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맘때 서울 사대문 안에서 분신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제는 경희궁자이아파트가 들어선 돈의문 재개발지역에서다. 일식집을 하던 고모씨(당시 67세)는 2016년 4월12일 15년 된 자신의 식당이 강제철거되는 현장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의 가게가 있던 새문안의 ‘맛집 골목’엔 조선시대 골목의 흔적과 1920년대 한옥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2003년 뉴타운 지역에 편입되면서 전부 헐려 근린공원이 될 운명이었는데,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인 2015년 서울시가 용도를 문화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토지와 건물을 재개발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받기로 하고 ‘돈의문박물관마을’ 조성을 추진해 2017년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근린공원이 되면 종로구로 넘어가게 돼 있던 토지 소유권을 놓고 시와 구가 협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예술가들에게 기획전시 공간으로 내줬지만 관람객이 오지 않아 ‘유령마을’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결국 시는 땅 문제는 해결이 안된 채로 지난해 10월 민간에 긴급 용역을 내서 운영주체를 뽑았다.

서울시는 서울 종로구 경희궁 옆 골목 안쪽에 위치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새롭게 꾸며 3일 공개했다. 최미랑 기자  

“전면 철거하는 재개발을 반성하고 재생의 관점에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마을로 만들고자 했다.” 3일 서울시가 새로 단장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공개하며 밝힌 취지다.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를 콘셉트로 잡았다. 

건물들을 신축·리모델링하는 데는 총 300억원이 들었고 운영엔 연간 25억원이 든다. 사라질 뻔한 공간을 지켜낸 만큼 어떻게 다시 꾸몄을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날 공개된 마을을 둘러보니 내용이 참담했다. 보존한 건물 40채 중 16채를 ‘마을전시관’으로 만들었다. 그중 ‘생활사전시관’에는 연탄과 비누, 빨래판과 아궁이 같은 것들을 모아뒀다. 사진관, 이발소, 오락실, 만화방, 구락부(클럽)도 엉성하게 재현했다. ‘새문안극장’에서는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맨발의 청춘>이 상영됐다. 1970년대 교복을 입은 도슨트(관람객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가 “추억의 감성을 느껴보시라”고 강조하는 동안 골목길에선 1990년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또 한옥을 살려 만든 ‘체험전시관’에선 닥종이·자수·한지공예 등 체험수업을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억지로 짜내는 듯한 공간과 프로그램들이었다. ‘인위적인 테마파크 이상의 의미가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건물들이 남아있는 것 자체로 시민들에게 의미가 클 것”이라고 답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마을전시관’에 새롭게 꾸며진 ‘새문안만화방’(왼쪽)과 ‘돈의문콤퓨타게임장’. 서울시는 “스마트폰 터치가 아닌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하고, 웹툰 대신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꼭 가봐야 할 장소로 추천한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최미랑 기자

재개발에 밀려난 세입자들에게 시는 2015년 “편의시설을 들이게 되면 특별분양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업종보다는 ‘콘셉트’에 맞는 것을 들일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뿔뿔이 흩어져 자리 잡은 상인들이 과연 이곳으로 되돌아올까. 시는 ‘살아있는 참여형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삶이 밀려난 자리에 중구난방으로 과거의 생활을 박제해 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최미랑 | 전국사회부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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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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