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뛰다가 넘어졌다. 쿵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달려가 아이를 일으켰다. 아이의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으냐고 묻는 건지, 괜찮다고 위로하는 건지 나도 모르게 말을 쏟아냈다. 아이의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뒤편에서 갑자기 “울지 마!”라는 말이 들려왔다.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이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감은 양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는 소매를 들어 눈을 훔쳤다. 울긴 했지만 울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울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울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아무도 없을 때 남몰래 더 크게 울지는 않을까. 제때 울지 못한 울음은 언젠가 다시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그때 흐르는 눈물은 누구도 어찌하지 못한다. 그 눈물 속에는 억울함과 섭섭함, 울지 못하게 만든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문득 어릴 때 들었던 날선 말들이 떠올랐다. 가령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 운다”나 “눈물이 헤프다” 같은 말들. 눈물이 솟구칠 때마다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게 했던 말들. 씩씩하지 못하다고, 참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고 나를 다그치던 말들. 그때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오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저 말들은 이제 케케묵은 것이 되었지만, 사람의 마음에서 이끼처럼, 곰팡이처럼 피어올라 그를 옥죄기도 한다. 내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책을 읽다가 울었다. 현직 의사 김선영이 쓴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라이킷, 2019)이라는 책이었다. 지은이는 종양내과 의사인데, 아버지를 암으로 일찍 떠나보낸 사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 그가 근무하는 병원이 작년에 아빠가 항암치료를 받은 병원과 같아서 첫 장을 읽을 때부터 목구멍으로 침을 삼켜야만 했다. ‘사실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주는’ 일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의사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에서 내 마음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던 문장을 옮긴다. 단단하면서도 겸손한 저 문장들로 인해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눈물이 흘러나올 때마다 불끈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주먹 안에는 “울지 마”라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울지 않을래”라는 내 목소리가 새겨 있었다. 울지 못하게 만드는 외부 기제가 아니라, 울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 자신이 담겨 있었다.

“병원에서 슬픔을 공부할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죽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의 슬픔의 깊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저리 너머 저 심연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누군가가 슬플 때, 어설픈 위로를 던지기보다는 그 슬픔을 헤아려보는 자세가 소중하다. 어떤 이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일상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슬픔일 수도 있다.

“울지 마”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때는 위로가 되고 어느 때는 폭력이 되는 말. 누군가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그 자리에 영영 붙박아두기도 하는 말.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더없이 편리한 “울지 마”라는 말. 실은 많은 말들이 양날을 지니고 있다. 슬픔을 다스리기 위해 했던 말이 슬픔을 더욱 부풀리기도 하고, 참아왔던 울음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울지 마”라는 말보다 “울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빠와 함께 거닐던 산책로를 혼자 걷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 날이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 나는 울어도 괜찮다고, 울 수 있어서 실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면 아마 나 자신이 통째로 쏟아졌을 것이다.

뛰다가 넘어져 우는 사람이 있었다. “울지 마”라는 외침에 울음을 삼키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장하며 울음을 참지 않기로 다짐했다. 한바탕 울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눈물과 타인의 눈물을 둘 다 존중하겠다고 결심했다. 눈물의 농도와 경중을 따지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비단 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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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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