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 위에 편지를 쓴다.


달무리가 곱게 피어났다고 첫줄을 쓴다.


어디선가 요정들의 아름다운 군무가 그치지 않으리니


이런 밤은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고 쓴다.


저 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도무지 당신의 마음도 알 수 없다고 쓴다.


이곳에 나와 앉은 지 백 년,


저 강물은 백 년 전의 그것이 아니라고 쓴다.


마음을 벨 듯하던 격렬한 상처는


어느 때인가는 모두 다 아물어 잊히리라 쓴다.


그럼에도 어떤 일은 잊히지 않으니


몇날며칠 같은 꿈을 꾸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쓴다.


알 수 없는 게 그것뿐이 아니지만


어떤 하나의 물음이


꼭 하나의 답만 있는 게 아니기에


저물어 어두워가는 물 위에 편지를 쓴다.


그러나 강물에 띄운 편지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깊은 곳으로 흘러간다.


이학성(196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물은 멀리 흘러간다. 흘러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길고 큰 강을 시간에 빗대기도 한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도 장강(長江)과 유사하다. 휘돌아가는 물굽이가 있다. 앞뒤 사정이 많다. 그 시간의 강물 위에 시인은 편지를 써서 띄운다. 달의 언저리에 월훈(月暈)이 곱다고 쓰며 누군가를 생각한다. 오랜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해 생각한다. 바뀌고 달라지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난해해서 도무지 풀이할 수 없는 삶의 질문들을 생각한다. 그 질문들에 꼭 정해진 답은 없다. 누구도 하나의 마음이 아니기에. 시인은 반성과 살핌의 긴 편지를 써서 강물에 띄운다. 그러나 이 편지는 꼭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자신에게, 수심(水深)이 깊은 자신의 마음에게 띄우는 서신이기도 하다. 내가 써서 내가 받아보는 편지도 의미가 크다. 따뜻한 말로 자신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일도 필요하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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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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