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애쓰는 일은 밥을 시간을 들여 15분 이상 천천히 먹는 것이다. 꼭꼭 씹어 먹고, 먹으면서 여유 있게 담소도 좀 나누라는 아내의 조언을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을 퍼붓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도 해 주란다. 점점 음식을 빨리 먹는 것의 신체적 한계도 느낀다. 얼마 전 여행지에서 선배와 함께 회를 먹었는데, 회가 맛있어서 허겁지겁 집어 씹지도 않고 삼킨 채 ‘소맥’을 퍼부었더니 몇 년 만에 ‘오바이트’를 흥건하게 해버리고 말았다. 아내는 술을 많이 마신 것보다 회를 꼭꼭 씹지 않고 먹어 사달이 났다면서 혼을 낸다. 밥 빨리 먹는 사람에 대한 규탄은 드문 일이 아니다. 친구들과 열어둔 단체 카톡방에는 밥 빨리 먹는 회사 상사들을 보고 있자면 체할 것 같다는 기분을 토로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허겁지겁 먹고 허겁지겁 마시는 건 이미 세련되지 못하고 혐오스러운 캐릭터가 됐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천성도 있겠지만 자라면서 더 밥을 빨리 먹게 된 것 같기 때문이다. 빠르게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흡입’은 내 나름의 생존법이었다.

어릴 적 밥상에서 들은 가장 무서운 두 가지 말은 “시조가락 떨지 말고 얼른 밥 먹어라”와 “밥상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였다. 일일연속극에 나오는 단독주택의 식사에서는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지만 나는 밥상의 의논을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기엔 부모님은 늘 바빴다. 밥은 하여간 후딱후딱 먹어야 하는 걸로 느꼈다. 초등학생 시절 도시락을 먹을 때 맛있는 반찬을 지키는 방법은 싸움을 잘하는 녀석들이 뺏어 먹기 전에 빨리 먹어 치우는 거였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천 명의 훈련생들이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따금 지체가 생기면 밥 먹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수저를 직각으로 움직이며 식사를 하는 도중 훈육관은 꾸물댄다면서 식판을 엎기도 했다. 회사 다닐 때 인사팀 선배가 구내식당에서 식사시간을 재어봤더니 평균 7분이 나왔다고 한다. 몇 년 전 본 경제 다큐멘터리에는 그렇게 밥 빨리 먹는 문화가 전형적인 대기업 중 하나의 기업문화로 묘사되기도 한다. 밥을 빨리 먹어야 한다. 얼른 담배도 한 대 피우고 낮잠으로 피로도 풀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까지 ‘흡입’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동사였다. 술을 마실 때 ‘달린다’는 표현도 함께 포개진다. 쉴 새 없이 ‘흡입’하고 ‘달리는’ 것은 쫓김에서 오는 ‘조급함’과 식생활의 결합이다. 의사나 가사 전문가들, ‘웰빙’을 말하는 사람들은 천천히 밥 먹으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지만 그건 매일 바삐 쫓기는 ‘보통’의 한국사람들에게 심정적으로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물론 밥을 느긋하게 먹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세련되다는 것 정도는 성인이라면 모두가 안다. 한 시간 정도의 점심시간을 가진 도심의 직장인들과 공무원들은 이제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알고 ‘점심 맛집’에서 음미하는 법도 익히는 중이다. 성장하면서 빨라진 식사속도는 이쯤에서 브레이크가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인이 되고 나서도 점심시간 한 시간의 여유 없이 한 끼를 ‘때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늘어나는 서비스 노동과 불안정 노동은 훨씬 더 사람을 촉박하게 만든다. 예컨대 영업사원과 서비스센터의 출장 수리기사, 택배기사, 대형마트의 캐셔, 제조업체의 사내하청 노동자 등에게 한 시간의 점심시간과 ‘여유’는 그대로 사치다. 안다고 모두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밥을 빨리 먹어야 하는 ‘생존형’ 식습관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전제는 제도적으로 보장된 휴식시간과 안정적인 최소한의 밥벌이다. 노동정책의 비전 중 하나로 느긋한 식사시간이 들어간다면 어떨까. 한갓지게 밥 먹으면서 편안하게 주변 풍경을 보며 쉴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지금까지 끼니를 급히 때우던 사람들이 가족에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며 잔소리를 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양승훈 | 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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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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