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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가짜뉴스라는 리더십

경향 신문 2020. 11. 25. 11:21

정부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재설정하고 1.5단계가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2단계가 선포되었다. 이런 수사는 봄이나 가을같이 스쳐 지나가는 계절에나 어울릴 것 같았는데.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한 옷장 속 봄옷이나 가을코트 등을 붙잡고 세월이 지났음을 떠올리는 게 이때까지의 클리셰라면 이제는 채 30일 조금 남은 2020년과 거리 두기 1.5단계 수준을 아쉬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스크라도 부여잡아야 할까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한다.

거리 두기 2단계 상향을 앞두고 메일함에 불이 났다. 1단계, 그리고 1.5단계 전후에 계획되었던 학술대회나 몇 가지 콘퍼런스 행사들이 부랴부랴 2단계에 맞춰 온라인 비대면 회의로 전환된다는 연락이었다. 연락을 급히 돌리느라 수고하는 선생님들의 노고가 타이핑된 글자마다 느껴졌다. 떠들썩하게 송년회를 할 계제도 아닌지라 혼자 골방에서 2020년을 정리했다. 2020년은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시기였다. 코로나19라는 질병이 사회의 약속 체계를 모조리 망가뜨렸으니.

사회가 혼란하면 대중은 영웅을 꿈꾼다. 최근 청소년 독서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도서관 사서분들을 만났는데 초등 고학년 사이에서 추리소설의 인기가 증가했다고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시리즈를 비롯한 유명한 대중 추리소설은 도서관에 책이 꽂혀있을 때가 없다고. 코로나 시대에 맞춰 온라인으로 전환한 2020 서울 국제도서전이 야심차게 내건 기획 주제 역시도 ‘크라임’이었으니. 알 수 없음으로 가득한 추리소설의 중심에서 미스터리한 알리바이와 트릭을 요리조리 밝혀내면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는 ‘탐정’의 행동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손쉽게 지적할 ‘범인’이 없다. 마스크를 안 써서, 또는 유흥가에서 방탕하게 놀아서, 또는 종교 집단에서 자제를 권고한 예배를 드려서?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가 마주하는 건 한 명, 또는 집단으로 설정된 악인이 아니라 확진자 수로 뭉뚱그려진 몇 개의 숫자조합일 뿐이다. 나 또는 너의 잘못이 아니라 이러한 집단 속에 들어있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사회를 균열낸다.

그런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건 ‘범인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자들이다. 내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의 진위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만이 세상의 진실을 알고 있고, 여러분들의 알권리를 위해 내용을 전파한다는, 그렇기에 여러분들은 진실을 뚜렷이 보라고 이야기하는 스피커의 리더십이 사람을 홀릴 뿐이다. 스피커들 역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거짓임이 분명한, 그렇기에 정확하지 않은 근거자료를 아무렇게나 제시한다. 그럼에도 나를 안심시키는 거짓을 택하는 대중의 확증편향이 사회의 모습을 일그러뜨린다.

2020년 초, 코로나19 초기 상황에서 앞으로 코로나19가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 섣부르게 이야기하던 사람들만 경계했었는데 현재는, 지금 이 순간의 사실을 확언하는 사람조차 경계하게 된다. 코로나19가 모두 종식되었을 때 거짓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던 사람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두렵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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