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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교육계의 가장 큰 이슈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될 공산이 크다. 여당이 지난해 총선에서 21대 국회 ‘국교위법’ 최우선 처리 공약을 밝힌 후 현재 국회엔 국교위 설치법 4개가 의원 입법으로 발의돼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신년사에서 국교위 출범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상반기 관련 법안 통과 후 연내 출범에 별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국교위는 교육정책이 정권에 휘둘려 왔다는 비판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립적이고, 일관성 있는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하자는 기구다. 2001년 보수 성향 교육단체인 한국교총이 초정권적 국교위를 처음 제안하고 이듬해 이회창 후보의 공약을 시작으로 대선 때마다 등장했다. 2017년엔 문재인,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심상정 등 주요 후보 모두 중장기 교육정책 수립기구를 약속했다.

국교위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없다. 개인적으로 교육 분야를 취재했던 10여년 전부터 많은 교육계 관계자들이 현실의 교육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국가교육위원회’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을 봐 왔다. 최근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을 보며 드디어 교육계의 오랜 숙원이 이뤄지는 것인가 감개무량할 정도다. 그런데 막상 국교위 설치를 위한 구체적 입법 논의를 하자고 하니 국교위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조차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낸다. 위원 구성의 중립성·대표성, 교육부 위의 옥상옥 기구, 교육자치와의 충돌, 국교위 결정의 실효성 등과 이해당사자들이 위원이 될 경우 자칫 권력 나눠 먹기 식이 되진 않을까 등의 우려다. 충분히 근거 있는 걱정들로 보인다. 사실 이제껏 국교위의 당위만 얘기했을 뿐, 무엇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는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 최소한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성급히 출범할 경우 논의는 쳇바퀴를 돌고 사사건건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국교위의 요체는 독립성과 합의 정신의 실현이다. 국교위가 그리는 아름다운 그림은 시민 합의를 바탕으로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위원들이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미래비전을 충분히 토의해 중장기 계획을 내놓는 것이다. 편향성을 문제 삼는 것을 야당의 발목잡기로만 여겨선 안 된다. 위원회 구성 방법부터 시민들의 폭넓은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법부 판단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회분위기에서 구성에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위원회의 결정에 어떤 권위가 있겠느냐라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미래교육 논의가 학교에만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 이제까지 입시와 초·중등 교육에 매몰돼 있는 교육정책을 사회로 끌어내며 확장해야 한다. 고령화사회를 맞아 교육은 일·생활·여가, 또 노동·경제·산업·복지·문화정책과 톱니처럼 맞물려 생애 어떤 단계에서든 힘이 되고 삶을 빛나게 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린 대체 언제까지 학급당 학생 수, 대입 정책만 얘기하고 있을 건가. 위원회 구성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교육부와 국교위의 업무 분담도 주요 논의 포인트다. 정부·여당안으로 볼 수 있는 유기홍 의원안에 따르면 국교위는 장관급 위원장 1명과 차관급 상임위원 2명 등 총 104명 규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비용 추계에서 향후 5년간 연평균 181억원씩 총 906억원의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건비와 기본 경비만 계상한 최소비용이 이렇다. 법안 통과에 앞서 충분한 논의와 정리가 필요하다.

하도 답답해서 여권의 교육 관련 위원회 등에서 일했던 교육전문가 7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현재 논의구조는 굉장히 폭이 좁아 걱정이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담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진보, 보수를 떠나 각계 실력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하는데, 듣기 편한 말을 하는 사람들만 부르는 것 같아 걱정이다.” “위상과 급여를 확 낮춰서 출발하면 어떨까. 명예직으로 시작해 좋은 평판과 결과가 있을 경우 급을 높이는 식으로.” “적어도 정부·여당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위원 추천 구도로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충정 어린 쓴소리들이 반영되어야 한다.

교육개혁 논의는 100년 대계를 세우는 일이다. 마땅히 희망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치화된 교육판, 패싸움이 된다면 필패다. 수십 번, 수백 번의 토론으로 이견을 한 뼘씩 좁히며 단단한 사회적 합의를 다져가는, ‘교육적인 교육개혁 논의과정’이 펼쳐지기 바란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또다시 분란만 일으킬 거라면 아예 시작을 말아야 한다. 20년간 품어온 기대가 ‘역시 우리는 안 돼’라는, 교육개혁에 대한 냉소로 끝날까 정말 두렵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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