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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탑

지도를 보며 찾아간 곳에는 없어진 건물이 있었다. 무엇을 결정하는 일은 시간 속에 허리가 잠겨 있게 한다.
누군가의 얼굴을 죽도록 때리는 꿈을 꾸었어. 너는 아침마다 침대 머리맡에서 꿈 이야기를 듣는다.
알람처럼
양털에 파묻힌 양의 얼굴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은 일단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무릎 위에서 잠이 든 개처럼
미동 없이
밥을 먹기 전엔 기도를 잊지 않았다. 볕을 쬐며 살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너는 사라져 본 적 있는 외투로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건물에 간다.
뜨거운 볕이 잎을 망가뜨린다.

- 안미옥(1984~)


△ 생각을 하자 그 생각은 사라지고 생각을 했다는 과거만 남아 있을 때가 있다. 다시 기억을 호출해서 생각의 생각을 곱씹어 보아도 쉽사리 재현해낼 수 없는 과거의 망각들이다. 우리는 생각과 망각을 현재에 수없이 지불하며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를 보존한다. 멈추지 않아서 살고 있는 것이고 살아 있기에 생각의 형식 속에서 위태로운 것이다.

안미옥이 그려내는 세계는 희박하고 어리둥절하다. 무언가 있을 듯이 건축했다가 홀연 사라지게 하는 이런 아리송한 시적 공간은 그의 시를 읽는 동안에 우리들이 겪는 시점까지도 부유하게 만들어버린다. 재현과 혼돈이 겹치고 흘려보낸 물상들과 사유해낸 생각들이 교차하는 가운데에, 그저 뼈대만 남은 세계의 입구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미동”도 없고, “무엇을 결정”하라는 고압도 없다. 단지 “사라져 본 적이 있는 외투”를 걸친, 계속 줄어들고 있는 자아가 있을 뿐이다.

나 또한 “살아본 적이 없는 시간은 일단 망가졌다”고 중얼거려본다. 그 누군가를 더 오래 생각하는 방식으로 단 한 사람을 망각하는 절망을 배운다.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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