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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시드는 동안 밥만 먹었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꽃이 시드는 동안 돈만 벌었어요


번 돈을 가지고 은행으로 가서


그치지 않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늘의 사랑을 내일의 사랑으로 미루었어요


꽃이 시든 까닭을 문책하지는 마세요


이제 뼈만 남은 꽃이 곧 돌아가시겠지요


꽃이 돌아가시고 겨우내 내가 우는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당신만은 부디


봄이 되어주세요


정호승(1950~)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문학평론가 이숭원은 정호승 시인의 시에 대해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이 주제의 울타리를 고집스럽게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이 시에서의 ‘꽃’은 한 명의 사람(어머니) 혹은 생명일 수도 있고, 사랑의 의지일 수도 있고,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일 수도 있겠다. 꽃이 시들 듯이 생명은 노쇠해지고, 사랑은 이별을 맞고, 영혼은 깨끗함과 숭고함을 잃기도 한다. 이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때로는 피할 수 없기도 하다. 그러나 시들고 떨어진 꽃을 다시 부르는 것은 봄의 에너지이다. 이 봄의 동력으로 새롭게 탄생하고, 다시 만나게 되고, 또 수행자처럼 구도의 기도를 잊지 않아 영혼을 맑고 신성하게 가꾸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 봄의 에너지는 사랑과 용서의 에너지이기도 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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