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즉에 좀 해둘걸, 몹시 후회스럽다.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그저 한자 몇 개 아는 것에서 멈췄다. 늘그막으로 기울어질수록 고전을 기웃거리게 된다. 졸아드는 시간 앞에서 이제 소설은 그만 읽겠다는 사소한 결심도 한다. 이 세계의 진리는 의문문의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무식한 자의 용감에 기대어 한술 더 뜬다면 그것도 부정문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눈앞에 있는 돌멩이가 그것이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 뿐 정작 돌멩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게 없다. 너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구별되고 그저 ‘아니다’라는 사실에 촘촘히 기대고 있을 뿐이지 않겠는가. 한문을 더듬더듬 읽으면 꽤 자주 부정문을 만나게 된다. <노자>의 첫 문장은 단호한 부정문이고, <논어>의 첫 대목엔 무려 5번의 ‘아니 불(不)’이 등장한다. ‘그렇다’는 긍정은 그것으로 일단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아니다’라는 부정은 그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가끔 붓으로 써보면 ‘不’은 균형을 잡기가 힘들고 웬만해서는 모양새가 나지 않는 글자다. 어쩌면 먹이를 노리는 왜가리의 고독한 포즈 같은 ‘不’의 어원을 찾다가 ‘이 문자는 악부(&#33852;莩), 즉 꽃받침의 상형자이다’(<한자의 세계>, 시라카와 시즈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不’자를 닮은 것을 찾다가 지난주 거문도의 바닷가 절벽에서 맞춤한 조건의 식물을 만났다. 꽃잎은 모두 떨어져나가고 도톰한 꽃대 위에 꽃받침의 흔적만 쓸쓸하게 남은 털머위였다. 거문도의 거문이 ‘巨文’이라서 더 각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털머위. 내친김에 과감하게 말해 본다. 세상은 ‘不’자 위에 아슬하게 건설된 문명이 아닐까.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진보를 이룩했는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는 데 능한 자동차라지만 운전의 관건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데에 있지 않는 것. 오늘도 자유로를 달려 출퇴근을 한다. 현대문명의 총아를 몰고 가는 동안 백미러를 보고 ‘부(不)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거문도의 털머위, 그것을 빼닮은 총 4획의 ‘아니 不’이 함께 떠올랐다. 털머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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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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