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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지 2주째, 이른바 ‘반도체 인재론’의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콕 찍혀, 부처의 명운이 걸리게 된 교육부는 연일 ‘반도체 이벤트’를 쏟아내고 있다. 국무회의 이틀 뒤 한덕수 국무총리와 반도체 인재 양성 논의를 시작한 이후,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 토론회를 열어 부처 전체가 온·오프로 반도체 열공을 하는가 하면, 연일 각종 간담회와 대책회의를 숨가쁠 정도로 개최하고 있다. 첨단 인재 양성 특별팀이 꾸려졌고 다음달 중 관련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 표현에 따르면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자 산업의 핵심”이다. 물론 반도체는 중요 산업이고 국가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방향이 맞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미 학자와 전문가들, 각 교육 주체들이 다각도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지만, 어떤 인력이 얼마나 부족한 것인지 현황 파악조차 안 돼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연간 1600여명이,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3000여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산업계 일각에선 1만명 수준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기업은 석·박사 인력난에 아우성이지만, 실제 필요 인력 절반 이상의 부족분은 주로 중소기업이 원하는 고졸 직원이다. 반도체는 융합분야인 만큼 반도체학과는 물론 전자·신소재·화학·환경공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공정·설계, 소재·부품·장비, 메모리 등 분야에 따라서도 다르다. 현황 파악이 안 돼 있으니 대책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정책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차 문제는 또 어떤가. 현재는 “인문계의 90%가 논다”는 ‘인구론’과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문송합니다’가 세태를 반영하는 유행어이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만 해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 주요 현안이었다. 미국의 유명 과학 잡지 사이언스가 2002학년도 서울대 공대 박사과정 미달 사태 등을 보도하며 원인을 분석할 정도였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사이클은 진폭이 커서 자칫하면 인력 과잉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정의당의 2021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은 구인·채용보다 퇴사가 많았다. 새로운 인력 양성보다 떠나는 인력을 붙잡을 방법, 이직 이유를 분석해 재직자들이 훌륭한 인재로 커 나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으로 보인다.

다양한 산업 중 왜 반도체만 특별대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도 해소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인원 부족률은 1.6%로 12대 주력산업 중에서 소프트웨어, 화학 등에 이어 10번째다(2021년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 100만 인재를 키우겠다는 정보통신기술(IT)은, 또 다른 미래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바이오·로봇·이차전지 분야의 인재 부족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는 답해야 한다. 대만의 반도체 총력전이 자주 거론되지만, 주력 제조업이 반도체밖에 없는 대만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산업 전반에 범용으로 쓰일 수 있는 기초과학 투자를 전폭적으로 하고 전공 간 장벽을 낮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길일 수 있다.

수도권 쏠림 강화 우려도 심각하다. 대기업들 요구대로 주요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가 이뤄진다면 그 자체가 지역균형발전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수도권 대학 규제 완화를 통한 인재 육성방안과 지역균형발전은 함께 갈 수 없다. 선거 내내 “지방대학을 육성하여 지역균형발전을 돕겠다”고 공약했던 현 정부는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태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 주요 정책의 추진 과정이 참을 수 없이 가볍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국가의 백년대계가, 인력과 재원이 출렁인다.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력 3만6000명을 양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K반도체 전략’이 발표된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6개 정부 부처와 산업계,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대규모 종합계획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할 게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재활용하는 것이 국가적 낭비를 줄이는 길이다.

장기 교육 비전을 위한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관련 논의는 전혀 없다. ‘반도체 인재 양성’ 한마디가 모든 의제를 집어삼키고 있는 이 혼란상이 우리 교육정책의 참담한 현실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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