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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점으로 돌아간 의사파업 봉합 직후 들려온 독일 의사들의 소식은 그야말로 딴 세상 이야기였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인구당 의사 수가 2배 가까이 많은데도 의회에서 의대 입학 정원 50% 확대 추진을 밝혔다. 쟁점은 같지만 독일 의사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의료 인력 확대를 요구해 온 독일 의료계는 이 방안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반면 한국 의사들은 거의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정원 10% 증원안에 대해 극렬하게 저항했다. 무슨 차이일까. 독일에선 예비 의사들을 국민건강을 함께 지키는 동료로 본 반면, 한국에선 내 몫을 빼앗아갈 경쟁자로 본 것이다.

이번 의사 파업을 보며 가장 당혹스러웠던 장면은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의 “의사는 공공재” 발언에 대한 의료계의 격앙된 반응이었다. 사람을 재화에 빗댄 것은 실수라 쳐도, 교육이나 국방, 소방처럼 의료도 공공재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 아닌가. 그러나 국내 공공의료의 실상은 시설로는 5.7%, 병상 수로는 10%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공공 병상 수가 71%이고, 민간 병원 비율이 높은 일본과 미국도 26%, 25%이니 한국은 압도적인 최하위다. 의사가 되기까지 정부 지원도 딱히 없다. 장기간 비싼 등록금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고, 전공의 수련 과정 비용은 병원이 부담한다. 빚을 내 병원을 개업하는 것도, 환자를 유치해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파산 시 책임도 의사 몫이다. 공공병원들조차 민간병원과 다를 바 없이 성과 내기를 강요받으며 부대사업으로 수익 창출에 나서야 한다. 이러니 의료가 공공재라는 생각에 의사들이 반발하지 싶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동네병원(의원) 1819곳이 문을 열고 1046곳은 문을 닫았다. 수도권 ‘빅5 병원’ 외 대부분 병·의원 의사들이 만성적 폐업 불안에 떨며 과로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나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시장 논리에 지배받는 한국 의료가 재난이나 비상상황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민간 부문에 인센티브를 던져주는 것뿐이었다. 이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김창엽 시민건강연구소장(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은 “시대가 달라졌다. 감염병 상시화, 인구 고령화 등으로 의료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제까지처럼 민간이 메우는 방식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윤 추구와 공공성은 함께 갈 수 없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개인적으로 투자한 한국 의사들로선 과잉진료, 3분진료, 비급여 진료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번 의사파업으로, 생명권이 저당잡히는 공포 속에서 우리는 민간에 손벌리는 것이 근본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환자와 정부, 의사가 모두 불안한 의료 체질을 바꿔야 한다. 우리에겐 경험이 있다. 교육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1970년대 콩나물시루 교실을 OECD 평균에 가깝게 바꿔놨고, 내년엔 고교무상교육까지 완성된다. 1980년 97%에 달했던 사립유치원 취원 원아 비율은 최근 국공립을 늘려달라는 여론이 들끓으며 올해 71%까지 빠르게 내려왔다. 적어도 보육과 교육에선 국공립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몇 시간을 헤매고도 필수의료인 분만실, 응급실을 찾지 못하는 지방 의료 현실과는 판이하다.

 

의사파업 사태를 겪으며 분명해진 건 국민 생명이 달린 협상 테이블에 의료계와 정부만 앉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2000년, 2014년 대규모 의사 파업도 땜질 처방으로 귀결됐다. 결과적으로 의사들의 자기 권리 지키기에 대한 내성만 키웠다. 팬데믹 시대, 시민들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은 공공의료다. 코로나19 환자 치료 대부분도 5% 남짓의 공공병원이 담당했다. 세계 각국은 이미 의료진과 시설 투자 등을 두껍게 하고 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공공의료 비율을 30%까지 확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공공병상 비율은 2012년 11.7%에서 2018년 10.0%로 되레 뒷걸음쳤다. 까마득하게 보이지만 지금부터라도 공공병상을 차근차근 늘려가야 한다. 앞으로도 닥쳐올 재난의료 속에서 필요한 것은 덕분에 챌린지가 아니다. 공공병원도 국공립유치원처럼 시민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양과 질을 높여가야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수익과 시간에 쫓기는 전교 1등 출신의 자영업자 마인드 의료가 아니라, 여유 있는 진료 여건 속에서 고객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환자를 만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의료’가 우리의 의료현실이 되길 바란다.

<송현숙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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