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목판을 사서 페인트 칠을 하고 벽돌 몇 장씩을 포개어 책장을 꾸몄다. 윗장에는 시집, 중간장에는 전공, 맨 아랫장에는 저널이니 화집을 꽂았다. 책을 뽑을 때마다 책장은 아직 나처럼 흔들거린다. 그러나 책장은 모든 사람의 과거처럼 온 집안을 채우고 빛낸다.

어느 날 혼자 놀던 아이가 책장을 밀어 쓰러뜨렸다. 책장은 희망 없이 온 방에 흩어지고 전쟁의 뒤끝같이 무질서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자세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나는 벽돌을 쌓고 책을 꽂아 다시 책장을 만들었다. 아이는 이후에도 몇 번 쓰러뜨리겠지. 나는 그때마다 열 번이고 정성껏 또 쌓을 것이다. 마침내 아이가 흔들리는 아빠를 알 때까지, 흔들리는 세상을 알 때까지.

- 마종기(1939~ )


△ 벽돌과 목판으로 쌓아 책을 뽑을 때마다 흔들리는 책장은 미국 이민자로 살면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의 삶과 내면 상태를 보는 것 같다. 쓰러지는 것, 포기하는 것, 그래서 갈등과 고민을 단번에 끊어버리는 것, 그것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자세”이다.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의 쾌감은 달다. 할까와 말까 사이에 있을 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그것을 단번에 무력화시킬 위협 사이에 있을 때,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해야 하는 이유보다 점점 늘어날 때, 그 유혹에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이민자로 살게 되었고 조국으로 들어오려는 시도도 좌절되었던 시인은 마음으로는 여러 번 쓰러져보았을 것이다.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쓰러질 때마다 “열 번이고 정성껏 또 쌓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흔들림과 쓰러질 가능성 위에 선 채, 곧 무너질 것 같은 불안과 긴장을 품고 있는 것이 삶이다. 평범해 보이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는 무너져본 자리에 남은 상처와 그것을 딛고 일어선 흔적이 있을 것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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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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