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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턱스크’라는 빌런

경향 신문 2020. 8. 26. 11:49

며칠 전, 지하철에서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의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휴대폰의 주인공은 마스크를 내리고 큰 소리로 통화하기 시작했다. 당혹스러웠다. 벌떡 일어나 ‘당신 때문에 내가 이동하는 거다’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 반 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과 연구 결과가 누적됐다. 물류센터 확진자가 이틀 연달아 일하면서도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 않은 덕에 전파자가 0명이었던 일, 입시학원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했지만 모두 마스크 착용을 잘해줘 470여명의 학생들과 강사가 무사했던 일, 서울 마포구 댄스교습소에서 전원 마스크를 써 확진자였던 학생 한 명을 빼곤 모두 음성 판정을 받은 일 등이 떠오른다. ‘마스크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준다. 마스크 착용 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85% 줄어든다는 학술지 발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마스크로 인한 방역 효과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제대로’ 써야 한다. 나한테서 발생하는 비말도 차단하고, 타인의 비말도 내 몸 점막에 닿지 않게 하려면 코와 입 모두 가려야 한다. 코를 내놓고 입만 가린다거나 마스크를 턱에 걸치기만 하는 ‘턱스크’로는 아무리 KF 등급이 높은 마스크를 써도 효과 보기 어렵다. 당연히 말할 때나 기침할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상 ‘노(No)마스크’나 다름없다. 스스로의 건강에도 위험을 끼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을 파괴하는 ‘빌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확진자가 ‘턱스크’를 한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웃고 있는 기사 사진을 보며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웃음이 나와? 마스크도 제대로 안 쓰고? 자기가 확진자인 거 알았으면, 바이러스 전파가 가장 왕성한 때인 줄 안다면 당연히 제대로 마스크 착용해야 하는 거 아냐? 저런 사람 때문에 더운 날 두꺼운 방역복을 입고 고생하는 요원들을 생각하니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게다가 전 목사는 대단한 인플루언서다.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따르는 사람이 한가득. 그런 사람일수록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며 방역에 모범을 보이기를 바라는 건 과한 기대일까? 하긴, “병균 때문에 오프라인 예배를 열지 않으면 광화문으로 나와라” “이런 예배에 참여하면 성령의 불이 떨어지기 때문에 걸렸던 병도 낫는다” 따위 말을 한 사람에게 바랄 걸 바라야지 싶기도 하다.

전 목사를 따르는 이들 상당수가 방역당국을 믿지 않고, 음모론에 빠져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공무원과 의료진에게 테러에 가까운 행위를 하기도 했다. 단순히 정보가 부족해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면 된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을 들어도 거부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그리하여 전 목사 같은 이들에게 동원되고 이용되는 이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어떤 시민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의 결핍을 건강하게 해소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더욱 적극적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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