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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녹색세상

‘사소한 실천’

경향 신문 2021. 1. 29. 10:13

환경판 올해의 사자성어? 기후위기, 탄소중립, 그리고 그린뉴딜. 말하자면 과도한 탄소 배출로 기후위기가 닥칠 판이니 더 늦기 전 그린뉴딜로 경제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자는 뜻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지구는 왜 살려. 치킨은 살 안 찌고 내가 살찌는 것처럼 지구는 죽지 않고 인류가 사라지는 건데. 약 20억년 전 지구 생명체의 90% 이상이 멸종하는 대멸종이 일어났다. 목욕탕의 후미진 모서리에 끼는 녹색 물때인 남조류가 대량 번식해 산소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소호흡을 하던 미생물들은 ‘독가스’ 산소에 질식해 죽어갔다. 결국 지구를 뒤덮던 90%의 생물종이 사라진 후 산소호흡을 하는 생물종이 나타났다. 인류가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하면 먼 훗날 탄소호흡을 하는 생물종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산소호흡을 하던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다던데, 라고 외계인 같은 소리나 하겠지.

나는 지구를 살리자는 ‘착한’ 말이 싫다. 환경운동 하는 내게 ‘좋은’ 일 한다는데, 사회복지 일을 하는 내 친구는 그 말에 “네, ×나 좋은 일 합니다”로 답한다. 나로 말하자면 기후위기로 멸망한 세계를 그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로 만든 영양 바를 먹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쓴다. 남의 집 불구경 하는 한갓진 마음일랑 접어두시라. 홍은전 작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지구를 살리고 말고는 태양계의 일이다. 지구는 영장류 따위 없이도 자전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기후위기가 가져올 고통을 책임지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한다.

그 길은 탄소 배출을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여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10년 동안 외환위기를 다섯 번쯤 겪는 강도다. 석유는 압도적인 에너지 밀도를 지닌다. 인간이 10년 동안 ‘쌔빠지게’ 할 일을 1ℓ 생수병 160개 분량의 석유가 해낸다. 지구 깊숙이 쟁여둔 가성비 최고의 에너지원을 인류가 펑펑 써버린 탓에 탄소가 급격히 늘었고 그 덕에 우리는 풍요로워졌다. 운송 에너지, 합성섬유, 플라스틱, 전기, 합성비료 등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대부분 화석원료다. 그리하여 탄소는 더 많은 일자리, 더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뜻한다. 탄소를 줄이자는 환경 이야기는 금욕적이고 지질한 반면 쇼핑과 해외여행은 멋지고 짜릿하다. 탄소를 많이 배출할수록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자유롭고 부유한 인생이다. 하지만 고탄소 배출로 인한 이상 한파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이주 노동자, 빙판을 달리는 배달 노동자, 영하 40도의 고층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가 가장 먼저 치른다.

가장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책 100가지를 다룬 ‘플랜 드로다운’에서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 채식 위주 식단, 음식물쓰레기 최소화, 여성 교육권 향상을 통한 가족계획 수립을 우선순위로 뽑는다. 그렇다면 미니 태양광 발전기 달기, 고기 섭취 줄이기, 버려지는 ‘못난이’ 채소 구입, 일상 속 페미니즘 실현 등 뭐라도 하나 시작해볼까. 20억 년 전 한낱 물때로 생물종의 대멸종이 일어났으니 사소한 실천으로 6번째 대멸종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서.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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