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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끝나간다. 용광로 같은 낮과 한증막 같은 밤이 교차하던 날들이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온열질환자가 4000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48명에 이르렀으니 가히 재난이었다. 그런데 이 4000명과 48명 사이, 그 생사의 문턱에 우리 야학의 학생 한 분이 누워있었다.

최중증 뇌병변 장애인 김선심씨. 서울의 대낮 온도가 40도를 육박하던 날, 그녀는 불덩이처럼 뜨거운 몸으로 발견됐다. 아침에 그녀를 발견한 활동지원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야학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눈이 뒤집혀 있었다고. 체온이 39도였는데, 의사가 이대로 두면 죽는다고 했다고. 열사병이었다.

에어컨은 없었고 선풍기는 틀지 않았다. 아니, 에어컨이 있어도 틀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밤은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 지내야 하는 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퇴근하는 활동지원사에게 콘센트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누전사고가 날 수 있으니 선풍기를 꼭 꺼달라고. “불나면 나만 죽는 게 아냐. 이 아파트가 다 죽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최중증 장애인인 그녀는 작은 사고가 나도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된다. 그의 룸메이트였던 김주영씨는 활동지원사가 없던 밤에 원인 모를 화재로 숨졌다. 야학에 함께 다닌 송국현씨도 달력의 날짜만 다를 뿐,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렇게 방치된 채로 혼자 지내는 똑같은 밤이 그녀에게도 일주일 중 3일이나 되었다.

사실 그녀가 콘센트를 뽑아서 막을 수 있는 것은 누전이나 합선으로 인한 화재뿐이다. 한쪽을 닫으면 다른 쪽이 열리는 문처럼 그녀의 삶에는 치명적 사고가 언제든 종류를 바꾸어 찾아들 수 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몸이 불덩이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죽음이 그녀의 11평 작은 집을 거침없이 드나들 수 있었던 건 콘센트 구멍 때문이 아니었다.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구멍은 사람의 빈자리, 즉 활동지원사가 떠난 자리였다. 그녀에게 활동지원사가 없는 밤은 이를테면 ‘죽을 것 같은 날씨’에서 ‘같은’이라는 말이 없는 것과 같다.

혼자 사는 최중증 장애인들에게는 24시간의 활동지원이 꼭 필요하다. 이들의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몇몇 지자체에서 몇년 전 24시간 활동지원을 시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사회보장 정비방안 지침’이라는 걸 만들어서 복지부 사업과 중복되거나 유사한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서비스의 신설을 사실상 가로막았다. 그렇게 제도들이 ‘정비된’ 탓에 김선심씨의 ‘죽음의 구멍’은 여태 그대로 있다.

현재 장애인들은 심사를 거쳐 복지부가 제공하는 활동지원시간에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더한 시간만큼의 활동지원을 받는다. 지자체 예산 사정이 좋거나 해당 지역에 서비스를 요하는 장애인이 적으면 구멍이 조금 메워지는 식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김선심씨에 대한 긴급구제를 신청하던 날 진정인 중 한 사람인 장희영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 구청에서 자신에게 활동지원시간을 한 달에 75시간 더 지원해주겠다고 했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반가운 시간은 다른 장애인에게 지원되던 것을 자신에게 돌린 것이었다고. 정부와 지자체는 예산을 할당하고, 예산은 시간을 할당하며, 시간은 생명을 할당하고, 한 장애인은 기껏해야 다른 장애인에게 할당된 생명을 제 것으로 당겨쓰는 식이다.

행정적 정비의 대상이자 행정적 여력에 달려 있는 생명. 그런 생명들이 있다. 어떤 이들의 생명과 자유는 국가 행정의 존재 이유지만 어떤 이들의 생명과 자유는 국가 행정의 여력에 속한다. 어떤 생명과 자유는 즉각 보장되는데, 어떤 생명과 자유는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약속에서만, 그리고 미래 복지국가의 이념 속에서만 보장된다.

김선심씨 문제를 심층 취재한 장애인 전문 언론 ‘비마이너’에 따르면, 국가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복지부 담당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시에서 여유 예산이 있으면 하는 거지 제한적인 국비로 ‘24시간 지원’은 어렵다.” 그러니까 국가로서는 지금 이런 생명까지 돌볼 여유가 없으며 만약 한다면 ‘여유 예산’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뒷이야기를 전하자면 김선심씨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은 받아들여졌다. 인권위는 복지부와 서울시, 해당구청장에게 24시간 활동지원을 그녀에게 속히 제공할 것을 권고했고 해당 기관들은 모두 이 권고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김씨 한 사람은 긴급 구제되었다. 여력을 모아 한 사람을 긴급 구제한 것이다.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했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는 김모 할아버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80대 시각장애인인 할아버지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그는 울면서 상봉 포기 각서를 썼다고 한다. 동행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 할아버지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을 하나하나 챙기기 어렵다. 그분을 모시러 포천에 갔다가 다시 속초로 갈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다.” 68년 만에 가족을 만나는 국가 행사 자리에 그의 손을 잡고 갈 인력이 없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도 행정의 여력에 달려 있는 판이니 상봉이라고 다르겠는가. 여유 예산, 여유 인력이 없다지 않은가.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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