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가 느닷없이 쏘아올린 불씨 중 하나는 ‘교육개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제도 재검토’를 언급한 데 이어 지난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고교 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면서 ‘교육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탈 기세다. 맥 빠지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큰 기대는 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14개국의 입시전형을 분석한 <세계 각국의 대학입시제도 연구> 보고서를 보면 주요 대입 전형요소는 몇 가지로 모아졌다. 국가수준 대입시험과 고교 내신, 대학별 고사, 비교과 활동 등 4가지를 혼합하는 방식이다. 어떤 요소들을 택해 어떤 비율로 사용하는지, 대입시험의 성격이 선발인지, 고교 졸업 자격시험인지, 몇 번의 기회가 있는지, 내신이 절대평가인지, 상대평가인지 등 세부 차이만 있을 뿐 하늘 아래 뚝 떨어진 새로운 방법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건 이런 부분이다. 6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1.8%)의 2배에 이르는 고등교육의 민간 부담 비중, OECD 평균(44.3%)보다 한참 높은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 이수율(69.6%) 같은 것. 최근 ‘OECD 교육지표 2019’에서 발표된 이 수치들은 뭘 말하나. 대부분 대학교육 이상을 받으니, 대학 졸업장은 아무리 비싸도 기본으로 따 놓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명 ‘스카이’ 출신들이 각 분야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스카이 공화국’이기도 하다. 20대 국회의원 중 47%(140명), 장차관급과 중앙행정기관 1급 이상 공무원 중 핵심 직위 232명을 대상으로 한 경향신문의 ‘파워엘리트’ 조사(2019년 5월)에선 64.2%(149명)를 이들 3개 대학 출신들이 차지했다. 전국의 4년제 일반대가 201곳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한편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가 참으로 아득한 사회다. 통계청이 올해 초에 발표한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노동자 중 가장 소득이 높은 40대의 월평균 소득은 260만원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20대 평균소득(271만원)보다도 낮았다.

우리 모두는 실상을 알고 있다. ‘교육개혁’이라고 말할 때의 관심은 대개 입시와 학벌, 좋은 직업에 진입해 안정적 삶을 보장받기 위한 일종의 ‘증명서’ 받기에 집중돼 있다는 것을.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교육의 본질인 ‘배움’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승자독식 사회다. 한 번의 성공, 혹은 실패의 대가가 너무 과도하거나 혹독하다. 입시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개인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하다.

결론은 뭔가. 여러 얘길 할 수 있겠으나, 우선 한 가지만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싶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학과, 치열한 경쟁을 거치는 직업군의 특권을 내려놓도록 했으면 한다. 의사, 법조인, 대학교수 정도가 대표적일 것이다. 조국 사태가 드러낸 욕망과 질시, 분노의 고리엔 우연히 이 3가지 직업이 겹쳐 있다. 일종의 묵시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데 의료사각지대는 왜 그렇게 늘어나고 외과전문의 등 꼭 필요한 의사가 부족해 수술절벽까지 걱정해야 하나. 로스쿨의 도입취지는 다양한 배경과 역량을 갖춘 인재를 대량으로 배출해 법조 문턱을 낮추자는 것인데, 왜 법조인의 문을 다시 좁혔나. 대학교수와 시간강사의 처우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날 이유가 있나.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대폭 늘려 특권은 줄이고 좋은 일자리는 나눴으면 한다. 나아가 고위공무원이나 정치인, 대기업 직원들의 과도한 특권을 내려놓을 방법도 논의하자.

너무 이상적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거짓말이다. ‘격차사회’ 완화 없이 학종 몇 프로, 정시 몇 프로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직업세습 2라운드’가 시작될 테니까. 귀화한 러시아 출신 학자 박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본질을 외면하고 해결책을 찾는 우리 모습은 “정로환으로 암을 치료하는 시도”다.

성공의 관건이 있다. 미국인이 썼지만 한국 상황과 무척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20 VS 80의 사회>가 힌트를 준다. 중상위층들은 최상위 1%를 손가락질하며 불평등을 비판하지만 이는 위선이라는 것, 발언권과 정치력을 독점하는 중상위 20%가 바뀌어야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책의 주제다. 자발적으로 안된다면,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강제하자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사회의 어디쯤 서 있는가. 겉으론 욕하면서 어떻게든 승자독식의 대열에 속하려는 열망을 나와 당신이 고쳐먹지 않는 한, 교육도, 개혁도 기대할 수 없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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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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