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설 연휴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 소식이 알려진 것이 꼭 1년 전이다. 연휴기간 고향에 가기로 했지만, 밀려드는 업무에 퇴근도 못하고 집무실 책상 앞에 앉은 채 발견된 그의 죽음에 온 국민이 망연자실했다. 올 설 연휴 직전엔 전국 17곳 권역외상센터와 닥터헬기 도입의 산파역을 했던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아주대병원 교수)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 교수는 지난 21일 라디오 방송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 완전히”라며 “죽어도 한국에서 다시 이것(외상센터 일) 안 한다”고 했다. 깊은 절망이 느껴졌다.  

[장도리]2020년 1월 22일 (출처:경향신문DB)

두 사람은 우리의 의료현실에선 보기 드물게, 명예와 출세도, 가족과의 시간도 포기한 채 험한 일이 기다리는 응급의료 개선에 인생을 걸겠다고 다짐한 의사들이었다. ‘선진국형 응급의료’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서로 격려하며 희망을 붙들었다. 그래서 이들의 비극과 깊은 절망은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권역외상센터 운영 이후 예방 가능한 외상환자의 사망률이 2015년 30.5%에서 2017년 19.9%로 크게 줄었다고 홍보했다. 사실 권역별 외상센터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끌고 온 것은 이국종 교수였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며 주목받자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여론을 움직였다. 이듬해 일명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권역외상센터들이 설치됐다. 권역외상센터 추가지원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중증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료진이 마음 놓고 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교수가 사의를 표하며 허언이 됐다. 

일련의 상황을 보며 우리 의료체계가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과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 의사들은 일하다 죽을 만큼 인력난에 허덕이는데, 성형외과, 피부과는 왜 그리 많은가. 미용의료와 관광을 한 묶음으로 엮어 외국인 의료쇼핑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움직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하는 것이 맞나. 결국, 궁극적인 질문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의료란 무엇인가, 의료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이다. 인술인가, 인술로 포장된 상술인가. 

핵심은 공공성이다. 시민들은 어렴풋이 공공성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의료 공공성에 대한 갈망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제주 녹지병원에 대한 반감이다. 제주 영리병원을 둘러싼 공론조사에서 지역민들은 큰 차이로 반대를 결정했다. 간단히 보면 아주대 외상센터 사태도, 돈 안되는 환자들의 쏠림과 돈 되는 진료만으로(또는 돈 되는 진료 중심으로) 운영하려는 민간병원의 충돌이다. 

김창엽 시민건강연구소장(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은 “아주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병원, 개인의 잘잘못보다는 의료가 시장에서 다른 상품과 비슷한 방법으로 생산, 공급, 유통, 소비되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민간병원들은 물론이고 몇 안되는 국립대병원, 공공병원들조차 민간병원과 똑같이 수익경쟁을 하는 근본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예산을 많이 지원해도 언제, 어디서든 위기는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공공성이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는 외상센터에도 경제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당초 6개 권역에 각각 1000억원을 투자해 외상센터를 건립하려던 계획은, 경제성이 낮다는 기재부의 판단에 쪼그라들었다. 훨씬 적은 돈이 전국 여러 곳으로 어정쩡하게 분산됐다.

아주대 외상센터 사태를 계기로, “(수익에서 자유로운) 국가 주도의 외상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선진국 중 외상센터를 민간병원에 위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웅 몇 명의 헌신에 기댄 변화는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복지부 장관은 아주대 사태에 대해 “현행 제도엔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정말 그런가. 공공의료에 투입할 의료진을 양성하자는 공공의대 설립안이 무산되고, 윤한덕 센터장 1주기(2월4일)가 다가오지만, 의료격차 해소보다 의료산업을 위한 규제 완화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의료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시민들이 원하는 의료를 요구하고 아무 문제 없다는 정부를 움직여야 한다. 공공 응급의료가 자리 잡도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더 이상은 비극도, 영웅도 싫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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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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