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

[고영의 문헌 속 ‘밥상’]참외

경향 신문 2020. 5. 29. 10:39

“수박을 귀족적이요 부르주아적이라 할 것 같으면 참외는 평민적이요 프롤레타리아적이다.”

1928년 7월 발간된 ‘별건곤’ 제14호를 넘기다 웃음이 터졌다. 여름이면 무더기로 쌓이는 과채에 무슨 이런 어마어마한 소리람. 꼭지의 제목은 게다가 ‘참외로맨스’. 이에 따르면 참외는 과채의 ‘왕’이다. 역대 문헌을 펴면, 그렇게 쓸만해서 썼음이 여실하다. 한국통감부 기관지 경성일보 기자 우스다 잔운(1877~1956)은 이렇게 썼다. “조선인이 연중 가장 즐겨 먹고 무섭게 먹어대는 것은 참외이다. (중략) 길을 걸으면서도 먹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도 먹는다. 참외는 시중 어디서나 판다. 조선인은 여름에 참외로 살아가는 것이다.” 소론의 영수 윤증(尹拯, 1629~1714)은 사당에 올릴 여름 제물로 앵두·보리·수박·참외를 손꼽았다.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일찍이 참외(眞瓜)의 ‘참(眞)’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가슴 씻는 시원함, 금빛 속살, 꿀 같은 단맛의 매력을 노래했다. 여름철의 진짜배기란 뜻이다.

다시 ‘참외로맨스’에 따르면 그때는 뚝섬·시흥·과천·송추 골짜기의 참외가 서울로 몰려들었다. 성환·춘천·횡성·양양의 참외, 평양과 가까운 강서의 참외도 좋았다. 압록강을 바라보는 벽동의 참외는 어찌나 맛이 좋은지 그곳 아리랑에는 “시집을 못 가면 나 못 갔지 참외 안 먹고는 못 가겠네” 하는 구절이 있다. 무등산도 참외가 대단해서 “만일 광주의 참외가 좋지 못하다면 김덕령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것보다 더 억울하다”고 했다. 품종도 다양했다. 겉이 얼룩덜룩한 개구리참외, 노란 꾀꼬리참외, 검은 먹통참외, 속 빨간 감참외, 더 빨간 별자감참외, 몸통 긴 술통참외, 배꼽 나온 배꼽참외, 몸통 둥근 수박참외가 시장에 나왔다. 들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노란 쥐방울참외(쥐똥참외)가 자랐다. 사과처럼 달다고 ‘왜사과’로 불린 일본발 새 품종도 유통됐다. 이때에도 서울 사람들은 맛에 앞서 빛깔과 외형 좋은 참외부터 찾았다니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진다.

그런데 성주는? 섭섭해 마시라. 단성·경산·울산·밀양이 당시 경상도의 참외 산지였다. 오늘날 참외의 주산지로는 성주를 필두로 칠곡·김천·달성·함안·고령을 빼놓을 수 없다. 성주는 유구한 참외 문화사를 이어받아 1950년대 이래 독농가, 농민, 국가가 서로 손잡고 가장 먼저 한반도 참외농사를 갱신한 곳이다. 이제 두 번째 갱신을 볼 수 있을지, 글쓴이는 두근두근 지켜보고 있다. 지속 가능성과 시설농업의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 달라진 음식문화에 발맞춘 다양한 품종 육성에 이르는 과제가 눈앞의 현안이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kini.thescrew@gmail.com>

댓글
댓글쓰기 폼