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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과 나무. @shutterstock

2021년이 열리고 벌써 한 달하고도 열흘이 흘렀다. 신축년은 이제야 비로소 밝았다. 둘을 구분해야 하는 건 작년에 배웠다. “요즘 경자년, 쥐의 해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경자년이 되려면 아직 20일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갑자년이니 을미년이니 하는 육십갑자의 기준은 양력이 아니라 음력이기 때문이다.”(엄민용, ‘말글 나들이’) 2021년과 신축년. 격을 갖추고 때에 맞게 둘을 호명하니 나무의 가지와 줄기, 풀의 꽃과 잎을 구별한 듯 마음이 개운하다.

어린 시절 그렇게 설레게 기다렸던 설이 어느 때부턴가 시무룩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올해처럼 이렇게 싱겁게 넘어갈 줄은 미처 몰랐다. 절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몸을 제대로 구부리는 동작을 만들지 못했으니 꺾어지는 생각도 없다. 세월이 빠르다는 건 시간과 그에 맞물리는 사건이 아무 고리도 없이 각자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 열흘 남짓 지나가는 신축년의 설날이 벌써 흐지부지 옛일이 되었구나.

파주 출판단지 사무실 앞 조그만 샛강 둔덕에 수양버들과 귀룽나무 그리고 계수나무가 있다. 이즈음에 특별히 마음이 가는 건 계수나무다. 달나라 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무라지만 이미 배운 동요가 있으니 그럴 수는 없겠다. 심학산을 배경으로 오늘도 선생님처럼 밤이 왔다. 누군가의 어깨라도 짚는 듯 계수나무 가지를 짚으며 달을 본다. 보아 주지 않으면 그냥 미안해서 잠깐이라도 하늘의 달을 꼭 우러른다. 이는 그냥 단순히 고개를 젖히는 동작만은 아니다. 그것은 홀로 외로운 것, 높은 것, 쓸쓸한 것을 동경하고 단련하는 마음을 가슴에 고이게 한다. 비록 몸은 낮은 곳을 헤맨다 해도 정신은 저 고박(古朴)하고 우뚝한 곳에 걸어 놓으리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진득한 어둠에 내 모자란 마음을 섞어 그에게 저 알뜰한 뜻을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오늘 뜬 달은 쪽배 같은 초승달. 엄숙하게 확립된 심학산 아래에서 궁리해 보느니, 이 밤이 선생이라면 저 계수나무는 그 선생님이 손에 쥔 죽비이려나.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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