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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8월27일에 일어난 ‘무릎 꿇고 우산 씌워주기’ 사건은 이미 흘러간 역사가 되었지만, 되짚어 볼 점은 있다. 이 사건은 처음엔 ‘과잉 의전’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한 취재진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빚어진 일이라는 반론이 나오면서 비난의 강도는 좀 수그러들었다.

‘언론 탓’은 일리는 있지만 전적으로 타당하진 않다. 공무원들은 언론의 요구에 무조건 복종하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를 수용할 경우에만 타당할 뿐이다. ‘무릎 꿇고 우산 씌워주기’가 8분 이상 지속되었음에도 주변에 있던 간부급 공무원들이 이걸 그대로 방치한 무감각마저 ‘언론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다소 오해는 있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과잉 의전’에 대한 일반 국민의 문제의식과 더불어 분노가 매우 강하며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과잉 의전’이 사라지거나 약화되어야 할 텐데도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질 못하니 말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적 삶에서 ‘의전 갑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과잉 의전’에 대해 마치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게 아닐까? 보통사람들로선 ‘과잉 의전’을 거부할 힘이 없으며 순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말이다.

경향신문은 2017년 6월 특집 기사에서 한국이 ‘의전공화국’이 된 이유를 ‘뿌리 깊은 권위주의’에서 찾았다. 의전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을 가진 자들이고, 그들이 자신에게 얼마든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갑질’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누가 시키든 시키지 않든 알아서 ‘과잉 의전’을 하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일의 실패는 용서받아도
의전 실패는 용서받을 수 없다”
권위주의가 낳은 우리 민낯이다

의전 마약은 평등개념 훼손하며
현실 감각을 마비시켜 버리고
결국 우리의 삶도 피폐해진다

의전의 폐해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분야의 선각자인 허의도가 2017년 8월에 출간한 <의전의 민낯: 겉치레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꼭 읽어보실 걸 권하고 싶다. 그는 “의전의 뿌리는 봉건제도에 있다”며 “오늘의 민주체제에서 말하면 야만, 한마디로 근사한 야만이다”라고 했다. ‘권위주의’와 ‘근사한 야만’이 좋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대로 좋은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의전의 민낯>에 소개된 사례들을 포함해 의전의 진풍경을 감상해보자.

의전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사람들의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겁주기’다. 위압감을 주기 위해선 집무실에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일단 무조건 커야 한다. 10여년 전 장관실(50평)보다 넓은 시장·군수·구청장실이 50개나 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공기업은 어떤가. 허의도는 기자 시절 찾아간 공기업 임원실에서 ‘운동장’이라는 신음을 내뱉을 뻔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자동차의 크기도 서열에 따라 달라진다. 허의도는 “자리마다 제공되는 차량의 배기량을 3300㏄네, 2800㏄네 규정으로 정해 놓고 있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라고 묻는다. 하긴 우리는 자동차 번호판부터 의전서열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죽는다고 해서 그 의전서열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무덤의 크기도 서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한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전강국이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야외 추모 행사장의 잘 정렬된 플라스틱 의자 앞좌석에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지어 앉는 일이 벌어졌다. 고위층 참석자의 ‘자리 알박기’를 위해 동원된 직원들이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네덜란드 투자단을 초청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지자체는 인천공항에 영접단을 내보냈고, 지자체 주요 거리와 시청 내부에까지 대형 환영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건 눈감아주자.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상 근무 시간임에도 투자단이 도착하는 시청 앞에 정장 차림의 공무원 수백명을 박수부대로 도열시켰다는 사실이다.

어느 외국기업의 고위책임자 A가 국내 재벌 계열사의 CEO와 약속을 잡다 잡다 안 돼서 결국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편리한 동네 카페 정도를 원했지만 CEO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보자고 했다. A는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충격을 받았다. 휴일임에도 그 CEO가 놀랍게도 13명의 직원을 불러내 이런저런 의전 수발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의 고위층이건 의전은 본인에 대한 의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배우자 의전까지 챙겨야 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 부인 수행에 공무원들이 동원되고 단체장 못지않은 의전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2016년 단체장 배우자들의 일탈행위를 보다 못한 행정자치부가 ‘지방자치단체장 배우자의 사적 행위에 대한 지자체 준수사항’을 마련해 자치단체에 통보했지만, 그게 잘 지켜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시는가?

우리 정부 기구 중엔 외교부라는 게 있지만, 이는 ‘의전접대부’로 이름을 바꾸는 게 좋을 정도로 외국을 방문하는 국내 권력 엘리트들의 수발을 드느라 바쁘다. 유럽 지역의 대사를 지낸 어떤 이는 2년여 동안 200여 차례 한국 손님을 맞았다고 했다. 1년에 100차례꼴이었다.

대기업의 해외 사업장에 고위층이 방문하면 초비상이 걸린다. 3시간 체류를 위해 3개월 전부터 난리법석인 경우가 허다하다. 현지인 근로자들은 도대체 뭐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마냥 고개를 갸우뚱한다지만, “일의 실패는 용서받아도 의전의 실패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게 한국인 직원들의 좌우명임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국내 모 대기업의 프랑스 법인장을 지낸 에리크 쉬르데주가 출간한 <한국인은 미쳤다!>(2015)는 책은 사실상 ‘의전에 미친 한국인’에 대한 고발서이다.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인의 궁극적인 꿈은 ‘의전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의전 갑질’을 당하는 직원들은 피해자일 뿐인가? 꼭 그런 건 아니라는 데에 진짜 비극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쉬르데주가 진급해 ‘상무’라는 직함을 갖게 된 순간 한국인 직원들의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는데, 그는 갑자기 달라진 의전의 무게를 불편해하면서 그걸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실수한 게 틀림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동차에서 내려 공항 대합실까지 내 짐을 내가 들고 가는 일은 소탈함을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라 새로운 지위에 걸맞게 행동하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그 기대를 벗어나는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내가 우습다고 생각한 게임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한국인들에게 어쩌면 나는 그들이 생각한 것만큼 법인장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준 것이다.”

점잖은 냉소로 이해하는 게 옳겠지만, 의전은 쌍방의 공모에 의해 유지되기도 한다는 걸 시사해준다. 허의도는 “의전 자체가 경쟁구도로 빠져들면서 차츰 상명하복과 아부의 수단으로 변질된다”며 “폐쇄적이고 경직된 구조의 안락함을 사수하는 수단으로 의전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중간관리자가 의전으로 리더를 조직에서 격리시키는 일도 벌어진다. 양쪽 모두 익숙해지면 의전은 마약이 되고 만다. 허의도는 ‘의전 마약’의 가장 큰 문제는 “리더를 조직의 본질과 격리시킨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당사자는 그렇게 공중에 붕 뜬다. … 의전에 휩싸인 리더는 허수아비나 피에로처럼 권력을 행사한다. 정작 본인은 제법 근사하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실로 안타깝고 위험한 독극물이 아닐 수 없다.”

의전은 사회 각 분야의 고위 인사들을 타락시키는 주범 중의 하나다. 무엇보다도 평등의 개념을 훼손하며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사람마저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면서 서열에 목숨을 거는 수구꼴통으로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보통사람들이라고 해서 의전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의전은 한국 사회의 완고한 서열주의와 그에 따른 갑질과 분리할 수 없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리 모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구체적인 해법까지 제시한 <의전의 민낯>이라는 책이 다시 널리 읽히면서 ‘의전 죽이기’에 가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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