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일 |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


거의 매일 성폭행 기사가 실린다. 성폭행이 갑자기 늘어난 것일까? 경찰청 통계를 찾아보니, 2011년 성폭행 발생 건수가 1만9498건이다. 이중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는 2054건, 10%를 웃돈다. 하루 52.5명 꼴이다. 신고된 사건만 취합한 수치가 이렇다. 신고율 10%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그런데 기사화되는 성폭행 사건은 극히 일부다. 신고율을 10%로 잡으면, 2011년에는 하루 525건 정도가 발생한 건데, 이중 한 두건이 보도된다. 시민들은 이 한 두건의 보도를 보고 성폭행에 관한 현실을 상상한다. 성폭행은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대화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는 세계가 아니다. 이 때문에 현실 인식에서 언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성폭행 보도가 각별히 ‘현실의 전체상’을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희롱, 강제추행, 성폭행을 포함하는 성폭력은 범죄자 개인의 도덕적 일탈을 넘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폭력의 성격이 강하다. 신고율이 10%가 채 안 된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거나(행실이 단정치 못해 성폭행을 자초했다.) 피해 사실을 오히려 약점으로 여기는 사후 배제(정조가 더럽혀졌다.)와 같은 이차적 폭력이 전제돼 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성폭행 현실의 전체상은 반드시 성폭행을 둘러싼 구조적 조건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성폭행 발생에 남성일반의 잘못된 성의식이 깊이 드리워져 있다는 사회적 각성이 가능하고, 이게 전제돼야 실질적인 가해집단인 남성일반이 예방책의 대상이자 주체로 정립되면서 근본적인 예방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연 언론은 성폭행 현실의 전체상을 드러내는 제 역할에 충실할까?


성폭력 추방집회 (출처: 경향DB)


성폭행보도는 사건기사의 형태가 주를 이룬다. 사건기사는 가해자가 얼마나 나쁘고, 피해자가 얼마나 무구한지 감정적 공분을 불러오기 위해 논거로 범죄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이 틀로 성폭행을 재현하면 기사 자체가 관음증을 자극하는 일종의 성애물이 된다.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포르노를 틀어놓고 ‘이런 영상물은 보지말라’고 말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런 ‘성애화’ 경향을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지만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어쨌거나 이런 보도에 독자가 성폭행범이 정말 나쁜 놈이라고 비분강개했다면 언론은 바람직한 공론을 제기한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런 보도는 성폭행을 가해자의 도덕적 일탈로만 재현하면서 구조적 현실을 덮어 버린다. 구조적 연루자들인 남성일반은 도덕적 공분의 제스처 뒤에 숨는다.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가해에 대한 과장된 공분의 그늘에 가린다. 결과적으로 성폭행은 가해자와 처벌해야 할 사법기구의 문제로 정립된다. 이 지점에서 ‘형량강화’, ‘화학적 거세’ 등의 정책적 논의가 제기되기 때문에, 얼핏 이런 보도는 대안을 찾는 정책적 보도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가해에 대한 과장된 조명과 처벌 중심의 대책이 도출되는 일련의 과정에는 두 개의 정치적 효과가 발생한다. 첫째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구조적 폭력의 현실이 삭제되는 성정치적 효과다. 둘째는 성폭력과 남성일반의 관계가 성희롱, 성추행보다 상대적으로 소외계층의 범죄인 성폭행-범인의 관계로 대체되면서 발생하는 계급투쟁의 정치적 효과다. 결과적으로 정치적 대차대조표는 피해여성, 여성일반, 가해남성은 피해자, 가해남성을 제외한 남성일반은 수혜자가 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성폭행 보도 자체가 역설적으로 성폭력의 구조적 성격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바람직한 성폭행 보도는? 내가 주문하고 싶은 건 딱 한 가지다. 피해자의 상처를 성애화하려는 상업적 유혹과 만만한 가해자를 공격해서 값싸게 정의감을 얻으려는 얄팍한 정치적 계산을 뿌리치고 피해여성의 처지에 진정으로 감정이입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8년에 걸친 친부의 성폭행을 극복하고 책을 써낸 20대 여성의 내면적 치유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가장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성폭행 보도라는 자각이 그대들의 뒤통수를 때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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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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