 질문했다. “플루토늄의 반감기가 2만4000년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누가 그렇게 오랫동안 모니터하게 되지요?” “미국 정부가 하지요.” “인류 역사를 통틀어 2만4000년이나 지속된 정부가 있나요?” 그는 대답하지 않고 경멸하듯 나를 쳐다봤다. 내가 애국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매우 똑똑하고 고도로 훈련된 기술자라도 바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월성원전 앞바다에서 신규 원전 건설 반대 등을 주장하며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I 출처:경향DB

나의 전공인 정치학에서 나온 유일한 과학적 법칙이 있다면 바로 ‘권력은 부패한다’는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하지만 절대 권력에 가장 가까운 힘이 원자력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정치학자들은 거의 없다. 원자력은 특유의 방식으로 그것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타락시킨다. 사람들은 원자력이 상식적 판단이 적용되지 않는 아주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죽음의 방사능을 계속해서 내는 물질을 생산하는 것은 어리석다든지, 그럼으로써 수만년동안 그것을 모니터해야 한다든지 하는 상식적 판단들 말이다.


상식을 가진 나의 할머니는 “사고란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계획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의미한다. 위험한 활동들을 할 때 우리는 위험을 수용한다. 우리는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 추락 확률이 매우 낮게 유지되는 한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자로는 확률이 ‘낮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다. 원자로의 완전 용융이 가져올 결과는 너무도 끔찍해 원자로 건설을 정당화하려면 사고가 전혀 없을 거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점 뿐만 아니라 핵기술자와 핵무기 추진론자들을 머릿속 그리고 표와 그래프에만 존재하는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이다. 너무도 상식적이어서 진부하게 들리는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 말이다.

하지만 사고는 일어난다. 후쿠시마 원전을 관리했던 기술자들은 쓰나미가 덮쳐 원자로를 삼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맞다. 그게 바로 ‘사고’의 정확한 의미이다. 상상력을 넘어서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비상 펌프에 연료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 ‘사고로’ 발전소와 본사 사이의 전화선을 끊으리라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바닷물이라도 끌어와 그 섬세한 기계에 물을 뿜어 적시기 시작했을 때 - 이 조치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 같다 - 바닷물의 소금기가 그 모든 계기판과 밸브, 펌프, 스위치 등에 끼칠 영향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투여한 바닷물이 다시 밖으로 흘러나오며 방사능까지 동반해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원전 노동자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인간일 뿐이다.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고장나지 않는 기계도 없다. 간단히 말해 사고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수십년간 이 얘기를 해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에 지겨워할 정도가 됐다. 지겹든 그렇지 않든 그게 진실이다.

사람들은 “그러면 원자력에 대한 당신의 대안은 뭐냐”고 묻는다.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다. 핵발전의 대안은 탈핵이다. 시한폭탄이 깔린 안락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자. 당신은 “당장 그 의자에서 벗어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그 사람이 “그러면 대안이 뭐요?”라고 묻는다면? 물론, 대안은 그 의자에 앉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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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나는 지난 주말에 불법을 저지르고 왔다. 나를 고발하라.

내가 저지른 불법은 밭에 감자를 심은 것이다. 땅콩도 심고, 호박도 심었다. 평화로운 강가의 밭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며 일을 했다. 내 마음도 평화로웠고, 주위의 사람들도 평화로웠다. 자연은 편안하게 우리를 감싸주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불법이란다. 팔당 두물머리 이야기다.

현 정부는 4대강을 살린다면서 4대강을 파괴해 왔다. 거센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팔당 두물머리이다. 정부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유기농업 단지였던 이 지역에 자전거도로를 낸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유기농업을 하던 두물머리 농민들이 이에 저항해 왔다. 단식도 하고 소송도 하고 집회도 했다.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종교계까지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정부와 경기도, 양평군은 아랑곳없이 밀어붙였다.

지금은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4가구가 남았다. 그런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남아있는 농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경작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고,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형사고발을 하고 있다.

 

경기 양평군 팔당 두물머리 농민들이 수확한 감자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I 출처:경향DB

농사를 지어오던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불법이 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봄은 왔는데 씨앗을 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 선택한 방법이 ‘불법경작 운동’이다. 일종의 시민불복종 운동인 셈이다.

지금은 시민불복종 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이번 총선에 많은 기대가 있었다.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두물머리 농지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국회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다수당을 차지했고, 두물머리 공사를 국회를 통해 중단시키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를 보면, 잘못된 법과 정책에 대해 시민의 상식으로 맞서는 마지막 수단은 시민불복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간디가 했던 소금행진이다. 1930년 영국은 식민지였던 인도에서의 소금생산을 통제하고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여기에 저항하기 위해 간디는 24일을 걸어 바닷가로 갔다. 간디의 이 행동에는 초기에 70명 정도가 동참했지만,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다. 바닷가에 도착한 간디는 주전자에 바닷물을 넣고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 이것이 간디가 한 유일한 행동이었지만, 간디는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러나 간디의 이 행동에는 수천명이 참여했고, 영국정부의 부당한 정책은 세계에 알려졌다. 대표적인 시민불복종의 사례이다.

물론 당시의 인도 상황과 지금의 우리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권력이 부당하게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보면, 본질은 똑같다. 인도의 바닷물을 사용해서 인도사람들이 소금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과 성실하게 유기농업을 가꿔 온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 뭐가 다른가?

그래서 두물머리 농민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두물머리 밭전(田)위원회’를 만들어서 불법경작 운동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 것이 죄라면 나부터 고발하라는 운동이다. 고발하기 좋게 증거도 남겨 놓고 있다. 불법경작에 참여한 기념으로 컨테이너에 이름을 써 놓고 있는 것이다. 고발하고 기소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모르고 한 일은 아니다. 나는 명백하게 불법인 것을 알고 했다. 고의는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두물머리에서 농사짓는 것을 불법으로 몰아붙인 권력에 굴종할 생각은 없다. 4대강 사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두물머리 농민들을 쫓아내는 장면을 두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권력에 불복종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불복종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힘없는 농민들이 농사짓는 것을 처벌하는 게 법이라면, 간디의 말처럼 “우리는 이 법의 준수를 정중하게 거부할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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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근 aT농식품유통교육원 원장

농식품 분야는 최근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연평균 3.3%씩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세계 식품시장은 2020년에는 6조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 식품기업인 네슬레는 지난 매출액이 112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6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렇다보니 세계 각국이 농식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식품산업 역시 2001년 70조원 규모이던 것이 2009년에는 131조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러한 상승세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도 농식품 산업을 2017년까지 245조원 규모로 성장시키기 위해 식품산업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농식품 산업도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수산물 유통, 수출, 마케팅, 가공, 외식 등 농식품 분야별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상인들이 낙찰받은 배추를 옮겨 싣고 있다. I 출처:경향DB


첫째,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장교육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론 주입식 교육은 실질적인 교육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정보화 시대에 언제 어디서나 학습이 가능한 상시 학습체계(온라인 교육)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농식품 유통교육을 규모화해야 한다. 국내 농식품 산업 종사자는 약 180만명에 이른다.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현재의 농식품유통교육원을 유통대학으로 규모화·전문화해 교육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넷째, 교육 인프라가 소프트웨어 못지않게 중요하다. 직장인이 현업을 하면서 수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기집중 교육을 위한 숙박시설 등이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역점을 두어 추진해야 할 것이 전문가 양성이다. 세계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aT농식품유통교육원은 식품인력교육운영 총괄기관으로서 2017년까지 식품전문인력 10만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4월부터는 도매시장 종사자, 식품산업 종사자 등을 위한 사이버교육도 첫선을 보였다.

미국, EU 등 주요 해외시장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되면서 우리 농식품 산업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보화시대에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지식이다.

자본은 양적 팽창을 낳지만 교육은 기회를 창조한다. 우리나라 농식품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농식품 교육에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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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30년쯤 전에 독일에 유학갔을 때 나는 생수를 사서 먹을 돈이 없어 수돗물을 마셨다. 그때 선배 유학생들은 독일의 물에는 석회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끓여 먹어야 한다고 권했다. 한국의 물이 훨씬 좋다는 말을 곁들이면서. 당시에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물을 끓이거나 설거지를 하고 나면 주전자나 그릇에 부옇게 석회가 끼는 것이 찜찜해서 물을 팔팔 끓여 석회를 제거한 후 차를 만들어 마셨다. 수돗물을 받아서 그대로 마신 적은 거의 없다. 유학가기 전 여름에 목이 마를 때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차가운 물을 먹던 버릇도 완전히 없어졌다.


이제는 정반대가 되었다. 독일에 가면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 차를 끓이는 게 번거롭기도 하지만, 염소가 들어있지 않은 수돗물 맛이 꽤 괜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 석회성분이 들어있지만 그게 몸속에 쌓여서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항상 생수를 마신다. 차도 생수로 만든다. 음식을 만들 때만 수돗물을 끓여서 사용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수돗물은 소독이 아주 잘되어 그냥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그냥 마시지는 않는다. 이유는 수돗물 속의 염소가 물맛을 버려놓기 때문이다. 30년 전에 비해 물에 대한 감각은 더 예민해졌는지 정수기를 통과한 물이라도 염소맛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입과 코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난 3월 말 서울시에서는 아리수 음용행사를 열었다. 시장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아리수를 마시는 장면도 보도되었다. 수돗물을 마신 후 박원순 시장은 아리수의 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맛도 좋은데, 시민들이 마시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리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라는 이유도 제시했다.

 

지하철 서울역사에 설치된 '아리수 음료대'. ㅣ출처:경향DB

서울시민들이 아리수를 마시지 않는 이유가 막연한 불안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아리수에는 생수와 달리 염소가 들어있고, 생수에 비해 맛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에서는 이런 아리수를 병에 담아 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질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했다. 결과는 지극히 초라하다. 시민의 1% 정도만 아리수를 그냥 마실 뿐이다.

서울시에서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홍보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아리수를 직접 마시는 시민이 수년 안에 크게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에 염소가 들어있는 한 그 맛은 좋지 않을 것이고, 그동안 미각이 예민해진 대다수 시민은 생수를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아리수를 판매하기 위해 투입한 돈이 아까운지 병에 넣은 아리수를 해외 판매나 원조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5000억원 가까운 세금을 아리수를 위해 썼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막대한 돈을 투입한 이유는 그걸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리수를 서울시민이 아무 고민 없이 마시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전임 시장 때 아리수를 페트병에 넣어서 여러 행사 때 나누어준 이유도 판매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수나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페트병 아리수 판매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의 맛을 높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관건은 수돗물 속의 염소를 없애는 데 있다. 수돗물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염소가 들어있으면 시민들은 외면한다. 물론 수돗물에 염소를 넣지 않으면 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 수도관을 통과하는 동안 병원균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걸 막는 게 앞으로 서울시에서 해야 할 일이다. 낡은 수도관과 물탱크를 모두 교체하고 세심하게 관리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려는 것 같다. 하지만 염소 소독을 중단하지 않으면 아리수 음용률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고, 그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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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지난 주말에 강아지 한 마리를 들여와 키우고 있다. 작고 앙증맞아 노리개 삼아 안고 뒹굴 수 있는 애완견이 아니다. 어미는 진돗개 잡종이고 아비는 사냥감을 잘 회수한다는 리트리버다. 덩치로 보나 넘치는 기운을 해소하려는 활력으로 보나 아파트에서 키운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녀석이다. 또한 평소에 공동주택에서 들리는 과도한 개 짖음이 이웃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것을 경험하기에 많이 망설였지만, 텃밭에서 키울 요량으로 데리고 왔다. 종의 경계를 넘어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는 요즘의 개를, 주마다 두세 번 가는 정성으로 키우겠다는 심산이 통할지 문제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굳이 그 개를 키우려는 까닭이 있다. 어미는 ‘삼발이’라는 이름으로 짐작하겠지만 사고로 앞발을 하나 잃어 다리가 셋뿐이다. 만삭이 되어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출산을 준비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더하여 2월 기후로 가장 추웠다는 지난 입춘 무렵에 새끼들을 낳고, 혹시 그 어린것들이 얼어 죽을까 염려해 사흘 동안 식음까지 전폐하며 꼼짝 않고 새끼들을 품었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감동으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어미의 강인한 생명력과, 서울의 아파트에서 연천의 변방으로 밀려나 한동안 우울해하다가 ‘삼발이’를 만나 활기를 되찾은 아비 리트리버의 귀공자다운 품격을 물려받았을 강아지와 인연을 맺고 싶었다.


그 강아지와의 만남은 더 큰 인연의 곁가지일 뿐이다. 사실인즉슨 사경을 헤맨 ‘삼발이’를 거두어 윤기가 자르르하게 키워 어엿한 어미노릇을 하게 한 주인을 십수년 동안 만나며 신뢰하게 되어 그분 말만을 믿고 키우게 된 것이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 흐르는 옛 고구려의 당포성이 있는 지점에서, 그분은 순댓국집을 운영하며 농사도 짓고 학업도 병행한다.

아침에 준비한 그날 분량이 다 팔리면 즉시 문을 닫고 농부로 변신해 논밭으로 향하는 것이 그분의 일상이다. 도축장에서 직접 고른 재료를 사용하고 직접 기른 무·배추로 김치를 담그기에, 그분의 가게에서는 속아서 찜찜한 것을 먹을 일이 없다. 그런 사람이기에 지난번 구제역이 창궐하던 시기엔 석 달 동안이나 문을 닫고 장기휴업을 해도 손님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세 겹으로 아름답게 얽힌 인연의 소산인 강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아직까지 나는 강아지가 풍기는 비릿한 냄새에 익숙하지 못하고, 수시로 제 몸을 발로 긁어대는 걸로 보아 털에 벼룩이 있을 것 같아 선뜻 껴안지도 못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강아지와 놀 때는 장갑을 끼는 것이다.

울산 태화시장에서 마를 고르고 있는 박근혜 선대위원장 I 출처:경향DB

 

참으로 한심한 요즘의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손에 붕대를 감고 건성으로 악수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 있어 야릇한 동병상련을 느꼈다. 자기의 이름을 걸고 지역구에서 후회 없는 한판을 벌여야 할 건장한 남성 후보자들이 박근혜라는 얼굴을 내세우고 자기들은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니 연약한 여자의 손이 남아나지 않는 것 아닌가? 박근혜도 그렇다. 한번 도와주기로 작심했으면 붕대를 풀고 손이 으스러지고 팔이 찌릿찌릿하도록 진정으로 악수하고 시장 바닥의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순간이나마 그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대권가도를 탄탄히 다지는 전초작업이기도 할 테니까.

박근혜와 그녀를 따르는 무리의 가장행렬을 보면서 개운치 않았던 까닭은, 손에 두른 붕대가 상징하는 막의 의미 때문이다. 장갑은 단순히 자신의 손만을 보호하지 않고 타인의 땀과 체취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상대의 실체를 오롯이 인정할 수 없다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자기가 아쉬워 손을 내밀 때도 그렇게 오만한데 최고의 권력을 쟁취하면 어떨까. 그녀의 악수 퍼포먼스에서 박정희의 그림자를 읽는다. 박근혜의 손에 감은 붕대의 불통이 이명박 대통령의 철판을 깐 불통을 닮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투표를 통한 빨간 동그라미의 혁명을 펼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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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시인

 
큰소리를 쳤지만 내심 걱정이었다. 담당자는 강좌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나를 위한 글쓰기’라니,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밀고 나가기로 했다. 시 창작이라면 몰라도, 나는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 전문가가 아니었다. 특별한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시민들을 대면해본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10명 미만이면 강좌를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23명이 모였다. 일단 안심이었다. 자기소개는 시키지 않았다. 서로 글을 접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글쓰기의 필요성, 목표, 방법 등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엄포를 놓았다. “8주 뒤, 여기 앉은 분들 중 절반이 남아 있으면 기적입니다.” 나는 태반이 중도에 탈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속내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자아존중감을 회복하고, 관계의 재발견을 통해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그리하여 지금보다 나은 삶과 사회 추구하기. 이것이 ‘나를 위한 글쓰기’의 전략이자 목표다. 3~4주가 지나면서 ‘저자’들의 성장 환경, 직업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의사, 은퇴한 교수, 교사, 출판편집자, 공무원, 정보기술(IT) 업계 직장인, 소설가 지망생, 대학생, 드라마작가. 생각보다 열의가 대단했다. 17명이 8주 수업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다. 나로서는 기적이었다.

초반부에는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주제로 글을 쓴다. 그런데 대부분이 생애 최고의 순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당혹스러워한다. 연령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털어놓는 말이 또 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글을 써 본 적이 없네요.” 누가 칭찬을 하면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다른 사람의 글은 정확하게 분석하면서도 자기 글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도 매번 확인하는 공통점이다.

심리학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인은 자존감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을 자주 접한다. 낮은 자존감은 승자독식사회, 성과중심사회가 만들어낸 ‘한국병’이다. 자기계발(서) 붐도 자존감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존감을 회복하지 않는 한 글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삶쓰기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 경험과 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글을 쓰기가 어렵고, 발표는 더더욱 어렵다.

경향신문DB

 

자존감을 되찾는 방법 중 하나가 ‘나’를 주어로 한 글쓰기다. 잊지 못할 장소, 잊을 수 없는 음식 등을 주제로 글을 쓰면서 수강생들은 자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짧은 자서전을 쓰면서 자신감을 키워나간다. 또 다른 수확이 있다. 서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글쓰기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공동체만큼 아름다운 공동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1년여 동안, 글쓰기 강의실에서 새삼 확인한 것이다(나는 이 강좌에서 얻은 경험의 일부를 대학 교양 글쓰기 교재에 접목시켰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근본 이유 중 하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강의 때마다 늘 강조하는 경구가 있다. ‘생각하지 않고서도 말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가 없다.’ 말만 무성한 사회, 말로만 이루어지는 사회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선거철을 앞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나의 희망사항은 하나다. 이 놀라운 뉴미디어가 ‘말하기’가 아니고 부디 ‘글쓰기’의 차원에서 변화를 일으키길 바란다. 감동적인 이야기, 멋진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집단지성의 힘을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 글쓰는 사회 만들기 시민행동을 출범시키면 어떨까요.” 강의가 후반부로 접어들 때면 내가 농반진반으로 던지는 제안이다. 그러면 ‘이것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를 글쓰기 과제로 받아든 수강생 중 몇몇이 눈을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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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내가 굴업도라는 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994년 문민정부의 핵폐기장 건설계획 발표를 통해서였다. 안면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다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겪은 정부는 몇 년 후, 무인도나 다름없는 굴업도를 후보지로 선정하였다. 이유는 그 섬이 핵폐기물 처분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항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모섬인 덕적도 주민들이 일제히 반대운동에 나섰고, 덕적도가 속해 있는 인천에서도 호응이 크게 일어났다. 싸움은 1년 이상 지속되었고, 김영삼 정부는 결국 활성단층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구실로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포기했다.

굴업도 전경 (경향신문DB)


그토록 어렵게 지켜낸 이 섬의 대부분을 몇 년 전부터 어떤 재벌이 사들여 골프장과 관광위락단지 조성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기에 때묻지 않은 섬의 자연을 상품으로 가공해 팔면 큰돈을 벌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반대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인천에서 시민들이 모였고, 전국의 문화예술인들도 나섰다. 그러나 덕적도 주민들 중 상당수는 핵폐기장 건설발표 때와 달리 위락단지 건설을 찬성한다. 뭔가 경제적 이득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의 강압적 계획에는 저항했지만, 자본과는 한편이 된 셈이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 이수용 우이령보존회 전 회장, 이승기 한국녹색회 정책실장 등 환경탐사팀이 개머리억새 군락지 능선을 오르고 있다. (경향신문DB)


이 와중에 한국녹색회 이승기 정책실장이 일년에 며칠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산호초를 찍으려다 바다에 빠져 숨졌다. 그와 나는 수십년 전부터 잘 아는 사이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겹치고, 신앙도 같기에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그는 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고 대학에 자리를 얻었지만, 그는 외교학 박사과정을 마치고도 도무지 그런 경력을 쌓으려 하지 않았다. 환경운동 경력이 정치권 진입의 발판이 되는 세상이지만 그는 그런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때묻지 않은 자연을 가까이 하고 지키는 일이 그의 첫번째 관심사였다.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은 그의 취미였다. 이호철 선생에게 소설을 배워 몇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지만, 문인 행세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가 2003년과 2004년에 녹색평론에 실은 글에는 자연을 향한 그의 순수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깊은 산의 중턱을 깎아내고 도로를 내는 사업을 비판하면서도 그곳의 바위와 이슬이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노래함으로써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의 글이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그는 강원도의 산이나 제주도의 들판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일도 적극 반대했다. 평온했던 자연 속에 갑자기 높은 기둥과 거대한 날개가 들어서서 소리내며 돌아가는 것을 상상하는 게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뛰어넘는 에너지전환이 시급하다고 보는 나와는 이로 인해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자연을 대하는 눈이 나보다 순수한 그로서는 아주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를 마지막 본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그때 그는 굴업도 이야기만 했다. 섬을 지키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아마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굴업도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그러던 그가 굴업도에서 숨졌다. 자본 권력에 맞서서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셈이다.

그 깨끗한 굴업도에서 골프장과 위락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중장비들이 산봉우리와 해안의 커다란 바위들을 잘라내고 파손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그의 심정이라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바위와 이슬을 친구처럼 생각했던 그의 감수성이라면 견딜 수 없었겠지. 그래도 그는 크게 성내는 대신 산호초에 매료되어 굴업도에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있음을 알리려 했는데, 많은 사람이 자신과 같이 산호가 거기 있음에 감동하게 되면 골프 정도는 얼마든지 무시하고 멀리하고 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면 자연히 골프장 같은 것도 굴업도에 들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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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 디자인 팀장 

지난달 요코하마에서 열린 탈원전세계대회는 일본의 반핵운동이 환경단체를 넘어 대중운동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등록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인기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고, 생활협동조합, 학생조직, 아이를 둔 엄마들, 아이돌 스타 등 1만여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유럽의회 의원, 요르단 국회의원, 호주 녹색당 의원과 세계 원전전문가 등 국외 참가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지속가능에너지정책연구소의 이이다 데쓰나리는 개막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벌거벗은 임금’ 원자력 마피아(원자력 관련 이익집단)의 실체와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후 후쿠시마 지역민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일본 전역에 퍼진 방사성물질은 땅과 강, 바다, 먹을거리를 오염시켰다. 그러나 정치인과 핵산업계, 전력기업, 어용학자, 관료, 미디어로 구성된 원자력 마피아들은 여전히 ‘안전’하니 ‘안심’하라고 떠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원전이 없으면 전력공급이 끊길 것 같이 위협했지만 54개 원전 중 51개가 멈춰도 일본은 잘만 돌아간다. 원자력 마피아들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탈원전 정치가 확산되고 있다. 레베카 함즈 유럽의회 위원은 후쿠시마 사고가 유럽의 탈원전 사회를 앞당겼다고 전한다.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2022년 탈원전 선언을 이끌어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프랑스도 사회당과 녹색당이 연합해 현재 75%인 원전 비중을 50%로 줄일 것을 발표했다. 

일본 후쿠시마 어린이들이 탈원전 집회에 참가한 뒤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l 출처 : 경향DB


대회에서는 무엇보다 에너지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지역공동체의 힘이 돋보였다. 일본 지자체장들은 스트레스 테스트가 끝나도 원전 재가동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고, 탈원전 지자체장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에도 ‘벌거벗은 임금’이 있다. 원자력산업계 사외이사로 일했던 학자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지식경제부 차관은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주문하며 대놓고 원자력을 옹호하고 있다. 원자력산업계 이해당사자들이 에너지정책을 휘어잡고, 원자력발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탈원전세계대회 폐막식에 에너지소비를 줄여 원전1기를 없애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영상메시지가 전달됐다. 반응이 뜨거웠다. 일본 그린액션 대표 아이린 스미스는 “도쿄도지사가 해야 할 일을 서울시장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탈핵에너지교수모임, 반핵의사회, 탈핵법률가모임, 녹색당 등 우리 사회에 원자력에너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단체들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 같은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벌거벗은 임금’ 원자력 마피아의 실체를 밝히는 집단지성의 힘, 시민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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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학창 시절 함께 그림을 그렸던 친구로부터 서울 북촌에 있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도자기기획전을 열고 있으니 와보라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지난해에 경기도 이천에서 열리는 국제도자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으나 출품작의 예술적 의미보다 정치적 전시효과에 더 신경을 쓰는 주최 측과 갈등을 빚다가 도중에 사퇴한 바 있다. 이 전시회는 말하자면 그때에 자신이 직접 섭외한 작가들을 따로 모아 뒤늦게 여는 것인 셈이다. 처음엔 그렇고 그런 아방가르드 기획전이려니 하고 들어섰다가 예상치 않은 충격과 감동을 먹고 평소 함부로 불렀던 친구를 새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난해에 친구의 의도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공무원들 가운데 이 칼럼을 읽는 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전시장엘 꼭 가보시길 바란다. 

사실 이 전시회는 도자기라 하면 대갓집 안방에 고이 모셔있는 값비싼 백자항아리나 각종 다기류만을 생각하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전통적 의미의 도자기라곤 전시장 초입에 늘어놓은 몇 점의 백자항아리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난해한 현대미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창작 동기나 기획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도자기라는 물성의 다양함에 놀라게 되고, 또한 허를 찌르는 작가의 상상력을 찬탄하게 된다. 가령 맹인들이 손으로 더듬어가며 만들어낸 코끼리상이나 비누로 만든 도자기는 그야말로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작가의 코너에 가니 도자기는 없고 흰 벽에 동영상만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그는 새하얀 도자타일로 뒤덮인 자기집 욕실을 산산이 부숴 그 조각들을 세숫대야에 가지런히 담아놓았다. 동영상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모더니즘의 비인간성과 그 해체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구워놓은 맛있는 빵이 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먹었는데 그것 또한 작품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폭격 연습을 위해 만든 세라믹폭탄을 이용해 그 안에 밀가루 반죽을 넣고 빵을 구워낸 것이다. 작가는 빵 말고도 그 안에 각종 씨앗을 넣어 공중에서 투하하는 작업을 통해 폭력의 도구가 살림과 평화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16명의 작가와 5개의 프로젝트 그룹이 참여한 이 전시회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끈 작품은 경기도 팔당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만들어 전시한 20여개의 두상이다. 그 교장선생님은 해마다 졸업하는 학생들의 두상을 직접 만들어 졸업식 때 나누어 준다고 한다. 과연 두상의 뒷면에는 학생들의 이름과 장래 희망이 새겨져 있었다.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눈초리와 제각각인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작가의 행복어린 제작과정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성지중고 개화캠퍼스에서 열린 ‘제자사랑 세족식’ l 출처 : 경향DB


작품을 보는 순간 나는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왕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교육현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는 선생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진다. 적어도 두상을 만들려면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을 일일이 만나 이리저리 살펴보고 얘기를 나누어야 한다. 아무리 창작열이 넘친다 해도 제자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깊은 감동에 젖어 미술관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나라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이용해 우리 아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을 하나씩 해준다면 아마 그 기억 때문에라도 커가면서 잘못된 길로 빠질 확률이 훨씬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선물은 조각처럼 전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음미할 만한 명구를 손수 적어 작은 액자에 담아 주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뿐 아니라 선생님 자신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주는 것이든 받는 것이든 사랑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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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세상]텃밭이 진짜 강의실이다
이문재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창밖 옥상을 볼 때마다 맥박이 빨라졌다. 지난해 여름 방수공사를 마치고 초록색 칠을 해놓은 뒤로 부쩍 심해졌다. 문전옥상을 문전옥답으로 만들어야지. 4층 복도에서 내다보이는 3층 옥상은 어릴 적 내 고향집 텃밭보다 두 배는 컸다. 1층에 실내 농구코트가 있으니, 80평은 족히 넘을 것이다. 저기에 흙을 덮든지 화분을 갖다놓으면 그대로 밭이 될 텐데…. 옥상을 마주할 때마다 입안에 단침이 고였다.

 

경향신문 DB


녹지 비율이 국내에서 가장 높은 캠퍼스. 설립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그 사이 새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60년 넘은 소나무가 그대로 서 있다. 교시탑의 목련도 30년 전 그대로였고, 내가 시를 쓰던 본관 뒤 연못과 숲도 여전했다. 그린, 에코 캠퍼스라고 명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3년 전 모교로 올 때, 물오르는 신록을 보면서 반갑기 그지없었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텃밭이 없었다. 

도시농업, 도시경작이란 표현이 낯설지 않다. 멀리 쿠바와 북미, 북유럽 사례도 자주 소개된다. 국내에서도 도시농사꾼이 등장했고, 대안학교와 의료 분야에서까지 텃밭 가꾸기를 활용한다. 도로와 빌딩 틈바구니에서 땅을 일구다 보면 예상 밖의 수확을 얻는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채소와 과일을 거두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 텃밭은 장소다. 익명으로 존재하던 도시인들이 텃밭을 가꾸면서 서로 이름을 부른다. 텃밭에서 형성되는 인간과 자연(생명) 사이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번진다. 텃밭이 공동체를 위한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다.

경향신문 DB


대학은 오래된 장소다. 유례가 없는 압축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간직하고 있는 ‘장소성(場所性)’은 더욱 각별하다. 서울만 해도 대학을 제외하면 오래된 서사를 간직하고 있는 랜드마크가 거의 없다. 온통 새로 지은 건물, 새로 뚫린 도로다. 하지만 대학이라고 해서 장소성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학생들이 온전한 개인,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총체적 장소가 아니다. 입시지옥을 통과해온 청춘들에게 요즘의 대학은 ‘불안한 미래’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청춘들에게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록색 페인트 칠을 해놓은 창밖 옥상부터 땅으로 바꿀 생각이다. 우선은 화분 몇 개에 대여섯명 규모로 출발할 작정이다. 고추 모종을 심으면서 지구온난화를 들먹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구마를 캐면서 에너지와 식량 문제를 환기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오이를 가꾸는 학생이 하늘을 보며 ‘비가 오셔야 할 텐데’라고 중얼거리게 된다면, 도시는 농촌이 없으면 단 하루도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저절로 깨달을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엄연한 진리를 스스로 각인할 것이다. 

대학 건물 옥상과 운동장 스탠드를 비롯해 교정 곳곳의 공터를 땅으로 바꾼다면,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잃어버린, 아니 빼앗긴 감성을 되찾을 것이다. 감성은 외부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공감, 연민, 나눔, 연대가 다 감성에서 비롯된다. 감성이 죽는 순간 ‘나’는 세계와 두절된다.
정보와 지식만을 편식해온 청년들이, 경제논리에 세뇌당한 학생들이 흙을 뚫고 솟아오르는 떡잎을 보면서, 아침이슬을 머금은 상춧잎을 따면서, 감성과 지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온전한 개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타자를 인정하고,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개인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대학 텃밭은 미성년이 성년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강의실이자, 다양하고도 건강한 관계가 형성되는 열린 캠퍼스다. 

장미꽃이 아름답지만 감자꽃 또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상상한다. 대학마다 텃밭 강좌가 생겨나고, 청춘들이 도시농사꾼들과 어우러지는 날을. 그리하여 주말마다 대학 구내에 장터가 서고, 절기마다 도시텃밭 곳곳에서 동네잔치가 열리는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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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소한에서 대한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설을 쇠면 엄벙덤벙하는 사이에 입춘을 맞이할 거고, 이후엔 선량을 꿈꾸는 정치지망생들이 개구리보다 먼저 깨어나 왁자지껄 한바탕 한반도를 달굴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와는 확연히 다른 날씨다. 얼추 삼한사온의 겨울철 냉온주기를 유지하고 있다. 북향의 그림자에 덮인 곳에서나 잔설을 볼 뿐, 눈발도 그리 흔치 않다. 예년의 동장군 위세에 비할 바 없이 다감한 이 겨울에 나는 철 이른 봄볕을 갈망한다.
 
추워서 그런 게 아니다. 언 땅을 녹이고 흙에 스민 생기와 햇볕이 피운 온기를 버무려 새싹을 틔워내는 대지의 활력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가을 느지막이 나는 이제껏 방치하다시피 한 텃밭에 중장비를 불러들여 ‘공사’를 벌였다. 비스듬한 밭둑에 직선의 콘크리트 옹벽을 쳐서 가시호박 넝쿨에 버려진 땅을 되찾았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들을 동쪽으로 옮겨 작물의 생장에도 도움을 주는 작업이었다. 중장비의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대략 20년을 자라 거목이 된 나무들을 재배치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당장 봄이 되면 겨우내 잠만 자고 있지는 않았음을 보여줄 고로쇠나무와 산수유나무는 뒤쪽으로, 내 키의 다섯배도 넘게 자란 목련은 전지하여 거의 몸통인 채로 동쪽으로 옮겼다. 어서 봄이 되어 이 녀석들이 훌훌 털고 일어나 새싹을 뿜어내는 걸 확인하고 싶다.

고백하건대 경칩 무렵이면 고로쇠나무 몸통에 빨대를 꽂아 받은 수액으로 우리 가족은 향연을 벌이곤 했다. 하룻밤을 새워 이틀 동안 한 나무에서 한 되쯤을 받아 모은 한 말 정도를 신의 음료인 넥타르 마시듯 한다는 게 처음엔 나무에게 미안하고 가소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가지끼리 부딪히거나 까치들이 부러뜨린 가지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수액을 까치들과 초파리 그리고 개미들이 포식하는 걸 보면서, 나무는 내가 심었는데 엉뚱한 녀석들이 단물을 즐긴다는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도 고로쇠 수액을 빨아먹는다는 죄의식을 떨칠 수 있었던 까닭은, 한 해가 지나면 뚫은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다는 사실이었다.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서리산 기슭에서 고로쇠마을 주민들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l 출처 : 경향DB


올 봄에는 고로쇠 수액을 받아먹지 않을 것이다. 산수유나무들이 시들한 꽃들을 피우고 조금은 기력이 부치더라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꽃망울이 맺은 잔가지들을 잘라내고 몸통만을 이식한 목련이 올 봄엔 꽃을 피워내지 못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생존 자체도 의심스럽다. 오로지 바라는 바는, 숲에 대한 안목이 없었던 내가 무턱대고 심어 서로의 생장을 방해했던 나무들이 이젠 옮겨온 땅에서 힘차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그린 숲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드디어 사고의 전환이 이룬 일상의 혁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새 터전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의 생존을 확인할 즈음 4월의 총선에서, 즐겁게 참여한 조직된 시민의 힘이 수구세력의 역주행을 막고 갑남을녀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다음과 같은 ‘제대로 된 혁명’의 완수를 확인하고 싶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D H 로런스의 ‘제대로 된 혁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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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상규 | SR코리아 대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심의 중인 가운데,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끝나기 무섭게 국내 항공사들이 유럽연합(EU) 배출권거래제에 편입되었다. 이번 조치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205만t과 78만3000t의 온실가스를 할당받았는데, 2013~2020년에는 각각 194만t과 74만5000t으로 줄여야 한다. 만약 이를 초과하여 배출하게 되면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충당해야 한다. 한국교통연구원 분석에 의하면, 향후 국내 항공업계가 추가 부담하게 될 비용은 올해 60억원, 내년 1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일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는 몇 년 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EU는 이미 2007년부터 역내에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대해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관보로 알린 바 있고, 2009년 8월 ‘온실가스 배출 규제 대상 항공업체 목록’을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삼성테크윈,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한화 등 국내 기업들이 배출권거래제에 적용된다고 통보한 바 있다. 

 


기후변화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모든 나라들이 그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와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계산만을 하고 있어 기후변화협약도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번 사례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각 나라의 이해관계에 얽혀 합의가 되지 않아도 국지적으로 여러 가지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캐나다, 중국의 항공사들이 EU의 조치가 ‘국제민간항공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제소했지만, 최근 유럽사법재판소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EU의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기후변화에 근본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발생량을 줄이는 것이다. 국제적인 규제에 수동적으로만 대응하다 보면 더 많은 비용이 들고 시행착오를 겪게 되며, 기업의 이미지와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항상 위기 속에는 새로운 기회가 함께 온다. 이미 많은 기업들은 기후변화라는 위기 속에서 지구생태계도 지키고 새로운 사업도 되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국내 항공사의 EU 배출권거래제 편입 사례는 앞으로 기후변화로부터 지구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하여 다자간 협약이 되지 않는다면, 양자간 협약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정부, 기업, 시민사회 차원의 지혜로운 대응 방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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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17 0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녹색세상]평화의 노래

 
황대권 | ‘야생초 편지’ 저자

 


며칠 전 국회에서 제주 해군기지 사업에 대한 내년도 예산의 90%가 삭감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많은 시민활동가들이 그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결코 경계의 눈초리를 늦춘 것은 아니다. 이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평화활동가들이 모여들었는데 참여자의 면면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활동의 양상도 다양했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인 것이 현지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다 만난 세 젊은이가 밴드를 만들어 신명을 돋구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하여 ‘신짜꽃밴드’. 신나고 짜릿한 꽃밴드란다. 어찌 보면 철없는 아이들 같은 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흥겹게 몸을 흔들며 따라 하다가도 가슴깊이 파고드는 진실성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야말로 투쟁의 현장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평화의 노래’이다. 이 젊은이들은 아마도 어떠한 투쟁이고 간에 재미가 없으면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재미 때문에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재미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젊은피인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린 제주 강정마을 입구


 
지난달에 보름에 걸쳐 일본강연여행을 다녀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인들의 인식변화도 확인할 겸 한국 생명평화운동가의 경험을 들려주기 위해서다. 확실히 일본은 변하고 있었다. 탈원전, 생태계 보전, 전쟁이 아니라 평화, 이것이 변화의 주된 흐름이었다. 가는 곳마다 생태문제와 평화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또 사람들은 ‘생명평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를 초청한 단체가 운영하는 ‘슬로카페’에서 작은 만남이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키가 훤칠한 한 일본여인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슬로카페 홈페이지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찾아 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은 스즈키 시게코이며 노래하는 가수란다. 재즈풍의 노래를 즐겨 부르는데 요즘은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얼마 안 있으면 다시 가야 한단다.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말하는 품새가 어찌나 다소곳하고 진지한지 얼굴에서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침 카페 한 쪽에 마련된 작은 갤러리에서 작고한 한 여류화가의 전시회가 있어서 모두 그 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화가가 마침 잘 아는 분이라며 몹시 흥분하는 것이었다. 그렇담 여기서 돌아가신 분의 혼을 달래는 노래나 하나 불러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환상이었다. 청중이라곤 다섯밖에 없었지만 모두들 넋이 나간 듯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 역시 감동한 나머지 그녀를 영광 산속에서 매년 열리는 자연음악회에 초청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그러마 한다. 

돌아와서 그녀가 준 명함을 보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세상에나! 그녀는 일본의 톱가수였다. 요샛말로 ‘개념 있는’ 유명가수였던 것이다. 작년부터 그녀는 ‘평화의 숨결’이라는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무엇이냐 하면 세계의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며 현장에서 민초들에 의해 불리는 평화의 노래를 수집하는 일이다.
안전한 녹음실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라 처절한 전쟁의 현장에서 부르는 평화의 노래야말로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 노래를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부르고 또 여기저기 다니면서 퍼뜨리는 것이다. 그녀는 이 일을 전쟁이 사라지는 날까지 계속 할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지난 10년간 생명평화운동을 하면서 ‘생명평화의 노래’를 수집해 왔다. 그러나 운동의 역사가 짧고 오지랖이 넓지 못하여 그렇게 많이 모으지 못했다. 보급 작업도 단체 내부에서 소통하는 정도이다. ‘신짜꽃밴드’와 ‘스즈키 시게코’는 내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현장에서 기도하고 주먹만 쥘 줄 알았지 노래할 줄은 몰랐다. 이제부터는 구호를 좀 바꾸어야겠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의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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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지난 15일 발생한 ‘전국적 규모’의 정전은 1960년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미국과 일본에도 없는 고압(765㎸) 송전망에다 국토면적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집적도를 자랑할 정도로 걱정 없이 투자비를 쓴 국영독점전력산업이 큰 사고를 쳤다. 

<경향신문 DB>

이상고온, 무절제한 소비 등 많은 이유들이 변명처럼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전력수요 하계성수기가 다 지난 지금 7800만㎾ 설비용량을 가지고도 6700만㎾ 정도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예고방송도 못하고 다급하게 정전을 단행한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더욱이 예상외(?) 수요 증가량이라는 게 공급능력의 2.5% 수준인 200만㎾ 정도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직접 점검이 없었다면 값싼 전기를 낭비한 소비자 탓으로 쉽게 결론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요금인상 필요성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전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전력시스템 운영에 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감독당국과 전력사업자들의 의사결정 때문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단순하다 못해 “예고는 요란하나 결과는 허무하다”는 ‘태산명동(泰山鳴動) 서일필(鼠一匹)’이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전력은 최고급 에너지로 국민생활과 경제활동의 ‘공공·필수재’이다. 이에 전력시장에는 요소 투입에 의한 확대재생산 논리나 경쟁의 시장효율화 논리 적용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세계 전력시장은 시장 실패와 공공독점을 수용하면서도 전문성 있는 규제기관이 공공이익 보호 책임을 맡고 조금씩 시장논리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무조건적인 시장논리로 전력이라는 공공·필수재를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전통’에 근거한 관료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당연히 관련 산업과 규제분야 책임자들은 ‘시장 실패’를 수용하면서도 이를 최대한 보정할 수 있는 전문성을 충분히 갖춘 것 같지 않다. 경영실패를 초월하는 독점이윤을 ‘영구’ 보장하는 수준의 전기요금 쟁취를 능력으로 생각하는 민간기업 출신들과 어설픈 시장논리를 강조함으로써 당장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감독관청이 공존하고 있다. 

이상고온 예보가 지속되는데도, 기온 1도 상승은 100만㎾ 이상의 수요 증가를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무시하고 추석 연휴를 전후해 전체 설비의 10% 이상을 일시에 보수하기로 한 결정은 공공설비를 편의적으로 운영하는 관료주의의 전형이다. 당연히 운전대기해야 할 125만㎾의 법정 예비발전소가 연료비 절감을 이유로 전혀 가동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어설픈 시장논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할 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지연된 설비투자가 2015년에나 완료되기 때문에 동태적 수요예측 능력과 공급 효율화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자칫하면 정전사태 재발이 우려된다. 전문가 영입에 의한 감독체계 개편과 책임경영체제 도입이 가장 시급하다.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인 전기위원회를 고도의 전문성을 갖도록 개편해 감독기능을 일임할 수도 있다. 전력산업 ‘거버넌스’ 선정 과정에 공공사업 운영의 전문성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어설픈 시장논리 조기 도입도 재고해야 한다. 녹색성장 지원을 위한 무리한 대체에너지 도입 의무나 배출권 거래를 중지해 투자재원의 비효율적 분산을 막아야 한다. 이번 정전사태로 인한 소비자들의 손해를 현실적 수준에서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또다시 ‘태산명동 서일필’이라는 서글픈 자책을 하지 않도록 ‘냉정한’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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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hefreakyfriends.com 박기동 2012.01.11 0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아름다운 날 놀라게하는 군, 중단하지 마십시오

  2. Favicon of http://campusvt.com 김용대 2012.01.13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짚신도 짝이 있다

경향신문 노응근 논설위원


전국적인 정전 대란 이후 ‘블랙아웃(blackout)’이란 생소한 전문용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와 한전이 “전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 발생하는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30분씩 순환 정전을 실시했다”고 발표하면서다. 자칫 나라 전체의 전기 공급이 셧다운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블랙아웃이란 도시나 넓은 지역의 전기가 동시에 모두 끊기는 최악의 정전사태를 말한다. 보통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나 전력망 설계의 취약성에 기인한다.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은 온통 암흑천지가 되고 모든 기능이 마비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발전시설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려 피해는 더욱 커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전력 본사에서 정전사태에 대해 관계자들을 질책하고 있다. | 경향신문 DB

미국의 경우 전기 부족으로 2000년 캘리포니아주에 제한송전이 이뤄진 데 이어 2003년 뉴욕에 전기가 일시에 나가는 블랙아웃이 발생했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후 원전 건설 중단 등으로 전기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06년 4월 제주도에 블랙아웃이 발생한 적이 있다. 제주도 전체 전기 수요의 40%를 맡고 있던 해저케이블이 갑자기 고장나 전기 공급이 크게 줄자 도내 소규모 발전시설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전기 공급이 모두 끊긴 것이다.

블랙아웃이란 술을 많이 마신 뒤 나타나는 단기 기억상실을 일컫는 의학용어로도 쓰인다. 흔히 ‘필름이 끊긴다’고 표현되는 현상이다. 전투기가 급상승할 때 원심력에 의해 조종사 몸의 피가 아래로 쏠리면서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현상도 블랙아웃이라 일컫는다. 본격적인 미사일 공격을 하기 전에 한 발 또는 수 발의 미사일을 발사해 적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하는 군사 전략도 블랙아웃이라 한다. 
이처럼 블랙아웃이 쓰이는 곳은 달라도 ‘제정신을 잃는다’ ‘비정상적인 혼란 상태에 빠진다’는 뜻은 공통되는 것 같다.

그제 정부나 한전의 대처 방식을 보면 국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블랙아웃 상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전기 수요 예측 실패는 물론 순환 정전 실시에 따른 비상조치도 엉망이었다. “불가피했다” “예고할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은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한심하게도 사고 체계가 블랙아웃된 듯한 국회의원도 나왔다. ‘순환 정전은 북한의 사이버 테러일 가능성이 99.9%’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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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coryrockwood.com 천사 2012.01.11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떡이 커 보인다

  2. Favicon of http://thehamletnews.com 윤석영 2012.01.12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호수 | 뉴욕시립대 스테튼 아일랜드 캠펴스 사회학과조교수

5월11일은 정부가 제정한 입양의 날이다. 지난 55년동안 ‘혼혈아동, 기아, 미아, 결손가정아동, 장애아동, 미혼모의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해외로 입양 보내어진 아동이 약 20만 명에 이르며, 국내에서 입양된 아동도 약 6만 여명에 이른다. 이처럼 입양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입양이라는 선택 아닌 선택을 해야만 하는 친생 부모의 상황에 대한 관심은 전무하다. 지난 세월 동안 입양은 사정상 키울 수 없는 자식을 다른 누군가가 키우는 아름다운 실천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의 미비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번 입양의 날은 자식을 떠나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수 많은 친생부모들의 상실을 애도하면서, 입양을 보내지 않고 양육을 선택한 이들의 요구와 입장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제6회 입양의 날을 맞이하여,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과 해외입양인 센터 "뿌리의 집"을 주축으로 싱글맘의 날을 제정하였다. 입양을 권장하기 보다는 싱글맘들의 권리를 보장하여 입양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미혼모 발생율이 인구 1000명당 1.6 으로 가장 낮고, 대부분의 미혼모는 입양을 선택한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차별이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미혼모의 입양선택을 과연 진정한 선택으로 볼 수 있을까? 

2010년 한국여성정책원의 조사연구에 의하면, 입양을 선택한 미혼모 중 과반수 이상이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이 개선될 경우 양육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하였다. 한때 입양을 생각했던 싱글맘 혜인씨(가명)는, "한국의 미혼모들은 아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아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미혼모들이 선택아닌 선택으로 입양을 보내게 되는 이면에는 친부의 책임회피,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취업 제한, 그리고 국가의 미혼모 복지정책 미비가 자리하고 있다. 

사실상 미혼모를 위한 복지 정책은 곧 입양으로 귀결되어 왔으며, 이는 미혼모에 대한 단죄와 미혼모 가정에 대한 배제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미혼모를 입양 보내는, 혹은 보내야만 하는 여성으로 보는 시선은 입양을 보낸 미혼모들이 겪는 상실과 고통을 외면한다. 1995년 백연옥의 연구 ‘아동을 포기하는 친모들의 정신건강 이슈들에 관한 소고’에 따르면, 친권포기는 친생모에게 만성적인 우울증, 고립감, 무력감, 좌절, 죄책감과 수치심을 일으키는 등 정신건강에 지대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양을 보낸 미혼모들의 경우, 상실감은 더욱 모순적이고 중층적이다. 이들은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자녀와의 소중한 관계를 상실했음에도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함은 물론, 상처를 스스로 은폐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평택대 최승희 교수는 연구논문 ‘자녀를 입양 보낸 미혼모의 상실’(2010)에서 미혼모가 상실의 슬픔을 제대로 인정받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슬픔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사회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1983년, 당시 미혼모의 신분으로 입양을 보내야 했던 이순애씨(가명)는 이렇게 밝힌다. “그때 당시에 제가 어렸지만 주위에서 보내지 말라던가, 아니면 이렇게 하면 키울수 있지 않겠냐던가… 뭐 이렇게 얘기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안 보냈을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제가 아무리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고 착하게 살려고 해도 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웠어도, 제가 제 자식을 키우지 못하고 그렇게 했다는 게 …”

입양을 보내야만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여성사에서, 그리고 입양담론에서도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스로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입양을 보내야 했다는 죄책감과 상실은 많은 이들의 인생에 내려놓을 수 없는 짐으로 남아 있다. 미국으로 입양갔던 아들과 6년 전에 만난 노명자씨는 입양으로 인한 상처가 자식과의 상봉을 통해서 치유되거나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 고민하는 엄마들한테? 보내지 마라고 하고 싶어요. 애를 보내기 보다는 내가 내 자식을 키워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 (입양보낸 아이를) 만났다고 다 끝나는게 아니에요. 난, 그 지난 30년 동안, 그 아이의 인생에 없었잖아. 그 아이 또한 내 인생에 없잖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들의 그런 아픔은 죽을때 까지 그냥 우리가 지고 가야되는 거예요.

5월11일, 입양의 날을 싱글맘의 날로 재정의하는 의의는 크다. 싱글맘의 날은 미혼모자 가정을 다양한 가족의 한 형태로 공표하는 날인 동시에, 반세기 넘는 입양의 역사로 말미암은 친생부모의 가슴아픈 이별과 상실의 고통을 애도하는 날이다. 더 이상 입양을 보내는 것이 미혼모들에게 선택 아닌 선택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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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 해외입양인센터 뿌리의집 원장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그런데, 귀환입양인단체 ‘TRACK(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뿌리의 집’이 뒤따르고,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한국한부모연합’이 거들면서 같은 날 5월11일을 ‘싱글맘의 날’ 로 기념하기로 하고, 기념 국제 컨퍼런스와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기념 국제 컨퍼런스는 이 날 하루 종일 한국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강당에서, 기념행사는 낮 12시에 광화문교보의 선큰가든에서 열기로 했다.


영아 일시보호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위탁가정이나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를 돌보고 있다.


입양의 날에 맞추어서 싱글맘의 날을 지키
겠다는 것은 일종의 대항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입양의 뿌리에는 가족해체가 있고, 특히 미혼모 가족의 결별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우선적인 역량을 모아 결별의 위기에 내어 몰린 미혼모 가족의 위기를 보듬자는 것이다. 입양을 통해 문제를 풀고자 하기 전에, 미혼모들에게 입양이 아닌 다른 선택지, 즉 양육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우리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대항담론은 종종 한 사회 내부에 이미 강고히 자리 잡고 있는 관념들에 균열을 내기도 하고 그 사회를 재구성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대항담론은 그 대항의 목소리에 맞서야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는 있어서 대항담론에 깃든 지혜에 귀를 기울여 미래를 재구성하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더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매년 10월 둘째 주 월요일은 연
방공휴일 ‘컬럼버스의 날’이다. 그러나 사우스다코타 주정부는 여태 이 날을 거부하고 대신 ‘네이티브 아메리칸(인디언)의 날’로 지킨다. 컬럼버스의 날이 그들에게는 침탈을 미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항담론은 힘을 얻어 하와이주와 미국의 다른 주들과 도시들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의 최대 명절 ‘추수감사절’을 네이티브 
아메리칸(인디언)들은 ‘국가애도의 날’로 명명하여 지킨다. 백인 이주자들의 첫 추수감사절 이후 네이티브 아메리칸(인디언)에 대한 대대적인 침탈과 학살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해서 이다. 대항담론이란 이런 점에서 보면 일종의 기억투쟁이자 역사해석을 교정하는 일인 동시에 자기 사회의 미래를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겠다는 열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년 호주의 서부주(West Australian State)에서 1970년대에 정부주도 하에 이루어진 미혼모와 아동의 강제 격리와 입양조치에 대해서, 오늘의 정부가 그 당시의 미혼모들에게 사죄하고, 동시에 입양을 통해서 친가족과 결별해야 했던 입양인들의 마음에 위로를 보내는 뜻에서 의회의 뜰에 입양인들에게 헌정하는 장미꽃다발을 놓은 일은 입양에 관한 대항담론이 일궈낸 일정한 성과물이라 할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입양의 날’을 제정하고 기리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사회에서도 미혼모와 싱글맘의 단위가족 형성에 관한 권리, 친자녀와 결별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사회적 배려의 진작을 촉구하는 대항담론으로서의 ‘싱글맘의 날’의 등장은 환영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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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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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ellydancespringfield.com 고명진 2012.01.10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gospelvideoexpress.com 박기동 2012.01.12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아름다운 날 놀라게하는 군, 중단하지 마십시오

                                                                                     양호환|서울대 교수·역사교육

우리 역사 속에서 국가가 성립된 이래, 후세에 대한 교육의 큰 틀은 언제나 제도적인 차원에서 그 정비가 이루어져 왔다. 후세를 가르쳐 국가의 동량으로 키우는 일은 실로 국조장구(國祚長久)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과제였고, 급변하는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이었다.

교육의 목적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고 동시에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교육 정책의 목적은 ‘학습부담 경감’이고, 이를 위한 제도 개혁의 결과는 공교육 부실과 학생들의 학교이탈, 그리고 체감 학습부담과 사교육비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교육과정상 한국사를 필수화하고 5단위(1, 2학기로 나누어 할 경우 1주당 2.5시간)를 이수하게 하는 방안이 발표됐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수능과의 연계가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사실 지금도 거의 모든 고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고, 수업시수도 5단위 정도로 하고 있으므로, 이 조처로 크게 변할 것은 없다.

혹자는 사회과 과목 가운데 역사교과만을 필수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하는데,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사회과라는 하나의 교과군 속에 사회, 역사, 지리, 윤리에 해당하는 11과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과정상 국·영·수를 제외한 교과목을 과도하게 축소·통합시켜 놓은 이러한 체제는 세계적으로 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기형적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역사교육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역사를 하나의 독립된 교과로 편성하고 수능의 선택과목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출처: 경향신문 웹DB

‘과목수 축소’라는 명분 아래 현재 학교 현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는 올해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전면 실시되고 있는 ‘집중이수제’이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의 경우 학기당 8과목 이상은 개설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일부과목의 경우 2학기에 걸쳐 1주일에 2~3시간씩 하던 것을 1학기 동안 1주일에 5시간으로 끝내게 했다.

이러한 상황은 현장에 실로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학생의 경우 미이수 또는 중복이수 교과목이 발생하는 문제와 해당 과목의 내신성적 처리다. 더구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중간고사 시험범위가 교과서 절반이나 되고 보니 한국사와 같은 과목의 경우 아예 시험을 포기하려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학습부담이 경감되는 것이 아니다. 집중이수제의 대상이 주로 사회과 과목과 예체능 과목에 집중돼 있는 점도 문제다.

논란이 많은 집중이수제에 관해 최근 교과과정평가원에서 배포한 연구보고서 내용은 더욱 놀랍다. 여기서 전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사례를 인용해 제시한 방안은 부모가 학생을 남겨두고 이사를 가든가, 학기 시작 전에 학생만 미리 보내든가, 직장 상사와 상의하여 이주 시점을 조정하라는 것 등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학습부담 경감’을 외치며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충실하고 경쟁력 있는 교육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영·수 위주로 편향되어 있는 교육과정과 수능체제를 개혁하여, 균형잡힌 교육, 내실있고 내용있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단순히 수학과 영어에만 숙달된 기능인이 아닌, 창의적·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기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판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시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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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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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crantfordsflowers.com 2012.01.11 0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2. Favicon of http://thewebcontractors.com 인형 2012.01.12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웃는 낯에 침 뱉으랴

김우열 / 서울시교육청 기능직공무원


"그게... 가능해요?" 눈을 크게 뜨고 되물어 본다. 교육시설공사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오는 반응이다.
교육활동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담는 그릇이 교육시설이다. 과거에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해서 교육시설의 필요를 못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교육활동의 질은 높아졌으나 교육시설의 질이 따라주지 못해 교육활동의 질까지 낮추는 경우가 많다. 주로 교육시설공사의 근본적인 부실 때문이다.
 
시설의 계획과정이 중요하다. 과다 대충 계획한 프로젝트는 업자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 예산이 새는 통로가 된다.
시설의 생애 과정에서 계획과정이 제일 중요하며, 시공보다 중요하다. 학교시설에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교육청 기술직에게 연락한다. 문제는 이들이 눈으로 몇 번 보고 계획을 정하고 설계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주로 상급자의 의견이 절대시된다. 문제의 원인과 땅속의 실제 상황 진단에 천착하지 않다보니 과다 계획을 할 위험이 상존한다. 이걸 토목진단업체가 들으면 "그게... 가능해요?" 할 이야기이다.
엉터리 계획도 한다. 체육관은 대규모 체육활동으로 무거운 먼지가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10미터 이상의 높은 천정의 대공간을 낮은 공간처럼 천정의 기계환기로 먼지를 끌어올려 뽑아내는 계획을 한다. 먼지는 거의 그대로이다. 거기에다 기계소음으로 고통을 더한다. 


 
 
설계과정에서도 교육청 기술직의 검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장상황과 맞지 않는 수 십 년 전의 전형적인 도면을 든 설계업체 담당자를 학교로 보내 기관장의 승인받기만을 기다린다.
그걸로 끝이다. 학교 화장실의 동력이 가스인지 전기인지도 모르고 현재의 건축구조를 바꾸는 도면을 가지고 온다.  체육관 같은 천정이 높은 대공간에서 천정 한쪽에 난방 기구를 설치하니 추운 겨울 몇 시간씩 난방을 해도 안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운 공기는 위로 간다. 놀이터는 지하의 배수는 고려하지 않고 주위 연석도 없어서 비만 오면 질퍽거리고 모래는 날이 갈수록 새어 나간다.
다중이용시설이어서 쉬운 유지관리를 고려한 설계를 요구하는 것이 호사스러울 정도다.
 
학교시설의 시공과정도 놀라움 그 자체다.
시공은 과정이다. 결과물 가지고는 능력 있는 기술자라 할지라도 시설의 내구성과 품질을 평가하기 어렵다. 그런데 아무도 감독하는 사람이 없다. 중요 공정인데도 말이다. 시공순서를 바꿔서 품질을 떨어뜨리며 쉽게 이익을 취하는 데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수주만 하면 시공업자에게는 땅 집고 헤엄치기다. 물론 그 결과는 기관장과 행정실장이 이 공공시설을 떠난 뒤에 나타날 것이다. 주인이 없는 시설의 특성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주먹구구이거나 방치되고 있는 학교시설의 계획, 설계, 시공에 대한 인적, 물적 수술이 필요하다. 교육활동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교육시설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 금이 간 그릇을 들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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