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조사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연락처에 서비스 관계자들이 많다. 병원, 은행, 로펌, 백화점, 호텔, IT, 통신, 방송사, 운송 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기억은 간호사다. 직장생활 중 가장 힘든 일로 밤과 낮이 수시로 바뀌는 3교대 근무를 꼽았다. 학교 졸업 후 병원에서 처음으로 밤 근무를 시작했을 때, 일을 계속할지 고민까지 했었다고 한다. “몇 달간은 우울증도 생겼던 것 같고.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병원 생활 3년째에는 몸도 망가지고, 친구들도 못 만났었다. 쉬는 날이면, 자기계발보다 잠자는 것에 만족했다”는 말에는 힘든 삶이 녹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직장인’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일요일 저녁만 되면 다음 날 출근 걱정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사람들. 매일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직장 생활은 장시간노동에 2주일 이상의 휴가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현실.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일터는 과연 안전한가. 1년, 2년, 3년을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건강검진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서야 휴직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일을 하며 병들어가야 할까. 출근할 때마다 아파하는 직장인들. 왜 우리는 일에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과거 우리 사회에서 진폐(1980), 화학물질중독(1990), 뇌심혈관계질환(2000), 직업성암(2010)과 같은 작업환경 위험성이 시기별로 사회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도의 변화와 맞물린 결과다. 최근에는 감정노동, 괴롭힘, 플랫폼노동, 디지털건강과 같은 영역들이 새로운 의제로 제시되고 있다. 이들 모두 비표준적인 계약과 고용으로 안전보건 보호정책의 부족 탓에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다. 아직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일터에서 안전보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도 이런 위험을 마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일의 미래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 서문에서는 100년 전, 세계는 왜 직업병과 산재사고에 대응했는지 질문을 던진다. 

특히 ILO는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사회심리적 위험이나 업무 관련 스트레스 등과 관련된 비감염성질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ILO는 지난 6월 108차 총회에서는 ‘일터에서의 폭력과 괴롭힘’(ILO Convention on Violence and Harassment) 관련 협약(190호)과 권고(206호)를 채택했다. 이날 채택된 협약은 직장에서 근로계약 조건과 상관없이 어떠한 종류의 폭력이나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때마침 한국도 오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다. 아직 시행도 되기 전부터 기업은 물론 직장의 관리자들은 법률의 포괄성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괴롭힘’의 정의 및 종류와 행위에 따라 포괄성이 높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직장갑질119라는 시민단체가 이달 초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니, 10명 중 3명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았고, 법이 시행되어도 괴롭힘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무려 41.9%나 되었다. 기존 관성에서 변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가 폭력과 괴롭힘을 제거하는 것은 필수적인 시대적 과제다. 

이제 우리도 노동안전의 위험을 예측하고 새로운 미래의 노동에 대처해야 한다. ILO협약에 비해 우리의 법률은 협소하고 제한적이다. 이번 협약에서는 신체적 학대는 물론이고 언어적 학대, 왕따, 폭력, 성희롱, 위협 및 스토킹 등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이나 플랫폼노동을 포함하여 계약상의 지위와 관계없이 직장은 모두 보호받는다. 가해자는 고객이니 서비스 제공 및 환자와 같은 제3자도 고려된다. 

일터의 위험성을 예측하고 미래의 노동에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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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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