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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배원 논설위원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불거지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질 조짐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엊그제 경기 악화에 대비해 기금 운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가계와 기업의 사정이 안 좋으니 정부 쪽에서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겠다는 얘기다. 실물경제는 급한 대로 정부 생각처럼 돈 풀어서 둔화 속도를 늦추는 시도라도 할 수 있지만 해외발 악재에 휘둘리는 금융시장은 속수무책이다. 유럽 위기 고조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과 외환수급 불안 우려로 주가는 급락하고 환율은 뛰고 있다. 지난 한 달 4조원의 외국인 자금이 증시를 이탈했다.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2012년 다중(多重)위기’란 제목의 칼럼에서 올해 경제가 직면할 위기요인을 짚은 적이 있다. 가계부채, 고용없는 성장,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금융불안 등이 복합돼 위기가 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하나같이 대증요법 아닌 경제구조의 개선을 필요로 하는 과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경향신문DB)



반년이 지난 지금 어느 것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가 긴 안목으로 의지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미봉책과 대증요법에만 기댄 탓이다. 과도한 수출 의존도로 인해 유럽과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고스란히 실물경제에 전이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개선되지 않은 탓에 역시 세계 최대 수준의 금융불안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너무도 익숙한 ‘방파제 없는 경제’의 모습이다. 물론 반년 만에 경제가 구조적으로 개선될 수는 없다. 문제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당장의 경기에만 집중돼왔고, 근본적인 구조 개선은 관심 밖이었다. ‘정책은 없고 관리(管理)만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수출에 목매는 경제를 내수와 수출이 균형잡힌 경제로 가져간다는 정책 방향은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수출·제조업·대기업 중심 경제는 성장률을 올리기에는 좋지만 일자리가 늘지 않고 해외 경기에 지나치게 휘청거린다. 그래서 정부는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내수·서비스업·중소기업을 키워 균형성장 구조를 갖추겠다고 입만 열면 강조해왔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산업연관 통계를 보면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총수요 기준 한국 경제의 수출 비중은 2005년 29.0%에서 점점 높아져 2010년 35.1%에 이르렀다. 산업구조도 제조업 비중이 50.2%로 커져 외환위기 이후 처음 50%를 넘었다. 취업유발계수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고용없는 성장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내수·서비스업·중소기업 키우기가 슬로건에 그친 때문이다.


부채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자세는 한마디로 무책임한 수준이다. 국가부채를 능가하는 464조원의 공공기관 부채가 가장 큰 문제다. 공기업 부채 330조원을 포함한 공공기관 부채는 지난 한 해 61조원이 늘어 4년 만에 거의 2배가 됐다. 민간 기업이었으면 벌써 문을 닫았을 일이다. 부채 증가율(86%)이 자산 증가율(47%)의 2배가 넘는데도 정부는 “자산이 부채보다 많아 문제없다”고 말한다. 자산 2조원 이상 공공기관(39개)에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국회에 내도록 한 것이 사실상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전부다. 공공기관 부채 급증의 주범은 정부다. 정부가 공기업 등에 국가사업을 떠넘기고, 경기부양 등을 위해 돈을 많이 쓴 탓이다. 재정건전성 걱정은 말뿐이다. 국가·공공 부채를 어떻게 줄여나갈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적이 없다. 균형재정 달성 시기를 2013년으로 계획보다 1년 앞당기겠다는 방침을 내놓았을 뿐이다.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911조원의 가계부채 문제도 계속 곪아가고 있다. 외환위기 같은 대외 충격이 가해져 폭발하는 일이 없기만을 기도해야 하는 형국이다.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주춤해졌지만 질은 더 악화했다. 연체율이 올라가고 있고, 가계의 고금리 사금융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이미 재정위기를 겪는 남유럽 국가들보다 더 높아졌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이나 국책연구기관은 “가계부채가 문제”라는 한가한 보고서만 내고, 정부는 팔짱끼고 있다. 이제 와서 가계부채 내용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보겠다는 것이 가장 최근에 내놓은 대책 아닌 대책이다.


정부는 지난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선물환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 통화스와프 확대 등의 조치를 취했다. 여기에다 외환보유액도 많아 외환부족 사태를 겪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역시 안이한 얘기다. 금융시장이 개방된 정도에 비하면 전혀 방파제가 못되는 수준이다. 시장은 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외 악재가 등장하면 극도의 불안에 빠지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금융불안이 가시화하면 대책회의 하는 모습을 언론에 내보내 시장 참여자들에게 자중할 것을 당부하는 것이 정부 대책의 전부다. 어떻게든 세계 투기자본의 ‘현금인출기’ 노릇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유럽 재정위기가 아니라도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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