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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종목 가운데는 ‘민주적인’ 스포츠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야구는 타석에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개의 스트라이크만 허용된다. 때로 판정시비는 따르지만 삼진아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뒤끝이 깔끔한 편이다.

사실 삼진아웃은 생활 곳곳에서 통용돼왔다. 음주운전이 일례다. 이전 도로교통법은 면허정지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1% 미만으로 음주운전을 하다 3차례 적발되면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이 기준이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고 윤창호씨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 2차례만으로도 면허를 취소하는 ‘투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허위·미끼 매물이 판을 치는 중고자동차 시장도 그렇다. 2016년 정부는 중고차 매매업체가 허위매물 등으로 3차례 적발되면 면허를 빼앗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별로 나아진 게 없자, 2차례 적발로 기준을 높였다.

삼진아웃제에는 처음은 실수일 뿐 ‘두 번째부터가 진짜 잘못’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고차 시장이나 음주운전에서 보듯 두 번까지 눈감아줬다가는 진짜 심각한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 사람 심리라는 게 한 번 해도 안 걸리면 ‘또 괜찮겠지’라며 간이 커지게 마련이다. 감시와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개전의 정’이 안 보일 때는 단매가 현실적 처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다. 현재 풀 카운트 상황으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사실상 삼진아웃이다.

최근 삼성의 ‘준법경영 선언’이라든지, 전직 대법관까지 모셔와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린 것을 보는 시민들 마음이 편치 않다.

지난해 10월25일 첫 공판 때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발언을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1993년 만 51세의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 법관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판결로 말하면 그만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왜 눈을 가린 채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들었는지 굳이 되물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삼성의 영향력은 이처럼 크고도 깊다.

그리고 11월1일 삼성전자 창립 50돌. 이 부회장은 새 경영 화두를 던졌다. ‘100년 삼성, 함께 가요 미래로!’ 삼성의 책임경영 고민이 십분 이해되지만, 1주일 전 재판장의 주문 이후라 영 개운치 못하다.

경제개혁연구소 이창민 한양대 교수와 최한수 경북대 교수의 보고서는 “재벌 총수들이 유죄판결로 구속됐을 때보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기업 가치가 더 크게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이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단언키는 어렵다. 무죄가 나거나 집행유예를 받으면 삼성과 나라 경제에 더 충격이 올까.

판사는 경영에 ‘훈수’를 두고, 기업인은 당연한 준법경영을 ‘선언’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 현실이 그저 서글프다. 미워도 다시 한번인가.

<전병역 기자 |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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