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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태도로 나머지 삶을 살아가시길 바란다.”

지난 19일 서울고법 형사13부 구회근 재판장은 ‘직원 갑질 폭행’ 사건으로 기소된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씨의 항소심 선고를 마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재판부는 1심처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지만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은 취소했다.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71세라는 나이, 다른 형사 사건으로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한 점 등을 참작해준 것이다.

재판부의 훈계가 불편하게 들렸다. ‘사회적 약자’와 ‘아량’이라는 두 단어가 부적절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는 사전적 의미에서 ‘신체적 또는 문화적 특징 때문에 주류 구성원들에게 차별을 받거나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는 집단’이다. 한국 사회에선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을 사회적 약자로 본다. 아량은 ‘너그럽고 속 깊은 마음씨’다. 잘못한 이를 너그러이 용서해줄 때 쓰이는 말이다.

이씨는 7년간 10명이 넘는 운전기사, 가사도우미 등 자택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폭언·폭행을 저질렀다.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운전기사 얼굴에 침을 뱉거나, 수국 꽃대를 부러뜨렸다며 자택 경비 소장에게 전지가위를 던지는 식이었다. 경비원 등 법적 근로계약을 맺은 이들은 이씨와 동등한 위치의 사회 구성원이다. 이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것은 아량을 베풀 일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따라서 아량을 베풀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이씨가 아니다. 평등한 인간이지만 이씨에게 하인 취급을 당한 직원들이다.

재판부가 언급한 ‘사회적 약자’가 사전적 의미의 뜻이라고 해도 모순은 있다. 재판부가 진정으로 이씨가 사회적 약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여생을 살길 바란다면 8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2008년 대법원은 정몽구 당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에게 8400억원의 사재 출연, 준법경영 강연이라는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사회공헌하는 것이 낫다’는 취지로 몸으로 때우는 기존의 봉사활동 대신 사재 출연 등을 부과했다. ‘죗값도 돈으로 치를 수 있는 거냐’는 거센 비판을 받자 대법원이 이를 바로잡은 것이었다.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법원이 ‘높은 분들’에게 유독 관대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유설희 | 사회부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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