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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수사권 조정’이라는 것이 곧 국회를 통과할 겁니다. 이른바 패스트트랙에 올라갔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지요. 패스트트랙에 올라탔을 때 저는 대검찰청 형사정책단장이었습니다. 작금의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놈이지요. 누구의 조롱대로 시일야방성대곡을 불러야 할 텐데, 사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돌도끼 한 자루 들고 고질라와 카이쥬 태그팀과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형정단장이라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처음 국회를 찾았을 때, 여당 국회의원에게 들은 첫마디는 “너무 늦었다”였습니다. 법안도 안 만들어졌는데 이미 늦었다니, 이건 출산 준비하러 간 출산박람회에서 유골함 강매당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사실 이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라는 게 핵무기 개발처럼 어찌나 은밀히 이뤄졌는지,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법무부 장관이 밝혔듯 검찰의 입장은 아예 듣지 않았고요. 물론, 경찰의 의견은 들었다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에 미뤄볼 때 경찰은 깊게 관여한 것 같은데, 어차피 직접 당사자인 국민도 모르니 제가 그리 억울해할 일은 아닙니다.

대문도 못 들어간 놈이 안방 구경 하겠습니까. 당연히 국회에서도 문전박대였죠. 여당에 찾아가 설명하면 ‘대검 간부들이 괴문서를 뿌리며 의원들을 압박한다’고 위협받았죠. 구걸수사나 하는 제가 여당 국회의원들을 협박하는 개차반이 된 겁니다. 하릴없이 야당을 찾아가면 ‘여당 패싱하는 것이냐’고 화를 냈습니다. 찾아가도 성화, 안 찾아가도 성화였고 토론회에도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높은 분은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짐이 곧 국가’라는 말은 들었어도 ‘내가 곧 정부’라는 것은 처음 들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선수 입장이라도 시켜주는데, 저는 라커룸만 구경하고 나왔습니다.

검찰이 수사권 조정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오히려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지켜달라는 겁니다. 수사권 조정 합의안에는 “수사권 조정은 자치경찰제와 함께 추진하기로 한다”라고 눈밭의 동백처럼 명확히 찍혀 있거든요. 국정과제 이행계획에서도 “실효적인 자치경찰제 도입 등과 연계하여 수사권 조정안 마련, 연동하여 시행”이라고 되어 있고, 대통령께서도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권력 비대화 우려가 있으므로 자치경찰이 필요, 수사권 조정은 자치경찰과 함께 원샷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이 그리 큰 죄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정부도 자치경찰제안이란 것을 발표했어요. 하지만 그걸 자치경찰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넉넉히 쳐줘도 자치방범대 정도죠.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당 싱크탱크에서도 그건 자치경찰제가 아니라고 했거든요. 정부의 국책연구기관인 형사정책연구원도 의문이라고 하고, 참여연대는 한술 더 떠 자치경찰제라고 부르기 민망하다고 합니다. 여당 국회의원조차 무늬만 자치경찰제라고 하는데, 그게 자치경찰이면 새우깡이 새우튀김입니다. 물론 그 새우깡조차 석모도 갈매기가 채갔는지 감감무소식입니다. 원샷으로 마셨는지 모르겠는데, 뺑덕어미에게 전 재산 털린 심봉사 심정입니다.

두 번째 합의는 행정경찰과 사법경찰 분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정보경찰의 폐지일 겁니다. 참여연대가 “정보경찰 유지하면 경찰개혁도 없다”고 말한 바 있어요. 지금 청와대 비서관이 되신 분도 “기존 경찰 정보국은 폐지하고 범죄정보 수집 위주의 정보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히셨고요. 기형적으로 강력한 정보경찰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가 우려하고 있어요. ‘영화 <1987>보다 더 막강한 공룡경찰이 될 것’ ‘정보기관에 실질적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나치의 제국안전중앙청과 일제강점기 고등경찰과 유사한 것으로 매우 위험한 정부조직 설계’라고 합니다. 나치의 게슈타포라는 거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는 ‘정보경찰 축소나 폐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현 상태라면 경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인지 작년에는 경실련 등 11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정보경찰폐지넷’을 발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일제 고등계로 출발한 정보경찰 역사상 가장 극성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검사들 승진 순위까지 매길 정도가 되었으니 곧 전 국민의 순위도 매길지 모릅니다. 물론 얼마 전 국회에서 경찰개혁도 하겠다고 밝히긴 했습니다. 반갑기는 합니다만, 20대 국회가 다 끝난 시점이라 추수 다 끝나고 눈밭에 모내기하겠다는 것으로 들리지만 그래도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야 ‘수사권 조정은 정보경찰과 야합을 통한 20년 집권론의 핵심’이라든가, ‘포장지는 검찰개혁이나 내용물은 경찰공화국’이라는 헛소문이 거짓으로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그게 가짜뉴스라는 것이 밝혀질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감히 한 말씀 올렸습니다.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검사내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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