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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동체 생활을 할 때는 대학 강의를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다. 공부 시간을 확보하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상업화된 대학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비싼 등록금과 강사의 값싼 노동력을 쥐어짜서 높은 건물을 세우고 그 이마에 진리니 자유니 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써대는 그 대담한 위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생계가 그리 여유 부릴 형편은 아닌지라 욕을 하면서도 그놈의 강사 자리를 찾아 대학 언저리를 들락거린다.

대학 강의에 다시 나섰을 때 나는 내 발로 걸어 들어가면서도 누군가 내 목을 끌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내게 숨구멍을 터준 것은 학생들이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어느 순간 빛난다. 아마도 그 빛에 홀려 대학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싶다. 작년에 세미나 수업을 함께 진행했던 학생들이 특히 그랬다. 학생들 대부분이 독서와 토론에 열심이었다. 자기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펴는 모습이 놀랍기까지 했다. 대학원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소위 잘 나가는 대학이라 입학 때부터 논술로 무장된 학생들이 많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떻든 내가 짐작했던 풍경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희귀한 젊은이들로 보였던 그들에게도 그늘이 있었다. 종강하던 날 찻집에 모였을 때 자연스레 시국 이야기가 나왔다. 다음날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되어있던 터라 학생들 생각이 궁금했다. 곁에 있던 학생이 말했다. 학생 운동 같은 데 별 관심 없는 자기 같은 사람도 나가는데 많이들 나오지 않겠냐고. 왜 나가려 하는지 묻자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답변이 나왔다. “정말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내 눈길을 끈 것은 말이 아니라 어두운 표정과 이어져 나온 한숨이었다. “근데 한숨은 왜 쉬는 거예요?” 웃으며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하고….”

이것은 분노가 아니라 그늘이다. 분노는 감정을 달구는데, 이 경우에는 온도가 내려간다. 뜨거워지는 게 아니라 싸늘해지는 것이다. 대통령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 왜 그런지는 몰라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그다지 행복한 세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대통령에 대한 분노보다 ‘헬조선’에 대한 체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미래가 보일 때는 눈앞의 불의가 사람을 뜨겁게 만들지만 미래가 없을 때는 차갑게 만든다.

아직 탄핵국면은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대선국면은 시작된 것 같다. 후보들이 전국을 다니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국정농단의 온갖 추악한 언어들을 대체하려는 듯 ‘정의로운 대한민국’, ‘개혁을 위한 대연정’, ‘4차 산업혁명’ 등등의 아름다운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말은 말을 대체할 수 있고 지도자는 지도자를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의 교체이고 대표의 교체이다. 그런데 말이 지나간 자리에 한숨이 남는다. 대통령이 거기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거침없이 답하던 학생의 명료한 말에 까닭 모를 한숨이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대의제를 붙여놓은 체제에 살고 있다. 워낙 여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원리적으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둘이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탄핵에서 대선으로 이어지는 국면을 너무 자연스럽게 느낀다. 대표를 탄핵한다는 것은 곧이어 새로운 대표를 뽑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사이 카메라 조명의 방향이 바뀐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관심사는 ‘데모스의 힘’이지만 대의제에서 최대 관심사는 대표의 유능함이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고 우리에게 어떤 힘이 있는가보다, 후보들 중 누가 더 매력적이고 유능한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우리는 광장에 나온 서로에 대한 관심 대신에 박근혜 대통령 옆에 이어붙일 필름조각의 주인공을 찾고 있다.

대선이 다가오는 상황이라 대표에 대한 관심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대의제에 살고 있는 이상 좋은 대표를 고르는 게 중요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의제 틀에서만 상황을 보면 우리는 문제를 무능하고 나쁜 지도자가 만들어낸 거라고, 또 유능하고 좋은 지도자만 고르면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고 착각할 수 있다. 게다가 지도자들이 아름다운 말들까지 늘어놓으니 지금 여기가 헬조선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기 쉽다. 우리의 눈과 귀를 그들의 몸짓과 말들에 너무 많이 내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눈을 우리 처지를 더 자세히 살피는 데 쓰고, 우리 귀를 우리 한숨 소리를 더 크게 듣는 데 써야 한다. 더 나아가 그들 후보들의 눈과 귀도 우리를 향하게 해야 한다.

그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하다던 학생의 그늘진 말에 나는 루쉰이 청년들에게 던진 말을 전해주었다. 이렇게 막연할 때는 기본적이고 절실한 것을 움켜쥐어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잘 챙겨 먹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나아지려 노력하고, 여력이 되거든 애인들을 돌봐야 한다. 하지만 그때 내가 못다 한 말이 있었다. 루쉰은 그런 말들 뒤에 이런 말을 덧붙였었다. “이러한 앞길을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옛것이든 지금의 것이든, 사람이든 귀신이든…모조리 짓밟아버려야 한다.” 정신 차리자, 여기는 헬조선이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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