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고려 말기의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老乞大)>에 술 깨는 국이라는 뜻의 성주탕(醒酒湯)이 나온다. 이것이 해장국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육즙에 정육을 잘게 썰어 국수와 함께 넣고 천초(川椒)가루와 파를 넣는다’고 되어 있어 얼큰한 오늘날의 해장국과 그 기본이 같다.”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포털사이트에서 ‘해장국’을 검색하면 요식업 가맹사업자의 광고부터 나온다. 광고에 깔린 ‘지식백과’를 클릭해 들어가면 위 문단이 ‘정보’의 맨 처음이다. 해장국을 파는 업체나 가게에서는 여기에 기대 ‘<노걸대>에 나오는 해장국’을 앞세운 광고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주탕’ 세 글자 빼고는, 없는 소리다. 저 문단은 낭설이다. 우선 이 책의 편찬과 출판의 연대기부터 들여다보아야 한다. <노걸대>는 조선 세종 때 편찬되기 시작한 중국어 학습서로 <번역노걸대>(1517), <노걸대언해>(1670), <중간노걸대언해>(1795) 등이 전해온다. ‘노걸대’는 중국인을 뜻하는 말인데 나중에는 만주어 학습을 위한 <청어노걸대>, 몽골어 학습을 위한 <몽어노걸대>까지 나왔다. 중국어 외의 어학서에서 노걸대를 빌린 것이다. 이 가운데 <노걸대언해>에 ‘성주탕’이라는 어휘가 딱 한 번 나오고, 성주탕을 언해(諺解)해 ‘술깨오는탕’이라고 했다. 이것으로 끝이다. 조리법은 나오지 않는다. 천초(초피)와 소금으로 양념을 해가며 고기볶음을 하면서, 남의 음식에 타박도 하는, 절로 웃음이 나는 장면이 <청어노걸대>(1765)에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해장국은 없다. 이것으로 끝이다. <노걸대언해> 속 성주탕과 오늘날의 해장국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성주’는 ‘술을 깨다’라는 뜻이다. 옛 동아시아에서 자연스러운 말이고, 흔히 쓴 어휘일 뿐이다.

대중이 잘 모를 수도 있지, 어쩌라고? 물으신다면, 나 또한 배운 도둑질 자랑하자고 나서지 않았노라 여쭈겠다. 해장국 한 그릇 앞에서도, 단 하나의 검색창 검색-복사하기-붙이기라는 타성이 작동한다. 게으른 정보 습득과 가짜정보 유통이라는 악순환이 아예 한국인의 삶의 형식이 되었다는 말인가. 전통 음식을 한다는 곳에 가면 빠지지 않고 붙어 있는 광고물이 있다. 포털사이트 찍어서 처음 나오는 지식과 정보를 인쇄한 광고판이다. 대개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자산어보>에 그런 소리가 있다고 우긴다. 가끔 <노걸대> 같은 ‘마이너한’ 문헌도 동원된다. 피부미용과 원기회복으로 박자를 맞추었지만, 사실과 맥락이 어긋난 이야기를 늘어놓다 낭설에 주저앉는다. 성주탕의 전설과 같은 꼴이다. 그러고는 내 음식이 어떤 점에서 맛나고, 좋은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설명하지 못한다. 가령 내 일이 선지해장국이라면, 구체적으로 선짓국해장국을 거론함이 옳다. 

선지가 국거리가 될 때 된장을 바탕 삼을 수도 있고 젓국을 바탕 삼을 수도 있다. 해산물에서 온 젓국과 동물 단백질이 만나면 서로가 서로의 풍미와 손잡고 독특한 맛을 이룬다. 된장의 구수함은 또 다른 길이다. 젓국과 된장 사이에서 나는 어떤 기획으로 무엇을 선택했는가? 선지는 어떻게 다루는가. 사람은 소가 아니라 소고기를 먹는다. 한 덩어리 네발짐승의 피는 손질과 정리를 통해 ‘선지’가 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우리 입안에 들어와야 한다. 어떻게 다루었는가. 지저분한 것을 걷어내자고 중탕을 했다. 맛을 들인다고 젓국으로 밑간을 하기도 한다.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막걸리에 담가뒀다. 이런 고전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해장국 한 그릇 제대로 해내는 구체적인 길이다. 뾰족한 수는 없다. 내 일의 세목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사람이, 내 줏대를 쥐고, 내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검색창, 내가 끼고 사는 단 하나의 매체에 기댄 낭설 수집이란 정보의 습득일 수도, 공부일 수도 없다. 이미 모두 알고는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손은 먼저 검색창을 향한다. 검색하는 사이에 그다음을 잊는다. 이야말로 타성이다. 선지해장국 한 그릇에 잇닿은 낭설 한 조각마저 타성에 장악된 우리 삶을 비추고 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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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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