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영화 보는 재미에 푹 빠진 8월이었다.

광복절 전후로는 <김복동>과 <주전장>을 봤다. <김복동>도 시의적절한 영화였지만, 둘 중 하나만 봐야 한다면 <주전장>을 추천하고 싶다. 

<주전장>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극우세력의 주장을 비친 뒤 곧장 반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수족이 구속되거나 철창 안에 갇혀있지 않았는데 무슨 강제동원된 ‘성노예’냐고 비웃는 극우 인사의 발언 뒤로, 여성들의 자유의지가 침해된 여러 정황들과 ‘노예’라는 언어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법학자의 발언이 뒤따르는 식이다.

방대한 정보와 치고받는 대화(처럼 편집된 각자의 인터뷰)의 끝에 다다른 영화의 결론은, 세계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일본의 우익 세력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방안이며,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굳이 과장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 위안부가 20만명에 달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예다. 큰 숫자일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해 진위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용한 세력이 있었고, 이는 상대에게 숫자가 허위이므로 위안부 강제동원 자체가 거짓이라고 주장할 빌미를 줬다. 상호 이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 '주전장' 포스터. 사진제공 시네마달

일본계 미국인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것도, 직접 영어 내레이션으로 작품을 진행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안’을 몸소 실천하기 위함일지 모른다. <주전장>을 거세게 공격하는 ‘일본회의’는 전략의 효과를 방증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최근 일주일은 EBS국제다큐영화제(이하 ‘EIDF’) 상영작들에 빠져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를 꼽자면, 평소 관심사와 닿아있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이다(이번주 토요일까지 ‘디박스(eidf.co.kr/dbox)’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유엔 특별조사위원 레일라니 파르하와 함께 세계를 누비는 카메라는 ‘조물주 위 건물주’가 한국만의 현실은 아님을 드러낸다. 토론토의 미친 집값과 노팅힐의 젠트리피케이션. 동네를 돌아야 할 돈을 해외로 빼내고, ‘우연한 만남’이라는 도시의 즐거움을 빼앗으며 획일적 공간을 양산하는 투기 세력들. 심지어 대표적 복지국가 스웨덴마저도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국제사모펀드에 잠식됐다. 

이 지점에서 갑자기 한국이 툭 튀어나온다. 악명 높은 사모펀드의 자금 출처 중 하나가 한국의 국민연금이었던 것이다. 국민들의 은퇴 후 복지를 위해 돈을 불린다는 명목으로 연기금을 투자하지만, 그 투자처는 국민들이 은퇴 뒤 살아갈 터전을 박살낸다는 아이러니. 심지어 한국에는 ‘강제퇴거’라는 박살 방식까지 자행된다. 용역들이 누워있던 아내의 배를 찼다는 남편의 증언은 공분하게 만든다. 레일라니는 유엔을 대표해 강제퇴거는 중대한 인권 범죄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래도 영화는 한 줄기 희망을 비춘다. 지방정부 간의 연대와 여성 연대다. 세계 도시의 시장과 부시장들은 모여 노하우를 공유하고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다. 사무보조로 고용된 줄리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여성들, 특히 워킹맘들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 레이라니는 웃으며 줄리를 사진에 담는다. 여러모로 하고자 하는 말이 많은 다큐멘터리다. 딱 내 취향이야.

문득 생각했다. 올해 유독 다큐멘터리 풍년인가? 그럴 리 없다. 좋은 다큐멘터리들은 언제나 있었고 변한 건 나다. ‘다큐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깬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더욱 진실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의 감동,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기쁨, 감독과의 내적 토론의 즐거움을. 요즘 다큐멘터리는 미적 성취도 대단하여 시각적 쾌감까지 얻을 수 있다.

관심만 기울인다면 다양성 영화를 접할 기회는 많다. 그것도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시민단체나 지역공동체가 기획하는 상영회는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 나는 같이 보고 함께 얘기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홀로 삭이던 문제도 함께 고민함으로써 해결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볼 게 없다”는 말이 맴돈다면 이런 기회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더 풍요롭고 튼튼한 문화 생태계를 지닌 한국을 기대한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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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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