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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정세를 놓고 보수성향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한국도 이제 미국 쪽에 확실히 서야 할 때 아닌가. 균형외교도 좋지만 종국에는 미국과 함께 가는 게 맞지, 중국과 함께 갈 수 있나?” 그의 말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갈등의 최종단계(end state)를 미리 당겨와 당장 양자택일하라는 태도에는 위화감이 들었다.

보수논객들은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으니 균형외교를 그만 접으라고 한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미국의 중국 견제에 맞장구치자 ‘거봐라’며 한·미 동맹의 완전 복원을 외친다. 지금의 한·미관계가 복원이 필요할 만큼 손상됐다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가 ‘반미 행각’이라도 벌였다는 건지 요령부득이다. ‘퍼줬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려주고, 미국산 무기를 뭉텅이로 사들이는 문재인 정부가 어째서 반미인가. 미국이 공식 요청하지도 않은 쿼드(Quad)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친중’ 발언을 했다고 반미로 몰아붙이는 것도 부적절하다. 문재인 정부가 ‘친북’이니 ‘친중’이니 해도 한국은 이미 미국의 동북아 전략체제에 깊숙이 편입돼 있다. 딛고 선 지반 자체가 미국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 ‘균형외교’라기보다 ‘현상유지 외교’가 더 어울릴지 모른다.

균형외교는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 다수의 나라가 국익을 재며 때로는 미국, 때로는 중국 편을 드는 게 현실이다. ‘지정학적 지옥’인 한국은 더 정밀하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양국의 자장(磁場)이 워낙 강해 자칫하면 실족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누가 손을 내밀어주지도 않는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이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미국은 나몰라라 했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막는 데 보탬이 안 된다는 건 알 사람은 다 안다. 사드는 적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의 구성요소로, 적의 미사일이 고도 40~150㎞를 비행하고 있을 때 요격할 수 있다. 40㎞ 이하로 날아오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이나 장사정포에는 무용지물이다. 미국이 사드를 배치한 진짜 목적은 중국 등의 대륙간탄도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사드에 딸린 레이더가 중국군의 활동을 밀착 탐지할 정도로 고성능인 것이 탈이었다. 한국은 북한 미사일 방어에는 소용없으면서 중국엔 위협적인 사드를 배치했고, 이것이 한·중 갈등의 원인이 된 것이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3불 정책’은 중국과의 갈등 봉합을 위한 최소 조치였고, ‘남 좋은 일 하다 대신 매 맞는’ 비정상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걸 두고 보수들은 “안보주권까지 양보하며 중국 비위를 맞췄다”고 하니, ‘가스라이팅 됐다’는 소릴 듣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과의 대결구도를 뚜렷이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처럼 대결 일변도가 아니라, 필요한 분야에서는 협력한다. 미국은 남중국해에 항모를 진입시키면서 기후특사를 중국에 보냈다. 미·중은 지난 18일 ‘기후위기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거친 설전으로 주목받은 미·중 알래스카 대화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상당히 의미 있는 회동”이라고 한 걸 보면 미·중이 ‘싸우되 판은 깨지 않는’ 투이불파(鬪而不破) 상태가 지루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보수들은 마치 옛 일본군인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류의 ‘최종전쟁’이 임박하기라도 한 듯 조바심을 낸다.

한국의 외교 목표는 전쟁을 방지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평화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 모두 불가결하다. 이런 외교 원칙을 반복적으로 표명해 ‘한국은 원래 저런 나라’라는 인식을 각인시켜야 한다. 정의용 외교장관이 미국과의 2+2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미·중 어느 한편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한 데는 그런 의도도 담겼을 것이다. 미·중이 아마게돈에 서지 않는 한 한국은 ‘친미’ ‘친중’ 병행의 외교 나침반을 설정하고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올지 안 올지 모를 최종단계를 미리 거론하며 불안을 키우는 것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될 뿐이다.

다만, 정부는 ‘친중=반미’ 등식이 굳어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중국에도 따질 건 따지고 아닌 건 ‘노(No)’라고 말해야 한다. 중국의 무례가 되풀이되면 반중 여론이 강해져 외교 운신의 폭도 좁아진다. 외교장관 회담장을 대만 코앞인 샤먼(廈門)에 잡는 ‘난센스’는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중국도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는 대국 외교를 펼쳐야 한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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